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억-"이 선생이 갑자기 사무용 책상을 내리쳤다.다들 깜짝 놀라 물었다."이 선생님, 뭐 하시는 거예요?"이 선생님은 자기의 허벅지를 치며 말했다."나 생각 났어요! 어쩐지 눈에 익다고 했는데, 아까 그 남자 한성 그룹의 강 대표잖아요. 도서관 체결하는 날 나 그 자리에 있었어요. 멀리서 봤는데 아까 그 남자가 사인했어요."다들 경악을 금치 못했다.어쩐지 교감 선생님이 정직까지 당했다 했는데 번지수를 잘못 짚은 것이다. 상대는 더 대단한 사람이었다.부부의 카리스마를 떠올려 보니 이 이상한 상황은 오히려 모두 합리적으로 되어버렸다.드디어 전씨 가문 모자를 상대할 사람이 나타났다.사건을 마무리한 유현진은 기분이 좋아 가는 내내 흥얼거렸다.이훈은 현실감이 들지 않았다. 일이 이렇게 쉽게 풀릴 줄 생각도 못 했다. 배상은커녕 오히려 배상받았다.이훈은 유현진을 한번 보고 다시 강한서를 보며 의문스럽다는 표정으로 물었다."누나, 전재현 아버지가 왜 두 사람 무서워해요?"유현진은 이훈을 힐끗 보며 말했다."잊었어?"이훈은 알 수 없었다.유현진은 얼굴색 하나도 변하지 않고 말했다."우리 남편 태권도 검은띠에 유도 10단, 게다가 킥복싱까지. 너라면 안 무서워?" 이훈은 입을 삐죽거렸다.'물어본 내가 바보지!'유현진은 이훈의 어깨에 살며시 손을 올리며 말했다."담임 선생님한테 반나절 휴가냈으니 원장님과 애들한테 선물 사서 보러 가자."어른들의 더러운 세상은 아이들이 알 필요가 없다.그리고 이내 강한서에게 말했다."당신은 택시 타고 가, 난 시설로 갈 거야."강한서는 미간을 찌푸렸다.'이젠 쓸모없다고 버려진 거야?'유현진은 이미 이훈의 팔을 잡고 저 멀리 걸어갔다.이때 휴대폰이 울리자 강한서는 전화를 받았다."대표님, 티켓 끊었어요.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아마 미리 출발해야 할 것 같아요.""그래요."강한서는 멀어져가는 유현진의 뒷모습을 보며 담담하게 말했다."알아서 준비해요. 할머니 팔순 잔치 전에 무조건 돌아와야
매장 직원은 눈웃음을 지으며 말했다."가격이 좀 나가지만 그만큼 가성비가 좋아요. 다들 신어보고 재구매하시기도 해요. 신어보시면 알아요. 게다가 에이에스가 좋아요. 그리고 2개월 내로 품질 문제가 발생하면 새 신발로 바꿔드려요."유현진은 카드를 꺼내며 말했다."이거로 할게요. 결산해 주세요."이훈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싫어요."이훈은 새 신발을 벗고 낡은 신발로 갈아신은 뒤 매장을 나갔다.유현진은 매장 직원에게 한마디하고 이내 뒤따라 나갔다.유현진은 한참 뒤에야 이훈을 찾았다. 그는 난간에 몸을 맡기고 멍하니 아래층을 바라보았다.유현진은 가까이 다가가 물었다."선물 받는데 기분 안 좋아?"이훈은 입술을 오므리고 한참 뒤에야 답했다."내가 살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에요. 내가 신어도 어설프고 어울리지 않아 다들 비웃기만 할걸요."유현진은 멈칫했다. 그녀는 생각지 못했다.이훈은 비록 조용한 아이지만 마음이 예민하고 성숙하다.이런 비싼 선물에 이훈은 절대 다른 아이들처럼 기뻐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기와 어울리지 않다는 생각에 슬픔에 잠겼다.유현진은 이훈을 다독이며 말했다."너 18살 생일이었잖아. 그래서 선물하고 싶었을 뿐이야. 선물 받는 사람을 누가 비웃어, 부러워해야지. 지금은 살 수 없는 물건이지만 앞으로는 충분히 너절로 살 수 있어. 지나온 길을 보지 말고 앞을 봐. 오직 앞과 머리 위의 하늘만 봐."이훈은 멈칫하면서 마음이 사르르 녹았다. 이내 코끝이 찡해지며 눈물이 올라왔다. 그는 나지막하게 말했다."누나 공부 좀 했나 봐요."유현진은 어이가 없어 이훈의 머리를 콩하고 쥐어박았다."나 태주 대학교 수석으로 입학했어! 너 태주 대학교 붙기나 하고 말해!"이훈은 미소를 지었다."그럼 매형은 어디 졸업했어요?""태주 대학교.""한 학교예요?""응, 왜?""누나 보다 훨씬 총명해 보여서요."…...유현진은 결국 이훈에게 10만 원 좌우의 신발을 사주었다. 이훈은 그녀에게 61만 원짜리 신발을 받은 거로 칠
구암동 고아원은 규모가 크지 않다. 근 몇 년 동안 새로운 아이도 받지 않았으니 노원장을 포함해 모두 20명가량 되었다.하현주는 매달 구암동 고아원에 2천만 원을 후원했다. 그 돈으로 고아원은 충분히 운영될 수 있다.아무리 그래도 2천만 원이 부족할까.이훈은 입술을 오므리며 말했다."아주머니의 후원은 작년 10월부터 끊겼어요."유현진은 표정이 일그러지며 물었다."끊겼다고?"이훈도 사실 아는 것이 많지 않다. 이훈도 노원장을 찾으러 갔다가 방문 앞에서 노원장과 손 선생님의 대화를 들은 게 전부다. 유씨 집안의 후원은 작년 10월부터 끊겼다.시설에서 받을 수 있는 후원은 제한되어 있다 보니 여태 유씨 집안의 후원으로 버텨왔다. 하지만 갑자기 후원이 끊기다 보니 시설도 금세 곤경에 빠졌다.노원장은 유씨 집안에 사정이 생겨 까먹은 줄로 알았다. 하지만 삼 개월이 지나도 아무 소식이 없으니 그제야 노원장은 손 선생님과 상의해 유씨 집안에 찾아가 이 일에 대해 상의하려고 했다.마침 방학을 맞은 이훈도 가만히 따라갔다.8월의 날씨는 찌는 듯이 더웠다. 푹푹 찌는 더위에서 노원장과 손 선생님은 세 시간 넘게 기다렸지만 유상수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해가 점점 내려갈 때쯤, 유현아가 나왔다. 하지만 유현아는 그들을 내쫓으러 나온 것이었다.유현아는 회사에 자금난이 생겼고 하현주의 치료에도 돈을 많이 퍼붓다 보니 더는 후원을 지속할 수 없다며 자기들도 할 만큼 했다고 큰소리쳤다.이훈은 최선을 다해 좋게 얘기했지만 실제 상황은 아주 악렬했다.유현아는 유씨 집안에 폐인이 있는 것도 모자라 그 폐인이 한 무리의 폐인을 돌본다면서 하현주가 벌인 일은 하현주에게 가서 따지라 했다.노원장은 분노했다. 더군다나 더운 날씨에 더위까지 먹었는지라 침대에 삼일이나 누워있었다.이훈은 이 일로 유현아를 증오하게 되었다.이훈이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것은 전재현과의 사건을 피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돈을 벌어 노원장의 부담을 덜어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그 말을 들은 유
옅은 회색의 방수천으로 덮인 소형 금고 위에는 수저가 놓여 있었다. 아마 테이블로 사용한 듯싶다.노원장이 말했다."네 엄마가 사고 나기 한 달 전에 맡겨둔 물건이야. 회사 기밀 서류와 장부가 들어있다면서 누구에게도 말하지 말고 나더러 잘 보관하라고 했어. 아주 중요한 물건이니 꼭 찾으러 오겠다면서. 그런데 그렇게 됐지 뭐야."노원장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네 엄마 사고 나고 유 대표님한테 전해주려고 연락했었는데 네 엄마 얘기만 꺼내면 짜증부터 내면서 이내 전화를 끊더라고. 그래서 나도 더는 얘기 안 했어. 오늘 네가 물어봤으니 망정이지, 나도 다 까먹을 뻔했네."유상수는 하현주가 사고 난 지 며칠도 안 돼 회사 재정비부터 시작했고 심지어 치료를 포기하려고 했다. 하여 유현진은 유상수의 태도에 하나도 놀랍지 않았다.유현진은 소형 금고를 가만히 쳐다보다가 물었다."엄마가 다른 말씀은 없으셨어요?""별말은 없었는데 아주 다급해 보이긴 했어. 얼굴색도 좋지 않아 보였던 게 아마 중요한 물건인 것 같아."보아하니 노원장도 이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제가 가져가도 될까요?""그럼, 네 엄마 물건이니 네가 가져가는 게 마땅하지. 손 선생님에게 네 차에 가져다 두라고 할게."유현진은 시설에서 나와 은행에 들렀다. 그녀는 고아원 계좌로 1억을 송금했다.퇴근한 강한서가 집에 왔을 때, 유현진은 거실 소파에 앉아 드릴을 들고 소형 금고를 열려고 했다.강한서는 눈가를 씰룩거리며 말했다."당신 뭐 하고 있었어?"유현진은 깜짝 놀라 드릴을 끄며 미간을 찌푸렸다."금고 열고 있었어."강한서는 정장 외투를 소파에 내려놓고 테이블 위에 놓인 물을 한 모금 마시며 말했다."이런 금고는 비번이 두 개야. 그런데 강제로 열게 되면 두 번째 비번이 가동되지. 두 번째 비번이 가동되면 첫 번째 비번을 입력해야만 열 수 있어." 그 말인즉슨, 강제로는 절대 열 수 없다는 뜻이다.유현진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그럼 절단기는?"강한서는 그녀를 힐끗 보며 말
아무리 늦어도 유현진은 꼭 팩 한 장을 하고 난 뒤 잠자리에 들었다.워낙 피부가 좋은 데다가 관리까지 잘하니 그녀의 피부는 정말 달걀흰자처럼 탱탱했다.강한서는 그녀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유현진은 화장대 앞에 30분이나 있다가 그제야 침대에 누웠다.그녀가 사용하는 제품은 거의 향이 없었다. 그녀에게서 나는 향은 오직 은은한 샴푸 냄새뿐이다.은은한 백단향은 강한서를 설레게 했다.유현진은 눈을 감고 내일 어떻게 금고를 열까 고민했다. 그러다 문뜩 하현주가 금고에 넣은 물건이 대체 뭐길래 그렇게 꽁꽁 숨겨 두었는지 궁금해졌다. 그녀가 테이프에 적혀진 숫자들을 보지 못했더라면 노원장에게 물어볼 일이 없었으며 그럼 금고는 유현진의 손에 넘어올 일이 없었다.'설마 진짜 회사 기밀 서류랑 장부일까?근데 왜 굳이 거기에 숨겨두었지?'눈 감고 생각하던 그때, 갑자기 몸이 무거워져 눈을 뜨니 강한서가 그녀의 몸을 가로 타고 그윽한 눈길로 바라보고 있었다."당신…"잠시 멍해있다가 입을 열려는 순간, 강한서는 머리를 숙여 그녀에게 입을 맞췄다.유현진이 예상도 못 한 상황이다.강한서의 키스는 아주 거칠었다. 강한서는 다급하지만 박력있게 잠옷을 벗었다.그리고 어느 때보다 더 힘주어 그녀의 허리를 꽉 잡았다. 유현진은 잠시 통증을 느꼈지만 그 통증은 그녀의 욕망을 살아나게 했다.유현진도 즐겼다.그녀는 강한서와의 섹스를 반감하지 않았다. 몇 년간의 신체적인 접촉으로 강한서는 그녀의 어디를 건드리면 아파하는지, 간지러워하는지, 민감해하는지를 다 숙지하고 있었다.그녀는 강한서 이외의 남자와 경험이 없다 보니 강한서의 테크닉이 딱히 어떤지는 몰라도 강한서의 섹시한 표정은 항상 그녀를 설레게 했다.강한서의 입술은 그녀의 턱으로부터 가느다란 목으로 향했다.유현진은 신음을 내며 강한서의 머리카락을 잡고 말했다."목은 깨물지 마."유현진은 피부가 너무 하얗다 보니 조금만 힘을 줘도 키스 마크가 생기기 때문에 촬영할 때 난감한 상황이 생길 수 있다.강한서는 그윽한
유현진은 눈을 뜨기도 버거웠다, 심지어 옆에 있는 강한서와의 대화에 짜증을 느끼기 시작했다.그녀는 대충대충 그의 말에 대답했다."강 대표, 그래도 나밖에 없지? 그래서 말인데 보너스 정도 챙겨줄수 있어?"강한서는 눈가가 떨렸다."누구 좋으라고? 근데 당신 아까부터 조금이라도 움직이기나 했어?"유현진은 이에 할말을 잃었다.종래로 그녀는 강한서와의 말다툼에서 지려고 하지 않았었기에 뻔뻔하게 입을 열었다."그럼 한 번 진지하게 해줘? 아까 보니까 강 대표는 내가 소리 지르는걸 좋아하는것 같던데."말이 끝나기 무섭게 일부러 목소리를 깔고 영화속의 여주인공들처럼 흥얼거리기 시작했다.원래 그녀는 강한서를 농락하려는 의도였으나 사랑을 방금 나눈후라 그녀의 허스키한 목소리는 비록 허세를 부리는것 같았지만 강한서는 그녀의 목소리에서 색다른 느낌을 받았다.그는 그윽한 눈길로 유현진의 가느다란 허리를 낚아채며 중후한 목소리로"더 불러봐, 그럼 당신 오늘 밤 못 잘줄 알어."이에 유현진은 입도 벙긋 못했다.동시에 고기를 첨 맛본 사람처럼 평소와 사뭇 다른 강한서의 모습에 당황스러웠다.예전에 그녀는 혼신을 힘을 다해 강한서를 유혹했었지만 강한서는 아무런 반응도 없었었다. 어쩌다 한 번 흥미가 생겼어도 오늘처럼 미치진 않았었다.그녀는 강한서에 대해 의심을 하기 시작했다, 의원를 찾아가 무슨 이상한 처방을 받은게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그녀는 눈을 감았다, 이런 생각을 하는것도 귀찮다고 생각했다.강한서는 태연하게"당신 뭐 필요한거 있어? 지금 아니면 후회해도 소용없어."유현진은 흥미를 잃은듯이"그건 당신이 알아서 사줘."강한서는 대답했다."그럼 됐어.""아무거나 여도돼."유현진은 너무도 졸렸기에 말이 끝나기 무섭게 눈을 감았다.그녀의 성의가 보이지 않는 태도는 그의 불만을 불러일으켰다. 그는 손을 뻗어 그녀의 허리를 꼬집었다.유현진은 짜증이 나서 고개를 들고는 성가시다듯이 입을 열었다."나 자는거 좀 방해 하지 말아줄래?"강한서는 기가 막
강한서는 그녀가 전에 부탁했던 일을 까먹고 있었다고 사실대로 말했다.유현진은 불만이 머리끝까지 올라왔지만 굳이 입밖에 내지는 않았다. 대신 그 일이 있은후부터 사사건건 심술을 부리기 시작했다.매일 아침마다 강한서가 시계를 찰때 유현진은 옆에서 똑같이 물었다."강 대표, 손목시계 괜찮아 보이네."강한서는 처음엔 그녀가 그냥 아무런 이유없이 물어보는줄 알고"할머니께서 생일선물로 사주신거야."하지만 둘째날도 그가 시계를 찰 때 유현진은 어제와 똑같이 물었었다."강 대표, 손목시계 괜찮아 보이네."이에 강한서는 눈썹을 찌푸렸다.(뇌가 어떻게 된거 아니야? 어제 물었던걸 왜 또 물어?)셋째날, 역시나 유현진은 강한서의 손목시계에 대해 똑같은 질문을 했다.자그마치 한주일이 지나서야 강한서는 유현진이 기억력이 나쁜게 아니라 선물을 까먹고 안 샀다는것에 심술을 부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챘다.그녀는 보름동안 그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결국엔 강한서는 그녀의 등쌀에 못 이겨 사람을 불러 프랑스에서 부탁했던 손목시계를 샀다.유현진은 그제서야 투정을 멈췄다.기실 그녀한테 손목시계가 그렇게까진 중요하지 않았다. 그녀가 원한건 자신을 대한 강한서의 태도였다.그가 손목시계를 까먹고 못 산건 상관이 없었다. 한 다발의 꽃으로 그녀를 달래는것도 가능한 방법이였다.그녀는 그런 자기중심적인 사람이 아니였었기에 모든 사람이 그녀한테 관심을 주는건 바라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한테서는 이와 같은 사랑을 받길 원했다.강한서가 예전에 누구에게 관심이 있었던 그녀한텐 상관이 없었다. 과거가 어떻던 뭐가 중요할까? 하지만 그녀와 결혼한 이상 모든 관심을 자시한테 쏟길 바랬다.그녀의 제멋대로의 행동들은 모두 그의 맘속에 깊은 낙인을 새기기 위해서였다.하지만 지금은 예전과 같은 집착은 없었다.선물을 사오든 안 사오든 상관이 없었다. 진심이 담기지 않은 선물은 아무리 많아도 의미가 없었다.강한서는 그녀를 흘겨 보았다."당신 뇌는 이미지 같은 것만
유현진은 괜히 투덜거렸다."목이 부러져도 당신보고 책임지라고는 안 할테니까 사줄거야 안 사줄거야?"강한서는 그녀를 힐끔 쳐다보고는 입을 열었다."얼른 자, 꿈속엔 뭐나 다 있어."유현진은 그만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개자식!다음 날, 강한서가 일어났을땐 유현진은 이미 외출을 한 후였다.어제는 그렇게 힘들어하더니 그래도 나가서 돌아다닐 힘은 있는 모양이였다.강한서가 아침 일찍 회사에 출근했더니 민경하는 바로 그에게 유상수와의 연현 테크 지분 구매 계약서를 체결했던 건으로 방금 회사 통장으로 160억원이 입금되었다고 보고를 했다.유상수는 아마도 이 날을 손꼽아 기다렸을 것이였다, 이 돈들은 황급히 입금된거라고도 볼수 있었다.연현 테크는 5월 29일에 주식시장에 출시되어 이전에 추측한바에 의하면 출시후 60시간만 버틴다면 그는 당일날에 바로 팔아버리려고 했다. 자잘한 수수료들은 제쳐두고도 몇십억정도의 순이익을 낼수 있었다.민경하는 강한서가 유현진의 체면을 봐서 유상수에게 이익을 나눠주었다고 생각했다. 예전의 강한서라면 비지니스방면에선 절대로 사적인 일을 끌어들이지 않았기 때문이다.하지만 유상수 같은 사람들은 자기 이익만 챙기려고 하는 사람이라서 이익을 챙기면 바로 내뺄게 뻔했기 때문에 주식시장에나 회사에나 모두 안 좋은 영향을 끼칠수밖에 없었다.강 대표는 이 점에 대해서 생각을 못했을수 없었다. 민경하는 이리저리 생각을 굴리다가 그래도 가장 큰 원인은 사모님때문일것이라 생각했다.유상수는 자신한테 이익이 되는 사람에게 이리저리 빌붙기 때문에 그가 강씨 가문의 덕을 볼수 있었던 원인은 강한서가 유현진에 대한 감정때문일거라 생각했다.민경하는 이리 생각했지만 강한서는 절대로 그걸 인정하지 않았다.민경하는 보고를 마친후 손에 들고 있던 선물상자를 강한서에게 건넸다."이건 한 대표님께서 보내신 생일선물이십니다, 어제 도착했습니다."강한서는 선물을 건네받은후 옆에 두었다.이어 그는 물었다."A도시에서 지금까지 발견된 제일 큰 레드 다이아몬드가
말을 하며 차미주를 화장실로 데려가 손에 세정제를 좀 묻히고 힘껏 팔에 끼워넣었다. 차미주는 손목을 돌리며 이 팔찌가 지금 입고 있는 옷과 너무 잘 어울린다는 걸 느꼈다. 그녀는 이전에 옥이 별로라고 말한 게 너무 과했던 것 같다고 생각했다. ‘이 팔찌, 진짜 너무 아름다워. 말 그대로 예술이잖아.’ 그녀가 팔찌를 감탄하며 들여다보다가 갑자기 한 가지 의문이 떠올랐다. “강한서가 내 손목 둘레를 재었다고 하는데, 이 팔찌는...?” 한현진이 눈을 살짝 좁히며 웃었다. “이건 너를 위한 신혼 선물이야. 아직 결혼은 안 했지만 미리 즐겨봐. 나한테 며칠 더 두면 내가 못 참고 껴버릴까 봐 그래.” 차미주는 그 말을 듣고 팔찌를 빼려고 했다. “너 미쳤어? 이거 얼마나 비싼데. 너 결혼할 때 내가 500만 원밖에 안 줬는데 이건 너무 과하지 않냐고.” 처음 끼울 땐 힘들었는데 이제 빼려니 더 어려웠다.한현진이 차미주를 막았다. “미주야, 그건 다르지. 그렇게 비교하면 안 돼. 내가 결혼할 때 너는 한 달 월급이 300만 원도 안 됐잖아. 그런데도 500만 원을 선물로 줬고 그 마음이 그 선물보다 훨씬 더 값지고 중요한 거야. 지금은 내가 능력이 생겨서 너 결혼할 때 더 좋은 선물을 줄 수 있게 된 거고 그건 내 마음이야. 가치가 높고 낮고로 그 마음의 소중함이 달라지지 않아.” 한현진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 팔찌는 강한서가 고른 건 맞지만 처음 봤을 때부터 이상하게 너도 이걸 좋아할 거라는 느낌이 들었어. 마음에 들어?” 차미주가 대답했다. “좋아. 근데...” “좋으면 됐어. 앞으로도 우리 둘 다 더 많이 벌 수 있을 거야. 그때 가면 팔찌 같은 건 아무것도 아니야. 건물이라도 망설이지 않고 너한테 줄 수 있어.” 차미주가 웃으며 말했다. “그건 됐어. 건물은 너무 비싸. 너랑 강한서가 또 이혼하고 나한테 재산 반환을 요구하면 어떻게 해?” 한현진은 혀를 차며 이빨을 간 채 말했다. “우리 둘한테
한현진이 그녀의 손등을 툭 쳤다. “그만 떠들고 가만히 서 있어 봐.” 차미주는 바로 허리를 펴고 자세를 잡았다. 한현진이 그녀를 이리저리 살펴보다가 갑자기 중얼거렸다. “뭔가 하나가 부족한데...” 차미주는 고개를 갸웃했다. “뭐가?” 한현진의 입꼬리가 의미심장하게 올라갔다. “조금만 기다려 봐.” 30분도 채 지나지 않아 초인종 소리가 울렸다. 차미주가 문을 열자 문 앞에 서 있는 사람은 강한서였다. 그는 손에 작은 상자 하나를 들고 있었고 표정은 평소처럼 담담했다. 차미주는 놀라서 물었다. “너 여기 웬일이야?” “너희 집에서는 현관문 열고 얘기하면 몇 년 받냐?” 차미주는 말문이 막혔다. 차미주는 멋쩍게 길을 비켜주며 그 귀한 분을 집 안으로 들였다. 강한서는 한현진의 눈짓에 따라 손에 든 상자를 거실 테이블 위에 내려놨다. 한현진이 소파 가장자리에 앉아 상자를 열자 차미주는 호기심에 슬쩍 고개를 내밀어 안을 들여다봤다. 그리고 바로 눈이 휘둥그레졌다. 상자 안에는 투명한 광택을 띠는 옥 팔찌가 들어 있었다. 차미주는 옥 팔찌에 대해 잘 몰랐다. 엄마가 몇 개 가지고 있긴 했지만 대부분 짙은 녹색이라 촌스럽다고 생각했었다. 늘 옥 팔찌는 나이 든 사람이나 좋아하는 물건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눈앞에 있는 이 팔찌는 달랐다. 맑고 투명한 빛에 가장자리엔 은은한 황금빛이 스며들어 있었고 자연광 아래에선 촉촉하게 윤기가 돌았다. 마치 물기를 머금은 꽃잎 같았다. 차미주는 눈앞에 옥 팔찌가 너무 마음에 들었다. “미주야, 이리 와.” 한현진이 불렀다. 차미주는 정신이 번쩍 들어 그녀 앞으로 다가갔다. 한현진은 차미주의 손목을 잡고 팔찌를 들어올렸다. 팔찌를 손목에 끼웠다. 안 들어갔다. 다시 시도했다. 또 안 들어갔다. 세 번, 네 번, 다섯 번... 차미주의 손목은 붉게 달아올랐고 팔찌는 손목 중간쯤에서 멈춰서 올라가지도 내려가지도 않았다.
차미주는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아직 안 정했어. 그의 생일에 맞춰서 먼저 혼인신고를 하고 결혼식은 양쪽 부모님이 서로 만나고 만족하면 우리 엄마가 사람을 불러서 날짜를 정해줄 거야. 우리한테 맞는 날을 고르기만 하면 돼.”한현진은 놀라서 물었다. “너희 둘 진도가 언제 이렇게 빨라졌어?”차미주는 웃으면서 대답했다. “그 개자식이 나한테 청혼할 때 내가 고민할 것도 없이 바로 받아 줬어. 후에 웃으면서 말하더라구. 내가 너무 급하게 받아줬다고. 좀 더 밀당했어야 한다고. 근데 그때는 전혀 그런 생각이 안 들었어. 내 머릿속엔 오직 ‘그래. 나도 결혼하는구나.’라는 생각뿐이었어. 하하.”한현진은 웃으면서도 어이가 없었다. “누가 너를 자극한 거야?”“자극이라기보단...” 차미주는 입술을 삐죽이며 천천히 말을 이었다. “너 기억나? 내가 말했던 그 큰 이모. 그 이모는 두 아들을 두었는데 첫째는 나보다 두 살 많고 둘째는 아직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어. 우리 할머니는 그 집안을 아주 좋게 봤어. 그래서 어릴 때부터 그 집에 편애가 심했지. 내가 사촌오빠랑 싸우면 그 오빠가 나를 이기지 못하고 항상 고자질을 했거든.”“그 큰 이모는 나를 볼 때마다 그런 얘기를 했어.” ‘너처럼 덩치 크고 성격도 안 좋으면 커서 누가 너랑 결혼해주냐?’ “사실 그 말이 나한텐 꽤 큰 걱정거리였어. 물론 자라면서 그 이모가 입이 가벼운 사람이란 걸 알게 됐지만 그때는 정말 결혼 못할까 봐 불안했어. 아니면 왜 20년이 넘도록 아무도 나를 좋아하지 않았겠어.”한현진은 웃음을 멈출 수 없었다. “너한테 남자가 없는 게 아니라 너를 좋아했던 사람들을 네가 죄다 친구로 만들어버린 건 아닐까?”사실 그녀가 알기로만 해도 대학 시절 차미주에게 호감을 보였던 남자는 둘이나 있었다. 첫 번째 남자가 어떻게 포기했는지는 몰라도 두 번째 남자는 차미주에게 농구 경기를 같이 보러 가자고 직접 데이트 신청까지 했었다. 차미주는 선뜻 따라갔지만 농구장은 그저 핑계일 뿐이었다
한현진은 그녀의 호적지를 보고 잠시 멈칫했다.이시연은 오래 기다렸고 그 사이 네 명이 더 끼어든 후에야 은서하가 비로소 돌아왔다. 그녀는 땀에 젖어 얼굴이 여전히 창백했고 얼굴색이 좋지 않아 보였다.이시연은 그녀를 보며 걱정스레 물었다. “아직도 괜찮지 않은 거예요? 의사한테 같이 가줄까요?”은서하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괜찮아요. 화장실 갔다 오니까 많이 나아졌어요. 기다리게 해서 미안해요.”이시연은 결과지를 건네며 웃으면서 말했다. “미안하면 승진하고 나 좀 잘 챙겨줘요.”은서하는 웃으며 대답했다. “일자리만 지킬 수 있어도 감사하죠. 승진은 꿈도 안 꿔요.”잠시 멈추고선 덧붙였다. “대회 준비는 어떻게 돼가요?”“그냥 그럭저럭이죠. 서 대표님이 이번에 강력한 카드를 데려왔으니까 우리는 그저 배경일 뿐이죠.” 이시연의 자조 섞인 웃음이 흘러나왔다. “친선 경기라고 보면 되죠 뭐.”은서하는 향료 조향에 대해 잘 알지 못했지만 잠시 생각한 후 말했다. “그래도 좀 더 열심히 해봐야죠. 안 그러면 너무 아쉬울 거 같아요.”이시연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그녀 차례가 되었기 때문이다.클라우드 아파트 902.“현진아, 이건 어때?”차미주는 흰 티에 청바지 오버롤을 입고 한현진 앞에서 빙그르르 돌며 물었다. “어때?”한현진은 턱을 괴고 생각에 잠긴 듯 여유 있게 대답했다. “나쁘지 않아.”“그럼 아까 그 꽃무늬 원피스는?”“그것도 괜찮아.”차미주는 눈꺼플이 살짝 뛰었다. “그럼 이 노란 운동복은?”“비슷해.”차미주는 이를 악물며 말했다. “너 지금 뭐야? 그냥 대충 말하는 거지? 다 비슷하면 난 도대체 뭘 입어야 해?”한현진은 웃으며 그녀를 달래듯 말했다. “내가 너 대충 대하는 게 아니야. 오면서 계속 생각했어. 너한테 좀 더 격식을 차린 옷을 입힐지 아니면 너의 스타일에 맞는 옷을 입힐지 말이야. 평소에 이렇게 캐주얼한 옷을 입고 다니니까 갑자기 정장 스타일을 입으면 길도 제대로 못 걸을 거고 스
한현진은 잠시 동작을 멈추고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살짝 웃으며 말했다. “서해금 옆에 있은 지 얼마 되지도 않은데 벌써 사람들 사이를 이간질하는 법을 배우셨군요.”은서하의 얼굴이 잠시 창백해졌지만 이내 급히 마음을 가다듬었다. “한 대표님, 저를 싫어하시든 미워하시든 상관없어요. 하지만 주혁이라는 사람. 그 사람만큼은 정말 조심하셔야 해요. 단순한 사람이 아니에요.”“주혁 씨가 왜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요? 그냥 운전기사일 뿐인데? 당신 말대로라면 그 사람이 다른 정체를 숨기고 있다는 건가요?” “정확하게 말하지 않으면 난 당신이 정말로 걱정해서 경고해 주는 건지 아니면 고의로 우리 사이를 흔들려는 건지 잘 모르겠어요.”은서하는 더 조급해졌다. “저는 이간질하려는 게 아니에요. 그 사람만큼은 가까이 하지 말고 멀리 하세요. 한 대표님, 당신이 저를 도와주셨어요. 제가 아무리 배은망덕한 사람이라도 당신에게 해가 되는 일은 절대 안 할 거예요.”초조해하는 은서하와는 달리 한현진은 차분한 태도를 유지한 채 단호하게 물었다. “내가 그때 당신을 도와줬을 때 당신은 어떻게 했죠? 갑자기 등을 돌리지 않았나요? 은서하 씨, 내가 당신을 믿을 수 있을까요?”은서하는 갑자기 몸을 움츠리며 눈시울이 붉어지기 시작했다. “한 대표님, 저는 겁이 많고 피할 줄 밖에 모르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그 정도는 알아요. 최소한 저를 도와주셨던 대표님을 해칠 수 없다는거요.” 그녀의 진지한 말투에 한현진은 마음이 흔들렸다. 침묵을 지키며 그녀를 바라보다 차갑게 입을 열었다. “그럼 주혁 씨를 멀리하라는 이유라고 말해보세요. 내가 믿을 수 있도록 설득 될 만한 이유요.”은서하는 더 이상 말하지 않고 손을 움켜잡은 채 잠시 입을 다물었다.한현진은 지칠 대로 지쳐 얼굴을 굳히며 말했다. “이유가 없다면 더 이상 여기서 나를 걱정한다는 이런 말도 안 되는 얘기 하지 말고 그냥 가세요.”은서하는 급히 당황한 기색을 보이며 말했다. “아니에요. 제가 말하지
[서해금이 나를 눈엣가시로 여기고 온갖 방법을 동원해서 나를 회사에서 쫓아내려고 하고 있어. 만약 네가 은서하고 우연히 내가 임신한 사실을 알게 된다면 그걸 이용해서 서대금이 나를 잠시라도 회사에서 밀어낼 수 있게 할 수 있어. 그리고 넌 그 기회를 통해 승진하고 월급도 올리고 사장 앞에서 좋은 이미지도 쌓을 수 있어. 그 상황에서 너라면 그걸 참을 수 있겠어?]차미주는 그 말에 감탄하며 말했다. [임신한 채로도 이렇게 계산적이네? 너 아이 낳으면 두 명의 도깨비가 나올까 봐 걱정돼.]한현진은 잠시 말문이 막혔다. [그럴 리 없을 거야. 강한서가 매일 내 옆에서 를 읽어주고 있어. 맨날 애들한테도 읽어주니까 조금은 성품이 좋을 거야.][강한서 진짜 대단하다. 넌 그걸 듣고 있어?][안 듣지.] 한현진이 대답했다. [난 이어폰 끼고 드라마 봐. 강한서가 애들한테 읽어주고.]차미주는 웃으며 말했다. [그럼 결국 는 아무 소용없다는 거네.][왜?] 한현진이 물었다.차미주가 익살스럽게 웃으며 답했다. [우리 엄마가 항상 그러셨어. 아이는 유전이 중요하다고.] [옛말에 그런 말 있잖아. 용은 용을 낳고 봉항은 봉황이 낳는다고. 네가 도덕이 없다면 강한서이 아무리 를 많이 읽어줘도 소용없어.”[너 진짜!] 한현진이 이빨을 갈며 말했다. [한성우 씨랑 있더닌 이제는 입만 잘 돌아가네.][오래 배운 거 이럴 때 써먹어야지.]한현진은 코웃음을 쳤다. [나랑 연습하면 뭐 해. 능력 있으면 너희 사장한테 가서 연습해.]차미주는 웃으면서 대답했다. [그건 안 돼. 사장한테서 월급 받아야 해.]차미주는 잠시 말을 멈추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 있잖아.그 사람이 나를 자기 집에 초대해서 밥을 먹자고 하는데 네가 봤을 때 첫 만남에 뭘 입고 어떤 선물을 가져가야 할까? 정말 고민돼.]한현진은 답했다. [내가 경험이 많아 보여?][두 번이나 결혼했잖아. 너가 없으면 누가 경험 있겠어.]한현진은 담담하게
은서하는 빠르게 시선을 거두고 건강검진표를 꽉 쥔 채 한현진의 뒤로 갔다. 그러나 그녀의 시선은 자연스레 한현진의 배로 향했다. 한현진은 회사에 와서부터 항상 허리 라인이 보이지 않는 넉넉한 옷만 입었다. 뒷모습으로 보면 여전히 날씬해 보였고 이상한 점은 전혀 없었다. 하지만 한현진이 특정 동작을 할 때 배가 살짝 불룩한 것을 알 수 있었다. 전에 한현진의 차에 탔을 때 그 모습을 잠깐 본 적이 있었다. 처음엔 그저 살이 찐 것이라 생각했지만 사실은 임신한 것이었다. 그 사실을 깨닫자 은서하의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왜 한현진은 회사에 임신 사실을 알리지 않았을까?’ ‘혹시 서해금 때문일까?’은서하는 복잡한 마음을 안고 있었지만 한현진은 마치 그녀의 발견에 전혀 개의치 않는 듯했다. 잠시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다가 전화를 받고 몇 마디를 나누고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는 줄을 빠져나갔다.은서하는 잠시 멈칫하며 물었다. “한 대표님, 검사 안 하세요?”한현진은 천천히 돌아보며 담담하게 대답했다. “괜찮아요. 일이 생겨서 나중에 다시 올려구요.” 그리고는 아무런 표정 없이 그 자리를 떠났다.한현진이 떠난 뒤 이시연이 나타났다. “한 대표님 어디 가셨어요?” 이시연은 주위를 살펴보며 물었다.은서하가 대답했다. “전화를 받으시더니 일이 생겼다며 먼저 가셨어요. 나중에 다시 오신다고 했어요.”“그렇군요.” 이시연은 잠시 생각하다가 다시 물었다. “그런데 한 대표님과 얘기 해봤어요? 예전에 그 분의 옷을 받고 따돌림 당하고 급여도 깎였다고 했을 때 한 대표님이 굉장히 마음 아파했어요.” “그때 한 대표님이 먼저 도와주겠다고 했었죠. 후에 그렇게 된 건 어쩔 수 없지만 한 대표님은 정말 착한 분이세요. 잘 사과하면 한 대표님이 이해해줄 거예요.”은서하는 고개를 숙인 채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한 대표님이 신경 쓰지 않으셔도 저는 그런 얘길 꺼낼 입장이 아니에요. 그리고 저는 그냥 작은 직
그녀가 고개를 돌리자 멀지 않은 곳에서 이시연과 은서하가 진단서를 들고 다가오는 모습이 보였다.이시연이 은서하의 손을 이끌고 다가오며 말했다. “한 대표님, 여기서 뵙네요. 건강검진 받으러 오신 거예요?” 한현진은 고개를 끄덕였다가 은서하를 가볍게 훑어본 뒤 다시 이사연에게 시선을 돌렸다. “두 분도 오늘입니까?” 이시연이 웃으며 말했다. “원래는 어제가 제 날짜였는데 어제는 아는 사람이 별로 없어서 다른 분이랑 바꿨어요. 서하 씨랑 같이 오려고요.” “가족은 안 데리고 왔어요?” 이시연이 담담하게 말했다. “우리 부모님은 직장에서 추가 의료보험을 들어두셔서 제가 신경 쓸 필요 없어요. 서하 씨 외할머니의 병은 보험으로는 혜택을 받을 수가 없어서요.”은서하는 내내 말이 없었다. 이시연이 얘기하는 동안 그녀의 시선은 자꾸만 주혁에게로 흘러갔다. 주혁은 예민하게 그 시선을 포착했다. 둘의 눈이 맞닿자 은서하는 움켜쥔 손에 힘을 주며 차분히 고개를 끄덕였다. 주혁도 묵묵히 고개를 끄덕여 답하고는 별다른 말 없이 시선을 돌렸다. 마침 건강검진 순서가 불리기 시작했다. 주혁이 먼저 입을 열었다. “한 대표님, 얘기 나누세요. 전 애들 데리고 먼저 검진 받으러 가겠습니다.” 그가 주상욱와 함께 자리를 떠나자 이시연이 한현진에게 조용히 제안했다. “한 대표님, 같이 가실래요? 먼저 채혈하고 나서 초음파 검사하면 순서가 빨라요. 그러면 금방 검사 끝내고 식사하실 수 있을 거예요.” 한현진은 고개를 가볍게 저었다. “채혈은 이미 했어요. 먼저 가요. 난 초음파실 앞에서 번호표 뽑아둘게요.” 한현진은 애초에 건강검진을 받으러 온 게 아니었다. 주혁이 진짜 주혁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들고 난 뒤부터 직접 그를 만나보고 싶었다. 방금까지 대화를 나누는 동안 그녀는 내내 무심한 척 주혁을 은근히 살폈다. 주혁의 외모는 평범했다. 사람들 사이에 섞이면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흐릿한 얼굴이었다.
주혁이 설명했다. “상욱이가 자신이 보낸 그림 잘 받았는지 물어봐요. 마음에 드는지 궁금해해요.”한현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낮은 목소리로 주혁에게 물었다. “마음에 든다는 걸 수화로 어떻게 하면 돼요?”주혁이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그냥 말하면 돼요. 상욱이는 들을 수는 있지만 말하는 게 서툴러요.”사실 주상욱은 말을 못 하는 건 아니었다. 그는 납치 사건에서 구출된 후 청력을 잃었다. 오랫동안 그는 청각장애인처럼 생활했으며 오랜 시간동안 소리를 못 들은 것도 있지만 또한 납치 당시 겪은 충격 때문에 사람과 접촉하는 것을 두려워했다. 언어 능력도 점차 떨어졌고 말을 꺼내는 것조차 원하지 않았다. 이후 보청기를 장착한 뒤 청력은 조금씩 회복되었지만 언어 능력은 여전히 회복되지 않았다. 그는 사람들과 소통할 때 수화를 사용하는 것을 더 편하게 느꼈다.한현진은 주상욱에게 미소 지으며 따뜻한 목소리로 말했다. “고마워. 정말 마음에 들어.”주상욱은 눈이 반짝이며 수화를 하려다가 잠시 멈췄다. 그리고는 핸드폰을 꺼내 글을 한 문장 써서 한현진에게 건넸다.“나 보라고?” 한현진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주상욱은 고개를 끄덕였다.한현진은 고개를 숙여서 화면을 읽었다. [누나, 아빠에게 휴가를 주셔서 고마워요. 덕분에 아빠와 함께 생일을 보낼 수 있었어요. 아빠가 잘못한 일이 있어서 이제 누나 옆에서 일할 수 없다고 하더라고요. 아빠를 미워하지 말아 주세요. 아빠는 정말 좋은 사람이에요. 저와 엄마를 위해 많은 고생을 했어요. 우리가 아빠를 힘들게 한 거예요. 아빠 대신 사과하고 싶어요. 아빠를 용서해 주실 수 있나요?]한현진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아이의 말은 서툴고 순수했지만 그 마음은 진심에서 우러나왔다. 그러나 그는 알지 못했다. 그가 입에 담은 ‘아빠’가 진짜 아빠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사실을.한현진은 아무 말 없이 자신의 핸드폰에 글 한 줄을 적었다. [다 지나간 일이야. 이제 네 아빠를 탓하지 않아.]주혁은 이제 그녀 곁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