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꺼져!”수염이 있는 남자는 수표에 적힌 숫자를 확인하더니 눈을 반짝이며 황급히 수표를 주웠다.“바로 꺼지겠습니다. 바로 꺼질게요.”“성운 오빠, 고마워요.”주가영은 최성운의 손을 잡고 오랫동안 그리워했다는 눈길로 그를 보면서 다시 만난 기쁨과 놀라움, 그리고 격앙된 감정을 얼굴에 드러냈다.할 말이 아주 많았지만 어떤 말부터 꺼내야 할지 몰랐다.손에서 전해지는 주가영의 차가운 온기에 최성운은 눈을 가늘게 뜨더니 다소 의심하는 듯한 어투로 말했다.“당신이 정말 시아라고?”“네, 제가 시아예요.”주가영은 한 치의 망설임
“연락되지 않는다고요?”유나가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물었다.“혹시 바쁘신 건 아니에요?”“휴대폰이 꺼져 있어요.”서정원의 눈빛이 점점 어두워졌다. ‘성운 씨는 도대체 지금 뭘 하는 거지?'‘분명 데려오겠다고 해놓고 왜 갑자기 연락되지 않는 거지?'“그럼 배터리가 다 된 거 아닐까요?”유나가 그녀를 달래며 말했다.서정원은 고개를 끄덕였다.“일단 여기서 좀 더 기다려 보죠. 어쩌면 업무를 마치고 바로 올 수 있으니까요.”두 사람은 소파에 앉았고 서정원은 문 쪽만 빤히 바라보았다.“정원 씨, 너무 걱정하지 마요. 어
안토니는 익살스럽게 말했다.“그러다 남편이 질투라도 하면 어쩌려고?”서정원은 미간을 찌푸리더니 다소 급박한 어투로 말했다.“안토니, 지금 당장 전화번호 하나 보내줄 테니까 얼른 위치를 추적해 줘.”“응?”서정원의 싸늘하고 엄숙한 목소리에 안토니는 의아한 듯 물었다.“누구 번호인데? 중요한 거야?”“묻지 말고 일단 먼저 위치추적부터 해줘!”서정원은 차가운 표정으로 말했다.이내 안토니가 그녀에게 메시지를 보내왔다.「상세한 위치는 알 수 없고 대충 도시 외곽에 있는 명암산 근처로 위치가 잡혀.」명암산?서정원의 안색이
전 어둠을, 오빠는 개를 두려워했는데...확실히 당시 최성운은 개를 두려워했다.그리고 시아는 어둠을 두려워했다.그래서 최성운은 서정원이 어둠을 두려워한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그녀가 시아가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하지만 그 뒤에 서정원이 시아가 아니라는 게 증명되었다.그렇다면 눈앞의 여자 주가영이 시아인 걸까?주가영은 떨리는 오른손으로 최성운의 얼굴을 살살 어루만졌다.“맞아요, 성운 오빠. 내가 시아예요!”뺨에서 느껴지는 여자의 온기에 최성운은 어쩐지 불편함을 느꼈다.그는 태연하게 주가영의 손을 잡고 조용히 내렸다.
서정원은 유나가 가리키는 방향을 바라봤고 먼 곳에 롤스로이스 한 대가 세워져 있는 걸 보았다. 시골의 작은 길에 주차되어 있어서 그런지 유독 눈에 띄었다.그것은 최성운의 차가 옳았다. 그런데 최성운이 왜 여기로 온 걸까?서정원은 눈을 가늘게 떴고 마음속 불안이 점점 더 짙어졌다. 그녀는 다급히 택시 기사에게 말했다.“죄송하지만 저 앞에 세워주세요. 감사해요!”“네!”택시 기사는 곧 택시를 최성운의 차 옆에 세웠다.차가 완전히 멈추기도 전에 서정원은 그새를 참지 못하고 문을 열고 차에서 내렸다.최성운의 차는 산기슭의 오솔
서정원의 눈동자에 복잡한 빛이 스쳐 지나갔다. 그녀는 침통함과 결연함을 품은 채로 최성운을 바라보다가 돌아서서 떠났다.서정원은 다리가 이상할 정도로 무거워 걸음을 떼기가 힘들었다.그녀는 넋이 나간 상태로 대문을 나섰고 유나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다가와 입을 열었다.“정원 씨, 저쪽은 다 찾아봤는데 최성운 씨는 보이지 않았어요...”“안 찾아도 돼요.”서정원은 차갑게 입을 열었고 손톱이 살에 깊이 파고 들어갔다.손에서 느껴지는 고통이 온몸으로 퍼져나가고 있었지만 서정원은 전혀 느끼지 못했다.마음속 아픔이 그것보다 천 배,
춥고 또 아팠다.그것은 서정원이 단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느낌이었다.숨이 쉬어지지 않을 정도의 괴로움이었으니 말이다.하지만 아무리 아프고 괴로워도 견뎌야 했다.이 순간, 서정원은 반드시 강해져야 했다.시아가 돌아왔고 최성운은 시아를 선택했으니 오늘 밤 약혼식을 치를 필요는 없었다.최성운이 먼저 말을 꺼내게 하기보다 서정원이 먼저 꺼내는 것이 나았다.그녀는 모든 사람에게 자신이 최성운을 내치는 거란 걸 보여주고 싶었다.제호 호텔.1층의 가장 호화로운 파티장은 손님들로 가득해 무척이나 떠들썩했다.그곳에서는 오늘 운성
택시에서 내린 서정원의 아름다운 얼굴을 보니 표정이 한없이 차가웠다. 그녀는 레드카펫을 밟으며 곧장 파티장 중앙에 있는 무대로 향했다.두 다리는 천근만근 무거워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힘겨웠다.“정원아, 왜 너 혼자 왔니? 성운이는? 같이 안 왔어?”그 모습을 본 최승철은 다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서정원에게 다가가서 걱정스레 물었다.서정원은 잠깐 걸음을 멈춘 뒤 무표정한 얼굴로 대답했다.“최성운 씨는 안 올 거예요.”“뭐라고?”최승철은 깜짝 놀랐다.‘무슨 뜻이지? 성운이가 안 온다고?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가?’최승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