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무엇이냐?”송천초는 하인을 시켜 정원으로 들여오게 하며 입을 열었다: “조심히 다루세요, 부딪히지 마시고요.”그리고는 문을 재보다 안 들어갈 걸 발견하고 하인들에게 분부했다: “문을 뜯어주세요.”낙청연은 깜짝 놀라 말했다: “이게 지금 뭐 하는 것이냐?”송천초는 낙청연을 위로하듯 어깨를 두드리며 기다려 보라고 했다.그렇게 송천초는 방문을 뜯고 나무통을 방으로 들인 후 다시 하인들을 시켜 문을 달았다.낙청연의 방에는 거대한 나무통이 자리 잡았다.“이게 뭐 하는 것이냐? 목욕? 이렇게 큰 통으로?” 사람이 모두 떠나고 나서야 낙청연은 입을 열었다.송천초는 지초를 문밖에서 지키게 한 다음 낙청연을 끌고 와 말했다: “약욕하는 것입니다."“날이 이렇게나 더운데 살이 빠져야 할 거 아닙니까. 이렇게 두껍게 입고 있다가 날이 더 더워지면 어떡하려고요?”“마침 왕야께서 병을 치료해주라고 하니 이 기회를 빌려 천천히 살이 빠진 것처럼 보이면 되지 않습니까?”“그리고 걱정 마십시오. 최고의 약재들만 쓰니 몸에 아주 좋을 겁니다!”낙청연은 이 말을 듣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나도 어떤 방법을 써야 자연스럽게 살이 빠질지 고민했다. 의심을 사지 않을 방법이라, 약욕이 확실히 좋은 방법이구나.”“근데 약재는 충분하냐?”약욕은 최소 반달을 해야 하니 약재가 많이 든다.“걱정 마십시오. 집에 서신을 보내 약재를 보내달라고 했습니다.”그날부터 낙청연은 약욕을 시작했다.송천초가 쓰는 약재들은 모두 최고급이라 약욕을 하기에는 사치였다.하지만 약욕을 하니 효과도 탁월했다. 혼탁한 기운이 배출되니 확실히 몸이 가벼워졌고 힘도 세진 것 같았다.약욕을 하고 낙청연은 정원에서 무술을 연마하고 물통을 들어 팔 힘을 단련했다. 약욕을 한 다음 무공을 연마하니 훨씬 효과가 좋았다.송천초가 섭정왕부에 한동안 머무르니 낙청연도 매일 부에서 약욕을 하고 무술을 연마했다.부진환은 한 번도 와보지 않았지만 사적으로 몰래 송천초에게 물었다.“낙청연의 몸은 어
복도 끝으로 가보니 탁상 위에 나무 상자가 가득했다.아주 가지런하게 말이다.부경리는 다리를 꼬고 의자에 기대앉아 멀리서 다가오는 낙청연을 보더니 웃으며 말했다: “부설 낭자, 오셨군요.”“이건 제가 부설 낭자를 위해 준비한 선물입니다. 마음에 드실지 모르겠네요.”말을 마치자 상자가 한 번에 모두 열렸다.눈부신 금빛이 상자를 뚫고 나왔다.너무 눈부셔서 주위의 사람들 모두 눈을 질끈 감았다.다 금이었다!주위에서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이때, 부경리가 입을 열었다: “이건 제가 부설 낭자를 위해 만든 만 개의 금 장신구입니다.”“부설 낭자가 어떤 걸 좋아하는 몰라 다 만들어봤습니다. 만 개이니 하나 정도는 마음에 드는 게 있을 겁니다.”낙청연은 깜짝 놀랐다.만 개의 금 장신구!대단한 씀씀이다!좋게 말하면 씀씀이가 큰 것이고, 솔직히 말하면 그저 집안을 말아먹는 자식인 것이다.낙청연은 정말 궁금했다. 부경리의 외조부는 대체 유산을 얼마나 남겼기에 이렇게 씀씀이가 큰 것인지 말이다.“칠 공자, 너무 귀중한 선물을 주셔서 차마 받을 수가 없습니다.” 낙청연은 정말 받기 두려웠다.그러나 부경리는 다리를 내리고 천천히 몸을 일으키더니 두 손을 등지고 말했다: “부설 낭자, 마음에 안 드시는 겁니까? 그럼 다음엔 다른 걸로 선물하겠습니다!”“금이든 은이든, 부설 낭자가 원하는 거라면 뭐든 말입니다!”부경리의 말에 루에 있던 낭자들은 모두 부러워서 어쩔 바를 몰랐다.그러나 낙청연은 정말 뭐든 가져올까 봐 두려웠다.“칠 공자, 이러지 않으셔도 됩니다.”부경리는 웃으며 답했다: “그럼 낭자, 제 체면을 봐서라도 받아주십시오.”낙청연은 금빛으로 반짝이는 상자를 보며 물었다: “이렇게 귀중한 선물을 주시는데, 정녕 다른 조건은 없는 것인지요?”부경리는 웃으며 입을 열었다: “역시 부설 낭자, 영리하십니다!”“까다로운 조건은 아닙니다. 그저 부설 낭자께서 좋아해 줬으면 하는 것이지요. 혹시 낭자, 저와 제 친구들을 위해 독무를
낙청연은 깜짝 놀라 말을 타고 소리가 나는 쪽으로 향했다.골목을 지나려 했지만, 길 앞에 잡동사니로 가득해 마차는 지날 수가 없었다.낙청연은 할 수 없이 마차에서 내려 빠른 속도로 골목길에 들어갔다.여자는 옷이 풀어져 있었으며, 주위에 있던 남자 몇 명은 낙청연을 보더니 곧바로 멈췄다.“그래, 왔구나.” 남자는 콧방귀를 끼더니 몸을 일으켰다.그렇게 도움을 청하던 여자는 일어서서 돈을 받더니 곧바로 떠났다.낙청연은 미간을 찌푸렸다. 이건 함정이었다!“누구 사람이냐?” 낙청연은 서늘한 어투로 답했다.말을 마치자 앞에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하하하, 부설 낭자. 오랜만입니다.”한 남자가 천천히 걸어 나왔다.낙청연은 미간을 찌푸렸다. 저번에 몰래 방에 들어와 몹쓸 짓을 하려던 류 대인 아닌가!“류 대인, 한낮에 뭐 하시는 겁니까? 왕법을 뭐로 여기시는 건지요?”류 대인은 손을 등지고 천천히 걸어오며 입을 열었다: “저는 그저 부설 낭자께서 독무를 춰 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말을 마치고 그는 소매에서 작은 비단함을 꺼내더니 낙청연에게 건넸다.“칠 황자 만큼은 아니지만 제 마음이니 받아주십시오! 부설 낭자께서 독무를 춰 줬으면 하는데, 거절하진 않겠지요?”류 대인은 진지하게 말했으나 음흉한 눈빛은 숨길 수 없었다. 정말 역겨웠다.낙청연은 서늘한 눈빛으로 비단함을 내던지고 답했다: “거절한다면요?”류 대인은 표정이 굳더니 다시 손을 등지고 서늘한 어투로 말했다: “부설 낭자, 그러진 못할 것 같은데요.”“선택의 여지가… 없을 겁니다.”류 대인은 말을 마치고 뒤로 두 발짝 물러섰다.주위의 검은 옷을 입은 자들이 몰려오며 낙청연을 잡으려 했다.낙청연은 서늘한 눈빛으로 주먹을 꽉 쥐고 연마한 무공이 늘었는지 확인하려 했다.낙청연은 주먹을 세게 쳤다. 그렇게 바람이 일고 재빠른 몸짓으로 적의 공격을 피해 가며 가벼운 몸짓으로 한 명 한 명 처리했다. 낙청연은 하얀 옷을 흩날리며 매끄러운 몸짓을 자랑했다.힘은 확실히 강해졌다. 하지만 한
“부설 낭자는 7공자의 벗이자 내 벗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류 대인, 존중이라는 것도 좀 배우시지요.”부진환은 간단하게 한마다를 했지만 그 눈빛은 날카로우면서 살기가 가득했다.순간 류 대인은 가슴이 덜컥 내려앉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부진환은 몸을 돌려 떠났다.류 대인은 이를 꽉 물고 분노했다. 거의 다 왔는데!뒤에서 어떤 사내가 앞으로 다가와 물었다: “류 대인, 성공하셨습니까? 주인님이 와보라 하셔서 와봤습니다."“갑자기 섭정왕이 나타나 다 망쳤다!”“네 주인에게 전해라. 섭정왕과 칠 황자의 미움을 사는 위험을 무릅쓰고 이 일을 하는데, 사람은 물론 돈도 다섯 배로 늘려달라고!”류 대인은 부설의 아름다운 몸짓을 생각하니 참을 수가 없었다.이번에는 죄를 짓더라도 부설을 손에 넣고 말 것이다!사내는 웃으며 답했다: “주인님께서 열 배도 된다고 하셨습니다! 그저 류 대인께서 물러서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류 대인은 서늘한 웃음을 지으며 답했다: “걱정 마라, 반드시 부설을 손에 넣을 테니!”낙청연은 경공으로 도망치고 다시 마차를 구해 몰래 객잔으로 돌아가 옷을 갈아입고 부에 돌아갔다.부진환은 골목을 떠나 부설루로 향했으나 부설이 없다는 소식을 들었다.약 냄새를 생각하던 부진환은 진 어멈에게 물었다: “혹시 부설 낭자, 어디 다쳤는가?”진 어멈은 깜짝 놀라 답했다: “다치다니요? 아닐 겁니다!”“부설 낭자는 너무 신비로워 저희도 만나기 쉽지 않습니다. 직접 나타나지 않는 이상 말입니다.”“그러니 왕야의 질문에는 답해드릴 방법이 없습니다.”이 말을 들은 부진환은 미간을 찌푸린 채 생각에 잠겼다.부설루의 사람들도 부설 낭자의 행적을, 심지어는 거처도 모르니 말이다.부설 낭자라, 너무 신비로운 게 아닌가?명성과 부를 원했다면 종일 부설루에 있을 것이다.그러나 부설 낭자는 한가할 때만 부설루에 들르는 것 같았다.유일한 가능성은, 부설 낭자에게 다른 신분이 있다는 것이다.-깊은 밤.방 안의 병풍 뒤에는 뜨거운 기운이 감돌았
낙청연은 곧바로 옷걸이에 있는 옷을 잡아 걸쳤다.위엄있는 그림자가 병풍 앞으로 다가오자 낙청연은 재빨리 가면을 들어 얼굴을 가렸다.눈빛이 마주치는 순간, 뜨거운 열기 속에서 낙청연은 가면으로 얼굴을 가렸고 얇은 옷이 물에 젖은 채 몸에 딱 붙어 아름다운 몸매를 뽐내고 있었다.부진환의 깊은 눈빛에는 놀라움으로 가득했다. 그렇게 둘은 서로를 바라보았다.낙청연은 정신을 차라고 가면을 쓴 다음 외투를 걸치고 도망치려 했다.그러나 부진환은 낙청연의 손목을 잡고 힘을 줘 그녀를 끌어왔다.뒤로 물러선 낙청연은 넘어질 뻔하여 부진환 품속에 부딪혔다.“넌, 누구냐?” 부진환은 잠긴 목소리로 놀라움을 억누르며 물었다.약 냄새, 오늘 부설 낭자 몸에서 맡은 냄새랑 똑같았다!낙청연은 말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는 부진환의 발을 밟고 도망치려 했다.그러나 부진환은 몸짓이 민첩해 곧바로 낙청연을 제압하고 팔을 꽉 잡았다. 그리고는 미간을 찌푸린 채 손을 뻗어 낙청연의 가면을 벗기려 했다.순간, 낙청연은 긴장해 다급히 입을 열었다: “건들지 마십시오!”“낙청연! 정말 너였구나!’ 부진환은 깜짝 놀라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낙청연을 바라보았다. 찌푸린 미간에는 분노가 섞여 있었다.낙청연은 바짝 긴장한 채 애써 부진환의 품에서 벗어나려 했지만 쉽게 벗어날 수 없었다.“제가 맞으면, 뭘 어쩌실 겁니까? 이거 놓으십시오!” 낙청연은 불쾌한 어투로 답했다.부진환은 눈살을 찌푸리며 서늘한 눈빛으로 분노에 가득 차 낙청연의 턱을 잡았다.“낙청연! 아주 대단하구나!”“정녕 네가 정원에 틀어박혀 사람을 만나기 싫어하는 줄 알았는데, 신분을 바꿔 밖을 돌아다녔던 거냐?”“왜? 섭정왕비 노릇이 그리도 하기 싫어 청루에서 춤을 추며 미약한 존재감을 찾았냐?”부진환은 부설루에서 춤추던 그 모습, 그리고 모든 남자들이 낙청연의 춤을 넋 놓고 바라본 것만 생각하면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낙청연의 턱은 조금씩 아파왔다. 부진환의 힘이 지금 얼마나 화났는지 말해주고 있었다.이미 발
낙청연은 지지 않겠다는 듯이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저처럼 비천한 여인은 왕야께 어울리지 않습니다. 그런데 왜 저를 내쫓지 않는 것입니까?”“너!”부진환은 진노했고 눈빛은 싸늘하기 그지없었다.낙청연은 부진환이 이토록 화를 내는 것이 전혀 놀랍지 않았다.섭정왕비, 얼마나 존귀한 신분인가?그런데 섭정왕비가 청루 같은 곳을 드나들면서 사람들 앞에서 춤을 추며 스스로 신분을 낮췄다.그녀는 자신이 청루에서 춤을 추는 것을 들킨다면 아주 엄중한 죄가 될 것이라는 걸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하지만 린부설에게서 어머니의 실마리를 알아내려면 다른 방법이 없었다.그런데 이렇게 빨리 부진환에게 들킬 줄은 몰랐다.“왕야, 난처해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절 내쫓으시고 낙월영과 혼인을 올리신다면 왕야의 장인어른은 여전히 낙해평이지요. 그러니 달라지는 것은 없습니다.”낙청연의 평온한 어조에서는 뼈에 사무치는 한기가 느껴졌다.“어차피 저는 계속 춤을 출 것입니다. 왕야께서 이 사실을 알리신다면 본인 체면도 고려하셔야겠지요.”그녀는 더없이 차분한 눈빛으로 부진환을 바라보며 위협적인 어조로 말했다.부진환 역시 그 점을 알아차렸고 더욱더 분노했다.날 위협하다니?낙청연은 이것을 빌미로 그녀의 비밀을 지키라고 부진환을 위협하고 있었다.“낙청연, 너 참 대단하구나!”부진환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그는 그녀의 손목을 억세게 잡으면서 고개 숙여 그녀를 보며 호된 목소리로 말했다.“사내들한테 춤을 선보이는 것을 좋아한다고? 그럼 널 류 대인의 저택으로 보내주마. 거기서 마음껏 추거라!”차가운 말과 함께 부진환은 그녀의 손목을 힘껏 뿌리치고는 소맷자락을 펄럭이며 자리를 떴다.류 대인이 그녀에게 어떤 마음을 품었는지 그들은 잘 알고 있었다.그런데 그녀를 류 대인에게 보내겠다니, 어떻게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것인가?낙청연은 자신이 그의 악랄함을 얕봤음을 인정했다.잠시 뒤 송천초가 다급히 뛰어나왔다.“무슨 일입니까? 조금 전 왕야가 마당에서 나오는 것
낙청연은 냉소를 흘리며 고개를 들어 부진환을 바라봤다.“왕야께서는 제가 스스로 타락의 길을 걷는다고 하셨는데, 정작 섭정왕인 왕야께서는 자기 왕비를 다른 사내에게 바치려고 하는군요.”부진환은 어두운 눈빛으로 몸을 돌렸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차 한 잔의 시간을 줄 테니 씻고 나오거라.”정원을 나선 뒤 부진환은 전원에 도착했고 소유는 빠른 걸음으로 그에게 다가갔다.“왕야, 준비는 마쳤습니다.”부진환은 다소 차가운 눈빛으로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저택에 들어가면 빨리 움직여야 한다!”“네!”소유는 대답한 뒤 미간을 구긴 채로 주저하며 물었다.“하지만 왕비 마마더러 시간을 끌게 하는 건 너무 위험하지 않습니까?”“그러니까 빨리 움직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50명의 암위를 몰래 배치해서 대기하게 하거라.”“네!”방 안에서 낙청연은 옷을 갈아입었다.그 옷 또한 운예각에서 만든 것이었는데 붉은색 바탕에 붉은색 모란꽃이 수놓아져 부귀하고 화려해 보이며 무척 아름다웠다.낙청연은 얇은 망토를 두르고 나서 금빛의 나비 날개 모양의 가면을 썼다. 그리고 그 위로 얼굴을 가릴 얇은 면사를 두르니 실로 이어진 작은 구슬들이 맑은 소리를 냈다. 아주 날렵하고 아름다운 모습이었다.동경 속 자기 모습을 보는 낙청연의 눈빛은 한없이 싸늘했다.그녀는 걸음을 옮겨 밖으로 향했고 부진환도 때마침 처소 밖에 도착했다.마당 문을 열자 붉은색 옷을 입은 사람이 서서히 걸어 나오며 구슬이 부딪치는 소리가 가볍게 울렸다. 부드럽고 아름다운 자태를 한 여인이 시야에 들어오자 부진환의 눈동자에 순간 빛이 감돌았다.눈앞의 여인은 사람들에게 돼지라고 놀림당하던 낙청연이 아닌 듯했다.완전히 다른 사람 같았다.부진환은 얇은 면사와 가면 아래 있는 그녀의 얼굴이 더더욱 궁금해졌다.부진환은 순간 넋을 잃었지만 낙청연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녀는 그에게 시선 한 번 주지 않고 걸음을 옮겨 밖으로 향했다.부진환은 뒤늦게 정신을 차린 뒤 그녀의 뒤를 따랐다.낙청연의 옷은 향이
류 대인 저택으로 향하는 길에 두 사람은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그러나 마차는 아주 빨리 류 대인 저택 앞에 멈추어 섰고, 마차에서 내리기도 전에 밖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들어보니 사람이 적지 않은 듯했다.부진환은 마차 안에 앉아 마음의 준비를 한 뒤 마차에서 내렸다.낙청연이 막 몸을 일으켜 마차에서 내리려는데 부진환이 그녀를 향해 팔을 내밀었고 낙청연은 살짝 당황했다. 바로 그때, 류 대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귀한 손님께서 오셨군요!”낙청연은 눈빛이 싸늘해져 부진환의 손을 잡고 그의 부축을 받아 마차에서 내렸다.발이 바닥에 닿는 순간, 낙청연은 곧바로 손을 빼냈다.어쩐지 다급해 보이는 그녀의 행동에 부진환은 그녀가 자신을 얼마나 혐오하는지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부진환은 크게 숨을 들이마신 뒤 주먹을 움켜쥐고 뒷짐을 졌다.“부설 낭자, 결국엔 내 저택으로 오게 됐군?”류 대인은 거만한 태도로 손을 뻗어 그녀의 손을 잡으려 했고 낙청연은 역겹다는 듯이 몸을 비틀어 그를 피했다.그녀의 냉담한 태도에도 류 대인은 전혀 화를 내지 않았고 오히려 몸을 돌려 부진환을 열정적으로 맞이했다.“왕야께서 진짜 부설 낭자를 데려오실 줄은 몰랐습니다. 제가 왕야를 너무 얕본 것 같군요. 오늘 부설 낭자께서 온다고 해서 연회를 아주 크게 베풀었습니다. 동료들도 많이 불렀으니 부설 낭자가 춤을 춰서 우리의 흥을 북돋아 주겠군요! 왕야께서도 들어가시지요!”류 대인은 들어오라는 손짓을 하며 말했고 부진환은 무표정한 얼굴로 덤덤히 얘기했다.“물건은…”류 대인은 얼른 웃으며 대꾸했다.“걱정하지 마시지요, 왕야. 오늘 연회가 끝난다면 저희 가문에서 몇십 년 동안 소장한 약재들을 드리겠습니다. 얼마 전 낙씨 가문 둘째 아씨께서 약을 구하기 위해 제 부인을 찾은 적이 있었는데 그때도 아까워 차마 드리지 못했습니다. 왕야께서 낙씨 가문의 둘째 아씨를 아끼시는 마음에 저도 크게 감동하였습니다.”몇 가지 약재를 댓가로 부진환이 부설을 데려오게 하다니, 류만(劉
“나는 더 이상 당신의 상대가 안 되오.”낙요는 고개를 돌려 바둑판을 보며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당신을 이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당신과 함께 바둑을 두며 답답함을 풀기 위해서요.”부진환은 바둑알을 하나하나 거두었다.낙요는 실눈을 뜨고 하늘을 바라보며 손을 뻗었다. 햇빛이 손가락 사이로 새어 나왔다.“그러고 보니, 나의 답답함을 풀 사람은 당신뿐이오.”“심시몽은 어의원의 심사를 통과하고 정식으로 어의원에 들어가게 되었소. 그리고 강소풍의 집안에서도 그들의 혼사를 승낙하여 두 사람은 곧 혼사를 올릴 것이오.”“갑자기 심면과 낙현책도 혼사를 올려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들었소.”부진환이 웃으며 말했다.“일찍이 혼인할 나이가 되었지만, 아이들도 조급해하지 않는데 왜 그렇게 걱정하오?”낙요가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여유롭게 말했다.“걱정하지 않소. 대소사를 모두 당신이 걱정하고 있지 않소? 초경의 수위가 있으니, 몇 년이 지나도록 용모가 변하지 않았소. ”“나 같으면 그렇게 걱정을 많이 했으니, 일찌감치 늙었을 것이오.”몇 년 동안 부진환은 그녀를 도와 적지 않은 조정의 일을 분담했다.그녀도 부진환의 동반에 습관이 되었다.갑자기 무언가 떠오른 낙요는 자리에서 일어나 부진환을 바라보며 손바닥에 턱을 괴고 물었다.“이 나이가 되니, 아이를 낳지 않은 것을 후회하오?”“걸을 수 없을 정도로 늙었을 때, 다른 사람의 자식들이 단란히 모여있는 것을 부러워할 것이오? ”부진환은 손에 든 물건을 내려놓고 진지하게 그녀를 보며 대답했다.“후회하지 않소.”“사람은 너무 욕심을 부려서는 안 되오.”“게다가 당신은 여제요. 당신이 늙었다고 해도 누가 감히 푸대접하겠소?”“당신이 조용히 지내는 것이 좋다고 하면 난 당신과 함께 있을 것이오. 초경의 수위로 늦게 늙는다고 하지 않았소? 앞으로 당신이 늙으면 내가 당신을 부축하고 업고 다닐 것이오.”낙요는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참 좋소.”이듬해 가을.심시몽은 강소풍과 혼사를 올렸고 어의원 5품
강소풍은 고개를 끄덕이다 다급히 고개를 저으며 어찌할 바를 몰랐다.“아니오. 그런 뜻이 아니오. 어머니께서는 마음에 들어 하셨소.”설명할수록 강소풍은 상황이 복잡해지는 것 같았다.심시몽은 어두운 표정을 지었지만, 여전히 그를 위로했다.“자네의 뜻을 알고 있소. 설명할 필요 없소.”“시몽... 미안하오! 하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을 것이오. 방법을 강구하여 어머니에게 자네의 진정한 모습을 보여줄 것이오. 분명 어머니도 자네를 받아들일 것이오. ”그 말에 심시몽은 살짝 놀라 의아한 듯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나와 헤어지려는 것이 아니었소?”심시몽은 강소풍이 특별히 그녀를 찾아와 이 일을 설명하는 것을 보고, 그녀와 연을 끊으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아니요. 그럴 리가 있소.”“나는 단지 이전의 약속을 지킬 수 없을 뿐이오. 이번 달 안에 혼담을 꺼낼 수 없을 텐데, 나를 기다려줄 수 있소?”“말재주가 좋지 않아 대체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소. 어머니께서는 자네가 연약하고 힘없다고 생각하시오. 앞으로 내가 출정하면 자네가 홀로 집안을 지킬 텐데, 우리에게 좋지 않은 선택이라 생각하시오. ”이 말을 듣고 심시몽은 대충 뜻을 알아차렸다.“어머니께서는 문무를 겸비한 며느리를 원하고, 자네와 함께 전쟁터에 나가서 떨어져 있지 않아도 되기를 원하시오.”“나는 비록 무공을 할 줄 모르지만, 그래도 해낼 수 있소.”고개를 들어 올린 심시몽의 눈빛은 밝았다..강소풍은 놀라기도 했고 기쁘기도 했다.“정말이오? 여전히 나와 함께 있고 싶소? 포기하지 않을 것이오?”심시몽은 고개를 끄덕였다.“나를 위해 그렇게 많은 일을 했는데, 어찌 쉽게 포기할 수 있소? 자네가 포기하더라도 나는 포기하지 않을 것이오.”“강가는 장군 집안이라 분명 우리 언니와 같은 여인을 좋아할 것이오. 난 비록 언니와 비길 수 없지만 그래도 노력할 것이오.”“여제께서 나에게 약옥을 주었소. 만약 순 의원과 의술을 배울 수 있다면 어의원에 들어갈 기회가 있소.”“성공
이 말을 듣고 심시몽은 약간 의아해했다.“공주는 저를 탓하지 않습니까...”“그분은 공주시다. 천하를 품고 있는데, 어찌 네가 범한 작은 잘못을 추궁할 리 있냐?”“지금 너의 변화를 보면 공주도 더 이상 너를 탓하지 않을 것이다.”“하지만 차려야 할 예의는 없어서는 안 된다. 시간이 나면 공주에게 감사하다고 인사를 전하거라.”심시몽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예. 내일 가겠습니다.”“저는 먼저 약옥을 넣고 의관에 가겠습니다.”심시몽은 기쁜 마음에 빠른 걸음으로 달려갔고, 의기양양한 분위기를 풍겼다. 조금도 방금의 의기소침함이 없었다.심면도 기뻤다.모두가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은 것 같다.하지만 그와 동시에, 강소풍이 집에서 어머니와 싸우고 있었다.“안 된다고 하면 안 되는 것이다! 너를 현학서원에 보내 양성하는 것도 앞으로 네가 큰 성과를 거둘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러니 너도 마땅히 너와 어울릴 만한 부인을 얻어야 한다. 너와 전장을 누비며 적을 죽이는 그런 사람 말이다.”“힘없이 연약하게 집안에서 서방이 돌아오기를 손꼽아 기다리는 그런 평범한 아가씨는 안 된다.”“이전에 그 심시몽을 위해 집안의 빙천영지를 훔쳤고, 심지어 벌을 받고도 물건이 어디로 갔는지 말하려 하지 않았다. 난 그때부터 심시몽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그런데 지금 그 아이와 혼사를 올리려는 것이냐?”“말도 안 된다!”강부인은 단호한 태도로 조금도 말을 바꾸려 하지 않았다.강소풍은 내키지 않는 듯 반박했다.“심시몽이 평범하다니요? 어떻게 평범하다는 말입니까? 심시몽은 그저 무공이 부족할 뿐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무예를 익혀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하물며 그녀의 언니는 이미 태자로 봉해졌습니다. 그러니 심시몽도 좋은 아가씨라는 것을 설명할 수 있지 않습니까?”강부인은 콧방귀를 뀌었다.“언니는 언니이고, 심시몽은 심시몽이다. 어찌 동일하게 논할 수 있겠냐?”“강가는 권세에 빌붙지 않고, 심시몽의 언니가 태자라는 것을 봐서 그녀를 맞이하려
“나중에 자네가 신의가 될지도 모르오.”심시몽이 웃으며 말했다.“자네의 좋은 말대로 되길 바라오.”모두 술을 마시며 음식을 먹고 있었다. 심면이 임계천에게 물었다.“자네는? 어디로 가고 싶소?”“나라에 보답할 수 있다면 어디든 좋소.”임계천이 담담하게 웃었다. 그는 특별히 가고 싶은 곳이 없었기에 그저 궁의 안배를 기다리고 있었다.다들 기분이 좋았고 투지가 넘치고 미래에 대한 동경으로 가득 차 있었다.술을 너무 늦은 시각까지 마셔서 그들은 심가에서 묵었다.오전이 되자, 각 집안의 하인들이 부랴부랴 사람을 찾아왔다. 몇 사람은 술에 취해 인사불성이 되었지만, 여전히 집으로 끌려갔다.궁에서 명을 받았기 때문이다.강소풍은 금군 기사영 통령으로 봉해져 도성과 황궁의 안위를 지키게 되었다.임계천은 형부로 전근되었다.소우청과 봉함선은 수주의 군영 부장군으로 명을 받았다.소우청의 행처는 그의 아버지 소진오가 좋은 경험을 하기를 바라며 부탁한 것이다.낙요는 봉함선이 여인이기에 그녀를 그렇게 멀고 험한 곳으로 보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주동적으로 수주에 갈 것을 청구했다.봉함선이 말했다.“여국은 역대로 여 장군이 없었습니다. 저는 첫 번째 여장군이 되고 싶습니다.”“만약 힘들고 험한 곳이 아니라면 어찌 제가 포부를 발휘할 수 있겠습니까?”낙요는 그녀의 담력과 야심을 높이 사고 그녀의 청을 승낙했다.“나는 네가 여국의 첫 번째 여장군이 되기를 기대한다.”이들 외에 현학서원의 다른 학생들도 그들로 하여금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 새로운 행선지를 얻었다.유독 심시몽에 대해, 낙요는 따로 안배를 해주지 않았다.백서가 걱정했다.“어찌 유독 심시몽만 얘기가 없으십니까? 심시몽이 알면 마음이 편치 않을 것입니다.”낙요가 웃었다.“아니다. 이미 심면을 시켜 심시몽에게 한가지 물건을 보냈다.”백서는 살짝 놀랐다.“일찍이 계획이 있으셨군요.”이때의 심시몽은 홀로 넋을 잃고 연못가에 앉아있었다. 그녀의 마음은 마치 흩날리는 낙엽처럼 어수
유생이 드디어 알아차렸다.“그랬구나. 내가 어찌 이걸 잊은 것이냐.”“난 정말 운이 좋은 것 같구나. 이렇게 운 좋게 제사장 자리를 주울 수 있으니.”심면이 답했다.“아닙니다. 전에 제가 청주 전쟁에서 조난했을 때, 제자들을 통솔해 적과 싸우지 않았습니까? 현책보다 능력이 훨씬 뛰어났습니다.”“사저가 소제사장이 되는 것이 가장 적합합니다.”이렇게 칭찬하는 것을 듣고 유생은 쑥스러워하며 낙현책을 힐긋 쳐다보았다.“네가 이렇게 말하면 낙현책이 기뻐하지 않을 것이다.”낙현책이 웃으며 답했다.“그녀가 말한 것은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너는 나보다 대제사장이 더 잘 어울린다.”“나는 무학에서 너보다 좀 나을 뿐이다. 정말 대제사장이 되려면 너보다 잘할지 모를 일이다.”“다만 제사장 일족의 심사에는 이런 것이 없었다.”“하물며 나도 대제사장이 될 생각을 한 적이 없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단지 여제가 기뻐하기를 바랄 뿐이다.”이 말을 듣고 유생은 마음이 놓였다.“불쾌하지 않았다면 다행이구나. 권력과 지위 앞에서 네가 이런 결정을 내릴 수 있다니, 정말 대단하구나!”“한 잔 권하마!”유생이 술잔을 들었다.바로 이때, 갑자기 대문이 열렸고, 사람이 도착하기도 전에 먼저 목소리가 들렸다.“사람이 아직 도착하지 않았는데, 왜 벌써 마시는 것이오?”“우리를 기다리지 않는다니, 의리가 없소!”몇 사람이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강소풍과 임계천이 술병을 들고 오는 것이 보였다.“오늘 밤 다들 왔구나!”“자, 심면과 유생을 위해 한 잔 하세!”모두 자리에 앉아서 잔을 들어 함께 마셨다.그렇게 한참 마시다 보니 술에 취한 강소풍이 흥분한 듯 입을 열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심가에 겹경사가 닥칠 것이오.”모두 멍해졌다.강소풍은 낙현책과 심면을 바라보았다.“여제가 두 사람의 일을 인정했으니, 언제 혼사를 치르는 것이오?”심면은 갑자기 얼굴을 붉어지며 황급히 강소풍에게 술을 따라주었다.“술을 마셔도 자네의 입을 막지 못한 것이오?”
“저희가 어찌 가족입니까?”“50냥의 이득을 본 걸 후회한다면서요?”이 말이 나오자 다들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그들은 그제야 유생이 그날 밤 그들의 대화를 모두 들었다는 것을 깨달았다.어쩐지 상자를 도둑맞았더라니.유룽은 체면을 깎으며 사과했다.“유생아, 우리는 한 가족이니 티격태격하는 것도 정상이다. 그러나 다들 나쁜 생각은 없다.”“이전의 일은 모두 나의 잘못이다. 이렇게 너희들에게 사과하마!”“오늘 저녁 집으로 돌아가자. 너를 위해 잘 경축해야지 않겠느냐!”둘째아버지와 셋째 아버지도 모두 따라서 사과했다.집안 재산을 나누겠다고 얘기한 그날 그들이 각박한 만큼 지금 아주 자상했다.“유생아, 집으로 가자. 지나간 일은 잊고, 우리 가족 다시 시작하는 게 어떠냐?”“그래. 가족이 함께 지내면 얼마나 시끌벅적하냐? 따로 이곳에서 지내면 쓸쓸하지 않으냐?”“우리 집에 좋은 술도 두 병 간직하고 있는데, 유생을 축하하러 오늘 꺼내마!”유생은 표정을 바꾸지 않고 차분하고 차갑게 말했다.“다들 시간 낭비하지 마십시오.”“집안 재산을 나누고 연을 끊었는데, 어찌 번복할 사람이 있겠습니까?”“잘살든 못살든 더 이상 유가와 관계가 없습니다.”“다들 가시지요. 굳이 우리 집 앞에서 매달리려 한다면, 관아에 신고할 것입니다.”말을 마치고 유생은 방안으로 돌아와 차갑게 문을 닫았다.문밖의 사람들은 후회에 휩싸였다.게다가 둘째는 첫째를 원망하기 시작했다.“형님 탓입니다. 제사장 자리가 발표되기도 전에 넷째네를 쫓아내더니, 지금은 어떻게 하려는 것입니까?”셋째도 불평했다.“유생은 앞으로 대제사장이 될 것이오. 앞으로 유생 덕을 보긴커녕 이렇게 소란을 피웠으니, 앞으로 우리를 난처하게 할 수도 있소...”유롱은 짜증을 참지 못하고 말했다.“어찌 또 내 잘못이 되었냐?”“애초에 심사 결과가 나오자, 다들 하나하나 달려와서 유생네가 끝났다고, 그들 일가를 헛되이 잘해줬다고 하지 않았냐? 너희들이 모두 동의했기 때문에 넷째 일가를 쫓아낸 것이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매우 놀랐다.유가 사촌들은 냉기를 한 모금 들이마셨다.유생도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왜 제가...”왜 낙현책이 아닌가?장 총관이 웃으며 말했다.“어서 명을 받으시지요. 소제사장”유생은 정신을 차리고 마음속으로 미친 듯이 기뻐하며 얼른 명을 받고 고마움을 전했다.장 총관은 자리에 있던 병사들을 힐긋 보고 유생에게 친절하게 물었다.“소제사장,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제가 처리할 필요가 있습니까?”유생은 웃으며 말했다.“필요 없습니다. 고맙습니다!”“어찌 사양하십니까? 제가 필요한 곳이 없다면, 이만 궁으로 돌아가 명을 전해야 합니다.”“예. 바래다 드리겠습니다.”유생은 장 총관을 골목 밖까지 배웅했다. 장 총관이 의미심장하게 일깨워주었다.“아가씨는 아직 소제사장의 권력을 모르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도성에서 제사장의 권력은 여제와 대제사장에 버금갑니다.”“태자와 동등한 권력입니다.”“이런 사소한 일은 직접 처리할 필요도 없으니, 제게 한마디만 분부하면 됩니다.”유생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일깨워 줘서 고맙습니다.”“오늘 여제께서 태자도 정하셨습니까? 심면입니까?”장 총관은 고개를 끄덕였다.“예. 심가에 뜻을 전하고 왔습니다.”장 총관을 떠나보내고 유생은 기쁨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녀는 선택받을 줄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분명히 낙현책한테 졌기 때문이다.심면도 태자로 봉해져서 참 좋았다.오늘 밤 심면을 찾아 축하하려면, 이 문제를 빨리 해결해야 한다.그녀는 빠른 걸음으로 문밖으로 돌아갔다.병사들은 즉시 공손한 태도를 바꾸어 그녀에게 예를 올렸다.“소제사장, 오늘 분명 오해일 것입니다. 저희는 먼저 떠나겠습니다.”유생이 차가운 소리로 호통을 쳤다.“멈추거라!”그들은 뻣뻣하게 자리에 서서 고개를 숙이고 땀을 뻘뻘 흘렸다.제사장의 말 한마디에 그들은 직무를 잃을 수도 있다.“수사를 더 해야 하는 거 아니오? 안 하시오?”“저희가 감히 소제사장의 집을 수색할 용기가 어디 있겠습니까? 오
낙현책은 고개를 끄덕였다.“나도 궁을 나가려던 참이다. 함께 가자.”유생은 단번에 알아차렸다.“심면을 찾으러 가는 것이냐?”“심사 결과가 나온 후, 심면을 만나지 못했구나.”“심면도 무슨 일이 생긴 것이냐?”낙현책은 생각에 잠긴 듯 말했다.“그런가 보구나.”“내가 도울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얘기하거라.”“그래.”두 사람이 함께 궁으로 나온 후 유생은 바로 집으로 돌아갔고 낙현책은 심면의 집으로 향했다.유가의 골목에 도착하자마자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관아의 사람들이 유생의 집 앞을 막고 그녀의 부모님을 잡고 그들을 관아에 데리고 가려 했다.옆에는 그녀의 사촌들이 있었다.안색이 바뀐 유생은 다급히 달려갔다.“그만하시오!”“뭐 하는 것이오?”유생은 바로 부모님을 뒤에 감쌌다.유롱은 화가 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뭐 하냐니? 집안 재산을 나누었으니, 유가와 이젠 연이 없는 것이다. 집안 재산도 주지 않겠다고 했는데, 어찌 유가의 물건을 훔치는 것이냐? 그 상자에는 족히 수십만 냥이 있다!”“감히 너희랑 아무 연관도 없다고 할 수 있느냐?”유생은 그들이 이렇게 빨리 찾아올 줄 몰랐고, 관리에게 고소할 줄도 몰랐다.“우리가 훔쳤다는 증거라도 있습니까?”“증거도 없이 저희를 잡다니, 법을 따르셔야죠.”유롱이 노발대발하며 말했다.“유가 사람들이 네가 돌아온 것을 봤다!”“변명하지 말거라. 할 말이 있으면 감옥에 가서 변명하거라!”물건을 잃어버리고 그들이 유일하게 의심하는 사람은 유생이다.대가를 치르더라도 그들은 그 돈을 되찾으려 했다.“내가 돌아갔다고 돈을 훔쳤다는 것입니까? 농이 심하십니다!”“관청에 따라서 갈 수 있지만, 저희 부모님과는 연관이 없습니다. 증거가 없으면 함부로 사람을 잡을 수 없습니다!”유롱이 화를 냈다.“네 아버지와 어머니도 한패다! 당연히 관아로 데려가야 한다!”“나으리, 그들은 수십만 냥을 훔쳤습니다. 결코 적은 액수가 아닙니다. 나리께서 반드시 돈을 되찾아 주시기를 간청합니다!”
조영궁.심사 결과가 나온 후 오랫동안 기다리던 낙요는 드디어 낙현책이 오는 것을 기다렸다.“여제.”낙현책은 고개를 숙이고 여제를 마주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심사 결과가 나온 지 오래됐는데, 어찌 이제야 나를 찾아온 것이냐? 잘 고려한 것이냐?”낙현책은 고개를 끄덕이며 무릎을 꿇고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여제를 실망하게 했습니다!”이 말을 듣고 낙요는 그의 결정을 알아차렸다.“일단 일어나서 얘기하거라.”낙현책은 무릎을 꿇고 일어나지 않았다.“여제의 가르침을 저버렸습니다. 저는 대제사장 자리를 감당할 수 없습니다!”낙요는 다소 실망했지만 그래도 의외는 아니었다.“잘 생각했느냐? 이 일은 번복한 기회가 없다.”낙현책이 세게 고개를 끄덕였다.“오랫동안 심사숙고한 후 내린 결정입니다.”“제가 여제를 실망하게 했습니다.”지금까지 이렇게 노력했고 최종 심사에서 1등까지 하였는데, 여제를 실망하게 했다.낙요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일으켜 세웠다.“실망하지 않았다.”“네 실력은 모두가 다 알고 있다. 어찌 실망했겠느냐? 네가 후회하지 않으면 된다.”“이미 결정을 내린 이상 더 이상 그렇게 많은 생각을 하지 말거라. 마음을 놓고 네 목표를 향해 가거라.”“나는 네 결정을 존중한다!”여제가 화를 내지 않자, 낙현책은 그제야 한숨 돌렸다. 그는 감동에 겨웠다.“고맙습니다.”낙요는 그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그동안 심면을 만나지 않았겠구나? 어서 네 결정을 알리러 가거라.”낙현책은 고개를 끄덕이고 궁을 나갈 준비를 했다.그동안 심면도 고민하고 있었을 것이다. 두 사람에게 있어 정말 어려운 문제였다.누군가는 무언가를 포기해야 하기 때문이다.낙현책이 궁을 나서려는데 제사장족 제자가 그를 가로막았다.“유생이 궁에서 자네를 기다리고 있소. 급한 일이 있는 것 같소.”“급한 일? 알겠소.”유생은 그동안 궁에 있지 않았다. 갑자기 궁으로 찾아온 것을 보아, 중요한 일이 있는 듯했다.먼저 그녀를 만나고 궁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