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현진은 조금 충격에 휩싸였다. 숙소를 마련해 준 것으로 이미 충분했는데 매니저 역시 엘리트로 보내줬다. ‘민준 오빠가 나한테 너무 잘해주는 거 아냐?’좀... 지나치게 잘해주는 것 같았다. 유현진이 데굴 머리를 굴렸다. 그녀에겐 아무리 생각해도 송민준이 탐낼만한 것이 없었다. 송민준의 모습은 그녀를 마음에 둔 사람 같지도 않았다. 그럼 설마... 송민준이 유현진에게 여배우가 될 자질이 있는 것 같아 그녀를 전적으로 밀어주려는 걸까?유현진이 자조적으로 생각했다. ‘됐어. 이미 계약서에 사인도 했고 이사도 했으니 하나씩 해결하자.’이때 유현진의 휴대전화가 울렸고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확인하니 강한서 그 미친놈이 그녀에 계좌이체를 한 것이었다. 그녀는 힐끗 그가 보낸 문자를 확인했다. 「너가 걔한테 안기기까지 했잖아. 난 그때 화도 내지 않았어.」처음에는 큰 변화없던 유현진은 문자를 읽고 입술을 움찔거렸다. ‘또 옛 일을 들먹이다니!’「너도 그냥 아주 조금만 화내면 안 돼?」그녀는 문자 내용을 뚫어지게 쳐다보더니 이를 악물고 2000만 원을 입금했다. 「아니!」강한서가 이내 2000만 원을 다시 입급했다. 「언제까지 화 낼꺼야?」유현진이 대답을 하지 않자 강한서가 또 2억을 보내왔다. 「훈이 곧 수능이야. 아까 전화 와서 시험 장소까지 데려다주면 안 되냐고 해서 알겠다고 했어. 넌 올 거야?」유현진: ...이훈이 아직 그녀에게는 연락도 하지 않았는데 강한서와는 만나기까지 했다고? '어떻게 강한서랑 연락하고 있었던 거지?'그녀는 강한서가 자신에게 장난을 치고 있다는 생각에 답장을 하지 않았고 이훈에게 연락을 넣었다.다른 한편 구암동 고아원에선 민경하가 이훈을 도와 짐을 풀고 있었다. “이것뿐이예요?”민경하가 물었다. 이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머릿속에 다 있어요.”민경하가 웃으며 말했다. “타세요.”힐끗 쳐다본 민경하가 핸들을 돌리며 말했다. “사실대로 얘기해요.”이훈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전화를 받
강한서 이 개자식!‘이훈을 데려가면 내가 뭐 거기에 낚여서 갈 줄 알고? 안 가!’하지만 몇 분 지나지 않아 노원장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현진아, 매번 신세가 많아. 훈이 시험장이 고아원이랑 너무 멀어서 말이야. 나랑 손 선생님은 경험 부족이라 시험장 나온 후 호텔을 예약하려니까 이미 방이 없더라고. 시험 전에 훈이가 제대로 쉬지 못할까 봐 걱정이었는데, 네가 있어서 다행이야.”수능 시즌에는 시험장 부근의 호텔은 늘 만실이었다. 심지어 가격도 평소보다 몇 배는 비싸져 환경도 안 좋고 방음도 전혀 되지 않는 객실이 1박에 60만 원이 넘었다. 좋은 객실은 100만 원 이상이었지만, 그것마저 전부 예약이 나간 상태였다. 노원장은 원래 캠핑카를 빌려 운전기사를 고용해 이훈을 데려다줄 생각이었다. 캠핑카에서는 쉴 수도 있으니 일석이조였다. 하지만 이훈이 캠핑카 대여 가격을 듣더니 바로 노원장을 만류했다. 이훈은 저녁 9시부터 잠을 자면 다음 날 아침 5시에는 일어날 수 있다며 그 정도면 늦지 않게 시험장에 도착할 수 있다고 했다. 비록 이훈이 그렇게 말하며 노원장을 안심시켰지만 노원장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바로 그때, 유현진이 마침 사람을 보내 이훈을 데려가 노원장의 걱정을 단번에 해결했다. 노원장의 말을 들은 유현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강한서 이 자식이 내가 데려간 것처럼 얘기해 놓다니!’노원장이 연신 고맙다고 인사를 하니 유현진이 오히려 어쩔 줄 몰라 했다. “저도 지금 마침 한가하던 참이라, 전혀 번거롭지 않아요, 하하.”“현진아, 그리고 한 가지 더 할 얘기가 있어.”“네, 말씀하세요.”“고아원 쪽에는 이제 더 이상 돈을 보내지 않아도 돼. 지난주에 기부 기관을 통해 기부금이 들어왔는데 고아원의 1년 지출에 가까운 돈을 받았어. 그리고 그분이 기부 기관을 통해 앞으로 우리 고아원의 장기 후원자가 되겠다고 하시더라고. 네가 유상수와 소송 중인 거 알아. 너도 지금 돈이 필요할 텐데, 돈은 네가 꼭 필요한 곳에
유현진의 말처럼 강한서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10여 년은 넘었다. 그런데 강의를?하지만 곧 이훈은 강한서의 실력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강한서가 가르쳐주는 것은 일반적인 계산법이 아니었다. 그는 이훈에게 문제를 푸는 방법을 가르쳤다. 예를 들어 선택 문제 같은 경우, 강한서는 대부분 문제를 계산을 거치지 않고 주어진 선택항을 이용해 역으로 답안을 유추해 냈다. 혹은 문제 자체를 제대로 파악하여 틀린 선택항을 배제하는 방법으로 문제를 풀었다. 이런 방법은 사실 선생님도 가르친 적이 있다. 하지만 강한서처럼 핵심을 파악하지는 못했다. 이훈은 빠른 속도로 빠져들었다. 시험지 두 장을 강의한 강한서는 아직 풀어보지 못한 문제집을 가져와 테스트를 진행했다. 이훈은 기초가 탄탄하고 뭐든지 빨리 배우는 편이라 두 시간 만에 선택 문제를 완성하는 속도가 예전보다 10여 분이 빨라졌고 정확도는 70% 이상이었다. 이훈은 특훈의 결과에 아주 만족했다. 전에는 선택 문제를 푸는데 많은 시간을 들였지만 정확도는 제일 높아야 80%였다. 하지만 강한서는 이훈이 푼 문제집을 들여다보더니 미간을 찌푸렸다. “아직 기초가 조금 약하네.”이훈: … 강한서의 휴대폰이 울렸다. 발신자가 민경하임을 확인한 강한서가 통화 버튼을 눌러 전화를 받았다. “대표님, 사모님께서 지금 클라우드 아파트 7동 901호에서 지내신다고 합니다.”강한서가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누구 집이에요?”“송 대표님 명의로 되어있습니다.”잠시 머뭇거리던 민경하가 말했다. “8, 9, 10층 전부 송 대표님 명의의 자택입니다.”‘그러니까 제 말은, 사모님과 이웃사촌으로 지내시긴 어려울 것 같다는 뜻이죠.’이웃은커녕, 아래 윗집 사는 같은 동네 주민도 할 수가 없었다.송민준의 이 방법은 정말이지 묘책이었다. 누구를 막기 위한 것인지 목적이 너무나도 분명했다. 그는 심지어 강한서가 어떻게 나올 것인지에 대해 예측하고 있었다. 강한서: …강한서가 입술을 짓이기며 말했다. “송민준
증거는 없었지만 그는 여전히 이 일이 절대 단순한 실수일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선영은 병원에서 샘플이 섞이는 일은 극히 드물다고 했다. 누가 한 짓인지 알아내기 어렵다는 건, 상대방의 일 처리가 깔끔하다는 뜻이었다. 당시 병원에서 태어나는 아기를 관리하던 간호사랑 연락이 닿았었다. 하지만 너무 오래전 일이라 그때의 상황을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했다. 아무리 조사를 해도 여전히 오리무중이었다. 그는 어쩔 수 없이 먼저 사람을 붙여 어떤 반응을 보일지 감시하도록 했다. 그는 고개를 숙여 유현진 자료 속의 사진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유현진이 자신의 어머니와 많이 닮았으니 다행이지, 아니면 평생토록 여동생이 이 세상에 있다는 사실도 모르고 지낼 뻔했다. 송민준이 한참 생각에 잠겨있는데, 문이 갑자기 열리고 누군가 들어왔다. 잠시 움찔하던 송민준은 들어오는 사람이 송가람임을 확인하고는 퉁명스럽게 말했다. “가람아, 너 너무 네 멋대로 내 사무실에 들어오는 거 아니야? 노크도 없이.”“오빠가 문을 제대로 안 닫은 거잖아.”송가람이 걸어 들어오더니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오빠가 여자친구랑 있는 것도 아니고, 내가 뭐 방해하는 것도 아니잖아.”“그래도 매너는 지켜야지.”“알겠어. 다음에는 노크할게.”책상 위의 자료를 힐끔 쳐다보던 송가람이 머뭇거리더니 말했다. “오빠는 현진 언니를 꽤 좋게 봤나 봐. 들었는데 이준 씨를 매니저로 붙여줬다며?”송민준은 이준을 스카우트 하는데 많은 돈과 노력을 들였다. 원래는 송민준에게 이준을 데려와 회사에 있는 탑급 연예인에게 붙여주라고 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송민준이 갑자기 이준을 유현진에게 보낸 것은 예상 밖의 일이었다. 심지어 이준을 유현진의 전속 매니저로 만들었으니 말이다. 송민준의 이런 특별 대우는 송가람 이외에 아무도 받아본 적이 없었다. 그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난 유현진 씨에게 재능이 있다고 생각해. 브랜드 뉴 엔터테인먼트의 대표 연예인이 될수도 있어.”유현진이 친동생이기에 무
송가람의 말에 흠칫한 송민준의 얼굴이 차게 식었다. “송민영이랑 계약했어?”굳어진 송민준의 얼굴을 확인하지 못한 송가람은 자랑스럽게 말을 이었다. “바이브 엔터테인먼트랑 계약 끝났어. 내가 킹 엔터에서 오빠를 위해 뺏어온 거야. 계약금은 16억, 괜찮지?”송민준은 얼굴을 일그러뜨린 채 이미 지장이 찍힌 계약서를 내려다보았다. 그의 얼굴이 더욱 어둡게 굳어졌다. 송가람은 옆에서 여전히 조잘댔다. “이번에는 오빠가 정말 나한테 고마워해야 할 거야. 큰 거 바라는 건 아니고, 날 데리고…”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송민준이 호통쳤다. “누가 네 마음대로 계약하래?”송가람은 그의 목소리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송민준은 한 번도 송가람에게 화를 낸 적이 없었다. 심지어 지금처럼 큰 소리로 꾸짖는 경우도 아주 적었다. 그녀는 순간 상황 판단이 되지 않아 어리둥절해졌다. “오빠, 난 그냥 오빠를 도우려던 것뿐이야. 송민영은 이미 바이브 엔터테인먼트랑 계약도 끝났고. 얼마나 많은 회사가 송민영이랑 계약을 맺으려고 했는데. 계약금을 제일 많이 부른 회사는 60억이었어. 난 16억에 계약을 맺었고. 이게 잘못된 거야?”“60억짜리 계약을 놔두고 왜 고작 16억짜리 계약을 너랑 맺었을 것 같아? 그런 생각은 안 해봤어? 지금 송민영에게 돌고 있는 루머들은 둘째치더라도, 송민영 작품들, 어느 것 하나 좋은 평가가 없잖아. 내가 그런 쓰레기나 받아줘야겠어?”송민준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 “지금 당장 송민영 찾아가서 계약 해지해.”송가람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녀는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이미 끝난 계약을 내가 어떻게?”“그러게 왜 계약 전에 나한테 한 마디 상의도 안 했어?”송민준이 여전히 미간을 팍 찌푸린 채 말했다. “송민영 정도면, 계약하기 전에 나한테 먼저 얘기를 했어야지. 너 지금 이게 나를 돕는 거야? 이건 날 방해하는 것밖에 안 돼!”송민준은 안색이 안 좋아진 송가람을 발견하지 못하고 계속 툴툴거렸다. “평소에 좋아하는 연예인을
심지어 그중 두번 모두 송민준과 함께 있을 때였다. 그러니 송병천도 자연히 그가 송가람을 제대로 챙기지 못한 탓이라고 생각이 되었다. “너 대체 어떻게 된 거야. 가람이한테 화를 내다니. 가람이 몸 안 좋은 거 몰라? 좋게 좋게 말하면 되잖아. 연예인이랑 계약 하나 한 게 뭐 그렇게 대단한 일이라고. 계약하고 싶다면 하게 놔둬. 성공하든 못하든, 어차피 큰돈도 아니고, 그게 그렇게까지 화낼 일이야?”송민준이 입술을 짓이기며 대답하지 않았다. 서해금이 물을 떠 오더니 송병천을 말렸다. “됐어요. 가람이도 괜찮잖아요. 가람이 일이라면 그저 혈안이 되어서는. 민준이도 회사를 생각해서 그러는 거죠. 얘가 얼마나 가람이를 아끼는지 아직도 몰라요? 별것도 아닌 일로, 애들 감정 상하게 하지 말아요.”송가람도 아래층의 소란에 잠에서 깨어났다. 그녀가 내려오며 말했다. “아빠, 저 괜찮다니까요. 오빠는 왜 또 부르셨어요?”“괜찮으니까 이 정도만 하는 거지, 진짜 무슨 일이라도 있었으면 내가 아주 패버렸을 거야!”송병천이 송민준을 째려보았다. “이 일은 이제 신경 쓰지 마. 계약했으면 한 거지, 그 정도도 내가 감당 못할까 봐?”송민준이 이를 악물며 말했다. “아버지, 이건 돈의 문제가 아니에요.”“팍—”송병천이 팍 소리가 나게 손에 들린 컵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으며 호통쳤다. “할 말이 더 남았어?”“민준아, 그만해.”서해금이 나서서 두 사람을 만류했다. “너희 아버지 혈압 높으시잖아. 화내시면 안 돼. 이번 일은 그냥 아버지 뜻대로 해. 가람이가 계약한 연예인에게 정말 문제가 있다면, 정말 논란을 일으켰을 때, 그때 가서 계약 해지하면 되잖아. 이런 일로 아버지 마음 상하게 하지 말고.”주먹을 꽉 움켜쥔 송민준은 한참 후에야 알겠다고 대답했다. 그는 송병천에게는 자신보다 송가람이 더 아픈 손가락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송병천은 딸바보였다. 그때 딸을 지키지 못했던 것을 떠올리면 그는 지금도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는 몇 년을 거쳐
얼마 전 송민영의 팬들은 송민영이 중전 역할을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봄의 연인”의 제작사와 싸운 적이 있었다. ‘금방 옮긴 회사에서 이것을 리트윗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경고라도 하려는 걸까?’그리고 곧 「계약 해지」라는 해시태그가 실검에 올랐다. 팬들은 송민영을 대신해 입을 열었고 브랜드 뉴 엔터테인먼트에 불평을 터뜨렸다. 브랜드 뉴 엔터테인먼트와 계약이 성사되어 기쁨을 만끽하던 송민영은 실검을 보자마자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그녀는 얼른 연락을 돌려 실검을 내리도록 했다. “이 멍청한 것들, 미친 거야?”송민영은 분노가 차올랐다. “내가 어떻게 따온 계약인데, 이런 난리를 쳐. 진짜 자기들이 뭐라도 되는 줄 알고, 이래라 저래라야. 내가 누구랑 계약을 하든 말든, 무슨 상관이라고!”임효우가 목소리를 잔뜩 낮추고는 말했다. “언니, 목소리 좀 낮춰요. 밖에서 그런 얘기 마음대로 하면 안 돼요. 팬들 덕분에 먹고 사는 건데,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 욕하면 안 되죠.”“덕분에 먹고 살기는 무슨. 지난주 잡지는 겨우 2억 원의 매출밖에 못 올려줬어. 이청하 매출은 얼마나 되는 줄 알아? 내 두 배가 넘는다고! 좋아한다고 말만 하면 뭐하냐고, 행동으로 보여줘야 할 거 아니야! 사고를 치는 것도 다 걔들이잖아!”임효우가 입술을 앙다물었다. 팬들이 스트리밍을 돌릴 때는 “우리 아기들”하면서 좋아하더니, 말썽을 일으킬 때는 멍청한 것들이라며 욕을 해댔다. 그녀를 진심으로 아끼는 팬들이 이런 그녀의 진짜 모습을 알게 된다면 어떤 반응일까? 아름드리 펜션.하루 사이에 이훈이 선택 문제를 푸는 속도가 확연히 빨라졌다. 강한서는 또 다른 문제들을 가져와 이훈에게 가르쳤다. 그를 바라보는 이훈의 눈빛은 어느샌가 의심에서 존경으로 변해있었다. “매형, 대학교 때 전공이 뭐였어요?”“기계공학과랑 물리전자공학. 복수전공했어.”이훈: ...두 전공 모두 하나만 하기에도 벅찰 것 같은 것들인데, 심지어 두 개를 같이 복수전공을했다니. ‘역시
강한서의 입꼬리 움찔 떨렸다. 이훈이 웃으며 물었다. “누구한테 말해도 소용없다면서요?”강한서가 찻잔을 내려놓았다. “해보자는 거야?”“네?”강한서가 천천히 말했다. “태권도 검은띠, 주짓수 10단, 격투기 유단자의 실전 싸움이 어떤 건지 궁금하냐고.”이훈: ...“매형, 잘못했어요.”굽혀야 할 땐 굽힐 줄도 아는 이런 모습은 정말이지 유현진을 닮은 것 같았다. 이훈은 책을 덮고 책상에 엎드리더니 물었다. “매형, 현진 누나랑은 어떻게 만난 거예요?”이틀 동안 함께 지내면서 이훈은 이제 예전처럼 강한서를 경계하지 않았다. 강한서는 휴대폰을 들여다보며 이훈의 질문에 대충 대답했다. “내가 구해줬어.”이훈이 깜짝 놀라며 말했다. “에이, 아닌 것 같아요. 모르는 사람이면 그대로 두고 신경도 쓰지 않는 타입 같은데요.”이훈은 똑똑한 아이였다. 강한서가 자신을 잘 대해주는 것은 유현진 때문이었다. 그는 원래 이렇게 오지랖이 넓은 성격은 아니었다. 강한서는 잠시 아무 말도 없이 생각에 잠겼다. 이훈의 말도 틀린 말은 아니었다. 애초에 그의 목적은 유현진을 구하는 것이 아니었다. 단지 그녀가 그때 그 교통사고 현장에 나타났기 때문에 그녀를 구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때 알게 됐다고 하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었다. 유현진은 그를 전혀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만나게 됐으면서 왜 이혼했어요?”강한서는 당연히 자신의 과거를 얘기해 줄 수는 없었다. 그는 여전히 도도한 태도를 유지한 채 말했다. “이건 이혼이 아니라, 사랑싸움이야. 알겠어?”이훈: ...‘입만 살아서는.’유현진을 만나기 위해 이훈을 볼모처럼 데려와 놓고도 사랑싸움이라니...“수다 떠는 시간 끝.”강한서가 문제집을 꺼내 들며 말했다. “다 풀고 들어가서 자.”다음 날 아침 6시 30분, 유현진이 운전을 해 아름드리 펜션에 도착했다. 엔진 소리를 들은 강한서가 아래층으로 내려왔다. 무더운 하루였다. 아침에 눈을 떠서부터 후덥지근한 공
식사 자리가 마무리된 후 홍혜림을 배웅하러 나온 서해금의 뒤를 오성빈이 따라나서며 나지막이 물었다. “서 대표님이 말씀하신대로 했으니 약속하신 건...”“걱정마세요.”서해금이 시선을 거두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일만 잘 마무리 되면 약속드린 건 꼭 지켜드리죠.”“그럼 최대한 빨리 해결하도록 할게요. 질질 끌어봐야 좋을게 없으니까요.”“부탁드려요.”고개를 끄덕인 서해금이 성월에게 눈짓을 보냈다. 그러자 서해금의 뜻을 바로 알아들은 성월이 곧바로 오성빈을 배웅했다. 사실 학교에서는 진윤의 부정행위에 관해 아무런 결론도 내린 것이 없었다. 여론은 여전히 뜨겁기만 했다. 하지만 그런 때일수록 여론에 흔들리지 말아야 했다. 만약 조사 결과에 조금이라도 문제가 생긴다면 그 여론은 오히려 학교에 독이 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성빈은 학교 임원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며칠 동안이나 홍혜림의 연락을 무시했다. 물론 그 역시도 최대한 빨리 이 일을 마무리하고 싶었다. 진윤이 부정행위를 저질렀다는 증거는 전혀 찾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오성빈이 모든 증거 수집을 마치고 드디어 진윤의 누명을 벗겨주는 쇼를 하려던 그때, 경찰이 갑자기 학교로 찾아왔다. 진수 그룹에서 진윤의 시험 부정행위 문제로 경찰에 신고를 한 탓이었다. 교장의 연락을 받은 오성빈은 그만 멍해졌다. 제일 먼저 서해금이 떠올랐지만 그녀가 약속했던 일을 떠올린 그는 곧 주먹을 꽉 움켜쥐고 서해금에게 연락하고 싶은 충동을 꾹 참으며 홍혜림의 연락처를 눌렀다. 홍혜림이 전화를 받자마자 오성빈이 물었다. “사모님, 어제 분명 진윤 학생 일은 잘 처리해 드리겠다고 말씀 드렸잖아요. 왜 신고를 하신 거예요?”홍혜림이 놀란 말투로 말했다. “신고라뇨? 전 신고한 적 없어요.”“사모님이 신고하신 게 아니라고요?”의아한 듯 묻는 오성 빈에게 홍혜림이 대답했다. “전 신고한 적 없어요. 교수님께서 이미 윤이가 부정행위를 하지 않았다는 증거를 찾으셨다면서 조치를 취하시겠다고 말씀하셨잖아요. 그래서 계속
장준의 아버지는 요직을 맡고 있었고 장씨 가문엔 그의 아버지를 제외하고도 수많은 정치인들이 있었다. 그랬기에 가족 중 단 한명이라도 꼬리를 밟힌다면 그의 가문은 수습 불가능한 상황으로 치닫기도 했다. 장준이 저질렀던 인간 같지도 않은 일들이 하나하나 밝혀지기 시작했다. 폭행, 음주 운전, 도박, 성폭행...피해자들이 하나둘 인터넷에 장준의 진짜 모습을 폭로했다. 수많은 피해자의 목소리를 누를 수 없었던 장씨 가문의 스캔들이 결국 전부 드러나고 말았다. 홍혜림 역시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녀는 곧 회사 계정으로 진윤은 그날 운전을 하지 않았다는 입장을 발표와 함께 그와 관련된 증거들과 범죄경력증명서를 전부 공개 했다. [그러니까 진윤은 또 다른 도련님의 기사를 막기 위해 총알받이가 됐다는 거네?][어쩐지 뭔가 이상하더라니.][그렇게 심각한 교통사고에 진윤 한 사람만 공개 처형하는 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했어요. 역시 여론을 부추기는 사람이 있었다는 거네요.][발 빼려고 하지 마. 장준이 주범이었다고 하더라도 진윤이 그 경기와 아무런 관련도 없는 건 아니잖아. 끼리끼리는 과학이라고 했는데 그놈이 그놈 아니겠어? 서화 대학에서도 진윤의 재시험 부정행위를 인정 했잖아.][학교엔 이미 소문을 파다해요. 이번 일과는 관련이 없다고 해도 언젠가는 비슷한 사고를 쳤을 거예요. 장준이나 진윤이나 크게 다를 거 없잖아요.][저기요. 두 사람을 싸잡아 욕 하지는 마요. 한 명은 범죄자고 다른 한 명은 그저 인성에 문제가 있는 것뿐이에요. 그게 어떻게 같아요? 얼른 진상 규명이나 하시죠. 피해자에게 피해 보상은 해야 하잖아요.]...휴대폰을 한 쪽으로 던져버린 서해금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장준이었어? 어쩐지...”성월이 그녀에게 차를 건네며 나지막이 물었다. “대표님, 진윤 씨 일은 이미 어느 정도 해결이 된 것 같아요. 그럼 저희 계획은 어떻게 해요?”“아직 끝나지 않았어요.”서해금이 찻잔을 들어 올리며 덤덤하게 말했다. “홍혜림은 누구보다
장씨 가문 아들이라는 이유로 여론이 들끓는 것을 염려한 탓인지 기사는 간단한 몇 마디 말로 상황을 간결하게 보도했다. 하지만 한현진은 감추려고 할수록 일은 점점 더 커질 것이라 생각했다. 드디어 주강운이 손을 쓴 모양이었다.고개를 들어 강한서를 바라보는 한현진의 눈이 별처럼 반짝였다.“여보, 장준이 잡힌 것 같아.”강한서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누가 그래?”한현진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며 강한서에게 한성우가 보낸 기사를 보여주었다. “시간, 교통사고, 장 모 씨, 약물. 이 단어들만 봐도 누군지 뻔하잖아.”강한서가 놀랍다는 듯 말했다. “장 모 씨가 정말 장준이야? 어떻게 잡힌 거지? 누가 신고라도 한 건가.”“나쁜 짓을 그렇게 많이 했으니 벌을 받는 거지. 피해가 한두 명이면 집안 세력으로 어떻게든 막을 수 있겠지만 그 수많은 피해자를 전부 막을 수는 없잖아?”강한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기사에 다른 얘기는 없어?”“없어. 그냥 언급만 한 수준이야. 하지만 이 기사를 시작으로 진실을 밝혀 나가려는 사람은 분명 있을 거야. 그건 우리가 상관할 일이 아니지.”한현진이 나지막이 말했다. “장준과 관련된 기사가 퍼져 나가기 시작하면 사모님께 이 기회를 빌려 진윤 씨에 관련한 입장 발표를 하시라고 말씀 드려.”강한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 아침 연락드릴게.”강한서는 이상할 정도 순순히 대답했다. 예전이라면 어떻게 된 일이냐며 꼬치꼬치 캐 물었을 것이 분명했다. 지금처럼 쉽게 넘어갈 리가 없었다.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한현진의 시선에 강한서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가 다정한 목소리로 한현진에게 물었다.“왜?”하지만 한현진은 곧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아무것도 아니야. 산책 가자.”강한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옷 가지고 올게.”강한서의 뒷모습을 지긋이 바라보던 한현진이 휴대폰을 들어 한성우에게 문자를 보냈다. [오늘 강한서가 좀 이상해요. 평소엔 꼬치꼬치 따지더니 오늘은 기사를 보여줘도 아무것도
멈칫한 강한서가 입술을 짓이겼다. “누가 어딜 들어갔다고?”강한서의 목소리에 수화기 너머의 사람은 순간 조용해졌다. 그러더니 곧 어색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한서야, 야근 안 했어? 오늘은 일찍 퇴근했네.”강한서는 화제를 돌리는 한성우의 말에 전혀 동요하지 않은 채 다시 물었다. “방금 누가 어딜 들어갔다고?”“방금 내가 뭐라고 했어?”한성우가 모른 척 대답했다. “갑자기 네가 튀어나오는 탓에 다 잊어버렸잖아.”강한서가 말했다. “강운이가 장준을 처넣었다며.”한성우: ...후회 막심한 얼굴로 자신의 입을 툭 친 한성우가 웃으며 대답했다. “어, 맞아. 바로 그거야. 나도 방금 어디서 그 소식을 듣고 형수님과 수다나 떨려고 전화한 거야. 너도 알잖아. 형수님과 내가 뒷담화 할 땐 죽이 척척 맞는 거.”“그래?”강한서가 담담한 말투로 말을 이었다. “난 두 사람이 나한테 뭔가 숨기는 게 있는 줄 알았지.”“그럴 리가 있겠어?” 한성우가 당당하게 말했다. “우리가 널 속일 수는 있고? 두 사람 요즘 진윤 씨 일 때문에 걱정이 많잖아. 그래서 나도 신경 좀 썼지. 봐, 소식을 듣고는 바로 알려 주려고 전화했잖아.”“그래.”강한서의 대답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던 한성우의 귓가로 곧 다시 강한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현진이가 강운이한테 뭐라고 했는데?”한성우: ...한성우가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뭐? 형수님이 강운이와 연락했어?”잠시 침묵하던 강한서가 다시 입을 열었다. “너한테 전해달라고 한 말이 뭐냐고.”의심이 아닌 확신에 찬 말투에 한성우는 머리가 찌릿, 할 정도로 소름이 돋았다. ‘조금만 참았다가 나중에 전화할 것이지, 난 왜 하필 지금 한 거야?’어차피 한강서가 전부 눈치 챈 마당에 더는 숨길 필요가 없어진 한성우는 결국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형수님이 너한테 숨겼다고 뭐라고 하지 마. 형수님이 강운이에게 연락한 게 아냐. 나한테 눈치를 주라고 부탁하셨어. 강운이네는 줄곧 장씨 가문과 사이가 안 좋았잖아
“실망이라니. 엄마는 단 한 번도 널 창피하게 여긴 적 없어. 넌 엄마가 배 아파 낳은 내 자식이야. 내가 널 몰라? 엄마는 그냥 네가 이번 일 때문에 힘들어 할까봐 그래. 엄마는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어.”“요즘 네가 말도 없고 조용하기만 해서 우리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진윤의 등을 어루만지며 홍혜림이 나지막이 말했다. “이런 일은 아무것도 아니야. 인생 살면서 이런 일 안 겪는 사람은 없어. 이겨내면 돼.”고개를 끄덕인 진윤이 홍혜림을 꽉 끌어안았다. ...아름드리.“그러니까 아주머니가 뒤에서 여론몰이에 동조했다는 거야?”한현진이 자몽을 까며 강한서에게 말하자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 절묘한 타이밍에 나타나서 알아봤더니 오성빈 교수라는 사람, 성 비서님의 먼 친척이시더라고. 그러니까 그분이 나서서 얘기만 해주면 잘 해결될 가능성이 높아.”잠시 생각하던 한현진이 말했다. “그래서 일부러 홍혜림 씨가 신세를 질 수밖에 없게 만드시겠다? 홍혜림 씨를 다시 뺏어가려는 거야?”“그럴 수도 있지만 그게 전부는 아닌 것 같아.”한현진이 눈을 반짝이며 강한서 곁으로 다가갔다. 꿍꿍이 가득한 얼굴로 한현진이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그럼 우리는 그걸 지켜보면 되겠네. 본인 계획대로 흘러가고 있다고 착각하게 만든 다음대체 뭘 하려는 생각인지 지켜보자고.”강한서가 어쩐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한현진을 쳐다보았다. 그 표정에 어리둥절해진 한현진이 물었다. “왜 그렇게 웃어? 뭐야, 그 음흉한 웃음은.”강한서가 나지막이 대답했다. “근묵자흑이라는 단어가 너무 맞는 말인 것 같아서.”한현진: ?“설명 똑바로 해. 누가 그 묵인데?”강한서는 씩 웃으며 한현진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한현진이 깐 자몽을 가져가 한 입 베어 문 강한서의 표정이 곧 강한 신맛에 잔뜩 일그러졌다. 자몽을 겨우 삼킨 강한서가 인상을 찌푸린 채 믿을 수 없다는 듯 말했다. “넌 이걸 대체 어떻게 아무렇지 않게 먹을 수 있는 거야.”한현진이 눈을 깜빡였다.
[그래도 학교 측에서 끝까지 부정행위라고 주장하면서 재수강하라고 하면 어떡해요?]강한서가 웃으며 말했다. [넌 언제든 법적 대응을 할 수 있다는 걸 잊지 마. 내가 대신 신고해줘?]진윤은 그제야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 번뜩 정신이 들었다. 인터넷에 도배된 악플로 잔뜩 지친 진윤은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는 일에만 몰두해 있었다. 그는 심지어 학교 측에 새로운 시험 문제를 내도록 제안한 후 라이브 방송을 통해 부정행위가 없었음을 증명할까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강한서의 한마디는 진윤의 모든 고민을 한 방에 해결했다. 스스로의 결백을 증명하는 건 결국 그 사람들이 파놓은 함정에 뛰어 드는 것 과 다를 바가 없었다. 사람들은 애초부터 그가 부정행위를 했을 거라 확신하고 있었다. 그러니 진윤이 라이브 방송으로 결백을 증명한다고 한다고 해도 사람들은 또 미리 답을 알고 있으면서 카메라 앞에서 쇼를 하는 것이라며 의심하게 뻔했다. 부정행위의 증명해야 할 사람은 진윤이 아니라 그를 의심한 사람들이었다. 진윤이 순간 눈을 반짝였다. [얼른 엄마를 말려야겠어요. 교수님에게 부탁할 필요가 없잖아요. 전 당당하니까 얼마든지 조사하라고 해요.][잠깐만.]강한서가 진윤을 불렀다. [잠깐만 기다려 봐.][왜요?]입술을 깨물던 강한서가 중얼거렸다. [고작 학생인 네가 시험에서 부정행위를 했다는 이유만으로 여론이 이 정도로 들끓는게 처음부터 이상했어. 이제야 의문이 조금 풀리는 것 같네.][그게 뭔데요. 얼른 얘기 해줘요.]성격 급한 진윤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는 강한서 때문에 괜히 마음만 조급해졌다. 강한서가 말했다. [넌 지금 아무것도 하지 마. 어머님께도 오 교수님이라는 분 만나보라고 해. 뭐라고 하는지 얘기나 들어 보고 다시 대책을 세워야해.]진윤이 조금 전처럼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형님, 어차피 이렇게 된 거 그 인간들의 계략을 역이용하시려는 거예요?]강한서가 쯧, 혀를 차며 말했다. [매형이라고 불러]진윤: ...홍혜림과
법적 장모님이라는 여섯 글자에 멍한 표정을 짓던 강한서가 물었다. [서해금 대표 말하는 거야?][네. 그 분, 현진 누나 새엄마잖아요. 그럼 형님에겐 법적 장모님 아녜요?]강한서: ...‘맞긴 하네.’[난 오성빈 교수님과는 전혀 모르는 사이야.]멈칫하던 강한서가 물었다. [그건 왜 묻는데?]강한서의 말에 기분이 축 처진 진윤이 한참만에야 대답했다. [학교에서 제 재시험 성적을 취소하더니 재수강하래요.]강한서가 미간을 찌푸렸다. [그게 무슨 말이야? 학교에서는 네가 부정행위를 했다고 판단한 거야?][명백하게 얘기한 건 아닌데 사실은 그런 셈이죠. 하지만 다른 처분은 없이 그냥 재수강만 하래요. 친한 친구에게 들은 건데 학교에 신고 전화가 빗발쳤었데요. 홈페이지에도 전부 부정행위 진상 규명을 바라는 댓글로 도배됐다고 하더라고요.][아마도 학교의 이미지 회복을 위한 판단이었던 것 같아요. 저에게 적당한 책임을 전가할 수도 있고 대중들에게는 그들이 원하던 조치를 취했다고 보여줄 수 있으니까요.]강한서는 여전히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 물었다. [그럼 교수님에게는 무슨 일로 연락을 하려는 거야?][조교님께서 이번 일은 오 교수님 담당이라고 하셔서요. 비록 재수강으로 결론이 났다고 하지만 아직 완전히 결정된 건 아니니까요. 그래서 엄마는 오해를 풀기 위해 오 교수님을 한 번 만나 얘기를 나누고 싶어 하세요.][아는 분께 부탁해 오 교수님과의 자리를 만들어보려고 했지만 결국은 연락이 닿지 않았어요. 하지만 마침 형님 법적 장모님께서 제 병문안을 오셨다가 그 얘기를 들으시더니 오 교수님과 아는 사이라고 하더라고요.][꽤 가까운 사이인 것 같아 엄마는 만약 가능하다면 그분께 다리를 놔달라고 부탁할 생각이세요.]진윤이 한숨을 내쉬었다. [워낙 지적인 얼굴을 하고 계서서 좋은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던데요. 딸인 현진 누나에게도 가식적으로 대하는 것 같던데 전 그런 사람이 진심으로 저희를 도와줄 리가 없잖아요.][방금 형님과 얘기를 하면서 혹시 형님도
홍혜림이 서해금에게 얘기를 꺼내려던 그때, 진윤이 그녀의 말을 잘랐다. “잠깐 실례할게요.”홍혜림이 곧바로 하려던 말을 삼키고 몸을 일으켰다. “엄마가 부축해줄게.”“네.”진윤이 대답했다. 진윤을 부축하며 병실을 나서는 홍혜림을 쳐다보던 서해금이 고개를 돌려 성월에게 물었다. “아무 문제없이 잘 해결했죠?”성월이 고개를 끄덕였다. “대표님께서 지시하신 대로 했어요.”멈칫하던 성월이 나지막이 물었다. “대표님, 정말 사모님께서 저희에게 부탁하러 오실까요?”서해금이 덤덤하게 말했다. “평소라면 부탁하지 않을 수도 있겠죠. 하지만 궁지에 몰린 상황이라면 분명 부탁할 수밖에 없을 거예요. 홍혜림은 지금 아들의 누명을 벗기기 위해 안달이 나 있는 상황이에요. 그러니 저를 통해 이 일을 해결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된다면...”“아무리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고 해도 결국 머리를 숙일 수밖에 없어요.”“조향 대회의 마지막 경기는 OM향 협회의 투표로 승패가 결정돼요. 홍혜림은 OM향 협회의 오래된 회원이에요. 게다가 이번 조향 대회 열 명의 심사위원 중 한 명으로 선정되기도 했고요.”“홍혜림은 누구보다 의리를 중요하게 생각해요. 제가 큰 도움을 준다면 어떻게든 그 빚을 갚으려고 할 거예요. 전 준비가 안 된 싸움은 시작하지 않아요.”피식 웃음을 흘린 서해금의 눈빛이 멸시로 가득했다. “전 조금의 실수도 용납할 수 없어요.”성월은 이토록 치밀한 서해금에 탄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오성빈의 친척과 친분이 있다는 얘기를 꺼내는 서해금의 모습에 성월은 그녀가 단지 빼앗긴 고객을 다시 찾아가기 위해 던지는 미끼일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서해금이 바라는 것은 자신에게 마음에 빚을 진 홍혜림이 조향대회에서 관건적인 한 표를 행사하는 것이었다. 서해금이 이렇게까지 서포트 해주고 있으니 송가람은 조금만 노력해도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었다. 순간 뭔가를 떠올린 성월이 목소리를 잔뜩 낮추며 물었다. “대표님, 인터넷에서 진윤 씨에 관한 여론이 들끓고
“하지만 지금 이 상황에 가면 걔들은 거짓말을 들킨 네가 양심에 찔려서 해외로 도피하는 거라고 생각할 거야.”진윤이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 “걔들이 뭐라고 생각하든 저랑 무슨 상관이에요. 어차피 출국하면 아무것도 듣지도 보지도 못할 텐데.”“그럼 너 평생 해외에만 있을 거야? 안 돌아올래?”입술을 달싹인 진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당연히 그럴 수는 없었다. 부모님도, 집도, 가족도 전부 한주에 있으니 지금 당장 해외에 나간다고 해도 결국 돌아와야만 했다. 홍혜림이 의미심장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 “윤아, 사람의 명성이라는 게 한 번 나빠지면 다시 좋아진다는 건 어려운 일이야. 해외로 도망쳐 이번 일을 지나보낸다고 해도 졸업하면 결국 여기 동기들과 다시 마주해야 한 텐데, 걔들이 널 보고도 옛날 얘기를 꺼내지 않을 것 같아?”“다들 널 안 좋게 보고 있는 지금, 네가 끝까지 네 결백을 증명해야 나중에 걔들이 다시 이 얘기를 꺼내도 억울하지는 않을 거야. 알겠어?”“결백을 뭐로 증명해요? CCTV도 없고 아무것도 없잖아요. 전 당당하다는 걸 아무도 증언해줄 사람이 없어요. 절 믿는 사람도 없다고요.”진윤이 잠김 목소리로 물었다. “엄마, 저 어떡해요?”홍혜림은 미어지는 가슴을 붙잡고 아들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위로를 건넸다. “아무도 널 안 믿어도 엄마는 널 믿어. 네 아빠, 형 그리고 네 형수님도 널 믿어. 그러니까 아들, 괜찮아. 엄마가 있는 한 아무도 우리 아들 못 건드려. 엄마가 꼭 네가 정정당당하게 학교로 돌아갈 수 있게 할게.”홍혜림이 말에 진윤이 대답하려던 그때, 누군가 병실 문을 두드렸다. 진윤이 고개를 돌려 얼굴을 닦으며 감정을 추슬렀다. 홍혜림 역시 심호흡을 하고는 몸을 일으켰다. 문을 열자 보이는 의외의 인물에 홍혜림의 눈이 동그래졌다. 서해금이었다.서해금은 성월과 함께 진윤의 병실로 찾아왔다. 두 사람은 손에 선물을 잔뜩 들고 서 있었다. 병실 문이 열리자 서해금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