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청연, 당신의 부군 부진환은 내 손에 있소. 나한테 시달려 이제 곧 숨을 거둘 것 같은데, 그가 살길 바란다면 지금 당장 날 찾아오시오. 침궁에서 기다리겠소.”낙청연의 손가락이 종이를 힘껏 짓이겼다. 그녀는 안색이 창백했다.부진환이 왜 고묘묘의 손아귀에 있는 걸까? 설마 진익이 그를 배신한 걸까?게다가 고묘묘는 그녀와 부진환의 관계를 알고 있는 듯했다.낙청연은 순간 당황했다.사내들은 옆에서 끊임없이 재잘대며 강여와 말싸움했고 그녀를 혼쭐내겠다고 했다.낙청연은 그들의 싸우는 소리에 짜증이 치밀어 호통을 쳤다.“다들 입 닥치시오!”“당신들이 그렇게 대단하면 직접 산으로 올라가지, 뭘 기다리는 것이오?”그자가 반박하려는데 낙청연이 곧바로 제사 일족의 한 제자를 불렀다.“지금 당장 저자들을 데리고 취혼산으로 향하거라!”그 사내는 들어갈 길을 찾지 못하겠다고 반박하고 싶었으나 그 말은 목구멍에 턱 걸렸고 소리를 내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낙청연은 그들을 쓱 훑어보고는 가소롭다는 듯이 웃음을 터뜨렸다.“왜 그러시오? 당신들에게 길을 안내해 줄 사람이 있지 않소? 당신들은 아주 급한 것이 아니었소? 얼른 산에 올라가시오.”그들은 시선을 피하며 대꾸하지 않았다.취혼산에 위험이 있을까 두려워 홀로 산에 들어가고 싶지는 않고, 다른 사람들과 들어가고 싶은 게 분명했다.주위는 곧바로 고요해졌다.낙청연은 서신을 손에 꽉 쥐어 종이를 구겼다.부소는 낙청연의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고 걱정스레 물었다.“왜 그러시오? 무슨 일이 생겼소?”낙청연은 고개를 숙인 채로 괴로워했다.부진환은 정말 고묘묘의 손아귀에 있을지도 몰랐다. 비록 부진환과 모든 관계를 청산했다고 했지만 그가 고묘묘의 손에 죽는 걸 참을 수는 없었다.하지만 지금 그곳으로 간다면 그녀는 취혼산에서의 시합에 빠지게 된다.어렵사리 여기까지 왔고 대제사장과의 거리는 한없이 가까웠다.낙청연은 다시 한번 이 모든 걸 경험하고 싶지 않았다.부소는 그녀의 고뇌를 눈치채고 낮은 목소리로 위로했다
부진환은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낙청연이 오지 않았다니, 참 다행이었다.고묘묘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잔을 깨뜨렸다.그러나 그녀는 이내 화를 억누르며 고개를 돌려 부진환을 바라봤고 차갑게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급하지 않소. 이건 단지 시작일 뿐이니 말이오.”“내가 다시 한번 당신 대신 낙청연의 진심을 시험해 보겠소.”부진환은 마음이 철렁 내려앉으며 다시 긴장했다.-취혼산.그들은 꼬박 두 시진 동안 산을 올라탔다.바깥쪽에는 움직이는 것들이 없었다.오직 매서운 음기와 살기만이 만연했다.서서히 날이 저물기 시작하며 주변 기운이 더욱더 음산해졌고 사람들은 등골이 서늘해졌다. 그들은 경계하며 주위를 둘러봤다.낙청연은 이곳에 처음 온 것이 아니었기에 태연하고 침착하게 걸음을 옮겼다.부소는 목소리를 낮추며 물었다.“예전에 이곳에 온 적이 있는 것이오?”낙청연은 숨기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부소는 참지 못하고 웃었다.“들어와서 당신을 보호하겠다고 했는데 지금 보니 당신에게 날 보호해달라고 부탁해야 할 것 같소.”무사히 취혼산에 출입했다는 건 실력이 비범하다는 걸 의미했다.제사 일족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취혼산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곳인지 알고 있었다.적막한 숲속에 드디어 인기척이 들렸다.나무 위에, 지면 위에 흰색의 무언가가 떠다니자 사람들은 경계했다.그들은 허리를 숙이고 몸을 숙인 채로 잠깐 관찰했고 누군가 말했다.“얼마 없으니 처리해 버리고 계속해 앞으로 가는 게 좋겠소.”곧이어 두 사람이 앞으로 나서 재빨리 밖에서 떠다니는 혼령들을 거두어들였다.그들은 계속해 앞으로 나아갔다.그러다 갑자기 누군가 소리를 질렀다.“깃발! 저기 깃발이 있소!”사람들은 눈을 부릅떴다.앞쪽으로 올라가는 언덕 위에 깃발이 한 줄 꽂혀 있었다.그러나 빛이 너무 어두워 깃발이 몇 개 있는지 잘 보이지 않았다.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그것을 빼앗으려 재빨리 돌진했다.부소도 빼앗으려고 준비하고 있는데 낙청연이 그를 붙잡았다
“이렇게 빠르단 말이오?”부소는 믿기 어려웠다.낙청연은 눈썹을 치켜세웠고 부소는 웃으면서 그녀에게 깃발 하나를 건넸다.주변 사람들도 잇달아 문제를 해결했고 깃발을 얻는 것이 쉽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몇몇은 다쳤는데 상처가 심각하지는 않았다.낙청연은 강여를 살폈다. 비록 나이는 어리지만 반응이 빠르고 움직임이 민첩하여 아주 빨리 문제를 해결해 다치지는 않았다.오히려 강여를 농락했던 사내가 거만함 때문에 속임수에 걸려들었고 한참을 쉬었다가 겨우 정신을 차렸다.낙청연과 강여가 무사하자 그는 눈빛이 더욱 차가워지며 원망스러운 눈초리로 그들을 바라봤다.그러고는 다른 사람들과 눈빛을 주고받았다.낙청연은 그 모습을 전부 지켜보고 있었다.강여가 다가와 말했다.“언니, 앞으로 더 위험해질 것 같습니다.”말하면서 강여는 뒤에 있는 사내들을 조심하라고 낙청연에게 눈치를 줬다.낙청연은 고개를 끄덕였다.가는 길 내내 낙청연 일행 세 명은 앞에서 걸었고 가는 길에 악귀들을 많이 만났다.강여는 나이가 어리지만 항상 물러서지 않고 앞에 나섰다. 눈빛을 보면 그녀가 못 할 일은 없다는 듯한 눈빛이었다.낙청연은 강여를 보며 마치 과거의 자신을 보는 듯했다.낙청연은 가는 길에 강여를 지도했고 강여는 아주 빨리 배웠다. 평소에 접하지 못했던 기술들을 알게 되어 강여는 무척 기뻐 보였다.조금 안전한 곳에 도착해 쉬게 되자 강여가 말했다.“언니가 이렇게 많은 걸 가르쳐주셨는데 전 보답할 길이 없습니다. 제가 언니를 스승으로 모셔도 되겠습니까?”“부디 언니가 싫어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낙청연은 살짝 놀랐다. 강여의 확고한 눈빛을 본 낙청연은 잠깐 머뭇거리다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래.”“하지만 넌 대제사장의 자리를 다투러 온 것이 아니냐? 왜 경쟁상대인 나를 스승으로 모시려는 것이냐?”강여는 다급히 손을 내저었다.“아닙니다! 전 대제사장의 자리를 다투려고 온 것이 아니라 배우려고 온 것입니다.”“이번에 대단한 강자들이 온다는 얘기를 들어 뭔가를 배울 수
그 뒤로 그들은 연속으로 깃발 다섯 개를 얻었다.이때가 되니 깃발을 얻지 못한 사람들이 대여섯 명이 되었다.하지만 이상한 건 그들이 다투거나 빼앗으려 하지 않았단 점이다.대오는 시종일관 평화로웠다.날이 밝을 무렵, 그들은 앞으로 나아갈 힘이 없어 안전한 곳을 찾아 휴식했다.맨 처음 싸움을 말리던 마른 사내가 낙청연을 향해 걸어왔다.“낭자, 우리 의논 좀 할 수 있겠소?”낙청연은 덤덤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말하시오.”마른 사내는 웃으며 말했다.“당신도 현재 상황을 보았겠지. 뒤로 갈수록 평화를 유지할 수는 없으니 분명 피 터지게 싸우게 될 것이오.”“우리 먼저 동맹을 맺는 건 어떻소?”“솔직히 얘기해서 난 대제사장 자리가 크게 탐나지 않소. 그것보다 살아서 이곳을 나가는 게 더욱 중요하오.”“낙 낭자의 명성은 이미 들은 바가 있소. 그래서 난 이 대제사장의 자리가 당신의 것이라고 생각하오.”그 말을 들은 낙청연은 의아한 듯 그를 바라봤다.“무슨 뜻이오?”마른 사내는 목소리를 낮추고 말했다.“난 낭자가 이기게 도와줄 것이오. 낭자가 정말 대제사장이 된다면 내게 좋은 자리를 줄 수 있겠소?”“날 제사 일족으로 받아주는 것도 좋소.”외부 사람들에게 제사 일족이 되는 건 큰일이었다.그렇기에 거짓말이 아닐지도 몰랐다.“난 이미 여럿을 설득했소. 대제사장 자리보다 목숨이 더 귀하니 말이오.”“만약 낙 낭자가 원한다면 우리는 낙 낭자가 이번 시합에서 이길 수 있도록 도와주겠소. 낙 낭자는 잊지 말고 밖에 나간 뒤 우리를 좀 신경 써주면 되오.”낙청연은 웃었다.“그건 당연히 문제없소.”마른 사내는 그 말을 듣고 흥분했다.“승낙한 것이오? 그러면 약속한 것이오!”낙청연은 고개를 끄덕였다.곧이어 마른 사내는 부랴부랴 달려가 다른 사람들과 작은 목소리로 뭔가를 의논했다.겉으로는 동맹이 맺어진 듯했다.사람들은 그 근처에서 물과 음식을 찾았고 휴식할 때 각자 부적을 준비했다.산에서는 부적을 많이 소모해야 했다.오후가 되자
다음 순간, 맞은편에 있던 마른 사내와 다른 사람들이 밧줄을 잡고 낙청연을 끌어당겼다.같은 시각, 어둠 속에서 무언가 움직였고 곧바로 누군가 부적을 날려 보냈다.그러나 그 바람에 아래에 있던 시체 냄새가 맹렬한 기운과 함께 폭발했다.순식간에 무수한 손들이 어둠 속에서 뻗어졌다.그런데 바로 그때 마른 사내 등 사람들이 일부러 공격을 받은 척하면서 손에 쥐고 있던 밧줄을 놓았다.낙청연은 시체 구덩이 위로 날아올랐고 바다에 착지하기도 전에 몸이 급속도로 하강했다.부소는 그 광경을 보고 안색이 급변했다.강여는 깜짝 놀라서 큰 소리로 외쳤다.“스승님!”바로 그때, 음산한 바람이 불어왔다.멀지 않은 곳에서 붉은색 옷을 입은 여인이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어두운 밤이라 그런지 유독 섬뜩해 보였다.마른 사내 등 사람들은 지레 겁을 먹고 황급히 일어나 도망쳤다.그들은 남은 사람들이 죽든 살든 상관하지 않았다.이 길은 이미 반쯤 지나와서 더는 그렇게 많은 사람이 필요하지 않을 것 같았다.깃발이 점점 줄어드니 말이다.밧줄을 죽어라 잡고 있던 낙청연은 마른 사내 등 사람들이 도망친 뒤 밧줄이 미끄러져 마침 큰 바위에 걸렸다.낙청연은 밧줄을 단단히 잡고 흔들거리며 반대편으로 향하려 했다.그러나 시체 구덩이 아래 수없이 많은 손들이 그녀를 향해 뻗어왔고 낙청연의 발목을 잡았다.붉은색 옷을 입은 여인이 확 가까워졌다.부소는 안색이 달라지며 손을 쓰려고 했는데 붉은 옷을 입은 여인이 시체 구덩이를 향해 으르렁거렸다.부소는 그녀가 낙청연을 공격하려 한다고 생각했지만 바로 다음 순간 시체 구덩이가 조용해졌다.낙청연의 발목을 잡고 있던 손도 풀렸다.낙청연은 밧줄의 반동을 이용해 재빨리 지면으로 올라갔다.부소는 낙청연이 올라오자 그제야 조금 마음을 놓았다.다시 고개를 돌렸을 때, 붉은 옷을 입고 있던 여인이 사라졌다.강여도 주위를 둘러보며 의아한 듯 물었다.“그 형체가 사라졌습니다. 아마 우리를 도와준 게 아닐까요?”낙청연은 바닥에 있던 밧줄을
이제 낙청연이 대오에 있지 않으니 그 악귀들은 제멋대로 날뛰기 시작했다.계속 앞으로 나아가자 시체를 몇 구 더 보게 됐는데, 죽은 모습이 제각각이면서 모두 참혹했다.찢긴 부적이 가득하고 지면이 불에 탄 흔적도 있어 그야말로 엉망진창이었다.부소와 강여는 경계심을 높였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너무 고요해서 오히려 더 불안할 정도였다.앞에서 드디어 인기척이 들려왔다.그런데 가까이 가보니 사람의 목소리였다.그들이 마른 사내 일행을 따라잡은 것이었다.그들도 인기척을 듣고 바짝 긴장했다.그러나 낙청연 3인을 보게 되자 그들은 삽시에 안색이 달라졌다.그들이 죽지 않았다니!마른 사내는 반응이 빨랐다. 그는 다급히 달려와 흥분한 목소리로 외쳤다.“낙 낭자, 살아있었소?”“정말 다행이오! 난 또...”낙청연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걸려 있었다. 그녀는 그들을 힐끗 바라보았다.“어떻게 된 일이오? 아까 봤었는데 그 짧은 사이 이렇게 비참해진 것이오?”마른 사내는 다급히 낙청연을 이끌고 구석으로 숨었다.“낙 낭자, 낭자는 운이 정말 좋소. 우리는 조금 전 청면료아를 만났소. 청면료아는 이 취혼산에서 가장 무시무시한 악귀요!”“낭자는 우리와 함께 가는 게 좋겠소. 우리는 사람이 많아서 낭자를 보호할 수 있소.”낙청연은 냉소했다. 그들의 보호를 받는 것이 오히려 더 위험했다.그런데 바로 그때, 강여를 괴롭혔던 건장한 사내가 거절하며 말했다.“이렇게 위험한 곳에서 쓸모도 없는 여인을 보호해야 한다니.”“보호하려면 당신들끼리 보호하시오.”말을 마친 뒤 사내는 일어나서 계속해 앞으로 나아갔다.그리고 적지 않은 사람들도 그를 뒤따랐다.마른 사내는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고 낙청연은 웃으며 말했다.“상관없소. 우리는 당신들의 발목을 잡지 않겠소.”마른 사내가 뭐라 더 말하려는데 숲속에서 연기가 퍼졌고 누군가 놀란 듯 소리쳤다.“또 왔소. 청면료아가 또 왔소!”사람들은 도망치는데 박차를 가했다.마른 사내는 겁을 먹고 긴장
강여도 그것을 보았다.“깃발이 있습니다. 언덕 위에 깃발이 꽂혀 있습니다.”부소는 다급히 걸음에 박차를 가했다.“빨리!”하지만 그들이 도착했을 때, 바닥에 꽂혀 있는 깃발 중 하나도 뽑힌 게 없었다.깃발들은 기관 때문에 잠겨있었고 기관 위에는 부적이 붙어 있었다.그 뒤에는 대량의 활과 화살이 놓여 있었고 화살마다 부적이 붙어있었다.누군가 잠시 고민하다가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화살에 피가 묻어야 깃발에 붙은 부적을 뜯을 수 있소.”그 광경을 본 순간 낙청연은 문득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역시나 강여를 괴롭혔던 사내가 재빨리 화살을 들고 낙청연을 겨눴다.“이 물건들을 여기에 놓은 걸 보면 뜻은 분명하오. 우리더러 서로를 죽고 죽이라는 뜻이겠지.”“이것이 우리를 위해 준비된 유일한 무기요.”“현재 저 여인이 깃발을 가장 많이 가지고 있으니 우선 저 여인부터 해치우자고!”다른 사람들은 그 말을 듣고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화살을 들어 낙청연을 겨누었다.부소는 곧바로 손을 뻗어 낙청연과 강여를 몸 뒤로 감췄다.그런데 낙청연이 그의 팔을 잡고 말했다.“내 뒤에 서시오.”부소는 당황했다.이런 순간에는 강자가 약자를 보호해야 하는 법이 아닌가?”그러나 낙청연의 차가운 표정과 서늘하면서도 결연한 눈빛을 보는 순간, 그는 왠지 모르게 마음이 놓였다.부소는 순순히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바로 그때, 맞은편에 있던 사내가 큰 소리로 외쳤다.“화살을 쏘시오!”모든 이들이 일제히 화살을 쏘자 낙청연 일행을 향해 화살들이 수없이 쏟아졌다.그런데 바로 그때, 낙청연이 부적을 몇 장 던졌고 부적은 상공의 네 개 방향으로 날아올랐다.낙청연은 중간에 부적을 하나 그렸고, 낙청연이 손바닥으로 바닥을 치자 보이지 않는 힘이 퍼져나갔다.“혼산의 악귀여, 내 명령에 따르거라!”차가우면서도 우렁찬 목소리에 살기가 등등했다.그 순간, 음산한 바람이 휘몰아치면서 낙청연 일행을 향한 화살들이 허공에 멈췄다.곧이어 엄청난 광경이 펼쳐졌다. 낙청연의 등 뒤,
“그러면 대제사장보다 더욱 강한 것이 아닙니까?”낙청연이 대답했다.“난 저자들과 거래를 했다. 그래서 저들이 내 말을 따르는 것이다.”그 말에 강여는 생각에 잠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바로 그때, 낙청연은 옆에 있던 부소를 바라보며 입꼬리를 살짝 끌어 올렸다.“당신도 날 죽이고 싶었다면 이젠 기회가 없게 됐소.”부소는 살짝 놀라더니 이내 웃으며 대답했다.“그런 마음을 먹지 않아서 다행이오.”낙청연은 눈썹을 치켜세웠다.그녀는 처음부터 부소가 평범하지 않은, 만만치 않은 인물이라는 걸 알았다.그런데 그녀를 죽일 생각이 없었다니?“그러면 여기에 온 이유가 무엇이오?”“단지 구경하려고 목숨을 걸고 이 판에 뛰어들었다는 말은 믿지 않을 것이오.”부소는 참지 못하고 웃었다.“낙 낭자는 진작에 날 의심했나 보오.”“오는 길 내내 내가 손을 쓰길 바라고 있던 것은 아니오?”“그러면 낙 낭자는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 실망한 것은 아니오?”낙청연은 의미심장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조금 실망했소.”“여기에 온 이유가 대체 무엇이오?”낙청연은 답이 너무 궁금했다.“당신을 위해서요.”뜬금없는 얘기에 낙청연은 당황했다.그녀는 놀란 얼굴로 물었다.“나를 위해서라고?”부소는 사뭇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그렇소.”“구체적인 연유는 이곳에서 나간 뒤 얘기해주겠소.”“나도 잘 고민해 봐야겠소. 어떻게 설명해야 낭자가 받아들일지 말이오.”낙청연은 웃었다.“가지.”세 사람은 계속해 앞으로 나아갔다. 그런데 바로 그때, 하늘에서 천둥이 쳤고 낙청연은 걸음을 우뚝 멈췄다.고개를 들어 보니 어두컴컴한 밤하늘에서 은은한 금빛이 보였다.천둥소리와 함께 그 금빛이 보일 듯 말 듯 했다.부소 또한 고개를 들어 보았다.“금뢰(金雷)?”“정말 금뢰라는 게 있다니.”강여는 궁금한 듯 물었다.“금뢰가 무엇입니까?”부소가 설명했다.“우리 여국인은 예로부터 풍수사가 많아 풍수와 점을 치는 것에 능통했다. 점을 봐서 천기를 너무 많이 누설하면 하
“나는 더 이상 당신의 상대가 안 되오.”낙요는 고개를 돌려 바둑판을 보며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당신을 이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당신과 함께 바둑을 두며 답답함을 풀기 위해서요.”부진환은 바둑알을 하나하나 거두었다.낙요는 실눈을 뜨고 하늘을 바라보며 손을 뻗었다. 햇빛이 손가락 사이로 새어 나왔다.“그러고 보니, 나의 답답함을 풀 사람은 당신뿐이오.”“심시몽은 어의원의 심사를 통과하고 정식으로 어의원에 들어가게 되었소. 그리고 강소풍의 집안에서도 그들의 혼사를 승낙하여 두 사람은 곧 혼사를 올릴 것이오.”“갑자기 심면과 낙현책도 혼사를 올려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들었소.”부진환이 웃으며 말했다.“일찍이 혼인할 나이가 되었지만, 아이들도 조급해하지 않는데 왜 그렇게 걱정하오?”낙요가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여유롭게 말했다.“걱정하지 않소. 대소사를 모두 당신이 걱정하고 있지 않소? 초경의 수위가 있으니, 몇 년이 지나도록 용모가 변하지 않았소. ”“나 같으면 그렇게 걱정을 많이 했으니, 일찌감치 늙었을 것이오.”몇 년 동안 부진환은 그녀를 도와 적지 않은 조정의 일을 분담했다.그녀도 부진환의 동반에 습관이 되었다.갑자기 무언가 떠오른 낙요는 자리에서 일어나 부진환을 바라보며 손바닥에 턱을 괴고 물었다.“이 나이가 되니, 아이를 낳지 않은 것을 후회하오?”“걸을 수 없을 정도로 늙었을 때, 다른 사람의 자식들이 단란히 모여있는 것을 부러워할 것이오? ”부진환은 손에 든 물건을 내려놓고 진지하게 그녀를 보며 대답했다.“후회하지 않소.”“사람은 너무 욕심을 부려서는 안 되오.”“게다가 당신은 여제요. 당신이 늙었다고 해도 누가 감히 푸대접하겠소?”“당신이 조용히 지내는 것이 좋다고 하면 난 당신과 함께 있을 것이오. 초경의 수위로 늦게 늙는다고 하지 않았소? 앞으로 당신이 늙으면 내가 당신을 부축하고 업고 다닐 것이오.”낙요는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참 좋소.”이듬해 가을.심시몽은 강소풍과 혼사를 올렸고 어의원 5품
강소풍은 고개를 끄덕이다 다급히 고개를 저으며 어찌할 바를 몰랐다.“아니오. 그런 뜻이 아니오. 어머니께서는 마음에 들어 하셨소.”설명할수록 강소풍은 상황이 복잡해지는 것 같았다.심시몽은 어두운 표정을 지었지만, 여전히 그를 위로했다.“자네의 뜻을 알고 있소. 설명할 필요 없소.”“시몽... 미안하오! 하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을 것이오. 방법을 강구하여 어머니에게 자네의 진정한 모습을 보여줄 것이오. 분명 어머니도 자네를 받아들일 것이오. ”그 말에 심시몽은 살짝 놀라 의아한 듯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나와 헤어지려는 것이 아니었소?”심시몽은 강소풍이 특별히 그녀를 찾아와 이 일을 설명하는 것을 보고, 그녀와 연을 끊으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아니요. 그럴 리가 있소.”“나는 단지 이전의 약속을 지킬 수 없을 뿐이오. 이번 달 안에 혼담을 꺼낼 수 없을 텐데, 나를 기다려줄 수 있소?”“말재주가 좋지 않아 대체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소. 어머니께서는 자네가 연약하고 힘없다고 생각하시오. 앞으로 내가 출정하면 자네가 홀로 집안을 지킬 텐데, 우리에게 좋지 않은 선택이라 생각하시오. ”이 말을 듣고 심시몽은 대충 뜻을 알아차렸다.“어머니께서는 문무를 겸비한 며느리를 원하고, 자네와 함께 전쟁터에 나가서 떨어져 있지 않아도 되기를 원하시오.”“나는 비록 무공을 할 줄 모르지만, 그래도 해낼 수 있소.”고개를 들어 올린 심시몽의 눈빛은 밝았다..강소풍은 놀라기도 했고 기쁘기도 했다.“정말이오? 여전히 나와 함께 있고 싶소? 포기하지 않을 것이오?”심시몽은 고개를 끄덕였다.“나를 위해 그렇게 많은 일을 했는데, 어찌 쉽게 포기할 수 있소? 자네가 포기하더라도 나는 포기하지 않을 것이오.”“강가는 장군 집안이라 분명 우리 언니와 같은 여인을 좋아할 것이오. 난 비록 언니와 비길 수 없지만 그래도 노력할 것이오.”“여제께서 나에게 약옥을 주었소. 만약 순 의원과 의술을 배울 수 있다면 어의원에 들어갈 기회가 있소.”“성공
이 말을 듣고 심시몽은 약간 의아해했다.“공주는 저를 탓하지 않습니까...”“그분은 공주시다. 천하를 품고 있는데, 어찌 네가 범한 작은 잘못을 추궁할 리 있냐?”“지금 너의 변화를 보면 공주도 더 이상 너를 탓하지 않을 것이다.”“하지만 차려야 할 예의는 없어서는 안 된다. 시간이 나면 공주에게 감사하다고 인사를 전하거라.”심시몽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예. 내일 가겠습니다.”“저는 먼저 약옥을 넣고 의관에 가겠습니다.”심시몽은 기쁜 마음에 빠른 걸음으로 달려갔고, 의기양양한 분위기를 풍겼다. 조금도 방금의 의기소침함이 없었다.심면도 기뻤다.모두가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은 것 같다.하지만 그와 동시에, 강소풍이 집에서 어머니와 싸우고 있었다.“안 된다고 하면 안 되는 것이다! 너를 현학서원에 보내 양성하는 것도 앞으로 네가 큰 성과를 거둘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러니 너도 마땅히 너와 어울릴 만한 부인을 얻어야 한다. 너와 전장을 누비며 적을 죽이는 그런 사람 말이다.”“힘없이 연약하게 집안에서 서방이 돌아오기를 손꼽아 기다리는 그런 평범한 아가씨는 안 된다.”“이전에 그 심시몽을 위해 집안의 빙천영지를 훔쳤고, 심지어 벌을 받고도 물건이 어디로 갔는지 말하려 하지 않았다. 난 그때부터 심시몽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그런데 지금 그 아이와 혼사를 올리려는 것이냐?”“말도 안 된다!”강부인은 단호한 태도로 조금도 말을 바꾸려 하지 않았다.강소풍은 내키지 않는 듯 반박했다.“심시몽이 평범하다니요? 어떻게 평범하다는 말입니까? 심시몽은 그저 무공이 부족할 뿐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무예를 익혀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하물며 그녀의 언니는 이미 태자로 봉해졌습니다. 그러니 심시몽도 좋은 아가씨라는 것을 설명할 수 있지 않습니까?”강부인은 콧방귀를 뀌었다.“언니는 언니이고, 심시몽은 심시몽이다. 어찌 동일하게 논할 수 있겠냐?”“강가는 권세에 빌붙지 않고, 심시몽의 언니가 태자라는 것을 봐서 그녀를 맞이하려
“나중에 자네가 신의가 될지도 모르오.”심시몽이 웃으며 말했다.“자네의 좋은 말대로 되길 바라오.”모두 술을 마시며 음식을 먹고 있었다. 심면이 임계천에게 물었다.“자네는? 어디로 가고 싶소?”“나라에 보답할 수 있다면 어디든 좋소.”임계천이 담담하게 웃었다. 그는 특별히 가고 싶은 곳이 없었기에 그저 궁의 안배를 기다리고 있었다.다들 기분이 좋았고 투지가 넘치고 미래에 대한 동경으로 가득 차 있었다.술을 너무 늦은 시각까지 마셔서 그들은 심가에서 묵었다.오전이 되자, 각 집안의 하인들이 부랴부랴 사람을 찾아왔다. 몇 사람은 술에 취해 인사불성이 되었지만, 여전히 집으로 끌려갔다.궁에서 명을 받았기 때문이다.강소풍은 금군 기사영 통령으로 봉해져 도성과 황궁의 안위를 지키게 되었다.임계천은 형부로 전근되었다.소우청과 봉함선은 수주의 군영 부장군으로 명을 받았다.소우청의 행처는 그의 아버지 소진오가 좋은 경험을 하기를 바라며 부탁한 것이다.낙요는 봉함선이 여인이기에 그녀를 그렇게 멀고 험한 곳으로 보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주동적으로 수주에 갈 것을 청구했다.봉함선이 말했다.“여국은 역대로 여 장군이 없었습니다. 저는 첫 번째 여장군이 되고 싶습니다.”“만약 힘들고 험한 곳이 아니라면 어찌 제가 포부를 발휘할 수 있겠습니까?”낙요는 그녀의 담력과 야심을 높이 사고 그녀의 청을 승낙했다.“나는 네가 여국의 첫 번째 여장군이 되기를 기대한다.”이들 외에 현학서원의 다른 학생들도 그들로 하여금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 새로운 행선지를 얻었다.유독 심시몽에 대해, 낙요는 따로 안배를 해주지 않았다.백서가 걱정했다.“어찌 유독 심시몽만 얘기가 없으십니까? 심시몽이 알면 마음이 편치 않을 것입니다.”낙요가 웃었다.“아니다. 이미 심면을 시켜 심시몽에게 한가지 물건을 보냈다.”백서는 살짝 놀랐다.“일찍이 계획이 있으셨군요.”이때의 심시몽은 홀로 넋을 잃고 연못가에 앉아있었다. 그녀의 마음은 마치 흩날리는 낙엽처럼 어수
유생이 드디어 알아차렸다.“그랬구나. 내가 어찌 이걸 잊은 것이냐.”“난 정말 운이 좋은 것 같구나. 이렇게 운 좋게 제사장 자리를 주울 수 있으니.”심면이 답했다.“아닙니다. 전에 제가 청주 전쟁에서 조난했을 때, 제자들을 통솔해 적과 싸우지 않았습니까? 현책보다 능력이 훨씬 뛰어났습니다.”“사저가 소제사장이 되는 것이 가장 적합합니다.”이렇게 칭찬하는 것을 듣고 유생은 쑥스러워하며 낙현책을 힐긋 쳐다보았다.“네가 이렇게 말하면 낙현책이 기뻐하지 않을 것이다.”낙현책이 웃으며 답했다.“그녀가 말한 것은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너는 나보다 대제사장이 더 잘 어울린다.”“나는 무학에서 너보다 좀 나을 뿐이다. 정말 대제사장이 되려면 너보다 잘할지 모를 일이다.”“다만 제사장 일족의 심사에는 이런 것이 없었다.”“하물며 나도 대제사장이 될 생각을 한 적이 없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단지 여제가 기뻐하기를 바랄 뿐이다.”이 말을 듣고 유생은 마음이 놓였다.“불쾌하지 않았다면 다행이구나. 권력과 지위 앞에서 네가 이런 결정을 내릴 수 있다니, 정말 대단하구나!”“한 잔 권하마!”유생이 술잔을 들었다.바로 이때, 갑자기 대문이 열렸고, 사람이 도착하기도 전에 먼저 목소리가 들렸다.“사람이 아직 도착하지 않았는데, 왜 벌써 마시는 것이오?”“우리를 기다리지 않는다니, 의리가 없소!”몇 사람이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강소풍과 임계천이 술병을 들고 오는 것이 보였다.“오늘 밤 다들 왔구나!”“자, 심면과 유생을 위해 한 잔 하세!”모두 자리에 앉아서 잔을 들어 함께 마셨다.그렇게 한참 마시다 보니 술에 취한 강소풍이 흥분한 듯 입을 열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심가에 겹경사가 닥칠 것이오.”모두 멍해졌다.강소풍은 낙현책과 심면을 바라보았다.“여제가 두 사람의 일을 인정했으니, 언제 혼사를 치르는 것이오?”심면은 갑자기 얼굴을 붉어지며 황급히 강소풍에게 술을 따라주었다.“술을 마셔도 자네의 입을 막지 못한 것이오?”
“저희가 어찌 가족입니까?”“50냥의 이득을 본 걸 후회한다면서요?”이 말이 나오자 다들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그들은 그제야 유생이 그날 밤 그들의 대화를 모두 들었다는 것을 깨달았다.어쩐지 상자를 도둑맞았더라니.유룽은 체면을 깎으며 사과했다.“유생아, 우리는 한 가족이니 티격태격하는 것도 정상이다. 그러나 다들 나쁜 생각은 없다.”“이전의 일은 모두 나의 잘못이다. 이렇게 너희들에게 사과하마!”“오늘 저녁 집으로 돌아가자. 너를 위해 잘 경축해야지 않겠느냐!”둘째아버지와 셋째 아버지도 모두 따라서 사과했다.집안 재산을 나누겠다고 얘기한 그날 그들이 각박한 만큼 지금 아주 자상했다.“유생아, 집으로 가자. 지나간 일은 잊고, 우리 가족 다시 시작하는 게 어떠냐?”“그래. 가족이 함께 지내면 얼마나 시끌벅적하냐? 따로 이곳에서 지내면 쓸쓸하지 않으냐?”“우리 집에 좋은 술도 두 병 간직하고 있는데, 유생을 축하하러 오늘 꺼내마!”유생은 표정을 바꾸지 않고 차분하고 차갑게 말했다.“다들 시간 낭비하지 마십시오.”“집안 재산을 나누고 연을 끊었는데, 어찌 번복할 사람이 있겠습니까?”“잘살든 못살든 더 이상 유가와 관계가 없습니다.”“다들 가시지요. 굳이 우리 집 앞에서 매달리려 한다면, 관아에 신고할 것입니다.”말을 마치고 유생은 방안으로 돌아와 차갑게 문을 닫았다.문밖의 사람들은 후회에 휩싸였다.게다가 둘째는 첫째를 원망하기 시작했다.“형님 탓입니다. 제사장 자리가 발표되기도 전에 넷째네를 쫓아내더니, 지금은 어떻게 하려는 것입니까?”셋째도 불평했다.“유생은 앞으로 대제사장이 될 것이오. 앞으로 유생 덕을 보긴커녕 이렇게 소란을 피웠으니, 앞으로 우리를 난처하게 할 수도 있소...”유롱은 짜증을 참지 못하고 말했다.“어찌 또 내 잘못이 되었냐?”“애초에 심사 결과가 나오자, 다들 하나하나 달려와서 유생네가 끝났다고, 그들 일가를 헛되이 잘해줬다고 하지 않았냐? 너희들이 모두 동의했기 때문에 넷째 일가를 쫓아낸 것이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매우 놀랐다.유가 사촌들은 냉기를 한 모금 들이마셨다.유생도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왜 제가...”왜 낙현책이 아닌가?장 총관이 웃으며 말했다.“어서 명을 받으시지요. 소제사장”유생은 정신을 차리고 마음속으로 미친 듯이 기뻐하며 얼른 명을 받고 고마움을 전했다.장 총관은 자리에 있던 병사들을 힐긋 보고 유생에게 친절하게 물었다.“소제사장,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제가 처리할 필요가 있습니까?”유생은 웃으며 말했다.“필요 없습니다. 고맙습니다!”“어찌 사양하십니까? 제가 필요한 곳이 없다면, 이만 궁으로 돌아가 명을 전해야 합니다.”“예. 바래다 드리겠습니다.”유생은 장 총관을 골목 밖까지 배웅했다. 장 총관이 의미심장하게 일깨워주었다.“아가씨는 아직 소제사장의 권력을 모르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도성에서 제사장의 권력은 여제와 대제사장에 버금갑니다.”“태자와 동등한 권력입니다.”“이런 사소한 일은 직접 처리할 필요도 없으니, 제게 한마디만 분부하면 됩니다.”유생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일깨워 줘서 고맙습니다.”“오늘 여제께서 태자도 정하셨습니까? 심면입니까?”장 총관은 고개를 끄덕였다.“예. 심가에 뜻을 전하고 왔습니다.”장 총관을 떠나보내고 유생은 기쁨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녀는 선택받을 줄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분명히 낙현책한테 졌기 때문이다.심면도 태자로 봉해져서 참 좋았다.오늘 밤 심면을 찾아 축하하려면, 이 문제를 빨리 해결해야 한다.그녀는 빠른 걸음으로 문밖으로 돌아갔다.병사들은 즉시 공손한 태도를 바꾸어 그녀에게 예를 올렸다.“소제사장, 오늘 분명 오해일 것입니다. 저희는 먼저 떠나겠습니다.”유생이 차가운 소리로 호통을 쳤다.“멈추거라!”그들은 뻣뻣하게 자리에 서서 고개를 숙이고 땀을 뻘뻘 흘렸다.제사장의 말 한마디에 그들은 직무를 잃을 수도 있다.“수사를 더 해야 하는 거 아니오? 안 하시오?”“저희가 감히 소제사장의 집을 수색할 용기가 어디 있겠습니까? 오
낙현책은 고개를 끄덕였다.“나도 궁을 나가려던 참이다. 함께 가자.”유생은 단번에 알아차렸다.“심면을 찾으러 가는 것이냐?”“심사 결과가 나온 후, 심면을 만나지 못했구나.”“심면도 무슨 일이 생긴 것이냐?”낙현책은 생각에 잠긴 듯 말했다.“그런가 보구나.”“내가 도울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얘기하거라.”“그래.”두 사람이 함께 궁으로 나온 후 유생은 바로 집으로 돌아갔고 낙현책은 심면의 집으로 향했다.유가의 골목에 도착하자마자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관아의 사람들이 유생의 집 앞을 막고 그녀의 부모님을 잡고 그들을 관아에 데리고 가려 했다.옆에는 그녀의 사촌들이 있었다.안색이 바뀐 유생은 다급히 달려갔다.“그만하시오!”“뭐 하는 것이오?”유생은 바로 부모님을 뒤에 감쌌다.유롱은 화가 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뭐 하냐니? 집안 재산을 나누었으니, 유가와 이젠 연이 없는 것이다. 집안 재산도 주지 않겠다고 했는데, 어찌 유가의 물건을 훔치는 것이냐? 그 상자에는 족히 수십만 냥이 있다!”“감히 너희랑 아무 연관도 없다고 할 수 있느냐?”유생은 그들이 이렇게 빨리 찾아올 줄 몰랐고, 관리에게 고소할 줄도 몰랐다.“우리가 훔쳤다는 증거라도 있습니까?”“증거도 없이 저희를 잡다니, 법을 따르셔야죠.”유롱이 노발대발하며 말했다.“유가 사람들이 네가 돌아온 것을 봤다!”“변명하지 말거라. 할 말이 있으면 감옥에 가서 변명하거라!”물건을 잃어버리고 그들이 유일하게 의심하는 사람은 유생이다.대가를 치르더라도 그들은 그 돈을 되찾으려 했다.“내가 돌아갔다고 돈을 훔쳤다는 것입니까? 농이 심하십니다!”“관청에 따라서 갈 수 있지만, 저희 부모님과는 연관이 없습니다. 증거가 없으면 함부로 사람을 잡을 수 없습니다!”유롱이 화를 냈다.“네 아버지와 어머니도 한패다! 당연히 관아로 데려가야 한다!”“나으리, 그들은 수십만 냥을 훔쳤습니다. 결코 적은 액수가 아닙니다. 나리께서 반드시 돈을 되찾아 주시기를 간청합니다!”
조영궁.심사 결과가 나온 후 오랫동안 기다리던 낙요는 드디어 낙현책이 오는 것을 기다렸다.“여제.”낙현책은 고개를 숙이고 여제를 마주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심사 결과가 나온 지 오래됐는데, 어찌 이제야 나를 찾아온 것이냐? 잘 고려한 것이냐?”낙현책은 고개를 끄덕이며 무릎을 꿇고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여제를 실망하게 했습니다!”이 말을 듣고 낙요는 그의 결정을 알아차렸다.“일단 일어나서 얘기하거라.”낙현책은 무릎을 꿇고 일어나지 않았다.“여제의 가르침을 저버렸습니다. 저는 대제사장 자리를 감당할 수 없습니다!”낙요는 다소 실망했지만 그래도 의외는 아니었다.“잘 생각했느냐? 이 일은 번복한 기회가 없다.”낙현책이 세게 고개를 끄덕였다.“오랫동안 심사숙고한 후 내린 결정입니다.”“제가 여제를 실망하게 했습니다.”지금까지 이렇게 노력했고 최종 심사에서 1등까지 하였는데, 여제를 실망하게 했다.낙요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일으켜 세웠다.“실망하지 않았다.”“네 실력은 모두가 다 알고 있다. 어찌 실망했겠느냐? 네가 후회하지 않으면 된다.”“이미 결정을 내린 이상 더 이상 그렇게 많은 생각을 하지 말거라. 마음을 놓고 네 목표를 향해 가거라.”“나는 네 결정을 존중한다!”여제가 화를 내지 않자, 낙현책은 그제야 한숨 돌렸다. 그는 감동에 겨웠다.“고맙습니다.”낙요는 그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그동안 심면을 만나지 않았겠구나? 어서 네 결정을 알리러 가거라.”낙현책은 고개를 끄덕이고 궁을 나갈 준비를 했다.그동안 심면도 고민하고 있었을 것이다. 두 사람에게 있어 정말 어려운 문제였다.누군가는 무언가를 포기해야 하기 때문이다.낙현책이 궁을 나서려는데 제사장족 제자가 그를 가로막았다.“유생이 궁에서 자네를 기다리고 있소. 급한 일이 있는 것 같소.”“급한 일? 알겠소.”유생은 그동안 궁에 있지 않았다. 갑자기 궁으로 찾아온 것을 보아, 중요한 일이 있는 듯했다.먼저 그녀를 만나고 궁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