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강한서가 현진 씨에게 꽃다발을 선물했다는 거 오늘 처음 알았어요. 한서도 저한테 물어본 적이 없었거든요.”주강운은 시선을 내리깔고 말라버린 꽃을 보았다.“아마 안목이 비슷해진 거겠죠. 이 꽃다발은 확실히 제가 현진 씨 촬영이 시작하던 날에 다른 사람에게 부탁해 현진 씨에게 전해주라고 한 꽃다발과 아주 흡사하거든요.”유현진은 순간 멈칫했다.“촬영 시작 날에 저한테 꽃다발을 보내셨어요?”주강운은 고개를 끄덕였다.유현진은 눈썹 사이를 구겼다.“혹시 촬영장으로 보내셨어요?”“아니요. 혹시라도 현진 씨한테 전해지지 않을까 봐 일부러 집으러 보냈어요. 그 속에 카드도 써놨거든요.”주강운은 미간을 찌푸리고 있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떠보듯 물었다.“혹시 못 받으셨어요?”“...”그녀는 밸런타인데이에 있었던 일들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그녀와 강한서는 사거리에서 돌아오는 길에 갑자기 강한서가 굳이 차 한잔 마시고 가겠다며 고집을 부렸었다. 그녀가 드레스룸으로 들어가 옷을 갈아입는 동안 강한서는 꽃다발을 들고 들어와 그녀를 위해 주문한 거라고 했었다.그때 당시 그녀는 강한서의 안목이 많이 좋아졌다며 칭찬까지 해줬었다. 그러나 강한서는 기뻐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미간까지 찌푸리고 있었다.칭찬만 해주면 강아지처럼 꼬리를 흔들던 강한서가 칭찬을 듣고도 기뻐하지 않는 모습에 그녀는 아주 의아하게 생각했었다.이 꽃다발이 애초에 강한서가 산 것이 아니라면 모든 상황이 들어맞았다.강한서가 주강운이 쓴 카드를 버리고 자신이 산 것처럼 꾸며 그녀에게 준 것이었다.“현진 씨?”그녀가 한참이나 아무 말도 없이 가만히 서 있자 주강운이 그녀를 불렀다.퍼뜩 정신을 차린 유현진은 주강운의 걱정 가득한 시선과 눈을 맞추면서 다소 미안한 듯 웃었다.비록 강한서가 벌인 일이었지만 그녀는 오히려 자신이 창피하게 느껴졌다.그녀는 마른기침을 하면서 강한서 대신 핑계를 대주려고 했다.“아, 기억났어요. 경비실에서 저한테 연락했었던 것 같네요. 제 앞으로 택배가 왔
“아니요. 괜찮아요.”주강운은 억지로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그는 장미를 내려놓고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아마 새로 바꾼 약에 부작용이 있었나 봐요. 가끔 이렇게 머리가 살짝 어지럽더라고요.”유현진을 입술을 달싹이며 말을 꺼내려던 순간 주강운의 관자놀이에서 피가 나고 있는 모습에 깜짝 놀란 표정을 짓게 되었다.“머리에서 피가 나고 있어요.”“네?”주강운은 살짝 놀란 표정으로 손을 뻗어 확인해 보려 했다. 그러나 그가 손을 들자마자 유현진이 그의 소매를 잡아당겼다.“손에도 피가 있어요.”주강운은 고개를 떨궜다. 그리고 이내 자신의 오른손 손바닥에 피가 묻어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그의 손바닥엔 작은 상처들이 여러 개 나 있었고 벌어진 상처 틈으로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그가 아까 내려놓았던 장미 줄기에도 피가 묻어 있는 것을 확인한 그는 바로 장미 가시에 찔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하나, 둘, 셋...”유현진은 옆에 앉아 그의 상처 부위를 치료해 주면서 벌어진 상처 개수를 세고 있었다. 그녀는 이내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여섯 개! 상처가 여섯 개예요! 안 아팠어요?”주강운은 고개를 저었다.“전 고통이란 감각에 어릴 때부터 무뎌서 못 느끼고 있었어요.”유현진은 바로 입을 다물었다. 그녀는 그의 말에 대꾸할 수가 없었다.지난번 정인월의 생신에 그녀는 이미 한번 물었던 적이 있었다. 주강운은 그때 당시에도 자신이 화상을 입은 줄 모르고 있었고 고통에 무디다고 말했었기에 그녀는 더는 입을 열 수가 없었다.그러나 그녀는 다소 이해할 수가 없었다. 어깨의 피부조직이 심각하게 망가져 감각을 잃었다고 생각할 수는 있었지만, 손바닥엔 화상을 입은 적도 없었다. 게다가 여섯 곳이나 장미 가시에 찔렸는데 어떻게 고통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거지?만약 강한서가 아프지 않다고 말했다면 그녀는 분명 그가 허세를 부릴 것으로 생각할 것이었다. 그리고 상처를 치료해 주면서 일부러 그의 상처를 꾸욱 눌렀을 것이다.다만 강한서는 자신이 고통에 무디다고 말
“네, 알아요.”유현진은 미간을 구겼다.“제 작은 아버지예요. 유상수의 동생이기도 하죠. 그 사람들이 아직도 거기에 살고 있던가요?”주강운은 바로 핵심을 캐치했다.“아직도라니요? 전에도 그 저택에서 살았던가요?”유현진은 고개를 끄덕였다.“아주 오래전에 작은아버지는 자신의 아이를 해성시에 있는 학교로 보낼 거라고 했었거든요. 그런데 마땅히 거처가 없었죠. 그래서 저희 엄마는 그 저택의 키를 작은아버지에게 주면서 어차피 비어있는 집이니 사람이 들어가 살지 않으면 집도 빠르게 망가질 거라며 들어가서 살라고 했었어요. 게다가 친척이기도 하니 당연히 도와줘야 한다며 저희 엄마가 그 저택을 내주셨어요. 제가 중학교 2학년 때부터 그곳에서 살았으니까 아마 12년 정도 되겠네요. 작은아버지께선 이미 해성시에서 자리를 잡으셨거든요. 몇 년 전에는 번화가 근처에 집까지 계약했다고 했었어요. 그래서 전 그때 작은아버지가 연 파티에도 참석했는데, 저랑 저희 엄마는 작은아버지 가족들이 바로 이사할 거라고 생각했거든요.”주강운이 낮게 깔린 목소리로 말했다.“그 사람들 아직 이사 안 갔어요. 그리고 그거 알아요? 그 저택 뒤에 있던 정원 말이에요. 그곳에 유치원을 세웠더라고요. 알고 있었어요?”유현진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뒤에 있던 정원에 아무것도 없었어요. 거긴 황무지였었어요.”외할아버지의 소유였던 그 땅은 아주 컸고 대략 1300평 정도의 크기였다. 저택이 차지하는 면적은 그리 크지 않았지만, 저택 뒤에 있던 정원의 크기는 엄청나게 컸다.하현주가 말하길 그 땅은 원래 외할아버지 삼 형제의 땅이라고 했었다. 그러나 외할아버지의 두 동생이 사고로 돌아가시게 되면서 그 땅은 외할아버지의 소유로 변했고 그냥 내버려 두면 누군가가 그 땅에 마음대로 건물을 지을까 봐 외할아버지는 담장을 세웠다고 했다.그리고 그 땅에 방이 두 개인 자그마한 집을 지어 평소에 꽃을 심을 때 쓰는 도구나 비료 등을 넣는 창고로 썼다. 그런데 그런 집을 유치원으로 만들었다고?“황무지는 아
옆에서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차미주는 눈썹을 꿈틀거렸다.‘이, 이, 이건... 고백이잖아?'‘거봐!'‘내가 벤틀리 훈남이 현진이한테 관심이 있을 거라고 했잖아!'‘누가 거액의 사건을 안 맡고 이런 사소한 사건을 맡아?'‘현진이도 참, 눈치가 없네. 나더러 쓸데없는 생각하지 말라더니.'‘어디가 쓸데없는 생각이라는 거야. 설마 강한서 외엔 다른 남자들은 이성으로 보이지 않는 건가?'그녀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도대체 강한서의 잘생긴 얼굴을 빼고 어디가 좋은지. 강한서는 눈치가 없는 말을 할 뿐만 아니라 꿍꿍이까지 많았다.그녀를 경찰에 신고한 일로 이미 마음속 트라우마로 남아있었고 그녀는 강한서가 혹여라도 현진이가 싫어졌다면 바로 현진이를 감방에 보낼까 봐 걱정되었다.강한서는 생긴 것부터 마음이 쉽게 변할 것처럼 생겼다.그러나 주강운은 달랐다.잘생겼을 뿐만 아니라 매너도 있고, 목소리도 다정하고, 법을 잘 아는 변호사이기도 했다. 심지어 늦은 밤에 현진이가 걱정되어 집에 잘 도착했나 전화까지 쳐서 확인하기도 했다. 이런 남자친구라면 엄청 든든할 것 같지 않은가? 입만 나불대는 강한서보다 낫지 않나?그녀는 잔뜩 기대하는 마음으로 유현진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렇게까지 말했는데 혹시 눈치 못 챈 건 아니겠지?'차미주는 귀를 쫑긋거리며 두 사람의 모습을 몰래 지켜보고 있었다.“성우 씨가 전에 강운 씨한테 여자친구가 없는 건 너무 무뚝뚝해서, 여자들과 대화할 줄 모른다고 하셨는데, 아무래도 잘못 알고 있었나 봐요. 강운 씨 너무 설레게 잘 말씀하시는데요?”만약 강한서 그 바보였다면 평생 이런 말을 할 줄 몰랐을 것이다.그녀가 만약 강한서에게 ‘너 너무 비싼 거 아니야?'라고 물었다면 강한서는 분명 ‘네가 너무 가난하다고는 생각 안 해 봤어?'라고 대답했을 것이었다.“...”차미주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그녀의 기분이 순간 확 가라앉았다. ‘역시 현진이네. 날 실망하게 하지 않아. 전혀 눈치 못 채고 있잖아!'주강운은 고
유현진이 입을 열기도 전에 차미주가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다원에서 파는 다른 디저트도 시켜주세요. 다른 것도 아주 맛있거든요.”“...”유현진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 그녀는 먹을 것만 보면 앞뒤를 가리지 않는 차미주와 한성우가 똑같게 느껴졌다.전할 말을 다 전한 주강운은 문자를 받자마자 바로 작별 인사를 하고 떠나버렸다.유현진은 주강운을 엘리베이터 입구까지 데려다주고 다시 돌아왔다. 그녀가 집 안으로 들어왔을 땐 차미주가 이미 송편 포장지를 뜯고 있었다.송편은 두 개씩 들어있었고 포장지도 엄청 고급스럽게 느껴졌다. 안에는 심지어 토끼 모양의 키링이 들어있었다.차미주는 아주 기쁜 듯 소리를 질렀다.“이 키링은 다원에서 한정으로 만든 기념품이야. 40만 원 이상 소비해야 주는 거라고! 우리 회사 직원에게도 있었는데 아주 부러웠거든! 주 변호사님은 정말 너무 좋은 사람 같아. 송편뿐만 아니라 한정판 키링까지 챙겨주셨잖아!”유현진이 빈정대며 말했다.“강운 씨가 네가 짝사랑하고 있는 조 선생님보다 훨씬 낫지 않아? 내가 강운 씨랑 잘되게 이어줄까? 강운 씨 아직도 솔로시잖아.”“...”차미주는 어이가 없었다. 그녀는 바로 키링을 내려놓으며 말했다.“세상에, 현진아. 아무 사람이나 이어줄 생각하지 마. 네가 강한서를 선택한 걸 보면 네 안목이 어떤지 알 수 있어. 그러니 난 너에게 아무것도 바라지 않아.”“...”유현진은 할 말을 잃었다. 그녀와 차미주는 서로에 대해 완벽하게 잘 알고 있었다. 진정한 친구는 서로가 선택한 남자친구를 아주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차미주는 웃으면서 옆에 있던 다른 송편 상자를 들었다.“여기도 있나 확인해 줄까? 내가 대신 포장지 뜯어줄게.”유현진은 고개를 끄덕였다.역시 다른 상자에도 똑같은 토끼 키링이 있었다.차미주는 아주 기뻤다. 그녀는 원래 하나만 있으면 바로 유현진에게 줄 생각이었다. 그러나 현재 키링이 두 개나 있으니 마침 그녀와 유현진이 하나씩 나눠 가지면 되었다.그녀는 본인의 키와 유현
유현진이 살짝 웃었다.「강 대표님, 너무 예민하네요.」강한서는 살짝 즐거운 얼굴로 답장을 보냈다.「추석엔 휴식이야? 휴식이면 같이 추석 보낼까?」유현진은 잠깐 생각에 빠졌다.추석은 가족들이 모여 즐겁게 보내는 명절이었지만 그녀의 가족은 더는 모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유현진은 고개를 떨구고 말했다.「그때 가서 다시 얘기해. 넌 할머니 곁에 있어 줘야지.」강한서는 원래 그녀에게 정인월과 함께 보내자고 말할 생각이었다.그러나 연애를 다시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아직 비밀 연애를 하고 있었기에 유현진이 동의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게다가 강씨 가문이 그녀에게 남겼던 기억들은 별로 좋지 않은 기억들이었고 유현진도 추석에 그 사람들의 얼굴을 보고 싶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강한서는 작성해 놓은 문자를 지워버리고 다시 키링에 대해 언급했다.「나도 커플링 하고 싶어.」유현진은 멍한 표정을 짓다가 이내 살짝 웃어버렸다. ‘뭐야, 아직도 그 소리야? 유치하긴.'그녀가 말했다.「전에 집에 커플 아이템을 엄청 사뒀었는데, 그때 보니까 별로 안 하고 다니지 않았나?」강한서가 이내 또 답장을 보내왔다.「아니, 나한테 핑크 잠옷을 사줘 놓고 그런 말이 나와?」유현진이 크게 웃었다.커플 아이템들은 대부분 파란색과 핑크색이 한 세트로 되어있었고 그녀는 핑크색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녀는 항상 핑크색을 강한서에게 남겨준 것이었다.강한서는 무뚝뚝한 남자였기에 당연히 핑크색을 입으려 하지 않았다.유현진이 대충 얼버무리며 말했다.「핑크색이 뭐 어때서? 여자만 핑크색을 입을 거란 생각하지 마. 지금은 남자들도 핑크색 입는 사람 많다고. 게다가 넌 쿨톤이니까 핑크색을 입으면 더 잘 어울리고 섹시해 보여.」이때, 강한서가 빠르게 답장을 작성했다.「정말이야?」「내가 뭐 하러 널 속여? 그때도 핑크색만 너에게 남겨준 건, 당연히 네가 입으면 더 예쁠 것 같아서 남겨준 거야. 근데 넌 한번을 안 입더라.」강한서는 이미 그녀의 말에 넘어갔다.「그럼.
유현진은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뭐야, 하나는 조 선생님께 전해주고 다른 하나는 성우 씨에게 전해주는 거야? 양측을 다 공략하기로 한 거야?”차미주의 얼굴에 어둠이 드리워졌다.“나랑 그 개자식은 아무런 사이가 아니거든? 그냥 부탁할 일이 있어서 그래. 부탁하러 가는데 빈손으로 갈 수는 없잖아?”“아, 그래?”유현진이 말을 이었다.“냉장고에 애플망고가 있는데. 차라리 그걸 드려. 송편은 네가 제일 좋아하는 다원의 송편이잖아. 조 선생님께 드리는 것도 아니고 한성우 씨에게 그걸 나눠준다고? 아무리 친한 사이라고 해도 이젠 제일 좋아하는 음식까지 나눠줄 정도로 친해진 거야?”차미주는 멍한 표정을 짓더니 한참 후에야 입을 열었다.“이건 어차피 내가 이미 하나 먹고 남은 거잖아. 새것도 아닌데 뭘. 걔한테는 애플망고도 아까워.”그녀는 더는 이 문제에 대해 생각하고 싶지 않은 듯해 보였다. 말을 마친 차미주는 바로 문을 열었다.“나 먼저 나가볼게.”그리고 그녀는 바로 유현진의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주강운이 핸들을 돌려 주차장을 빠져나가려고 할 때 우연히 익숙한 차 번호가 달린 마세라티 차 한 대를 목격하게 되었다.마세라티는 바로 그의 옆을 스쳐 지나갔고 주강운은 뒷좌석에 앉아있는 남자가 송민준이라는 것을 보게 되었다.주강운은 생각에 잠긴 듯 한참을 바라보다 이내 다시 시동을 걸었다.차미주는 바로 옆집 902호 문 앞에 서 있었다.그녀는 속으로 어떻게 하면 말발로 한성우를 홀려 들게 만들어 자신을 도울 수 있게 만들까 한참을 생각했다.대충 생각을 정리한 그녀는 바로 초인종을 눌렀다.한참이 지나도 응답이 없자 그녀는 눈썹 사이를 찌푸렸다. 그녀는 다시 초인종을 눌렀다.아무리 초인종을 눌러도 문이 열리지 않았다. 원래라면 집에 있을 한성우가 오늘따라 왜 보이지 않는지 그녀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그녀는 휴대폰을 들고 마침 한성우에게 연락하려던 찰나에 902호의 문이 열렸다. 그리고 안에서는 여자의 목소리도 들려왔다.“누구세요?”차미주
차미주는 다소 어색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손에 든 송편을 전해주기도 민망했고, 도로 주머니에 넣기도 살짝 민망했다.한성우가 성큼 다가와 소리를 낮추며 물었다.“네가 산 거야?”차미주가 말했다.“아니, 누가 준 거야. 두 개씩 들어있었는데 내가 하나 먹었거든. 남은 하나는 너에게 주려고 가져온 거야.”한성우의 두 눈이 순간 반짝거렸다.그는 올라가는 입꼬리를 손으로 꾹꾹 내리더니 이내 주먹을 움켜쥐고 헛기침을 했다.“큼, 그래서 이거 나한테 주려고 직접 찾아온 거야?”“부탁할 것도 있고.”차미주가 뜸을 들였다.“근데, 지금은 네가 바빠 보이는 것 같으니까 나중에 다시 올게.”말을 마친 그녀는 바로 다시 돌아가려고 했다. 그러나 한성우가 얼른 그녀의 팔을 잡아당겼다.“안 바빠. 나 아주 한가해. 그러니까 들어와서 얘기해.”그는 그녀를 집 안으로 끌어당겼다.차미주는 신하리가 있었던 것을 떠올리며 둘만의 시간을 방해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 바로 거절할 생각이었다.그러나 그녀가 팔을 뿌리치기도 전에 한성우는 이미 그녀를 끌고 집 안 거실로 들어왔다. 당황한 표정을 짓던 그녀는 이내 다시 팔을 빼냈다.한성우는 송편을 테이블 위에 내려두었다. 그리고 이내 주방으로 갔다.차미주는 집 안을 두리번거리고 있었고 소파 위엔 여성의 핸드백이 고스란히 놓여 있었다. 바닥엔 하이힐이 이리저리 널브러져 있었고 테이블 위엔 심지어 먹다 만 컵라면도 있었다.아마도 신하리가 먹은 것으로 추정되었다. 한성우는 입맛이 까다로워 인스턴트 음식을 절대 입에 대지 않았다.“뭐 마실래?”한성우의 목소리가 주방에서 들려왔다.정신을 차린 차미주가 말했다.“그냥 물이면 돼.”냉장고를 열던 한성우는 순간 멈칫하더니 이내 다시 냉장고 문을 닫아버렸다. 그는 컵을 들고 뜨거운 물을 받았다.차미주는 소파에 자리 잡고 앉아 등을 기댔고 순간 손에 뭔가가 잡혔다. 고개를 떨군 그녀는 당황함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것은 바로 브래지어였기 때문이다.그녀는 손에 잡힌 물건을 멍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