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예지가 대답하지 않자 구의범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봤다.“데이트하기 싫어?”“그건 아니고...”‘먼저 말놨으니 나도 편하게 해도 되겠지? 데이트면 사귀는 거니까…?’안예지는 몇 초간 당황하더니 작게 물었다.“우리 지금부터 연인인 거야?”안예지의 어깨를 끌어안고 있던 구의범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는 안예지를 더욱 가까이 끌어당겼다.“누가 봐도 그렇지 않나? 그런 질문을 하다니, 바보 같네.”구의범을 바라보는 안예지의 눈동자에 웃음기가 가득했다.다음 날, soul 주얼리.“안예지 씨, 어제 일 정말 고마워요. 저희 엄마가 그러던데 소개팅 상대가 엄마한테 연락해서 앞으로 저 안 만나겠다고 했대요. 그리고 저희 엄마에게 사과를 해서 엄마가 깜짝 놀랐다고 하더라고요.”이율은 아침 일찍 안예지를 찾아와 감사 인사를 전했고 안예지는 웃으며 대답했다.“아니에요. 저야말로 이율 씨에게 고마워요.”이율 대신 소개팅을 나가지 않았더라면 구의범을 마주치지 못했을 것이다.“저한테 고맙다고요?”이율은 난처했다.“뭐가 고마운데요?”안예지는 시선을 내려뜨렸다. 어제부터 그녀는 기분이 달라졌다. 안예지의 얼굴에 떠오른 미소를 본 이율은 안예지를 지긋이 바라봤다.“얼굴에 미소가 가득한 걸 보니 설마 연애하는 거예요?”연애라는 말에 안예지의 볼이 빨개졌다. 그녀는 점점 더 감추지 못했고 이율은 깜짝 놀랐다.“진짜예요?”안예지는 고개를 끄덕였다.이율은 더욱더 궁금해져서 바짝 다가가 물었다.“누구예요?”안예지는 시선을 내려뜨렸다.“이율 씨도 아는 사람이에요.”이율은 잠깐 당황하더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봤다.“설마 구의범 씨예요?”안예지의 표정을 본 이율은 완전히 얼이 빠졌다.“정말 그 사람이에요?”안예지는 웃으며 말했다.“그 사람 아니면 누구겠어요?”“대체 그 사람 어디가 좋은 거예요? 걱정되지 않아요? 그 사람...”이율은 말을 이어가지 않았지만 안예지는 그녀가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알고 있었다. 안예지는 진지
안예지는 입을 꾹 다물었다.안지성은 그녀가 들고 있던 간식을 보고 미간을 구겼다.“예지야, 아까 그 사람... 구씨 집안의 둘째 아들이니?”안예지는 순간 심장이 철렁하며 긴장했다. 하지만 감히 숨길 수 없었다.“네. 미안해요, 아빠. 아빠한테 비밀로 해서는 안 됐는데.”“언제부터야?”“어제부터요...”“아빠는 언제부터 쟤랑 알게 됐는지 물어본 거야.”안지성은 미간을 잔뜩 구겼다.“거의 한 달 됐어요.”안예지는 계속해 말을 이어갔다.“아빠, 예전에 제 연애에 간섭하지 않겠다고 하셨잖아요. 전 구의범 씨 아주 좋아해요.”안지성은 심호흡하더니 무거운 어조로 말했다.“아빠는 네 연애에 간섭하지 않을 거야. 하지만 그것도 상대를 봐야지. 예지야, 구의범은 너한테 어울리지 않아.”“아빠, 저도 구의범 씨가 예전에 명성이 좋지 않았단 걸 알아요. 하지만 전 그의 과거는 신경 쓰지 않아요.”안예지는 처음으로 아버지의 말에 반박했다.안지성은 딸이 정말로 구의범을 좋아하는 것 같자 안색이 흐려졌다.“예지야, 넌 너무 단순해. 구의범 같은 남자는 네가 컨트롤할 수 없어. 아빠는 네 앞날을 위해 그러는 거야.”안예지는 이해할 수 없었다.“전 모르겠어요. 예전에 행실이 바르지 않았다고 해서 그것만으로 그의 인성을 단정하는 건가요?”“예지야...”“아빠, 저 이제 성인이에요.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저도 구분할 수 있어요. 의범 씨는 남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나쁜 사람 아니에요.”안예지는 안지성의 손을 잡았다.“아빠, 저희한테 증명할 시간을 좀 주세요. 전 그를 믿어요.”안지성은 겉으로는 별말 안 했지만 속으로는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구의범이 예전에 어땠는지, 그의 과거에 관한 소문은 지금도 충분히 알아낼 수 있었다.구의범이 검찰청으로 들어가게 된 건 오로지 그의 능력 때문일 수도 있지만 안지성은 감히 딸의 행복을 걸 수 없었다. 게다가 그의 딸은 식물인간이 되었던 사이 남자와 접촉해 본 적이 없었기에 감언이설에 쉽게 속는 것
반지훈은 그릇에 국물을 담으며 피식 웃었다."네가 음식을 만드는 건 바라지도 않아. 넌 돈을 벌어서 나를 먹여 살려야 하니까."강성연은 그릇을 받아 들며 활짝 웃었다"지훈 씨를 먹여 살리려면 돈을 어마어마하게 벌어야겠는데요."반지훈이 마침 말하려고 할 때, 그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전화를 받은 그는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무슨 일이야?"휴대전화 건너편에서 무슨 말을 했는지 반지훈은 짧게 대답하며 말했다."저녁에 갈게."통화가 끝난 후, 강성연이 반지훈을 바라보며 물었다."무슨 일 있어요?"반지훈은 입꼬리를 씩 올리며 말했다."나 저녁에 밥 먹으러 나가야 해. 당신 동창도 있다고 하던데?"강성연은 반지훈이 말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단번에 알아차렸다."제 동창이라면 당신 사촌 동생이기도 하잖아요."반지훈이 웃으며 말했다."이젠 당신 시동생이기도 하지."어둠이 내려앉고 등불이 켜졌다. 호텔 레스토랑의 VIP 룸에는 업계에서 상당히 유명한 사람들이 잔뜩 모였다. 진씨 집안에서 상업 확장을 위해 만든 자리이니 대부분 사람이 다 참석했다. 반지훈뿐만 아니라 안지성도 물론 참석했다.반지훈과 진여훈은 사촌이었다. 두 사람의 사이에 대해 몰랐던 다른 사람은 그저 그가 진씨 집안의 체면을 차려 주기 위해 왔다고 생각했다. 그는 몇몇 사람과 술잔을 기울이기는 했지만 한 입도 마시지 않았다.이때 안지성이 그의 딸 안예지를 데리고 안으로 들어왔다. 안예지는 자신이 왜 이곳으로 와야 하는지 이해가 안 됐는데 들어온 다음에야 많은 사람이 자신의 자식을 데리고 왔다는 것을 발견했다.안지성은 반지훈을 향해 걸어갔고 반지훈은 미소를 지으며 머리를 끄덕였다."아저씨, 오셨어요.""그래. 이번에는 예지도 데리고 왔어. 조만간 이 바닥 일에 익숙해져야 하니 말이야."안지성이 웃으며 말했다.안예지는 살짝 머리를 끄덕이며 인사치레 말을 했다. 이때 한 사람이 안지성을 불렀고 그는 안예지에게 제자리에 가만히 있으라고 당부하고는 멀어져갔다.아는 사람이 없었던 안
"그래요? 만나서 반가워요."안지성은 술잔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진여훈도 따라 술잔을 들어 올리며 답했다."만나서 반가워요, 안 회장님. 페르시아만 프로젝트에 대해 알게 된 후 줄곧 만나 뵙고 싶었어요."안지성은 흠칫하며 미소를 지었다."페르시아만 프로젝트가 성공할 수 있었던 건 많은 사람의 도움 덕분이 아닌가 싶어요."진여훈이 와인을 마시고는 말했다."너무 겸손하시네요.""그나저나 제 딸과는 어떻게 아는 사이이신가요?"안지성은 진여훈과 안예지를 번갈아 바라보며 물었다.진여훈은 잠깐 고민하다가 되물었다."이분이 회장님의 따님이셨어요?""네, 보통은 이런 자리에 데리고 오지 않는데 오늘은 경험 해보라고 같이 왔어요.""그러셨구나..."진여훈은 느긋하게 말했다."저희는 얼마 전 연회에서 만난 적 있어요."안지성과 진여훈의 대화를 들으며 안예지는 머리를 숙인 채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예민한 편인 그녀는 자신의 아버지가 일부러 부잣집 도련님과의 인맥을 만들기 위해 애쓴다는 것을 눈치챘다. 안지성은 여전히 구의범에 대한 편견을 내려놓지 못한 모양이다.반지훈은 천천히 술을 마시며 그들을 바라봤다. 이때 강성연에게서 집에서 야식과 함께 기다리고 있을 테니 술을 적게 마시라는 문자가 왔다. 그는 입꼬리를 씩 올렸다. 아내가 집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그는 사업이고 나발이고 바로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대표님."안예지는 반지훈의 앞으로 와서 조심스럽게 말했다."잠깐 시간 좀 내주실 수 있나요?"반지훈은 안예지와 함께 복도로 나갔다. 그는 안예지가 자신에게 부탁할 일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무슨 일이죠?"안예지는 머리를 숙이고 말했다."제 아버지와 사이가 꽤 좋으시죠. 혹시 아버지가 구의범에 대한 편견을 내려놓도록 도와주실 수 있을까요?"반지훈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 역시 안지성이 안예지를 이곳으로 데리고 온 이유를 알고 있었다."제가 무슨 수로 설득해요.""대... 대표님 말씀이라면 그래도 듣지 않을까 해서요."안예지는
"어쩐지 안 회장님이 따님을 데리고 왔다 했어요. 두 사람이 이런 사이인 줄은 또 몰랐네요."안지성은 작은 목소리로 수군대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는 안예지가 진여훈 같은 훌륭한 사람들이랑 더 많이 만나기를 바랐다.저녁 9시, 반지훈은 먼저 블루 오션으로 돌아왔다. 강성연은 그가 이렇게 빨리 돌아온 것을 보고 약간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왜 벌써 왔어요?"반지훈은 넥타이를 풀고 외투를 벗으며 말했다."만날 사람도 없고, 당신도 보고 싶어서 먼저 왔지."강성연은 피식 웃으며 반지훈의 외투를 받아서 들었다."왜요? 그 흔한 미인도 없던가요?"반지훈은 백허그를 하면서 피식 웃었다."네가 아닌 다른 여자는 내 눈에 남자랑 다를 바 없어."강성연은 몸을 돌려 그의 입술을 톡 치며 말했다."말은 참 듣기 좋게 하네요."반지훈은 옷소매를 거둬 올리며 말했다."참, 나 오늘 안예지 씨 만났어."강성연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안예지 씨도 그곳에 있었어요?"반지훈은 소파로 가서 앉더니 미간을 누르며 말했다."안 회장이 데리고 왔어. 아무래도 진여훈이랑 만나게 하려는 모양이야."강성연은 순간 멈칫했다.'진여훈이랑 만나게 하려는 모양이라고?'강성연은 또 무언가 생각난 듯 말했다."안 회장님은 예지 씨랑 의범 씨가 어떤 사이인지 모르세요...?""알지. 그래서 안예지 씨가 안 회장이 구의범에 대한 편견을 깰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는지 묻더라고."강성연은 반지훈을 바라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반지훈이 이어서 말했다."어찌 됐든 이건 두 사람 일이니까 내가 개입하기 좀 그래서 알아서 해결하라고 했어."강성연은 침묵에 빠졌다.반지훈의 대답은 틀리지 않았다. 안지성이 구의범에게 편견이 생긴 이유는 예전의 안 좋은 소문들 때문이었다. 게다가 그는 자식이라고는 안예지 한 명밖에 없었고 걱정되는 마음에 구의범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안예지는 대학 시절 사고로 식물인간이 되고 약 10년 동안이나 병원
처음으로 다른 사람의 입에서 구의범의 칭찬을 들은 안예지는 머리를 들며 물었다.“대표님도 의범 씨가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해요?""내가 훈련 캠프에 보름 정도 있은 적 있거든요. 그때의 의범 씨는 엄청 활발했어요. 그때에 비하면 지금은 아주 어른이 다 됐죠."강성연은 그릇 안의 국물을 저으며 말했다.안예지는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저... 저는 예전의 일에 대해 잘 몰라요. 그리고 신경 쓰고 싶지도 않아요.""예지 씨는 의범 씨 어디가 좋아요?"구의범은 강성연과 똑같은 질문을 세 번이나 한 적 있었다. 안예지는 시선을 떨구며 말했다."저도 잘 모르겠어요. 그냥 너무 좋아요."병원에서 남을 도와주는 모습을 봐서인지, 카페에서 얼굴도 모르는 자신의 커피값을 대신 내줘서인지, 아니면 교통사고가 났을 때 도움을 받아서인지... 안예지도 말하기 어려웠다.강성연은 턱을 괴고 말했다."두 사람이 진짜 만나기로 결심했다면 회장님도 어찌하지 못할 거예요. 두 사람의 진짜 위기는 회장님의 허락을 얻는 게 아닐까요? 같이 손잡고 노력한다면 무조건 해결할 수 있을 거예요."안예지는 시선을 떨구며 미소를 지었다."반 대표님한테 들으셨어요?""사실 지훈 씨 할아버지도 나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지훈 씨는 포기하지 않았죠. 우리는 지금까지 걸어오면서 많은 일을 겪었어요. 생사가 걸린 문제도 있었지만 나는 단 한 번도 후회한 적 없어요."강성연은 태연한 표정으로 말했다.안예지는 약간 멈칫하다가 금세 강성연의 말뜻을 이해했는지 미소를 지었다."알겠어요. 저도 포기하지 않을 거예요."같은 시각, 검찰원.구의범은 동료와 함께 밖으로 나왔다. 안지성이 밖에 서 있는 것을 보고 그는 함께 있던 사람과 몇 마디 주고받더니 안지성을 향해 걸어갔다."회장님이 무슨 일로 여기까지 오셨어요?"안지성이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당연히 자네를 찾아왔지."안지성이 무슨 얘기를 할지 대충 예상 갔던 구의범은 머리를 끄덕였다."예지 씨때문에 오셨어요?""그래."
얼마 후 구의범이 다시 전화를 걸어왔다. 안예지는 미소를 지으며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구의범의 말을 들은 안예지는 표정이 확 변했다.병원.안예지는 후다닥 병실까지 달려갔다. 병실 안에는 구의범뿐만 아니라 중년 남자, 즉 그의 아버지인 구세호도 있었다.구의범은 왼발에 깁스를 하고 있었다. 그래도 다행히 깁스한 왼발 빼고 크게 문제없어 보였다. 그는 침대에 기대 안예지를 바라보고 있었다.구세호가 물었다."이쪽은..."구의범이 덤덤하게 답했다."친구예요.""그래. 편히 쉬고 있어."구세호는 몸을 일으켜 밖으로 나갔다.안예지는 시선을 떨군 채로 침대 곁으로 다가가 구의범을 바라봤다."괜찮아?""응. 살짝 스쳤을 뿐이니까 걱정할 필요 없어."구의범은 입꼬리를 씩 올리며 말했다.안예지는 머리를 숙인 채 입술을 깨물었다."미안해. 문자에 답장이 없길래 전화했을 뿐인데... 나 때문에 사고를 당할 줄은 몰랐어.""아니야. 네 잘못 아니야."구의범은 이불을 허리까지 끌어올리더니 베개에 기댔다."예지야, 나 뭐 하나만 물어봐도 돼?"안예지는 잠깐 멈칫하다가 머리를 끄덕였다.구의범은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너는 내가 얼마나 좋아?"구의범은 아직도 안지성이 했던 말을 잊지 못했다. 그래서 확인하고 싶어서 이렇게 물었다.안예지는 멈칫하며 그의 질문을 되새겼다. 그리고 강성연이 했던 말을 떠올리며 심호흡했다."영원히 함께 있고 싶을 정도로 좋아."구의범은 안예지를 바라봤다. 그녀는 시선을 떨구고 있었지만 미소를 숨길 수가 없어 보였다."그리고 무슨 일이 있어도 포기하지 않을 정도로 좋아."구의범은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봤다."모든 사람이 우리를 부정해도 포기하지 않을 거야?"안예지는 주저 없이 대답하려다 말고 무언가 생각난 듯 말했다."내... 내 아버지는 너한테 약간의 편견이 있을 뿐이야. 내가 꼭 설득할게."구의범은 마른 세수를 하며 피식 웃었다."너 너무 바보 같은 거 아니야? 더 좋은 사람이 있었을 텐데 왜 굳이.
구의범의 대답을 듣고 난 안예지는 눈물을 뚝뚝 흘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옷깃을 움켜쥐더니 밖으로 달려갔다.안예지가 사라진 곳을 바라보며 구의범은 가슴이 아파왔다. 애써 참고 있던 감정도 결국에는 터져 나왔고 그의 얼굴은 완전히 일그려졌다.손유린은 참다못해 안으로 들어가서 말했다."넌 그걸 말이라고 하니?"구의범은 멈칫하며 말했다."어머니..."짝!"유린 씨..."반크가 말리려고 했을 때는 이미 손유린이 손을 든 후였다. 구의범은 뺨을 맞고서도 말없이 가만히 있었고 손유린은 심호흡하며 애써 기분을 진정시켰다."너도 방금 전에 나간 그 아이를 좋아하잖아. 왜 굳이 고생을 사서 하는 거야? 무슨 일이 있으면 둘이 같이 해결하면 되잖아."구의범은 머리를 숙인 채로 말했다."어머니, 이건 제 일이에요.""네가 만약 내 아들이 아니라면 나도 신경 쓰고 싶지 않아."손유린은 그를 손가락질하며 말했다."됐어. 네가 고생하든 말든 알아서 해."구의범이 걱정돼서 곧바로 달려온 손유린은 이런 장면을 보게 될 줄은 몰랐다. 남 말은 듣지도 않는 바보 같은 아들을 그녀는 더 이상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매정하게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갔다.반크는 어쩔 수 없다는 눈빛으로 구의범을 바라보더니 따라 나갔다. 병실 안에는 또다시 정적이 맴돌았다. 구의범은 이마를 짚으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미안해..."안예지는 휘청거리며 버스 역으로 가서 앉았다. 분주하게 오가는 행인을 바라보며 그녀는 중요한 것을 잃은 듯 마음이 허전했다.'우리 헤어지자.'이 말은 마치 칼과 같이 안예지의 마음속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도려냈다. 감정이라는 것은 너무나도 복잡했다.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왜 키스를 하는지 그녀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리고 답을 얻기도 전에 끝을 맺게 되었다.이때 차 한 대가 안예지의 앞으로 와서 멈춰 섰다. 그녀는 멍한 얼굴로 운전석에 앉아있는 남자를 바라봤다. 그는 다름 아닌 진여훈이었다.안예지는 진여훈의 말을 따라 그의 차에 올
”유이야.”조민과 소찬이 술잔을 들고 다가왔다.“오늘 너무 예쁘다!”강유이가 웃으며 말했다.“고마워요.”조민이 술잔을 들며 말했다.“이건 나와 소찬 씨가 축하의 의미로 권하는 거야. 너와 한태군이 오랫동안 행복하게 잘 살기를 바래.”강유이가 그녀의 잔에 자신의 잔을 부딪혔다.“저도 선배와 소찬 씨의 앞날에 행복할 일만 가득하길 바랄게요.”곧이어 남우와 반재언이 다가왔다. 두 사람의 뒤에는 진예은과 반재신 그리고 강성연과 반지훈까지 있었다.강성연이 유이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말했다.“오늘 우리 유이 너무 잘했어!”그녀가 미소 지었다.“진짜요?”반지훈이 말했다.“우리 딸 정말 눈이 부시게 아름다웠어. 넌 우리의 자랑이야.”강유이가 한 떨기 꽃처럼 어여쁘게 미소를 지었다.한태군이 그들 쪽으로 다가와 감사 인사를 전했다.“아버님, 어머니, 두 분께서 유이를 제가 주신 것에 감사드리는 마음으로 이 잔 올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었다.“네놈 운 좋은 줄 알아!”그가 술잔을 들고 한태군이 내민 잔에 부딪혔다.“앞으로 내 딸한테 정말 잘해줘야 해.”한태군이 강유이를 바라보았다.“걱정 마세요. 제 생에 여자는 오직 유이 한 사람뿐입니다.”강성연도 미소 지었다.여준우와 진예은의 아버지도 인사를 건네러 다가왔다. 그들과 함께 정연 여왕과 한희운도 다가왔다. 여준우가 말했다.“아직 의식 하나 남았지?”강유이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남은 의식이 또 있어요?”그가 말했다.“베란다에서 하는 세기말 키스가 남았잖니. 너희 아직 그거 못했어.”한희운이 웃으며 말했다.“여준우 경, 어째 가족들보다 경이 더 조급해 하는 것 같습니다.”여준우가 들뜬 표정으로 말했다.“전설 속의 세기말 키스. 우리 모두 한 번도 본 적이 없지 않습니까! 그 장면을 오늘에서야 보게 되었군요.”그의 말에 다른 사람들도 웃음을 터뜨렸다.남우가 의문스러운 듯이 물었다.“세기말 키스가 뭐야?”반재언이 그녀에게 설명해 주었다.“오래전 첫 번째
웨딩카가 지나가야 했기에 궁에서부터 대성당까지 가는 길에 기타 차량은 통행을 금지 시켰다.강유이가 창밖을 바라보았는데 길에는 혼란스러울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었다. 그들 모두가 이 성대하고 엄청난 장면을 구경하러 몰려든 것이였다.그녀의 곁에 앉아있는 한태군은 네이비 더블 버튼 군복을 입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늠름해 보였다. 어깨에는 성 패트릭 훈장과 로열 빅토리아 훈장 등 여러 훈장이 달려있었다.그가 강유이의 손을 잡더니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손에서 땀이 나는데?”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나 긴장돼.”그가 그녀의 손을 잡아당기더니 손등에 입을 맞추었다.“내가 있잖아. 긴장할 것 없어. 마음을 편하게 가져.”강유이의 시선이 그가 입은 제복으로 향했다.“이 옷 오빠한테 너무 잘 어울린다!”한태군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내 신부도 오늘 너무 아름다워.”성당에 도착하자 한태군은 강유이와 떨어지게 되었다. 그는 아버지 한희운과 함께 여준우, 진예은의 아버지 등 황실 성원들 그리고 내각 대신들까지 함께 성당 서쪽 문으로 걸어갔다. 문 앞에 있는 광장에는 이미 수천 명의 초대 관객들이 몰려있었는데 그 장면이 너무나도 웅장했다.여준우가 웃으며 말했다.“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고, 결혼식도 전부 라이브로 방송되겠는데 유이 그 계집애 아마 지금쯤 우리보다 더 긴장하고 있겠죠?”진예은의 아버지가 그를 바라보았다.“하하. 내 눈에는 네가 더 긴장한 것 같은데?”그가 웃으며 말했다.“황실 결혼식은 처음이라서요.”열한 시 반이 되자 정연 여왕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신랑 한태군 일행이 도착할 때까지 대표로 성당에서 각 귀빈들과 인사를 나눴다.남우가 반재언 곁으로 다가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저분이 바로 여왕 폐하셔? 엄청 예쁘시다. 나 실제로 처음 봐.”반재언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나도 처음 뵙는 거야.”“뭐?”남우가 깜짝 놀랐다.“그전에 한 번도 만난 적 없어?”“재신이
”참 형수님은?”소찬이 묻자 반재언이 대답했다.“지금 아버님 모시고 돌아다니고 있어. 나도 이제 가야겠네. 두 사람 편히 쉬고 있어요.”반재언이 자리에서 일어나 자리를 떠났다.소찬이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와이프가 생기더니 변했어!”“하하. 당신은 뭐 재언 씨와 다른 것처럼 말하네요.”조민도 자리에서 일어났다.소찬도 얼른 잔을 놓고 그녀의 뒤를 따랐다.“잠깐만요. 왜 나 버리고 혼자 가요! 같이 가요.”강성연과 지윤이 룸에서 나와 걸어가다 마침 복도에서 반지훈과 희승과 마주쳤다. 희승이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오랜만이에요, 사모님.”강성연이 반지훈 앞에 멈춰 서자 반지훈이 그녀의 손을 잡아끌었다.“오랜만에 만났는데 얘기는 잘 했어?”“그럼요. 근데 당신 오후에 아버님과 여씨 가문에 간다고 하지 않았나요?”반지훈이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당신 기다리고 있었지. 가서 밥 먹자.”희승이 지윤의 곁에 나란히 서며 그들을 바라보았다.“회장님 사모님, 그럼 저희들은 먼저 아버님한테 가볼게요.”반지훈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는 강성연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그녀와 나란히 복도를 걸어갔다. 포근한 햇살이 통유리로 된 창문으로 들어와 바닥에 그림자를 만들어냈다. 두 사람의 그림자가 한데 꼭 붙어 좀처럼 떨어질 줄 모르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이틀 후, 드디어 모든 사람들이 기대했던 세기말 황실 결혼식 날이 다가왔다. 식은 아홉 시에 시작될 예정이었지만 아침 일곱 시부터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이 궁에 도착해 있었다. 강유이는 커다란 메이크업 룸을 혼자 썼다. 네다섯 명의 탑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그녀를 위해 화장을 해주고 머리를 만져주었다.여덟 시가 되어서야 강유이는 드레스를 입을 수 있었다. 순백의 새하얀 드레스는 과한 보석과 레이스가 아닌 천연 실크 소재로 우아함을 극대화했다. 오프숄더 형 넥 라인으로 간단하지만 파격적인 미를 추가했고 소매는 칠부 정도 되었다.면사포 길이만 16피트 정도 되었는데 변두리가 레이스로 수놓아져 있었다.
그녀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그럼 나 결혼식 당일에 이 티아라 쓸래. 그러면 엄마의 디자인을 홍보해 줄 수도 있잖아.”한태군이 등 뒤에서 그녀를 껴안았다.“네가 원하는 대로 다 해도 돼.”…반씨 가문 사람들은 결혼식 이틀 전에 영국에 도착했다. 그들은 한태군이 안배한 호텔에 머물게 되었다. 황실에서는 호텔을 통으로 빌려 결혼식 때문에 일부러 해외에서 온 귀빈들을 위한 장소로 마련했다.구씨 집안사람들과 육씨 집안사람들도 왔고, 남강훈도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연예계에서 강유이와 친분을 유지했던 윤수아, 우영, 주계진, 임석진도 초대되었다. 조민과 소찬은 당연히 초청자 명단에 속해 있었다.강성연이 레스토랑에 들어서자 웨이터가 그녀를 룸으로 안내했다. 룸 안에 앉아있는 남자를 발견한 그녀가 활짝 웃으며 다가갔다.“삼촌.”헨리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 못 본 지 몇 년이나 되었지만 그는 아직도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 다만 예전보다 살이 많이 빠진 것 같았다.강성연이 다가가 그와 포옹했다.“오셨어요.”헨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예전에 내가 네 결혼식도 참석 못 하고, 또 네 두 아들의 결혼식도 참석 못 했었잖니. 아쉬웠는데 이번에는 마침 영국에 출장 올 일이 있어서 이렇게 너를 만나러 왔단다.”그녀가 시선을 내려뜨리며 말했다.“와주셔서 너무 감사드려요. 몸은 좀 어떠세요?”그가 미소 지었다.“많이 괜찮아졌다. 지윤이와 희승이가 돌봐주고 있어서 조금 더 버틸 수 있을 것 같아.”그때 지윤이 문을 열고 룸으로 들어왔다.강성연이 고개를 돌려 지윤을 확인했다. 처음에는 놀라던 그녀가 다음 순간 눈물을 글썽였다.“두 사람도 와줬네요.”지윤이 그녀한테 다가갔다.“유이가 영국에서 결혼식을 올린다는 소식을 듣고 저와 희승 씨도 아버지 따라왔어요. 희승 씨는 지금 반 회장님과 같이 있어요.”헨리가 경호원에게 선물을 갖고 오라고 지시한 후 강성연에게 선물을 건넸다.“리비어가 올 수 없어서 참 안타까워했단다. 이건 걔가 너
한태군의 말에 나머지 사람들도 함께 웃었다.어느덧 밤이 깊어졌다. 온 도시가 화려한 네온사인에 둘러싸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강유이와 한태군은 저녁을 먹은 후 진원으로 돌아갔다.이제 막 샤워를 마친 탓에 강유이의 머리카락은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그러자 한태군이 그녀의 손에서 타월을 가져가더니 대신 머리를 닦아주었다.그녀는 화장대 거울 앞에 앉아 거울 속 남자를 바라보고 미소를 지었다.“태군 오빠, 나 결혼식이 너무 기대가 돼.”“그래?”한태군이 부드러운 그녀의 머리카락을 가볍게 쓸어내리며 말했다.“나 역시 기대돼!”“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성스러운 결혼식장에 들어서다니!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인 것 같아.”그가 소리 내어 웃더니 허리를 숙이며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그거 알아? 난 한평생 내가 꿈꿨던 모든 소원들을 이미 다 이뤘어.”강유이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무슨 소원인데?”한태군이 여전히 그의 귓가에서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너를 아내로 맞이하고, 너와 결혼식장에 들어가고, 우리 두 사람의 아이까지 만나게 된 거.”그녀가 멈칫거렸다. 따듯한 조명 아래 그녀의 볼이 붉게 피어올랐다.“설마 처음부터 다 꿍꿍이가 있었던 거야?”그가 대답했다.“어쩌면 네가 내 눈앞에 나타난 순간부터 난 너를 아내로 맞이할 줄 알았던 것 같아.”강유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끌어안았다.“나도 이번 생에는 오빠가 아닌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될 거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한태군이 천천히 고개를 숙이며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그의 따듯한 마음이 뼛속까지 전해지는 것만 같았다.“정말 영광이야.”…이틀 후, 한태군과 강유이는 영국으로 돌아갔고, 황실은 결혼식 준비로 한창이었다. 화제의 결혼식이다 보니 모든 언론이 그들을 주목하고 있었다.패션 계와 주얼리 계의 최상급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작품들이 줄지어 강유이한테 전해졌다. 명품 맞춤 드레스와 결혼식 때 사용할 각종 보석들이 발 디딜 곳 없게 전시된 채 그녀가 고
그러자 민서율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여행 좀 다녀오니까 마음이 많이 차분해졌어요.”안예지가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 “네가 원하는 일이 다 잘 되길 바랄게.”그는 그저 미소만 지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눈 깜짝할 사이에 월말이 되었다. 강유이 일행들의 여행도 어느새 끝이 나고 서울로 돌아오게 되었다.강성연과 반지훈은 정원 밖에 나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곧이어 도착한 아이들이 차례대로 차에서 내렸다. 강유이가 두 사람을 향해 달려갔다.“아빠, 엄마!”그녀가 두 사람을 동시에 끌어안았다.반지훈이 못 말린다는 듯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이렇게 안겨?”강유이가 눈초리를 휘며 대답했다.“엄마 아빠한테 저는 영원한 어린애죠.”강성연이 미소를 지으며 이쪽으로 다가오는 나머지 아이들을 바라보았다.“재밌게 놀았으면 됐어. 이제 안으로 들어가야지. 오늘 저녁은 다 같이 모여 떠들썩하게 밥을 먹을 수 있겠구나.”진예은과 남우는 집안으로 들어간 후 곧바로 위층으로 올라가 아이들을 살폈다. 희망이는 두 남동생과 함께 있었다. 세 아이는 깊은 잠에 빠져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도 따뜻하게 느껴졌다.아래층에서는 반재신 반재언 형제가 외출을 하고, 한태군이 거실에서 반지훈가 바둑을 두고 있었다.“아버님 이번 판은 제게 양보해 주십시오!”반지훈이 흰색 바둑알을 들고 판을 들여다보다 결심한 듯이 바둑알을 내려놓았다.“쓸데없는 소리 하지말게.”한태군이 웃으며 말했다.“다음번에는 제가 양보해 드리겠습니다.”반지훈이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허튼수작 부리지 말거라. 난 네 양보 따위 필요 없다.”주방에서 과일을 깎고 있던 강성연이 거실에 있는 두 사람을 힐끗 바라본 후 다시 커피를 타고 있는 강유이를 바라보았다.“이제 곧 결혼식을 올리겠구나. 엄마가 너를 위해 서프라이즈 선물을 준비했어.”강유이가 멈칫거리더니 강성연을 돌아보았다.“어떤 서프라이즈 선물이요?”“아직은 안 가르쳐 줄 건데?”강유이가 조금
한태군이 두 사람을 보며 말했다.“두 사람을 여기에서 만날 줄은 몰랐네.”조민이 대답했다.“나랑 소찬 씨는 이곳에 온 지 좀 됐어. 유이가 인스타에 사진을 올려서 알았어. 너희들도 여기 왔다는걸.”강유이가 조민의 팔을 잡아당기며 자리에 앉혔다.“그럼 우리랑 며칠 더 같이 놀아요.”소찬까지 자리에 착석한 후 반재언은 그에게 진예은과 강유이를 소개했다.“여기는 우리 제수씨인 진예은씨고, 이쪽은 내 동생 유이야.”“형 결혼식 때 봤었어.”소찬은 당연히 기억하고 있었다.“형 동생이 내 와이프랑 같은 학교 출신이라면서? 와이프한테서 얘기 들었어.”조민이 그를 보며 말했다.“누구보고 와이프래요? 나중에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장담 못 하거든요?!”그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약혼까지 다 했는데 다른 남자한테 시집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두 사람의 티격태격한 모습에 다른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유독 강유이만 멍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지금 무슨 소리들 하는 거예요! 약혼이라니. 선배 약혼했어요?”조민이 작게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응, 너한테 말하는 걸 깜빡했어.”“너무해요. 어떻게 그렇게 중요한 일을 나한테 말하지 않을 수 있어요.”강유이가 입을 삐쭉 내밀었다. 그녀는 조민이 약혼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조민이 그녀의 손을 감싸며 말했다.“너한테 서프라이즈를 해주려고 그랬지.”그녀가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돌렸다.“저 이제 선배랑 안 놀거예요.”조민이 울지도 웃지도 못한 채 옆에 앉아있는 한태군을 힐끗 바라보며 말했다.“빨리 네 와이프 좀 달래 봐.”한태군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강유이도 그저 장난으로 그런 말을 했을 뿐이었다. 그녀는 조민의 약혼 소식을 듣고 진심으로 기뻤다.적어도 이제 그녀는 자기만의 행복을 찾았다.…..한편, 서울 병원.민서율은 복도에서 의사와 이야기를 나눈 후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 침대 머리에 기대앉아있는 어머니는 많이 초췌해진 상태였다.“어머니, 몸은 좀 어떠
투호 판을 벌인 사장이 말했다.“오천 원에 세 번 던질 수 있어요.”“그렇게나 비싸요? 오천 원에 세 번밖에 던지지 못하다니!”진예은은 어쩐지 손해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투호 판 사장이 고개를 들고 말했다.“저희가 여기서 제일 쌉니다. 다른 집에서는 만 원에 세 번 던지게 하는걸요.”강유이가 진예은을 잡아끌며 말했다.“오천 원에 하자. 사장님도 장사하는 게 어려우실 거 아니야. 우리 재미로 한 번 해보자.”결국 그녀는 사장에게 만 원을 건넸다.“기회는 총 여섯 번입니다.”사장이 화살 여섯 개를 그녀에게 건넸다. 가지런히 놓인 여러 개의 항아리 옆에는 명중했을 때 가질 수 있는 선물이 놓여있었다. 강유이는 그중 팔찌가 갖고 싶었다. 비록 가짜겠지만 디자인이 예뻤다.그녀가 고심 끝에 화살을 던졌다. 하지만 화살은 항아리를 빗나가고 말았다.그 뒤로 연속 두 번 더 던졌으나 모두 다 실패했다.이제 화살은 세 개 밖에 남지 않았다.강유이의 자신 없는 모습을 본 남우가 그녀의 손에서 화살을 가져가며 말했다.“내가 할게요.”그녀가 팔찌 옆에 놓인 항아리로 화살을 던졌고, 화살은 단번에 항아리 안으로 들어갔다.성공이다!흥분한 강유이가 폴짝폴짝 뛰며 말했다.“새언니 정말 대단해요!”“훗. 이 정도쯤이야.”남우가 눈을 찡긋해 보이며 물었다.“또 어떤 게 갖고 싶어요?”강유이가 진예은에게 물었다.“예은아, 어떤 게 마음에 들어?”진예은이 선물을 살피다가 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다.“저 머리핀이요. 저게 제일 예쁜 것 같애요.”남우가 다시 머리핀 옆에 있는 항아리를 향해 화살을 던졌다. 그리고 정말로 그 머리핀을 명중했다.강유이가 그녀의 손을 꼭 붙잡고 잔뜩 흥분하며 말했다.“진짜 백발백중이네요. 새언니, 이제는 새언니 마음에 드는 걸로 골라요.”남우가 턱을 쓰담으며 말했다.“그러면 저는…”그녀의 시선에 백옥 청자가 들어왔다.“저걸로 하죠.”그녀가 들고 있던 화살을 슝 던지자 쨍그랑하는 소리와 함께 항아리 안으로 빨려
늦은 밤의 산속은 무척이나 고요했다. 평안한 야영장에는 오직 풀벌레 소리만 잔잔하게 들려왔다.텐트 밖 잔디 위에는 랜트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빛을 밝히고 있었다. 평온하고도 아늑한 분위기였다.강유이는 몸을 뒤척거리며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때 한태군이 그녀의 허리를 감싸며 품에 안았다.“잠이 안 와?”“응.”그녀가 그의 품에 가만히 기댔다.“태군 오빠, 나 화장실 가고 싶은데 무서워서 못 가겠어.”한태군이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그럼 내가 같이 가줄게.”두 사람이 텐트 밖으로 나왔다. 한태군이 손전등을 들고 그녀와 함께 한참을 걸었다. 두 사람은 우거진 숲 앞에 도착했다. 강유이가 그를 돌아보며 말했다.“여기서 기다리고 있어.”한태군이 고개를 끄덕였다.“무슨 일 있으면 불러.”그녀는 숲 안으로 들어갔지만 무서워서 멀리 가지는 못했다.볼일을 본 후 강유이가 서둘러 달려와 그의 팔짱을 꼈다.“됐어.”한태군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텐트로 돌아가던 중 그녀가 고개를 들고 밤 하늘을 바라보며 손으로 가리켰다.“저게 북두칠성인가?”한태군도 고개를 들었다.“응, 맞아.”강유이가 배시시 웃었다.“역시 산속이니까 별이 엄청 잘 보이는 것 같아.”“두 사람 밤늦게 자지도 않고 별구경 하는 거예요?”남우가 텐트 안에서 나오며 묻자 강유이가 그녀를 바라보았다.“새언니도 아직 안 잤어요?”“네. 아까 귀신 이야기한 것 때문에 무서워 잠을 못 자겠잖아요…!”남우가 생수 한 병을 따서 마셨다.강유이와 한태군이 서로를 마주 보더니 웃음을 터뜨렸다.“새언니 설마 그런 이야기에 무서워해요?”남우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말했다.“여기는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산골짜기라고요! 보통 때와는 다르잖아요.”강유이가 포도 한 송이를 들며 말했다.“걱정 마요. 우리 큰오빠가 새언니를 지켜줄 거예요.”그녀는 그 말을 끝으로 한태군과 함께 텐트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고개를 돌린 남우는 그제야 두 사람이 들어가 버린 것을 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