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에게 약재가 있으니 신의의 약재를 쓰는 게 좋겠군. 돈은 상관없소. 얼마나 들던 다 줄 수 있으니.”부경한이 뒷짐을 지고 걸어왔고 부진환도 그의 뒤를 따랐다.고개를 돌리는 순간 부진환과 눈이 마주친 낙청연은 곧바로 시선을 피했으나 부진환의 시선은 낙청연에게서 떨어질 줄 몰랐다. 어쩐지 상대의 몸짓과 목소리가 익숙하게 느껴졌지만 몸매를 보면 전혀 아니었다.“저 신산은 왜 얼굴을 가린 것이오?”떠보는 듯한 부진환의 싸늘한 목소리가 느긋하게 울려 퍼졌다.낙청연은 침착하게 대응했다.“제가 고뿔에 걸렸습니다. 부인께서는 몸이 허약하시니 혹시라도 저한테서 옮으실까 염려되어 면사를 쓴 것입니다.”생소하게 느껴지는 부진환의 시선에 낙청연은 그가 자신을 알아보지 못했으리라 생각했다.한 달 동안 구란선삼으로 몸조리를 한 덕에 체내의 독소가 천천히 빠지며 돼지처럼 살쪘던 몸이 이제는 그저 통통한 편이 되었다.게다가 이러한 몸매는 사내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이라 그녀는 부진환이 자신과 낙청연을 연관시키지 못할 것으로 생각했다.“저희는 약재값 외에 따로 진찰비와 사례금을 받을 것입니다.”낙청연은 곧바로 본론을 얘기했다. 여기까지 왔는데 빈손으로 돌아갈 수는 없지 않은가?평범한 사람이었다면 얼마를 주든 상관없었겠지만 부진환이 이곳에 있다면 한 푼도 덜 받아서는 안 됐다.부경한은 덤덤히 웃으며 말했다.“말해보시오. 얼마면 되오?”낙청연이 대답했다.“진찰비와 사례금까지 더하면 오천 냥입니다. 약재값 역시 오천 냥이고요.”그 말에 부진환이 미간을 구겼다.“그렇게 비싸단 말이오?”낙청연은 그의 말에 웃었다.“비쌉니까? 저희의 약재는 결코 평범한 약재가 아닙니다. 이 정도 가격이면 전혀 비싸지 않습니다.”부경한은 부진환을 밀면서 얘기했다.“이 정도 돈은 제가 낼 수 있으니 값을 깎을 필요는 없습니다.”말을 마치고 그는 낙청연을 보며 말했다.“돈을 받으면 저 신산은 일을 깔끔히 해결해야 할 것이오.”낙청연은 덤덤히 대꾸했다.“앞으로 무슨
이것을 부씨 가문의 천하라고 할 수 있을까? 이것은 분명 엄씨 가문의 천하였다.부진환은 더없이 진지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그들에게 휘둘러지는 게 싫다면 이 아이를 어떻게든 지켜야 합니다. 만약 사내아이라면 황제의 장자가 되겠지요. 그래야 장차 희 귀인(曦貴人)이 황후의 자리를 다툴 기회를 얻게 될 것입니다. 만약 엄씨 가문의 딸이 황후가 된다면 엄씨 가문의 통제 아래 평생을 살게 될 겁니다.”부진환의 말에 부경한은 위기를 느꼈고, 또 이러한 압박감에 숨이 잘 쉬어지지 않는 기분이 들었다.그는 부진환의 옷자락을 잡으며 얘기했다.“형님, 지금 제가 기댈 수 있는 건 형님뿐입니다. 저에게는 좋은 방법이 없으니 형님께서 방법을 생각해주세요.”부진환은 엄숙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자시가 지났기에 성문은 닫혀 있는 상태였다.어멈은 그들을 성안의 객잔으로 데려가 하룻밤 묵게 했다. 그녀는 대신 돈을 지불하고 나서는 그들을 위해 먹을 것과 마실 것까지 시켜줬고 내일 정오쯤에 그들을 데리러 진으로 가겠다고 얘기해두었다.어멈은 그들을 위해 세 개의 방을 잡아줬으나 세 사람은 같은 방에서 묵었다.부엌으로 가서 뜨거운 물을 가져온 지초 덕분에 세 사람은 방안에서 족욕을 할 수 있었고 온몸이 따뜻해지는 기분이 들었다.“천초야, 네가 쓴 약재들이면 충분하니 너무 비싼 것은 쓰지 말거라.”낙청연의 당부에 송천초는 웃으며 대꾸했다.“괜찮습니다. 저도 다 생각이 있습니다. 하지만 오천 냥이라는 큰 액수를 요구할 줄은 상상도 못 했습니다. 진찰비와 사례금까지 더하면 만 냥은 족히 될 텐데요.”낙청연이 말했다.“섭정왕과 함께 있었으니 황실 사람이 아니겠느냐? 그런데 돈이 부족할 것 같더냐? 그리고 값을 제멋대로 부른 것도 아니다. 앞으로 수도에서 계속 장사를 해야 할 텐데 가격을 너무 높게 불렀다가 소문이라도 나는 날엔 날 찾으려는 사람이 없겠지.”그녀의 말에 송천초와 지초는 깜짝 놀랐다.“왕비 마마께서는 수도로 돌아올 생각이십니까?”지초가 흥
그 순간 낙청연은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하지만 그녀는 몸을 돌리지는 않았고 자연스럽게 계속해 걸어갔다.그러자 뒤에 있던 부진환이 다시 한번 입을 열어 그녀를 불렀다.“저 신산.”낙청연은 그제야 발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저 신산은 변하진의 사람이오? 그렇다면 낙청연을 알고 있소?”부진환은 떠보듯 물었다.저 신산은 전에 만난 적이 없던 사람이었다. 황제가 희 귀인의 얘기를 꺼냈을 때 그가 맨 처음 떠올린 사람이 바로 낙청연이었다.그러나 그가 낙청연의 얘기를 꺼내기도 전에 황제는 이미 저 신산에 대해 알아보고 있었다.“모릅니다.”낙청연이 예의 바르게 대답했다.“또 다른 용무가 있으십니까?”부진환은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대꾸했다.“없소.”낙청연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는 몸을 돌려 송천초와 함께 자리를 떴다. 그녀의 떠나가는 뒷모습을 바라보는데 어쩐지 낙청연과 전혀 닮지 않은 듯했다.낙청연과는 아무런 상관없는 사람일지도 몰랐다.낙청연을 떠올린 부진환은 걸음을 옮겨 섭정왕부로 돌아갔다.“소유.”소유가 급히 다가왔다.“왕야.”“별원 쪽에 별다른 움직임이 없었느냐?”부진환이 차가운 목소리로 묻자 소유는 잠시 멈칫하다가 대답했다.“사람을 보내 주기적으로 확인해 봤는데 별다른 움직임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왕야께서는 왕비 마마 스스로 자생, 자멸하게 놔두라고 하지 않으셨습니까?”부진환은 싸늘한 눈빛을 하더니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난 별 뜻 없이 물은 것이다.”소유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을 이어갔다.“사람을 더 자주 보내도록 하겠습니다.”부진환은 차갑게 말했다.“낙청연에게 시간을 허비할 필요는 없다. 혼자 힘으로 버티기 어려우면 날 찾아오겠지.”그는 낙청연이 이 기나긴 겨울을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지켜볼 셈이었다.“알겠습니다.”소유는 왕야가 왕비의 일에 있어서는 굉장히 모순적이라 생각했다.왕야는 비록 왕비의 일에 시간을 허비할 필요가 없다고 했지만 사람을 보내 별원을 살피게 했다.왕비의 병은 아마도
별원에 사람이 없는 걸 확인한 등 어멈은 괜히 초조해졌다. 왕비는 어디 있는 걸까?면사를 쓰고 사내 차림을 한 사람이 뒤늦게 도착해 등 어멈에게 다가갔고 등 어멈은 그를 경계했다.“당신은 누구시오? 감히 섭정왕부의 별원에 제멋대로 들어오다니?”낙청연은 면사를 치우면서 말했다.“등 어멈, 나다.”그 말에 등 어멈은 잠시 의아해하더니 진지한 얼굴로 상대를 자세히 살펴봤고 믿기지 않는 듯이 말했다.“왕비 마마… 십니까?”낙청연은 고개를 끄덕였다.등 어멈은 놀란 얼굴로 그녀를 뚫어져라 쳐다봤다.“못 본 지가 한 달이 조금 넘은 것 같은데 살이 이렇게나 많이 빠진 것입니까? 몸은 괜찮으십니까? 아주 큰 상처를 입으신 건 아닙니까?”걱정 가득한 등 어멈의 표정에 낙청연은 웃으며 대꾸했다.“아니다. 나는 아주 건강하단다. 살이 빠지면 좋은 것이지, 걱정하지 말거라. 등 어멈이 별원에 오다니, 왕야가 가보라고 시킨 것이더냐?”등 어멈이 대답했다.“소유가 가보라고 하더군요. 저더러 별원에 별다른 일은 없는지 알아보라고 했습니다. 아마 제가 몰래 왕비 마마께 물건을 가져다주길 바란 것일지도 모르지요.”낙청연은 싸늘한 얼굴로 웃었다.“왕야께서는 나더러 자생, 자멸하라고 하셨지. 그런데 소유가 감히 너에게 물건을 가져다주라고 할 리 있겠느냐?”“왕비 마마, 저도 자세한 것은 모릅니다만 왕야께서는 분명 홧김에 그리 얘기한 것일 겁니다. 그러니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 마세요.”등 어멈은 그 말과 함께 손에 든 바구니를 열어 보였다.“제가 약재를 가져왔습니다. 왕비 마마께 도움이 될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은냥도 가져왔으니 먼저 쓰세요.”낙청연은 미소 띤 얼굴로 은냥을 도로 넣었다.“난 돈이 모자라지 않으니 네가 쓰거라. 소유가 널 보냈다면 더는 그 호위들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되겠구나. 돌아가서 소유에게 말하거라. 내 병세가 더욱 심각해졌고 이제 곧 얼어 죽거나 굶어 죽을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왕야께는 얘기하지 않아도 되지만 낙월영에게는 반드시
장미는 흥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진짜입니다. 등 어멈은 지금도 서방 밖에 무릎을 꿇고 앉아 왕야께 사정하고 있습니다. 왕야께서 저택에 계시지 않다는 걸 모르는 것 같습니다.”그 말에 낙월영은 곧바로 방을 나섰다.“절대 왕야께서 이 일을 알게 하면 안 된다. 낙청연은 별원에서 죽어야 한다. 죽더라도 시체를 거두어주는 사람이 있어서는 안 되지!”낙월영은 득의양양했다.이번에는 그 누구도 낙청연을 구할 수 없을 것이다.부진환의 서방 앞에 도착한 낙월영은 아직도 사정하고 있는 등 어멈을 보았다.그녀는 차갑게 웃으면서 말했다.“등 관사, 우리 언니가 대체 네게 무슨 약을 먹였길래 이리 사정하는 것이냐? 안타깝게도 왕야께서는 언니가 죽든 말든 관여치 않겠다고 하셨지. 네가 사정해도 소용없는 일이다. 혹여 왕야를 화나게 한다면 네 관사의 자리까지 위험해질 수 있다.”낙월영은 코웃음을 치면서 그녀를 위협했고 등 어멈은 두려운 기색을 띠더니 곧바로 몸을 일으켜 다급히 자리를 떴다.낙월영은 등 어멈의 멀어지는 뒷모습을 보면서 냉소를 흘렸다.“역시, 사람은 이기적이구나. 자신의 이익과 관련된다면 누가 죽든 말든 신경이나 쓰겠느냐? 낙청연, 이번에는 널 도와줄 사람이 없을 것이다!”낙월영은 거만하게 웃어 보였다.등 어멈이 떠나고 난 뒤 낙월영은 장미에게 돈을 쥐여주며 말했다.“아랫것들에게 나눠주거라. 어떻게 해서든 그들이 입을 다물게 해야 할 것이야. 절대 그 누구도 낙청연의 일을 입에 올려서는 아니 된다.”낙청연의 처지를 왕야가 알아서는 안 된다.대문을 건너는데 손님이 왔는지 밖에서 소리가 들려왔고 가보니 진 태위가 와있었다.“난 왕야를 찾아온 것이 아니라 왕비 마마를 찾아온 것이다. 강에 빠졌던 게 언젠데 왜 아직도 왕비 마마를 뵐 수 없는 것이냐? 내 급히 볼일이 있다.”진 태위는 거절당하자 불쾌한 어조로 말했다.그는 왕비에게 감사 인사를 제대로 전한 적이 없었다. 저번에 사람을 보내 왕비를 저택까지 모시지 않았기에 왕비가 사람들에게 납
부진환은 미간을 주무르며 누그러진 말투로 말했다.“얼굴은 다 나았느냐? 괜찮아졌으면 인제 그만…”그 말에 낙월영은 털썩 무릎을 꿇더니 서럽게 울어댔다.“왕야께서는 절 내쫓으시려는 겁니까? 제가 잘못했습니다. 제가 감정이 격해져 진 태위의 기분을 상하게 했습니다. 하지만 절대 고의는 아니었습니다. 왕야, 절 용서해주세요.”낙월영의 불쌍한 모습과 훌쩍이며 우는 얼굴에 부진환은 순간 머리가 아팠다.그는 마음이 약해져 낙월영을 부축해 일으켜 세웠다.“난 네가 명분 없이 섭정왕부에 있는 게 걱정되어 그러는 것이다.”그 말에 낙월영은 조금 의아했지만 몰래 기뻐했다.“감사합니다, 왕야. 내일 제가 직접 저택으로 찾아가 진 태위께 사죄드리겠습니다.”부진환은 잠시 고민하더니 미간을 구기며 말했다.“아니다. 진 태위는 원래 말투가 그러니 가봤자 화만 더 돋울지도 모른다.”“알겠습니다.”낙월영은 고개를 숙이며 몰래 웃었다.역시 낙청연이 없으니 왕야는 자신을 더욱 아꼈다.그러나 부진환은 여전히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 왜 낙월영이 울기만 하면 마음이 약해지는 것일까? 그는 절대 그런 사람이 아닌데 말이다.진짜 낙월영의 연기에 마음이 움직인 것일까?—장락골목 33번에 구영 약방(九瓔藥鋪)이 생겼다.구영 약방의 이름은 낙영의 영에서 따온 것이었다.송천초는 간판을 보면서 몹시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호월구영(皓月九瓔)은 보기 드문 약재지요. 저희 약방에 오면 온갖 희귀한 약재들을 다 볼 수 있으니 아주 잘 어울리는 이름입니다!”지초는 옆에서 그 얘기를 듣고 있었다. 그녀는 송천초와 왕비와 함께 다니면서 많은 약재를 알게 되었고 그중에는 이름도 들어본 적 없는 것들이 수두룩했다.송천초에게 이렇게 많은 보물이 있을 줄이야.낙청연은 고개를 돌려 송천초를 보았다.“네 약재는 곧 다 팔릴 것이다. 그러니 다른 보기 드문 약재들을 구해야 한다.”그 말에 송천초는 자신감 넘치는 어조로 대꾸했다.“그 점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희 집에는 다른
낙청연은 곧바로 마차에 오르게 됐고 어멈은 마부더러 속도를 높이라 했다.낙청연이 물었다.“부인께 무슨 일이 있는 겁니까?”저번에 그들에게 약재를 건넸으니 별일 없어야 정상이었다.어멈은 옷자락을 꼭 쥔 채 긴장한 얼굴로 말했다.“또 왔습니다! 그 아이가 또 왔습니다.”그 말에 낙청연이 미간을 팍 찌푸렸다.“또 왔다니요?”인노침이 없는데 어떻게 또 찾아왔다는 말인가?“상황은 어떻습니까?”낙청연이 걱정스레 묻자 어멈은 고개를 저어 보였다.“아주 심각합니다. 그는 정원에 있고 저희 부인은 방안에 갇혀 있습니다. 이번에는 목숨을 지킬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어멈은 옷자락을 꽉 쥐면서 중얼거렸다.“혹시라도 부인께 무슨 일이 생긴다면 저 또한 머리가 잘리게 될 터인데…”어멈의 무의식적인 말에 낙청연은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머리가 잘리다니, 그 부인은 아마도 후궁인 듯했다.부진환과 함께 있다면 관직이 높거나 귀족일 게 분명한지만 황제의 여자일 줄은 생각지 못했다.“조급해하지 마세요. 그 아이는 부인 배속의 자리를 원합니다. 부인께서 잘못된다면 자신 또한 얻는 게 없을 것이니 부인을 다치게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하지만 겁에 질릴 것은 분명했다.그 말에 어멈은 조금 안심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드디어 도착한 봉씨 저택은 들어서자마자 음산한 기운이 느껴졌고 정원 안의 바람은 바깥과 완전히 달랐다.어멈은 그녀를 데리고 급히 내원으로 향했다.긴 회랑을 지날 때 갑자기 바람이 불어왔고 어둑한 회랑에는 등불의 잔영이 흔들리고 있었다.바로 다음 순간, 날카로운 웃음소리가 가깝고도 먼 듯한 거리에서 들려왔고 어멈은 순간 겁을 먹고 몸을 떨었다.바닥에 드리워진 자신의 그림자를 보니 그곳에는 한 아이가 쪼그리고 앉아있었다.“아!”어멈은 비명을 질렀고 눈앞이 캄캄해지면서 정신을 잃었다.낙청연의 눈빛은 삽시에 날카로워졌고, 그녀는 얼른 허리를 숙여 어멈의 상태를 살폈다. 어멈이 겁을 먹고 정신을 잃은 걸 확인한 뒤 낙청연은 계속해 안으로 들어갔다
주위가 밝아지면서 방 안의 시체가 사라졌고 낙청연은 여전히 처마 밑에 서 있었다. 광선 또한 달라졌고 발치에 있던 사람의 머리도 사라졌다.“아! 저리 가거라! 저리 가라고! 난 네 어미가 아니다! 저리 가란 말이다!”방 안에서는 겁에 질린 처절한 비명이 들려왔다.낙청연은 다른 건 신경 쓸 새도 없이 곧장 방 안으로 들어갔다.방문이 열리는 순간 부인은 방 안에서 이리저리 황급히 도망치고 있었고 무척 겁에 질린 상태였다.낙청연은 그녀를 덥석 끌어안았지만 그녀는 격렬히 저항했고 살고 싶다는 의지 때문인지 힘이 어마어마했다.낙청연은 손을 들어 그녀가 정신을 잃게 만들었고 쓰러진 그녀를 침상 위에 놓았다.맥을 짚어보니 맥박이 약했고 무척 놀라서 아이가 위험한 상태였다. 이러다간 아이를 잃을 수도 있었다.낙청연은 어떻게든 아이를 지키겠다는 생각으로 곧바로 은침을 꺼내 그녀에게 침을 놓아주었다.바로 그때 밖에서 음산한 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저 아이를 죽여야 해! 죽여야 해!”역시나 그 아이가 부인 배 속의 아이를 죽이려 하고 있었다.곧이어 방 안의 꽃병이 바닥으로 쓰러졌고 쨍그랑하는 소리가 들려왔다.그 소리에 침상 위에 누워있던 부인이 움찔거리며 반응을 보였는데 배가 많이 아픈 듯했다.낙청연의 눈빛이 매서워졌다. 이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고 환영으로 사람을 홀릴 정도라면 아주 강한 원한과 살기를 가지고 있다는 걸 뜻했다.만약 저 아이가 이러한 상태로 부인의 체내로 들어간다면 부인의 몸에 아주 큰 영향을 미칠 것이고 아이를 낳기도 전에 목숨을 잃을 것이었다.이 정도의 원한을 가지고 있으니 쫓아내는 것으로 부족했다. 반드시 없애야 했다.“너에게 다른 곳으로 갈 기회를 줬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여기로 왔구나. 그렇다면 날 원망하지 말거라!”낙청연은 칼을 뽑아 들어 손바닥에 상처를 냈고 자신의 피로 침상 곁에서 부문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리고서는 신속히 방 안에서 나와 방문을 닫았고 그 위로 부적을 붙였다.낙청연은 곧장 천명 나침반을 꺼내 들
“그럼, 동하국을 공격하려는 계획을 늦추려는 것이오? 그 여인을 상대로 우리는 이길 수 있을지 모를 일이오.”부진환이 사색에 잠긴 그때, 갑자기 옆에 누군가 걸어와 당당하게 말했다.“얼마나 대단한지 내가 한 번 만나보겠소.”걸어온 사람은 초경과 송천초였다.“방금 말한 그 사람이 정말 보통 사람의 실력을 뛰어넘었다면 나밖에 상대할 사람이 없을 것이오.”“불필요한 희생을 피하려면 나한테 지도를 주시오. 내가 만나보고 오겠소.”“그 여인을 해결한 후 다시 동하국을 공격해도 늦지 않았소.”그의 말을 듣고 부진환은 곰곰이 생각하다 지도를 건네주었다.“좋소. 가서 상황을 알아보고 상대의 실력을 파악하시오.”“어찌 됐든 동하국의 땅이니, 무슨 위험이 있을지 모르오. 꼭 조심하시오.”초경은 지도를 건네받았다.“좋소. 지금 바로 출발하겠소.”초경은 지도를 품에 넣으며 몸을 돌려 송천초를 바라보며 낮은 소리로 말했다.“곧 돌아올 것이오.”송천초가 고개를 끄덕였다.“조심하십시오.”그리고 초경은 동하국으로 떠났다.그의 속도로 반나절도 걸리지 않아 바다에 있는 그 나라를 찾았다. 비교적 큰 섬을 찾으면 되는 일이니 어려운 것 없었다.바다에서 나타난 그를 보고 동하국 병사들은 깜짝 놀라 적의 기습이라고 큰 소리로 외쳤다.다들 모여들어 해안가에 칼을 겨누었지만 가까이 온 사람이 초경 한 명인 것을 보고 외쳤다.“감히 이곳에 혼자 오다니!”“당장 생포하거라!”병사들이 그를 에워쌌지만, 초경이 소매를 휘두르자 다들 멀리 날아갔다.동하국 사람들은 깜짝 놀라 더 이상 그를 얕보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은 여전히 초경의 상대가 아니었다.압도적인 초경의 힘 앞에서 그들은 조금도 반항할 힘이 없었다.그렇게 초경은 동하국 왕궁까지 쳐들어갔다.아무도 그를 막을 수 없자, 누군가 다급히 소리쳤다.“약사를 부르거라! 어서 약사를 부르거라!”기세등등하게 쳐들어온 적을 보고 동하국은 대량의 병사를 보내 그가 궁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막으려 헀다.동하국 왕은 이미
부소는 잠깐 멈칫했다.옥교는 슬픈 표정으로 눈물을 닦으며 방을 나섰다.부소는 미간을 찌푸리고 침대 위에 누워 있는 부원뢰를 보다 이불을 덮어 주고 방을 나갔다.방을 나가자마자 부소는 의원 일꾼에게 돈을 주며 술과 음식을 준비하라 했다.옥교는 이해하지 못했다.“어찌 정말...”부소는 난감한 듯 입을 열었다.“아마도 괜찮을 것이오.”“폐부를 다쳐 약으로 치료도 못 하는 상황에 어찌 기운이 가득한 말투로 말한다는 말이오?”“의원에게 물어야겠소.”옥교는 깜짝 놀라 그의 뒤를 따랐다.부소는 의원을 찾아 다시 물으려 했지만, 의원은 그의 눈빛을 피하며 핑계를 쓰고 그를 피하려 했다.그럴수록 부소는 의원을 보내지 않았다.결국 의원이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말했다.“아버님이 그렇게 말하라 협박했소. 내가 허락하지 않으면, 귀신을 풀어서 나를 잡아먹겠다고 했소.”“정말 어쩔 수 없이 거짓말을 했네.”“그는 내상을 입었지만 치명적이진 않아 약을 먹고 한 달 정도 조리하면 완쾌할 수 있소.”그 말을 듣고 옥교는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눈물을 닦기도 전에 다급히 물었다.“정말입니까? 괜찮으신 겁니까?”의원이 고개를 끄덕였다.“사실이오!”“이번에는 절대 거짓말을 하지 않았네.”부소는 그 말을 듣고 미간을 찌푸리고 화가 치밀어 오른 표정을 지었다.“이 늙은이가 감히 나를 놀리다니!”부소는 화가 치밀어 올라 뒷마당으로 걸어갔다. 옥교는 그가 부원뢰를 찾아가 싸울까 봐 얼른 그를 붙잡고 설득했다.“아버님을 푹 쉬게 하시오. 몸이 괜찮은 것도 좋은 일 아니오? 괜히 놀란 일이니, 걱정하지 마시오!”부소는 여전히 화가 났다.“누가 이렇게 자신을 저주하는 것이오?”비록 말은 그렇게 내뱉었지만 적어도 아버지가 살아 계시니, 부소도 마음이 조금 놓였다.“참, 동하국의 위치를 탐사한 대오의 사상자가 심각한 터라 돌보러 가겠소. 아버지를 잘 챙겨주시오.”옥교가 고개를 끄덕였다.“좋소. 어서 가보시오. 아버님은 내가 돌보겠소.”-부소는 바로 막사로
부소는 깜짝 놀라 다급히 부원뢰를 업으려 했다.“아버지를 데리고 도성에 가서 의술이 더 뛰어난 의원을 찾겠습니다!”“분명 방법이 있을 것입니다!”부원뢰는 부소의 손을 잡아당겼다.“콜록... 내 몸은 내가 잘 알고 있다. 난 시일이 얼마 남지 않았다.”“사람은 결국 죽을 테니, 그렇게 걱정하지 말거라.”부원뢰는 힘없이 말하며 그를 위로하려 억지 미소를 지으며 부소의 손등을 두드렸다.“어떻게 이럴 수가...”부소는 이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부원뢰는 길게 한숨을 쉬었다.“나도 생각지 못했다.”“네가 장가를 가고 아이를 낳는 것도 보지 못했는데, 아쉬움을 품고 가야 할 것 같구나.”말을 마치고 그는 옆에서 눈시울을 붉히고 있는 옥교를 보며 그녀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아가씨, 하나만 묻겠네. 부소가 마음에 드느냐?”옥교는 멈칫하다 저도 몰래 고개를 돌려 부소를 바라보았다.부원뢰가 말했다.“너에게 물은 것이니, 부소를 보지 말거라.”“내가 곧 죽는다고 해서 듣기 좋은 말로 위로하려 하지 말거라. 난 그저 사실을 듣고 싶을 뿐이다.”옥교는 조금 쑥스러웠지만 그래도 솔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부원뢰는 그녀의 손을 잡고 품에서 피로 물든 옥팔찌 하나를 꺼내 꼼꼼히 닦은 후 옥교에게 건네주었다.“이 팔찌는 부소 어머니의 혼수다. 이번에 이곳으로 온 것도 부소 어머니의 임무를 받고 온 것이다. 네가 참 마음에 드는구나. 앞으로 두 사람이 함께 있든 아니든 이 팔찌를 받기를 바란다.”“내 소원을 들어준다고 생각하거라. 그렇지 않으면 죽어서도 부소 어머니의 임무를 완수하지 못한 것이 한이 될 것이다.”옥교는 그 말을 듣고 놀라기도 했고 난처하기도 했다.그녀는 부소의 마음도 모르는데 어떻게 며느리의 신분을 의미하는 받을 수 있겠는가.게다가 이 옥팔찌는 너무도 귀하다.부소도 그녀가 난처한 것을 알고 말했다.“그냥 받으시오.”옥교는 그제야 팔찌를 받았다.그녀는 나중에 부소에게 돌려주기로 생각했다. 그녀는 부소가 아버지의 아쉬움을 달래
눈시울을 붉히고 눈물이 그렁그렁한 송천초의 모습을 보며 초경은 마음이 아프면서도 못내 기뻤다.그는 참지 못하고 고개를 숙여 그녀의 입술에 뽀뽀했다.그는 작은 소리로 말했다.“가치가 있다고 하면 가치가 있는 것이오!”초경은 별처럼 반짝이는 눈동자로 그녀를 부드럽게 바라보았다. 그의 확고한 눈빛에 송천초는 저도 몰래 팔을 들어 그의 목을 휘감고 더욱 적극적인 대답을 했다....송천초는 날이 밝자마자 깨어났다.그녀는 옆에 누워 있는 초경을 보고 참지 못하고 손을 뻗어 그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그에게서 시선을 돌리려 하지 않았다.“뭘 그렇게 보는 것이오? 그렇게 좋소?”갑자기 눈을 뜬 초경이 입꼬리를 올렸다.“깨어나셨습니까?”“본디 잠이 많지 않소.”초경은 말하면서 얼굴을 쓰다듬고 있던 송천초의 손을 잡고 잡아당겼다.“왜 그러시오? 아침부터 왜 그리 걱정이 많은 것이오?”“다음 생에 당신처럼 잘해 주는 사람을 다시 만날 수 없을 것 같습니다.”송천초는 그의 손을 꼭 잡고 진지하게 그를 바라보았다.“다음 생에 꼭 일찍 저를 찾아오십시오.”“다음 생이 지나도 마찬가지입니다.”초경은 그녀의 말에 웃음을 터트리고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좋소. 다음 생에도 앞으로도 꼭 일찍 찾아 지켜줄 것이오.”“평생 지켜줄 것이오.”그 말을 듣고 송천초가 진지하게 말했다.“그럼, 수명도 아껴야지 않겠습니까? 수명이 줄면 어찌 저를 평생 지켜줄 수 있습니까?”초경은 멈칫하다 마음이 따뜻해져 그녀를 꼭 안았다.“좋소. 자네의 말을 듣고 소중히 아끼겠소.”“하지만 동하국을 없애는 일은 이미 부진환에게 승낙했으니, 약속을 어길 순 없지 않소?”“걱정하지 마시오. 이 일은 큰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오.”“앞으로 뭐든 자네의 말을 듣고 수명을 소중히 여기며 평생 당신을 지켜줄 것이오.”송천초도 그를 꼭 껴안았다.“좋습니다.”-며칠 후, 이한도 쪽에서 고강해를 미끼로 삼아 그를 구하려는 사람을 몇 명 잡았다.심문하자, 그들은 모두 왕자를 구하러
막사로 돌아간 후 부진환은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그는 고강해를 미끼로 삼으려고 이한도로 데려갔다.그리고 동하국에 소식을 전해 투항을 권했다.3일도 지나지 않아 동하국 선박이 이한도 부근에 와서 고강해가 정말 이한도에 있는지 알아보려 했다.그와 동시에 송천초와 초경도 청주를 찾아왔다.부진환은 소식을 듣고 직접 맞이하러 가서 열정적으로 접대했다.세 사람은 정원에 술과 안주를 준비했다.부진환은 술을 따르고 말했다.“여제께서 두 사람이 올 것이라 편지를 보냈는데 이렇게 빨리 올 줄은 몰랐소. 왜 며칠 더 놀다 오지 않은 것이오?”송천초가 눈썹을 치켜올렸다.“이젠 여제라 부르는 것입니까? 괜히 낯설어 보이십니다.”부진환은 멈칫하다 웃으며 답했다.“보는 눈도 많은데 마음대로 여제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예의가 아니지 않소. 이미 여제라 부르는 것이 익숙하오.”“하긴 여국의 부 태사시니, 여제께 무례를 범하며 안 되시지요. 이렇게 빨리 여국으로 오실 줄 몰랐습니다. 부 태사 같은 분은 정말 흔치 않습니다.”“자, 제가 한 잔 드리지요!”송천초는 술잔을 들고 단숨에 다 마셨고 부진환도 잔을 들어 술을 마셨다.두 사람은 전쟁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지만, 초경이 마음이 급한 듯 먼저 입을 열었다.“동하국과의 전쟁은 어떻게 되었소?”“동하국 위치는 알아낸 것이오? 내가 가서 그들을 죽일 것이오.”“절대 늦어서는 안 되오.”부진환은 살짝 당황했다.“그리 조급해하는 것이오?”초경은 천천히 음식을 먹으며 물었다.“빨리 없애는 것이 좋지 않소?”“일찍 끝내야 천초가 매일 같이 걱정을 하지 않을 것이오.”부진환이 웃으며 답했다.“동하국의 위치는 이미 사람을 보내 알아보고 있소. 아마 곧 소식이 있을 것이오.”“하지만 자네는 이제 보통 사람이 아니오. 나라 사이의 전쟁에 끼어들면 수위에 영향을 끼치지 않겠소?”사실 이 일은 초경이 나설 일이 아니다.평소 송천초를 지키기 위해 사람을 몇 명 죽이는 것은 괜찮지만, 나라 사이의 전쟁은 결코
고강해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렇소. 그들이 원하는 것은 열쇠요.”“하지만 다들 열쇠가 가짜라는 것을 모르고 있소.”부진환은 곰곰이 생각하다 또 좋은 계획이 떠올랐다.그가 물었다.“당신을 대신한 형제들과 고옥서 남매를 제외하고 몇 명의 성인 형제자매가 있는 것이오?”고강해는 생각하다 답했다.“아홉 명이 더 있소.”이 숫자에 부진환은 살짝 놀랐다.동하국 왕의 자식이 이렇게 많은 줄 몰랐다.“아홉 명 전부 동하국에 있는 것이오? 왜 나타나지 않는 것이오?”고강해가 답했다.“우리는 서로 싸우는 사이라 아무도 서로 굴복하고 지휘받는 것을 원하지 않소.”“그래서 따로 병사를 통솔하고 있소. 그래야 공로를 세워도 다른 사람과 나눌 필요가 없소.”“내가 잡히자, 고옥서가 오지 않았는가?”부진환은 그 말을 듣고 가볍게 웃었다.“그렇게 서로 싸우면서 뿔뿔이 흩어져 어찌 여국을 상대하려는 것이오?”고강해가 말했다.“우리에게는 약사가 있소. 그녀가 얼마나 대단한지 자네는 모르오.”“여국의 풍수사가 강하다고 하지만, 그녀의 손가락 하나에도 비길 수 없소.”그 말을 듣고 부진환이 물었다.“전쟁을 오랫동안 했는데, 그 대단하다는 약사는 왜 아직도 나타나지 않는 것이오?”“정말 궁지에 몰리지 않은 이상 약사는 동하국을 떠나지 않을 것이오.”“약사는 스무살에 동하국으로 왔고 이미 3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소. 하지만 약사는 아직도 스무살 때의 얼굴을 유지하고 있소. 어찌 비긴다는 말이오?”“약사는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여국을 평정할 수 있소.”비록 부진환은 이런 허풍을 믿지 않지만 그렇다고 섣불리 적을 얕볼 순 없다.“약사가 그렇게 대단하면 어찌 이렇게 많은 동하국 사람의 희생이 필요하오? 어차피 약사는 동하국 사람이 아니니, 동하국을 위해 목숨을 바치지 않을 것이오.”부진환이 단번에 중점을 꼬집어 말하자 고강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부진환이 말을 이었다.“게다가 당신이 잡혀도 아무도 구하지 않을 것이오.”“형제자매들은 자네가 죽기를
“왜 계속 당신을 남겨두었는지 알고 있소?”부진환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고강해는 고개를 떨구고 힘없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동하국 왕자이기 때문에 남겨 두면 반드시 쓸모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소.”“하지만 동하국 사람이 당신을 죽이려 할 줄은 생각지 못했소.”고강해는 그 말을 듣고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렸다.“무슨 말이 하고 싶은 것이오?”“자네는 이젠 아무런 가치가 없소.”고강해는 자신의 처지를 비웃듯 입꼬리를 올리고 답했다.“사실 난 잡힌 순간부터 아무런 가치도 없었소.”“동하국에는 황자가 많으니, 나 하나 없다고 문제 될 것 없소.”“하지만 그들이 그렇게 나를 죽이려 할 줄은 몰랐소. 도망가는 와중에도 나를 쏘려고 했소.”“하지만 우리는 형제 사이의 정이 없었소. 그저 경쟁과 싸움뿐이었소.”부진환은 그가 많은 말을 하자, 계속 물었다.“그저 싸우는 사이라면 어찌 자네를 그렇게 미워하는 것이오? 구하지 않는 것도 망정이지, 왜 죽이려 하는 것이오?”고강해가 답했다.“그들은 나한테서 무언가를 얻으려 하오.”“만약 그것을 얻는다면 새로운 왕자가 될 수 있소.”부진환은 그에게 시선을 돌렸다. 고옥서가 고옥언을 구할 때, 그는 옆 방에서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었고 고강해 시체에서 뭔가를 갖고 가겠다는 것을 들었다.“그게 무엇이오?”고강해는 대답하지 않고 느릿느릿 말을 이었다.“우리 동하국에는 존경받는 약사가 있소.”“하지만 과거 그녀는 동하국의 제압을 받던 일반 의원이었소. 독을 만들 줄 알기에 우리의 핍박을 받고 독을 만들었소.”“그녀는 여국인이지만 진법으로 인해 밖으로 나와 다시는 돌아가지 못했소. 그렇게 떠돌다 그녀는 동하국으로 왔고 늘 여국으로 돌아가고 싶어 했소.”“그녀의 계획은 줄곧 실패했고 그녀는 마지막으로 홀로 바다에 갔소. 그날 그녀는 파도 때문에 배가 뒤집혔지만, 마침 바다 밑에서 보물을 발견했소.”“오래된 침몰선이 해저에서 거대한 궁전이 된 듯한 모습이었고, 그녀는 그 안에서 많은 보물을 얻었고 특
고강해는 절망에 휩싸여 눈을 감고 죽음을 맞이했다.하지만 이때, 옆에서 화살이 날아가 정확히 고옥서가 쏜 화살을 떨구었다.고옥서는 그 모습을 보고 화를 내며 활을 내던지고 재빨리 마차를 이끌고 그곳을 떠났다.이내 그 마차는 사람들의 시선에서 벗어났다.병사들도 신속히 그들의 뒤를 쫓았고 성문에 걸린 고강해도 내려져 감옥으로 데려갔다.고옥서와 고옥언은 바닷가로 도망쳐 작은 배를 찾아 먼저 숨을 곳을 찾기로 했다.하지만 너무 빨리 쫓아온 병사들 때문에 두 사람은 숨을 곳 없이 훤히 모습을 드러냈다.두 사람은 힘껏 노를 저어 떠나려 했다.바다에서 힘에 부쳐 곧 쫓기려는 그때, 눈앞에 동하국의 배 한 척이 나타났다.그리고 배 위에는 동하국 깃발이 달려 있었다. 고옥서는 미리 계획한 배가 마침 인근에 왔다고 추측했다.두 사람은 지푸라기라도 본 듯이 배 위에 있는 사람에게 인사를 했고 곧 배에 올랐다.“어서 돌아가거라! 병사가 쫓아왔다!”고옥서가 다급히 명을 내렸다.하지만 배는 바다에 멈춰 꼼짝도 하지 않았다.고옥서는 눈살을 찌푸리고 배 위의 사람들을 바라보았다.“무엇들 하는 게냐? 귀가 먹은 것이냐?”비록 배 위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동하국 병사였지만 이상하게 제자리에 서서 움직이지 않았고 그녀의 말도 신경 쓰지 않았다.고옥서는 병사들이 곧 쫓아올 것 같아 조바심을 내며 그들에게 한바탕 욕설을 퍼부었다.하지만 그들은 여전히 제자리에 서서 움직이지도 않고 말도 하지 않았으며 배도 움직이지 않았다.고옥서는 어딘가 잘못됐다는 것을 느끼고 고옥언을 끌고 배에서 뛰어내리려 했다.하지만 그때, 선실에서 청주군 병사들이 뛰어나와 단번에 그들을 포위했다.배에서 뛰어 내리려 해도 이젠 뛸 수 없었다.그리고 추격하던 병사들도 가까이 도착해 그들의 배를 겹겹이 에워쌌다. 그리고 배 위에는 부소가 서 있었다!그녀는 놀란 나머지 절망스러웠다. 고옥서는 화를 내며 동하국 사람을 붙잡았다.“적들을 도와 우리에게 함정을 파놓은 것이냐?”상대는 울먹이는 말
결국 다들 시선을 부소에게로 옮겼다.부소는 멍하니 자기를 가리키며 물었다.“나한테 가라는 것이오?”“그것도 아니지 않소?”부진환이 말했다.“주락과 계진 둘 다 싸늘한 표정을 짓고 있는데, 미인계에 넘어가게 생겼소?”“자네의 연기가 비슷할 것 같소.”부소가 다급히 말했다.“다른 사람을 찾으면 되지 않소?”“다른 사람은 마음이 놓이지 않소.”부소는 한참 고민하다 잔에 담긴 차를 단숨에 다 마셨다.“가면 될 것 아니오!”“좋은 소식 기다리시오!”부소는 말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부진환이 그를 불러 세웠다.“오늘 이미 심문을 받았으니, 지금 가는 것은 너무 티가 날 것이오. 급할 것 없이, 내일 다시 가시오.”-다음 날 저녁.부소는 부진환이 말한 대로 고옥서를 심문하러 갔다.부 태사가 오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고옥서는 전쟁 때문에 그가 오지 못했다고 생각했다.역시 부진환의 추측대로 고옥서의 계략 중 하나가 바로 미인계였다.부 태사에게는 통하지 않았지만, 부소는 다르다.한바탕 유혹하고 난 후, 고옥서는 기회를 잡아 부소와 단둘이 있게 되었다. 그녀는 고옥언이 갇힌 위치를 알아내고 부소가 방심한 틈을 타서 독 가루를 뿌려 그를 쓰러트렸고 감옥 문 열쇠를 훔쳐냈다.그리고 그녀는 독으로 감옥을 지키고 있던 옥졸을 쓰러트리고 고옥언이 갇힏 곳을 찾아 고옥언을 구출했다.“누나!”고옥언은 감격에 겨웠다.“어찌 온 것입니까? 동하국이 청주성을 뚫은 것입니까?”고옥서는 사방을 경계하며 말했다.“아니다. 홀로 너를 구하려 들어온 것이다.”“일단 이곳을 떠날 방법을 생각해야 한다.”두 사람은 조용히 감옥을 떠나려 했다. 하지만 감옥 끝에 있는 철문을 보고 고옥언이 발걸음을 멈추었다.“누나. 고강해가 저곳에 갇혀 있는 것 같습니다.”“데리고 가실 겁니까?”고옥서는 바로 거절했다.“안 된다. 너무 위험한 상황이라, 우리도 나갈 수 있을지 모른다.”“누나. 저는 그저 고강해가 지니고 있는 열쇠를 말한 것입니다.”그 말을 듣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