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때, 전화는 받아?"한성우는 옆에서 질문을 던졌다.강한서는 굳은 얼굴을 한 채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말하지 않아도 안 받은게 분명했다."괜찮아 괜찮아, 다시 한번 걸어봐, 바쁜걸거야."강한서는 입술을 만지며 다시 한 번 전화를 걸었다, 이번엔 통화연결음도 없고 바로 부재중이라는 음성이 들려왔다.한성우는 할 말을 잃었다.유현진이 강한서의 전화번호를 차단한것이 틀림 없었다."너 어제 내가 말한대로 안 했어?"강한서는 입술을 만지작거렸다."어제 서류작성 하자마자 가버렸어."그는 그녀랑 대화할 틈조차 찾지 못했다."서류?"한성우는 이상함을 느꼈다."뭔 서류?"강한서의 어두운 안색을 보아하니 한성우 마음속에선 불길한 생각이 스쳤다."설마 형수님이랑 이혼한건 아니지?"강한서는 뻗뻗하게 굳은 얼굴을 한채 답했다."그 사람이 장례식에서 나한테 그렇게 면박을 줬는데 내가 체면까지 차려줘야돼?"한성우는 손가락으로 강한서를 가리키면서 이를 악물며 말했다."내가 너한테 뭔 말을 하겠냐? 체면이 뭐가 중요한데, 너는 니 체면 차릴려고 와이프도 버린거야.""그냥 잠시동안만 이혼한거야!"강한서는 이 말을 강조하며 답했다."버린거 아니야."한성우는 입꼬리가 떨리기 시작했다, 그한테 삿대질을 하며"그게 아니라 넌 이미 형수님한테 버려졌어."강한서는 그의 손을 뿌리치며 인상을 찌푸렸다."그냥 살짝 삐진거야, 날 어떻게 버릴수 있겠어?"한성우는 인정사정 없이 그의 환상을 터뜨렸다."형수님 어머니가 돌아가실때 넌 어디서 뭐했어, 형수님 어머니 장례식에 너는 그 사람한테 고개를 숙였지, 네가 왜 필요하겠어, 옆에 두면 화만 돋구는데."한성우는 쏘파에 기댔다."내가 이거 딱 하나 말할게, 여자는 마음이 돌아서면 소 열마리가 와서 끌어도 소용없어. 내가 보기엔 이미 끝난것 같아, 더 이상 미련 가지지 말고 내가 더 좋은 여자 소개시켜줄게. 유현진보다 더 예쁘고 더 참한 아가씨 소개해줄테니 그만 잊고 사는게 나아."강한서는 눈썹을 찌푸리더니
그녀는 더 이상 강한서 이 미친놈을 상대하기도 귀찮았다.바로 핸드폰을 무음으로 해놓고 자러 갔다.강한서는 온종일 보냈지만 유현진의 답장을 못받자 눈썹이 찌푸려졌다."성의는 이 만하면 됐잖아."둘째날, 유현진이 깨났을때 핸드폰에는 이미 수십개의 계좌이체 문자가 와 있었다, 카드엔 어느샌가 20억정도의 거금이 들어있었다.차미주는 20억을 보더니 눈이 휘둥그래졌다."혹시 강한서 무슨 병이라도 걸렸어? 너랑 몇마디 하려고 이렇게 많은 돈을 보낸거야?"유현진은 머리가 아파왔다."십중팔구 취한걸거야, 머리가 제정신이 아닌거겠지."유현진은 이 돈들을 돌려주려고 했으나 그녀의 카드는 강한서의 것과 달라서 한도가 있었다, 하루에 제일 많아서 천만원만 보낼수 있었다.그녀가 이 돈들은 스무날에 걸쳐 돌려줄 생각을 하니 머리가 아파왔다.이리저리 생각을 하다가 강한서의 전화번호 차단을 풀고 그한테 전화를 걸었다.강한서는 회의중이였지만 유현진이 전화를 걸어온것을 확인하고는 벌떡 일어서더니 핸드폰을 들고 나갔다.회의실의 직원들은 모두 어리둥절했다, 누가 강 대표님으로 하여금 자리를 박차고 나갈 만큼 중요한 사람인지 궁금했다.강한서는 자신의 옷깃을 정리한뒤에야 전화를 받았다."강한서?"전화 저편에서 들려온 소리는 차미주의 목소리였다.강한서는 눈썹을 찌푸렸다."어째서 너지? 유현진은?""현진이가 그쪽이랑 얘기하기 싫대, 그래서 내가 대신 받았어."차미주는 목소리를 가다듬었다."당신 돈 도로 가져가! 내가 그깟 돈이 궁해서 이혼한줄 알아? 이제 또 보내면 신고할거야!"그리고는 한마디 보충했다."이건 현진이가 전하려는 말이야, 나랑은 상관 없어."강한서는 그만 할말을 잃었다.그는 이를 악물며 소리쳤다."빨리 유현진 바꿔!""아까 말했잖아, 현진이가 그쪽 목소리 듣기 싫다고 했어, 구역질 나올것 같다고 말이야."강한서의 입꼬리가 떨리기 시작했다."할 말은 다 했으니까 그럼 이만 끊을게."말하자마자 전화를 재빨리 끊었다. 그리고는 두려운 표정으
강한서가 답했다. "같이 안 왔어요."정인월은 단박에 눈썹을 한껏 찌푸리면서 물었다. "현진이는 어디 갔어?"강한서는 묵묵부답이었다. 정인월은 가슴이 철렁했다."너 이놈, 혹시 현진이랑 이혼했어?"강한서는 정인월의 말을 시정했다. "그 사람이 이혼하자고 했어요.""이 멍청한 놈!"정인월은 발끈했다. "그 애가 이혼하자고 한다고 이혼해? 너 돌았어?"강한서......정인월은 강한서를 별로 혼내지 않았다. 성인이 되고 나서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강한서는 입술을 꾹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한성우가 욕할 때에는 대꾸라도 했는데, 정인월이 꾸짖으니 꿀 먹은 벙어리가 될 수 밖에 없었다. 실은 강한서 자신도 내심 화가 났다. 이혼 수속 밟기 직전에 자신이 유현진에게 한 말을 생각해보니 왠지 바보 같았다. 이혼을 후회하는 건 자신밖에 없었다. 그것도 이혼한 지 고작 하루가 지났는데 벌써부터 후회막급이었다. 정인월은 화가 나서 손이 떨렸다. "널 어쩌면 좋니? 결혼할 때는 현진이 아니면 안 된다면서 나더러 직접 찾아가서 혼담을 꺼내달라고 하더니, 이혼할 때는 나한테 묻지도 않아? 네 눈에 이 할미가 있기는 한 거야?""잠시 이혼한 것 뿐이에요."강한서는 다시 한번 강조했다. "우리 다시 재혼할 거예요."정인월은 피식했다. "그건 너의 일방적인 생각이겠지! " 정인월은 진씨더러 사전에 조사한 내용을 강한서에게 보여주라고 했다. "네가 직접 봐. 네가 없었던 이 며칠 동안 현진이가 대체 어떤 일들을 겪었는지."강한서는 내용을 보자마자 미간을 잔뜩 찌푸리더니 안색이 갈수록 어두워졌다. "언제 너희 엄마랑 너희 둘 이혼한다는 사실을 말했어? 이렇게 큰 일을 나만 몰랐던 거야?"강한서는 한껏 어두워진 표정으로 낮은 소리로 답했다. "저 이혼한다는 얘기를 꺼낸 적 없어요. 그리고 저 현진이랑 이혼하겠다는 생각조차 한 적 없어요.""그딴 소리 집어쳐."정인월은 강한서를 째려봤다."이미 현진이랑 이혼했으면서!"강한서..
진씨가 담담하게 읇었다. "사모님과 다시 재혼하지 못하면 오지 말라고 하세요. 큰사모님이 장수하는 데 영향을 준다면서."강한서......닫혀지는 대문을 보면서 강한서는 처음 이혼으로 인해 가족에게 버림받아 고립된 느낌이 들었다.강한서는 화를 한가득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 앞에 도착하자 안방 등이 켜져 있는 것이 보였다.강한서는 눈썹을 찌푸렸다. 분명 도우미 아주머니더러 안방은 우선 정리하지 말라고 했는데.그는 얼굴을 굳혔다. 그런데 차에서 내리자마자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그의 시야에 정원에 세워진 유현진의 카이엔이 들어왔다. 강한서는 멈칫하다가 빠르게 집 안으로 들어갔다. 문을 열자 도우미 아주머니가 강한서를 맞았다. "대표님, 오셨어요?"강한서는 들뜬 마음을 눅잦히고 낮은 소리로 물었다. "그 사람 온 거죠?""사모님 윗층에 계세요. 가져갈 물건이 있다고 했어요."아주머니의 말이 끝나자 강한서는 윗층으로 달려가다가, 안방 부근에 가서야 발걸음을 늦췄다. 안방 문은 약간 열려 있어,서랍을 여는 소리가 안에서 들려왔다. 강한서는 가볍게 문을 열었다. 유현진은 무릎 꿇고 머릿장에서 뭔가를 열심히 찾고 있어서 인기척을 느끼지 못했다. 강한서는 가볍게 헛기침을 했다. 유현진은 동작을 멈추더니 고개를 돌려 강한서를 흘끔 쳐다보고는 먼저 말을 꺼냈다. "물건 가지고 바로 갈 거야."강한서는 눈썹을 찌푸렸다."쫓을 생각 없어."유현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유현진은 증서 같은 것들을 찾아 봉투에 넣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유현진이 가려고 하자 강한서는 급히 그의 앞을 막았다. 유현진은 멈칫하다가 손에 든 봉투를 들어 보이면서 물었다. "강 대표님 혹시 제가 강씨 집안 물건을 가져가는지 검사하시려고 그러세요?"강한서는 미간을 좁히면서 말했다. "그 뜻이 아니라 그저 잠깐 얘기를 나누고 싶을 뿐이야."유현진은 강한서를 힐끔 쳐다보더니 말했다. "저랑 강 대표님 할 얘기가 남았나요?"강한서는 입을 다물었다
유현진은 뺨을 친 손에 혼신의 힘을 다 실었다. 강한서의 얼굴에 날카로운 손톱이 긁고 지난 흔적이 길게 남았다. 강한서는 순간 멍해졌다. 유현진이 자신에게 손을 댄 게 이번이 두 번째였다. 처음에는 자신이 막무가내로 덤벼드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면, 이번에는 미움을 해소하기 위함이었다. 뺨을 맞는 것은 어느 연령대라도 모욕감을 느끼는 일이다. 더욱이 강한서와 같이 오랫동안 떠받들려왔던 사람은 밀려오는 모욕감이 더 컸다. 유현진이 두 번째 뺨을 날리려고 손을 올리자, 강한서가 그의 손목을 확 잡아채더니 분노의 목소리로 말했다."유현진! 그만해! 내가 너 어쩌지 못해서 가만히 있는 줄 알아?"말이 끝나자마자 강한서는 제자리에 굳어버렸다. 그는 유현진의 빨개진 눈시울과 눈물 가득 고인 눈과 마주쳤기 때문이다. 유현진과 함께 생활하는 동안, 드라마를 보면서 우는 모습은 봤어도 이런 모습은 처음 봤다. 강한서는 줄곧 유현진이 생각이 없는 여자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정작 그런 여자가 자신의 눈앞에서 눈물을 흘리자 가슴이 찢어졌다. 강한서는 유현진의 손목을 잡았던 손에서 힘을 풀면서 낮은 소리로 말했다. "정말 당신을 어떻게 한 거 아니잖아."유현진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강한서! 내가 평생 가장 후회되는 일이 당신이랑 결혼한 거야. 다시는 당신이랑 마주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어."말이 끝나자마자 유현진은 강한서의 손을 뿌리치고 물건을 가지고 떠나갔다. 강한서는 오랫동안 제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했다. 그러다가 정신을 차리고 쫓아나갔을 때는 이미 유현진이 차를 몰고 떠난 후였다. 유현진을 말리지 못한 도우미 아주머니는 아래층으로 내려온 강한서에게 감히 묻지 못하고, 몸을 돌려 방 청소 하러 갔다. 강한서가 아주머니를 불렀다. "아주머니, 지난 번에 현진이가 중약을 병원에 보내달라고 했죠?"아주머니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 날에 보냈어요?""사모님 어머님 돌아가신 이튿날이요."강한서는 잠깐 생각에 잠기더니 물었다. "다른 건
강한서는 당시 약 처방을 조하해 봤다. 하지만 확실히 여성의 자궁에 좋은 약재들이어서 신민정의 행위를 묵인했다. 하지만 사모님은 질색했고, 한약을 먹을 때마다 거부감을 호소했다. 두 사람은 임신하는 일로 자주 싸웠다. 임신만 거론되면 한약 때문에 싸우곤 했다. 대표님은 사모님의 몸조리가 제대로 되지 않을까 봐 걱정이 됐고, 또 갑자기 애를 가졌다가 유산이라도 하면 오히려 건강을 해칠까 봐 우려되어, 지난해 연말에 아예 임신의 가능성을 단절하려고 결찰 수술을 받았다. 당시 민경하가 강한서를 픽업하러 병원에 갔을 때, 그는 깜짝 놀랐다. 결찰술이 남성 기능에 영향이 없다고는 하지만, 그걸 시도할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며, 또 여자를 위해 그 수술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겠는가?강한서는 자신의 행위를 타인이 알면 체면이 깎일까 봐 다른 핑계를 댔다. "집 사람이 한약을 먹기 싫다는 소리에 지쳐서 한 거니, 다른 생각은 하지 마세요."이에 민경하는 그저 웃을 뿐이었다. 수술하고 나서는 사모님이 한약을 복용하는 일에 대표님은 더 이상 신경을 쓰지 않았다. 최근 몇 달 동안은 사모님도 한약을 마시지 않을 텐데, 갑자기 왜 한약을 조사하라는 거지?강한서는 미간을 주무르면서 말했다. "우서 가서 조사해 봐요. 지금 머리가 좀 복잡해요. 앞으로 얼마 간 바쁠 텐데, 일이 한 단계 마무리되면 휴가 줄게요.""알겠습니다."전화를 끄려는 순간, 민경하는 갑자기 뭔가 떠올랐다. "대표님, 사모님을 위해 예약한 목걸이를 제가 가져왔어요. 언제쯤 사모님께 드릴 건가요? 시간 날 때 제가 가져다 드릴게요."강한서는 몇 초 간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우선 실장님이 보관하고 있어요."민경하는 강한서의 대답이 뜻밖이어서 물었다."대표님, 사모님과 싸우신 거예요?" 강한서는 잠깐 멈칫하더니 낮은 소리로 말했다. "우리 이혼했어요.""이혼이요?!"민경하가 너무 크게 소리쳐서 강한서는 귀가 멍멍했다. "실장님도 저 나무라실 건가요?"강한서는 기분
유현진은 그렇게 거리를 누비다가 술집 앞에 차를 세웠다. 극도로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술은 부정적인 정서 해소에 도움이 된다. 유현진이 주량이 아무리 좋다고 한들, 소주, 와인, 맥주를 마구 섞어 들이부으면 탈 나지 않을 사람이 없다. 그는 안주도 먹지 않고 빈 속에 술을 엄청 급하게 마셨다. 술집 주인은 매상을 올리기 위해 처음에는 유현진이 요구하는 대로 줬지만, 나중에는 두려웠다. 행여나 유현진이 술 마시고 뭔 일이라도 생기면 큰일이었다. 그래서 유현진이 술을 더 달라고 하자 더 이상 주지 않았다. "아가씨, 너무 많이 마셨어요. 안주라도 드세요. 우리 가게 안주가 맛이 괜찮아요.""저 배고프지 않아요."유현진은 두 볼이 발그스름해서 턱을 괴고 있었다. 술에 취한 게 분명한데 발음은 또렷했다. "저 한 병 더 따주세요.""운전해서 오신 것 같던데, 제가 대리 운전을 불러 드릴까요? 아니면 직접 부르실래요? 더 마셨다가 취하시면 어떻게 돌아가시려고요? 가족들이 걱정하고 있을 거예요.""저 가족이 없어요."유현진은 잠긴 목소리로 답했다. "엄마가 돌아가셔서 제가 돌아가기를 기다리는 사람이 없어요. 더 이상 저를 걱정해줄 사람도 없고요."가게 주인은 자신의 딸보다 몇 살 위로 보이는 유현진이 안쓰러워서 타일렀다. "그렇더라도 자신의 몸을 이렇게 혹사하면 안 돼요. 어머님이 아시면 얼마나 마음이 아프시겠어요."유현진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가게 주인은 그에게 물 한 잔 건네주면서 말했다. "인생의 모든 고비는 넘어가기 마련이에요. 술도 마셨으니 한잠 자고 일어나서 다시 힘차게 출발하면 돼요."유현진은 더 이상 술을 요구하지 않고 천천히 물을 마셨다. 가게 주인은 유현진의 상태가 좋아지자 다른 손님들을 접대했다. 손님들이 하나 둘 떠나고 가게가 조금 조용해지자 다시 유현진에게로 와 보니 테이블에 엎드려 잠이 든 상태였다. 테이블 위에 놓은 휴대폰이 계속하여 울리는 데도 유현진은 듣지 못했고, 가게 주인이
"돈을 받았으면 최선을 다해야죠."주강운은 단추를 잠궜다."저 먼저 가볼게요. 두 분 천천히 드세요."그러고는 바로 집을 나섰다. 강민서는 거부 당한 느낌에 표정 관리가 안 됐다. 주강운의 어머니도 아들이 너무 대놓고 거부하는 게 눈에 보였다. 강민서가 다쳤을 당시, 주강운의 어머니는 몇 번이나 주강운더러 병문안을 가 보라고 했지만, 주강운은 일을 핑계로 가지 않았다. 강민서가 다 나을 때까지 주강운의 어머니는 병문안을 두 번 갔었다. 하지만 주강운은 한 번도 가지 않았다. 강민서는 매번 주강운은 왜 오지 않았는지 물었다. 그럴 때마다 주강운의 어머니는 일이 바쁘다느니, 이 물건들을 주강운이 산 거라느니 하면서 아들을 위해 핑곗거리를 만들었다. 강민서는 그 말들을 믿어 의심치 않았고, 몸이 나아지자 바로 주강운을 찾으러 왔다. 그런데 주강운의 태도가 이토록 차가울 줄 몰랐다.어제는 억지로라도 몇 입 먹더니 오늘은 보지도 않고 의뢰인 만나러 가 버렸다. 이 야밤에 의뢰인은 무슨 의뢰인이야? 거짓말을 하더라도 믿음이 갈 만한 걸 찾아야지."민서야, 강운이 상관 말고 우리끼리 먹어. 먹지 않는 사람이 손해인 거지."강민서는 억지로 웃음을 짜내더니 잠시 후에 물었다. "강운이 오빠는 어떤 여자를 좋아해요? 예전에 사귀었던 분들은 어떤 유형이었어요?"주강운의 어머니는 멈칫하더니 웃으면서 말했다. "강운이가 여자친구를 사귀었으면 내가 이렇게 마음이 조급하지 않지."강민서는 눈썹을 찌푸렸다. 어렸을 때 한성우가 강운이 여자친구에 대해서 말한 적 있는 걸로 기억하고 있는데?아니면 기억이 잘못됐나?"민서야, 강운이를 위해 강운이가 좋아하는 모습으로 바꿀 필요 없어. 너희 두 사람만 좋다면 우리 집안에서는 적극 찬성이야."강민서는 쑥스러운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다. "고마워요."주강운은 가게 주인이 보내온 주소에 따라 30분 후에 가게에 도착했다. 열 시가 되어 가게에는 손님이 없었다. 가게 주인은 청소까지 마치고 프론트에서 수입을 맞춰
은서하는 송가람이 어떤 사람인지 잘 알고 있었다. 이렇게 한현진과 가깝게 지내다 또다시 송가람에게 당할까 두렵지는 않은 걸까?한현진은 도무지 이 어린아이가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시연은 그런 은서하의 모습에 환하게 웃으며 반갑게 은서하와 인사를 나누었다. “서하 씨, 외할머니도 아직 퇴원하지 않으셨을 텐데 오늘은 어떻게 회사에서 점심을 먹는 거예요?”은서하가 대답하기도 전에 이미 누군가 비꼬며 말했다. “진작 회사에서 먹어야 했어요. 도시락도 매일 구정물 같은 것만 싸 오던데 식욕이 있겠어요? 서하 씨. 구내식당은 직원 할인도 있잖아요. 매달 6만 원만 내면 돼요. 그 정도 돈도 없는 건 아니겠죠. 그 도시락, 서하 씨는 괜찮을지 몰라도 전 이제 못 봐주겠어요.”그 말에 은서하의 얼굴이 순간 빨갛게 달아올랐다. 그녀는 젓가락을 꽉 움켜쥐고 부끄러워 어쩔 줄 몰랐다. 이시연이 미간을 찌푸렸다. “안규리 씨, 무슨 말을 그렇게 해요? 구내식당을 이용하든 도시락을 싸든 그건 다른 사람 마음이에요. 6만 원으로 구내식당을 이용하는 게 뭐 그리 고상한 일 같아요?”안규리라고 불린 사람은 송가람 옆에 앉아 있었다. 한현진도 전에 본 적 있는 재무팀 직원이었다. 안규리가 눈썹을 씰룩였다. “구내식당을 이용하는 게 고상하다는 얘기는 전 한 적 없어요. 하지만 매일 죽 같은 도시락을 싸 와 식당에서 데워 먹는 모습은 사실 저희 식욕을 떨어뜨리거든요. 다들 안 그래도 일하느라 힘든데 밥 먹을 때도 이렇게 입맛이 떨어져서야 저희더러 어떻게 살라는 거죠?”주현도 안규리의 말을 거들었다. “서하 씨도 돈이 없어 보이지는 않던데요. 전에 한 대표님이 옷 선물을 하셨을 때도 제일 비싼 옷을 가져갔잖아요. 딱 봐도 그런 걸 처음 본 사람은 아니잖아요. 보자마자 제일 좋은 거로 가져갔는데.”“200만 원이 넘는 옷을 입는 사람이 식비 6만 원을 아낀다고요?”“그게 어떻게 같아요? 몇백만 원짜리 옷은 볼 수도 있고 만질 수도 있잖아요
한현진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집을 나선 한현진은 강한서에게 황씨 아주머니의 월급 인상에 관해 상의했다. 강한서와 강민서가 집을 나선 지 얼마 되지 않아 주혁이 한현진을 데리러 도착했다. 별장을 벗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한현진은 순간 길가에서 누군가의 움직임을 포착했다. 어쩐지 눈에 익은 인영이었다. 한현진이 탄 차가 그 사람과 가까워져서야 한현진은 그 사람이 은서하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한현진은 다급히 주혁에게 차를 세우라고 말하고는 차창을 내려 은서하를 불렀다. “서하 씨!”고개를 돌린 은서하는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대표님이 여긴 어떻게...?”“저 이 근처에 살아요.”한현진이 물었다. “그러는 서하 씨는 여긴 어쩐 일이에요?”이 근처엔 별장을 제외하면 길가에 오가는 차가 전부였다. 사람의 그림자조차 흔하지 않은 길이었다. 은서하가 말했다. “집이 이 근처라서요.”한현진이 놀라며 말했다. “이 근처에 사신다고요?”은서하가 꿋꿋이 거짓말을 이어갔다. “네. 오늘 늦잠을 잤더니 택시가 안 잡혀서요.”한현진은 아무 말 없이 은서하를 살펴보더니 몇 초 후에야 입을 열었다. “일단 타요. 타서 얘기해요.”은서하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는 종종 달려와 한현진 반대편의 문을 열고 차에 탔다. 은서하는 그제야 차에는 한현진과 운전기사뿐만 아니라 평범한 외모의 젊은 청년도 함께인 것을 발견했다. 한현진이 소개하며 말했다. “여긴 원율 씨. 제 개인 비서예요.”은서하가 원율에게 인사를 건네고는 안전벨트를 했다. 그녀는 자신의 가방을 꼭 끌어안고 공손한 자세로 한현진 옆에 앉아 있었다. 차가 출발하자 한현진이 질문을 이어갔다. “여긴 회사와 거리도 있는데 평소 출퇴근 시간이 꽤 걸리지 않아요?”은서하가 어색하게 대답했다. “외할머니 치료 때문에 집을 팔았어요. 하지만 회사 근처엔 월세가 높아서 어쩔 수 없이 먼 곳으로 옮겼어요. 평소엔 버스를 타고 다녔는데 어젯밤엔... 일이 조
한현진이 거울을 보며 옷을 정리했다. “이름이 뭐야?”“문채영.”“꽃부리 영?”강한서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영리할 영.”“특이한 이름이네.”한현진이 멈칫했다. “너 전에 오빠가 맞선을 싫어한다고 하더니 그 여자를 못 잊어서 그런 거였어?”강한서가 말했다. “그런 것 같아.”“그럼 두 사람은 왜 안 만났던 건데?”강한서가 말했다. “자세한 건 네 오빠만 알 거야. 내가 알고 있는 건 고등학교 시절 누나 이모가 누나 아버지를 횡령, 뇌물수수 그리고 사생활이 문란한 문제를 신고했고 그로 인해 많은 사람이 연루되어 누나 아버지는 형량을 꽤 많이 받았어. 누나 어머니도 그 충격을 견디지 못하시고 실성하신 분처럼 구셨어. 그렇게 문씨 가문은 나락으로 떨어진 거야. 그때 누나는 아직 대학도 졸업하지 못했었어.”“우리 수능이 끝나자 누나는 어머니를 모시고 해외로 갔어. 그리고 2년이 지난 후 결혼했지. 남편은 부자인 교포였어. 귀국해서 결혼식을 올린 거라 민준이도 일부러 M국에서 돌아왔어. 결혼식이 끝나고 누나는 남편과 함께 해외로 갔어. 그 후로 우리는 연락이 뜸해졌고. 그리고 2년 전, 누나가 이혼하고 나서야 다시 연락하기 시작한 거야.”한현진이 물었다. “넌 그 여자와 오빠를 이어주고 싶은 거야?”강한서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누나는 민준이를 만나고 싶어 해. 난 그저 중간에서 다리를 놓아주는 것뿐이야. 두 사람이 어떤 사이로 발전할지는 두 사람 일이지.”강한서가 멈칫하더니 말을 이었다. “어렸을 때 그 감정이 지금은 얼마나 남아있을지 모르지. 누나가 이혼 후 2년이 흘렀어. 만약 나라면 그리고 아직도 그 사람을 사랑한다면 바로 전남편에게 꽃이라도 사 들고 찾아가 이혼을 축하해줄 거야. 그리고 바로 누나를 찾아갔겠지. 하지만 네 오빠는 그저 가만히 있었어. 이혼한 걸 몰랐을 리가 없어.”한현진이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만약 너였다면 넌 출국하기도 전에 잡혔을 거야. 그리고 오빠는 너처럼 멍청하지 않아. 그렇게 창피한 일은
문자를 확인한 강한서는 몸을 일으키며 답장을 했다.[고마워요, 누나도 잘 지내죠?][응, 잘 지내지. 나 내일 귀국하는데 시간 되면 밥이나 먹자.][그래요.][네 와이프 송씨 집안에서 잃어버린 딸이라던데, 너랑 민준이는 형님 동생 하면서 지내는 거야? 어떻게 지낼만해?]송민준의 상황을 묻기 위해 연락했다는 걸 알아챈 강한서가 바로 답장을 보내주었다.[괜찮긴 한데 너무 동생 바보라서 나 별로 안 좋아해요. 누나도 송민준 못 본 지 오래됐죠? 내일 같이 나갈게요.][그래, 안 바쁘면 민준이 여자친구도 같이 불러.]강한서는 문채영이 떠보기 위해 하는 말인 걸 알았지만 모른 척 대꾸했다.[송민준 여자친구 없어요, 솔로에요.]그 말에 적잖이 놀란 건지 글자뿐인 문자에서도 문채영의 놀라움이 전해져왔다.[진짜?][누나도 송민준 성격 알잖아요. 얼마나 사람 짜증 나게 하는데, 그렇게 쓸데없는 말 많이 하는 사람이 여자친구를 사귈 리가 없잖아요.]그 말에 눈물을 흘리면서도 입은 웃고 있는 이모티콘을 보내온 문채영은 곧바로 한마디 더 보탰다.[너도 와이프 데려와, 선물 준비했으니까.][네.]이튿날 아침, 강한서는 머리를 말리고 있는 한현진 곁으로 다가가 어젯밤 문채영과 했던 말을 전했다.“내가 아는 사람이야?”그 말에 강한서가 고개를 젓자 한현진은 또 물었다.“남자야 여자야?”“여자.”그 말에 한현진이 잠시 멈칫하자 강한서가 한마디 더 보탰다.“네 새언니가 될뻔한 여자야.”“우리 오빠 첫사랑?”깜짝 놀라며 묻는 한현진에 강한서는 웃으며 대답했다.“그렇다고 할 수도 있는데 실제로 만난 건 아니고 그냥 송민준이 혼자 좋아했어. 그때 같이 다니던 애들은 다 알고 있었지. 그런데...”갑자기 말을 멈추는 강한서에 한현진은 다급히 그를 재촉했다.“왜 갑자기 여기서 말을 끊어, 그런데 뭐?”강한서는 그런 한현진의 볼을 귀엽다는 듯 쓰다듬으며 입꼬리를 올렸다.“나처럼 원하는 여자를 쟁취하진 못한 거지. 그런 쪽으론 영 능력이 없어.”“우
신미정은 결혼을 재촉했지만 할머니는 결혼은 평생을 같이할 사람을 찾는 거라고 마음에 들고 잘 맞는 사람과 해야 한다면서 그렇게 서두르지 않고 있었다.그래서 자신에게 어울리는 결혼 상대를 물색하던 중 한현진의 강한서의 눈에 들게 된 것이다.교통사고까지 다 해서 고작 네 번 본 사이었고 말 한번 섞어본 적도 없어 그다지 좋아하는 건 아니었지만 보면 볼수록 한현진이 마음에 들었다.강한서도 마침 모르는 사람과 결혼해서 서로를 알아가는 게 시간 낭비 같았는데 한현진도 저런 늙은이한테 시집가는 건 원하지 않을 것 같았다.그리고 그날 교통사고도 실수이기는 하지만 한현진의 엄마가 간민혜를 차로 쳐서 죽인 건 맞기에 주강운이 갑자기 한현진한테 무슨 짓을 하기라도 할까 봐 신경 쓰이는 것도 있었다.어쨌든 주강운한테 고모가 간민혜를 만나려고 해서 그녀를 데리고 가다가 사고가 났다고 해명한 건 자신이었기에 강한서는 이 일에 대한 책임을 다하기 위해 한현진을 데리고 있고 싶었다.그렇게 자신을 설득한 강한서는 이틀 뒤 바로 한현진에 연락해 그녀와 맞선자리를 가졌다.맞선자리에서 한현진은 강한서를 알아본 듯했지만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기에 강한서도 굳이 그 일을 꺼내진 않았다.한현진은 이 맞선자리가 유상수가 꾸며낸 자리인 줄로만 알고 혹시라도 실수할까 싶어 말을 최대한 아끼고 있었지만 사실 유상수는 꿈만 꿀 뿐이지 그럴 능력이 못 되는 사람이었다.선 자리를 끝내고 본가로 돌아간 강한서는 바로 한현진의 자료를 건네주며 결혼 의사를 밝혔지만 유씨 집안을 조사해본 할머니는 바로 반대부터 했다.유씨 집안의 지위보다 아내가 아픈데도 들여다보지 않고 비서랑만 붙어있는 유상수의 사람 됨됨이가 별로라서 그의 딸도 비슷할 거라 생각해 거절한 걸 알아챈 강한서는 평소에는 그렇게 말을 아꼈으면서 이번에는 웬일로 한현진을 감싸기 시작했다.그녀가 친구를 도와 나서던 일과 그녀의 지금 상황까지 다 말한 강한서는 한현진이 아니면 결혼은 하지 않겠다고 단호히 말한 뒤 집을 나섰다.그 말에 답답해
침대에서는 늘 신사다웠던 강한서였기에 한현진은 하면서도 아픈 적은 정말 손에 꼽을 정도였다.그래서 당연히 실망은 하지 않았지만 그저 간간이 색다른 그의 모습을 바랐던 적은 있었다.사실 별로 감출 것도 없는 일이지만 갑자기 물어오는 강한서에 부끄러워진 한현진은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쓰며 말했다.“잠이나 자!”그에 웃음을 흘리던 강한서는 한현진을 이불과 함께 끌어와 제 품에 안더니 낮은 목소리로 놀리기 시작했다.“얘기마저 하고 자. 앞으로 어떻게 널 만족시켜야 하는지는 알려줘야지.”“현진아, 현진아. 좀 더 자세하게 얘기해보라니까?”진짜 머리가 어떻게 된 건가.어떻게 하면 만족할지를 자세하게 말하라니, 한현진이 미치지 않고서야 그런 짓을 할 리가 없었다.강한서는 그렇게 한현진을 한참 놀리다가 자리에 제대로 누우며 천천히 다시 입을 열었다.“나 오늘 내가 부계정으로 올렸던 피드들 다시 봤는데 진짜 너무 유치하더라, 전에는 내가 그 정도인 줄은 몰랐는데.”“너 원래 유치하잖아, 닉네임만 봐도 알리지 않아?”코웃음을 치며 말하는 한현진에 강한서가 웃어 보였다.“그 이름 내가 지은 거 아니야.”사실 그 계정은 일상을 공유하기 위해 만든 게 아니라 사업에 필요해서 만든 거였다.그때 한성 그룹에서 개발 중인 신제품에 대해 말이 좀 많았었는데 영향력이 좀 있는 사람들까지 그간의 데이터들을 언급하며 한성에는 그 정도 기술이 없다고, 전부 허위 홍보일 뿐이라는 소문을 퍼뜨리고 있어서 그걸 반격하기 위해 만들어진 계정이었다.그 신제품이 진짠지 가짠지 누구보다 잘 아는 강한서는 화가 나서 자신의 본 계정으로 반박문을 내려고 했지만 본 계정으로 낸 입장문이라면 큰 효과가 없을 거라던 한성우의 말에 설득당해 ‘다이아몬드 수저의 일상’이라는 계정이 생기게 된 것이었다.한성우의 말대로 부계정을 사용해 자신의 생각을 밝히니 사람들이 좀 더 쉽게 받아들였고 덕분에 팔로워도 점점 더 많아지고 있었다.자신의 화려한 배경이 사라지니 허구한 날 걸고넘어지던 사람들도
한현진은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딱딱하게 물었다.“말해 빨리, 나 잘 거니까.”“네가 싫다고 해도 내가 강제로 몰아붙이는 거 좋아한다고 했잖아. 그런데 하다가 네가 진짜로 하기 싫어질 수도 있는 건데 그걸 내가 구별할 수 있을까? 네가 진짜 싫은 건지 아니면 그냥 하는 말인지 잘 몰라서 실수하면 어떡해?”“잘 나가다가 내가 갑자기 왜 화를 내겠어?”“지금도 갑자기 화내잖아, 아까는 막 나 유혹하더니. 아무 예고도 없이 화내는 게 한두 번이야?”그 말을 들은 한현진은 돌아누워 강한서와 눈을 맞추며 따지기 시작했다.“그러니까 네 말은 내가 이유도 없이 자꾸 화만 낸다 그거야?”“아니, 그런 게 아니라 네가 진짜 하기 싫은 건데 내가 그걸 못 알아보고 계속하다가 너 다치게 할까 봐 그러지.”“진짜 싫으면 내가 너 물 거니까 그딴 걱정 할 필요 없어.”그 말에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던 강한서는 언제 풀었는지는 모르지만 이미 자유로워진 손으로 한현진의 손목을 잡으며 그녀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한현진이 그걸 왜 혼자 풀어냈냐고 따지기도 전에 혀를 입속으로 밀어 넣으며 치열을 고르게 훑고 지나가는 강한서에 한현진의 몸은 빠르게 나른해졌다.강한서가 입을 뗐을 때 한현진의 얼굴과 입술은 이미 빨개져 있었고 그녀는 가만히 누운 채 숨만 내뱉으며 아무런 힘도 쓰지 못하고 있었다.한현진 위에 올라타 있었던 강한서는 얼굴에 옅은 미소를 띤 채 그녀를 바라보더니 득의양양하게 말했다.“안 깨물었네.”한현진이 그 말의 뜻의 완전히 깨닫기도 전에 강한서는 또다시 입을 맞춰왔다.시간을 얼추 계산해보니 3달은 넘은 것 같아 사실상 관계를 한다고 해도 문제 될 건 없었기에 한현진은 쥐고 있던 강한서의 머리채를 놓아주고 몸에 힘을 뺐다.그렇게 키스를 이어나가던 강한서는 한참 만에 한현진을 놓아주더니 그대로 이불을 덮어주고는 그녀의 이마에 입을 맞추며 말했다.“자자 이제.”그 말에 어이가 없다는 듯 천장만 바라보던 한현진은 문득 인터넷에서 봤던 피드가 하나 떠올랐다.
강한서는 영문은 몰랐지만 그래도 한현진에게 벨트를 건네주었다.“뒤돌아서 손 등 뒤로 보내.”강한서는 한현진이 뭘 할지 알았지만 그래도 고분고분하게 뒤로 돌고는 손을 등 뒤로 교차시켰다.오래전에 배웠던 로프 묶는 방법을 오늘에서야 쓰게 되니 기뻤는지 한현진은 잔뜩 흥분한 채로 강한서의 손목을 묶었다.“이제 뒤 돌아도 돼.”한현진의 말에 따라 뒤로 돈 강한서는 손이 묶인 채로 그녀 앞에 꿇어앉았다.방금 샤워를 하고 나와 젖은 머리카락을 대충 뒤로 넘겨두었는데 강한서가 고개를 숙이니 머리카락도 앞으로 툭 하고 떨어져나와 그의 반쪽 얼굴을 가려버렸다.얼굴 앞에 드리운 머리칼 사이로 보이는 검은 눈동자에 한현진의 심장은 다시금 두근대기 시작했다.이제 보니 여자들이 정장을 입은 남자가 꿇어앉아 있는데 환장하는 이유가 있는 것 같았다.“맘에 들어?”낮은 목소리로 누구 하나 홀리려고 작정한 듯이 말하는 강한서에 한현진은 귀를 붉힌 채 말했다.“응, 맘에 들어.”“강운 그룹 사모님이 이런 취향인 줄은 몰랐는데, 진작에 나 이렇게 묶어 놓고 싶었겠네?”웃음을 흘리며 말하는 강한서에 한현진은 헛기침을 하며 떨리는 심장을 진정시키고는 입을 열었다.“그건 아니고. 난 네가 날 이렇게 대해주길 더 원했어.”오랜 시간 동안 부부로 살아온 좋은 점이라 하면 아마도 서로에게 더 뻔뻔해질 수 있는 게 아닐까 싶다.그래서 이런 낯간지러운 말을 해도 부끄러움이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강한서는 가만히 꿇어앉아 제 아내가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나는 내가 싫다고 해도 네가 억지로 하는 걸 더 좋아해. 그리고 다 한 다음에 침대에 꿇어앉아서 나한테 용서를 비는 게 보고 싶었어. 내 취향은 그런 거라서.”한현진의 말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던 강한서는 한참 만에 입을 열었다.“그럼 전에 우리가 싸울 때 내가 화나서 입 맞췄을 때는 왜 나 때린 거야? 그날도 내가 억지로 너 몰아세우고 하려고 했었잖아, 좋아한다면서 그때는 왜 나 죽이겠다고 그런 건데?”“진짜
송가람은 생각했다. ‘오빠는 그날 히비스커스 호텔에서 있었던 일 때문에 아직 나를 어떻게 마주하면 좋을지 모르겠는 거야. 게다가 내가 오빠 외숙모 때문에 다치기까지 했으니 분명 엄청난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을 거야. 그러니 이렇게 간단한 문자에도 오래 고민하는 거겠지.’강한서가 대화창을 보며 물었다. “뭐라고 답장한 거야?”한현진이 불퉁한 말투로 말했다. “이래도 안 돼, 저래도 안 되라고 하니까 어쩌겠어. 어떻게 답장하면 좋을지 모르겠으니까 모르겠다고 했지.”한현진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송가람에게서 답장이 왔다. [한서 오빠, 사실 그날 호텔에서 있었던 일은 저희 엄마가 너무 하셨어요. 오빠가 그렇게 대답한 것도 어쩔 수 없어서 그랬다는 거 알아요. 저 오빠 원망 안 해요.]눈을 마주친 강한서와 한현진 두 사람 모두 할 말을 잃었다. 이쪽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상대방이 알아서 넘어왔다. 두 사람이 이렇게 열띤 토론을 펼칠 이유가 전혀 없었다. 한현진이 문자를 보냈다. [몸은 어때. 삼촌 일은, 내가 미안해.]송가람은 다시 한 번 그동안 강한서가 연락하지 않은 이유를 확신할 수 있었다. 그녀가 얼른 답장을 보냈다. [전 괜찮아요, 오빠. 네가 멋대로 결정했다고 오빠가 널 미워하지만 않는다면요.]한현진: [치료 잘 받아.]송가람이 얌전함을 표현하는 이모티콘을 전송했다. [오빠, 생일 파티할 거예요?]한현진: [아니. 그럴 기분이 아니라서.]그 말에 송가람의 얼굴엔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녀느 사실 강한서가 조금 보고 싶었다. 고백 멘트를 작성하던 송가람은 서해금의 충고를 떠올리고 문자를 삭제했다. ‘조금만 더 기다려. 한현진을 회사에서 쫓아낼 때까지만.’송가람이 여전히 문자를 작성하고 있던 그 시점에 상대방에게서 문자가 도착했다. [현진 씨에게 들으니까 요즘 회사에서 대회 준비가 한창이라던데. 요즘 바빠?]송가람: [네. 조향 대회가 있어서요. 지금 한창 참가자 신청을 받고 있어요.]한현진: [네가 대회에서 좋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