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세요. 네, 제호 호텔이요. 노인이 정신을 잃고 쓰러졌으니 빨리 와주세요!”서정원 역시 가슴이 철렁했다. 그녀는 시선을 내려뜨리고 바닥에 누운 최승철을 바라봤다.그의 증상을 보니 갑자기 심장병이 발작한 듯했다.서정원이 다가가서 최승철을 살펴보려는데 이진숙과 최지연이 막아섰다.“서정원, 우리 아버님 너 때문에 쓰러졌어! 그런데 또 무슨 짓을 하려는 거야?”“비켜요!”서정원이 매서운 말투로 쏘아붙였다.최승철은 현재 상황이 위급했기에 반드시 의사가 도착하기 전에 응급조치를 취해야 했다.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될지 장담할
세상에서 가장 떠들썩하고 성대해야 했던 약혼식은 시작하기도 전에 초라하게 끝을 내렸다.서정원은 마치 심장을 망치로 쿵쿵 내리치듯 괴로웠다.“빌어먹을, 우리 할아버지가 언니 때문에 목숨이 위태로워요. 이제 만족해요?”하이힐을 신은 최지연은 또각또각 걸어와서 서정원의 콧대를 짚으며 욕했다.“서정원, 만약 아버님께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우리 최씨 집안은 널 가만두지 않을 거야!”이진숙은 우물에 빠진 사람에게 돌을 던지며 손을 들어 서정원의 뺨을 때리려 했다.서정원은 눈빛이 차가워지더니 이진숙의 손을 잡고 그녀를 뒤로 밀었다.
그의 시아가 돌아왔으니 말이다.결국 결말은 같았다.“만약 할아버지께 무슨 일이라도 생긴다면 절대 용서하지 않겠어요.”최성운이 냉담하게 내뱉었던 말이 귓가에 울려 퍼지자 서정원은 가슴이 저렸다.‘최성운은 내가 밉겠지?’그는 할아버지를 그렇게 만든 사람이 서정원이라고 생각할 것이다.그렇게 어느샌가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굵은 빗방울이 서정원의 몸 위로 떨어져 그녀의 옷을 적셨다.서늘한 밤바람이 불어오자 서정원은 저도 모르게 몸을 부르르 떨었다.그런데 갑자기 우산 하나가 서정원의 머리 위로 드리워져 바람과 비를 막아줬다.
“수술은 아주 성공적입니다.”천호진 의사는 금테 안경을 추켜올리면서 잠깐 뜸을 들인 뒤 말했다.최성운은 그 말을 듣고 겨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천호진 의사가 조심스럽게 다시 입을 열었다.“하지만...”“하지만 뭐요?”최성운은 순간 바짝 긴장하며 물었다.“하지만 어르신 상태가 좋지 않습니다.”천호진은 말을 신중히 골랐다.“깨어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습니다.”최성운은 안색이 흐려지면서 허스키한 목소리로 말했다.“말도 안 돼요! 저희 할아버지는 분명 괜찮으실 거예요!”이내 간호사가 병상을 밀고 나왔다.
그녀는 수차례 심호흡하고 나서야 겨우 평정심을 되찾았다.논란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았고 인터넷에는 서정원을 조롱하거나 욕하는 글들이 난무했다.「서정원 정말 여우네. 자기가 최성운에게 차였으면서 도도한 척 약혼식을 취소했잖아. 그 때문에 어르신은 목숨이 경각에 달렸고. 정말 뻔뻔해!」「촌뜨기는 촌뜨기라니까, 남신인 최성운에게 어울리지 않아. 차였으니 쌤통이야!」「최성운 남신이 새로 만나는 여자는 누구래?」서정원의 안색이 좋지 않자 심준호는 고개를 돌려 그녀를 힐끗 보았다.“정원아, 괜찮아?”“괜찮아요.”서정원은 정신을 차
서정원은 팔을 빼내며 최지연을 차갑게 바라봤다.“최지연 씨, 정말 막무가내네요! 전 오늘 당신이랑 싸우려 온 거 아니에요. 전 그냥 할아버지만 보러 온 거예요.”“이모, 이것 좀 보세요. 언니가 절 욕해요!”최지연은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이진숙의 손을 잡았다.이진숙은 미간을 찌푸리며 목청을 높였다.“서정원, 내가 경고하는데 우리 최씨 집안은 너랑 아무 사이 아니야. 성운이에게 들러붙을 생각은 하지 마! 여긴 널 환영하지 않으니까 당장 돌아가!”“미안하지만 두 사람 비켜줄래요?”서정원은 그냥 최대한 빨리 최승철을 만나고
서정원은 저도 모르게 가슴이 철렁했다.어제 명암산 오두막집에서 최성운과 시아가 서로를 끌어안고 있던 모습이 또 한 번 막을 새도 없이 서정원의 머릿속에 떠올랐다.시아가 지금 이곳에 나타난 건 최성운 때문일 것이다.‘최성운이 할아버지를 만나지 못하게 한 이유가 시아와 약속이 있어서였을까?’“정원아, 저 사람 알아?”서정원이 흐려진 안색으로 그 여자를 빤히 바라보자 심준호는 궁금해서 물었다.서정원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고 그녀는 실눈을 뜨며 말했다.“저 사람이 바로 시아 씨예요.”“저 사람이 시아 씨라고?”심준호는 궁금
“그분은 누구십니까?”최성운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그의 물음에 천호진은 심전도 기계를 한번 힐끗 쳐다보고는 입을 열었다. “강석일 박사는 국내외에서 명성이 자자한 한의학 박사이십니다. 그분은 의술이 매우 뛰어나 한때 많은 불치병 환자들을 치료했었죠. 그러나 20년 전 일어난 일 때문에 갑자기 자취를 감추게 되었습니다.”“자취를 감추게 되었다니요? 그럼 그분은 지금 어디에 계신 겁니까?”천호진은 유감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아마 저뿐만이 아니라 그 누구도 모를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