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청연! 당장 내려오거라!”낙청연이 입을 열려는데 차가우면서도 다소 놀란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청연, 형님…”멍한 얼굴로 고개를 든 낙청연은 부운주가 그들을 향해 다가오고 있는 걸 보았다.두 사람의 자세를 본 부운주는 무안한 듯 고개를 돌렸고 부진환은 목소리의 주인이 부운주라는 것을 깨닫고는 더욱 심각한 어조로 말했다.“얼른 내려오라니까!”낙청연은 아픈 몸을 지탱하며 힘겹게 몸을 일으켰고 부진환 또한 즉시 일어났다.부운주는 그제야 고개를 돌리며 걱정스레 물었다.“형님, 청연, 괜찮습니까?”부진환은 미간을 구기면서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괜찮다.”그는 고개를 들어 부운주를 쳐다보며 물었다.“네가 여긴 웬일이냐?”“저는 산명 대사를 찾아온 것입니다. 여기에 계신다는 소리를 듣고 왔는데 어찌…”부운주는 알 수 없다는 눈빛으로 그들의 뒤에서 타고 있는 집을 보며 말했다.“안타깝게도 이미 떠났구나.”부진환은 냉담한 어조로 말하며 발걸음을 옮기려 했지만 순간 눈앞이 아찔해지면서 풀썩 주저앉았다.“형님!”부운주는 깜짝 놀라 창백한 얼굴로 새된 소리를 냈다.낙청연은 재빨리 부진환을 부축해 그를 바닥에 앉힌 다음 그의 맥을 짚고 목덜미 부근의 상처를 살펴봤다.상처는 꽤 심각한 수준이었다.“오황자, 절 도와주시겠습니까?”낙청연은 부진환의 한쪽 팔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부운주는 원래 부진환을 업으려 했지만 부진환을 자신의 쪽으로 당기는 순간 무게 때문에 다리에 힘이 풀리면서 연신 기침했다.“제가 하겠습니다.”부진환을 건네받은 낙청연은 그의 두 팔을 자신의 어깨에 걸친 채로 힘겹게 부진환을 끌어당기며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부운주는 여러 차례 그녀를 도와주고 싶었으나 몸이 따라주지 않아 옆에서 부축하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낙청연의 힘에 부친 모습을 보던 부운주는 문득 사색에 잠기면서 저도 모르게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평소 형님과 자주 싸우셨는데 위험한 순간이 닥치니 목숨을 걸고 형님을 구하시는군요. 형님에 대한 그 정을 형
부운주는 그 말이 농담이란 걸 알아챘지만 저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다.“그러면 다시 그자를 찾을 방법을 알아봐야겠군요. 예전에 알아봤을 때는 수도 밖에도 저택이 하나 있다고 들었습니다. 여기가 불에 탔으니 어쩌면 거기에 갔을지도 모르겠군요. 그럼 그곳에 다시 한번 가봐야겠네요.”부운주는 좋은 마음으로 얘기했고 낙청연은 순간 눈을 반짝였다. 수도 밖에 또 저택이 있다니? 그렇다면 그곳으로 도망간 걸지도 몰랐다.“수도 밖 어느 곳입니까? 주소를 주세요. 당장 그를 찾아가 봐야겠습니다.”최대한 일찍 찾아내면 그자를 잡을 수 있을지 몰랐고, 어쩌면 태부 할아버지를 해치려는 흑막을 알아낼 수 있을지도 몰랐다.부운주는 잠깐 고민하다가 고개를 저었다.“정확히 어딘지는 기억나지 않네요. 외진 곳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 저택으로 돌아가면 다시 한번 확인해 보겠습니다.”“네, 고맙습니다.”“우리 사이에 고맙다는 말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왕부로 돌아온 뒤 소식을 접한 소유는 급히 부진환을 업어 처소로 모셨다.낙청연이 그와 함께 방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는데 누군가 먼저 문턱을 넘으면서 새된 소리를 질렀다.“왕야,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어찌 이렇게 다치신 겁니까…”바로 그때, 고 신의가 허겁지겁 달려와 낙월영을 끌어냈고 부진환을 치료하기 시작했다.낙청연이 그런 그를 일깨웠다.“왕야의 상처는 머리 뒤쪽에 있습니다.”고 신의는 낙청연을 향해 고개를 살짝 끄덕여 보였다.소유는 그곳에서 지켜보고 있었고 낙월영은 옆에서 울고 있었으며 고 신의는 부진환을 위해 상처를 치료하고 있었다. 낙청연은 몸을 돌려 자리를 뜨고 남각으로 향했다.부운주는 방 안에서 종이를 찾아냈는데 그 위에는 산명 대사의 수도 내와 수도 밖의 주소가 적혀있었다.부운주는 오래전부터 그를 찾아갈 생각이 있었던 것 같았다.주소를 건네받은 뒤 낙청연은 곧장 저택을 나섰다.이번에는 반드시 그자를 잡을 생각이었다.방 안에서 고 신의는 재빨리 부진환을 위해 상처를 싸맸다. 그러나 낙월영이 계
낙청연은 저택을 나선 뒤 마차를 한 대 불러 부운주가 준 주소를 따라 수도 밖으로 향했다.낙청연은 길이 익숙하지 않았기 때문에 수도를 벗어난 뒤 한참을 헤매서야 겨우 그곳을 찾아냈다.산명 대사가 있는 곳은 아주 외진 곳이라 마차가 들어갈 수 없었기에 낙청연은 하는 수 없이 마차에서 내려 걸어서 그곳으로 향했다.수풀을 지나자 죽림 안에 숨겨진 작은 집이 보였다. 그곳은 조용하고 고즈넉했으며 정원에서는 장작을 패는 소리가 들렸다. 아마도 그곳에 산명 대사가 있는 듯했다.낙청연은 기쁜 마음에 곧장 그곳으로 향했다. 그녀는 산명 대사가 입막음 때문에 제거당하지 않았으면. 그가 아직 살아있으면 했다.하지만 그녀는 부진환이 그곳까지 따라왔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부진환은 그녀와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었다.삐걱—낙청연은 정원 문을 열었다.정원 안에서 장작을 패고 불을 피워 약을 달이려던 산명 대사는 고개를 들어 낙청연을 보는 순간 얼굴이 창백해졌다.“당신이 왜 여기에 있습니까? 여기는 어떻게 아셨습니까?”낙청연은 빠른 걸음으로 그에게 다가가더니 곧바로 문을 걸어 잠그고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미간 사이에 죽음의 기운이 가득하군요. 당신 또한 관상을 볼 줄 아니 액운이 코앞에 닥쳤다는 것을 알고 있겠지요. 누구를 위해 일하고 있는지 얘기한다면 목숨만은 살려주겠습니다.”낙청연은 자신이 지금 무공을 쓸 수 없다는 점을 인지하고 있었지만 그를 설득하기 위해서는 이 방법밖에 없었다.산명 대사는 그 말에 경악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당신…”어떻게 안 것일까? 그녀도 관상을 볼 줄 아는 것인가? 그렇게 보이지는 않는데.낙청연이 정말 자신처럼 점을 칠 수 있는 것일까?그는 깜짝 놀라더니 잠시 침묵하다가 돌연 냉소를 흘렸다.“낙씨 가문의 큰아씨, 공을 가로채려 하면 안 되지요. 저와 함께 주인님을 위해서 일하면서 저에게 누가 시킨 일인지 묻다니, 참으로 우스운 일입니다. 주인님 앞에서 공을 세우려는 걸로도 모자라 저를 이리 팔아치워 섭정왕의 앞에
낙청연은 날 선 눈빛으로 산명 대사를 쳐다보며 그의 멱살을 잡았다.“보았습니까? 당신 배후의 사람이 절 모함하라고 시켰어도 당신을 살려주지는 않을 것입니다.”감히 자신을 해치려 하다니? 그렇다면 배후가 누군지 반드시 알아내야 했다.으스러진 검은 벌레를 본 산명 대사는 심장이 철렁했지만 결연한 기색을 드러내며 대꾸했다.“당신에게 잡혔다고 한들 제 처지가 나아질 가능성이 있겠습니까?”말을 마친 그는 입 안에 넣어뒀던 독을 먹고 죽으려고 했고, 그 순간 낙청연은 서늘하게 눈빛을 빛냈다. 그가 독을 마시고 자결하려는 것을 눈치챈 낙청연은 그를 세게 때렸고 그로 인해 산명 대사는 얼굴이 삐뚤어지고 치아가 두 개 빠졌으며 독약도 빠져나왔다.부진환은 그 장면에 저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 저리도 민첩하게 반응하다니, 평범한 대갓집 규슈 같지 않았디.대체 모함을 당해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려는 것인지, 아니면 고의로 이 기회를 빌려 자신의 믿음을 사려는 건지 구별이 가지 않았다.낙청연은 노끈으로 산명 대사를 묶으면서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죽을 생각은 하지 마십시오! 얌전히 협력할 생각이 없는 걸 보니 고생을 좀 해봐야겠군요.”그녀는 산명 대사를 밀면서 밖으로 나갔고 부진환의 앞에 선 채로 그를 차갑게 노려보며 말했다.“이 사람은 제가 잡았으니 제가 심문할 겁니다. 왕야께서는 간섭하지 마시지요!”부진환을 보자 또 가슴이 아팠다.그녀는 그를 구한 게 후회됐다.눈앞의 남자는 그녀를 끝도 없이 의심하는데, 자신은 왜 그를 구한 것일까?“그리고 이 일이 끝나고 제 결백이 증명되면 수세를 써주세요.”낙청연의 결연하면서도 냉담한 말이 부진환의 마음속에 강렬히 내리꽂혔다.부진환은 놀랍기도 하고 또 우습기도 했다.애당초 낙월영을 대신해 죽기 살기로 섭정왕부로 시집온 것은 낙청연이었고 그에게 약을 써서 아이부터 가지려고 한 것도 낙청연이었다.그런데 지금 와서 수세를 써달라고 하는 것도 그녀였다.설마 이것도 밀고 당기려는 수작인 건가 싶었다.부진환이
낙청연은 미간이 떨렸다.그녀는 산명 대사를 집어 들어 그를 바닥으로 엎어뜨렸고, 예리한 화살은 마차의 차 벽을 뚫었다.부진환은 심장이 조여오면서 긴장됐고 급히 차 문을 열어 안을 확인했다.그의 시선은 먼저 낙청연에게로 향했고 낙청연이 고개를 드는 순간 그는 산명 대사에게로 시선을 옮겼다.그들이 살아있음을 확인한 그는 곧바로 고개를 돌리더니 채찍을 휘두르며 말의 속도를 높였다.“잘 앉아있거라!”채찍이 말의 엉덩이를 때리는 순간, 말은 우는 소리를 내면서 다리를 움직여 미친 듯이 달리기 시작했다.그 순간, 낙청연은 덜컹거리는 마차 안에서 거의 날아오르다시피 했고 산명 대사 역시 자신의 몸을 통제하지 못하고 마차 안에서 이리저리 굴렀다.쉬쉬쉭—날카로운 화살들이 그들이 앉은 마차 위로 쏟아져 내렸다. 낙청연은 자세를 바로 하려고 애를 쓰는 동시에 산명 대사를 붙잡고 이리저리 피했다.만약 산명 대사가 죽는다면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기가 더 어려웠다.“세상에, 어지러워 죽겠네. 그냥 날 죽여!”산명 대사는 덜컹거리는 걸 참지 못했고 당장이라도 토할 듯한 얼굴이었다.“그렇게 쉽게 죽을 생각은 꿈도 꾸지 마시지요!”낙청연은 그를 바닥에 쓰러뜨리더니 자신의 체중을 이용해 그를 위에서 아래로 눌렀고 그 바람에 산명 대사는 몸을 일으킬 수가 없었다.마차는 미친 듯이 달리고 있었지만 여기저기서 쏟아지는 화살은 점점 더 많아졌고, 마차에는 수없이 많은 구멍이 생겨 그곳으로 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마차는 당장이라도 부서질 것 같았다.그 점을 부진환에게 알리려 발을 걷는 순간, 낙청연은 놀랍게도 부진환이 수도로 향하는 것이 아니었음을 깨달았다.그는 점점 더 외진 곳으로 향하고 있었다.“왕야, 어디로 가시려는 것입니까?”낙청연이 다급히 물었다.앞에 뜸직하게 앉아있던 부진환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온몸에서 날카로운 기세를 내뿜고 있었는데 낙청연은 이상하게 그 모습에 마음이 놓였다.그런데 그 생각이 머리를 스치는 순간 낙청연은 곧바로 그 생각을 버렸다.
낙청연의 말에 산명 대사는 사시나무 떨듯 몸을 덜덜 떨었다. 아파서인지 아니면 낙청연의 말에 겁을 먹은 것인지 알 수 없었다.어찌 됐든 그는 결국 몸을 바르르 떨면서 입을 열었다.“얘기할게요. 얘기하겠습니다. 그러니까…”낙청연은 동공이 떨렸고 긴장한 얼굴로 그의 얘기를 들으려 했다.그런데 산명 대사가 말을 하려는 순간 날카로운 화살이 위협적인 소리를 내며 날아와 낙청연의 뺨을 스쳐 지나갔다.위험을 느낀 낙청연이 재빨리 몸을 피했지만 화살이 또 하나 날아와서 마차 위를 뚫고 안으로 들어왔고 산명 대사의 어깨 뒤쪽에 박혔다.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산명 대사의 상처를 확인한 낙청연은 그곳이 급소가 아니란 걸 알았고 목숨이 위태로울 정도는 아니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순간 적막이 감돌면서 공기 중에 살기가 느껴졌다.밖에는 3, 40명 정도 되는 검은 옷을 입은 자들이 그들을 뒤쫓고 있었는데 저마다 손에 각양각색의 무기를 들고 있었다.마차 밖에서는 부진환이 가볍게 마차에서 뛰어내리는 소리와 그의 오만한 목소리가 들려왔다.“드디어 모습을 나타냈군.”미간을 좁힌 채로 차 문을 연 낙청연은 사면팔방으로 그들을 둘러싼 검은 옷의 자객들을 보았다.부진환은 여유로운 듯 보였으나 그 모습은 위협적이었다.그는 고개를 돌려 그녀와 마차 밑을 번갈아 보았다.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낙청연은 그의 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들더러 마차 밑으로 숨으라는 의미였다.바로 다음 순간 검은 옷을 입은 자들이 한꺼번에 달려들었고 낙청연은 불길한 기분에 곧바로 외쳤다.“조심하세요!”그러나 부진환은 여전히 태연자약했다. 그는 자객들에게 포위당했으면서도 몸을 날리며 우아하면서도 살기등등하게 적을 무찌르고 있었다. 매 순간이 아찔했지만 그는 여유롭게 그들을 처리했고 낙청연은 마음을 졸이며 그 모습을 보았다.그러나 잠시 상황을 파악하던 그녀는 부진환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걸 곧 깨달았다. 부진환은 그녀의 상상보다 훨씬 더 강했다.낙청연은 잽싸게 차 뒷문을 열었고
여기저기 시체가 널브러져 있었다.쌓아진 시체가 작은 산을 이루고 있어 마차 밖으로 나갈 수가 없었다.낙청연은 힘겹게 시체들을 하나하나 치운 뒤 자신의 거대한 몸을 그곳에서 빼냈다. 그리고 그녀는 곧 부진환의 날렵하면서도 대범한 몸짓을 볼 수 있었다. 그는 장검을 휘두르며 단숨에 검은 옷을 입은 자객의 목을 벴다.마지막 남은 자객이 죽었다.그는 피로 얼룩진 장검을 바닥에 던지고는 빈손으로 걸어왔다.그 순간 햇빛이 그의 앞을 내리쬐고 있어 마치 그가 빛을 향해 걸어오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의 뒤에는 끝없는 어둠과 살육의 현장이 펼쳐져 있었다. 그는 마치 지옥에서 온 수라처럼 도처에 깔린 시체와 피를 밟으며 그녀의 목숨을 거두려고 오는 것 같았다.낙청연은 순간 심장이 철렁했다.살육의 기운이 너무도 강했다.짧은 순간이었지만 낙청연은 그의 여생에서 한없이 무거운 어둠과 살육을 보았다.그녀는 단 한 번도 이런 사람을 마주친 적이 없었다.분명 밝은 빛을 향해 걸어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등 뒤에 있는 농후한 어둠을 가릴 수가 없었다.부진환은 마치 살육을 위해 태어난 사람 같았다.그와 가까워질수록 그의 등 뒤에 있는 검은 그림자도 점점 더 커졌고, 눈을 부릅뜨고 보니 그 어둠 속에는 용의 그림자도 있는 듯했다. 낙청연은 저도 모르게 미간을 좁혔다. 설마 살육 때문에 용의 기운을 얻은 것인가?찰나의 순간 그녀는 부진환의 운명을 내다본 듯한 착각이 들었다.하지만 그녀는 확신할 수가 없었다. 이 세상에는 불확실한 것들이 너무도 많았으니 말이다.낙청연은 속으로 매우 놀랐다. 부진환은 자신이 건드릴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그래서 그녀는 이번에 결백을 증명하면 수세를 받고 바로 그를 떠날 생각이었다.자신이 직접 낙청연의 어머니를 조사하고 낙월영의 손에서 어머니의 유품을 빼앗아야 했다.낙청연은 천궐국의 흙탕물에서 함께 뒹굴 생각은 없었다.“그자는?”부진환의 냉랭한 목소리에 낙청연은 정신을 차리며 대꾸했다.“화살을 맞았지만 목숨이 위험할 정도
부운주는 왜 자신에게 이렇게 잘 대해주는 걸까? 설마…하지만 몸의 원래 주인은 부운주를 친구로만 생각했고 부운주 또한 다른 마음을 품은 것 같지는 않았다.낙청연은 자신이 쓸데없는 생각을 한 것이라 여겼다.“만약 오황자가 한 일이라면 오황자는 정말 왕비 마마를 살뜰히 챙기는 것 같습니다.”등 어멈이 감탄하며 말했고 낙청연은 덤덤히 웃어 보였다.“그게 다 무슨 소용이더냐.”부진환을 구한다고 해도 소용없는 일이었다.부진환은 독사처럼 지독하고 무정한 사람이었다. 그를 구한다고 해도 그는 상대의 의도부터 의심했다.“무슨 말씀이십니까?”등 어멈은 그녀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아니다. 그만 얘기하자꾸나.”낙청연은 약을 다 바르고 나서 침상에 누웠다.오늘은 너무도 고된 하루였다.온몸이 시큰거렸고 가슴께에서 심한 통증이 느껴졌지만, 다행히도 낙용 고고가 준 진귀한 약재들이 있어 알맞게 쓸 수 있었다.저녁이 되기도 전에 낙청연은 잠이 들었다.다른 한편, 부진환은 서방으로 돌아와 소유에게 분부했다.“낙청연의 말대로 요 며칠간 아무도 암실에 가서 산명 대사를 만나지 못하게 하거라.”그 말에 소유는 살짝 놀라며 말했다.“그러면 사람을 더 많이 배치해 감시할까요? 배후에 있는 사람은 아마도 그를 없애고 싶을 겁니다.”“아니다. 이 저택에 있는 첩자가 누군지 확인해 봐야겠다.”부진환의 눈동자에 한기가 감돌았다.소유가 대꾸했다.“그럼 두 사람을 보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은밀히 매복해있게 하겠습니다.”부진환이 고개를 끄덕였다.—낙청연은 죽은 듯이 잤고 심지어 코까지 골았다.얼마나 깊게 잠든 건지 저녁 시간이 되어 등 어멈이 그녀를 깨웠음에도 불구하고 낙청연은 일어나지 못했고 그에 등 어멈과 지초는 일찍 쉬러 갔다.—밤이 깊어지고 한 계집종이 음식을 들고 암실로 향했다…—낙청연은 다음 날 아침 일찍 잠에서 깼다.잠을 잘 잔 건지 정신이 말짱했던 낙청연은 씻지도 않고 곧바로 암실로 향했다.그녀는 산명 대사가 정신을 차렸으면 했다.그
“나는 더 이상 당신의 상대가 안 되오.”낙요는 고개를 돌려 바둑판을 보며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당신을 이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당신과 함께 바둑을 두며 답답함을 풀기 위해서요.”부진환은 바둑알을 하나하나 거두었다.낙요는 실눈을 뜨고 하늘을 바라보며 손을 뻗었다. 햇빛이 손가락 사이로 새어 나왔다.“그러고 보니, 나의 답답함을 풀 사람은 당신뿐이오.”“심시몽은 어의원의 심사를 통과하고 정식으로 어의원에 들어가게 되었소. 그리고 강소풍의 집안에서도 그들의 혼사를 승낙하여 두 사람은 곧 혼사를 올릴 것이오.”“갑자기 심면과 낙현책도 혼사를 올려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들었소.”부진환이 웃으며 말했다.“일찍이 혼인할 나이가 되었지만, 아이들도 조급해하지 않는데 왜 그렇게 걱정하오?”낙요가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여유롭게 말했다.“걱정하지 않소. 대소사를 모두 당신이 걱정하고 있지 않소? 초경의 수위가 있으니, 몇 년이 지나도록 용모가 변하지 않았소. ”“나 같으면 그렇게 걱정을 많이 했으니, 일찌감치 늙었을 것이오.”몇 년 동안 부진환은 그녀를 도와 적지 않은 조정의 일을 분담했다.그녀도 부진환의 동반에 습관이 되었다.갑자기 무언가 떠오른 낙요는 자리에서 일어나 부진환을 바라보며 손바닥에 턱을 괴고 물었다.“이 나이가 되니, 아이를 낳지 않은 것을 후회하오?”“걸을 수 없을 정도로 늙었을 때, 다른 사람의 자식들이 단란히 모여있는 것을 부러워할 것이오? ”부진환은 손에 든 물건을 내려놓고 진지하게 그녀를 보며 대답했다.“후회하지 않소.”“사람은 너무 욕심을 부려서는 안 되오.”“게다가 당신은 여제요. 당신이 늙었다고 해도 누가 감히 푸대접하겠소?”“당신이 조용히 지내는 것이 좋다고 하면 난 당신과 함께 있을 것이오. 초경의 수위로 늦게 늙는다고 하지 않았소? 앞으로 당신이 늙으면 내가 당신을 부축하고 업고 다닐 것이오.”낙요는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참 좋소.”이듬해 가을.심시몽은 강소풍과 혼사를 올렸고 어의원 5품
강소풍은 고개를 끄덕이다 다급히 고개를 저으며 어찌할 바를 몰랐다.“아니오. 그런 뜻이 아니오. 어머니께서는 마음에 들어 하셨소.”설명할수록 강소풍은 상황이 복잡해지는 것 같았다.심시몽은 어두운 표정을 지었지만, 여전히 그를 위로했다.“자네의 뜻을 알고 있소. 설명할 필요 없소.”“시몽... 미안하오! 하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을 것이오. 방법을 강구하여 어머니에게 자네의 진정한 모습을 보여줄 것이오. 분명 어머니도 자네를 받아들일 것이오. ”그 말에 심시몽은 살짝 놀라 의아한 듯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나와 헤어지려는 것이 아니었소?”심시몽은 강소풍이 특별히 그녀를 찾아와 이 일을 설명하는 것을 보고, 그녀와 연을 끊으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아니요. 그럴 리가 있소.”“나는 단지 이전의 약속을 지킬 수 없을 뿐이오. 이번 달 안에 혼담을 꺼낼 수 없을 텐데, 나를 기다려줄 수 있소?”“말재주가 좋지 않아 대체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소. 어머니께서는 자네가 연약하고 힘없다고 생각하시오. 앞으로 내가 출정하면 자네가 홀로 집안을 지킬 텐데, 우리에게 좋지 않은 선택이라 생각하시오. ”이 말을 듣고 심시몽은 대충 뜻을 알아차렸다.“어머니께서는 문무를 겸비한 며느리를 원하고, 자네와 함께 전쟁터에 나가서 떨어져 있지 않아도 되기를 원하시오.”“나는 비록 무공을 할 줄 모르지만, 그래도 해낼 수 있소.”고개를 들어 올린 심시몽의 눈빛은 밝았다..강소풍은 놀라기도 했고 기쁘기도 했다.“정말이오? 여전히 나와 함께 있고 싶소? 포기하지 않을 것이오?”심시몽은 고개를 끄덕였다.“나를 위해 그렇게 많은 일을 했는데, 어찌 쉽게 포기할 수 있소? 자네가 포기하더라도 나는 포기하지 않을 것이오.”“강가는 장군 집안이라 분명 우리 언니와 같은 여인을 좋아할 것이오. 난 비록 언니와 비길 수 없지만 그래도 노력할 것이오.”“여제께서 나에게 약옥을 주었소. 만약 순 의원과 의술을 배울 수 있다면 어의원에 들어갈 기회가 있소.”“성공
이 말을 듣고 심시몽은 약간 의아해했다.“공주는 저를 탓하지 않습니까...”“그분은 공주시다. 천하를 품고 있는데, 어찌 네가 범한 작은 잘못을 추궁할 리 있냐?”“지금 너의 변화를 보면 공주도 더 이상 너를 탓하지 않을 것이다.”“하지만 차려야 할 예의는 없어서는 안 된다. 시간이 나면 공주에게 감사하다고 인사를 전하거라.”심시몽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예. 내일 가겠습니다.”“저는 먼저 약옥을 넣고 의관에 가겠습니다.”심시몽은 기쁜 마음에 빠른 걸음으로 달려갔고, 의기양양한 분위기를 풍겼다. 조금도 방금의 의기소침함이 없었다.심면도 기뻤다.모두가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은 것 같다.하지만 그와 동시에, 강소풍이 집에서 어머니와 싸우고 있었다.“안 된다고 하면 안 되는 것이다! 너를 현학서원에 보내 양성하는 것도 앞으로 네가 큰 성과를 거둘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러니 너도 마땅히 너와 어울릴 만한 부인을 얻어야 한다. 너와 전장을 누비며 적을 죽이는 그런 사람 말이다.”“힘없이 연약하게 집안에서 서방이 돌아오기를 손꼽아 기다리는 그런 평범한 아가씨는 안 된다.”“이전에 그 심시몽을 위해 집안의 빙천영지를 훔쳤고, 심지어 벌을 받고도 물건이 어디로 갔는지 말하려 하지 않았다. 난 그때부터 심시몽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그런데 지금 그 아이와 혼사를 올리려는 것이냐?”“말도 안 된다!”강부인은 단호한 태도로 조금도 말을 바꾸려 하지 않았다.강소풍은 내키지 않는 듯 반박했다.“심시몽이 평범하다니요? 어떻게 평범하다는 말입니까? 심시몽은 그저 무공이 부족할 뿐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무예를 익혀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하물며 그녀의 언니는 이미 태자로 봉해졌습니다. 그러니 심시몽도 좋은 아가씨라는 것을 설명할 수 있지 않습니까?”강부인은 콧방귀를 뀌었다.“언니는 언니이고, 심시몽은 심시몽이다. 어찌 동일하게 논할 수 있겠냐?”“강가는 권세에 빌붙지 않고, 심시몽의 언니가 태자라는 것을 봐서 그녀를 맞이하려
“나중에 자네가 신의가 될지도 모르오.”심시몽이 웃으며 말했다.“자네의 좋은 말대로 되길 바라오.”모두 술을 마시며 음식을 먹고 있었다. 심면이 임계천에게 물었다.“자네는? 어디로 가고 싶소?”“나라에 보답할 수 있다면 어디든 좋소.”임계천이 담담하게 웃었다. 그는 특별히 가고 싶은 곳이 없었기에 그저 궁의 안배를 기다리고 있었다.다들 기분이 좋았고 투지가 넘치고 미래에 대한 동경으로 가득 차 있었다.술을 너무 늦은 시각까지 마셔서 그들은 심가에서 묵었다.오전이 되자, 각 집안의 하인들이 부랴부랴 사람을 찾아왔다. 몇 사람은 술에 취해 인사불성이 되었지만, 여전히 집으로 끌려갔다.궁에서 명을 받았기 때문이다.강소풍은 금군 기사영 통령으로 봉해져 도성과 황궁의 안위를 지키게 되었다.임계천은 형부로 전근되었다.소우청과 봉함선은 수주의 군영 부장군으로 명을 받았다.소우청의 행처는 그의 아버지 소진오가 좋은 경험을 하기를 바라며 부탁한 것이다.낙요는 봉함선이 여인이기에 그녀를 그렇게 멀고 험한 곳으로 보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주동적으로 수주에 갈 것을 청구했다.봉함선이 말했다.“여국은 역대로 여 장군이 없었습니다. 저는 첫 번째 여장군이 되고 싶습니다.”“만약 힘들고 험한 곳이 아니라면 어찌 제가 포부를 발휘할 수 있겠습니까?”낙요는 그녀의 담력과 야심을 높이 사고 그녀의 청을 승낙했다.“나는 네가 여국의 첫 번째 여장군이 되기를 기대한다.”이들 외에 현학서원의 다른 학생들도 그들로 하여금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 새로운 행선지를 얻었다.유독 심시몽에 대해, 낙요는 따로 안배를 해주지 않았다.백서가 걱정했다.“어찌 유독 심시몽만 얘기가 없으십니까? 심시몽이 알면 마음이 편치 않을 것입니다.”낙요가 웃었다.“아니다. 이미 심면을 시켜 심시몽에게 한가지 물건을 보냈다.”백서는 살짝 놀랐다.“일찍이 계획이 있으셨군요.”이때의 심시몽은 홀로 넋을 잃고 연못가에 앉아있었다. 그녀의 마음은 마치 흩날리는 낙엽처럼 어수
유생이 드디어 알아차렸다.“그랬구나. 내가 어찌 이걸 잊은 것이냐.”“난 정말 운이 좋은 것 같구나. 이렇게 운 좋게 제사장 자리를 주울 수 있으니.”심면이 답했다.“아닙니다. 전에 제가 청주 전쟁에서 조난했을 때, 제자들을 통솔해 적과 싸우지 않았습니까? 현책보다 능력이 훨씬 뛰어났습니다.”“사저가 소제사장이 되는 것이 가장 적합합니다.”이렇게 칭찬하는 것을 듣고 유생은 쑥스러워하며 낙현책을 힐긋 쳐다보았다.“네가 이렇게 말하면 낙현책이 기뻐하지 않을 것이다.”낙현책이 웃으며 답했다.“그녀가 말한 것은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너는 나보다 대제사장이 더 잘 어울린다.”“나는 무학에서 너보다 좀 나을 뿐이다. 정말 대제사장이 되려면 너보다 잘할지 모를 일이다.”“다만 제사장 일족의 심사에는 이런 것이 없었다.”“하물며 나도 대제사장이 될 생각을 한 적이 없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단지 여제가 기뻐하기를 바랄 뿐이다.”이 말을 듣고 유생은 마음이 놓였다.“불쾌하지 않았다면 다행이구나. 권력과 지위 앞에서 네가 이런 결정을 내릴 수 있다니, 정말 대단하구나!”“한 잔 권하마!”유생이 술잔을 들었다.바로 이때, 갑자기 대문이 열렸고, 사람이 도착하기도 전에 먼저 목소리가 들렸다.“사람이 아직 도착하지 않았는데, 왜 벌써 마시는 것이오?”“우리를 기다리지 않는다니, 의리가 없소!”몇 사람이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강소풍과 임계천이 술병을 들고 오는 것이 보였다.“오늘 밤 다들 왔구나!”“자, 심면과 유생을 위해 한 잔 하세!”모두 자리에 앉아서 잔을 들어 함께 마셨다.그렇게 한참 마시다 보니 술에 취한 강소풍이 흥분한 듯 입을 열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심가에 겹경사가 닥칠 것이오.”모두 멍해졌다.강소풍은 낙현책과 심면을 바라보았다.“여제가 두 사람의 일을 인정했으니, 언제 혼사를 치르는 것이오?”심면은 갑자기 얼굴을 붉어지며 황급히 강소풍에게 술을 따라주었다.“술을 마셔도 자네의 입을 막지 못한 것이오?”
“저희가 어찌 가족입니까?”“50냥의 이득을 본 걸 후회한다면서요?”이 말이 나오자 다들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그들은 그제야 유생이 그날 밤 그들의 대화를 모두 들었다는 것을 깨달았다.어쩐지 상자를 도둑맞았더라니.유룽은 체면을 깎으며 사과했다.“유생아, 우리는 한 가족이니 티격태격하는 것도 정상이다. 그러나 다들 나쁜 생각은 없다.”“이전의 일은 모두 나의 잘못이다. 이렇게 너희들에게 사과하마!”“오늘 저녁 집으로 돌아가자. 너를 위해 잘 경축해야지 않겠느냐!”둘째아버지와 셋째 아버지도 모두 따라서 사과했다.집안 재산을 나누겠다고 얘기한 그날 그들이 각박한 만큼 지금 아주 자상했다.“유생아, 집으로 가자. 지나간 일은 잊고, 우리 가족 다시 시작하는 게 어떠냐?”“그래. 가족이 함께 지내면 얼마나 시끌벅적하냐? 따로 이곳에서 지내면 쓸쓸하지 않으냐?”“우리 집에 좋은 술도 두 병 간직하고 있는데, 유생을 축하하러 오늘 꺼내마!”유생은 표정을 바꾸지 않고 차분하고 차갑게 말했다.“다들 시간 낭비하지 마십시오.”“집안 재산을 나누고 연을 끊었는데, 어찌 번복할 사람이 있겠습니까?”“잘살든 못살든 더 이상 유가와 관계가 없습니다.”“다들 가시지요. 굳이 우리 집 앞에서 매달리려 한다면, 관아에 신고할 것입니다.”말을 마치고 유생은 방안으로 돌아와 차갑게 문을 닫았다.문밖의 사람들은 후회에 휩싸였다.게다가 둘째는 첫째를 원망하기 시작했다.“형님 탓입니다. 제사장 자리가 발표되기도 전에 넷째네를 쫓아내더니, 지금은 어떻게 하려는 것입니까?”셋째도 불평했다.“유생은 앞으로 대제사장이 될 것이오. 앞으로 유생 덕을 보긴커녕 이렇게 소란을 피웠으니, 앞으로 우리를 난처하게 할 수도 있소...”유롱은 짜증을 참지 못하고 말했다.“어찌 또 내 잘못이 되었냐?”“애초에 심사 결과가 나오자, 다들 하나하나 달려와서 유생네가 끝났다고, 그들 일가를 헛되이 잘해줬다고 하지 않았냐? 너희들이 모두 동의했기 때문에 넷째 일가를 쫓아낸 것이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매우 놀랐다.유가 사촌들은 냉기를 한 모금 들이마셨다.유생도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왜 제가...”왜 낙현책이 아닌가?장 총관이 웃으며 말했다.“어서 명을 받으시지요. 소제사장”유생은 정신을 차리고 마음속으로 미친 듯이 기뻐하며 얼른 명을 받고 고마움을 전했다.장 총관은 자리에 있던 병사들을 힐긋 보고 유생에게 친절하게 물었다.“소제사장,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제가 처리할 필요가 있습니까?”유생은 웃으며 말했다.“필요 없습니다. 고맙습니다!”“어찌 사양하십니까? 제가 필요한 곳이 없다면, 이만 궁으로 돌아가 명을 전해야 합니다.”“예. 바래다 드리겠습니다.”유생은 장 총관을 골목 밖까지 배웅했다. 장 총관이 의미심장하게 일깨워주었다.“아가씨는 아직 소제사장의 권력을 모르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도성에서 제사장의 권력은 여제와 대제사장에 버금갑니다.”“태자와 동등한 권력입니다.”“이런 사소한 일은 직접 처리할 필요도 없으니, 제게 한마디만 분부하면 됩니다.”유생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일깨워 줘서 고맙습니다.”“오늘 여제께서 태자도 정하셨습니까? 심면입니까?”장 총관은 고개를 끄덕였다.“예. 심가에 뜻을 전하고 왔습니다.”장 총관을 떠나보내고 유생은 기쁨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녀는 선택받을 줄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분명히 낙현책한테 졌기 때문이다.심면도 태자로 봉해져서 참 좋았다.오늘 밤 심면을 찾아 축하하려면, 이 문제를 빨리 해결해야 한다.그녀는 빠른 걸음으로 문밖으로 돌아갔다.병사들은 즉시 공손한 태도를 바꾸어 그녀에게 예를 올렸다.“소제사장, 오늘 분명 오해일 것입니다. 저희는 먼저 떠나겠습니다.”유생이 차가운 소리로 호통을 쳤다.“멈추거라!”그들은 뻣뻣하게 자리에 서서 고개를 숙이고 땀을 뻘뻘 흘렸다.제사장의 말 한마디에 그들은 직무를 잃을 수도 있다.“수사를 더 해야 하는 거 아니오? 안 하시오?”“저희가 감히 소제사장의 집을 수색할 용기가 어디 있겠습니까? 오
낙현책은 고개를 끄덕였다.“나도 궁을 나가려던 참이다. 함께 가자.”유생은 단번에 알아차렸다.“심면을 찾으러 가는 것이냐?”“심사 결과가 나온 후, 심면을 만나지 못했구나.”“심면도 무슨 일이 생긴 것이냐?”낙현책은 생각에 잠긴 듯 말했다.“그런가 보구나.”“내가 도울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얘기하거라.”“그래.”두 사람이 함께 궁으로 나온 후 유생은 바로 집으로 돌아갔고 낙현책은 심면의 집으로 향했다.유가의 골목에 도착하자마자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관아의 사람들이 유생의 집 앞을 막고 그녀의 부모님을 잡고 그들을 관아에 데리고 가려 했다.옆에는 그녀의 사촌들이 있었다.안색이 바뀐 유생은 다급히 달려갔다.“그만하시오!”“뭐 하는 것이오?”유생은 바로 부모님을 뒤에 감쌌다.유롱은 화가 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뭐 하냐니? 집안 재산을 나누었으니, 유가와 이젠 연이 없는 것이다. 집안 재산도 주지 않겠다고 했는데, 어찌 유가의 물건을 훔치는 것이냐? 그 상자에는 족히 수십만 냥이 있다!”“감히 너희랑 아무 연관도 없다고 할 수 있느냐?”유생은 그들이 이렇게 빨리 찾아올 줄 몰랐고, 관리에게 고소할 줄도 몰랐다.“우리가 훔쳤다는 증거라도 있습니까?”“증거도 없이 저희를 잡다니, 법을 따르셔야죠.”유롱이 노발대발하며 말했다.“유가 사람들이 네가 돌아온 것을 봤다!”“변명하지 말거라. 할 말이 있으면 감옥에 가서 변명하거라!”물건을 잃어버리고 그들이 유일하게 의심하는 사람은 유생이다.대가를 치르더라도 그들은 그 돈을 되찾으려 했다.“내가 돌아갔다고 돈을 훔쳤다는 것입니까? 농이 심하십니다!”“관청에 따라서 갈 수 있지만, 저희 부모님과는 연관이 없습니다. 증거가 없으면 함부로 사람을 잡을 수 없습니다!”유롱이 화를 냈다.“네 아버지와 어머니도 한패다! 당연히 관아로 데려가야 한다!”“나으리, 그들은 수십만 냥을 훔쳤습니다. 결코 적은 액수가 아닙니다. 나리께서 반드시 돈을 되찾아 주시기를 간청합니다!”
조영궁.심사 결과가 나온 후 오랫동안 기다리던 낙요는 드디어 낙현책이 오는 것을 기다렸다.“여제.”낙현책은 고개를 숙이고 여제를 마주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심사 결과가 나온 지 오래됐는데, 어찌 이제야 나를 찾아온 것이냐? 잘 고려한 것이냐?”낙현책은 고개를 끄덕이며 무릎을 꿇고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여제를 실망하게 했습니다!”이 말을 듣고 낙요는 그의 결정을 알아차렸다.“일단 일어나서 얘기하거라.”낙현책은 무릎을 꿇고 일어나지 않았다.“여제의 가르침을 저버렸습니다. 저는 대제사장 자리를 감당할 수 없습니다!”낙요는 다소 실망했지만 그래도 의외는 아니었다.“잘 생각했느냐? 이 일은 번복한 기회가 없다.”낙현책이 세게 고개를 끄덕였다.“오랫동안 심사숙고한 후 내린 결정입니다.”“제가 여제를 실망하게 했습니다.”지금까지 이렇게 노력했고 최종 심사에서 1등까지 하였는데, 여제를 실망하게 했다.낙요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일으켜 세웠다.“실망하지 않았다.”“네 실력은 모두가 다 알고 있다. 어찌 실망했겠느냐? 네가 후회하지 않으면 된다.”“이미 결정을 내린 이상 더 이상 그렇게 많은 생각을 하지 말거라. 마음을 놓고 네 목표를 향해 가거라.”“나는 네 결정을 존중한다!”여제가 화를 내지 않자, 낙현책은 그제야 한숨 돌렸다. 그는 감동에 겨웠다.“고맙습니다.”낙요는 그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그동안 심면을 만나지 않았겠구나? 어서 네 결정을 알리러 가거라.”낙현책은 고개를 끄덕이고 궁을 나갈 준비를 했다.그동안 심면도 고민하고 있었을 것이다. 두 사람에게 있어 정말 어려운 문제였다.누군가는 무언가를 포기해야 하기 때문이다.낙현책이 궁을 나서려는데 제사장족 제자가 그를 가로막았다.“유생이 궁에서 자네를 기다리고 있소. 급한 일이 있는 것 같소.”“급한 일? 알겠소.”유생은 그동안 궁에 있지 않았다. 갑자기 궁으로 찾아온 것을 보아, 중요한 일이 있는 듯했다.먼저 그녀를 만나고 궁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