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기!” 원유희는 계단 옆 가드레일을 가리키며 말했다. “아이를 데리고 거기에 서 있었어. 네가 귀가하는 걸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아. 그리고……그리고 너의 차가 바로 저기에 있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네가 차에서 내렸어. 그 후에…… 네가 유담을 안았고……, 그 뒤로는 기억이 잘 안 나네. 내 기억이 맞아?” 김신걸의 얼굴은 생각보다 차가워 보이지 않았다. “맞아.” “곧 모든 기억이 돌아올 것 같아.” 말을 마친 원유희는 부끄러운 표정으로 신걸의 얇은 입술에 살포시 입맞춤했다. 심장이 하늘에서 땅까지 아찔한 진자운동을 하였다. 신걸은 멍해졌다. 정신을 차렸을 때 유희는 이미 곁에 없었다. 김신걸의 눈을 보고 있으면 그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아차리기 어려웠다. 이윽고 신걸은 송욱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은 송욱은 유희의 병세를 이렇게 판단했다. “기억이 점점 회복되고 있네요.” 이 말을 들은 신걸은 한층 더 음산해진 기운을 내뿜었다. 김신걸은 유희가 회복되기를 원치 않는다! 송욱은 전화 너머 김신걸의 저조한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지금 원유희 씨는 김신걸 씨의 부인이에요. 그녀가 더 이상 도망갈 이유가 없습니다. 어디 가든 원유희 씨는 김신걸씨의 부인이라는 신분을 벗어날 수 없고, 그렇다면 결국엔 이 현실을 받아들여야 할 겁니다.” 김신걸은 예전에 유희가 자신과 윤설을 헤어지게 하려고 귀찮게 굴었던 과거를 잠시 회상했다. 그땐 대응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기에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의 일은 그가 결정해야 할 일이지 유희가 결정할 일이 아니었기에. 그런데 만약 원유희가 원하는 일이라면, 그녀가 거절할 이유가 있겠는가? 저녁식사 후, 김신걸은 원유희를 데리고 산책에 나섰다. 물론 산책이라 하였지만 주요 목적은 병원에 가서 그녀의 뇌 상태를 재검사하는 것이었다. 송욱은 김신걸에게 벽에 붙은 X-ray 사진을 보여주며 말했다. “회복이 잘 되고 있네요. 아무런 문제도 없습니다.” “그럼 머리카락은 언
원유희는 어린아이들이 작은 손가락을 조몰락거리면서 가격을 계산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한잔에 2천원이니까 두 잔에 4천원……그럼 다섯 잔에 만원!”조한이가 생각해 냈다. 그러자 유담이는 깜찍한 가방에서 돈을 찾기 시작했다. 도전하고 싶은지 만 원짜리 한장을 건네지 않고 천 원짜리 지폐를 한장 한장 세어 사장에게 주었다.사장이 돈을 받고 세어 보니 마침 만원이었고 속으로 어린아이들이 어떻게 이 정도로 똑똑할 수 있지라며 감탄했다.하지만 그는 감히 돈을 받지 못했다. 보호자도 없이 물건을 사러 온 두 살짜리 아이의 돈을 받을 수 있는 이는 없었다. ‘얘네 부모가 내가 사기 친 줄 알고 따지면 어떡해.’“저기……너희 부모님은? 어른이 옆에 안 계시면 아저씨는 이 돈을 받기 곤란한데.”“돈이 부족한가요?”조한이가 물었다.“내가 똑똑히 셌다고, 딱 만원이야!”유담이는 기분이 좋지 않았다.‘어떻게 내 계산 능력을 의심할 수 있어?’“아니아니, 그게 아니라, 부모님이 계셔야 결제를 할 수가 있어.”“왜요? 돈만 있으면 되는 거잖아요!’상우는 이 말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전에도 스스로 돈을 내고 사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원유희를 위해 디저트까지 사준 적도 있었기에 이런 상황이 납득가지 않았다.이때 원유희가 나서서 해결해 주었다.“제가 아이들 엄맙니다, 계산해 주시죠.”사장은 남자 한 명이랑 여자 한명이 걸어오는 것을 보았다. 남자는 포스가 남달랐는데 강한 카리스마를 뿜으며 다가왔고 숨 막히는 압박감을 주었다. 그 옆에 선 여자는 아름다운 외모에 무시할 수 없는 귀티가 났다. 조금 전 가방에 큰돈을 넣고 다니고 아무렇지도 않게 꺼내는 아이들을 생각하니 사장은 이들이 일반인이 아님을 눈치챘다. 바로 돈을 받고 아이에게 주스 다섯 잔을 주었다.“엄마, 이거요!”유담이는 원유희에게 주스 한 잔을 건네주었다.“날 주는 거야?”원유희는 그제야 그들이 왜 다섯 잔인지 알게 되었다. 아이들은 저마다 한 잔씩 가졌고 원유희랑 김신걸에게도 한잔씩
아빠로 추정되는 사람은 다가가기 어렵게 생겼고 카리스마가 너무 강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압박감을 느끼게 하였다. 하지만 옆에 있는 늘씬한 여자는 부드럽고 약해 보였는데 완전히 다른 느낌을 주었다.“정말 한 집 식구 맞아?”“당연하지! 저 집 아들 얼굴 봐봐, 아빠랑 똑같잖아, 그리고 여자아이는 엄마를 쏙 빼닮았고. 한눈에 딱 알리잖아.”“세상에, 어떻게 저 정도로 자기를 쏙 빼닮은 아이를 낳을 수 있지? 부럽다 정말…….”젊은 여자 몇 명이 옆에 있었는데 큰 소리로 얘기하진 못하고 소곤소곤 얘기를 했다. 그녀들 뿐만 아니라 김신걸 일가가 들어서자 시끌벅적했던 곳이 많이 조용해졌다. 다들 김신걸의 포스를 보고 저도 모르게 겁을 먹어 소리를 낮췄던 것이다. 심지어 어떤 이들은 디저트를 사자마자 바로 허겁지겁 도망쳐 나왔다. 그나마 겁이 없는 사람은 자리에 앉아 몰래 그들을 쳐다보았다. 무시하기엔 김신걸 일가의 비주얼이 너무나도 훌륭했다.아이들과 함께 디저트를 주문하고 자리에 앉은 원유희는 사람들의 시선이 아직도 자신한테 있는 것을 느꼈다.‘예전에도 이렇게 관심을 받았을까?’김신걸은 직원에게 손짓을 하자 직원이 다가와 허리를 굽혔다.“무엇을 도와드릴까요?”“다 내보내.”김신걸은 손가락 사이에 카드 한 장을 끼어 있는 채로 말했다. 그 모습을 보자 조한이도 손가락으로 포크를 쥐고 말했다.“다 내보내요.”어린 조한이의 입가에 크림이 묻어있었지만 그래도 패기 있어 보였다. 직원은 감히 거절하지 못하고 얼른 카드를 받아 사장을 찾아갔다.“다 내보려고?”원유희는 목소리를 낮추어 물었다.“시끄러워.”김신걸이 말했다.3분도 안 되어 가게의 가게는 비워졌고, 김신걸 일가는 조용히 그곳에 앉아 디저트를 맛보았다.“드디어 조용해졌네.”원유희도 같은 생각이었지만 조금 부끄러웠다.“엄마, 이거 엄청 맛있어요.!”상우는 숟가락으로 원유희에게 망고를 떠먹여 주려 했다.“엄마도 있으니까 이건 상우가 먹어.”상우는 하나 밖에 남지 않은 망고를 보고
“그럼 우리 먼저 옷 사러 갔다가 게임 하는 게 어때?”"좋아요!" 원유희의 말을 듣자 세쌍둥이는 엄청나게 기뻐했다.“걔네들 하고 싶은 대로 안 해도 돼, 어차피 알아서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놀 거야.”김신걸이 말했다.“달라.”원유희가 말했다.“그니깐요, 달라요!”“엄마 아빠랑 같이 놀고 싶어요!”디저트 가게에서 20분 쉬고 그들은 옷 가게로 갔다. 사치품 매장에서 유담, 조한 그리고 상우에게 옷을 사주었다.원유희는 딱히 사고 싶은 게 없었다. 어차피 집 스위트룸에 있는 옷을 다 입지도 못할 판에 새 옷이 끌릴 리가 없었다.그리곤 게임을 하는 데로 갔다. 완전 3D의 세계가 따로 없었다. 아이들이 좋아할법 했다.유담이는 오빠들을 따라 달아 다녔다. 그러자 조금 걱정이 된 원유희가 입을 열었다.“조한아…….”"괜찮아." 김신걸이 말했다.원유희는 경호원이 따라가는 것을 보고 쫓아가지 않았다.“코인 사러 갈 테니까 여기서 기다려.”“알았어.”원유희는 옆에 서서 기다리며 카운터 앞에서 코인을 사는 김신걸을 지켜봤다. 사람이 적지 않았기에 그는 조용히 줄을 서서 기다렸다.“이쁜이, 여기서 뭐 해? 우리랑 같이 춤이라도 출래?”원유희는 옆에서 누가 대화하고 있는 줄 알고 그 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자기한테로 너무 가까이 다가온 남자 때문에 황급히 뒷걸음을 쳤다. 그리곤 느끼하게 말하는 남자를 보며 확신할 수 없다는 듯이 물었다.“저랑……얘기하는 거예요?”“당연하지, 여기 이쁜이가 너 빼고 또 누가 있어, 어때?”그 남자는 원유희의 미모에 한방에 뻑 갔다. 별로 꾸미지 않았는데 이 정도로 예쁘다니, 그 남자는 참지 못하고 원유희랑 뭐라도 하고 싶었다.“죄송해요, 저 지금 사람 기다리는 중이어서요…….”원유희는 거절했다.“나 기다리고 있었어? 가자, 우리 저기 가서…….”남자의 더러운 손이 원유희 손을 잡으려고 했지만 닿기도 전에 갑자기 누군가에게 손목이 잡혔고 너무 아픈 나머지 남자는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아아, 아파! 놔
그들은 여기저기를 다 찾아봤다.“엄마? 엄마 어디 갔지?”이 모습을 보자 경호원이 얘기했다.“선생님이랑 사모님 다른 곳에 가셨어요.”“내가 이럴 줄 알았어, 흥!”조한이는화가 나서 발을 동동 굴렀다.차 안에 있는 원유희는 차창 밖에 지나가는 아름다운 길거리 풍경을 보면서 물었다.“어디 가는데? 아이들을 저기에 두고 나와도 괜찮겠어?”원유희의 말투에서 그녀의 기분을 알기 힘들었다.“경호원들이 있잖아.”김신걸은 어디로 가는지 말하지 않았다.10여 분 후에 차가 멈췄다.원유희는 차에서 내려 고개를 들면 시계 매점이 보였다. 그녀는 이게 무슨 브랜드인지 기억이 나지 않았지만 력셔리 브랜드라는 것은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었다.매점에 들어가자마자 인테리어가 눈부셨고 철철 나는 귀티를 느낄 수 있었다.그들을 맞이한 사람은 사장인 것 같았는데 웬만한 력셔리 매점 사장들은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그들도 어느 정도 빽이 있는 사람이었지만 제성의 왕 김신걸이 온 것을 보자 허리를 푹 숙였다.VIP룸에 들어가니 차와 과자가 이미 준비되었다. 긴 모양 테이블에는 홍보용 전단지와 VIP 고객 무료 서비스가 쓰여 있었다. 자세히 보니 헤어 서비스도 공짜로 제공되고 있었다.“선생님, 음료수는 무엇으로 준비해 드릴까요? 다 외국산 비싼 원두만 사용하고 있기에 커피 맛이 일품이에요.”사장의 말을 듣자 원유희는 무의식적으로 말했다.“저 사람 커피 못 마셔요.”김신걸은 원유희의 얼굴을 멍하니 쳐다보았다.“그럼……보이차는 어때요?”사장이 또 추천했다.“그걸로 주세요.”김신걸은 매점 사장이랑 얘기하고 있었지만 시선은 원유희 얼굴에서 옮겨지지 않았다.원유희는 그가 왜 자신을 뚫어지게 쳐다보는지 짐작이 가지 않았고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다른 사람들이 다 보고 있는데…….’원유희는 테이블 아래서 김신걸의 옷깃을 잡고 그를 말리려고 했지만 단번에 그의 손가락을 잡았다. 당황해서 그의 손가락을 놓아주려던 순간 김신걸이 그녀의 손을 냉큼 잡았다.원유희는
원유희는 자신과 김신걸이 결혼했다면 결혼반지를 끼는 것은 별로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했다.“응.”김신걸은 짧게 대답했다.“네 것은?”원유희는 김신걸의 손가락에 반지가 있는 것을 보지 못했다. 그러자 김신걸은 남자 반지를 그녀에게 주었다."끼워 줘."원유희는 반지를 들고 김신걸의 약지에 끼웠다. 시계와 같이 반지도 커플 반지였다. 원유희는 생각하더니 김신걸이랑 물었다.“시계도 지금 바로 바꿀 거야?”김신걸은 자기 손목에 찬 손목시계를 풀고 손목을 그녀 앞에 밀었다. 원유희는 남자 시계를 들고 김신걸을 위해 바꿔줬다.김신걸은 왼손으로 원유희의 오른손을 꼭 잡았는데 눈빛은 계속 원유희를 응시했다. 그러자 원유희는 얼굴이 붉어졌고 시선을 아래로 향해 김신걸과 잡고 있는 손을 바라보았다.김신걸의 커다란 손에 잡힌 자기의 작은 손을 보니 영원히 벗어날 수 없는 착각이 들었다. 하지만 원유희는 이런 착각이 싫지 않았고 오히려 달콤했다.그러다가 김신걸이 다가오는 것을 느끼고 원유희는 숨을 죽였다. 김신걸의 얇은 입술이 원유희의 작은 입술을 눌렀는데 그녀를 삼키는 듯 키스를 했다.견딜 수 없는 원유희는 두 손으로 그의 검은 셔츠를 잡고 머릿속이 비어 사고 능력을 잃었다.김신걸이 원유희를 풀어주자 그녀는 힘이 빠져 김신걸의 든든한 품에 기댔다. 힘찬 심장박동 소리는 원유희의 고막을 자극했고 그녀는 그 소리를 들으며 침착함을 잃었다.그러다가 머리가 좀 맑아진 후에 원유희는 김신걸이랑 물었다.“평생 날 안 버릴 거지?”“당연하지.”김신걸은 쉰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 말에 그는 조금의 거짓도 섞이지 않았다. 애초부터 김신걸은 원유희를 놓아줄 생각을 하지 않았고 곁에 꽁꽁 묶여 두려고 했다.원유희는 손을 뻗어 그의 목을 껴안고 얼굴을 그의 가슴에 묻었다.“날 속이지 마.”“그래.”원유희는 말을 마치고 스스로 웃었다.“왜?”김신걸은 그녀의 얼굴을 보려고 했다. 그러자 원유희는 원유희는 오히려 얼굴을 더 깊이 묻었다.“싫어, 보지 마!…….”“
원유희는 다음날 김신걸의 차를 타고 회사로 갔다. 직접 그녀를 사무실로 데려다주고서야 김신걸은 떠났다.원유희는 이전에 회사에서 한 일을 모두 기억하지 못했다. 오비서가 그녀에게 예전에 이 부장을 처리한 일을 포함해서 다 알려주었다. 당시 기사도 들춰내서 보여주기도 했다.원유희는 이전의 자신이 아직 능력이 좀 있다고 생각했는데 만약 그렇다면 더욱 열심히 배워야 한다고 느꼈다.오전 내내 회사의 운영, 방안, 특히 최근 로얄그룹과 합작한 사항을 알아보고 봤다. 고선덕과 오서진은 원유희를 보자마자 그녀의 손에 있는 액세서리에 주의를 돌렸다.굳이 말하지 않아도 어떻게 된 일인지 알 수 있었다.김신걸 부인은 이렇게 정해진 거나 다름없었다.고선덕은 펜을 들고 이마를 긁적긁적했다.‘아가씨가 아픈 틈을 타서 이래도 되는 걸까?’“제가 해낸 거라고요?”원유희는 날짜를 보고 이 자리에 있던 오서진과 고선덕에게 물었다.오서진은 어리둥절하다는 듯이 말했다."로얄그룹의 후계자는 사장님의 친삼촌이에요.”“삼촌?”원유희는 눈살을 찌푸렸다."김신걸은 나에게 말한 적이 없는데…….”‘가짜 언니가 나타나더니 이젠 삼촌까지. 그나저나 삼촌이라면 우리 아빠 동생인가?’“아마 선생님도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 같아요. 로얄그룹 쪽이랑 안 지 얼마 되지 않았어요.”“얼마 되지 않았다고요?”“그건 사장님 아버님이랑 관계가 있는데 아버님이 일찍 집안과 연을 끊었어요. 그러다가 두 달 전에 교통사고 나셨는데 로얄그룹 후계자 육성현 씨가 갑자기 나타나는 바람에 이런 관계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삼촌만 생긴 게 아니라 할아버지도 생겼어요. 별로 각별한 사이는 아니었기에 선생님이 언급하시지 않은 것 같아요. 이번 협력도 그냥 지난 일에 대한 보상과도 같으니까 그쪽 사람들은 그저 비즈니스 파트너로 생각하시면 돼요.”고선덕이 얘기했다.“그렇군요.”원유희는 생각에 잠겼다.‘그럼 일단 삼촌은 확실하다는 거네.’“그나저나 왜 연을 끊었대요? 무슨 일이 생겼어요? 저 예전에 알
시선을 위로 돌려 흰 손가락에 끼워진 반지를 보았다. 더더욱 원유희 스타일이 아니었다.원유희는 줄곤 깔끔하고 미니멀한 스타일을 좋아해서 액세서리를 많이 사용하지 않았다. 심지어 반지를 약지에 꼈는데 뭘 의미하는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놔요!”원유희는 힘껏 뿌리쳤다.“누구시죠? 왜 제 사무실에 함부로 들어오는 거죠?”김명화는 낯선 사람을 경계하는 듯한 원유희의 눈빛을 보고 눈썹을 찌푸렸다.“날 몰라?”원유희는 순간 멍해졌고 곧 아는 사람이라는 것을 눈치챘다. 아니면 이렇게 함부로 사무실에 들어오지 않았을 것이다.“교통사고가 나서 기억을 잃었어요. 혹시 제……친구인가요?”원유희는 떠보며 물었다.‘근데 무슨 친구가 이렇게 매너가 없어?’김명화는 원유희가 기억을 잃을거라도 예상하지 못했다. 아마도 머리를 다쳐서 그런가 싶었다.김명화가 원유희 앞으로 걸어가자 원유희는 한 걸음 뒤로 물러서서 사무실 문을 바라보았다. 사람을 부를까 말까 고민하는 것 같았다.“손으로 계속 가리는 게 힘들지도 않아? 내가 보면 뭐 어떻다고.”김명화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얘기했다.아니나 다를까 팔을 계속 들고 있어서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원유희는 잠깐 고민하더니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것 같아 손을 내렸다. 어차피 흉터도 다 본 마당에 이렇게 가리는 건 의미가 없었다.김명화는 그 흉터를 보자 가슴이 아파 났다.“아직도 아파?”원유희는 고개를 저으며 생각했다.‘아직 누군지 안 알려줬잖아?’“김신걸이 네가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틈을 타서 이렇게 너를 속였어?”김명화가 물었다.“시계 팔찌, 걔 예전에 널 위해 돈 한 푼도 안 썼는데 웬일로 이런대? 반지는 또 무슨 상황이야? 걔 너랑 뭐라고 얘기했어?”“그쪽이랑 무슨 상관이에요? 난 그쪽이 누군지도 모른다고요.”“김명화야, 김신걸 사촌 동생. 어릴 때 네가 김신걸 집에 있을 때 걔 괴롭힘을 받았는데 내가 널 도와줬어. 작은오빠라고 부르면 돼.”원유희는 순간 멍해졌다.‘그러니까 친구가 아니고 오빠라고
육성현은 흠칫 놀랐다. 그러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내가 누구를 죽였다고 그래? 혜정아, 다 오해야. 나 지금 다 고쳤어. 진짜야, 어서 내려와. 물만두가 식겠다.”“오지 마!”엄혜정은 감정이 격해져서 소리쳤다.“다가오면 뛰어내릴 거라고 얘기했어!”“그래, 안 갈게.”육성현은 감히 다가가지 못했다.“혜정아, 진짜야. 난 사람을 죽이지 않았어. 우선 먼저 내려와. 내려오면 내가 다 설명해 줄게. 다 오해야.”“사실 처음부터 수상하다고 생각했어. 그냥 유희의 말이 날 깨닫게 했을 뿐이야.”엄혜정은 눈물이 그렁그렁했지만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다. 그녀는 육성현을 바라보면서 얘기했다.“근데 나 지금 다 알게 됐어. 증거는 없지만 넌 김하준이잖아. 난 적어도 아이를 위해서 네가 달라질 거라 기대했어. 근데, 넌 어떻게 네 아이의 외할머니랑 외할아버지를 죽일 수 있어? 김하준, 넌 도대체 정체가 뭐야? 세상에 어떻게 너 같은 괴물이 다 존재해?”“혜정아, 내려와서 천천히 얘기하자, 응? 거긴 너무 위험해.”“제일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이 죽은 기분을 모르지? 너도 한번 느껴봐야 해.”엄혜정은 떨어지는 눈물과 함께 베란다에서 뛰어내렸다.“안돼!”육성현은 고함을 지르며 달려갔다. 하지만 엄혜정의 옷자락도 미처 잡지 못했다.그는 엄혜정이 바닥에 떨어지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고, 그녀의 몸에서 피가 흘러나오는 것을 목격하게 되었다.밑에 서 있던 하인 중 그 누구도 엄혜정을 받아내지 못했다.“다 죽일 거야!”육성현은 미친 듯이 달려갔고, 눈에 거슬리는 하인들을 모조리 걷어차 버렸다. 그는 엄혜정 옆으로 기어가 부드럽게 그녀를 품에 안았다.“혜정아, 혜정아. 병원에 데려다줄게. 아무 일도 없을 거야!”엄혜정은 눈을 떴다. 그녀의 머리는 피투성이가 되었고, 초점이 점차 사라지는 눈으로 육성현을 바라보았다.“김하준, 다음 생이 있다면, 난 다시는 널 만나지 않을 거야…….”이렇게 한마디만 남기고 엄혜정은 숨을 끊게 되었다.“그래, 만나지 마,
퇴원한 후, 엄혜정은 방에 혼자 남았을 때 원유희에게 연락했다.“유희야, 괜찮아? 김명화가 널 납치했다고 들었는데, 구출됐다고?”“응, 괜찮아. 지금은 집에 도착했어.”“다행이다.”원유희는 그녀의 정서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채고 물었다.“왜 그래? 기분이 안 좋아?”“부모님이 돌아가신 일 말이야. 나 다 알게 됐어.”원유희는 순간 멈칫했다.‘다 알았다고?’“미안해 혜정아, 숨기는 게 아니었는데.”“괜찮아, 나랑 아이를 생각해서 숨긴 거잖아.”엄혜정은 잠시 멈췄다가 다시 물었다.“네가 김명화를 죽였어?”“아니. 그날에 크루즈에서 김명화가 도망쳤거든. 우리가 김명화를 찾았을 땐 이미 주검으로 됐어. 그 주검도 바다에서 건져낸 거야.”“육성현도 있었지?”“응, 얘기해줬어?”엄혜정은 덤덤하게 물었다.“육성현을 의심해 보지 않았어?”원유희는 흠칫했고 아무런 얘기도 할 수가 없었다.“김명화를 죽인 사람, 그리고 우리 부모님을 죽인 사람 말이야…….”“그럴 리가?”원유희는 당황했다. 그녀는 엄혜정이 왜 육성현을 의심하게 됐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무슨 단서라도 발견한 거야? 아니면 그렇게 복잡하게 생각하지 마.”“유희야, 저 사람 진짜 육성현이 아니잖아. 김하준이라고. 나 그 사람 잘 알아.”엄혜정은 목이 메였지만 울먹이면서 끝까지 말했다.“난 그 사람 고칠 줄 알았어, 적어도 아이를 위해서…….”“혜정아, 아직 조사하고 있어.”“그럼 너희들도 육성현을 의심하고 있다는 얘기잖아, 맞지?”“오해일 수도 있어.”“오해일 리가 없어.”엄혜정은 말을 마치고 바로 전화를 끊었다. 원유희가 다시 전화를 걸어오자 그녀는 아예 핸드폰을 꺼버렸다.그리고 시체처럼 무기력하게 아래층으로 내려갔다.엄혜정은 서재에서 나온 육성현을 보면서 얘기했다.“나 물만두 먹고 싶은데, 사다 줄래? 예전에 빈민가에서 자주 사주던 물만두 말이야.”“그래.”육성현은 엄혜정의 머리를 어루만지며 말했다.“먼저 우유 좀 마시고 있어. 금방 갔다 올게.”
육성현은 엄혜정을 끌어안았다.“김명화가 죽었대. 복수한 셈이나 마찬가지야. 그러니까 네가 무사히 지내야 장인어른 장모님이 안심하시지 않겠어? 침착해.”엄혜정은 울면서 그의 품에 쓰러졌다.그러고는 배가 간간이 쑤시자, 엄혜정의 얼굴은 하얗게 질렀다.육성현은 그녀의 상황을 바로 눈치채고 기사에게 소리쳤다.“얼른 병원으로 가!”“얼른!”염민우도 재촉했다. 그는 얼른 엄혜정의 손을 잡았는데, 그녀의 손이 얼음처럼 차갑다는 것을 발견했다.“누나, 아직 나도 있잖아. 그러니까 아무 일도 생기면 안 돼. 누나, 꼭 버텨줘.”엄혜정은 눈에 눈물을 머금고 그를 보고 있었다.그녀는 마음이 몹시 괴로웠고,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었다.‘난 부모님을 가질 자격이 없는 걸까……?’엄혜정이 깨어났을 때 그녀는 이미 병원에 있었다. 깨어나자마자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배를 만졌다.육성현은 그녀의 손을 잡았다.“지금 안정을 취해야 한대.”엄혜정은 주위를 둘러보았다.“민우는?”“밖에 있어. 너무 걱정되서 안절부절못하고 있어.”엄혜정은 육성현의 손에서 자기 손을 뺐다.“두 사람 너무해. 이렇게 큰일을 어떻게 나한테 숨길 수가 있어? 평생 숨길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 육성현, 우리 부모님의 목소리를 합성해서 나랑 통화하게 했어? 네 아이디어지? 넌 아이를 위해서라면 뭐든지 다 할 수 있잖아!”“혜정아, 어차피 일은 벌어졌고, 너한테 알려준다고 해서 달라질 건 없어. 네 옆에는 나랑 아이가 있고, 민우에게 남은 가족이라곤 너밖에 없어. 너한테도 무슨 일이 생기면, 민우는 더 고통스러워질 거야.”엄혜정은 말을 하지 않았고, 눈물이 그렁그렁했다.엄혜정도 염민우가 더 고통스러워질 것을 잘 알고 있었다.그때 엄혜정은 염민우가 갑자기 엄청나게 말라갔던 것이 생각이났다. 엄혜정은 염민우의 일이 바쁜 줄로만 생각했는데, 이제야 그때 부모님이 돌아가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염민우는 모든 것을 혼자 감당하고 있었다.“울지 마. 의사가 지금은 안정을 찾아야 한다고 했어.”
“알았어요…….”염민우는 고개를 들었다. 그러다가 입구에 서 있는 엄혜정을 보고 깜짝 놀랐다.“누…… 누나. 여긴 어쩐 일이야?”엄혜정은 멍하니 거기에 서서 염민우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방금 얘기하고 있던 사람을 봤다.“하늘나라라뇨? 저희 부모님이 왜 하늘나라에 계셔요?”“아니야, 다른 사람의 얘기를 하고 있었어.”엄혜정은 두 사람의 얼굴에서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것을 발견했다.그녀는 똑똑히 들었다. 엄혜정은 얼굴이 하얗게 질렸고, 다급하게 핸드폰을 찾았다.핸드폰을 못 찾자 바로 차로 뛰어갔다.“누나!”염민우는 엄혜정을 쫓아갔다.“뭐 하려고 그래?”“엄마 아빠한테 전화할 거야.”“지금 여행 중이시니까, 방해하지 않는 게 좋지 않을까?”엄혜정은 그를 보면서 물었다.“사실대로 얘기해줘. 엄마 아빠 왜 아직도 돌아오시지 않은 거야? 거짓말하지 마! 사실 줄곧 이상하다고 생각했어. 내가 임신했는데 엄마랑 아빠가 계속 안 오시는 게 말이 안 되잖아! 두 분 무슨 일이 생긴 거 맞지? 정말로…… 무슨 일이 생긴 거야?”염민우는 북받쳐 오르는 감정을 꾹 참고 말했다.“더 이상 묻지 마…….”“염민우! 계속 우물쭈물 얘기 안 하면, 나 이젠 널 안 봐!”염민우는 더 이상 숨길 수 없다는 것을 직감했다. ‘집에 오는 게 아니었어, 그나저나 아저씨는 왜 또 그런 허튼소리를 해서 참…….’“맞아, 누나 임신 3개월쯤 되었을 때, 누군가에 의해 살해당하셨어.”엄혜정은 몸이 휘청거렸다. 염민우는 바로 그녀를 부축했다.“침착해요! 엄마랑 아빠는 누나가 무사하기를 원하셨을 거야. 난 누나가 못 받아들일 것 같아서 장례식 때 일부러 알려주지 않았어.”엄혜정의 눈에서 눈물이 주룩주룩 흘러내렸다. 그녀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염민우를 바라보았다.“너 이러고도 내 친동생이 맞아? 어떻게 안 알려줄 수가 있어! 아기만 중요하고 부모님은 안 중요할 것 같아? 너…….”너무 충격 받은 엄혜정은 눈앞이 점점 캄캄해지더니 기절을 하고 말았다.“누나!”
육성현이 다가와 물었다.“유희야, 괜찮아?”원유희는 고개를 저었다.“너 안색이 안 좋은데, 왜 그래?”“김명화가 죽었어요.”김신걸이 얘기했다.“해독제는 찾았어요?”원유희는 다시 고개를 저었다.“아쉽네. 그럼 감염된 사람들은 우선 좀 참아야겠어.”원유희는 갑자기 뭐가 생각나 바로 김신걸을 밀쳤다.“날 만지지 마!”육성현은 그제야 원유희의 볼 아래의 병변 부위를 발견했다.“유희야, 김명화가 너한테도 독을 썼어?”김신걸은 미간을 찌푸렸다.“상관없어.”“안돼. 우리 둘다 아이들하고 접촉하지 않으려 한다면 애들이 걱정할 거야.”원유희는 거절했다.김신걸은 줄곧 원유희와 스킨쉽이 있었다. 원유희는 그도 감염되지 않을까 걱정했다.“방금도 널 안았는데, 감염되면 진작에 감염됐어.”김신걸이 말했다.원유희는 그래도 싫었다.“아니, 그래도 만지지 마.”해독제도 못 가진 상황에 김명화는 의문스럽게 죽었다. ‘여기 김명화를 죽이려고 한 사람이 있었단 말이지?’김신걸은 김명화를 죽이라는 명령을 내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의 시체를 바다에 던질 일은 더더욱 없었다.그럼 분명 다른 사람이 한 짓이었다.‘무슨 목적으로? 김신걸도 감염되면 배후의 사람을 어떻게 잡아내지?’‘다른 조직의 사람도 이곳에 숨어 있을지도 몰라.’원유희는 말을 하지 않았다.“내려가자.”김신걸은 원유희의 말대로 몸에 손을 대지 않았다. 원유희가 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자신을 떠날까 봐서 걱정이었다. 김신걸은 더 이상 그런 고통을 견딜 수 없었다.원유희는 김신걸을 따라 떠났다.육성현은 먼 곳에 있는 김명화의 시체를 봤다. 그리고 그가 죽은 것을 확인하고 떠났다.이제 아무도 김명화를 죽인 사람이 육성현이라는 것을 모를 것이다.엄혜정은 이미 임신 5개월 차에 접어들었다. 지금 어떠한 사고도 있어서는 안 되었다.육성현은 잠깐 해독제가 없더라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아이를 낳은 후 다시 생각하려 했다.엄혜정은 소파에 앉아 과일을 먹고 있었다.배는 이미 많이 나
김명화의 말이 끝나자마자 뒤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진선우는 킬러들과 격투하고 있었고, 매번 그들의 치명적인 곳을 공격했다.진선우가 실력이 없었다면, 킬러들은 진작에 그를 해결했을 것이다.김명화는 무엇을 깨닫고 손을 돌려 원유희를 잡으려 했다.원유희는 후퇴하는 동시에 다른 힘에 의해 품에 안겼다.“이거 놔!”원유희는 낯선 남자인 줄 알고 발버둥 치려 했다.“유희야.”원유희는 멍하니 고개를 돌렸고, 익숙한 얼굴을 보자 아주 기뻤다.“김신걸?”“나야.”김명화는 서로 애틋한 두 사람을 보자 화가 더 났다.“원유희, 역시 김신걸에게 단서를 남긴 사람, 너였어.”김명화는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그쪽이 너무 방심한 탓이죠.”‘내가 예전에 김신걸의 곁에서 도망치려고 했던 일이 김명화에게 착각을 준 거야?’“왜, 날 죽이려고? 네까짓 게?”김명화는 말을 마치고 몸을 돌려 다른 출구로 달려갔다.하지만 경호원들은 이미 그곳에 서서 그를 막았다.김명화는 총을 꺼내 쏘자, 한 경호원은 바닥에 쓰러졌고, 다른 경호원은 얼른 옆으로 비켜 숨었다.일반인들은 그 출구를 포기했을 것이다. 김신걸의 사람들이 숨어있었기에, 그 출구는 아주 위험했다.하지만 김명화는 기어코 사격을 하면서 길을 텄다.안에 숨어 있던 경호원들은 피하면서 반격할 수밖에 없었다.경호원들의 반격에 김명화는 하마터면 맞을 뻔했다. 그러다가 몇발 더 쏘고는 바로 달렸다.김명화는 크루즈에 오래 있었다. 하여 갓 크루즈에 올라온 김신걸의 사람들보다 이곳을 훨씬 더 잘 알았다.몇 개의 모퉁이를 돌면 은폐하기 적합한 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김명화는 다시 부하들에게 연락했지만 전화를 받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그제야 김명화는 김신걸의 사람들이 진작에 올라왔고, 자기 쪽 부하들은 아마 얼마 남지 않은 것을 깨닫게 되었다.도망치지 못한다면 김신걸에게 잡힐 것이 뻔했다.김명화는 죽어도 김신걸에게 잡히고 싶지 않았다.그러다가 갑자기 한 사람의 인기척이 났다. 김명화는 본능적으로 총을 들었다
원유희는 지금 약 때문에 힘을 쓸 수 없는 상황이었고, 크루즈 곳곳에는 CCTV가 있었다. 방에 들어올 때, 그 윗부분에 CCTV가 하나 있었다. 그래서 한밤중에 몰래 뭔가를 찾아보는 건 아예 불가능했다.김명화는 일찌감치 그녀가 아무것도 할 수 없도록 만들었다. 하지만 원유희는 떠나기 전에 김신걸에게 단서를 남겨주었기에 그가 곧 이곳을 찾아올 거라 믿었다.다만 김신걸의 속도가 이렇게 빠를 거라 예상하지 못했다.날이 밝는 무렵, 원유희는 헬리콥터 소리를 들었다.이어 문이 펑 하고 열렸고, 원유희는 반응하기도 전에 멱살이 잡혔다.“연락을 어떻게 한 거야?”말을 마치고 원유희의 몸을 수색하려 했다.“아! 미쳤어요? 나 핸드폰 없어요!”“김신걸이 왔다고 널 데려갈 수 있다고 생각해? 죽어서 지옥에 내려가더라도 널 끌고 갈 거야. 가자!”“아니…….”원유희는 힘 없이 밖으로 끌려 나갔다.김명화는 원유희를 다른 방으로 보냈다.“우린 여기서 김신걸이 올 때까지 기다리면 돼.”원유희는 고개를 들어봤다. 입구에는 많은 폭탄이 놓여있었다.그걸로 부족한지 김명화는 원유희의 몸에 폭탄을 묶었다.“미쳤어요?”김명화는 원유희의 얼굴을 꽉 쥐었다.“김신걸이 널 어떻게 구할지 구경이나 하려고 그런다.”원유희는 마음이 매우 불안했다.‘김신걸이 왜 이렇게 왔을까? 너무 눈에 띄잖아.’다시 들어보니 이미 헬리콥터 소리가 나지 않았고, 밖에는 다른 인기척도 없었다.한 남자가 와서 말했다.“헬리콥터가 지나갔어요. 그냥 순찰하다가 지난 것 같아요.”김명화는 멍하니 서 있었다.원유희는 그를 비웃었다.“저 소리에 이렇게까지 놀랐단 말이에요?”“닥쳐!”김명화의 표정은 엄청나게 나빴다.“난 신걸이랑 아이들이 감염되는 거 보고 싶지 않아요. 그래서 연락하지 않을 거고요. 배고픈데 이 폭탄들이나 좀 뜯어줄래요?”김명화가 경각심을 낮추었을 때, 크루즈 밑에서 잠수하던 사람들이 갑자기 튀어나왔다. 10명 좌우로 보이는 사람들은 갈고리를 가드레일에 던지고 밧
원유희는 그를 상대하고 싶지 않았다.김명화가 갑자기 뒤에서 무슨 짓을 할까 봐, 원유희는 그를 등지고 누울 수가 없었다.“너 기억나? 어릴 때 김신걸이 널 괴롭히면 넌 우리 집에 달려와서 내 침대에서 잤잖아.”“기억 안 나요.”“기억하는 거 다 알아. 난 그때 정말 널 도와주고 싶었어.”원유희는 그가 한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고 반박하지 않았다.그녀는 천장을 쳐다보며 말했다.“이전의 김명화는 이미 죽었다고 생각해요.”김명화의 표정은 어두워졌다.“우리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거야?”“내가 제일 아끼는 사람을 죽이고, 어떻게 이런 말을 할 수 있죠? 죽어서 사죄해도 모자랄 판에!”원유희는 지금의 김명화를 조금도 동정하지 않았다.“아무리 유년 시절이 불행해도, 다른 사람의 고통을 낙으로 삼으면 안 되죠!”“정말 고상한 척하네. 김신걸은 사람은 죽인 적이 없대? 육성현은 없대? 왜 걔네들이 사람을 죽인건 용서하면서, 난 용서하지 못하는 건데? 그 사람은 네 남편이고 네 가족이니까? 비겁하고 이기적인 건 너도 마찬가지야.”“참, 너도 사람을 죽였잖아. 네가 죽인 사람도 누군가의 아버지고, 누군가의 아들이야.”원유희는 기분이 착잡해졌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김명화는 원유희의 반응을 보고 가볍게 웃었다.“그러니까 너무 많이 생각하지 마. 그냥 쉽게 쉽게, 편하게 살자.”“이렇게 예전의 저질렀던 일을 합리화하려는 거예요? 그리고 그 명분으로 더 많은 사람을 죽이려고요?”원유희는 김명화를 바라보면서 물었다.“당신을 용서하기 싫은 거 아니에요. 근데 지금까지 자기의 잘못도 모르는 사람을 어떻게 용서해요? 차라리 해독제를 그냥 줘요. 시장에 유통하지 말고요. 그러면 예전에 있었던 일은 없던 거로 할게요.”“정말?”김명화는 원유희를 보면서 물었다.“물론이죠.”원유희는 김명화의 말처럼 깊이 생각하지 않고, 아무렇지 않게 대답을 했다.미래의 일은 그 누구도 알 수 없었다.“그래. 해독제를 줄 수 있어. 근데 대신 넌 나랑 평생 같이
“밥 안 먹으면 너만 손해야.”김명화는 그녀가 꼼짝도 하지 않는 것을 보고 말했다.‘맞네, 아무 것도 먹지 않으면 무슨 힘으로 김명화를 상대하겠어?’잠시 후, 납득이 간 원유희는 젓가락을 들고 생선을 먹기 시작했다.김명화는 그녀가 고기를 입에 넣는 것을 보고 물었다.“어때?”“설마 그쪽이 한 거예요?”원유희는 귀찮다는 듯이 그를 한번 힐끗 쳐다봤다.“맞아, 내가 직접 했어.”‘이게 뭐 자랑할 일인가?’“수고했네요, 이런 일까지 해야 한다니.”“내가 힘들 것 같으면 같이 할까?”“할 줄 모르는데요.”“정말 상전 팔자구먼.”김명화는 원유희를 사랑스럽다는 듯이 바라봤다.원유희는 김명화가 미쳤다고 생각했다. 원유희는 김명화가 자신을 괴롭히고, 김신걸에게 모욕을 주기 위해 이곳에 데려온 줄로 알았다.근데 직접 밥도 해줄 거라는 것은 생각하지 못했다.“설마 요리에 무슨 수작을 부린 거 아니죠?”원유희는 젓가락을 멈추었다.김명화는 손에 있는 젓가락을 흔들었다.“나도 먹고 있잖아.”“먼저 해독제를 먹었겠죠.”“그런 거 아니야.”“그럼 내가 묻힌 진물은? 그건 어떻게 해결한 거죠?”원유희가 물었다.“해독제가 있으니까 괜찮은 거잖아요.”“해독제 가지고 싶어?”“줄 생각은 있고요?”“착하면 줄게.”원유희는 의심스러웠지만 말하지 않았다.어차피 금방 왔으니 당장 해독제를 받을 수는 없었다. 하여 원유희는 일단 참고 해독제를 발견하면 김명화를 바로 제압하는 것을 선택했다.밥을 다 먹고 나머지는 부하가 다 치웠다.“같이 샤워할까?”김명화가 물었다.원유희는 그를 차갑게 보며 말했다.“아니요. 먼저 씻어요.”원유희는 말을 마치고 몸을 돌려 욕실로 들어갔다.원유희는 자신의 감정을 가라앉히고 침착하자고 했다. ‘근데 자는 건 어떡하지? 정말로 같이 자야 해?’원유희는 침대를 봤다. 두 사람이 자고도 넉넉한 침대였고, 중간에 뭘 놓을 수도 있었다.김명화가 만약 자기 몸에 손을 대면 원유희는 같이 죽을 각오도 했다.10여 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