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원에 사람이 없는 걸 확인한 등 어멈은 괜히 초조해졌다. 왕비는 어디 있는 걸까?면사를 쓰고 사내 차림을 한 사람이 뒤늦게 도착해 등 어멈에게 다가갔고 등 어멈은 그를 경계했다.“당신은 누구시오? 감히 섭정왕부의 별원에 제멋대로 들어오다니?”낙청연은 면사를 치우면서 말했다.“등 어멈, 나다.”그 말에 등 어멈은 잠시 의아해하더니 진지한 얼굴로 상대를 자세히 살펴봤고 믿기지 않는 듯이 말했다.“왕비 마마… 십니까?”낙청연은 고개를 끄덕였다.등 어멈은 놀란 얼굴로 그녀를 뚫어져라 쳐다봤다.“못 본 지가 한 달이 조금 넘은 것 같은데 살이 이렇게나 많이 빠진 것입니까? 몸은 괜찮으십니까? 아주 큰 상처를 입으신 건 아닙니까?”걱정 가득한 등 어멈의 표정에 낙청연은 웃으며 대꾸했다.“아니다. 나는 아주 건강하단다. 살이 빠지면 좋은 것이지, 걱정하지 말거라. 등 어멈이 별원에 오다니, 왕야가 가보라고 시킨 것이더냐?”등 어멈이 대답했다.“소유가 가보라고 하더군요. 저더러 별원에 별다른 일은 없는지 알아보라고 했습니다. 아마 제가 몰래 왕비 마마께 물건을 가져다주길 바란 것일지도 모르지요.”낙청연은 싸늘한 얼굴로 웃었다.“왕야께서는 나더러 자생, 자멸하라고 하셨지. 그런데 소유가 감히 너에게 물건을 가져다주라고 할 리 있겠느냐?”“왕비 마마, 저도 자세한 것은 모릅니다만 왕야께서는 분명 홧김에 그리 얘기한 것일 겁니다. 그러니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 마세요.”등 어멈은 그 말과 함께 손에 든 바구니를 열어 보였다.“제가 약재를 가져왔습니다. 왕비 마마께 도움이 될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은냥도 가져왔으니 먼저 쓰세요.”낙청연은 미소 띤 얼굴로 은냥을 도로 넣었다.“난 돈이 모자라지 않으니 네가 쓰거라. 소유가 널 보냈다면 더는 그 호위들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되겠구나. 돌아가서 소유에게 말하거라. 내 병세가 더욱 심각해졌고 이제 곧 얼어 죽거나 굶어 죽을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왕야께는 얘기하지 않아도 되지만 낙월영에게는 반드시
장미는 흥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진짜입니다. 등 어멈은 지금도 서방 밖에 무릎을 꿇고 앉아 왕야께 사정하고 있습니다. 왕야께서 저택에 계시지 않다는 걸 모르는 것 같습니다.”그 말에 낙월영은 곧바로 방을 나섰다.“절대 왕야께서 이 일을 알게 하면 안 된다. 낙청연은 별원에서 죽어야 한다. 죽더라도 시체를 거두어주는 사람이 있어서는 안 되지!”낙월영은 득의양양했다.이번에는 그 누구도 낙청연을 구할 수 없을 것이다.부진환의 서방 앞에 도착한 낙월영은 아직도 사정하고 있는 등 어멈을 보았다.그녀는 차갑게 웃으면서 말했다.“등 관사, 우리 언니가 대체 네게 무슨 약을 먹였길래 이리 사정하는 것이냐? 안타깝게도 왕야께서는 언니가 죽든 말든 관여치 않겠다고 하셨지. 네가 사정해도 소용없는 일이다. 혹여 왕야를 화나게 한다면 네 관사의 자리까지 위험해질 수 있다.”낙월영은 코웃음을 치면서 그녀를 위협했고 등 어멈은 두려운 기색을 띠더니 곧바로 몸을 일으켜 다급히 자리를 떴다.낙월영은 등 어멈의 멀어지는 뒷모습을 보면서 냉소를 흘렸다.“역시, 사람은 이기적이구나. 자신의 이익과 관련된다면 누가 죽든 말든 신경이나 쓰겠느냐? 낙청연, 이번에는 널 도와줄 사람이 없을 것이다!”낙월영은 거만하게 웃어 보였다.등 어멈이 떠나고 난 뒤 낙월영은 장미에게 돈을 쥐여주며 말했다.“아랫것들에게 나눠주거라. 어떻게 해서든 그들이 입을 다물게 해야 할 것이야. 절대 그 누구도 낙청연의 일을 입에 올려서는 아니 된다.”낙청연의 처지를 왕야가 알아서는 안 된다.대문을 건너는데 손님이 왔는지 밖에서 소리가 들려왔고 가보니 진 태위가 와있었다.“난 왕야를 찾아온 것이 아니라 왕비 마마를 찾아온 것이다. 강에 빠졌던 게 언젠데 왜 아직도 왕비 마마를 뵐 수 없는 것이냐? 내 급히 볼일이 있다.”진 태위는 거절당하자 불쾌한 어조로 말했다.그는 왕비에게 감사 인사를 제대로 전한 적이 없었다. 저번에 사람을 보내 왕비를 저택까지 모시지 않았기에 왕비가 사람들에게 납
부진환은 미간을 주무르며 누그러진 말투로 말했다.“얼굴은 다 나았느냐? 괜찮아졌으면 인제 그만…”그 말에 낙월영은 털썩 무릎을 꿇더니 서럽게 울어댔다.“왕야께서는 절 내쫓으시려는 겁니까? 제가 잘못했습니다. 제가 감정이 격해져 진 태위의 기분을 상하게 했습니다. 하지만 절대 고의는 아니었습니다. 왕야, 절 용서해주세요.”낙월영의 불쌍한 모습과 훌쩍이며 우는 얼굴에 부진환은 순간 머리가 아팠다.그는 마음이 약해져 낙월영을 부축해 일으켜 세웠다.“난 네가 명분 없이 섭정왕부에 있는 게 걱정되어 그러는 것이다.”그 말에 낙월영은 조금 의아했지만 몰래 기뻐했다.“감사합니다, 왕야. 내일 제가 직접 저택으로 찾아가 진 태위께 사죄드리겠습니다.”부진환은 잠시 고민하더니 미간을 구기며 말했다.“아니다. 진 태위는 원래 말투가 그러니 가봤자 화만 더 돋울지도 모른다.”“알겠습니다.”낙월영은 고개를 숙이며 몰래 웃었다.역시 낙청연이 없으니 왕야는 자신을 더욱 아꼈다.그러나 부진환은 여전히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 왜 낙월영이 울기만 하면 마음이 약해지는 것일까? 그는 절대 그런 사람이 아닌데 말이다.진짜 낙월영의 연기에 마음이 움직인 것일까?—장락골목 33번에 구영 약방(九瓔藥鋪)이 생겼다.구영 약방의 이름은 낙영의 영에서 따온 것이었다.송천초는 간판을 보면서 몹시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호월구영(皓月九瓔)은 보기 드문 약재지요. 저희 약방에 오면 온갖 희귀한 약재들을 다 볼 수 있으니 아주 잘 어울리는 이름입니다!”지초는 옆에서 그 얘기를 듣고 있었다. 그녀는 송천초와 왕비와 함께 다니면서 많은 약재를 알게 되었고 그중에는 이름도 들어본 적 없는 것들이 수두룩했다.송천초에게 이렇게 많은 보물이 있을 줄이야.낙청연은 고개를 돌려 송천초를 보았다.“네 약재는 곧 다 팔릴 것이다. 그러니 다른 보기 드문 약재들을 구해야 한다.”그 말에 송천초는 자신감 넘치는 어조로 대꾸했다.“그 점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희 집에는 다른
낙청연은 곧바로 마차에 오르게 됐고 어멈은 마부더러 속도를 높이라 했다.낙청연이 물었다.“부인께 무슨 일이 있는 겁니까?”저번에 그들에게 약재를 건넸으니 별일 없어야 정상이었다.어멈은 옷자락을 꼭 쥔 채 긴장한 얼굴로 말했다.“또 왔습니다! 그 아이가 또 왔습니다.”그 말에 낙청연이 미간을 팍 찌푸렸다.“또 왔다니요?”인노침이 없는데 어떻게 또 찾아왔다는 말인가?“상황은 어떻습니까?”낙청연이 걱정스레 묻자 어멈은 고개를 저어 보였다.“아주 심각합니다. 그는 정원에 있고 저희 부인은 방안에 갇혀 있습니다. 이번에는 목숨을 지킬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어멈은 옷자락을 꽉 쥐면서 중얼거렸다.“혹시라도 부인께 무슨 일이 생긴다면 저 또한 머리가 잘리게 될 터인데…”어멈의 무의식적인 말에 낙청연은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머리가 잘리다니, 그 부인은 아마도 후궁인 듯했다.부진환과 함께 있다면 관직이 높거나 귀족일 게 분명한지만 황제의 여자일 줄은 생각지 못했다.“조급해하지 마세요. 그 아이는 부인 배속의 자리를 원합니다. 부인께서 잘못된다면 자신 또한 얻는 게 없을 것이니 부인을 다치게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하지만 겁에 질릴 것은 분명했다.그 말에 어멈은 조금 안심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드디어 도착한 봉씨 저택은 들어서자마자 음산한 기운이 느껴졌고 정원 안의 바람은 바깥과 완전히 달랐다.어멈은 그녀를 데리고 급히 내원으로 향했다.긴 회랑을 지날 때 갑자기 바람이 불어왔고 어둑한 회랑에는 등불의 잔영이 흔들리고 있었다.바로 다음 순간, 날카로운 웃음소리가 가깝고도 먼 듯한 거리에서 들려왔고 어멈은 순간 겁을 먹고 몸을 떨었다.바닥에 드리워진 자신의 그림자를 보니 그곳에는 한 아이가 쪼그리고 앉아있었다.“아!”어멈은 비명을 질렀고 눈앞이 캄캄해지면서 정신을 잃었다.낙청연의 눈빛은 삽시에 날카로워졌고, 그녀는 얼른 허리를 숙여 어멈의 상태를 살폈다. 어멈이 겁을 먹고 정신을 잃은 걸 확인한 뒤 낙청연은 계속해 안으로 들어갔다
주위가 밝아지면서 방 안의 시체가 사라졌고 낙청연은 여전히 처마 밑에 서 있었다. 광선 또한 달라졌고 발치에 있던 사람의 머리도 사라졌다.“아! 저리 가거라! 저리 가라고! 난 네 어미가 아니다! 저리 가란 말이다!”방 안에서는 겁에 질린 처절한 비명이 들려왔다.낙청연은 다른 건 신경 쓸 새도 없이 곧장 방 안으로 들어갔다.방문이 열리는 순간 부인은 방 안에서 이리저리 황급히 도망치고 있었고 무척 겁에 질린 상태였다.낙청연은 그녀를 덥석 끌어안았지만 그녀는 격렬히 저항했고 살고 싶다는 의지 때문인지 힘이 어마어마했다.낙청연은 손을 들어 그녀가 정신을 잃게 만들었고 쓰러진 그녀를 침상 위에 놓았다.맥을 짚어보니 맥박이 약했고 무척 놀라서 아이가 위험한 상태였다. 이러다간 아이를 잃을 수도 있었다.낙청연은 어떻게든 아이를 지키겠다는 생각으로 곧바로 은침을 꺼내 그녀에게 침을 놓아주었다.바로 그때 밖에서 음산한 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저 아이를 죽여야 해! 죽여야 해!”역시나 그 아이가 부인 배 속의 아이를 죽이려 하고 있었다.곧이어 방 안의 꽃병이 바닥으로 쓰러졌고 쨍그랑하는 소리가 들려왔다.그 소리에 침상 위에 누워있던 부인이 움찔거리며 반응을 보였는데 배가 많이 아픈 듯했다.낙청연의 눈빛이 매서워졌다. 이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고 환영으로 사람을 홀릴 정도라면 아주 강한 원한과 살기를 가지고 있다는 걸 뜻했다.만약 저 아이가 이러한 상태로 부인의 체내로 들어간다면 부인의 몸에 아주 큰 영향을 미칠 것이고 아이를 낳기도 전에 목숨을 잃을 것이었다.이 정도의 원한을 가지고 있으니 쫓아내는 것으로 부족했다. 반드시 없애야 했다.“너에게 다른 곳으로 갈 기회를 줬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여기로 왔구나. 그렇다면 날 원망하지 말거라!”낙청연은 칼을 뽑아 들어 손바닥에 상처를 냈고 자신의 피로 침상 곁에서 부문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리고서는 신속히 방 안에서 나와 방문을 닫았고 그 위로 부적을 붙였다.낙청연은 곧장 천명 나침반을 꺼내 들
여국 사람인 걸까?하지만 여국 사람이라면 상대는 오래전 천궐국에 왔어야 했다.그렇다면 여국의 사람이 이미 오래전 천궐국 세력과 결탁한 것일까? 문득 든 생각에 낙청연은 불안해졌다.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여국에는 천궐국의 세력이 섞여 들었을 것이고 그녀의 죽음도 이와 연관이 있을지도 몰랐다.낙청연은 손안의 인형을 힘주어 잡았다.그녀는 곧바로 몸을 돌려 방 안으로 들어갔고 부인을 위해 맥을 짚고 침을 놓은 뒤 처방까지 내렸다.그 뒤로 그녀는 밖으로 나가 정신을 잃고 쓰러진 어멈을 흔들어 깨웠다.“무슨, 무슨 일입니까?”그녀는 깜짝 놀라면서 정신을 차렸다. 그녀의 얼굴에는 여전히 당황과 공포가 드리워져 있었다.낙청연은 그녀에게 처방을 건네주며 말했다.“가서 약재를 구하세요. 이젠 괜찮습니다.”어멈은 그녀의 말에 깜짝 놀라면서 옆을 둘러봤고 주위가 잠잠해진 것을 두 눈으로 확인했다.“이젠 괜찮은 겁니까?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다행이에요…”“얼른 가서 약을 구하세요.”낙청연의 당부에 어멈은 정신을 차리며 대꾸했다.“네, 지금 가보겠습니다.”어멈은 손에 처방을 든 채 급히 자리를 떴고 낙청연은 다시 방안으로 돌아왔다.부인은 이미 정신을 차린 상태였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자 그녀는 몸을 부르르 떨면서 구석으로 몸을 피했다.낙청연은 그 모습에 살짝 놀라면서 낮게 말했다.“무서워하지 마세요. 접니다.”부인은 놀란 얼굴로 대꾸했다.“저 신산이오?’“그렇습니다.”부인은 그제야 침대 밖으로 나오면서 긴장한 얼굴로 주위를 둘러봤다.“진짜 괜찮은 것이 맞소? 그 아이는…”“완전히 해결됐으니 다시는 오지 않을 것입니다.”그녀의 몸에 인노침 같은 것이 있다고 해도 더는 찾을 필요가 없었다. 그 아이는 이제 다시는 찾아오지 못할 것이다.부인은 그녀의 말에 돌연 소리를 죽이며 울먹이기 시작했다.낙청연은 그녀가 여전히 두려워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손을 들어 그녀의 어깨를 토닥였다.“걱정하지 마세요. 아이도 부인도 전부 무사합니다
그동안 억울한 일을 많이 당했음에도 누군가와 털어놓을 수 없었던 그녀는 낙청연에게 모든 걸 얘기했다.낙청연은 밤새 그녀의 곁을 지키면서 봉희의 얘기를 들어줬다.후궁에서 지내는 여인들은 그 운명이 고달팠다.평생을 갇혀 살아야 하니 말이다.큰 집안 아씨였던 그녀들은 아름다운 미래를 꿈꿀 수 있었지만 입궁하면서 모든 게 바뀌게 된다.날이 서서히 밝아왔고 밤이 주는 두려움이 사라졌다.감정도 상태도 많이 좋아진 봉희는 감격해 말했다.“고맙소. 밤새 내 푸념을 들어줘서.”“괜찮습니다. 좋지 못한 일들을 털어놓으면 기분이 한결 좋아지는 법이지요. 몸조리하는 데도 도움이 되고요.”봉희는 어멈을 불러 사례금을 주게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단번에 만 냥이라는 큰돈을 건넸다.“부인, 이렇게 많이 주실 필요는 없습니다.”봉희는 싱긋 웃으며 대꾸했다.“내 돈이 아니오. 내 부군의 돈이지. 그분은 돈이 부족하지 않으니 그냥 받으시오.”황제가 돈이 부족할 리가 없었다.낙청연은 은표 한 상자를 넙죽 받았다.봉희가 말을 이어갔다.“나랑 친하게 지내는 부인께 저 신산을 소개해주겠소.”“감사합니다, 부인.”낙청연은 감격하며 말했고 봉희는 미소 띤 얼굴로 대답했다.“이제 여유가 생기신다면 다음번에 내 맥을 짚으러 와주실 수 있겠소?”“그럼요.”만 냥을 그냥 받을 수는 없었다.그 뒤 어멈은 낙청연을 바래다주었다.장락골목 33번 점포에는 열이 넘는 사람들이 줄지어 서 있었고 장사가 또 시작되었다.낙청연은 돈이 든 상자를 내려놓고는 옷을 갈아입고 얼굴을 가린 뒤 자리에 앉아 점을 치기 시작했다.—부진환은 오늘 아침에야 희 귀인이 큰 고비를 겪었음을 알게 되어 급히 봉씨 저택으로 향했다.희 귀인이 무사한 걸 확인하고 나서야 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황제는 당분간 출궁할 수 없었기에 그에게 희 귀인을 잘 돌봐달라고 부탁했었고 안전을 위해 부진환은 50명의 사람을 보내 봉씨 저택을 지키게 했다.어멈에게서 어젯밤 저 신산이 그들을 구했다는 얘기를
달빛 아래 자신의 앞에 모습을 드러낸 사람을 그녀는 똑똑히 알아봤다.그는 다름 아닌 부진환이었다.그의 차가운 손끝이 그녀의 면사에 닿으려 하자 낙청연은 머리를 뒤로 물리면서 몸을 피했다.그 순간 그의 손길이 그녀의 볼을 스쳤고 그 섬세한 느낌에 부진환은 손끝이 뜨거워졌다.낙청연은 손을 들어 면사를 내리누르며 몸의 균형을 잡았고 더없이 침착하고 평온하게 부진환을 바라보며 물었다.“이게 뭐 하는 짓입니까?”부진환은 미간을 구겼고 그의 눈동자에 의아함이 스쳐 지나갔다.그의 눈앞에 있는 자는 몸놀림이 예사롭지 않았다.“사내가 무슨 면사를 쓰는 것이오? 보여주지 못할 것이라도 있는 것이오?”부진환은 발걸음을 옮기며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갔고 낙청연은 연신 뒷걸음질 쳤다.“공자는 누구시길래 이리 간섭하시는 것입니까? 제가 무엇을 입고 쓰는지도 간섭하려 하시네요.”낙청연이 싸늘한 어조로 말했다.“왜 피하는 것이오? 뭐 찔리는 점이라도 있소?”날카로운 눈빛을 한 부진환은 낙청연을 뚫어질 듯이 쳐다봤다.“저는 공자께 길을 내드리려는 것입니다.”그녀는 몸을 피하면서 그에게 길을 내줬다.그러나 부진환은 그곳을 떠날 생각이 없었다. 그는 뒷짐을 지면서 싸늘한 눈길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저 신산은 내가 아는 사람과 많이 닮은 것 같소.”부진환은 그와 낙청연이 대체 어디가 닮았는지 콕 집어 얘기할 수는 없었지만 저 신산에게서 익숙한 느낌을 받았다.그런데 낙청연이 웃음을 터뜨렸다.“그런 말씀은 저에게 통하지 않습니다.”그녀는 경멸 섞인 어조로 말했다.부진환은 그녀의 말에서 그 점을 느끼고는 미간을 구기며 물었다.“저 공자, 현산 어디의 제자라고 들었는데 내 점도 봐줄 수 있겠소?”낙청연은 생각지도 않고 곧바로 대답했다.“공자께서는 기운이 예사롭지 않으니 좋은 팔자를 타고났을 것입니다.”저 신산은 그의 신분을 모르는데도 그의 팔자가 좋다는 걸 보아낼 수 있었다.저 신산은 생각보다 능력 있어 보였다.“다른 일 없으시면 전 이만 돌아가 보겠습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