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가람의 말에 흠칫한 송민준의 얼굴이 차게 식었다. “송민영이랑 계약했어?”굳어진 송민준의 얼굴을 확인하지 못한 송가람은 자랑스럽게 말을 이었다. “바이브 엔터테인먼트랑 계약 끝났어. 내가 킹 엔터에서 오빠를 위해 뺏어온 거야. 계약금은 16억, 괜찮지?”송민준은 얼굴을 일그러뜨린 채 이미 지장이 찍힌 계약서를 내려다보았다. 그의 얼굴이 더욱 어둡게 굳어졌다. 송가람은 옆에서 여전히 조잘댔다. “이번에는 오빠가 정말 나한테 고마워해야 할 거야. 큰 거 바라는 건 아니고, 날 데리고…”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송민준이 호통쳤다. “누가 네 마음대로 계약하래?”송가람은 그의 목소리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송민준은 한 번도 송가람에게 화를 낸 적이 없었다. 심지어 지금처럼 큰 소리로 꾸짖는 경우도 아주 적었다. 그녀는 순간 상황 판단이 되지 않아 어리둥절해졌다. “오빠, 난 그냥 오빠를 도우려던 것뿐이야. 송민영은 이미 바이브 엔터테인먼트랑 계약도 끝났고. 얼마나 많은 회사가 송민영이랑 계약을 맺으려고 했는데. 계약금을 제일 많이 부른 회사는 60억이었어. 난 16억에 계약을 맺었고. 이게 잘못된 거야?”“60억짜리 계약을 놔두고 왜 고작 16억짜리 계약을 너랑 맺었을 것 같아? 그런 생각은 안 해봤어? 지금 송민영에게 돌고 있는 루머들은 둘째치더라도, 송민영 작품들, 어느 것 하나 좋은 평가가 없잖아. 내가 그런 쓰레기나 받아줘야겠어?”송민준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 “지금 당장 송민영 찾아가서 계약 해지해.”송가람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녀는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이미 끝난 계약을 내가 어떻게?”“그러게 왜 계약 전에 나한테 한 마디 상의도 안 했어?”송민준이 여전히 미간을 팍 찌푸린 채 말했다. “송민영 정도면, 계약하기 전에 나한테 먼저 얘기를 했어야지. 너 지금 이게 나를 돕는 거야? 이건 날 방해하는 것밖에 안 돼!”송민준은 안색이 안 좋아진 송가람을 발견하지 못하고 계속 툴툴거렸다. “평소에 좋아하는 연예인을
심지어 그중 두번 모두 송민준과 함께 있을 때였다. 그러니 송병천도 자연히 그가 송가람을 제대로 챙기지 못한 탓이라고 생각이 되었다. “너 대체 어떻게 된 거야. 가람이한테 화를 내다니. 가람이 몸 안 좋은 거 몰라? 좋게 좋게 말하면 되잖아. 연예인이랑 계약 하나 한 게 뭐 그렇게 대단한 일이라고. 계약하고 싶다면 하게 놔둬. 성공하든 못하든, 어차피 큰돈도 아니고, 그게 그렇게까지 화낼 일이야?”송민준이 입술을 짓이기며 대답하지 않았다. 서해금이 물을 떠 오더니 송병천을 말렸다. “됐어요. 가람이도 괜찮잖아요. 가람이 일이라면 그저 혈안이 되어서는. 민준이도 회사를 생각해서 그러는 거죠. 얘가 얼마나 가람이를 아끼는지 아직도 몰라요? 별것도 아닌 일로, 애들 감정 상하게 하지 말아요.”송가람도 아래층의 소란에 잠에서 깨어났다. 그녀가 내려오며 말했다. “아빠, 저 괜찮다니까요. 오빠는 왜 또 부르셨어요?”“괜찮으니까 이 정도만 하는 거지, 진짜 무슨 일이라도 있었으면 내가 아주 패버렸을 거야!”송병천이 송민준을 째려보았다. “이 일은 이제 신경 쓰지 마. 계약했으면 한 거지, 그 정도도 내가 감당 못할까 봐?”송민준이 이를 악물며 말했다. “아버지, 이건 돈의 문제가 아니에요.”“팍—”송병천이 팍 소리가 나게 손에 들린 컵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으며 호통쳤다. “할 말이 더 남았어?”“민준아, 그만해.”서해금이 나서서 두 사람을 만류했다. “너희 아버지 혈압 높으시잖아. 화내시면 안 돼. 이번 일은 그냥 아버지 뜻대로 해. 가람이가 계약한 연예인에게 정말 문제가 있다면, 정말 논란을 일으켰을 때, 그때 가서 계약 해지하면 되잖아. 이런 일로 아버지 마음 상하게 하지 말고.”주먹을 꽉 움켜쥔 송민준은 한참 후에야 알겠다고 대답했다. 그는 송병천에게는 자신보다 송가람이 더 아픈 손가락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송병천은 딸바보였다. 그때 딸을 지키지 못했던 것을 떠올리면 그는 지금도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는 몇 년을 거쳐
얼마 전 송민영의 팬들은 송민영이 중전 역할을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봄의 연인”의 제작사와 싸운 적이 있었다. ‘금방 옮긴 회사에서 이것을 리트윗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경고라도 하려는 걸까?’그리고 곧 「계약 해지」라는 해시태그가 실검에 올랐다. 팬들은 송민영을 대신해 입을 열었고 브랜드 뉴 엔터테인먼트에 불평을 터뜨렸다. 브랜드 뉴 엔터테인먼트와 계약이 성사되어 기쁨을 만끽하던 송민영은 실검을 보자마자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그녀는 얼른 연락을 돌려 실검을 내리도록 했다. “이 멍청한 것들, 미친 거야?”송민영은 분노가 차올랐다. “내가 어떻게 따온 계약인데, 이런 난리를 쳐. 진짜 자기들이 뭐라도 되는 줄 알고, 이래라 저래라야. 내가 누구랑 계약을 하든 말든, 무슨 상관이라고!”임효우가 목소리를 잔뜩 낮추고는 말했다. “언니, 목소리 좀 낮춰요. 밖에서 그런 얘기 마음대로 하면 안 돼요. 팬들 덕분에 먹고 사는 건데,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 욕하면 안 되죠.”“덕분에 먹고 살기는 무슨. 지난주 잡지는 겨우 2억 원의 매출밖에 못 올려줬어. 이청하 매출은 얼마나 되는 줄 알아? 내 두 배가 넘는다고! 좋아한다고 말만 하면 뭐하냐고, 행동으로 보여줘야 할 거 아니야! 사고를 치는 것도 다 걔들이잖아!”임효우가 입술을 앙다물었다. 팬들이 스트리밍을 돌릴 때는 “우리 아기들”하면서 좋아하더니, 말썽을 일으킬 때는 멍청한 것들이라며 욕을 해댔다. 그녀를 진심으로 아끼는 팬들이 이런 그녀의 진짜 모습을 알게 된다면 어떤 반응일까? 아름드리 펜션.하루 사이에 이훈이 선택 문제를 푸는 속도가 확연히 빨라졌다. 강한서는 또 다른 문제들을 가져와 이훈에게 가르쳤다. 그를 바라보는 이훈의 눈빛은 어느샌가 의심에서 존경으로 변해있었다. “매형, 대학교 때 전공이 뭐였어요?”“기계공학과랑 물리전자공학. 복수전공했어.”이훈: ...두 전공 모두 하나만 하기에도 벅찰 것 같은 것들인데, 심지어 두 개를 같이 복수전공을했다니. ‘역시
강한서의 입꼬리 움찔 떨렸다. 이훈이 웃으며 물었다. “누구한테 말해도 소용없다면서요?”강한서가 찻잔을 내려놓았다. “해보자는 거야?”“네?”강한서가 천천히 말했다. “태권도 검은띠, 주짓수 10단, 격투기 유단자의 실전 싸움이 어떤 건지 궁금하냐고.”이훈: ...“매형, 잘못했어요.”굽혀야 할 땐 굽힐 줄도 아는 이런 모습은 정말이지 유현진을 닮은 것 같았다. 이훈은 책을 덮고 책상에 엎드리더니 물었다. “매형, 현진 누나랑은 어떻게 만난 거예요?”이틀 동안 함께 지내면서 이훈은 이제 예전처럼 강한서를 경계하지 않았다. 강한서는 휴대폰을 들여다보며 이훈의 질문에 대충 대답했다. “내가 구해줬어.”이훈이 깜짝 놀라며 말했다. “에이, 아닌 것 같아요. 모르는 사람이면 그대로 두고 신경도 쓰지 않는 타입 같은데요.”이훈은 똑똑한 아이였다. 강한서가 자신을 잘 대해주는 것은 유현진 때문이었다. 그는 원래 이렇게 오지랖이 넓은 성격은 아니었다. 강한서는 잠시 아무 말도 없이 생각에 잠겼다. 이훈의 말도 틀린 말은 아니었다. 애초에 그의 목적은 유현진을 구하는 것이 아니었다. 단지 그녀가 그때 그 교통사고 현장에 나타났기 때문에 그녀를 구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때 알게 됐다고 하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었다. 유현진은 그를 전혀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만나게 됐으면서 왜 이혼했어요?”강한서는 당연히 자신의 과거를 얘기해 줄 수는 없었다. 그는 여전히 도도한 태도를 유지한 채 말했다. “이건 이혼이 아니라, 사랑싸움이야. 알겠어?”이훈: ...‘입만 살아서는.’유현진을 만나기 위해 이훈을 볼모처럼 데려와 놓고도 사랑싸움이라니...“수다 떠는 시간 끝.”강한서가 문제집을 꺼내 들며 말했다. “다 풀고 들어가서 자.”다음 날 아침 6시 30분, 유현진이 운전을 해 아름드리 펜션에 도착했다. 엔진 소리를 들은 강한서가 아래층으로 내려왔다. 무더운 하루였다. 아침에 눈을 떠서부터 후덥지근한 공
대답하던 유현진은 자신의 뺨을 후려치고 싶어졌다. ‘이놈의 입!'그런 유현진의 모습을 본 강한서는 웃음이 나왔다. 하지만 그가 정말 웃어버린다면 유현진이 곧바로 몸을 돌려 차로 도망칠 것을 알기에 그는 나오려는 웃음을 참았다. 그는 오른 주먹을 꽉 움켜쥐고 작게 기침하고는 말했다. “훈이랑 같이 좀 먹어. 네가 안 먹으면 쟤도 어색해서 못 먹잖아.”이훈: ...유현진은 자존심 때문에 잠시 머뭇거렸다. 그러더니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그래, 그러면. 훈이랑 같이 좀 먹지 뭐.”십 분 후, 이훈은 한 그릇 더 먹는 유현진을 보며 참지 못하고 말했다. “현진 누나, 연예인은 몸매 관리...”‘안 해?’그가 말을 채 끝맺지 않았는데, 누군가 책상 밑에서 그의 다리를 걷어찼다. 이훈은 입술을 달싹이더니 곧 입을 다물었다. 유현진이 이훈의 옆에 앉았고 강한서는 그의 맞은 쪽에 앉아있었다. 누가 그의 다리를 찼는지는 너무 뻔한 일이었다. “뭐라고?”유현진이 고개를 이훈을 쳐다보았다. 이훈이 입꼬리를 잔뜩 내리고는 대답했다. “아니에요.”먹지 않고 있는 이훈을 보며 유현진이 물었다. “이만큼 먹고 벌써 배부른 거야? 11시 30분이 되어야 시험이 끝나는데, 그렇게 먹고 그때까지 괜찮겠어?”이훈이 진지한 태도로 말했다. “조금 허기가 진 상태여야 머리가 더 빨리 돌아요. 너무 배가 부르면 오히려 두뇌 회전이 느려지거든요.”유현진이 콧방귀를 뀌었다. “순 헛소리.”밥을 다 먹자 민경하가 밴을 몰고 나타났다. 유현진은 민경하가 운전하고 있는 링컨을 보며 눈썹을 씰룩거렸다. ‘시험 치러 가는 건데, 밴을?’이 기회에 몇 마디 잔소리를 늘어놓으려던 유현진은 차에 오른 후 차 내부의 옵션들을 보더니 입을 다물었다. 차 안에는 식탁과 침대도 있어 이훈이 점심에 차에서 휴식을 취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을 정도였다. 확실히 그녀의 차보다는 훨씬 편안했다. 오늘은 날이 날인지라 교통 통제가 심해 길이 조금 막혔지만 다행이 유현진 일행
유현진은 모자와 마스크를 벗고 옆의 잔디 위에 올려놓았다. 그녀는 팔꿈치로 이훈을 툭툭 치며 말했다. “네가 왼손, 내가 오른손. 원장님께 하트 해드리자.”이훈이 눈을 움찔거렸다. 싫다는 말이 입가에 맴돌았지만 그는 강한서의 눈빛에 그 말은 삼켜야 했다. 이훈은 어쩔 수 없이 손을 내밀어 유현진과 하트를 만들었다. 유현진은 눈가가 휘어지게 미소를 지었다. 강한서가 휴대폰을 들었고, 그는 카메라로 유현진을 비췄다. 오랫동안 포즈를 유지하던 유현진의 얼굴이 점점 굳어졌다. “다 찍었어?”강한서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빛이 안 좋아. 좀 옆으로 서 봐.”유현진이 어쩔 수 없이 이훈을 왼쪽으로 밀었다. “이렇게?”유현진이 물었다. “응.”강한서가 대답하며 빠른 속도로 유현진의 카톡을 클릭했다. 그는 차단당한 자신의 카톡을 풀고 방금 찍은 사진을 보냈다. 또 몇 초가 흐르자 유현진이 참지 못하고 말했다. “뭐 하는 거야!”그러더니 그녀는 강한서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그냥 내가 할게!”강한서가 태연하게 대화창을 삭제했다. 갤러리의 유현진의 사진도 삭제하고 다시 카메라를 켰다. 그는 전혀 당황하지 않고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행동했다. “휴대폰 내놔.”강한서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그녀에게 휴대폰을 돌려주더니 태연하게 말했다. “잘 찍었어.”유현진이 의심 가득한 표정으로 휴대폰을 받았다. 강한서가 사진을 여러 장 찍어두었다. 사진을 확인한 유현진의 얼굴이 울그락 푸르락 해졌다. 강한서는 168cm의 그녀를 작달막하게 찍어버렸다. 도저히 참을 수 없었던 그녀가 말했다. “이걸 지금 잘 찍었다고 하는 거야? 대체 어디가?”강한서가 말했다. “얼굴이.”유현진: ... 이훈은 그 두 사람을 지켜볼 여유가 없었다. “사랑싸움.”이훈이 말했다. “저 먼저 들어가요.”유현진도 더는 사진에 대해 따지지 않고 뒤돌아 이훈에게 물 두 병을 건넸다. 이훈이 수험표를 보여주고 시험장으로 들어갔다. 막 대문에 들어서자 유현
“그날 네가 나한테 사탕을 주면서 쫓아냈을 때, 내가 가지 말았어야 했어. 그랬으면 내가 제일 먼저 널 잡을 수 있었을 텐데, 내가 너무 멀리 서 있었거든.”그래서 그날, 그는 주강운에게 기회를 뺏겼다. 유현진: ...유현진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이틀 동안 생각해 낸 게, 겨우 이런 거야?”“아니...”강한서는 손에 들린 병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송가람이 날 잡게 놔두지 말았어야 했어. 그걸 밀쳐내지도 못했고. 사실 어떻게든 너한테만 갔으면 조금 늦어도 괜찮았을 텐데.”유현진: ...민경하는 아무렇지 않게 이어폰의 볼륨을 높였다. “나한테 그런 감정적인 호소는 하지 마.”유현진이 고개를 돌려 강한서의 얼굴을 외면했다. 강한서는 고개를 숙인 채 말했다. “난 너랑 이런 감정적인 얘기들을 하고 싶어. 하지만 넌 우리 사이에는 감정조차 남아있지 않다며.”유현진: ...그녀는 문득 이혼하던 날, 그녀가 직원들에게 했던 말을 떠올렸다. “우리는 사실 아무런 감정도 없거든요. 억지로 함께 있는 게 더 고역이죠.”“사실 이혼하던 그날, 난 너무 힘들었어. 네가 정말로 이혼할 줄은 상상도 못 했거든. 넌 날 전혀 신경도 쓰지 않는 사람처럼 그렇게 쉽게 사인했고. 그래, 그러는 게 당연하지. 너만 잘못한 게 아니라, 내 잘못이 더 크니까. 내가... 내가 네가 날 제일 필요로 했을 때 네 곁에 있었어야 했어. 네가 우리 결혼에 대해 실망하는 일 없게, 잘했어야 했어.”유현진이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그녀의 심장이 파르르 떨려왔다. ‘왜 이제야!’그녀는 입술을 앙다물고 불퉁하게 말했다. “이제 와서 그런 얘기 해봤자 무슨 소용이야. 난 이제 그런 거 신경 안 써.”“현진아.”고개를 든 강한서의 눈빛이 흐릿했다. 그는 다시 고개를 숙이더니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맹세할게, 그런 일, 다시는 없을 거야. 강운이도 보지 말고, 송민준도 보지 마. 나 좀 봐줘, 현진아.”강한서의 말이 끝나자 “픽”하는 소리와 함께 강한서가 쓰러졌
민경하가 알겠다며 자리를 비켰다. 유현진은 고개를 돌려 강한서를 쳐다보았다. ‘이 자식이 신발도 안 벗었네. 나중에 훈이 오면 어디서 자라고.’그녀는 강한서에게 다가가 그의 신발을 벗겨주었다. 그러고는 그의 다리를 안아 그의 몸을 안으로 밀었다. 힘을 쓰는 순간 발목이 접질렸다. 그녀는 강한서의 몸 위로 넘어졌다. 턱이 강한서의 벨트에 찍혔고, 그 고통에 유현진이 이를 악물었다. 유현진은 침대를 짚으며 몸을 일으키려는데, 갑자기 아래쪽에서 무언가가 느껴졌다. 강한서의 몸 어느 한 곳이 고개를 들려고 했다. 멈칫하던 그녀의 얼굴은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그녀는 옆에 놓인 베개를 들어 강한서의 머리를 내려쳤다. “죽어!”그녀는 잔뜩 굳어진 얼굴을 하고 차에서 내렸다. 강한서: ...민경하가 밀크티를 사서 돌아왔을 때, 강한서는 좌절한 얼굴을 하고 침대에 걸터앉아 있었고 유현진을 보이지 않았다. “대표님, 사모님은요?”민경하가 물었다. 강한서가 낮게 깔린 목소리로 대답했다. “갔어요.”어디로 갔냐고 물으려던 민경하는 강한서의 표정을 확인하고는 돌아오지 않는다는 의미임을 깨닫고 입을 다물었다. 잠시 후, 강한서가 민경하에게 물었다. “대체 어떻게 알아챈 걸까요?”민경하: ...그는 차에 없었으니 알 리가 만무했다. 3일 후, K가 유현진에게 연락했다. 7년 전 교통사고에 대한 조사에 진전이 없었다.그 당시 한주 유씨 가문의 운전기사는 최근에 갑자기 치매를 진단받았다. 그에게서는 잠시 아무런 정보도 캐낼 수가 없었다. 치매에 걸렸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설사 그에게서 어떤 정보를 알아낸다고 하더라고 법정에서 증거로 채택되기는 어려웠다. 그리고 그가 쫓고 있던 또 다른 단서인 그 당시 유현진이 타고 있던 차량과 충동했던 택시는 더 이상한 부분이 많았다. 운전기사는 물론, 그 당시 함께 사고를 당했던 승객도 찾을 수가 없었다. 아무런 정보도 알아낼 수 없다는 것이 정말 수상했다. K는 누가 개입해 그들의 정보를 없애버렸다고 추
대장은 고개를 여러 번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건 물론이죠. 이미 먼저 주혁 씨에게 연락했어요. 집에서 가족들과 상의한 후 곧바로 답을 준다고 했습니다. 그의 집안 사정으로 회사가 이렇게 좋은 혜택을 주는데 그가 신청하지 않겠어요? 절대 그럴 리 없죠.”원율은 잠시 담배를 피운 뒤 담배 끝을 비벼 끄며 말을 이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다른 부서에도 더 전해야 하니까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대장님, 일 보세요.”원율을 보내고 나서 대장은 다시 주혁에게 전화를 걸었다. “주혁 씨, 가족이 두 명이니까 연간 십만 원도 안 되게 더 내면 돼. 한 달에 만 원도 안 되고 가족이 병원 갈 때 드는 비용은 전부 보장돼. 이 작은 돈 아끼려고 하지 말고 큰 기회를 놓치지 마.”주혁은 돈에 부족함이 없었다. 하지만 그가 가장 싫어한 건 그 돈을 드러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가족을 위한 보험에 가입하면 이번 주 금요일에 반드시 그들과 함께 건강검진을 받아야 했다. 설령 병원이 서대금이 손수 준비한 곳이라 해도 그에게는 그 사실이 부담스럽고 꺼려지는 일이었다.대장은 계속해서 재촉하며 보험 가입 후의 이점을 설명했다. 결국 주혁은 마지못해 동의했다. “그럼 내 아내와 아들도 함께 가입시켜줘. 나중에 주민등록증 사진 보내줄게.”“알겠어. 잘 쉬고 빨리 회복해. 듣자 하니 곧 송가람 씨 밑에서 일하게 된다면서? 잘 됐어. 정해지면 꼭 한턱 쏴.”주혁은 송가람 밑에서 일하게 될 생각에 은은한 미소를 지었다. 그의 눈빛에 부드러운 감정이 스며들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확정되면 한 번 쏠게.”최종적으로 제출된 명단에 주혁의 가족이 포함된 것을 확인한 한현진은 비로소 안심했다. 체크업은 금요일과 토요일로 이틀에 걸쳐 나뉘어 진행되었고 한현진은 주혁이 토요일에 가는 것을 일부러 확인한 후 같은 날에 병원을 가기로 했다.주혁은 아내와 아들을 데리고 왔다. 그의 아내는 평범한 주부였고 깔끔하게 차려입고 있었다. 한현진이 그녀를 보았을 때 그녀는 주혁
회의실의 사람들이 하나둘씩 자리를 떠나자 한현진은 물건을 정리한 뒤 아직 자리에 앉아 있는 서해금을 향해 파일을 들고 다가갔다. “아주머니, 방금 지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서해금은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네가 직원들을 생각해서 한 거니까 당연히 지지해야지. 우리 모두 같은 회사에 있는 한 하나의 팀이니까.” 한현진도 미소 지으며 말했다. “아주머니가 제가 먼저 조사를 했다고 문제 삼지 않으셔서 다행이에요. 그리고 집에 보내주신 곤약도 가람 씨 통해 잘 받았어요.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서해금은 여유 있게 말했다. “가족끼리 서로 아끼는 거지. 너무 예의 차리지 마.”한현진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아주머니, 제가 회사에 온 이래로 여러모로 신경을 많이 쓰게 해드렸어요. 제가 성격이 직설적이고 고집도 세서 가끔 말이 거칠어질 때도 있어요. 그런데도 아주머니께서 항상 너그러운 마음으로 받아주셔서 감사해요.” “아빠한테 들었어요. 아주머니가 아빠한테 저를 칭찬해 주셨다고요. 그 말을 들으니 저도 마음이 무겁고 어쩌면 제가 너무 어리석게 행동했나 싶어요.”“너무 깊게 생각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서해금은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얘가 무슨 말이야. 어른이 아이와 다툴 일이 뭐가 있겠어? 현진아, 아주머니는 네 친엄마는 아니지만 너희 어머니와는 정말 소중한 친구였어. 네가 송씨 가문에 돌아올 수 있게 되어 아주머니는 그 누구보다 기뻐.” “지금 네가 집안에서 가람이랑 함께 지내는 걸 보니 젊은 시절 너희 어머니와 함께 보낸 시간들이 가끔 떠올라. 우리가 반평생을 함께 지냈고 너희는 진짜 자매가 된 거지. 이것도 하나의 인연이란 거야.”한현진은 속으로 토할 뻔했다. ‘정말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온다고?’만약 당시 아이를 바꾼 일과 그녀 어머니의 죽음이 모두 바로 눈앞에 있는 이 온화하고 친절한 여자과 관련이 있었다는 여러 가지 증거들이 없다면 이렇게 진심 어린 말투를 들었을 때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을 것이
하지만 이 제안이 실행되면 소문이 돌아 사람들이 그것을 한현진 덕분이라고 기억하게 될 것입니다. 서해금은 아마도 이를 기꺼이 받아들이려 하지 않을 것이다. 서해금은 잠시 생각을 하다가 입을 열었다. “제안은 나쁘지 않지만 실비보험은 본래 회사가 직원들에게 제공하는 기본적인 보장이기에 만약 직원들에게 요금을 부과하게 되면 일부 사람들은 이를 회사가 급여를 삭감하려는 방식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실제로 일부 직원들의 가족은 병원을 거의 가지 않아 이 비용이 꼭 필요한 지출은 아닐 수 있어요. 그런데 전액을 회사가 부담하게 된다면 일부 직원들이 가족을 허위로 신고해 다른 사람의 보험을 대신 받으려 할 가능성도 생길 수 있을 겁니다.”한현진은 그녀가 이렇게 말할 것을 이미 예상하고 있었기에 처음부터 말하는 방식에 약간의 여유를 두었다. 서해금이 자신의 의문을 제기하자 그녀는 다시 말을 이었다. “직원들이 가족을 위한 보험을 구매할지 말지는 전적으로 자발적입니다. 회사는 강제로 요구하지 않아요. 다만 구매의 문턱을 낮춰놓고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중요하죠. 원하는 사람은 구입하고 원하지 않는 사람은 추가 비용을 부담하지 않도록 말이에요.” “서 대표님 생각은 어떠신가요?”서해금은 입술을 꽉 다물고 잠시 침묵한 후 말문을 열었다. “현진 씨, 구입을 개방하는 것은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우리 쪽은 괜찮지만 보험사와의 협상이 필요해요. 어떤 보험사도 손해 보려고 하진 않잖아요.” 한현진이 살짝 웃으며 답했다. “보험사와의 협상은 제가 맡을게요. 지금 여쭤보는 건 서 대표님 개인의 의견이에요. 동의하시는지요?” 서해금은 당연히 반대한다고 말할 수 없었다. 회의실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고 반대한다고 말하면 그 소문이 바로 회사 전체에 퍼지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녀가 그동안 쌓아온 직원들을 위하는 좋은 상사의 이미지가 무너질 게 뻔했다. 서해금은 절대 자기를 망칠 일을 하지 않을 것이다.서해금은 잠시 침묵한 뒤
이틀 후 깔린느 정기 회의에서 서해금은 직원들의 건강검진을 언급하며 각 부서가 직원들의 시간을 조율하고 차례로 검진을 받을 수 있도록 준비하라고 말했다. 말을 마친 후 시간을 확인하며 말을 이었다.“그럼 특별한 사항 없으면 오늘 회의는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잠깐만요.” 한현진이 서해금의 말을 가로막았다. 모두가 그녀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서해금도 눈을 들어 한현진을 응시하며 여유 있게 말했다. “현진 씨, 더 지시할 거라도 있어요?” 한현진은 살짝 웃으며 말했다. “지시라뇨. 이 자리에 계신 분들 모두 제 선배님들이세요. 업무적인 부분은 앞으로도 많이 배우고 의지해야 할 분들입니다. 다만 서 대표님께서 직원 건강검진에 대해 언급하신 걸 듣고 마침 오늘 회사 고위층 분들도 다 계셔서 한 가지 제안을 드리고 싶어서요.” “서 대표님, 괜찮으실까요?”모두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며 한현진이 아마도 회사 관리와 관련된 문제를 제기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녀가 회사에 온 지 몇 달이 되었고 비록 진씨 가문 사모님 홍혜림을 중심으로 몇몇 고객을 끌어들였지만 서해금의 기반은 그렇게 쉽게 흔들리지 않았다. 두 사람의 실력 차이가 매우 컸고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나도 큰 진전이 없었으니 한현진은 분명히 조급할 것이다.서해금은 두 손을 가볍게 포개어 테이블에 놓고 여유롭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정기 회의는 원래 경영진이 자유롭게 의견을 나누는 자리입니다. 어떤 의견이라도 편하게 말씀하세요. 좋은 제안이라면 우리는 반드시 적극적으로 채택할 겁니다.” 그녀는 매우 너그러운 태도로 민주적인 자세를 보여주었고 이것이 바로 서해금이 이렇게 확고한 위치를 유지하는 이유였다. 회의에서 나온 의견과 제안은 결코 당면에서 거절하지 않으며 오히려 지지하는 모습을 보이다가 뒤에서는 다른 수단을 써서 상대를 밀어내는 법이었다. 사람들의 마음을 다루는 데 그녀는 능숙했다.한현진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서 대표님이 이렇게 말씀하신다면 직설적을 말
송가람은 급히 말을 이었다. [지금 저도 정확히 알 수가 없어요.] 그녀는 강한서보다 더 초조해했다. 황 닥터는 금지된 물품을 소지하고 있던 이유로 출국 금지 명령을 받았고 당분간 국내로 돌아오지 못한다고 했다. 그가 오지 않으면 강한서를 제어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시간이 지나면 그는 분명히 모든 것을 기억해 낼 것이다. 송가람은 점점 더 초조해졌다.[한서 오빠, 저랑 같이 외국에 가서 교수님한테 진료받으러 갈래요? 그쪽에서 꼭 잘 봐주실 거예요.] 송가람은 더 이상 다른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강한서는 잠시 침묵하다가 입을 열었다. [가람아, 평소 같았으면 바로 갔겠지만 지금은 안 될 것 같아. 너도 알잖아. 요즘 한주시 상황이 얼마나 복잡한지. 난 지금 이곳을 떠날 수 없어. 정말 어쩔 수 없으면 여기서 다른 의사를 찾아서 진료를 받는 방법을 찾아볼게.][그럴 수는 없어요!] 송가람이 목소리를 높였다. 강한서는 잠시 멈칫했다. [왜 안 되지?] 송가람은 자신이 너무 지나치게 행동했다는 걸 깨닫고 잠시 말을 더듬으며 겨우 입을 열었다. [교수님은 전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뇌과학 전문가 중 한 분이세요. 국내 의사들하고는 비교도 안 되죠.]의사를 바꾸면 강한서가 예전에 사용한 약에 대해 물어볼 것이었고 그렇다면 그녀는 그것을 말해야 하므로 폭로될 위험이 있었다.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날 수 없었다. 강한서는 난처한 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지금은 다른 방법이 없는 것 같네.] 그는 잠시 침묵을 지킨 후 다시 말을 이었다. [사실 그 약은 효과가 좋았어. 매번 먹고 나면 머리가 맑아지고 잡생각들이 사라졌거든.] [그런데 지금은 그 약이 다 떨어져서 최근에 다시 두통이 찾아왔어. 그 약만 있으면 황 닥터가 올 때까지 버틸 수 있을 텐데.]송가람의 눈이 번쩍였다. ‘맞다. 그 약이 있었지.’ 그녀는 속으로 들뜬 마음을 억누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한서 오빠, 너무 서두르지 마세요.
하지만 이 보험은 직원 개인에게만 해당되며 가족은 이 보험을 가입할 수 없다. 지금 강한서의 의도는 이 혜택을 직원의 가족에게까지 확장하려는 것이다. 주혁은 집에 두 명의 환자가 있고 약을 자주 복용해야 한다. 만약 그가 회사의 이 선의를 거절한다면 그의 이미지와 맞지 않는다. 예전에 아들을 위해 인공 와우 이식 수술을 받을 돈을 마련하려고 위험을 무릅쓰고 직장을 잃었던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절대로 거절할 수 없을 것이다. 또한 강한서의 개인적인 의도도 있었다. 이런 세심한 직원에 대한 배려는 점차 아래 직원들이 한현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바꿀 수 있었기 때문이다. 고위층은 작은 이익에 별로 신경 쓰지 않지만 일반 직원들에게는 다르다. 대부분 사람들이 열심히 돈을 버는 이유는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다. 그들 대부분은 삼십대에서 마흔다섯 사이로 이 나이대의 사람들은 부모님을 부양하고 자식들을 키워야 한다. 회사가 약속한 성과급 같은 허황한 말보다는 이런 쉽게 보상받을 수 있는 실비보험이 직원들에게 실질적인 혜택을 주기 때문에 더욱 마음을 얻을 수 있다. 한현진은 마치 뭔가 깨달은 듯 강한서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이렇게 사람 마음을 얻는 거구나.” 강한서는 살짝 웃으며 말했다. “사실 처음엔 이런 생각까지는 못 했어. 할머니가 병원에 갈 때는 항상 진씨 아저씨랑 같이 가서 내가 직접 겪을 일이 거의 없었거든. 이런 일도 거의 없었고.” “그런데 한 번은 민 실장이랑 같이 출장 가는 길이였어. 그때 민 실장 어머니께서 비를 맞으면서 우리를 마중 나왔는데 길이 미끄러워서 자전거를 타다 넘어지셨어. 가벼운 사고가 나이었고 수술이 필요한 정도로 심했었지.”“그때 민 실장한테 병원에 남아서 어머니를 돌보라고 하고 혼자 고객을 만나러 갔어. 며칠 만에 일을 마치고 병원에 들렀더니 수술은 다행히 성공적이었어.” “그런데 입원부터 치료까지 전부 합쳐서 거의 천만 원 가까이 들었더라. 민 실장은 보험 청구를 했
강한서가 가식적인 말투로 말했다. “부탁할게. 나중에 내가 너랑 여정 씨에게 크게 한 턱 쏠게.”강한서에게 등을 돌린 신우가 손을 들어 중지를 내밀었다. 한현진이 강한서에게 나지막이 물었다. “신우 씨가 널 꽤 귀찮아하는 것 같아. 전에 여정 씨에게 신우 씨는 욕을 하지 않는다고 들었던 것 같은데.’“아닐 걸?”강한서가 헛소리를 지껄였다. “난 우리 사이가 좋다고 생각해. 봐봐, 지금 얼마나 열심히 우릴 도와주고 있어.”한현진이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강한서를 쳐다보았다. ‘그래? 난 왜 신우 씨가 마지못해 하는 것 같지?’생각하던 한현진이 말했다. “이제 이런 일로 신우 씨 번거롭게 하지 말자. 우리 다른 방법 찾아보자. 언제까지 부탁할 순 없잖아.”강한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그도 계속 신우에게만 매달리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문제는 신우처럼 능력 있고 입도 무거운 사람을 찾기 힘들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한현진의 말에도 일리가 있었다. 언제까지 신우에게 부탁할 수는 없었다. 신우의 할아버지가 위독하시기 때문에 지금은 삼촌들의 후계자 싸움이 가장 치열한 시기였다. 수많은 눈이 서로의 약점을 노리고 있었기에 신우의 처지 역시 살얼음판과 다를 바가 없었다. 이럴 때일수록 그 어떤 실수도 있어서는 안 된다. 신씨 가문에서 요즘 경쟁이 제일 치열한 것이 바로 제일 많은 계약금이 걸린 프로젝트였다. 강한서는 이 기회를 빌려 신우에게 투자금을 보태 그동안 진 신세를 갚을 생각이었다. 그날 오후, 지문 대조 결과가 나왔다. 편지 봉투와 그림에는 한현진과 강한서의 지문을 제외한 세 사람의 지문이 있었다. 그 세 사람 중 한 명은 주혁의 아내였고 또 다른 사람은 주혁의 아들인 주지호였다.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지문 대조 시스템에 등록되어 있지 않은 또 다른 사람의 지문이었다. 그 결과에 한현진은 조금 실망스러웠다. 이 정보를 따라 뭔가를 캐낼 수 있을 것이라 여겼지만 이렇게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조사 결과는 결국 시스템에조차 등록되어 있
시원하게 욕을 날린 신우는 의리 있게 강한서의 부탁을 들어줬다.10여 년 전 주혁이 경찰서에 남겼던 지문을 받은 강한서는 곧 생체 인식 실험실에 보내 두 지문을 대조하도록 했다. 2시간도 지나지 않아 결과가 나왔다. 한지와 편지봉투에서는 주혁의 지문을 찾을 수 없었다. 그 결과에 한현진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말도 안 돼. 뭔가 착오가 있는 거 아냐? 그때 직접 손으로 나에게 건네줬었어. 심지어 장갑도 하지 않았는데, 지문이 안 나왔다고?”신우가 말했다. “여긴 여정이와 여정이 사수가 함께 만든 실험실이에요. 게다가 형사들과 자주 협력하는 곳이기도 하고요. 지문 대조 시스템은 여길 따라올 곳이 없어요. 한 번도 틀린 적 없었어요.”신우의 말은 지문 대조 결과가 틀렸을 리가 없다는 얘기였다. 신우는 주머니에서 담배 한 갑을 꺼냈다. 이제 막 담배 한 대를 꺼내려던 그때, 손에 들린 담배가 강한서의 손에 내쳐져 툭, 쓰레기통으로 떨어졌다. 신우: ???머리가 복잡했던 한현진은 두 사람을 전혀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녀는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럼 왜 없는 거지?”여전히 오리무중에 빠진 한현진과 달리 강한서는 이미 눈치 채고 있은 듯 말했다. “혹시... 지금 그 사람은 애초부터 주혁이 아니었던 거야. 그래서 경찰에게 지문이 남아있을까 봐 그런 방법의 자신의 모든 지문을 지워버린 거야. 자신의 진짜 신분을 들키지 않기 위해.”강한서의 추측에 한현진의 등골이 오싹해졌다. “어떻게 같은 사람이 아니라는 거야? 그건 너무 많이 앞서간 거 아냐? 기사님은 가족도 있고 아이도 있어. 만약 정말 사람이 바뀐 거라면 가족들은 눈치 채야 하는 거 아냐?”“데가 이 세상에는 그렇게 똑같이 생긴 사람은 없어. 아무리 닮은 쌍둥이라고 해도 가족들은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잖아.”강한서가 입술을 짓이겼다. “어쩌면 가족들은 원래 그 사람이 돌아오길 바라지 않을 수도 있지.”한현진은 머리가 터질 것만 같았다. 그녀는 얼른 강한서에게 물었다.
“얼른 다시 가져와. 급히 쓸데가 있어.”강한서: ?“왜 그래?”한현진이 말했다. “전화로 얘기하긴 복잡한 일이야. 아무튼 얼른 전화해서 그림 다시 가져오라고 해. 만약 안 건드렸으면 못 건드리게ㅔ 하고 만약 꺼냈으면 얼른 다시 포장하라고 해. 내가 금방 갈게. 만나서 더 자세하게 얘기해 줄게.”강항서가 대답했다. “알겠어. 지금 당장 다시 가져올게.”한현진은 일찍 퇴근하고 집으로 향했다. 전화에서 한현진이 워낙 급하게 얘기한 탓에 강한서도 그녀가 걱정이라 손에 있던 일을 미리 마친 후 칼퇴근해 집으로 돌아왔다. 만나자마자 강한서를 본 한현진이 물었다. “기사님 아직 그림 안 넣었지?”강한서가 고개를 가로 저었다. “네가 너무 일찍 얘기해서 넣지도 못한 상황이야. 네가 그림을 가진 후로 우리 두 사람을 제외하면 아무도 그림을 본 적이 없어.”한현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서랍에서 일회용 장갑을 꺼내 낀 후 그림과 평지를 함께 꺼내 일회용 봉투에 넣었다. 한현진의 행동을 본 강한서의 눈가가 파를 뛰었다. “증거 수집해?”한현진은 봉토를 밀봉하며 말했다. “정말 증거가 될 수도 있어. 일단 가직해 둬.”“대체 무슨 일이야?”한현진이 장갑을 벗고 나서야 강한서에게 그동안 있었던 일과 본인의 의심과 의혹을 얘기했다. “이번 주에 기사님께서 뭔가 사고를 친게 틀림없어. 그래서 재판장에서 지문 인식하는 걸 거부하는 거겠지. 만약 기사님이 전과범이고 회사에서 그 사람을 그대로 둔다면 기사님이 영향을 끼치는 것 나뿐만이 아니야. 그건 말이 안 되는 것 같아.”“내가 생각해봤는데 일단 지문을 수집하는 게 더 나을 것 같아. 일단 고여정 씨께 이 사람이 대체 무슨 죄를 지었는지 알아봐. 그래야 만일이 사태에 대비를 하지.”한현진의 말을 들은 강한서가 의문을 제기했다. “주혁 씨의 지문은 이미 시스템에 등록되어 있어. 무슨 범죄를 저질렀는지는 신상 조회를 하면 바로 나올 텐데 지문을 지우는 게 무슨 소용 있어?”한현진이 멈칫했다. “없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