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유희는 잠깐 고민하다가 그래도 다시 전화를 걸었다. 그녀는 윤정이 자신의 상황을 파악하려고 전화를 한 것이라고 생각했다.아니면 내가 어디에 있는지 알기 위해서…….다 아닐지라도 필경 윤정은 자기를 위해 김신걸을 찾아갔으니…….“여보세요?”“지금 어때? 안전한 곳으로 갔어?”“네, 친구랑 같이 있어요.”안 물어봐도 영상이 인터넷에서 빠른 속도로 퍼지고 있음이 분명했다.이렇게나 많은 사람이 자신의 추한 꼴을 보았는데 내연녀라는 타이틀을 어떻게 뗄 수 있을까?“그럼 됐어.”한시름을 놓은 윤정은 잠깐 멈췄다가 얘기를 이어갔다.“김신걸 곁에서 영영 떠날 생각은 해봤어?”“……무슨 뜻이죠?”“듣기론 전에 김신걸이 너보고 제성을 떠나라고 했을 때 네가 거절했다면서?”“그때 저희 엄마가 그러니까 저희 외숙모가 갑자기 살해당했어요. 지금까지도 범인을 못 찾고 있어서 남은 거예요.”“윤설의 얘기론, 네가 배 속의 아이를 가지고 협박한 적이 있다고?”이 얘기를 듣자 원유희는 심장은 덜컥 내려 앉았다.“다른 뜻은 아니고 그냥 너희 둘 다 상처받지 않았으면 해서 하는 얘기야.”“관심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부모가 딸을 걱정하는 것은 아주 당연한 일이죠. 더할 얘기가 없으면 이만 끊을게요.”원유희는 윤정이 대답하는 것을 기다리지도 않고 전화를 끊어버렸다.원유희의 낯빛이 안 좋은 것을 발견하자 김명화는 바로 물었다.“어쩌다가 그 사람의 연락처까지 가진 거야? 별로 안 친한 거로 알고 있었는데?”“네, 별로 안 친해요.”원유희의 표정은 차갑게 변했고 얼굴에는 아직도 눈물 자국이 남아있었다.윤정이 자신을 도와줄 거라고 믿은 내가 바보지. 윤설이 그 사람의 친딸인데 어떻게 친딸을 놔두고 자신을 도와주겠어? 그리고 정말로 자신을 믿었다면 이렇게 확인차 전화하지도 않았겠지.모든 사람은 다 자신이 김신걸을 꼬셨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원치 않은 상황에서 강압적으로 일어난 일이라고 하면 그 누구도 믿어주지 않을 것이다. 입장을 바꿔 자신이 대중이라면 역시 믿
원유희는 황급히 몸을 닦고 샤워가운을 입었다.젖은 머리를 하고 나가자 팔짱을 낀 채 침착하게 방을 둘러보는 김명화를 발견했다.“난 또 네가 밤새 씻는 줄 알았잖아.”샤워한 원유희이 낯빛은 아까처럼 창백하지 않았고 얼굴은 분홍빛이 물들었다.그녀는 소파 쪽으로 걸어가서 앉았고 수건으로 머리를 닦았다.“인터넷에서 돌고 있는 거 바로 내리 긴 힘들 것 같아.”“될 대로 되라고 해요. 어차피 김신걸의 목적이 바로 이건데 실컷 웃게 놔두죠.”“김신걸은 정말 미쳐도 제대로 미쳤어.”이 얘기를 듣자 원유희는 속으로 욕을했다. 너도 정상은 아냐. 그 피가 어디 가겠어?“지금 같은 상황에서 좋은 해결 방법은 없어. 그냥 다른 이슈를 찾아내고 댓글을 조작해야지 별다른 방법은 없어. 하지만 윤설은 이미 이에 맞설 경험과 방법이 있을 것이고.”원유희는 폰을 켜서 확인했다. 자신이 계란 맞는 추태를 찍은 영상을 봤고 뒤이어 찾아온 김명화도 다 카메라에 담겼다.그 사람들은 고소장이고 뭐고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고 하고 싶은 대로 계속했다.모든 네티즌은 다 그녀를 욕하고 있었고 댓글에는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로 가득했다.아래로 계속 내려 보다가 옹호하는 댓글들도 있는 것을 본것 같았다…….‘대부분의 네티즌들은 원유희를 욕하는 것을 보고 마음이 몹시 아프고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나머지 네티즌들은 키보드가 없는 것도 아니고 왜 가만히 있는걸까?’그녀의 착각이었다. 욕을 하지 않은 댓글은 존재하지 않았다.원유희는 핸드폰을 저쪽으로 던져버렸다.“그냥 이대로 둬. 피곤해서 자려고 하는데 이만 나가 줄래?”김명화는 눈썹을 치켜올렸다.“아주 긍정적이네.”“그럼 뭐 내가 할 수 있는 거라도 있어?”원유희는 상냥한 말투로 얘기할 수 없었다. 필경 그때 자신이 할수 없이 제성에 남게 된 것에 김명화도 한몫했으니까.“암튼 여기서 자게 해줘서 고마워.”김명화는 멈칫하다가 얘기를 이어갔다.“뭐 힘든 일이 있으면 작은오빠라고 계속 불러 봐. 그럼 내가 마음이 약해질
원수정은 장미선과 통화하고 있었다.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장미선은 이성을 잃은 미친 사람처럼 짖었다.“원수정, 너 어디 잘못된 거 아니야? 복수하려고 그런 말 같지도 않은 말을 지어내서 얘기해? 네가 그런다고 누가 네 말을 믿어줄 것 같아? 정말 윤정 씨랑 엮이고 싶어서 온갖 수단과 방법을 다 쓰는구나!”“믿기지 않으면 이렇게 흥분해야 할 필요도 없잖아.”이성을 잃은 장미선과는 달리 원수정은 침착을 유지했다.마음속의 고통과 괴로움은 오로지 그녀 혼자의 몫이었지만 적어도 겉으로는 아주 덤덤했다.“네가 윤정 씨한테 알려주면 되겠네. 안 믿는다면 유전자 검사를 해도 되고. 아니다, 그냥 내가 유전자 검사 결과를 보내줄까?”원수정은 이 얘기만 하고 바로 전화를 끊어버렸다.그녀는 원래 원유희와 빨리 떠나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하지만 갑자기 그런 일이 터졌고 어젯밤에 그 영상을 보게 되었다.원수정은 밤새 고민하다가 이런 결정을 내렸다. 계란에 맞는 원유희의 비참한 모습을 보니 엄마로서 그녀는 너무 괴로웠고 견디기 힘들었다.싸움이 시작된 이상 죽을 각오를 해야지! 누가 마지막까지 웃을 수 있을지 두고 보자!그녀는 모든 사람 앞에서 떳떳했지만 원유희한테는 너무 미안했다. 전에 속인 적도 있었으니…….벨 소리가 울렸다.원유희한테서 걸어온 전화였고 도둑이 제 발이 저린 원수정은 고민하기 시작했다.그러다가 긴장한 그녀는 목을 가다듬고 전화를 받았다.“유희야, 왜 이른 아침부터 엄마랑…….”원수정의 얘기가 아직 끝나지도 않았지만 원유희는 다급하게 그녀의 말을 잘랐다.“인터넷에서 돌고 있는 영상은 뭐예요? 제가 윤정의 딸이라뇨? 일부러 그렇게 얘기한 거죠? 다 사실이 아닌 거죠? 도대체 지금 무슨 상황이에요?”“다 진짜야…….”원수정의 목소리는 점점 낮아졌다.“어…… 어떻게 저한테 이러실 수가 있어요?”원유희는 이젠 어떻게 받아드려야 할지 몰랐다. 친어머니라는 사람은 도대체 얼마나 어이없고 터무니없는 많은 일들을 자신에게 숨긴 걸까?“나도 어쩔
정말로 그렇다면 정말 어이가 없고 실망하게 될것이다.그리고 어젯밤 윤정이 자신을 의심한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더 아파 났다.그녀가 그의 자식인 것을 뻔히 알면서도 그 사람은 여전히 자신을 의심했고 궁금해 했다.하긴, 사람들의 눈엔 자신과 윤설은 하늘과 땅 차이였고 그녀는 부잣집의 금지옥엽이고 자신은 보잘것없는 천민이었으니까.아무리 친부모라고 할지언정 자식을 공평하게 대할 순 없었다.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그렇다면 그냥 차라리 모르는 척 하는 게 나을 법했다.벨 소리가 뚝 그치자 원유희는 휴대전화를 내팽개쳤다.방에 있던 김명화는 핸드폰을 보며 얘기했다.“짧은 시간 안에 인터넷 실검이 다 없어졌어. 역시 우리 형 능력 하나는 인정해줘야 한다니까. 윤씨 집안을 끌어들이면 다 해결될 줄 진작 알았으면 어젯밤에 바로 그렇게 해야 했어.”“그럼 난 이만 돌아갈게. 어젯밤 신세 지게 해줘서 고마워 .”원유희는 침대 머리맡에 있는 자기 옷을 가지고 욕실로 갔다.욕실에서 나온 후 그녀는 어젯밤에 입고 온 옷을 다시 입었다.“우리 집엔 여자 옷이 없어서 미안.”김명화의 말 뜻은 자기 집에서 밤을 새운 여자가 없다는 얘기였다.원유희는 그러던지 말던지 신경 쓰지 않았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문을 나서자마자 차에서 내리는 라인와 마주쳤다.라인은 그녀가 어리둥절해하는 것을 보고 곧 친근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했다.원유희는 표정 변화가 없는 김명화를 힐끗 처다 보며 얘기했다.“집에 여자 옷은 없는데 오고 가는 여자는 적지 않은가 봐?”“지금 질투해?”“어이없네.”원유희는 그를 한번 째려보고 바로 떠났다.라인은 김명화에게 다가가 그의 시선을 따라 점점 멀어지는 가느다란 뒷모습을 바라보았다.“어젯밤 여기서 잤어?”“응.”“영상에서 널 봤는데, 무슨 계획인데?”“아직 없어.”라인은 김명화의 냉철한 모습을 바라보며 말을 하지 않았으나 마음이 편치 않았다.원유희는 바로 택시를 타고 돌아갔다.동네에 돌아오니 멀리 아래층에서 기다리고 있는 윤정이
집에 돌아온 원유희는 소파에 힘없이 앉아 얼굴을 감쌓다.그녀의 첫 번째 아버지는 시도 때도 없이 난동을 부렸고 두 번째 아버지는 도박 중독자 였다.하여 원유희에게 아버지란 존재는 영원히 느낄 수 없는, 영원히 볼 수 없는 유니콘과도 같았다.그녀는 엄두가 나지 않아서 별로 기대하고 싶지도 않았다.하지만 아버지를 가진 다른 아이를 자신도 모르게 부러워했고 심지어 윤설과 자신을 비교하기까지 했다…….윤설만 아니었다면 원수정과 윤정은 결혼했을 것이고 그들은 남부럽지 않은 행복한 가정을 이루었을 것이다.그렇다고 자기 행복을 윤설에게 빼앗겼다고 생각하는 것이 맞을까?원유희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아버지가 딸을 사랑한 게 무슨 잘못이라고. 게다가 그 사람은 엄마가 임신한 것조차 몰랐으니까.그녀는 그저 아버지 복이 없었을 뿐이었다.난리가 났던 실검은 없어졌고 그 후로 다시 나타난 적도 없었다.윤정은 가끔 그녀에게 전화를 걸어 몇 마디 이야기만 하고 끝냈다. 전화를 자주 걸지 않았고 적당한 선을 지켰다.원유희는 세쌍둥이를 데리고 그녀에게 편안함을 주는 안락한 공간에 숨어 있었다. 그곳을 떠나자마자 수많은 고민이 덮쳐올 것 같아 그녀는 쉽사리 그 공간에서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아, 엉망진창으로 그렸어여! 엄마, 도와줘여…….”유담은 들고 있던 연필을 원유희 손에 쥐여줬고 그녀의 품에 쏘옥 안기며 애교를 부렸다.원유희는 유담을 품에 앉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엄마, 저희랑 같이 놀아여.”조한은 뒤쪽 소파에 올라가 엎드려 머리를 원유희의 어깨에 기댔다.“너희 둘 조금 전 까지 잘 놀고 있었잖아.”“셋이 같이 놀아여.”“잠깐만, 유담이 그림을 먼저 그려주고 놀아줄게.”조한은 작은 입술을 쭉 내밀며 원유희의 볼에 뽀뽀했고 원유희의 볼엔 그의 침이 다 묻었다.인내심이 부족한 조한은 원유희와 얘기했다.“엄마, 핸드폰을 주시면 안 되여? 핸드폰 가지고 놀고 싶어여.”“뭐 하면서 놀고 싶은데?”원유희는 주고 싶지 않은 것이 아니라 그가 함부로 터
“뭐라고해도 너희 둘이 친자매인 것은 사실이잖아. 설이가 언니니까 당연히 마음이 넓게 행동해야지. 같이 밥 한 끼 먹고 예전의 일들은 다 없었던 걸로 하자꾸나.”윤정이 얘기했다.원유희는 묵묵히 듣고 있었지만, 마음속으로는 거부감이 들었다.만약 그녀가 정말로 이 초대에 응한다면 이유는 딱 단 한 가지뿐이다. 바로 윤설과 화해한 후 평온하고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았던 삶을 되찾는 것이다.물론 제성에서 떠나는 것도 포함해서 말이다. 설령 그녀가 자기 친아버지를 알게 되었더라도, 친아버지가 자신을 되찾고 싶어 해도 상관없었다.그녀의 마음속에는 아이들보다 더 소중한 존재가 없었다.원수정을 포함해서 그녀는 그 누구한테도 윤가네에 가서 식사하자는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원유희는 혼자서 약속 장소에 갔다.룸에 들어가자 그녀는 김신걸이 와있는 것을 보고 적잖이 놀랐다.김신걸의 검은 눈은 깊고 날카로운 느낌을 주었고 타고난 압박감으로 원유희는 자신도 모르게 시선을 떨구었다.가족끼리 식사한다고 했으니 김신걸이 온 것도 당연했다. 필경 지금 김신걸은 윤설의 약혼자였으니까.엄밀히 말하면, 그녀는 김신걸을 형부라고 불러야 했다.호칭을 오빠에서 형부로 바꿔야 한다니 정말로 드라마틱했다.물론 김신걸이 모든 것을 알고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순 없었다.“혹시 차가 막혔니? 좀 많이 늦었구나.”장미선의 눈빛은 차갑게 가라앉았다. 그리고 마치 원유희를 곤경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주는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비아냥거리는 것이었다.장미선은 이렇게나마 화를 풀 수밖에 없었다.아무래도 김신걸이 이 자리에 있었기에 그녀는 마음대로 행동할 순 없었다.반면 윤정은 그녀를 보고 기분이 아주 좋았다. “데리러 간다고 했는데, 네가 거절해서 못 갔어. 얼른 와서 앉아.”윤설은 자리에서 일어서서 먼저 원유희쪽으로 다가가 그녀의 손을 잡았다.“네가 내 친여동생이라니. 솔직히 처음엔 좀 당황했는데 이런 게 바로 가족인가 봐! 예전에 자꾸 동생을 낳아달라고 우리 부모님이랑 떼를 썼는데,
어떤 누구도 아이를 지운 얘기를 하지 않았지만 그녀의 얘기는 그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아이를 지운 일을 연상케 했다.원유희은 이곳에 와서 순순히 당해줄 생각도 없었고 말이 나온 김에 지체하지 않고 얘기했다.“저는 제성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가고 싶어요. 하지만 지금은 부담이 너무 커서 갈 수가 없네요.”그녀의 맑은 눈동자와 김신걸의 검은 눈동자가 마주쳤다.“형부, 이제 제 형부가 되었는데 혹시 도와주실 수 있을까요?”김신걸은 어마어마한 포스를 유지하며 아무 말 없이 그녀를 바라보았다.조용한 공간에는 미묘한 신경전이 벌어졌다. 앉아있던 이들은 저마다 다른 표정은 짓고 있었다.윤정은 그녀가 이 말을 꺼낼 줄 몰랐다.아버지로서 그는 원유희가 떠나는 것을 원하지 않았고, 그녀가 자기 곁에 있기를 원했다.그는 지금처럼 식사하는 것을 좋은 출발점이라고 생각했다.윤설이 제일 먼저 입을 열었다.“제성에 있으면 얼마나 좋아? 제성에 있으면 가족들도 너를 돌봐줄 수 있는데 밖에 나가면 누가 널 도와주겠어? 그리고 나는 너의 언니고 신걸 씨는 너의 형부인데 어떻게 동생이 힘들어하는 것을 보고만 있겠어?”“맞는 말이야. 네가 제성을 떠나면 모르는 사람은 다 내가 널 미워하는 줄 알겠다 얘.”장미선은 덧붙여 얘기했다.김신걸이 입을 열기도 전에 그들이 다 해결해버렸다.원유희는 도저히 그녀들의 심리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녀를 싫어하면서 굳이 곁에 두려는 이유는 뭘까?아니면 뭐 보이는 곳에 적을 놔두어야 더 안심되는가?그녀는 김신걸의 통제 구역에 있으면 숨만 막히고 안심할 수가 없었는데…….윤정은 그녀에게 와인을 따라주며 말했다.“아빠 곁에 있어 줘, 무슨 일이 있으면 아빠가 다 해결해줄게.”그들을 바라보는 윤설의 눈빛에는 질투가 담겨있었다.남편이든 아버지든 그녀는 다 자신 개인의 것이라 생각했고 원유희의 존재 자체를 증오하고 혐오 했다.“그렇죠.”김신걸의 짧은 얘기론 도저히 그의 속마음을 알 수 없었다.원유희는 황급히 그를 한
원유희도 지금 자신의 마음을 잘 몰랐고 그 순간 진실을 알게 된 그녀는 원수정을 대신해서 불만을 품기 시작했다.또한 자신을 위해 억울함을 호소하기도 했다.엄마, 아빠는 다 눈앞에 있지만 가정을 이룰 수 없는 신기한 상황.마치 다른 사람들의 부모님이 이혼하고 재혼한 상황과 흡사했다.그들에겐 새로운 가족이 생겼지만 아이는 혼자 힘없이 떠돌아다녔다.앞으로 원수정이 누구와 결혼하면 그땐 정말로 그런 상황으로 될 것이다.“저희 엄마한테 아직도 감정이 있어요?”원유희가 물었다.윤정은 그녀가 갑자기 이것을 물어볼 줄 몰랐고, 말문이 막혀버렸다.원유희는 그의 침울한 표정을 보고 멈칫했다가 다시 물었다.“혹시 윤설을 위해 재혼한 거예요?”윤정은 여전히 말을 하지 않았다.하지만 원유희는 해답을 찾은 것과 별 차이가 없었다.김명화한테서 들은 건 들은 거고 그녀가 직접 물어봐서 확인한 것은 또 다른 느낌이다.결과적으로 보면 윤정은 운이 좋았다.애초에 원수정은 그에게 자신이 임신했다고 말하지 않았으니 윤정은 선택할 필요가 없었다.원유희도 윤정에게 애초에 선택의 기회를 줬다면 어떻게 될지 상상이 안 갔다. 그건 이미 비현실적인 가설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녀는 이런 비현실적인 얘기를 윤정에게 물어보고 싶지 않았고 윤정을 곤란하게 만들고 싶지도 않았다.“네 엄마가 널 임신한 걸 나에게 알려줬다면 내 선택은 달랐을 거야.”윤정이 말했다.원유희는 의아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윤정은 손으로 그녀의 머리를 만지며 그의 부성애를 보여줬다.“나에게 딸이 하나 더 있는 줄도 몰랐고 그 딸이 이렇게 훌륭하게 자란 것도 몰랐네.”원유희는 다소 불편한 기색을 보였다.“아뇨, 전 하나도 훌륭하지 않은걸요. 특히 윤설과 비교하면…….“내 딸이 어디가 뭐 어때서? 그리고 유희야, 넌 그 누구랑도 비교할 필요가 없어. 아빠 눈에는 네가 제일 멋있고 대단해.”원유희는 반박하지 않았고 심지어 이런 교육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아버지로부터의 낯선 교육.“케임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