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후, 연희승은 새로운 자료를 받아 반지훈에게 전달했다. 가장 첫 줄에 적혀 있는 '서도준'이라는 이름을 보고 반지훈은 미간을 찌푸렸다."왠지 익숙한 이름인데...""아마도 골드 룸살롱의 사장으로 일한 적 있어서 익숙할 겁니다."반지훈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같은 시각, 곽 회장도 서도준의 자료를 받았다.확인 결과 서도준은 확실히 경찰서에서 일한 적 있었고 스파이로서 중요한 임무를 맡은 적도 있었다. 젊은 시절에는 강력계 팀장으로서 특출한 능력을 인정받기도 했다. 만약 일을 계속했더라면 더 높은 위치까지 올라갔을 것이다.곽 회장이 무언가 생각하고 있을 때 누군가가 와서 노크했다. 그는 자료를 내려놓으며 말했다."들어와."안으로 들어온 직원은 문가에 서서 말했다."회장님, 서도준 씨가 왔습니다."곧이어 서도준이 들어오고 두 사람은 한 반 시간 정도 얘기를 나눴다. 서도준이 떠날 때, 곽 회장은 자리에서 일어나 직접 마중했다."자네 조만간 우리 집으로 와서 식사나 같이하게나."서도준은 발걸음을 멈추고 몸을 돌리며 말했다."알겠습니다. 회장님의 초대라면 언제든지 달려가겠습니다."이때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곽의정이 나왔다. 그녀는 곽 회장에게 물어볼 것이 있어서 찾아왔는데 서도준과 마주칠 줄은 몰랐다.곽 회장은 곽의정이 온 것을 보고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의정아, 마침 잘 왔구나. 내가 도준이를 우리 집으로 와서 같이 식사나 하자고 초대하고 있었다."곽의정은 엘리베이터에서 걸어 나오며 물었다."이렇게 쉽게 허락하시는 거예요?"서도준은 싱긋 웃기만 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허락 하고 안 하고 할 게 뭐가 있겠냐. 네가 도준이를 좋아한다며? 내가 마음 바뀌기 전에 빨리 식을 올리는 게 좋을 거다."곽의정이 태어나서 처음으로 결혼할 마음이 생긴 모양인지라, 곽 회장은 그녀의 뜻을 따르기로 했다.곽의정은 약간 놀란 표정으로 반박했다."제가 언제 좋아한...""약혼 소식은 기사가 준비되는 대로 바로 발표하는 게 어떻겠
곽씨 집안의 딸이 약혼했다는 소식은 빠르게 퍼져 나갔다. 곽 회장은 요즘 매일 축하를 받고 있었다. 수양딸이 반지훈의 처남과 약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친딸도 약혼했으니 말이다.강성연은 김아린과 함께 밥을 먹다 말고 갑자기 이 소식이 떠올라 말을 꺼냈다."의정 씨 약혼했다면서?"김아린이 강성연을 바라보며 물었다."몰랐어?"강성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약혼 소식이라면 진작에 들어서 알고 있지만, 그 상대가 누구인지는 곽씨 집안에서 숨기고 있는 탓에 아직도 모르고 있었다.강성연은 곽의정과 우연히 마주쳤던 그날을 떠올리며 추측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녀의 추측은 금세 현실이 되었다.식사를 끝내고 레스토랑에서 나오자 서도준과 곽의정이 복도에 나타났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두 사람은 앞뒤로 걷고 있었다.뒤에 있던 곽의정은 머리를 숙이고 걷다 갑자기 멈춰 선 서도준의 등에 부딪혔다.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머리를 들었고 강성연과 김아린이 눈에 들어왔다.김아린은 제자리에 멈춰서서 서도준을 바라봤다. 이토록 가까운 거리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중간에 바다 하나를 가로 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에 대한 감정이 아직 남아 있거나 슬퍼서가 아닌 단지 아쉬움에 울컥해서 말이다.서도준은 입술을 깨물었다. 일부러 피해 다니던 사람을 다시 만나니 마음속에서는 거센 파도가 치는 것만 같았다. 곽의정도 그의 감정변화를 알아챘다."의정 씨, 어떻게 여기서 다 보네요."강성연은 또 서도준을 바라보며 말했다."도준 씨도 오랜만이에요."서도준은 약간 창백한 안색으로 머리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다."네, 오랜만이에요."서도준의 시선이 김아린에게 닿자, 그녀는 곧바로 시선을 피했다.아직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던지라, 김아린은 몰래 강성연의 옷깃을 잡아당겼다. 그러자 강성연이 눈치껏 말했다."저희는 식사가 끝나서 이만 가볼게요."곽의정이 머리를 끄덕였다.김아린은 머리도 들지 않고 서도준을 스쳐 지나가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갔다.강성연은 김아린을 바라보며 물었다.
"제가 언제 개입했어요?"곽의정은 진지한 표정으로 턱을 괴며 말했다."호기심과 개입은 다르다고요."서도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곽의정은 분명 무슨 일이 있었을 것이라고 직감했다. 그래서 개의치 않는 듯 수프 몇 술 떠먹고는 말했다."제가 다른 사람한테 얘기할 일은 없으니까 걱정하지 마요. 그리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하기 싫으면 말 안 해도 돼요.""이해해 줘서 고마워요.""저는 밥 먹고 회사로 돌아갈 거예요. 약혼식은 도준 씨한테 부탁할게요.""제가 데려다줄게요.""...괜찮아요.""요즘 보는 눈이 많은데, 이 정도는 해야 하지 않겠어요?"서도준의 덤덤한 말투에 곽의정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서도준은 곽의정을 직접 베이 테크놀로지로 데려다줬다. 이 장면을 본 회사 직원이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다가왔다. 회사 앞에서 몇 번 마주친 적 있는데 혹시 약혼 상대는 아니냐고 말이다.직원의 부러워하는 듯한 표정을 보고 곽의정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맞아요. 저한테 엄청 잘해줘요."서도준은 사람들에게 소개할 때 신분을 밝히기 약간 어려운 것 빼고는 완벽했다. 물론 이것은 개인적인 감정을 제외한 객관적인 평가라고 곽의정은 속으로 생각했다.일주일 후, 곽씨 집안의 약혼식은 국제호텔에서 진행되었다. 약혼식에 참석한 사람은 전부 사업적으로 연결된 사람이었다.강현은 곽 회장의 예비 사위로 당연히 약혼식에 참석했다. 강성연과 반지훈도 물론 함께 참석했다, 강성연이 있는 곳에 반지훈이 없을 리는 없었으니 말이다. 예비 사위 덕분에 반지훈과 아는 사이가 된 곽 회장을 부러워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았는지 모른다.반지훈은 술잔을 흔들며 무심한 표정으로 인파 속에 서 있었다. 사실 그는 약혼식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강성연을 혼자 보내기 싫었고, 또 서도준도 만나야 했기에 어쩔 수 없이 참석했다.강성연, 이율, 강현은 함께 서서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곽의정의 약혼에 이율은 기쁘기는커녕 침울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래서 강성연이 의아한 표
하얀색은 검은색과 달리 어울리기 아주 어려웠다. 이는 훌륭한 몸매뿐만 아니라 남다른 아우라도 필요로 했다. 서도준의 피부색은 하얀 정장 덕분에 한층 더 밝아졌다. 특유의 차분한 아우라는 옅은 색 계열의 정장으로도 가려지지 않았다.직원이 먼저 곽의정을 발견하고, 서도준도 이어서 머리를 돌렸다. 그는 곽의정을 향해 걸어갔고 직원들은 눈치껏 빠져줬다. 조용한 복도에는 두 사람만 남게 되었다. 서도준과 마주 선 곽의정은 긴장감 때문인지 약간 부자연스러운 모습이었다."약혼식이 곧 시작한다면서요?"서도준은 곽의정의 드레스를 바라보며 말했다."네, 드레스 잘 어울리네요."곽의정은 잠깐 머리를 들어 서도준과 눈을 마주치다가 금방 다시 피했다."고마워요. 도준 씨도 정장 잘 어울려요.""이만 들어갈까요?"곽의정이 머리를 끄덕이고 발걸음을 떼려고 하자 서도준이 팔을 내밀었다. 그녀는 약간 멈칫하다가 완전히 경직된 채로 팔짱을 꼈다.서도준은 싱긋 웃으며 말했다."의정 씨도 긴장할 때가 있네요.""제가 긴장 안 하는 사람으로 보였어요?""네."곽의정은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도준 씨는 긴장 안 돼요?""저는 괜찮은 것 같아요."곽의정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서도준은 이런 일에 아주 익숙해 보였다.두 사람은 함께 약혼식장 안으로 들어섰다. 모두의 시선이 두 사람에게 집중되었다. 잠깐의 감탄사와 함께 사람들은 저마다 부러운 눈빛으로 그들을 바라봤다. 예비 사위 두 명 다 외모가 훤칠했으니 부러워할 만도 하다.두 사람은 곽 회장에게로 걸어갔고, 그는 열정적으로 서도준을 소개하기 시작했다. 서도준은 자연스러운 미소로 곽 회장의 지인과 인사를 나눴다.반지훈은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저 녀석이 서도준이야?"강성연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천광 씨 문자를 아직도 신경 쓰고 있어요?""내가 그렇게 쪼잔한 사람으로 보여?""네, 그렇게 쪼잔한 사람으로 보여요."반지훈은 입을 다물었다.이때 서도준이 그들을 향해 걸어왔다. 서도준은 술잔을 들더니 미소
곽의정은 반지훈과 서도준을 번갈아 바라보며 입술을 꼭 깨물었다. 어느샌가 뒤에서 다가온 이율이 갑자기 그녀를 불렀다."언니.""왜?"곽의정은 몸을 돌리며 물었다.이율은 더 가까이 다가오더니 그녀의 귀가에 대고 몇 마디 했다. 곽의정은 술잔을 내려놓고 이율과 함께 약혼식장 밖으로 나갔다.강성연은 가만히 서서 멀어지는 두 사람을 바라봤다.베란다로 나온 곽의정은 비교적 큰 화분 뒤에 자리를 잡았다."너 설마 아직도 나를 말릴 생각이야?""약혼은 성급하게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에요. 진짜 후회 안 할 자신 있어요?"곽의정은 팔짱을 끼며 말했다."후회를 하더라도 내 일이야."이율은 머리를 숙이며 말했다."알아요. 제가 언니한테 이래라저래라할 자격 없다는 것도 알아요. 하지만 저는 진심으로 언니가 행복했으면 좋겠어요."곽의정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언니, 혹시라도... 서도준 씨한테 감정이 생기면 어떻게 할지 생각해 본 적 있어요?""뭐? 너 방금 뭐라고 했어?"'감정이 생긴다고?'이율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저도 처음에는 괜찮을 줄 알았는데, 오늘 서도준 씨를 직접 보니까 딱 언니 이상형인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솔직히 약간 걱정돼요."곽의정은 어른스럽고 차분한 남자를 좋아했는데 서도준이 딱 그런 부류에 속했다. 그래서 이율은 곽의정이 조만간 꼭 마음이 흔들릴 것이라고 생각했다.곽의정은 정색하며 말했다."너 지금 내가 가벼운 사람이라고 돌려서 까는 거니? 맞아, 서도준 씨는 내 이상형이야. 그래도 지금이 감정을 운운할 상황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나도 알고 있거든."곽의정은 잘생긴 남자를 좋아했다. 솔직히 잘생긴 남자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몇 되겠는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상황 판단이 안 되는 것은 아니었다. 연기는 연기일 뿐, 가짜에 마음이 흔들려 귀찮은 일을 만들 일은 없을 것이다. 게다가 서도준은 그녀에게 관심이 하나도 없었다.이율은 심호흡하며 말했다."알겠어요. 그럼 더 할 말 없겠네요."이율은 두말없이 베란
서도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곽의정도 아차 싶었다. 서로의 일을 상관하지 않기로 했는데 너무 많은 것을 물은 것 같았다.“미안해요. 다른 뜻은 없었어요. 전 그냥 만약 서도준 씨가 후회한다면 일단 약혼만 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서요.”“약혼만으로도 충분히 이득을 취할 수 있을 테니까요.”그녀는 강요하고 싶지 않았다. 아무리 그가 먼저 약혼 의사를 꺼냈다고 해도 그녀와 그의 약혼은 단지 서로의 이익만을 위해서 결정된 것이었다. 절대 각자의 사생활에 간섭하지 않을 것이고, 그 사이에 사사로운 감정이 개입될 일은 더더욱 없어야 했다.하지만 최근 들어 그녀는 어쩐지 망설여졌다.자신의 결정에 확신이 들지 않았다.형식적인 결혼이 겁나는 건 아니었다. 어차피 형식뿐인 결혼이니 각자의 삶을 살면 되었다. 그래도 맞지 않으면 언제든지 이혼하면 그만이다. 번거로운 일도 아니었고 그녀로서 충분히 받아들일만한 일이었다.하지만 이율의 충고를 들은 후 어쩐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이 결혼을 하고 나서 정말로 서도준한테 흔들리지 않을 자신이 있는지.사실 서도준은 어떤 방면으로 보아도 뛰어난 남자였다. 신사적인데다 매너도 있었고 남자다움도 갖추고 있었다. 그녀는 조금 겁이 났다. 형식뿐인 결혼 생활에 만에 하나 불필요한 감정이 생기지는 않을지. 그렇게 되면 정말로 큰일이었다.뒤에 앉은 남자는 몇 분간 침묵하고 있었다.“의정 씨는 왜 계속 저한테 후회하지 않냐고 묻죠?”순간 말문이 막힌 그녀가 차 속도를 줄였다.“제가 뭘 또 계속 물었어요.”그가 가볍게 소리 내어 웃었다.“혹시 의정 씨야말로 다른 걱정 거리가 있는 거 아니에요?”곽의정은 입술만 살짝 깨물 뿐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잠시 후 서도준이 창밖을 내다보며 말했다.“깊게 생각하실 필요 전혀 없어요.”20분 후, 차가 북로 남원 22호에 도착했다. 그녀는 천천히 차를 주차한 후 고개를 돌렸다.“집에 다 왔어요.”뒷좌석에서 아무런 대답도 들려오지 않았다.곽의정이 차에서 내려 뒷좌석으
서도준은 마치 그녀의 마음을 훤히 꿰뚫어 본 것처럼 뒷말을 이었다.“제 전화번호 뒷자리에요.”“……”그녀는 순간 머쓱해졌다.곽의정이 과장되게 웃으며 그를 부축해 안으로 들어갔다.“이런 것까지 굳이 해명할 필요 없어요.”그가 짧게 답했다.“해명한 적 없어요.”그는 단순히 그녀에게 사실을 말했을 뿐이었다.아무런 뜻도 담겨있지 않았다.그가 길쭉한 팔을 뻗어 스위치를 켰다. 순간 집안이 환해졌다. 저택 내부는 상당히 단출했다. 엄청 화려하고 호화로울 거라고 생각했던 그녀의 예상을 완전히 깨트렸다.간단하고 깨끗한, 마치 텅 비어있는 듯한 집이었다.그녀가 그를 안방까지 부축했다. 안방은 거실보다 더욱 휑해 보였다. 커다란 침대와 옷장 그리고 책장이 전부였다. 그 외의 물건은 아무것도 없었다.그녀가 방안을 둘러보았다.“이건 너무 단출한 거 아니에요?”궁상스러운 건 아닌데 지나치게 단출했다. 휑해 보이는 공간은 집이라기 보다 그저 비나 바람을 피할 수 있는 거처로 보였다.그의 눈동자가 흔들렸다.“혼자 사니까 물건이 많이 필요 없어서요.”그가 잠깐 뜸을 들이다가 천천히 말을 이었다.“자주 오지도 않고요.”그는 집에 자주 오는 편이 아니었다. 멀기도 했고 일을 나갈 때도 불편했다.곽의정은 알겠다는 듯이 더 이상 묻지 않았다.“그럼 안전하게 집에 도착했으니 전 이만 가볼게요.”그녀가 막 돌아섰을 때 등 뒤의 남자가 담담하게 물었다.“안 자고 가요?”곽의정이 그대로 얼어붙었다. 그녀의 표정이 어색하게 구겨졌다.“아무리 약혼한 사이라고 해도 그건 좀 아닌 것 같은데요.”서도준이 이마를 문지르며 그녀를 힐끗 보더니 소리 내어 웃었다.“제가 그런 사람으로 보여요?”그녀가 고개를 저었다.“그건 아닌데.”“그런데 뭘 겁내고 그래요.”“……”서도준이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설명했다.“여기 의정 씨 집이랑 꽤 멀어요. 밤이라 의정 씨 혼자 운전하고 가는 것도 위험하고요. 일단 오늘은 여기서 자고 내일 내가 바래다 줄게요.”그의 말
일을 마친 그녀가 살금살금 안방으로 돌아갔다.서도준이 천천히 눈을 떴다. 그가 자신의 몸 위에 놓인 이불을 만지작거리며 고개를 돌려 방 안으로 들어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그는 자신의 주량을 잘 알고 있었다. 많이 마시긴 했지만 취할 정도는 아니었다. 군대에 있을 때 매번 위험한 잠입 임무를 했었기에 잠이 매우 얕았다. 그녀가 방문을 열고 나오는 순간 잠에서 깼었다.그가 갑자기 피식 웃었다.그녀가 뭘 하려고 저러는지 지켜보려고 했는데 이런 뜻밖의 행동을 할 줄이야.다음날, 곽의정은 아침 8시 정각에 눈을 떴다. 세수를 하고 거실로 나와보니 소파에는 이불과 베개만 덩그러니 놓여있을 뿐이었다.“깼어요?”서도준이 주방에서 아침밥을 들고나왔다.잠깐 머뭇거리던 그녀가 식탁으로 걸어갔다. 간단하게 차려진 아침은 보기에도 그럴듯해 보였는데 냄새도 끝내주었다.“서도준 씨 솜씨 좋은데요?”서도준이 의자를 빼냈다.“혼자 산 시간이 길어서 이런 건 자연스럽게 익히게 되었어요.”그녀가 자리에 앉았다.“술은 깼어요?”“숙취는 없는 편이라서요.”서도준이 그녀의 맞은편에 앉았다. 그가 태연하게 계란 하나를 깠다.“의정 씨는 어젯밤 잘 잤어요?”“그럭저럭요.”곽의정이 고개를 숙이고 그릇에 담긴 수프를 맛보았다.서도준이 절반 넘어 깐 계란을 그녀 앞에 놓인 그릇에 놓아주었다.“맛은 어때요?”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정말 맛있었다.그가 가볍게 미소 지었다.“어젯밤 의정 씨가 특별히 저를 위해 이불과 베개를 가져다준 것에 대한 보답이에요.”곽의정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녀가 서둘러 해명했다.“전 그냥 당신 침대를 차지한 게 미안하기도 해서.”그녀는 다른 뜻이 없었다. 그저 술 취한 남자를 소파에서 자게 한 게 양심에 걸렸을 뿐이었다.“의정 씨는 참 착하네요.”“뭘 칭찬까지.”곽의정이 젓가락을 깨물었다. 자신이 대단한 걸 한 것도 아닌데 칭찬이라니.서도준은 그저 피식 웃기만 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아침을 먹은 후 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