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난 사람을 때린 게 아니라 정당방위야. 그리고 네 약물 검사도 경찰 쪽에 넘겼으니까 변호사가 알아서 잘 처리해 줄 거야.”그 사람들에게 칼이 있었다면 자신을 협박했을 때 왜 칼을 쓰지 않았는지 유현진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칼을 썼었더라면 그녀는 찍소리도 못했을 텐데 말이다.“이리 와.”강한서의 낮은 목소리에 유현진은 생각을 멈췄다.그녀는 고개를 들어 물었다.“왜?”말은 그렇게 해도 유현진은 강한서의 침대 옆으로 갔다.강한서가 미간을 구미며 말했다.“머리 좀 숙이고 가까이 와. 내가 널 잡아먹기라도 하겠어?”유현진이 입술을 파르르 떨며 그에게 가까이 다가가고는 허리를 숙였다.“도대체 무슨...”말을 마치기도 입술에 차가운 느낌이 전해져 왔다.강한서가 검지로 그녀의 입술에 난 상처에 약을 발랐다.유현진이 의식을 잃지 않기 위해 입술을 깨물어 난 상처이다.연고는 차가웠지만 강한서의 손길은 부드럽고도 따뜻했다.어젯밤에 당한 일을 떠올리면 유현진은 억울해서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입술이 소시지처럼 부었는데도 몰랐어?”강한서는 역시 입이 방정이다, 그의 말을 들은 유현진의 억울한 마음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그녀는 강한서의 손을 툭 치며 그를 째려봤다.“보기 안 좋으면 보지 말든가!”“더 못생긴 모습도 봤는데, 뭐. 이미 익숙해져서 괜찮아.”유현진은 입술을 씰룩거렸다.‘팔이 아니라 혀를 다쳤어야지.’“똑똑.”유상수가 문을 두드리며 과일 바구니를 들고 나타났다.유현진이 자리에서 일어섰다.“아빠, 먼저 가신 거 아니었어요?”유상수가 따뜻한 목소리로 말했다.“가려던 참에 1층 마트에 싱싱한 과일을 팔길래. 한서가 뭐 좋아하는지 몰라서 골고루 사 왔어. 너 좀 있다가 한서한테 과일이나 깎아줘.”유현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과일 바구니를 건네받았다.참 아이러니했다.유현진은 어렸을 때 몸이 아파 계란말이가 그렇게 먹고 싶었었다. 유상수가 다니는 회사 맞은편에 바로 계란말이를 파는 가게가 있었는데도 유상수는 그녀가 병이
유현진이 그의 손을 뿌리치며 말했다.“아빠 맞아요? 다른 사람의 말은 그렇게 잘 믿으면서 왜 친딸 얘기는 믿지 못해요? 제가 선물했다고 말했었잖아요. 신미정한테 당한 수모를 왜 저한테 푸시는 거예요?”유상수는 그녀의 말을 조금도 믿지 않았다.“선물을 받았으면 왜 못 받았다고 거짓말을 하겠어? 저번에 너보고 강한서한테 천주시 프로젝트에 대해 얘기해 보라고 했을 때도 여러 가지 핑계를 대더니. 너 이제 강한서가 뒤를 봐준다고 유씨 집안을 버릴 셈이야? 네 엄마 치료비만 1년에 몇억은 들었어. 돈이 그냥 생기는 줄 알아? 너한테 이런 일을 시킨 것도 결국 누구 때문인데? 우리 유씨 집안이 일어서지 못하면 강씨 집안에서 누가 너를 존중하겠어?”‘말만 잘하지, 나랑 엄마를 위해 헌신하는 척하긴. 그런 수단으로 부와 명예를 얻어낸다고 해도 강씨 집안에서 나를 더 좋게 봐줄 것도 아닌데 말이야.’“제가 말했죠, 트러플은 정말 선물했다고요. 정 못 믿으시겠으면 앞으로 저한테 이런 일 맡기지 마세요. 아부 떠는 건 제가 확실히 아빠를 못 따라가죠.”“너.”유상수는 분노가 끓어올랐다.마침 이때, 옥상으로 올라온 사람들이 있어 그는 결국 말을 입 밖으로 내뱉지 못했다.유현진은 바로 자리를 떴다....병실 안에서, 한성우는 방금 유현진이 사람을 잘못 알고 통곡하는 얘기를 하며 깔깔 웃어댔다.강한서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이제 그만하지.”한성우가 겨우 웃음을 참으며 말했다.“그래도 죽으면 울어주는 사람이 있잖아, 기분이 어때?”“괜찮네.”강한서가 그를 힐끔 보고는 말을 이어갔다.“네가 죽을 땐 울어주는 사람이 있을까?”그 말을 들은 한성우는 정색했다.울어주는 사람이 있기는커녕 저번에 몸이 아파서 주사를 맞은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렸더니 전 여자친구들의 댓글로 도배되었다.“쌤통이야, 아주!”“경찰 쪽에는 무슨 소식이 없어?”강한서가 진지하게 물었다.“처음에는 부인하며 잡아떼더니 CCTV를 보여주자 두 사람 모두 솔직하게 털어버렸어. 어젯밤
그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지더니 끝내 말을 더하지 않았다.‘그래, 내가 낸 아이디어니까 어쩔 수 없이 잘못을 인정해야지.’이때 유현진이 돌아왔다.한성우는 워낙 눈치가 빨랐기에 바로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현진 씨, 저는 회사에 일이 생겨 가봐야 할 것 같네요. 한서 잘 챙겨주세요, 무슨 일 있으면 저한테 연락하시고요.”강한서가 그를 힐끔 보더니 말했다.“빈손으로 가면 어떻게 해? 과일 바구니 들고 가.”“내가 혼자도 아닌데 과일 바구니는 무슨...”한성우는 갑자기 강한서의 뜻을 알아차렸다. 그는 한성우가 병문안을 빈손으로 왔다며 비아냥거리고 있었다.“과일 바구니는 여기 둘게요. 현진 씨, 이 카드 받으세요. 안에 1억 정도 있을 거예요. 전에 약속했던 사례금이에요. 한서가 다쳐서 일 못 한 거랑 형수님이 받으신 정신상의 고통까지 고려해 두둑이 넣었어요. 저 때문에 두 사람 이런 일을 당한 거잖아요.”유현진은 끝내 그 카드를 받지 않았다.“남편이 얼마나 돈을 잘 버는데요. 팔을 다쳐 한 주일은 쉬어야 할 텐데 말이에요. 맞지, 여보?”그 말인즉 돈이 부족하다는 뜻이었다.여보라는 소리에 강한서는 기분이 좋았다. 천천히 고개를 들더니 천연덕스럽게 말했다.“상처가 회복되는 거 봐야지. 회복하는 데에 적어도 일주일은 걸릴 테고 심각하면 보름 걸릴 수도 있어.”유현진은 어깨를 으쓱했는데, 마치 ‘나 거짓말한 거 아니야’ 라는 표정을 짓고 있는 듯했다.한성우는 입술을 씰룩거렸다.‘누가 두 사람 부부 아니랄까 봐? 내 돈 떼먹을 때는 저렇게 마음이 잘 맞아. 괜히 한서를 도우려고 나섰네. 전혀 내가 도울 필요도 없는데 말이야. 둘이 화해하고 나부터 저격하는 것 좀 봐.’유현진은 일부러 한성우를 난처하게 만들려는 건 아니었다.하지만 한성우가 원망스러운 건 사실이었다. 어젯밤 강한서가 칼을 맞은 걸 눈 뜨고 보고만 있었으니.오늘 돈이라도 받아내지 못하면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강한서도 오늘 돈을 받아내지 못하면 나중에라도 배로 더 받아낼 기
“너 얼른 수표 챙겨, 내가 후회하기 전에.”강한서가 그녀를 뚫어지게 쳐다보더니 말했다.“내 물음에 대답하면 수표는 네 거야.”“뭔데?”유현진이 고개를 들어 물었다.“아버님이 뭐라고 하셨어?”유현진이 멈칫하더니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어머님이 트러플을 못 받았다고 하셨대. 네가 많이 바쁘면 그냥 거절했어도 됐는데.”‘굳이 나한테 전했다고 거짓말을 할 필요는 없잖아.’강한서가 멈칫하더니 안색이 어두워졌다.“내가 일부러 안 전했다고 생각해?”“일부러든 아니든, 잊어먹었든 아니든 할 수 없는 일을 약속하는 거 아니야.”강한서가 눈살을 찌푸리며 무슨 말을 더하려던 그때, 민경하가 문을 두드리더니 병실 안으로 들어왔다.“대표님, 사모님. 퇴원 수속은 마쳤습니다.”두 사람이 대답하지 않자 민경하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퇴원하시는 거 맞습니까?”집으로 돌아가는 길에서 두 사람 모두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민경하는 오히려 불편했다. 두 사람이 워낙 많이 다퉜었는데, 갑자기 조용해지니 왠지 모르는 불안감이 엄습해왔다.그는 몰래 백미러를 힐끔 봤다.강한서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미간을 잔뜩 구겼다. 유현진도 차가운 얼굴로 창문 쪽만 바라보고 있었다.‘두 사람 왜 또 이런대?’“민경하 씨.”강한서가 갑자기 물었다.“지난번에 엄마한테 전하라던 트러플 말이에요, 엄마한테 전했어요?”유현진은 귀를 쫑긋했다.민경하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네.”“엄마가 받았나요?”“아니요, 부인께서 집에 계시지 않아 가정부에게 전했어요.”“그럼 우리가 보낸 거라고 똑똑히 말했었나요?”“네, 분부하신 대로 말씀드렸습니다.”강한서는 미간을 구겼다.‘그런데 왜 못 받은 거지?’그는 신미정이 살고 있는 집에 전화를 걸었는데 전화는 바로 통했다.“저에요.”가정부는 바로 강한서의 목소리를 알아들었다.“도련님, 어쩐 일로 전화하셨어요? 부인과 아가씨는 안 계시는데요.”“알아요, 물어볼 게 있어서요.”“말씀하세요.”“저번에 민경하 씨한테 부탁해서
가정부는 워낙 오랫동안 강씨 집안에서 일해왔는데도 강한서는 전혀 인정사정 볼 것 없이 빡빡하게 굴었다.유현진은 그에게 그만하라고 타이르고 싶었다. 어차피 뺨은 이미 맞았기에 이제 와서 더 따지는 건 의미가 없었으니 말이다.하지만 그녀가 입을 열기도 전에 가정부가 말을 더듬으며 말했다.“아, 아가씨예요... 아가씨가 물건을 던져서...”“누구랑 통화해요?”가정부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전화기 너머로 신미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전화를 받은 사람은 곧 신미정으로 바뀌었다.“도련님이에요. 트러플에 대해 여쭤보셔서...”신미정은 한참 동안 침묵을 지키더니 강한서에게 말했다.“트러플이 뭐가 그렇게 대단해서 집까지 전화해서 물어?”강한서는 입술을 얇게 오므렸다.“그저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아내고 싶어서요.”신미정은 벌컥 역정을 냈다.“알아내면 뭐하게? 경찰에 신고해서 나 잡아가게? 잘난 것도 없으면서 일러바치는 건 1등이라니까. 내가 그 트러플을 봤다고 해도 절대 받지 않았을 거야. 나한테 전화할 시간에 네 마누라나 신경 써. 강씨 집안에 시집왔는데도 팔이 밖으로 굽으면 어떻게 해?”말을 마친 신미정은 전화를 끊어버렸다.강한서는 휴대폰을 꽉 잡은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유현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그래도 한서가 안 전해준 건 아니네.’유현진이 나지막이 말했다.“됐어, 원래 선물하러 가기도 귀찮았는데 잘 됐지, 뭐.”강한서는 한참 있다가 무거운 목소리로 물었다.“많이 아파?”그 말을 들은 유현진은 잠깐 멈칫했다. 강한서가 계속 자신의 왼쪽 얼굴을 빤히 쳐다보는 걸 발견하고서야 그의 뜻을 알아챘다.억울한 감정이 밀려오며 유현진은 눈시울을 붉혔다. 눈물을 흘릴까 봐 그녀는 재빨리 고개를 돌리며 애써 눈물을 참았다. 그리고 괜찮은 척했다.“제 자식을 그렇게 세게 때릴 리가 있겠어?”사실 많이 아팠다. 유상수는 그녀의 뺨을 있는 힘껏 때렸기에 그녀의 뺨은 아직도 빨갛게 부어올라 있었다. 하지만 유현진은 자신의 기분을 강한서에
유현진이 그의 말을 들을 사람도 아니었기에 강한서는 일찍이 포기했다.유현진이 가까이 다가오자 강한서는 그녀에게서 술 냄새가 나는 것 같아 의아스러운 얼굴로 물었다.“너 술 마셨어?”“아니.”유현진은 얼굴이 새빨갰다.하지만 거짓말을 해봤자 티가 날 것 같아 유현진은 솔직하게 말했다.“많이는 아니고, 조금 마셨어.”겨우 와인 반병뿐이었다. 그녀의 주량으로 와인 반병을 마셔도 전혀 취할 리 없었고 그저 도저히 맨정신으로 강한서를 씻겨줄 수 없을 것 같아 마신 거였다.강한서는 그녀를 한참 뚫어지게 쳐다보더니 그녀에게 수건을 건네주며 덤덤하게 말했다.“먼저 한 번 닦아내는 게 좋겠어.”유현진은 한 번도 다른 사람을 씻겨본 적이 없었다.전에 두 사람은 욕실에서 사랑을 나눈 적이 있다고 하지만 그것도 유현진이 강한서가 샤워하는 틈을 타 등을 밀어준다는 핑계를 대고 욕실로 들어온 거였다. 등을 밀기는커녕 결국 욕구에 못 이겨 그녀가 먼저 옷을 훌렁 벗어버리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스킨십이 끝나면 강한서는 그녀를 깨끗이 씻어주고 침대까지 안아가곤 했다.강한서는 그녀의 구애를 곧잘 받아줬었다. 그녀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해도 침대에서만큼은 열정적이었다.하지만 작년부터 강한서의 열기가 점점 식은 것 같았다.두 사람은 아이의 일 때문에 싸움이 잦아졌고 이로 인해 강한서는 점점 그녀에게 흥미를 잃은 듯했다.‘내가 진작 질렸겠지, 뭐. 아이를 가지고 싶지 않은 건 그저 핑계일 뿐이야. 아니면 사랑하는 송민영이 마음에 걸려서 그랬나? 개자식. 나랑 질리도록 자고 나서는 이제 와서 사랑하는 여자 생각하는 거야?’이때, 강한서가 갑자기 그녀의 손목을 덥석 잡았다.정신을 차려보니 강한서가 알 수 없는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그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지금 뭐 하는 거야?”유현진이 이런저런 생각을 할 때 손이 점점 아래쪽으로 내려간 것이었다.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그녀는 다급하게 손을 움츠렸는데 강한서가 갑자기 그녀의 팔을 잡아당겼다.유현진은 중심을
전화기 너머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주강운이었다.강한서는 정색하더니 입술을 얇게 오므리며 더는 말을 하지 않았다.아무도 대답하지 않자 주강운은 잠깐 주춤했다.“한서야?”강한서는 그제야 ‘응’ 하고 대답했다.주강운이 물었다.“왜 전화를 안 받아?”“배터리가 없어서.”강한서가 멈칫하더니 그에게 물었다.“현진이를 찾아?”주강운은 웃으면서 대답했다.“너 찾으려고 전화한 거야. 그런데 전화를 받아야 말이지, 할 수 없이 현진 씨한테 전화했어.”‘현진 씨?’강한서는 입술을 씰룩거렸다.“무슨 일인데?”주강운이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말했다.“요즘 너무 바빠서 네가 다친 것도 몰랐잖아. 민서랑 얘기하다가 알게 되었어, 네가 다쳤다는걸. 그리고 성우한테 연락해서 사건의 자초지종을 들었지. 몸은 좀 어때? 괜찮아졌어?”강한서가 이마를 짚으며 말했다.“괜찮아.”“성우가 그러던데 범죄자가 잡혔다며? 내 도움이 필요해?”주강운은 충분히 두 사람이 최고 형량을 받을 수 있게 만들 수 있었다.“필요하면 연락할게.”강한서가 말을 마치자 유현진이 겨우 눈을 뜨며 물었다.“누구야? 왜 이렇게 오래 얘기해?”잠에서 금방 깨어나서 그런지 그녀의 목소리는 한껏 잠겼다.주강운은 그녀의 목소리를 듣더니 흠칫했다.강한서가 그녀를 보며 덤덤하게 말했다.“강운이야.”그러더니 또 그녀에게 물었다.“강운이랑 얘기할 거 있어?”유현진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설마 소송할 일을 얘기한 건 아니겠지?”그녀는 바로 몸을 일으켜 휴대폰을 건네받았다. 그리고 강한서를 등진 채 조심스럽게 물었다.“강운 씨, 무슨 일로 전화하셨어요?”강한서는 입술을 씰룩거리며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주강운이 대답했다.“한서가 전화를 안 받아서요. 성우한테서 들었는데 두 사람 사고를 당했다면서요? 안 다쳤어요?”유현진은 그제야 한시름을 놓았다.‘소송 때문에 전화한 줄 알고 깜짝 놀랐네.’“괜찮아요. 한서가 좀 다치긴 했는데 너무 심각한 건 아니에요.”강한서는 말문이 막혔
강한서가 어젯밤 일을 물어보면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유현진은 고민하고 있었다.‘그냥 사고였다고, 다 큰 성인이 그럴 수도 있다고 덤덤하게 말하면 될까?’하지만 강한서는 어젯밤 일에 대해 물어볼 생각이 전혀 없는 듯했다.유현진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하지만 무턱대고 화를 낼 수는 없었다. 그러면 어젯밤 일을 마음에 두는 것처럼 보이지 않을까 싶어서이다.‘그래, 강한서가 먼저 시작했으니 난 그냥 즐겼을 뿐이라고.’그 생각에 유현진의 마음은 한결 가벼워졌다.“별생각 없이 그냥.”유현진은 강한서에게 솔직하게 털어놓을 리가 없었다. 100억은 이혼 소송을 도와주는 주강운에게 줄 변호사 비용이었으니.물론 유현진은 주강운에게 이혼 소송을 도와달라고 부탁한 적은 없었다. 주강운은 강한서의 친구이니 소송을 도와준다고 해도 자신이 아닌 강한서를 도울 것으로 생각했다.그러니 ‘주강운을 별생각 없이 100억으로 저장했다’라는 유현진의 말은 거짓말이 아니었다.하지만 강한서는 그녀의 말을 믿지 않았다. 그렇다고 더 캐묻지도 않았다.“그럼 나는 뭐로 저장했는데?”유현진은 잠깐 멈칫하더니 말했다.“당연히 이름으로 저장했지, 뭐로 저장했겠어?”하지만 강한서는 바로 유현진의 부자연스러운 행동을 눈치채고는 그녀를 뚫어지게 쳐다봤다.강한서의 시선에 유현진은 등골이 오싹했다. 왠지 모르게 그가 휴대폰을 가져가서 확인할 것만 같았다.하지만 강한서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녀를 한참 쳐다보더니 이불을 거두고는 침대에서 일어섰다.그는 맨발로 카펫을 밟으며 허리를 숙여 바닥에 떨어진 잠옷을 몸에 걸쳤다.유현진은 눈 한 번 깜빡하지 않고 강한서의 몸을 뚫어지게 쳐다봤다.강한서는 몸이 얄팍했지만 근육 라인이 굉장히 예뻤다. 복근이 있을 뿐만 아니라 등 근육까지 탄탄했다. 운동하는 사람이면 알 것이다, 등 근육을 키우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매일 회사 일로 바쁘면서도 시간을 짜내 운동하니 자기 관리가 철저했다.“남자라면 다 그런 눈으로 봐?”강한서가 바지를 다 입고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