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대 악인들의 악명에 대해 들어본 적 있었다. 하지만 전부 이곳에 잡혀 있을 줄은 예상치 못했다.그리고 이들을 길들이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작업이 될 것이다.하나 같이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낙청연에게 주어진 시간은 7일.7일 안에 이들을 길들이고 자신의 목숨도 보전해야 한다.죄수들은 성수를 마실 자격을 박탈당했으니 낙청연 체내의 사상환도 별 효과를 낼 수 없었다.그녀는 천천히 안으로 들어갔다.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자 그녀가 입고 있는 망토가 바람에 나부끼며 스산한 소리를 냈다.사람이 죽었다는 방 앞에 도착해서 방문을 열자 차가운 기운이 얼굴을 덮쳤다.바닥에 쓰러진 시체가 보였다.사지가 절단되고 피가 사방에 튄 처참한 광경이었다.이미 마음의 준비를 하고 왔기에 놀라서 뒤로 자빠질 정도는 아니었지만, 현장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참혹했다.그녀는 허리를 숙여 시체를 관찰했다. 죽은 지 하루가 지나지 않은 것 같았다.치명상은 흉부와 복부 사이. 칼은 정면으로 찔렀고 사지는 피해자가 죽은 뒤에 절단했다.다른 곳을 살펴보았지만, 반항하거나 몸싸움을 벌인 상흔은 보이지 않았다.가만히 서 있는 상태에서 칼을 맞고 죽었다는 얘기였다. 반항하면서 생길법한 타박상이나 멍 자국 하나 보이지 않았다.시체를 조사하던 그녀의 눈에 어깨 쪽에 있는 낙인이 들어왔다.그것은 부문이었다.낙청연의 눈에 놀라움이 스쳤다.금혼부(禁魂符).이 부문에 당한 자는 혼백이 시체에 갇혀 환생조차 할 수 없게 된다.이런 잔인한 부문이 피해자의 몸에서 발견되다니.그리고 이때, 등 뒤에서 차가운 기운이 다가오더니 곧바로 뼈를 파고들었다.쾅 하는 소리와 함께 방문이 닫혔다.얼음같이 차가운 기운은 독사처럼 쉬지 않고 그녀의 사지에 퍼져 나갔다. 사지가 마비되는 느낌이 조금 들었다.낙청연은 홱 하고 뒤돌아섰다.반투명한 남자의 얼굴이 지척에 있었다. 그의 주변으로 살기가 넘실거리고 있었다.남자의 혼백이 미친 듯이 그녀의 몸으로 스며들었다.혼령의 침입 의도를 느낀 낙청연이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깊은 밤의 고요를 깨뜨리려는 듯, 이상한 기운이 응집되고 있었다.낙청연은 짙은 불길한 기운에 눈을 번쩍 떴다.하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어둠 속에서 남자의 웃음소리가 들리더니 그녀의 어깨를 눌러 제압한 뒤, 그녀를 끌고 방밖으로 나갔다.낙청연은 거칠게 바닥에 내쳐졌다. 온몸에서 극심한 통증이 몰려왔다.마당에는 모닥불이 타오르고 있었고 아홉 명의 악인이 한가하게 주변에 둘러앉아 있었다.한쪽에서 책을 읽는 남자를 제외하고 나머지 악인들은 맹수의 눈빛으로 그녀를 관찰하고 있었다.두풍진은 바닥에 쭈그려 앉아 손으로 낙청연의 머리카락을 홱 잡아당겼다.“이번에는 병약한 미인을 보냈구만 그래….”두풍진은 꽤 준수한 외모의 소유자였으나 어딘가 음침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그는 욕망이 득실거리는 눈빛으로 낙청연을 잡아먹을 듯이 바라보았다.“나만 먼저 재미를 본다고 투덜대지 말고 이번에는 누가 먼저 할래?”두풍진이 잔뜩 흥분한 기색으로 일행에게 물었다.나머지가 말이 없자 그는 비릿한 미소를 머금고 말했다.“이런 맛있는 떡이 굴러들어 왔는데 아무도 나서지 않아? 그럼 나도 사양하지 않을게.”말을 마친 그는 손가락으로 낙청연의 턱을 치켜들었다.“그럼 이번에도 내가 먼저 맛볼게.”그는 순식간에 낙청연의 옷깃을 잡아 찢어버렸다.찍!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옷이 찢어지고 하얀 등이 바깥으로 드러났다.낙청연은 눈물을 머금고 겁에 질린 표정으로 상대를 바라보았다.“이러지 마세요….”당장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처럼 가냘픈 목소리가 그녀의 입에서 새어 나왔다.악인 중 한 명이 웃음을 터뜨렸다.“아직 제대로 된 경험도 쌓아보지 못한 초보 제사장인가 보네. 겁도 없이 천자호를 자기 발로 들어오다니.”두풍진은 의기양양한 웃음을 지으며 겁에 질린 낙청연의 얼굴을 감상했다.“나는 이런 애가 더 좋아.”말을 마친 그는 낙청연의 몸에 걸친 옷을 찢기 시작했다.낙청연은 다급히 몸을 피하며 몸부림쳤다.“이러지 마세요… 여기서는 싫어요.”
낙청연은 너덜너덜해진 옷을 찢어 두풍진의 입을 틀어막았다.모든 처리가 끝난 뒤, 그녀는 검은색 망토를 어깨에 걸치고 여기저기 뜯긴 옷을 가렸다.그러고는 허리를 숙이고 냉랭한 눈길로 두풍진을 응시했다.“서른 명이 넘는 여자를 겁탈한 역겨운 놈. 너 같은 걸 길들이는 건 나도 사양이야.”두풍진은 그제야 자신이 그녀의 연기에 속았다는 것을 직감하고 악에 받친 눈빛으로 그녀를 쏘아보았다. 하지만 아무리 힘껏 몸부림쳐도 속박을 벗어날 수 없었다.낙청연은 비소를 꺼내 그의 옷을 찢었다.아니나 다를까.어깨 쪽에 아까 보았던 것과 똑같은 금혼부 낙인이 보였다.왜 이들은 같은 낙인을 새기게 된 걸까.여국에 중죄를 지은 노비들을 가두는 곳이 있다고 들은 적 있었다.그중에는 수많은 악행을 저지른 악질 죄수들도 있었는데 심지어 여국을 배신한 대역죄인들도 있었다. 그들은 죽지 않고 그곳에 갇히게 된다.이곳의 십대 악인들도 그곳에서 도망 나온 자들일까?하지만 그들의 악명은 오래전에 여국 곳곳에 퍼졌다.정상적인 절차대로라면 제사장이 이들을 길들인 뒤에 다시 그곳으로 보내야 맞다.정신을 차린 낙청연은 두풍진이 얼굴에 쓴 가면을 손으로 찢어 버렸다.한층, 또 한층 벗겨내자 그의 진짜 얼굴이 드러났다.선이 굵은 사내다운 얼굴이었다. 낙청연이 상상했던 것처럼 추악하고 음침한 얼굴이 아니었다.눈빛에 넘실거리던 음란한 기운도 보이지 않고 오로지 원망만 가득 찬 눈빛이었다.남자는 증오에 찬 눈빛으로 낙청연을 찢어 죽일 듯이 쏘아보고 있었다.낙청연이 낮은 소리로 물었다.“나를 본 적 있어? 왜 나를 이토록 증오하는 거지?”두풍진의 눈빛에 살기가 스치고 지나갔다. 그는 숨기고 있던 비수로 밧줄을 끊어냈다.밧줄이 풀린 순간, 낙청연은 불길한 기운을 느꼈다.두풍진이 차가운 빛이 번뜩이는 날카로운 비수로 낙청연을 향해 찔렀다.피하기에는 이미 늦었다.그녀는 손으로 날카로운 비수를 잡고 장풍으로 칼날을 부러뜨렸다. 날카로운 칼끝이 방향을 바꿔 두풍진의 복부에 꽂혔다.
이상한 남자들이 두풍진의 처와 여동생을 강제로 데려가서 방에 가두었다.여인들의 비명이 방 밖으로 울려 퍼졌다.두풍진은 당장이라도 그들을 구하려고 했지만,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이 짐승 같은 놈들아!”두풍진은 기를 쓰고 앞으로 달렸지만, 그를 막는 자들에 의해 바닥에 힘없이 쓰러졌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고 다시 일어났다.“우린 이미 개과천선했는데 왜 아직도 저희에게 이러시는 거예요!”여자가 원통하다는 듯이 웃음을 터뜨렸지만 돌아온 건 더 거친 매질뿐이었다.그녀의 귀뺨을 때린 남자가 비릿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노예는 어차피 노예야! 이게 너희의 쓸모라고!”“너희는 반항할 자격도 없어! 그러니까 얌전히 있어!”말을 마친 남자가 여자를 방으로 끌고 들어가더니 문을 잠갔다.안에서 처참한 비명이 들려왔다.두풍진은 처절하게 처와 여동생의 이름을 부르며 닫힌 문을 향해 내달렸다.하지만 남자들이 그를 막아섰다.그 순간, 낙청연은 그의 가슴이 찢어지는 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것 같았다.낙청연의 눈시울이 붉어졌다.두풍진은 포기하지 않고 계속 달려들었지만, 그때마다 남자들에게 맞아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었다. 나중에 기진맥진한 그가 힘없이 계단에 쓰러졌다.그는 멍한 표정으로 그 문을 통해 사람이 나오고 들어오는 모습을 지켜보았다.사랑하는 여인들이 고통을 받는 모습을 바라보며 그는 이 불공정한 세상이 멸망해 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모든 일이 드디어 끝나자 두풍진은 울며 방 안으로 달려 들어갔다.그의 눈에 보인 것은 치욕을 참을 수 없어 발가벗겨진 몸으로 자결한 아내의 시체였다.그는 죽은 아내를 품에 안고 목 놓아 울었다.죄책감과 증오심이 그의 마음에 불을 지폈다.“운아(芸兒), 내가 복수해 줄게. 개 같은 제사장 놈들! 언젠가는 그들을 멸종시켜 버릴 거야! 악!”두풍진은 아내의 시체를 끌어안고 미친 듯이 부르짖었다.그 뒤로 두풍진을 살게 한 동력은 오로지 원한이었다.그는 제사장 일족을 증오했고 노예들에게 고통만 더해
하지만 이곳에는 홍해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남은 악인들도 있었다.그들이 다 같이 달려든다면 아무리 낙청연이라도 당해낼 수 없었다.결국 그녀는 다시 홍해에게 잡혀서 바닥에 제압당했다.홍해가 칼을 꺼내 들었다. 위에는 말라붙은 피가 덕지덕지 남아 있었다.“손부터 자를까?”말을 마친 홍해가 그녀의 손목을 비틀었다.예리한 칼끝이 그녀의 손목 관절 근처에서 배회했다.“여기가 좋겠군.”홍해의 잘 벼린 칼이 공중으로 치솟은 순간, 낙청연은 조급한 마음에 몸을 바둥거렸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그녀의 눈길이 구십칠에게 닿았다. 그가 드디어 책을 덮고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낙청연에게는 너무도 익숙한 책이었다.제사부전(祭司符典)!홍해의 칼이 내려앉던 순간, 낙쳥연이 다급하게 소리쳤다.“나 금혼부를 해제할 수 있어!”순간 구십칠의 표정이 바뀌더니 다급히 소리쳤다.“그만!”홍해는 그녀의 손목과 한 치 차이를 남겨놓고 칼을 버렸다.칼을 내던진 홍해가 차갑게 낙청연을 노려보며 물었다.“금혼부를 해제할 수 있다고? 네가?”“딱 봐도 경험도 없는 제사장 같은데 무슨 수로?”“금혼부 때문에 수많은 제사장을 잡아들였지만, 해결할 수 있는 인간은 한 명도 없었어.”“또 우리 가지고 장난치는 거라면 당장 그 입부터 도려낼 거야!”낙청연은 다급히 고개를 끄덕였다.“나 정말 할 수 있어. 나는 그들과 다르니까.”과거 대제사장까지 했던 몸이었다.낙청연은 구십칠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네가 들고 있는 책, 나 처음부터 끝까지 암기할 수 있어. 내가 너희랑 다른 점은 너희는 책을 읽을 뿐이지만 나는 그 책과 오래전에 일심동체가 되었어.”구십칠이 천천히 낙청연에게 다가갔다.“풀어줘.”홍해가 낙청연을 풀어주었다.낙청연은 땅을 짚고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달빛 아래 반짝이는 창백한 피부와 아름다운 이목구비, 그리고 입가에 머금은 붉은 피는 그녀를 더욱 매혹적으로 보이게 했다.구십칠은 잠시 그녀를 바라보았다. 다른 제사장과 다르다는 그녀의 말을 믿을
구십칠은 잠시 머뭇거리나 싶더니 상의를 벗고 그녀의 앞에 양반다리를 하고 앉았다.낙청연은 부적을 꺼내 낙인 위에 붙였다.그러자 낙인 주변에 부문과 금빛이 나타났다.“이거 보이지? 이게 금혼부의 존재를 증명하는 표식이야.”“금혼부가 해제되면 이곳에는 낙인과 흉터만 남을 거야. 금빛으로 번쩍이는 부문이 사라질 거라고.”낙청연은 최선을 다해 그들에게 설명했다.만약 그들과 평화롭게 담판을 지을 수 있다면 가장 좋은 결과였다. 그녀는 이들과 다시 무력 싸움을 하고 싶지 않았다.어차피 이들을 이길 방법이 없었다.설명을 알아들은 홍해 일행이 고민에 잠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빨리 시작해! 일단 내가 보는 앞에서 해제해 보라고.”그러고 보면 낙청연은 운이 좋은 편이었다. 이 세상에 금혼부를 해제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녀가 그 소수 중 한 명이었다.하지만 내력 소모가 너무 컸다.그녀는 부적을 꺼내 손가락을 깨물어 피로 부문을 그린 뒤, 구십칠의 어깨에 붙였다. 금빛의 진법이 나타나더니 금혼부를 새긴 흉터에 스며들었다.아무런 반응도 나타나지 않았다.“이제 됐어.”낙청연이 담담하게 말했다.구십칠이 고개를 돌려 자신의 어깨를 살폈지만 아무런 느낌도 없었다.“이러면 다 된 거야?”낙청연은 다시 부적을 꺼내 그들에게 보여 주었다. 금혼부가 새겨진 낙인에서 더 이상 부문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저 평범한 흉터로 남았을 뿐이다.“정말 사라졌다고?”홍해가 눈을 휘둥그레 뜨며 물었다.“대단하네!”홍해는 구십칠을 자리에서 일으키고는 자신이 상의를 벗고 낙청연의 앞에 앉았다.“나도 해줘!”낙청연은 동일한 방법으로 금혼부를 해제했다.하지만 세 번째 의식을 행하게 되자 더는 버티지 못하고 힘없이 바닥에 무릎을 꿇고 피를 토했다.“좀 쉬어야겠어. 내력 소모가 엄청나거든.”낙청연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달빛 아래 핏기 한 점 없는 채로 쓰러진 여자는 당장이라도 부서질 것 같은 유리구슬 같았다.구십칠이 다가가서 그녀의 맥을 짚었다.
그녀는 잠시 숨을 고르고 말을 이었다.“내가 도성에 남으려면 너희들을 길들여야만 해.”구십칠이 냉소를 지었다.“길들여? 우린 사람이야. 가축이 아니라고. 설마 금혼부 해제해 줬다고 우리한테 얌전히 네 명령에 따르라는 헛소리는 하지 않을 거지?”낙청연은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그를 잠시 바라보다가 입꼬리를 올렸다.“아니.”“난 너희들을 데리고 노예 감옥을 나갈 거야.”그 말에 구십칠은 큰 충격을 받았다.노예 감옥은 곳곳에 수많은 진법을 쳐놓은 곳이다. 이곳을 살아서 나간 노예는 한 명도 없었다.게다가 간수들의 경비도 삼엄했다.“그 몸으로 우리를 데리고 노예 감옥을 탈출하겠다고? 네가 할 수 있다고 해도 우리가 어떻게 그걸 믿지?”낙청연은 구십칠이 그녀와 손을 잡을 의사가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그게 아니라면 여기서 한가하게 잡담하고 있을 사람이 아니었다.“금혼부를 해제하고 싶은 사람은 너희뿐이 아니잖아. 너희의 친구, 가족들도 내가 필요하잖아.”그 말에 구십칠은 반박할 수 없었다.그의 반응을 살피던 낙청연은 자신의 방법이 성공했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금혼부에 묶여 있었는데 너희는 어떻게 그 감옥을 탈출할 수 있었는지 알고 싶어.”구십칠의 표정이 고통으로 일그러지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우리는 노예곡(奴隸谷)에서 도망쳐 나왔어.”“노예곡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미래가 없어. 노예곡에서 태어난 아이는 다섯 살이 되면 등에 금혼부 낙인을 새기고 평생 노예로 살아야 해.”“그 아이들에게는 아무런 죄가 없지만 태어났다는 자체가 죄가 된 거야.”“맨 처음에는 아무도 노예곡의 존재를 의심하지 않았어. 다들 그들에게 개과천선하고 다시 시작할 터전을 주었다고 생각했지.”“나중에야 알았어. 그곳이 바로 지옥이라는 것을.”“그들에게는 노예가 필요했어. 공을 들여 노예를 가르치기도 했고 약한 사람들에게 말도 안 되는 죄명을 씌워 노예로 만들어 버리기도 했지.”“그런데 그 많은 노예가 존재해야 하는 이유가 뭘까?”“제사장 일족에게 훈육
그 말에 구십칠이 충격에 빠진 눈을 하고 그녀를 바라보았다.“대제사장?”낙청연은 무표정한 얼굴로 담담하게 말했다.“그래. 내가 대제사장이 되어야 이 불공정한 법과 질서를 파괴할 수 있고 네가 구하고 싶은 사람들을 구할 수 있어.”“너희들이 아무리 많은 사람을 죽여도 이 법과 질서가 존재하는 한 여전히 많은 사람이 억울하게 노예로 전락할 거야.”그녀의 설명을 들은 구십칠은 동요하는 눈빛을 보였다.그러다가 여전히 의심을 거두지 못한 듯, 미심쩍은 표정으로 낙청연을 바라보았다.“네가 지금 했던 말 다 지킬 수 있어?”“당연하지. 처음부터 그럴 마음이 없었으면 이곳에 오지도 않았어.”구십칠은 눈앞의 여자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창백하고 초췌한 얼굴은 언제 죽어도 이상할 것 같지 않았다.그녀와 손을 잡으면 대업을 이루기 전에 그녀가 먼저 죽어버릴까 봐 걱정도 되었다.하지만 확신에 찬 눈빛과 말투는 묘한 신뢰감을 안겨주었다.구십칠이 여전히 결정을 못 내리자 낙청연은 천명 나침반을 꺼냈다.그러고는 바닥에 쓰러진 두풍진을 바라보며 담담히 입을 열었다.“저 남자의 과거를 봤어. 노예의 존재 이유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었어. 그의 가족들이 수모를 당했다고 해서 그가 무고한 사람을 죽인 건 정당화될 수 없어. 그 가해자들과 다를 게 뭔데? 심지어 더 악랄했지. 그래서 저 자를 죽인 건 후회하지 않아.”“하지만 구십칠, 당신은 달라. 물건을 훔치기만 했지 한 번도 사람을 죽이지는 않았어. 너는 끝까지 공정함을 잃지 않으려 애썼다는 거야. 무고한 피를 보기 싫었던 거겠지. 내 말 틀렸어?”“그래서 나는 당신이 바깥에 있는 사람들과 다르다고 생각해.”“저들은 당신을 이해하지 못할 거야. 하지만 난 당신을 이해할 수 있고 도움을 줄 수도 있어.”말을 마친 낙청연은 피곤한 기색으로 침대 머리에 몸을 기댔다.그 모습은 전혀 약자로 보이지 않았다.구십칠의 눈빛에서 불길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 순간 그는 작은 몸집안에 숨은 강직한 영혼을 본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