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야!” 한 남자가 방문을 열었다.낙청연과 송천초 두 사람은 모두 도망갈 새도 없이 발각됐다.“당신들, 뭐 하는 사람들이야? 설마 마을에 물건을 훔치러 온 것이야!”“여봐라! 도적 잡아라.”그 사람은 놀라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낙청연은 황급히 송천초를 도와 상자를 건네 안더니 말했다: “뛰자!”아주 빠르게, 뒤에 바로 많은 촌민이 나타났다. 그들은 몽둥이와 호미를 들고 뒤따라오고 있었다.낙청연은 숨을 헐떡이더니, 품에 안은 물건을 거의 놓치려 했다. “도대체 얼마를 넣은 것이냐? 너무 무겁다!”송천초도 멈춰서 숨을 고르더니 말했다: “버텨주세요! 이 안에 당신의 구란선삼이 있습니다! 족히 세 뿌리나 됩니다! 당신의 비만증을 치료하는데 충분합니다!”이 말을 듣던 낙청연은 몹시 흥분되어 마치 온몸의 피까지 들끓는 것 같았다.세 뿌리의 구란선삼!그녀가 대제사장일 때도 세 뿌리나 되는 구란선삼은 가져본 적이 없다!그건 돈으로도 살 수 없는 물건이다.낙청연은 한 손으로는 상자를 안고, 다른 한 손으로는 송천초의 팔을 잡고 그녀를 데리고 즉시 미친 듯이 달려 별원에 도착했다.그 촌민들은 별원에서 멀지 않은 곳까지 쫓아오다가 감히 더 앞으로 다가가지 못했다.“가지 맙시다. 그 별원은 섭정왕 소유입니다. 저번에 우리 마을에 오셔서 그렇게 많은 사람을 잡아갔는데, 건드리면 안 될것같습니다.”“그만둡시다. 어서들 돌아가서 없어진 물건이나 없는지 한번 살펴보시오!”사람들은 되돌아갔다.문틈 뒤에서 지켜보던 두 사람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더니, 맥없이 바닥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네가 방금 한 말은 진심이냐? 구란선삼이 세 뿌리나 된다고? 이렇게 진귀한 물건인데 아깝지 않냐?” 낙청연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송천초를 쳐다보았다.송천초는 웃더니 말했다: “당연히 진심입니다.”그녀는 상자를 열어 뒤적이더니, 세 뿌리의 구란선삼을 꺼내 낙청연에게 건넸다.“이건 확실히 진귀합니다! 하지만 저에게는 아쉬워할 정도는 아닙니다. 사실 우리 집
낙청연은 그제야 생각났다. 이미 식량이 떨어졌다.송천초가 말했다: “진에 가서 약재를 좀 팝시다. 돈이 좀 될 겁니다.”낙청연은 다급히 손을 가로젓더니 말했다: “안 된다! 이렇게 진귀한 약재들은, 경도에서도 단시간에 찾기 힘든데, 이렇게 팔아버리면 너무 손해다!’“나에게 돈 벌 방도가 있다! 가자, 근처의 진으로 가보자.”지초는 물었다: “그럼 무엇을 가지고 가야 합니까?”“옷만 갈아입으면 된다.”낙청연과 지초는 남장으로 갈아입었다. 이 별원에는 하인들의 옷이 많았다. 아무렇게나 한바탕 꾸미니, 그럴듯했다.--변하진(汴河鎮).진은 그다지 크지 않았다. 하지만 경도와 가깝고, 또한 경도에 가려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길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번화한 편이었다. 부귀한 집 사람들도 많이 거쳐가는 곳이다.낙쳥연은 비교적 썰렁한 다관(茶館)을 찾았다. 그녀는 바로 장궤(掌櫃)에게 문 앞의 구석진 곳에 놓인 작은 책상을 빌렸다. 세 푼을 줬더니, 장궤는 그녀들에게 차 한 주전자도 그냥 주었다.그녀들은 다관 문 앞에 초라한 점쟁이 노점을 세웠다. 적적하고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다.거리에 오가는 행인들은 적지 않았지만, 눈길도 주지 않았다.지초는 걱정되어 물었다: “왕비, 이대로 괜찮겠습니까?”“급해하지 말거라!” 낙청연은 전혀 서두르지 않고 다리를 꼬고 앉았다.바로 이때, 송천초가 다관으로 들어오더니, 옆에 있는 상에 앉아서 차를 시켰다.낙청연은 입을 열었다: “낭자, 온몸에 혼탁한 기운을 지니고 있는 것을 보아하니 요즘 순조롭지 않은 일이 많은 것 같습니다. 액운이 몸에 달라붙었으니, 조심하셔야 합니다.”듣고 있던, 송천초는 화가 났다. “말 같지도 않은 소리하고 있네요, 당신이야말로 액운에 시달리고 있어요! 저는 운이 아주 좋습니다!”송천초는 말을 마치고, 찻잔을 들고 차를 한 모금 마시더니, 갑자기 목구멍에 사레가 들어 격렬하게 기침하기 시작했다: “콜록, 콜록, 콜록, 콜록……”낙청연은 황급히 다가가서 그녀의 등을 두드리면서 말했다:
송천초는 맞장구를 치더니 놀란 척하며 말했다: “세상에! 이것도 알고 있습니까?”송천초의 놀란 소리는 주위의 많은 사람의 이목을 끌었다. 즉시 사람들이 줄줄이 구경하러 모여들었다.다관 장궤는 더욱 한가롭게 뒤짐을 짊어지고 옆에서 듣고 있었다.낙청연은 정색해서 말했다: “송 낭자, 요즘 혼사를 준비하고 있지 않으십니까?”송천초는 몹시 흥분해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예, 예, 예! 이것도 알아차렸습니까?”“낭자는 오늘 돌아가시는 데로 망자의 무덤을 한 번 살펴보십시오. 만일 생전에 가져가지 않은 물건이 있다면, 함께 태워주십시오. 만일 혼사를 치르시려면, 두 달 미루시는 게 좋습니다.”낙청연은 완전 헛소리를 하고 있었다.낙청연은 또 그 무직한 돈주머니를 송천초에게 돌려주면서 말했다: “돌아가서 당신의 모든 일을 처리하고 난 뒤, 만일 신통하다고 생각되면, 그때 제가 다시 돈을 받겠습니다.”듣고 있던, 송천초는 너무 기뻤다: “정말입니까? 그럼 대사님께 감사드립니다!”말을 마치고, 송천초는 총총히 가버렸다.지초는 틈을 타 행인들을 향해 소리쳤다: “우리 사부는 신통하지 않으면, 돈을 받지 않습니다! 여러분, 어서 오셔서 마음껏 시험해보십시오!”그리하여, 다관의 장궤는 또 차 한 주전자를 가져왔다. 그는 상 앞에 앉아서 웃으며 말했다: “공자는 정말 그 현산이라는 곳에서 나오셨습니까? 저도 한번 봐주면 안 됩니까?”어차피 신통하지 않으면 돈도 받지 않는다고 하고, 장사도 안되고, 그저 잡담이나 좀 해도, 별다른 손실이 없다고 장궤는 생각했다.낙청연은 웃으며 말했다: “장궤는 재물 운을 보고 싶은 것이죠?”듣고 있던, 장궩는 몹시 의하해하며 연속 고개를 끄덕이었다: “예! 요 몇 년 동안 안 해본 일이 없습니다. 모처럼 헐값에 이 점포를 받아 장사를 시작했지만, 장사는 여전히 뜸하고, 그저 입에 풀칠이나 할 정도입니다.”낙청연은 그에게 점을 쳐 주었다. 그리고 일어나서 이 다관을 한번 둘러보더니 말했다: “장궤, 당신의 재물 운은 괜찮은
다관 밖에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줄을 서서 돈을 지불하러 왔다.낙청연이 나타나자, 장궤는 다급히 그녀를 부르더니 말했다: “이웃들은 모두 돈을 갖다주러 왔습니다. 왜 이리 늦게 오셨습니까!”지초는 몹시 의아했다. 이렇게 빨리 영험했단 말인가?모두의 얼굴에 웃음기가 가득한 모습을 보니, 거짓 같지는 않았다.낙청연은 다가가서 앉았다. 이 아주머니(李嬸)는 50푼을 건네며 말했다: “대사, 정말 영험하십니다! 어제 부뚜막에서 잃어버린 팔찌를 찾았지 뭡니까!”낙청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돈을 받았다.다른 사람들도 앞으로 다가와 돈을 건넸다. 낙청연은 가격을 정하지 않았기에 모두들 성의껏 쥐여주었다.그러나 오늘은 곧바로 영험하는 작은 일들이 실제로 일어나 돈을 건네러 온 사람들이었다.다른 사람들은 좀 늦을 것이다.하기에 오늘 번 돈은 그저 은자 몇 푼뿐이었다.송천초도 돈을 주러 왔지만 앞에 이렇게나 많은 사람이 있을 줄은 몰랐다.그래도 돈은 줘야 했다.송천초는 앞으로 다가오더니 감격하며 돈 봉투를 건네는 척 연기를 했다.“대사, 정말 대단하십니다! 앞으로 저도 대사 곁에서 뭐 좀 배우면 안 되겠습니까?”“어떤 일이든 맡겨만 주십시오.”낙청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송천초는 자연스럽게 무리에 섞이게 되었다.심심하면 다관 장궤를 도와 잡일을 하고, 점을 봐주는 보수 외에도 끼니를 해결할 수 있었다.다관도 낙청연의 말대로 다시 배치하여 풍수를 개선하자 장사가 점점 잘되기 시작했다.그렇게 한 달이 지났다.낙청연이 점을 잘 본다는 명성은 이미 마을에 쫙 퍼져 사람들은 매일 줄을 지어 점을 보러 왔다.그러나 낙청연은 본명으로 점을 봐주지 않았고, 가명 저낙(褚洛)으로 활동했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 그녀를 저 신산(褚神算)이라 불렀다.낙청연도 한 달 사이에 살이 많이 빠졌다.한 달 동안 번 돈은 많지 않았지만 생활을 할 순 있었고 필요한 약재를 사고 남으면 옷을 만드는데 쓰였다.조금만 지나도 옷이 커져서 거의 하루 이틀에 한 번씩 옷을 만
“제가 바로 저 신산입니다. 이 진에 저낙은 저뿐이지요.”낙청연의 말에 어멈은 손을 뻗으며 말했다.“그렇다면 저 신산이 직접 우리 부인을 찾아뵈시지요. 영험하다면 후하게 값을 치를 것입니다.”그렇게 낙청연은 송천초와 지초를 데리고 함께 마차에 올랐다.마차는 천천히 마을을 벗어나 수도로 향했다.수도는 진보다 훨씬 더 화려했다. 야심한 시각이었지만 큰 눈이 내려 많은 사람이 즐겁게 눈밭에서 뛰어놀고 있어 거리가 떠들썩했다.낙청연은 다시 수도로 돌아왔다.그러나 이번에 수도로 돌아와 향한 곳은 섭정왕부가 아니었다.마차는 아주 조용한 거리로 들어섰고 한 저택의 후문에 도착했다.어멈이 먼저 마차에서 내려 낙청연 일행을 데리고 후문으로 들어갔고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그들은 내원에 도착했다.가는 길 내내 사람 그림자 하나 보이지 않았고 큰 저택 안은 쥐 죽은 듯 고요했다.아주 이상한 일이었다.난각(暖閣:옛날, 난방 설비를 하여 몸을 녹일 수 있게 했던 큰 방에 딸린 작은 방) 문밖에 도착하자 어멈이 입을 열었다.“저 신산 혼자 들어가면 됩니다. 두 분은 편청에서 잠시만 기다리시지요.”낙청연은 두 사람을 향해 고개를 끄덕이더니 어멈을 따라 난각 안으로 들어갔다.난각 안에는 연탑에 몸을 기대고 있는 젊고 아름다운 여인이 있었다. 그녀는 치장에서부터 귀티가 흘렀고 임신한 지 5, 6개월 정도 돼 보였다.하지만 그녀는 안색이 창백했고 눈 밑은 검었으며 안광은 혼탁한 것이 정신 상태가 좋지 못한 듯 보였다.어멈이 옆에서 소개했다.“저 신산, 저희 부인은 임신한 뒤로부터 자주 악몽을 꾸었습니다. 의원을 몇 번이나 모시고 약을 먹었음에도 상태는 호전되지 않았습니다. 현재 임신한 지 여섯 달 정도 되어가는 데 이제는 눈만 감으면 악몽을 꾸게 된다고 합니다. 게다가 여러 차례 아이를 잃을 뻔했지요. 지금은 몸이 많이 허약해져 이렇게 가다가는 정말 아이를 잃을지도 모릅니다. 살이라도 낀 건 아닌지 저 신산께서 잘 살펴봐 주시지요.”그녀의 말에 낙청연은 앞으로
그것은 다름 아닌 부진환의 목소리였다.부진환이 왜 이곳에 나타난 것일까?낙청연은 곧바로 현장을 벗어나려 했다.그러나 부진환이 때마침 문 앞에 도착했고 도둑고양이처럼 살금살금 자리를 피하는 그녀를 보고는 차가운 목소리로 호통을 쳤다.“멈추거라! 너는 누구냐?”부진환이 싸늘한 목소리로 물었다.그때 마침 어멈이 나와서 예를 갖추며 대답했다.“이분은 저희가 모셔 온 저 신산입니다.”등 돌린 채 서 있던 낙청연은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부진환은 그녀를 아래위로 훑어보고는 미간을 구겼고 부경한은 발걸음을 옮겨 방 안으로 들어갔다.“저 신산이 뭐라 했느냐?”어멈은 그의 질문에 대답했다.낙청연은 그들에게서 그곳에 남으라는 소리를 듣지 않아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곧바로 발걸음을 옮겼다.부진환이 이곳에 나타난 걸 보면 저 부인은 절대 평범한 인물이 아닌 듯했다.수도로 오자마자 이렇게 큰 일거리를 맡게 되고 심지어 부진환과 연관이 있을지도 모른다니, 이것은 낙청연이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그녀는 빠르게 별채로 향했다. 송천초와 지초 두 사람은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어떠했습니까?”두 사람은 재빨리 몸을 일으키며 물었고 낙청연은 우선 부인의 상황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했다.“부인의 복부에 검은 기운이 몰려 있었지만 다른 곳에는 사악한 기운이 없었다. 아마 독에 당한 것 같구나. 게다가 좋지 않은 물건이 장기간 그녀의 정신 상태에 영향을 준 듯하다. 천초야, 넌 의술에 능하니 부인을 한 번 봐주거라.”송천초는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습니다.”송천초가 막 걸음을 옮겨 나가려고 하는데 낙청연이 그녀를 붙잡으며 말했다.“그 방 안에는 섭정왕이 있으니 낙청연이라는 세 글자를 절대 입 밖에 꺼내서는 아니 될 것이다.”송천초는 그녀의 말에 깜짝 놀랐다.그녀는 낙청연의 신분을 줄곧 모르고 있었다. 그러나 지초가 가끔 거리낌 없이 그녀를 왕비라고 부르고, 또 그렇게 좋은 별원에서 지내는 걸 보면 절대 평범한 신분은 아닐 거로 생각했다.지금 보니 낙청연
왕비의 이런 표정을 볼 때마다 지초는 등허리가 서늘했다. 그녀는 참지 못하고 물었다.“왕비 마마, 인노침이 무엇입니까? 이것이 그 부인을 해친 물건입니까?”낙청연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바늘을 내려놓고 말했다.“얼굴을 가릴 면사를 가져오거라.”지초는 얼굴을 가리는 데 쓰일 면사를 꺼냈고 낙청연은 곧바로 그것으로 얼굴을 가린 뒤 물건을 들고 다시 그 방으로 돌아갔다.송천초는 미리 부진환과 부경한을 떨어뜨린 상태였다.두 사람은 방안의 병풍 뒤에 앉아있었는데 거리가 가까운 편은 아니었고 그들이 앉은 방향에서는 낙청연의 얼굴을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어떠냐?”낙청연의 질문에 송천초는 고개를 끄덕였다.“저 신산의 말씀대로 부인께서는 독에 당하셨습니다. 게다가 아주 오랫동안 지속된 듯한데 아마 자주 예불을 행하고 향 냄새를 맡으면서 독을 흡입한 듯합니다. 독성이 강한 편은 아니고 치명적인 것도 아니지만 사람의 정신에 많은 영향을 주게 되지요. 게다가 그 상대가 아이를 가진 임산부라면 더욱 큰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침상 위에 몸을 기대고 있던 부인은 창백해진 얼굴로 말했다.“치료할 방법은 있는 것이오?”송천초는 잠시 고민하다가 대답했다.“치료는 가능하지만 그 뿌리까지 완전히 치료하는 건 어렵습니다. 이를 해결하려면 역시 저 신산께 달리 발견한 것이 있는지 물어야 할 듯합니다.”낙청연은 물건을 꺼내 탁자 위에 올려놓으며 어멈께 건넸다.“염주에서 이런 것들을 발견했습니다. 이 쪽지에 적힌 사주팔자 중 하나는 부인 것이지요?”쪽지에 적힌 내용을 보자 어멈의 안색이 삽시에 달라졌다. 그녀는 머리털이 쭈뼛 섰다.“이… 이것은 부인의 사주팔자가 맞습니다. 다른 하나는… 아마…”어멈은 말을 이어가지 못했고 낙청연은 굳이 캐묻지 않았다. 부인은 절대 예사 인물이 아니었기에 이 사주팔자를 가진 이의 신분도 절대 평범하지는 않을 것이었다.하지만 어멈의 안색이 새파랗게 질린 이유는 그 사주팔자의 주인이 이미 죽었기 때문이었다.낙청연이 말했다.“이것은 인노
“신의에게 약재가 있으니 신의의 약재를 쓰는 게 좋겠군. 돈은 상관없소. 얼마나 들던 다 줄 수 있으니.”부경한이 뒷짐을 지고 걸어왔고 부진환도 그의 뒤를 따랐다.고개를 돌리는 순간 부진환과 눈이 마주친 낙청연은 곧바로 시선을 피했으나 부진환의 시선은 낙청연에게서 떨어질 줄 몰랐다. 어쩐지 상대의 몸짓과 목소리가 익숙하게 느껴졌지만 몸매를 보면 전혀 아니었다.“저 신산은 왜 얼굴을 가린 것이오?”떠보는 듯한 부진환의 싸늘한 목소리가 느긋하게 울려 퍼졌다.낙청연은 침착하게 대응했다.“제가 고뿔에 걸렸습니다. 부인께서는 몸이 허약하시니 혹시라도 저한테서 옮으실까 염려되어 면사를 쓴 것입니다.”생소하게 느껴지는 부진환의 시선에 낙청연은 그가 자신을 알아보지 못했으리라 생각했다.한 달 동안 구란선삼으로 몸조리를 한 덕에 체내의 독소가 천천히 빠지며 돼지처럼 살쪘던 몸이 이제는 그저 통통한 편이 되었다.게다가 이러한 몸매는 사내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이라 그녀는 부진환이 자신과 낙청연을 연관시키지 못할 것으로 생각했다.“저희는 약재값 외에 따로 진찰비와 사례금을 받을 것입니다.”낙청연은 곧바로 본론을 얘기했다. 여기까지 왔는데 빈손으로 돌아갈 수는 없지 않은가?평범한 사람이었다면 얼마를 주든 상관없었겠지만 부진환이 이곳에 있다면 한 푼도 덜 받아서는 안 됐다.부경한은 덤덤히 웃으며 말했다.“말해보시오. 얼마면 되오?”낙청연이 대답했다.“진찰비와 사례금까지 더하면 오천 냥입니다. 약재값 역시 오천 냥이고요.”그 말에 부진환이 미간을 구겼다.“그렇게 비싸단 말이오?”낙청연은 그의 말에 웃었다.“비쌉니까? 저희의 약재는 결코 평범한 약재가 아닙니다. 이 정도 가격이면 전혀 비싸지 않습니다.”부경한은 부진환을 밀면서 얘기했다.“이 정도 돈은 제가 낼 수 있으니 값을 깎을 필요는 없습니다.”말을 마치고 그는 낙청연을 보며 말했다.“돈을 받으면 저 신산은 일을 깔끔히 해결해야 할 것이오.”낙청연은 덤덤히 대꾸했다.“앞으로 무슨
“나는 더 이상 당신의 상대가 안 되오.”낙요는 고개를 돌려 바둑판을 보며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당신을 이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당신과 함께 바둑을 두며 답답함을 풀기 위해서요.”부진환은 바둑알을 하나하나 거두었다.낙요는 실눈을 뜨고 하늘을 바라보며 손을 뻗었다. 햇빛이 손가락 사이로 새어 나왔다.“그러고 보니, 나의 답답함을 풀 사람은 당신뿐이오.”“심시몽은 어의원의 심사를 통과하고 정식으로 어의원에 들어가게 되었소. 그리고 강소풍의 집안에서도 그들의 혼사를 승낙하여 두 사람은 곧 혼사를 올릴 것이오.”“갑자기 심면과 낙현책도 혼사를 올려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들었소.”부진환이 웃으며 말했다.“일찍이 혼인할 나이가 되었지만, 아이들도 조급해하지 않는데 왜 그렇게 걱정하오?”낙요가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여유롭게 말했다.“걱정하지 않소. 대소사를 모두 당신이 걱정하고 있지 않소? 초경의 수위가 있으니, 몇 년이 지나도록 용모가 변하지 않았소. ”“나 같으면 그렇게 걱정을 많이 했으니, 일찌감치 늙었을 것이오.”몇 년 동안 부진환은 그녀를 도와 적지 않은 조정의 일을 분담했다.그녀도 부진환의 동반에 습관이 되었다.갑자기 무언가 떠오른 낙요는 자리에서 일어나 부진환을 바라보며 손바닥에 턱을 괴고 물었다.“이 나이가 되니, 아이를 낳지 않은 것을 후회하오?”“걸을 수 없을 정도로 늙었을 때, 다른 사람의 자식들이 단란히 모여있는 것을 부러워할 것이오? ”부진환은 손에 든 물건을 내려놓고 진지하게 그녀를 보며 대답했다.“후회하지 않소.”“사람은 너무 욕심을 부려서는 안 되오.”“게다가 당신은 여제요. 당신이 늙었다고 해도 누가 감히 푸대접하겠소?”“당신이 조용히 지내는 것이 좋다고 하면 난 당신과 함께 있을 것이오. 초경의 수위로 늦게 늙는다고 하지 않았소? 앞으로 당신이 늙으면 내가 당신을 부축하고 업고 다닐 것이오.”낙요는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참 좋소.”이듬해 가을.심시몽은 강소풍과 혼사를 올렸고 어의원 5품
강소풍은 고개를 끄덕이다 다급히 고개를 저으며 어찌할 바를 몰랐다.“아니오. 그런 뜻이 아니오. 어머니께서는 마음에 들어 하셨소.”설명할수록 강소풍은 상황이 복잡해지는 것 같았다.심시몽은 어두운 표정을 지었지만, 여전히 그를 위로했다.“자네의 뜻을 알고 있소. 설명할 필요 없소.”“시몽... 미안하오! 하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을 것이오. 방법을 강구하여 어머니에게 자네의 진정한 모습을 보여줄 것이오. 분명 어머니도 자네를 받아들일 것이오. ”그 말에 심시몽은 살짝 놀라 의아한 듯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나와 헤어지려는 것이 아니었소?”심시몽은 강소풍이 특별히 그녀를 찾아와 이 일을 설명하는 것을 보고, 그녀와 연을 끊으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아니요. 그럴 리가 있소.”“나는 단지 이전의 약속을 지킬 수 없을 뿐이오. 이번 달 안에 혼담을 꺼낼 수 없을 텐데, 나를 기다려줄 수 있소?”“말재주가 좋지 않아 대체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소. 어머니께서는 자네가 연약하고 힘없다고 생각하시오. 앞으로 내가 출정하면 자네가 홀로 집안을 지킬 텐데, 우리에게 좋지 않은 선택이라 생각하시오. ”이 말을 듣고 심시몽은 대충 뜻을 알아차렸다.“어머니께서는 문무를 겸비한 며느리를 원하고, 자네와 함께 전쟁터에 나가서 떨어져 있지 않아도 되기를 원하시오.”“나는 비록 무공을 할 줄 모르지만, 그래도 해낼 수 있소.”고개를 들어 올린 심시몽의 눈빛은 밝았다..강소풍은 놀라기도 했고 기쁘기도 했다.“정말이오? 여전히 나와 함께 있고 싶소? 포기하지 않을 것이오?”심시몽은 고개를 끄덕였다.“나를 위해 그렇게 많은 일을 했는데, 어찌 쉽게 포기할 수 있소? 자네가 포기하더라도 나는 포기하지 않을 것이오.”“강가는 장군 집안이라 분명 우리 언니와 같은 여인을 좋아할 것이오. 난 비록 언니와 비길 수 없지만 그래도 노력할 것이오.”“여제께서 나에게 약옥을 주었소. 만약 순 의원과 의술을 배울 수 있다면 어의원에 들어갈 기회가 있소.”“성공
이 말을 듣고 심시몽은 약간 의아해했다.“공주는 저를 탓하지 않습니까...”“그분은 공주시다. 천하를 품고 있는데, 어찌 네가 범한 작은 잘못을 추궁할 리 있냐?”“지금 너의 변화를 보면 공주도 더 이상 너를 탓하지 않을 것이다.”“하지만 차려야 할 예의는 없어서는 안 된다. 시간이 나면 공주에게 감사하다고 인사를 전하거라.”심시몽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예. 내일 가겠습니다.”“저는 먼저 약옥을 넣고 의관에 가겠습니다.”심시몽은 기쁜 마음에 빠른 걸음으로 달려갔고, 의기양양한 분위기를 풍겼다. 조금도 방금의 의기소침함이 없었다.심면도 기뻤다.모두가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은 것 같다.하지만 그와 동시에, 강소풍이 집에서 어머니와 싸우고 있었다.“안 된다고 하면 안 되는 것이다! 너를 현학서원에 보내 양성하는 것도 앞으로 네가 큰 성과를 거둘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러니 너도 마땅히 너와 어울릴 만한 부인을 얻어야 한다. 너와 전장을 누비며 적을 죽이는 그런 사람 말이다.”“힘없이 연약하게 집안에서 서방이 돌아오기를 손꼽아 기다리는 그런 평범한 아가씨는 안 된다.”“이전에 그 심시몽을 위해 집안의 빙천영지를 훔쳤고, 심지어 벌을 받고도 물건이 어디로 갔는지 말하려 하지 않았다. 난 그때부터 심시몽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그런데 지금 그 아이와 혼사를 올리려는 것이냐?”“말도 안 된다!”강부인은 단호한 태도로 조금도 말을 바꾸려 하지 않았다.강소풍은 내키지 않는 듯 반박했다.“심시몽이 평범하다니요? 어떻게 평범하다는 말입니까? 심시몽은 그저 무공이 부족할 뿐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무예를 익혀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하물며 그녀의 언니는 이미 태자로 봉해졌습니다. 그러니 심시몽도 좋은 아가씨라는 것을 설명할 수 있지 않습니까?”강부인은 콧방귀를 뀌었다.“언니는 언니이고, 심시몽은 심시몽이다. 어찌 동일하게 논할 수 있겠냐?”“강가는 권세에 빌붙지 않고, 심시몽의 언니가 태자라는 것을 봐서 그녀를 맞이하려
“나중에 자네가 신의가 될지도 모르오.”심시몽이 웃으며 말했다.“자네의 좋은 말대로 되길 바라오.”모두 술을 마시며 음식을 먹고 있었다. 심면이 임계천에게 물었다.“자네는? 어디로 가고 싶소?”“나라에 보답할 수 있다면 어디든 좋소.”임계천이 담담하게 웃었다. 그는 특별히 가고 싶은 곳이 없었기에 그저 궁의 안배를 기다리고 있었다.다들 기분이 좋았고 투지가 넘치고 미래에 대한 동경으로 가득 차 있었다.술을 너무 늦은 시각까지 마셔서 그들은 심가에서 묵었다.오전이 되자, 각 집안의 하인들이 부랴부랴 사람을 찾아왔다. 몇 사람은 술에 취해 인사불성이 되었지만, 여전히 집으로 끌려갔다.궁에서 명을 받았기 때문이다.강소풍은 금군 기사영 통령으로 봉해져 도성과 황궁의 안위를 지키게 되었다.임계천은 형부로 전근되었다.소우청과 봉함선은 수주의 군영 부장군으로 명을 받았다.소우청의 행처는 그의 아버지 소진오가 좋은 경험을 하기를 바라며 부탁한 것이다.낙요는 봉함선이 여인이기에 그녀를 그렇게 멀고 험한 곳으로 보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주동적으로 수주에 갈 것을 청구했다.봉함선이 말했다.“여국은 역대로 여 장군이 없었습니다. 저는 첫 번째 여장군이 되고 싶습니다.”“만약 힘들고 험한 곳이 아니라면 어찌 제가 포부를 발휘할 수 있겠습니까?”낙요는 그녀의 담력과 야심을 높이 사고 그녀의 청을 승낙했다.“나는 네가 여국의 첫 번째 여장군이 되기를 기대한다.”이들 외에 현학서원의 다른 학생들도 그들로 하여금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 새로운 행선지를 얻었다.유독 심시몽에 대해, 낙요는 따로 안배를 해주지 않았다.백서가 걱정했다.“어찌 유독 심시몽만 얘기가 없으십니까? 심시몽이 알면 마음이 편치 않을 것입니다.”낙요가 웃었다.“아니다. 이미 심면을 시켜 심시몽에게 한가지 물건을 보냈다.”백서는 살짝 놀랐다.“일찍이 계획이 있으셨군요.”이때의 심시몽은 홀로 넋을 잃고 연못가에 앉아있었다. 그녀의 마음은 마치 흩날리는 낙엽처럼 어수
유생이 드디어 알아차렸다.“그랬구나. 내가 어찌 이걸 잊은 것이냐.”“난 정말 운이 좋은 것 같구나. 이렇게 운 좋게 제사장 자리를 주울 수 있으니.”심면이 답했다.“아닙니다. 전에 제가 청주 전쟁에서 조난했을 때, 제자들을 통솔해 적과 싸우지 않았습니까? 현책보다 능력이 훨씬 뛰어났습니다.”“사저가 소제사장이 되는 것이 가장 적합합니다.”이렇게 칭찬하는 것을 듣고 유생은 쑥스러워하며 낙현책을 힐긋 쳐다보았다.“네가 이렇게 말하면 낙현책이 기뻐하지 않을 것이다.”낙현책이 웃으며 답했다.“그녀가 말한 것은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너는 나보다 대제사장이 더 잘 어울린다.”“나는 무학에서 너보다 좀 나을 뿐이다. 정말 대제사장이 되려면 너보다 잘할지 모를 일이다.”“다만 제사장 일족의 심사에는 이런 것이 없었다.”“하물며 나도 대제사장이 될 생각을 한 적이 없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단지 여제가 기뻐하기를 바랄 뿐이다.”이 말을 듣고 유생은 마음이 놓였다.“불쾌하지 않았다면 다행이구나. 권력과 지위 앞에서 네가 이런 결정을 내릴 수 있다니, 정말 대단하구나!”“한 잔 권하마!”유생이 술잔을 들었다.바로 이때, 갑자기 대문이 열렸고, 사람이 도착하기도 전에 먼저 목소리가 들렸다.“사람이 아직 도착하지 않았는데, 왜 벌써 마시는 것이오?”“우리를 기다리지 않는다니, 의리가 없소!”몇 사람이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강소풍과 임계천이 술병을 들고 오는 것이 보였다.“오늘 밤 다들 왔구나!”“자, 심면과 유생을 위해 한 잔 하세!”모두 자리에 앉아서 잔을 들어 함께 마셨다.그렇게 한참 마시다 보니 술에 취한 강소풍이 흥분한 듯 입을 열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심가에 겹경사가 닥칠 것이오.”모두 멍해졌다.강소풍은 낙현책과 심면을 바라보았다.“여제가 두 사람의 일을 인정했으니, 언제 혼사를 치르는 것이오?”심면은 갑자기 얼굴을 붉어지며 황급히 강소풍에게 술을 따라주었다.“술을 마셔도 자네의 입을 막지 못한 것이오?”
“저희가 어찌 가족입니까?”“50냥의 이득을 본 걸 후회한다면서요?”이 말이 나오자 다들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그들은 그제야 유생이 그날 밤 그들의 대화를 모두 들었다는 것을 깨달았다.어쩐지 상자를 도둑맞았더라니.유룽은 체면을 깎으며 사과했다.“유생아, 우리는 한 가족이니 티격태격하는 것도 정상이다. 그러나 다들 나쁜 생각은 없다.”“이전의 일은 모두 나의 잘못이다. 이렇게 너희들에게 사과하마!”“오늘 저녁 집으로 돌아가자. 너를 위해 잘 경축해야지 않겠느냐!”둘째아버지와 셋째 아버지도 모두 따라서 사과했다.집안 재산을 나누겠다고 얘기한 그날 그들이 각박한 만큼 지금 아주 자상했다.“유생아, 집으로 가자. 지나간 일은 잊고, 우리 가족 다시 시작하는 게 어떠냐?”“그래. 가족이 함께 지내면 얼마나 시끌벅적하냐? 따로 이곳에서 지내면 쓸쓸하지 않으냐?”“우리 집에 좋은 술도 두 병 간직하고 있는데, 유생을 축하하러 오늘 꺼내마!”유생은 표정을 바꾸지 않고 차분하고 차갑게 말했다.“다들 시간 낭비하지 마십시오.”“집안 재산을 나누고 연을 끊었는데, 어찌 번복할 사람이 있겠습니까?”“잘살든 못살든 더 이상 유가와 관계가 없습니다.”“다들 가시지요. 굳이 우리 집 앞에서 매달리려 한다면, 관아에 신고할 것입니다.”말을 마치고 유생은 방안으로 돌아와 차갑게 문을 닫았다.문밖의 사람들은 후회에 휩싸였다.게다가 둘째는 첫째를 원망하기 시작했다.“형님 탓입니다. 제사장 자리가 발표되기도 전에 넷째네를 쫓아내더니, 지금은 어떻게 하려는 것입니까?”셋째도 불평했다.“유생은 앞으로 대제사장이 될 것이오. 앞으로 유생 덕을 보긴커녕 이렇게 소란을 피웠으니, 앞으로 우리를 난처하게 할 수도 있소...”유롱은 짜증을 참지 못하고 말했다.“어찌 또 내 잘못이 되었냐?”“애초에 심사 결과가 나오자, 다들 하나하나 달려와서 유생네가 끝났다고, 그들 일가를 헛되이 잘해줬다고 하지 않았냐? 너희들이 모두 동의했기 때문에 넷째 일가를 쫓아낸 것이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매우 놀랐다.유가 사촌들은 냉기를 한 모금 들이마셨다.유생도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왜 제가...”왜 낙현책이 아닌가?장 총관이 웃으며 말했다.“어서 명을 받으시지요. 소제사장”유생은 정신을 차리고 마음속으로 미친 듯이 기뻐하며 얼른 명을 받고 고마움을 전했다.장 총관은 자리에 있던 병사들을 힐긋 보고 유생에게 친절하게 물었다.“소제사장,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제가 처리할 필요가 있습니까?”유생은 웃으며 말했다.“필요 없습니다. 고맙습니다!”“어찌 사양하십니까? 제가 필요한 곳이 없다면, 이만 궁으로 돌아가 명을 전해야 합니다.”“예. 바래다 드리겠습니다.”유생은 장 총관을 골목 밖까지 배웅했다. 장 총관이 의미심장하게 일깨워주었다.“아가씨는 아직 소제사장의 권력을 모르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도성에서 제사장의 권력은 여제와 대제사장에 버금갑니다.”“태자와 동등한 권력입니다.”“이런 사소한 일은 직접 처리할 필요도 없으니, 제게 한마디만 분부하면 됩니다.”유생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일깨워 줘서 고맙습니다.”“오늘 여제께서 태자도 정하셨습니까? 심면입니까?”장 총관은 고개를 끄덕였다.“예. 심가에 뜻을 전하고 왔습니다.”장 총관을 떠나보내고 유생은 기쁨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녀는 선택받을 줄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분명히 낙현책한테 졌기 때문이다.심면도 태자로 봉해져서 참 좋았다.오늘 밤 심면을 찾아 축하하려면, 이 문제를 빨리 해결해야 한다.그녀는 빠른 걸음으로 문밖으로 돌아갔다.병사들은 즉시 공손한 태도를 바꾸어 그녀에게 예를 올렸다.“소제사장, 오늘 분명 오해일 것입니다. 저희는 먼저 떠나겠습니다.”유생이 차가운 소리로 호통을 쳤다.“멈추거라!”그들은 뻣뻣하게 자리에 서서 고개를 숙이고 땀을 뻘뻘 흘렸다.제사장의 말 한마디에 그들은 직무를 잃을 수도 있다.“수사를 더 해야 하는 거 아니오? 안 하시오?”“저희가 감히 소제사장의 집을 수색할 용기가 어디 있겠습니까? 오
낙현책은 고개를 끄덕였다.“나도 궁을 나가려던 참이다. 함께 가자.”유생은 단번에 알아차렸다.“심면을 찾으러 가는 것이냐?”“심사 결과가 나온 후, 심면을 만나지 못했구나.”“심면도 무슨 일이 생긴 것이냐?”낙현책은 생각에 잠긴 듯 말했다.“그런가 보구나.”“내가 도울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얘기하거라.”“그래.”두 사람이 함께 궁으로 나온 후 유생은 바로 집으로 돌아갔고 낙현책은 심면의 집으로 향했다.유가의 골목에 도착하자마자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관아의 사람들이 유생의 집 앞을 막고 그녀의 부모님을 잡고 그들을 관아에 데리고 가려 했다.옆에는 그녀의 사촌들이 있었다.안색이 바뀐 유생은 다급히 달려갔다.“그만하시오!”“뭐 하는 것이오?”유생은 바로 부모님을 뒤에 감쌌다.유롱은 화가 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뭐 하냐니? 집안 재산을 나누었으니, 유가와 이젠 연이 없는 것이다. 집안 재산도 주지 않겠다고 했는데, 어찌 유가의 물건을 훔치는 것이냐? 그 상자에는 족히 수십만 냥이 있다!”“감히 너희랑 아무 연관도 없다고 할 수 있느냐?”유생은 그들이 이렇게 빨리 찾아올 줄 몰랐고, 관리에게 고소할 줄도 몰랐다.“우리가 훔쳤다는 증거라도 있습니까?”“증거도 없이 저희를 잡다니, 법을 따르셔야죠.”유롱이 노발대발하며 말했다.“유가 사람들이 네가 돌아온 것을 봤다!”“변명하지 말거라. 할 말이 있으면 감옥에 가서 변명하거라!”물건을 잃어버리고 그들이 유일하게 의심하는 사람은 유생이다.대가를 치르더라도 그들은 그 돈을 되찾으려 했다.“내가 돌아갔다고 돈을 훔쳤다는 것입니까? 농이 심하십니다!”“관청에 따라서 갈 수 있지만, 저희 부모님과는 연관이 없습니다. 증거가 없으면 함부로 사람을 잡을 수 없습니다!”유롱이 화를 냈다.“네 아버지와 어머니도 한패다! 당연히 관아로 데려가야 한다!”“나으리, 그들은 수십만 냥을 훔쳤습니다. 결코 적은 액수가 아닙니다. 나리께서 반드시 돈을 되찾아 주시기를 간청합니다!”
조영궁.심사 결과가 나온 후 오랫동안 기다리던 낙요는 드디어 낙현책이 오는 것을 기다렸다.“여제.”낙현책은 고개를 숙이고 여제를 마주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심사 결과가 나온 지 오래됐는데, 어찌 이제야 나를 찾아온 것이냐? 잘 고려한 것이냐?”낙현책은 고개를 끄덕이며 무릎을 꿇고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여제를 실망하게 했습니다!”이 말을 듣고 낙요는 그의 결정을 알아차렸다.“일단 일어나서 얘기하거라.”낙현책은 무릎을 꿇고 일어나지 않았다.“여제의 가르침을 저버렸습니다. 저는 대제사장 자리를 감당할 수 없습니다!”낙요는 다소 실망했지만 그래도 의외는 아니었다.“잘 생각했느냐? 이 일은 번복한 기회가 없다.”낙현책이 세게 고개를 끄덕였다.“오랫동안 심사숙고한 후 내린 결정입니다.”“제가 여제를 실망하게 했습니다.”지금까지 이렇게 노력했고 최종 심사에서 1등까지 하였는데, 여제를 실망하게 했다.낙요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일으켜 세웠다.“실망하지 않았다.”“네 실력은 모두가 다 알고 있다. 어찌 실망했겠느냐? 네가 후회하지 않으면 된다.”“이미 결정을 내린 이상 더 이상 그렇게 많은 생각을 하지 말거라. 마음을 놓고 네 목표를 향해 가거라.”“나는 네 결정을 존중한다!”여제가 화를 내지 않자, 낙현책은 그제야 한숨 돌렸다. 그는 감동에 겨웠다.“고맙습니다.”낙요는 그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그동안 심면을 만나지 않았겠구나? 어서 네 결정을 알리러 가거라.”낙현책은 고개를 끄덕이고 궁을 나갈 준비를 했다.그동안 심면도 고민하고 있었을 것이다. 두 사람에게 있어 정말 어려운 문제였다.누군가는 무언가를 포기해야 하기 때문이다.낙현책이 궁을 나서려는데 제사장족 제자가 그를 가로막았다.“유생이 궁에서 자네를 기다리고 있소. 급한 일이 있는 것 같소.”“급한 일? 알겠소.”유생은 그동안 궁에 있지 않았다. 갑자기 궁으로 찾아온 것을 보아, 중요한 일이 있는 듯했다.먼저 그녀를 만나고 궁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