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말에 유현진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하지만 곧 의사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하지만 병세를 억제할 수는 있어요. 그리고 아직 심각한 정도도 아니에요. 현진 씨 자궁내막은 아직 정상적인 기능을 하고 있고 정상적으로 여포를 분비할 수 있어요. 다만 수량이 좀 적을 뿐이에요.”유현진은 의사의 말에 어리둥절해졌다. “그게... 무슨 뜻이에요?”“그러니까. 치료만 제때 하면, 조기 폐경의 진행 속도를 억제할 수 있어요. 자연 임신할 확률도 아직 있고요. 자연 임신이 어렵다고 하더라도 난자를 얼렸다가 나중에 시험관을 해도 돼요.”의사는 하나하나 열심히 설명해 주며 유현진을 절망의 끝자락에서 끌어당겼다. 그녀는 멍하니 앉아 천천히 입을 열었다.“그러니까, 선생님 말씀은, 제가 아이를 가질 수 있다는 말인가요?”“당연히 가능하죠.”의사가 웃어 보였다. “비록 조기 폐경을 되돌릴 수는 없지만, 현재 시험관 시술이 많이 발전했어요. 환자가 난자를 생산할 수만 있으면 아이를 갖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에요.”유현진은 코끝이 찡해졌고 눈가가 촉촉해졌다. 이건 그녀가 이혼 후 들은 제일 좋은 소식이었다. 강한서는 그녀의 손을 꽉 잡고 의사에게 물었다. “구체적으로 어떤 치료를 받아야 하나요?”“먼저 약을 처방해 드릴게요. 약 드시고 다시 검사하러 오세요. 그리고 평소 생활도 주의하셔야 해요. 일은 너무 무리하지 마시고 충분히 휴식도 취하시고요, 평소 운동도 좀 하시고요. 그리고 음식, 음식도 중요해요. 정상적인 성관계 주기도 유지하시고요.”강한서는 잠시 멈칫하더니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물었다. “어느 정도가 정상적인 주기라고 할 수 있나요?”유현진: ...매우 진지한 물음이었지만, 강한서가 물으니 이상하게 경박스러운 질문이 되어버렸다. 의사가 말했다. “일주일에 한두 번이 적당해요. 너무 자주는 하지 마세요. 그리고 상대방의 생리적, 심리적 상태에 주의를 기울이세요.”강한서가 고개를 끄덕였다.“꼭 선생님 말씀에 따를게요.”유현진: .
14억이라는 큰돈을 기부했으니, 자선 총회에서는 재빨리 페이스북으로 감사 인사를 전했다. 네티즌들은 자선 총회에서 업로드한 기부 사진이 두 장인 것을 확인하고는 왜 14억을 두번으로 나눠서 기부했는지 호기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중 13만 원이라는 수자도 이상했다. 그러니 네티즌들은 유현진을 태그하여 두 번으로 나눠 기부한 것에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지 물었다. 유현진은 자신을 태그한 페이스북을 리트윗하여 대답했다. 「특별한 의미는 없어요. 단지 행운을 가져다줄 것 같아서요. 그리고 저희도 마침 13일에 크랭크인이잖아요.」그리고 그녀는 어젯밤 자리에 있었던 모든 배우를 태그했다. 물론 당사자인 송민영도 포함이었다.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어젯밤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은 너무나도 잘 알았다. 특히 당사자인 송민영은 13만 원을 확인하고는 유현진이 냉소를 지으며 어젯밤 그녀가 했던 행동이 얼마나 병신같았는지 비웃는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았다. 이건 분명 그녀를 대놓고 놀리는 것이었다! 화를 못 이긴 송민영은 테이블 위의 물건을 전부 던져버렸다! 송씨 가문, 전화를 끊은 송민준이 고개를 돌리자 그의 뒤에 서서 음흉한 눈빛으로 자신을 빤히 쳐다보고 있는 송병천을 발견했다. 깜짝 놀란 송민준은 미간을 찌푸렸다. “어떻게 인기척도 없으세요?”송병천은 송민준을 흘겨보았다. “통화한 것뿐이면서 뭘 그렇게 눈치를 봐?”“제가 뭘요?”송민준은 절대 인정하지 않았다. 송병천은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내가 비록 널 결혼하라고 다그치긴 하지만, 그렇다고 네가 결혼하기 위해서 다른 사람의 행복을 뺏고 그러면 안 돼. 그건 도덕적이지 못한 거야, 알겠어?”송민준: ???“누구한테 대체 무슨 헛소리를 들으신 거예요? 제가 뭘 뺏어요?”“그걸 말해야 알아?”송병천은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너 하루 종일 틈만 나면 한서 와이프한테 전화하잖아. 나 아직 두 눈 부릅뜨고 있어! 어쩐지 요즘 한서가 날 보면 할 말이 있어보인다
“아버지.”송민준이 머뭇거렸다. “만약 현진이가 어머니를 많이 닮지 않았다면, 만약 제가 호기심에 유전자 검사를 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어쩌면 평생 그 아이가 살아있는지도 몰랐을 거예요. 현진이 등에 있는 모반, 제가 기억하던 거랑 똑같았어요. 그건 그때 제 기억이 틀리지 않았다는 거예요. 현진이 그때 분명 건강했어요. 하지만 의료진은 저희에게 사산이라고 했죠. 아이가 바뀌었다고 해도, 죽었는지 살았는지를 헷갈릴 수 있을까요?”송병천도 잃어버린 딸을 찾은 기쁨에서 벗어나 마음을 진정시켰다. “네 말은 누가 일부러 현진이를 바꿨다는 거니?”송민준이 입술을 짓이겼다. “그 당시 어머니의 분만을 담당했던 의료진들은 이미 모두 죽거나 이민을 갔고, 그것도 아니면 퇴사 후 전향해서 소식을 알 길이 없어요. 모든 것이 너무 깔끔하게 처리되었어요.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송병천이 미간을 찌푸렸다. “현진이가 유씨 집안에 있었으니, 유씨 집안 사람들이 한 짓일까?”송민준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하 여사님도 현진이를 기른 지 몇 년이 지나서야 자신의 친딸이 아니라는 걸 아셨어요. 그때 저희가 안치했던 그 아이가 바로 하 여사님 친딸이었을 거예요.”유현진이 자신의 딸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하현주는 병원에 연락을 했었다. 하지만 그 후 어떻게 되었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하현주도 이미 사망했으니, 당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젠 알 길이 없었다. 하지만 수집한 정보들을 조합해 보면 최소한 아이를 바꾼 사람이 하현주는 아니라는 것은 알 수 있었다. 그녀 역시, 피해자였다. “유씨 가문이 아니면, 그럼 누구지?”송병천도 일순간 갈피를 잡지 못했다. 송민준은 입을 앙다문 채 말이 없었다. 만약 누군가 일부러 아이를 바꾼 것이라면, 보통은 두 아이의 인생을 바꾸기 위해서이다. 일반 가정의 아이를 부잣집으로 보낸다면, 만약 나중에 아이가 바뀐 것을 알게 되더라도 이미 오랜 시간을 길러 당연히 감정이 있을 테니 다시 원래의 인생으로 돌아간다고 하더라도
송병천: ...송가람은 점심이 다 되어서야 돌아왔다. 서해금이 소리를 듣고 내려왔다. 그녀는 내려오자마자 소파에 영혼 없이 멍하니 앉아있는 송가람을 발견했다. 루나가 그녀의 곁에서 물을 따라주었다. “가람아.”서해금이 송가람을 부르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 “어떻게 됐어?”송가람은 입술을 짓이기며 참담한 표정을 짓더니 한참 후에야 고개를 저었다. 서해금이 미간을 찌푸리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 “널 안지 않은 거야?”송가람이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그녀는 한참이 지나서야 입을 열었다. “방에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누군가에 의해 정신을 잃었어. 일어나보니까 다른 호텔이었고.”서해금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강한서에게 들킨 거야?”송가람이 고개를 저었다. “모르겠어. CCTV도 지워졌고,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했어. 엄마, 만약 한서 오빠의 사람이 한 일이라면, 날 의심하는 건 아니겠지...”송가람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위층에서 송병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루나 아가, 할아버지 혈압강하제 좀 찾아줘.”루나 머리 위에 달린 센서가 반짝이더니 이내 고분고분하게 대답했다. “네, 할아버지.”그러더니 짧은 다리로 또박또박 송병천의 약을 찾으러 걸어갔다. 서해금은 송가람에게 조용히 하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송민준은 송병천의 강력한 요구로 옷을 갈아입고 송병천과 함께 아래층으로 내려와 유현진을 보러 갈 준비를 했다.송병천의 말을 들은 그의 눈가가 파르르 뛰었다. “아버지 약이 어디 있는지도 몰라서 그것도 저 쇳덩이를 부려 먹으시는 거예요?”송병천이 그를 흘겨보았다. “네가 뭔 상관이야?”송민준: ...루나가 변신해 송민준을 바닥에 누르는 장면을 본 이후로 송병천은 이 로봇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루나의 고지능을 확인한 뒤로는 루나에게 푹 빠져있었다. 게다가 루나는 말도 예쁘게 했다. 매번 송병천을 보면 할아버지, 할아버지 하면서 불렀고 이는 아직 손주를 보지 못한 송병천에게 예상치 못했던 기쁨을 안겨주었다
송병천은 미간을 찌푸렸다. “우리 예쁜 손녀를 어디에 보내려고?”“이 쇳덩이는 강한서가 현진이에게 준거예요. 현진이가 저한테 며칠 빌려줬고요. 요즘 언제 쇳덩이를 돌려줄 수 있는지 묻더라고요. 강한서가 만든 이 고철, 비록 생긴 건 못났지만, 집은 잘 지키니까, 얘가 있으면 아버지 딸이 괴롭힘을 당할 걱정은 없어요.”송민준은 말을 멈추더니 목소리를 깔고 말했다. “그리고, 이걸 돌려주면 아버지도 이 쇳덩이를 핑계 삼아 현진이랑 연락할 구실이 생기잖아요. 그 기회에 만나셔서 알아가셔도 되고요.”그 말을 듣는 순간, 송병천의 눈빛이 반짝거렸다. 그가 나지막이 말했다. “그러면 얼른 현진이에게 얘기해. 전엔 우리가 몰랐다지만, 이제라도 알았으니 절대 더 이상 현진이를 힘들게 만들어서는 안 돼. 최대한 빨리 데려와야지. 그리고 시간 나면 나랑 하 여사님한테 인사드리러 가자. 하씨 집안 일도 신경 좀 쓰고, 많이 도와줘.”송민준은 더 할 얘기가 있었지만 서해금이 이미 이쪽으로 걸어오자 입가에 맴돌던 말을 다시 삼키고는 인사를 건넸다. “오셨어요.”서해금은 미소를 띠고 천천히 걸어왔다. “부자끼리 수군수군, 무슨 얘기 해요?”송민준은 웃어 보이며 대답했다. “별거 아니에요. 루나를 보내려고 얘기 중이었어요.”서해금은 잘 차려입은 송민준을 보더니 물었다. “지금? 밥 먹고 가.”“아뇨, 루나를 보내고 점심엔 고객이랑 약속이 있어서요.”송가람의 옆을 지나치던 송민준은 그녀의 안색이 어두운 것을 보고는 걸음을 멈추었다. “가람아, 어디 아파?”송가람이 고개를 저으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어젯밤에 친구들이랑 너무 늦게까지 놀아서 그런가 봐.”송민준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좀 더 쉬어. 다음엔 그렇게 늦게까지 놀지 말고.”송가람이 고개를 숙이고 그의 말에 대답했다.송민준도 다른 말 없이 사람을 찾아 루나를 차에 싣고 자리를 벗어났다. 서해금은 혈압강하제를 송병천에게 건네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전에 민준이랑 서재에서
“강한서는 그 사람을 꽤 좋은 인재라고 생각해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큰 프로젝트의 협상에 함께 참여시켰고, 프로젝트도 순리롭게 성사되었어. 강한서가 전에 참여했었던 프로젝트가 뭐였냐고 물었는데, 뭐라고 대답했다는 줄 알아?”“뭐랬는데?”차미주가 호기심이 가득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녀는 갓 졸업한 사회 초년생이 어떻게 그렇게 큰 프로젝트에 참여했는지 너무도 의문이었다. 유현진이 말했다. “수천억의 프로젝트는 페이코의 복지 행사였고, 수조에 달한다던 상업 투자는 공구 마켓 이벤트였어.”차미주: ...그녀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말했다. “강한서는 해고하지 않고 뭐 했대?”“당연히 안 했지.”유현진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 “자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나중에 승진도 한 것 같더라고.”“속았다고 화낸 게 아니라?”“강한서한테 물어봤는데, 이력서는 그저 참고할 뿐이고 업무능력을 더 중요하게 본다고 하더라고. 그날 협상하러 갔을 때, 신입생이 굉장히 잘했었고. 그래서 이력서가 조금 과장된 부분이 있지만 앞으로 일을 하는 데에는 지장이 없으니까. 능력이 이력서보다 훨씬 더 중요해. 회사가 바보도 아니고. 그리고 넌 강한서가 뒤를 봐줄 텐데, 누가 감히 네 이력서를 가짜라고 할 거야?”유현진이 고개를 들고 물었다. “그래서, 추가해, 말어?”“해!”차미주는 바로 유현진의 “설득”을 받아들였다. 강한서가 자신의 뒤를 봐준다면, 개자식도 뒤를 봐줄 수 있을 테니까.한성우의 회사에서는 최근 몇 년 동안 많은 영화와 드라마를 제작했는데, 그중에는 아직 방영되지 않은 것도 있을 터였다. 그때 자신의 이름을 적기만 하면, 그건 그대로 자신의 “이력”이 될 수 있지 않겠는가?그렇게 생각한 차미주는 바로 배달 앱을 켜고 과일과 야채를 잔뜩 주문했다. 맛있는 음식을 준비해 한성우를 구워삶을 예정이었다. 막 주문을 완료하자 휴대폰이 울렸다. 전화를 받은 차미주는 몇 마디 듣더니 바로 유현진에게 휴대폰을 넘겼다. “너 찾아.”“나?”유현진은 의아했
전 여사가 말했다. “그건 저도 잘 몰라요. 그 두 사람은 현진 씨를 호텔에 데려다주고 바로 가버렸어요. 제가 보낸 사람이 도착했을 때, 현진 씨는 이미 약에 취해 있었고요.”전 여사의 친정도 전에 호텔 사업을 했었기에 이런저런 일을 본 적이 있었다. 그 두 사람은 유현진에게 약을 타고도 그녀를 건드리지 않았다는 것은 아마 그녀를 누군가에게 던져주고 이익을 얻으려는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이런 인간들은 일반적으로 사회적 지위가 낮지 않았다. 전 여사는 쓸데없는 일에 참견하고 싶지도 않았을뿐더러, 굳이 일을 복잡하게 만들어 불필요한 미움을 사고 싶지도 않았기에 그런 추측을 유현진에게 말하지는 않았다. 전 여사가 말했다. “제 블랙박스에 상대방 차량 번호가 찍혔을 거예요. 필요하시면 영상 복사해 줄게요.”유현진과 손을 잡으려는 전 여사의 태도는 매우 분명했다. 정신을 차린 유현진이 입술을 짓이겼다. “왜 굳이 저와 손을 잡으려고 하시는지 이해가 되지 않네요. 전 여사님 손에는 분명, 남편분 외도에 관한 증거도 있고, 얼마든지 이혼하시고 재산 분할도 더 받으실 수 있을 텐데요.”“이혼이요?”전 여사가 담담한 미소를 지었다. “그 인간이 지금 이 자리까지, 제 도움이 없었다면 무슨 재간으로 왔겠어요. 왜 제가 이혼을 해서 제가 고생해서 앉은 그 자리를 다른 사람에게 내줘야 해요? 이혼보다는 배우자가 죽는 편이 나아요.”유현진: ...‘전 여사도 미친 년이잖아?’‘죽는 게 낫다는 말, 내 앞에서 해도 되는 말이야? 날 너무 믿는 거 아냐?’전 여사가 말했다. “신미정이 현진 씨에게 약을 탄 증거를 찾고 있잖아요? 제가 도와줄 수 있어요. 신미정은 늘 송가람 씨를 며느리로 들이길 원했어요. 어젯밤 계획이 실패했으니, 무조건 또 다른 계획을 세울 거예요. 제가 현진 씨 눈이 되어 신미정의 행적을 수시로 보고할 수 있어요. 신미정은 현진 씨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계략을 갖고 있어요. 어젯밤과 같은 일들은, 절대 피해 갈 수 없어요.”
“저예요.”부드럽고 다정한 목소리가 들려오자 유현진은 눈을 크게 뜰 수밖에 없었다.“강운 씨?”주강운은 꽃다발을 들고 온화한 미소를 짓고 서 있었다.“혹시 제가 이렇게 찾아와 실례가 되진 않았죠?”“당연히 실례가 아니죠.”유현진은 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소파 위에 있던 물건들을 서둘러 치웠다.“먼저 앉아 계세요. 제가 얼른 물이라도 한잔 따라올게요.”주강운을 아주 좋게 생각하고 있던 차미주가 급히 끼어들며 말했다.“아니야. 네가 주 변호사님과 같이 얘기를 나누고 있어. 물은 내가 떠올 테니까.”주강운은 꽃다발을 유현진에게 건넸다.“전 괜찮아요. 어제 그렇게 헤어지고 나서 원래 현진 씨에게 할 말이 있었는데 연락이 되지 않아서요. 조금 많이 걱정되더라고요. 오늘 마침 근처에 볼일이 있어서 바로 이렇게 불쑥 찾아오게 되었네요.”유현진은 바로 꽃다발을 받으면서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누가 불쑥 찾아오는데 꽃다발을 사요?”주강운은 웃으며 말했다.“처음 방문하는 거라 빈손으로 오기가 좀 민망하더라고요. 마침 지나가던 길에 꽃집이 있어서 들렀어요. 전에 현진 씨가 집에 화분을 많이 키운다고 하시던 게 생각이 나서 꽃을 선물하면 아주 좋아하실 거로 생각했거든요.”유현진은 주강운이 새삼 세심하게 느껴졌다. 그녀는 눈웃음을 지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고마워요. 너무 맘에 들어요.”“얼른 앉아요. 전 꽃병에 꽃을 꽂아둬야겠어요.”주강운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는 집안을 둘러보다 우연히 벽에 걸린 ‘봄의 연인' 포스터를 보게 되었다.그는 유현진의 단독 포스터를 한참이나 바라보다 이내 다시 시선을 돌렸다.고개를 돌린 그는 유현진이 높은 곳에 있는 꽃병을 꺼내려 하는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키가 그리 크지 않았던 유현진은 발꿈치를 들고 닿을 듯 말 듯 한 모습을 보였다.그녀가 의자를 끌고 와 올라가려던 순간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뒤에서 손이 쑥 뻗어 나오더니 그녀가 원한 꽃병을 내려주었다.“왜 이렇게 높은 곳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