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평녕성으로 곧장 향할 생각이었지만 갑자기 전방 숲속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깜짝 놀란 낙청연은 발걸음 소리를 죽이며 몰래 접근했다.수풀에 들어가자 갑자기 살기가 엄습하며 검 하나가 낙청연의 목에 닿았다.“움직이지 마시오!”상대는 차가운 목소리로 위협하면서 물었다.“랑목 왕자의 진영은 어디요?” 깜짝 놀라 고개를 돌린 낙청연은 천궐국의 병사를 보게 되었다.“난 낙청연이오.”낙청연은 곧바로 입을 열었고 상대는 깜짝 놀랐다.“왕비 마마?”“탈출하신 겁니까? 잘 됐습니다! 바로 저쪽에 왕야가 계십니다!”낙청연은 부진환이 왔다는 소식에 깜짝 놀랐다.그녀는 곧바로 병사를 따라 언덕 뒤에 도착했고 그곳에서 달빛을 받으며 뒷짐을 지고 서 있는 사내를 보았다.“왕야!”낙청연은 감격을 감추지 못하고 외쳤다.부진환은 몸을 흠칫 떨었다. 낙청연의 무사한 모습에 그는 얼굴에 화색을 띠었다.“너...”바로 그때 한쪽에서 갑자기 발소리가 들렸고 심지어 수가 아주 많은 것 같았다.“순찰대가 왔습니다. 왕야, 제가 그들을 유인하겠습니다.”소서는 곧바로 사람을 데리고 다른 방향으로 달려갔다.낙청연이 미처 입을 열기도 전에 부진환이 그녀의 앞으로 달려와 그녀를 끌고 수풀 뒤로 몸을 숨겼다.“사람이 있다! 쫓거라!”순찰하던 만족인들이 낙청연의 앞을 달려가 소서 일행을 잡으러 갔다.주위가 잠잠해진 뒤에야 두 사람은 수풀에서 나왔다.부진환은 긴장한 기색을 드러내며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본왕과 함께 돌아가자.”낙청연이 갑자기 그를 붙잡았다.“전 돌아갈 수 없습니다.”“낙청연, 네가 얼마나 위험한지 알고 있느냐? 랑목이 죽지 않았다고 해서 그를 따라 만족 진영으로 오다니, 그가 너를 속이는 것이라면 어찌할 것이냐?”부진환은 화가 났는지 엄숙한 표정으로 말했다.낙청연은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그가 절 속였든 아니든 상관없습니다. 전 그와 협력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우선 제 계획부터 들어보세요.”낙청연은 그에게 방어 병력
부진환은 깜짝 놀랐다. 그는 미간을 구기며 그녀를 보았다.“태상황의 창용새로 날 제압하려는 것이냐?”부황이 창용새를 낙청연에게 주었다니.낙청연은 강경한 태도로 말했다.“그런 것으로 하겠습니다.”“오직 이 방법만이 왕야를 떠나게 할 수 있다면 제가 창용새를 이용해 왕야를 짓눌렀다고 치겠습니다.”“제 명령을 거역하는 것은 태상황의 명령을 거역하는 것입니다. 섭정왕, 잘 고려하세요.”부진환은 주먹을 꽉 쥐었다. 낙청연의 싸늘한 눈빛을 보니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대체 무슨 이유로 꼭 만족 진영에 남아있으려는 것이냐?”낙청연의 확고한 태도를 보면 분명 그에게 얘기하지 않은 다른 일이 있을 것이다.낙청연은 순간 심장이 철렁했다. 말할 수 없는 비밀이 너무 많았고 낙영에 관한 일도 얘기할 수 없었다.“그런 건 없습니다!”“전 그저 당장 휴전하고 싶을 뿐입니다. 전 더 이상 싸우고 싶지 않습니다.”“만족 내부에 돌파구가 있는데 이렇게 좋은 기회를 그냥 버릴 수는 없습니다. 절 믿으세요!”“전 평녕성에서 수십 일을 버텼습니다. 그러니 만족이 휴전하게 할 수 있습니다!”낙청연은 결연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그 순간 부진환은 속으로 약간 놀랐다.눈앞의 결연한 눈빛의 여인은 아주 강대하고 또 비밀스러워 꿰뚫어 볼 수 없었다.부진환은 미간을 잔뜩 구긴 채로 결국 이를 악물고 승낙했다.“그래, 본왕이 협조하겠다.”그 말에 낙청연은 그제야 마음을 놓은 듯 웃어 보였다.그녀는 곧바로 재촉하며 말했다.“그러면 얼른 가세요. 여긴 너무 위험합니다!”부진환은 그윽한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보다가 몸을 돌려 떠났다.그는 숲속의 어둠 속으로 사라지면서도 자꾸만 고개를 돌려 뒤를 봤다.그의 그윽한 눈빛에는 걱정이 가득했다.낙청연은 그의 모습이 어둠 속으로 완전히 사라진 뒤에야 몸을 돌려 왕의 진영으로 돌아갔다.랑목은 왕의 침상 옆을 지키면서 그에게 세심히 약을 먹이고 있었다.낙청연이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등 뒤에서 차가운 목소리가 들렸다.“청회의
“난 그가 죽길 바라지 않소. 그를 다치게 할 생각도 없었지.”“난 그저 그가 나에게 굴복해 기꺼이 내 노예가 되길 바라는 것뿐이오.”“그런데 그가 원하지 않았소. 그래서 고충을 심어두었지. 그런데도 내게 반항하려 하더군.”“지금까지 살면서 이렇게 고집이 센 사람은 처음이오.”“하지만 그가 계속 버틸 것이라고는 믿지 않소. 내가 팔의 힘줄까지 자른다면 그는 완전히 움직이지 못할 것이오. 그러면 내게 복종하겠지!”“항상 다른 사람의 보살핌이 필요한 개라고 해도 괜찮소.”랑심은 득의양양하게 웃어 보였다. 그녀의 눈동자에서 뜨거운 열기가 느껴졌다.낙청연은 서늘한 눈빛으로 그녀를 보았다.“당신이 괴롭힌 것은 그의 몸뿐이오. 이곳에 갇힌 것 또한 그의 몸뿐이지.”“병사의 영혼은 영원히 굴복하지 않소!”낙청연이 사나운 목소리로 말했다.그 말은 마치 무거운 망치처럼 랑심이 꿈꾸고 있던 달콤한 꿈을 깨부쉈다.랑심은 안색이 파랗게 질리면서 화가 난 얼굴로 그녀를 보았다.돌연 철창 속에 있던 진천리가 웃음을 터뜨렸다.“하하하하하하...”“랑심, 들었소? 당신이 아무리 날 괴롭히더라도 난 영원히 굴복하지 않을 것이란 걸 다들 알고 있소!”철창 속의 진천리는 고개를 들었고 그의 눈빛은 매섭고 날카로웠다.증오는 없고 오직 불굴의 의지만이 느껴졌고, 너무 확고해 절대 움직일 수 없을 것 같았다.랑심은 머리끝까지 화가 치밀었다. 그녀는 낙청연의 어깨를 덥석 잡더니 낙청연을 철창 가까이 끌고 갔다.“영원히 굴복하지 않는다고? 그러면 낙청연을 당신의 앞에서 갈기갈기 찢어도 복종하지 않을 것이오?”“낙청연의 두 눈알을 뽑고 혀를 자르고 사지를 자른다고 해도 굴복하지 않을 것이오?”랑심은 화가 나서 쉰 목소리로 소리를 질렀다.진천리의 눈빛이 돌변했고 낙청연은 웃음을 터뜨렸다.“랑심, 당신은 영원히 천궐국 장병의 굳건한 의지를 깨닫지 못할 것이오.”“당신이 날 괴롭힐 수 있을지 없을지는 고사하고 설령 당신이 날 괴롭힌다고 해도 당신은 그를 굴복시킬 수
“여러 부족 진영이 동시에 습격당했습니다. 지금 적이 어느 방향에서 오고 있는지 알 수 없습니다.”낙청연은 살짝 당황했다. 부진환이 이렇게 신속히 움직일 줄은 몰랐다.그가 만족 진영에서 떠난 지 두세 시진밖에 되지 않았는데 말이다.아마 돌아가자마자 병력을 옮겨 행동을 개시한 듯했다.왕도 살짝 의아한 얼굴이었지만 그는 곧바로 명령을 내렸다.“각 부족은 자신의 진영을 지키고 전력을 다해 적을 막되 성급히 움직이지 말아야 한다. 적이 유인 작전을 펼치는 것일 수도 있으니 경계해야 한다.”“만약 진전이 있다면 곧바로 보고하거라!”“네!”낙청연은 하루 종일 진영에서 기다리면서 수시로 보고를 들었다.첫째 날 기습은 하루 종일 계속되었지만 결국 그들은 철수했다.만족의 각 부족은 실력이 아주 강했고 오늘은 기습으로 기선을 제압해 온종일 싸웠다.날이 어두워진 뒤 각 부족의 우두머리가 왕의 막사에 모였다.랑심도 한차례 치열한 전투를 치렀는지 다소 후줄근한 모습이었다. 그녀는 화를 내며 말했다.“천궐국이 기습한 걸 보니 저희 방어 전력 배치를 완벽히 장악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그들은 예전에 기습할 엄두를 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감히 저희 진영을 기습한 걸 보면 낙청연이 그들과 내통한 것이 분명합니다!”“부왕. 지금 당장 명령을 내려 낙청연을 죽이십시오!”예전에 적군은 기습할 엄두를 내지 못했는데 오늘은 정확히 각 부족을 공격했다.그들의 방어 병력 배치를 훤히 꿰뚫고 있는 걸 보면 분명 낙청연이 유출한 것이 분명하다.낙청연은 덤덤한 얼굴로 꿈쩍하지 않았다.랑심은 왕상이 직접 방어 병력 배치도를 내준 걸 절대 예상하지 못할 것이다.청회는 의아한 마음이 들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왕상이 입을 열었다.“지금은 그런 얘기를 할 때가 아니다.”“평녕성에 지원군이 도착해 병력이 강해졌다. 오늘은 막았지만 다음 번에 또 쳐들어올 수 있다.”“지금 당장 해결 방법을 논의해야 한다.”낙청연은 곧바로 입을 열었다.“왕상, 다들 알고 있겠
랑목이 앞으로 나서면서 무릎을 꿇었다.“부디 제게 공을 세워 만회할 기회를 주십시오. 이번에는 반드시 적을 물리치겠습니다!”랑심과 랑목만 다툴 줄 알았는데 청회도 가세했다.“왕상, 저희 중 선택할 생각이시라면 저도 이 중책을 맡을 수 있습니다!”그 말에 랑심이 미간을 구기며 그녀를 보았다.랑심의 태도에 다른 부족 사람들도 잇달아 통수 자리를 다투었다.그들은 아마 랑심이 엄씨 가문과 결탁하여 각 부족의 우두머리를 해치려 한다는 걸 다 알게 됐을 것이다. 그러니 랑심이 통수가 되는 걸 받아들일 수 없었다.랑심이라면 각 부족 우두머리를 죽게 내버려 둘 것이다!낙청연도 내친김에 입을 열었다.“그렇다면 저 또한 기회를 얻고 싶군요.”“전 평녕성을 잘 알고 있고 평녕성을 지키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습니다. 이길 자신도, 협상에서 우세를 차지할 자신도 있습니다.”그 말에 사람들은 깜짝 놀랐고 랑심은 코웃음을 쳤다.“우습군. 이건 우리 만족의 일인데 당신이랑 무슨 상관이오?”“당신 따위가 우리 병사들을 통솔할 생각이오?”하지만 왕은 랑심이 말을 잇지 못하게 했다.그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다들 병사를 이끌 생각이라면 응익신(鷹翼神)에게 맡기겠다. 난 응익신이 우리 만족을 보호해 가장 용맹하고 지략이 뛰어난 통수를 선택할 것이라고 믿는다!”청회가 곧바로 대답했다.“네. 공평한 방법입니다!”사람들은 다들 찬성했다.랑심은 내키지 않았지만 반대할 수 없었고 그들은 막사에서 나왔다.말을 채찍질해 아주 먼 길을 달려 한 원림에 도착했다.낙청연은 처음으로 그들의 제사를 보았다.원림에는 각 부족의 신상이 모셔져 있었고 그중 가장 큰 석상이 응준(鷹隼)이고 그다음 큰 것이 등사였다.다른 것은 사자나 범 같은 것들이었다.낙청연은 어느 부족의 실력이 가장 강하면 그 부족이 다른 부족들을 이끌 것으로 생각했고 그 부족의 신상이 이 중에서 가장 크겠다고 생각했다.왕은 사람들을 데리고 향을 피우고 제사를 지냈다.잠시 뒤 각 부족의 우두머리
앓는 소리가 들려왔고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낙청연도 놀랐다. 그 독수리는 랑심을 쪼았고 얼굴을 가린 랑심은 피를 흘리고 있었다.독수리는 다시 돌아와 낙청연의 팔 위에 앉았다.낙청연은 놀란 얼굴로 고개를 돌려 독수리를 보았다. 부리부리한 눈매에는 영기가 넘쳐흘렀다.독수리의 눈빛이 어쩐지 사람의 눈빛과 비슷한 기분이 들었다.“이렇게 영성이 있다니?”낙청연은 믿기 어려웠다.처음에 낙청연은 왕이 무슨 수를 써서 독수리가 그녀의 몸 위에 안착했다고 생각했다.독수리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녀를 보았고 낙청연은 참지 못하고 손을 뻗어 독수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주위 사람들은 대경실색했다.랑심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그 광경을 보았다.“이럴 수가...”아무도 응익신을 만질 수 없었다.“세상에, 낙청연은 대체 무슨 신분이란 말이오? 응익신은 낙청연을 쪼지 않았소.”“저렇게 얌전하다니!”사람들은 아연실색했다.왕은 뒷짐을 지고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내가 잘못 본 게 아니구나. 넌 틀림없이 내 딸이다. 원응아.”왕의 말에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뭐라고?낙청연도 놀랐다.왕의 미소에 그녀는 순간 등허리에 소름이 돋았다.사람들의 의아한 눈빛을 바라보며 왕은 서서히 입을 열었다.“응익 부족과 등사 부족의 첫 번째 아이야말로 혈통이 가장 순수한 아이지.”“오늘 다시 태어나 응익신의 비호 아래 내 곁으로 돌아왔구나.”“지금부터 낙청연이 우리 일족의 통수다. 각 부족은 낙청연에게 충성을 다해야 할 것이다!”“전쟁이 끝난다면 낙청연은 우리 일족의 새로운 왕이 될 것이다!”말 한마디, 한 마디가 큰 충격을 안겨줬다.사람들은 한참 뒤에야 겨우 정신을 차렸다.“새로운 왕...”“왕상께서는 미리 계획이 있으셨던 것이군요. 응익신이 낙청연을 선택한 이유가 있었군요.”낙청연은 눈을 가늘게 떴다. 왕은 그녀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빨리 이 일을 들추어냈다.그녀는 전투에서 이겨서 사람들의 신뢰를 얻은 뒤 그 일을 언급할 줄 알았다.랑심은 다친 얼
그 말에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뭐라고? 섭정왕비라고?”“낙청연이 섭정왕비라고?”왕도 그 말에 다소 놀랐다.낙청연은 안색 하나 바뀌지 않고 랑목을 보았다.랑목도 놀란 얼굴이었고 미처 반응하지 못한 듯했다. 낙청연은 그가 왕위를 물려받게 도와줄 것이라고 했는데 오늘 부왕은 낙청연을 그녀의 누이라고 선포했다.게다가 그녀가 새로운 왕이라고 했다.“난 섭정왕비가 맞소. 하지만 나와 섭정왕은 사이가 좋지 않소.”“당시 랑심과 랑목이 천궐국에 가서 황제의 생신을 축하했을 때 랑목은 사람들 앞에서 나를 요구했고 섭정왕은 거절하지 않았소.”“그가 정말 나를 신경 썼다면 내가 랑목과 함께 가게 놔두지 않았겠지.”“랑심도 알고 있소. 그런데 왜 인제 와서 그 얘기를 하는 것이오? 당신은 처음부터 내가 만족 진영에 있는 걸 불만스럽게 여겼는데 말이오.”“나와 부진환은 물과 불같은 사이오.”낙청연은 침착하게 설명했다.랑심은 증오를 가득 품은 채로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낙청연이 전혀 당황하지 않는다니, 어쩌다가 이 지경까지 오게 된 걸까?사람들은 그 말을 듣고 의아했다.“그렇다면 당신은 섭정왕을 미워하는 것이오?”누군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낙청연은 태연하게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당연하오.”“난 섭정왕부에서 단 하루도 편히 지낸 적이 없소. 몇 번이나 목숨을 잃을 뻔했지. 난 부진환을 증오하오!”“그래서 나 또한 내가 섭정왕비라는 것을 밝히고 싶지 않았소. 그 호칭 자체가 역겨웠으니 말이오.”랑심은 초조하게 말했다.“궤변이오!”낙청연은 랑목을 보았다.평온한 눈빛이었지만 랑목은 그녀의 눈빛에서 위협을 느꼈다.낙청연은 그에게 눈빛을 보냈다. 그녀는 자신이 진다면 랑심의 수단으로 랑목은 반드시 죽을 것이라는 걸 경고했다.랑목은 왕위를 다툴 생각이 없었고 세력을 키우지도 않았으며 랑심이 하라는 일만 했다.랑심이 왕위를 물려받는다면 랑목은 반드시 죽을 것이다.잠시 주저하던 랑목이 입을 열었다.“네, 제가 증언할 수 있습니다.”“섭정왕
낙청연은 두 부족 사람들을 데리고 곧장 평녕성으로 향했다.방어 병력 배치도에 그녀는 계획을 적었다. 부진환은 그녀의 뜻을 이해했을 것이다.전방은 아무것도 없이 텅 비어 있었다.말발굽 소리가 소란스레 들렸고 그들은 쉼 없이 달려 평녕성 밖에 도착했다.성루 위에는 사람이 별로 많지 않았다. 만족의 습격에 그들은 바로 북을 치며 경고했고 불을 붙여 주위를 환히 비추었다.“역시 이때 평녕성의 방어가 약하군요. 이 기회를 틈타서 평녕성을 무너뜨립시다!”낙청연은 소리 내어 그들을 멈춰 세웠다.“잠시만! 함정이 있을 수도 있소!”랑심이 옆에서 비웃었다.“그들이 우리 부족을 습격하는 기회를 틈타 평녕성을 공격하자고 한 사람은 당신 아니오?”낙청연은 서늘한 눈빛으로 그녀를 보았다.“난 성을 지키는 병사들이 반으로 줄어들 것이라고 했지 완전히 무방비하다는 말은 한 적이 없소.”“저번에 한 번 함정에 당했으면서 교훈을 얻지 못한 모양이오?”랑심은 울컥했다.“당신!”낙청연은 고개를 들어 성루를 바라보며 외쳤다.“성문을 지키는 장수는 어디 있소?”곧 성루 위에 위엄 있는 사람이 나타났다.상대를 확인한 순간 낙청연은 깜짝 놀랐다.부진환!왜 그일까?그는 시형을 이곳에 남겨둬야 했다.그런데 왜 그가 성을 지키고 있는 것일까?낙청연은 부진환과 싸우고 싶지 않았다.차가운 목소리가 밤바람을 타고 귓속으로 파고들어 왔다. 마치 얼음처럼 살을 엘 듯한 한기가 느껴졌다.“본왕은 사람을 보내 널 구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네가 적에 투항할 줄은 몰랐다. 본왕을 배신한 자에게는 죽음뿐이다!”“죽을 각오는 돼 있느냐?”낙청연은 심장이 철렁했다.낙청연이 입을 열려는 순간 랑심이 가볍게 웃음을 흘리며 입을 열었다.“섭정왕, 오랜만이오.”“섭정왕비가 만족에게 투항할 줄은 몰랐나 보오? 그렇다면 왕비가 우리를 위해 무엇을 했는지도 상상하지 못하겠군.”랑심은 말하면서 손뼉을 쳤다.낙청연은 갑자기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바로 다음 순간 노영이 사람을 가둔 마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