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준은 피에 굶주린 사람처럼 살벌한 기운을 풍기며 양다인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가기 시작했다.그 모습에 겁을 먹은 양다인은 얼굴이 하얗게 질리기 시작했다.‘분명 출장 갔다고 했잖아? 왜 이렇게 빨리 돌아온 거지?’겁에 질린 양다인은 뒷걸음질을 쳤다.“유, 유준 씨, 내가…… 내가 다 설명할게…… 윽!!”양다인이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정유준이 한 손으로 양다인의 목을 조르기 시작했다.“양다인, 사는 게 지겨운가 봐? 네가 희민이 생모인 것을 봐서 가만히 놔뒀더니, 이렇게까지 모질고 악랄할 줄은 생각도 못 했네. 이제 겨우 다섯 살짜리 희민이를 이렇게까지 때리다니, 네가 인간이야?!”숨을 쉬지 못해 얼굴이 빨개진 양다인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해명하려고 입을 뻐금거렸지만, 남자가 목을 조르고 있어 소리조차 낼 수 없었다.양다인의 얼굴이 붉은색에서 하얗게 변하기 시작하며, 눈동자가 뒤집히기 시작해서야 정유준은 손을 거두었다.양다인은 숨을 쉴 수 있게 되자 켁켁대며 숨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그러다 다리가 풀렸는지 바닥에 주저앉아 자신의 한참 자신의 목을 부여잡고 있다가 제정신이 돌아오는 듯했다.양다인은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정유준을 바라보았다.“유준 씨, 희민이는 내 자식인데 내가 왜 희민이를 때리겠어? 방금 내가 실수로 밀쳐서 그렇게 된 거야! 희민아, 네가 아빠한테 얘기해 봐, 엄마가 너 때렸어?”양다인의 목소리를 들은 정희민은 또 벌벌 떨기 시작했다.그의 반응만으로도 이미 답은 나온 셈이다.정유준은 싸늘한 눈빛으로 양다인을 노려보았다.“오늘부터 난원에 한 발짝도 들일 생각하지 마! 그리고 내 허락 없이는 다시는 희민이 만날 생각하지 마! 꺼져!!”‘만날 수 없다고?’정유준의 말에 양다인의 두 눈이 커졌다. 아이를 핑계로 삼아야만 정유준한테 접근할 수 있는데 이제 아이도 만날 수 없으면 정유준의 마음을 돌릴 기회조차 없게 된다.양다인은 정유준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울부짖기 시작했다.“유준 씨, 유준 씨 제발! 희민이를 만날
강하영은 캐리의 말에 부끄러워 어쩔 줄 몰랐다.강하영은 5년 동안 일에만 몰두하느라 아이들 일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 애들의 SNS 계정조차도 잘 모르고 있었다.강하영은 멋쩍게 코를 매만지며 물었다.“캐리, 혹시 세준이와 계정 친구야?”“맞아.”캐리가 휴대폰을 꺼내 강세준과의 채팅창을 열어 강하영에게 건네주자 하영은 메시지를 보냈다.“세준아, 지금 어디야? 문자 보면 엄마한테 답장 줘!”메시지를 보낸 후 강하영은 차키를 챙기면서 양심의 가책과 조바심을 느끼는 임씨 아주머니를 위로하기 시작했다.“아주머니, 저 경찰서에 다녀올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하영의 말에 아주머니는 눈시울을 붉히며 입을 열었다.“하영아, 다 내가 아이를 제대로 돌보지 못한 탓이야.”“아주머니 잘못이 아니에요. 아이들도 원래 자기만의 생각을 갖고 있어서 그런 거니까, 우선 제가 어디 갔는지 알아볼게요.”말을 마친 강하영은 아주머니를 캐리한테 부탁했다.“캐리, 아주머니한테 얘기 잘 해줘.”“여긴 내가 있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난원.정희민의 방안엔 네 사람이 서 있었다.정유준은 두 아이와 잠시 눈을 마주친 후 정희민을 돌아보며 물었다.“네가 초대한 거야?”정희민은 입술을 오므리고 고개를 끄덕였다.몇 번이고 강세준의 얼굴을 살피던 정유준은 세준을 볼수록 그의 아들인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당시 우인나에게 물었을 때 우인나는 강하영이 자신의 세 쌍둥이를 임신했다고 얘기했었다.그럼 여기서 문제는 그들의 엄마는 강주희라고 했는데, 만약 강주희가 바로 강하영이라면 세 번째 아이는 어디 있단 말인가? 그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정유준은 강세준을 훑어보며, 왠지 이 아이한테서는 말을 유도하기 어렵다고 직감하고는 시선을 아예 강세희한테로 돌렸다.“엄마가 누구야?”“몰라요.”정유준의 물음에 강세희가 겁에 질린 눈빛으로 남자를 올려다보며 고개를 저으니 정유준의 얼굴이 약간 어둡게 가라앉았다.“너는 엄마 이름도 몰라?”강세희는
강세희는 빠른 속도로 소파에서 내려와 발이 땅에 닿자마자 강세준 곁으로 뛰어가려 했지만, 결국 정유준한테 팔을 잡혀 버렸다.“집까지 데려다줄게.”“그럴 필요 없어요, 아저씨. 올 때도 저희끼리 왔으니 갈 때도 혼자 돌아갈 수 있어요.”강세준은 정중하게 거절하고 강세희의 작은 손을 잡았다.“위험해.”정유준이 차가운 시선을 던졌지만 강세준은 여전히 거절했다.“매우 안전하니까 아저씨도 괜한 걱정하지 마세요.”세준의 말에 정유준은 눈을 가늘게 떴다.“뭐 그 정도로 능력이 있다면야 굳이 데려다줄 필요는 없겠네.”“정희민, 우리 먼저 갈게, 다음에 또 봐.”강세준이 정희민을 향해 인사하자, 정희민도 고개를 끄덕이며 두 사람이 방을 떠나는 것을 지켜보았다.경찰서에 와서 골목에 있는 CCTV를 확인한 강하영은 두 아이가 차에서 내린 장소가 난원이라는 것을 봤을 때 심장이 멈추는 것 같았다.‘아니, 얘들이 어쩌다가 호랑이 굴에 들어간 거야?’강하영은 고민에 빠졌다.‘아이들을 데리러 가야 하나? 이 시간엔 정유준도 아직 돌아가지 않았겠지?’한참 생각에 잠겨 있던 강하영은 결국 아이들을 데리러 가기로 마음먹고, 경찰서에서 나와 막 차에 오르려던 참에 휴대폰이 울리기 시작했다.화면에 찍힌 낯선 번호에 강하영은 서둘러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엄마, 저 서준이예요.”“서준이? 너희들 지금 어디야? 이건 또 누구 휴대폰이야?”“택시 기사 아저씨 휴대폰이에요.”“강세준! 왜 엄마랑 아주머니한테 얘기도 하지 않고 밖에 나간 거야? 우리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강하영은 순간 화를 참지 못했다.“알아요. 그래서 이렇게 휴대폰을 빌려서 연락드린 거예요.”강세준의 말투는 여전히 침착하고 우아했다.“…….”강하영은 강세준의 성격이 얼마나 독단적인지 잘 알고 있었다. 분명 그가 잘못한 일인데 이렇게 듣고 보면 또 맞는 말인 것 같았다.“지금 어디야? 집에 오는 길이야?”“네, 엄마. 곧 집에 도착하니까 집에서 봐요.”강세준은 전화를 끊고 휴
강세희도 어쩔 수 없이 한창 가방을 벗고 있는 강세준한테로 시선을 돌리고 진지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강세준, 이리 와.”강세준은 담담한 표정으로 태연하게 강하영을 향해 걸어갔다.강하영 앞에 다가간 세준은 하영이 입을 열기도 전에 선제공격을 시작했다.“엄마, 미리 말씀드리지 않아서 정말 죄송해요. 그렇다고 나랑 세희가 친구 사귀는 것도 반대하는 건 아니죠?”강세준의 작은 얼굴 곳곳에는 우아한 기품이 배어 있었지만, 먹물처럼 검은 눈동자는 누구보다 교활한 눈빛을 담고 있었다.아이가 진지하게 잘못을 인정하는데 강하영이 무슨 말을 더 할 수 있겠는가?앞으로 난원에 가서 그 아이를 찾지 말라고 하기에는 그 아이가 잘못한 것이 없다. 어쩌면 자신에게 왜 그렇게까지 반대하느냐고 되물을지도 모른다.이런저런 생각에 강하영은 피곤이 몰려왔다.“네가 이렇게까지 잘못을 인정하니 나도 더 이상 따지지 않을게. 그런데 세준아, 앞으로 외출할 때는 꼭 어른한테 얘기해야 해. 알겠지? 쪽지로 어디에 가서 누구랑 노는지 적어 놓으면 엄마도 허락해 줄게.”“알았어요, 엄마.”강세준은 작은 머리를 끄덕였고, 임씨 아주머니는 애들이 혼나는 모습에 가슴이 아픈지 얼른 중재에 나섰다.“하영아, 애들이 무사히 집에 돌아왔으니 이제 더 뭐라 하지 마. 세준아, 세희야, 배고프지? 할머니가 맛있는 거 해줄까?”아주머니의 말에 세희가 재빨리 대답했다.“좋아요! 배가 너무 고파요!”강세희는 말을 하며 자기 배를 문지르더니, 강하영을 보며 입을 열었다.“엄마, 희민이네 엄마는 너무 무서워요. 희민이를 막 때리고 욕했거든요. 그래서 오빠가 희민이네 아빠한테 고자질했어요! 그랬더니 희민이네 아빠가 바로 집에 돌아와 그 나쁜 여자를 집 밖으로 쫓아버렸어요. 그리고 또, 희민이 아빠는 너무 쩨쩨한 것 같아요. 글쎄 솜사탕과 엄마 이름을 바꾸려 했다니까요! 쳇, 제가 쉽게 속아 넘어갈 줄 알았나 봐요.”강하영은 세희가 한마디 할 때마다 심장이 쫄깃해지는 느낌을 받았다.‘애들이 양다인
“내일 오후 1시, 아크로빌 별장 2동 입구에 있는 우편함에 칫솔 두 개가 들어 있으니 유전자 검사를 해줘요. 최대한 빨리 결과를 알고 싶어요.”문자를 보낸 세준은 가방 밑부분에서 휴대폰을 꺼내 상대방에게 2백만 원을 이체해 주었다.같은 시각, 강하영도 자신의 침실에서 컴퓨터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었다.오늘 MK에서 또 자신한테 메일을 보냈는데, 메일 내용은 회사가 하영에게 줄 수 있는 최상의 조건에 대한 일련의 설명과 더불어 부족하다고 생각되면 요구를 제시해도 된다고 덧붙였다.메일을 확인한 강하영은 피식 웃었다. 예전의 하영이라면 수억 원에 달하는 연봉에 바로 굴복했을 테지만, 지금의 하영은 옷 한 벌을 열심히 다듬어 기성복으로 만들어 내면 수십억 원의 매출을 올릴 수 있었다.‘나를 고용하고 싶다고? 꿈 깨시지.’강하영은 더 얘기하고 싶지 않다고 간결하게 답장을 보냈다.허시원이 강하영이 보낸 답장을 확인하고 곧바로 또 답장을 보냈다.“실례지만, 어떤 부분이 마음에 안 드시는지 여쭤봐도 될까요?”강하영도 마침 잠이 오지 않던 참이라 또 한 마디 답장을 보냈다.“당신 회사 대표님이 정씨 성을 가진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아요. 저는 정씨 성을 가진 사람한테 원한이 있거든요!”이 말은 곧바로 정유준한테 전해졌다.정유준은 차갑고 침착한 표정으로 메일을 주시했다.‘꽤 배짱이 있는 놈인 것 같네!’만약 상대방의 능력이 뛰어나지 않고, 흔치 않은 인재가 아니었다면 한 마디도 섞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반대로 손에 넣을 수 없는 사람일수록 정유준의 승부욕을 불러일으켰다.그는 직접 메일에 답장을 쓰기 시작했다.“기성복은 저희 MK 그룹에서 대대적으로 홍보할 것이고, 브랜드를 당신의 명의로 따로 만들어 매출액의 30%를 드리겠습니다.”강하영은 메일을 보며 피식 웃었다.브랜드를 만들고 싶다면 G 타이들을 걸고 하면 되는데, 굳이 MK 그룹을 통해 홍보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비록 G의 신분이 국내에서는 아직 해외만큼 인기가 많지는 않지만, 하영에게
정희민은 시선을 거두고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무겁게 가라앉은 차 안의 분위기에 정유준은 뭔가 이상하다고 느끼기 시작했다.평소에 바쁜 일정 때문에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이 적어서 몰랐는데, 어제 세준이와 세희를 만나고 난 후에야 희민이가 조금 이상하다고 느껴지기 시작했다.말수도 적고, 잘 웃지도 않고, 심지어 목소리에도 기운이 없고 침울한 느낌을 줬다.예전에는 희민의 성격이 자신을 닮아서 그런 것이라고 여겼지만, 그간 양다인의 학대로 인해 어쩌면 자폐적인 심리로 변했다는 것을 알았다.우울한 표정을 짓고 있는 희민을 보고 정유준은 정신과 의사를 보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만약 아이한테 정말 심리적인 문제가 생겼다면, 절대 그 악랄한 양다인을 가만두지 않을 생각이다.이때 갑자기 울리는 휴대폰 소리가 정유준의 생각을 끊었다.그가 전화를 받고 입을 열기도 전에 상대방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정 대표님, 큰일 났습니다! 회사 네트워크가 해킹당한 것 같습니다!”정유준은 눈살을 찌푸렸다.“나한테 전화할 시간에 차라리 서둘러 복구하는 게 효율적이지 않겠어?”“정 대표님…….”정유준의 말에 프로그래머는 우물쭈물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저 그게, 제가 문자로 대표님께 보내드릴 테니 직접 확인해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프로그래머가 문자로 사진 한 장을 보내왔고, 정유준이 사진을 클릭해서 확인하는 순간 안색이 바로 어두워졌다.사무실에 있는 수백 대의 컴퓨터 화면에는 같은 내용의 글자가 적혀 있었다.“MK가 이것밖에 안 돼? 심심풀이로 해봤는데, 당신들 회사의 암호화 키를 해독해 버렸네. 회사 기밀을 지키고 싶다면 돈 가지고 와.”아래엔 익살스러운 웃는 얼굴과 큐알 코드가 박혀 있었다.정유준의 이마에 핏줄이 솟구치기 시작했다.‘죽고 싶지 않고서야 감히 나한테 도전을 내밀어?’이어 프로그래머가 동영상 하나를 더 보내왔다.정유준이 영상을 클릭하니, 프로그래머가 코드를 입력하기만 하면 화면에 글자가 튀어나왔다.“쓰레기 같은 실력
정유준은 자랑스러운 동시에 또 약간의 양심 가책을 느끼기 시작했다.그가 아들에게 얼마나 관심이 없었으면 이제야 보기 드문 천재라는 것을 발견했으니 말이다.정유준은 흥분되는 마음을 억누르고 화면에 뜨는 위치를 바라보았다.‘김제 국제 아파트? 양다인이 한 짓이야?’주먹을 꽉 쥔 정유준의 눈빛이 살벌하게 변했다.‘내가 준 돈이 부족했던 거야? 그래서 이런 비열한 수법으로 회사에 침입해 돈을 요구하는 거야?’아빠의 일그러진 표정을 보고 정희민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5분 뒤 유치원에 도착한 정희민은 바로 강세준을 찾아가 쌀쌀맞은 태도로 그에게 말했다.“너 그러면 안 돼.”강세준이 미소를 지으며 희민을 쳐다보았다.“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 없네.”“네가 우리 아빠 회사 네트워크 해킹했잖아.”강세준은 전혀 당황하는 기색이 없었다.“나인 줄 어떻게 알았어?”“IP주소를 추적했거든.”정희민은 여전히 쌀쌀맞은 태도로 대답했다.“그래서 너도 해킹 기술을 할 줄 안다는 걸 인정하는 거지?”강세준이 여전히 빙긋 웃으며 얘기하자 정희민은 그런 세준을 경계하며 바라보았다.“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야?”“A-n-g, 네가 내 의뢰인인데 내가 뭘 어떻게 할 수 있겠어? 하지만 너희 아빠 회사 네트워크를 해킹한 건 내 선택이야.”그러자 희민이 다급하게 입을 열었다.“아빠가 화내실 거야.”‘너희들이 다칠지도 몰라.’ 이 얘기를 꺼내기도 전에 강세준이 그의 말을 끊었다. “그럼 너희 아빠가 우리 엄마를 괴롭히는 걸 그냥 지켜보고 있으란 얘기야?”강세준은 입가의 미소를 거두었고, 그의 말에 정희민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우리 아빠가 너희 엄마를 괴롭혔다고?”“맞아. 우리 엄마한테 상처를 줘서, 우리 엄마가 나랑 동생을 데리고 이 도시를 떠나야 했던 거야.”세준의 말에 정희민은 침묵을 지켰다.그러다가 강세준의 외모를 주시하면서 빠르게 머리를 굴리더니, 잠시 후 강세준에게 물었다.“너도 우리 아빠 아들이야?”“맞아.”강세준은 생각도 하
강하영은 기쁜 마음에 한숨을 돌렸다. 캐리가 곁에 있어서 큰 근심을 덜었다.남은 2시간 동안 강하영은 인터넷에 접속하여 인수할 의류 공장을 찾아보기 시작했다.3곳 정도를 찾아 약속을 잡은 뒤, 아이들을 데리러 유치원으로 향했다.15분 후.강하영은 유치원 입구에 차를 세웠다. 비교적 이른 시간에 도착했기에 하교 시간까지 아직 10분 정도 남았다.강하영이 차에서 내리자마자 양다인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양다인은 다급한 걸음으로 유치원 입구로 걸어갔고, 마침 송 선생님이 정희민의 손을 잡고 밖으로 나오고 있었다.양다인이 앞으로 다가가 정희민의 손을 잡으려 했지만 정희민이 양다인의 손을 피했다.“희민아! 아빠가 오늘 일이 생겨서 나한테 너 데리고 오라고 했거든? 우리 희민이 말 잘 들어야지.”“싫어요.”참을성 있게 얘기하는 양다인을 보며 희민이 송 선생님의 손을 꼭 잡고 놓으려 하지 않아 조금 난처해진 선생님이 몸을 웅크리고 앉아 희민을 달래기 시작했다.“희민아, 엄마가 데리러 왔으니 먼저 돌아갈래?”정희민은 작은 입술을 오므리며 여전히 단답형으로 대답했다.“싫어요.”체면이 구겨진 양다인은 정희민을 꾸짖기 시작했다.“정희민! 이게 대체 뭐 하는 짓이야? 이렇게 많은 학부모가 있는 자리에서 꼭 그렇게 엄마한테 창피를 줘야겠어?”그래도 정희민이 고개를 숙이고 뒷걸음질 치자, 양다인은 인내심이 바닥이 났는지 바로 앞으로 다가가 정희민을 잡아끌기 시작했다.정희민의 미간에는 공포심이 떠올랐고, 작은 얼굴은 하얗게 질리기 시작했다.양다인의 손을 뿌리치는 과정에서 정희민은 선글라스를 낀 강하영을 발견했다. 희민이는 발을 들어 양다인의 발을 밟았고, 양다인이 고통에 잠깐 손을 놓은 틈을 타서 재빨리 강하영에게 달려갔다.자신을 향해 빠르게 뛰어오는 정희민을 본 강하영은 깜짝 놀랐다.‘이 녀석은 왜 여기로 뛰어오는 거야?’이내 강하영 앞으로 달려 온 정희민은 눈시울을 붉히며 입을 열었다.“저 좀 데려가 주세요. 제발 부탁이에요.”정희민의 겁에
시현은 아파서 이를 악물었다.“알았어, 알았어. 공주님 제발 살려주세요!!”세희는 그제야 흐뭇하게 손을 거두었다.“참, 지난번에 말한 그 사건 말이에요, 언제 해결하러 갈 거예요?”“시간이 좀 더 지나면.” 시현이 말했다. “네 몸은 아직 완전히 나아지지 않았으니까, 지금 계속 바쁘게 움직이면 안 돼. 만약에 저쪽에도 이런 악독한 귀신이 있다면, 너 또 상처를 입을지 몰라. 난 이미 죄책감 때문에 너와 결혼을 해서 평생 챙겨주고 싶으니까, 또 그런 일이 생긴다면, 나 정말 방법이 없어.”세희는 웃으며 말했다.“내가 언제 시현 오빠와 결혼한다고 했어요?”“쳇.” 시현은 입을 삐죽 내밀었다.“내가 뭐가 어때서? 나도 어깨가 넓고 근육이 있는 미남이라고! 인기가 얼마나 많은데.”세희는 말문이 막혔다.‘정말 뻔뻔하네. 아무렇지 않게 자신을 칭찬하다니.’세희는 숨을 돌리며 입을 열었다.“시현 오빠.”“응?”“내가 지금 귀신을 잡는 일을 종사하고 있잖아요. 그러니 난 사실 아주 좋은 신붓감은 아니에요. 눈치 없는 귀신들이 가끔 날 찾아와서 귀찮게 할 수도 있으니까요. 난 인우와 반대로, 팔자에 음기가 가득 찼거든요.”“그러면 어떻게 되는데?”“7월 중순이 되면 많은 귀신들이 날 찾아올 거예요. 그럼 난 일이 잘 안 풀리거나 심지어 다칠 수도 있거든요.”“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야?”“만약 우리가 함께 한다면, 그 귀신들은 심지어 시현 오빠를 귀찮게 할 거예요.”“그래서, 이것 때문에 네가 최고의 신붓감이 아니란 거야?” 시현은 말을 마치고 웃으며 말했다. “이까짓 일로 내가 물러설 수 있을 것 같아? 세희야, 너도 날 너무 얕본 것 같아.”“그때 가면 나 때문에 모든 일이 잘 안 풀릴 텐데, 그게 두렵지도 않아요?” 세희는 시현에게 물었다.시현은 입술을 구부리고 웃었다.“넌 우빈이를 그렇게 좋아하는데, 우빈에게 영향을 미치는 건 하나도 두렵지 않은 거야? 세희야, 넌 날 뭘로 보고. 설령 그게 사실이라 하더라도, 난 두렵지
시현과 인우는 비록 귀신을 보지 못했지만, 지금 검은 연기가 자신의 앞에서 천천히 흩어지는 것을 똑똑히 보았다.인우는 세희를 바라보며 물었다.“누나, 지금 어떻게 된 일이에요?”세희는 몸을 돌려 말했다.“그 귀신은 환생하고 싶지 않아서 이미 죽었어.”“귀신이 죽었다고?” 시현이 물었다.“이 세상에서 사라졌다는 뜻이야?”세희는 고개를 끄덕이며 사방을 바라보았다.“캐리 아저씨, 이제 그 여섯 명의 귀신을 좀 잡아주세요.”캐리는 고개를 끄덕였고, 불과 몇 분 만에 겁에 질린 그 귀신들을 세희의 앞으로 데려왔다.세희는 그들을 바라보며 물었다.“당신들은 그 처녀귀신과 같은 선택을 할 건가요? 아니면 나와 같이 서낭당에 갈 건가요?”“서낭당에 갈래요!”“우리는 그 여자의 협박을 받아서 여기에 갇힌 거예요! 그렇지 않으면 벌써 떠났을 텐데!”“죽어도 우리를 괴롭히려 하다니! 우리가 뭘 그렇게 잘못했는데!”이 귀신들은 그 처녀귀신이 사라진 후, 불평하기 시작했다.세희는 그들의 원망을 듣고, 마음속에 분노가 치솟았다.“지금 그 처녀귀신을 비난할 면목이 있는 거예요?!”세희는 노발대발하며 말했다.“당신들을 죽인 것은 그 여자의 잘못일지라도. 당신들은 자신에게 그 어떤 책임도 없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만약 당신들이 그 여자를 괴롭히지 않았다면, 오늘처럼 귀신으로 되어 이곳에 갇히지 않았겠죠!”“풉.” 한 여자 귀신이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우리에게 책임이 있다고요? 그 여자는 늘 자신의 성적을 가지고 남을 비웃었어요. 그러지만 않았어도 우리에게 괴롭힘을 당하지 않았을 텐데.”세희는 이 말을 듣고 어이가 없었다.“남의 성적이 우수해서, 당신들은 또 그 사람을 따라잡을 수 없어서, 그걸 자랑이라고 생각했던 거예요? 정말 불쌍하네요! 이 세상에 당신들 같은 질투심이 강한 쓰레기가 없어서 정말 다행이에요! 안심해요, 당신들은 다음 생에도 이번 생에 지은 죗값을 치러야 하니까!”귀신들은 세희가 한 말에 화가 났지만, 캐리와 인우 때문에 화가
“말이 쉽지!” 처녀귀신은 화가 나서 말했다.“날 죽인 그 사람들은 비록 귀신이 되었지만, 나도 그들이 환생하지 못하게 붙잡아둬야 한단 말이에요!”세희는 눈살을 찌푸렸다.“그 여섯 명의 학생들이 당신을 죽인 사람이었어요?”“그렇지 않으면 내가 왜 그들을 죽였을 것 같아요??”“그 사람들 찾아 복수를 한 이상, 이제 그만 그들을 놓아줘요. 이렇게 자신을 괴롭혀가며 그들을 붙잡고 있을 필요가 더 있을까요?”“그럴 순 없어요! 이렇게 쉽게 환생을 하라고 하는 건 너무 말이 안 되니까!!”처녀귀신이 노발대발했다.세희는 웃었다.“당신은 집념이 너무 커서 줄곧 이곳에 갇혀 있는 거예요. 영원히 자신의 고통으로 자신을 괴롭히고 있잖아요. 만약 내려가서 벌을 받고 환생하여 다시 이 세상에 태어난다면, 이것 또한 자신의 과거를 내려놓을 수 있는 방법이 아니겠어요?”“이렇게까지 날 가르칠 필요 없어요!”처녀귀신이 말했다.“오늘 당신들이 죽든지, 아니면 내가 죽든지, 둘 중 하나 선택하자고요!”말을 마치자, 처녀귀신은 세희를 향해 공격하려 했다.세희는 바로 인우를 부르려고 했고, 이때 갑자기 어두운 그림자 하나가 스쳐 지나갔다.빠른 속도로 달려온 캐리는 즉시 그 처녀귀신을 먼 곳으로 밀어냈다.“좋은 말로 타일러도 듣지 않고, 심지어 세희에게 손을 대려고 하다니. 오늘 사라질 준비를 하는 게 좋겠어!”캐리는 차가운 목소리로 붉은 옷을 입은 처녀귀신에게 말했다.“그게 뭐가 무섭다고.” 처녀귀신이 소리를 질렀다. “나도 이젠 지긋지긋해요! 이 더없이 더러운 세상! 내 부모님은 내가 학교폭력을 당했다는 것을 알게 된 후, 그들의 돈을 받고 바로 이 일이 없던 걸로 하자고 했어요. 내 오빠는 심지어 그들이 부자라는 것을 알고, 그들을 친구로 여겼고요! 환생할 게 뭐가 더 있겠어요? 환생해도 이렇게 더럽고 추악한 세상을 마주해야 하니까, 차라리 날 죽여요. 더 이상 이 징그러운 세상을 보고 싶지 않으니까!”처녀귀신의 말을 듣고, 캐리는 바로 손을 써서
세희가 이렇게 말하자, 세준도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저녁 무렵, 인우는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자마자 세희가 이미 집에 있는 것을 보았고, 무척 흥분해하며 달려갔다.“누나, 돌아왔어요?” 인우는 싱글벙글 웃으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어때요, 다 나은 거예요?”세희는 의미심장하게 인우를 보더니 웃으며 말했다.“인우야, 오늘 저녁에 나 좀 도와줘.”“그래요.” 인우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학교에 가는 거 맞죠?”세희는 의아하게 인우를 바라보았다.“뭐야? 너 이제 무섭지도 않는 거야?”인우는 미소를 천천히 거두었다.“누나, 귀신은 무섭지만, 난 누나가 더 이상 그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아요. 그때 누나가 그렇게 고생하는 것을 보면서, 난 그날 정말 학교로 달려가서 그 귀신들을 죽이고 싶었어요. 그러나 시현 형이 누나의 생각을 존중해야 한다고 말했기 때문에, 억지로 참고 가지 않았던 거예요.”세희는 뿌듯해하며 인우의 머리를 어루만졌다.“우리 인우 다 컸네. 누나를 걱정할 줄 다 알고.”인우는 세희의 손을 잡고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누나, 난 줄곧 누나를 걱정하고 있었어요. 다음에 이런 위험한 일을 하러 간다면, 꼭 나 데리고 가면 안 돼요? 난 누나를 지켜주고 싶어요.”“그래! 저녁에 우리 가족들 함께 밥을 먹은 후에 바로 출발하자!”“좋아요!”저녁에 하영과 유준 그리고 희민이 돌아왔다. 세희가 이미 퇴원한 것을 보고, 세 사람은 기뻐해하며 그녀를 에워싸고 수다를 떨었다.저녁을 먹은 다음, 하영은 세희를 데리고 위층에 가서 간단하게 몸을 씻어주고서야 세희를 보냈다.문을 나서자마자, 세희는 시현이 그의 포르쉐와 함께 집 앞 정원에 있는 것을 보았다.세희와 인우는 의아함을 느끼며 시현을 쳐다보았다.세희가 먼저 물었다.“여긴 어쩐 일이에요?”시현은 별장을 바라보았다.“세준이 마음이 놓이지 않아서 나한테 연락했지 뭐. 네 기사 되어 달라고.”“우리 집에 기사가 없는 것도 아닌데. 그러면 시현 오빠가 너
“그래, 우빈아, 넌 15년 동안 세희를 좋아했고, 또 세희를 위해 많은 것을 바쳤지. 하지만 그거 알아? 세희는 아주 이성적인 사람이야. 세희가 만약 무슨 일을 알고 싶다면, 바로 감정 속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호흡이 흐트러진 우빈은 시현을 바라보며 다시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알아요.” 우빈이 대답했다.“세희는 그 누구보다도 감성적이고 또 이성적이죠.”“그럼 만약 세희가 정말 날 선택한다면, 넌 어쩔 계획이야?”“그런 건 없어요.”우빈은 솔직하게 말했다.“내가 말했잖아요, 난 세희의 모든 선택을 존중할 거라고. 마찬가지로 다른 걱정 할 필요 없어요. 세희에게 거절을 당했다고 복수를 할 정도는 아니니까요.”시현은 계속 물었다.“그러니까 내가 세희와 함께 하더라도 넌 세희와 계속 친구를 하겠다는 말이야?”우빈은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나와 세희는 줄곧 친구였어요. 우리 두 사람이 사귀지 않아도, 앞으로 여전히 사이가 좋은 친구예요. 고 과장님, 세희를 좋아해도 되지만, 내가 세희와 계속 친구로 되는 것을 막을 순 없어요.”시현은 갑자기 웃었다.“그럼 됐어!”우빈은 시현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다.시현은 엘리베이터 앞으로 가서 버튼을 눌렀다.“난 내가 세희와 사귀면, 넌 불편해서 세희와 연락 끊을 줄 알았거든.”우빈은 말문이 막혔다.“사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이 있어. 이제 세희를 포기하자고. 넌 정말 세희가 필요한 것 같으니까...”말을 하다 시현은 우빈을 힐끗 바라보았다.“네 마음을 상하게 하는 말들은 하지 않겠어. 아무튼 후에 생각해 봤는데, 만약 널 향한 내 개인적인 생각 때문에 세희를 포기한다면, 그건 널 무시하는 것과 같잖아.”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시현은 안으로 들어갔고 우빈도 뒤를 따랐다.두 사람이 나란히 엘리베이터에 서자, 우빈은 잠시 침묵하다 입을 열었다.“그 결정은 틀리지 않았어요. 난 확실히 가족을 모두 잃었지만, 그래도 피와 살이 있는 사람이에요. 이 세상에 나 혼자만이 이런 상황이 아니잖아
시현은 말을 이어받으며 오른손을 들었다.“그때 내 오른손에 피가 가득 묻은 거 있지? 심지어 의사가 네 등의 썩은 살을 모두 베어낸 것을 직접 봤는데, 며칠째 잠을 못 잤어.”“에이, 그건 간단하죠!” 세희는 히죽거리며 말했다.“수면제 처방받으면 편안하게 잘 수 있지 않겠어요?”시현은 웃으며 침대 옆에 쪼그리고 앉았다.“세희야, 날 원망하고 싶지 않아?”“원망이요?” 세희는 시현의 뜻을 잘 몰랐다.“내가 왜요?”시현은 콧등을 긁적였다.“내가 널 데리고 그곳에 가지 않았다면, 너도 이렇게 다치지 않았을 거야.”세희는 눈을 부라리며 시현을 바라보았다.“그건 시현 오빠 탓이 아니에요. 그 귀신들이 겁도 없이 나한테 덤빈 것뿐이니까요. 다 회복되면 그 귀신들 전부 잡아버릴 거예요!”“또 그곳에 가려고?” 시현은 경악하며 물었다.“그럼요!” 세희는 손을 내밀었다.“일곱 명의 귀신을 전부 다 데려갈 수 있다면, 염라대왕님은 좋다고 박수를 치실지도 몰라요.”시현은 세희의 얼굴에 나타난 즐거운 미소를 애틋하게 바라보았다.“난 오히려 네가 날 욕하면서 분풀이를 했으면 좋겠는데. 이렇게 홀가분한 말투로 말하는 거 보니까 마음이 너무 아파.”“그럼 너무 재미없죠! 난 시현 오빠 돈 뜯어먹는 게 더 좋은 거 같은데? 내가 침대에서 내려올 수 있으면, 날 데리고 맛있는 거 먹으러 가요!”“오케이!” 시현은 시원스럽게 대답했다.“먹고 싶은 거 다 사줄게.”세희는 고개를 끄덕였다.“참, 세준 오빠가 그러던데, 미정 할머니를 찾아갔다면서요?”시현은 숨김없이 대답했다.“응, 가서 어떻게 해야 널 보호할 수 있을지에 대해 여쭤봤어.”“하하하.” 세희는 갑자기 웃으며 말했다. “날 보호한다고요? 왜 그런 생각을 하는 거죠? 그리고 시현 오빠는 귀신도 안 보이는데, 어떻게 귀신과 싸우려는 거예요? 정의감과 용기로 귀신을 제압하려고요?”“내가 만약 내 정의감을 이용할 수 있다면, 이 세상엔 귀신이 없을 거야?”세희는 웃으며 말했다.“그냥
시현은 세준 그들에게 돌아가서 쉬라고 한 다음, 혼자 의자에 앉아 멀리서 세희를 바라보았다.그녀는 아주 평온하게 잠을 자고 있었고, 숨을 고르게 쉬고 있었다.이때 간호사가 걸어왔다. 시현은 그녀를 보며 얼른 일어나 물었다.“선생님.”간호사는 그를 쳐다보았다.“무슨 일이시죠?”“세희는 언제 중환자실에서 나올 수 있는 거죠?”“이건 저도 잘 모르겠어요. 아마도 요 며칠 더 관찰을 해야 할 것 같아요. 아가씨는 제가 본 여자아이들 중에서 가장 엄중한 상처를 입으신 환자라서요. 잘못하면 흉터가 남을 텐데... 어휴...”말이 끝나자, 간호사는 문을 열고 들어갔다.시현은 그녀의 말을 듣고, 마음속으로 또 엄청난 죄책감을 느꼈다.‘이번 생은 철저히 세희에게 빚진 셈이네.’사흘 후, 세희는 중환자실에서 나왔고, 이 일을 알게 된 하영과 유준도 얼른 병원에 찾아왔다.세희가 침대에 엎드려 멍을 때리는 것을 보며, 두 사람은 가슴이 아팠다.하영은 허리를 굽혀 세희의 머리를 어루만졌다.“세희야, 미안해. 네 오빠들이 아침에 금방 이 일을 알려줘서, 엄마와 아빠도 이제야 달려온 거야.”세희는 고개를 저으며 억지로 웃음을 지었다.“괜찮아요, 엄마. 이거 봐요, 나 아직 멀쩡하잖아요?”하영은 눈시울이 붉어졌다.“걱정 마. 무슨 방법을 써서더라도 네 등의 흉터를 치료할 테니까.”“사실 난 이런 거 신경 안 써요. 등일 뿐이니, 평소에 남에게 보여주는 것도 아니고. 게다가 나 자신도 볼 수 없으니까, 심리적인 스트레스도 없어요.”“네가 꾸미길 좋아한다는 거, 여기에 모르는 사람이 없을걸?” 세준은 벽에 기대며 말했다.세희는 고개를 돌려 세준을 보려 했지만, 상처가 땅기는 바람에 아파서 이를 악물었다.세준은 마음이 아파서 눈살을 찌푸렸다.“좀 움직이지 마. 나도 안 비웃을게.”유준은 세준을 바라보았다.“세준아, 너희들은 외국에 아는 사람이 많으니까, 무슨 방법을 쓰더라도 좋은 성형과 의사를 찾아. 세희의 등에 절대로 흉터 남지 않게.”세준은
두려움과 걱정이 밀려오자, 시현은 도무지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는 눈을 뜨고 창밖의 하늘을 바라보았다.‘난 세희가 하는 일에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하는데. 그럼 세희를 보호하려면 난 대체 무엇을 할 수 있지?’생각하다 시현은 핸드폰을 꺼내 세준에게 톡을 보냈다.[그 할머니 지금 어느 호텔에 계시는 거지?]얼마 지나지 않아, 세준은 시현에게 나미정이 지내고 있는 호텔 주소와 방번호를 보냈다.[고마워, 세준아.]세준은 이 문자를 보며 차갑게 웃었다.[세희의 일, 난 이대로 넘어가지 않을 거야.][날 때리고 싶든, 죽이고 싶든 네 마음대로 해. 다 내 잘못이니 나도 변명할 말이 없어.]이 문자를 보낸 후, 더 이상 답장이 들어오지 않았다.시현도 더 이상 아무것도 보내지 않고, 차에 시동을 걸어 호텔로 갔다.30분 후, 시현은 나미정이 있는 룸 앞에 도착했는데, 잠시 심사숙고한 다음, 손을 들어 문을 두드렸다.곧 안에서 나미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조금만 기다려.”문을 열자, 시현이 문밖에 서있는 것을 보고 그녀는 약간 의아해했다.“네가 바로 병원에 있었던 그 총각인가?”시현은 고개를 끄덕였다.“네, 할머니. 저와 잠깐 얘기를 좀 나누시면 안 될까요?”“그래.” 나미정은 몸을 비키며 말했다. “들어와서 말하자꾸나.”시현은 들어가서 소파에 앉았고, 나미정은 그의 옆에 있는 소파에 앉았다.“무슨 일로 날 찾는 거지?”시현은 긴장이 돼서 두 손을 비볐다.“할머니, 저도 솔직히 말씀드릴게요. 저처럼 평범한 사람은 대체 어떻게 해야 세희의 안전을 보호할 수 있을까요?”“평범한 사람이라...”나미정은 웃기 시작했다.“왜, 네가 보기에 우리와 같은 무당은 평범하지 않은 건가?”시현은 멈칫하더니 얼른 설명했다.“그런 뜻이 아니에요. 아무튼 저희보다 강하고 특수한 능력이 있으시잖아요.”“그것도 다 하늘이 내려준 신기일 뿐이지.”나미정이 말했다.“그러나 우리도 평범한 사람들이야. 밥을 먹어야 하고, 또 때가 되면 죽는 법이니
세희는 자신의 손바닥을 바라보았다. 부적은 비록 뚜렷하지는 않지만, 그녀는 여전히 강렬한 양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세희는 숨을 들이마신 다음 천천히 일어섰다. 그 순간, 옆에서 놀던 그 귀신들은 고개를 홱 돌리더니 모두 그녀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그들의 시선을 알아챈 세희도 눈을 돌려 귀신들을 보았다.‘또 이런 느낌이야! 이곳을 못 나가게 하는 그런 느낌!’세희는 밀려오는 공포를 참으며 용기를 내어 문 앞으로 걸어갔다.문과 가까워질수록 주위의 음기는 더욱 강렬해졌다. 심지어 세희는 자신의 영혼이 억압된 느낌을 받았다.“누나, 무서워하지 마요!!”“세희야! 용기를 내서 그곳에서 나와! 그 귀신들은 널 건드리지도, 널 다치게 하지도 못할 거야!”“누나! 나랑 형들이랑 그리고 고 과장님이 여기서 누나를 기다리고 있어요!”인우와 나미정의 목소리를 듣고, 세희는 눈물을 뚝뚝 흘렸다.그녀는 이를 악물며 가깝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다가갈 수 없는 문을 향해 계속 나아갔다.세희는 숨을 깊이 들이마셨고, 부적이 그려진 손을 들어 다시 시도했다.이번에 그 귀신들은 섬뜩하게 웃기 시작했다. 세희가 문손잡이에 손을 얹으려 하자, 그들은 재빨리 앞으로 돌진했다.이때, 매몰찬 음기가 덮쳐왔고, 세희는 부적이 있는 그 손을 들고 돌아섰다.그 귀신들은 하마터면 세희의 영혼과 닿을 뻔했다. 그러나 세희의 손에서 나는 강렬한 양기가 서려 있는 부적을 감지한 그들은 표정이 돌변했다.세희는 뒤로 물러섰고, 등이 문에 닿는 순간, 재빨리 몸을 돌려 문손잡이를 잡았다. 그리고 문을 연 후, 그녀는 즉시 뛰쳐나갔다.이때, 줄곧 병상에 누워있던 세희는 눈을 번쩍 뜨더니 숨을 들이마셨다.세희가 깨어나는 것을 보고, 인우는 감격에 겨워 소리쳤다.“누나! 왜 이제야 깨어난 거예요!!”그러나 세희는 그의 말을 듣지 못한 듯, 눈을 천천히 감았다.인우는 완전히 멍해지더니 당황해진 표정으로 나미정을 바라보았다.나미정은 아주 침착하게 대답했다.“별일 아니야, 피곤해서 그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