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거는 없었지만 그는 여전히 이 일이 절대 단순한 실수일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선영은 병원에서 샘플이 섞이는 일은 극히 드물다고 했다. 누가 한 짓인지 알아내기 어렵다는 건, 상대방의 일 처리가 깔끔하다는 뜻이었다. 당시 병원에서 태어나는 아기를 관리하던 간호사랑 연락이 닿았었다. 하지만 너무 오래전 일이라 그때의 상황을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했다. 아무리 조사를 해도 여전히 오리무중이었다. 그는 어쩔 수 없이 먼저 사람을 붙여 어떤 반응을 보일지 감시하도록 했다. 그는 고개를 숙여 유현진 자료 속의 사진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유현진이 자신의 어머니와 많이 닮았으니 다행이지, 아니면 평생토록 여동생이 이 세상에 있다는 사실도 모르고 지낼 뻔했다. 송민준이 한참 생각에 잠겨있는데, 문이 갑자기 열리고 누군가 들어왔다. 잠시 움찔하던 송민준은 들어오는 사람이 송가람임을 확인하고는 퉁명스럽게 말했다. “가람아, 너 너무 네 멋대로 내 사무실에 들어오는 거 아니야? 노크도 없이.”“오빠가 문을 제대로 안 닫은 거잖아.”송가람이 걸어 들어오더니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오빠가 여자친구랑 있는 것도 아니고, 내가 뭐 방해하는 것도 아니잖아.”“그래도 매너는 지켜야지.”“알겠어. 다음에는 노크할게.”책상 위의 자료를 힐끔 쳐다보던 송가람이 머뭇거리더니 말했다. “오빠는 현진 언니를 꽤 좋게 봤나 봐. 들었는데 이준 씨를 매니저로 붙여줬다며?”송민준은 이준을 스카우트 하는데 많은 돈과 노력을 들였다. 원래는 송민준에게 이준을 데려와 회사에 있는 탑급 연예인에게 붙여주라고 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송민준이 갑자기 이준을 유현진에게 보낸 것은 예상 밖의 일이었다. 심지어 이준을 유현진의 전속 매니저로 만들었으니 말이다. 송민준의 이런 특별 대우는 송가람 이외에 아무도 받아본 적이 없었다. 그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난 유현진 씨에게 재능이 있다고 생각해. 브랜드 뉴 엔터테인먼트의 대표 연예인이 될수도 있어.”유현진이 친동생이기에 무
송가람의 말에 흠칫한 송민준의 얼굴이 차게 식었다. “송민영이랑 계약했어?”굳어진 송민준의 얼굴을 확인하지 못한 송가람은 자랑스럽게 말을 이었다. “바이브 엔터테인먼트랑 계약 끝났어. 내가 킹 엔터에서 오빠를 위해 뺏어온 거야. 계약금은 16억, 괜찮지?”송민준은 얼굴을 일그러뜨린 채 이미 지장이 찍힌 계약서를 내려다보았다. 그의 얼굴이 더욱 어둡게 굳어졌다. 송가람은 옆에서 여전히 조잘댔다. “이번에는 오빠가 정말 나한테 고마워해야 할 거야. 큰 거 바라는 건 아니고, 날 데리고…”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송민준이 호통쳤다. “누가 네 마음대로 계약하래?”송가람은 그의 목소리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송민준은 한 번도 송가람에게 화를 낸 적이 없었다. 심지어 지금처럼 큰 소리로 꾸짖는 경우도 아주 적었다. 그녀는 순간 상황 판단이 되지 않아 어리둥절해졌다. “오빠, 난 그냥 오빠를 도우려던 것뿐이야. 송민영은 이미 바이브 엔터테인먼트랑 계약도 끝났고. 얼마나 많은 회사가 송민영이랑 계약을 맺으려고 했는데. 계약금을 제일 많이 부른 회사는 60억이었어. 난 16억에 계약을 맺었고. 이게 잘못된 거야?”“60억짜리 계약을 놔두고 왜 고작 16억짜리 계약을 너랑 맺었을 것 같아? 그런 생각은 안 해봤어? 지금 송민영에게 돌고 있는 루머들은 둘째치더라도, 송민영 작품들, 어느 것 하나 좋은 평가가 없잖아. 내가 그런 쓰레기나 받아줘야겠어?”송민준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 “지금 당장 송민영 찾아가서 계약 해지해.”송가람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녀는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이미 끝난 계약을 내가 어떻게?”“그러게 왜 계약 전에 나한테 한 마디 상의도 안 했어?”송민준이 여전히 미간을 팍 찌푸린 채 말했다. “송민영 정도면, 계약하기 전에 나한테 먼저 얘기를 했어야지. 너 지금 이게 나를 돕는 거야? 이건 날 방해하는 것밖에 안 돼!”송민준은 안색이 안 좋아진 송가람을 발견하지 못하고 계속 툴툴거렸다. “평소에 좋아하는 연예인을
심지어 그중 두번 모두 송민준과 함께 있을 때였다. 그러니 송병천도 자연히 그가 송가람을 제대로 챙기지 못한 탓이라고 생각이 되었다. “너 대체 어떻게 된 거야. 가람이한테 화를 내다니. 가람이 몸 안 좋은 거 몰라? 좋게 좋게 말하면 되잖아. 연예인이랑 계약 하나 한 게 뭐 그렇게 대단한 일이라고. 계약하고 싶다면 하게 놔둬. 성공하든 못하든, 어차피 큰돈도 아니고, 그게 그렇게까지 화낼 일이야?”송민준이 입술을 짓이기며 대답하지 않았다. 서해금이 물을 떠 오더니 송병천을 말렸다. “됐어요. 가람이도 괜찮잖아요. 가람이 일이라면 그저 혈안이 되어서는. 민준이도 회사를 생각해서 그러는 거죠. 얘가 얼마나 가람이를 아끼는지 아직도 몰라요? 별것도 아닌 일로, 애들 감정 상하게 하지 말아요.”송가람도 아래층의 소란에 잠에서 깨어났다. 그녀가 내려오며 말했다. “아빠, 저 괜찮다니까요. 오빠는 왜 또 부르셨어요?”“괜찮으니까 이 정도만 하는 거지, 진짜 무슨 일이라도 있었으면 내가 아주 패버렸을 거야!”송병천이 송민준을 째려보았다. “이 일은 이제 신경 쓰지 마. 계약했으면 한 거지, 그 정도도 내가 감당 못할까 봐?”송민준이 이를 악물며 말했다. “아버지, 이건 돈의 문제가 아니에요.”“팍—”송병천이 팍 소리가 나게 손에 들린 컵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으며 호통쳤다. “할 말이 더 남았어?”“민준아, 그만해.”서해금이 나서서 두 사람을 만류했다. “너희 아버지 혈압 높으시잖아. 화내시면 안 돼. 이번 일은 그냥 아버지 뜻대로 해. 가람이가 계약한 연예인에게 정말 문제가 있다면, 정말 논란을 일으켰을 때, 그때 가서 계약 해지하면 되잖아. 이런 일로 아버지 마음 상하게 하지 말고.”주먹을 꽉 움켜쥔 송민준은 한참 후에야 알겠다고 대답했다. 그는 송병천에게는 자신보다 송가람이 더 아픈 손가락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송병천은 딸바보였다. 그때 딸을 지키지 못했던 것을 떠올리면 그는 지금도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는 몇 년을 거쳐
얼마 전 송민영의 팬들은 송민영이 중전 역할을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봄의 연인”의 제작사와 싸운 적이 있었다. ‘금방 옮긴 회사에서 이것을 리트윗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경고라도 하려는 걸까?’그리고 곧 「계약 해지」라는 해시태그가 실검에 올랐다. 팬들은 송민영을 대신해 입을 열었고 브랜드 뉴 엔터테인먼트에 불평을 터뜨렸다. 브랜드 뉴 엔터테인먼트와 계약이 성사되어 기쁨을 만끽하던 송민영은 실검을 보자마자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그녀는 얼른 연락을 돌려 실검을 내리도록 했다. “이 멍청한 것들, 미친 거야?”송민영은 분노가 차올랐다. “내가 어떻게 따온 계약인데, 이런 난리를 쳐. 진짜 자기들이 뭐라도 되는 줄 알고, 이래라 저래라야. 내가 누구랑 계약을 하든 말든, 무슨 상관이라고!”임효우가 목소리를 잔뜩 낮추고는 말했다. “언니, 목소리 좀 낮춰요. 밖에서 그런 얘기 마음대로 하면 안 돼요. 팬들 덕분에 먹고 사는 건데,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 욕하면 안 되죠.”“덕분에 먹고 살기는 무슨. 지난주 잡지는 겨우 2억 원의 매출밖에 못 올려줬어. 이청하 매출은 얼마나 되는 줄 알아? 내 두 배가 넘는다고! 좋아한다고 말만 하면 뭐하냐고, 행동으로 보여줘야 할 거 아니야! 사고를 치는 것도 다 걔들이잖아!”임효우가 입술을 앙다물었다. 팬들이 스트리밍을 돌릴 때는 “우리 아기들”하면서 좋아하더니, 말썽을 일으킬 때는 멍청한 것들이라며 욕을 해댔다. 그녀를 진심으로 아끼는 팬들이 이런 그녀의 진짜 모습을 알게 된다면 어떤 반응일까? 아름드리 펜션.하루 사이에 이훈이 선택 문제를 푸는 속도가 확연히 빨라졌다. 강한서는 또 다른 문제들을 가져와 이훈에게 가르쳤다. 그를 바라보는 이훈의 눈빛은 어느샌가 의심에서 존경으로 변해있었다. “매형, 대학교 때 전공이 뭐였어요?”“기계공학과랑 물리전자공학. 복수전공했어.”이훈: ...두 전공 모두 하나만 하기에도 벅찰 것 같은 것들인데, 심지어 두 개를 같이 복수전공을했다니. ‘역시
강한서의 입꼬리 움찔 떨렸다. 이훈이 웃으며 물었다. “누구한테 말해도 소용없다면서요?”강한서가 찻잔을 내려놓았다. “해보자는 거야?”“네?”강한서가 천천히 말했다. “태권도 검은띠, 주짓수 10단, 격투기 유단자의 실전 싸움이 어떤 건지 궁금하냐고.”이훈: ...“매형, 잘못했어요.”굽혀야 할 땐 굽힐 줄도 아는 이런 모습은 정말이지 유현진을 닮은 것 같았다. 이훈은 책을 덮고 책상에 엎드리더니 물었다. “매형, 현진 누나랑은 어떻게 만난 거예요?”이틀 동안 함께 지내면서 이훈은 이제 예전처럼 강한서를 경계하지 않았다. 강한서는 휴대폰을 들여다보며 이훈의 질문에 대충 대답했다. “내가 구해줬어.”이훈이 깜짝 놀라며 말했다. “에이, 아닌 것 같아요. 모르는 사람이면 그대로 두고 신경도 쓰지 않는 타입 같은데요.”이훈은 똑똑한 아이였다. 강한서가 자신을 잘 대해주는 것은 유현진 때문이었다. 그는 원래 이렇게 오지랖이 넓은 성격은 아니었다. 강한서는 잠시 아무 말도 없이 생각에 잠겼다. 이훈의 말도 틀린 말은 아니었다. 애초에 그의 목적은 유현진을 구하는 것이 아니었다. 단지 그녀가 그때 그 교통사고 현장에 나타났기 때문에 그녀를 구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때 알게 됐다고 하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었다. 유현진은 그를 전혀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만나게 됐으면서 왜 이혼했어요?”강한서는 당연히 자신의 과거를 얘기해 줄 수는 없었다. 그는 여전히 도도한 태도를 유지한 채 말했다. “이건 이혼이 아니라, 사랑싸움이야. 알겠어?”이훈: ...‘입만 살아서는.’유현진을 만나기 위해 이훈을 볼모처럼 데려와 놓고도 사랑싸움이라니...“수다 떠는 시간 끝.”강한서가 문제집을 꺼내 들며 말했다. “다 풀고 들어가서 자.”다음 날 아침 6시 30분, 유현진이 운전을 해 아름드리 펜션에 도착했다. 엔진 소리를 들은 강한서가 아래층으로 내려왔다. 무더운 하루였다. 아침에 눈을 떠서부터 후덥지근한 공
대답하던 유현진은 자신의 뺨을 후려치고 싶어졌다. ‘이놈의 입!'그런 유현진의 모습을 본 강한서는 웃음이 나왔다. 하지만 그가 정말 웃어버린다면 유현진이 곧바로 몸을 돌려 차로 도망칠 것을 알기에 그는 나오려는 웃음을 참았다. 그는 오른 주먹을 꽉 움켜쥐고 작게 기침하고는 말했다. “훈이랑 같이 좀 먹어. 네가 안 먹으면 쟤도 어색해서 못 먹잖아.”이훈: ...유현진은 자존심 때문에 잠시 머뭇거렸다. 그러더니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그래, 그러면. 훈이랑 같이 좀 먹지 뭐.”십 분 후, 이훈은 한 그릇 더 먹는 유현진을 보며 참지 못하고 말했다. “현진 누나, 연예인은 몸매 관리...”‘안 해?’그가 말을 채 끝맺지 않았는데, 누군가 책상 밑에서 그의 다리를 걷어찼다. 이훈은 입술을 달싹이더니 곧 입을 다물었다. 유현진이 이훈의 옆에 앉았고 강한서는 그의 맞은 쪽에 앉아있었다. 누가 그의 다리를 찼는지는 너무 뻔한 일이었다. “뭐라고?”유현진이 고개를 이훈을 쳐다보았다. 이훈이 입꼬리를 잔뜩 내리고는 대답했다. “아니에요.”먹지 않고 있는 이훈을 보며 유현진이 물었다. “이만큼 먹고 벌써 배부른 거야? 11시 30분이 되어야 시험이 끝나는데, 그렇게 먹고 그때까지 괜찮겠어?”이훈이 진지한 태도로 말했다. “조금 허기가 진 상태여야 머리가 더 빨리 돌아요. 너무 배가 부르면 오히려 두뇌 회전이 느려지거든요.”유현진이 콧방귀를 뀌었다. “순 헛소리.”밥을 다 먹자 민경하가 밴을 몰고 나타났다. 유현진은 민경하가 운전하고 있는 링컨을 보며 눈썹을 씰룩거렸다. ‘시험 치러 가는 건데, 밴을?’이 기회에 몇 마디 잔소리를 늘어놓으려던 유현진은 차에 오른 후 차 내부의 옵션들을 보더니 입을 다물었다. 차 안에는 식탁과 침대도 있어 이훈이 점심에 차에서 휴식을 취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을 정도였다. 확실히 그녀의 차보다는 훨씬 편안했다. 오늘은 날이 날인지라 교통 통제가 심해 길이 조금 막혔지만 다행이 유현진 일행
유현진은 모자와 마스크를 벗고 옆의 잔디 위에 올려놓았다. 그녀는 팔꿈치로 이훈을 툭툭 치며 말했다. “네가 왼손, 내가 오른손. 원장님께 하트 해드리자.”이훈이 눈을 움찔거렸다. 싫다는 말이 입가에 맴돌았지만 그는 강한서의 눈빛에 그 말은 삼켜야 했다. 이훈은 어쩔 수 없이 손을 내밀어 유현진과 하트를 만들었다. 유현진은 눈가가 휘어지게 미소를 지었다. 강한서가 휴대폰을 들었고, 그는 카메라로 유현진을 비췄다. 오랫동안 포즈를 유지하던 유현진의 얼굴이 점점 굳어졌다. “다 찍었어?”강한서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빛이 안 좋아. 좀 옆으로 서 봐.”유현진이 어쩔 수 없이 이훈을 왼쪽으로 밀었다. “이렇게?”유현진이 물었다. “응.”강한서가 대답하며 빠른 속도로 유현진의 카톡을 클릭했다. 그는 차단당한 자신의 카톡을 풀고 방금 찍은 사진을 보냈다. 또 몇 초가 흐르자 유현진이 참지 못하고 말했다. “뭐 하는 거야!”그러더니 그녀는 강한서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그냥 내가 할게!”강한서가 태연하게 대화창을 삭제했다. 갤러리의 유현진의 사진도 삭제하고 다시 카메라를 켰다. 그는 전혀 당황하지 않고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행동했다. “휴대폰 내놔.”강한서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그녀에게 휴대폰을 돌려주더니 태연하게 말했다. “잘 찍었어.”유현진이 의심 가득한 표정으로 휴대폰을 받았다. 강한서가 사진을 여러 장 찍어두었다. 사진을 확인한 유현진의 얼굴이 울그락 푸르락 해졌다. 강한서는 168cm의 그녀를 작달막하게 찍어버렸다. 도저히 참을 수 없었던 그녀가 말했다. “이걸 지금 잘 찍었다고 하는 거야? 대체 어디가?”강한서가 말했다. “얼굴이.”유현진: ... 이훈은 그 두 사람을 지켜볼 여유가 없었다. “사랑싸움.”이훈이 말했다. “저 먼저 들어가요.”유현진도 더는 사진에 대해 따지지 않고 뒤돌아 이훈에게 물 두 병을 건넸다. 이훈이 수험표를 보여주고 시험장으로 들어갔다. 막 대문에 들어서자 유현
“그날 네가 나한테 사탕을 주면서 쫓아냈을 때, 내가 가지 말았어야 했어. 그랬으면 내가 제일 먼저 널 잡을 수 있었을 텐데, 내가 너무 멀리 서 있었거든.”그래서 그날, 그는 주강운에게 기회를 뺏겼다. 유현진: ...유현진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이틀 동안 생각해 낸 게, 겨우 이런 거야?”“아니...”강한서는 손에 들린 병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송가람이 날 잡게 놔두지 말았어야 했어. 그걸 밀쳐내지도 못했고. 사실 어떻게든 너한테만 갔으면 조금 늦어도 괜찮았을 텐데.”유현진: ...민경하는 아무렇지 않게 이어폰의 볼륨을 높였다. “나한테 그런 감정적인 호소는 하지 마.”유현진이 고개를 돌려 강한서의 얼굴을 외면했다. 강한서는 고개를 숙인 채 말했다. “난 너랑 이런 감정적인 얘기들을 하고 싶어. 하지만 넌 우리 사이에는 감정조차 남아있지 않다며.”유현진: ...그녀는 문득 이혼하던 날, 그녀가 직원들에게 했던 말을 떠올렸다. “우리는 사실 아무런 감정도 없거든요. 억지로 함께 있는 게 더 고역이죠.”“사실 이혼하던 그날, 난 너무 힘들었어. 네가 정말로 이혼할 줄은 상상도 못 했거든. 넌 날 전혀 신경도 쓰지 않는 사람처럼 그렇게 쉽게 사인했고. 그래, 그러는 게 당연하지. 너만 잘못한 게 아니라, 내 잘못이 더 크니까. 내가... 내가 네가 날 제일 필요로 했을 때 네 곁에 있었어야 했어. 네가 우리 결혼에 대해 실망하는 일 없게, 잘했어야 했어.”유현진이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그녀의 심장이 파르르 떨려왔다. ‘왜 이제야!’그녀는 입술을 앙다물고 불퉁하게 말했다. “이제 와서 그런 얘기 해봤자 무슨 소용이야. 난 이제 그런 거 신경 안 써.”“현진아.”고개를 든 강한서의 눈빛이 흐릿했다. 그는 다시 고개를 숙이더니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맹세할게, 그런 일, 다시는 없을 거야. 강운이도 보지 말고, 송민준도 보지 마. 나 좀 봐줘, 현진아.”강한서의 말이 끝나자 “픽”하는 소리와 함께 강한서가 쓰러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