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시원이 살아 있다는 소식을 접한 전북망도 왕청여가 방시원의 위로금과 가게를 돌려주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다만, 평서백부가 그녀 대신 갚아준 것은 알지 못했다. 암살 사건이 있고 왕청여가 전북망에게 자신을 사랑하는지에 대해 물은 뒤로, 두 사람은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 방시원이 살아 있다는 소식에 오랫동안 고민하던 전북망은 결국 문희거로 향했다. 왕청여는 의자에 앉아 멍을 때리고 있었다. 그러다 역광을 받으며 들어오는 이를 보고 하마터면 다른 사람의 이름을 부를 뻔했다.계속 머릿속에서 떠오르던 이름이었다. 전북망임을 확인한 그녀의 얼굴이 차갑게 굳어졌다. "저는 당신이 문희거를 잊을 줄 알았습니다. 정말 오랜만에 오시는 군요." 전북망은 하인들에게 물러가라 명했다."방시원의 일은 들었소." 그러자 왕청여가 차갑게 대답했다. "그래서요?" “당신이 나에게 실망했고 장군부에도 불만이 많은 것을 알고 있소. 이제 방시원이 돌아왔으니, 만약 그가 당신이 이미 재가한 것을 개의치 않고, 그에게 돌아가길 원한다면, 나는 당신들을 축복할 것이오." 화가 난 왕청여는 찻잔을 던져버렸다. "전북망, 당신은 정말 못됐습니다! 당신은 대체 저를 어떻게 생각하는 겁니까? 제가 그리도 변덕스러워 보입니까?" 전북망은 피하지 않았다. 찻잔이 몸에 부딪히자, 그는 당황한 듯했다."그런 뜻이 아니었소. 그저 장군부가 당신을 제대로 대우하지 못했다고 생각했소. 당신이 아직 방시원에 정이 남아 있다면, 나는 축복해 주고자 했을 뿐이오." 왕청여는 급기야 격노했다. "축복이요? 당신은 저를 아내로 여기지 않았군요. 저를 조금이라도 진심으로 대했다면, 이런 말을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왕청여의 분노는 전북망만을 향한 것이 아니었다. 만약 그녀가 위로금과 가게를 정리하기 전이었다면, 전북망이 축복해 줄 거란 말에 기뻤을지도 모른다. 최근 방시원과의 추억이 자꾸 떠올랐고, 전북망과는 비교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게다가, 장군부는
그날 밤, 전북망은 문희거를 떠나지 않았다. 그는 연이어 몇 날 밤을 왕청여의 처소에서 보냈다. 이방은 자신의 뜰을 재정비하지 시작했다. 궁에서는 은전을 내리지 않았으므로, 그녀는 자신의 은전으로 장식을 하고 있었다. 문과 창문은 모두 가장 견고한 목재를 사용했고, 철목은 쉽게 구할 수 없으니 목상에게 부탁하여 찾게 했다. 얻을 수만 있다면 고가라도 구매할 생각이었다. 그녀는 뜰의 이름도 '길상거'로 바꾸었다. 평안과 길상의 의미였다. 그녀는 이미 군을 떠났고, 더 이상 전투복과 갑옷을 입지 않았으므로, 사람을 시켜 은밀히 호심경을 제작하게 하고, 주야로 착용하며 또다시 자객이 들이닥칠지 모를 상황을 대비했다. 부쩍 가까워진 전북망과 왕청여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변심한 남자는 관심이 없었다.그녀가 말했듯이 절대 내실의 다툼에 얽매이지 않을 것이며, 자신이 가장 싫어하는 모습으로 살지는 않을 것이다. 게다가 전북망이 정말로 왕청여를 사랑할까?그녀는 절대 믿지 않았다. 전북망이 그녀를 바라보는 눈빛에는 애정이 담겨 있지 않았다. 그는 연기조차 어설펐다. 쉽게 들통날 것인데 오직 왕청여만 어리석었다.아니면, 왕청여도 이 정도 상황에선 어쩔 수 없는 것일 수도 있었다. 비록 가짜 사랑일지라도, 연결된 것이 나았을 것이다. 이방은 그들의 일을 전혀 상관하지 않았다. 어차피 이 집에서 그녀의 먹거리와 옷가지가 끊길 리는 없었고, 자신의 앞길에 딱히 다른 대안도 없었다. 그러니 그녀는 기다릴 수 있었다. 그녀는 누가 자신을 해치려 하는지 궁금했다. 사실 그 주범이 송석석이 아니라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으나, 그 책임을 송석석에게 떠넘길 수 있었다면 전북망이 그녀에게 더 이상 마음을 두지 않을 것이다.결국 그녀도 미련이 있었다.하지만 그녀는 겉으로만 달달한 둘 사이에 끼어들지 않을 것이다. 전북망은 여전히 왕씨 가문의 힘을 빌려 장군부를 지켜야 했으니 말이다. 한편 서녕에서 장문수는 단신의 치료와 이석의 보살핌
송석석은 시만자가 가문의 사랑을 받는 것에 대해 알고 있었지만, 단순히 그 이유만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시씨 가문은 강남의 대가문이며, 황실 상인으로서 다른 여러 사업도 운영하고 있었다. 상국에서는 모르는 자가 없을 정도였다.그들은 상국 제일 부자였으며, 재산은 나라에 필적할 정도로 많았다. 하지만 번영 속에서도 위험은 도사리고 있다. 그들은 조정에 군마를 공급하고, 갑옷과 병기를 제작했기에 병부가 항상 그들을 주시하고 있었다. 황제의 관심도 시씨 가문에 향하고 있었다. 현재 시씨 가문의 가주는 시만자의 조부였지만, 실질적으로 가문을 다스리는 사람은 그녀의 부친이었다. 조부가 연로하여 많은 일을 맡기 어렵기 때문이었다. "그럼 혼사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 적이 있어?" 송석석이 묻자, 시만자은 느긋하게 답했다."생각해 본 적 없어. 높은 자리는 맞지 않고, 낮은 자리는 어울리지 않아. 그들이 말하는 자들은 하나도 마음에 들지 않아. 차라리 혼인하지 않는 것이 더 자유롭지 않아? 내가 가고 싶은 곳에 가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것이 더 좋아." 송석석은 그녀를 잘 알고 있었다. 자유로운 영혼의 대명사 시만자가 내실에서 가사를 돌보게 하는 것은 너무 잔혹하다고 생각했다. 시씨 가문은 대가족이었기에 상대도 그에 걸맞아야 할 것이다. 그러면 복잡한 인간관계가 그녀를 정말 지치게 만들 것이다.시만자가 말을 이었다."우리 시씨 가문에 아직 결혼하지 않은 자도 여럿 있어. 어쩔 수 없지. 돈이 많으니 먹고 살 걱정은 없는 거야. 너도 알겠지만, 난 나중에 스승이 은퇴하면, 적염문을 이어받을 것이니 문파를 다스리는 것이 결혼하는 것보다 낫지 않겠어?" 그녀의 당당한 모습에 송석석은 과거의 자신을 떠올렸다. 예전에는 혼사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두 사람 모두 결혼하지 않겠다고 말하곤 했다. 시만자는 여전히 혼인을 거부하고 있었지만, 자신은 이미 두 번이나 했다. 옛 생각에 잠긴 시만자가 그 사실을 떠올렸는지 갑자기 경멸 어린 시선
그러나 이번 귀향길은 많은 사람들로 북적였고, 이들 중 어느 누구도 사여묵과 송석석이 단둘이 시간을 보낼 수 없도록 만들었다. 그 수많은 시커먼 얼굴들은 시도 때도 없이 사여묵을 찾아왔다. 덕분에 송석석과 그가 단둘이 있는 시간이 많지 않았다. 밤이 되어도 상황은 다르지 않았다. 송석석은 시만자와 한방을 썼고, 사여묵은 장대성과 함께 방을 썼다. 사여묵은 이미 너무 지쳤다. 장대성의 코 고는 소리에 견딜 수 없었고 그의 침대를 발로 차보았지만, 장대성은 몸을 뒤척이며 계속 코를 골았다. 사여묵은 하루빨리 진성으로 돌아가기만을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부대가 동주에 가까워졌을 때, 길 위에 마차 한 대가 나타났다. 옆으로 쓰러진 마차는 길 절반 이상을 막고 있었다. 기마병들은 통과할 수 있었지만, 장문수가 탄 마차는 지나갈 수 없었다. 장대성은 앞으로 나아가 보니 두 사람이 마차를 세우려고 애쓰고 있었다. 말은 바닥에 쓰러져 있었는데, 더위에 지친 듯했다.길 가장 안쪽에 한 여인이 서 있었고 그녀의 옆에 하녀로 보이는 이가 부채질을 하고 있었다. 여인은 위모자를 쓰고 있어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지만, 복숭앗빛 분홍 저고리를 입고 있었고, 허리는 손으로 잡힐 만큼 가늘었다. 아마도 마차에서 굴러떨어진 듯 몸에 흙이 잔뜩 묻어 있었지만, 초라하기보다는 가련해보였다.장대성이 다가가 물었다. "무슨 일인가?" 그러자 덩치 큰 사내가 대답했다. "죄송합니다. 길을 막아버렸군요. 말이 더위를 먹고 기절하여 마차가 뒤집어졌습니다." 말에서 내린 장대성이 살펴보았다. 전장에 나섰던 사람답게, 그는 말을 아꼈다. 손을 뻗어 말을 확인하던 그가 말했다. "말은 죽었소.”“진성으로 가야 하는데 이를 어찌하면 좋을까요?" 사내는 호위병이었다. 앞에 있는 말은 그가 타고 온 것이고, 다른 한 사람은 마부인 듯했다. "당신들은 누구요? 왜 진성으로 가려는 것이오?" 장대성이 묻자, 사내가 답했다."우리는 진성 사람이고 아가씨와
송석석은 '고청란'이라는 이름을 듣고, 즉시 장공주의 서녀인 연유를 떠올렸다. 연유의 본명은 고청무였다.송석석은 빠르게 상황을 살폈다. 고청란의 하녀는 그녀에게 별로 공손하지 않았고, 오히려 상당한 무예를 익힌 듯한 기색이 역력했다. 게다가 호위병과 마부의 시선도 고청란을 주시하고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 고청란이 그들에게 감시를 받고 있는 듯한 분위기였다. 송석석은 다시 고청란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약간 긴장한 듯 손수건을 꽉 쥐고 있었고, 땀방울이 위모자 안에서 흘러내리자, 손수건을 넣어 땀을 닦았다.그녀의 몸이 갑자기 움찔하더니 고통을 삼키는 듯했다. 송석석은 그제야 하녀가 그녀의 뒤에서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그러나 등 뒤에 있기에 그 장면은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시만자와 송석석 모두 위모자를 쓰고 있었기에 밖에서는 그들의 얼굴을 볼 수 없었지만, 그들은 외부를 볼 수 있었다. 두 사람은 마차를 보는 척하면서 고청란과 하녀의 행동을 주시하고 있었다. 고청란과 하녀의 모습에서 하녀가 고청란을 압박해 말을 시키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결국 고청란이 천천히 앞으로 걸어 나와 사여묵에게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고왔고 부끄러움도 살짝 묻어 있었다. "급히 진성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말이 죽어버렸습니다. 혹시 말 한 마리를 빌려주실 수 있겠습니까? 사례는 반드시 드리겠습니다." 사여묵이 대답하려던 찰나, 송석석이 먼저 답했다. "이거 참 마침 잘됐군요. 저와 시만자는 말 타는 것이 지겹던 차였습니다. 마차에 앉아 가고 싶었는데, 우리말로 그대들의 마차를 끌게 하지요." 왕비의 말에 무리 중 일부는 약간 당황했다. 이 상황에서 낯선 사람을 마차에 태우는 것은 위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앞으로 다가와 상황을 살펴보던 방시원이 손을 들어 동료들에게 말을 아끼라고 신호를 보냈다. "부인의 뜻을 따르도록 하자." 밖에서는 왕비라 부르면 안 되었기에 모두가 송석석을 부인이라 불렀다. 호위병과
바람이 불었지만, 햇볕이 강렬했다. 하지만 하녀는 이 뜨거운 날씨 속에서도 전혀 불편해하지 않았다. 그녀는 무척이나 고생을 견딜 수 있는 사람인 듯했다.보통 여인의 곁에 있는 시녀들은 무거운 일을 하지 않기에 유난히 연약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 하녀는 달랐다. 방시원은 속으로 한숨을 쉬며 시선을 거두었다.그들은 이미 위태로운 삶에 익숙해져 있었기에, 이런 단순한 계책은 진작에 알아챌 수 있었다. 마차 안에서 위모자를 벗은 고청란은 연유와 매우 닮은 얼굴을 드러냈다. 그녀는 아름다웠으나 차가운 인상을 풍겼다. 하녀가 밖에 있었기에 그녀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왕비님, 제발 저의 어머니를 구해주십시오." 송석석도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당신들이 길을 막은 이유가 단지 그것만은 아니겠지요." "그렇습니다!" 고청란의 얼굴에 수치심이 스쳐 지나갔다. "저의 계모가 저더러 왕비님과 북명왕의 사이를 훼방 놓으라고 했습니다." 눈물을 머금은 그녀는 반쯤 엎드렸다. "왕비님, 제발 불쌍히 여겨주십시오." 송석석은 그녀를 바라보았다."내가 왜 널 도와야 하지?" 고청란의 눈에는 눈물이 맺혀 있었지만, 그 눈물은 슬픔이 아니라 음모나 계략의 도구일 수도 있었다. "거래입니다. 제가 아는 모든 것을..." 송석석은 갑자기 그녀를 일으켜 자신의 옆에 앉혔다. 놀란 고청란은 황급히 위모자를 다시 썼다. 그때 마차의 커튼이 살짝 열리며, 하녀가 머리를 내밀어 물었다. "아가씨, 아직도 불편하십니까?" 고청란은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이제 많이 나아졌다." 하녀는 다시 커튼을 내렸다. 송석석과 시만자는 서로 눈을 마주치며 고청란의 말이 사실인지 가늠하고 있었다. 그러나 대화만으로는 판단이 어려웠고, 진실이 무엇이든 그녀와 더 자세히 이야기할 필요가 있었다. 저녁이 되어 여관에 묵게 되었다. 식사를 마친 후 송석석은 일부러 장대성에게 명령을 내렸다. "밖에 나가 말을 파는 곳이 있는지 알
송석석은 사여묵과 상의하는 척하며 작은 목소리로 대화를 나눴다. 주변 사람들은 무슨 말을 하는지 듣지 못했고, 하녀와 호위병도 귀를 쫑긋 세웠지만 아무것도 들을 수 없어 초조해 보였다. 한참 후에야 사여묵이 고개를 끄덕였고, 송석석이 말했다. "좋소. 우리 함께 진성으로 가도록 하지." 그제야 하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 감사하옵니다, 부인께서는 참으로 자비로우십니다." "너의 이름은 무엇이냐?" 송석석이 대뜸 물었다. 하녀는 몸을 낮추며 대답했다. "소녀의 이름은 향귀라 하옵니다." "호위병 너는?" 송석석이 다시 물었다. "저는 오동입니다." 건장한 체격일 가진 그는 성실해 보였으나, 겉모습과 내면은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송석석도 알았다. 송석석은 몇 가지 더 물었지만, 별다른 정보를 얻지는 못했다. 하지만 애초에 이들로부터 많은 것을 듣고자 하는 의도는 없었다. 밤이 되어 야식을 마친 후, 단신의가 준비한 무색 무미한 작은 가루가 마부, 호위병 오동, 그리고 하녀 향귀를 모두 잠들게 만들었다. 방 안에서 고청란은 송석석과 사여묵 앞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그리고 옆에서 시만자가 그들의 대화를 조용히 듣고 있었다. 고개를 든 고청란이 애절한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저의 계모는 저를 시켜 북명왕을 유혹해 왕비님과의 관계를 망치라고 하셨습니다. 왕께서 무예를 아는 여인을 좋아한다고 들었기에 저를 이용하려 하였지요. 그러나 저는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설령 제가 그렇게 한다 해도, 제 어머니를 풀어주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와 쌍둥이 자매인 청무는 이미 승은백부에 들어가 임무를 완수했지만, 또 새로운 임무가 주어졌습니다. 어머니는 끼니조차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며, 공주부의 지하 감옥에 갇혀 있습니다. 두 분께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어머니를 구해주신다면, 저 고청란은 왕비님의 뜻대로 따를 것이며, 다음 생에라도 이 은혜를 꼭 갚을 것입니다." 송석석은 고청란을 바라보
고청란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시만자와 송석석은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갓 태어난 아기를 산 채로 바닥에 던져 죽이다니, 얼마나 잔혹하고 독해야 이런 짓을 할 수 있을까? 고청란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그런 끔찍한 일들이 공주부의 내당에서는 수도 없이 벌어졌습니다. 저에게도 원래 남동생이 있었고 어머니는 임신 중에 그 아이가 아들이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녀는 아버지가 자신을 지켜주지 못할 것을 알고 있었고, 공주가 남아를 원하지 않는다는 것도 알았기에 도망치려 했습니다. 남자아이는 태어나자마자 죽을 운명이었으니까요. 하지만 공주는 사람을 보내어 어머니를 감시했습니다. 한 번 내당에 들어간 이상 다시 나올 방법은 오직 죽음뿐입니다." "아버지께서 도와주겠다고 했습니다." 고청란은 눈물을 닦으며 말을 이었다."어머니는 아버지를 믿고, 탈출 기회를 만들어 줄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마침내 좋은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바로 계모가 연회에 참석하러 간 날이었지요. 그날은 매우 늦게 돌아올 예정이었습니다." "하지만 탈출하지 못했군." 듣고 있던 시만자는 분노했다."탈출에 성공했지만, 도중에 붙잡혔습니다. 어머니는 마차에서 아이를 낳았고, 탯줄도 끊지 못한 채 공주부로 끌려갔습니다. 어머니와 남동생은 바닥에 끌려 다시 공주부의 춘향원으로 돌아왔고, 그때 제 동생은 이미 울음을 멈췄습니다. 피부가 찢어지고, 피와 살이 뒤엉켜 더는 숨을 쉬지 않았습니다." 전쟁터에서 수많은 참혹한 장면을 보았지만, 그건 두 나라의 싸움에서 목숨을 걸고 벌어지는 것이었기에 잔인함은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왕실의 공주부에서 이런 끔찍한 일이 벌어지다니, 얼마나 사람의 마음이 비정하고 뒤틀려야 이런 짓을 할 수 있는지 너무 소름이 끼쳤다.고청란은 송석석을 바라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왕비님께서 제 어머니나 다른 공주부의 첩들을 보신 적이 없으시니, 왜 계모가 그들을 그렇게 대했는지 이해하지 못하실 겁니다." 송석석은 갑자기 뭔가 떠올랐
송석석은 사여묵으로부터 복소의의 유산 소식을 전해 들었다.진왕비는 송석석에게 함께 입궁하여 문병을 가자고 제안했고, 송석석도 이를 받아들였다.본래 송석석과 진왕비는 별다른 왕래가 없었으나, 진왕이 그녀와 함께 서경을 다녀온 이후, 진왕비는 동서지간에 자주 왕래하는 것이 좋다며 송석석에게 더욱 살갑게 굴었다.하지만 진왕비는 제씨 가문의 여인으로, 황후의 종매이긴 했지만, 황후가 금족 된 이후로는 단 한 번도 황후를 찾아가지 않았다.즉, 그녀가 말하는 동서지간에 자주 왕래하는 것이 좋다는 말의 진짜 의미는 귀찮은 일이 없을 때는 교류할 수 있지만, 문제가 생기면 피하는 것이 상책이라는 뜻이었다.예전에 황제가 북명황실을 경계하던 시기에도 진왕비는 송석석을 철저히 피하며 혹여 화를 입을까 두려워했다.사실 이번에 진왕이 특별한 공을 세웠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그저 황제의 가벼운 칭찬 한마디를 들은 정도였지만, 진왕에게는 그 한마디가 두 해나 자랑할 거리였다.그들은 함께 입궁하면서도 특별한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진왕비는 그저 몇 마디 가벼운 이야기만 했는데, 송석석은 그런 진왕비가 영리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때때로 일부러 어리숙한 척 행동하며, 평온하고 안락한 삶만을 바랬기 때문이다.그렇기에 단둘이 있을 때에 그녀는 더욱 쓸데없는 말을 하지도, 남에게 꼬투리를 잡힐 행동도 하지 않았다.입궁하여 복소의를 만나게 되자, 진왕비는 이 아이와 그녀의 인연이 이미 닿아 있었다며, 결국 그 인연 덕분에 품계를 올리게 된 것이니 조만간 다시 태중으로 돌아와 전생의 모자 인연을 이어갈 것이라는 위로의 말을 한 가득 쏟아냈다.그녀가 나긋한 목소리로 덧붙였다."그러니 지금 해야 할 일은 그저 몸을 잘 돌보는 것 뿐이다. 괜히 이 일로 침울해 하면 안된다. 폐하께서 정무로 바쁘신데, 소의가 매일 울기만 하면 보시기에 번거롭지 않겠는가?"진왕비의 말은 빈틈이 없어 송석석이 끼어들 여지가 없었다.그녀가 한참 이야기하다가 문득 송석석을 향해 한 마디 던졌다.
자신의 궁으로 돌아오자, 숙청제는 비로소 실망한 기색을 드러냈다.아무것도 밝혀지지 않았다는 것이 곧 아무 문제가 없다는 뜻은 아니었기 때문이다.후궁에서 벌어지는 수작들은 때로는 흔적조차 남기지 않는 법이다.단신의가 복소의의 태아를 보전하기 어려울 수 있으며, 설령 무사히 태어난다 해도 선천적으로 허약하거나 정신적으로 이상이 있을 아이일 가능성이 높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숙청제는 한때 복소의에게 약을 직접 먹일까 고민한 적도 있었지만, 이 아이가 어쩌면 자신의 마지막 자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끝내 결단을 내리지는 못했다.한 번쯤 걸어보고 싶긴 했다.이번 일은 누군가 개입한 것이 분명했다. 그가 최근 들어 복소의의 궁에 자주 드나들었으니, 누군가는 불만을 품었을 것이 틀림없었다.덕비는 분명 복소의를 배려하는 마음이 있었다. 그러나 복소의는 황제의 총애를 믿고 오만하게 굴며, 심지어는 덕비를 원망하는 마음까지 품었다. 그날 그녀에게 경고를 주었지만 아쉽게도 그녀는 그것을 깨닫지 못했다.덕비는 후궁을 총괄하는 인물이었다. 때문에 그녀와 수빈이 배치한 사람들이 후궁 곳곳에 퍼져 있었으니, 복소의의 태아를 해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그렇다고 해서 덕비가 직접 손을 썼을 가능성은 낮았다. 만약 덕비가 아이를 해하려 했더라면 애초에 복소의를 보호해주지 않았을 것이었다. 게다가 덕비가 이황자를 데리고 자주 드나든 것도 반은 아들을 위한 것이었지만, 반은 복소의의 태를 지키기 위한 것이었었다.복소의가 황제에게 덕비를 험담했던 것은 반드시 덕비의 귀에 들어갔을 것이었다. 덕비가 이후 더 이상 찾아오지 않은 것을 보면 알 수 있다.그녀가 복소의에게 손을 떼자, 마음 속에 꿍꿍이가 있던 자들이 움직이기 훨씬 쉬워졌다.그가 실망한 이유는 복소의의 태아를 잃은 것 때문이 아니었으며, 그가 바라지 않았던 후계 경쟁이 결국 벌어지고 말았다는 점이었다.그는 이 일을 벌인 자가 누구인지 거의 확신할 수 있었다. 황후이거나 수빈 둘 중 하나일 것
혜의궁에서는 삼황자가 의자에 앉아 있었다. 삼공주는 그의 젖은 머리카락을 닦아주며 못마땅한 표정으로 말했다."어제 막 머리를 감았는데, 굳이 그 고양이랑 놀겠다고 해서 온 머리와 얼굴이 털투성이가 되었잖아. 다음번에도 이러면 엉덩이를 때려줄 거야."도자기처럼 매끄러운 분홍빛 살결의 귀여운 아이가 까만 눈동자를 반짝이며 공주의 품에 기댔다."누이, 고양이는 재미있고 귀여워요. 작은 발로 내 몸을 밟고 지나갈 때면, 포근해서 기분이 좋아요. 안고 있으면 따뜻하기도 하고요."그러자 삼공주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어마마마께서 그러셨잖아. 아바마마께서는 고양이를 좋아하지 않으신다고. 그런데 넌 자꾸 아바마마께 고양이 이야기를 해서…… 그러니 요즘 아바마마께서 널 찾지 않으시는 거야."삼황자는 누이가 머리를 말려주는 대로 꼿꼿이 앉아 있으면서도 입을 다물지 않았다."아바마마와 나는 다른 사람이잖요. 당연히 각자 좋아하는 것이 다를 수도 있는 거지요. 아바마마께서 싫어한다고 해서 나까지 싫어해야 해요? 내가 고양이를 얼마나 좋아하는데요! 내가 이 아이를 사랑하니, 아바마마께서 아무리 싫어하셔도 나한테 버리라고 하시면 안 되는 거죠."삼공주는 그의 코끝을 톡 하고 건드리며 말했다."말은 참 잘하네."삼황자는 웃으며 말했다."누이가 나를 설득 수 없는 건 누이의 말이 논리적으로 맞지 않기 때문이에요. 황숙께서 그러셨는데, 이치에 맞게 말을 한다면 그 누구도 이길 수 있다고 하셨거든요.""그래? 그런데 요즘 왜 황숙께 무예를 배우러 가지 않는 거야?"삼황자는 고개를 기울였다."무예라 해도 기본적인 것만 가르쳐 주시니까요. 그런 건 궁에서도 연습할 수 있어서 이미 다 할 수 있어요! 그리고 말 타기는… 아직 말 위에 혼자 올라갈 수가 없으니까 좀 더 자라서 다리가 길어지면 그때 배울거에요.""다 할 수 있다고? 못 믿겠는데." 삼공주가 말했다."정말 할 수 있다니까요!"삼황자는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황숙께서 며칠 동안 같은 걸 반복해
복소의는 춘당의 입가에 스친 조소를 알아채지 못했다.춘당은 복소의가 첩여로 승급될 때부터 곁에서 그녀를 모셔왔다. 그녀는 영리하고 침착한 성품을 지녀 복소의에게 여러 차례 계책을 내주었고, 당시 황후가 그녀를 끌어들이려 했을 때도 춘당은 이렇게 말했었다.‘황후마마께서 여러 번 금족 처분을 당하신 것으로 보아, 폐하께서 이미 탐탁지 않게 여기시는 것이 분명합니다. 게다가 후궁을 다스릴 권한도 없으시니, 황후마마께는 겉으로만 응하는 척하고 실질적으로는 덕비 마마와 수빈 마마께 가까이 다가가시는 것이 더 좋을 것입니다.’그리고 춘당의 말은 역시나 옳았다. 덕비는 늘 그녀를 잘 대해주었고, 먹고 입는 것 모두 넉넉히 챙겨주었다. 그 덕분에 더 이상 감히 그녀를 깔보는 자도 없어졌다.예전의 덕비는 분명 좋은 사람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녀가 아이를 가졌다는 것을 이유로 폐하께 가까이 가려 하는 것 같아 못마땅했다."마마께서는 덕비 마마께서 오시는 것이 싫으십니까?"춘당이 그녀의 머리와 허리를 살짝 받쳐주며 말했다. 침상에 오래도록 누워만 있어 등이 아픈 그녀를 배려한 것이었다.그녀는 춘당을 신뢰했기에 자연스레 속내를 털어놓았다."내 태가 안정되었을 때는 덕비 마마께서 그리 열심히 오시지도 않으셨는데, 이제 와서 이렇게 자주 찾으시는 것이 진심이겠느냐? 분명 폐하를 의식해서 오는 것일 것이다. 게다가 폐하께서 날 아끼시기에 자주 찾아와 주시는 것인데, 매번 덕비 마마와 이황자가 끼어드는 바람에 폐하와 두세 마디도 제대로 나누지 못하지 않느냐."춘당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위로하며 말했다."마마께서는 그저 몸을 잘 돌보시면 됩니다. 그 외의 일은 신경 쓰지 마세요."복소의는 한숨을 쉬었다."이렇게 밤낮으로 누워만 있어야 하다니…… 폐하께서 오실 때만 겨우 앉을 수 있구나. 이 아이는 나를 참 힘들게 한다. 부디 황자가 되어주기를 바랄 뿐이지. 내가 이 고생을 한 보람이라도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춘당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반드시 마마께서 바라시는
복소의의 태는 안정적이었기에, 태의도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겨울이 지나면서 태가 점점 불안정해져, 두 번의 출혈을 경험했다. 금태의는 그녀의 태를 지키기 위해 모든 방법을 동원했다. 그 덕분에 그녀는 겨우 안정을 찾을 수 있었지만 계속해서 침상에 누워 있어야 했기에 바닥에 내려갈 수가 없었다.갑자기 이런 상황이 발생하자, 태의는 신중히 식단과 궁에서 사용하는 모든 것들을 점검했다. 하지만 별다른 문제가 발견되지는 않았다. 아마 황제가 장기간 약을 복용한 탓에 태아가 불안정해진 것일 가능성이 있었다. 숙청제는 그녀의 태에 매우 긴장하고 있었다. 숙청제는 그녀가 침상에서 요양을 시작한 후 거의 이틀에 한 번씩 그녀를 보러 갔으며, 가끔은 같이 식사를 하기도 했다.상황이 이렇게 되자 그는 수빈의 궁에 자주 가지 않았고, 삼황자를 어서방에 불러 들이지도 않았다.덕비는 후궁을 관리하는 일을 맡고 있었기에 시간이 날 때마다 이황자와 함께 복소의를 보러 갔고, 이로 인해 황제와 함께 몇 번의 식사를 함께했다.복소의는 첩여 시절 후궁에서 자신이 의지할 사람을 찾으려 했고, 비밀리에 수빈과 덕비에게 아첨하며 양쪽을 오갔다. 하지만 수빈은 늘 거만하게 행동했으며, 그녀가 한때 황제의 총애를 얻었기도 했기에, 복소의는 수빈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반면 덕비는 후궁에서 유명한 온화하고 자애로운 인물로, 공정하게 일을 처리하며 위치가 낮은 여인들까지 보살펴 주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복소의는 점차 덕비에게 더 접근했지만 지금은 조금 고심했다. 황제가 그녀에게 올 때, 덕비가 여러 번 이황자를 데리고 왔고, 그 목적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수빈의 성격에 이런 일을 할 리가 없었기에, 그녀는 오히려 수빈의 도도함이 더 낫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결국 불만을 마음속으로에만 토로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의지할 사람이 아무도 없었고, 덕비는 후궁을 관리하는 권한이 있기에 그녀를 적대할 수도 없었다. 이러한 날들이 지속되자, 그녀는 덕비가 오지 않
후궁에서는 황제의 병에 대해 추측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지금 복소의가 임신을 했다고는 하지만, 단신의가 궁에 들어와 치료하고 있다는 사실은 황제의 몸이 단순히 요양을 하면 괜찮아질 상태가 아님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황제의 편애가 계속될수록 몇몇 사람들은 마음이 편치 않았다.특히 황후는 더욱 불안해했다. 그녀는 황제의 병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었기에, 지금 단신의가 궁에 들어와 치료하고 있지만 치료의 효과는 확실하지 않다고 생각해, 그녀는 황제가 심각한 상태라고 여겼다. 황후는 복소의의 임신에 대해서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아이의 성별이 남자인지 여자인지 알 수 없을 뿐더러, 설령 황자가 태어난다고 해도 그에게 까지 순서가 올 리 없었다. 그러나 삼황자에게 집중된 황제의 편애는 그녀에게 위기의식을 가져다 주었던 것이다.황제는 그녀에게 선택권을 주었을 때 그녀는 황후 자리를 선택하며 생명을 보장받았다. 하지만 며칠의 시간을 보내자, 황후는 황제가 대황자를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특히 요즘 대황자가 열심히 공부하고 있으며, 태부와 황숙도 그를 칭찬하고 있었다. 황제도 대황자의 그러한 모습에 매우 만족해 한다고 전해 들었다.이황자와 삼황자는 그녀에게 모두 위협적인 존재였다. 그러나 황후는 황제가 이황자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고 여겼다.최근 몇 달 동안 그녀는 거의 이황자를 본 적이 없었고, 또한 이황자가 이제는 예전처럼 열정적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황후는 강력한 뒷배경이 없는 덕비가 여전히 유력하지 않다고 여겼지만 수빈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수빈의 아버지는 형부상서이며, 사여묵과 같은 공문이었다. 공무의 일이든 사적인 일이든 접촉이 분명 많았을 것이고, 수빈의 어머니인 이씨 부인은 송석석에게 잘 보이기 위해 공방에 많은 돈을 기부했다. 어쩌면 이미 그녀를 손에 넣었을지도 모른다.“마마, 오늘 대황자께서 또 왕야의 칭찬을 받으셨습니다.”란주 상궁이 들어오며 웃으며 말했다.황후는 별다른 감정을 보이
숙청제는 신하들을 어서방에 불러들였고, 그들은 밤늦게까지 논의했다. 논의는 결국 단신의가 들어가서 시간이 많이 늦었음을 알리며 중단을 요청할 때까지 지속되었다. 숙청제는 팔을 뻗고 웃으면서 말했다.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되었다니. 그럼 궁문도 이제 잠가야겠으니 다들 돌아가시게.”그는 여전히 기운이 넘쳤고, 특히 지금은 얼굴에 혈색이 돌아 병든 사람 같지 않아 보였다.송석석은 논의 중이던 사여묵을 기다렸다. 그들은 함께 궁을 떠나 황실로 돌아갔다. 매우 피곤했던 그녀는 사여묵의 어깨에 기대어 잠이 들었다.마차가 황실 문 앞에 도착하자 사여묵은 그녀를 안아 들었다. 송석석은 그 사실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지만 내려오기 귀찮았기에 그대로 안겨 있었다. 그의 넓고 따뜻한 품은 정말 편안했다.그와 떨어져 있던 세 달 동안 그녀는 성릉관에서만 편히 잠을 청할 수 있었으며, 그 외의 곳에서는 늘 경계하며 지냈다. 이제 집에 돌아오니 자연스럽게 긴장이 풀렸고,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불안함을 느꼈다. 무언가 뜨겁고 큰 손이 자신의 몸을 이리저리 만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녀는 눈을 감은 채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단 백부 말씀을 잊으셨나요?”귓가에 따뜻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단 백부가 이제 괜찮다고 말씀하셨소.”송석석은 감고있던 눈을 떠, 뜨겁고 열정적인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을 마주하며 물었다.“정말인가요?”“틀림 없소.”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입술이 덮였다.불꽃이 강렬하게 타올왔다. 침실의 온도마저 높아진 듯 했다.두 사람은 뜨겁게 사랑했다. 오랜 시간 떨어져 있었기에 마치 새롭게 결혼한 듯한 기분이었다!한 달 후, 상국은 시박사를 설립할 예정이었다. 이는 상국과 해외 북당과의 화물 교류를 담당할 기관이었다.원래의 시역업도 시박사의 운영을 전폭적으로 지원할 것이며, 상국에서 다른 국가에 판매할 수 있는 화물 목록을 정리하여 서경으로 사신을 파견해 화물 교환 협정을 체결할 것이다.이 한 달 동안 단신의는 약을
10월 15일, 사절단은 드디어 진성에 도착했다.현갑군은 그 자리에서 먼저 해산했고, 이덕회와 홍려사경은 궁에 들어가 황제를 뵈러 갔다. 그동안 몸이 약해져 혼자서는 거동할 수 없었던 진왕은 이제서야 정신을 차리고 자신도 궁에 가겠다고 말했다.송석석은 이미 성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사여묵에게 인도되어 황실로 돌아갔다.그동안 사여묵은 매일같이 성문 앞에서 그녀를 기다렸고, 때로는 낮잠시간에 직접 가서 기다리기도 했다. 그런데 오늘이 되어서야, 드디어 기다리던 그녀를 만날 수 있게 되었다.이덕회와 그들이 궁에서 황제에게 보고할 때, 송석석은 이미 태비께 인사를 드린 후였다.혜 태비는 송석석이 피곤해 보이자, 가서 씻고 옷을 갈아입으라고 말했다.송석석은 사여묵과 함께 나와서 매화원으로 돌아갔다.목욕을 마치고 옷을 갈아입고 나왔을 때, 송석석의 입술이 어쩐지 조금 부풀어 있었다. 서주는 깜짝 놀라 왕야를 바라보았다. 왕비가 목욕하는데 왕야께서 꼭 직접 모셔야 한다며 들어가더니, 보아하니 제대로 보살피지 못한 것이 틀림없었다.서방에서는 염선생과 심청화가 이미 기다리고 있었다.송석석은 그들에게 서경에서의 일들을 말해주었다. 협상 결과는 그들이 이미 알고 있었기에, 송석석은 길에서 일어난 암살 시도, 원신제의 곤경, 그리고 북당의 안풍친왕이 말한 3년과 5년의 기한에 대해서 이야기해주었다.사여묵은 두려운 마음으로 이야기를 들었는데, 서경이 그렇게 혼란스러웠음에도 그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지 않았음에 안도하며 다행이라 여겼다.안풍친왕이 성릉관을 자유롭게 오고 간 것과 그가 말한 3년, 5년 기한에 대해서, 심청화는 사부에게 편지를 보내면 알 수 있을 거라 말했다. 사부는 그들을 잘 알기 때문에 그 말의 숨은 의미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었다.이야기를 마친 후, 사여묵은 송석석이 휴식을 취하게 하기 위해, 송석석에게 더 이상 질문하지 못하게 그들을 막았다. 그는 오후에 휴가를 내어 일을 쉬려고 했지만, 황제가 사람을 보내 궁에 오라고 일렀다.송석석
성릉관에서 다섯 날을 지낸 진왕은 어느 정도 몸이 회복이 되었다.그가 회복되었다는 것은 이제 다시 진성으로 향해야 함을 의미했다.이별은 너무나 아쉬웠지만, 송석석은 눈물을 삼키며 그저 작별 인사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소 대장군 앞에서 여러 번 절을 했는데, 그로 인해 소 대장군도 눈물이 거의 터져 나올 뻔했다.이덕회가 가장 존경하는 사람은 바로 소 대장군이었다. 소 대장군은 상국을 위해 수십 년 동안 성릉관을 지킨 노장이었기 때문이다.송석석은 눈물을 삼켰지만, 그는 얼굴을 가리고 울음을 터뜨렸다. 그는 이 평생 다시는 그를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이미 노령에 접어든 듯, 이전에 만났을 때보다 훨씬 더 노쇠해 보였다. 설령 황제가 그를 진성으로 돌아가게 허락한다 할지라도, 긴 여정과 고된 일정을 고려했을 때 소씨 가문 사람들이 그를 돌아가지 못하게 할 수도 있었다.소 대장군은 이덕회와 잠시 대화를 나누었다.그러자 이덕회는 더 크게 울음을 터뜨렸다.외숙모 남씨는 회 왕비에 관한 질문을 하지 않았었다가 이별을 앞두고서야 송석석을 옆으로 데려와 그녀의 상황을 물었다.송석석은 회 왕비가 지금 감옥에 있다는 사실과 란이가 그녀를 위해 손을 써주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그렇게 힘든 상황은 아닐 거라며, 혹시 태자가 세워지면 대사면이 내려져 그녀가 나올 수도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남씨는 살짝 안도의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렇다면 다행이구나. 외조부께서 말씀하시지는 않으셨지만, 엄청 신경 쓰고 계실 거다. 세상에 정말로 모진 부모는 드무니까. 네 외조부는 모진 분이 아니시다. 그때 그녀가 란이에게 그렇게 까지 모질게 대했던 게 안타깝다. 란이가 여전히 그녀를 돌보아야 하다니."송석석이 말했다. "걱정 마세요. 란이는 지금 편안하고 자유롭게 지내고 있어요. 그리고 앞으로도 더 잘 지낼 거예요.""그렇지. 분명히 잘 지낼 거야." 남씨는 아쉬움이 가득한 눈빛으로 송석석을 바라보다가, 이내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