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망은 다시 한번 타격을 입고 말았다. 그는 갑자기 온몸에 힘이 빠지는 것 같더니 자신이 마치 상갓집의 개처럼 갈 곳이 없다고 느껴졌다. 그는 전에 왕청여가 단아하고 온유하며 사리에 밝고 효성까지 지극한 여인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하인들에게 관대하고 인자한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평서백부의 아가씨인 데다 방 씨 가문에 시집을 갔었으니 그는 왕청여를 한 번도 의심한 적 없었다. 게다가 방 씨 가문도 무인가문이고 방시원이 무장들이 존경하는 사람이라 왕청여가 그런 사람일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그에게 시집갔던 여인이니 당연히 그처럼 당당하고 과감하며 인자하다고 생각했다. ‘그런 여자가 한 마디로 누군가의 손을 잘랐다니...’ 전북망도 똥물을 뿌리는 사람이 미웠지만 잡아서 한바탕 때리면 그만이지 손발까지 부러뜨릴 필요는 없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가 인심이 있어서 그런 게 아니라 대중의 분노를 사고 싶지도 않고 이 일을 빨리 끝내고 싶어서 그렇게 생각한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 왕청여가 그 사람의 손발을 잘랐으니 일이 점점 커질 것 같았다. 그는 이방을 보며 강경한 태도로 말했다. “내가 청여에게 가서 물어보겠다.”이방이 참담한 표정으로 애써 웃으며 말했다. “청여? 부군께서 그렇게 친절하게 나를 안 부른 지도 참 오래되었네요. 지금은 내 이름만 부르고, 역시 내가 선택을 잘못했나 봅니다.” 전북망은 몸을 돌려 잠깐 침묵하더니 입을 열었다. “누구는 아니라더냐?” 그러자 흐느끼는 소리가 이방의 입에서 새어 나왔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 이방은 자신의 자존심이 무너지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다. 하지만 전북망의 사랑으로 마음속에 높이 쌓아 올렸던 벽은 끊임없이 무너져 내렸고, 송석석과 사여묵의 결혼 소식이 전해졌을 때 그의 반응을 본 후 완전히 무너졌다. 하지만 이방은 왕청여를 안중에 두지 않았다. 그녀는 전북망의 마음속에서 왕청여가 영원히 송석석을 이길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역시 사람들은 소중한 것을 잃고 난 후에야 소중함을 깨닫는다
전북망과 왕청여는 화청에 마주 앉았다. 왕청여는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으며 전북망의 실망스러운 눈빛을 보지 않았다. 그리고는 울먹이며 변명을 늘어놓았다. “그날 제가 너무 화가 나서 그랬사옵니다. 친정에서 돌아오는 길에 북명왕비의 마차가 우리 장군부 앞을 지나가는 것을 보고 송석석이 사람을 시켜 장군부에 똥칠했다고 의심은 했지만 증거가 없어 그녀와 다른 말을 몇 마디 했는데 그녀에게 모욕을 당할 줄은 몰랐어요. 그리고 장군부에 돌아와 똥물을 뿌리던 사람을 잡았다는 말에 화를 참지 못하고 그의 손을 잘랐사옵니다...” 전북망은 그녀의 말에서 중점을 잡고 물었다. “어제 송석석이 장군부에 왔었다는 말이오?” “장군부에 들어오지는 않았지만 그녀가 우리 골목 어귀에서 나가자마자 똥물을 뿌린 사람을 잡았습니다. 증거만 있었다면 내가 그 자리에서 그녀를 폭로할 텐데 안타깝게도 증거가 없었습니다.” “당신 정말 송석석과 다퉜소? 그녀가 뭐라고 했소?” 전북망은 두 손으로 의자의 손잡이를 잡고 너무 힘을 쓴 나머지 손톱이 나무속으로 박힐 지경이었다. 왕청여는 어리둥절했다. ‘뭐야? 내 말을 알아듣지 못한 건가?’ “부군, 내가 그녀와 다툰 게 아니라 그녀가 나에게 모욕을 줬습니다.” 전북망은 가만히 앉아서 중얼거렸다. “그녀가 누군가와 싸울 리는 없지. 그녀는 심지어 사람들과 말도 잘하지 않는 성격이니 말이야.” 왕청여는 전북망이 갑자기 다른 사람으로 변한 것 같아 고개를 들고 물었다. “뭐라고요..?” 전북망은 왕청여의 물음을 무시한채 여전히 차가운 눈빛으로 왕청여에게 물었다. “그래서 당신이 그녀에게 뭐라고 했소? 그녀는 또 뭐라고 했소? 왜 장군부에 온 건지 말했소?”“그녀는...”왕청여는 전북망의 표정을 보더니 오히려 마음이 가라앉았다.“그녀가 날 모욕했을 뿐만 아니라 부군도 모욕했습니다. 그녀는 부군을 자기가 버린 쓰레기라며 내가 마침 주워 갔을 뿐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내가 화를 못 이겨 그녀와 몇 마디 다투었습니다. 하지만 똥물을
전북망은 왕청여의 고백을 들었지만 마음속으로는 조금도 기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왕청여에 대해 제대로 잘 알지 못하는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가 애초에 방 씨 가문에서 왕청여를 집으로 돌려보내 다른 가문으로 시집을 가도 된다고 했던 것도 그녀의 성격이 온화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도 잘 알 수가 없었다. 집사와 몇 명의 호위는 모두 돌아오지 않았다. 피해자가 협상하지 않겠다고 하면 때린 사람과 지시한 사람을 엄벌에 처할 수밖에 없었는데 집사는 자신이 내린 명령이라고 자백해서 왕청여를 보호했다. 경조부에선 그들은 모두 수감했으니 형사 부분은 해결된 셈이지만 손발이 잘린 사람이 치료가 필요하기에 여전히 의료비를 청구할 수 있었다. 왕청여는 하루빨리 이 일을 끝내고 싶어 그가 생떼를 부리기 전에 은 천 냥을 보냈고, 이 사실을 알게 된 노부인은 왕청여를 꾸짖었다. “정말 손발이 잘린 건지 사람을 보내 확인해보기는 했느냐? 속임수일 수도 있지 않느냐? 그가 우리 장군부에 똥물을 뿌린 주제에 자기가 먼저 고발을 하다니? 게다가 손과 발이 부러졌다고 해도 기껏해야 골절한 것뿐이지 아니냐? 치료하는데 백 냥도 안 들 텐데 천 냥이나 주다니. 쉽게 돈을 받았으니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와서 장군부를 협박하지 않겠느냐?” 그러자 왕청여가 말했다. “어머님, 화내지 마십시오. 다시는 우리를 협박하러 올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 사람은 분명 송석석이 보낸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리고 이방이 사과만 하면 끝날 일입니다.” “뭐야? 그날 똥을 뿌리러 온 자들은 송석석이 보낸 것이라는 거냐?” 노부인은 화가 나서 미간을 찌푸렸다. 왕청여는 그날 저택 앞에서 송석석을 본 일을 꺼냈다. 그러자 노부인이 너무 격노해 말을 다 더듬을 정도였다. “그.. 그녀는 이미 왕비가 아니냐? 그런데 왜 우리 장군부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 거냐? 우리 장군부의 사람들이 모두 죽어야 그녀의 속이 시원하기라도 한단 말이냐?” 시어머니가 송석석을 꾸짖는 것을
전북망은 다시 이방을 데리고 전강후부로 갔다. 이번엔 많은 선물을 들고 문 앞에 무릎을 꿇고 뵙기를 청했다. 운이 좋은 건지 전강후가 저택에 없어 노부인이 알고 그들을 들여보냈다. 이방은 냉담한 표정으로 사과를 할 기색이 전혀 없었다. 하지만 전강후부 노부인은 개의치 않은 듯 하인에게 차를 내오라고 분부했다. 노부인의 며느리와 손자며느리, 그리고 증손자며느리는 옆에 서서 모두 적대시하는 눈빛으로 이방을 바라보았다. 전북망은 무릎을 꿇고 인사를 건넸다. “저 전북망이 노부인을 뵙습니다. 부디 건강하길 바랍니다.” 이방도 내키지 않았지만 무릎을 꿇고 면사에 가려진 입이 막힌 듯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노부인은 그들을 일으켜 세우고 앉으라고 했다. 전북망은 황송해서 사과부터 했다. “노부인, 그날 제 안사람이 무모하게 말을 해 노부인을 노엽게 했으니 부디 용서해 주십시오.” “뭐가 무모하단 겁니까? 그건 분명한 악담입니다.” 그러자 옆에 있던 노부인의 손자며느리인 진 씨가 입을 열었다. “맞습니다. 그날 저희가 들어가서 기부를 청할 생각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단지 노부인께서 지쳐 장군부에 들어가 물을 한 잔 얻어 마시려고 했을 뿐입니다.” “그런 게 이부인께서 만나자마자 늙은 거지라고 막말을 하던데 저희가 무엇을 구걸했습니까? 당신들은 또 무엇을 베푸셨습니까?” 노부인의 손자며느리들은 잇달아 마음속에 품고 있던 원한을 쏟아냈다. 그들은 노부인도 좋은 일을 하는 것인데 이방에게 그런 거북한 말을 들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전북망은 이번에도 노부인을 만났지만 용서를 받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이방을 한 눈 보며 그녀에게 사과를 하라고 눈짓을 했지만 이방은 본 척도 하지 않고 전강부의 부인들이 뭐라고 하든 그냥 멍하니 앉아 있었다. 이방은 자신이 전북망과 함께 온 것만 해도 큰 타협을 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됐다.” 노부인은 천천히 말했다. “손님이 계시니 무례하게 굴지 말 거라.” 노부인이 말하자 모두 입을 다물었다
이방은 얼굴색이 급격하게 어두워졌다. 노부인의 말은 그녀 마음속의 급소를 정확히 저격한 것이다. 그녀는 확실히 송석석을 이기고 그녀보다 강하다는 걸 증명할 수 있는 기회를 기다리고 있었다.그런 생각은 밤낮으로 이방을 괴롭혔고 마음속의 화는 그녀를 편히 쉬지도 잘 먹지도 못하게 했다.‘내가 매일 미워하는 사람이 날 조금도 개의치 않는다고? 그럴 리가 없어.”이방은 주먹을 불끈 쥐고 말했다.“그럼 노부인께서는 극도로 허위적인 사람을 본 적이 있습니까? 다른 사람의 공을 짓밟고 올라가는 사람, 부친과 오빠의 전공을 모두 빼앗고도 만족을 하지 않는 사람, 그리고 전우의 생사를 안중에 두지도 않고 전우가 포로에게 잡혀 학대를 당하는 걸 손 놓고 지켜만 보는 사람을 본 적이 있습니까? 그런 사람이 왕비가 되다니 노부인께서는 하늘이 공평하다고 생각하십니까?”그러자 노부인이 가볍게 웃었다.“이부인의 마음속에만 사는 사람을 내가 어떻게 볼 수 있단 말입니까?”이방은 안색이 좋지 않았다. 면사로 얼굴을 가리고 있어도 그녀의 분노를 느낄 수 있었다.“노부인께서는 제 말을 믿지 않으시군요.”“내가 이부인을 믿든, 믿지 않든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건 이부인께서 그걸 굳건히 믿고 그로 인해 자신을 괴롭히고 있다는 것입니다. 당신은 행복하지 않아 보니다. 온몸에 악기로 가득 차 있으니까요. 당신은 매일 자신을 위해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이렇게 누군가를 위해 마음속의 분노를 키우다 보면 언젠가는 당신을 삼킬 것입니다.”그러자 노부인은 걱정을 무시한채 손을 내저었다.“됐습니다. 나도 나이가 들어서인지 쉽게 지치는군요. 당신이 그날 나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나지도 않고 전강후부 사람들도 기억을 하지 못할 겁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이부인께서 오늘 전강후부에서 나가는 모습을 본다면 더 이상 장군부를 곤란하게 하지 않을 겁니다.”전북망은 긴장했던 마음이 드디어 내려앉았다. 그는 이방이 그런 말을 해서 노부인께서 화를 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다행히도 노
전북망이 9품 경위로 강등되었다는 소식은 끝내 숨기지 못하고 노부인의 귀에 들어갔다. 사실을 알게 된 노부인은 가슴을 치며 통곡했다. 노부인은 이방 그 재수 없는 년을 집에 들여 전북망의 앞길을 끊었다며 욕설을 마구 퍼부었다. 노부인은 사람을 보내 이방을 불렀지만 이방은 전혀 상대하지 않고 노부인이 보낸 하인을 내쫓았다. 노부인은 화가 나서 침대를 치며 눈물 콧물을 흘리며 전북망에게 통곡했다. “애초에 왜 저런 여자를 집에 들인 거냐? 저 년 때문에 가문이 불행해진 것 아니더냐?” “너희들이 결혼하기 전에 이방이 날 찾아와서 뭐라고 했느냐? 앞으로 너희 두 사람의 앞길은 걱정할 필요 없다며, 장군부에 너희 두 사람만 있으면 앞으로 높은 지위에 오를 수 있다고 하지 않았느냐? 그런데 지금 넌 9품 경위로 강등되어서 순찰병 노릇이나 하고 있는 마당에 미래는 무슨 미래냐?” 강등되는 것은 조정에서 처음 있는 일은 아니었지만 전북망처럼 단번에 9품으로 강등되는 경우는 없었다. 지금은 하층 관리조차도 그를 업신여겼다. 전북망은 조용히 옆에 앉아서 지난날의 일을 생각하니 평생이 지나간 것 같이 길게 느껴졌다. 그는 이방을 데리고 장군부로 돌아왔을 때 정신이 하도 없어 어떤 상황이었는지 생각이 나지도 않았다. 단지 송석석에게 한 단 한 말만 기억이 났는데 어머니도 이방을 좋아하고 앞으로 이방과 아이가 생기면 그녀에게 맡길 것이라고, 그리고 안주인으로 서의 권력을 빼앗지 않을 것이라고 했던 말이 기억났다.그땐 그는 자신이 할 만큼 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돌이켜보니 그런 자신의 행위가 우습기 그지없었다. 그는 자신의 행위가 부자에게 동전 하나를 주면서 고마워하라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그는 자신이 송석석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단지 그녀가 무술을 배우러 갔었다는 것만 알고 있어 그런 귀한 집의 아가씨가 무슨 재주를 배워오겠냐며 그녀를 무시했다. 그리고 이방이 전쟁터에서 여인에 관한 말을 할 때 그는 세상에 이렇게 독립적이고 강한 데다
언제부턴가 이방이 전장에서 서경에게 포로로 잡혀 모욕을 당했다는 소문이 떠돌기 시작했다. 남강전장에서 돌아왔을 때도 비슷한 이야기가 있었지만, 그땐 사국에 잡혔다고 했지만 금방 잠잠해졌다.전강후부에 사과하고 돌아온 이후로는 장군부 앞에 오물을 던지는 일은 없어졌다. 하지만 이방이 포로로 잡혀 모욕당했다는 이야기는 끊이지 않았다. 그 소문을 거세져 며칠 만에 온 진성을 휩쓸어버렸다. 그러니 외부에 전해지는 것은 시간문제였다.북명왕부에서도 이 이야기로 시끌벌적했지만 송석석조차도 의아해했다. 너무 오래된 일인데 왜 갑자기 퍼지게 된 걸까? 군에서 기밀이 새어 나간 걸까? 현갑군은 아주 철저하게 관리되어 있어 이 소문이 밖으로 새어나갈 리가 없었기에 사여묵이 대리사에서 돌아오자마자 송석석이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사여묵은 차를 한 모금 마시더니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이건 누군가가 일부러 퍼뜨린 소문인 것 같소. 저도 어제 막 소식을 들었는데 서경의 삼황자가 태자로 책봉되었다 하오.”“서경 삼황자 말입니까?”남강 전장에서 그가 태자대신 복수를 하기 위해 왔던 것을 떠올렸다.삼황자는 이방을 증오하고 있었다. 그는 녹분성에서 백성들이 학살당한 일도 기억하고 있었다. 이 일은 두 나라가 극비로 숨겨야 할 일이나, 삼황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두 나라의 국경선에 변란이 생기는 것은 시간문제인 것 같소."송석석은 마음이 무거워졌다. 왜냐하면 그녀의 외조부 일가가 그 국경을 지키고 있기 때문이었다. 일곱째 삼촌은 이미 하늘나라로 가셨고 셋째 삼촌도 팔이 부러졌다. 소씨 가문의 양자 여덟째 삼촌만이 외조부를 도울 수 있었다. 그로 인해 소씨 가문 일가는 모두 고통에 시달리고 있었다.송석석이 이미 너무 오랫동안 그들을 보지 못했다.만약 다시 전쟁에서 벌어졌던 일을 꺼낸다면...송석석은 상상조차 하기 힘들었다.서경은 매우 강력했다. 비록 상국도 만만치 않으나, 남강 전쟁 이후 군사력은 큰 타격을 입었다. 지금 왕표가 북명군과 송
그 후로 며칠 지나자 이방에 대한 소문은 다행인지 더 이상 퍼지지 않았다. 차관이나 주막에서 이야기하던 자들도 이제는 입을 모은 듯했다.남강 전장에서 병사들이 포로로 잡힌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 군도 많은 사국 병사들을 포로로 잡아, 결국 포로를 교환했다는 이야기였다. 포로들이 학대당하거나 상국 병사들이 모욕을 당한 일은 아무도 하지 않았다.작은 해프닝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정세에 민감한 사람들은 이 사건이 단순하지 않음을 느낄 수 있었다. 백성들은 서경의 병사들도 남강 전투에 참전해 사국을 도왔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이는 군사 기밀이었고 비밀로 유지되어야 했다.혹여 아는 사람이 있다고 해도 극히 소수일 테고, 이렇게 널리 퍼질 수는 없었을 것이다. 누군가 일부러 퍼뜨리지 않는 이상 말이다.북명왕부의 군병이 세워졌다. 그중 200여 명은 북명군으로, 사여묵이 황제께 청하여 돌려받은 자들이었다. 이들은 원래 왕부의 병사들이어서 조정에서 식량을 지급받지 않았다. 황제께서는 이를 허락하셨고, 어차피 200 정도는 큰 문제가 아니었다. 그밖에 100여 명은 송씨 가문 출신으로, 모두 송석석의 부친 송회안의 병사들이기에 모두 함께 왕부로 돌아왔다. 거기에 염 선생과 몽동이가 인원을 더 충원해 총 500명이 모였다. 부병들의 거처는 왕부의 빈터에 지어졌고, 후원과는 상당히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었다. 순찰과 보초는 몽동이가 맡았다.그리고 매일 근무를 서는 군병들 외에는 모두 훈련을 받아야 했다.훈련이라지만, 사실은 무예를 가르치는 것이었다. 대부분이 전장에 나갔던 경험이 있지만, 전장에 나갔다고 해서 모두 무예를 익힌 것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500명은 적은 수이지만, 정예가 된다면 위급한 순간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송석석도 왕부를 맡기 시작했다. 노 집사는 각 분야의 우두머리와 주인들을 왕부로 불러 왕비에게 인사를 올리게 했기에 왕비가 그들을 관리하게 되었다.송석석은 형식적으로 대하지 않았다. 그녀는 일일이 눈을 맞추며
“황후가 이렇게 어리석은 사람이 아닐 텐데요. 예전엔 아주 총명했습니다.” 태후는 밥상에서 일어나 단목 원형 의자로 돌아가 앉았다. 배가 부르니 편안했다. “똑똑한 사람이 갑자기 어리석어지는 것은 한복판에 서있어 아무것도 제대로 보이지 않기 때문이지요. 그저 자신의 이익만 보고, 그 이익을 위해 누군가를 희생해야 한다면 합리적이라고 생각하지요.”“네, 어마마마 말씀이 맞습니다.” 숙청제는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태후는 그에게 앉으라 하며 물었다. “지금 여학 모집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숙청제가 대답했다. “저는 아주 좋은 일이라 생각하옵니다. 백성들이 자신과 권력자들 간에 차이가 그리 크지 않다고 느낄 것이고, 민심도 많이 좋아질 것입니다.”그는 당연히 큰 틀에서 생각했고, 여자 백성들의 교육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다.“그럼 세상의 학자들이 이것으로 인해 반발하지 않을까요?” 태후가 또 물었다.숙청제가 웃으며 말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겠습니까? 어떤 학자들은 애초에 신경도 쓰지 않거나, 여자들은 총명하지 않다고 생각하여 장난으로 여기기도 합니다. 또 어떤 학자들은 여자들도 총명하여 읽고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마음이 넓은 사람들이어서 심지어 이 일을 지지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점은 여자들은 과거 시험에 응시할 수 없으니 그들에게 전혀 위협이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학자들이 반발하면 시험 자격이 취소될 터인데, 몇몇 세상에 화를 품고 있는 자들이 아니고서야 아무도 자신의 앞길을 걸고 도박을 하진 않을 것입니다."태후는 천천히 웃으며 말했다. “만약 이렇게 간단한 도리였다면, 황후가 어떻게 모를 리가 있겠습니까? 애씨 가문 앞에서 이런 말을 한다면 그것도 결국 애씨 가문을 바보 취급 하는 거나 다름없습니다.”숙청제의 얼굴을 더욱 엄숙해졌다. 어머니가 이렇게 단호하게 누군가를 논한 적이 없었다. 특히 황후에게는 항상 어느 정도 배려를 해왔다.숙청제는 알고 있었다. 어머니께서는 황후가 여학을 건드려 다른 사람
궁문이 열리자, 오 대반은 급히 들어가라고 소리쳤다. 란주 상궁은 급히 들어가 황후를 부축해 일으켰다.“마마 손에 상처를 입으셨습니다.” 란주 상궁은 급히 손수건으로 피를 닦으며 궁녀들을 불러 상처를 씻기게 했다.제 황후는 온몸에 힘이 없이 의자에 앉아 겁에 질린 표정으로 말했다. “태비를 버리겠다고 하셨어, 폐하께서 태비를 버리겠다고.”“폐하께서 잠시 노하셔서 그런 겁니다. 어떻게 태후를 버리시겠습니까? 염려 마십시오.” 란주 상궁은 시중을 들던 궁녀들을 나가게 하고, 창백한 얼굴을 한 마마를 보며 한숨을 내쉬고 말했다. “마마께서 태후께 그런 말씀을 하시면 안 되었습니다. 그리고 늙은 영태비의 일도 제가 말씀드렸지만 마마께서 듣지 않으셨습니다.”“나는 이게 뭐가 잘못된 일인지 이해할 수가 없다!” 제 황후의 눈에 분노가 서렸다. “두 일은 잘못하긴 했지만 아주 작은 잘못이고, 그렇게 중요한 일도 아니란 말이다.”란주 상궁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에게 태후와 황제의 말은 들리지 않았다. 그녀는 지금 송석석을 어떻게 공격해야 대황자를 위한 것일지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했다.하지만 이건 잘못된 길이다.“마마, 반드시 송석석을 적대시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녀를 끌어들이는 것도 방법입니다. 그녀는 후궁이 아니잖습니까.” 란주 상궁은 조심스럽게 설명했다. “북명왕은 그녀의 말을 잘 따르니, 만약 그녀를 끌어들인다면 북명왕도 자연스레 대황자의 편에 서게 될 것입니다.”“하지만 폐하께서 항상 북명왕을 경계하시는데, 내가 그들을 끌어들이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건 황자께 더욱 해가 되지 않겠는가?”“마마님, 계속 지나간 일을 생각하지 마시고, 흘러가는 것에 맞추시어야 합니다. 지금 폐하께서는 북명왕을 중용하시고, 비록 형제간에 갈등이 있지만 국사 방면에서는 그를 의지하고 계십니다. 북명왕과 왕비의 능력이 뛰어나니, 그들 부부가 폐하께 가장 좋은 도움이 될 것이옵니다.”황후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이게 내가 가장 원치 않는 상황이야. 난 송
숙청제는 몸을 살짝 숙였다. 눈에는 분노가 번뜩였다. “짐이 네게 아군여학을 폐지하라는 명을 했는가? 여학은 어마마마가 창립한 것이고, 많은 유명한 가문의 부인들을 모을 수 있어 짐에게는 이로운 점이 더 많은데, 왜 폐지해야 하느냐?”황후는 혼란스럽다는 듯 말했다. “하지만 폐하께서도 송석석과 그들이 지나치게 가까이 지내는 것은 원치 않으신 것 아닙니까?”숙청제는 그녀를 똑바로 응시하며 한 마디 한 마디 말했다. “황후는 송석석을 대신할 능력이 없는가?”황후는 눈을 크게 뜨고 자신의 귀를 믿을 수 없다는 듯 말했다. “폐하의 말씀은 제가 여학에 가서 사람들을 끌어들여야 한다는 말씀이십니까? 혹은 부인들을 모아야 한다는 겁니까?”그녀는 황후다. 그녀가 여학에 가는 것이 무슨 망신인가? 그리고 그 부인들은 왜 황후라는 사람이 모아야 한단 말인가? 그녀들이 와서 아첨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니던가?이것은 신분을 어지럽히는 일이 아닌가?숙청제가 차갑게 말했다. “황제의 권력은 보기에는 높고 위엄 있어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 그렇게 높으면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밑에서 무너져 깨져버릴 것이다. 짐은 황제로서 그들에게 많은 일을 양보할 수밖에 없다. 눈을 감아주고, 심지어 때로는 상을 주어 좋은 인상을 남겨 그들이 스스로 허리를 숙여 이 계단을 인지할 수 있도록 해야만 한다. 헌데 황후는 왜 모든 사람이 네게 고개 숙여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네가 황후이기 때문인가?”황후는 말문이 막혀 순간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황후는 사실 정말 모르는 것이 아니라, 짐을 위해 생각할 줄 모르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네 사촌 동생을 방시원에게 시집보내 대황자를 위해 무장 세력을 끌어모으지 않았을 터.”황후는 얼굴색이 변하며 급히 해명했다. “폐하, 저는 그런 뜻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그저 방시원이 충직한 사람이라 좋은 사위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여 사촌 동생을 시집보내려던 것뿐입니다.”“황후 스스로는 믿는가?” 숙청제가 차갑게 웃었다.황후가 대답했다. “저
황후를 내쫓은 태후는 궁 밖으로 사람을 보내 송석석에게 령을 전했다. 아군서원을 어떻게 할 것인지 그녀가 스스로 결정하면 된다. 외부 사람의 말은 아무것도 들을 필요가 없었다.그와 동시에 숙청제에게도 사람을 보내 저녁 식사를 하러 오시라고 전했다.복구안은 그녀에게 차를 한 잔 우려주며 말했다. “노여워 마십시오. 그럴 만한 가치가 없습니다. 황후께서 모르신다면 알려드리면 되지 않습니까.”“내가 몇 년 동안 가르친 것이 적었는가? 알아들은 게 있긴 한가? 애씨 가문은 어찌하여 다시 그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것이야?” 태후는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영태비를 못살게 구는 일까지 하다니, 연왕께서 연유를 찾지 못하여 밖에 나가 이야기할까 걱정이네.”연왕은 연주에 돌아온 뒤, 상처를 입고 더욱 잔인해졌다. 만약 늙은 영비가 처참하게 세상을 뜬다면, 연주 백성을 선동할 기회와 구실을 주는 셈이다. 아주 적절한 시기임이 틀림없다.도저히 어찌할 도리가 없다면, 황후는 다른 사람으로 바꿔야 한다.어서방, 숙청제는 지안궁의 사람이 태후께서 저녁 식사를 하러 오라는 소식을 전하려 왔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숙청제는 머리가 지끈거렸다. 식사를 하러 오라니, 식사라니.어쩔 수 없이 오 대반을 불러 누군가 태후의 기분을 상하게 한 것은 아닌지 알아보라고 했다.오 대반도 잘 아는 사람이라 복구안을 찾아가 물으니 일이 훤히 다 드러났다.두 사람에게 이 과정은 아주 습관적이었다. 태후께서 황제께 식사를 하자고 하시면 황제는 먼저 물어 준비를 해야 했다.오 대반이 돌아가 자초지종을 이야기하고 결론을 말했다. “하나는 여학을 위해 고자질 한 일이고, 둘째는 늙은 영태비의 병으로 태후께서 기분이 상하시어 황후를 꾸짖으셨는데, 아직 노여움이 풀리지 않으신 것일까 생각됩니다.”숙청제는 그가 반복하는 말을 듣고 화가 나서 손까지 떨렸다. “짐이 그녀의 외출을 금한다. 아직도 잘못을 뉘우치지 않았단 말인가? 여학과 소주방의 일은 원래 하루도 관여하지 않았는데, 지금 고자질을 하고
그 말을 들은 태후는 눈동자를 굴리더니, 입가에 웃음을 머금게 되었다. “내가 기억하기로는 황후가 폐하께 시집가기 전까지만 해도, 애 씨 가문은 진성을 뒤흔든 재녀를 둔 것으로 기억하는데... 황후는 그동안 그렇게나 많은 학문을 닦고 나서도 어떻게 이제 와서는 여자가 책을 읽는 게 맞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이오? 그럼 왜 방금 학문은 이치를 깨닫는 것에 좋다고 말한 것이오? 황후가 한 말은, 앞뒤가 맞지 않는 것 같은데?”태후의 말에 황후는 멍해졌다. “저... 저 그런 뜻이 아니옵니다. 여자가 학문을 잘 닦지 못한다는 뜻은 아니옵니다. 명문 집안의 자녀들이라면 당연히 학문을 닦고 더욱 견문을 넓히는 것이 좋긴 합니다. 필경 극소수의 명문 집안은 예교 제약이 있기에 학문을 통해서라도 시야를 넓힐 수 있사옵니다.”“황후, 내가 보기에는 황후는 예교 규칙을 입에 달고 다니는 것을 매우 좋아하는 것 같은데, 혹시 예교 제약에 얽매이는 것을 좋아하는 것이오?”그 말에 황후는 매우 의아해했다. “하지만 어머니, 이것은 여자로 살기 위한 근본인데 어떻게 좋아하고 좋아하지 않고를 결정할 수 있겠사옵니까? 정직한 사람이라면 당연히 스스로 준수해야 합니다. 과거 제가 상나라 율법을 배울 때와 마찬가지로, 백성을 단속하면서 제약을 하게 되면 악념을 품고 있는 사람들은 틀림없이 좋아하지 않을 테지만 정직한 백성들은 그것을 구속이라 느끼지도 않을 것입니다.”그러자 태후가 웃으며 말했다. “황후의 생각은 이러하였군. 그래, 좋소.”태후의 칭찬을 알아채지 못한 황후는 여전히 내심 의아했다. “어머니, 제 말이 틀리기라도 한 겁니까?”태후는 미소를 띤 채 말했다. “우리끼리 간단히 하는 잡담인데, 뭐가 옳고 그른 게 있겠는가?”“혹여 어머니께서는 저랑 다른 생각을 하고 계신 겁니까?”그러나 황후는 여전히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 “내가 어떻게 생각하든, 다른 누가 어떻게 생각하든 하나도 중요하지 않노라.”그 말을 이해하지 못한 황후는 되물었다. “그럼 대체
한편 지안궁에서는, 방금 영태비로부터 보고를 전해 듣게 된 황태후는, 결국 한숨을 내쉬었다. “알겠노라. 어의더러 최선을 다해 치료를 도우도록 하여라. 온갖 좋은 약재들을 다 쓰도록 하고.”“네!”고 공공은 눈시울을 붉히며 대답했다. “감사드립니다, 태후.”“그나저나 이 일을 왜 황후한테는 보고하지 않은 것이냐?”이내 태후가 담담하게 물었다. “사실 이미 가서 보고를 드리긴 했지만, 황후 마마께서는 이 정도 시점이면 당연히 이런 일이 발생하게 될 거라고 크게 개의치 않아 하며, 사람을 시켜 음식이라도 보내라고 하셨사옵니다. 그러고 나서 영태비를 안심시키면 뒷일은 알아서 잘 수습할 것이라고 하셨는데, 저는 감히 이 말을 그대로 영태비께 전해드릴 용기나 나지 않았사옵니다.”그 말에 태후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래, 준비해야 할 건 철저히 잘 준비해야겠지만 일단은 최선을 다해 치료하는 걸 우선으로 생각하거라.”그러자 고 공공은 울먹이며 말했다. “태후께서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저 이젠 안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의가 가서 직접 치료를 해줄 수 있으니 영태비도 이젠 좀 편하게 지내실 수 있을 것입니다.”“이제 그만 가보거라. 나중에 때가 되면 애 씨 가문도 병문안을 한번 가보거라.”태후가 분부를 하였다. 고 공공은 정중하게 무릎을 꿇고는 인사를 표한 뒤 자리를 물러섰다. “복구안.”이내 태후는 잔뜩 화난 말투로 소리쳤다. “지금 태병원으로 향하여, 황후가 혹시 어의가 영태비를 진료하는 것을 방해하지는 않는지 알아보고 오너라.”복구안은 명령을 받들자마자 걸음을 옮겼고, 그가 입구에 도착하자마자 마침 황후가 도착했다는 보고를 듣게 되었다. 그 말에 그는 자동적으로 뒤를 돌아 태후를 보았고, 태후는 그더러 밖을 나서라고 눈짓을 하였다. 뒤이어 황후는 란주와 함께 궁전에 들어서고는 문안 인사를 드렸다. “태후 마마, 황후가 만나 뵙습니다.” “황후는 무슨 일로 찾아온 건가?”그러자 황후는 몸을 반듯하게 펴고는 활짝 웃으며 말했
시만자가 대꾸했다.“하지만 그들이 낸 등록금으로 얼마나 버틸 수 있는데? 그리고 평범한 백성 집안의 딸은 전부 생계를 도우러 나가야 해. 공부는 돈을 버는 게 아니잖아.”“은자가 적지 않아서 1~2년은 버틸 수 있고,” 송석석이 생각해 보더니,“등록금을 면제해 주는 건 안 되지만 적게 걷을 수는 있지. 반나절 수업하고 반나절은 돌아가서 집안일을 도우라고 하는 거야.”“또 상인 집안도 있잖아? 그들은 은자에 인색하게 굴리 없고, 무슨 예법이니 법도도 상인 집안은 그렇게 살벌하지 않아.”시만자가 고개를 끄덕였다.“확실히 그렇긴 하지. 명문이나 황실을 대상으로 한 상인을 제외하고 일반 상인 집안은 여자들이 나와서 장사하기도 하니까.”국태 부인도 말을 보탰다.“보통 백성도 올 사람이 있어. 심 선생의 이름을 보고 오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다른 쪽으로는 많은 집에서 아들을 공부시킬 돈은 없지만, 만약 딸이 여학에 가는데 등록금이 싸면 딸을 보내길 원할 게 틀림없어. 딸이 집에 와서 형제에게 글을 가르치게 한다면 충분히 가치가 있지.”송석석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마음 속으로 태후 마마의 이번 계책은 상대의 계략을 역으로 이용하는 것으로 탄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태후 마마는 설마 황후 마마께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시는 걸까? 황후는 그녀가 명문세가 사람들과 빈번하게 왕래하지 못하게 하고, 금족령이 풀리자마자 부인들에게 자신을 알현하라는 명목으로 부른 것은 자퇴를 선동하기 위해서였다.황제가 자신을 책망하지 못하도록 누군가 자퇴한 뒤, 황후가 유난을 떨며 여학을 권한 것은 사실 모두에게 자퇴 결심을 더욱 굳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황후는 자신의 뜻대로 되었다고 생각하겠지만 사실 이는 태후와 송석석이 하고 싶었던 대로였다.그래도 좋다. 각자 원하는 것을 얻었고, 다들 기쁘니까 말이다.‘단지 폐하는 그렇게 기쁘지 않을 것 같네, 하여튼 이게 얼마나 좋은 기회야.’아군여학이 민간에 학생을 모집한다는 얘기가 황후 귀에 전해지자 황후는 체통
송석석은 답장을 쓸 수 없었다. 그들은 거주지가 일정하지 않았기 때문인데, 그저 그리움만 가슴에 품은 채 그가 돌아오면 들려주는 수밖에 없었다.올 설은 화려하게 지낼 모양인지 그녀가 경위부로 돌아가 다시 관복을 입지 못하게 하려고, 보주는 새 옷을 전부 그녀에게 한번씩 입히지 못해 안달이었다.매일 아침 일찍 보주는 그녀를 화장대 앞에 억지로 앉히고 이런저런 화장법을 바꿔가며 그녀를 예쁘게 꾸몄다. 목 승상 부인은 여자가 피부가 그렇게 희고 부드럽지 않아도 아주 예쁘다고 말했다.송석석의 피부는 희고 부드럽지 않았는데 매일 밖에서 뛰어다니다 보니 바탕이 아무리 좋아도 규방 여자의 새하얀 피부색은 잃어버릴 수밖에 없지만, 붉게 윤기가 도는 구리빛 피부는 가장 아름답게 핀 복사꽃 같고 잘 익은 사과 같기도 했다.황후는 섣달 8일에 금족령이 풀려 수도 내외명부 부인들에게 입궐하여 알현하라고 선포했다.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항간에 소문이 돌았다. 그 집 아가씨는 원래 위국공 집안의 조카와 혼인할 예정이었으나 여학 사건때문에 혼사가 어그러졌다는 것이었다.따라서 곧 개학을 앞둔 시점에 자신의 딸을 아군여학에 보내야할지 말지 망설이는 사람들이 많아졌다.일부는 결단을 내려 국태부인에게 가서 딸을 자퇴시켰다.한 명, 두 명, 세 명….자퇴하는 사람이 점점 많아져 고작 2~3일만에 무려 절반이 자퇴하겠고 했다.황후가 이 얘기를 듣고 여러 부인들에게 입궐하라고해서 설득했다. 여자에게 평판은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니며 시집을 가는 것도 아주 중요한 일은 아니므로, 북명왕비처럼 그렇게 자기 주관이 있고 남자에게 의지하지 않아야 한다고 했다.‘이런 말이라면 차라리 하지를 말지, 이 말을 듣고 명문세가 부인들이 속으로 구시렁거리지 않을 수 있겠어?’상국엔 송석석 하나 뿐이라 흉내를 낼 수도 없고, 자기 딸이 어떤지 자기가 모를까? 전쟁에 나가 병사를 관리할 능력은 절대 없고, 바퀴벌레만 봐도 소리를 지르고 난리를 치는데 좋은 혼처라도 기대지 않으면 어떻게 평생을 책임
송석석이 저택으로 돌아오자 염선생이 사여묵에게 온 서신을 그녀에게 건내주며 눈을 가늘게 뜨고 웃었다.“오늘 막 집을 나서사지마자 왕야의 서신이 도착했습니다.”송석석은 눈을 빛내더니 서신을 받아들고 서둘러보기 전에 일단 물었다.“염선생은 어째서 가족들과 설 쇠러 집에 안 가?”“곧 돌아가서 가족들과 연말연시를 맞을 참입니다. 왕비 마마께 직접 서신을 전해드리려 기다린 거예요.”염선생이 놀리는 눈빛으로,“왕비 마마의 기뻐하시는 모습도 보고 싶고, 왕야께서 부부 간의 배갯머리 송사 말고 다른 얘기도 하셨나 궁금하기도 하구요.”송석석은 기쁨을 감출 생각이 전혀 없었다.“이건 장군이 보낸 첫 서신이니까 내가 먼저 봐야지.”그녀는 서신에 분명 상황을 조사한 것이 있을 게 분명해서, 나중에 서신을 염선생에게 훑어보게 할 생각이었다.하지만 그녀가 서신을 개봉해 보니 3장으로 나눠져 있었다. 2장은 그녀에게 쓴 것이고 다른 1장은 조사 상황을 설명한 것이었다.염선생이 웃으며 말했다.“왕비마마께 쓰신 건 빼곡하게 2장이나 되는데, 조사내용은 고작 한 장이라니, 이번에 지방까지 가셔서 왕야께서 마음 고생이 심하신가 봅니다.”송석석은 쑥스러워하며 재촉했다.“어서 봐, 방금 쓱 훑어본 거라 아직 구체적인 내용은 모른단 말야.”염선생이 조사 내용을 적은 한 장을 바로 읽기 시작하더니 다 읽은 뒤 송석석에게 말해주었다.“노주에 도착한 뒤 한동안 은밀하게 조사한 결과, 어느 마을에 전부 젊고 건장한 장정들만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노인도 아이도 없고 평소 농사를 짓는데 현지 사람들 말에 따르면 전에는 남녀노소가 다 있던 평범한 마을이었으나 몇 년전 역병이 돌더니 노인과 아이들이 다 죽고 점점 타지 사람들이 와서 살더니 오랜 세월 발전해서 이렇게 커진 것이라고 합니다. 그 마을은 이미 촌락 규모를 넘어서 거의 5천명에 달한다고 하는 군요.”“5천명?” 송석석은 듣고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설령 마을이 커 봤자 수백 명, 천여 명이면 이미 인구가 많다고 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