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청연은 처소로 끌려갔다.호위가 그녀를 놓는 순간, 낙청연은 무기력하게 바닥에 주저앉았다."왕비 마마! 왕비 마마!"지초가 다급히 달려와 그녀를 부축하려 했다. 그러나 실수로 그녀의 팔을 건드린 지초는 깜짝 놀라면서 손을 거두어들였다."왕비 마마, 팔이..."낙청연은 지초의 부축을 받으며 일어선 뒤 천천히 방으로 걸어갔다.의자 위에 앉은 그녀는 빠진 팔을 붙잡더니 이를 악물고 뼈를 맞추었다.순간 극심한 통증 때문에 낙청연은 눈물이 찔끔 났다.지초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왕비 마마... 왕야께서는 왜 이렇게 무자비하신 걸까요? 정말 너무 하신 것 아닙니까..."낙청연은 갑자기 가슴이 아파 가슴께를 부여잡고 기침하기 시작했다. 지초가 손수건을 건넸고 기침한 뒤 손수건을 보니 온통 피로 물들어 있었다.지초는 깜짝 놀랐다."제가 소유에게 태의를 모셔 오라고 부탁하겠습니다."낙청연이 말했다."그럴 필요 없다. 괜히 소유를 난처하게 만들지 말거라."만약 소유가 그녀를 도왔다는 걸 부진환이 알게 된다면 더 화를 낼지도 몰랐다."그러면 왕비 마마는 어떡하십니까?"낙청연은 차를 따랐다."아직 약재가 남지 않았느냐? 그거면 충분하다."그녀는 약재를 지초에게 건네주며 약을 달이라고 했다.밤새 방 안에서 낙청연의 기침 소리가 끊이질 않았다.듣는 사람마저 마음이 아릴 정도였다.날이 밝을 때쯤이 돼서야 낙청연은 기침하지 않고 천천히 잠에 들었다.그러나 그마저도 푹 쉬지는 못했다.날이 밝기 무섭게 밖에서 비명이 들려 낙청연은 비몽사몽 잠에서 깼다.침상에서 일어나 보니 지초가 정원 문에 딱 붙어서 좁은 틈 사이로 무언가를 보고 있었다.낙청연이 그녀에게 다가가 물었다."지초야? 밖에 무슨 일 있느냐?"지초는 깜짝 놀라더니 난처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왕비 마마..."지초가 말을 이어가기도 전에 낙청연은 멀리서 들려오는 부진환의 차가운 목소리를 들었다."본왕이 똑똑히 얘기했지. 감히 본왕의 명령을 어기고 낙청연을 내보내는 자는
낙청연은 조급한 마음에 힘껏 발버둥 쳤다."이거 놓으세요!""왕야, 꼭 이렇게 매몰차게 굴어야겠습니까?"그러나 부진환은 안색 하나 바뀌지 않았다.등 어멈이 당장이라도 죽을 것 같자 낙청연은 조바심 때문에 눈물을 흘렸다."왕부에서 나가지 않겠습니다. 방에서도 나가지 않겠습니다. 그러면 되겠습니까?"그녀는 눈시울을 붉히며 부진환에게 빌었다.낙청연은 결국 굴복했다."제발 살려주세요!"낙청연은 무기력하게 무릎을 꿇었고 부진환의 눈빛은 무겁게 가라앉았다.낙청연은 자신이 빈다면 부진환이 등 어멈을 죽이지 않을 거로 생각했다.그러나 부진환은 차가운 눈빛으로 말했다."등 관사는 섭정왕부의 노예지 네 노예가 아니다. 등 관사는 본왕의 명령을 어겼다. 본왕은 그녀를 용서할 생각이 없다."그의 차가운 목소리는 마치 가시처럼 낙청연의 심장에 깊이 박혔다.낙청연은 소스라치게 놀라더니 화를 내며 소리쳤다."왕야!"부진환은 눈살을 찌푸리며 성가시다는 표정으로 차갑게 말했다."데려가거라."호위는 낙청연을 붙잡고 억지로 그녀를 떨어뜨려 놓았다.부진환은 차가운 눈빛으로 그녀를 보았다."계속 본왕의 한계점을 시험한다면 죽는 사람은 더욱 많아질 것이다."그의 음산한 눈빛에 등골이 오싹했다.낙청연은 호위에게 끌려갔다. 문이 잠기자 감옥에 갇힌 것 같았다.예전에는 집처럼 느껴졌던 이곳이 이제는 감옥처럼 느껴졌다.지초는 그녀를 안고 말했다."왕비 마마, 떠납시다. 왕야께서 이토록 무자비하신데 왜 왕부에 남아서 고생하시려는 겁니까?"낙청연은 주먹을 꽉 쥐었다. 심장이 무거운 돌덩이에 눌린 것만 같았다.또다시 눈이 내리기 시작하니 한기가 뼛속까지 스며들 것 같았다.밖에서 들려오는 처참한 비명이 더해지니 이번 겨울이 유독 차갑고 길게 느껴졌다.낙청연은 그 소리를 들었지만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결국 낙청연은 지초에게 부축을 받으며 방으로 돌아갔다.그녀가 처소에서 반 발짝만 내디디면 지초가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다.참 버티기 힘든 겨울이었다. 낙청연은
침서는 그 말을 듣고 걸음을 멈췄다.곧이어 그는 입꼬리를 당기며 창가에 서서 팔짱을 둘렀다.“무슨 신분으로 내게 도움을 바라는 것이냐?”낙청연은 차가운 눈빛으로 그를 보았다.“대제사장이요.”침서의 눈동자가 불타올랐다.“낙요야, 나와 떠나기로 마음먹은 것이냐?”낙청연은 서늘한 눈빛으로 도도하게 그를 바라보았다.“여국으로 돌아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절 도와 일을 하나 해주셔야 합니다.”“그리고 여국의 대제사장은 오직 저뿐이어야 합니다.”침서는 입꼬리를 당기며 사악하게 웃었다. 곧이어 그는 무릎 한쪽을 꿇었다.“대제사장을 위해서라면 하나가 아니라 열 가지, 백 가지 일이라도 해야지!”낙청연은 눈을 가늘게 뜨며 그를 지긋이 바라보았다.침서는 미치기는 했지만 멍청한 사람은 아니었다. 그는 일을 함에 있어 종잡을 수 없었고 언제나 본인 기분이 가장 중요했다. 그렇다고 해서 침서가 이렇게 쉽게 그녀에게 복종할 일은 없었다.낙청연은 그의 갑작스러운 태도 변화를 믿을 수 없었다.“일단 제가 시키려는 일을 다 듣고 나서 약속해도 늦지 않습니다.”침서는 몸을 일으킨 뒤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말했다.“내가 뭘 어떻게 하면 되겠느냐?”“군사를 일으켜 서릉을 공격하세요.”“하지만 진짜 싸워서는 안 됩니다. 백성을 다치게 하지는 마세요.”그 말에 침서는 의아한 얼굴로 그녀를 보았다.“낙정을 상대하려는 것이냐?”침서는 단번에 알아맞혔다.“승낙하지 않을 생각입니까?”낙청연이 매서운 어조로 말했다.침서는 피식 웃으며 거만하게 말했다.“고작 낙정 따위 아니냐? 내 낙요만큼 중요하지는 않지.”“내가 도와주마. 7일 안에 여국 대군이 서릉 국경에 도착할 것이다.”침서는 의기양양하게 웃었다.“낙요야, 7일만 기다리거라. 내가 널 데리러 오마!”말을 마친 뒤 침서는 곧바로 낙청연의 눈앞에서 사라졌다.고개를 숙인 낙청연은 손에 든 약함을 바라보았다. 약함을 천천히 열어 보니 안에 사상환 반 알이 남아있었다.사실 그녀는 침서가 말을 듣지 않으면
여국이 왜 갑자기 군대를 출동시킨 걸까?부운주도 입을 열어 물었다."대국사는 이것에 능하니 결과를 예측할 수 있겠느냐?""어떻게 대처해야겠느냐?"조정의 문무 대신들은 전부 낙정을 바라보고 있었다. 낙정은 어쩔 수 없어 울며 겨자 먹기로 말했다."이 일은... 예측할 수는 있지만 시간이 필요합니다."부운주는 걱정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그러면 시간이 얼마나 필요하겠느냐?"낙정은 주저하다가 말했다."삼 일이요."그 말에 많은 사람이 불만을 품었다."삼 일이라니? 서릉은 경도에서 천 리 넘게 떨어졌소. 삼 일 뒤 결과가 나오면 늦지 않겠소?""예전에 섭정왕비는 이렇게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는데 말이오.""그러게, 대국사 실력이 좋지 않은가 보오."그 말에 낙정의 안색이 파랗게 질렸다."이틀, 제일 빨라야 이틀입니다!"낙정이 이를 악물고 말했다.바로 그때 부진환이 냉정하게 말했다."여국이 왜 갑자기 군대를 보냈는지 이유를 알 수 없으니 우선 사람을 보내 여국과 교섭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동시에 몰래 군대를 파병해 지원해야 합니다. 대국사의 예측에만 의지해서는 안 됩니다.""그래야 결과가 나온 뒤 어떤 변수가 생기든 대처하기 쉬울 겁니다."대신들이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부운주가 명령을 내렸다."그러면 섭정왕의 말대로 각자 준비하지.""대국사, 이틀 뒤에 만족스러운 결과를 가져오길 바란다."낙정을 대국사로 책봉한 건 그였다.그리고 그것은 황제가 된 뒤로 그가 한 몇 안 되는 일 중 하나였기에 문제가 생겨서는 안 됐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들이 뒤에서 몰래 그를 아둔한 군주라고 욕할 터였다.낙정은 거대한 압력을 이기며 대답했다."네."-낙청연은 괴로운 나날을 보내며 여국 대군이 언제쯤 국경에 도착할까 매일 날짜를 헤아렸다.그날 밤, 낙청연은 여느 때와 같이 창가 쪽에 앉아있었다. 창밖은 이미 질리도록 본 풍경이었다.갑자기 정원 문이 열렸다. 밖에서 열린 것이었다.부진환이 문 앞에 서 있는 걸 본 순간 낙청연은
부진환은 살짝 놀란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다가 이내 대답했다."그래.""네가 제대로 설명한다면 본왕은 마지막으로 널 믿을 것이다."그 말에 낙청연은 마음이 살짝 흔들렸고 곧 입을 뗐다."전 낙요고 낙영은 저의 사부님입니다. 저는 죽은 뒤 낙청연의 몸으로 다시 태어났습니다.""혼인식 다음 날 낙청연은 자결해 죽었습니다. 그 뒤로 이 몸 안에 있는 사람은 낙청연이 아니라 저 낙요였습니다.""저는 여국인입니다.""그러니 제가 가진 이 능력은 원래 낙청연이 할 줄 모르던 것이었습니다.""여국 성수 일은 만족 진영에 갔다가 알게 된 것이었습니다. 제 사부님은 그 비밀을 알게 된 뒤로 성수를 해결할 방법을 찾았습니다.""비밀이 새어 나간다면 많은 사람이 나쁜 의도를 품을 테니까요. 그러면 온 천하가 피로 물들지도 모릅니다.""..."낙청연은 자신의 비밀을 남김없이 그에게 알려주었다.예전에 마음을 나눈 적이 있던 사람이니 쉽게 배신하지 않을 거로 생각한 것이다.그를 진심으로 대하고 그에게 숨기는 게 없다면 같은 마음을 얻을 수 있을 거로 생각했다.낙청연이 말을 마치자 부진환은 깜짝 놀랐다.지금까지 그가 좋아한 사람은 낙청연이 아니라 낙요였다.바로 그때 낙청연이 말을 이어갔다."제 사부님이 나쁜 일을 하려고 했다면 왕야의 모비를 속여 그녀를 조종하려 했을 겁니다. 왕야에게 먹일 이유가 없지요.""당시 어린아이였던 왕야를 조종해봤자 무슨 쓸모가 있겠습니까?""오해가 있는 게 분명합니다. 겨우 서신 하나로 당시 구체적인 상황을 알 수 있는 자는 없습니다."낙청연은 천천히 손을 뻗어 부진환의 손을 잡았다."절 믿으세요. 제 사부님이 왕야의 모비를 해칠 리가 없습니다."사부님은 여국 성수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천하의 혼란을 막기 위해 많은 일을 했다.그런 그녀가 여국 성수로 사람을 해칠 리가 없었다.그래서 낙청연은 분명 다른 사정이 있을 거로 생각했다.부진환은 그 말을 듣다가 미간을 구기며 사색에 잠겼다.그는 한참 뒤에 물었다."그
부진환의 차가운 어조와 혐오하는 눈빛에 낙청연은 심장이 바늘에 찔리는 것 같았다.낙청연은 이를 악물고 눈물을 참았다."절 믿는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제가 다 얘기하면 절 믿어준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부진환은 차가운 눈빛으로 덤덤히 그녀를 바라보았다."그래서 넌 본왕에게 전부 얘기하였느냐? 아니, 넌 아직도 내게 뭔가를 숨기고 있고 날 속이고 있다!"노여움이 섞인 호통이었다.낙청연은 절망을 느꼈다."왕야, 오늘 또 절 속이러 오신 거군요.""왕야의 목적은 절 속여서 천명 나침반의 사용법을 알아내는 것이었습니다. 낙정이 그것을 사용하지 못하니까요. 맞습니까?"낙청연의 목소리에서 화가 느껴졌다. 그녀는 매섭게 쏘아붙였다."전 왕야를 믿었기에 제 모든 비밀을 알려드렸습니다. 그런데 왕야는 또 한 번 절 속이시는군요..."낙청연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졌다.낙청연은 이 순간 누군가에 의해 심장이 두 쪽으로 갈라지듯 아팠다.그러나 부진환은 안색 하나 바뀌지 않았고 눈빛은 차가워졌다.그는 화가 난 듯 낙청연의 목을 졸랐다."너한테 발각되었으니 본왕도 더는 숨기지 않겠다.""천명 나침반은 대체 어떻게 쓰는 것이냐?""말하지 못하겠으면 글로 쓰고 글도 쓰지 못하겠으면 그림을 그리거라!""본왕은 오늘 반드시 결과를 얻어야겠다!"부진환은 매서운 어조로 그녀를 위협했다.악력이 점점 강해져 낙청연은 숨이 막혔다. 그러나 이번에는 반항하지 않았다.낙청연의 눈꼬리에서 눈물 한줄기가 흘러내렸다.그녀는 도발적인 눈빛으로 부진환을 바라보았다."죽이세요. 절 죽이세요. 그러면 이 세상에 천명 나침반을 어떻게 쓰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겁니다."낙청연의 창백한 얼굴 위로 광기 어린 미소가 드리워졌다.부진환은 화가 난 얼굴로 그녀를 바닥에 내팽개쳤고 낙청연은 바닥에 세게 부딪혔다. 통증이 밀물처럼 밀려와 그녀를 덮쳤다.낙청연은 한동안 일어날 수 없었다.계속 이러다가는 몸이 남아날 것 같지 않았다.고개를 드니 부진환이 살기등등하게 걸어오고
곧이어 호위들이 들어와 낙청연을 마당으로 끌어냈다.낙청연은 그들에게 눌려 바닥에 단단히 고정되었고 곤장이 그녀의 몸 위로 사정없이 떨어졌다.극심한 통증이 급습해 오자 낙청연은 온 힘을 다해 바닥을 할퀴었다. 그녀의 손톱이 눈밭에 대량의 흔적을 남겼다.지초가 마당 밖에서 뛰어와 그들을 막으려 했다."그만, 그만하세요!""왕야, 어떻게 왕비 마마께 이러실 수 있습니까? 왕비 마마께서 뭘 잘못하셨습니까?""왕야, 제발 왕비 마마를 놓아주십시오! 겨울이 되고부터 왕비 마마의 상처는 나은 적이 없습니다! 이렇게 때린다면 정말 죽을지도 모릅니다!""왕야, 제발 살려주시옵소서!"지초는 낙청연의 몸 위에 엎드려 그녀의 위로 떨어지는 곤장을 막았다.그러나 호위가 그녀를 떼어냈다.지초는 온 힘 다해 울부짖으면서 살려달라고 외쳤다. 그러나 처마 밑에 꼿꼿이 서 있는 사내는 안색 하나 바뀌지 않았고 눈빛도 차가웠다.그에게서 온기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왕비 마마..."지초는 조바심이 났고, 울다가 정신을 잃고 쓰러질 것만 같았다.낙청연은 통증 때문에 지초의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다. 오직 끝없는 통증만이 그녀를 감싸고 있었다. 이 순간이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다.낙청연이 기절한 뒤에야 부진환은 형을 멈췄고 화를 내며 떠났다.지초는 낙청연에게 바짝 다가갔다. 낙청연의 몸에 손이 닿는 순간, 손 전체가 피로 물들었다. 다급히 손을 거둔 지초는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바닥을 흥건하게 적신 피와 피 칠갑이 된 낙청연을 바라보았다."왕비 마마..."지초는 감히 만질 수 없었다. 하지만 이 추운 겨울밤 낙청연을 눈밭에 그냥 둘 수도 없었다.결국 지초는 조심스레 낙청연의 어깨를 부축하여 그녀를 처마 밑까지 옮겼고 계단을 하나하나 올라갔다."왕비 마마, 꼭 버티셔야 합니다!"지초는 조심스럽게 낙청연을 방 안으로 옮긴 뒤 다급히 뜨거운 물을 가져왔다.낙청연은 침상 위에 엎드렸고 지초는 가위로 등 쪽의 옷을 잘라냈다.피가 묻은 옷과 함께 피범벅이
그 순간, 낙청연은 자신이 꿈을 꾸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왜 낙정이 보이는 걸까?다음 순간,낙정의 말에 낙청연의 심장은 나락으로 떨어졌다."섭정왕도 당신의 고집을 꺾지 못하다니, 역시 제가 직접 와야 했습니다."낙청연은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너무 추워서 감각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다.물이 창백한 얼굴을 타고 흘러 내려와 바닥에 뚝뚝 떨어졌다.낙청연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것은 어느 방 안이었다.하지만 섭정왕부는 아니었다."내가 왜 여기 있는 것이냐?"지초가 약을 발라준 뒤 낙청연은 잠이 들었다.낙정은 코웃음을 쳤다."당연히 부진환이 당신을 제게 넘겨준 것이 아니겠습니까?""그도 당신의 입을 열지 못했으니 제가 온 겁니다."그 말에 낙청연의 심장은 또 한 번 산산이 조각났다.부진환은 그마저도 부족해 그녀를 낙정에게 넘겨줬다.그녀를 죽도록 괴롭혀서 진짜 죽게 만들어야 한이 풀리는 걸까?낙정은 상자 하나를 꺼냈다. 상자를 열어 보니 안에는 새끼손가락만큼 두꺼운, 철로 만들어진 철침이 들어있었다.낙정이 느긋하게 입을 열었다."제가 뭘 원하는지는 알고 있겠지요?""지금 제게 천명 나침반의 사용법을 알려준다면 살려는 드리겠습니다.""이 기회를 잃는다면 쓸데없이 고생만 하게 될 겁니다.""이 철로 된 침들이 보이십니까? 특별히 이 두께로 만들었습니다. 당신의 관절에 꽂아 넣기 위해서 말입니다.""조금씩 조금씩, 마치 나무판자에 못을 박는 것처럼 당신의 몸에 박을 겁니다.""하지만 아쉽게도 길이가 좀 짧습니다. 그래서... 당신의 손에 쓸 생각입니다..."낙정이 들고 있던 날카로운 침이 낙청연의 손등을 스쳐 지나갔고 그 순간, 낙청연은 몸을 흠칫 떨었다.그녀는 시선을 들어 낙정을 쏘아보며 차가운 어조로 말했다."넌 실력이 아주 대단하지 않으냐? 왜 나침반을 쓸 줄 모르는 것이냐?""경도에서 있었던 일들도, 낙 노부인의 관 안에 있던 물건을 도둑 맞힌 것도, 벽해각이 멸문당한 것도 전부 네가 한 짓이지!"낙정
“나는 더 이상 당신의 상대가 안 되오.”낙요는 고개를 돌려 바둑판을 보며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당신을 이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당신과 함께 바둑을 두며 답답함을 풀기 위해서요.”부진환은 바둑알을 하나하나 거두었다.낙요는 실눈을 뜨고 하늘을 바라보며 손을 뻗었다. 햇빛이 손가락 사이로 새어 나왔다.“그러고 보니, 나의 답답함을 풀 사람은 당신뿐이오.”“심시몽은 어의원의 심사를 통과하고 정식으로 어의원에 들어가게 되었소. 그리고 강소풍의 집안에서도 그들의 혼사를 승낙하여 두 사람은 곧 혼사를 올릴 것이오.”“갑자기 심면과 낙현책도 혼사를 올려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들었소.”부진환이 웃으며 말했다.“일찍이 혼인할 나이가 되었지만, 아이들도 조급해하지 않는데 왜 그렇게 걱정하오?”낙요가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여유롭게 말했다.“걱정하지 않소. 대소사를 모두 당신이 걱정하고 있지 않소? 초경의 수위가 있으니, 몇 년이 지나도록 용모가 변하지 않았소. ”“나 같으면 그렇게 걱정을 많이 했으니, 일찌감치 늙었을 것이오.”몇 년 동안 부진환은 그녀를 도와 적지 않은 조정의 일을 분담했다.그녀도 부진환의 동반에 습관이 되었다.갑자기 무언가 떠오른 낙요는 자리에서 일어나 부진환을 바라보며 손바닥에 턱을 괴고 물었다.“이 나이가 되니, 아이를 낳지 않은 것을 후회하오?”“걸을 수 없을 정도로 늙었을 때, 다른 사람의 자식들이 단란히 모여있는 것을 부러워할 것이오? ”부진환은 손에 든 물건을 내려놓고 진지하게 그녀를 보며 대답했다.“후회하지 않소.”“사람은 너무 욕심을 부려서는 안 되오.”“게다가 당신은 여제요. 당신이 늙었다고 해도 누가 감히 푸대접하겠소?”“당신이 조용히 지내는 것이 좋다고 하면 난 당신과 함께 있을 것이오. 초경의 수위로 늦게 늙는다고 하지 않았소? 앞으로 당신이 늙으면 내가 당신을 부축하고 업고 다닐 것이오.”낙요는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참 좋소.”이듬해 가을.심시몽은 강소풍과 혼사를 올렸고 어의원 5품
강소풍은 고개를 끄덕이다 다급히 고개를 저으며 어찌할 바를 몰랐다.“아니오. 그런 뜻이 아니오. 어머니께서는 마음에 들어 하셨소.”설명할수록 강소풍은 상황이 복잡해지는 것 같았다.심시몽은 어두운 표정을 지었지만, 여전히 그를 위로했다.“자네의 뜻을 알고 있소. 설명할 필요 없소.”“시몽... 미안하오! 하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을 것이오. 방법을 강구하여 어머니에게 자네의 진정한 모습을 보여줄 것이오. 분명 어머니도 자네를 받아들일 것이오. ”그 말에 심시몽은 살짝 놀라 의아한 듯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나와 헤어지려는 것이 아니었소?”심시몽은 강소풍이 특별히 그녀를 찾아와 이 일을 설명하는 것을 보고, 그녀와 연을 끊으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아니요. 그럴 리가 있소.”“나는 단지 이전의 약속을 지킬 수 없을 뿐이오. 이번 달 안에 혼담을 꺼낼 수 없을 텐데, 나를 기다려줄 수 있소?”“말재주가 좋지 않아 대체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소. 어머니께서는 자네가 연약하고 힘없다고 생각하시오. 앞으로 내가 출정하면 자네가 홀로 집안을 지킬 텐데, 우리에게 좋지 않은 선택이라 생각하시오. ”이 말을 듣고 심시몽은 대충 뜻을 알아차렸다.“어머니께서는 문무를 겸비한 며느리를 원하고, 자네와 함께 전쟁터에 나가서 떨어져 있지 않아도 되기를 원하시오.”“나는 비록 무공을 할 줄 모르지만, 그래도 해낼 수 있소.”고개를 들어 올린 심시몽의 눈빛은 밝았다..강소풍은 놀라기도 했고 기쁘기도 했다.“정말이오? 여전히 나와 함께 있고 싶소? 포기하지 않을 것이오?”심시몽은 고개를 끄덕였다.“나를 위해 그렇게 많은 일을 했는데, 어찌 쉽게 포기할 수 있소? 자네가 포기하더라도 나는 포기하지 않을 것이오.”“강가는 장군 집안이라 분명 우리 언니와 같은 여인을 좋아할 것이오. 난 비록 언니와 비길 수 없지만 그래도 노력할 것이오.”“여제께서 나에게 약옥을 주었소. 만약 순 의원과 의술을 배울 수 있다면 어의원에 들어갈 기회가 있소.”“성공
이 말을 듣고 심시몽은 약간 의아해했다.“공주는 저를 탓하지 않습니까...”“그분은 공주시다. 천하를 품고 있는데, 어찌 네가 범한 작은 잘못을 추궁할 리 있냐?”“지금 너의 변화를 보면 공주도 더 이상 너를 탓하지 않을 것이다.”“하지만 차려야 할 예의는 없어서는 안 된다. 시간이 나면 공주에게 감사하다고 인사를 전하거라.”심시몽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예. 내일 가겠습니다.”“저는 먼저 약옥을 넣고 의관에 가겠습니다.”심시몽은 기쁜 마음에 빠른 걸음으로 달려갔고, 의기양양한 분위기를 풍겼다. 조금도 방금의 의기소침함이 없었다.심면도 기뻤다.모두가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은 것 같다.하지만 그와 동시에, 강소풍이 집에서 어머니와 싸우고 있었다.“안 된다고 하면 안 되는 것이다! 너를 현학서원에 보내 양성하는 것도 앞으로 네가 큰 성과를 거둘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러니 너도 마땅히 너와 어울릴 만한 부인을 얻어야 한다. 너와 전장을 누비며 적을 죽이는 그런 사람 말이다.”“힘없이 연약하게 집안에서 서방이 돌아오기를 손꼽아 기다리는 그런 평범한 아가씨는 안 된다.”“이전에 그 심시몽을 위해 집안의 빙천영지를 훔쳤고, 심지어 벌을 받고도 물건이 어디로 갔는지 말하려 하지 않았다. 난 그때부터 심시몽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그런데 지금 그 아이와 혼사를 올리려는 것이냐?”“말도 안 된다!”강부인은 단호한 태도로 조금도 말을 바꾸려 하지 않았다.강소풍은 내키지 않는 듯 반박했다.“심시몽이 평범하다니요? 어떻게 평범하다는 말입니까? 심시몽은 그저 무공이 부족할 뿐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무예를 익혀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하물며 그녀의 언니는 이미 태자로 봉해졌습니다. 그러니 심시몽도 좋은 아가씨라는 것을 설명할 수 있지 않습니까?”강부인은 콧방귀를 뀌었다.“언니는 언니이고, 심시몽은 심시몽이다. 어찌 동일하게 논할 수 있겠냐?”“강가는 권세에 빌붙지 않고, 심시몽의 언니가 태자라는 것을 봐서 그녀를 맞이하려
“나중에 자네가 신의가 될지도 모르오.”심시몽이 웃으며 말했다.“자네의 좋은 말대로 되길 바라오.”모두 술을 마시며 음식을 먹고 있었다. 심면이 임계천에게 물었다.“자네는? 어디로 가고 싶소?”“나라에 보답할 수 있다면 어디든 좋소.”임계천이 담담하게 웃었다. 그는 특별히 가고 싶은 곳이 없었기에 그저 궁의 안배를 기다리고 있었다.다들 기분이 좋았고 투지가 넘치고 미래에 대한 동경으로 가득 차 있었다.술을 너무 늦은 시각까지 마셔서 그들은 심가에서 묵었다.오전이 되자, 각 집안의 하인들이 부랴부랴 사람을 찾아왔다. 몇 사람은 술에 취해 인사불성이 되었지만, 여전히 집으로 끌려갔다.궁에서 명을 받았기 때문이다.강소풍은 금군 기사영 통령으로 봉해져 도성과 황궁의 안위를 지키게 되었다.임계천은 형부로 전근되었다.소우청과 봉함선은 수주의 군영 부장군으로 명을 받았다.소우청의 행처는 그의 아버지 소진오가 좋은 경험을 하기를 바라며 부탁한 것이다.낙요는 봉함선이 여인이기에 그녀를 그렇게 멀고 험한 곳으로 보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주동적으로 수주에 갈 것을 청구했다.봉함선이 말했다.“여국은 역대로 여 장군이 없었습니다. 저는 첫 번째 여장군이 되고 싶습니다.”“만약 힘들고 험한 곳이 아니라면 어찌 제가 포부를 발휘할 수 있겠습니까?”낙요는 그녀의 담력과 야심을 높이 사고 그녀의 청을 승낙했다.“나는 네가 여국의 첫 번째 여장군이 되기를 기대한다.”이들 외에 현학서원의 다른 학생들도 그들로 하여금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 새로운 행선지를 얻었다.유독 심시몽에 대해, 낙요는 따로 안배를 해주지 않았다.백서가 걱정했다.“어찌 유독 심시몽만 얘기가 없으십니까? 심시몽이 알면 마음이 편치 않을 것입니다.”낙요가 웃었다.“아니다. 이미 심면을 시켜 심시몽에게 한가지 물건을 보냈다.”백서는 살짝 놀랐다.“일찍이 계획이 있으셨군요.”이때의 심시몽은 홀로 넋을 잃고 연못가에 앉아있었다. 그녀의 마음은 마치 흩날리는 낙엽처럼 어수
유생이 드디어 알아차렸다.“그랬구나. 내가 어찌 이걸 잊은 것이냐.”“난 정말 운이 좋은 것 같구나. 이렇게 운 좋게 제사장 자리를 주울 수 있으니.”심면이 답했다.“아닙니다. 전에 제가 청주 전쟁에서 조난했을 때, 제자들을 통솔해 적과 싸우지 않았습니까? 현책보다 능력이 훨씬 뛰어났습니다.”“사저가 소제사장이 되는 것이 가장 적합합니다.”이렇게 칭찬하는 것을 듣고 유생은 쑥스러워하며 낙현책을 힐긋 쳐다보았다.“네가 이렇게 말하면 낙현책이 기뻐하지 않을 것이다.”낙현책이 웃으며 답했다.“그녀가 말한 것은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너는 나보다 대제사장이 더 잘 어울린다.”“나는 무학에서 너보다 좀 나을 뿐이다. 정말 대제사장이 되려면 너보다 잘할지 모를 일이다.”“다만 제사장 일족의 심사에는 이런 것이 없었다.”“하물며 나도 대제사장이 될 생각을 한 적이 없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단지 여제가 기뻐하기를 바랄 뿐이다.”이 말을 듣고 유생은 마음이 놓였다.“불쾌하지 않았다면 다행이구나. 권력과 지위 앞에서 네가 이런 결정을 내릴 수 있다니, 정말 대단하구나!”“한 잔 권하마!”유생이 술잔을 들었다.바로 이때, 갑자기 대문이 열렸고, 사람이 도착하기도 전에 먼저 목소리가 들렸다.“사람이 아직 도착하지 않았는데, 왜 벌써 마시는 것이오?”“우리를 기다리지 않는다니, 의리가 없소!”몇 사람이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강소풍과 임계천이 술병을 들고 오는 것이 보였다.“오늘 밤 다들 왔구나!”“자, 심면과 유생을 위해 한 잔 하세!”모두 자리에 앉아서 잔을 들어 함께 마셨다.그렇게 한참 마시다 보니 술에 취한 강소풍이 흥분한 듯 입을 열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심가에 겹경사가 닥칠 것이오.”모두 멍해졌다.강소풍은 낙현책과 심면을 바라보았다.“여제가 두 사람의 일을 인정했으니, 언제 혼사를 치르는 것이오?”심면은 갑자기 얼굴을 붉어지며 황급히 강소풍에게 술을 따라주었다.“술을 마셔도 자네의 입을 막지 못한 것이오?”
“저희가 어찌 가족입니까?”“50냥의 이득을 본 걸 후회한다면서요?”이 말이 나오자 다들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그들은 그제야 유생이 그날 밤 그들의 대화를 모두 들었다는 것을 깨달았다.어쩐지 상자를 도둑맞았더라니.유룽은 체면을 깎으며 사과했다.“유생아, 우리는 한 가족이니 티격태격하는 것도 정상이다. 그러나 다들 나쁜 생각은 없다.”“이전의 일은 모두 나의 잘못이다. 이렇게 너희들에게 사과하마!”“오늘 저녁 집으로 돌아가자. 너를 위해 잘 경축해야지 않겠느냐!”둘째아버지와 셋째 아버지도 모두 따라서 사과했다.집안 재산을 나누겠다고 얘기한 그날 그들이 각박한 만큼 지금 아주 자상했다.“유생아, 집으로 가자. 지나간 일은 잊고, 우리 가족 다시 시작하는 게 어떠냐?”“그래. 가족이 함께 지내면 얼마나 시끌벅적하냐? 따로 이곳에서 지내면 쓸쓸하지 않으냐?”“우리 집에 좋은 술도 두 병 간직하고 있는데, 유생을 축하하러 오늘 꺼내마!”유생은 표정을 바꾸지 않고 차분하고 차갑게 말했다.“다들 시간 낭비하지 마십시오.”“집안 재산을 나누고 연을 끊었는데, 어찌 번복할 사람이 있겠습니까?”“잘살든 못살든 더 이상 유가와 관계가 없습니다.”“다들 가시지요. 굳이 우리 집 앞에서 매달리려 한다면, 관아에 신고할 것입니다.”말을 마치고 유생은 방안으로 돌아와 차갑게 문을 닫았다.문밖의 사람들은 후회에 휩싸였다.게다가 둘째는 첫째를 원망하기 시작했다.“형님 탓입니다. 제사장 자리가 발표되기도 전에 넷째네를 쫓아내더니, 지금은 어떻게 하려는 것입니까?”셋째도 불평했다.“유생은 앞으로 대제사장이 될 것이오. 앞으로 유생 덕을 보긴커녕 이렇게 소란을 피웠으니, 앞으로 우리를 난처하게 할 수도 있소...”유롱은 짜증을 참지 못하고 말했다.“어찌 또 내 잘못이 되었냐?”“애초에 심사 결과가 나오자, 다들 하나하나 달려와서 유생네가 끝났다고, 그들 일가를 헛되이 잘해줬다고 하지 않았냐? 너희들이 모두 동의했기 때문에 넷째 일가를 쫓아낸 것이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매우 놀랐다.유가 사촌들은 냉기를 한 모금 들이마셨다.유생도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왜 제가...”왜 낙현책이 아닌가?장 총관이 웃으며 말했다.“어서 명을 받으시지요. 소제사장”유생은 정신을 차리고 마음속으로 미친 듯이 기뻐하며 얼른 명을 받고 고마움을 전했다.장 총관은 자리에 있던 병사들을 힐긋 보고 유생에게 친절하게 물었다.“소제사장,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제가 처리할 필요가 있습니까?”유생은 웃으며 말했다.“필요 없습니다. 고맙습니다!”“어찌 사양하십니까? 제가 필요한 곳이 없다면, 이만 궁으로 돌아가 명을 전해야 합니다.”“예. 바래다 드리겠습니다.”유생은 장 총관을 골목 밖까지 배웅했다. 장 총관이 의미심장하게 일깨워주었다.“아가씨는 아직 소제사장의 권력을 모르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도성에서 제사장의 권력은 여제와 대제사장에 버금갑니다.”“태자와 동등한 권력입니다.”“이런 사소한 일은 직접 처리할 필요도 없으니, 제게 한마디만 분부하면 됩니다.”유생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일깨워 줘서 고맙습니다.”“오늘 여제께서 태자도 정하셨습니까? 심면입니까?”장 총관은 고개를 끄덕였다.“예. 심가에 뜻을 전하고 왔습니다.”장 총관을 떠나보내고 유생은 기쁨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녀는 선택받을 줄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분명히 낙현책한테 졌기 때문이다.심면도 태자로 봉해져서 참 좋았다.오늘 밤 심면을 찾아 축하하려면, 이 문제를 빨리 해결해야 한다.그녀는 빠른 걸음으로 문밖으로 돌아갔다.병사들은 즉시 공손한 태도를 바꾸어 그녀에게 예를 올렸다.“소제사장, 오늘 분명 오해일 것입니다. 저희는 먼저 떠나겠습니다.”유생이 차가운 소리로 호통을 쳤다.“멈추거라!”그들은 뻣뻣하게 자리에 서서 고개를 숙이고 땀을 뻘뻘 흘렸다.제사장의 말 한마디에 그들은 직무를 잃을 수도 있다.“수사를 더 해야 하는 거 아니오? 안 하시오?”“저희가 감히 소제사장의 집을 수색할 용기가 어디 있겠습니까? 오
낙현책은 고개를 끄덕였다.“나도 궁을 나가려던 참이다. 함께 가자.”유생은 단번에 알아차렸다.“심면을 찾으러 가는 것이냐?”“심사 결과가 나온 후, 심면을 만나지 못했구나.”“심면도 무슨 일이 생긴 것이냐?”낙현책은 생각에 잠긴 듯 말했다.“그런가 보구나.”“내가 도울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얘기하거라.”“그래.”두 사람이 함께 궁으로 나온 후 유생은 바로 집으로 돌아갔고 낙현책은 심면의 집으로 향했다.유가의 골목에 도착하자마자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관아의 사람들이 유생의 집 앞을 막고 그녀의 부모님을 잡고 그들을 관아에 데리고 가려 했다.옆에는 그녀의 사촌들이 있었다.안색이 바뀐 유생은 다급히 달려갔다.“그만하시오!”“뭐 하는 것이오?”유생은 바로 부모님을 뒤에 감쌌다.유롱은 화가 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뭐 하냐니? 집안 재산을 나누었으니, 유가와 이젠 연이 없는 것이다. 집안 재산도 주지 않겠다고 했는데, 어찌 유가의 물건을 훔치는 것이냐? 그 상자에는 족히 수십만 냥이 있다!”“감히 너희랑 아무 연관도 없다고 할 수 있느냐?”유생은 그들이 이렇게 빨리 찾아올 줄 몰랐고, 관리에게 고소할 줄도 몰랐다.“우리가 훔쳤다는 증거라도 있습니까?”“증거도 없이 저희를 잡다니, 법을 따르셔야죠.”유롱이 노발대발하며 말했다.“유가 사람들이 네가 돌아온 것을 봤다!”“변명하지 말거라. 할 말이 있으면 감옥에 가서 변명하거라!”물건을 잃어버리고 그들이 유일하게 의심하는 사람은 유생이다.대가를 치르더라도 그들은 그 돈을 되찾으려 했다.“내가 돌아갔다고 돈을 훔쳤다는 것입니까? 농이 심하십니다!”“관청에 따라서 갈 수 있지만, 저희 부모님과는 연관이 없습니다. 증거가 없으면 함부로 사람을 잡을 수 없습니다!”유롱이 화를 냈다.“네 아버지와 어머니도 한패다! 당연히 관아로 데려가야 한다!”“나으리, 그들은 수십만 냥을 훔쳤습니다. 결코 적은 액수가 아닙니다. 나리께서 반드시 돈을 되찾아 주시기를 간청합니다!”
조영궁.심사 결과가 나온 후 오랫동안 기다리던 낙요는 드디어 낙현책이 오는 것을 기다렸다.“여제.”낙현책은 고개를 숙이고 여제를 마주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심사 결과가 나온 지 오래됐는데, 어찌 이제야 나를 찾아온 것이냐? 잘 고려한 것이냐?”낙현책은 고개를 끄덕이며 무릎을 꿇고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여제를 실망하게 했습니다!”이 말을 듣고 낙요는 그의 결정을 알아차렸다.“일단 일어나서 얘기하거라.”낙현책은 무릎을 꿇고 일어나지 않았다.“여제의 가르침을 저버렸습니다. 저는 대제사장 자리를 감당할 수 없습니다!”낙요는 다소 실망했지만 그래도 의외는 아니었다.“잘 생각했느냐? 이 일은 번복한 기회가 없다.”낙현책이 세게 고개를 끄덕였다.“오랫동안 심사숙고한 후 내린 결정입니다.”“제가 여제를 실망하게 했습니다.”지금까지 이렇게 노력했고 최종 심사에서 1등까지 하였는데, 여제를 실망하게 했다.낙요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일으켜 세웠다.“실망하지 않았다.”“네 실력은 모두가 다 알고 있다. 어찌 실망했겠느냐? 네가 후회하지 않으면 된다.”“이미 결정을 내린 이상 더 이상 그렇게 많은 생각을 하지 말거라. 마음을 놓고 네 목표를 향해 가거라.”“나는 네 결정을 존중한다!”여제가 화를 내지 않자, 낙현책은 그제야 한숨 돌렸다. 그는 감동에 겨웠다.“고맙습니다.”낙요는 그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그동안 심면을 만나지 않았겠구나? 어서 네 결정을 알리러 가거라.”낙현책은 고개를 끄덕이고 궁을 나갈 준비를 했다.그동안 심면도 고민하고 있었을 것이다. 두 사람에게 있어 정말 어려운 문제였다.누군가는 무언가를 포기해야 하기 때문이다.낙현책이 궁을 나서려는데 제사장족 제자가 그를 가로막았다.“유생이 궁에서 자네를 기다리고 있소. 급한 일이 있는 것 같소.”“급한 일? 알겠소.”유생은 그동안 궁에 있지 않았다. 갑자기 궁으로 찾아온 것을 보아, 중요한 일이 있는 듯했다.먼저 그녀를 만나고 궁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