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를 치료하는 시간은 무척 길었고 주위의 공기까지 이상하게 변했다.입이 바싹 마르는 어색함을 달래기 위해 유희가 입을 열었다.“김신걸은 이미 내가 제성을 떠나는 것을 허락했어요.”면봉을 든 원식은 손을 살짝 떨더니 2초 후에 계속 약을 발랐다.“떠나려고요?”“네, 아이들이 여기에 있으면 어쩔 수 없어서요. 들킬지도 몰라요…….”유희는 시선을 떨구며 말했다.사실 아이들이 없었어도 그녀는 제성에 남지 않을 것이다.그녀는 이곳을 떠날 것이다.서로 다른 도시에서 만날 확률은 더욱 작았다.“떠날 거예요?” 원식이 물었다.“……네…….”유희가 대답했다.원식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고 마치 의견을 보류하는 것처럼 순간 조용해졌다.그는 반창고 하나를 뜯어서 상처에 붙이며 당부했다.“당분간 상처가 아물 때까지 물에 닿으면 안돼요.”“알았어요.” 유희는 소매를 내렸다.“고마워요…….”“언제 떠날 거예요?” 원식은 그녀를 문밖으로 배웅할 때 물었다.유희는 멈칫했다.“시간은 아직 안 정했어요. 아마도 우리 엄마를 죽인 범인을 알아낸 후에 떠날 거예요…….”사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아이들의 존재를 아는 명화 쪽이었다.그녀가 미리 떠날 것이라고 말한 것은 그저 모든 애매한 감정이 싹트기 전에 잘라버리고 싶었던 것이었다.또는 원식에게 들려주고 싶어서, 아니면 자신에게…….“갈게요.” 유희는 몸을 돌렸다.“아이들에 관한 일을 김신걸 씨에게 말할 생각은 안 해봤어요?” 원식은 뒤에서 그녀에게 물었다. 그의 목소리는 평온하고 냉정하며 조금도 그녀를 핍박하지 않았다. 마치 그녀의 의견을 묻는 것 같았다.유희는 발걸음을 멈추며 돌아서 그를 보았다. 그녀는 표정이 망연했다.“유희 씨는 자신의 미래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나요?”원식이 또 물었다.미래?누구도 유희에게 이렇게 물어본 적이 없었다.세 아이를 데리고 평생을 살아야 한다는 것은 그녀의 본능적인 생각인 듯 절대 틀리지 않았다.그러나 그녀는 그것은 세 아이가 있기 때문에
모성애를 필요한 나이가 이미 지난 유희는 아무런 감동도 느끼지 못하고 묵묵히 손을 뺐다.수정은 그녀의 차가운 태도에 개의치 않는 듯 기뻐하며 그녀에게 말했다.“엄마 이혼했어!”유희는 이해할 수 없단 듯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이혼이 그렇게 기뻐할 일인가?틀림없이…… 돈을 많이 받았겠지.“내가 이만큼의 돈을 받았다…….”수정은 손가락 두 개를 내밀었다.“그리고 별장 한 채.”(그럼 그렇지.)“유희야, 이제 여기서 살지 말고 엄마랑 별장에 가서 지내자! 또 도우미 아줌마 하나 찾아서 말이야. 우리 얼마나 편안하게 지낼 수 있겠어!”수정이 말했다.“내가 너한테 말하지만, 앞으로 김영이 다시 돌아오라고 빌어도 난 안 가! 내가 그의 생각을 모를 줄 알고? 일찌감치 나랑 선을 긋고, 나중에 김신걸과 화해하려는 거지. 특히 김신걸이 너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그 윤설이란 여자가 생겼다는 것을 알았으니 돈을 좀 써서라도 나와 이혼하려는 거야!”확실히 그랬다.유희 지금의 상황을 보면 똑똑한 사람은 그녀와 관계를 그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한테 재앙이 닥칠 것이다.그녀는 김가네 사람들이 얼마나 음흉한 지에 대해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지금은 그럴 힘도 전혀 없었다.그녀는 신발을 갈아 신으며 거절했다.“난 여기에서 지낼 테니 엄마만 이사 가요!”“왜? 유희야, 너는 내 딸이야. 엄마랑 함께 가야지!”수정은 기분이 안 좋았다.“엄마는 이미 잘못을 깨달았어. 나한테 보상할 기회를 주면 안 되겠니?”유희는 무뚝뚝하게 그녀를 바라보았다.“저도 이미 다 커서 그러실 필요 없어요. 제가 알아서 잘 살 수 있어요. 그리고 지금은 전보다 훨씬 좋아졌어요. 적어도 집이 있어서 집세를 내지 않아도 돼요. 이거면 충분히 만족해요.”“채아는 네 친엄마도 아닌데 여기서 살면 뭐가 달라질게 있다고.”수정은 입에서 나오는 대로 말했고 유희의 안색이 별로 좋지 않은 것을 보고 차분히 말했다.“엄마는 그런 뜻이 아니라…….”유희가 말했다.“이사한 후에 다
유희는 이내 어색함을 느꼈다.“좋은 아침이네요.”“좋은 아침.”문에 들어서자 삼둥이는 그녀에게 달려들며 앳된 소리로 '엄마'라고 소리쳤다.그녀는 아침을 아직 안 먹었으니 그들 다섯과 같이 먹었다.식탁 앞에 앉자 상우가 물었다. “엄마, 무슨 걱정 있쪄요?”“어?” 뜬금없는 물음에 유희는 멈칫하다 무의식 중에 원식을 바라보았다.원식은 아무렇지 않아 하며 그저 눈 밑에는 방관자의 웃음을 띠고 있었다.“엄마 잠을 잘 못 잔 것 같아요.”유담이 말했다.“누가 엄마 괴롭힌 거예요?” 조한은 일부러 흉악한 표정을 지었다.“아니, 엄만 어젯밤에 잘 잤는걸.” 유희는 자신의 얼굴을 만졌다.(티가 그렇게 나나?)비록 이렇게 말했지만, 삼둥이는 세 쌍의 큰 눈으로 그녀를 똘망똘망 쳐다보고 있었다.그녀가 한 말을 의심한 건지 눈을 의심한 건지 몰랐다.“빨리 밥 먹어.” 유희는 그들이 다시 물어볼까 봐 이내 화제를 돌렸다.삼둥이는 더 이상 유희를 물어보지 않고 귀여운 주먹밥을 먹었다.밥을 먹고 그들은 짧은 다리를 걷어차며 펭귄처럼 의자에서 뛰어내렸다. “엄마 아빠, 우리 학교에 갈게용!” 삼둥이는 이구동성으로 말했다.뒤이어 그들은 작은 책가방을 메고 아주머니를 따라 스쿨버스를 타러 나갔다.유희는 자주 그들이 한 가족처럼 조화롭다는 착각을 하곤 했다.이것은 그녀를 더욱 난처하게 했다.유희는 원식의 차를 타고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하지만 그는 지하철역 부근에서 멈추지 않았다.“지났어요.” 유희가 그에게 말했다.“회사로 데려다 줄게요. 미리 내려줄게요.”원식이 말했다.“그래요.”“어젯밤에 잠을 잘 못 잤어요?” 원식은 삼둥이와 같은 질문을 했다.이로 인해 유희는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그녀는 차창 밖을 바라보며 눈을 깜박거렸다.“내 잘못이에요.”원식이 말했다.왜 잠을 잘 못 잤는지 그는 속으로 대충 이미 알고 있었다.유희는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확실해요? 저한테 아이가 셋이나 있는데요…….”“지금 선택권
어떤 남자가 이런 조건의 여자를 선택할까?“그리고 원식 씨에게 폐를 끼칠 수도 있고…….”그녀의 걱정은 사실이었다.전에 김신걸의 행동은 이미 모든 것을 증명했다.“유희 씨를 지켜주고 싶어요.”이 말을 들은 유희는 흠칫 놀랐고 마음속의 그 벽은 충격을 받아 곧 무너질 것 같았다.회사에서 조금 떨어진 거리에 도착하자 유희는 차에서 내렸다.원식의 차가 다른 차들과 함께 달리는 것을 보고 나서야 그녀는 회사 방향으로 걸어갔다.그녀는 분명히 거절하려고 했다.그러나 원식과 마주했을 때 그녀는 또 거절하는 말을 하지 못했다.-- 지켜주고 싶어요.이 말은 줄곧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었다.유희는 자신이 그렇게 강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세 아이의 엄마였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원식은…… 그녀의 연약함을 알아본 것일까?그녀도 누군가가 그녀의 기둥이 되었으면 했다.그러나 신걸을 생각하면 그녀는 당황하고 불안했다.재무실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아 핸드폰이 울렸다.유희는 문자를 확인하니 원식이 보내온 사진을 보았다.삼둥이가 유치원 안에서 즐겁게 놀고 있었다.사진을 보면 원식이 창밖에 서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유희는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가슴이 두근두근 뛰며 어떻게 답장해야 할지 몰랐다.안 보내 기에는 또 마음이 편하지 않을 것 같았다.그녀는 문자를 입력했다가 삭제했다.그래서 그녀도 원식처럼 자신이 컴퓨터 앞에서 일하는 사진을 보냈다.문자를 보내자 팀장이 다가왔다.[유희 씨, 내 사무실에 가서 청소 좀 해요.]유희는 핸드폰을 내려놓고 사무실로 갔다.그녀는 책상과 바닥에 엎어진 커피를 보았다.정말 어이가 없었다.이 일은 원래 청소 아주머니가 해야 하는데 그녀를 찾는 것은 틀림없이 그녀를 싫어했기 때문이다.심지어 그녀는 누군가가 일부러 이 커피를 쏟았다고 의심했다.그렇게 작은 컵에서 이 어떻게 여기저기 커피를 쏟을 수 있겠는가! 이것은 논리에 맞지 않을 정도로 많은 양의 커피가 필요로 했다!“왜요, 일 시키면 안 돼요?
유희는 생각했다. 어쩐지 그날 화장실 밖에서 만청이 자신의 남편이 집에 없다고 말하더라니, 원래 이런 뜻이었군.만청은 오후 내내 나타나지 않았고 곧 퇴근할 때에야 재무실로 돌아왔다. 그녀는 원한을 품은 눈빛으로 유희를 바라보았다.“유희 씨, 내 사무실로 와요.”유희는 사무실로 갔다.“당신이 한 일이죠?” 만청이 물었다.“뭐가요?” 유희는 무고한 척했다.“모르는 척하는 거예요? 내부 교류 포럼의 일을 아는 사람은 유희 씨 말고 다른 사람이 없어요!”만청이 말했다.“팀장님, 사건을 누설한 사람을 찾는 게 아니라 먼저 법을 어긴 일에 대해 반성해야죠.” 유희는 침착하게 말을 마치고는 만청이 일그러진 얼굴로 화를 내든 말든 상관하지 않고 사무실을 나섰다.아무튼 사태는 무척 심각했다.다음 날 오전, 주주총회가 열렸다.유희는 동료들의 입에서 드래곤 그룹 권력자까지 왔다는 말을 듣고 신경을 곤두세웠다.김신걸도 여기에 오다니…….그녀와 연관된 건 아니겠지? 그녀는 가만히 숨어있기만 했으니…….그러나 나쁜 예감은 항상 틀리지 않았다.“유희 씨, 회의실로 좀 와요.” 유희는 전화로 비서실에서 들려오는 지시를 듣고 몸을 떨었다.그녀는 어쩔 수 없이 가야 했다.그녀는 회의실 문을 두드렸다.신걸은 대표의 자리에 앉아 기세가 무섭고 검은 눈동자는 예리했다.아래는 김영과 김덕배 부자가 앉아 있었다.덕배는 유희를 보자마자 당장이라도 그녀를 잡아먹으려 했다.명화는 아무런 표정도 없었고 자신의 감정을 완전히 숨겼다.김영이 물었다.“포럼의 일은 당신이 보낸 거야? 두려워할 필요 없어. 맞으면 맞는다고 말해.”유희는 입술을 오므렸다. 그들은 분명 게시물 올린 사람을 일부러 찾아낸 게 분명했다.“맞아요. 회사 돈이 도둑맞은 걸 발견했으니 그냥 외면할 수 없었어요.”유희가 말했다.덕배는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신걸이 현장에 있었기에 그는 화를 낼 수 없어 험상궂은 표정을 지었다.“이렇게 된 이상 너도 더 이상 할 말은 없겠지?” 김영은 덕
명화의 어깨를 넘어 그녀는 음산한 검은 눈동자와 눈이 마주쳤다.놀란 유희는 안색이 점차 변하며 명화를 밀어냈다.명화는 금방 그를 발견한 척하며 웃었다.“형님이었군요, 신경 쓰지 마세요. 참을 수 없어서요.”“명화야, 너도 신분이 있는 사람이야. 이런 여자는 네 몸값만 떨어뜨리고 집안에 불행을 가져다줄 뿐이야. 네 아버지가 가장 좋은 예지.” 신걸은 냉담하게 입을 열었다.겉으로는 명화를 훈계하고 있지만, 사실은 유희를 폄하하고 모욕하고 있었다.“네, 알았어요.” 명화가 웃으며 말했다.그는 영원히 말 잘 듣는 동생 같았다.유희는 그의 본질이 얼마나 사악한지 알고 있었다.“내가 다시 한번 이런 행위를 발견하게 된다면 너희들도 여기에 남아 있을 필요가 없어.”신걸은 경고를 한 후 곧장 떠났다.그는 차갑고 매서운 눈빛으로 유희를 스치며 유희는 온몸이 떨려왔다. 마치 얼음장에 있는 것 같았다.신걸이 엘리베이터에 들어가 사라지자 공기 중의 압박감은 흩어졌다.유희는 명화랑도 말을 하고 싶지 않아 몸을 돌려 떠났다.“비록 내가 널 방임하고 있지만, 네가 나 몰래 수작을 부릴 수 있다는 것은 아니야. 유희야, 다음은 없어.” 명화는 감정을 알 수 없는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유희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그가 말한 말속의 위협을 잘 알고 있었다.만청은 해고되었고 새로운 재무실 총 팀장이 왔는데, 고선덕이라고 드래곤 그룹에서 왔다고 한다.신걸과 관련되기만 하면 유희는 온몸이 불편했다.마치 그 위험한 남자와 어떤 간접적인 관계라도 생기면 그녀는 깊은 심연에 빠질 것만 같았다!선덕은 취임하자마자 부서에서 작은 회의를 열었다.그는 보기에 매우 상냥했고 만청처럼 엄숙하지 않았다. 담임 선생님처럼.이는 부서의 사람들을 매우 기쁘게 했다.그러나 유희는 조금도 홀가분하지 않았다.김풍 그룹의 매우 중요한 자리에 배치될 수 있는 사람은 무조건 신걸의 유능한 수하일 것이다.얼굴의 웃음은 아마도 피도 보이지 않고 사람을 죽이는 칼일 것이다.그러나
만약 손을 거두지 않는다면 그녀는 두 사람의 관계를 묵인한 거 아닐까?유희는 그곳에서 기계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다…….“우리 부모님이 유희 씨와 식사하고 싶으시데요.” 원식이 말했다.“네?” 유희는 의아해하며 이내 긴장을 했다.원식은 그녀의 손을 꼭 쥐었다.“괜찮아요, 단지 식사일 뿐이에요. 긴장할 필요 없어요.”“부…… 부모님께 말씀드렸어요?”“밥 먹은 다음에요.”유희는 그의 진지한 모습을 보고 그가 어떤 이유로 부모님을 설득할지 상상하기 어려웠다.“부모님이 유희 씨더러 시간을 정하라고 하셨어요.”유희는 표가네 어르신들 이렇게 그녀를 존중할 줄은 몰랐다. 이렇게 되면 그녀는 마음속으로 더욱 그들에게 떳떳하지 못했다.“내일은 어때요?” 원식이 그녀를 도와 정했다.“이…… 이렇게 빨리요?” 유희는 더욱 긴장했다.원식은 가볍게 웃으며 눈빛은 총애를 띠고 있었다.“그냥 밥만 먹는 거뿐이에요.”“아…….”유희는 입술을 오므렸다.그들과 식사하는 것도 너무 빨랐다…….왠지 원식이 그녀가 도망갈까 봐 급해하는 것 같았다.그가 그녀에게 이렇게 모든 것을 바칠 가치가 있을까?요즘 남자들은 모두 집안이 비슷한 여자를 찾아 결혼하지 않나?“놀랐어요?” 원식이 물었다.“네…… 좀 빠르네요.”“우리 알고 지낸 지 벌써 한 달이 됐어요. 저번에 우리 어머니와 밥까지 먹은 거 잊지 마요. 그때 유희 씨는 이미 내 여자 친구였잖아요.”원식이 말했다.유희는 머뭇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녀는 확실히 원식의 어머니와 밥을 먹은 적이 있었다. 비록 그것은 우연이었지만, 그의 어머니는 그녀를 매우 좋아하는 것 같았다. 심지어 그들 단둘이 있으라고 핑계까지 대며 자리를 피해주기도 했다.그래도 재밌었다.“그럼 지난번 일 때문에 부모님께서 별 다른 말씀은 없으셨어요? 아무래도 우리 고모 때문에…….”“유희 씨랑 상관없는 일이잖아요. 부모님은 유희 씨라는 사람, 그리고 나의 안목에 더 신경 쓰는 분들이에요.”식사 시간은 정말 다음 날 저녁으로
위치를 보자마자 그녀는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고 손이 떨리면서 핸드폰이 땅에 떨어졌다.“왜 그래요?”원식이 물었다.유희는 정신을 차리고 이내 핸드폰을 주우며 말했다.“부주의로 떨어뜨렸어요. 나한테만 까주지 말고 원식 씨도 먹어요.”원식은 손에 있는 일회용 장갑을 가리키며 부드럽게 그녀를 바라보았다.유희는 얼굴이 빨개지며 이내 원식의 부모님을 보았다.그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척했지만 얼굴에는 숨길 수 없는 웃음기가 있었다.그녀는 어찌 그의 부모님 앞에서 애정을 과시할 수 있겠는가.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정도로 긴장하고 있을 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밖에 있던 종업원이 들어와서 허리를 굽히며 의봉에 귓가에 무슨 말을 했다.유희는 의봉의 안색이 약간 변하는 것을 보았다.이때 나지막하고 위압적인 목소리가 들려왔다.“표 이사, 내가 방해하진 않았겠지?”유희는 그의 소리만 들어도 안색이 이미 하얗게 질렸다.그녀를 입구의 키가 훤칠하고 건장한 남자를 보자 눈동자마저 움츠러들었다.그리고 몸이 나른해져서 뒤로 휘청거렸다.원식은 한 손으로 그녀의 등을 받치며 눈빛으로 그녀를 위로했다.그도 이렇게 신걸과 마주치는 것이 너무 갑작스러운 우연이라 생각했다.그는 유희가 그의 부모님에게 괜찮은 인상을 주게 하고 싶었는데, 결국…….의봉은 즉시 일어나 웃으며 신걸과 악수하러 갔다.“그럴 리가요, 김 대표님도 이곳에서 식사를 하고 계실 줄은 몰랐네요. 만약 미리 알았다면 일찍 가서 인사를 했을 것인데, 실례했군요.”나이로 말하면 의봉은 신걸보다 훨씬 많았다.이로부터 알 수 있는바, 모든 예의는 권세의 크기에 따라 등급을 나눴다.“표 이사는 별말을 다하는군.” 신걸은 수빈, 원식을 한 번 보더니 결국 유희의 몸에 시선이 떨어졌다.유희는 마치 수많은 날카로운 칼들이 그녀를 향해 찌르는 듯한 무서움을 느꼈다. 몸 옆에 늘어진 손은 주먹을 쥐어야 기절하지 않았다.그녀는 신걸이 나타난 목적을 꿰뚫어 보지 못했다.정말 표가네와 인사만 하려는 것일까
육성현은 흠칫 놀랐다. 그러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내가 누구를 죽였다고 그래? 혜정아, 다 오해야. 나 지금 다 고쳤어. 진짜야, 어서 내려와. 물만두가 식겠다.”“오지 마!”엄혜정은 감정이 격해져서 소리쳤다.“다가오면 뛰어내릴 거라고 얘기했어!”“그래, 안 갈게.”육성현은 감히 다가가지 못했다.“혜정아, 진짜야. 난 사람을 죽이지 않았어. 우선 먼저 내려와. 내려오면 내가 다 설명해 줄게. 다 오해야.”“사실 처음부터 수상하다고 생각했어. 그냥 유희의 말이 날 깨닫게 했을 뿐이야.”엄혜정은 눈물이 그렁그렁했지만 눈물을 흘리지는 않았다. 그녀는 육성현을 바라보면서 얘기했다.“근데 나 지금 다 알게 됐어. 증거는 없지만 넌 김하준이잖아. 난 적어도 아이를 위해서 네가 달라질 거라 기대했어. 근데, 넌 어떻게 네 아이의 외할머니랑 외할아버지를 죽일 수 있어? 김하준, 넌 도대체 정체가 뭐야? 세상에 어떻게 너 같은 괴물이 다 존재해?”“혜정아, 내려와서 천천히 얘기하자, 응? 거긴 너무 위험해.”“제일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이 죽은 기분을 모르지? 너도 한번 느껴봐야 해.”엄혜정은 떨어지는 눈물과 함께 베란다에서 뛰어내렸다.“안돼!”육성현은 고함을 지르며 달려갔다. 하지만 엄혜정의 옷자락도 미처 잡지 못했다.그는 엄혜정이 바닥에 떨어지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고, 그녀의 몸에서 피가 흘러나오는 것을 목격하게 되었다.밑에 서 있던 하인 중 그 누구도 엄혜정을 받아내지 못했다.“다 죽일 거야!”육성현은 미친 듯이 달려갔고, 눈에 거슬리는 하인들을 모조리 걷어차 버렸다. 그는 엄혜정 옆으로 기어가 부드럽게 그녀를 품에 안았다.“혜정아, 혜정아. 병원에 데려다줄게. 아무 일도 없을 거야!”엄혜정은 눈을 떴다. 그녀의 머리는 피투성이가 되었고, 초점이 점차 사라지는 눈으로 육성현을 바라보았다.“김하준, 다음 생이 있다면, 난 다시는 널 만나지 않을 거야…….”이렇게 한마디만 남기고 엄혜정은 숨을 끊게 되었다.“그래, 만나지 마,
퇴원한 후, 엄혜정은 방에 혼자 남았을 때 원유희에게 연락했다.“유희야, 괜찮아? 김명화가 널 납치했다고 들었는데, 구출됐다고?”“응, 괜찮아. 지금은 집에 도착했어.”“다행이다.”원유희는 그녀의 정서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채고 물었다.“왜 그래? 기분이 안 좋아?”“부모님이 돌아가신 일 말이야. 나 다 알게 됐어.”원유희는 순간 멈칫했다.‘다 알았다고?’“미안해 혜정아, 숨기는 게 아니었는데.”“괜찮아, 나랑 아이를 생각해서 숨긴 거잖아.”엄혜정은 잠시 멈췄다가 다시 물었다.“네가 김명화를 죽였어?”“아니. 그날에 크루즈에서 김명화가 도망쳤거든. 우리가 김명화를 찾았을 땐 이미 주검으로 됐어. 그 주검도 바다에서 건져낸 거야.”“육성현도 있었지?”“응, 얘기해줬어?”엄혜정은 덤덤하게 물었다.“육성현을 의심해 보지 않았어?”원유희는 흠칫했고 아무런 얘기도 할 수가 없었다.“김명화를 죽인 사람, 그리고 우리 부모님을 죽인 사람 말이야…….”“그럴 리가?”원유희는 당황했다. 그녀는 엄혜정이 왜 육성현을 의심하게 됐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무슨 단서라도 발견한 거야? 아니면 그렇게 복잡하게 생각하지 마.”“유희야, 저 사람 진짜 육성현이 아니잖아. 김하준이라고. 나 그 사람 잘 알아.”엄혜정은 목이 메였지만 울먹이면서 끝까지 말했다.“난 그 사람 고칠 줄 알았어, 적어도 아이를 위해서…….”“혜정아, 아직 조사하고 있어.”“그럼 너희들도 육성현을 의심하고 있다는 얘기잖아, 맞지?”“오해일 수도 있어.”“오해일 리가 없어.”엄혜정은 말을 마치고 바로 전화를 끊었다. 원유희가 다시 전화를 걸어오자 그녀는 아예 핸드폰을 꺼버렸다.그리고 시체처럼 무기력하게 아래층으로 내려갔다.엄혜정은 서재에서 나온 육성현을 보면서 얘기했다.“나 물만두 먹고 싶은데, 사다 줄래? 예전에 빈민가에서 자주 사주던 물만두 말이야.”“그래.”육성현은 엄혜정의 머리를 어루만지며 말했다.“먼저 우유 좀 마시고 있어. 금방 갔다 올게.”
육성현은 엄혜정을 끌어안았다.“김명화가 죽었대. 복수한 셈이나 마찬가지야. 그러니까 네가 무사히 지내야 장인어른 장모님이 안심하시지 않겠어? 침착해.”엄혜정은 울면서 그의 품에 쓰러졌다.그러고는 배가 간간이 쑤시자, 엄혜정의 얼굴은 하얗게 질렀다.육성현은 그녀의 상황을 바로 눈치채고 기사에게 소리쳤다.“얼른 병원으로 가!”“얼른!”염민우도 재촉했다. 그는 얼른 엄혜정의 손을 잡았는데, 그녀의 손이 얼음처럼 차갑다는 것을 발견했다.“누나, 아직 나도 있잖아. 그러니까 아무 일도 생기면 안 돼. 누나, 꼭 버텨줘.”엄혜정은 눈에 눈물을 머금고 그를 보고 있었다.그녀는 마음이 몹시 괴로웠고,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었다.‘난 부모님을 가질 자격이 없는 걸까……?’엄혜정이 깨어났을 때 그녀는 이미 병원에 있었다. 깨어나자마자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배를 만졌다.육성현은 그녀의 손을 잡았다.“지금 안정을 취해야 한대.”엄혜정은 주위를 둘러보았다.“민우는?”“밖에 있어. 너무 걱정되서 안절부절못하고 있어.”엄혜정은 육성현의 손에서 자기 손을 뺐다.“두 사람 너무해. 이렇게 큰일을 어떻게 나한테 숨길 수가 있어? 평생 숨길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 육성현, 우리 부모님의 목소리를 합성해서 나랑 통화하게 했어? 네 아이디어지? 넌 아이를 위해서라면 뭐든지 다 할 수 있잖아!”“혜정아, 어차피 일은 벌어졌고, 너한테 알려준다고 해서 달라질 건 없어. 네 옆에는 나랑 아이가 있고, 민우에게 남은 가족이라곤 너밖에 없어. 너한테도 무슨 일이 생기면, 민우는 더 고통스러워질 거야.”엄혜정은 말을 하지 않았고, 눈물이 그렁그렁했다.엄혜정도 염민우가 더 고통스러워질 것을 잘 알고 있었다.그때 엄혜정은 염민우가 갑자기 엄청나게 말라갔던 것이 생각이났다. 엄혜정은 염민우의 일이 바쁜 줄로만 생각했는데, 이제야 그때 부모님이 돌아가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염민우는 모든 것을 혼자 감당하고 있었다.“울지 마. 의사가 지금은 안정을 찾아야 한다고 했어.”
“알았어요…….”염민우는 고개를 들었다. 그러다가 입구에 서 있는 엄혜정을 보고 깜짝 놀랐다.“누…… 누나. 여긴 어쩐 일이야?”엄혜정은 멍하니 거기에 서서 염민우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방금 얘기하고 있던 사람을 봤다.“하늘나라라뇨? 저희 부모님이 왜 하늘나라에 계셔요?”“아니야, 다른 사람의 얘기를 하고 있었어.”엄혜정은 두 사람의 얼굴에서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것을 발견했다.그녀는 똑똑히 들었다. 엄혜정은 얼굴이 하얗게 질렸고, 다급하게 핸드폰을 찾았다.핸드폰을 못 찾자 바로 차로 뛰어갔다.“누나!”염민우는 엄혜정을 쫓아갔다.“뭐 하려고 그래?”“엄마 아빠한테 전화할 거야.”“지금 여행 중이시니까, 방해하지 않는 게 좋지 않을까?”엄혜정은 그를 보면서 물었다.“사실대로 얘기해줘. 엄마 아빠 왜 아직도 돌아오시지 않은 거야? 거짓말하지 마! 사실 줄곧 이상하다고 생각했어. 내가 임신했는데 엄마랑 아빠가 계속 안 오시는 게 말이 안 되잖아! 두 분 무슨 일이 생긴 거 맞지? 정말로…… 무슨 일이 생긴 거야?”염민우는 북받쳐 오르는 감정을 꾹 참고 말했다.“더 이상 묻지 마…….”“염민우! 계속 우물쭈물 얘기 안 하면, 나 이젠 널 안 봐!”염민우는 더 이상 숨길 수 없다는 것을 직감했다. ‘집에 오는 게 아니었어, 그나저나 아저씨는 왜 또 그런 허튼소리를 해서 참…….’“맞아, 누나 임신 3개월쯤 되었을 때, 누군가에 의해 살해당하셨어.”엄혜정은 몸이 휘청거렸다. 염민우는 바로 그녀를 부축했다.“침착해요! 엄마랑 아빠는 누나가 무사하기를 원하셨을 거야. 난 누나가 못 받아들일 것 같아서 장례식 때 일부러 알려주지 않았어.”엄혜정의 눈에서 눈물이 주룩주룩 흘러내렸다. 그녀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염민우를 바라보았다.“너 이러고도 내 친동생이 맞아? 어떻게 안 알려줄 수가 있어! 아기만 중요하고 부모님은 안 중요할 것 같아? 너…….”너무 충격 받은 엄혜정은 눈앞이 점점 캄캄해지더니 기절을 하고 말았다.“누나!”
육성현이 다가와 물었다.“유희야, 괜찮아?”원유희는 고개를 저었다.“너 안색이 안 좋은데, 왜 그래?”“김명화가 죽었어요.”김신걸이 얘기했다.“해독제는 찾았어요?”원유희는 다시 고개를 저었다.“아쉽네. 그럼 감염된 사람들은 우선 좀 참아야겠어.”원유희는 갑자기 뭐가 생각나 바로 김신걸을 밀쳤다.“날 만지지 마!”육성현은 그제야 원유희의 볼 아래의 병변 부위를 발견했다.“유희야, 김명화가 너한테도 독을 썼어?”김신걸은 미간을 찌푸렸다.“상관없어.”“안돼. 우리 둘다 아이들하고 접촉하지 않으려 한다면 애들이 걱정할 거야.”원유희는 거절했다.김신걸은 줄곧 원유희와 스킨쉽이 있었다. 원유희는 그도 감염되지 않을까 걱정했다.“방금도 널 안았는데, 감염되면 진작에 감염됐어.”김신걸이 말했다.원유희는 그래도 싫었다.“아니, 그래도 만지지 마.”해독제도 못 가진 상황에 김명화는 의문스럽게 죽었다. ‘여기 김명화를 죽이려고 한 사람이 있었단 말이지?’김신걸은 김명화를 죽이라는 명령을 내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의 시체를 바다에 던질 일은 더더욱 없었다.그럼 분명 다른 사람이 한 짓이었다.‘무슨 목적으로? 김신걸도 감염되면 배후의 사람을 어떻게 잡아내지?’‘다른 조직의 사람도 이곳에 숨어 있을지도 몰라.’원유희는 말을 하지 않았다.“내려가자.”김신걸은 원유희의 말대로 몸에 손을 대지 않았다. 원유희가 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자신을 떠날까 봐서 걱정이었다. 김신걸은 더 이상 그런 고통을 견딜 수 없었다.원유희는 김신걸을 따라 떠났다.육성현은 먼 곳에 있는 김명화의 시체를 봤다. 그리고 그가 죽은 것을 확인하고 떠났다.이제 아무도 김명화를 죽인 사람이 육성현이라는 것을 모를 것이다.엄혜정은 이미 임신 5개월 차에 접어들었다. 지금 어떠한 사고도 있어서는 안 되었다.육성현은 잠깐 해독제가 없더라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아이를 낳은 후 다시 생각하려 했다.엄혜정은 소파에 앉아 과일을 먹고 있었다.배는 이미 많이 나
김명화의 말이 끝나자마자 뒤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진선우는 킬러들과 격투하고 있었고, 매번 그들의 치명적인 곳을 공격했다.진선우가 실력이 없었다면, 킬러들은 진작에 그를 해결했을 것이다.김명화는 무엇을 깨닫고 손을 돌려 원유희를 잡으려 했다.원유희는 후퇴하는 동시에 다른 힘에 의해 품에 안겼다.“이거 놔!”원유희는 낯선 남자인 줄 알고 발버둥 치려 했다.“유희야.”원유희는 멍하니 고개를 돌렸고, 익숙한 얼굴을 보자 아주 기뻤다.“김신걸?”“나야.”김명화는 서로 애틋한 두 사람을 보자 화가 더 났다.“원유희, 역시 김신걸에게 단서를 남긴 사람, 너였어.”김명화는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그쪽이 너무 방심한 탓이죠.”‘내가 예전에 김신걸의 곁에서 도망치려고 했던 일이 김명화에게 착각을 준 거야?’“왜, 날 죽이려고? 네까짓 게?”김명화는 말을 마치고 몸을 돌려 다른 출구로 달려갔다.하지만 경호원들은 이미 그곳에 서서 그를 막았다.김명화는 총을 꺼내 쏘자, 한 경호원은 바닥에 쓰러졌고, 다른 경호원은 얼른 옆으로 비켜 숨었다.일반인들은 그 출구를 포기했을 것이다. 김신걸의 사람들이 숨어있었기에, 그 출구는 아주 위험했다.하지만 김명화는 기어코 사격을 하면서 길을 텄다.안에 숨어 있던 경호원들은 피하면서 반격할 수밖에 없었다.경호원들의 반격에 김명화는 하마터면 맞을 뻔했다. 그러다가 몇발 더 쏘고는 바로 달렸다.김명화는 크루즈에 오래 있었다. 하여 갓 크루즈에 올라온 김신걸의 사람들보다 이곳을 훨씬 더 잘 알았다.몇 개의 모퉁이를 돌면 은폐하기 적합한 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김명화는 다시 부하들에게 연락했지만 전화를 받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그제야 김명화는 김신걸의 사람들이 진작에 올라왔고, 자기 쪽 부하들은 아마 얼마 남지 않은 것을 깨닫게 되었다.도망치지 못한다면 김신걸에게 잡힐 것이 뻔했다.김명화는 죽어도 김신걸에게 잡히고 싶지 않았다.그러다가 갑자기 한 사람의 인기척이 났다. 김명화는 본능적으로 총을 들었다
원유희는 지금 약 때문에 힘을 쓸 수 없는 상황이었고, 크루즈 곳곳에는 CCTV가 있었다. 방에 들어올 때, 그 윗부분에 CCTV가 하나 있었다. 그래서 한밤중에 몰래 뭔가를 찾아보는 건 아예 불가능했다.김명화는 일찌감치 그녀가 아무것도 할 수 없도록 만들었다. 하지만 원유희는 떠나기 전에 김신걸에게 단서를 남겨주었기에 그가 곧 이곳을 찾아올 거라 믿었다.다만 김신걸의 속도가 이렇게 빠를 거라 예상하지 못했다.날이 밝는 무렵, 원유희는 헬리콥터 소리를 들었다.이어 문이 펑 하고 열렸고, 원유희는 반응하기도 전에 멱살이 잡혔다.“연락을 어떻게 한 거야?”말을 마치고 원유희의 몸을 수색하려 했다.“아! 미쳤어요? 나 핸드폰 없어요!”“김신걸이 왔다고 널 데려갈 수 있다고 생각해? 죽어서 지옥에 내려가더라도 널 끌고 갈 거야. 가자!”“아니…….”원유희는 힘 없이 밖으로 끌려 나갔다.김명화는 원유희를 다른 방으로 보냈다.“우린 여기서 김신걸이 올 때까지 기다리면 돼.”원유희는 고개를 들어봤다. 입구에는 많은 폭탄이 놓여있었다.그걸로 부족한지 김명화는 원유희의 몸에 폭탄을 묶었다.“미쳤어요?”김명화는 원유희의 얼굴을 꽉 쥐었다.“김신걸이 널 어떻게 구할지 구경이나 하려고 그런다.”원유희는 마음이 매우 불안했다.‘김신걸이 왜 이렇게 왔을까? 너무 눈에 띄잖아.’다시 들어보니 이미 헬리콥터 소리가 나지 않았고, 밖에는 다른 인기척도 없었다.한 남자가 와서 말했다.“헬리콥터가 지나갔어요. 그냥 순찰하다가 지난 것 같아요.”김명화는 멍하니 서 있었다.원유희는 그를 비웃었다.“저 소리에 이렇게까지 놀랐단 말이에요?”“닥쳐!”김명화의 표정은 엄청나게 나빴다.“난 신걸이랑 아이들이 감염되는 거 보고 싶지 않아요. 그래서 연락하지 않을 거고요. 배고픈데 이 폭탄들이나 좀 뜯어줄래요?”김명화가 경각심을 낮추었을 때, 크루즈 밑에서 잠수하던 사람들이 갑자기 튀어나왔다. 10명 좌우로 보이는 사람들은 갈고리를 가드레일에 던지고 밧
원유희는 그를 상대하고 싶지 않았다.김명화가 갑자기 뒤에서 무슨 짓을 할까 봐, 원유희는 그를 등지고 누울 수가 없었다.“너 기억나? 어릴 때 김신걸이 널 괴롭히면 넌 우리 집에 달려와서 내 침대에서 잤잖아.”“기억 안 나요.”“기억하는 거 다 알아. 난 그때 정말 널 도와주고 싶었어.”원유희는 그가 한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고 반박하지 않았다.그녀는 천장을 쳐다보며 말했다.“이전의 김명화는 이미 죽었다고 생각해요.”김명화의 표정은 어두워졌다.“우리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거야?”“내가 제일 아끼는 사람을 죽이고, 어떻게 이런 말을 할 수 있죠? 죽어서 사죄해도 모자랄 판에!”원유희는 지금의 김명화를 조금도 동정하지 않았다.“아무리 유년 시절이 불행해도, 다른 사람의 고통을 낙으로 삼으면 안 되죠!”“정말 고상한 척하네. 김신걸은 사람은 죽인 적이 없대? 육성현은 없대? 왜 걔네들이 사람을 죽인건 용서하면서, 난 용서하지 못하는 건데? 그 사람은 네 남편이고 네 가족이니까? 비겁하고 이기적인 건 너도 마찬가지야.”“참, 너도 사람을 죽였잖아. 네가 죽인 사람도 누군가의 아버지고, 누군가의 아들이야.”원유희는 기분이 착잡해졌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김명화는 원유희의 반응을 보고 가볍게 웃었다.“그러니까 너무 많이 생각하지 마. 그냥 쉽게 쉽게, 편하게 살자.”“이렇게 예전의 저질렀던 일을 합리화하려는 거예요? 그리고 그 명분으로 더 많은 사람을 죽이려고요?”원유희는 김명화를 바라보면서 물었다.“당신을 용서하기 싫은 거 아니에요. 근데 지금까지 자기의 잘못도 모르는 사람을 어떻게 용서해요? 차라리 해독제를 그냥 줘요. 시장에 유통하지 말고요. 그러면 예전에 있었던 일은 없던 거로 할게요.”“정말?”김명화는 원유희를 보면서 물었다.“물론이죠.”원유희는 김명화의 말처럼 깊이 생각하지 않고, 아무렇지 않게 대답을 했다.미래의 일은 그 누구도 알 수 없었다.“그래. 해독제를 줄 수 있어. 근데 대신 넌 나랑 평생 같이
“밥 안 먹으면 너만 손해야.”김명화는 그녀가 꼼짝도 하지 않는 것을 보고 말했다.‘맞네, 아무 것도 먹지 않으면 무슨 힘으로 김명화를 상대하겠어?’잠시 후, 납득이 간 원유희는 젓가락을 들고 생선을 먹기 시작했다.김명화는 그녀가 고기를 입에 넣는 것을 보고 물었다.“어때?”“설마 그쪽이 한 거예요?”원유희는 귀찮다는 듯이 그를 한번 힐끗 쳐다봤다.“맞아, 내가 직접 했어.”‘이게 뭐 자랑할 일인가?’“수고했네요, 이런 일까지 해야 한다니.”“내가 힘들 것 같으면 같이 할까?”“할 줄 모르는데요.”“정말 상전 팔자구먼.”김명화는 원유희를 사랑스럽다는 듯이 바라봤다.원유희는 김명화가 미쳤다고 생각했다. 원유희는 김명화가 자신을 괴롭히고, 김신걸에게 모욕을 주기 위해 이곳에 데려온 줄로 알았다.근데 직접 밥도 해줄 거라는 것은 생각하지 못했다.“설마 요리에 무슨 수작을 부린 거 아니죠?”원유희는 젓가락을 멈추었다.김명화는 손에 있는 젓가락을 흔들었다.“나도 먹고 있잖아.”“먼저 해독제를 먹었겠죠.”“그런 거 아니야.”“그럼 내가 묻힌 진물은? 그건 어떻게 해결한 거죠?”원유희가 물었다.“해독제가 있으니까 괜찮은 거잖아요.”“해독제 가지고 싶어?”“줄 생각은 있고요?”“착하면 줄게.”원유희는 의심스러웠지만 말하지 않았다.어차피 금방 왔으니 당장 해독제를 받을 수는 없었다. 하여 원유희는 일단 참고 해독제를 발견하면 김명화를 바로 제압하는 것을 선택했다.밥을 다 먹고 나머지는 부하가 다 치웠다.“같이 샤워할까?”김명화가 물었다.원유희는 그를 차갑게 보며 말했다.“아니요. 먼저 씻어요.”원유희는 말을 마치고 몸을 돌려 욕실로 들어갔다.원유희는 자신의 감정을 가라앉히고 침착하자고 했다. ‘근데 자는 건 어떡하지? 정말로 같이 자야 해?’원유희는 침대를 봤다. 두 사람이 자고도 넉넉한 침대였고, 중간에 뭘 놓을 수도 있었다.김명화가 만약 자기 몸에 손을 대면 원유희는 같이 죽을 각오도 했다.10여 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