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청연, 당신의 부군 부진환은 내 손에 있소. 나한테 시달려 이제 곧 숨을 거둘 것 같은데, 그가 살길 바란다면 지금 당장 날 찾아오시오. 침궁에서 기다리겠소.”낙청연의 손가락이 종이를 힘껏 짓이겼다. 그녀는 안색이 창백했다.부진환이 왜 고묘묘의 손아귀에 있는 걸까? 설마 진익이 그를 배신한 걸까?게다가 고묘묘는 그녀와 부진환의 관계를 알고 있는 듯했다.낙청연은 순간 당황했다.사내들은 옆에서 끊임없이 재잘대며 강여와 말싸움했고 그녀를 혼쭐내겠다고 했다.낙청연은 그들의 싸우는 소리에 짜증이 치밀어 호통을 쳤다.“다들 입 닥치시오!”“당신들이 그렇게 대단하면 직접 산으로 올라가지, 뭘 기다리는 것이오?”그자가 반박하려는데 낙청연이 곧바로 제사 일족의 한 제자를 불렀다.“지금 당장 저자들을 데리고 취혼산으로 향하거라!”그 사내는 들어갈 길을 찾지 못하겠다고 반박하고 싶었으나 그 말은 목구멍에 턱 걸렸고 소리를 내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낙청연은 그들을 쓱 훑어보고는 가소롭다는 듯이 웃음을 터뜨렸다.“왜 그러시오? 당신들에게 길을 안내해 줄 사람이 있지 않소? 당신들은 아주 급한 것이 아니었소? 얼른 산에 올라가시오.”그들은 시선을 피하며 대꾸하지 않았다.취혼산에 위험이 있을까 두려워 홀로 산에 들어가고 싶지는 않고, 다른 사람들과 들어가고 싶은 게 분명했다.주위는 곧바로 고요해졌다.낙청연은 서신을 손에 꽉 쥐어 종이를 구겼다.부소는 낙청연의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고 걱정스레 물었다.“왜 그러시오? 무슨 일이 생겼소?”낙청연은 고개를 숙인 채로 괴로워했다.부진환은 정말 고묘묘의 손아귀에 있을지도 몰랐다. 비록 부진환과 모든 관계를 청산했다고 했지만 그가 고묘묘의 손에 죽는 걸 참을 수는 없었다.하지만 지금 그곳으로 간다면 그녀는 취혼산에서의 시합에 빠지게 된다.어렵사리 여기까지 왔고 대제사장과의 거리는 한없이 가까웠다.낙청연은 다시 한번 이 모든 걸 경험하고 싶지 않았다.부소는 그녀의 고뇌를 눈치채고 낮은 목소리로 위로했다
부진환은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낙청연이 오지 않았다니, 참 다행이었다.고묘묘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잔을 깨뜨렸다.그러나 그녀는 이내 화를 억누르며 고개를 돌려 부진환을 바라봤고 차갑게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급하지 않소. 이건 단지 시작일 뿐이니 말이오.”“내가 다시 한번 당신 대신 낙청연의 진심을 시험해 보겠소.”부진환은 마음이 철렁 내려앉으며 다시 긴장했다.-취혼산.그들은 꼬박 두 시진 동안 산을 올라탔다.바깥쪽에는 움직이는 것들이 없었다.오직 매서운 음기와 살기만이 만연했다.서서히 날이 저물기 시작하며 주변 기운이 더욱더 음산해졌고 사람들은 등골이 서늘해졌다. 그들은 경계하며 주위를 둘러봤다.낙청연은 이곳에 처음 온 것이 아니었기에 태연하고 침착하게 걸음을 옮겼다.부소는 목소리를 낮추며 물었다.“예전에 이곳에 온 적이 있는 것이오?”낙청연은 숨기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부소는 참지 못하고 웃었다.“들어와서 당신을 보호하겠다고 했는데 지금 보니 당신에게 날 보호해달라고 부탁해야 할 것 같소.”무사히 취혼산에 출입했다는 건 실력이 비범하다는 걸 의미했다.제사 일족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취혼산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곳인지 알고 있었다.적막한 숲속에 드디어 인기척이 들렸다.나무 위에, 지면 위에 흰색의 무언가가 떠다니자 사람들은 경계했다.그들은 허리를 숙이고 몸을 숙인 채로 잠깐 관찰했고 누군가 말했다.“얼마 없으니 처리해 버리고 계속해 앞으로 가는 게 좋겠소.”곧이어 두 사람이 앞으로 나서 재빨리 밖에서 떠다니는 혼령들을 거두어들였다.그들은 계속해 앞으로 나아갔다.그러다 갑자기 누군가 소리를 질렀다.“깃발! 저기 깃발이 있소!”사람들은 눈을 부릅떴다.앞쪽으로 올라가는 언덕 위에 깃발이 한 줄 꽂혀 있었다.그러나 빛이 너무 어두워 깃발이 몇 개 있는지 잘 보이지 않았다.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그것을 빼앗으려 재빨리 돌진했다.부소도 빼앗으려고 준비하고 있는데 낙청연이 그를 붙잡았다
“이렇게 빠르단 말이오?”부소는 믿기 어려웠다.낙청연은 눈썹을 치켜세웠고 부소는 웃으면서 그녀에게 깃발 하나를 건넸다.주변 사람들도 잇달아 문제를 해결했고 깃발을 얻는 것이 쉽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몇몇은 다쳤는데 상처가 심각하지는 않았다.낙청연은 강여를 살폈다. 비록 나이는 어리지만 반응이 빠르고 움직임이 민첩하여 아주 빨리 문제를 해결해 다치지는 않았다.오히려 강여를 농락했던 사내가 거만함 때문에 속임수에 걸려들었고 한참을 쉬었다가 겨우 정신을 차렸다.낙청연과 강여가 무사하자 그는 눈빛이 더욱 차가워지며 원망스러운 눈초리로 그들을 바라봤다.그러고는 다른 사람들과 눈빛을 주고받았다.낙청연은 그 모습을 전부 지켜보고 있었다.강여가 다가와 말했다.“언니, 앞으로 더 위험해질 것 같습니다.”말하면서 강여는 뒤에 있는 사내들을 조심하라고 낙청연에게 눈치를 줬다.낙청연은 고개를 끄덕였다.가는 길 내내 낙청연 일행 세 명은 앞에서 걸었고 가는 길에 악귀들을 많이 만났다.강여는 나이가 어리지만 항상 물러서지 않고 앞에 나섰다. 눈빛을 보면 그녀가 못 할 일은 없다는 듯한 눈빛이었다.낙청연은 강여를 보며 마치 과거의 자신을 보는 듯했다.낙청연은 가는 길에 강여를 지도했고 강여는 아주 빨리 배웠다. 평소에 접하지 못했던 기술들을 알게 되어 강여는 무척 기뻐 보였다.조금 안전한 곳에 도착해 쉬게 되자 강여가 말했다.“언니가 이렇게 많은 걸 가르쳐주셨는데 전 보답할 길이 없습니다. 제가 언니를 스승으로 모셔도 되겠습니까?”“부디 언니가 싫어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낙청연은 살짝 놀랐다. 강여의 확고한 눈빛을 본 낙청연은 잠깐 머뭇거리다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래.”“하지만 넌 대제사장의 자리를 다투러 온 것이 아니냐? 왜 경쟁상대인 나를 스승으로 모시려는 것이냐?”강여는 다급히 손을 내저었다.“아닙니다! 전 대제사장의 자리를 다투려고 온 것이 아니라 배우려고 온 것입니다.”“이번에 대단한 강자들이 온다는 얘기를 들어 뭔가를 배울 수
그 뒤로 그들은 연속으로 깃발 다섯 개를 얻었다.이때가 되니 깃발을 얻지 못한 사람들이 대여섯 명이 되었다.하지만 이상한 건 그들이 다투거나 빼앗으려 하지 않았단 점이다.대오는 시종일관 평화로웠다.날이 밝을 무렵, 그들은 앞으로 나아갈 힘이 없어 안전한 곳을 찾아 휴식했다.맨 처음 싸움을 말리던 마른 사내가 낙청연을 향해 걸어왔다.“낭자, 우리 의논 좀 할 수 있겠소?”낙청연은 덤덤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말하시오.”마른 사내는 웃으며 말했다.“당신도 현재 상황을 보았겠지. 뒤로 갈수록 평화를 유지할 수는 없으니 분명 피 터지게 싸우게 될 것이오.”“우리 먼저 동맹을 맺는 건 어떻소?”“솔직히 얘기해서 난 대제사장 자리가 크게 탐나지 않소. 그것보다 살아서 이곳을 나가는 게 더욱 중요하오.”“낙 낭자의 명성은 이미 들은 바가 있소. 그래서 난 이 대제사장의 자리가 당신의 것이라고 생각하오.”그 말을 들은 낙청연은 의아한 듯 그를 바라봤다.“무슨 뜻이오?”마른 사내는 목소리를 낮추고 말했다.“난 낭자가 이기게 도와줄 것이오. 낭자가 정말 대제사장이 된다면 내게 좋은 자리를 줄 수 있겠소?”“날 제사 일족으로 받아주는 것도 좋소.”외부 사람들에게 제사 일족이 되는 건 큰일이었다.그렇기에 거짓말이 아닐지도 몰랐다.“난 이미 여럿을 설득했소. 대제사장 자리보다 목숨이 더 귀하니 말이오.”“만약 낙 낭자가 원한다면 우리는 낙 낭자가 이번 시합에서 이길 수 있도록 도와주겠소. 낙 낭자는 잊지 말고 밖에 나간 뒤 우리를 좀 신경 써주면 되오.”낙청연은 웃었다.“그건 당연히 문제없소.”마른 사내는 그 말을 듣고 흥분했다.“승낙한 것이오? 그러면 약속한 것이오!”낙청연은 고개를 끄덕였다.곧이어 마른 사내는 부랴부랴 달려가 다른 사람들과 작은 목소리로 뭔가를 의논했다.겉으로는 동맹이 맺어진 듯했다.사람들은 그 근처에서 물과 음식을 찾았고 휴식할 때 각자 부적을 준비했다.산에서는 부적을 많이 소모해야 했다.오후가 되자
다음 순간, 맞은편에 있던 마른 사내와 다른 사람들이 밧줄을 잡고 낙청연을 끌어당겼다.같은 시각, 어둠 속에서 무언가 움직였고 곧바로 누군가 부적을 날려 보냈다.그러나 그 바람에 아래에 있던 시체 냄새가 맹렬한 기운과 함께 폭발했다.순식간에 무수한 손들이 어둠 속에서 뻗어졌다.그런데 바로 그때 마른 사내 등 사람들이 일부러 공격을 받은 척하면서 손에 쥐고 있던 밧줄을 놓았다.낙청연은 시체 구덩이 위로 날아올랐고 바다에 착지하기도 전에 몸이 급속도로 하강했다.부소는 그 광경을 보고 안색이 급변했다.강여는 깜짝 놀라서 큰 소리로 외쳤다.“스승님!”바로 그때, 음산한 바람이 불어왔다.멀지 않은 곳에서 붉은색 옷을 입은 여인이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어두운 밤이라 그런지 유독 섬뜩해 보였다.마른 사내 등 사람들은 지레 겁을 먹고 황급히 일어나 도망쳤다.그들은 남은 사람들이 죽든 살든 상관하지 않았다.이 길은 이미 반쯤 지나와서 더는 그렇게 많은 사람이 필요하지 않을 것 같았다.깃발이 점점 줄어드니 말이다.밧줄을 죽어라 잡고 있던 낙청연은 마른 사내 등 사람들이 도망친 뒤 밧줄이 미끄러져 마침 큰 바위에 걸렸다.낙청연은 밧줄을 단단히 잡고 흔들거리며 반대편으로 향하려 했다.그러나 시체 구덩이 아래 수없이 많은 손들이 그녀를 향해 뻗어왔고 낙청연의 발목을 잡았다.붉은색 옷을 입은 여인이 확 가까워졌다.부소는 안색이 달라지며 손을 쓰려고 했는데 붉은 옷을 입은 여인이 시체 구덩이를 향해 으르렁거렸다.부소는 그녀가 낙청연을 공격하려 한다고 생각했지만 바로 다음 순간 시체 구덩이가 조용해졌다.낙청연의 발목을 잡고 있던 손도 풀렸다.낙청연은 밧줄의 반동을 이용해 재빨리 지면으로 올라갔다.부소는 낙청연이 올라오자 그제야 조금 마음을 놓았다.다시 고개를 돌렸을 때, 붉은 옷을 입고 있던 여인이 사라졌다.강여도 주위를 둘러보며 의아한 듯 물었다.“그 형체가 사라졌습니다. 아마 우리를 도와준 게 아닐까요?”낙청연은 바닥에 있던 밧줄을
이제 낙청연이 대오에 있지 않으니 그 악귀들은 제멋대로 날뛰기 시작했다.계속 앞으로 나아가자 시체를 몇 구 더 보게 됐는데, 죽은 모습이 제각각이면서 모두 참혹했다.찢긴 부적이 가득하고 지면이 불에 탄 흔적도 있어 그야말로 엉망진창이었다.부소와 강여는 경계심을 높였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너무 고요해서 오히려 더 불안할 정도였다.앞에서 드디어 인기척이 들려왔다.그런데 가까이 가보니 사람의 목소리였다.그들이 마른 사내 일행을 따라잡은 것이었다.그들도 인기척을 듣고 바짝 긴장했다.그러나 낙청연 3인을 보게 되자 그들은 삽시에 안색이 달라졌다.그들이 죽지 않았다니!마른 사내는 반응이 빨랐다. 그는 다급히 달려와 흥분한 목소리로 외쳤다.“낙 낭자, 살아있었소?”“정말 다행이오! 난 또...”낙청연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걸려 있었다. 그녀는 그들을 힐끗 바라보았다.“어떻게 된 일이오? 아까 봤었는데 그 짧은 사이 이렇게 비참해진 것이오?”마른 사내는 다급히 낙청연을 이끌고 구석으로 숨었다.“낙 낭자, 낭자는 운이 정말 좋소. 우리는 조금 전 청면료아를 만났소. 청면료아는 이 취혼산에서 가장 무시무시한 악귀요!”“낭자는 우리와 함께 가는 게 좋겠소. 우리는 사람이 많아서 낭자를 보호할 수 있소.”낙청연은 냉소했다. 그들의 보호를 받는 것이 오히려 더 위험했다.그런데 바로 그때, 강여를 괴롭혔던 건장한 사내가 거절하며 말했다.“이렇게 위험한 곳에서 쓸모도 없는 여인을 보호해야 한다니.”“보호하려면 당신들끼리 보호하시오.”말을 마친 뒤 사내는 일어나서 계속해 앞으로 나아갔다.그리고 적지 않은 사람들도 그를 뒤따랐다.마른 사내는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고 낙청연은 웃으며 말했다.“상관없소. 우리는 당신들의 발목을 잡지 않겠소.”마른 사내가 뭐라 더 말하려는데 숲속에서 연기가 퍼졌고 누군가 놀란 듯 소리쳤다.“또 왔소. 청면료아가 또 왔소!”사람들은 도망치는데 박차를 가했다.마른 사내는 겁을 먹고 긴장
강여도 그것을 보았다.“깃발이 있습니다. 언덕 위에 깃발이 꽂혀 있습니다.”부소는 다급히 걸음에 박차를 가했다.“빨리!”하지만 그들이 도착했을 때, 바닥에 꽂혀 있는 깃발 중 하나도 뽑힌 게 없었다.깃발들은 기관 때문에 잠겨있었고 기관 위에는 부적이 붙어 있었다.그 뒤에는 대량의 활과 화살이 놓여 있었고 화살마다 부적이 붙어있었다.누군가 잠시 고민하다가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화살에 피가 묻어야 깃발에 붙은 부적을 뜯을 수 있소.”그 광경을 본 순간 낙청연은 문득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역시나 강여를 괴롭혔던 사내가 재빨리 화살을 들고 낙청연을 겨눴다.“이 물건들을 여기에 놓은 걸 보면 뜻은 분명하오. 우리더러 서로를 죽고 죽이라는 뜻이겠지.”“이것이 우리를 위해 준비된 유일한 무기요.”“현재 저 여인이 깃발을 가장 많이 가지고 있으니 우선 저 여인부터 해치우자고!”다른 사람들은 그 말을 듣고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화살을 들어 낙청연을 겨누었다.부소는 곧바로 손을 뻗어 낙청연과 강여를 몸 뒤로 감췄다.그런데 낙청연이 그의 팔을 잡고 말했다.“내 뒤에 서시오.”부소는 당황했다.이런 순간에는 강자가 약자를 보호해야 하는 법이 아닌가?”그러나 낙청연의 차가운 표정과 서늘하면서도 결연한 눈빛을 보는 순간, 그는 왠지 모르게 마음이 놓였다.부소는 순순히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바로 그때, 맞은편에 있던 사내가 큰 소리로 외쳤다.“화살을 쏘시오!”모든 이들이 일제히 화살을 쏘자 낙청연 일행을 향해 화살들이 수없이 쏟아졌다.그런데 바로 그때, 낙청연이 부적을 몇 장 던졌고 부적은 상공의 네 개 방향으로 날아올랐다.낙청연은 중간에 부적을 하나 그렸고, 낙청연이 손바닥으로 바닥을 치자 보이지 않는 힘이 퍼져나갔다.“혼산의 악귀여, 내 명령에 따르거라!”차가우면서도 우렁찬 목소리에 살기가 등등했다.그 순간, 음산한 바람이 휘몰아치면서 낙청연 일행을 향한 화살들이 허공에 멈췄다.곧이어 엄청난 광경이 펼쳐졌다. 낙청연의 등 뒤,
“그러면 대제사장보다 더욱 강한 것이 아닙니까?”낙청연이 대답했다.“난 저자들과 거래를 했다. 그래서 저들이 내 말을 따르는 것이다.”그 말에 강여는 생각에 잠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바로 그때, 낙청연은 옆에 있던 부소를 바라보며 입꼬리를 살짝 끌어 올렸다.“당신도 날 죽이고 싶었다면 이젠 기회가 없게 됐소.”부소는 살짝 놀라더니 이내 웃으며 대답했다.“그런 마음을 먹지 않아서 다행이오.”낙청연은 눈썹을 치켜세웠다.그녀는 처음부터 부소가 평범하지 않은, 만만치 않은 인물이라는 걸 알았다.그런데 그녀를 죽일 생각이 없었다니?“그러면 여기에 온 이유가 무엇이오?”“단지 구경하려고 목숨을 걸고 이 판에 뛰어들었다는 말은 믿지 않을 것이오.”부소는 참지 못하고 웃었다.“낙 낭자는 진작에 날 의심했나 보오.”“오는 길 내내 내가 손을 쓰길 바라고 있던 것은 아니오?”“그러면 낙 낭자는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 실망한 것은 아니오?”낙청연은 의미심장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조금 실망했소.”“여기에 온 이유가 대체 무엇이오?”낙청연은 답이 너무 궁금했다.“당신을 위해서요.”뜬금없는 얘기에 낙청연은 당황했다.그녀는 놀란 얼굴로 물었다.“나를 위해서라고?”부소는 사뭇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그렇소.”“구체적인 연유는 이곳에서 나간 뒤 얘기해주겠소.”“나도 잘 고민해 봐야겠소. 어떻게 설명해야 낭자가 받아들일지 말이오.”낙청연은 웃었다.“가지.”세 사람은 계속해 앞으로 나아갔다. 그런데 바로 그때, 하늘에서 천둥이 쳤고 낙청연은 걸음을 우뚝 멈췄다.고개를 들어 보니 어두컴컴한 밤하늘에서 은은한 금빛이 보였다.천둥소리와 함께 그 금빛이 보일 듯 말 듯 했다.부소 또한 고개를 들어 보았다.“금뢰(金雷)?”“정말 금뢰라는 게 있다니.”강여는 궁금한 듯 물었다.“금뢰가 무엇입니까?”부소가 설명했다.“우리 여국인은 예로부터 풍수사가 많아 풍수와 점을 치는 것에 능통했다. 점을 봐서 천기를 너무 많이 누설하면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