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요는 턱을 쳐들고 시선을 피했다.승낙하지 않을 것이고 협박에 흔들리지 않을 것이니 손을 쓰려거든 마음대로 하라는 뜻이 분명했다.봉시는 분통이 터졌지만 경거망동할 수는 없었다.누군가 화를 내며 말했다.“이 여인을 죽이고 황궁으로 쳐들어갑시다. 제사 일족에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그중 한 명을 위협해 우리의 금혼부를 풀게 하면 되지요!”낙요는 차갑게 코웃음 칠 뿐 말을 하지 않았다.봉시는 미간을 구기고 말했다.“금혼부는 일반적인 주술이 아니라 쉽게 풀 수 있는 것이 아니오.”“제사 일족의 다른 이들은 그럴만한 능력이 없을지도 모르오.”지금 제사 일족에 인재라고는 없었다.예전의 대제사장 낙요가 어렵사리 돌아왔고 그녀는 확실히 금혼부를 풀 수 있었다.그리고 제사 일족의 다른 이들이 금혼부를 풀 수 있다고 단정 지을 수 없었다.낙요가 정말 죽는다면 이렇게 많은 사람의 금혼부를 어찌한단 말인가?봉시는 도박할 수 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들고 있던 인두를 내려놓고 분부했다.“다들 먼저 나가시오.”그렇게 사람들은 방 안에서 나갔고 오직 두 사람이 낙요의 목에 검을 겨누고 있었다.봉시는 방문을 닫은 뒤 낙요의 앞으로 천천히 걸어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저들이 당신을 얼마나 증오하는지는 보았겠지. 만약 그들의 금혼부를 풀어준다면 당신의 목숨을 살려줄 수도 있소.”낙요는 그를 바라봤다.“그러면 당신은? 시완은 구하지 않을 생각이오?”그 말에 봉시의 두 눈에 살기가 흘러넘쳤다.그는 호통을 치며 일갈했다.“내 앞에서 시완의 얘기는 꺼내지 마시오!”“당신들이 아니면 시완이 봉변을 당했겠소?”“난 반드시 노예곡을 평지로 만들어 버리겠소!”“그리고 당신들 전부 시완과 함께 땅에 묻혀야 할 것이오!”봉시는 많은 시간이 흘렀으니 시완이 죽었겠다고 생각했다.낙요는 미간을 팍 구겼다.“난 그들이 이곳에서 그런 짓을 하는 줄은 몰랐소.”“날 이용해 그들을 위협하는 것은 소용없는 짓이오. 나 역시 그들이 죽이고 싶어 하는 사람 중 한 명이니 말이
곧이어 낙요는 다른 철문이 달린 방에 갇혔다. 심지어 창문조차 철로 만들어진 것이었다.그곳은 마치 사방이 철로 만들어진 감옥처럼 느껴졌다.낙요는 벽에 묻은 피와 바닥에 잡초로 덮여진 피를 본 순간 그제야 그곳이 확실히 감옥이라는 걸 인지했다.그것도 노예가 형벌을 받을 때 사용되는 감옥이었다.그들은 노예곡을 전부 점령한 뒤 옥 안에 있던 형구들을 옮기고 바닥에 건초를 깔아 그곳을 방처럼 만든 것이다.얼마 지나지 않아 봉시가 책자를 하나 들고 와서 말했다.“지금 당장 금혼부를 푸시오!”위에는 수많은 사람이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 대제사장이 잡혔으니 그들은 분명 낙요를 구하려고 빨리 움직일 것이다.그러니 시간이 얼마 없었다.책자를 펼쳐 본 낙요는 저도 모르게 놀랐다.“이 노예곡의 사람들에 대해 미리 다 알아봤었군. 이 책자는 훨씬 전에 기록된 것이군.”봉시는 참으로 큰일을 할 사람이었다.“쓸데없는 말은 그만하고 얼른 선택하시오!”낙요는 책자의 내용을 읽으면 읽을수록 안색이 어두워졌다.앞에 몇 장을 읽어보니 전부 자잘한 일들이었다.그중 일부는 심지어 유단청이 사람을 속인 것보다도 사소한 일이었다.심지어 어떤 이들은 말싸움했다가 관아로 끌려가 잡힌 것이었다.하지만 낙요는 한 가지 규칙을 발견했다. 잡힌 이들이 전부 무고한 사람들이며 가족이 없는 혈혈단신이라는 것을 말이다.그래서 잡힌 뒤에도 그들을 위해 억울함을 호소하거나 일을 크게 벌이려고 하는 사람이 없었다.심지어 사람들은 그들이 억울한 일을 당했다는 사실조차 몰랐다.“아직도 다 보지 못한 것이오? 시간 끌지 마시오!”봉시는 차가운 목소리로 재촉했다.낙요는 심정이 복잡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사람들이 노예곡으로 잡혀와서 봉변을 당했으니 말이다.그녀는 그제야 증오 가득한 그들의 눈빛을 이해했다.만약 그녀가 그런 일을 당했다면 낙요 또한 제사 일족을 죽이려 했을 것이다.낙요는 붓을 들고 우선 무고한 여인과 노인, 약자들을 선택했다.봉시는 그것을 보고 차갑게 코웃음 쳤다
낙요는 비틀거렸고 그들은 떠났다.낙요는 심경이 복잡했다. 그녀는 그동안 노예곡 사람들이 어떻게 지냈는지 몰랐다.정말 극악무도한 자들이라면 몰라도 조금 전 사람들은 분명 무고한 자들이었다.낙요는 이 배후에 누가 있는지 반드시 찾아낼 생각이었다.잠시 뒤 봉시가 음식을 들고 찾아왔다.낙요는 매우 허약한 척하며 초췌한 얼굴로 가슴을 움켜쥐고 침상에 앉아있었다.그녀는 봉시가 가져온 음식을 보며 싫은 기색을 내비쳤다.“겨우 이것뿐이오?”봉시는 탁자 위에 음식을 내려놓으며 차갑게 코웃음 쳤다.“이것들이면 좋은 줄 아시오.”“우리는 먹을 것이 얼마 없소.”낙요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내가 당신들이 곳간을 차지한 일을 모를 것이라고 생각하오?”“취혼부를 풀기 위해서는 대량의 정력과 원기를 소모해야 하오. 음식으로 기력을 보충해야 하는데 이것으로는 부족하오.”그녀의 안색을 본 봉시는 아무 말 하지 않았다.낙요는 시선을 들어 매서운 눈초리로 그를 바라보았다.“주지 않아도 괜찮소. 그러면 나 또한 취혼부를 풀지 않을 것이오.”낙요의 강경한 태도에 봉시는 취혼부를 푸는 것이 소모가 크겠다고 생각했다.“알겠소. 기다리시오.”봉시는 음식들을 가져가고 잠시 뒤 더욱 풍성한 음식과 김이 모락모락 나는 닭고기국을 가져왔다.낙요는 음식에 독이 없는 것을 확인한 뒤에야 먹었다.그녀는 침상에 누워 쉬었지만 잠이 오질 않아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그런데 새벽에 갑자기 밖에서 인기척이 들렸다.“노예들아, 잘 들어라. 우리 대제사장님을 풀어주지 않는다면 우리는 공격을 퍼부을 것이다!”밖에서 곧 조급한 발소리가 들렸다.낙요는 곧바로 몸을 일으켜 창문 쪽으로 향했고 노예곡 사람들이 경계하기 시작하는 걸 보았다.위에서 석칠의 외침이 지속적으로 들려왔다.“지금 무기를 바치고 투항한다면 살려줄 것이다!”“이것이 유일한 기회다!”“대제사장님을 풀어주고 그녀를 무사히 위로 올려보내거라. 그러면 살려주겠다!”“열을 셀 때까지 대답이 들리지 않는다면 공격하겠다!
“오늘 상황은 당신도 보았겠지. 이런 일은 당신이 오기 전에 매일 같이 일어나서 다들 습관이 되었소. 그러니 그들이 당신을 구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은 버리시오.”낙요는 어이가 없다는 듯 말했다.“그들은 날 구하려는 것이 아니라 날 죽이려는 것을 눈치채지 못한 것이오?”“이렇게 가다가 언젠가는 막지 못할지도 모르오.”“우리가 협력한다면 살 기회가 있을지도 모르오.”그러나 봉시는 차갑게 코웃음 쳤다.“난 당신의 말을 쉽사리 믿지 않을 것이오.”“수작 부릴 생각은 마시오.”말을 마친 뒤 봉시는 낙요를 향해 책자를 던졌다.“오늘 열 명을 얼른 고르시오.”곧이어 봉시는 떠났고 방문이 닫혔다.낙요는 미간을 구겼다.봉시는 대체 정체가 무엇일까? 강풍산 같은 신물이 있다는 건 들어보았지만 강호에서 봉시라는 이름은 들어본 적이 없었다.설마 본명이 아닌 걸까?정신을 차린 낙요는 책자를 뒤져 또 열 명을 골랐다.잠시 뒤 봉시가 열 명을 데려왔고 낙요는 그들의 금혼부를 순서대로 풀어주었다.그러나 마지막에 두 사내가 들어오자 낙요는 잠깐 머뭇거렸다.그중 한 사람은 몸집이 우람하고 건장했고 다른 한 명은 비록 야위고 작아 보였지만 아주 능숙했다.야윈 사내가 말했다.“내가 먼저 하겠소!”말을 마친 뒤 그는 자리에 앉아 상의를 벗고 낙요가 금혼부를 풀어주기를 기다렸다.그러나 낙요는 그의 등에 오래된, 심각한 채찍의 흔적이 가득한 걸 보았다.보통 사람은 아니었다.옆에 서 있던 사내는 얼굴에 살기가 가득한 것이 감출 수 없었다.두 사람은 두 손에 피를 가득 묻혔고 심지어 눈에서도 살기가 느껴졌다.절대 그녀가 책자에서 고른 자들이 아니었다.“이름이 무엇이오?”낙요가 물었다.야윈 사내가 차갑게 대꾸했다.“쓸데없는 말을 하는군.”서 있던 뚱뚱한 사내가 말했다.“이오(李五)라고 하오.”야윈 사내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그러면 난 장대(張大)라고 하오.”낙요는 태연했다. 두 사람은 위장한 사람의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했다.낙요는 그자의
오늘 한 차례 대전을 치른 뒤 사람들은 전부 숨어서 쉬고 있었다.오직 은폐된 곳에만 사람들이 지키고 있었다.낙요는 무거운 마음으로 침상 위에 앉아 창밖을 바라봤다.그녀는 봉시와 단둘이 있을 기회를 찾아야 했다. 봉시를 해결해야 이곳을 떠날 기회가 있었기 때문이다.그런데 바로 그때 밖에서 발소리가 들렸고 방문 앞에서 멈췄다.곧이어 방문이 확 열렸다.들어온 자들은 다름 아닌 키가 큰 사내 한 명과 키가 작은 사내 한 명이었다.낙요는 침상에서 일어나 앉아 매서운 눈빛으로 그들을 보았다.한 명이 방문을 닫고 자물쇠까지 잠갔다.낙요는 그 사내의 손목에 검은색 도안이 있는 걸 발견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비수였다.낙요는 순간 불길한 예감이 들어 두 사내를 훑어봤다.“도궁비견(圖窮匕見)이라...”야윈 사내는 냉소를 흘렸다.“역시 대제사장답군. 우리 두 형제의 이름을 아는 자는 드문데 말이오.”낙요는 내심 놀랐다.도궁비견 두 형제는 과거에 유명한 도적이었다. 상인들만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산적들도 그들의 이름을 들으면 두려움에 떨었다.그들은 실력이 뛰어나고 악질적이며 수단 또한 악랄했다.아주 극악무도한 사람들이라 할 수 있었다.낙요는 두 사람을 차갑게 바라봤다.“봉시 몰래 온 것이겠지?”두 사람이 야심한 시각에 이곳에 온 걸 보면 목적이 불순했다. 만약 그녀에게 조금이라도 위협이 된다면 봉시에게는 좋은 일이 아니었다.그러니 봉시가 그들을 보냈을 리는 없었다.야윈 사내는 침상을 딛고 낙요를 거만하게 내려다봤다.“똑똑한 대제사장이니 우리 두 형제가 이곳에 온 목적을 알고 있겠지.”낙요는 모르는 척했다.“모르겠는데.”야윈 사내는 차갑게 웃으며 그녀를 바라봤다.“모른다고?”“그래, 모른다면 우리가 알려주겠소.”야윈 사내는 비수를 하나 꺼내 흔들거리며 낙요를 위협했다.“우리의 금혼부를 풀어주시오.”“그러면 시체만은 온전히 남겨주지.”“그렇지 않으면 당신이 상상조차 못 할 방법으로 죽여주겠소.”낙요는 차갑게 대답했다.
그래서 몸을 움직이기 불편했다.잠시 걸은 뒤 두 사람은 여기저기 둘러보고 있는 간수를 발견하고는 황급히 몸을 숨겼다.“이제 어떻게 가야 하지?”부진환이 목소리를 낮추고 물었다.구십칠은 노예곡의 살아있는 지도라고 할 수 있었다.구십칠은 잠시 관찰했다. 비록 노예곡에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총체적인 지세는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그들은 아마 고문용 방에 사람을 가뒀을 것이오. 그곳은 모든 이들에게 치욕이니 말이오. 대제사장을 잡았으니 절대 그녀가 편히 지내게 하지는 않을 것이오.”“우리는 이쪽으로 가지.”두 사람은 재빨리 암석 뒤로 돌아가서 간수들을 피해 신속히 앞으로 나아갔다....“빌어먹을, 상황 파악이 안 되나 보군. 내 수단을 꼭 맛볼 생각인가 보군!”야윈 사내 비견은 낙요의 목을 틀어쥐고 그녀를 침상 위로 눌렀고, 건장한 도궁은 곧바로 낙요의 두 발을 잡았다.비견이 낙요를 향해 덮쳐들었을 때, 낙요는 눈빛이 차가워지면서 소매에서 비수를 꺼내 비견의 복부를 힘껏 공격했다.비견은 안색이 변하며 신속히 몸을 피했지만 한 발 늦는 바람에 비수에 허리가 찔렸다.그는 몸을 홱 피했다.낙요는 벌떡 일어난 뒤 비수를 들고 도궁에게 덤벼들었고 도궁은 어쩔 수 없이 그녀의 발목을 놓아주었다.허리를 움켜쥔 비견은 손에 묻은 피를 보자 눈빛에 살기가 감돌았다.“제기랄, 죽으려고!”“오늘 우리 두 형제가 따끔한 맛을 보여주겠다!”말을 마친 뒤 두 사람은 일제히 비수를 들고 낙요를 공격했다.방이 넓지 않은 탓에 낙요가 피할 공간이 많지 않았고 무언가로 막을 수도 없었다.낙요는 바짝 긴장한 채로 두 사람을 상대했다. 두 사람의 공격은 살기등등하고 매서웠다.도궁은 힘이 장사라 한 번 잡히면 벗어나기 힘들었다.낙요는 최선을 다해 그를 피하려 했지만 결국 도궁에게 어깨를 잡혔고 도궁은 그녀의 팔을 단단히 쥔 채로 그녀를 침상 위로 쓰러뜨렸다.낙요는 팔이 아팠다.비견이 곧바로 다가왔다.낙요는 이를 악물더니 다른 손으로 비수를 잡고 휘둘렀고 도궁
피가 확 솟구쳤다.비견은 입안이 아파 입을 틀어막은 뒤 혀에서 침을 뽑았다.그는 낙요를 손가락질하며 화를 내려 했지만 부진환이 그의 얼굴을 걷어찼고 그는 그대로 멀리 날아갔다.“동생아!”도궁은 깜짝 놀라 다급히 그에게로 달려가려 했고 구십칠은 그 틈을 타서 그를 기절시켰다.부진환이 검을 뽑으려 했다.“왜 죽이지 않는 겁니까?”낙요가 손을 들어 그를 만류했다.“그들이 죽는다면 그들의 혼백을 즉시 취혼산으로 데려가야 하오.”“하지만 취혼산은 손해가 막중하여 그들이 산에 오른다면 분명 극악무도한 귀신이 될 것이오. 어쩌면 곧 산의 우두머리가 될지도 모르지.”“내 수중에 아직 이들을 통제할 자는 없소. 그러니 그들이 취혼산으로 가게 할 수는 없소.”청면료아와 홍의 여인은 혼백이 부족하고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다.이때 취혼산에 악귀가 더 많아지면 안 되었다.만약 누군가 취혼산의 진법을 망치려고 마음먹었다면 또 문제가 생길 수 있었다.“그렇군요.”“그러면 저희는 얼른 돌아갑시다.”부진환은 곧바로 낙요의 손을 잡고 문밖으로 나가려 했다.같은 시각, 많은 이들이 봉시 쪽으로 향했다. 싸움이 일어난 듯했다.그들이 도망치기엔 딱 좋았다.낙요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돌려 보았다.“누가 그들의 주의를 끈 것이오?”침서였다.하지만 부진환은 대답하지 않고 낙요의 손을 잡고 신속히 앞으로 달렸다.“상관하지 마십시오. 지금은 그대가 이곳에서 나가는 것이 급선무입니다.”도망치는 와중에 간수가 그들을 발견했고 구십칠이 곧바로 앞으로 나서며 그들을 막았다.“먼저 가시오! 나는 신경 쓰지 마시오!”낙요는 참지 못하고 고개를 돌렸지만 부진환은 그녀를 잡고 쉬지 않고 앞으로 달렸다. “구십칠은 예전에 노예곡의 사람이었습니다. 도망칠 방법이 있을 겁니다.”그들은 곧 벼랑까지 달렸다.“얼른 줄사다리를 잡고 올라가세요. 제가 밑에서 잡고 있겠습니다.”밤이고 또 벼랑이라 바람이 센 탓에 줄사다리가 끊임없이 흔들렸다.부진환은 혹시나 무슨 일이라도 생길
그 순간, 낙요 역시 부진환을 죽어라 끌어안고 손을 놓지 않았다.“대제사장님!”부진환은 그녀의 등 뒤에서 하늘을 뒤덮을 듯한 기세로 쏟아지는 화살들을 보았다.그는 몸을 돌려 화살을 막아줄 생각이었지만 낙요가 그를 필사적으로 끌어안았다.“움직이지 마시오!”’부진환은 온몸이 굳었다. 그 순간, 그는 낙요의 팔에서 억센 힘을 느꼈다.두 사람은 몸을 바짝 붙이고 있었고 부진환은 그녀의 심장 박동마저 느낄 수 있었다.아주 긴장되었다.수많은 화살이 낙요의 등 뒤로 쏟아지려 할 때 강풍산이 불쑥 나타나 회전하며 낙요의 위로 날아올라 화살들을 막아냈다.그 바람에 매서운 소리가 났다.봉시는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부진환을 바라보았다.“당신이 그녀가 마음에 둔 자인가?”부진환과 낙요는 동시에 굳어졌다.“무슨 헛소리를 하는 것이오?”봉시는 부진환의 목에 차가운 검을 겨누었다.“대제사장은 당신을 위해 일부러 자기 몸으로 화살을 막으려 했소. 내가 다 보았소.”“날 속일 생각은 마시오.”“데려가거라!”낙요와 부진환은 따로 갇혔고 두 사람은 헤어질 때 서로 눈빛을 주고받았다.봉시는 그윽한 눈빛으로 벼랑 위를 바라보았다. 이제 활을 쏘는 사람은 없었다.그들은 하필 대제사장이 올라갈 때 때마침 활을 쏘았다.미리 위에서 매복하고 있던 것이 틀림없었다. 그들은 낙요가 죽든 말든 신경 쓰지 않았다.그러니 낙요의 말은 사실이었다. 위의 사람들은 오히려 낙요가 죽기를 원했다.낙요는 방 안에 갇혔지만 전에 있던 그 방이 아니었다. 그녀는 창문 밖을 바라보았고 구십칠도 잡혀가는 걸 보았다.그는 부진환과 같은 방에 갇힌 듯했다.잠시 뒤 봉시가 돌아왔다.그는 낙요의 앞에 앉았다.“당신 말이 맞는 듯하군. 위의 사람들은 당신이 죽길 바라는 것 같소.”그렇지 않으면 낙요는 오늘 아마 도망쳤을 것이다.그런데 결국 그러지 못했다.낙요는 코웃음 쳤다.“내 말은 믿지 않는다고 하지 않았소?”봉시의 안색이 흐려졌다.“대제사장, 이곳이 제사 일족이 있는 곳인 줄
“나는 더 이상 당신의 상대가 안 되오.”낙요는 고개를 돌려 바둑판을 보며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당신을 이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당신과 함께 바둑을 두며 답답함을 풀기 위해서요.”부진환은 바둑알을 하나하나 거두었다.낙요는 실눈을 뜨고 하늘을 바라보며 손을 뻗었다. 햇빛이 손가락 사이로 새어 나왔다.“그러고 보니, 나의 답답함을 풀 사람은 당신뿐이오.”“심시몽은 어의원의 심사를 통과하고 정식으로 어의원에 들어가게 되었소. 그리고 강소풍의 집안에서도 그들의 혼사를 승낙하여 두 사람은 곧 혼사를 올릴 것이오.”“갑자기 심면과 낙현책도 혼사를 올려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들었소.”부진환이 웃으며 말했다.“일찍이 혼인할 나이가 되었지만, 아이들도 조급해하지 않는데 왜 그렇게 걱정하오?”낙요가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여유롭게 말했다.“걱정하지 않소. 대소사를 모두 당신이 걱정하고 있지 않소? 초경의 수위가 있으니, 몇 년이 지나도록 용모가 변하지 않았소. ”“나 같으면 그렇게 걱정을 많이 했으니, 일찌감치 늙었을 것이오.”몇 년 동안 부진환은 그녀를 도와 적지 않은 조정의 일을 분담했다.그녀도 부진환의 동반에 습관이 되었다.갑자기 무언가 떠오른 낙요는 자리에서 일어나 부진환을 바라보며 손바닥에 턱을 괴고 물었다.“이 나이가 되니, 아이를 낳지 않은 것을 후회하오?”“걸을 수 없을 정도로 늙었을 때, 다른 사람의 자식들이 단란히 모여있는 것을 부러워할 것이오? ”부진환은 손에 든 물건을 내려놓고 진지하게 그녀를 보며 대답했다.“후회하지 않소.”“사람은 너무 욕심을 부려서는 안 되오.”“게다가 당신은 여제요. 당신이 늙었다고 해도 누가 감히 푸대접하겠소?”“당신이 조용히 지내는 것이 좋다고 하면 난 당신과 함께 있을 것이오. 초경의 수위로 늦게 늙는다고 하지 않았소? 앞으로 당신이 늙으면 내가 당신을 부축하고 업고 다닐 것이오.”낙요는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참 좋소.”이듬해 가을.심시몽은 강소풍과 혼사를 올렸고 어의원 5품
강소풍은 고개를 끄덕이다 다급히 고개를 저으며 어찌할 바를 몰랐다.“아니오. 그런 뜻이 아니오. 어머니께서는 마음에 들어 하셨소.”설명할수록 강소풍은 상황이 복잡해지는 것 같았다.심시몽은 어두운 표정을 지었지만, 여전히 그를 위로했다.“자네의 뜻을 알고 있소. 설명할 필요 없소.”“시몽... 미안하오! 하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을 것이오. 방법을 강구하여 어머니에게 자네의 진정한 모습을 보여줄 것이오. 분명 어머니도 자네를 받아들일 것이오. ”그 말에 심시몽은 살짝 놀라 의아한 듯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나와 헤어지려는 것이 아니었소?”심시몽은 강소풍이 특별히 그녀를 찾아와 이 일을 설명하는 것을 보고, 그녀와 연을 끊으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아니요. 그럴 리가 있소.”“나는 단지 이전의 약속을 지킬 수 없을 뿐이오. 이번 달 안에 혼담을 꺼낼 수 없을 텐데, 나를 기다려줄 수 있소?”“말재주가 좋지 않아 대체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소. 어머니께서는 자네가 연약하고 힘없다고 생각하시오. 앞으로 내가 출정하면 자네가 홀로 집안을 지킬 텐데, 우리에게 좋지 않은 선택이라 생각하시오. ”이 말을 듣고 심시몽은 대충 뜻을 알아차렸다.“어머니께서는 문무를 겸비한 며느리를 원하고, 자네와 함께 전쟁터에 나가서 떨어져 있지 않아도 되기를 원하시오.”“나는 비록 무공을 할 줄 모르지만, 그래도 해낼 수 있소.”고개를 들어 올린 심시몽의 눈빛은 밝았다..강소풍은 놀라기도 했고 기쁘기도 했다.“정말이오? 여전히 나와 함께 있고 싶소? 포기하지 않을 것이오?”심시몽은 고개를 끄덕였다.“나를 위해 그렇게 많은 일을 했는데, 어찌 쉽게 포기할 수 있소? 자네가 포기하더라도 나는 포기하지 않을 것이오.”“강가는 장군 집안이라 분명 우리 언니와 같은 여인을 좋아할 것이오. 난 비록 언니와 비길 수 없지만 그래도 노력할 것이오.”“여제께서 나에게 약옥을 주었소. 만약 순 의원과 의술을 배울 수 있다면 어의원에 들어갈 기회가 있소.”“성공
이 말을 듣고 심시몽은 약간 의아해했다.“공주는 저를 탓하지 않습니까...”“그분은 공주시다. 천하를 품고 있는데, 어찌 네가 범한 작은 잘못을 추궁할 리 있냐?”“지금 너의 변화를 보면 공주도 더 이상 너를 탓하지 않을 것이다.”“하지만 차려야 할 예의는 없어서는 안 된다. 시간이 나면 공주에게 감사하다고 인사를 전하거라.”심시몽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예. 내일 가겠습니다.”“저는 먼저 약옥을 넣고 의관에 가겠습니다.”심시몽은 기쁜 마음에 빠른 걸음으로 달려갔고, 의기양양한 분위기를 풍겼다. 조금도 방금의 의기소침함이 없었다.심면도 기뻤다.모두가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은 것 같다.하지만 그와 동시에, 강소풍이 집에서 어머니와 싸우고 있었다.“안 된다고 하면 안 되는 것이다! 너를 현학서원에 보내 양성하는 것도 앞으로 네가 큰 성과를 거둘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러니 너도 마땅히 너와 어울릴 만한 부인을 얻어야 한다. 너와 전장을 누비며 적을 죽이는 그런 사람 말이다.”“힘없이 연약하게 집안에서 서방이 돌아오기를 손꼽아 기다리는 그런 평범한 아가씨는 안 된다.”“이전에 그 심시몽을 위해 집안의 빙천영지를 훔쳤고, 심지어 벌을 받고도 물건이 어디로 갔는지 말하려 하지 않았다. 난 그때부터 심시몽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그런데 지금 그 아이와 혼사를 올리려는 것이냐?”“말도 안 된다!”강부인은 단호한 태도로 조금도 말을 바꾸려 하지 않았다.강소풍은 내키지 않는 듯 반박했다.“심시몽이 평범하다니요? 어떻게 평범하다는 말입니까? 심시몽은 그저 무공이 부족할 뿐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무예를 익혀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하물며 그녀의 언니는 이미 태자로 봉해졌습니다. 그러니 심시몽도 좋은 아가씨라는 것을 설명할 수 있지 않습니까?”강부인은 콧방귀를 뀌었다.“언니는 언니이고, 심시몽은 심시몽이다. 어찌 동일하게 논할 수 있겠냐?”“강가는 권세에 빌붙지 않고, 심시몽의 언니가 태자라는 것을 봐서 그녀를 맞이하려
“나중에 자네가 신의가 될지도 모르오.”심시몽이 웃으며 말했다.“자네의 좋은 말대로 되길 바라오.”모두 술을 마시며 음식을 먹고 있었다. 심면이 임계천에게 물었다.“자네는? 어디로 가고 싶소?”“나라에 보답할 수 있다면 어디든 좋소.”임계천이 담담하게 웃었다. 그는 특별히 가고 싶은 곳이 없었기에 그저 궁의 안배를 기다리고 있었다.다들 기분이 좋았고 투지가 넘치고 미래에 대한 동경으로 가득 차 있었다.술을 너무 늦은 시각까지 마셔서 그들은 심가에서 묵었다.오전이 되자, 각 집안의 하인들이 부랴부랴 사람을 찾아왔다. 몇 사람은 술에 취해 인사불성이 되었지만, 여전히 집으로 끌려갔다.궁에서 명을 받았기 때문이다.강소풍은 금군 기사영 통령으로 봉해져 도성과 황궁의 안위를 지키게 되었다.임계천은 형부로 전근되었다.소우청과 봉함선은 수주의 군영 부장군으로 명을 받았다.소우청의 행처는 그의 아버지 소진오가 좋은 경험을 하기를 바라며 부탁한 것이다.낙요는 봉함선이 여인이기에 그녀를 그렇게 멀고 험한 곳으로 보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주동적으로 수주에 갈 것을 청구했다.봉함선이 말했다.“여국은 역대로 여 장군이 없었습니다. 저는 첫 번째 여장군이 되고 싶습니다.”“만약 힘들고 험한 곳이 아니라면 어찌 제가 포부를 발휘할 수 있겠습니까?”낙요는 그녀의 담력과 야심을 높이 사고 그녀의 청을 승낙했다.“나는 네가 여국의 첫 번째 여장군이 되기를 기대한다.”이들 외에 현학서원의 다른 학생들도 그들로 하여금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 새로운 행선지를 얻었다.유독 심시몽에 대해, 낙요는 따로 안배를 해주지 않았다.백서가 걱정했다.“어찌 유독 심시몽만 얘기가 없으십니까? 심시몽이 알면 마음이 편치 않을 것입니다.”낙요가 웃었다.“아니다. 이미 심면을 시켜 심시몽에게 한가지 물건을 보냈다.”백서는 살짝 놀랐다.“일찍이 계획이 있으셨군요.”이때의 심시몽은 홀로 넋을 잃고 연못가에 앉아있었다. 그녀의 마음은 마치 흩날리는 낙엽처럼 어수
유생이 드디어 알아차렸다.“그랬구나. 내가 어찌 이걸 잊은 것이냐.”“난 정말 운이 좋은 것 같구나. 이렇게 운 좋게 제사장 자리를 주울 수 있으니.”심면이 답했다.“아닙니다. 전에 제가 청주 전쟁에서 조난했을 때, 제자들을 통솔해 적과 싸우지 않았습니까? 현책보다 능력이 훨씬 뛰어났습니다.”“사저가 소제사장이 되는 것이 가장 적합합니다.”이렇게 칭찬하는 것을 듣고 유생은 쑥스러워하며 낙현책을 힐긋 쳐다보았다.“네가 이렇게 말하면 낙현책이 기뻐하지 않을 것이다.”낙현책이 웃으며 답했다.“그녀가 말한 것은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너는 나보다 대제사장이 더 잘 어울린다.”“나는 무학에서 너보다 좀 나을 뿐이다. 정말 대제사장이 되려면 너보다 잘할지 모를 일이다.”“다만 제사장 일족의 심사에는 이런 것이 없었다.”“하물며 나도 대제사장이 될 생각을 한 적이 없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단지 여제가 기뻐하기를 바랄 뿐이다.”이 말을 듣고 유생은 마음이 놓였다.“불쾌하지 않았다면 다행이구나. 권력과 지위 앞에서 네가 이런 결정을 내릴 수 있다니, 정말 대단하구나!”“한 잔 권하마!”유생이 술잔을 들었다.바로 이때, 갑자기 대문이 열렸고, 사람이 도착하기도 전에 먼저 목소리가 들렸다.“사람이 아직 도착하지 않았는데, 왜 벌써 마시는 것이오?”“우리를 기다리지 않는다니, 의리가 없소!”몇 사람이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강소풍과 임계천이 술병을 들고 오는 것이 보였다.“오늘 밤 다들 왔구나!”“자, 심면과 유생을 위해 한 잔 하세!”모두 자리에 앉아서 잔을 들어 함께 마셨다.그렇게 한참 마시다 보니 술에 취한 강소풍이 흥분한 듯 입을 열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심가에 겹경사가 닥칠 것이오.”모두 멍해졌다.강소풍은 낙현책과 심면을 바라보았다.“여제가 두 사람의 일을 인정했으니, 언제 혼사를 치르는 것이오?”심면은 갑자기 얼굴을 붉어지며 황급히 강소풍에게 술을 따라주었다.“술을 마셔도 자네의 입을 막지 못한 것이오?”
“저희가 어찌 가족입니까?”“50냥의 이득을 본 걸 후회한다면서요?”이 말이 나오자 다들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그들은 그제야 유생이 그날 밤 그들의 대화를 모두 들었다는 것을 깨달았다.어쩐지 상자를 도둑맞았더라니.유룽은 체면을 깎으며 사과했다.“유생아, 우리는 한 가족이니 티격태격하는 것도 정상이다. 그러나 다들 나쁜 생각은 없다.”“이전의 일은 모두 나의 잘못이다. 이렇게 너희들에게 사과하마!”“오늘 저녁 집으로 돌아가자. 너를 위해 잘 경축해야지 않겠느냐!”둘째아버지와 셋째 아버지도 모두 따라서 사과했다.집안 재산을 나누겠다고 얘기한 그날 그들이 각박한 만큼 지금 아주 자상했다.“유생아, 집으로 가자. 지나간 일은 잊고, 우리 가족 다시 시작하는 게 어떠냐?”“그래. 가족이 함께 지내면 얼마나 시끌벅적하냐? 따로 이곳에서 지내면 쓸쓸하지 않으냐?”“우리 집에 좋은 술도 두 병 간직하고 있는데, 유생을 축하하러 오늘 꺼내마!”유생은 표정을 바꾸지 않고 차분하고 차갑게 말했다.“다들 시간 낭비하지 마십시오.”“집안 재산을 나누고 연을 끊었는데, 어찌 번복할 사람이 있겠습니까?”“잘살든 못살든 더 이상 유가와 관계가 없습니다.”“다들 가시지요. 굳이 우리 집 앞에서 매달리려 한다면, 관아에 신고할 것입니다.”말을 마치고 유생은 방안으로 돌아와 차갑게 문을 닫았다.문밖의 사람들은 후회에 휩싸였다.게다가 둘째는 첫째를 원망하기 시작했다.“형님 탓입니다. 제사장 자리가 발표되기도 전에 넷째네를 쫓아내더니, 지금은 어떻게 하려는 것입니까?”셋째도 불평했다.“유생은 앞으로 대제사장이 될 것이오. 앞으로 유생 덕을 보긴커녕 이렇게 소란을 피웠으니, 앞으로 우리를 난처하게 할 수도 있소...”유롱은 짜증을 참지 못하고 말했다.“어찌 또 내 잘못이 되었냐?”“애초에 심사 결과가 나오자, 다들 하나하나 달려와서 유생네가 끝났다고, 그들 일가를 헛되이 잘해줬다고 하지 않았냐? 너희들이 모두 동의했기 때문에 넷째 일가를 쫓아낸 것이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매우 놀랐다.유가 사촌들은 냉기를 한 모금 들이마셨다.유생도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왜 제가...”왜 낙현책이 아닌가?장 총관이 웃으며 말했다.“어서 명을 받으시지요. 소제사장”유생은 정신을 차리고 마음속으로 미친 듯이 기뻐하며 얼른 명을 받고 고마움을 전했다.장 총관은 자리에 있던 병사들을 힐긋 보고 유생에게 친절하게 물었다.“소제사장,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제가 처리할 필요가 있습니까?”유생은 웃으며 말했다.“필요 없습니다. 고맙습니다!”“어찌 사양하십니까? 제가 필요한 곳이 없다면, 이만 궁으로 돌아가 명을 전해야 합니다.”“예. 바래다 드리겠습니다.”유생은 장 총관을 골목 밖까지 배웅했다. 장 총관이 의미심장하게 일깨워주었다.“아가씨는 아직 소제사장의 권력을 모르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도성에서 제사장의 권력은 여제와 대제사장에 버금갑니다.”“태자와 동등한 권력입니다.”“이런 사소한 일은 직접 처리할 필요도 없으니, 제게 한마디만 분부하면 됩니다.”유생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일깨워 줘서 고맙습니다.”“오늘 여제께서 태자도 정하셨습니까? 심면입니까?”장 총관은 고개를 끄덕였다.“예. 심가에 뜻을 전하고 왔습니다.”장 총관을 떠나보내고 유생은 기쁨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녀는 선택받을 줄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분명히 낙현책한테 졌기 때문이다.심면도 태자로 봉해져서 참 좋았다.오늘 밤 심면을 찾아 축하하려면, 이 문제를 빨리 해결해야 한다.그녀는 빠른 걸음으로 문밖으로 돌아갔다.병사들은 즉시 공손한 태도를 바꾸어 그녀에게 예를 올렸다.“소제사장, 오늘 분명 오해일 것입니다. 저희는 먼저 떠나겠습니다.”유생이 차가운 소리로 호통을 쳤다.“멈추거라!”그들은 뻣뻣하게 자리에 서서 고개를 숙이고 땀을 뻘뻘 흘렸다.제사장의 말 한마디에 그들은 직무를 잃을 수도 있다.“수사를 더 해야 하는 거 아니오? 안 하시오?”“저희가 감히 소제사장의 집을 수색할 용기가 어디 있겠습니까? 오
낙현책은 고개를 끄덕였다.“나도 궁을 나가려던 참이다. 함께 가자.”유생은 단번에 알아차렸다.“심면을 찾으러 가는 것이냐?”“심사 결과가 나온 후, 심면을 만나지 못했구나.”“심면도 무슨 일이 생긴 것이냐?”낙현책은 생각에 잠긴 듯 말했다.“그런가 보구나.”“내가 도울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얘기하거라.”“그래.”두 사람이 함께 궁으로 나온 후 유생은 바로 집으로 돌아갔고 낙현책은 심면의 집으로 향했다.유가의 골목에 도착하자마자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관아의 사람들이 유생의 집 앞을 막고 그녀의 부모님을 잡고 그들을 관아에 데리고 가려 했다.옆에는 그녀의 사촌들이 있었다.안색이 바뀐 유생은 다급히 달려갔다.“그만하시오!”“뭐 하는 것이오?”유생은 바로 부모님을 뒤에 감쌌다.유롱은 화가 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뭐 하냐니? 집안 재산을 나누었으니, 유가와 이젠 연이 없는 것이다. 집안 재산도 주지 않겠다고 했는데, 어찌 유가의 물건을 훔치는 것이냐? 그 상자에는 족히 수십만 냥이 있다!”“감히 너희랑 아무 연관도 없다고 할 수 있느냐?”유생은 그들이 이렇게 빨리 찾아올 줄 몰랐고, 관리에게 고소할 줄도 몰랐다.“우리가 훔쳤다는 증거라도 있습니까?”“증거도 없이 저희를 잡다니, 법을 따르셔야죠.”유롱이 노발대발하며 말했다.“유가 사람들이 네가 돌아온 것을 봤다!”“변명하지 말거라. 할 말이 있으면 감옥에 가서 변명하거라!”물건을 잃어버리고 그들이 유일하게 의심하는 사람은 유생이다.대가를 치르더라도 그들은 그 돈을 되찾으려 했다.“내가 돌아갔다고 돈을 훔쳤다는 것입니까? 농이 심하십니다!”“관청에 따라서 갈 수 있지만, 저희 부모님과는 연관이 없습니다. 증거가 없으면 함부로 사람을 잡을 수 없습니다!”유롱이 화를 냈다.“네 아버지와 어머니도 한패다! 당연히 관아로 데려가야 한다!”“나으리, 그들은 수십만 냥을 훔쳤습니다. 결코 적은 액수가 아닙니다. 나리께서 반드시 돈을 되찾아 주시기를 간청합니다!”
조영궁.심사 결과가 나온 후 오랫동안 기다리던 낙요는 드디어 낙현책이 오는 것을 기다렸다.“여제.”낙현책은 고개를 숙이고 여제를 마주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심사 결과가 나온 지 오래됐는데, 어찌 이제야 나를 찾아온 것이냐? 잘 고려한 것이냐?”낙현책은 고개를 끄덕이며 무릎을 꿇고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여제를 실망하게 했습니다!”이 말을 듣고 낙요는 그의 결정을 알아차렸다.“일단 일어나서 얘기하거라.”낙현책은 무릎을 꿇고 일어나지 않았다.“여제의 가르침을 저버렸습니다. 저는 대제사장 자리를 감당할 수 없습니다!”낙요는 다소 실망했지만 그래도 의외는 아니었다.“잘 생각했느냐? 이 일은 번복한 기회가 없다.”낙현책이 세게 고개를 끄덕였다.“오랫동안 심사숙고한 후 내린 결정입니다.”“제가 여제를 실망하게 했습니다.”지금까지 이렇게 노력했고 최종 심사에서 1등까지 하였는데, 여제를 실망하게 했다.낙요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일으켜 세웠다.“실망하지 않았다.”“네 실력은 모두가 다 알고 있다. 어찌 실망했겠느냐? 네가 후회하지 않으면 된다.”“이미 결정을 내린 이상 더 이상 그렇게 많은 생각을 하지 말거라. 마음을 놓고 네 목표를 향해 가거라.”“나는 네 결정을 존중한다!”여제가 화를 내지 않자, 낙현책은 그제야 한숨 돌렸다. 그는 감동에 겨웠다.“고맙습니다.”낙요는 그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그동안 심면을 만나지 않았겠구나? 어서 네 결정을 알리러 가거라.”낙현책은 고개를 끄덕이고 궁을 나갈 준비를 했다.그동안 심면도 고민하고 있었을 것이다. 두 사람에게 있어 정말 어려운 문제였다.누군가는 무언가를 포기해야 하기 때문이다.낙현책이 궁을 나서려는데 제사장족 제자가 그를 가로막았다.“유생이 궁에서 자네를 기다리고 있소. 급한 일이 있는 것 같소.”“급한 일? 알겠소.”유생은 그동안 궁에 있지 않았다. 갑자기 궁으로 찾아온 것을 보아, 중요한 일이 있는 듯했다.먼저 그녀를 만나고 궁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