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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8화

Author: 유애
last update Last Updated: 2024-06-25 18:36:47
이방의 목소리는 곁에 있던 장군들과 현갑군들에게 전해졌다.

이방은 하고 싶은 말은 직설적으로 하는 사람이다.

그녀의 발언으로 송석석을 무시하던 다른 사람들의 야유 소리가 더욱 높아졌다.

수군거리던 목소리는 점점 욕설로 변했다.

화가 난 시만자는 얼굴이 퍼렇게 질렸다. 이곳에 규율이 없었다면 당장 올라가서 이방의 얼굴부터 날렸을 것이다.

그러나 송석석은 전혀 화가 나보이지 않았다. 많은 사람이 그녀를 도발했지만 송석석은 미동도 없었다. 오히려 차분한 얼굴로 이방을 바라보며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송석석은 무표정하게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눈빛만 짙어졌을 뿐이다.

“송 장군!”

사여묵은 장대성의 손에 든 긴 막대기를 그녀에게 던졌다.

“도화창 대신 이것을 사용하시오.”

송석석은 막대기를 잡은 뒤, 자신의 도화창을 사여묵에게 던졌다.

“네!”

그녀는 북명왕의 뜻을 알아차렸다. 만일의 유혈사태를 대비해 송석석이 참지 못하고 도화창으로 이방의 목을 베어버리면 안 되기 때문이다.

이방은 굴욕을 느끼고 차갑게 웃었다.

“막대기로 싸웁니까? 그렇게 자신 있어 하니 저도 봐 드리지 않겠습니다.”

송석석이 병기를 사용하지 않으니 이방도 검 대신 막대기를 사용하는 게 공평하지만, 이방은 그러지 않았다. 실패할 시 그녀가 치러야 할 대가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그들 사이에는 계급의 불공평함이 존재한다.

이방은 검을, 송석석은 나무 막대기를 사용해도 무방하다.

모닥불이 점화되었다. 핏빛 자국들은 불길에 가려졌지만 가운데 서 있는 두 사람을 비추기에 충분했다.

많은 사람은 이번의 무술 대련을 기대하고 있다.

이방 장군이 송석석 장군의 갑옷을 벗기고 송석석의 무릎을 꿇린 다음 현갑군의 두 손을 들어주길 기대했다.

전북망도 살짝 기대했다. 필명과 거짓된 대련을 했다고 여겼다.

이방은 절대 지면 안 된다. 이방이 지면 그녀가 남강 전쟁터에서 세웠던 군공을 잃을 것이다.

그는 이방을 향해 소리쳤다.

“이 장군, 침착하게 응하시오!”

시만자는 그의 목소리를 듣고 발끝에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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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방은 송석석의 짙은 눈동자를 보고 당황했다. 그녀의 손에 들린 막대기에 어떤 흔적도 남아 있지 않았다.‘평범한 막대기가 아닌가? 그래, 북명왕이 저 여자를 지키려고 막대기에 무슨 짓을 한 거야. 절대 평범한 막대기를 줬을 리 없어.’이방이 서늘한 미소를 지었다. “손에 든 막대기 결코 평범한 막대기가 아니죠?” “보아하니 원수님께서 장군을 지키려고 견고한 무기를 줬나 봅니다.”나무 막대기와 도화창은 길이가 비슷했다. 원래는 영지의 지지대로 사용하는 막대기였다. ‘그러나 북명왕이 송석석에게 그 흔한 막대기를 줬을 리 없다.’옆에서 구경하던 병사들은 이방의 말에 수군 거리며 송석석의 무기를 의심했다.일부 병사는 불공평한 싸움이라며 반발했다. “비열한 수법으로 속일 거였으면 애초에 도화창을 내려놓지 말든가.”“그러니까, 공평하지 않아.”사람들의 분쟁 소리가 점점 커지자, 송석석은 작은 칼로 자신의 나무 막대기 한 부분을 비뚤비뚤하게 잘라내 모두에게 보여주었다. 끝이 고르지 못하게 부러진 나무 막대기를 본 병사들도 조용해졌다. 이방은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송석석의 손에 진짜 나무 막대기가 들려 있었기 때문이다.이를 악문 이방은 다시 송석석에게 달려들었다. 신속하고 힘이 넘치게 달려들었지만 송석석이 나무 막대기를 세워서 막았다. 이방의 검이 한쪽으로 도는 틈에 한 손으로 막대기를 잡아 밀었고 막대기는 이방의 복부를 강타했다.바닥에 떨어진 막대기를 줍기 위해 송석석이 손을 뻗었고 막대기가 그녀의 손으로 날아갔다.“와!” 사람들은 놀란 듯 함성을 질렀다. 한 번도 보지 못했던 광경이다.“무슨 요법이지?”“바다게 있던 물건을 어떻게 공중에 띄울 수 있지?” “분명 요법이야.”시만자가 차갑게 대꾸했다. “내력으로 흡착하는 것이다. 뭘 안다고 함부로 떠들어? 내력이 뛰어난 무자만 할 수 있는 거다.”이방이 놀란 눈빛으로 뒷걸음질쳤다. 순간 목에서 울렁이는 이물감이 느껴졌고 입안에서 비릿한 피 맛이 났다. 하마터면 피를 토할 뻔했다.

    Last Updated : 2024-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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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방이 피를 토해냈다. 송석석이 날린 발길질에 이방은 한참을 아파하며 아무 소리도 내지 못했다. 얼굴이 희끗희끗해진 그녀는 손을 뻗어 자신의 목을 만졌다. 손가락에 피가 묻어나왔다. 이방의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두려움 때문이 아니라 자신이 패배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이다.이방은 깜짝 놀란 눈빛으로 송석석을 바라보았다. 태어나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무공이다.‘어떻게 이리 대단한 무공을 가질 수 있지?’ 예전에 송석석이 흩날리는 꽃잎으로 사람을 다치게 한다는 말을 들은 적 있었다. 그때는 농담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직접 겪어보니 그럴지도 모른다는 느낌이 들었다.신속하게 패배를 맛보았다. 이바은 낯이 뜨거웠다. 송석석이 인맥으로 지위를 상승했다고 비웃던 자기 자신이 떠올랐다.심지어 아까는 큰소리로 모두가 보는 앞에서 송석석을 비웃었다.그러나 송석석은 실력으로 이방에게 반격했다.처음부터 끝까지 그녀가 한 말이라곤 패배를 인정하겠느냐는 말뿐이었다. 전북망이 황급히 앞으로 나와 이방을 부축했다. “다쳤소? 괜찮소?”이방은 전북망의 손목을 잡고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슴으로 전해지는 통증을 애써 참았지만 눈 밑으로 고이는 눈물을 억누르지 못했다.그녀는 지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창피함을 느꼈다. 남강의 전장에서 최선을 다해 적을 처단하며 세웠던 군공이 사라진다.그러나 희끗희끗해진 더 한 처벌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상국의 제일 여장의 자리를 송석석에게 건네야 한다.귀가 먹먹해질 정도의 환호성이 장내를 가득 채웠다. 그러나 이방의 머릿속에는 윙윙거리는 소리만 감돌았다. ‘패배를 인정할 수 없어!’송석석보다 출신이 뛰어나지 못한 이방이다. 이방은 그녀처럼 잘난 아버지도 없었다. 송석석이 이토록 강한 무공을 가질 수 있게 된 것은 가문의 세력 때문이라고 믿었다. 무림의 고수가 송석석 아버지와 친분이 있기에 그녀를 제자로 받아들였다고 믿었다.이방은 자기가 송석석에게 패배한 게 아니라 송석석의 출신에 패배했다고 믿었다.자기

    Last Updated : 2024-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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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갑군은 송석석을 존경했고 그녀에게 복종하기로 했다. 그녀와 대결한 적 있었던 필명도 마찬가지다. 그는 송 장군이 자신에게 휘두른 나무 막대기가 여러 조각으로 변한 것을 직접 목격했다. 일정한 모양으로 변한 나무 조각은 송 장군의 내력이 얼마나 강한지 여실히 보여줬다.수많은 나무 조각들이 빠르게 그를 덮쳤다. 필명의 목 언저리에 닿았던 나무 조각은 송석석이 힘 조절을 한 덕분에 가볍게 떨어졌다. 석양이 지고 주변이 어두워지자 모닥불이 점점 늘어났다. 병사들은 모닥불 근처에 모여 의논하기 시작했다. 송 장군에 관한 것이다.“나무 막대기가 순식간에 조각으로 변했소. 너무 대단하지 않소? 난 마술을 보는 줄 알았소.”“송 장군님의 따님이라 그런지, 역시 대단하네요.”“오로지 실력으로 공을 세운 게 아니면 5품 장군까지 승진할 수 있었겠소?”“염치가 없구려, 애초에 누가 제일 화를 냈는데. 자네가 장군님께 항의하겠다고 나선 걸 내가 말리지 않았으면 저 나무 막대기에 자네가 맞았을 걸세.”“난 이 장군님 말을 철석같이 믿은 것이오. 장군님께서 직접 송 장군님이 전장에 나가는 건 혼인에 대한 복수 때문이고, 자기를 어떻게든 이기려는 것이라고 했잖소. 전 장군님을 후회하게 하려고.”“지금 이 장군님 체면이 말이 아닐 겁니다. 유언비어를 그렇게 퍼뜨렸잖아요. 대결 전에 송 장군님을 얼마나 비난했는데요.”“말조심하시오, 죽고 싶소?”수군대는 소리는 이방의 귓가에 정확히 꽂혔다. 얼굴이 붉어진 그녀는 더없는 분노와 수치심에 휩싸였다.이방은 입가의 피를 닦은 뒤 화를 억누르며 성큼성큼 송석석에게 걸어가 물었다. “필명과 도전할 때 내가 성루에서 지켜보고 있단 걸 알고 의도적으로 연기한 것입니까? 내가 대결을 신청하게 유도하기 위해서?”옆에서 듣고 있던 시만자가 차갑게 대꾸했다. “의도적이라니? 그대가 뭐라도 되는 줄 아시오?”“닥치시오. 그쪽은 뭐라도 되시오? 그쪽한테 물었소?”얼굴을 찡그린 이방이 시만자에게 고함을 질렀다.살짝 놀란 시만자

    Last Updated : 2024-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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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석석은 도화창을 들어 낮에 필명과 대결했던 곳을 가리켰다. “두 눈이 멀쩡하면 직접 가서 보십시오. 필명이 패배를 인정하는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을 겁니다.”도화창이 가리킨 곳은 7, 8걸음밖에 떨어지지 않았다.이방은 천천히 도화창이 가리키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눈앞의 광경에 이방은 자기도 모르게 깊은숨을 들이마셨다. 바닥에 생긴 다섯 갈래의 균열은 지네가 기어 다닌 듯 구불구불한 모양으로 한곳으로 집중되었다.아마도 필명이 서 있었던 곳 같았다.필명의 발아래를 통과한 것인지, 다섯 갈래의 균열은 발자국이 있을 법한 곳에 잇닿자 균열의 흔적이 확연히 약해진 것을 볼 수 있었다. ‘필명의 발에 닿자마자 송석석이 내력 조절을 한 거야.’내력을 제대로 휘두르지 못했다면 필명은 그 자리에서 두 다리를 잃었을 것이다.필명이 패배를 인정할 수밖에 없는 대결이었다.심호흡을 길게 한 이방은 송석석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그러나 이내 자세를 고친 이방은 전북망의 팔짱을 끼고 그에게 기대 한 번도 짓지 않았던 아름다운 미소를 드러냈다. “네, 전 패배했습니다. 제 실력은 송 장군보다 못합니다. 하지만 성릉관은 제가 세운 첫 번째 공 덕분에 황제께서 우리의 혼인을 상사하셨습니다. 이분은 절 많이 사랑합니다. 변하지 않는 사실입니다. 송 장군이 전쟁터에서 공을 세우고, 설령 관직품위가 높아진다 하더라도 결국 이긴 것은 접니다. 전 여전히 상국의 장군이고 전북망의 부인입니다, 대체 불가한 사실입니다.”송석석이 가볍게 웃었다. “전북망의 부인이 되는 건 내게 아무 의미 없습니다. 상국의 수밖에 없는 직함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장군을 대체할 생각도 없습니다. 이 장군이 여인을 무시하는 발언을 한 후부터 더는 내게 존경받을 수 없게 된 겁니다. 아무리 큰 공을 세웠더라도 인품이 바르지 못하니 말입니다.”이방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허, 이젠 인품을 공격하는 겁니까? 말로는 아무 의미가 없다고 했지만, 마음은 그렇지 않나 봅니다.

    Last Updated : 2024-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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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여묵은 송석석을 불렀다.뜨거운 찻잔이 그녀의 앞에 놓였다. 뜨거운 기운이 자욱하게 눈을 덮쳤다.뜨거운 찻물이 입안을 씁쓸하게 감돌았다. 군에서 차를 마실 수 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히 행복한 일이다.“죽이고 싶은 것이오?” 사여묵이 물었다.“죽이고 싶었죠.” 송석석은 솔직하게 답했다.사여묵이 말했다. “조사 보낸 사람이 연락을 해왔소. 서경 사람들은 촌에 발생했던 일을 꽁꽁 숨겼다더군. 대외적으론 마을 전체 사람들이 불타 죽었다고 하던데, 이게 무슨 뜻인지 아시오?”송석석은 찻잔을 손바닥으로 잡았다. 뜨거운 손바닥과 달리 마음은 차가웠다. 그녀가 차분하게 말했다. “압니다. 서경 사람들은 서경의 태자(太子)가 모욕당한 일을 숨기려고 그러는 겁니다.”“황제가 진실을 알아내더라도 이방에게 어떤 처분도 할 수 없을 것이고 이방 때문에 그대 외조부가 연루되는 일은 없을 것이오.”서경 사람들도 이방이 마을의 사람들을 몰살한 일을 인정하지 않는데, 황제가 인정할 리 없었다. 서경 사람들을 압박해 마을 일을 인정하게 한 뒤, 황제가 사신을 보내 잘못을 인정하게 할 수는 없다.이 점은 송석석도 알고 있다.만약 서경에 관한 죄를 물으면 이방은 공을 세운 게 아닌 범죄를 저지른 것이 드러날 것이고 외조부도 면죄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서경은 이 사실을 숨기고 구역을 정해 화합조약을 체결한 뒤 이방에게 군공을 내렸다.잠시 고민하던 송석석이 고개를 들어 사여묵을 바라보았다. “그래서 이번에 조정에서 지원군을 보내게 하려고 수란키가 사국을 도와 우리를 남강에 유인한 겁니다. 그리고 큰 공을 세운 이방은 반드시 이번 지원군의 장군이 되었겠죠. 수란키의 목적은 이방과 이방 휘하의 병사들뿐입니다.”사여묵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양국은 겉으론 평화를 이룬 것 같으나 실상은 증오심으로 가득할 것이오. 시몬전에서 서경 사람들은 전력을 다해 녹분성의 원수를 갚으려 할 것이오. 우리가 불리한 전쟁이오. 만약 이방을 죽여 수란키의 복수가 성사되지 못하면

    Last Updated : 2024-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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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ast Updated : 2024-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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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두 긴장한 마음으로 전쟁 준비를 시작했다. 송석석도 연일 진법(陣法) 훈련에 몰두했다. 1만 5천 명의 현갑군은 두 조로 나뉘어, 한 조는 공격(進攻)하고 한 조는 수비(防守) 한다. 각 조는 10개의 소대(小隊)로 나뉘어, 수비조와 공격조를 합치면 총 20개 소대였다.송석석이 세운 작전은 다음과 같다. 먼저 5개 공격 소대가 행동을 개시하면 5개의 수비 소대가 신속하게 교대하고, 수비가 안정되자마자 즉시 순환 공격 작전을 펼치며 진공하는 것이다.며칠간의 훈련은 효과가 있었다.이젠 무기도 갖추어졌다. 방어하는 사람은 방패(盾牌)와 단도(短刀)를 공격하는 사람은 창(長矛)을 들었다.원수는 곧 공격을 개시할 거라고 모두에게 알렸다. 현갑군은 선두부대로 공성작전(攻城方案)을 일일이 준비해야 했다. 전북망은 이 과정에 협력하기로 했다. 1만 명이 사다리를 올리고 투석기(投石機)를 미는 과정을 총괄했다. 그리고 전쟁 전에 원수와 협조사항을 논의했다.사실 현갑군은 그렇다할 의견이 없었다. 대체적으로 원수가 결정을 내리면 그들은 야지에서 훈련을 하며 문제점을 찾아 보완하는 형식이었다.전북망은 송석석이 무공이 뛰어난 여인인 줄은 알았으나 훈련 과정에서 직접 목격한 그녀의 모습에 그는 깜짝 놀랐다. 송석석은 전술병법(戰術兵法)을 상상 이상으로 잘 만들었고 일부 미세한 문제점은 신속하게 방안을 생각해냈다. 한 치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았다.전북망은 그녀가 진지하게 계획을 짜는 모습을 회의 도중 여러 번 넋 놓고 바라보았다. 일에 열중하는 그녀의 모습은 첫 만남 때보다 훨씬 예뻤다. 그녀의 반짝이는 눈동자가 전북망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후회라는 두 글자가 마음속에서 몇 번이나 요동쳤는지 모른다.회의가 끝난 뒤 자리에서 일어난 송석석은 다시 평소처럼 차갑게 변했다. “이 정도면 될 것 같습니다. 다른 의견이 생기면 언제든지 얘기해주시지요.”전북망은 고개를 들어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아름다운 곡선으로 연결된 얼굴선을 바라보던 그가 낮은 목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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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을 하고 있을 때, 영태비가 사적으로 사람을 보내 송석석을 초대했다. 송석석은 태후마마의 허락을 받은 후에야 그곳으로 향했다. 영태비는 문엄 황제의 빈이라 아들을 따라 봉지에 가서 복을 누려야 했지만 지금은 궁궐의 외딴곳에 홀로 남아 생활을 했다. 송석석이 고 공공을 따라 영수궁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 설 분위기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고, 심지어는 몇 개의 전각이 아닌 하늘과 땅을 사이에 두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겨울이 되자 영태비의 병세가 악화되어 연왕의 아들인 사여령이 진성에 남았는데 오늘 입궁해서 조모의 곁을 지켰다. 송석석이 온 것을 보자 사여령은 일어나 인사를 했다. “왕비님, 오셨습니까?” 송석석은 그를 바라보더니 말했다. “큰 도련님도 계셨군요.” “네, 조모께 문안인사를 드리러 왔습니다.” 사 여령은 송석석 앞에서 감히 그녀의 눈을 쳐다볼 수 없어 고개를 숙였고, 송석석은 아랑곳하지 않고 영태비께 인사를 올렸다. 영태비는 등에 비단 베개 두 개를 받치고 침대에 기대 있었는데 안색이 노란 데다 푸르스름했고, 희끗희끗한 머리는 풀어헤친 채 계속 누워있었던 탓에 헝클어져 있었다. 그녀는 연신 기침을 하더니 송석석에게 말했다. “왕비, 어서 앉게.” 영태비는 말하는 속도가 아주 느리고 힘이 없었다. 궁녀가 의자를 가져와 침대 옆에 놓자 고 공공이 말했다. “왕비님, 앉으십시오. 태비마마께서 몸이 허약해서 말소리가 크지 않으니 가까이 앉으셔야 들을 수 있습니다.” 송석석은 태비마마께 감사를 표하고 자리에 앉아서 말했다. “태비마마께서는 좀 괜찮으십니까?” “아마도 낫지 않을 것이다.” 영태비는 말을 하며 입술에 립밤을 좀 발랐는데 혈색을 더하지 못하고 오히려 더 창백해 보였다. 송석석은 영태비를 위로했다. “잘 치료한다면 금방이라도 괜찮아질 것입니다.” 전 중의 숯불은 아주 따뜻하게 타올라서 송석석은 조금 뜨겁게 느껴졌다. 하지만 이렇게 태우는데도 연기 한 점 보이지 않을 것으로 보아 좋은 숯임을 알 수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169화

    혜태비는 궁에 들어오자마자 덕귀태비와 제귀테비를 찾아가 정원을 노닐었다. 혜태비는 홍보석 장신구가 오늘 피부색을 잘 받쳐주어 모두에게 자랑하고 싶었다. 사여묵은 송석석과 함께 태후마마에게 문안을 드리러 태후전에 들어갔는데 많은 명부들 또한 때를 지어 태후에게로 왔다. 마침 방시원의 어머니인 오수인도 태후에게 인사를 드리러 궁으로 들어왔는데, 태후가 이렇게 많은 명부들 앞에서 방시원의 혼사를 물을 줄은 꿈에도 몰랐던 것 같았다. 오수인은 마음속으로 괴로움이 가득했지만, 감히 태후 앞에서 하소연하지는 못했다. “태후마마, 혼인을 조급해서는 안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러자 태후도 한숨을 쉬며 말했다. “방시원이 고생이 많구나. 이유 없이 이런 일에 연루되고, 너희 집안은 더할 나위 없이 인자한데 하필이면 그 사람들 때문에 발칵 뒤집히다니.” 오수인은 그제야 태후께서 왜 갑자기 그 말을 물으셨는지 알았다. 알고 보니 방시원과 방 씨 가문을 위해서였다. 그녀는 감격에 겨워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 “아무래도 복이 천박한 것 같습니다.” 그러자 태후가 말했다. “말도 안 되는 소리하지 말거라. 그는 우리 상국의 훌륭한 장군이자 황은을 받들고 있는데 복이 천박하다니? 그의 운명은 분명 찾아올 것이다.” “예, 태후마마께서 좀 더 신경을 써주십시오.” 사건이 일어난 후 사람들은 다소 조롱스러운 눈빛으로 그녀를 보았었는데, 지금 현장에 있던 명부들의 오수인을 보는 눈빛은 순식간에 달라져 있었다.하지만 태후께서 말씀을 하시니 상황이 달라졌다. 태후는 방시원을 상국의 훌륭한 장군이라고 평가했다. 여태껏 조정의 일에 참견하지 않았지만 이번만큼은 방시원을 위해서 나선 것이었다. 자리에 있는 사람들 모두 총명한 사람이기에, 태후의 이 뜻을 알아듣지 못할 리 없었다.그러니 앞으로 아무도 감히 방 씨 가문을 무시하지도, 함부로 입에 담지도 못할 것이다.태후마마께서는 방시원의 얘기를 길게 하지 않고 다른 가문의 일도 물어보았다. 그리고 제대부인이 보이지 않자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168화

    제황후는 그녀에게 대황자와 공주를 데리고 나가 놀라고 하고 제자예의 어머니인 경 씨를 불러들였다. 경 씨는 방시원의 일을 듣고 눈살을 약간 찌푸렸다. “황후마마, 그는 자예보다 나이도 훨씬 많아서 어울리지 않을 것 같습니다. 오히려 광릉후의 향삼랑이 젊은 나이에 능력까지 있어 벌써 거인이 되지 않았습니까? 비록 작위를 물려받지는 못하겠지만 그의 능력에 제 씨 가문의 추대를 더하면 반드시 큰 성과를 이룩할 수 있을 것입니다.” 게다가 삼랑은 풍채가 넘치는 데다 올해 열아홉 살 밖에 되지 않았는데 작년에 과거에 진급했으니 진사에 급제를 하기만 하면 앞날이 창창할 것입니다.” 경 씨의 말이 끝나자 란주가 옆에서 웃음을 터뜨렸다. “부인, 제 씨 가문의 아들 중 출세한 사람이 많습니까?” 그러자 경 씨는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지으며 말했다. “당연히 많지요. 우리 제 씨 가문의 아들들 중에 훌륭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셋째 집이 가장 모자라지만 제수찬도 공주와 결혼을 하지 않았습니까?” 그러자 황후가 웃으며 말했다. “셋째 삼촌은 모자란 게 아니라 머리를 다친 탓에 그런 것 입니다. 머리를 다치기 전엔 아주 총명했답니다. 우리 제 씨 가문엔 모자란 사람이 없습니다. 이렇게 큰 가문에 아들들은 모두 뛰어나고 이미 벼슬에 들어간 사람과 곧 벼슬에 들어갈 사람도 적지 않지요. 그렇다면 외가에 의해 올라온 향삼량이 무슨 좋은 벼슬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습니까?” 그녀는 자신의 손가락을 들여다보며 무심한 듯 계속 말했다. “사위가 아들과 앞길을 다투게 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제 황후의 말을 들은 경 씨의 표정이 순간 엄숙하게 변했다. 그러자 란주가 말했다. “맞습니다. 부인, 사람은 많고 벼슬은 한계가 있으니 차라리 아가시의 사위는 제 씨 가문과 달리 다른 길을 개척하는 사람을 찾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방시원의 나이가 좀 만긴 하지만 벌써 삼 품 총병까지 올라갔고 어머니도 고명을 받았으니 아가씨께서 시집을 가 고명을 받으면 젊은 나이에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167화

    동지 날, 궁에서 단합연회를 열기 전에 내외 명부들이 입궁하여 문안인사를 올렸다. 태후께서는 평소에 조용한 것을 좋아하지만 이 날은 명부들의 방문을 허락해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황후는 먼저 와서 함께 있다가 다시 장춘궁으로 돌아가 친정 식구들이 오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친정어머니인 제대부인은 입궁하지 않고 오히려 숙모와 사촌 여동생들이 몰려왔다. 물어보니 어머니는 몸이 좋지 않아 바람을 맞으면 안 된다고 했다. 게다가 입궁을 하면 황태후께 문안을 드려야 할 텐데 태후에게 병을 전염시키면 큰일이라 오지 않은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제황후는 믿지 않았다. 그녀는 지난번에 어머니가 공방의 일을 말했는데 거절을 한 탓에 그녀가 화났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제황후는 실망이 컸지만 내색하지 않고 란주에게 몇 마디와 효심을 전하라고 분부했다. 번잡한 예절이 끝난 후, 황후는 작은 사촌 여동생을 남겨놓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제자예는 여학에서 주 장군의 손녀인 주창우와 광릉후의 막내딸인 향회옥과 함께 소란을 피워 안여옥을 못살게 굴었던 사람이다. 한바탕 혼쭐이 난 후부터는 좀 수그러들긴 했지만 가끔씩 안여옥을 격분시켜 다른 사람에게 성격이 조급하다는 말을 듣게 하려고 했다. 그해서 여학의 명성에도 큰 영향을 받았던 것이다. 제자예는 입을 삐죽거리며 말했다. “사촌 언니, 국태부인은 너무 무섭습니다. 심 선생도 저를 엄하게 꾸짖었으니 나도 당분간은 조용히 지내겠습니다. 그러니 이쯤에서 그만둡시다. 태후에게까지 알려지면 언니에게 안 좋은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황후는 몸을 반쯤 기울인 채 담담하게 그녀를 흘겨보며 말했다. “너는 내가 여학을 괴롭힌다고 생각하느냐? 황제도 나와 같은 생각이다. 여학이 설립되었을 때 황제는 송석석의 형세가 너무 세 질까 봐 걱정했단다. 다만 여학이 태후의 뜻이었기에 공개적으로 거절하기 어려워 수단을 써서 여학의 명성을 훼손할 수밖에 없는 것이지. 그렇게 되면 나중에 태후가 원망을 하더라도 송석석이 훈장 노릇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166화

    고 공공은 울면서 무릎을 꿇고 공주를 부르더니 땅에 엎드려 통곡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사온은 눈길도 주지 않았다. 치매에 걸려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는 것 같았다. 고 공공은 한바탕 울고 나서야 찬합에서 떡 한 접시를 꺼냈고 유은이 검사해 보겠다고 하자 만소가 말렸다. “왕야께서 떡은 검사할 필요 없다고 하셨습니다.” 고 공공은 무릎을 꿇고 눈시울을 붉히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공주님, 한 입만 드십시오. 이건 영태비께서 특별히 저에게 부탁하여 보내온 것입니다. 공주님께서 가장 좋아하는 달콤한 떡입니다. 아직 많이 있으니 천천히 드셔도 됩니다. 사온은 영태비의 이름을 듣고서야 천천히 눈을 들어 그를 쳐다보았다. 그녀의 얼굴은 검게 물들어 드러웠으며, . 눈가에도 검푸른 색깔이었지만 눈시울은 붉어졌다. “내려놓거라.” 그녀는 이가 없어 발음이 또렷하진 않았지만 모두가 알아들을 수 있었다. “옷도 한 벌 가져왔는데 제가 입혀드리겠습니다.” 고 공공은 옷을 받들고 와서 더러운 사온의 몸을 아랑곳하지 않고 한 손으로 그녀를 일으켜 부축해서 들어갔다. 그러자 유은은 다급하게 만소와 고 씨 유모를 보며 물었다. “들아가보지 않아도 괜찮습니까?” “괜찮아, 옷을 바꾸게 둡시다.” 만소는 말하며 떡 한 조각을 소매 속에 숨겼다. 유은은 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왕야님과 왕비님의 뜻이라고 생각하고 상관하지 않았다. 반 시진 정도 지나자 고 공공은 사온을 업고 나왔다. 사온은 옷을 갈아입었는데 몸이 너무 말라서 옷이 헐렁해 보였다. 고 공공이 그녀를 떡 옆에 내려놓자 그는 다시 몸을 웅크렸다. 이때 만소가 말했다. “자, 이제 유 대인을 곤란하게 하지 말고 돌아가십시오.” 고 공공은 눈물을 글썽이며 다시 사온을 보더니 아쉬운 마음으로 떠났다.사온은 고 공공의 뒷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더니 문이 닫히고 나서야 흐느끼며 울기 시작했다. 만소는 떡을 들고 약왕당에서 청작을 찾아 독이 들어있다는 것을 확인한 후, 왕야와 왕비에게 보고를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165화

    염선생 측에서 대대적인 조사를 진행한 결과 몇몇 용의자를 특정했고, 사람을 시켜 그들의 동태를 밀착 감시하도록 조치를 취했다.그러나 어디까지나 의심일 뿐, 확실한 증거는 없었다.무상은 연주로 돌아간 후 회왕 외에는 아무도 만나지 않았다. 심지어 시씨 가문에도 방문하지 않아 정말로 깊이 숨어서 들어간 것 같았다.현재 들어온 단서에 의하면, 사병들은 한때 옹현에 있었으나 이후 매우 빠르게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이동 과정에서 많은 물건을 남겨두고 갔다.하지만 그들이 정확히 어디로 이동했는지는 아직 파악되지 않았다.연주 지역은 본래 분열되어 있었으나, 무상이 돌아간 이후 세력이 다시 결집되었다. 지방 관료들은 연황실을 자주 드나들며 잔치를 즐기고 술자리를 벌이며 매우 즐겁게 지냈다.이 명단은 사여묵의 손을 거쳐 숙청제에게 전달되었다.그러나 여전히 그곳은 군주가 없는 상태로 보였다. 그렇다고 회왕과 무상을 군주로 볼 수도 없었다.숙청제는 사여묵과 논의한 끝에 연왕을 서둘러 연주로 보내야 한다고 판단했다. 연왕은 적어도 현재 무상의 세력을 억제할 수 있는 존재였기 때문이다.무상이 연왕의 손에서 권력과 자원을 완전히 빼앗으려면 그곳에 연왕이 없는 것이 유리했다. 그러나 연왕이 연주로 돌아가면 그곳에서 쌓아온 인맥과 자원은 여전히 연왕의 손에 있기 때문에, 무상이 그것을 차지하려면 더 큰 노력이 필요했다.숙청제는 연왕에게 부상을 회복했으니 연주로 돌아가라는 교지를 내렸다.연왕은 당장이라도 돌아가고 싶어 안달이 나 있었다. 부상을 치료하는 동안 그는 연주의 상황을 심히 걱정했고, 시씨 가문과의 관계를 어떻게 회복할지 깊이 고민해왔다.교지가 내려지자 그는 영태비께 작별 인사를 드릴 겨를도 없이 짐을 싸서 가족들과 함께 바로 진성을 떠났다.그는 신체에 장애를 입었고 그 방면에서도 기능을 잃었다. 그러나 한동안 침체된 시간을 보낸 후 오히려 투지가 되살아났다.그는 이미 오래전부터 야망을 품고 있었지만, 예전에는 어느 정도 명예를 중시했기에 세상을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164화

    사여묵이 말했다. “맞다, 전에 최씨 부인이 부탁한 일 말이오, 오사형이 동의했소?”송석석이 대답했다. “오사형에게 이야기했는데 생각해보겠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아직 결정을 내리지 못한 것 같아요.”"내 생각엔 그에게 이 일을 알려서 스스로 판단하게 하면 좋겠소. 그가 예전에도 최씨 부인이 내놓은 점포들을 산 적이 있는 걸로 보아 평서백부를 도울 의향이 있었던 걸로 보이오."송석석이 고개를 끄덕이다가 다시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평서백부를 돕고 싶었던 건 아니고 그저 자신을 아끼는 사람들과 아이들을 돕고 싶었던 것뿐이겠죠.”며칠간 많은 사실을 알게 되면서, 송석석은 점점 과거 노부인이 왕전의 계획에 관여했었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 하지만 아마 한때 양심의 가책을 느껴 오사형을 찾아갔고, 오사형이 불에 타 죽은 것을 발견하자 왕전에게 분노를 돌린 것 같았다. 분명 이 죄책감을 감당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었다.이는 그녀가 오사형을 만나고 나서 이야기를 지어내어 용서를 구했지만, 정작 그가 어떻게 지냈는지 별 관심을 두지 않았던 이유였다. 심지어 오사형에게 보상하겠다고 말한 후에도 사람을 보내 소식을 묻지도 않았다.그녀는 단지 마음의 안정을 원했을 뿐이었다. 그녀 곁에서 자라지 않은 아이에게는 왕표나 왕청여처럼 깊은 감정을 품지 않았던 것이다.“그럼 제가 오사형을 찾아가 보겠습니다.” 송석석이 말했다.왕이장은 송석석의 말을 듣고 차갑게 욕을 퍼부었다.“뭐라고? 남강에서 첩이랑 호강하며 지내고 있다고? 애까지 배서 부인 행세를 하고 있다니, 그럼 진성에 있는 본처는 뭘로 보는 것이냐? 식모 취급하는 거냐?” “아마 최씨 부인도 이 사실을 알고 있었을 거예요. 그래서 그런 부탁을 한 거죠. 오사형, 이제 오사형이 어떻게 하실 건지에 달려있어요.”왕악장은 더 이상 두말하지 않고 말했다."최씨 부인에게 전해. 내일부터 바로 시작하라고. 넘길 수 있는 건 전부 넘기라고 해. 이 일을 굳이 조용히 처리할 필요는 없어. 백부 쪽에서 지출이 너무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163화

    다음 날, 전북망은 소위 합동 훈련이라는 것이 병력 배치나 전술 훈련이 아니라 농사를 짓는 일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9월은 겨울 밀을 심기에 적기였다. 남강은 전쟁이 끝난 지 얼마 안 된 지역으로, 물자가 여전히 부족했으며 전쟁으로 인해 인구도 크게 줄어든 상태였다. 이에 병사들이 농사를 돕게 된 것이다. 밀 외에도 배추, 무, 과일 등을 심기도 했다.방천허는 전북망이 마침 좋은 시기에 도착했다며 서둘러 가서 합류하라고 말했다.전북망은 하루 종일 농사일에 시달렸지만, 그 와중에도 짬을 내어 필명에게 편지 한 통을 썼다.진성에서 전북망의 편지를 받은 필명은 편지를 본 후 한참 동안 멍하니 있다가 머리를 긁적였다. '음…… 우리 사이가 이렇게 좋았던가?' 편지에는 자잘한 이야기가 빼곡히 적혀 있어 무려 3장이나 되었다. 대부분은 전에 전북망이 술에 취해 늘어놓았던 말들과 비슷했다.전북망은 원수부에서의 생활을 적으며 원수부가 얼마나 호화롭고 웅장한지 왕실조차 능가할 정도라고 표현했다.그는 원수부에 하인들이 구름처럼 많고 임신한 주모를 모시고 있으며, 그녀가 사용하는 물건이 모두 사치스러워 천금에 맞먹는다고 묘사했다.또한 농번기로 인해 현재 병사들이 농사를 지어야 하고, 농사가 끝난 뒤에야 훈련이 시작된다는 점을 언급했다. 병사들의 피부는 모두 새까맣게 그을렸지만 원수는 돼지처럼 하얗다고 비꼬기도 했다.뒤죽박죽한 이야기들을 잔뜩 늘어놓은 뒤, 평서백 부인에게 안부를 전해달라는 말을 덧붙였다.그 말을 마치고 나서는 자신도 한때 그런 사람이었고 비슷한 실수를 저질렀지만, 다른 사람이 자신의 과거와 같은 길을 걷는 것은 차마 볼 수 없다고 말하며 주저리주저리 이야기를 이어갔다.편지를 읽던 필명은 전북망이 왜 이런 말을 적었는지 눈치챘다. 평서백 부인에게 이 이야기를 전해 그녀가 마음 속 준비를 할 수 있도록 하려는 의도였다.필명은 전북망이 괜한 걱정을 한다고 생각했다.'평서백 부인처럼 현명한 사람이 왕표의 상황을 모를 리가 있나?'그러나

  • 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   제1162화

    왕표는 전북망이 자신의 위엄을 충분히 보도록 한 뒤에야 그를 불러들였다.남강에 머문 지 2년이 채 되지 않았지만 왕표는 살이 많이 쪘다. 비록 과도한 비만 상태는 아니었지만, 호랑이 가죽이 깔린 팔걸이 의자에 앉아 있을 때면 턱 밑의 주름이 겹겹이 드러났다.그는 높은 자리에서 전북망을 내려다보며 위압적인 태도로 말했다.“너와 왕청여의 일은 이미 들었다. 그래, 너같이 평범하고 포부도 없는 자는 내 여동생과 어울릴 자격도 없지."전북망은 고개를 숙인 채 아무런 반응 없이 한마디 대꾸만 하고 입을 닫았다.왕표는 차가운 코웃음을 치며 꾸짖었다."네가 이렇게 무능할 줄은 몰랐다. 현철위 부사령관이었지만 결국 관직에서 쫓겨났으니. 장군부는 정말 무능한 자들로만 가득 찼구나. 네 조부께서 하늘에서 너희 같은 무용지물을 보고 계신다면 눈을 감지 못하실 거다."전북망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이마에는 핏줄이 드러났다."불만이면 어쩔 거냐? 너희 장군부에서 나온 인간들이 대체 어떤 꼴이 났는지 봐라. 그리고 너 자신만 봐도 여자 하나한테 휘둘려 이 지경이 됐으니. 앞뒤로 세 명의 여자가 있었지만 그 누구도 제대로 다스리지 못했지 않냐……쯧, 우리 남자들의 체면을 다 구겨놨다!”왕표는 지금 그야말로 의기양양했다.그의 곁에는 절세미인이 있었고, 그 미인은 그의 아이를 임신 중이었으니 말이다. 그런 그녀 이전에도 왕표는 남강에서 원하는 여자는 누구든 손에 넣었다.언제나 여자들이 그를 즐겁게 하려고 애썼을 뿐이었다.그래서 그는 본능적으로 전북망을 깔보았다.위세를 충분히 떨친 뒤 왕표는 물었다."진성 쪽에 무슨 큰일이라도 있는 것이냐?"전북망은 대답했다."큰일은 없습니다."왕표는 의자 팔걸이를 매만지며 입가에 냉소를 띠고 말했다."그래? 그럼 여기로 오기 전에 최씨를 본 적이 있나?"전북망은 고개를 들고 답했다."원수께서 말씀하신 게 평서백 부인 입니까?"왕표는 그의 의도적인 물음 속 뜻을 간파하고 냉소를 지었다."왜? 내가 내 여자를 어떻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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