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한참 뒤, 장태가 물었다. "그럼 제 아내는 어찌 되었습니까?" 그와 군에 출정하여 결혼한 지 반년밖에 되지 않아 아내와 이별했다.시만자는 장씨 가문의 셋째에 대해 알고 있었기에, 안타까운 듯한 어조로 천천히 답했다. "재혼하였습니다." 장태는 실망을 감추지 못했지만,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결국 한마디 더 물었다. "잘 지내고 있습니까?" 시만자는 고개를 저었다."그건 모르겠습니다." 장태의 눈에 어느새 눈물이 맺혔다. "내가 그녀를 망쳤습니다. 그녀에게 너무 미안한 마음 뿐입니다." 노홍도 슬픈 표정으로 물었다. "그럼.. 제 아내도 혹시.." 노홍의 아버지는 송회안 밑에 있던 장군이었다. 아버지와 함께 남강 전장에 참전했으나 아버지는 먼저 전사했고 그 뒤에 그는 포로로 잡혔다. 시만자는 노씨 가문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다. 홍시도 보고한 적 없었다.반면 송석석은 이에 대해 잘 알고 있어 말할 수 있었다. "그대 아내는 두 해 전에 큰 병에 걸렸었으나, 단신의가 치료하여 나았습니다. 그러나 그대 어머니께서는 남편과 아들을 잇달아 잃은 충격에 그만 정신이 흐려졌지요. 지금은 사람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합니다. 더 자세한 건 금이에게 물어보세요. 그녀가 치료하고 있습니다." 노홍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한참동안 깊은 슬픔에 잠겼다. 그러자 제방도 더는 묻지 않았다. 그는 형으로부터 이미 약혼녀가 과부로 남아 집을 지키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안심할 수 있었다. 왕두와 왕오는 수주 출신이었으므로, 그들 역시 가만히 있었다. 그들은 진성으로 함께 돌아간 뒤 수주로 향할 계획이었다. 노아금은 아직 혼인하지 않았기에 가족에 대해 물었고 시만자는 모두 무사하다고 답하자 마음이 한결 놓였다.그는 사촌 형, 방시원을 바라보았다. 방시원은 얼굴빛이 너무 어두워진 것을 눈치챈 그가 다가가 위로했다. "형, 형수가 재혼한 것은 어쩌면 잘된 일입니다. 우리가 가족에게 죄를 지은 것이니, 그들을 원망
혜태비가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곧이어 숙청제도 도착하였다. 그가 무릎 꿇어 문안 인사를 올리자마자 태후가 그에게 편지를 건넸다. "석석이가 어젯밤 출성을 하였다. 그러면서 특별히 네 이모님께 궁으로 가서 보고드리라 부탁한 것 같구나." 숙청제가 편지를 한 번 보더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녀가 한밤중에 성을 나섰다면 틀림없이 긴급한 일이 있겠지요. 모든 일을 굳이 저에게 알릴 필요는 없습니다." "여자는 그녀가 한밤중에 부지휘사 명패를 가지고 출경하였다. 그래서 너에게 알려야 한다고 판단하였다." 고개를 끄덕이는 숙청제은 얼굴에 약간의 걱정이 담겨 있었다. "장문수가 무사히 돌아오기를 바랄 뿐입니다." 알고 보니 치석은 그였던 것이다! 선평후부는 군후세가로서, 지난 세월 동안 자손 중 많은 이들이 무를 버리고 문을 택해 벼슬길로 들어섰으나, 그래도 군후의 존엄과 강인함을 계승하는 이들이 있었다. 그를 바라보던 태후가 무언가 말을 하려 했으나, 결국 그 말을 삼켰다. 어떤 것은 오히려 아들의 의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었다.한편, 왕표의 첫 번째 상소가 승상대에 도착했다. 그는 북명왕이 시몬에 도착한 후 행방이 묘연해졌다고 보고했다. 목 승상은 이 상소를 눌러두었다. 그는 북명왕이 시몬에 간 이유는 뻔히 알고 있었다. 북명왕은 협상하러 간 것이 아니라 사람을 구하러 간 것이었다.며칠 뒤, 왕표는 또 하나의 상소를 올렸고, 목 승상이 그 상소를 들고 감격해하며 바로 숙청제를 찾아갔다. 상소를 읽던 숙청제도 감격에 겨운 듯 감탄하며 입을 열었다. "열한 명이라니! 열한 명이 모두 시몬으로 무사히 돌아왔구나!" 목 승상은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말했다. "그렇사옵니다. 이는 전하의 덕분이옵니다. 그들이 드디어 모두 무사히 시몬으로 돌아왔사옵니다." "포상하라! 꼭 크게 포상하여라!" 숙청제는 기쁜 나머지 즉시 명을 내렸다. "오대반, 예부상서와 좌우시랑을 부르도록 하라. 영웅들을 거하게 환영하라.
조금 의아하긴 했지만 진상서는 목 승상을 후당으로 모시고 와 직접 차를 대접하였다. 눈을 가늘게 뜨며 웃고 있는 목 승상에 진상서는 긴장이 조금 풀렸다. "승상께서는 어인 일로 이곳까지 오신 것입니까?" "축하 할 일이 있습니다." 목 승상은 차잔을 내려놓고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빨리 전해주는 것이 좋겠으나, 너무 큰 기쁨이었기에 진상서가 견딜 수 있을지 염려되었다.하여 그는 속도를 늦추기로 했다."축하말입니까? 저에게 축하할 일이 있나요?" 진상서는 갈피를 잡지 못했다. 그는 이미 예부상서를 맡고 있었기에 더 이상의 승진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감히 여쭙건대, 승상께서 말씀하시는 기쁨이란 무엇이옵니까?" 목 승상이 답했다."잃었던 것을 되찾은 것입니다." 하지만 진상서는 더욱 의아해했다."잃었던 것을 되찾았다니요? 저는 최근에 잃어버린 물건이 없었사옵니다." "전하께서 명을 내리셨습니다. 예부에서 남강 전쟁의 영웅들을 맞이할 준비를 하라고 하였고 그 영웅들 중 두 명이 바로 그대 진씨 가문의 자손입니다." 그러자 진상서의 가슴이 크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얼굴빛이 급변한 그는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 천천히 물었다. "그... 그럼, 제 두 자식의 유골을 찾았단 말씀입니까?" 목 승상이 그를 한 번 쳐다보더니 말했다. "유골이라니요? 그들은 살아 있습니다! 진씨 가문의 두 도련님은 아직 살아 있습니다. 북명왕이 그들을 사국에서 구했습니다. 그들은 포로로 잡힌 후 탈출하여 치석이라는 정탐조를 조직하여 남강에 정보를 전했던 영웅들입니다." 가슴을 움켜잡고 고개를 젓고 있는 진상서는 눈에 눈물이 맺혔다. "아닙니다, 승상. 이런 농은 하지 마시옵소서. 그들은 이미 전사하였습니다. 그들을 잃은 아픔은 살을 도려낸 정도이니 다시는..." 자리에서 일어선 목 승상은 그의 어깨를 두드리더니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대단합니다! 저도 그들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치석 정탐조 전체가 자랑스러운 영웅들
같은 시각, 평서백부 최씨는 왕표의 편지를 받았다. 편지를 읽고 난 그녀는 곧바로 자신의 어머니와 왕준 부부를 찾았다. 왕준은 왕표의 친동생으로, 공부에서 낭중으로 재직 중이었다. 나쁘지 않은 자리긴 하지만 낭중 자리에만 4년째 머무르며 승진은 하지 못했다.왕준의 아내 남희는 상인의 딸로, 높은 혼처에 시집온 셈이었다. 예전부터 왕청여는 이 둘째 올케 몸에 밴 상인의 냄새 때문에 그녀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편지를 읽고 난 평서백노부인의 얼굴빛이 급히 변했다. "사위가 아직 살아 있단 말이냐? 그것도 공을 세웠다고? 이게..." 최 씨가 말했다. "어머니, 이제는 사위라 부르시면 안 됩니다." 노부인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내가 실수했구나. 그가 살아 돌아올 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느냐?" 왕준도 편지를 보았다."어머니, 형수님, 이건 좋은 일입니다. 사람이 살아 있다는 게 그 무엇보다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그렇습니다, 기뻐할 일이지요." 하지만 최 씨의 얼굴에는 측은한 빛이 어렸다. "시원이 전사했을 때, 어머님께서... 아, 저도 자꾸 말실수를 하는군요. 방씨 가문의 이 노부인께서는 자식을 잃은 슬픔으로 여러 번 기절하셨습니다. 이제 시원이가 살았으니 그 기쁨에 병도 다 나을 것 같군요." 노부인은 방시원이 전사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자신도 오 씨와 함께 오래동안 슬퍼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녀는 그 누구와도 방시원을 비교한 적 없었다. 방시원은 강직했고, 모든 장모들에게 인기가 많을 수밖에 없는 사위였다. 그런데 그런 그가 돌아왔다는 소식을 들으니 기쁘지 않을 수 없었다.최 씨가 다시 입을 열었다."제가 어머님께 이 소식을 알린 것은, 셋째 아가씨가 언젠가는 이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니, 차라리 날을 잡아 집으로 불러 말씀을 나누는 것이 좋을 듯 해서입니다." 최 씨는 이 시동생의 처지가 좋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녀의 혼수로 함께 간 시녀가 내막을 알고 있었던 터라 장군부의 사정을
실낱같은 비가 며칠째 계속해서 내리고 있었다. 마차에서 내려 멍하니 걸음을 옮기던 왕청여는 그만 웅덩이에 발이 빠져 비단 자수 신발이 흠뻑 젖고 말았다. “부인!” 얼마 전에 사들인 하녀 홍이가 외쳤다. 그녀는 아직 예의도 제대로 배우지 못한 상태였다. “송구하옵니다, 소녀가 잘 받쳐 드리지 못하였나이다.” 왕청여는 홍이의 손을 뿌리치며 호통을 쳤다. “그냥 따라오면 된다.” 홍이는 허둥지둥하며 그녀의 뒤를 따랐다. 아직 가문에 들인 지 얼마 되지 않은 탓에 예의를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 장군부에 비해 훨씬 화려한 평서백부에 홍이는 이곳저곳 살피느라 여념이 없었다.왕청여는 홍아의 무례한 행동에 불쾌한 심기를 드러냈다. “바짝 따라오지 않고 무엇을 그렇게 두리번거리는 것이냐?” 그때, 노부인 곁의 유모가 미소를 띤 얼굴로 그들을 맞았다.“아씨, 하녀에 노여워 마시옵소서. 예는 천천히 가르치면 되는 것이니, 부디 기품을 잃지 마시옵소서.” 그 말에 살짝 머리를 정돈하는 왕청여는 그것이 성급하게 굴지 말라는 충고임을 알고 있었다. 사람들이 그녀를 교양 없는 사람으로 오해할까 봐 우려했던 것이다.그러나 장군부에서는 기품만으로는 살아남기 힘들었다. 그녀는 자신이 왜 이런 지경에 이르렀는지 알 수 없었다. 체면을 잃고도 자각하지 못한 채, 매일 미칠 듯한 상태로 지내고 있었다. “어머니께서는 어디에 계신가?” “존선당에 계십니다. 노비를 안내하겠습니다.” “존선당?” 왕청여는 눈살을 찌푸렸다. 그곳은 형수가 글을 쓰며 마음을 가다듬던 곳이었다. 지난번 은을 받은 이후로 형수와 더는 사적으로 말을 섞고 싶지 않았다. “어머니께서 나를 부르시지 않았느냐?” “그렇사옵니다. 노부인께서는 존선당에 계십니다.” “어머니도 함께 계신가?” “그렇사옵니다. 노부인과 부인, 그리고 이 부인도 함께 계십니다.” 왕청여의 미간이 더욱 찌푸려졌다. “남희도 함께 있단 말이냐? 도대체 무슨 일이냐?” “백작께서
전북망의 본가, 문희거(文熙居). 창호지 너머로 은은한 불빛이 아른거리며 그림자를 흔들어놓았다. 송석석(宋惜惜)은 수수한 옷차림으로 의자에 앉아 두 손을 포갠 채 눈앞의 남자를 바라봤다. 그는 결혼 후 곧바로 전장으로 떠나 일 년이나 보지 못했던 남편이었다. 전북망(战北望)은 전장에서 돌아온 복장 그대로 당당히 그녀를 마주보고 있었다.“폐하의 교지(旨意)까지 내려진 이상, 되돌릴 수 없소. 이방(易昉)은 이 집에 들어오게 될 것이오."송석석은 손깍지를 끼면서 어두운 눈빛으로 전북망에게 물었다."태후(太后)마마께서도 능력을 인정한, 그 이방 장군님이 첩이 되길 받아들이셨단 말씀입니까?"그 말을 들은 전북망의 눈빛에 살짝 노기가 서렸다."아니, 이방은 첩으로 들어오는 것이 아니오. 평처(平妻: 본처와 같은 지위를 가진 여인)라, 그대와 다를 것이 없소."송석석은 자세를 바꾸지 않고 말을 이었다."장군님도 아시다시피 평처라는 명칭은 듣기 좋을 뿐, 실제로는 첩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전북망이 눈살을 찌푸리며 대답했다."첩이라니, 이방과 나는 전장에서 마음을 나누면서 서로 사랑하게 되었소. 그리고 이건 나와 이방이 군공(军功: 군사적 공로)으로 받은 교지이니, 사실상 그대의 동의는 필요 없소."송석석은 억누를 수 없는 비웃음을 입가에 띄우며 말했다."서로를 사랑하게 되었다라, 그럼 출정 전에 저에게 했던 약속은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일 년 전, 출정 명령이 떨어진 혼례 첫날밤에 전북망은 약속했었다. 평생 그 하나만을 바라보며 절대로 첩을 들이지 않겠다고. 송석석이 언급하자 그제야 약속을 떠올린 전북망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그 약속은 잊어버리시오. 그때 나는 진정한 사랑을 알지 못했소. 그저 그대를 아내로서 적합하다고 판단했을 뿐. 하지만 이방을 만나고 마음이 달라졌소."이방을 떠올린 그의 표정이 서서히 부드러워졌다. 그가 숨길 수 없는 깊은 감정이 느껴지는 눈빛으로 말을 이어갔다."이방은 내가 만난 그 어떤 여인과도 비교할 수 없소.
전북망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왜 어려운 길을 자처하시오? 이 혼인은 폐하의 어명이오. 더군다나 이방이 들어온다고 한들, 서로 다른 별채에 머물 텐데, 뭐가 걱정이오? 이방은 안살림에 관심이 없소. 또한 그대의 권한을 빼앗는 일도 없을 것이오. 그대가 중요시 여기는 것들, 이방에겐 아무런 가치도 없다는 걸 모르겠소?”“권한이요? 제가 겨우 그런 것 때문에 이러시는 줄 아십니까?”송석석이 반문했다. 장군부(將軍府: 장군의 집) 살림이란 그리 만만한 것이 아니었다. 노부인한테 들어가는 약값만 해도 매달 수십 냥(两: 화폐 단위)이었고, 그 외 사람들한테 들어가는 생활비도 만만치 않았다. 만약 그녀가 들고 온 지참금이 아니었다면, 이 집안은 진작에 파산했을 것이다. 지난 1년 동안 헌신한 대가가 겨우 이거라니, 정말 황당했다.반면, 전북망도 점점 인내심을 잃어가고 있었다.“됐소. 더 말하지 않겠소. 본래 통보만 하면 되는 일이었고, 그대가 허락하든 하지 않든 변하는 것은 없을 것이오.”그 말을 끝으로 전북망은 소매를 털며 자리를 떠났다. 송석석은 그런 그의 뒷모습을 보며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아가씨.”보주(寶珠)가 옆에서 눈물을 훔치며 말했다.“장군님도 참 너무하세요.”“됐어, 이렇게 된 이상 움직이자.”송석석이 차갑게 눈빛을 굳히며 보주를 쳐다보았다.“첫날밤도 치르지 못했는데, 정식으로 부부가 되었다고 볼 수도 없지. 일단 가서 내가 이 집안에 들어올 때 들고 온 지참금 목록을 가지고 와 봐.”“지참금 목록은 왜요?”보주가 물었다. 그러자 송석석이 그녀의 이마를 손바닥으로 툭 치며 답했다.“바보야. 계속 이 집에 머물 거야?”그러자 보주가 이마를 감싸며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하지만 이 혼사는 부인께서 아가씨를 위해 직접 예비하신 거잖아요. 어르신도 살아계실 때, 얼마나 아가씨가 잘 살길 바라셨는데요.”부모님의 얘기가 나오자 송석석의 눈가가 촉촉해졌다.송석석의 부모님은 참 금슬이 좋았다. 그녀를 포함해 자식이 여섯이나 됐지
보주가 지참금 목록을 가져오며 말했다.“근 1년 동안, 아가씨께서 이 집안 살림에 보탠다고 사용한 화폐만 해도 6천 냥이 넘어요. 그래도 다행히 상점과 주택, 장원은 그대로예요. 또한 부인께서 남겨주신 예금 증서와 집문서, 땅문서도 그대로 상자에 담겨 있어요.”“알겠어.”송석석은 목록을 보며 전에 어머니가 준 지참금을 떠올렸다. 그녀의 어머니는 혹시라도 딸이 시집에서 고생할까 봐 참 많은 지참금을 챙겨줬었다. 정말 그리움이 사무쳤다. 옆에 있던 보주도 그녀의 기분에 공감하며 눈물을 글썽였다.“이곳을 나간다면 저희는 어디로 갑니까? 진북후부, 아니면 매산입니까?”송석석은 아직도 그 처참했던 진북후부의 현장이 생생했다. 참을 수 없는 슬픔이 가슴속에서 밀려 나왔다.“어디로 가든 여기 있는 것보다는 낫겠지.”“아가씨, 이대로 떠나면 진짜 후회 안 하시겠어요?”송석석이 담담히 답했다.“후회할 게 뭐 있어. 내가 떠나지 않으면 평생 이들 사이에 괴롭게 살아야 할 텐데. 보주, 우리 집엔 이제 나밖에 없어. 내가 잘 사는 모습을 보여줘야 우리 가족들도 저승에서 마음 편히 쉬지.”“아가씨!”보주가 기어이 눈물을 터트리고 말았다. 그녀는 송석석과 마찬가지로 진북후부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었다. 송석석의 가족들이 몰살당할 때, 보주의 가족들도 함께 희생되었다.장군부를 떠나게 되더라도, 진북후부로 돌아가는 건 편치 않았다. 그곳은 두 사람 모두에게 큰 아픔이었다.“아가씨, 정말 다른 방법은 없을까요?”송석석이 한층 깊어진 눈동자로 답했다.“있기는 하지. 폐하께 아뢰어 그동안 아버지와 오라버니들이 이룬 공로를 명목으로 교지를 철회해 달라고 요청해 봐야지. 통하지 않는다면, 금란전(金鑾殿: 황제의 궁) 벽에 확 머리 박고 죽어버리겠다고 협박도 해보고.”보주가 놀라 송석석의 다리를 부여잡았다.“아가씨, 그건 절대로 아니될 말입니다!”송석석이 냉철히 눈을 빛내며 나지막이 웃었다.“농담이야. 설마 내가 그런 바보 같은 짓을 할까? 교지를 철회해주지 않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