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예지는 웃어 보였다.“그래. 기다리고 있을게.”그녀는 숲속에서 주위를 둘러봤다. 숲속에서 가끔씩 소리가 들렸다.“예지 언니, 저 다 됐어요.”강유이는 나무 뒤에서 걸어 나오며 자신의 옷을 정리했다. 안예지는 눈앞의 예쁘고 착한 여자아이를 보자 참지 못하고 아이의 뺨을 꼬집었다.강유이는 뭔가를 본 건지 손가락으로 그곳을 가리켰다.“저쪽에 들꽃이 많아요. 우리 저기로 가봐요.”강유이는 그곳으로 달려갔고 안예지는 강유이의 뒤를 따랐다.“천천히 가.”캠핑장에서 호숫가로 간 강성연은 송아영과 강해신 두 사람이 조개를 줍는 걸 보고 주위를 둘러봤다.“유이랑 예지 씨는?”“두 사람은 저기...”송아영이 바라봤을 때 그들은 없었다.“어라?”’육예찬이 다가왔다.“예지 씨랑 유이 찾아? 두 사람 숲으로 들어갔어.”강성연은 흠칫했다.“숲은 왜 갔대?”강해신이 그때 허리를 펴고 대답했다.“유이가 화장실 가고 싶다고 해서 예지 누나랑 같이 갔어요.”“화장실 가는 건데 너무 오래 걸리는 거 아냐? 내가 가서 찾아봐야겠어.”강성연은 말을 마친 뒤 숲으로 걸어가려는데 육예찬이 그녀를 붙잡았다.“넌 안 가도 돼. 따라간 사람이 있거든.”강성연은 의아했다. 캠핑장 쪽을 바라보니 정말 한 명이 없었다.강성연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러네. 그러면 걱정 안 해도 되겠네.”송아영은 머리를 긁적였다.“무슨 얘기를 하는 거야?”육예찬은 웃는 얼굴로 송아영에게 다가가 그녀의 어깨를 안았다.“별거 아니야. 오늘 너도 노느라 좀 피곤한 것 같은데 이만 쉬러 가자.”다른 한편.주위에는 낮은 언덕이 있었고 얕은 호수는 잔디로 갈라져 있었다. 그 위에는 수수하고 청아한 노란색, 흰색의 꽃들이 푸른 수풀 속에서 활짝 피어나 유독 아름다웠다.강유이는 눈을 반짝였다.“와, 이거 다 무슨 꽃이에요? 너무 예뻐요!”안예지도 숲속에 이렇게 아름답고 선경 같은 곳이 있을 줄은 몰랐다. 그녀는 웃으며 대답했다.“수선화야.”“수선화요?”강유이는 머리를 긁적였다.
처음엔 현금을 챙기지 않고 커피숍에 갔고, 두 번째는 다른 사람 차를 박았다가 하마터면 돈을 빼앗기고 맞을 뻔했고, 세 번째는 같이 거리를 거닐다가 비가 내렸고, 네 번째는 계단에서 미끄러져 그에게 안긴 채로 돌아갔다.안예지는 더욱더 난감해졌다. 구의범의 말이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구의범은 안예지에게 손을 내밀었고 안예지는 당황하며 고개를 들어 자신을 향해 손을 뻗은 구의범을 바라보았다.구의범은 그녀를 바라봤다.“내가 캠핑장까지 안아서 데려다줬으면 좋겠어요?”안예지는 깜짝 놀랐다.“당... 당연히 아니죠.”안예지는 구의범의 팔을 잡고 천천히 바닥에서 일어났다. 순간 발목이 따끔거려 안예지는 헛숨을 들이켰다.구의범은 시선을 내려 살짝 들린 안예지의 오른발을 바라봤다.“발 삐었어요?”안예지는 고개를 끄덕였다.구의범은 그녀를 부축해 나무 아래 앉게 했고 그녀의 앞에 쭈그리고 앉아 오른 쪽 신발을 벗기려 했다. 안예지가 손을 뻗었다.“내가 할게요.”“예지 씨가 하는 거랑 제가 하는 거랑 차이가 있나요?”구의범은 그녀의 양말까지 벗긴 뒤 시선을 들어 그녀를 보았다.“어차피 벗을 건데.”안예지는 입을 다물며 속으로 당연히 차이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녀의 발을 이렇게 만진 적이 있는 남자가 없었기 때문이다.“족발처럼 부었네요.”구의범은 마사지해 줬고 안예지는 저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그녀는 이내 입을 막았다.“미안해요.”구의범은 미간을 구기더니 고개를 들어 그녀를 보았다.“왜 사과하는 거예요?”안예지는 시선을 내려뜨렸다.“나 때문에... 시끄러울까 봐요.”구의범은 흠칫하다가 갑자기 그녀를 보았다. 안예지는 그의 시선에 어색함을 느낀 건지 고개를 숙이며 시선을 돌렸다.한참 뒤, 구의범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예지 씨는 참 이상하네요.”안예지는 당황했다.“네?”“부잣집 아가씨면서 뭘 하든 항상 조심스럽잖아요. 또 겉보기에는 소심해 보이는데 가끔은 배짱도 두둑하고요.”안예지는 잠깐 넋을 놓고 있다가 입을 꾹 다물고 아무 얘
구의범은 불더미 앞에 앉아 장작을 더하고 있었다. 고개를 돌린 그는 바위에 기대어 있는 안예지를 보았다. 안예지는 추운 건지 무릎을 끌어안고 있었다.구의범은 몸을 일으켜 그곳으로 걸어가 그녀의 앞에 앉았다. 손을 들어 이마를 짚어보니 뜨겁지는 않고 미열이 있는 것 같았다.자리에서 일어난 구의범은 말린 외투를 그녀에게 덮어주고는 곧이어 그녀를 품 안으로 끌어당겼다. 안예지는 살짝 당황했다. 추워서일까, 그의 품에 안기는 순간 따뜻하고 편안했다.“졸리면 눈 좀 붙여요.”그는 안예지의 머리를 자신의 가슴 쪽으로 눌렀다.안예지는 그의 목소리를 들으며, 그의 뜨거운 심장 박동을 느끼며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마치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아요.”구의범은 시선을 내려 그녀의 복슬복슬한 머리를 바라봤다.“무슨 꿈이요?”안예지는 온몸이 나른해졌다. 그녀는 손을 뻗어 허리를 끌어안더니 그의 품에 머리를 비볐다.“좋아해요...”구의범은 안예지가 흐리멍덩한 상태로 말하는 걸 듣고 속눈썹이 살짝 떨렸다. 잠시 뒤 구의범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내 어디가 좋아요?”안예지의 긴 호흡이 들려오자 구의범은 잠이 든 안예지를 바라보며 소리 없이 웃었다. 안예지는 그의 어깨에 뺨을 기댄 채로 얕은 호흡을 내뱉었다. 뜨거운 김이 그의 목 언저리를 스쳐 지났다.고개를 돌린 구의범은 안예지를 바라보다가 손가락으로 그녀의 이마에 드리워진 머리카락을 넘겨줬고 그녀의 입술에 잠시 시선이 머물렀다.반지훈과 구천광, 그리고 육예찬 세 사람이 불빛을 따라 그들을 찾아냈다. 구천광은 뭔가를 본 건지 곧바로 두 사람을 다른 쪽으로 끌고 갔다.육예찬은 당황했다.“왜 그래요?”구천광은 조용히 하라는 듯 손짓하며 산기슭을 바라보았다.“안전하다는 걸 확인했으니 굳이 방해할 필요는 없죠. 날이 밝으면 알아서 돌아올 거예요.”“아니, 우린 두 사람을 찾으러 온 건데...”육예찬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반지훈이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구천광의 말이 맞아요. 우리는 이만 돌아가요.”
강성연은 다가가서 송아영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예지 씨 걱정은 하지 마. 구의범 씨가 예지 씨를 괴롭힐 일은 없으니까.”“성연아, 너랑 아린이 오늘 진짜 이상해.”송아영은 강성연의 손을 치우며 뭔가 떠올린 듯 말했다.“어쩐지 너희 모두 뭔가를 알고 있는데 나만 모르는 것 같다.”육예찬은 작게 기침했다.“네가 바보라서 그래. 깊게 생각하지 않잖아.”송아영은 육예찬의 발을 꾹 밟았고 육예찬은 심호흡하며 아내니까 때려서는 안 된다며 참았다.반지훈은 강성연의 어깨를 끌어안았다.“됐어요. 늦었으니까 다들 쉬러 가죠. 두 사람은 내일 아침 돌아올 거예요.”반지훈과 강성연은 텐트로 돌아갔고 김아린도 구천광을 텐트 안으로 밀어 넣었다. 송아영은 육예찬을 잡고 늘어졌다.“얼른 얘기해 줘. 어떻게 된 일이야!”육예찬은 그녀를 안았다.“일단 텐트 안으로 들어가자. 내가 천천히 얘기해 줄게.”송아영은 눈살을 찌푸렸다.“나 속이지 마.”육예찬은 어이가 없었다.“안 속여.”밤이 깊어지고 먹구름 사이로 달이 슬며시 나왔다. 그렇게 곧 새벽이 되었고 불더미는 어느샌가 꺼졌다. 안예지는 천천히 눈을 떴다. 그녀는 더위 때문에 눈을 떴는데 밖은 희미하게 날이 밝고 있었다.두 눈을 완전히 떴을 때 안예지는 숨이 멈출 것 같았다.두 사람은 잘 펴놓은 건초더미 위에서 잠을 잤다. 구의범은 그녀 옆에 누워 그녀를 안고 있었고 안예지는 그의 품에 안겨 있었다.지척에 있는 그의 얼굴에 심장이 두근댔다. 구의범을 안고 자다니, 정말 꿈을 꾸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안예지는 시선을 내려뜨리더니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그녀는 천천히 그의 품에 기대었다. 안예지는 자신이 미친 건 아닐까 생각했다. 너무 지나치게 좋았다.“안예지 씨.”정수리 위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안예지는 몸이 굳었다. 그녀는 마치 현장에서 잡힌 현행범처럼 난감해 죽을 것 같았다.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구의범의 시선을 마주한 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앉았다.“미안해요. 난..
또 그 문제였다.안예지는 그를 보았다.“좋아하는데... 이유가 필요해요?”구의범은 웃었다.“나에 대해 얼마나 알아요? 내가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는데 날 좋아한다니, 내가 나쁜 사람일까 걱정되지 않아요?”안예지는 고개를 숙이며 천천히 말했다.“나쁜 사람 아닌 거 알아요.”구의범은 손가락으로 그녀의 입가를 쓸었다.“왜 그렇게 확신하는 거예요? 나랑 같이 있는 게 안전한 것 같아서 그래요?”안예지는 미간을 구기며 의아해했다.“정말 단순하네요.”구의범은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봤다.“남자를 너무 믿는 거 아니에요? 어젯밤 남녀 둘이 있었는데 다른 남자였다면 예지 씨가 무사히 밤을 보낼 수 있었을까요?”안예지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구의범 씨는 그런 남자들이랑 다르잖아요.”“그렇긴 하죠. 난 참았으니까요.”구의범은 손을 놓은 뒤 그녀를 등지고 말했다.“남자를 너무 좋게 생각하네요.”구의범은 일어서서 불더미 옆에 두었던 옷을 주워 입었다. 그는 바깥 하늘을 바라봤다.“날이 밝았으니 이만 돌아가요.”안예지는 시선을 내려뜨렸다. 그녀를 받아줄 마음이 없었다면 왜 그녀에게 키스한 걸까?구의범과 안예지가 캠핑장으로 돌아오자 캠핑장에 있던 사람들이 고개를 돌려 두 사람을 바라봤다. 김아린이 웃으며 말했다.“내가 얘기했지. 무사할 거라니까.”안예지는 고개를 숙였다. 그녀는 뭔가를 들킨 사람처럼 조금 찔렸다.구의범은 미간을 구겼다.“정말 우리가 죽든 살든 관심이 없네요.”구천광은 웃었다. 그는 구의범의 곁으로 다가가 그의 어깨에 손을 올려두었다.“어젯밤에 두 사람 찾으러 갔어. 그런데 오붓해 보이길래 방해하지 않았지.”마지막 말은 구의범만 들을 수 있었다.구의범은 당황했다.강성연은 안예지 곁으로 걸어갔다.“다치지는 않았죠?”안예지는 고개를 저었다.김아린은 웃었다.“구의범 씨가 있는데 다칠 리가 없지.”강성연은 안예지의 손을 잡았다.“배고프겠네요. 얼른 아침 먹어요.”아침을 다 먹고 점심이 되자 그들은 짐을 정리하고 돌아갔
“네.”안예지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맞은편 자리에 앉았고 양진우는 그녀를 훑어보면서 웃었다.“이율 씨는 생각보다 단정하게 생기셨네요. 전 또...”“또 뭐요?”양진우는 웃었다.“이율 씨 어머니께서 묘사하신 모습이랑은 많이 달라서요.”안예지는 고개를 끄덕였다. 양진우는 뭔가 떠올랐는지 메뉴판을 들고 말했다.“드시고 싶은 거 있나 한 번 보세요.”안예지는 잠깐 뜸을 들이다가 웃으며 말했다.“죄송해요. 전 이미 먹었어요. 만나 보고 싶다고 하셔서 나온 겁니다.”“그래요. 그러면 뭐 마실래요?”양진우가 적극적으로 나와 안예지는 커피 한 잔을 시켰다.그는 식사하면서 일에 관해 물었다. 안예지도 soul 주얼리에서 일하기 때문에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일에 관해 말하던 양진우는 안예지가 마음에 든 듯했다.“이율 씨는 업무에 굉장히 진심이시군요. 결혼한 뒤에는 어떻게 할 건지 생각해 보신 적 있으신가요?”결혼한 뒤?안예지의 속눈썹이 떨렸다.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말했다.“아무 생각 없는데요.”양진우는 미간을 살짝 구겼다.“결혼한 뒤 계획이 없으신가요? 이율 씨는 결혼한 뒤에 계속 일하실 셈이신가요?”“결혼했는데 왜 일을 못하죠?”안예지는 의아했고 양진우는 당황했다.“일과 가정을 둘 다 돌보는 건 여자들에게 어려운 일 아닌가요? 그리고 결혼해서 아이가 생기면 여자들은 아이를 돌봐야죠.”안예지는 흠칫했다. 그녀는 여전히 의아했다.“여자가 결혼을 하면 반드시 일을 포기해야 하나요?”양진우의 미소가 살짝 굳었다. 그는 조금 전보다 더 엄숙한 표정으로 말했다.“이율 씨, 결혼한 뒤에 아이가 생겨도 일을 선택하겠다는 뜻인가요?”그는 그녀의 생각이 우습다고 생각했다.“전 엔지니어링 일을 하고 있어요. 월급은 2000만 원이라 제 가족은 충분히 먹여 살릴 수 있어요. 그리고 전 제 아내의 수입이 얼만지 신경 안 써요. 그저 제 아내가 자신의 역할에 전념하기를 바랄 뿐이에요.”안예지는 그를 보며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양진우는 손을 뻗어 그녀의 손등을 어루만졌다. 안예지는 순간 몸이 경직되면서 눈살을 찌푸렸다. 양진우는 웃었다.“감정은 저희가 키우면 되는 거고. 저한테는 이율 씨처럼 단정하고 현숙한 아내가 필요해요.”안예지는 손을 빼냈다.“죄송해요. 전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요.”양진우는 그 말을 듣더니 안색이 달라지며 그녀의 손을 잡았다.“좋아하는 남자일 뿐이잖아요. 그게 뭐 그리 대단한 거라고. 둘이 사귀어요? 아니면 결혼을 했나요? 이율 씨 부모님이 알게 되더라도 두 사람을 허락할까요?”안예지는 깜짝 놀랐다. 힘을 썼으나 손을 빼낼 수 없었다. 그녀는 엄숙한 표정으로 말했다.“양진우 씨, 이 손 놓으세요.”“이율 씨, 전 이율 씨가 정말 마음에 들어요. 첫눈에 봤을 때부터 이미 이율 씨를 좋아하게 됐어요.”양진우는 그녀의 손을 끌어와 입을 맞췄다. 안예지는 순간 소름이 돋으면서 역겨워 그의 손을 힘껏 쳐낸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양진우 씨, 자중하세요!”레스토랑의 다른 손님들이 그들에게로 시선을 던졌다. 양진우는 의자에 등을 기대며 경멸하듯 웃음을 터뜨렸다.“왜요? 제가 마음에 안 들어요?”“이율 씨, 얼굴 좀 예쁘다고 잘난 척하는 건 그만하는 게 좋을 거예요. 이율 씨 그 얼굴이 아니었다면 매달 몇 백만 원밖에 못 버는데 어떤 남자가 이율 씨를 마음에 들어 하겠어요? 아니면 부잣집 도련님이랑 결혼하려는 헛된 망상을 품은 건 아니죠?”“여자들은 하나같이 돈이라면 사족을 못 쓰죠. 예쁘게 생긴 여자들은 더해요. 능력도 없으면서 고가의 예물을 바라죠. 고가의 예물을 받았으면서 가정주부는 하고 싶지 않고, 우리 남자들이 집에서 부처처럼 받들어 줘야 해요?”그의 말은 갈수록 더 듣기 거북해졌다. 주위에서 수군대는 소리도 점점 더 커졌다.안예지는 주먹을 쥐었다. 그가 모욕하는 사람이 안예지는 아니었지만 그녀는 이율 대신 이 자리에 나온 것이었기에 이율의 입장을 생각해 봤을 때 분통이 터졌다.안예지는 테이블 위에 놓여 있던 컵을 들어 그의 얼굴에 물을
안예지는 잠깐 뜸을 들였다. 내려뜨려진 그녀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몰라요. 난 우리가 무슨 사이인지 모르겠어요. 그리고 의범 씨도 별로 신경 쓰지 않았잖아요. 난 감정에 있어서 경험이 없어요. 하지만 남녀가 키스를 하는 건 사귀는 사이일 때 하는 친밀한 행위라는 건 알아요. 그런데 우리는 아니잖아요. 어쩌면 난 의범 씨에게 아무것도 아니겠죠.”구의범은 화가 나서 헛웃음이 났다. 그는 안예지의 앞에 꼿꼿하게 섰다.“내가 예지 씨를 가지고 놀았다고 생각하는 거예요?”“아닌가요?”안예지는 눈시울이 빨갰다. 억울한 토끼 같았다.“당연하죠.”구의범은 벽을 짚으며 그녀에게로 몸을 기울였다.“내가 예지 씨를 가지고 놀 생각이었다면 예지 씨랑 키스하지 않았을 거예요. 그냥 잤겠죠.”안예지는 겁을 먹은 건지 꼼짝하지 못했다. 그녀는 멍하니 구의범을 바라볼 뿐이었다. 구의범은 그녀의 귓가에 대고 매혹적인 미소를 지어 보였다.“그거 알아요? 남자들은 여자를 가지고 놀 생각이라면 마음을 너무 많이 쓰지 않아요. 그저 욕망을 풀려고 할 뿐이죠. 남자들은 욕망과 감정을 분리할 수 있어요. 내가 남자들을 너무 좋게 생각하지 말라고 한 적 있죠. 특히 저 같은 남자 말이에요.”구의범은 손을 거두어들인 뒤 몸을 돌렸다.“예지 씨 아버지는 예지 씨를 잘 보호해 줬어요. 밖의 화려한 세상을 본 적이 없고 각양각색의 인간들이 가면을 쓰고 스스로를 감춘다는 걸 모르죠. 예지 씨는 날 믿는다고 했지만 날 알지는 못해요.”“난 예지 씨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좋은 사람이 아니에요. 내 명성이 얼마나 나쁜지 예지 씨도 들어봤을 거예요. 난 내 아버지가 여러 여자들이랑 만나면서 외도한 영향을 받아서 17살 때부터 밤 생활을 시작했어요. 여자를 옷 바꾸듯 바꿨죠. 저희 할아버지가 절 훈련 캠프에 보내서 훈련을 받게 한 뒤에야 조금 수그러들었지만 내가 여자들의 감정을 가지고 놀았던 건 사실이에요.”그는 고개를 돌려 놀란 표정의 안예지를 바라봤다.“난 한성연 씨에게 된통 당한
”유이야.”조민과 소찬이 술잔을 들고 다가왔다.“오늘 너무 예쁘다!”강유이가 웃으며 말했다.“고마워요.”조민이 술잔을 들며 말했다.“이건 나와 소찬 씨가 축하의 의미로 권하는 거야. 너와 한태군이 오랫동안 행복하게 잘 살기를 바래.”강유이가 그녀의 잔에 자신의 잔을 부딪혔다.“저도 선배와 소찬 씨의 앞날에 행복할 일만 가득하길 바랄게요.”곧이어 남우와 반재언이 다가왔다. 두 사람의 뒤에는 진예은과 반재신 그리고 강성연과 반지훈까지 있었다.강성연이 유이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말했다.“오늘 우리 유이 너무 잘했어!”그녀가 미소 지었다.“진짜요?”반지훈이 말했다.“우리 딸 정말 눈이 부시게 아름다웠어. 넌 우리의 자랑이야.”강유이가 한 떨기 꽃처럼 어여쁘게 미소를 지었다.한태군이 그들 쪽으로 다가와 감사 인사를 전했다.“아버님, 어머니, 두 분께서 유이를 제가 주신 것에 감사드리는 마음으로 이 잔 올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었다.“네놈 운 좋은 줄 알아!”그가 술잔을 들고 한태군이 내민 잔에 부딪혔다.“앞으로 내 딸한테 정말 잘해줘야 해.”한태군이 강유이를 바라보았다.“걱정 마세요. 제 생에 여자는 오직 유이 한 사람뿐입니다.”강성연도 미소 지었다.여준우와 진예은의 아버지도 인사를 건네러 다가왔다. 그들과 함께 정연 여왕과 한희운도 다가왔다. 여준우가 말했다.“아직 의식 하나 남았지?”강유이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남은 의식이 또 있어요?”그가 말했다.“베란다에서 하는 세기말 키스가 남았잖니. 너희 아직 그거 못했어.”한희운이 웃으며 말했다.“여준우 경, 어째 가족들보다 경이 더 조급해 하는 것 같습니다.”여준우가 들뜬 표정으로 말했다.“전설 속의 세기말 키스. 우리 모두 한 번도 본 적이 없지 않습니까! 그 장면을 오늘에서야 보게 되었군요.”그의 말에 다른 사람들도 웃음을 터뜨렸다.남우가 의문스러운 듯이 물었다.“세기말 키스가 뭐야?”반재언이 그녀에게 설명해 주었다.“오래전 첫 번째
웨딩카가 지나가야 했기에 궁에서부터 대성당까지 가는 길에 기타 차량은 통행을 금지 시켰다.강유이가 창밖을 바라보았는데 길에는 혼란스러울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었다. 그들 모두가 이 성대하고 엄청난 장면을 구경하러 몰려든 것이였다.그녀의 곁에 앉아있는 한태군은 네이비 더블 버튼 군복을 입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늠름해 보였다. 어깨에는 성 패트릭 훈장과 로열 빅토리아 훈장 등 여러 훈장이 달려있었다.그가 강유이의 손을 잡더니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손에서 땀이 나는데?”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나 긴장돼.”그가 그녀의 손을 잡아당기더니 손등에 입을 맞추었다.“내가 있잖아. 긴장할 것 없어. 마음을 편하게 가져.”강유이의 시선이 그가 입은 제복으로 향했다.“이 옷 오빠한테 너무 잘 어울린다!”한태군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내 신부도 오늘 너무 아름다워.”성당에 도착하자 한태군은 강유이와 떨어지게 되었다. 그는 아버지 한희운과 함께 여준우, 진예은의 아버지 등 황실 성원들 그리고 내각 대신들까지 함께 성당 서쪽 문으로 걸어갔다. 문 앞에 있는 광장에는 이미 수천 명의 초대 관객들이 몰려있었는데 그 장면이 너무나도 웅장했다.여준우가 웃으며 말했다.“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고, 결혼식도 전부 라이브로 방송되겠는데 유이 그 계집애 아마 지금쯤 우리보다 더 긴장하고 있겠죠?”진예은의 아버지가 그를 바라보았다.“하하. 내 눈에는 네가 더 긴장한 것 같은데?”그가 웃으며 말했다.“황실 결혼식은 처음이라서요.”열한 시 반이 되자 정연 여왕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신랑 한태군 일행이 도착할 때까지 대표로 성당에서 각 귀빈들과 인사를 나눴다.남우가 반재언 곁으로 다가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저분이 바로 여왕 폐하셔? 엄청 예쁘시다. 나 실제로 처음 봐.”반재언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나도 처음 뵙는 거야.”“뭐?”남우가 깜짝 놀랐다.“그전에 한 번도 만난 적 없어?”“재신이
”참 형수님은?”소찬이 묻자 반재언이 대답했다.“지금 아버님 모시고 돌아다니고 있어. 나도 이제 가야겠네. 두 사람 편히 쉬고 있어요.”반재언이 자리에서 일어나 자리를 떠났다.소찬이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와이프가 생기더니 변했어!”“하하. 당신은 뭐 재언 씨와 다른 것처럼 말하네요.”조민도 자리에서 일어났다.소찬도 얼른 잔을 놓고 그녀의 뒤를 따랐다.“잠깐만요. 왜 나 버리고 혼자 가요! 같이 가요.”강성연과 지윤이 룸에서 나와 걸어가다 마침 복도에서 반지훈과 희승과 마주쳤다. 희승이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오랜만이에요, 사모님.”강성연이 반지훈 앞에 멈춰 서자 반지훈이 그녀의 손을 잡아끌었다.“오랜만에 만났는데 얘기는 잘 했어?”“그럼요. 근데 당신 오후에 아버님과 여씨 가문에 간다고 하지 않았나요?”반지훈이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당신 기다리고 있었지. 가서 밥 먹자.”희승이 지윤의 곁에 나란히 서며 그들을 바라보았다.“회장님 사모님, 그럼 저희들은 먼저 아버님한테 가볼게요.”반지훈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는 강성연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그녀와 나란히 복도를 걸어갔다. 포근한 햇살이 통유리로 된 창문으로 들어와 바닥에 그림자를 만들어냈다. 두 사람의 그림자가 한데 꼭 붙어 좀처럼 떨어질 줄 모르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이틀 후, 드디어 모든 사람들이 기대했던 세기말 황실 결혼식 날이 다가왔다. 식은 아홉 시에 시작될 예정이었지만 아침 일곱 시부터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이 궁에 도착해 있었다. 강유이는 커다란 메이크업 룸을 혼자 썼다. 네다섯 명의 탑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그녀를 위해 화장을 해주고 머리를 만져주었다.여덟 시가 되어서야 강유이는 드레스를 입을 수 있었다. 순백의 새하얀 드레스는 과한 보석과 레이스가 아닌 천연 실크 소재로 우아함을 극대화했다. 오프숄더 형 넥 라인으로 간단하지만 파격적인 미를 추가했고 소매는 칠부 정도 되었다.면사포 길이만 16피트 정도 되었는데 변두리가 레이스로 수놓아져 있었다.
그녀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그럼 나 결혼식 당일에 이 티아라 쓸래. 그러면 엄마의 디자인을 홍보해 줄 수도 있잖아.”한태군이 등 뒤에서 그녀를 껴안았다.“네가 원하는 대로 다 해도 돼.”…반씨 가문 사람들은 결혼식 이틀 전에 영국에 도착했다. 그들은 한태군이 안배한 호텔에 머물게 되었다. 황실에서는 호텔을 통으로 빌려 결혼식 때문에 일부러 해외에서 온 귀빈들을 위한 장소로 마련했다.구씨 집안사람들과 육씨 집안사람들도 왔고, 남강훈도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연예계에서 강유이와 친분을 유지했던 윤수아, 우영, 주계진, 임석진도 초대되었다. 조민과 소찬은 당연히 초청자 명단에 속해 있었다.강성연이 레스토랑에 들어서자 웨이터가 그녀를 룸으로 안내했다. 룸 안에 앉아있는 남자를 발견한 그녀가 활짝 웃으며 다가갔다.“삼촌.”헨리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 못 본 지 몇 년이나 되었지만 그는 아직도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 다만 예전보다 살이 많이 빠진 것 같았다.강성연이 다가가 그와 포옹했다.“오셨어요.”헨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예전에 내가 네 결혼식도 참석 못 하고, 또 네 두 아들의 결혼식도 참석 못 했었잖니. 아쉬웠는데 이번에는 마침 영국에 출장 올 일이 있어서 이렇게 너를 만나러 왔단다.”그녀가 시선을 내려뜨리며 말했다.“와주셔서 너무 감사드려요. 몸은 좀 어떠세요?”그가 미소 지었다.“많이 괜찮아졌다. 지윤이와 희승이가 돌봐주고 있어서 조금 더 버틸 수 있을 것 같아.”그때 지윤이 문을 열고 룸으로 들어왔다.강성연이 고개를 돌려 지윤을 확인했다. 처음에는 놀라던 그녀가 다음 순간 눈물을 글썽였다.“두 사람도 와줬네요.”지윤이 그녀한테 다가갔다.“유이가 영국에서 결혼식을 올린다는 소식을 듣고 저와 희승 씨도 아버지 따라왔어요. 희승 씨는 지금 반 회장님과 같이 있어요.”헨리가 경호원에게 선물을 갖고 오라고 지시한 후 강성연에게 선물을 건넸다.“리비어가 올 수 없어서 참 안타까워했단다. 이건 걔가 너
한태군의 말에 나머지 사람들도 함께 웃었다.어느덧 밤이 깊어졌다. 온 도시가 화려한 네온사인에 둘러싸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강유이와 한태군은 저녁을 먹은 후 진원으로 돌아갔다.이제 막 샤워를 마친 탓에 강유이의 머리카락은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그러자 한태군이 그녀의 손에서 타월을 가져가더니 대신 머리를 닦아주었다.그녀는 화장대 거울 앞에 앉아 거울 속 남자를 바라보고 미소를 지었다.“태군 오빠, 나 결혼식이 너무 기대가 돼.”“그래?”한태군이 부드러운 그녀의 머리카락을 가볍게 쓸어내리며 말했다.“나 역시 기대돼!”“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성스러운 결혼식장에 들어서다니!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인 것 같아.”그가 소리 내어 웃더니 허리를 숙이며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그거 알아? 난 한평생 내가 꿈꿨던 모든 소원들을 이미 다 이뤘어.”강유이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무슨 소원인데?”한태군이 여전히 그의 귓가에서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너를 아내로 맞이하고, 너와 결혼식장에 들어가고, 우리 두 사람의 아이까지 만나게 된 거.”그녀가 멈칫거렸다. 따듯한 조명 아래 그녀의 볼이 붉게 피어올랐다.“설마 처음부터 다 꿍꿍이가 있었던 거야?”그가 대답했다.“어쩌면 네가 내 눈앞에 나타난 순간부터 난 너를 아내로 맞이할 줄 알았던 것 같아.”강유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끌어안았다.“나도 이번 생에는 오빠가 아닌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될 거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한태군이 천천히 고개를 숙이며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그의 따듯한 마음이 뼛속까지 전해지는 것만 같았다.“정말 영광이야.”…이틀 후, 한태군과 강유이는 영국으로 돌아갔고, 황실은 결혼식 준비로 한창이었다. 화제의 결혼식이다 보니 모든 언론이 그들을 주목하고 있었다.패션 계와 주얼리 계의 최상급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작품들이 줄지어 강유이한테 전해졌다. 명품 맞춤 드레스와 결혼식 때 사용할 각종 보석들이 발 디딜 곳 없게 전시된 채 그녀가 고
그러자 민서율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여행 좀 다녀오니까 마음이 많이 차분해졌어요.”안예지가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 “네가 원하는 일이 다 잘 되길 바랄게.”그는 그저 미소만 지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눈 깜짝할 사이에 월말이 되었다. 강유이 일행들의 여행도 어느새 끝이 나고 서울로 돌아오게 되었다.강성연과 반지훈은 정원 밖에 나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곧이어 도착한 아이들이 차례대로 차에서 내렸다. 강유이가 두 사람을 향해 달려갔다.“아빠, 엄마!”그녀가 두 사람을 동시에 끌어안았다.반지훈이 못 말린다는 듯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이렇게 안겨?”강유이가 눈초리를 휘며 대답했다.“엄마 아빠한테 저는 영원한 어린애죠.”강성연이 미소를 지으며 이쪽으로 다가오는 나머지 아이들을 바라보았다.“재밌게 놀았으면 됐어. 이제 안으로 들어가야지. 오늘 저녁은 다 같이 모여 떠들썩하게 밥을 먹을 수 있겠구나.”진예은과 남우는 집안으로 들어간 후 곧바로 위층으로 올라가 아이들을 살폈다. 희망이는 두 남동생과 함께 있었다. 세 아이는 깊은 잠에 빠져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따뜻하게 느껴졌다.아래층에서는 반재신 반재언 형제가 외출을 하고, 한태군이 거실에서 반지훈가 바둑을 두고 있었다.“아버님 이번 판은 제게 양보해 주십시오!”반지훈이 흰색 바둑알을 들고 판을 들여다보다 결심한 듯이 바둑알을 내려놓았다.“쓸데없는 소리 하지말게.”한태군이 웃으며 말했다.“다음번에는 제가 양보해 드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허튼수작 부리지 말거라. 난 네 양보 따위 필요 없다.”주방에서 과일을 깎고 있던 강성연이 거실에 있는 두 사람을 힐끗 바라본 후 다시 커피를 타고 있는 강유이를 바라보았다.“이제 곧 결혼식을 올리겠구나. 엄마가 너를 위해 서프라이즈 선물을 준비했어.”강유이가 멈칫거리더니 강성연을 돌아보았다.“어떤 서프라이즈 선물이요?”“아직은 안 가르쳐 줄 건데?”강유이가 조금
한태군이 두 사람을 보며 말했다.“두 사람을 여기에서 만날 줄은 몰랐네.”조민이 대답했다.“나랑 소찬 씨는 이곳에 온 지 좀 됐어. 유이가 인스타에 사진을 올려서 알았어. 너희들도 여기 왔다는걸.”강유이가 조민의 팔을 잡아당기며 자리에 앉혔다.“그럼 우리랑 며칠 더 같이 놀아요.”소찬까지 자리에 착석한 후 반재언은 그에게 진예은과 강유이를 소개했다.“여기는 우리 제수씨인 진예은씨고, 이쪽은 내 동생 유이야.”“형 결혼식 때 봤었어.”소찬은 당연히 기억하고 있었다.“형 동생이 내 와이프랑 같은 학교 출신이라면서? 와이프한테서 얘기 들었어.”조민이 그를 보며 말했다.“누구보고 와이프래요? 나중에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장담 못 하거든요?!”그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약혼까지 다 했는데 다른 남자한테 시집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두 사람의 티격태격한 모습에 다른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유독 강유이만 멍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지금 무슨 소리들 하는 거예요! 약혼이라니. 선배 약혼했어요?”조민이 작게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응, 너한테 말하는 걸 깜빡했어.”“너무해요. 어떻게 그렇게 중요한 일을 나한테 말하지 않을 수 있어요.”강유이가 입을 삐쭉 내밀었다. 그녀는 조민이 약혼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조민이 그녀의 손을 감싸며 말했다.“너한테 서프라이즈를 해주려고 그랬지.”그녀가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돌렸다.“저 이제 선배랑 안 놀거예요.”조민이 울지도 웃지도 못한 채 옆에 앉아있는 한태군을 힐끗 바라보며 말했다.“빨리 네 와이프 좀 달래 봐.”한태군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강유이도 그저 장난으로 그런 말을 했을 뿐이었다. 그녀는 조민의 약혼 소식을 듣고 진심으로 기뻤다.적어도 이제 그녀는 자기만의 행복을 찾았다.…..한편, 서울 병원.민서율은 복도에서 의사와 이야기를 나눈 후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 침대 머리에 기대앉아있는 어머니는 많이 초췌해진 상태였다.“어머니, 몸은 좀 어떠
투호 판을 벌인 사장이 말했다.“오천 원에 세 번 던질 수 있어요.”“그렇게나 비싸요? 오천 원에 세 번밖에 던지지 못하다니!”진예은은 어쩐지 손해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투호 판 사장이 고개를 들고 말했다.“저희가 여기서 제일 쌉니다. 다른 집에서는 만 원에 세 번 던지게 하는걸요.”강유이가 진예은을 잡아끌며 말했다.“오천 원에 하자. 사장님도 장사하는 게 어려우실 거 아니야. 우리 재미로 한 번 해보자.”결국 그녀는 사장에게 만 원을 건넸다.“기회는 총 여섯 번입니다.”사장이 화살 여섯 개를 그녀에게 건넸다. 가지런히 놓인 여러 개의 항아리 옆에는 명중했을 때 가질 수 있는 선물이 놓여있었다. 강유이는 그중 팔찌가 갖고 싶었다. 비록 가짜겠지만 디자인이 예뻤다.그녀가 고심 끝에 화살을 던졌다. 하지만 화살은 항아리를 빗나가고 말았다.그 뒤로 연속 두 번 더 던졌으나 모두 다 실패했다.이제 화살은 세 개 밖에 남지 않았다.강유이의 자신 없는 모습을 본 남우가 그녀의 손에서 화살을 가져가며 말했다.“내가 할게요.”그녀가 팔찌 옆에 놓인 항아리로 화살을 던졌고, 화살은 단번에 항아리 안으로 들어갔다.성공이다!흥분한 강유이가 폴짝폴짝 뛰며 말했다.“새언니 정말 대단해요!”“훗. 이 정도쯤이야.”남우가 눈을 찡긋해 보이며 물었다.“또 어떤 게 갖고 싶어요?”강유이가 진예은에게 물었다.“예은아, 어떤 게 마음에 들어?”진예은이 선물을 살피다가 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다.“저 머리핀이요. 저게 제일 예쁜 것 같애요.”남우가 다시 머리핀 옆에 있는 항아리를 향해 화살을 던졌다. 그리고 정말로 그 머리핀을 명중했다.강유이가 그녀의 손을 꼭 붙잡고 잔뜩 흥분하며 말했다.“진짜 백발백중이네요. 새언니, 이제는 새언니 마음에 드는 걸로 골라요.”남우가 턱을 쓰담으며 말했다.“그러면 저는…”그녀의 시선에 백옥 청자가 들어왔다.“저걸로 하죠.”그녀가 들고 있던 화살을 슝 던지자 쨍그랑하는 소리와 함께 항아리 안으로 빨려
늦은 밤의 산속은 무척이나 고요했다. 평안한 야영장에는 오직 풀벌레 소리만 잔잔하게 들려왔다.텐트 밖 잔디 위에는 랜트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평온하고도 아늑한 분위기였다.강유이는 몸을 뒤척거리며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때 한태군이 그녀의 허리를 감싸며 품에 안았다.“잠이 안 와?”“응.”그녀가 그의 품에 가만히 기댔다.“태군 오빠, 나 화장실 가고 싶은데 무서워서 못 가겠어.”한태군이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그럼 내가 같이 가줄게.”두 사람이 텐트 밖으로 나왔다. 한태군이 손전등을 들고 그녀와 함께 한참을 걸었다. 두 사람은 우거진 숲 앞에 도착했다. 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며 말했다.“여기서 기다리고 있어.”한태군이 고개를 끄덕였다.“무슨 일 있으면 불러.”그녀는 숲 안으로 들어갔지만 무서워서 멀리 가지는 못했다.볼일을 본 후 강유이가 서둘러 달려와 그의 팔짱을 꼈다.“됐어.”한태군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텐트로 돌아가던 중 그녀가 고개를 들고 밤 하늘을 바라보며 손으로 가리켰다.“저게 북두칠성인가?”한태군도 고개를 들었다.“응, 맞아.”강유이가 배시시 웃었다.“역시 산속이니까 별이 엄청 잘 보이는 것 같아.”“두 사람 밤늦게 자지도 않고 별구경 하는 거예요?”남우가 텐트 안에서 나오며 묻자 강유이가 그녀를 바라보았다.“새언니도 아직 안 잤어요?”“네. 아까 귀신 이야기한 것 때문에 무서워 잠을 못 자겠잖아요…!”남우가 생수 한 병을 따서 마셨다.강유이와 한태군이 서로를 마주 보더니 웃음을 터뜨렸다.“새언니 설마 그런 이야기에 무서워해요?”남우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말했다.“여기는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산골짜기라고요! 보통 때와는 다르잖아요.”강유이가 포도 한 송이를 들며 말했다.“걱정 마요. 우리 큰오빠가 새언니를 지켜줄 거예요.”그녀는 그 말을 끝으로 한태군과 함께 텐트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고개를 돌린 남우는 그제야 두 사람이 들어가 버린 것을 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