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은 몰라도 김영은 그 답을 알고 있었다.이 정도 큰 규모의 작업을 할 수 있는 사람, 김풍그룹에게 이 정도 악감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아마 김신걸뿐일 것이다.아버지인 김영을 바라보는 눈빛이며 내뱉는 말이며 분명 날서린 증오가 담겨있었지만 그저 말뿐일 거라 생각했다.그런데…… 정말 김풍그룹을, 자신의 본가를 파산까지 몰고 가려는 것일까?답답하고 이해가 안 됐지만 일단 급한 불부터 끄는 게 중요하니 김영은 체면을 접어두고 드래곤 그룹으로 향했다.하지만 그의 예상과 달리 김영은 드래곤 그룹 건물 안으로 들어가지도 못한 채 그 앞을 지키는 경호원에게 쫓겨나오고 말았다.조금 더 강경하게 나가면 정말 때릴 기세인 경호원들의 모습에 김영은 아무런 성과없이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평소 뉴스에 딱히 관심이 없는 원유희도 직원들의 입에서 김풍그룹이 곧 파산할 거라는 소식을 듣게 되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김풍그룹은 제성의 굴지의 그룹, 국가적인 경제 위기도 없는 상황에서 멀쩡한 기업이 갑자기 파산하다니.다들 어떻게 이런 일이 다 있냐며 혀를 끌끌 찼다.이게 무슨 일인가 싶던 그때, 바로 원수정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무조건 김신걸 그 자식 짓이야! 그 자식 말고 누가 이런 짓을 하겠어. 내가 아무리 마음에 안 들어도 그렇지 어떻게 자기 아버지한테 칼을 뽑아!”울먹이는 고모의 목소리에 원유희가 조심스럽게 물었다.“무슨 오해가 있는 건 아닐까요?”원유희는 이번 일에 김신걸이 연루되지 않았으면 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김신걸이 이런 짓을 저지른 이유 중 그녀가 없었으면 했다.“네 고모부도 몰래 알아봤는데 누가 그러더란다. 드래곤 그룹이랑 무슨 일 있었냐고. 그런데도 오해라고? 너희 고모부가 드래곤 본사까지 찾아갔는데 문전박대도 모자라서 하마터면 맞을 뻔했대!”“네? 설마 다치셨어요?”원유희이 눈이 커다래졌다.다른 사람이라면 어떻게 친아버지를 때리나 싶을 테지만 워낙 예측불가의 폭력성을 보이는 김신걸이라면……. 차마 확신할 수 없었다.
원유희의 심장이 살짝 조여들었다.‘김신걸 경호원이네…….’혼자 뒷좌석에 앉은 그녀는 전쟁터에 나가는 결사대의 마음이 이런 걸까라는 생각이 들었다.‘차까지 보낸 거면 희망이 있는 걸까? 뭐가 어떻게 되든 고모한테 도움만 될 수 있다면 뭐든 좋아…….’하지만 김신걸이 정말 그녀의 부탁을 또 들어줄까? 미지에 대한 두려움이 끝없이 밀려들고 회사 앞에서 내리는 그녀의 다리에 힘이 풀렸다.권력의 상징인 하늘을 찌를 듯한 높은 빌딩이 그녀의 영혼을 짓누르는 듯했다.원유희는 보디가드의 안내를 받아 엘리베이터를 타고 건물의 최고층으로 향했다.그리고 비서실 고건 비서가 그녀를 다시 사무실 앞으로 향했다.조심스럽게 문을 두드린 원유희가 사무실로 들어가고 고건이 문을 잠가바렸다.마지막 퇴로까지 막힌 느낌에 원유희의 심장이 거세게 콩닥거리기 시작했다.훤한 낮임에도 불 하나 켜지 않은 사무실은 밤처럼 어두웠고 그녀의 거친 숨소리가 그대로 들릴 정도로 조용했다.한발자국 옮길 때마다 주위를 둘러보는 그녀는 마치 어둠속에서 맹수를 피하는 초식동물과도 같았다.분명 어딘가 맹수가 있다는 걸 알지만 정확히 어디에 있는지는 알 수 없는 상황, 그 언제든지 몸을 숨긴 맹수가 나타나 그녀의 목을 물어뜯을 수 있다는 생각에 끝없는 두려움이 밀려들었다.“무슨 일이야?”갑작스러운 목소리에 원유희는 심장이 멈추는 것만 같았다.홱 고개를 돌린 원유희의 시야에 사무실 의자에 앉은 검은 그림자가 들어왔다.흐릿한 그림자였음에도 그 남자의 목소리가 누구의 것인지 원유희는 알고 있었다.불안한 마음을 애써 누르며 원유희가 대답했다.“전…… 전화했는데 안 받아서…… 고…… 고모부 회사에 왜 그런 거야?”“대신 사정이라도 하려고 온 건가?”김신걸의 목소리에서는 그 어떤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지만 그래서 더 끔찍했다.“아니.”원유희가 다급하게 부정했다.고모의 편을 든다는 걸 알면 괘씸해서라도 도와주지 않을 게 분명할 터.“그…… 그냥 나 때문인가 싶어서…….”“그래? 왜 그렇게 생
고개를 돌린 원유희는 기세등등한 손예인의 얼굴을 보고 미간을 찌푸렸다.‘하필 이때…… 손예인과는 더 엮이고 싶지 않았는데…….’그녀를 향해 다가온 손예인이 혐오 섞인 눈빛으로 원유희를 바라보았다.“원유희, 정말 살다살다 너 같은 애는 처음 본다. 너무 뻔뻔한 거 아니야? 너 안 만나겠다잖아. 도대체 무슨 염치로 여기서 버티고 있는 거야? 남자가 그렇게 고파?”“신걸이한테 할 말이 있어서 그래.”‘제발 가라…… 너랑 상관없는 일이니까 제발 좀 가라고…….’“무슨 일? 아~ 너희 그 천박한 고모네 집안일? 그거라면 포기해. 오빠가 네 부탁 한 마디에 포기할 것 같아? 울면서 바지가랑이를 붙잡아도 눈 하나 깜박 안 할 걸? 그리고 오빠는 오늘 내가 만나기로 했으니까 이만 돌아가.”경비원이 손예인 대신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러주고 마지막으로 그녀를 노려봐준 손예인이 엘리베이터와 함께 사라졌다.혼자 남겨진 원유희의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오늘만 안 만나주는 거면 다행이게. 상황을 보아하니 내일도 딱히 마음이 바뀔 것 같지 않아.’“네가 아무리 엉겨붙어도 내 계획은 바뀌지 않아.”김신걸의 말이 다시 머리속에서 메아리쳤다.그녀의 몸뚱아리 따위 별 가치가 없다는 말처럼 들려 수치심이 밀려왔다.그렇게 원유희는 빨개진 눈으로 아무런 성과도 얻지 못한 채 건물을 나올 수밖에 없었다.무거운 마음으로 회사 돌아가려던 그때, 고모의 전화가 다시 걸려왔다.쉴새 없이 몰아치는 원수정이 원망스러웠지만 전화를 받는 것 말고 그녀에게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유희야, 어떻게 됐어? 김신걸 그 자식 만났어? 뭐래?”“만났는데…… 안 된대요.”“아니 왜? 여채아 그 여자도 풀어줬잖아? 그런데 왜 이건 안 된대? 유희야, 좀 더 매달려봐. 응?”“고모, 죄송해요…… 전 이미 최선을 다했어요.”말을 마친 원유희는 바로 전화를 끊어버렸다.‘내가 무슨 자격으로 김신걸에게 부탁을 해? 무슨 자격으로…….’한편, 사무실로 들어온 손예인이 온갖 교태를 부리며 말했다.“오빠
사무실을 나선 손예인은 생각할수록 분한 기분에 하이힐로 바닥을 쾅 내리쳤다.김신걸과 가까워지기 위해 온갖 수를 다 써봤지만 전혀 차도가 보이지 않으니 마음이 답답해졌다.‘내가 매력이 없나? 그럴 리가 없고…… 그리고 신걸 오빠랑 원유희…… 정말 안 잔 거 맞을까?’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손예인이 자신의 생각에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지었다.‘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신걸 오빠는 원유희를 경멸해. 같이 밥 먹고, 건물을 사고…… 이런 건 결국 원유희를 괴롭히는 방식 중 하나일 뿐이야. 정말 원유희를 좋아한다면 김풍그룹을 향해 칼을 빼들 리가 없지…….’어렸을 때 온갖 사랑을 받고 자란 손예인이 원유희가 김신걸에게 어떤 의미로든 특별한 존재라는 걸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한편, 평생 일궈온 그룹이 파산될 위기에 처하자 김영, 김덕배 형제 그리고 김덕배의 아들 김명호가 두 형제의 아버지이자 김풍그룹 초대 회장 김국진을 만나기 위해 교외 별장으로 향했다.김국진은 기다렸다는 듯 세 사람을 맞이했고 두 아들은 아버지앞에서 죄인처럼 고개를 숙였다.김국진은 여든이 넘는 나이였지만 머리카락이 하얗게 샌 걸 제외하고 여전히 정정한 모습이었다.무릎을 꿇고 있는 두 아들을 노려보던 김국진이 책상을 쾅 하고 내리쳤다.“아들, 조카한테 이 정도로 당하고 무슨 염치로 날 찾아와? 난 이미 무덤자리까지 봐둔 뒷방 늙은이야. 효도는 못할 망정, 잘하는 짓이다. 잘하는 짓이야!”“아버지, 지금의 신걸이는 예전과 달라요. 신걸이가 운영하는 드래곤 그룹이 제성 전체를 꽉 틀어쥐고 있어서 인맥을 따로 쓸 수조차 없습니다. 그래도 아버지가 나서주시면…… 상황이 바뀔 것 같은데요…….”“한쪽은 아들, 다른 한쪽은 내 손자야. 나더러 어느 편을 들라는 거야!”축 늘어진 김국진의 피부와 찻잔을 잡은 손이 부들부들 떨려왔다.눈치를 살피던 김덕배도 입을 열었다.“아버지, 지금 신걸이 그 자식, 우리 집안을 아주 우습게 보고 있습니다. 이게 다 형님이 자초하신 일 아닙니까?
점심시간을 이용해 원유희는 피임약을 사기 위해 약국으로 향했다.삼둥이는 그녀에게 축복과도 같은 존재였지만 또다시 예상치 못한 임신을 겪고 싶진 않았다.약국에 도착한 그녀는 잠깐 고민하다 말했다.“경구피임약으로 주세요.”워낙 변덕이 많은 김신걸이 언제 그녀를 원할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그때마다 사후피임약을 먹는 건 몸에 무리가 갈 게 뻔했기 때문이었다.물 한 병에 쓴 약을 넘기고 거리를 걷던 그때, 어디선가 경적소리가 들려왔다.혹시 길을 막았나 싶어 원유희는 살짝 옆으로 비켜섰지만 검은색 차량은 그녀의 옆에 멈춰섰다.‘김신걸인가?’원유희의 예상과 달리 조수석에서 내린 사람은 4, 50대쯤 되어 보이는 중년 남성이었다.“원유희 씨? 저 기억하시나요? 김국진 회장님을 모시는 박인하라고 합니다.”익숙한 얼굴을 자세히 살펴보던 원유희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아…… 네. 그런데 무슨 일이신지?”“어르신께서 뵙고 싶어 하십니다.”“그…… 그게 지금 제가 출근 중이라.”“월차 내시죠. 회사에는 제가 대신 연락드리겠습니다.”결국 고개를 끄덕인 원유희는 성형외과에서 간단히 핸드백을 챙기고 벤츠에 몸을 실었다.뒷자리에 앉은 채 주위의 풍경을 살피는 원유희는 마음이 착잡할 따름이었다.어렸을 때 김영의 집에서 살 때, 김국진은 이미 일선에서 물러서 교외 별장에서 지내고 있었기에 김국진의 얼굴을 직접 본 건 손에 꼽을 정도였다.악마 같은 김신걸의 얼굴을 떠올리면 마음 같아선 김씨 집안 그 어떤 사람과도 더 이상 엮이고 싶지 않았다.그런 그가 갑자기 원유희를 부른 이유라면…….‘아마 김풍그룹 일 때문이겠지. 하지만 내가 뭘 할 수 있다고 날 찾으시는 걸까?”잠시 후, 별장에 도착한 원유희가 텅 빈 마루에 어색하게 선 채 주위를 둘러보았다.“왔구나.”지팡이를 짚은 김국진이 천천히 그녀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여든이 넘는 나이임에도 김씨 일가의 주인답게 그 풍채만은 여전했다.“할아버님……”원유희가 김국진을 향해 깍듯하게 고개를 숙였다.“오
2층, 그런 원유희를 지켜보던 김국진이 말했다.“예쁘게 생겼더구나. 눈에 총기도 보이고.”“어르신 말씀은…….”“뭐 무슨 생각을 하고 있던 김풍그룹의 근간이 흔들려서는 안 돼.”“그렇죠. 김풍그룹은 어르신께서 청춘을 바쳐 일군 회사 아닙니까. 그건 그렇다 치더라도…… 신걸 도련님도 참 대단하시네요…….”며칠 사이에 김풍그룹을 휘청이게 만들다니.뒤에 말은 하지 않았지만 박인하의 말하려는 바가 무엇인지 김국진도 잘 알고 있었다.“내가 미운 게지…….”김국진의 눈동자에 회한과 안타까움이 흘렀다.“도련님께서 정말 오실까요?”“저기 오고 있지 않나? 참 양반은 못 되는구만.”멀리 가까워지는 차량을 바라보던 김국진이 피식 웃었다.한편, 원유희는 해가 완전히 떨어질 때까지 멍하니 앉아있다 바람이 차게 느껴질 때에야 자리에서 일어섰다.손님방으로 돌아가려던 그때, 원유희의 눈에 여직원의 모습이 들어왔다.큰 상자를 든 채 주위의 눈치를 살피며 뒷채로 향하고 있는 모습이 왠지 수상했다.‘회장님이 또 뭘 꾸미시는 걸까?’왠지 따라가봐야 할 것 같은 느낌에 원유희가 조용히 여자의 뒤를 따랐다.뒷채는 잡동사니를 보관하는 창고처럼 보였다.조심스럽게 2층으로 올라간 원유희는 발코니에 비치는 여직원의 그림자를 발견하고 기겁하며 몸을 숨겼다.여직원이 커다란 상자에서 꺼낸 건 다른 게 아니라 바로 저격총이었다.원유희의 눈동자가 충격으로 일렁거렸다.‘총? 누구를 죽이려고? 여긴 회장님 저택이야…… 이런 곳에 킬러가? 설마 날 죽이려고 온 건가? 아니야…… 날 죽이는 데 총까지 동용할 리가 없어.’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매력적인 몸매가 돋보이는 여자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원유희가 조심스럽게 다시 1층으로 내려왔다.그리고 1층의 작은 창문 너머로 검은색 롤스로이스가 눈에 들어왔다.너무나 익숙한 차량과 번호판. 비슷한 차만 봐도 그녀의 가슴을 벌렁거리게 만드는 존재.‘김신걸이 왜 여기에……’순간 원유희의 머릿속에 뭔가 번뜩였다.‘설마…… 김신걸을 노린 킬
분명 잘못한 게 없음에도 김신걸의 무시무시한 눈빛을 마주하면 왠지 모를 두려움이 엄습했다.하지만 이미 벽 귀퉁이에 숨은 원유희는 더 이상 도망칠 곳도 없었다.이때 소란스러움을 느낀 김국진이 밖으로 나왔다.“무슨 일이야?”그의 등장 덕분에 두 사람 사이의 기괴한 침묵이 끝날 수 있었다.경호원이 달려와 김국진에게 허리를 숙였다.“회장님, 여자는 총상을 입고 호수에 떨어졌습니다. 시체를 찾고 있긴 합니다만 시간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뭐? 총상? 여자? 그게 다 무슨 소리야?”아무것도 모르는 김국진은 어리둥절할 따름이었다.자리에서 일어선 김신걸이 원유희를 향해 말했다.“타.”“가…… 가방 가지고 올게.”그제야 정신을 차린 원유희가 벌떡 일어서 김국진을 향해 공손하게 인사를 건넨 뒤 손님방으로 향했다.핸드백을 챙긴 원유희가 차에 타는 걸 가만히 바라만 보고 있던 김신걸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오랜만에 왔는데 이런 이벤트가 있을 줄은 몰랐네요. 제 명줄이 길어서 암살은 실패했지만…… 이 모든 걸 계획한 사람은 꽤 실망스럽겠어요.”김신걸의 무덤덤한 말투에 표정이 일그러진 김국진이 노여운 가득한 목소리로 박인하에게 분부했다.“제대로 조사해. 호수든 어디든 샅샅이 뒤져서 찾으라고!”“네.”박인하가 자리를 뜨고 김국진은 오랜만에 보는 손자의 얼굴을 자세히 살폈다.뛰어난 외모와, 차가운 분위기. 과거 젊었을 때 자신의 모습을 보는 듯했다.하지만 지나치게 잔인하고 차가운 마음을 가지고 있는 손자라 친할아버지임에도 그 눈을 마주할 때면 왠지 모를 섬뜩함을 느껴야 했다.‘신걸이가 정말 김풍그룹을 장악하게 된다면…… 우리 가문에는 독이 되겠어…….”“걱정하지 마라. 누가 사주한 짓인지 이 할애비가 책임지고 찾아낼 테니.”할아버지의 말에 김신걸이 코웃음을 쳤다.“만약 그 사람이 할아버지 아들이라면요? 철륜을 져버리실 수 있으시겠어요?”김신걸의 말에 김국진이 미간을 찌푸렸다.‘덕배를 의심하는 건가?’“네가 생각하는 그 사람이 맞다고 해도
소파에 앉은 남자 한 명이 왠지 초조한 손길로 술잔을 흔들고 있다.어둠속에서 액정이 불을 밝히고 김명화의 긴 손가락이 테이블로 향했다.“여보세요?”“실패했습니다.”수화기 너머로 여자의 거친 숨소리가 들려왔다.“실패라니……”김명화가 웃음을 터트리고 그 충격에 술잔에 담겼던 술이 그대로 흘러내렸다.“죄송합니다. 원유희 그 여자가 갑자기 끼어드는 바람에…….”“자신의 실패에 핑계 같은 건 대지 마.”“…… 알겠습니다. 다음 번에는 운이 이 정도로 따라주지 못할 겁니다.”잠깐 침묵하던 김명화가 물었다.“그래. 다쳤어?”“팔쪽에 총을 맞긴 했는데 괜찮습니다.”“일단 몸조리부터 해.”말을 마친 김명화가 전화를 끊었다.술을 마시려던 김명화가 이미 텅 빈 술잔을 발견하고 짜증스레 술잔을 던져버렸다.다음 날, 출근 지하철.원수정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또 무슨 부탁을 하시려는 걸까…….’원유희가 무거운 마음으로 전화를 받았다.“고모…….”“유희야! 너무 잘됐다!”“네?”“신걸이가 포기했나 봐! 역시 아버님이 나서니까 다르네. 이럴 줄 알았으면 바로 아버님한테 부탁하는 건데.”“잘됐네요.”“참, 저번에 선 봤던 그 남자는 어때? 다시 연락해 봤어?”기분이 좋은지 원수정의 목소리가 잔뜩 들떠있었다.“고모, 다시는 그런 거 하지 마세요.”“왜? 신걸이 때문에 그러니? 참, 웃겨. 네가 누굴 만나든 걔랑 무슨 상관이니. 또 이렇게 막 나오면 바로 아버님한테 갈 거니까 걱정하지 마.”“고모, 저 남자 만나고 싶은 생각 없어요.”설령 김신걸이 아니라 해도 지금의 원유희는 남자 따위 만날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세 아이를 숨기며 기르는 것만으로도 그녀는 충분히 힘들었으니까.“정말 생각없어? 남자 쪽은 네가 마음에 드는 것 같던데? 표 선생 엄마가 말하는데 전에 선 봤던 여자는 다 별로라고 했는데 너랑은 연락해 보고 싶대. 네가 마음에 드는 거 아니겠어? 우리 유희, 얼굴 이쁘지 몸매 좋지, 똑똑하지. 내가 잘 될 줄 알았어.”저번
육성현은 흠칫 놀랐다. 그러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내가 누구를 죽였다고 그래? 혜정아, 다 오해야. 나 지금 다 고쳤어. 진짜야, 어서 내려와. 물만두가 식겠다.”“오지 마!”엄혜정은 감정이 격해져서 소리쳤다.“다가오면 뛰어내릴 거라고 얘기했어!”“그래, 안 갈게.”육성현은 감히 다가가지 못했다.“혜정아, 진짜야. 난 사람을 죽이지 않았어. 우선 먼저 내려와. 내려오면 내가 다 설명해 줄게. 다 오해야.”“사실 처음부터 수상하다고 생각했어. 그냥 유희의 말이 날 깨닫게 했을 뿐이야.”엄혜정은 눈물이 그렁그렁했지만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다. 그녀는 육성현을 바라보면서 얘기했다.“근데 나 지금 다 알게 됐어. 증거는 없지만 넌 김하준이잖아. 난 적어도 아이를 위해서 네가 달라질 거라 기대했어. 근데, 넌 어떻게 네 아이의 외할머니랑 외할아버지를 죽일 수 있어? 김하준, 넌 도대체 정체가 뭐야? 세상에 어떻게 너 같은 괴물이 다 존재해?”“혜정아, 내려와서 천천히 얘기하자, 응? 거긴 너무 위험해.”“제일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이 죽은 기분을 모르지? 너도 한번 느껴봐야 해.”엄혜정은 떨어지는 눈물과 함께 베란다에서 뛰어내렸다.“안돼!”육성현은 고함을 지르며 달려갔다. 하지만 엄혜정의 옷자락도 미처 잡지 못했다.그는 엄혜정이 바닥에 떨어지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고, 그녀의 몸에서 피가 흘러나오는 것을 목격하게 되었다.밑에 서 있던 하인 중 그 누구도 엄혜정을 받아내지 못했다.“다 죽일 거야!”육성현은 미친 듯이 달려갔고, 눈에 거슬리는 하인들을 모조리 걷어차 버렸다. 그는 엄혜정 옆으로 기어가 부드럽게 그녀를 품에 안았다.“혜정아, 혜정아. 병원에 데려다줄게. 아무 일도 없을 거야!”엄혜정은 눈을 떴다. 그녀의 머리는 피투성이가 되었고, 초점이 점차 사라지는 눈으로 육성현을 바라보았다.“김하준, 다음 생이 있다면, 난 다시는 널 만나지 않을 거야…….”이렇게 한마디만 남기고 엄혜정은 숨을 끊게 되었다.“그래, 만나지 마,
퇴원한 후, 엄혜정은 방에 혼자 남았을 때 원유희에게 연락했다.“유희야, 괜찮아? 김명화가 널 납치했다고 들었는데, 구출됐다고?”“응, 괜찮아. 지금은 집에 도착했어.”“다행이다.”원유희는 그녀의 정서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채고 물었다.“왜 그래? 기분이 안 좋아?”“부모님이 돌아가신 일 말이야. 나 다 알게 됐어.”원유희는 순간 멈칫했다.‘다 알았다고?’“미안해 혜정아, 숨기는 게 아니었는데.”“괜찮아, 나랑 아이를 생각해서 숨긴 거잖아.”엄혜정은 잠시 멈췄다가 다시 물었다.“네가 김명화를 죽였어?”“아니. 그날에 크루즈에서 김명화가 도망쳤거든. 우리가 김명화를 찾았을 땐 이미 주검으로 됐어. 그 주검도 바다에서 건져낸 거야.”“육성현도 있었지?”“응, 얘기해줬어?”엄혜정은 덤덤하게 물었다.“육성현을 의심해 보지 않았어?”원유희는 흠칫했고 아무런 얘기도 할 수가 없었다.“김명화를 죽인 사람, 그리고 우리 부모님을 죽인 사람 말이야…….”“그럴 리가?”원유희는 당황했다. 그녀는 엄혜정이 왜 육성현을 의심하게 됐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무슨 단서라도 발견한 거야? 아니면 그렇게 복잡하게 생각하지 마.”“유희야, 저 사람 진짜 육성현이 아니잖아. 김하준이라고. 나 그 사람 잘 알아.”엄혜정은 목이 메였지만 울먹이면서 끝까지 말했다.“난 그 사람 고칠 줄 알았어, 적어도 아이를 위해서…….”“혜정아, 아직 조사하고 있어.”“그럼 너희들도 육성현을 의심하고 있다는 얘기잖아, 맞지?”“오해일 수도 있어.”“오해일 리가 없어.”엄혜정은 말을 마치고 바로 전화를 끊었다. 원유희가 다시 전화를 걸어오자 그녀는 아예 핸드폰을 꺼버렸다.그리고 시체처럼 무기력하게 아래층으로 내려갔다.엄혜정은 서재에서 나온 육성현을 보면서 얘기했다.“나 물만두 먹고 싶은데, 사다 줄래? 예전에 빈민가에서 자주 사주던 물만두 말이야.”“그래.”육성현은 엄혜정의 머리를 어루만지며 말했다.“먼저 우유 좀 마시고 있어. 금방 갔다 올게.”
육성현은 엄혜정을 끌어안았다.“김명화가 죽었대. 복수한 셈이나 마찬가지야. 그러니까 네가 무사히 지내야 장인어른 장모님이 안심하시지 않겠어? 침착해.”엄혜정은 울면서 그의 품에 쓰러졌다.그러고는 배가 간간이 쑤시자, 엄혜정의 얼굴은 하얗게 질렀다.육성현은 그녀의 상황을 바로 눈치채고 기사에게 소리쳤다.“얼른 병원으로 가!”“얼른!”염민우도 재촉했다. 그는 얼른 엄혜정의 손을 잡았는데, 그녀의 손이 얼음처럼 차갑다는 것을 발견했다.“누나, 아직 나도 있잖아. 그러니까 아무 일도 생기면 안 돼. 누나, 꼭 버텨줘.”엄혜정은 눈에 눈물을 머금고 그를 보고 있었다.그녀는 마음이 몹시 괴로웠고,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었다.‘난 부모님을 가질 자격이 없는 걸까……?’엄혜정이 깨어났을 때 그녀는 이미 병원에 있었다. 깨어나자마자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배를 만졌다.육성현은 그녀의 손을 잡았다.“지금 안정을 취해야 한대.”엄혜정은 주위를 둘러보았다.“민우는?”“밖에 있어. 너무 걱정되서 안절부절못하고 있어.”엄혜정은 육성현의 손에서 자기 손을 뺐다.“두 사람 너무해. 이렇게 큰일을 어떻게 나한테 숨길 수가 있어? 평생 숨길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 육성현, 우리 부모님의 목소리를 합성해서 나랑 통화하게 했어? 네 아이디어지? 넌 아이를 위해서라면 뭐든지 다 할 수 있잖아!”“혜정아, 어차피 일은 벌어졌고, 너한테 알려준다고 해서 달라질 건 없어. 네 옆에는 나랑 아이가 있고, 민우에게 남은 가족이라곤 너밖에 없어. 너한테도 무슨 일이 생기면, 민우는 더 고통스러워질 거야.”엄혜정은 말을 하지 않았고, 눈물이 그렁그렁했다.엄혜정도 염민우가 더 고통스러워질 것을 잘 알고 있었다.그때 엄혜정은 염민우가 갑자기 엄청나게 말라갔던 것이 생각이났다. 엄혜정은 염민우의 일이 바쁜 줄로만 생각했는데, 이제야 그때 부모님이 돌아가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염민우는 모든 것을 혼자 감당하고 있었다.“울지 마. 의사가 지금은 안정을 찾아야 한다고 했어.”
“알았어요…….”염민우는 고개를 들었다. 그러다가 입구에 서 있는 엄혜정을 보고 깜짝 놀랐다.“누…… 누나. 여긴 어쩐 일이야?”엄혜정은 멍하니 거기에 서서 염민우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방금 얘기하고 있던 사람을 봤다.“하늘나라라뇨? 저희 부모님이 왜 하늘나라에 계셔요?”“아니야, 다른 사람의 얘기를 하고 있었어.”엄혜정은 두 사람의 얼굴에서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것을 발견했다.그녀는 똑똑히 들었다. 엄혜정은 얼굴이 하얗게 질렸고, 다급하게 핸드폰을 찾았다.핸드폰을 못 찾자 바로 차로 뛰어갔다.“누나!”염민우는 엄혜정을 쫓아갔다.“뭐 하려고 그래?”“엄마 아빠한테 전화할 거야.”“지금 여행 중이시니까, 방해하지 않는 게 좋지 않을까?”엄혜정은 그를 보면서 물었다.“사실대로 얘기해줘. 엄마 아빠 왜 아직도 돌아오시지 않은 거야? 거짓말하지 마! 사실 줄곧 이상하다고 생각했어. 내가 임신했는데 엄마랑 아빠가 계속 안 오시는 게 말이 안 되잖아! 두 분 무슨 일이 생긴 거 맞지? 정말로…… 무슨 일이 생긴 거야?”염민우는 북받쳐 오르는 감정을 꾹 참고 말했다.“더 이상 묻지 마…….”“염민우! 계속 우물쭈물 얘기 안 하면, 나 이젠 널 안 봐!”염민우는 더 이상 숨길 수 없다는 것을 직감했다. ‘집에 오는 게 아니었어, 그나저나 아저씨는 왜 또 그런 허튼소리를 해서 참…….’“맞아, 누나 임신 3개월쯤 되었을 때, 누군가에 의해 살해당하셨어.”엄혜정은 몸이 휘청거렸다. 염민우는 바로 그녀를 부축했다.“침착해요! 엄마랑 아빠는 누나가 무사하기를 원하셨을 거야. 난 누나가 못 받아들일 것 같아서 장례식 때 일부러 알려주지 않았어.”엄혜정의 눈에서 눈물이 주룩주룩 흘러내렸다. 그녀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염민우를 바라보았다.“너 이러고도 내 친동생이 맞아? 어떻게 안 알려줄 수가 있어! 아기만 중요하고 부모님은 안 중요할 것 같아? 너…….”너무 충격 받은 엄혜정은 눈앞이 점점 캄캄해지더니 기절을 하고 말았다.“누나!”
육성현이 다가와 물었다.“유희야, 괜찮아?”원유희는 고개를 저었다.“너 안색이 안 좋은데, 왜 그래?”“김명화가 죽었어요.”김신걸이 얘기했다.“해독제는 찾았어요?”원유희는 다시 고개를 저었다.“아쉽네. 그럼 감염된 사람들은 우선 좀 참아야겠어.”원유희는 갑자기 뭐가 생각나 바로 김신걸을 밀쳤다.“날 만지지 마!”육성현은 그제야 원유희의 볼 아래의 병변 부위를 발견했다.“유희야, 김명화가 너한테도 독을 썼어?”김신걸은 미간을 찌푸렸다.“상관없어.”“안돼. 우리 둘다 아이들하고 접촉하지 않으려 한다면 애들이 걱정할 거야.”원유희는 거절했다.김신걸은 줄곧 원유희와 스킨쉽이 있었다. 원유희는 그도 감염되지 않을까 걱정했다.“방금도 널 안았는데, 감염되면 진작에 감염됐어.”김신걸이 말했다.원유희는 그래도 싫었다.“아니, 그래도 만지지 마.”해독제도 못 가진 상황에 김명화는 의문스럽게 죽었다. ‘여기 김명화를 죽이려고 한 사람이 있었단 말이지?’김신걸은 김명화를 죽이라는 명령을 내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의 시체를 바다에 던질 일은 더더욱 없었다.그럼 분명 다른 사람이 한 짓이었다.‘무슨 목적으로? 김신걸도 감염되면 배후의 사람을 어떻게 잡아내지?’‘다른 조직의 사람도 이곳에 숨어 있을지도 몰라.’원유희는 말을 하지 않았다.“내려가자.”김신걸은 원유희의 말대로 몸에 손을 대지 않았다. 원유희가 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자신을 떠날까 봐서 걱정이었다. 김신걸은 더 이상 그런 고통을 견딜 수 없었다.원유희는 김신걸을 따라 떠났다.육성현은 먼 곳에 있는 김명화의 시체를 봤다. 그리고 그가 죽은 것을 확인하고 떠났다.이제 아무도 김명화를 죽인 사람이 육성현이라는 것을 모를 것이다.엄혜정은 이미 임신 5개월 차에 접어들었다. 지금 어떠한 사고도 있어서는 안 되었다.육성현은 잠깐 해독제가 없더라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아이를 낳은 후 다시 생각하려 했다.엄혜정은 소파에 앉아 과일을 먹고 있었다.배는 이미 많이 나
김명화의 말이 끝나자마자 뒤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진선우는 킬러들과 격투하고 있었고, 매번 그들의 치명적인 곳을 공격했다.진선우가 실력이 없었다면, 킬러들은 진작에 그를 해결했을 것이다.김명화는 무엇을 깨닫고 손을 돌려 원유희를 잡으려 했다.원유희는 후퇴하는 동시에 다른 힘에 의해 품에 안겼다.“이거 놔!”원유희는 낯선 남자인 줄 알고 발버둥 치려 했다.“유희야.”원유희는 멍하니 고개를 돌렸고, 익숙한 얼굴을 보자 아주 기뻤다.“김신걸?”“나야.”김명화는 서로 애틋한 두 사람을 보자 화가 더 났다.“원유희, 역시 김신걸에게 단서를 남긴 사람, 너였어.”김명화는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그쪽이 너무 방심한 탓이죠.”‘내가 예전에 김신걸의 곁에서 도망치려고 했던 일이 김명화에게 착각을 준 거야?’“왜, 날 죽이려고? 네까짓 게?”김명화는 말을 마치고 몸을 돌려 다른 출구로 달려갔다.하지만 경호원들은 이미 그곳에 서서 그를 막았다.김명화는 총을 꺼내 쏘자, 한 경호원은 바닥에 쓰러졌고, 다른 경호원은 얼른 옆으로 비켜 숨었다.일반인들은 그 출구를 포기했을 것이다. 김신걸의 사람들이 숨어있었기에, 그 출구는 아주 위험했다.하지만 김명화는 기어코 사격을 하면서 길을 텄다.안에 숨어 있던 경호원들은 피하면서 반격할 수밖에 없었다.경호원들의 반격에 김명화는 하마터면 맞을 뻔했다. 그러다가 몇발 더 쏘고는 바로 달렸다.김명화는 크루즈에 오래 있었다. 하여 갓 크루즈에 올라온 김신걸의 사람들보다 이곳을 훨씬 더 잘 알았다.몇 개의 모퉁이를 돌면 은폐하기 적합한 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김명화는 다시 부하들에게 연락했지만 전화를 받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그제야 김명화는 김신걸의 사람들이 진작에 올라왔고, 자기 쪽 부하들은 아마 얼마 남지 않은 것을 깨닫게 되었다.도망치지 못한다면 김신걸에게 잡힐 것이 뻔했다.김명화는 죽어도 김신걸에게 잡히고 싶지 않았다.그러다가 갑자기 한 사람의 인기척이 났다. 김명화는 본능적으로 총을 들었다
원유희는 지금 약 때문에 힘을 쓸 수 없는 상황이었고, 크루즈 곳곳에는 CCTV가 있었다. 방에 들어올 때, 그 윗부분에 CCTV가 하나 있었다. 그래서 한밤중에 몰래 뭔가를 찾아보는 건 아예 불가능했다.김명화는 일찌감치 그녀가 아무것도 할 수 없도록 만들었다. 하지만 원유희는 떠나기 전에 김신걸에게 단서를 남겨주었기에 그가 곧 이곳을 찾아올 거라 믿었다.다만 김신걸의 속도가 이렇게 빠를 거라 예상하지 못했다.날이 밝는 무렵, 원유희는 헬리콥터 소리를 들었다.이어 문이 펑 하고 열렸고, 원유희는 반응하기도 전에 멱살이 잡혔다.“연락을 어떻게 한 거야?”말을 마치고 원유희의 몸을 수색하려 했다.“아! 미쳤어요? 나 핸드폰 없어요!”“김신걸이 왔다고 널 데려갈 수 있다고 생각해? 죽어서 지옥에 내려가더라도 널 끌고 갈 거야. 가자!”“아니…….”원유희는 힘 없이 밖으로 끌려 나갔다.김명화는 원유희를 다른 방으로 보냈다.“우린 여기서 김신걸이 올 때까지 기다리면 돼.”원유희는 고개를 들어봤다. 입구에는 많은 폭탄이 놓여있었다.그걸로 부족한지 김명화는 원유희의 몸에 폭탄을 묶었다.“미쳤어요?”김명화는 원유희의 얼굴을 꽉 쥐었다.“김신걸이 널 어떻게 구할지 구경이나 하려고 그런다.”원유희는 마음이 매우 불안했다.‘김신걸이 왜 이렇게 왔을까? 너무 눈에 띄잖아.’다시 들어보니 이미 헬리콥터 소리가 나지 않았고, 밖에는 다른 인기척도 없었다.한 남자가 와서 말했다.“헬리콥터가 지나갔어요. 그냥 순찰하다가 지난 것 같아요.”김명화는 멍하니 서 있었다.원유희는 그를 비웃었다.“저 소리에 이렇게까지 놀랐단 말이에요?”“닥쳐!”김명화의 표정은 엄청나게 나빴다.“난 신걸이랑 아이들이 감염되는 거 보고 싶지 않아요. 그래서 연락하지 않을 거고요. 배고픈데 이 폭탄들이나 좀 뜯어줄래요?”김명화가 경각심을 낮추었을 때, 크루즈 밑에서 잠수하던 사람들이 갑자기 튀어나왔다. 10명 좌우로 보이는 사람들은 갈고리를 가드레일에 던지고 밧
원유희는 그를 상대하고 싶지 않았다.김명화가 갑자기 뒤에서 무슨 짓을 할까 봐, 원유희는 그를 등지고 누울 수가 없었다.“너 기억나? 어릴 때 김신걸이 널 괴롭히면 넌 우리 집에 달려와서 내 침대에서 잤잖아.”“기억 안 나요.”“기억하는 거 다 알아. 난 그때 정말 널 도와주고 싶었어.”원유희는 그가 한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고 반박하지 않았다.그녀는 천장을 쳐다보며 말했다.“이전의 김명화는 이미 죽었다고 생각해요.”김명화의 표정은 어두워졌다.“우리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거야?”“내가 제일 아끼는 사람을 죽이고, 어떻게 이런 말을 할 수 있죠? 죽어서 사죄해도 모자랄 판에!”원유희는 지금의 김명화를 조금도 동정하지 않았다.“아무리 유년 시절이 불행해도, 다른 사람의 고통을 낙으로 삼으면 안 되죠!”“정말 고상한 척하네. 김신걸은 사람은 죽인 적이 없대? 육성현은 없대? 왜 걔네들이 사람을 죽인건 용서하면서, 난 용서하지 못하는 건데? 그 사람은 네 남편이고 네 가족이니까? 비겁하고 이기적인 건 너도 마찬가지야.”“참, 너도 사람을 죽였잖아. 네가 죽인 사람도 누군가의 아버지고, 누군가의 아들이야.”원유희는 기분이 착잡해졌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김명화는 원유희의 반응을 보고 가볍게 웃었다.“그러니까 너무 많이 생각하지 마. 그냥 쉽게 쉽게, 편하게 살자.”“이렇게 예전의 저질렀던 일을 합리화하려는 거예요? 그리고 그 명분으로 더 많은 사람을 죽이려고요?”원유희는 김명화를 바라보면서 물었다.“당신을 용서하기 싫은 거 아니에요. 근데 지금까지 자기의 잘못도 모르는 사람을 어떻게 용서해요? 차라리 해독제를 그냥 줘요. 시장에 유통하지 말고요. 그러면 예전에 있었던 일은 없던 거로 할게요.”“정말?”김명화는 원유희를 보면서 물었다.“물론이죠.”원유희는 김명화의 말처럼 깊이 생각하지 않고, 아무렇지 않게 대답을 했다.미래의 일은 그 누구도 알 수 없었다.“그래. 해독제를 줄 수 있어. 근데 대신 넌 나랑 평생 같이
“밥 안 먹으면 너만 손해야.”김명화는 그녀가 꼼짝도 하지 않는 것을 보고 말했다.‘맞네, 아무 것도 먹지 않으면 무슨 힘으로 김명화를 상대하겠어?’잠시 후, 납득이 간 원유희는 젓가락을 들고 생선을 먹기 시작했다.김명화는 그녀가 고기를 입에 넣는 것을 보고 물었다.“어때?”“설마 그쪽이 한 거예요?”원유희는 귀찮다는 듯이 그를 한번 힐끗 쳐다봤다.“맞아, 내가 직접 했어.”‘이게 뭐 자랑할 일인가?’“수고했네요, 이런 일까지 해야 한다니.”“내가 힘들 것 같으면 같이 할까?”“할 줄 모르는데요.”“정말 상전 팔자구먼.”김명화는 원유희를 사랑스럽다는 듯이 바라봤다.원유희는 김명화가 미쳤다고 생각했다. 원유희는 김명화가 자신을 괴롭히고, 김신걸에게 모욕을 주기 위해 이곳에 데려온 줄로 알았다.근데 직접 밥도 해줄 거라는 것은 생각하지 못했다.“설마 요리에 무슨 수작을 부린 거 아니죠?”원유희는 젓가락을 멈추었다.김명화는 손에 있는 젓가락을 흔들었다.“나도 먹고 있잖아.”“먼저 해독제를 먹었겠죠.”“그런 거 아니야.”“그럼 내가 묻힌 진물은? 그건 어떻게 해결한 거죠?”원유희가 물었다.“해독제가 있으니까 괜찮은 거잖아요.”“해독제 가지고 싶어?”“줄 생각은 있고요?”“착하면 줄게.”원유희는 의심스러웠지만 말하지 않았다.어차피 금방 왔으니 당장 해독제를 받을 수는 없었다. 하여 원유희는 일단 참고 해독제를 발견하면 김명화를 바로 제압하는 것을 선택했다.밥을 다 먹고 나머지는 부하가 다 치웠다.“같이 샤워할까?”김명화가 물었다.원유희는 그를 차갑게 보며 말했다.“아니요. 먼저 씻어요.”원유희는 말을 마치고 몸을 돌려 욕실로 들어갔다.원유희는 자신의 감정을 가라앉히고 침착하자고 했다. ‘근데 자는 건 어떡하지? 정말로 같이 자야 해?’원유희는 침대를 봤다. 두 사람이 자고도 넉넉한 침대였고, 중간에 뭘 놓을 수도 있었다.김명화가 만약 자기 몸에 손을 대면 원유희는 같이 죽을 각오도 했다.10여 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