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한서의 이마의 핏줄이 곤두섰다."너 그 사람을 알아?""응? 형수님이 매일마다 틱톡에서 그 사람 계정가서 좋아요 누르던데?"강한서는 어이가 없어서 말이 안 나왔다."네가 와이프 틱톡계정은 어떻게 알아?"한성우는 멈칫하더니 추측하는듯이 물었다."너 혹시 네 와이프 틱톡계정도 모르는거야?"강한서는 그만 말문이 막혔다.그의 틱톡계정은 이런 앱들이 막 생겨나기 시작했을때 한성우가 그를 도와 대신 만든거였다. 그가 핸드폰을 바꾼후부터는 이런 유형을 앱들을 일절 다운로드 하지 않았다, 갖고 노는건 더 말할것도 없고.그는 입술을 만지며"다운로드 안했어."한성우는 입이 떡 벌어졌다.그는 강한서가 유현진이 맨날 하루종일 인터넷에서 잘생긴 훈남들을 검색하는걸 알고도 그렇게 태연한줄 알았었다. 마음이 딴데 가있어도 아무런 상관이 없는줄 알았다. 하지만 아무것도 모르는것일 뿐이였다.한성우는 평소에 유현진이 좋아요를 눌렀던 게시물들을 곰곰히 생각해보더니 기침을 짓고는 말했다."어떻게 하는지 모르는거면 다운로드하지 않는게 좋을거야."유현진이 강운한테 양말 한컬레를 선물한 사실도 몇일동안 그를 화나게 만들었었는데 만약 유현진이 좋아요를 누른 사실에 대해 알게된다면 기가 막혀 죽을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사람의 본질은 다른 사람의 말을 반대로 하는게 아닐까 싶다.뭘 하지 말라하면 더 하고 싶어지는 법.강한서는 전화를 끊자마자 바로 틱톡 앱을 다운로드 한후에 전화번호목록에서 유현진의 계정을 손쉽게 찾을수가 있었다.그녀의 모멘트를 들어가보니 그녀가 가장 최근에 좋아요를 누른 게시물의 제목은 '순둥이가 좋아? 짐승이 좋아?' 였다.그는 유현진이 어느때부터 강아지를 좋아하기 시작했는지 의문이 들었다.(고양이를 좋아하지 않았었나?)이렇게 생각하면서 동영상을 클릭해보니 믿지 못할 화면에 그만 얼어붙었다.동영상속의 한 남자가 다른 남자를 보면서 '누나' 라고 부르며 아양을 떨고 있었고.게다가 그 다른 남자는 웃통을 벗고 있었고 목에는 목줄이 달린채로 상대방한
유현진은 핸드폰을 멀찍이 들었다. 차미주가 소리를 다 지른 후에야 입을 열었다."조 선생님이 먼저 데이트 신청을 한거야?"차미주는 이에 말끝을 흐렸다."그렇다고 할수 있지."사실 조 선생님이 주동적이라고 볼수도 없었다.조 선생님의 본명은 조준이고 올해 28세이고 시병원 유선외과의 였다.그 날에 조 선생님과 카톡을 서로 주고받은뒤, 그녀는 자주 조 선생님과 대화를 나눴다.예를 들면 음식은 어떤걸 좋아하는지, 평소에 읽는 책들, 또는 좋아하는 영화 유형 등등. 아무튼 알게 모르게 조 선생님의 취미를 파악하고있었다.조 선생님은 한가할때는 답장을 했지만 매번의 대화를 길게 이어가진 않았다.차미주는 영화를 같이 보러 가자고 했지만 조 선생님은 저녁에 친구 생일에 가야해서 못 간다고 했다.남자에 눈이 뜬 차미주는 유현진보다 훨씬 뻔뻔했다.그녀의 말로는 사람은 많지만 그녀의 맘에 드는 사람 만나기는 아주 힘들기에 눈에 맞는 사람을 만난 이상 억지로라도 사귀고 말거라고 했다.그래서 그녀는 창피를 무릅쓰고 어느 친구의 생일파티에 가냐고 물었다.그녀는 계속 물어보다가 생일을 맞는 사람이 바로 섬블 컴퍼니의 회장 한성우라는걸 알아냈다.아주 친한 사람이 아니던가...... 현진이랑 친한 사람.그래서 그녀는 얼굴색도 변하지 않고 거짓말을 했다."우연이네요, 저도 한 대표랑은 친구사이예요, 저도 저녁에 파티에 가려고 했거든요."이에 조 선생님은 의외의 답변에"근데 아까 같이 영화보러 가자고 하지 않았어요?"차미주는 얼굴색도 변하지 않고 말했다."한 대표가 계속 저를 초대했었는데 제가 너무 북적북적한 곳은 좋아하지 않았어서 원래 선물만 주고 돌아갈려고 했었어요. 조 선생님께서 가신다면 좀 더 있어도 될거 같아요."조 선생님은 가볍게 웃더니 부드러운 목소리로"그럼 밤에 봐요."유현진은 말문이 막혔다.그녀는 믿기 힘들다는듯이 말했다."이게 데이트 신청을 한거라고?""그럼 신청이 아니고 뭔데? 나 상관 안 해, 너 오늘 한성우 생일에 나 무조건
평소라면, 길에서 우연히 한성우를 만난다해도 쳐다보지도 않았을 일이 조 선생님을 쫓다보니 어쩔수없이 지를수밖에 없었다.아나 모르나, 한성우는 그녀의 좋은 친구였다."너는 내 제일 친한 친구야, 너는 너 친구가 보금자리를 찾는걸 바라지 않아?""만약 오늘 날 데려가지 않으면, 너 5년동안 잠자리를 못가질거라고 저주할거야!"유현진은 입가가 떨렸다.너무나도 악독한 저주였다.그녀는 차미주를 힐끔 보고는"한성우는 사람이 쪼짠해서 선물을 준비해서 가야할거야. 아니면 한성우가 널 쫓아내도 난 몰라."차미주의 눈은 순식간에 반달모양이 되였다."당연하지!""그리고 조건이 있어, 만약 못 지키겠다면......""만약 너가 날 저주한다면 나도 너한테 영원히 조 선생님과는 연결이 안될꺼라고 저주할거야!"차미주는 말문이 막혔다."그건 농담이지, 근데 나 화장 좀 해줄수 있어? 이렇게 갈수는 없잖아."차미주는 잠시 숨을 고른후 말을 이어갔다."내가 강한서를 욕할때는 아무렇지도 않더니 잠자리를 못가지는거엔 왤케 예민해? 강한서가 침대위에선 엄청 대단해?"유현진은 어이가 없었다.퇴근후, 민경하는 강한서를 싣고 약속한 지점에서 유현진을 데리러 갔다.차가 멈추고 민경하는 차에서 내려 유현진을 도와 차문을 열어주었다.유현진은 이에"민비서님, 앞에 조수석도 열어주세요, 친구 데려왔어요."민경하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차미주를 도와 조수석문을 열어주었다.차미주는 웃으며 말했다."민비서님 감사해요."민경하는 이에 놀라며"차아가씨?"차미주는 어금니를 드러내며"저 오늘 예뻐요?"민경하는 차미주에 대해 그래도 잘 아는 편이였다. 필경 자주 사모님과 어울렸기에 접촉은 피할수 없었다.그의 인상속의 차미주는 항상 후드티에 청바지 머리카락은 어꺠에 닿을정도였고 아주 깔끔한 헤어스타일에 동그란 눈, 웃을때 드러나는 두개의 어금니, 보일듯 보이지 않는 보조개. 말을 하지않을땐 아직 졸업하지 않은 대학생같은 풋풋함이 묻어났었다.하지만 입을 열기만 하면 사회인이 다 되
앞에서 줄 서있는 사람이 많아서 차미주는 까치발을 들고 보고있었다.시계를 선물하는 사람, 신발을 선물하는 사람, 가방을 선물하는 사람, 액세사리를 선물하는 사람, 게다가 차를 선물하려는 사람까지 있었다.그녀는 고개를 속이고 자신이 손에 든 선물을 보고는 소리소문없이 가방안에 넣었다. 현진이 선물 줄때 은근슬쩍 넘어가려는 속셈이였다.강한서의 차례가 되자 그는 한세트의 와인잔을 꺼내 선물했다.차미주는 갑자기 실망한듯한 표정을 지으며 낮은 소리로 유현진에게 속삭였다."강한서도 너무 쪼잔한거 아니야? 그래도 제일 친한 친군데 고작 와인잔이라니."유현진은 할말을 잃었다.(어쩐지 강한서가 우리 둘 그냥 똑같다더니, 어쩜 와인잔을 보고 하는 말도 토씨 하나 안 틀리고 똑같을 수가 있지?)그녀의 집에도 똑같은 와인잔이 있었다, 강한서가 회사의 고객한테서 받은거였다.당시에 강한서가 그걸 들고올때 그녀도 차미주와 똑같은 말을 했었다.그녀는 절대로 그녀가 말을 끝낸후 강한서가 그녀를 보는 눈빛을 잊을수 없었다. 의아, 놀람, 믿을수 없다는 표정에서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변했다.마지막에 민경하가 알려주길 이건 오지리에서 아주 유명한 와인잔회사에서 제조한 물건이라 했다.잔에 담긴 와인의 맛이 더욱 좋아질뿐만아니라 잔 아래에 박혀있는 보석은 그 가치만 해도 2억은 넘었다.차미주는 파티장에 들어서자마자 한눈에 조 선생님을 찾아냈다.그녀는 먹임감을 노리는 고양이마냥 순식간에 따라갔다. 유현진이 차마 부르기도 전에."한서야, 현진씨."등뒤에서 주강운의 목소리가 들리자 유현진은 고개를 돌리고 놀랍다는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주 변호사님?"이에 강한서는 눈썹을 찌푸리고는 그녀의 손을 꽉 잡았다.주강운은 하얀색 양복을 입고 있었고 티셔츠는 항상 마지막 단추까지 달고 있었다.그는 깊은 눈동자를 가지고 있었기에 웃고 있지 않을땐 고귀해보였으며 웃을땐 따뜻함이 느껴졌다.주 변호사 몸에 있는 상처 때문인지, 마음속에 있는 자책감때문인지. 그녀는 그를 대할때 항상
주강운은 입술을 깨물더니 말했다."너 민서가 날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잖아. 민서가 오해하는 것도 싫고, 두 가족이 이에 대해 기대를 품는 것도 원치 않아."강한서는 오히려 담담한 태도를 보였다."네가 그렇게 생각하면 하루 빨리 여친을 찾아서 민서가 일찌감치 포기하도록 하면 되잖아."주강운이 웃으면서 말했다."그게 내가 생각한다고 바로 실현되는 거 아니잖아. 여유를 가지고 기다려야지. 적합한 사람 있으면 나 소개시켜줘. 내가 그렇게 요구가 높은 것도 아니고. 외모야 봐줄 만하면 되고, 성격은 현진 씨 정도면 돼."강한서......상대방이 농담인지 진심인지 분간하기 어려웠던 강한서는 주강운의 눈을 응시했다. 강한서에 비해 유현진은 엄청 단순하게 생각했다. 심지어 내심 흥분되었던 그는 고개를 돌려 강한서를 향해 말했다."봐봐. 나 같은 유형 소개팅 시장에서는 은근 인기가 많다니까."한성우도 유사한 얘기를 한 적 있고, 심지어 주강운도 이렇게 말하니 유현진의 어깨에 힘이 들어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강한서가 유현진을 흘끔 쳐다보더니 한마디 뱉었다."그래 얼굴만 예쁘고 머리가 텅 비었으니 인기가 많겠지."유현진......망할 인간! 그 놈의 입에서는 좋은 말이 나올 때가 없지!주강운이 방금 전에 한 말은 농담인 것 같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농담 분위기를 거두고 부드럽게 말했다."가자. 성우한테 가봐야지."차미주가 뒤따라 왔을 때, 조 선생님은 한성우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그는 의사가운이 아닌 정장 차림이었다. 미소를 지으면서 친구와 담소를 나누는 장면을 포착하자 차미주의 눈은 자연스레 주변 사람들을 필터링해 버렸다. 시야에 남은 건 오직 조 선생님 뿐이었다.차미주는 잠깐 옷차림을 정리하고 보폭을 줄여 앞으로 다가가 애교를 섞은 목소리로 불렀다."조 선생님?"조준은 멈칫하다가 고개를 돌려 차미주에게 시선을 돌렸다.그의 시선은 차미주를 아래로부터 훑기 시작하여, 희고 가느다란 다리를 지나 조금씩 위로 이동하면서 엉덩이,
한성우는 다시 한번 차미주를 밀어냈다.하지만 온 몸에 탄탄한 근육들로 뒤덮인 차미주는 낙지마냥 한성우에게 착 달라붙어서는 떨어지지 않았다. 한성우가 아무리 애를 써도 밀어낼 수가 없었다.강한서라면 일말의 여지도 없이 바로 밀쳤을 텐데, 한성우는 강한서와 달랐다. 그는 어느 부잣집 따님인데, 자신이 기억하지 못했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는 힘껏 밀칠 수가 없었다.한성우는 차미주의 어깨를 톡톡 두드리면서 미소 지은 얼굴로 말했다."얼굴을 보여줘야 변했는지 안 변했는지 알지."내 얼굴을 보겠다고? 그러면 다 들통날 거잖아.차미주는 얼굴을 아예 한성우의 가슴에 묻으면서 말했다."성우 오빠, 농담하지 마요. 저 쑥스러움을 많이 탄단 말이에요."한성우......이거 누가 특별히 준비한 프로그램 같은 거 아니겠지?키가 이렇게 작은데, 뭔 힘이 이렇게 세?두 사람의 '친밀한' 스킨십을 보자, 조준은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미주 씨, 한 대표님과 어릴 때부터 아는 사이었어요?""어릴 때 잠깐 알고 지내던 사이었어요."한성우......이렇게 끌다가 한성우가 뭔가 떠오르면 끝장이라는 생각이 들자 차미주는 바로 핑계를 대고 자리를 떴다."성우 오빠, 생일 축하해요. 친구들이랑 놀고 있어요. 저는 화장실 다녀올게요."말이 끝나기 바쁘게 한성우가 반응하기도 전에 그는 인파 속으로 사라졌다.한성우는 차미주의 얼굴을 끝내 보지 못했다. 그저 조준과 얘기를 나눌 때 빛이 반짝였던 큰 눈만 뇌리에 박혔다.조준이 물었다."한 대표님, 미주 씨 어느 집 따님이죠?"한성우가 어찌 알겠는가?그저 한마디 얼버무렸다."먼 친척이요."조준이 웃었다."재밌는 친구네요."차미주는 멀리 가고 나서야 고개를 돌려 상황을 살폈다. 조 선생님의 기색이 평소와 다름없자 비로소 시름을 놓았다.엄청 위험했다! 그나마 반응이 빨라 위험한 상황은 모면했지만!그는 고개를 숙여 자신의 손을 내려다 보자, 방금 전에 한성우를 안았던 장면이 떠올라 저도 모르게 불쾌한 표정을
이때 차미주에게서 문자가 왔다."강한서랑 조 선생님이 아는 사이야?"유현진이 답장을 했다."그런 것 같어.""너 강한서한테 조 선생님에 대해서 잘 알아보라고 해. 만약 나랑 조 선생님이 잘되면 나중에 너랑 강한서를 주례로 모실게."차미주가 부탁하지 않더라도 유현진은 알아볼 계획이었다. 어느 집안 출신인지 알아보기 전에 우선 사람 됨됨이를 알아야 하니까.사람들이 인사말을 서로 주고받은 후 유현진은 낮은 소리로 강한서에게 물었다."당신, 조 선생님과 잘 아는 사이야?"강한서가 유현진을 흘끔 쳐다보더니 답했다."아니!"그러자 유현진이 미간을 찌푸렸다."잘 아는 사이도 아닌데 당신한테 말을 걸어?"강한서가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나한테 말을 거는 사람이 그렇게 많은데 내가 일일이 다 잘 알아야 돼?"유현진은 할말을 잃었다.강한서는 일부러 말해주기 싫어서가 아니라 정말로 잘 아는 사이가 아니었다. 가끔 한성우가 사람들을 초대하는 자리에서 만난 적이 있을 뿐, 그의 배경에 대해서 아는 게 없었다.하지만 유현진은 강한서가 일부러 말해주는 않는 줄 알고 순간 화가 났다.이러한 자리에서 강한서는 항상 인기가 폭발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유현진은 옆에서 딱히 할말도 없었고, 머릿속은 온통 조 선생님에 관해 알아볼 생각으로 꽉 차 있었다.이때 그는 주강운이 조 선생님과 얘기를 나누는 모습을 포착했다.두 사람의 모습을 보아서는 친한 사이인 것 같았다. 유현진은 바로 술잔을 들고 다가갔다."강운 씨, 이거 드셔 보실래요?"주강운이 고개를 돌려 유현진을 발견하자 눈빛이 더없이 부드러워졌다. 그는 유현진이 건네는 디저트를 받아쥐고는 부드럽게 말했다."고마워요."유현진은 이 기회에 조준에게 인사를 했다."조 선생님, 안녕하세요."조준도 예의를 다해 인사를 했다."현진 씨, 안녕하세요."주강운이 옆에서 물었다."두 사람 아는 사이에요?""아는 사이라고 할 수는 없고, 얼마 전에 친구가 건강검진하는데
그는 숨을 죽이고 일일이 대조해 보았다.그의 예상대로 9743 숫자 네 개 모두 그 위에 있었다.그럼 하현주가 설정한 비번이 은영 선생님의 행사 횟수?찐팬으로서 충분히 할 수 있는 행위였다.그럼 나머지 두 자리는?6과 5는 뭘 의미하지?9743이 은형 선생님과 연관이 있다면, 6과 5도 분명 은영 선생님과 관련 있을 텐데.유현진은 잠깐 고민하다가 검색창에 은영 선생님을 입력해보니, 은영 선생님의 생일이 바로 6월 5일이었다.비번이 이거라고?유현진은 갑자기 심장이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그가 수상한 표정을 지으면서 선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자, 주강운이 앞으로 다가가 물었다."무슨 일 있어요?"유현진은 비로소 정신을 차리고 휴대폰 화면을 끄고 말했다."강운 씨, 조금 있다가 그이한테 제가 급한 일이 있어서 먼저 갔다고 전해줘요. 그리고 집 갈 때 미주를 집에다 바래다주라고 해요."유현진의 심각한 표정을 보자 주강운은 낮은 소리로 물었다."무슨 일이 있어요?""아뇨."유현진은 애써 웃으면서 말했다."오늘 저녁에 비가 있다고 하네요. 제가 키우는 화분들이 비를 맞으면 안돼서 비막이를 해줘야 해요. 도우미 아주머니가 온 지 얼마 안돼서 서툴다보니 제가 직접 가봐야 해요.""알겠어요. 제가 조금 있다가 한서에게 전할게요.""고마워요."그러고 나서 유현진은 빠른 걸음으로 떠나갔다.주강운은 그의 뒷모습을 보면서 방금 전의 대화를 다시 떠올려 보더니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택시를 잡아 아름드리 펜션에 도착하자마자 유현진은 금고 앞으로 직행하여 659743을 입력했다.틀렸다.그는 입술을 깨물면서 다시 974365를 입력했다.그러자 금고에서 "띠띠" 소리가 나더니 치륜들이 서로 맞물리는 소리가 들렸고, 뒤이어 "쾅당"소리가 울리면서 금고 문이 튕기면서 열렸다.그 안에스는 엄청 두꺼운 자료가 놓여 있었다.그가 손을 내밀어서 꺼내보자 첫 번째 자료가 바로 이혼협의서였다.그는 두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놀라운 마음을 애써 다독이면
장준의 아버지는 요직을 맡고 있었고 장씨 가문엔 그의 아버지를 제외하고도 수많은 정치인들이 있었다. 그랬기에 가족 중 단 한명이라도 꼬리를 밟힌다면 그의 가문은 수습 불가능한 상황으로 치닫기도 했다. 장준이 저질렀던 인간 같지도 않은 일들이 하나하나 밝혀지기 시작했다. 폭행, 음주 운전, 도박, 성폭행...피해자들이 하나둘 인터넷에 장준의 진짜 모습을 폭로했다. 수많은 피해자의 목소리를 누를 수 없었던 장씨 가문의 스캔들이 결국 전부 드러나고 말았다. 홍혜림 역시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그녀는 곧 회사 계정으로 진윤은 그날 운전을 하지 않았다는 입장을 발표와 함께 그와 관련된 증거들과 범죄경력증명서를 전부 공개 했다. [그러니까 진윤은 또 다른 도련님의 기사를 막기 위해 총알받이가 됐다는 거네?][어쩐지 뭔가 이상하더라니.][그렇게 심각한 교통사고에 진윤 한 사람만 공개 처형하는 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했어요. 역시 여론을 부추기는 사람이 있었다는 거네요.][발 빼려고 하지 마. 장준이 주범이었다고 하더라도 진윤이 그 경기와 아무런 관련도 없는 건 아니잖아. 끼리끼리는 과학이라고 했는데 그놈이 그놈 아니겠어? 서화 대학에서도 진윤의 재시험 부정행위를 인정 했잖아.][학교엔 이미 소문을 파다해요. 이번 일과는 관련이 없다고 해도 언젠가는 비슷한 사고를 쳤을 거예요. 장준이나 진윤이나 크게 다를 거 없잖아요.][저기요. 두 사람을 싸잡아 욕 하지는 마요. 한 명은 범죄자고 다른 한 명은 그저 인성에 문제가 있는 것뿐이에요. 그게 어떻게 같아요? 얼른 진상 규명이나 하시죠. 피해자에게 피해 보상은 해야 하잖아요.]...휴대폰을 한 쪽으로 던져버린 서해금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장준이었어? 어쩐지...”성월이 그녀에게 차를 건네며 나지막이 물었다. “대표님, 진윤 씨 일은 이미 어느 정도 해결이 된 것 같아요. 그럼 저희 계획은 어떻게 해요?”“아직 끝나지 않았어요.”서해금이 찻잔을 들어 올리며 덤덤하게 말했다. “홍혜림은 누구보다
장씨 가문 아들이라는 이유로 여론이 들끓는 것을 염려한 탓인지 기사는 간단한 몇 마디 말로 상황을 간결하게 보도했다. 하지만 한현진은 감추려고 할수록 일은 점점 더 커질 것이라 생각했다. 드디어 주강운이 손을 쓴 모양이었다.고개를 들어 강한서를 바라보는 한현진의 눈이 별처럼 반짝였다.“여보, 장준이 잡힌 것 같아.”강한서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누가 그래?”한현진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며 강한서에게 한성우가 보낸 기사를 보여주었다. “시간, 교통사고, 장 모 씨, 약물. 이 단어들만 봐도 누군지 뻔하잖아.”강한서가 놀랍다는 듯 말했다. “장 모 씨가 정말 장준이야? 어떻게 잡힌 거지? 누가 신고라도 한 건가.”“나쁜 짓을 그렇게 많이 했으니 벌을 받는 거지. 피해가 한두 명이면 집안 세력으로 어떻게든 막을 수 있겠지만 그 수많은 피해자를 전부 막을 수는 없잖아?”강한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기사에 다른 얘기는 없어?”“없어. 그냥 언급만 한 수준이야. 하지만 이 기사를 시작으로 진실을 밝혀 나가려는 사람은 분명 있을 거야. 그건 우리가 상관할 일이 아니지.”한현진이 나지막이 말했다. “장준과 관련된 기사가 퍼져 나가기 시작하면 사모님께 이 기회를 빌려 진윤 씨에 관련한 입장 발표를 하시라고 말씀 드려.”강한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 아침 연락드릴게.”강한서는 이상할 정도 순순히 대답했다. 예전이라면 어떻게 된 일이냐며 꼬치꼬치 캐 물었을 것이 분명했다. 지금처럼 쉽게 넘어갈 리가 없었다.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한현진의 시선에 강한서가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가 다정한 목소리로 한현진에게 물었다.“왜?”하지만 한현진은 곧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아무것도 아니야. 산책 가자.”강한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옷 가지고 올게.”강한서의 뒷모습을 지긋이 바라보던 한현진이 휴대폰을 들어 한성우에게 문자를 보냈다. [오늘 강한서가 좀 이상해요. 평소엔 꼬치꼬치 따지더니 오늘은 기사를 보여줘도 아무것도
멈칫한 강한서가 입술을 짓이겼다. “누가 어딜 들어갔다고?”강한서의 목소리에 수화기 너머의 사람은 순간 조용해졌다. 그러더니 곧 어색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한서야, 야근 안 했어? 오늘은 일찍 퇴근했네.”강한서는 화제를 돌리는 한성우의 말에 전혀 동요하지 않은 채 다시 물었다. “방금 누가 어딜 들어갔다고?”“방금 내가 뭐라고 했어?”한성우가 모른 척 대답했다. “갑자기 네가 튀어나오는 탓에 다 잊어버렸잖아.”강한서가 말했다. “강운이가 장준을 처넣었다며.”한성우: ...후회 막심한 얼굴로 자신의 입을 툭 친 한성우가 웃으며 대답했다. “어, 맞아. 바로 그거야. 나도 방금 어디서 그 소식을 듣고 형수님과 수다나 떨려고 전화한 거야. 너도 알잖아. 형수님과 내가 뒷담화 할 땐 죽이 척척 맞는 거.”“그래?”강한서가 담담한 말투로 말을 이었다. “난 두 사람이 나한테 뭔가 숨기는 게 있는 줄 알았지.”“그럴 리가 있겠어?” 한성우가 당당하게 말했다. “우리가 널 속일 수는 있고? 두 사람 요즘 진윤 씨 일 때문에 걱정이 많잖아. 그래서 나도 신경 좀 썼지. 봐, 소식을 듣고는 바로 알려 주려고 전화했잖아.”“그래.”강한서의 대답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던 한성우의 귓가로 곧 다시 강한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현진이가 강운이한테 뭐라고 했는데?”한성우: ...한성우가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뭐? 형수님이 강운이와 연락했어?”잠시 침묵하던 강한서가 다시 입을 열었다. “너한테 전해달라고 한 말이 뭐냐고.”의심이 아닌 확신에 찬 말투에 한성우는 머리가 찌릿, 할 정도로 소름이 돋았다. ‘조금만 참았다가 나중에 전화할 것이지, 난 왜 하필 지금 한 거야?’어차피 한강서가 전부 눈치 챈 마당에 더는 숨길 필요가 없어진 한성우는 결국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형수님이 너한테 숨겼다고 뭐라고 하지 마. 형수님이 강운이에게 연락한 게 아냐. 나한테 눈치를 주라고 부탁하셨어. 강운이네는 줄곧 장씨 가문과 사이가 안 좋았잖아
“실망이라니. 엄마는 단 한 번도 널 창피하게 여긴 적 없어. 넌 엄마가 배 아파 낳은 내 자식이야. 내가 널 몰라? 엄마는 그냥 네가 이번 일 때문에 힘들어 할까봐 그래. 엄마는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어.”“요즘 네가 말도 없고 조용하기만 해서 우리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진윤의 등을 어루만지며 홍혜림이 나지막이 말했다. “이런 일은 아무것도 아니야. 인생 살면서 이런 일 안 겪는 사람은 없어. 이겨내면 돼.”고개를 끄덕인 진윤이 홍혜림을 꽉 끌어안았다. ...아름드리.“그러니까 아주머니가 뒤에서 여론몰이에 동조했다는 거야?”한현진이 자몽을 까며 강한서에게 말하자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 절묘한 타이밍에 나타나서 알아봤더니 오성빈 교수라는 사람, 성 비서님의 먼 친척이시더라고. 그러니까 그분이 나서서 얘기만 해주면 잘 해결될 가능성이 높아.”잠시 생각하던 한현진이 말했다. “그래서 일부러 홍혜림 씨가 신세를 질 수밖에 없게 만드시겠다? 홍혜림 씨를 다시 뺏어가려는 거야?”“그럴 수도 있지만 그게 전부는 아닌 것 같아.”한현진이 눈을 반짝이며 강한서 곁으로 다가갔다. 꿍꿍이 가득한 얼굴로 한현진이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그럼 우리는 그걸 지켜보면 되겠네. 본인 계획대로 흘러가고 있다고 착각하게 만든 다음대체 뭘 하려는 생각인지 지켜보자고.”강한서가 어쩐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한현진을 쳐다보았다. 그 표정에 어리둥절해진 한현진이 물었다. “왜 그렇게 웃어? 뭐야, 그 음흉한 웃음은.”강한서가 나지막이 대답했다. “근묵자흑이라는 단어가 너무 맞는 말인 것 같아서.”한현진: ?“설명 똑바로 해. 누가 그 묵인데?”강한서는 씩 웃으며 한현진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한현진이 깐 자몽을 가져가 한 입 베어 문 강한서의 표정이 곧 강한 신맛에 잔뜩 일그러졌다. 자몽을 겨우 삼킨 강한서가 인상을 찌푸린 채 믿을 수 없다는 듯 말했다. “넌 이걸 대체 어떻게 아무렇지 않게 먹을 수 있는 거야.”한현진이 눈을 깜빡였다.
[그래도 학교 측에서 끝까지 부정행위라고 주장하면서 재수강하라고 하면 어떡해요?]강한서가 웃으며 말했다. [넌 언제든 법적 대응을 할 수 있다는 걸 잊지 마. 내가 대신 신고해줘?]진윤은 그제야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 번뜩 정신이 들었다. 인터넷에 도배된 악플로 잔뜩 지친 진윤은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는 일에만 몰두해 있었다. 그는 심지어 학교 측에 새로운 시험 문제를 내도록 제안한 후 라이브 방송을 통해 부정행위가 없었음을 증명할까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강한서의 한마디는 진윤의 모든 고민을 한 방에 해결했다. 스스로의 결백을 증명하는 건 결국 그 사람들이 파놓은 함정에 뛰어 드는 것 과 다를 바가 없었다. 사람들은 애초부터 그가 부정행위를 했을 거라 확신하고 있었다. 그러니 진윤이 라이브 방송으로 결백을 증명한다고 한다고 해도 사람들은 또 미리 답을 알고 있으면서 카메라 앞에서 쇼를 하는 것이라며 의심하게 뻔했다. 부정행위의 증명해야 할 사람은 진윤이 아니라 그를 의심한 사람들이었다. 진윤이 순간 눈을 반짝였다. [얼른 엄마를 말려야겠어요. 교수님에게 부탁할 필요가 없잖아요. 전 당당하니까 얼마든지 조사하라고 해요.][잠깐만.]강한서가 진윤을 불렀다. [잠깐만 기다려 봐.][왜요?]입술을 깨물던 강한서가 중얼거렸다. [고작 학생인 네가 시험에서 부정행위를 했다는 이유만으로 여론이 이 정도로 들끓는게 처음부터 이상했어. 이제야 의문이 조금 풀리는 것 같네.][그게 뭔데요. 얼른 얘기 해줘요.]성격 급한 진윤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는 강한서 때문에 괜히 마음만 조급해졌다. 강한서가 말했다. [넌 지금 아무것도 하지 마. 어머님께도 오 교수님이라는 분 만나보라고 해. 뭐라고 하는지 얘기나 들어 보고 다시 대책을 세워야해.]진윤이 조금 전처럼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형님, 어차피 이렇게 된 거 그 인간들의 계략을 역이용하시려는 거예요?]강한서가 쯧, 혀를 차며 말했다. [매형이라고 불러]진윤: ...홍혜림과
법적 장모님이라는 여섯 글자에 멍한 표정을 짓던 강한서가 물었다. [서해금 대표 말하는 거야?][네. 그 분, 현진 누나 새엄마잖아요. 그럼 형님에겐 법적 장모님 아녜요?]강한서: ...‘맞긴 하네.’[난 오성빈 교수님과는 전혀 모르는 사이야.]멈칫하던 강한서가 물었다. [그건 왜 묻는데?]강한서의 말에 기분이 축 처진 진윤이 한참만에야 대답했다. [학교에서 제 재시험 성적을 취소하더니 재수강하래요.]강한서가 미간을 찌푸렸다. [그게 무슨 말이야? 학교에서는 네가 부정행위를 했다고 판단한 거야?][명백하게 얘기한 건 아닌데 사실은 그런 셈이죠. 하지만 다른 처분은 없이 그냥 재수강만 하래요. 친한 친구에게 들은 건데 학교에 신고 전화가 빗발쳤었데요. 홈페이지에도 전부 부정행위 진상 규명을 바라는 댓글로 도배됐다고 하더라고요.][아마도 학교의 이미지 회복을 위한 판단이었던 것 같아요. 저에게 적당한 책임을 전가할 수도 있고 대중들에게는 그들이 원하던 조치를 취했다고 보여줄 수 있으니까요.]강한서는 여전히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 물었다. [그럼 교수님에게는 무슨 일로 연락을 하려는 거야?][조교님께서 이번 일은 오 교수님 담당이라고 하셔서요. 비록 재수강으로 결론이 났다고 하지만 아직 완전히 결정된 건 아니니까요. 그래서 엄마는 오해를 풀기 위해 오 교수님을 한 번 만나 얘기를 나누고 싶어 하세요.][아는 분께 부탁해 오 교수님과의 자리를 만들어보려고 했지만 결국은 연락이 닿지 않았어요. 하지만 마침 형님 법적 장모님께서 제 병문안을 오셨다가 그 얘기를 들으시더니 오 교수님과 아는 사이라고 하더라고요.][꽤 가까운 사이인 것 같아 엄마는 만약 가능하다면 그분께 다리를 놔달라고 부탁할 생각이세요.]진윤이 한숨을 내쉬었다. [워낙 지적인 얼굴을 하고 계서서 좋은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던데요. 딸인 현진 누나에게도 가식적으로 대하는 것 같던데 전 그런 사람이 진심으로 저희를 도와줄 리가 없잖아요.][방금 형님과 얘기를 하면서 혹시 형님도
홍혜림이 서해금에게 얘기를 꺼내려던 그때, 진윤이 그녀의 말을 잘랐다. “잠깐 실례할게요.”홍혜림이 곧바로 하려던 말을 삼키고 몸을 일으켰다. “엄마가 부축해줄게.”“네.”진윤이 대답했다. 진윤을 부축하며 병실을 나서는 홍혜림을 쳐다보던 서해금이 고개를 돌려 성월에게 물었다. “아무 문제없이 잘 해결했죠?”성월이 고개를 끄덕였다. “대표님께서 지시하신 대로 했어요.”멈칫하던 성월이 나지막이 물었다. “대표님, 정말 사모님께서 저희에게 부탁하러 오실까요?”서해금이 덤덤하게 말했다. “평소라면 부탁하지 않을 수도 있겠죠. 하지만 궁지에 몰린 상황이라면 분명 부탁할 수밖에 없을 거예요. 홍혜림은 지금 아들의 누명을 벗기기 위해 안달이 나 있는 상황이에요. 그러니 저를 통해 이 일을 해결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된다면...”“아무리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고 해도 결국 머리를 숙일 수밖에 없어요.”“조향 대회의 마지막 경기는 OM향 협회의 투표로 승패가 결정돼요. 홍혜림은 OM향 협회의 오래된 회원이에요. 게다가 이번 조향 대회 열 명의 심사위원 중 한 명으로 선정되기도 했고요.”“홍혜림은 누구보다 의리를 중요하게 생각해요. 제가 큰 도움을 준다면 어떻게든 그 빚을 갚으려고 할 거예요. 전 준비가 안 된 싸움은 시작하지 않아요.”피식 웃음을 흘린 서해금의 눈빛이 멸시로 가득했다. “전 조금의 실수도 용납할 수 없어요.”성월은 이토록 치밀한 서해금에 탄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오성빈의 친척과 친분이 있다는 얘기를 꺼내는 서해금의 모습에 성월은 그녀가 단지 빼앗긴 고객을 다시 찾아가기 위해 던지는 미끼일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서해금이 바라는 것은 자신에게 마음에 빚을 진 홍혜림이 조향대회에서 관건적인 한 표를 행사하는 것이었다. 서해금이 이렇게까지 서포트 해주고 있으니 송가람은 조금만 노력해도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었다. 순간 뭔가를 떠올린 성월이 목소리를 잔뜩 낮추며 물었다. “대표님, 인터넷에서 진윤 씨에 관한 여론이 들끓고
“하지만 지금 이 상황에 가면 걔들은 거짓말을 들킨 네가 양심에 찔려서 해외로 도피하는 거라고 생각할 거야.”진윤이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 “걔들이 뭐라고 생각하든 저랑 무슨 상관이에요. 어차피 출국하면 아무것도 듣지도 보지도 못할 텐데.”“그럼 너 평생 해외에만 있을 거야? 안 돌아올래?”입술을 달싹인 진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당연히 그럴 수는 없었다. 부모님도, 집도, 가족도 전부 한주에 있으니 지금 당장 해외에 나간다고 해도 결국 돌아와야만 했다. 홍혜림이 의미심장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 “윤아, 사람의 명성이라는 게 한 번 나빠지면 다시 좋아진다는 건 어려운 일이야. 해외로 도망쳐 이번 일을 지나보낸다고 해도 졸업하면 결국 여기 동기들과 다시 마주해야 한 텐데, 걔들이 널 보고도 옛날 얘기를 꺼내지 않을 것 같아?”“다들 널 안 좋게 보고 있는 지금, 네가 끝까지 네 결백을 증명해야 나중에 걔들이 다시 이 얘기를 꺼내도 억울하지는 않을 거야. 알겠어?”“결백을 뭐로 증명해요? CCTV도 없고 아무것도 없잖아요. 전 당당하다는 걸 아무도 증언해줄 사람이 없어요. 절 믿는 사람도 없다고요.”진윤이 잠김 목소리로 물었다. “엄마, 저 어떡해요?”홍혜림은 미어지는 가슴을 붙잡고 아들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위로를 건넸다. “아무도 널 안 믿어도 엄마는 널 믿어. 네 아빠, 형 그리고 네 형수님도 널 믿어. 그러니까 아들, 괜찮아. 엄마가 있는 한 아무도 우리 아들 못 건드려. 엄마가 꼭 네가 정정당당하게 학교로 돌아갈 수 있게 할게.”홍혜림이 말에 진윤이 대답하려던 그때, 누군가 병실 문을 두드렸다. 진윤이 고개를 돌려 얼굴을 닦으며 감정을 추슬렀다. 홍혜림 역시 심호흡을 하고는 몸을 일으켰다. 문을 열자 보이는 의외의 인물에 홍혜림의 눈이 동그래졌다. 서해금이었다.서해금은 성월과 함께 진윤의 병실로 찾아왔다. 두 사람은 손에 선물을 잔뜩 들고 서 있었다. 병실 문이 열리자 서해금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나
소식을 전해들은 진윤은 어이없는 상황에 곧바로 조교에게 전화했다. “조교님, 안녕하세요. 제가 재수강하라는 통보를 받았는데 혹시 뭔가 실수가 있었던 건 아닌가 싶어서요. 재시험도 통과했는데 왜 재수강을 하라고 하는 거예요?”조교가 말했다. “잠깐만요, 확인해 볼게요.”“네.”비록 불안한 기분이 들었지만 진윤은 학교에서 실수가 있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한 시간 같던 1분이 흐르고 진윤의 귓가로 조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확인해 봤는데 재수강 명단에 진윤 씨 이름이 있네요. 실수는 아닌 것 같아요.”진윤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분명 재시험도 통과했는데 왜 이름이 재수강 명단에 있는 거예요?”인터넷에 떠도는 여론을 떠올린 진윤이 입술을 짓이겼다. “혹시 학교에서도 제가 부정행위를 했다고 판단해서 성적을 무효화 시킨 건가요?”“그게... 그건 저도 잘 모르겠어요. 저도 학원 연락을 받은 거라.”진윤이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시험장엔 CCTV도 설치되어 있었어요. 부정행위가 있었는지 아닌지, CCTV를 확인하면 알 수 있잖아요. CCTV를 확인해 볼 수는 없어요?”조교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진윤 씨, 이번 일은 진윤 씨 생각처럼 그리 간단한 일이 아녜요.”“그럼 얼마나 복잡한 일인데요?”눈을 질끈 감은 진윤이 잠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학교의 명성을 위해 부정행위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제 성적을 취소하는 것으로 사건을 무마하시겠다는 건가요?”조교 역시 어떤 말을 꺼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 한참만에야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오 교수님께 연락 드려 봐요. 이번 일은 학교에서 교수님께 맡기셨거든요.”진윤이 알고 있는 것은 오 교수 비서의 전화번호가 전부였다. 어쩔 수 없이 오 교수의 비서에게 전화하자 그는 빈해시에 중요한 회의가 있어 출장 중이라며 전화를 받을 만한 상황이 아니니 한주로 돌아가면 그때 다시 얘기하자고 했다. 재수강 명단은 이번 주가 지나면 더 이상 수정이 불가능했다. 진윤에겐 시간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