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야?”정유준이 낮게 깔린 목소리로 되묻자 강세준은 느릿느릿한 동작으로 사과를 한입 베어 물었다.“제가 엄마를 오게 할 수 있어요.”정유준이 웃는 듯 웃지 않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너는 강하영의 아들이니 한 마디만 하면 달려오겠지.”“저를 찾으러 오는 게 아니라 아저씨를 찾으러요.”어이가 없는 강세준은 나쁜 아빠의 아이큐가 걱정스러웠다.“일부러 나를 찾아 오게 할 필요는 없어. 너희들 때문엘도 조만간 올 거야.”정유준이 말을 마치고 경악스러운 표정을 짓는 강세준을 뒤로 곧장 일어나 위층으로 올라갔다.‘이 얘기도 통하지 않는 거야?’엄마 대신에 겨우 자리를 찾아 주려다 아예 쓰레기 장으로 만들어 버렸다.소씨 집안.소예준이 집에 들어서자마자 소 노인의 분노에 찬 고함이 들려왔다.“쓸모없는 것들! 두 아이조차 제대로 지키지 못해!”양다인이 곁에서 그런 소 노인을 위로했다.“할아버지, 화내지 마세요. 그러다 몸만 상하겠어요. 저는 괜찮아요.”소예준은 약간 싸늘한 눈빛으로 바로 거실로 들어가 화가 나서 숨을 크게 쉬는 할아버지를 바라보며 물었다.“할아버지, 오늘 왜 그렇게 화가 나셨어요?”소 노인은 고개를 번쩍 들어 소예준을 바라보았다.“집에 들어올 줄도 아는구나. 이렇게 큰일이 생겼는데 또 5년 전처럼 지켜만 볼 거야?”소 노인의 말에 소예준은 피식 웃었다.“할아버지께서 저에게 얼마나 큰 권리를 주셨는데요? 고작 보잘것없는 대표인 제가 뭘 결정할 수 있겠어요?”소 노인은 두 눈을 부릅뜨며 소리쳤다.“너도 네 엄마처럼 나를 화나게 할 셈이냐?”“할아버지.”소예준의 얼굴에 점차 한기가 감돌았다.“애초에 할아버지께서 아버지가 마음에 안 드신다는 이유로 어머니를 협박하지 않으셨으면, 어머니도 돌아가지 않았을 겁니다.”말을 마친 소예준은 또 양다인 쪽을 힐끗 쳐다봤다.“어머니가 아직 계셨다면 저렇게 닮은 구석이 하나도 없는 여자를 절대 소씨 집안에 들이지 않았겠죠.”“무례한 놈! 내일 당장 헤드라인
정희민은 입술을 오므리며 목소리를 낮췄다.“아마 엄마가 전화를 안 해서 저러시는 것 같아.”강세준은 나쁜 아빠를 힐끗 쳐다보며 식판에 담긴 밥을 느릿한 동작으로 먹었다. 세준이 분명 어제 체면을 지킬 방법을 알려주려 했는데 굳이 마다하셨으니 샘통이라고 생각했다.어쩌면 부자간에 텔레파시가 통했는지 정유준은 식탁을 향해 성큼성큼 다가와 강세준의 앞에 서서 물었다.“어젯밤 얘기했던 방법이라는 게 뭐야?”강세준은 느릿한 동작으로 정유준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지금은 얘기하고 싶지 않아요.”“집에 가고 싶지 않아? 또 여동생이 우는 모습을 보고 싶어?”정유준의 말에 강세준은 마음속으로 투덜거렸다.‘여동생이 우는 게 걱정되면 처음부터 왜 돌려보지 않은 거야?’강세준은 고개를 돌려 강세희를 보며 물었다.“세희야, 엄마 보고 싶어?”강세희는 커다랗고 예쁜 눈을 아래로 내리깔고 생각에 잠기더니 이내 앳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엄마는 분명 바쁘실 테니까 괜히 폐를 끼쳐드리고 싶지 않아.”강세준은 입가에 우아한 미소를 머금고 도발하듯 정유준을 바라보았다.“보세요. 저희는 급하지 않아요.”정유준의 입꼬리가 경련을 일으켰다.‘대체 이 아이들은 누구를 닮은 거야? 기어이 친자확인 결과를 눈 앞에 확인시켜줘야겠어?’정유준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눈살을 찌푸렸다.“엄마가 조급해하는 모습을 보고 싶은 거니?”“엄마가 조급해하시는지 어떻게 아세요? 혹시 아저씨가 급한 건 아니고요?”“…….”강세준의 반문에 정유준은 할 말을 잃었고, 정유준이 말을 하지 않는 것을 보고 강세준이 또 묻기 시작했다.“아저씨, 왜 우리 엄마가 아저씨를 찾아오길 바라시는 거죠?”정유준의 얼굴이 어두워지더니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어른들 일에 애들은 참견하지 마라!”말을 마친 정유준은 차갑게 몸을 돌려 외투를 걸친 뒤 문을 나섰다.그 모습에 강세준은 입을 삐죽거리며 참지 못하고 한마디 중얼거렸다.“나쁜 아빠!”‘나랑 세희가 자신의 아이라는 것을 그렇게도 인정하기
딸의 목소리에 강하영의 가슴이 미어졌다.예전에는 일이 아무리 바쁘고 힘들어도 집에 돌아오면 애들부터 살폈는데, 이번에 처음으로 애들과 떨어져 본다.강하영은 눈시울을 붉히며 입을 열었다.“세희야, 엄마가 세준이랑 너를 데리러 못 가서 미안해.”“엄마는 우리를 버린 게 아니라 많이 바쁘신 거죠? 저랑 오빠가 안전하다는 것도 알고 계셨죠?”강세희의 불안한 말투에 강하영의 마음이 더욱 시큰해졌다.“엄마가 왜 너랑 오빠들을 버리겠어? 너희들이 안전하다는 것을 알고 병원에서 임 할머니와 밤새 같이 있었어.”강세희의 말투가 갑자기 긴장해지기 시작했다.“임 할머니가 왜요?”금세 눈빛이 어두워지기 시작한 강하영이 잠긴 목소리로 설명했다.“할머니가 몸이 편치 않으셔서 한동안은 병원에서 치료받아야 할 것 같아. 우리 세희 착하지? 엄마가 바쁜 일들을 처리하고 너랑 오빠 데리러 갈게. 참, 세준이도 곁에 있어?”전화기 너머로 잡음이 들려오더니 곧 강세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엄마, 세준이에요.”강하영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세준아, 동생 잘 지켜줘. 엄마가 바쁜 일만 마무리하고 데리리러 갈게.”“엄마 너무 서두를 필요 없어요. 저랑 세희도 엄마가 바쁘신 걸 알고 있어요. 희민이 집에 있는 것도 나름 편해요.”그 말은 사실이었다. 나쁜 아빠 집에 있는 건 확실히 편안했는데 유일하게 유감스러운 점이라면 엄마가 없다는 것이다.강하영은 그 말에 안심이 됐다.“그래. 너희들만 즐거우면 돼. 밥 잘 챙겨 먹고…….”강하영은 세 아이와 잠시 얘기를 나누고 전화를 끊은 뒤 계속해서 일에 몰두하기 시작했다.맞은 편 MK 건물.배현욱은 정유준의 사무실에 앉아 차를 마시며 웃는 듯 아닌듯 묘한 눈빛으로 정유준을 훑어보았다.“쯧쯧.”배현욱은 혀를 차며 정유준을 훑어보았다.“벌써 여자한테 차인 거야?”정유준은 배현욱을 노려보며 싸늘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그딴 말을 할 거면 당장 꺼져.”하마터면 차에 사레가 들릴 뻔한 배현욱은 헛기침을 두 번 한 뒤
강하영은 차에서 내려 장미꽃 앞으로 다가가 눈살을 찌푸렸다. 강하영은 도무지 정유준의 의도를 알 수 없었다.‘양다인한테 차였다고 지금 다시 나한테 온 거야? 내가 가라면 가고 부르면 오는 똥개도 아니고.’강하영은 피식 웃으며 휴대폰을 꺼내 정유준에게 전화를 걸자, 빠르게 남자가 전화를 받더니 기분 좋은 말투가 들려왔다.“얘기해.”강하영은 퉁명스럽게 입을 열었다.“정 대표님, 돈이 넘치게 많아서 쓸 데가 없나 보죠?”강하영의 말에 정유준의 얼굴에 떠오른 웃음기가 싹 가시면서 표정이 갑자기 차갑게 굳어지기 시작했다.“무슨 애기야?”“장미꽃을 선물하는 이런 유치한 행동을 할 사람이 정 대표님밖에 떠오르지 않아서요.”그 말에 정유준의 표정이 어두워졌다.배현욱이 분명 장미꽃을 싫어하는 여자는 없다고 말했는데, 강하영은 그 호의를 받아들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자신에게 비꼬는 말투로 얘기하다니, 한 번도 여자를 위해 이런 일을 해본 적이 없었다.‘지금 감히 나를 무시한 거야?’체면을 구길 수 없었던 정유준은 그저 억지로 우길 수밖에 없었다.“내가 할 짓이 없어서 너한테 꽃을 보내겠어?”정유준의 말에 강하영은 잠시 멍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말을 이었다.“정 대표님이 보낸 게 아니라면 사람을 시켜 팔아버리라고 할게요.”말을 마치고 바로 전화를 끊어버리자 정유준의 눈가에 경련이 일어났다.‘방금 뭐라고? 장미꽃을 팔아 버리겠다고?’정유준은 화가 치밀어 올라 씩씩거리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이런 낭패를 맛본 정유준은 짜증이 밀려왔다.정유준은 휴대폰을 테이블 위에 던지고 굳은 얼굴로 일어서서 세 아이가 있는 방으로 향했다.문을 열자 카펫에 앉아 놀고 있던 세 아이는 정유준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망연한 표정으로 유준을 주시했다.정유준은 그들의 얼굴을 한번 쓱 훑어보더니 시선을 강세희한테 고정했다.강세준 이 자식은 늘 자신과 맞먹기 좋아하니 뭔가 알아내고 싶으면 강세희부터 공략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강세희.”정유준이 낮게 깔린 목소리로 이름을
정유준은 눈썹을 치켜올렸다.“네가 원하는 것을 줄 수 있는데, 질문에 대답하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이야?”“방금 분명 요구를 먼저 얘기하고 저를 매수하지 않았기 때문에 저도 거절할 권리가 있어요. 그렇지만 인형은 줘야 해요.”정유준의 얼굴에 순식간에 칠흙 같은 어둠이 드리웠다.‘한 명만 다루기 어려운 줄 알았더니, 두 명 다 이렇게 힘들 줄이야.’아크로빌.강하영은 전화 한 통으로 장미꽃을 몇백만 원에 되팔고 옷을 정리한 뒤에 병원으로 향했다.강하영은 병실에 들어사자 부진석이 간이침대에 누워 잠시 눈을 붙이고 있었는데 하영이 들어오는 것도 모르고 깊이 곯아떨어졌다.강하영은 앞으로 다가가 아주머니 얼굴을 확인하고 나서야 몸을 돌려 부진석에게 이불을 덮어주려 했다.막 이불에 손이 닿았을 때 부진석이 갑자기 벌겋게 충혈된 눈을 떴는데 미간에는 여전히 부드러움이 깃들어 있었다.강하영은 깜짝 놀라 손을 거두었다.“깼어? 좀 더 자.”부진석은 몸을 일으키며 이마를 문질렀다.“좀 잤으니 괜찮아. 이따가 저녁에 당직을 서야 하거든.”강하영은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이것저것 바삐 신경 쓰게 해서 정말 미안해…….”“별 말씀을.”부진석은 이불을 젖히고 침대에서 내려와 신발을 신은 뒤 한숨을 내쉬며 아주머니를 살폈다.“아주머니가 이미 위험한 고비는 넘겼지만……, 이미 식물인간 상태야.”두 손을 움찔한 강하영의 눈가에는 싸늘한 기운과 고통이 떠올랐다.“내가 곁에서 돌볼게.”강하영은 수믕ㄹ 크게 들이쉬며 말했다.‘이 빚은 반드시 톡톡히 갚아줄 거야!’강하영의 생모는 비록 소씨 집안사람이고, 하영의 몸에도 소씨네 집안 피가 흐르고 있지만 이번 일만큼은 혈연관계라고 해도 절대 보고도 못 본 척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소 노인의 실력이 아무리 대단하다고 해도 약점이 있기 마련이다.‘체면을 중시한다고 했지? 그럼 그 가식적인 가면을 조금씩 벗겨줄게!’3일 후, MK 그룹.허시원이 황급히 대표실 문을 두드리며 사무실로 들어와 태블릿 PC를 정유준
수업 활동이 끝난 후, 어린이들은 물을 마시러 선생님을 따라 교실로 들어갔고, 정희민이 막 주전자를 받아 뚜껑을 열려는 순간 코끝이 촉촉해지는 것을 느꼈다.희민이가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강세희가 비명을 질렀다.“희민 오빠! 피!”강세준도 세희의 비명에 고개를 돌리자 정희민이 코피를 흘리는 것을 보고 서둘러 티슈를 꺼내 희민의 코를 막아 주고는 다급하게 외치기 시작했다.“내가 선생님을 불러올게.”“그럴 필요 없어.”정희민이 휴지로 코를 막은 채 강세준의 옷을 잡고 고개를 저으니, 강세준은 눈살을 찌푸렸다.“사소한 일이 아니잖아.”“나 정말 괜찮아, 어쩌면 물을 적게 마셔서 건조해서 그런지도 몰라.”옆에 있던 강세희도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희민을 바라보았다.“희민 오빠, 예전에도 이런 적 있었어?”“어젯밤에도 코피가 흘렀는데 금방 멈췄어.”희민이가 작은 입술을 오므리며 얘기하자 두 아이도 안심이 됐다. 아마 예전에도 이런 상황이 있었으면 나쁜 아빠가 희민이를 데리고 병원에 갔을지도 모르니까.잠시 후, 정희민의 코피가 멈추는 것을 보고 세준이와 세희는 나쁜 생각을 완전히 버렸다.저녁, 난원.정유준은 세 아이와 함께 저녁 식사를 한 뒤 서재로 향했다.허시원이 TYC 회사의 법인 대표가 바로 강하영이라는 것을 발견했다.‘대체 어떻게 5년 안에 거액의 자금을 모아 의류 회사를 세운 걸까?’지금 확신할 수 있는 것은 G와 강하영의 관계가 일반적이지 않다는 것뿐이고, 강하영이 사라진 5년 동안 있었던 일에 대해서 아무런 단서도 찾을 수 없었다.지금 유일하게 알 수 있는 것은 캐리가 지난번에 얘기했던 강하영의 패션 디자인 방면에서 캐리를 도와줄 정도로 큰 재능이 있다는 정보였다.‘혹시 같은 업계에 종사하면서 강하영과 G가 알게 된 건가?’모든 자료를 확인한 정유준은 소파에 앉으며 피식 웃었다.‘G가 과연 강하영의 축하 파티에 모습을 드러낼지 궁금하군.’이런 생각을 하던 정유준이 휴대폰을 꺼내 허시원에게 전화를 걸어, 낮게 깔린 목소리로
“그게 무슨 뜻이야?”부진석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하영의 눈을 바라보자, 강하영은 용기를 내서 입을 열었다.“소 어르신의 생신이 지나면 우리 만나 보는 게 어때?”“방금 뭐라고 했어?”강하영의 말에 부진석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어지더니 떨리는 입술로 되묻자, 강하영도 긴장했는지 물을 마셨다.“무슨 뜻인지 잘 알잖아. 진석 씨한테는 불공평할 수도 있겠지만…….”“그런 거 없어.”부진석은 재빨리 하영의 말을 끊더니 입가에 미소가 번지는 동시에 그의 눈가가 촉촉해지기 시작했다.“6년 만에 드디어 그 말을 듣게 되네.”부진석의 말에 강하영도 한숨을 돌리며 웃었다.“진석 씨만 괜찮으면 돼.”“한 번도 괜찮지 않다고 생각해 본 적 없어. 네가 지금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으니까, 그때까지 기다릴 수 있어. 앞으로 아이들과 생활 방면은 내가 알아서 잘 돌볼게.”강하영의 작고 예쁜 얼굴은 부진석의 말에 빨갛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지금까지 계속 돌봐주고 있었잖아.”“지금 하고 있는 건 앞으로와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부진석이 그런 하영을 보며 웃었다.……식사를 마친 강하영은 부진석과 함께 병원에 가서 임씨 아주머니 곁을 지키다가 다시 아크로빌로 돌아왔다.그리고 부진석에게 했던 말을 우인나에게 얘기하자, 우인나는 흥분된 목소리로 전화기에 고래고래 소리 지르기 시작했다.“진짜야? 너 방금 한 얘기 진짜지?”우인나의 호들갑에 강하영은 급히 스피커폰으로 돌리고 휴대폰을 귀에서 멀리했다.“이웃들한테 피해주지 말고 목소리 낮춰.”“알았어, 알었어! 부진석의 소원이 드디어 이뤄진 셈이네!우인나의 말에 강하영의 마음이 약간 아파왔다.“내가 좀 더 일찍 결정을 내릴 걸 그랬지?”“아니지! 한 번 사랑에 실패한 적이 있어서, 좀 더 조심스러운 게 뭐가 잘못됐어? 너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남자라면, 시간 따위는 문제가 아니야!”우인나의 말에 강하영은 슬며시 웃었다.“네가 나보다 더 기뻐하는 것 같다?”“당연하지! 네가 부진석 씨랑 만
하영은 아이들에게 미안했지만 양다인과 소 노인을 해결하기 전까지 이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 아이들이 납치되는 일을 또다시 감당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 아무리 아쉬워도 마음을 모질게 먹고 아이를 정유준 곁에 놔둘 수밖에 없다.안전한 게 제일 중요하니까.강하영은 강세준과 정희민을 동시에 품에 안고, 네 사람은 그렇게 서로를 꼭 껴안고 있다가, 강하영이 코를 훌쩍이며 입을 열었다.“얘들아, 엄마는 항상 곁에 있으니까, 엄마가 보고 싶으면 언제든 너희들을 보러 올게. 그러니까 며칠만 참을 수 있지?”강세준과 강세희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지만 유독 정희민만이 아무 반응이 없자, 강하영은 정희민을 껴안고 있던 손을 풀고 고개를 숙여 희민을 바라보았다.“희민아?”그제야 정희민은 고개를 들어 조심스레 물었다.“앞으로 저도 엄마를 따라갈 수 있어요?”그 말을 들은 강하영은 가슴이 에이듯 아파오는 것을 느끼며 서둘러 대답했다.“물론이지! 희민이도 소중한 아들인데 어떻게 혼자만 내버려 두겠어?”하영의 말에 정희민의 새하얀 얼굴에 미소가 피어오르며 뭔가 말하려던 순간 강세희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엄마! 그 사람이 저를 떠보려 했어요!”“아빠가?”강하영이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묻자 강세희는 고개를 끄덕였다.“맞아요. 엄마가 뭘 좋아하는지 물었는데, 세희는 똑똑하니까 엄마를 배신하지 않았어요.”순간 강하영의 머릿속에 장미꽃이 떠올랐다.‘대체 얼마나 할 일이 없었으면 아이한테서 내 취향을 알아보고 싶었을까? 내가 아직도 5년 전의 강하영인 줄 아나 봐?’강하영은 강세희의 작은 코를 쓱 훑어주었다.“우리 세희 점점 똑똑해지네. 이젠 떠보는 것도 다 알고!”“그럼요! 저는 엄마 딸이잖아요!”“자뻑이 심하네.”그때 강세준이 한 마디 끼어들자 강세희는 세준을 흘겨보았다.“오빠는 말하지 않아도 돼!”“그래, 아무 말도 하지 않을게.”아이들과 함께 잠시 즐거운 시간을 보낸 뒤 강하영은 회사로 향했다.저녁, 웨스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