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무열과의 대화를 마친 성도윤은 초조해하며 컴퓨터를 덮은 뒤, 기분 전환을 위해 근처 산책로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그는 요즘 그룹의 일에 점점 싫증이 나기 시작했고 심지어 자리에서 물러나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었다.하지만 물러날 수는 없었다.현재 성씨 가문 전체를 둘러봐도 그룹 전체를 관리하는 중책을 맡을 수 있는 사람은 그와 성진 두 사람뿐이다.그러나 성진은 지금 그 사기꾼과 세계를 돌아다니며 인생을 즐기고 있는데 만약 그가 이대로 계속하여 게으름을 피운다면 성대 그룹이 와르르 무너져 내릴 날도 멀지 않을 것이다.어쩔 수 없다. 현실은 이렇게 잔인한 것이다. 약육강식의 세상에서 부단히 전진하지 않으면 결국은 잡아먹히기 마련이다.해안시의 8대 가문의 수장으로서 성씨 가문은 권력과 영광을 누린 만큼 수없이 많은 위험과 책임을 져야 했다.그렇기에 아무리 힘들어도 그는 잠시도 발걸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게다가 아직 발걸음을 멈추지도 않았는데 ‘성심 전당포'와 같은 원수들이 참지 못하고 도발하기 시작했다. 만약 어느 날 그가 정말 멈추었다면 그 결과는 상상조차 할 수 없을 것이다...“성심 전당포...”넓고 잔잔한 호숫가에 우뚝 선 남자의 얇은 입술이 차갑고 잔혹한 글귀를 내뱉었다.“이번에는 당신들이 스스로 총부리를 들이받았으니 어떤 결과가 따라도 싸.”멀리서 바라보면 성도윤의 잘생기고 차가운 얼굴은 고귀한 기질을 뿜어내고 있었고 마침 붉은 석양이 서쪽으로 질 무렵, 황금빛 햇볕이 호수에 스쳐 가며 호수면은 영롱한 다이아몬드처럼 반짝반짝 빛을 내어 그의 아름다움과 부드러움을 더욱 돋보이게 해주었다. 그 장면은 정말 한 폭의 유화와도 같이 말로 이룰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다.그런데 지금 남자는 머릿속으로 잔인한 복수를 계획하고 있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북유럽의 호수는 바닥이 훤히 보일 정도로 맑았고 호수의 표면에는 때때로 새가 멈춰서며 신기한 광경을 그려냈다. 게다가 시원한 산들바람까지 살랑살랑 불어대며 신선한 공기를 마시고 있자니 저절로 몸
그 청아한 모습을 한 여인은 머리도 들지 않은 채 능숙하게 아기의 옷을 벗겨내고 가슴을 누른 다음 입을 맞대고 아기에게 인공호흡을 하기 시작했다.한 번, 한 번, 또 한 번, 몇 번을 반복한 끝에 아이는 마침내 물을 토해냈고 하얗게 질린 얼굴에도 점차 혈색이 돌아왔다.“생명에는 지장이 없을 것 같으니 빨리 병원으로 보내 정밀 검사를 받도록 하세요.”그제야 여자는 마침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젊은 엄마에게 영어로 말해주었다.“고마워요, 정말 고마워요. 당신들 덕분에 저와 아이가 살 수 있었어요!”젊은 엄마는 아기를 안고 눈물을 펑펑 쏟아내며 연신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서둘러 의사를 찾아갔다.성도윤은 온몸이 흠뻑 젖은 상태였고 여전히 머리카락에서 뚝뚝 떨어지는 물방울이 완벽한 이목구비를 타고 흘러내렸다.이어 긴 손가락으로 무성한 머리카락을 넘겨버리자 몸은 피곤했지만 상쾌한 느낌이 들었다.역시 좋은 일을 하면 기분이 좋아지나 보다.“어, 잠깐만요!”그 청아한 모습을 한 여자도 막 자리를 뜨려는데 성도윤은 귀신이라도 쓰인 듯 무의식 간에 여자를 불러세웠다.“네? 저요?”여자가 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렸다.이윽고 서로의 얼굴을 똑바로 확인한 두 사람은 개똥을 밟기라도 한 것 같은 불쾌함이 느껴졌다.“당신이라니.”성도윤은 여자를 위아래로 훑어보면서 시큰둥한 눈빛을 하고는 입을 열었다.“돈 때문에 나를 꼬시려고 하는 된장녀는 할 줄 아는 게 아무것도 없을 줄 알았는데 이렇게 용감하게 뛰어들 줄 몰랐네요. 오늘 다시 보게 됐어요.”“허허, 정말 건방진 남자가 따로 없군요. 눈이 나쁘면 스스로 도려내어 더 필요한 사람에게 기부하는 게 어떨까요?”차설아는 남자를 힐끗 쳐다보고는 퉁명스럽게 대꾸했다.강산은 바꾸기 쉬워도 본성은 바꾸기 어렵다고 이 녀석은 예나 지금이나 항상 그녀를 폭발시킬 만큼 화나게 할 방법을 갖고 있었다.닥치는 대로 사람을 구했을 뿐인데 어떻게 이곳에서 그를 만날 수 있는 거지?!“나를 꼬시려는 계획이 실패했다고 벌써 화가
“콜록콜록!”차설아는 뒤로 몇 걸음 물러섰고 부자연스럽게 헛기침을 몇 번 했다. “어색하게 왜 이래요?”“말 돌리지 말고 대답해요. 있어요, 없어요.”성도윤은 경험이 풍부한 사냥꾼처럼 차설아에게 말을 돌릴 기회도 주지 않고 그녀의 마음을 살피려 했다.“네, 있어요.”차설아는 깊이 숨을 들이마시고 남자의 시선을 피하며 진지하게 허튼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제가 당신에 대한 감정은 흐르는 강물처럼 걷잡을 수 없어요. 정말 매력적이시네요. 제 유일한 신이에요.”“...”“어때요, 만족하세요? 카리스마 넘치는 척 안 하면 안 돼요? 정말 어색해요.”“?”“아직도 마음에 안 들면 계속할 수 있어요, 나 이런 헛소리 엄청나게 잘해요. 더 듣고 싶다면 더 할 수도 있어요.”성도윤은 굳은 얼굴로 대답했다.“됐네요.”이 여자... 정말 평범한 여자가 아니군.그는 그녀의 속내를 알아보려고 했지만 알려고 할수록 더 모르겠다는 기분이 들었다.“다른 일 더 있어요? 없으면 난 가봐야 해요”그녀는 자제력이 매우 약한 사람이기 때문에 그와 오래 있을수록 그녀의 마음은 더 걷잡을 수 없이 커졌는데 그녀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게다가 그녀는 지금 온몸이 흠뻑 젖었고 날도 어두워져 정말 추웠다.“없어요, 가봐요.”성도윤도 차설아와 더 이상 왈가왈부하고 싶지 않은 모양이었다.그가 보기에 여자는 좀 지나치게 미친 것 같았는데 그는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차설아가 얼마 가지도 않았는데 뒤에서 또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잠깐만요.”“또 왜 그래요?”“추우니까 이거 입고 가요.”성도윤은 자신이 아까 물에 들어가기 전에 벗어놓은 마른 외투를 여자에게 살짝 걸쳐주며 말했다.“몸조심해야죠. 그렇지 않으면 사람을 유혹할 힘이 어디 있겠어요.”“정말 고맙네요.”차설아는 말없이 주먹을 조이며 일부러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당신은 왜 병원에 있는 거죠? 여기서 일해요? 아니면 가족이 아파서?”“상관없는 일이잖아요, 가요.”차설아는 차갑게 가버렸지만
성진이 볼 수 없기 때문에 많은 일을 그녀는 비교적 편하게 할 수 있었다.“갑자기 옷은 왜 갈아입어?”성진은 어색한 표정으로 물었다.“그게... 옷이 더러워져서.”차설아는 거짓말을 하면서도 남자에게 성도윤을 만난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그렇지 않으면 분명 또 끝도 없이 헛된 생각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거짓말.”성진은 입꼬리를 축 늘어뜨리고 억울하기 짝이 없는 표정을 지었다. “영원히 나를 속이지 않을 거라고 약속했으면서... 지금 나를 바보처럼 속이고 있잖아.”남자가 분명 뭔가를 알고 있다는 걸 차설아가 깨달았다. 병원에는 사람들이 많이 오가고 그는 이곳에 자주 오기 때문에 누가 그에게 정보를 알려줬을 가능성도 없지 않았다.“내가 당신을 속였다니, 내가 뭘 속였다는 거야? 말해봐.”여자가 조심스럽게 탐색하듯 말했다.“닥터 데이비드가 입원 구역의 작은 호수에서 익사 사건이 발생했고 당신이 뛰어내려 사람을 구했다고 하던데. 당신이 옷을 갈아입은 것은 당신의 옷이 젖어서지 옷이 더러워져서가 아니란 말이지.”성진이 엄숙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맞아, 거짓말이야. 난 당신이 걱정할까 봐 그랬지. 데이비드는 정말 입이 빠르네, 병원을 옮겨야 할 것 같아. 그렇지 않으면 사생활이 하나도 없겠어.”그녀는 확실히 병원을 옮기고 싶었다. 그렇지 않으면 작은 병원에서 서은아와 성진은 같은 층에 있으니 조만간 양측이 마주칠 것이 분명했다.성진은 원래 매우 비관적이고 예민한 사람이기 때문에 그때가 되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병원을 바꾼다고 넘어갈 수 있는 일이 아니잖아. 본질을 알지 못했어.”성진은 침대에 앉아 보기 드문 진지한 모습으로 차설아를 낯설게 했다.“본질이 뭔데?”“본질은 당신이 나를 당신의 가장 가깝고 신뢰하는 사람으로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는 거야”“그 결론은 도대체 어떻게 낸 거야? 우리가 지금 서로 의지하고 있는데 그래도 가장 가깝고 신뢰하는 사람이 아니야?”“내가 지금 농담하는 거라고 생각하지 마.”성진은 이번에 정
차설아가 자료를 들고 성진의 전원 절차를 밟을 때 주치의 데이비드는 의외라는 반응이었다.“제인, 왜 갑자기 병원을 옮기려고 하는 거죠? 그는 지금 회복이 중요한 시기예요. 장기간의 이동은 적합하지 않다고요.”데이비드의 스펙은 인근 도시로 보면 모두 최고로 손꼽히고 상냥하고 겸손하며 책임감도 강했다.처음에 그들이 이 마을에 온 것도 데이비드의 의술 때문이었는데 이 반년 동안 데이비드의 치료를 받으면서 서로 깊은 우정을 쌓았다.“특별한 사정이 있어서요. 때가 되면 다시 돌아올 거에요.”차설아는 데이비드에게 대충 설명하고 자세히 말하지는 않았다.“반드시 병원을 옮겨야 한다면 주치의도 바꿔야 하잖아요. 당신도 알다시피 의사마다 의료 이념이 다릅니다. 내가 보기에 진의 상황은 좋아지고 있어요. 인내심을 가지고 요양하고 기분을 좋게 유지하면 천천히 좋아질 것입니다, 적어도 팔다리를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을 겁니다.”데이비드는 심각한 표정으로 차설아를 일깨워주었다. “만약 병원을 바꾸고 주치의를 바꾼다면 의사가 데이터만 보고 급진적인 치료방식을 취할 수 있어요.”“급진적인 치료방식이라뇨?”“근육재생 호르몬 주사를 맞는다든지, 새로운 팔다리를 직접 이식한다든지...”“그건 안 되죠.”차설아는 듣기만 해도 미덥지 않다며 거부감을 드러냈다.호르몬 주사를 맞든 팔다리를 바꾸든 그건 정상적인 의사들이 할 수 있는 일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그래서 전 병원을 옮기지 않는 것을 추천해요. 어쨌든 이미 잘 적응했고 나의 의료 이념을 진도 잘 받아들일 수 있잖아요. 이 결정적인 시기에 포기할 수 없어요. 그렇지 않아요?”데이비드는 손가락으로 만년필을 만지작거리며 차근차근 논리정연하게 차설아를 설득했다.“데이비드, 당신 말이 일리가 있어요, 그럼 전원은 안 할게요, 퇴원 절차를 밟고 좀 지나면 다시 입원할게요, 그건 괜찮아요?”차설아는 심사숙고 끝에 절충점을 찾았다.이제 성진의 허리 부상은 거의 회복되었고 병원에 있어도 매일 일상적인 재활 훈련을 하고 손상
그가 차설아에 대한 요해대로라면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이 아니었다면 그녀는 절대 움직이지 않았을 거다.그녀가 이렇게 허둥지둥거리는 걸 보니 틀림없이 S급 위험 주의보가 내려졌다는 뜻일 거다.“왜냐하면... 집에 더 안 가면 내 해바라기가 다 시들어버릴 거니까. 내가 안 급하게 생겼어?”“허허, 이유도 참... 내가 믿을 거 같아?”“방금 당신한테 무슨 일이 있으면 나에게 가장 먼저 말하고 나를 속이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했잖아. 벌써 약속을 어기는 거야?”“당신 정말... 이 일은 내가 지금 말하기 어려워. 나중에 자세히 설명할게.”차설아는 성진을 달래며 엘리베이터를 기다렸다.띵 하는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이런, 그녀가 어떻게든 피하려고 하던 성도윤이 엘리베이터 중앙에 떡하니 서 있었다.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의아해했다.시간이 마치 이 순간에 멈춘 것 같았다.“당신이 어떻게...”차설아에게 무슨 말을 하려고 하던 성도윤의 시선이 휠체어를 탄 성진에게로 향했고 잘생긴 얼굴에는 청천벽력 같은 충격의 빛을 띠었다.“성진? 네가 왜 여기 있어?”일부 사소한 것들이 머릿속에서 재편성되기 시작했고 한 단락씩 모두 연결되었다.서은아의 말에 의하면 성진은 그의 여자 친구와 세계를 여행하고 있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눈앞의 이 여자가 차설아란 말인가?계속 돌봐주고 격려해 주고 시력을 회복하면 그녀의 얼굴을 보게 해주겠다고 약속하고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졌던 그 사기꾼?이와 동시에 성진도 차설아의 모든 행위를 이해했다.그는 고개를 살짝 기울여 뒤의 차설아를 향했다. “당신이 이렇게 이상하게 행동했던 게 그 때문이었구나... 내가 진작에 짐작했었어야 했는데. 당신을 이렇게 비정상적으로 만들 수 있는 사람이 그 사람 말고 또 누가 있겠어.”망했다.차설아는 이마를 두드리며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몰라했다.휠체어 방향을 돌려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됐어, 이렇게 된 이상 우리도 퇴원할 필요 없으니 돌아가서 푹 자자.”“어차피 난
“오늘은 늦었으니 쉬어야겠다, 정말 알고 싶으면 내일 아침 일찍 찾아와. 내가 다 얘기해줄게.”성진은 말을 마친 뒤 차설아를 향해 말했다.“나 졸려, 가자.”“그래.”차설아는 고개를 끄덕였다.두 사람이 떠나는 모습을 성도윤은 못마땅하게 쳐다보았다.그들이 그렇게 화목한 모습이 마치 노부부 같았는데 그가 마치 억지를 부리는 미친 사람처럼 보였다.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누가 알려주지?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그는 어쩌면 자신이 정말 미친 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차설아도 고개를 돌리지 않고 휠체어를 밀어서 원래의 병실로 왔다.여인은 묵묵히 이불을 깔고 성진을 일으켜 침대에 눕혔고 또 묵묵히 이불을 덮어주었는데 한마디도 없었고 마음속에서는 여러 가지 생각이 뒤섞였다.그렇게 피하고 싶었지만 여전히 피하지 못했으니 이 또한 하늘의 뜻이겠지. 하늘은 늘 간단한 국면을 복잡하게 만드는 것 같다.침대 머리맡에 기댄 성진의 잘생긴 얼굴에는 보기 드문 굳은 표정이었고 역시 침묵을 지켰다.고요함 속에서 서로의 숨소리만 들렸고 분위기는 미묘했다.차설아는 모든 것을 정리한 뒤 입을 열었다.“당신이 화가 났다는 거 나도 알고 있으니 나를 욕하고 싶으면 마음껏 욕해. 이번에는 내 잘못이야.”그에게 더 이상 어떤 일도 숨기지 않겠다고 약속했지만 이렇게 큰일에 대해 입을 다물고 있었으니 정상인이라면 분명 화가 나고 실망할 것이다. 하물며 사소한 것까지도 반드시 성도윤과 비교해야 하는 성진은 더더욱!“내가 당신을 욕을 해서 뭐 해, 아니, 어떻게 욕해. 당신한테 기대어 살아가는 내가 무슨 자격으로?”성진은 담담한 표정으로 무뚝뚝하게 말했다.“성진, 내가 너에게 말하지 않은 것도 네 기분을 상하게 하고 싶지 않아서야. 네가 어떤 사람인지 너도 잘 알고 있잖아. 내가 너에게 말했더라면 너는 아마 진작에 폭발했을 거야.”차설아는 성진의 이상한 말투에 못마땅하여 참지 못하고 반박했다.“이것 봐. 내가 한마디 할 때마다 이렇게 많이 변명하는데 내가 어떻게 욕해
뜻밖에도 방문을 열자 성도윤이 문밖 벽에 기대어 서 있었고 복도의 등이 그의 모습을 길게 끌고 있었다.그녀는 그 모습을 보고는 얼굴을 차갑게 하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문을 닫으려고 했다.“얘기 좀 합시다.”남자가 고개를 들고 허스키한 목소리로 말했다.“당신이랑 내가 무슨 할 얘기가 있어요?”“정말 우리가 할 말이 없다고 생각했다면 당신은 이 시간에 문을 열지 않았을 거예요.”“....”남자의 말에 차설아는 반박할 수 없었다.그렇지, 마음에 담은 것이 많아서 뒤척이다 보니까 잠이 안 오는 거고 그걸 정리 안 하면 잠을 더 오랫동안 못 잘 수도 있었다.“좋아요, 얘기 좀 해요.”그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꼭대기 층으로 향했다.옥상의 환경은 나쁘지 않았는데 야외 카페로 가장 밝은 별을 볼 수 있었다.차설아는 아무 데나 자리를 잡고 앉아 반짝반짝 빛나는 별을 올려다보며 한참 동안 말을 하지 않았다.성도윤도 곁에서 하늘의 별을 올려다보며 침묵을 깨지 않았다.이상하게도 별로 친하지 않은 두 사람인데 마치 오랜만에 만난 연인 같은 분위기를 조성했는데 한마디도 하지 않아도 편안했다.성도윤은 이런 느낌이 너무 좋았다.정확히 말하자면 그녀와 함께 있는 것을 즐기는 느낌이었다.“나랑 얘기 좀 하자며 왜 말을 안 해요?”한참 후 차설아는 반짝이는 별에서 시선을 거두어 남자의 애틋한 눈동자에 부딪혔다.성도윤은 쑥스러워하며 어설프게 목청을 가다듬었다.“그쪽이 차설아예요?”그는 수준이 매우 떨어지는 쓸데없는 말을 물었다.“그럼 내가 누구예요?”차설아가 미간을 찌푸리며 되물었다.그녀는 이 녀석이 예전과 좀 달라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는 빙산이었는데 지금은 멍청한 것 같기도?“그거 알아요? 당신 때문에 너무 불쾌했다는 걸. 언젠가 내가 당신을 만난다면 꼭 욕할 거라고 나 자신에게 말했어요.”“욕을 한다고요?”“놀라워요?”성도윤은 저도 모르게 손가락을 꽉 쥐었다.“내가 가장 싫어하는 게 약속을 어기는 거예요. 우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