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그들이 떠난 후 주위를 둘러보던 송민준은 옷 정리를 하고 있는 차미주를 발견하고는 걸음을 옮겼다. “미주 씨.”차미주가 순간 깜짝 놀랐다. “송... 송 대표님.”송민준이 부드럽게 웃으며 물었다. “부가티 베이론 타볼래요?”차미주의 눈빛이 반짝였다. 그녀는 전혀 내숭없이 대답했다. “네!”“그럼 현진 씨도 불러요. 집에 데려다 줄게요.”차미주는 얼른 휴대폰을 들어 유현진에게 전화했다. 십분 후, 세 사람은 코닉세그 앞에 서있었다. 차미주가 실망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부가티 베이론이라면서요?”송민준이 진지한 태도로 말했다. “부가티는 2인승이라서요. 그걸 타면 미주 씨를 태울 수 없어요.”차미주: ...‘이 자식이, 독설단에 새로운 멤버 한 명 더 늘었네!”‘촌스럽다는 걸 참 참신하게도 비꼬네!’유현진은 오히려 이 일을 빨리 받아들였다. 그녀는 단지 차를 얻어타고 싶었을 뿐이었으니까.시동을 걸자마자 차미주의 휴대폰이 울렸다. ‘개자식’이라고 뜨자 그녀는 미간을 찌푸렸다. 바로 끊어버릴 생각이었지만 아까 구해주었던 것을 떠올리고는 입을 삐죽이며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도둑아, 유현진 씨 너랑 같이 있어?”차미주 휴대폰의 음량이 너무 컸던 탓에 차에 있는 두 사람도 통화내용을 전부 들었다. 유현진이 그녀에게 검지를 내밀며 흔들어보였다. 차미주가 씩 웃으며 이내 유현진의 뜻을 알아차렸다. “아니!”잠시 조용하던 한성우가 다시 말을 걸었다. “나 현장에서 보석을 하나 주웠는데 유현진 씨 목걸이에서 떨어진 게 아닌가 봐줘.”차미주가 고개를 돌려 보았다. 유현진이 그녀를 막으려는데 이미 그녀가 입을 열었다. “안 떨어뜨렸어.”유현진: ...송민준: ...유현진의 표정을 확인한 차미주가 그제야 알아차리고는 욕설을 퍼부었다. “너 이 개자식, 날 떠봐?!”한성우가 가볍게 웃음을 터뜨렸다. “난 그저 물어본 것 뿐이야.”차미주가 씩씩 화를 내며 전화를 끊었다. 그녀는 한성우를 향해 온
“착각한 거 아니야.”강한서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착각했을 리 없잖아.”설사 송가람과 유현진이 똑같은 옷을 입었다고 하더라도 그는 절대 사람을 착각할 리 없었다. “그러면 왜 송가람을 구한 거야?”강한서가 입술을 짓누르며 말했다. “송가람이 날 잡아당긴거야.”불꽃이 날아들던 그 순간, 그는 바로 유현진을 향해 달려가려고 했다. 하지만 그와 멀지 않은 곳에 있던 송가람이 잔뜩 놀란 얼굴을 하고 그의 옷깃을 잡았다. 강한서가 송가람과 실랑이를 하는 동안 주강운이 유현진을 데리고 현장을 빠져나갔다. 불꽃은 여전히 사람들에게 날아들었고 그는 어쩔 수 없이 송가람을 데리고 안전한 곳으로 빠져나온 뒤 바로 유현진을 찾아갔다. 한성우: ...입술을 달싹이던 한성우가 한참 후에야 말을 꺼냈다. “뭐라고 할 말이 없네. 얼마나 좋은 기회였는데 다른 사람에게 끌려가다니. 하늘도 널 돕지 않네.”강한서도 잔뜩 짜증이 났다. 이제 겨우 가까워졌는데 또 유현진에게 차단 당했다. 한성우가 착잡한 표정으로 있는 강한서를 쳐다보더니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 “뭐, 너무 나쁜 것만은 아니야. 네가 송가람을 챙겨주는 걸 보고 화를 냈다는 건, 너한테 아직 남은 감정이 있다는 뜻이잖아. 정말 아무 감정이 없다면 이런 일로 굳이 널 차단할 이유도 없지. 먼저 가서 현장 정리나 잘 해. 형수님도 돌아가서 화 좀 가라앉혀야지. 내일 형수님께 가서 변명이라도 해.”현실은 늘 생각과 많이 다른 편이었다. 다음 날, 강한서는 꽃다발을 들고 아파트 앞에서 온 밤을 기다린 후에야 유현진의 이웃에게 712호가 이미 방을 빼고 아침 일찍 이사를 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강한서는 멍하니 그 자리에 서있었다. 한참 후에야 그가 입을 열었다. “혹시 어디로 이사 갔는지 아세요?”“모르죠. 야근하고 돌아오니까 이삿짐을 옮기고 있더라고요. 남자들도 여러 명 도와주는 것 같았어요.”강한서가 차로 돌아갔다. 민경하는 꽃을 그대로 들고 돌아오는 강한서를 보고는 낮은 목소
이삿짐을 차에 싣고 송민준은 두 사람을 태우고 이삿짐센터의 트럭과 함께 클라우드 아파트로 향했다. 한주시의 최고급 아파트답게 클라우드 아파트는 환경이 아름다운 것은 물론 분수대의 수질 관리도 철저히 하고 있어 예전의 아파트들과는 다르게 맑은 수질을 유지하고 있었다. 건물 간격 또한 넓어서 1층이라고 할지라도 햇빛을 보지 못할 걱정을 할 필요가 없었다. 그리고 층마다 오픈 테라스가 있어 여름에는 친구들과 함께 테라스에서 고기를 구워 먹을 수도 있었다. 유현진은 송민준이 말한 집이 조금 구석진 곳에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예를 들면 1층이나 도로와 가까이에 있는 위치 말이다. 하지만 송민준이 임대한 집은 클라우드 아파트의 센터에 위치한 집이었다. 클라우드 아파트는 총 15층이었는데 그녀의 집은 9층에 위치했다.창문은 통유리창으로 되어있었고 커튼을 젖히면 아파트 단지 중앙에 있는 분수대의 모형이 한눈에 들어와 전망이 좋았다. 제일 대박인 건 이 집은 90평이나 된다는 것이다. 흥분한 차미주가 이방 저방을 뛰어다니며 구경했다. 하지만 유현진은 조금 망설여졌다. “민준 오빠, 이런 집은 월세가 얼마예요?”송민준이 웃으며 대답했다. “이미 일 년 치 월세를 다 지불했어요. 이제 와 물어도 어쩔 수 없어요. 현진 씨는 그저 편안하게 마음먹고 어떻게 돈을 벌어야 내가 투자금을 모두 회수할 수 있을지 그 생각만 해요. 그리고 전 이 집이 별로 큰 것 같지 않아요. 바빠지기 시작하면 브랜드의 협찬품인 옷이나 액세사리들을 진열해야 할 텐데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 드레스룸은 좀 작은 것 같아요.”유현진: ...송민준과 유현진이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노크 소리가 들렸다. 송민준이 문을 열고 방을 나서며 말했다. “기다려요.”30대에 가까운 남자 한 명과 평범하게 생긴 남자가 따라 들어왔다. 그는 평범한 옷차림에 외모 또한 별것 없었다. 하지만 그의 눈빛만큼은 날카롭기 그지없었다. 그의 눈동자가 얼굴 전체 이미지를 변화시켰다. “현진 씨, 이리 와요. 제
유현진은 조금 충격에 휩싸였다. 숙소를 마련해 준 것으로 이미 충분했는데 매니저 역시 엘리트로 보내줬다. ‘민준 오빠가 나한테 너무 잘해주는 거 아냐?’좀... 지나치게 잘해주는 것 같았다. 유현진이 데굴 머리를 굴렸다. 그녀에겐 아무리 생각해도 송민준이 탐낼만한 것이 없었다. 송민준의 모습은 그녀를 마음에 둔 사람 같지도 않았다. 그럼 설마... 송민준이 유현진에게 여배우가 될 자질이 있는 것 같아 그녀를 전적으로 밀어주려는 걸까?유현진이 자조적으로 생각했다. ‘됐어. 이미 계약서에 사인도 했고 이사도 했으니 하나씩 해결하자.’이때 유현진의 휴대전화가 울렸고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확인하니 강한서 그 미친놈이 그녀에 계좌이체를 한 것이었다. 그녀는 힐끗 그가 보낸 문자를 확인했다. 「너가 걔한테 안기기까지 했잖아. 난 그때 화도 내지 않았어.」처음에는 큰 변화없던 유현진은 문자를 읽고 입술을 움찔거렸다. ‘또 옛 일을 들먹이다니!’「너도 그냥 아주 조금만 화내면 안 돼?」그녀는 문자 내용을 뚫어지게 쳐다보더니 이를 악물고 2000만 원을 입금했다. 「아니!」강한서가 이내 2000만 원을 다시 입급했다. 「언제까지 화 낼꺼야?」유현진이 대답을 하지 않자 강한서가 또 2억을 보내왔다. 「훈이 곧 수능이야. 아까 전화 와서 시험 장소까지 데려다주면 안 되냐고 해서 알겠다고 했어. 넌 올 거야?」유현진: ...이훈이 아직 그녀에게는 연락도 하지 않았는데 강한서와는 만나기까지 했다고? '어떻게 강한서랑 연락하고 있었던 거지?'그녀는 강한서가 자신에게 장난을 치고 있다는 생각에 답장을 하지 않았고 이훈에게 연락을 넣었다.다른 한편 구암동 고아원에선 민경하가 이훈을 도와 짐을 풀고 있었다. “이것뿐이예요?”민경하가 물었다. 이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머릿속에 다 있어요.”민경하가 웃으며 말했다. “타세요.”힐끗 쳐다본 민경하가 핸들을 돌리며 말했다. “사실대로 얘기해요.”이훈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전화를 받
강한서 이 개자식!‘이훈을 데려가면 내가 뭐 거기에 낚여서 갈 줄 알고? 안 가!’하지만 몇 분 지나지 않아 노원장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현진아, 매번 신세가 많아. 훈이 시험장이 고아원이랑 너무 멀어서 말이야. 나랑 손 선생님은 경험 부족이라 시험장 나온 후 호텔을 예약하려니까 이미 방이 없더라고. 시험 전에 훈이가 제대로 쉬지 못할까 봐 걱정이었는데, 네가 있어서 다행이야.”수능 시즌에는 시험장 부근의 호텔은 늘 만실이었다. 심지어 가격도 평소보다 몇 배는 비싸져 환경도 안 좋고 방음도 전혀 되지 않는 객실이 1박에 60만 원이 넘었다. 좋은 객실은 100만 원 이상이었지만, 그것마저 전부 예약이 나간 상태였다. 노원장은 원래 캠핑카를 빌려 운전기사를 고용해 이훈을 데려다줄 생각이었다. 캠핑카에서는 쉴 수도 있으니 일석이조였다. 하지만 이훈이 캠핑카 대여 가격을 듣더니 바로 노원장을 만류했다. 이훈은 저녁 9시부터 잠을 자면 다음 날 아침 5시에는 일어날 수 있다며 그 정도면 늦지 않게 시험장에 도착할 수 있다고 했다. 비록 이훈이 그렇게 말하며 노원장을 안심시켰지만 노원장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바로 그때, 유현진이 마침 사람을 보내 이훈을 데려가 노원장의 걱정을 단번에 해결했다. 노원장의 말을 들은 유현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강한서 이 자식이 내가 데려간 것처럼 얘기해 놓다니!’노원장이 연신 고맙다고 인사를 하니 유현진이 오히려 어쩔 줄 몰라 했다. “저도 지금 마침 한가하던 참이라, 전혀 번거롭지 않아요, 하하.”“현진아, 그리고 한 가지 더 할 얘기가 있어.”“네, 말씀하세요.”“고아원 쪽에는 이제 더 이상 돈을 보내지 않아도 돼. 지난주에 기부 기관을 통해 기부금이 들어왔는데 고아원의 1년 지출에 가까운 돈을 받았어. 그리고 그분이 기부 기관을 통해 앞으로 우리 고아원의 장기 후원자가 되겠다고 하시더라고. 네가 유상수와 소송 중인 거 알아. 너도 지금 돈이 필요할 텐데, 돈은 네가 꼭 필요한 곳에
유현진의 말처럼 강한서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10여 년은 넘었다. 그런데 강의를?하지만 곧 이훈은 강한서의 실력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강한서가 가르쳐주는 것은 일반적인 계산법이 아니었다. 그는 이훈에게 문제를 푸는 방법을 가르쳤다. 예를 들어 선택 문제 같은 경우, 강한서는 대부분 문제를 계산을 거치지 않고 주어진 선택항을 이용해 역으로 답안을 유추해 냈다. 혹은 문제 자체를 제대로 파악하여 틀린 선택항을 배제하는 방법으로 문제를 풀었다. 이런 방법은 사실 선생님도 가르친 적이 있다. 하지만 강한서처럼 핵심을 파악하지는 못했다. 이훈은 빠른 속도로 빠져들었다. 시험지 두 장을 강의한 강한서는 아직 풀어보지 못한 문제집을 가져와 테스트를 진행했다. 이훈은 기초가 탄탄하고 뭐든지 빨리 배우는 편이라 두 시간 만에 선택 문제를 완성하는 속도가 예전보다 10여 분이 빨라졌고 정확도는 70% 이상이었다. 이훈은 특훈의 결과에 아주 만족했다. 전에는 선택 문제를 푸는데 많은 시간을 들였지만 정확도는 제일 높아야 80%였다. 하지만 강한서는 이훈이 푼 문제집을 들여다보더니 미간을 찌푸렸다. “아직 기초가 조금 약하네.”이훈: … 강한서의 휴대폰이 울렸다. 발신자가 민경하임을 확인한 강한서가 통화 버튼을 눌러 전화를 받았다. “대표님, 사모님께서 지금 클라우드 아파트 7동 901호에서 지내신다고 합니다.”강한서가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누구 집이에요?”“송 대표님 명의로 되어있습니다.”잠시 머뭇거리던 민경하가 말했다. “8, 9, 10층 전부 송 대표님 명의의 자택입니다.”‘그러니까 제 말은, 사모님과 이웃사촌으로 지내시긴 어려울 것 같다는 뜻이죠.’이웃은커녕, 아래 윗집 사는 같은 동네 주민도 할 수가 없었다.송민준의 이 방법은 정말이지 묘책이었다. 누구를 막기 위한 것인지 목적이 너무나도 분명했다. 그는 심지어 강한서가 어떻게 나올 것인지에 대해 예측하고 있었다. 강한서: …강한서가 입술을 짓이기며 말했다. “송민준
증거는 없었지만 그는 여전히 이 일이 절대 단순한 실수일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선영은 병원에서 샘플이 섞이는 일은 극히 드물다고 했다. 누가 한 짓인지 알아내기 어렵다는 건, 상대방의 일 처리가 깔끔하다는 뜻이었다. 당시 병원에서 태어나는 아기를 관리하던 간호사랑 연락이 닿았었다. 하지만 너무 오래전 일이라 그때의 상황을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했다. 아무리 조사를 해도 여전히 오리무중이었다. 그는 어쩔 수 없이 먼저 사람을 붙여 어떤 반응을 보일지 감시하도록 했다. 그는 고개를 숙여 유현진 자료 속의 사진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유현진이 자신의 어머니와 많이 닮았으니 다행이지, 아니면 평생토록 여동생이 이 세상에 있다는 사실도 모르고 지낼 뻔했다. 송민준이 한참 생각에 잠겨있는데, 문이 갑자기 열리고 누군가 들어왔다. 잠시 움찔하던 송민준은 들어오는 사람이 송가람임을 확인하고는 퉁명스럽게 말했다. “가람아, 너 너무 네 멋대로 내 사무실에 들어오는 거 아니야? 노크도 없이.”“오빠가 문을 제대로 안 닫은 거잖아.”송가람이 걸어 들어오더니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오빠가 여자친구랑 있는 것도 아니고, 내가 뭐 방해하는 것도 아니잖아.”“그래도 매너는 지켜야지.”“알겠어. 다음에는 노크할게.”책상 위의 자료를 힐끔 쳐다보던 송가람이 머뭇거리더니 말했다. “오빠는 현진 언니를 꽤 좋게 봤나 봐. 들었는데 이준 씨를 매니저로 붙여줬다며?”송민준은 이준을 스카우트 하는데 많은 돈과 노력을 들였다. 원래는 송민준에게 이준을 데려와 회사에 있는 탑급 연예인에게 붙여주라고 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송민준이 갑자기 이준을 유현진에게 보낸 것은 예상 밖의 일이었다. 심지어 이준을 유현진의 전속 매니저로 만들었으니 말이다. 송민준의 이런 특별 대우는 송가람 이외에 아무도 받아본 적이 없었다. 그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난 유현진 씨에게 재능이 있다고 생각해. 브랜드 뉴 엔터테인먼트의 대표 연예인이 될수도 있어.”유현진이 친동생이기에 무
송가람의 말에 흠칫한 송민준의 얼굴이 차게 식었다. “송민영이랑 계약했어?”굳어진 송민준의 얼굴을 확인하지 못한 송가람은 자랑스럽게 말을 이었다. “바이브 엔터테인먼트랑 계약 끝났어. 내가 킹 엔터에서 오빠를 위해 뺏어온 거야. 계약금은 16억, 괜찮지?”송민준은 얼굴을 일그러뜨린 채 이미 지장이 찍힌 계약서를 내려다보았다. 그의 얼굴이 더욱 어둡게 굳어졌다. 송가람은 옆에서 여전히 조잘댔다. “이번에는 오빠가 정말 나한테 고마워해야 할 거야. 큰 거 바라는 건 아니고, 날 데리고…”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송민준이 호통쳤다. “누가 네 마음대로 계약하래?”송가람은 그의 목소리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송민준은 한 번도 송가람에게 화를 낸 적이 없었다. 심지어 지금처럼 큰 소리로 꾸짖는 경우도 아주 적었다. 그녀는 순간 상황 판단이 되지 않아 어리둥절해졌다. “오빠, 난 그냥 오빠를 도우려던 것뿐이야. 송민영은 이미 바이브 엔터테인먼트랑 계약도 끝났고. 얼마나 많은 회사가 송민영이랑 계약을 맺으려고 했는데. 계약금을 제일 많이 부른 회사는 60억이었어. 난 16억에 계약을 맺었고. 이게 잘못된 거야?”“60억짜리 계약을 놔두고 왜 고작 16억짜리 계약을 너랑 맺었을 것 같아? 그런 생각은 안 해봤어? 지금 송민영에게 돌고 있는 루머들은 둘째치더라도, 송민영 작품들, 어느 것 하나 좋은 평가가 없잖아. 내가 그런 쓰레기나 받아줘야겠어?”송민준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 “지금 당장 송민영 찾아가서 계약 해지해.”송가람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녀는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이미 끝난 계약을 내가 어떻게?”“그러게 왜 계약 전에 나한테 한 마디 상의도 안 했어?”송민준이 여전히 미간을 팍 찌푸린 채 말했다. “송민영 정도면, 계약하기 전에 나한테 먼저 얘기를 했어야지. 너 지금 이게 나를 돕는 거야? 이건 날 방해하는 것밖에 안 돼!”송민준은 안색이 안 좋아진 송가람을 발견하지 못하고 계속 툴툴거렸다. “평소에 좋아하는 연예인을
한현진은 말하며 송가람을 쳐다보았다. “전 주주의 신분으로 깔린느에서 일하고 있어요. 언니도 세은이와 마찬가지로 모두 임원인 누군가의 연줄로 입사하게 된 거고요. 언니가 이런 방식으로 저와 세은이를 제약하려고 한다면 당연히 똑같은 방식으로 언니와 서 대표님을 대해야 하는 것 아닌가?”송가람은 논리정연하면서도 은근히 비꼬는 한현진의 말투에 화가 치밀어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하지만 한현진의 그 한마디는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의 마음에 묵직한 한 방이 되었다. 낄린느의 창시자에 대해 이미 오랜 시간 동안 아무도 언급하지 않았다. 한아람이 세상을 뜬 후 입사한 직원이 알고 있는 회사의 대표는 서해금이 전부였다. 깔린느의 공식 홈페이지의 소개에도 서해금을 깔린느의 창시자인 듯 추앙하고 있었다. 예전의 파트너에 대해서는 그저 몇 마디의 간략한 설명이 전부였다. 경력 2, 30년 이상의 고참 직원을 제외하면 모두 깔린느가 모든 위기를 헤치고 지금 이 자리에까지 오른 것은 전부 서해금의 공로로 알고 있었다. 설사 한현진이 회사의 대표로 취임했어도 다들 서해금이 옛정을 생각해 파트너였던 사람의 딸을 챙겨주는 것이라고 여겼다. 성월이든 송가람이든 한현진의 얘기만 나오면 은연중에 그런 뜻을 내비쳤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언급되지조차 않던 창시자인 한아람은 애초부터 깔린느의 최대 주주였고 심지어 그녀는 90%에 가까운 지분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렇게 많은 돈을 깔린느의 창업에 투자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10%밖에 되지 않는 서해금의 투자금이 부족했을 리가 없었다. 그러니 사실 서해금은 그저 적은 투자금을 들여 깔린느와 파트너쉽을 맺고 다른 사람이 심은 나무 아래에서 시원한 바람을 만끽했다는 얘기였다. 자수성가, 커리어우먼, 비즈니스 천재, 조향 천재라는 타이틀은 그저...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한아람 덕에 누린 이득이었던 것이다. 그 사실과 더불어 “주세은이 문제를 일으키면 한현진이 모든 책임을 진다”던 송가람의 말을 곱씹어 본 직원들의 눈빛이 조금은 의미심
한현진의 말에 성월은 말을 잇지 못했다. 입술을 파르르 떨던 성월은 한현진의 말에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조차 갈피를 잡지 못했다. 서해금이 무겁게 가라앉은 눈빛으로 한현진을 쳐다보았다. “현진아, CCTV를 확인할 자신 있어? 만약 정말 세은이가 한 짓이면 넌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할 생각이니?”“경찰에 신고해야죠.”한현진이 똑바로 서해금을 직시했다. “만약 정말 세은이가 깨뜨린 거라면 비싼 물건이니 경찰에게 맡겨 처리하도록 해야겠죠.”서해금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송가람은 가만히 있지 못하고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현진 씨, 세은이의 입사를 강력 추진한 건 현진 씨였어요. 그래서 엄마도 동의했던 거고요. 하지만 지금 현진 씨는 이렇게 큰 문제를 생기자 모든 책임을 세은이에게 뒤집어씌우고 있어요. 정말 현진 씨에게는 전혀 책임이 없는 건가요?”한현진이 잠시 침묵했다. “가람 언니, 그런 얘기는 저희끼리 있을 때 해도 되잖아요. 왜 굳이 이곳에서 그 얘기를 꺼내는 거예요?”한현진이 겁을 먹었다고 생각한 송가람이 일부러 더 그녀를 밀어붙였다. “넘버 S 오일이 깨졌으니 회사 전체의 이익과도 관련되어 있어요. 저희도 직원에게 제대로 된 사건의 진위를 알려야 해요. 그러니 굳이 저희끼리 조용히 이야기할 필요가 없죠.”한현진이 시선을 올렸다. “여기서 얘기해도 문제 될 건 없어요. 언니가 계속 제게 책임을 지라고 하는 건 제가 세은이를 입사시켰기 때문인 거잖아요. 세은이가 잘못을 저질렀다면 저도 당연히 그에 상응한 책임을 져야겠죠. 그럼 제가 물을게요. 언니의 업무 실수로 인해 저희는 하마터면 홍혜림 씨라는 고객을 잃을 뻔했어요. 그럼 왜 당시 언니를 회사로 불러들인 서 대표님은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으신 거예요? 실수를 저지른 사람은 심지어 멀쩡히 회사에 다니고 있잖아요. 언니도 서 대표님 추천으로 입사하신 거잖아요. 왜 그 일에 관해선 한 글자도 언급하지 않는 거예요?”부끄러움에 송가람은 버럭 화를 냈다. “저와 세은이는 달라요. 깔린느는
역시나 성월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현장엔 수군거리는 소리로 가득했다. “한 대표님이 호언장담해서 데려온 사람이라니, 이게 무슨 말이야?”“소문이긴 한데. 나도 그냥 들은 거야. 주세은 씨 경력으론 우리 회사에 입사할 수 없대. 하지만 한 대표님이 세은 씨 아버지에게 받은 은혜를 갚기 위해 취직을 시켜주려고 했지만 서 대표님이 반대하셔서 한 대표님이 만약 주세은 씨가 문제를 일으키면 한 대표님이 책임지고 물러나시기로 약속하셨다고 했어.”“세상에. 하지만 이번 일은 작은 일은 아니잖아.”“우리가 입사할 땐 면접만 4차까지 있었어. 면접도 없이 입사하기에 대단한 실력자인가보다 했는데, 이렇게 큰 사고를 치다니.”“입사한 지도 시간이 꽤 흘렀는데 아직 실력을 보지 못했어.”“넘버 S 오일은 이것 하나밖에 없잖아. 이렇게 큰 사고를 쳤는데 한 대표님이 어떻게 지켜주겠어.”“지키긴 뭘 지켜. 한 대표님 본인도 책임을 면치 못할 텐데. 자신이 꽂은 사람이 이렇게 큰 사고를 쳤는데 책임을 회피할 수 있겠어?”...한현진을 힐끔 쳐다본 송가람의 입꼬리가 씩 올라갔다. 음모를 달성한 비열한 인간의 표정이었다. 한현진은 그런 송가람 따위는 신경도 쓰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성월을 직시하며 말했다.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잘 모르겠네요. 제대로 가르치고 싶으셨다면 직접 데리고 다니며 하나하나 알려주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왜 익숙하지도 않은 곳에서 물건을 가져오라고 세은 씨 혼자 보내신 거죠?”성월이 변명을 늘어놓았다. “그땐 다들 구내식당에서 밥을 먹고 있었어요. 일손이 부족한 데다 저도 자리를 비울 수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세은 씨를 보낸 거예요. 저장실은 제가 세은 씨와 함께 간 적이 있었어요. 세은 씨도 저장실 구조에 대해 잘 알고 있어요.”한현진이 물었다. “다들 식사 중이었다는 건 그리 급한 업무도 아니었단 얘기겠네요. 왜 하필 사람 없는 점심시간에 세은 씨를 불러서 오일을 가져오게 한 거예요?”한현진의 질문에 말문이 막힌 성월이 결국
구내식당이 워낙 조용했던 터라 가까이 있는 사람은 통화 내용을 전부 들을 수 있었다. 비록 한현진은 넘버 S 오일이 뭔지 몰랐지만 깔린느에서 오랫동안 일한 직원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넘버 S 오일은 혼합 오일이었다. [인 드림] 같은 고급 향수의 제조에 사용되는 주요 원료 중 하나였다. 넘버 S 오일의 재고는 100mL 밖에 없었다. 서해금이 우연히 제조해 낸 오일이라 각 오일의 성분과 비례가 기록되어 있지 않았고 그렇게 넘버 S 오일은 한정판이 되어버렸다. 이 오일은 줄곧 소중하게 보관되어 있었고 특별한 신분의 사람이 고급 향수를 제작할 때만 사용되었다. 넘버 S 오일은 깔린느 전체에 단 한 병뿐이었다. 그것이 깨진다면 넘버 S 오일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니 성월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숨을 들이켰다. 서해금의 얼굴은 잔뜩 일그러져 있었다. 그녀는 몸을 돌려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따라가려는 한현진을 은서하가 불러 세웠다. “대표님, 제 일은 됐어요. 조금만 더 참으면 지날 수 있을 거예요. 대표님이 이렇게까지 하지 않아...”한현진이 은서하를 쳐다보며 말했다. “지나가지 않을 거예요. 서하 씨가 참으면 참을수록 그 사람들은 점점 더 서하 씨를 만만하다고 여기고 더 심하게 굴 거예요. 서하 씨가 만만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그 사람들도 알아야 해요. 그래야 앞으로 서하 씨를 괴롭히려고 할 땐 한 번쯤은 고민해 볼 거예요.”은서하가 멍해졌다. 한현진은 은서하의 대답도 듣지 않은 채 자리를 벗어났다. 주세은은 덜렁대는 성격의 아이가 아니었다. 게다가 그렇게 귀중한 원료는 보통 일반 직원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곳에 보관하지 않았다. 그러니 주세은이 그 오일을 깨뜨렸을 리가 없었다. 한현진이 다급하게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현장에 도착했을 땐 이미 많은 사람들이 오일 보관실에 모여있었다. 주세은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그녀를 에워싼 사람들은 하나 같이 범인을 심문하듯 주세은을 쳐다보고 있었다. 주세은은 하얗게 질린 얼굴
한현진이 입꼬리를 씩 올리며 송가람에게로 걸어가 그녀의 귓가에 다가갔다. “제 사무실에 있던 금전수 기억해요?”움찔하는 송가람의 동공이 순간 흔들렸다. 한현진이 눈을 가늘게 뜬 채 천천히 입을 열었다. “언니가 하는 건 저도 할 수 있어요. 스스로 승인하실래요, 아니면 다들 들을 수 있게 제가 가서 가져올까요?”송가람의 얼굴엔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그녀는 한현진이 그 도청 장치를 발견했을 것이라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심지어 한현진은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송가람의 사무실에도 도청 장치를 달았다. 송가람과 주현은 사무실에서는 거리낌 없이 모든 얘기를 했었다. 게다가 한현진이 대체 어디서 어떤 얘기를 들은 것인지도 알 길이 없었다. 그런 생각에 송가람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꼭 움켜쥔 주먹에 더욱 힘이 들어갔다. 송가람의 경계심이 완전히 무너질 때쯤 멀리서 서해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현진아, 가람아. 무슨 얘길 하고 있는 거니?”하마터면 자신이 한 일을 승인할 뻔한 송가람은 서해금의 목소리가 들리자 입가까지 흘러나왔던 말을 다시 삼켜버렸다. 그녀는 구세주를 만나기라도 한 듯 서해금을 불렀다. “엄마!”한현진이 쯧 혀를 찼다. ‘타이밍 한번 좋게 찾아왔네.’한현진은 몸을 돌려 예의 바른 미소를 지으며 다정한 목소리로 서해금에게 인사를 건넸다. “아주머니, 안녕하세요.”한현진 앞으로 다가온 서해금이 몸을 곧게 세우고 주위를 둘러보더니 미소 지으며 물었다. “밥도 안 먹고 두 사람 여기서 무슨 얘길 하고 있었던 거야?”한현진이 말했다. “별거 아니에요. 다만 가람 언니가 별다른 이유 없이 직원의 보너스를 삭감해서 어떻게 된 일인지 물어보고 있었어요.”한현진의 말에 반박하려던 송가람은 휴대폰을 꺼내려는 한현진의 모습에 입을 다물었다. 만약 송가람이 자신의 구역에서 한현진에게 약점을 잡힌 것을 서해금이 알게 된다면 또 그녀를 한바탕 꾸짖을지도 몰랐다. “그래?”서해금이 송가람을 힐끔 쳐다보았다. “현진이 말이 사실이야?”송
누군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곧 비웃음 소리가 하나둘 터져 나왔다. 안규리의 얼굴이 부끄러움에 빨갛게 달아올랐다. 송가람이 미간을 찌푸렸다. “현진—”한현진이 송가람의 말을 잘랐다. “송 팀장님, 여긴 회사예요. 호칭 주의하시죠.”말문이 막힌 송가람은 이를 악물고 화를 꾹 참으며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한 대표님, 다들 그저 장난 좀 한 건데 말씀이 좀 지나치신 것 같네요.”“제 말이 좀 지나쳤나요?”한현진이 차가운 눈으로 송가람을 쳐다보았다. “규리 씨가 힘든 처지에 있는 사람을 놀릴 때는 왜 규리 씨 말이 심하다고 하지 않은 거죠? 이해 능력이 형편없어서 규리 씨 말의 의미를 알아듣지 못하는 거예요?”송가람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서하 씨 형편이 어려우면 회사에 복지 신청해도 된다고 제가 얘기했잖아요.”한현진이 흥 코웃음을 쳤다. “보아하니 송 팀장님은 이해력이 안 좋을 뿐만 아니라 기억력도 안 좋으신 것 같네요. 서하 씨가 2개월간 감봉 당한 건 송 팀장님 작품 아니었나요? 이제 와서 좋은 사람인 척하겠다는 건가요?”표정이 굳어진 송가람이 이를 악물었다. “서하 씨 보너스가 삭감된 건 인사팀에서 결정한 일이에요. 그게 저와 무슨 상관이죠? 헛소리하지 말아요.”한현진이 차가운 말투로 대답했다. “전 서하 씨가 보너스를 삭감당했다고 얘기한 적 없는데요. 조향팀의 일개 팀장에 불과한 송 팀장님이 어떻게 재무팀 직원의 월급 삭감 정황까지 빠삭하게 알고 있는 거예요? 인사팀 부장이 꿈에서 알려주기라도 했어요?”송가람은 그제야 자신이 한현진에게 말꼬투리를 잡혔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순간 화가 치민 송가람이 말했다. “대충 제 추측으로 얘기한 것 뿐이에요. 감봉은 보너스를 삭감하는 것이 일반적이니까요.”“하지만 보너스를 전부 삭감당했다는 건 저도 들은 적 없는 얘기예요.”한현진이 태연하게 말했다. “회사에도 징계에 관한 규정이 명확하게 있어요. 설사 서하 씨가 진행한 업무가 전부 규정을 위반했다고 하더라도
은서하는 송가람이 어떤 사람인지 잘 알고 있었다. 이렇게 한현진과 가깝게 지내다 또다시 송가람에게 당할까 두렵지는 않은 걸까?한현진은 도무지 이 어린아이가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시연은 그런 은서하의 모습에 환하게 웃으며 반갑게 은서하와 인사를 나누었다. “서하 씨, 외할머니도 아직 퇴원하지 않으셨을 텐데 오늘은 어떻게 회사에서 점심을 먹는 거예요?”은서하가 대답하기도 전에 이미 누군가 비꼬며 말했다. “진작 회사에서 먹어야 했어요. 도시락도 매일 구정물 같은 것만 싸 오던데 식욕이 있겠어요? 서하 씨. 구내식당은 직원 할인도 있잖아요. 매달 6만 원만 내면 돼요. 그 정도 돈도 없는 건 아니겠죠. 그 도시락, 서하 씨는 괜찮을지 몰라도 전 이제 못 봐주겠어요.”그 말에 은서하의 얼굴이 순간 빨갛게 달아올랐다. 그녀는 젓가락을 꽉 움켜쥐고 부끄러워 어쩔 줄 몰랐다. 이시연이 미간을 찌푸렸다. “안규리 씨, 무슨 말을 그렇게 해요? 구내식당을 이용하든 도시락을 싸든 그건 다른 사람 마음이에요. 6만 원으로 구내식당을 이용하는 게 뭐 그리 고상한 일 같아요?”안규리라고 불린 사람은 송가람 옆에 앉아 있었다. 한현진도 전에 본 적 있는 재무팀 직원이었다. 안규리가 눈썹을 씰룩였다. “구내식당을 이용하는 게 고상하다는 얘기는 전 한 적 없어요. 하지만 매일 죽 같은 도시락을 싸 와 식당에서 데워 먹는 모습은 사실 저희 식욕을 떨어뜨리거든요. 다들 안 그래도 일하느라 힘든데 밥 먹을 때도 이렇게 입맛이 떨어져서야 저희더러 어떻게 살라는 거죠?”주현도 안규리의 말을 거들었다. “서하 씨도 돈이 없어 보이지는 않던데요. 전에 한 대표님이 옷 선물을 하셨을 때도 제일 비싼 옷을 가져갔잖아요. 딱 봐도 그런 걸 처음 본 사람은 아니잖아요. 보자마자 제일 좋은 거로 가져갔는데.”“200만 원이 넘는 옷을 입는 사람이 식비 6만 원을 아낀다고요?”“그게 어떻게 같아요? 몇백만 원짜리 옷은 볼 수도 있고 만질 수도 있잖아요
한현진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집을 나선 한현진은 강한서에게 황씨 아주머니의 월급 인상에 관해 상의했다. 강한서와 강민서가 집을 나선 지 얼마 되지 않아 주혁이 한현진을 데리러 도착했다. 별장을 벗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한현진은 순간 길가에서 누군가의 움직임을 포착했다. 어쩐지 눈에 익은 인영이었다. 한현진이 탄 차가 그 사람과 가까워져서야 한현진은 그 사람이 은서하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한현진은 다급히 주혁에게 차를 세우라고 말하고는 차창을 내려 은서하를 불렀다. “서하 씨!”고개를 돌린 은서하는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대표님이 여긴 어떻게...?”“저 이 근처에 살아요.”한현진이 물었다. “그러는 서하 씨는 여긴 어쩐 일이에요?”이 근처엔 별장을 제외하면 길가에 오가는 차가 전부였다. 사람의 그림자조차 흔하지 않은 길이었다. 은서하가 말했다. “집이 이 근처라서요.”한현진이 놀라며 말했다. “이 근처에 사신다고요?”은서하가 꿋꿋이 거짓말을 이어갔다. “네. 오늘 늦잠을 잤더니 택시가 안 잡혀서요.”한현진은 아무 말 없이 은서하를 살펴보더니 몇 초 후에야 입을 열었다. “일단 타요. 타서 얘기해요.”은서하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는 종종 달려와 한현진 반대편의 문을 열고 차에 탔다. 은서하는 그제야 차에는 한현진과 운전기사뿐만 아니라 평범한 외모의 젊은 청년도 함께인 것을 발견했다. 한현진이 소개하며 말했다. “여긴 원율 씨. 제 개인 비서예요.”은서하가 원율에게 인사를 건네고는 안전벨트를 했다. 그녀는 자신의 가방을 꼭 끌어안고 공손한 자세로 한현진 옆에 앉아 있었다. 차가 출발하자 한현진이 질문을 이어갔다. “여긴 회사와 거리도 있는데 평소 출퇴근 시간이 꽤 걸리지 않아요?”은서하가 어색하게 대답했다. “외할머니 치료 때문에 집을 팔았어요. 하지만 회사 근처엔 월세가 높아서 어쩔 수 없이 먼 곳으로 옮겼어요. 평소엔 버스를 타고 다녔는데 어젯밤엔... 일이 조
한현진이 거울을 보며 옷을 정리했다. “이름이 뭐야?”“문채영.”“꽃부리 영?”강한서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영리할 영.”“특이한 이름이네.”한현진이 멈칫했다. “너 전에 오빠가 맞선을 싫어한다고 하더니 그 여자를 못 잊어서 그런 거였어?”강한서가 말했다. “그런 것 같아.”“그럼 두 사람은 왜 안 만났던 건데?”강한서가 말했다. “자세한 건 네 오빠만 알 거야. 내가 알고 있는 건 고등학교 시절 누나 이모가 누나 아버지를 횡령, 뇌물수수 그리고 사생활이 문란한 문제를 신고했고 그로 인해 많은 사람이 연루되어 누나 아버지는 형량을 꽤 많이 받았어. 누나 어머니도 그 충격을 견디지 못하시고 실성하신 분처럼 구셨어. 그렇게 문씨 가문은 나락으로 떨어진 거야. 그때 누나는 아직 대학도 졸업하지 못했었어.”“우리 수능이 끝나자 누나는 어머니를 모시고 해외로 갔어. 그리고 2년이 지난 후 결혼했지. 남편은 부자인 교포였어. 귀국해서 결혼식을 올린 거라 민준이도 일부러 M국에서 돌아왔어. 결혼식이 끝나고 누나는 남편과 함께 해외로 갔어. 그 후로 우리는 연락이 뜸해졌고. 그리고 2년 전, 누나가 이혼하고 나서야 다시 연락하기 시작한 거야.”한현진이 물었다. “넌 그 여자와 오빠를 이어주고 싶은 거야?”강한서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누나는 민준이를 만나고 싶어 해. 난 그저 중간에서 다리를 놓아주는 것뿐이야. 두 사람이 어떤 사이로 발전할지는 두 사람 일이지.”강한서가 멈칫하더니 말을 이었다. “어렸을 때 그 감정이 지금은 얼마나 남아있을지 모르지. 누나가 이혼 후 2년이 흘렀어. 만약 나라면 그리고 아직도 그 사람을 사랑한다면 바로 전남편에게 꽃이라도 사 들고 찾아가 이혼을 축하해줄 거야. 그리고 바로 누나를 찾아갔겠지. 하지만 네 오빠는 그저 가만히 있었어. 이혼한 걸 몰랐을 리가 없어.”한현진이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만약 너였다면 넌 출국하기도 전에 잡혔을 거야. 그리고 오빠는 너처럼 멍청하지 않아. 그렇게 창피한 일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