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제264화

Author: 은별
last update Last Updated: 2024-10-29 19:42:56
임재욱은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었다.

“뭐요?”

"유 아가씨께서 오전에 대표님과 함께 외출한 후 줄곧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줄곧 대표님과 함께 있지 않았습니까?"

전화를 끊은 임재욱은 순간 마음이 혼란스러워졌고 불길한 예감마저 들었다.

정건호와 정유라는 이제 막 홍콩에 왔으니 도리대로 말하면 그들의 속도가 이렇게 빠르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을 제외하고 유시아는 또 어디로 갔을까? 왜 전화도 안 받는 거지?

임재욱은 미심쩍은 듯 차를 몰고 호텔로 돌아가 집 안팎을 모두 자세히 살펴보았다.

유시아가 사라진 것은 확실하지만 그녀의 모든 증명서와 구름이가 아직 남아 있다. 이는 그녀가 아직 홍콩에 있고 지난번처럼 몰래 정운으로 돌아오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임재욱은 입술을 오므리고 마음속의 초조함을 억누르고 차 열쇠를 들고 차를 몰고 나가 사람을 찾아 나섰다.

-

거리에는 여전히 가랑비가 끊임없이 내리고 있었다.

유시아는 커다란 검은색 우산을 쓰고 마치 버려진 아이처럼 처마 밑으로 걸어가면서 고개도 거의 들지 않았다.

비가 점점 더 세차게 내리자 유시아의 바짓가랑이는 이미 젖어 있었고 바람이 불자 차가운 바람이 피부에 달라붙어 그녀는 추위에 떨었다.

길에서 한참을 맴돌고 나서야 유시아는 작은 술집을 찾아 숨어들었다.

궂은 날씨에 술집의 장사도 그다지 좋지 않은 것 같았다. 몇 명의 사람들은 좀 흩어져 앉았다.

유시아는 검은색 우산을 걷어내고 구석진 곳을 골라 앉았다.

웨이터는 그녀에게 재빨리 메뉴판을 건넸고 그녀는 안쪽을 훑어보더니 마실 것이 별로 없어서 아예 두 가지 종류의 술과 말린 과일을 주문했다.

그 후 그녀는 휴대폰을 꺼내어 임재욱에게서 걸려 온 부재중 전화가 두 통을 보았다.

유시아는 자신도 모르게 쓴웃음을 지었다.

'정말 몹시 피곤하네.'

유시아는 휴대폰을 끄고 스스로 와인 한 병을 따서 마시며 창밖의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자정 무렵, 술집이 문을 닫자 유시아는 술값을 내고 술집에서 나왔다.

비가 그쳤는데도 거리는 여전히 추웠고 찬 바람이 불
Locked Chapter
Continue to read this book on the APP

Related chapters

  • 사랑이라는 죄로   제265화

    유시아는 머리를 말리던 두 손을 잠시 멈추더니 관심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냥 나가서 걸었어요."유시아는 말을 마친 뒤 임재욱을 쳐다보며 담담하게 말했다. "경호원 두 명을 보내 날 못 가둬 둔 것이 후회되나요?"임재욱은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성질을 누르며 유시아에게 다가갔다."난 너를 밖에 나가지 말라고 한 적이 없어. 다만, 네가 나가려면 어디 있는지 나에게 전화를 해야지, 네가 이렇게 섣불리 나가면 나는… 너무 조급하잖아...""미안해요."유시아가 말했다."나는 당신이 오늘 밤 돌아오지 않을 줄 알았어요. 게다가 당신에게 있어서 나의 존재는 그렇게 중요한 것도 아니잖아요!"임재욱의 생활에서 유시아는 지금까지 가장 중요하지 않은 사람이었다.그래서 이전에 유시아는 신서현의 죽음으로 인해 3년 동안 감옥에 갇혀 고문을 당해야 했다.신시연이 잡혀갔을 때, 유시아는 임재욱에게 욕과 수모를 당해야 했다.이제 임재욱은 명목상의 아내를 위해 유시아를 도중에 내던져버렸고 유시아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심지어 유시아는 임재욱이 훨씬 자비로운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단지 그녀를 호텔 입구에 내팽개쳤을 뿐이지 감옥에 보내거나 때리거나 욕하지는 않았다.임재욱은 입술을 오므리다가 한참 후에야 말했다."네가 중요하지 않다는 건 어떻게 알아?""항상 그렇잖아요."유시아는 되묻고 다시 웃었다. "나도 다 알아요!"유시아는 자신에 대한 임재욱의 감정을 부인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감정은 남녀의 감정이 아니라, 제멋대로 행동하는 큰 소년이 재미있는 애완동물에 대한 포악하고 오만한 감정이었다.마치 유시아가 순순히 말을 잘 들으면 고기가 차려지듯이 얌전하지 않으면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폭력이었다.많은 사람들이 애완동물을 잃어버리면 매우 조급해하고 심지어는 비를 맞으면서 찾기도 한다.하지만 다시 찾아오면 어떨까?애완동물은 영원히 애완동물이다. 인격도 없고 자존감도 없다!아무 말을 하지 않는 임재욱을 본 유시아는 이런 문제로 그에게 매달리는 

  • 사랑이라는 죄로   제266화

    임재욱의 이상한 감정을 눈치챈 유시아는 약간 불안해하며 손을 뻗어 그의 손을 밀쳤다. "임재욱, 술 취한 거 아니야?""알고 싶어!"임재욱이 말했다.임재욱은 유시아와 매우 가까이 있었고 유시아의 피부 열기는 얇은 셔츠를 통해 조금씩 임재욱에게 전달되었다.임재욱이 고개를 숙이자 유시아의 눈처럼 하얀 피부, 영롱한 눈동자, 아름다운 눈매가 보였다.그렇게 가까웠는데 손 닿을 수 있을 정도로 가까웠다.하지만 어떻게 보면 또 멀다. 이 인생에서 다시 얻기는 힘들 정도로 멀다.임재욱은 더욱 힘껏 유시아를 눌러댔다.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말해줘. 내가 어떻게 해야 예전에 너에게 줬다 상처를 잊어버릴 수 있겠어?""…"항상 거만하고 자부심이 강했던 임재욱은 놀랍게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그것도 항상 싫어했던 여자에게 고개를 숙였다.유시아는 어리둥절해 하더니 곧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재욱 씨, 현우 씨 살려줄 수 있어요?"소현우…이 세 글자는 쉽게 임재욱의 분노와 질투를 불러일으켰다.임재욱은 정유라와 단지 연극을 할 뿐이고, 양가의 어른들을 위해서 밖에서 부부로 지칭하는 것이다.그러나 소현우가 죽기 전에 유시아는 정말로 소현우의 아내로 시집가고 싶었고 소현우가 죽은 후에도 그녀는 여전히 그의 어머니를 모시고 심지어는 소현우를 위해 임재욱을 칼로 찌르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소현우, 소현우…유시아는 왜 여전히 고집스럽게 이 남자의 이름을 중얼거리고 있을까?임재욱은 이미 소현우의 모습을 열심히 따라하며 유시아에게 부드러움과 인내심을 베풀려고 하는데 왜 꼭 소현우가 아니면 안 되는 건가?임재욱의 눈빛에는 사지로 몰린 은밀한 고통이 있었지만 마침내 천천히 웃었다. "유시아, 보아하니 그 칼은 너에게는 아직 많이 부족했나 봐 너는 반드시 나를 갈기갈기 찢어 죽여야만 네 마음속의 한을 풀 수 있겠지, 그렇지 않아?"유시아는 입술을 오므리다가 한참 후에야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네!"이 한마디는 순식간에 임재욱을 지옥으로 떨어뜨

  • 사랑이라는 죄로   제267화

    홍콩에서 돌아온 다음 날, 정운시에는 첫눈이 내렸다.눈보라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흩날리며 끊이질 않았고 청소부들의 청소도 되풀이되었고 도로의 차량도 길게 늘어섰다.도시 전체가 은빛으로 뒤덮여 모난 구석이 없어지고 몽환적이고 부드러워졌다.유시아는 검은색 롱패딩을 입고 얼굴의 반을 털깃에 가린 채 버스 창가에 앉아 길가에 있는 작은 가게에서 다양한 스타일의 털실을 팔기 시작한 것을 보았다. 목도리를 짜는 데 특화된 튜토리얼을 선물하기도 했다.보아하니 겨울이 정말 왔다.유시아가 출소한 이후 두 번째 겨울이었다.시간이 이렇게 빨리 지나가다니, 그녀는 좀 당황했다.차가 종착역에 도착하자 유시아는 구름이를 안고 차에서 내려 야생가를 향해 걸어갔다.앞서 인터넷으로 애완동물 관리에 대해 배웠는데 강아지가 혼자 오래 있으면 우울증에 빠지기 쉽다는 말을 들은 유시아는 다시는 구름이를 집에 혼자 두지 못했다.유시아는 어디를 가든 강아지를 데리고 다녔다. 그녀는 자신의 넓은 패딩 점퍼에 넣어 쥐도 새도 모르게 탈의실로 데려갔다. 그리고 자신의 옷장에서 재우고 퇴근하면 맛있는 것을 사주었다.혼자서 강아지와 함께 하는 생활은 가끔은 이렇게 단순하고 즐거웠다.구름이를 안착시키고 제복으로 갈아입고 출근하려고 할 때 반장인 임주란은 유시아를 보고 미적지근하게 한마디 했다."그래, 유시아. 평소에 끙끙거리지도 않고 매우 고상하던데, 우리 한서준 대표님도 꼬신 줄은 몰랐네?"유시아는 얼떨결에 대답했다."뭐라고요? 뭐라고 하셨습니까?" '한서준을 꼬셨다고? 이 이야기는 어디서부터 시작할까?"임주란은 냉소하며 허리를 비틀며 사무실로 걸어갔고 유시아에게 자세히 말하려고 하지 않았다.유시아는 임주란 때문에 갈피를 잡지 못한 채 돌아서서 손님에게 술을 가져다주었다.저녁 무렵에 매니저가 유시아에게 두 병의 술을 주며 말했다. "시아 씨, 이 술은 701룸에 보내드리세요!"야생가에서 가장 높은 층인 7층은 계급도 가장 높았고 그 안의 각종 시설도 다른 층보다 한 단계 이상

  • 사랑이라는 죄로   제268화

    사람을 도와줬다는 이유로 타인의 프라이버시까지 알아내다니… 이건 좀 아닌 것 같았다.한서준은 유시아가 오랫동안 말을 하지 않자 그제야 입을 열었다."임재욱은 아직 홍콩에 있지 않아? 왜 너 혼자 먼저 돌아온 거야? 혹시 그가 너 여기에서 근하는 것을 동의한 거야?"유시아는 숨을 깊이 들이쉬었다. "한 대표님, 이 문제는 업무의 범위를 벗어난 것 같습니다. 저는 대답을 거절하겠습니다."한서준은 가볍게 웃으며 마치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예전에는 항상 여자의 마음은 바닷속 바늘이라고 말했지만 어떤 때는 남자의 마음도 마찬가지로 종잡을 수 없구나."유시아는 그의 말을 잘 알아듣지 못했다."대표님, 만약 다른 심부름이 없으시면 저는 일하러 나가겠습니다."유시아는 몸을 돌려 문 쪽으로 걸어갔다.그런데 문손잡이에 닿기도 전에 한서준에게 불렸다. "유시아, 3년간의 감옥생활을 치르면서 너의 기억력이 좋아졌어?"유시아는 갑자기 멍해졌다. 마치 누군가에게 심하게 뺨을 맞은 듯 온몸의 근육이 모두 팽팽해졌다.이 일은 뜻밖에도 1년 만에 다시 제기되었다.그렇다. 유시아와 임재욱 사이의 일은 원래 아무런 비밀도 아니었다.야생가가 정운에 열린 지 일 년 이 년이 된 것도 아니고 특히 이곳에서는 삼교구류의 사람들이 모이기 때문에 한서준이 조금만 흘리면 언제든지 약간의 단서를 발견할 수 있다!한서준이 이 일을 알고 있다는 것은 조금도 이상하지 않다. 하지만…유시아는 약간 머뭇거리며 고개를 돌렸다. "대표님, 저는 대표님의 뜻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한서준은 유시아와 단지 간단한 대표와 직원의 관계일 뿐이다.그리고 야생가와 임씨 그룹도 서로 상관없는 두 곳이니 유시아와 임재욱의 관계가 어떻든 한서준과는 조금도 관계가 없을 것이다.한서준은 수정등 아래에 서 있는 안색이 안 좋아진 여인을 바라보며 미소 지으며 웃었다."소현우가 죽은 건 아직도 기억하고 있니?"유시아는 그의 말에 더욱 불안해했다. "기억해요. 그런데 그게 대표님과 무슨 상관이에요?

  • 사랑이라는 죄로   제269화

    속이 뒤집히고 한참 만에야 잠잠해졌다.유시아는 세면대를 잡고 천천히 몸을 일으켜 거울에 비친 자신의 작은 얼굴을 보았는데 다소 섬뜩할 정도로 창백했다.유시아는 잠시 멍해 있다가 갑자기 몸을 일으켜 식탁 위의 지갑과 열쇠를 들고 밖으로 뛰쳐나갔다.그녀가 사는 곳은 외진 곳이어서 약국이 많지 않았고 두 집 모두 문을 닫았다.유시아는 온몸이 얼어 마비될 정도로 찬바람 속에서 한참을 걷고 나서야 아직 문을 닫지 않은 작은 진료소를 찾았다.임신테스트기를 산 유시아는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 설명서에 따라 가르쳐준 대로 서툴게 써 보았다.그 결과, 하나는 깊고 하나는 얕게 나온 두 개의 줄이 있었다.화장실의 따스한 노란색 불빛 아래 유시아의 작은 얼굴은 더욱 창백해졌고 입술마저 마지막 핏기가 다 빠진 것 같았다.그녀가 임신이라니, 그것도 임재욱의 아이이다!유시아는 고개를 숙이고 평소와 다름없는 평평한 배를 바라보더니 그 안에 이미 작은 생명이 잉태되기 시작했다는 것을 감히 상상할 수 없었다.게다가 임재욱의 아이라니!임재욱과 만날 때마다 유시아는 줄곧 제때 약을 먹었다. 물론 임재욱도 피임을 잘했었다.하지만 유시아가 임재욱을 칼로 찌르고 재회한 뒤로는 두 사람 모두 피임을 잊었다.유시아는 입술을 오므리고 임신테스트기를 손에 꼭 쥐고 온몸을 덜덜 떨기 시작했다.어떡하?그녀가 어떻게 임재욱의 아이를 임신할 수 있을까?하늘이 어떻게 그녀에게 이런 농담을 할 수 있을까?밤새 잠을 이루지 못한 유시아는 다음 날 아침 일찍 아침도 먹지 않고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았다.이렇게 큰일을 임신테스트기 한 장을 아직 믿지 못해서 다시 병원에 가서 확인하였다.이른 시간에 버스를 타려던 유시아는 하마터면 한 장의 사진으로 될뻔했다. 차에서 내린 후 걸어서 근처의 병원에 가서 또 한참 동안 줄을 서고 접수하고 검사하고 명세서를 받고...일련의 과정이 끝나고 모든 것이 안정되었을 때는 이미 오전이었다.왁자지껄한 문진에서 나온 유시아는 좀 멍해졌다.그녀는 진단서를 

  • 사랑이라는 죄로   제270화

    그녀들을 다치게 하면 치러야 할 대가가 너무 커서 정유라는 이 위험을 무릅쓸 수 없었다.임재욱이 오늘 정씨 부녀와 함께 정운으로 돌아왔을 때 임태훈은 매우 기뻐하며 특별히 자신의 집에서 연회를 열어 그들을 환영했다.두 어른은 오랫동안 함께 모이지 못했다. 이때 거실에 앉아 차 한잔과 말린 과일 한 접시를 통해 부동산 시장에서 주식 시장에 이르기까지 동서고금의 장사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며 분위기가 아주 화기애애했다.정유라는 작은 며느리답게 그들을 도와 차와 물을 부어주면서 자신이 홍콩에서 가져온 선물을 모두에게 나누어 주었다.할아버지 임태훈과 작은고모 임청아뿐만 아니라 집안의 도우미들까지도 모두 다 선물이 있었다.어려서부터 고급 명문 교육을 받은 정유라는 이런 일에 대해 항상 빈틈없이 챙겨주어 사람들의 신임을 얻었다. 이 또한 임태훈이 정유라를 좋아하고 그녀를 임씨의 주인공으로 삼고 싶어 하는 이유 중의 하나이다.임재욱은 기분이 좋지 않아 아래층 소파에 잠시 앉아 있다가 몸이 피곤하다고 핑계를 대고 위층으로 올라가 쉬었다.원래 있던 침실은 현재 임재욱과 정유라 두 사람이 공유하는 신혼 방이 되었다. 임재욱은 평소에 이곳에 살지 않기 때문에 안에 놓여 있는 것도 모두 정유라의 물건이며 여자 특유의 체취가 은은하게 배어 있었다.임재욱은 침대에 잠깐 누워 있다가 냄새를 못 참겠다는 듯 침대에서 일어나 베란다에 있는 소파에 가서 앉았다.바깥 날씨는 매우 좋지 않았다. 날씨가 음침한 것이 마치 눈이 올 것 같았고 새도 보이지 않았다.임재욱이 소파에서 잠시 기우뚱하며 졸고 있을 때 정유라가 문을 밀고 들어왔다.멀리서 베란다 소파에 있는 남자가 보였는데 뒤통수를 반만 내밀고 꼼짝도 하지 않았다. 마치 누군가 온 것을 의식하지 못한 것 같았다.정유라는 조용히 들어가서 손을 뻗어 침대 위에 걸쳐진 담요를 들고 가볍게 임재욱의 몸을 덮어준 다음, 다시 조용히 나와 주방으로 가서 두 노인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할아버지, 아빠, 재욱 씨가 위층에서 잠들었는데

  • 사랑이라는 죄로   제271화

    정건호의 생일, 임재욱은 꼭 정유라 때문이 아니더라도 파티에 참석해야 했다.사적인 친분도 있고, 사업적으로도 많은 협업을 하고 있어, 두 집안은 정운시에서 한배를 탄 것으로 유명했다.하여 임재욱은 쉽게 정씨 가문에게 등을 돌리지 않을 것이다.그가 더 이상 임씨 가문을 원하지 않는다면 모를까.뜻밖의 긍정적인 대답에 정유라는 두 눈을 반짝이며 기쁜 기색을 드러냈다.“정말이지? 약속 꼭 지켜. 그날 나랑 같이 집에 가야 해.”임재욱은 그녀를 향해 입꼬리만 살짝 올리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하고, 곧바로 자리를 떠났다.침실 발코니에 서서 그의 차가 저택을 벗어나는 모습을 지켜보던 정유라는 휴대폰을 꺼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유시아 요즘 뭐 하고 다니는지 알아봐! 특히, 홍콩에서 돌아온 이후의 모든 행적들 샅샅이 알아내!”**뱃속에 잉태한 작은 생명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과도 같았다.언젠가 그녀를 철저히 무너뜨리지는 않을까.유시아는 침대에 누워 잠옷에 덮인 배를 만지며 가만히 한숨을 내쉬었다.“넌 날 벌 주러 왔구나!”대체 전생에 무슨 잘못을 했길래, 아빠인 임재욱처럼 그녀의 인생에 나타나 그녀를 괴롭히고, 모욕하고, 누군가를 사랑할 용기와 의지까지 철저히 앗아가는 걸까!지워야 할까, 지켜야 할까……반복되는 같은 질문만 유시아의 머릿속을 헤집으며 고통스럽게 했다!지우기엔 마음이 아프고, 지키기엔 결국 과거 임재욱처럼 인정받지 못하는 서자 신세가 될 게 뻔했다!임씨 가문 사람들은 뼛속까지 매정한 이들이었다.그녀와 임재욱은 평생 함께하지 못할 운명이다!만약 이 아이가 태어난다면, 그땐 더 큰 파국으로 치닫게 된다!유시아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벼랑 끝에 내몰린 기분이었다. 하느님께서 참 어려운 문제를 내려주신 것 같았다.아직은 결정을 내릴 때가 아니다. 유시아는 여전히 일상적인 나날을 보냈다. 매일 출근하고 번 돈으로 자신과 구름이를 먹여 살려야 했다.겨울이라 옷이 두꺼운 데다, 아기 달수도 짧았기에 전혀 임산부 티가 나

  • 사랑이라는 죄로   제272화

    정신을 차린 유시아는 서둘러 술을 서빙하러 갔다.임신 중이긴 하지만 아직 몇 개월도 되지 않아 업무에 영향을 미칠 만큼 큰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유시아의 섣부른 판단이었다.불과 몇 시간 후, 속이 더부룩해 난 유시아는 화장실로 달려가 변기에 엎드려 한바탕 토하고 말았다!식욕이 없어 저녁엔 거의 아무것도 먹지 않았고, 텅 빈 위에서 토해낼 것이라고 신물밖에 없었다. 목이 불에 덴 듯 따끔거리고, 통증에 눈물까지 찔끔 흘렸다.잠시 벽에 기대어 숨을 돌린 유시아는 탈의실로 돌아가 요구르트로 속을 달랠 생각이었다. 그런데 화장실 문을 열자 한서준이 창가에 선 채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그녀를 보고 있었다.유시아는 흠칫 긴장하며 그의 시선을 피했다.“한 대표님……”“왜 그래?”한서준의 시선이 그녀의 작고 창백한 얼굴에 머물렀다.“몸이 안 좋은가?”“아, 아닙니다.” 유시아는 담담한 미소로 대답했다.“탈의실에 가서 좀 쉬면 돼요!”하지만 한서준은 손을 뻗어 그녀의 앞을 가로막았다. “병원 가자, 돈은 보험처리 해줄게!”유시아는 살짝 당황했다.“아니요, 정말 괜찮아요. 그냥 가서 좀 쉴게요……”가늘게 뜬 한서준의 눈에 의구심이 스쳐 지나갔다.“유시아, 너 혹시……”“괜찮다니까요!”말을 마친 유시아는 계단을 향해 빠르게 걸어갔다.만약 한서준이 임신 사실을 알게 되어도, 절대 비밀을 지켜줄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았다.그러다 임재욱의 귀에까지 들어간다면, 걷잡을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진다.그리하여 유시아는 직장을 잃는 한이 있더라도 어떻게든 임신 사실을 숨겨야 했고, 아무에게도 들켜서는 안 되었다!1층 라커룸으로 돌아온 유시아는 사물함에 손을 뻗어 요구르트 한 병을 꺼내 단번에 들이킨 다음 벤치에 자리를 잡았다.밤늦게 퇴근한 유시아는 구름이를 안고, 네온사인이 번뜩이는 야생가에서 나왔다. 버스 정류장으로 향하던 중 갑자기 한서준의 차가 앞을 가로질러 왔다. “타, 집까지 태워줄게!”“괜찮아요, 감사합니다.”유시아는 최

Latest chapter

  • 사랑이라는 죄로   제485화

    늦은 밤, 유시아의 카카오톡을 받았을 때 임재욱은 병원에 있었다.신시연은 도우미의 도움을 받으며 진료실에서 여러 검사를 받았고 그동안에 임재욱은 밖에서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늦은 밤의 사립 병원이라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았다.당직을 서는 의사 선생님과 간호사 외에 거의 사람이 없이 무척이나 쓸쓸해 보였다.임재욱은 복도를 한참이나 누비다가 의자에 걸터앉았다.유시아를 병원으로 바래다주고 돌아서는 길에 신시연의 전화를 받고서 오게 된 것이다.배가 아프다고. 당장이라도 죽을 듯이 아프다고.신시연은 며칠 전에 병원에서 여러 번 신체검사를 받았으나 해외에서 그러한 몹쓸 짓을 당하며 우울증과 부인병이 있는 외에 다른 수치들은 정상 범위 안에 있었다.그 말인즉슨,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재욱은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신시연에게 남은 ‘가족’이라고는 임재욱 하나뿐이니 어찌 됐든 그녀를 잘 지켜야 하는 마음뿐이었다.그 누구에게도 다시는 상처를 받지 않게끔.바로 이러한 마음가짐으로 하여 임재욱은 그녀를 직접 병원까지 데리고 오고 의사 선생님 입에서 아무런 문제도 없다는 확답을 듣고 나야만 마음이 놓일 수 있다.애타게 검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가운데 핸드폰 알림 소리가 울렸다.유시아가 보낸 카카오톡인데, 내용은 아주 간단했다.[보고 싶어요.]임재욱은 고개를 숙인 채 카톡 내용을 거듭 곱씹으며 유시아 사진으로 되어 있는 그녀의 프로필 사진을 바라보며 입꼬리가 주체하지 못하고 자꾸 올라갔다.‘내가 보고 싶어? 별거한 지 하루 만에 벌써 내가 보고 싶은 거야?’‘우리 시아 이제 제법 솔직하네.’핸드폰을 손에 꼭 쥐고 어떻게 답장할지 생각하고 있을 때 응급실 문이 열렸다.도우미 김향화가 얼굴에 핏기 하나 없는 신시연을 부축하고 걸어 나왔다.신시연은 디자인이 아주 심플한 데님 스커트를 입었고 윤기가 별로 없어 보이는 머리를 돌돌 말아 묶어 올렸다.무척이나 초췌해 보이는 것이 가여운 느낌도 물씬 풍기고 있어 기고만장했던 그

  • 사랑이라는 죄로   제484화

    유리 구두를 품속에 꼭 안고 있는 유시아를 보고서 임재욱은 순간 이러한 생각이 들었다.참으로 달래기 쉬운 여자라는 것을.특히 결혼하고 나서 아주 살짝만 잘해주어도 유시아는 아주 오랫동안 기뻐하는 것만 같았다.유시아는 늘 임재욱 앞에만 서면 스스로 자세를 낮추고 자기를 낮은 위치에 놓는 데 습관 되어 있다.임재욱은 고개를 숙여 그녀의 정수리에 뽀뽀했다.“앞으로 매년 생일마다 예쁜 유리 구두 선물해 줄게. 어때?”“좋아요.”유시아는 말하면서 아주 유치하게 그를 향해 손가락을 내밀었다.“손가락 걸고 약속해요. 절대 어기지 않겠다고.”백화점에서 나온 두 사람은 일단 화실로 향했다.새로 구매한 공예품을 적당한 자리에 올려놓고 유시아의 제안으로 이채련의 병원까지 바래다주었다.유시아는 자기가 뱉은 말은 어떻게든 지키는 타입이라 이채련과 이미 약속했으니 꼭 지켜야 했다.하물며 자식도 없는 이체련에게 마지막 이 시간들이 더더욱 외로울 것이다.외부인들이 보기에도 불쌍할 정도로 외롭다.임재욱이 아무리 말해도 소용이 없었고 이채련에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 없다고 하니 마음은 내키지 않았지만 보내주었다.차는 곧 사립 병원 앞에 멈춰 섰고 임재욱은 차에서 내리지 않았다.유시아는 차창에 대고 거듭 강조했다.“유리 구두랑 드레스들 옷방에 고이 모셔두도록 해요. 마구 놓지 말고요.”“알았어.”임재욱은 말하고서 손을 내밀어 그녀의 목을 확 잡고서 찐한 키스를 남기고 나서야 순순히 놓아 주었다.“얼른 가 봐.”“조심해서 가요.”임재욱은 조수석에 앉아 한결 가벼워진 그녀의 뒷모습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보고서야 시선을 거두고 집으로 향하려고 했다.가는 길에 갑자기 신시연으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오빠, 배가 너무 아파요.”...병실로 돌아와 보니 이채련은 아직 자고 있지 않았다.침대에 멍하니 누워 재미가 일도 없는 예능 프로를 보고 있었다.유시아가 문을 밀고 들어오는 것을 보고 이채련은 놀라고도 기뻤다.“시아야, 늦은 시간에 웬일이야?”유시아

  • 사랑이라는 죄로   제483화

    쇼핑은 늘 설레는 일이다.유시아는 자기 취향대로 화실 장식품으로 쓰일 공예품을 골랐다.이윽고 임재욱은 또 유시아를 데리고 근처에 있는 매점으로 향했다.지난번에 두 사람은 함께 쇼핑하면서 많은 옷을 샀었지만, 신서현 부모님께 갑작스러운 상황이 일어나면서 유시아는 그 모든 옷을 모조리 청소 아주머니에게 줘 버렸다.그때의 아쉬움을 채워주기 위해 임재욱은 또다시 쇼핑하려고 한 것이다.게다가 다음 주면 대우 그룹 상장 20주년이다.정식적인 석상에 모습을 드러낼 때 유시아를 자기 아내 신분으로 남에게 소개해 주고 싶어 이브닝 파티에 어울릴만한 드레스와 신발을 살 예정이다.드레스는 그럭저럭 큰마음이 가지 않았는데, 유시아는 그 신발이 마음에 들었다.은백색의 하이힐로 예쁜 보석들로 가득 박혀 있어 매점 불빛 아래서 유난히 반짝이는 것이 신데렐라 동화에 나올 법한 유리 구두 같았다.매점 직원은 유시아가 마음에 들어 하는 것을 보고 바로 다가왔다.“손님 안목이 참 좋으시네요. 이 제품은 저희 디자이너 선생님의 최신 디자인으로 지금 딱 한 켤레만 있습니다. 만약 이 신발을 신고 나가신다면...”임재욱은 갑자기 직원의 말을 끊어버렸다.“이미 결혼했고요. 이 사람은 제 아내예요.”유시아는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들었는데, 자기를 바라보며 웃고 있는 그를 보고서 따라서 웃었다.“맞아요. 이 사람이 제 남편이에요.”매점 직원은 멍하니 있다가 바로 얼굴에 미소를 머금고 베스트 쇼핑 가이드다운 실력을 드러냈다.“어머, 어쩐지 너무 어울리신다 했어요...”직원의 칭찬에 두 사람은 얼굴에 웃음꽃이 피어났다.이윽고 매점 직원은 분위기를 파악하며 유리 구두에 대해 더욱 디테일한 설명을 첨부하기 시작했다.“이 제품의 새끼 양가죽으로 만들어졌으므로 착용감이 엄청 좋으실 거예요. 하루 종일 신고 걸으셔도 전혀 문제가 없다는 말이죠. 게다가 우리 디자이너 선생님이 즉흥으로 만들어내신 작품이라 절대 똑같은 제품을 시중에서 보실 수 없을 거예요.”한 켤레일 뿐만 아니라 사이

  • 사랑이라는 죄로   제482화

    한서준은 눈살을 찌푸리며 되물었다.“내가 뭐?”“한서준 씨는 당당해요?”유시아는 바로 질문을 질문으로 돌려주었다.“임씨 가문에 접근한 그 의도를 다른 사람들이 모를 것 같아요? 할아버지, 재욱 씨 그리고 나까지 똑똑히 알고 있어요. 청아 씨만이 한서준 씨를 사랑해서 자신을 속이고 있는 거라고요. 그렇게 쭉 모르는 척을 하며 모든 걸 감당하고 있었던 거라고요. 한서준 씨 역시 청아 씨를 이용한 게 아닌가요?”마지막 한 마디에 한서준은 침묵하고 말았다.그렇다. 임청아에게 접근한 이유는 유시아가 ‘스파이’로 움직여 주지 않겠다고 거절했기에 어리석어 보이는 임씨 가문 천금을 노리게 된 것이다.하지만 사람 마음이라는 것은 결국 변하게 되어 있다.임청아 대한 마음은 모략에서 시작했으나 시간의 흐름에 따라 그 마음이 점점 사랑으로 끝을 맺게 된 것이다.늘 밝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띠고 다가왔던 임청아가 어두운 자신의 삶을 밝게 비춰주는 것만 같았다.따라서 한서준은 임청아와 평생을 함께하고 싶다는 마음이 차츰 생기게 된 것이다.임태훈이 반대한다고 하더라도 꼭 자기 곁으로 데리고 오고 싶었다.“청아 씨 지금 몸도 마음도 상처투성이에요.”“만약 청아 씨 행복하게 해 줄 수 없다면 신중하게 생각하고 결정하는 게 좋을 거예요.” 말을 마치고 유시아는 차 문을 밀고 차에서 내려 병원 밖으로 걸어갔다.택시에 오른 유시아는 긴 망설임 끝에 끝내는 더 스케치 화실 주소를 운전 기사에게 알렸다.차는 화실 맞은 편에 세워졌고 유시아는 화실 바로 맞은편에 있는 커피숍으로 들어가 창가 자리에 앉았다.화실 안의 상황을 바로 체크할 수 있고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지 않아도 되는 최적의 위치라고 할 수 있다.한참 지나고 나서야 수많은 경호원들이 임태훈을 사이에 두고 화실에서 걸어 나오는 것이 보였다.임태훈은 벤틀리에 올라 강한 기운을 남기고 자리를 떠나버렸다.유시아는 그제야 한시름을 놓고 들고 있던 커피잔을 내려놓고는 바로 화실로 향해 달려갔다.화실 안과 밖은 겉은

  • 사랑이라는 죄로   제481화

    전화를 마치고 유시아는 혼자 밖에 없는 휴게실을 보고서 깊은 번뇌에 잠겼다.남을 탓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임태훈처럼 막무가내로 어처구니가 없는 노인이 있다는 게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다.임태훈이 끔찍이 여기는 임청아를 유시아가 계단에서 밀어버린 것도 아닌데, 왜 애꿎은 자기 화실을 닫으려고 하는지 알 수 없었다.집안 내부에 문제가 생기면 일단 스스로 반성하는 법부터 배워야 하는데, 그게 무엇이든 일단 남한테서 문제를 찾고 있으니, 권력을 믿고 사람을 업신여기는 것이 분명했다.유시아는 생각하면 할수록 머리가 복잡해졌고 불안함도 점점 커졌다.지금 운영하고 있는 더 스케치 화실도 용재휘가 먼저 시작한 것인데, 그와 더불어 학생들까지 모두 함께 넘겨주었는데, 만약 이대로 화실을 망쳐버린다면 용재휘에게 너무 미안할 것 같았다.임재욱과 임태훈이 어느 정도로 얘기했는지 알 수 없었지만 화실이 그들 싸움의 희생물이 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었다.임재욱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묻고 싶었으나 감히 그럴 용기가 없어 일단 지켜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떨리는 심장을 부여잡은 채로.그렇게 한참이나 심장을 조이고 있었지만, 걸려 오는 전화는 없었다.유시아는 일이 어느 정도 망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학생 채팅방에 오늘 갑자기 일이 있다며 수업을 뒤로 미룬다고 알렸다.언제 다시 수업을 시작할지는 소식을 기다리라며 덧붙이기까지 했다.톡을 보내고서 유시아는 더 이상 핸드폰을 보지 않고 바로 병원 밖으로 나갔다.그러나 병원 대문을 나오자마자 한서준이 정면에서 오고 있었다.“유시아.”유시아는 고개를 들었고 그를 보게 되는 순간 정신이 아찔해 났다.직감이 알려주건대, 절대 좋은 일이 없다는 것이다.화실의 생존 여부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그의 심기까지 건드리고 싶지 않았다.한서준은 쉽사리 유시아를 놓아 주지 않았고 손을 내밀어 유시아의 손목을 꼭 잡았다.“물어볼 일이 있어.”말하면서 근처에 있는 지프차를 가리켰다.“차에 타서 얘기 하자.”“그쪽이랑 할 말

  • 사랑이라는 죄로   제480화

    유시아는 그 말을 이어받지 않고 집사의 바람대로 타이르기 시작했다.“몸이 아직 많이 허약해요. 먹고 싶지 않아도 억지로라도 좀 먹어야 하거든요. 일이 어찌 됐든 일단 건강부터 챙겨야 해요.”임청아 그 말을 듣고서 쓴웃음을 지었다.“건강 회복되면 할아버지한테 잡혀가서 집에 감금되는 것밖에 더 있겠어요?”“그렇게 생각하지 말아요.”유시아는 눈살을 찌푸리며 덧붙였다.“어찌 됐든 할아버지 마음은 한결같을 거예요. 청아 씨를 아끼고 사랑하는 거요. 서로 대화가 필요한 거 같아요. 서로 터놓고 얘기하고 나면 오해가 풀리고 마음도 풀리면서 모든 게 원점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예요.”임청아의 입가에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저도 그렇게 생각했었어요. 아이 낳고 나면 할아버지도 서준이도 원한을 내려놓고 행복만 할 수 있다고요.”“근데 이렇게 몸도 아끼지 않고 점점 더 막무가내로 나가면 두 사람 사이의 원한은 점점 더 짙어질 거예요.”유시아는 말하면서 도우미 손에서 보신탕을 가져와 천천히 불며 임청아의 입가로 가져갔다.임청아는 생각 밖으로 무척이나 순순하게 유시아의 말을 따랐고 그녀의 말에 이치가 있는 것 같아 조용히 보신탕을 받아 마셨다.도우미와 집사는 두 사람이 티키타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것을 보고 서서히 마음이 놓였다.임청아가 뭐라도 먹기 시작하여 자기도 모르게 한시름을 놓으며 자리까지 비켜주려고 했다.두 사람이 마음 편히 말할 수 없을까 봐 눈치껏 일어서려는 것이다.“작은 사모님, 아가씨와 천천히 얘기하고 계세요. 밖에 나가 있을 테니 필요한 거 있으시면 언제든지 부르시고요.”“네, 가보세요.”도우미 일행이 나오고 나서야 유시아는 본론으로 들어갔다.“한서준 씨는 알고 있어요?”임청아는 고개를 저으며 쓴웃음을 지었다.“그런다고 숨겨질 일도 아니잖아요.”요즘 임태훈뿐만 아니라 한서준도 눈을 부라리고 임청아를 찾고 있었다.두 사람의 시선을 피하고자 아파트도 호텔도 들어갈 수 없었고 버려진 강아지처럼 유시아 화실에 몸을 숨기고 지낸 것

  • 사랑이라는 죄로   제479화

    임청아 이름 석 자가 임재욱의 입에서 나오자, 유시아는 순간 청천벽력을 맞는 것만 같았다.심지어 지금까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으니 말이다.한참 지나고 나서야 겨우 떨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물었다.“청아 씨가 왜 병원에 있는 거죠?”임청아는 임신한 것을 알고 매사에 조심하며 걸음 하나도 천천히 옮겼었다.게다가 해외에 있는 친구와 연락하여 해외로 떠날 준비까지 마쳤다고 했었다.그런데 관건이 되는 순간에 계단에서 굴러떨어졌다고?“할아버지를 너무 쉽게 생각한 거 아니야?”임재욱은 말하면서 차갑게 웃었다.“네 화실에 청아 숨겨 놓았잖아. 할아버지께서 그걸 과연 모르고 있었을 것 같아? 오늘 화실로 청아 데리러 갔었는데, 가지 않겠다고 청아가 하도 우기는 바람에 억지로 묶어서라도 데리고 가겠다며 서로 실랑이를 벌이다가 계단에서 굴러떨어진 거야.”그렇다면 아이를 유산했을지도 모른다.임태훈의 습관에 따라 생각해 본다면 이 화살은 결국 유시아에게로 돌아오게 되어 있다.임재욱이 그렇게 경고하였건만 유시아는 마음이 약한 사람이었다.약해지는 마음에 언젠가는 구렁이에 빠지게 될 날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날이 바로 오늘 일 줄은 몰랐다. 임재욱은 한숨을 내쉬며 꾸짖고 싶은 마음을 겨우 억눌렀다.“병원 주소 보내줄 테니 얼른 가 봐.”말을 마치고 임재욱은 전화를 끊어버렸다.얼마 지나지 않아 메시지 한 통이 도착했고 운전 기사에게 새로운 목적지를 알려주었다.같은 시각, 병원 안에서.임청아는 이미 수술을 마쳤고 일반 병실로 옮겨져 있었다.이미 가문의 집사와 간호인이 옆에 있었고 병실 문 앞에는 임태훈이 보낸 경호원도 있었다.다만 경호원이 경계해야 할 상대는 유시아가 아니라 한서준이다.따라서 유시아는 별다른 막힘없이 바로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병상에 누워 있는 임청아는 얼굴에 핏기 하나 없었고 초점을 잃은 두 눈으로 멍하니 천장만 바라보고 있었다.불과 하룻밤 사이에 모든 활력을 잃어버린 모습이었다.집사는 자리에서 일어서서 아주 공손하게 유시아에

  • 사랑이라는 죄로   제478화

    조금 전까지 허겁지겁 밥을 먹고 있던 임재욱은 멈칫거리고 말았다.이윽고 고개를 천천히 들어 웃는 듯 마는 듯한 얼굴로 유시아를 바라보며 물었다.“별거하자는 뜻이야?”“그렇게 생각해도 좋아요.”유시아는 숟가락을 내려놓고 머리가 아픈 듯 이리저리 만지작거렸다.“지금 이러한 상황에서 이러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나한테 신경 쓰지 않아도 되고 그 시간으로 시연이한테 집중해도 되잖아요. 나도 마침 어머님 곁에 좀 있어드리고... 서로에게 지금 이게 최우선인 것 같아요.”임재욱은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서 낙담한 모습으로 말했다.“그래. 네가 좋다고 하면 그게 좋은 거겠지. 그렇게 하자.”말을 마치고 그는 계속 밥을 먹었다.유시아는 그런 그를 바라보고서 아련하게 웃고는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위층으로 올라갔다.이튿날 아침, 유시아는 임재욱이 출근하고 나서야 침대에서 일어났다.일상복 몇 벌과 일상용품을 챙겨 작은 트렁크 안에 놓고 바로 이채련한테 가려고 했다.허씨 아주머니는 트렁크를 들고 내려오는 유시아의 모습에 살짝 당황한 모습이었다.“사모님, 어디 가시는 거예요? 설마... 가출하려는 건 아니죠?”유시아는 허씨 아주머니를 향해 웃었다.“아니에요. 친척분이 좀 위독하신데 제가 옆에서 좀 챙겨드리고 싶어서 가는 거예요. 얼마 걸리지 않을 거고 곧 돌아올 수 있을 거예요.”말을 마치고 트렁크를 들고서 집을 나섰다.이채련이 지내고 있는 병실이 VIP 병실로 널찍한 객실까지 갖춰져 있다.유시아는 간호사에게 접이식 침대와 이불을 요구했고 간단히 정리하고 나니 잘 자리가 아늑하게 마련되었다.이채련은 더 이상 침대에서 내려올 수 없어 하루 24시간을 침대 위에서 보내고 있다.얼굴도 하도 여위어 본연의 모습을 점점 잃어가고 있었다.그전에도 유시아는 이채련에게 이곳에서 며칠 동안 함께 지내고 싶다는 의사를 밝힌 적이 있지만 이채련은 행여나 자기로 인해 두 사람 사이에 흠이 생기게 될까 봐 동의하지 않았었다.지금 이 자리까지 오게 된 것만으로도 갖은 풍

  • 사랑이라는 죄로   제477화

    임재욱은 핸들을 꼭 움켜쥐고서 앞만 바라보았으나 두 눈에는 고통과 망연함이 가득했다.“시연이 해외에 있을 때, 몹쓸 짓을 당했어. 한번이 아니라 여러 번이나. 그래서 우울증에 걸리게 된 거야.”유시아는 두 눈이 휘둥그레지면서 볼륨까지 높아졌다.“어머, 어떡해요!”평소에 신시연에 대해 좋은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건 아니지만 그 소식을 듣게 되는 순간 심장이 덜컹 내려앉기는 했다.여자에게 있어서 그런 몹쓸 짓을 당한다는 건 치명적인 타격과 치욕이 아닐 수가 없다.게다가 부모님의 일까지 더해지니 조금 전 식당에서 봤던 신시연의 모습이 이해되었다.임재욱은 말하면서 후회와 자책하는 빛을 드러냈다.“그렇게 가고 싶지 않다는 시연이를 내가 억지로 보낸 거야.”그때는 모든 걸 너무 쉽게 생각했었다.낯선 곳으로 가서 마음을 가다듬고 학업에만 집중하면 자연스레 모든 걸 잊고 새로운 삶을 그려나갈 수 있으리라 믿었다.하지만 임재욱이 잊고 있었던 부분이 하나 있는데, 그건 바로 신시연이 이제 갓 20살을 넘은 꽃다운 여자아이라는 것이다.해외에는 불안정 요소도 많고 미처 생각지 못하는 위험도 많다.게다가 젊은 나이라 자칫 잘못하면 그릇된 길로 들어서기도 아주 위험하고 말이다.신시연 곁에 사람을 함께 보내긴 했지만 그렇다고 하여 24시간 동안 찰싹 달라붙어 다닐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유시아와 결혼하고 나서 신혼에 푹 빠져 있는 동안 신시연에게 더 많은 관심을 주지 않았기에 이러한 일이 일어난 게 아닌지 죄책감이 들기도 했다.지금 임재욱은 신서현에게 미안할 뿐이다. 하나뿐인 동생을 이 지경으로 만들었으니.하지만 그가 말한 본의와 달리 듣고 있는 유시아는 또 다른 뜻으로 받아들이게 되어 있다.유시아의 기억으로는 신시연이 해외로 보내진 이유는 이러하다.그때 신시연은 정운시 대학교 교내 사이트에 유시아를 먹칠하는 게시글을 올리면서 유시아로 하여금 학업을 이어갈 수도 수업을 들을 수도 없게 악한 상황을 만들었었다.마침 그 일을 소현우가 알게 되면서 유시아에게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