곽 회장은 비서에게 나가보라는 눈치를 주고 소파로 와서 앉았다. 비서는 바로 사무실 문을 닫고 밖으로 나갔다."우리 회사와 합작하겠다고 허풍 친 사람이 자네였군. 자네 서현식 회장과 어떤 사이지?"곽 회장이 단도직입적으로 묻는 것을 보고 서도준도 숨김없이 대답했다."저는 서현식 회장님의 아들입니다.""서 회장의 아들은 서강우 한 명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자네는 뭐지?"서도준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회장님은 서자를 외부에 밝힐 분이 아니시니 모르는 것도 당연하지요."곽 회장은 약간 넋이 나갔다. 사람들은 보편적으로 서자를 좋게 보지 않는다. 대단한 권세의 자식이라고 해도 평생 어둠 속에서 살 수밖에 없는 게 서자의 운명이었다.호적상 아들이 정신적 질병으로 인해 가업을 물려받지 못하게 되니 숨겨둔 자식을 찾는 것쯤은 이해할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곽 회장이 알기로 서현식은 서자에게 가업을 물려줄 만한 사람이 아니었고, 설사 그럴 의향이 있다고 해도 지금 와서 찾아오지는 않을 것이다.곽 회장은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서자가 나와 합작을 운운한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나? 자네한테는 서인그룹을 통제할 만한 권력이 없을 텐데. 서 회장의 성격으로 힘들게 쌓아온 업적을 어울리지 않는 사람한테 주지도 않을 것 같단 말이지.""저는 서 회장님한테서 아무것도 받지 않을 겁니다. 비열한 방식으로 운영하는 회사는 준다고 해도 싫습니다. 화성의 용호 제3구역이 조사받기 시작한 시점에 회장님이 저를 찾기 시작한 건 절대 우연이 아닙니다. 회장님은 본인을 대신해 죄를 뒤집어쓸 사람을 찾고 있을 뿐입니다."곽 회장은 멈칫하더니 의아한 표정으로 서도준을 바라봤다."네가 그래도 꽤 똑똑한 모양이구나. 만약 서인그룹을 대표해서 온 것이 아니라면 무엇으로 나와 합작하겠다는 것이냐? 그리고 서인그룹 지분의 5%는 어떻게 의정이한테 준다는 말이냐?""지분이라면 양도할 수도 있으니까요.""양도라... 언제 망해도 이상하지 않을 회사의 지분을 내 딸한테 넘기는 건, 책임
"맞아요. 예전과 다른 선물을 고르는 게 여간 일이 아니네요. 한참 고민하다가 골동품 매장에 와봤어요."라민희는 강성연과 몇 마디 주고받다가 눈치껏 먼저 떠났다. 젊은이들끼리 얘기를 나눌 수 있도록 말이다. 김아린과 강성연은 근처의 카페로 와서 디저트를 먹으며 얘기를 나눴다."나 오늘 그 사람을 본 것 같아."김아린이 물었다."누구?""서도준 씨."오래간만에 서도준이라는 이름을 들은 김아린은 약간 막연한 기분이 들었다. 이제는 서도준에 대한 기억도 가물가물해졌다."어디서 봤는데?""길에서 그냥 스쳐 지나갔어. 어쩐지 낯익다 했더니 서도준 씨였더라고."강성연은 김아린을 바라보고 피식 웃으며 이어서 말했다."왜? 설마 아직도 마음이 있어?""아니거든! 괜히 천광이 귀에 들어가게 하지 마. 그 질투를 감당해 낼 자신이 없어.""아니면 됐어. 난 또 잊지 못하고 슬퍼할 줄 알았네.""말도 안 돼!"솔직히 말하자면 김아린은 서도준에게 약간의 아쉬움 정도만 남아있었다. 그토록 좋아했던 사람에게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건 불가능했다. 하지만 슬픔이라고 할 만한 정도는 아니었다."천광 씨는 서도준 씨에 대해 알고 있어?""당연히 모르지. 내가 말했겠어?""그럼 빨리 말해. 서울이 얼마나 좁은지 몰라? 괜히 나중에 마주쳤다가 오해가 생길 바에는 먼저 말하는 게 낫지."강성연은 김아린이 과거를 완전히 내려놓기를 바랐다. 청춘 시절의 아쉬움은 누구나 있기 마련이니 말이다.골드 룸살롱도 그렇고, 서도준도 그렇고, 김아린이 아직도 마음 한쪽 구석에 아쉬움을 품고 있다는 것을 강성연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는 전부 과거에 불과했고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구천광이었다.서도준도 서울에 살고 있는 모양이었기 때문에 마주치는 것은 시간문제에 불과했다. 그래서 강성연은 과거를 들추면서까지 김아린에게 마음의 준비를 시켰다.김아린이 집으로 돌아오자 아주머니는 구천광이 위층에서 아이를 보고 있다고 했다. 서재에 들어가 보니 그는 구희나를 안은 채로 의자에
연희승은 서현식의 수단이 존경스럽기까지 했다. 어쩐지 서인그룹이 조사 한번 안 당했다 했더니 근본적으로 문제가 존재하지 않았을 줄은 누가 알았겠는가. 그래도 문제가 하나 있다면 회사 계좌와 화성의 수익이 전혀 맞지 않는다는 것이었다.반지훈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개인 계좌에 대해서는 알아봤어?"연희승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제가 은행을 통해 알아봤는데 본인 계좌는 아닌 것 같습니다.""그러면 서자 쪽을 조사해 봐."반지훈은 일이 더 커지기 전에 최대한 빨리 해결해 버리고 싶었다. 서자가 그의 일을 방해할 수 없도록 말이다.이때 구천광에게서 메시지 하나가 도착했다.「나쁜 새끼.」반씨 저택.샤워하고 난 반지훈은 오늘 구천광에게 구박받은 일을 강성연에게 말했다. 그녀는 로션을 바르다 말고 이 얘기를 듣고 키득키득 웃었다.강성연이 멀쩡히 운영하고 있던 골드 룸살롱을 굳이 구천광에게 넘겨주더니, 결국 김아린이 양심 고백을 한 모양이고 불똥은 반지훈에게로 튀었다.강성연은 침대로 가서 앉으며 말했다."남자들은 원래 이렇게 쪼잔해요?"그래도 김아린이 먼저 말해줘서 다행이지, 안 그러면 구천광이 더 큰 반응을 보였을 것이다.반지훈은 강성연을 품으로 끌어안으며 말했다."내가 욕먹은 게 그렇게 좋아할 일이야?""제가 언제 좋다고 했어요? 지금 엄청 마음 아파하는 거 안 보여요?"강성연의 기계적인 대답을 반지훈은 믿지 않는 모양이었다. 강성연은 그의 허리를 감싸안으며 큰 소리로 웃었다."에이, 두 사람 다 예전 일로 왜 그래요? 이제 그만 잊어요."반지훈은 머리를 숙여 강성연의 입술에 짧게 입을 맞췄다."만약 내가 똑같은 상황에 놓였다면 아마 더 했을 거야."구천광의 입장에서 서도준의 이야기를 처음 들었다면 충분히 질투할 만했다. 더구나 서도준은 지금 서울에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아무것도 모르고 마주치기보다는 훨씬 나았다. 질투는 피할 수 없겠지만, 불필요한 오해는 피할 수 있었다.강성연은 싱긋 웃으며 말했다."저희는 지훈 씨가 아
곽의정은 남자를 따라 룸 안으로 들어갔다. 룸 안에는 5명 정도의 사람이 있었고, 서현식은 가장 중간에 앉아 양주를 마시고 있었다."회장님, 이 분이십니다."서현식은 자신의 옆자리를 비워내더니 곽의정에게 와서 앉으라는 손짓을 했다. 곽의정은 그를 향해 걸어가며 공손하게 물었다."회장님, 저를 부르셨어요?"서현식은 곽의정에게 술을 따라주며 물었다."자네 혹시 서도준에 대해 잘 아나?""잘 안다고 하기는 애매하고 그냥 조금 알고 있어요.""어느 정도 알고 있지?"곽의정은 차분하게 대답했다."회장님 아들이라는 것은 알고 있어요."서현식은 약간 경직된 표정으로 말했다."이런 것도 알고 있단 말이지... 두 사람 아주 특별한 사이인가 보군."서현식은 곽의정에게 술잔을 건네며 말했다. 곽의정은 예의상 거절하지 않고 받아 들었다.이때 문이 열리고, 한 남자가 서현식의 곁에 앉아 있는 곽의정을 보고 눈썹을 찌푸렸다."의정 씨가 어떻게 이곳에 있어요?"곽의정이 설명하려고 하자 서현식이 먼저 입을 열었다."너를 잘 아는 아가씨인 것 같길래 내가 궁금해서 불러봤어."서도준은 빠르게 테이블 앞으로 오더니 깨끗한 잔에 술을 따르기 시작했다."이 잔은 아버지와의 첫 술자리에 대한 제 성의입니다."서도준은 잔에 한가득 담긴 술을 그대로 원샷 해버렸다. 서현식도 술을 따르며 의미심장하게 말했다."네가 나한테 격식을 차리는 건 이 아가씨 때문인가?"'나랑 무슨 상관이야?'곽의정은 의아한 표정으로 서도준을 바라봤다. 그는 또다시 술잔을 채우면서 태연하게 말했다."원래는 천천히 소개하려고 했는데 먼저 만나셨네요. 곽의정 씨는 저와 결혼할 사이입니다."곽의정은 약간 멈칫했다. 왜냐하면 두 사람의 결혼은 아직 결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서현식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너 결혼하니?"서도준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제가 결혼하는게 싫으세요?"서현식에게 서도준은 그저 신경 쓸 가치가 없는 서자에 불과했다. 서도준의 가치라고는 그저 자신을 대신해 죄를
곽의정은 이마를 짚으며 물었다."왜요? 서 회장님은 도준 씨 아버지잖아요."서도준은 약간 경직된 표정으로 말했다."그 사람은 저를 단 한 번도 아들이라고 생각한 적 없어요."곽의정은 아무 말도 못 했다. 사실 그녀도 서도준이 서현식과 어색한 사이라는 것을 발견했다. 이토록 서로를 경계하는 부자는 또 처음이었다.곽의정은 머리를 돌려 서도준을 바라보며 물었다."근데 회장님은 왜 저를 불렀을까요?""왜일 것 같아요?"서도준이 되물었다."설마 진짜 제가 도준 씨랑 아는 사이여서 부른 거예요?""그럼요.""흠... 근데 결혼 얘기는 왜 했어요? 이러다 저를 더 자주 부르면 어떡해요?""안 그럴 거예요."서도준은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했다. 곽의정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왜요?""그럴 가치가 없으니까요, 서 회장의 입장에서는.""회장님에 대해 잘 아나 봐요."곽의정은 서도준을 바라보며 말했다. 서도준은 사차선에서 파란 불을 기다리며 머리를 돌려 그녀와 눈을 마주쳤다."네. 서 회장은 끔찍하다고 생각하겠지만요."곽의정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스파이를 한 적 있는 서도준은 적에 대해 알아가는 법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스파이에게는 목숨이 달린 일이니 잘할 수밖에 없었다. 지피지기 백전백승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서현식 같은 사람은 정형적인 꼰대라고 할 수 있었다. 이런 부류의 사람은 대체로 오만하기 때문에 자신의 높은 지위를 믿고 모두를 얕본다. 지식 없이 허세로 가득한 그들은 지도자의 위치를 담당하기 턱 없이 부족하다.신호등이 파란불로 바뀌고 차는 또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곽의정은 한참 지난 후에야 다시 입을 열었다."도준 씨가 서자라서 가치 없다고 생각하는 건가요?"서도준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맞아요. 서자한테 시간을 낭비할 필요는 없으니까요. 더구나 제가 덜떨어진 여자만 만난다고 믿고 있어서 더 가치 없다고 생각할 거예요."서현식은 서도준의 정체를 대외로 발표하지 않았다. 그러기에 그의 미래의 아내도 서씨 집안
며칠 후, 연희승은 새로운 자료를 받아 반지훈에게 전달했다. 가장 첫 줄에 적혀 있는 '서도준'이라는 이름을 보고 반지훈은 미간을 찌푸렸다."왠지 익숙한 이름인데...""아마도 골드 룸살롱의 사장으로 일한 적 있어서 익숙할 겁니다."반지훈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같은 시각, 곽 회장도 서도준의 자료를 받았다.확인 결과 서도준은 확실히 경찰서에서 일한 적 있었고 스파이로서 중요한 임무를 맡은 적도 있었다. 젊은 시절에는 강력계 팀장으로서 특출한 능력을 인정받기도 했다. 만약 일을 계속했더라면 더 높은 위치까지 올라갔을 것이다.곽 회장이 무언가 생각하고 있을 때 누군가가 와서 노크했다. 그는 자료를 내려놓으며 말했다."들어와."안으로 들어온 직원은 문가에 서서 말했다."회장님, 서도준 씨가 왔습니다."곧이어 서도준이 들어오고 두 사람은 한 반 시간 정도 얘기를 나눴다. 서도준이 떠날 때, 곽 회장은 자리에서 일어나 직접 마중했다."자네 조만간 우리 집으로 와서 식사나 같이하게나."서도준은 발걸음을 멈추고 몸을 돌리며 말했다."알겠습니다. 회장님의 초대라면 언제든지 달려가겠습니다."이때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곽의정이 나왔다. 그녀는 곽 회장에게 물어볼 것이 있어서 찾아왔는데 서도준과 마주칠 줄은 몰랐다.곽 회장은 곽의정이 온 것을 보고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의정아, 마침 잘 왔구나. 내가 도준이를 우리 집으로 와서 같이 식사나 하자고 초대하고 있었다."곽의정은 엘리베이터에서 걸어 나오며 물었다."이렇게 쉽게 허락하시는 거예요?"서도준은 싱긋 웃기만 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허락 하고 안 하고 할 게 뭐가 있겠냐. 네가 도준이를 좋아한다며? 내가 마음 바뀌기 전에 빨리 식을 올리는 게 좋을 거다."곽의정이 태어나서 처음으로 결혼할 마음이 생긴 모양인지라, 곽 회장은 그녀의 뜻을 따르기로 했다.곽의정은 약간 놀란 표정으로 반박했다."제가 언제 좋아한...""약혼 소식은 기사가 준비되는 대로 바로 발표하는 게 어떻겠
곽씨 집안의 딸이 약혼했다는 소식은 빠르게 퍼져 나갔다. 곽 회장은 요즘 매일 축하를 받고 있었다. 수양딸이 반지훈의 처남과 약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친딸도 약혼했으니 말이다.강성연은 김아린과 함께 밥을 먹다 말고 갑자기 이 소식이 떠올라 말을 꺼냈다."의정 씨 약혼했다면서?"김아린이 강성연을 바라보며 물었다."몰랐어?"강성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약혼 소식이라면 진작에 들어서 알고 있지만, 그 상대가 누구인지는 곽씨 집안에서 숨기고 있는 탓에 아직도 모르고 있었다.강성연은 곽의정과 우연히 마주쳤던 그날을 떠올리며 추측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녀의 추측은 금세 현실이 되었다.식사를 끝내고 레스토랑에서 나오자 서도준과 곽의정이 복도에 나타났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두 사람은 앞뒤로 걷고 있었다.뒤에 있던 곽의정은 머리를 숙이고 걷다 갑자기 멈춰 선 서도준의 등에 부딪혔다.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머리를 들었고 강성연과 김아린이 눈에 들어왔다.김아린은 제자리에 멈춰서서 서도준을 바라봤다. 이토록 가까운 거리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중간에 바다 하나를 가로 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에 대한 감정이 아직 남아 있거나 슬퍼서가 아닌 단지 아쉬움에 울컥해서 말이다.서도준은 입술을 깨물었다. 일부러 피해 다니던 사람을 다시 만나니 마음속에서는 거센 파도가 치는 것만 같았다. 곽의정도 그의 감정변화를 알아챘다."의정 씨, 어떻게 여기서 다 보네요."강성연은 또 서도준을 바라보며 말했다."도준 씨도 오랜만이에요."서도준은 약간 창백한 안색으로 머리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다."네, 오랜만이에요."서도준의 시선이 김아린에게 닿자, 그녀는 곧바로 시선을 피했다.아직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던지라, 김아린은 몰래 강성연의 옷깃을 잡아당겼다. 그러자 강성연이 눈치껏 말했다."저희는 식사가 끝나서 이만 가볼게요."곽의정이 머리를 끄덕였다.김아린은 머리도 들지 않고 서도준을 스쳐 지나가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갔다.강성연은 김아린을 바라보며 물었다.
"제가 언제 개입했어요?"곽의정은 진지한 표정으로 턱을 괴며 말했다."호기심과 개입은 다르다고요."서도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곽의정은 분명 무슨 일이 있었을 것이라고 직감했다. 그래서 개의치 않는 듯 수프 몇 술 떠먹고는 말했다."제가 다른 사람한테 얘기할 일은 없으니까 걱정하지 마요. 그리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하기 싫으면 말 안 해도 돼요.""이해해 줘서 고마워요.""저는 밥 먹고 회사로 돌아갈 거예요. 약혼식은 도준 씨한테 부탁할게요.""제가 데려다줄게요.""...괜찮아요.""요즘 보는 눈이 많은데, 이 정도는 해야 하지 않겠어요?"서도준의 덤덤한 말투에 곽의정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서도준은 곽의정을 직접 베이 테크놀로지로 데려다줬다. 이 장면을 본 회사 직원이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다가왔다. 회사 앞에서 몇 번 마주친 적 있는데 혹시 약혼 상대는 아니냐고 말이다.직원의 부러워하는 듯한 표정을 보고 곽의정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맞아요. 저한테 엄청 잘해줘요."서도준은 사람들에게 소개할 때 신분을 밝히기 약간 어려운 것 빼고는 완벽했다. 물론 이것은 개인적인 감정을 제외한 객관적인 평가라고 곽의정은 속으로 생각했다.일주일 후, 곽씨 집안의 약혼식은 국제호텔에서 진행되었다. 약혼식에 참석한 사람은 전부 사업적으로 연결된 사람이었다.강현은 곽 회장의 예비 사위로 당연히 약혼식에 참석했다. 강성연과 반지훈도 물론 함께 참석했다, 강성연이 있는 곳에 반지훈이 없을 리는 없었으니 말이다. 예비 사위 덕분에 반지훈과 아는 사이가 된 곽 회장을 부러워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았는지 모른다.반지훈은 술잔을 흔들며 무심한 표정으로 인파 속에 서 있었다. 사실 그는 약혼식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강성연을 혼자 보내기 싫었고, 또 서도준도 만나야 했기에 어쩔 수 없이 참석했다.강성연, 이율, 강현은 함께 서서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곽의정의 약혼에 이율은 기쁘기는커녕 침울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래서 강성연이 의아한 표
”유이야.”조민과 소찬이 술잔을 들고 다가왔다.“오늘 너무 예쁘다!”강유이가 웃으며 말했다.“고마워요.”조민이 술잔을 들며 말했다.“이건 나와 소찬 씨가 축하의 의미로 권하는 거야. 너와 한태군이 오랫동안 행복하게 잘 살기를 바래.”강유이가 그녀의 잔에 자신의 잔을 부딪혔다.“저도 선배와 소찬 씨의 앞날에 행복할 일만 가득하길 바랄게요.”곧이어 남우와 반재언이 다가왔다. 두 사람의 뒤에는 진예은과 반재신 그리고 강성연과 반지훈까지 있었다.강성연이 유이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말했다.“오늘 우리 유이 너무 잘했어!”그녀가 미소 지었다.“진짜요?”반지훈이 말했다.“우리 딸 정말 눈이 부시게 아름다웠어. 넌 우리의 자랑이야.”강유이가 한 떨기 꽃처럼 어여쁘게 미소를 지었다.한태군이 그들 쪽으로 다가와 감사 인사를 전했다.“아버님, 어머니, 두 분께서 유이를 제가 주신 것에 감사드리는 마음으로 이 잔 올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었다.“네놈 운 좋은 줄 알아!”그가 술잔을 들고 한태군이 내민 잔에 부딪혔다.“앞으로 내 딸한테 정말 잘해줘야 해.”한태군이 강유이를 바라보았다.“걱정 마세요. 제 생에 여자는 오직 유이 한 사람뿐입니다.”강성연도 미소 지었다.여준우와 진예은의 아버지도 인사를 건네러 다가왔다. 그들과 함께 정연 여왕과 한희운도 다가왔다. 여준우가 말했다.“아직 의식 하나 남았지?”강유이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남은 의식이 또 있어요?”그가 말했다.“베란다에서 하는 세기말 키스가 남았잖니. 너희 아직 그거 못했어.”한희운이 웃으며 말했다.“여준우 경, 어째 가족들보다 경이 더 조급해 하는 것 같습니다.”여준우가 들뜬 표정으로 말했다.“전설 속의 세기말 키스. 우리 모두 한 번도 본 적이 없지 않습니까! 그 장면을 오늘에서야 보게 되었군요.”그의 말에 다른 사람들도 웃음을 터뜨렸다.남우가 의문스러운 듯이 물었다.“세기말 키스가 뭐야?”반재언이 그녀에게 설명해 주었다.“오래전 첫 번째
웨딩카가 지나가야 했기에 궁에서부터 대성당까지 가는 길에 기타 차량은 통행을 금지 시켰다.강유이가 창밖을 바라보았는데 길에는 혼란스러울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었다. 그들 모두가 이 성대하고 엄청난 장면을 구경하러 몰려든 것이였다.그녀의 곁에 앉아있는 한태군은 네이비 더블 버튼 군복을 입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늠름해 보였다. 어깨에는 성 패트릭 훈장과 로열 빅토리아 훈장 등 여러 훈장이 달려있었다.그가 강유이의 손을 잡더니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손에서 땀이 나는데?”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나 긴장돼.”그가 그녀의 손을 잡아당기더니 손등에 입을 맞추었다.“내가 있잖아. 긴장할 것 없어. 마음을 편하게 가져.”강유이의 시선이 그가 입은 제복으로 향했다.“이 옷 오빠한테 너무 잘 어울린다!”한태군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내 신부도 오늘 너무 아름다워.”성당에 도착하자 한태군은 강유이와 떨어지게 되었다. 그는 아버지 한희운과 함께 여준우, 진예은의 아버지 등 황실 성원들 그리고 내각 대신들까지 함께 성당 서쪽 문으로 걸어갔다. 문 앞에 있는 광장에는 이미 수천 명의 초대 관객들이 몰려있었는데 그 장면이 너무나도 웅장했다.여준우가 웃으며 말했다.“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고, 결혼식도 전부 라이브로 방송되겠는데 유이 그 계집애 아마 지금쯤 우리보다 더 긴장하고 있겠죠?”진예은의 아버지가 그를 바라보았다.“하하. 내 눈에는 네가 더 긴장한 것 같은데?”그가 웃으며 말했다.“황실 결혼식은 처음이라서요.”열한 시 반이 되자 정연 여왕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신랑 한태군 일행이 도착할 때까지 대표로 성당에서 각 귀빈들과 인사를 나눴다.남우가 반재언 곁으로 다가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저분이 바로 여왕 폐하셔? 엄청 예쁘시다. 나 실제로 처음 봐.”반재언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나도 처음 뵙는 거야.”“뭐?”남우가 깜짝 놀랐다.“그전에 한 번도 만난 적 없어?”“재신이
”참 형수님은?”소찬이 묻자 반재언이 대답했다.“지금 아버님 모시고 돌아다니고 있어. 나도 이제 가야겠네. 두 사람 편히 쉬고 있어요.”반재언이 자리에서 일어나 자리를 떠났다.소찬이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와이프가 생기더니 변했어!”“하하. 당신은 뭐 재언 씨와 다른 것처럼 말하네요.”조민도 자리에서 일어났다.소찬도 얼른 잔을 놓고 그녀의 뒤를 따랐다.“잠깐만요. 왜 나 버리고 혼자 가요! 같이 가요.”강성연과 지윤이 룸에서 나와 걸어가다 마침 복도에서 반지훈과 희승과 마주쳤다. 희승이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오랜만이에요, 사모님.”강성연이 반지훈 앞에 멈춰 서자 반지훈이 그녀의 손을 잡아끌었다.“오랜만에 만났는데 얘기는 잘 했어?”“그럼요. 근데 당신 오후에 아버님과 여씨 가문에 간다고 하지 않았나요?”반지훈이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당신 기다리고 있었지. 가서 밥 먹자.”희승이 지윤의 곁에 나란히 서며 그들을 바라보았다.“회장님 사모님, 그럼 저희들은 먼저 아버님한테 가볼게요.”반지훈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는 강성연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그녀와 나란히 복도를 걸어갔다. 포근한 햇살이 통유리로 된 창문으로 들어와 바닥에 그림자를 만들어냈다. 두 사람의 그림자가 한데 꼭 붙어 좀처럼 떨어질 줄 모르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이틀 후, 드디어 모든 사람들이 기대했던 세기말 황실 결혼식 날이 다가왔다. 식은 아홉 시에 시작될 예정이었지만 아침 일곱 시부터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이 궁에 도착해 있었다. 강유이는 커다란 메이크업 룸을 혼자 썼다. 네다섯 명의 탑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그녀를 위해 화장을 해주고 머리를 만져주었다.여덟 시가 되어서야 강유이는 드레스를 입을 수 있었다. 순백의 새하얀 드레스는 과한 보석과 레이스가 아닌 천연 실크 소재로 우아함을 극대화했다. 오프숄더 형 넥 라인으로 간단하지만 파격적인 미를 추가했고 소매는 칠부 정도 되었다.면사포 길이만 16피트 정도 되었는데 변두리가 레이스로 수놓아져 있었다.
그녀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그럼 나 결혼식 당일에 이 티아라 쓸래. 그러면 엄마의 디자인을 홍보해 줄 수도 있잖아.”한태군이 등 뒤에서 그녀를 껴안았다.“네가 원하는 대로 다 해도 돼.”…반씨 가문 사람들은 결혼식 이틀 전에 영국에 도착했다. 그들은 한태군이 안배한 호텔에 머물게 되었다. 황실에서는 호텔을 통으로 빌려 결혼식 때문에 일부러 해외에서 온 귀빈들을 위한 장소로 마련했다.구씨 집안사람들과 육씨 집안사람들도 왔고, 남강훈도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연예계에서 강유이와 친분을 유지했던 윤수아, 우영, 주계진, 임석진도 초대되었다. 조민과 소찬은 당연히 초청자 명단에 속해 있었다.강성연이 레스토랑에 들어서자 웨이터가 그녀를 룸으로 안내했다. 룸 안에 앉아있는 남자를 발견한 그녀가 활짝 웃으며 다가갔다.“삼촌.”헨리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 못 본 지 몇 년이나 되었지만 그는 아직도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 다만 예전보다 살이 많이 빠진 것 같았다.강성연이 다가가 그와 포옹했다.“오셨어요.”헨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예전에 내가 네 결혼식도 참석 못 하고, 또 네 두 아들의 결혼식도 참석 못 했었잖니. 아쉬웠는데 이번에는 마침 영국에 출장 올 일이 있어서 이렇게 너를 만나러 왔단다.”그녀가 시선을 내려뜨리며 말했다.“와주셔서 너무 감사드려요. 몸은 좀 어떠세요?”그가 미소 지었다.“많이 괜찮아졌다. 지윤이와 희승이가 돌봐주고 있어서 조금 더 버틸 수 있을 것 같아.”그때 지윤이 문을 열고 룸으로 들어왔다.강성연이 고개를 돌려 지윤을 확인했다. 처음에는 놀라던 그녀가 다음 순간 눈물을 글썽였다.“두 사람도 와줬네요.”지윤이 그녀한테 다가갔다.“유이가 영국에서 결혼식을 올린다는 소식을 듣고 저와 희승 씨도 아버지 따라왔어요. 희승 씨는 지금 반 회장님과 같이 있어요.”헨리가 경호원에게 선물을 갖고 오라고 지시한 후 강성연에게 선물을 건넸다.“리비어가 올 수 없어서 참 안타까워했단다. 이건 걔가 너
한태군의 말에 나머지 사람들도 함께 웃었다.어느덧 밤이 깊어졌다. 온 도시가 화려한 네온사인에 둘러싸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강유이와 한태군은 저녁을 먹은 후 진원으로 돌아갔다.이제 막 샤워를 마친 탓에 강유이의 머리카락은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그러자 한태군이 그녀의 손에서 타월을 가져가더니 대신 머리를 닦아주었다.그녀는 화장대 거울 앞에 앉아 거울 속 남자를 바라보고 미소를 지었다.“태군 오빠, 나 결혼식이 너무 기대가 돼.”“그래?”한태군이 부드러운 그녀의 머리카락을 가볍게 쓸어내리며 말했다.“나 역시 기대돼!”“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성스러운 결혼식장에 들어서다니!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인 것 같아.”그가 소리 내어 웃더니 허리를 숙이며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그거 알아? 난 한평생 내가 꿈꿨던 모든 소원들을 이미 다 이뤘어.”강유이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무슨 소원인데?”한태군이 여전히 그의 귓가에서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너를 아내로 맞이하고, 너와 결혼식장에 들어가고, 우리 두 사람의 아이까지 만나게 된 거.”그녀가 멈칫거렸다. 따듯한 조명 아래 그녀의 볼이 붉게 피어올랐다.“설마 처음부터 다 꿍꿍이가 있었던 거야?”그가 대답했다.“어쩌면 네가 내 눈앞에 나타난 순간부터 난 너를 아내로 맞이할 줄 알았던 것 같아.”강유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끌어안았다.“나도 이번 생에는 오빠가 아닌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될 거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한태군이 천천히 고개를 숙이며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그의 따듯한 마음이 뼛속까지 전해지는 것만 같았다.“정말 영광이야.”…이틀 후, 한태군과 강유이는 영국으로 돌아갔고, 황실은 결혼식 준비로 한창이었다. 화제의 결혼식이다 보니 모든 언론이 그들을 주목하고 있었다.패션 계와 주얼리 계의 최상급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작품들이 줄지어 강유이한테 전해졌다. 명품 맞춤 드레스와 결혼식 때 사용할 각종 보석들이 발 디딜 곳 없게 전시된 채 그녀가 고
그러자 민서율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여행 좀 다녀오니까 마음이 많이 차분해졌어요.”안예지가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 “네가 원하는 일이 다 잘 되길 바랄게.”그는 그저 미소만 지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눈 깜짝할 사이에 월말이 되었다. 강유이 일행들의 여행도 어느새 끝이 나고 서울로 돌아오게 되었다.강성연과 반지훈은 정원 밖에 나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곧이어 도착한 아이들이 차례대로 차에서 내렸다. 강유이가 두 사람을 향해 달려갔다.“아빠, 엄마!”그녀가 두 사람을 동시에 끌어안았다.반지훈이 못 말린다는 듯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이렇게 안겨?”강유이가 눈초리를 휘며 대답했다.“엄마 아빠한테 저는 영원한 어린애죠.”강성연이 미소를 지으며 이쪽으로 다가오는 나머지 아이들을 바라보았다.“재밌게 놀았으면 됐어. 이제 안으로 들어가야지. 오늘 저녁은 다 같이 모여 떠들썩하게 밥을 먹을 수 있겠구나.”진예은과 남우는 집안으로 들어간 후 곧바로 위층으로 올라가 아이들을 살폈다. 희망이는 두 남동생과 함께 있었다. 세 아이는 깊은 잠에 빠져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따뜻하게 느껴졌다.아래층에서는 반재신 반재언 형제가 외출을 하고, 한태군이 거실에서 반지훈가 바둑을 두고 있었다.“아버님 이번 판은 제게 양보해 주십시오!”반지훈이 흰색 바둑알을 들고 판을 들여다보다 결심한 듯이 바둑알을 내려놓았다.“쓸데없는 소리 하지말게.”한태군이 웃으며 말했다.“다음번에는 제가 양보해 드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허튼수작 부리지 말거라. 난 네 양보 따위 필요 없다.”주방에서 과일을 깎고 있던 강성연이 거실에 있는 두 사람을 힐끗 바라본 후 다시 커피를 타고 있는 강유이를 바라보았다.“이제 곧 결혼식을 올리겠구나. 엄마가 너를 위해 서프라이즈 선물을 준비했어.”강유이가 멈칫거리더니 강성연을 돌아보았다.“어떤 서프라이즈 선물이요?”“아직은 안 가르쳐 줄 건데?”강유이가 조금
한태군이 두 사람을 보며 말했다.“두 사람을 여기에서 만날 줄은 몰랐네.”조민이 대답했다.“나랑 소찬 씨는 이곳에 온 지 좀 됐어. 유이가 인스타에 사진을 올려서 알았어. 너희들도 여기 왔다는걸.”강유이가 조민의 팔을 잡아당기며 자리에 앉혔다.“그럼 우리랑 며칠 더 같이 놀아요.”소찬까지 자리에 착석한 후 반재언은 그에게 진예은과 강유이를 소개했다.“여기는 우리 제수씨인 진예은씨고, 이쪽은 내 동생 유이야.”“형 결혼식 때 봤었어.”소찬은 당연히 기억하고 있었다.“형 동생이 내 와이프랑 같은 학교 출신이라면서? 와이프한테서 얘기 들었어.”조민이 그를 보며 말했다.“누구보고 와이프래요? 나중에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장담 못 하거든요?!”그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약혼까지 다 했는데 다른 남자한테 시집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두 사람의 티격태격한 모습에 다른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유독 강유이만 멍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지금 무슨 소리들 하는 거예요! 약혼이라니. 선배 약혼했어요?”조민이 작게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응, 너한테 말하는 걸 깜빡했어.”“너무해요. 어떻게 그렇게 중요한 일을 나한테 말하지 않을 수 있어요.”강유이가 입을 삐쭉 내밀었다. 그녀는 조민이 약혼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조민이 그녀의 손을 감싸며 말했다.“너한테 서프라이즈를 해주려고 그랬지.”그녀가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돌렸다.“저 이제 선배랑 안 놀거예요.”조민이 울지도 웃지도 못한 채 옆에 앉아있는 한태군을 힐끗 바라보며 말했다.“빨리 네 와이프 좀 달래 봐.”한태군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강유이도 그저 장난으로 그런 말을 했을 뿐이었다. 그녀는 조민의 약혼 소식을 듣고 진심으로 기뻤다.적어도 이제 그녀는 자기만의 행복을 찾았다.…..한편, 서울 병원.민서율은 복도에서 의사와 이야기를 나눈 후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 침대 머리에 기대앉아있는 어머니는 많이 초췌해진 상태였다.“어머니, 몸은 좀 어떠
투호 판을 벌인 사장이 말했다.“오천 원에 세 번 던질 수 있어요.”“그렇게나 비싸요? 오천 원에 세 번밖에 던지지 못하다니!”진예은은 어쩐지 손해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투호 판 사장이 고개를 들고 말했다.“저희가 여기서 제일 쌉니다. 다른 집에서는 만 원에 세 번 던지게 하는걸요.”강유이가 진예은을 잡아끌며 말했다.“오천 원에 하자. 사장님도 장사하는 게 어려우실 거 아니야. 우리 재미로 한 번 해보자.”결국 그녀는 사장에게 만 원을 건넸다.“기회는 총 여섯 번입니다.”사장이 화살 여섯 개를 그녀에게 건넸다. 가지런히 놓인 여러 개의 항아리 옆에는 명중했을 때 가질 수 있는 선물이 놓여있었다. 강유이는 그중 팔찌가 갖고 싶었다. 비록 가짜겠지만 디자인이 예뻤다.그녀가 고심 끝에 화살을 던졌다. 하지만 화살은 항아리를 빗나가고 말았다.그 뒤로 연속 두 번 더 던졌으나 모두 다 실패했다.이제 화살은 세 개 밖에 남지 않았다.강유이의 자신 없는 모습을 본 남우가 그녀의 손에서 화살을 가져가며 말했다.“내가 할게요.”그녀가 팔찌 옆에 놓인 항아리로 화살을 던졌고, 화살은 단번에 항아리 안으로 들어갔다.성공이다!흥분한 강유이가 폴짝폴짝 뛰며 말했다.“새언니 정말 대단해요!”“훗. 이 정도쯤이야.”남우가 눈을 찡긋해 보이며 물었다.“또 어떤 게 갖고 싶어요?”강유이가 진예은에게 물었다.“예은아, 어떤 게 마음에 들어?”진예은이 선물을 살피다가 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다.“저 머리핀이요. 저게 제일 예쁜 것 같애요.”남우가 다시 머리핀 옆에 있는 항아리를 향해 화살을 던졌다. 그리고 정말로 그 머리핀을 명중했다.강유이가 그녀의 손을 꼭 붙잡고 잔뜩 흥분하며 말했다.“진짜 백발백중이네요. 새언니, 이제는 새언니 마음에 드는 걸로 골라요.”남우가 턱을 쓰담으며 말했다.“그러면 저는…”그녀의 시선에 백옥 청자가 들어왔다.“저걸로 하죠.”그녀가 들고 있던 화살을 슝 던지자 쨍그랑하는 소리와 함께 항아리 안으로 빨려
늦은 밤의 산속은 무척이나 고요했다. 평안한 야영장에는 오직 풀벌레 소리만 잔잔하게 들려왔다.텐트 밖 잔디 위에는 랜트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평온하고도 아늑한 분위기였다.강유이는 몸을 뒤척거리며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때 한태군이 그녀의 허리를 감싸며 품에 안았다.“잠이 안 와?”“응.”그녀가 그의 품에 가만히 기댔다.“태군 오빠, 나 화장실 가고 싶은데 무서워서 못 가겠어.”한태군이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그럼 내가 같이 가줄게.”두 사람이 텐트 밖으로 나왔다. 한태군이 손전등을 들고 그녀와 함께 한참을 걸었다. 두 사람은 우거진 숲 앞에 도착했다. 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며 말했다.“여기서 기다리고 있어.”한태군이 고개를 끄덕였다.“무슨 일 있으면 불러.”그녀는 숲 안으로 들어갔지만 무서워서 멀리 가지는 못했다.볼일을 본 후 강유이가 서둘러 달려와 그의 팔짱을 꼈다.“됐어.”한태군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텐트로 돌아가던 중 그녀가 고개를 들고 밤 하늘을 바라보며 손으로 가리켰다.“저게 북두칠성인가?”한태군도 고개를 들었다.“응, 맞아.”강유이가 배시시 웃었다.“역시 산속이니까 별이 엄청 잘 보이는 것 같아.”“두 사람 밤늦게 자지도 않고 별구경 하는 거예요?”남우가 텐트 안에서 나오며 묻자 강유이가 그녀를 바라보았다.“새언니도 아직 안 잤어요?”“네. 아까 귀신 이야기한 것 때문에 무서워 잠을 못 자겠잖아요…!”남우가 생수 한 병을 따서 마셨다.강유이와 한태군이 서로를 마주 보더니 웃음을 터뜨렸다.“새언니 설마 그런 이야기에 무서워해요?”남우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말했다.“여기는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산골짜기라고요! 보통 때와는 다르잖아요.”강유이가 포도 한 송이를 들며 말했다.“걱정 마요. 우리 큰오빠가 새언니를 지켜줄 거예요.”그녀는 그 말을 끝으로 한태군과 함께 텐트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고개를 돌린 남우는 그제야 두 사람이 들어가 버린 것을 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