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여묵은 선물 꾸러미를 챙기면서 만종문의 일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사람이 송석석이라는 사실에 더없이 기뻤다. 하지만 이제 그녀의 곁에 자신이 있기에 그들이 더 이상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다. 무엇보다도 오늘 꼭 사백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었으니, 그것은 송석석더러 한 달에 두 번은 반드시 사문에 편지를 보내도록 약조하려는 것이었다. 기쁜 소식이든 슬플 일이든지 막론하고 모조리 알릴 것이어서 힘들게 발걸음할 일이 없도록 할 것이다.마차 세대에 선물을 가득 싣고 나니 서우, 보주와 함께 나오는 송석석이 보였다. 차분하고 담담한 표정의 그녀는 보랏빛 원피스를 입어 피부가 더욱 하얗고 투명해 보였다. 머리에 작약 두 송이가 꽂혀 있었는데, 그 꽃보다 훨씬 아름답게 느껴졌다.사여묵은 갑자기 어젯밤을 떠올랐고 온몸의 피가 한 곳으로 몰려드는 것을 느꼈다. 깊어진 그의 눈빛에 알 수 없는 감정으로 가득 차 있었다. 고개를 든 송석석이 그와 눈이 마주쳤다.이 눈빛!이틀 밤 동안 바라봤던 눈빛이라 단번에 알 수 있었다.그는 마치 아기가 처음 우유를 맛본 후 멈출 수 없는 상태에 빠진 것처럼 끊임없이 그녀를 괴롭혔었다.어느새 얼굴이 붉어진 송석석은 그의 시선을 마주할 수 없었다. 매번 느끼는 거지만 그의 시선만으로도 단숨에 심장이 터져버릴 것 같았다.사여묵은 그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다가와 그녀의 손을 덥석 잡았다. “선물은 모두 준비되었소.”“네..”고개를 숙인 송석석은 고분고분했다. 방금 전까지의 침착함과 담담함은 어디가고 순식간에 수줍음으로 바뀌었다. 비록 이미 혼인을 해 가까운 사이가 되었지만 그가 손을 꼭 잡을 때면 그녀는 부끄러워 어쩔 줄을 몰라 했다.그 모습에 서우가 고개를 들고 보주에게 물었다. “고모부가 고모 손을 잡았는데 왜 고모가 얼굴이 빨개지는 겁니까?”고개를 든 보주가 송석석을 한 번 바라보았는데 얼굴이 정말로 복숭아꽃보다도 더 붉게 물들어 있었다. 보주는
잠시 멈칫하던 사여묵은 이내 기뻐하며 말했다. “내가 사부님께 벌받을까 봐 걱정하는 거요? 당신이 나를 걱정하는 게 진짜 맞소?”“당연히 걱정하지요. 혹시 사숙의 철권을 맞아본 적 있습니까?” 송석석은 봉황 같은 눈을 치켜올렸다.“맞아본 적은 없었던 것 같소.” 사여묵은 사문에서의 날들을 떠올렸다. 한 달도 채 되지 않은 짧은 시간을 거기에서 보냈고 이는 존엄과 관련된 일이기에 맞았어도 솔직하게 말할 수는 없었다.“늘 선하였습니까?” 송석석은 호기심이 발동했다. 대사형마저도 벌을 받았는데 그런 대사형보다도 더 말썽을 피우지 않았단 말인가?고개를 옆으로 돌린 사여묵은 잠시 생각하다 입을 열었다.“내가 만종문에 갔을 때 그들은 나와 어울리려 하지 않았소. 수련하는 데에만 힘쓸 수밖에 없었으니 사부께서 아주 만족해하셨소.”그의 말을 들은 송석석은 경외심에 가득 찬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모두 사숙에게 벌을 받았는데 그중 그만이 유일하게 벌을 받지 않았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이었다.무공은 역시 뛰어난 이유가 있었다.만종문에서 사숙의 매를 맛보지 못한 이는 그녀가 보기에 더할 나위 없이 뛰어난 자들이었다.그녀의 경외 가득한 눈빛에 사여묵은 턱을 치켜올리며 한껏 거만한 표정을 지었다.조금의 거리낌도 없이 말이다. 간혹 두어 번 벌 받은 것은 아예 말을 꺼내지 않은 것이 좋다 생각했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국공부에 도착했다. 진복은 황마마와 부중 하인들을 이끌고 문 앞에서 맞이하고 있었고, 시만자도 만두, 신신, 몽동이와 함께 달려 나왔다.시만자는 웃으며 송석석의 팔장을 꼈다.“드디어 왔구나. 네가 빨리 몽동이에게 한마디 해. 혼수였으면서 그날 밤 우리와 함께 몰래 도망쳐 왔으니 말이야!”몽동이는 시만자에게 왜 그 말을 지금 꺼내느냐는 눈빛을 보냈다.송석석은 웃으며 몽동이를 한 번 쳐다보고는 말했다. “그건 농담이었어. 몽동이가 어떻게 내 혼수가 될 수 있겠어?”“안될 것도 없지? 사부님에게 내쳐졌으니 말이야.” 말
사여묵과 송석석은 예를 갖추어 사부와 사숙, 그리고 여러 사형 사제들에게 인사를 올렸다. 사숙은 실눈을 뜨고 있었다. 도무지 눈을 감았는지 뜬 건지 알 수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송석석은 잘 알고 있었다. 이런 사숙이야말로 가장 무서운 상태라는 것을 말이다. 그는 지금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면밀히 감시하고 있었다.그래서 송석석은 성심껏 절을 올렸고 힘도 조절해야 했다. ‘쾅쾅’소리가 들리고 약간의 메아리까지 있어야 합격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송석석은 이전에 사숙에게 절하는 법을 훈련받은 받으며 호되게 혼난적이 있었다.사부님께 너무 건방지고 성의없이 절을 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그녀는 걷지도 못할 정도로 절을 올려서 결국 이사제가 그녀를 업어 방으로 돌아갔었다.벌을 받은 그날 밤엔 계속 머리가 어지러웠고 심지어는 이마에 피까지 흘렀다.지난 일을 떠올리니 눈물이 앞을 가렸다.한창 절을 올리고 있던 송석석은 사부와 사숙에게 고작 손을 모아 인사만 하고, 사숙에게만 절을 한 번 올리고 있는 사여묵을 발견했다. 메아리도 전혀 없어 확실하게 불합격이었다.‘큰일 났네…’송석석은 황급히 사숙의 눈치를 살폈다.‘어라? 사숙이 화를 내지 않으신다고?’사숙은 화를 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사여묵에게 미소를 지으며 만족스러운 표정을 보였다. “이렇게 멋진 가정을 이루었으니 이제야 마음이 놓이는구나.”사숙이 웃으셨다.“사부님께서 염려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사여묵은 언제든지 훈계를 들을 준비가 된 착한 모양새였다.무소위도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자리에 앉거라.”곧장 송석석을 부축한 평무종은 그녀의 이마를 문지르며 조용히 물었다. “아프지 않느냐? 어지럽느냐? 토할 것 같으냐?”“괜찮습니다.”송석석이 고개를 저으며 대답하자 평무종은 그제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송석석은 절로 벌을 받을 당시 방으로 업혀 가던 도중에 구토를 하며 어지러움을 호소한 적이 있었다. 사부님을 모셔 와 침을 맞고 며칠 동안 약을 먹고서야
임양운은 송석석이 얌전히 대답하는 목소리를 듣고 나서야 손짓하여 그녀를 불렀다.“사부에게로 오너라.”송석석이 조용히 다가가자 사부의 손가락이 그녀의 코끝에 톡하고 튕겼다.그러자 송석석이 아야 하고 외쳤다. “사부님, 아픕니다.”“벌이다!” 임양운이 얼굴을 굳히며 말했다. “그러니 누가 혼자 끙끙거리라고 했느냐! 이 벌은 가벼운 편이니라.”코끝이 아직 조금 아렸지만 송석석은 괜찮은 척을 했다.“앞으로는 절대 그러지 않겠사옵니다.”그러나 그녀의 표정을 한시도 놓치지 않았던 임양운은 내심 한숨을 쉬었다. 막내가 겪은 일들은 아직도 그를 괴롭게 했다.그는 그녀의 손을 잡고 자신의 곁에 앉혔다. “사여묵의 그 인성과 덕성은 전북망보다 훨씬 뛰어나니, 사부는 그가 너를 저버리거나 홀대하지 않을 것이라 믿는다. 하지만 세상은 쉽게 변하고, 사람의 마음도 간사한 법이니라. 예전에는 그가 너를 연모하였고, 얻지 못하니 너를 더욱 그리워하였으나, 이제 너와 혼인하였으니 싫증이 나서 변심할지도 모를 일이다. 사내는 하나도 믿을 수 없는 법이라, 너를 연모하더라도 전적으로 마음을 주지 말아야 하느니라. 알겠느냐?”그러자 오사형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맞다, 사내는 믿을 것이 못 된다. 보기 만해도 역겨울 따름이니 전적으로 믿어서는 안 된다. 또 다시 배신자가 나오면 안 되지..”“닥쳐라!” 대사형, 심청화가 그의 이마를 한 대 때렸다. 사부께서 하신 말씀은 송석석이 겁먹을 수 있어 적절치 않다고 생각하였으나 웃어른이라 반박할 수 없었다. 그런데 오사제가 사부의 말에 동의하다니 참으로 뜻밖이었다.그때 듣고 있던 시만자가 그만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같은 사내인데, 어찌하여 역겹다고 하십니까?”오사형은 성이 왕씨고, 이름은 이장이다. 그는 악기를 잘 다루었고, 악기로 사람을 죽이는 데 더 뛰어났다. 만종문에서 다섯 번째로 행하였기에 모두가 그를 오사형이라고 불렀다.시만자를 바라보는 왕이장의 얼굴에 냉랭한 기색이 가득했다. “역
평무종은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사제는 이곳을 떠나지 않는다. 사제는 이 진성에 남아 너를 곁에서 지켜줄 것이니 사제가 그리우면 언제든지 국공부에 와서 나를 찾거라.”“우리도 남겠다!”이사제가 이렇게 말하자, 모두가 자기도 남겠다며 한마디씩 보탰다.송석석은 감동받아 이사제의 품에 깊숙히 파고들었다. 오랜만에 느끼는 안정감이었다.그녀도 그들이 떠나는 것이 아쉬웠다. 그러나 사부는 냉정한 얼굴로 흐름을 끊었다.“너희들이 석석이를 평생 지켜줄 수는 없지 않느냐? 모든 사람은 결국 각자의 삶이 있는 법이니라. 게다가 진성은 결코 머물기 좋은 곳이 아니다. 설령 좋은 곳이라 해도, 우리 만종문 사람들이 오래 머물 곳은 아니니라.”임양운은 진성에 좋은 감정이 없었다. 황실 사람들에 대해서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허나 사여묵은 인품이 훌륭하고, 남강을 수복하여 국토를 완전하게 만든 사람이어서 마지못해 받아들인 것이다. 사람의 마음은 쉽게 알 수 없다. 오직 시간이 지나야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당시 사여묵은 그의 문하에 들어가고자 했지만, 임양운은 황실 사람을 제자로 받는 것을 꺼려했다. 그런데 사제가 그가 마음에 들었는지 덜컥 받아들인 것이다.처음에는 귀하게 자란 왕자라 무술을 연마하는 고통을 견딜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하여 그를 가볍게 여겼었다.하지만 매년 한 달동안 산에 올라와 사제의 지도를 받고는 경성으로 돌아가 열심히 연습하더니 어느새 무공이 매우 높은 수준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임양운은 한숨을 내쉬었다.그는 사형제들이 송석석과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사제와 사여묵에게 갔다.어찌 되었든 사여묵이 이제 그의 막내 제자를 아내로 맞이하였으니, 자신은 반쯤 장인어른이나 다름없었다. 장인어른은 사위에게 위엄이 있으면서도 어느정도의 유약함을 보여야 하니, 참으로 어려운 일이었다.사부의 위세만을 보여서는 안 되었다. 오랜 대화를 나눈 후 송석석은 사여묵과 함께 서우를 데리고 신루로 향했다. 향을 피우고 예를 올린 후에 송석석은 무릎을 꿇었
송석석의 눈가가 뜨거워졌다. ‘사부께서는 서우를 매산으로 데려가시려는 걸까?’임양운은 서우를 바라보며 의미심장하게 물었다.“왜 무공을 배우고 싶으냐?”“작은고모를 보호하기 위해서요.” 서우가 크게 외치며 대답하였다. 그러다 잠시 생각하더니 이 정도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어 덧붙였다. “그리고 조부와 아버지처럼 전장에 나가 나라를 지키고, 국토를 보호하기 위해서입니다.”그러자 임양운은 웃으며 말했다. “좋다, 좋아. 어린 나이에도 이렇게 큰 포부가 있다니! 그러나 영웅이 되려면 고난을 겪어야 해서 매우 힘들 것이니라. 너는 수많은 고난을 견딜 수 있겠느냐?”“저는 할 수 있습니다!” 서우는 가슴을 펴고 당당하게 외쳤다. 비록 사공께서 왜 이렇게 묻는지는 알지 못했으나, 큰 소리로 대답하는 것은 틀리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어쨌든, 그는 어떠한 고난도 견뎌낼 수 있는 의지가 있었다.“작은고모와 떨어져 지낸대도 견딜 수 있겠느냐?”임양운이 물었다.“저는 할 수… 아!”즉시 뒤로 물러선 서우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저는 작은고모와 떨어질 수 없습니다.”송석석도 서우를 떠나보내기 어려웠다. 그는 이제 송가의 유일한 남자이다.“사부님, 서우가 원하면 제가 무공을 가르치겠습니다.”그녀가 말했다."당연히 네가 먼저 가르쳐야지.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에게 사부가 기본기를 직접 가르쳐야겠느냐? 다리가 나으면 집에서 2년간 훈련 시키거라. 충분히 가르친 다음에 매산으로 데려와 사형제들에게 다른 것을 배우게 하거라."서우가 훗날 작위를 이어받게 되면, 집안에 그 혼자 남게 될 텐데 그때는 분명히 많은 어려움이 닥칠 것이다. 만약 스스로도 지켜내지 못한다면 안심할 수 없을 것이다.사부의 깊은 마음에 송석석은 눈물을 핑 돌았다. “네, 사부님, 어떻게 해야 할지 잘 알겠습니다.”만종문에 입문하는 것은 수많은 이들이 꿈꾸는 일이다. 만종문에서는 단순히 무공을 배우는 것뿐만 아니라, 다양한 기술을 배울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예를 들
마차 안에서 사여묵은 송석석에게 사매의 말을 전했다.그러자 송석석은 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오랫동안 참아왔던 눈물을 쏟아냈다.사여묵은 그녀를 품에 안고 위로했다. “사매는 당신을 친동생으로 여기는 것 같소.”“제가 만종문에 갔을 때 사매가 저를 많이 챙겼지요. 저를 너무 소중하게 대해줬습니다.”어느 누가 그녀를 아끼지 않겠는가? 심지어 측실에서 그와 이야기를 나누던 사부님도 연신 당부했었다. 이 말괄량이 같은 송석석을 잘 돌봐주라고 말이다.사부님은 그녀의 가족에 대해 이야기할 때 안타까운 표정을 보였으며 눈가에는 슬픔과 후회로 가득했다.국공부 사내들이 국가를 위해 헌신하고 희생한 것에 감동하지 않은 이는 없었다.송석석이 눈물을 닦으며 물었다. “몽동이는 진성에 남기로 했습니다. 당신에게 계획이 있는지요? 그는 군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하였습니다.”“그건 간단하오. 친왕은 500명의 부병을 가질 수 있고 나는 아직 부병을 조직하지 않았으니, 그에게 대장을 맡기고 사람을 구하게 하면 어떻소?”이전에는 북명군을 이끌고 있었기에 집안에는 호위병들만 두고 부병은 두지 않았다.송석석이 진지하게 말했다. “좋습니다. 다른 건 몰라도 무공이 몹시 훌륭하며 사람을 이끄는 데에도 재능이 있습니다. 남강 전장에서 병사들을 이끌 때에도 용맹함을 보여주었지요.”그녀는 사여묵을 한 번 쳐다보더니 조용히 덧붙였다.“그럼, 어느 정도의 보수를 지급하는게 맞는 것 같습니까?”부병은 외원에 속하기에 그녀가 관리할 수는 없었고 월급은 더더욱 쉽게 결정할 수 없었다.“두둑하게 줄 생각이오. 몽동이도 고생이 많소. 혼자 나와서 돈을 벌어 문파 전체를 부양하고 있으니 말이오.” 사여묵은 망설임 없이 말했다.“네, 좋습니다!” 송석석도 몰래 보탤 셈이었다. 사실 만종문에 있을 때부터 고월파의 어려움을 어느정도 알고 있었지만, 그 당시에는 생활에 대해 모두 알지는 못했기에 이 정도로 힘들줄은 꿈에도 몰랐었다.“사부님이 돌아가신 후에 다시 오는 거요?”“그
송석석은 먼저 노 집사를 찾아 대략적인 상황과 금루 쪽의 동향을 알아보았다. 노 집사는 그녀에게 안심하라며, 조천민을 잡고 있고 금루에도 사람을 보내 감시하고 있으니 아무도 소식을 전하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그제서야 마음이 놓인 송석석은 편안하게 장방으로 향하였다.혜태비는 아직 장부를 다 살펴보지 못한 상태였는데 장방의 모든 이들이 무릎을 꿇고 불안에 떨고 있었다. 방 안은 난장판이었고, 장부 외에 던질 수 있는 물건들은 모두 던져졌으며 찻잔까지 깨져 있었다.혜태비의 머리카락은 흐트러졌고 얼굴은 검푸르게 변해 있었다. 돌아온 송석석을 보자 억울함과 수모감이 절정에 다했다.“이들이 나를 속였다!”송석석이 모두에게 말했다. “일단 일어나시지요. 장방을 제외하고 모두 물러가세요. 고모님도요.”왕부에는 여러 명의 장관과 총 장부관 한 명이 있었는데 누구라고 할 것 없이 모두 바닥에 엎드린 채 공포에 떨고 있었다. 그들은 이토록 분노하는 태비를 본 적이 없었기에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시중을 들러 들어왔던 하인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일어나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갔다.조천민도 무릎을 꿇고 있다가 곧이어 자리를 떠났다.송석석은 손수건을 꺼내 혜태비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장부는 다 보셨습니까?”“올해 장부는 아직 확인하지 못하였고 계산도 아직이다.”혜태비는 그녀의 손수건을 받아 눈물과 콧물을 닦았다. 송석석이 돌아오자, 마음은 한결 진정되었지만, 수모감은 여전했다. “올해 장부를 제외하고 금루에서 벌어들인 것이 13만 냥이라 하더라. 그런데 얼마 전 궁에 찾아와서는 돈을 달라며 늘 적자라고, 집세와 하인의 품삯을 지불해야 한다고 하더구나.”송석석은 그녀를 부축하며 말했다. “가서 차 한 잔 마시고, 음식도 좀 드세요. 남은 건 장부관들에게 계산하도록 하고 끝나면 저도 함께 확인하겠습니다. 어머니는 계약서를 준비해 주세요. 장공주부로 가서 가의 군주와 함께 대조해 보도록 합시다.”요근래 가의 군주는 공주부에 머물고 있었다. 어제 동주
안풍친왕이 말했다."이번 여정은 서경과 상국을 위한 것이지만, 북당을 위한 것이기도 하니 감사할 필요는 없습니다. 국가 간의 교류는 언제나 이익을 우선으로 하니까요. 개인적인 인연이 있을 때 진심으로 대하는 것이죠."송석석은 깨달음을 얻은 동시에 궁금한 점이 있어 물었다."혹시 제 사부 임양운을 아십니까?"안풍친왕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알지요. 그는 북당에 와서 제 채성루에서 잠시 머문 적이 있습니다. 제 호위 지휘사인 흑영위가 당신의 사부와 매우 친한 사이입니다. 그들은 자주 함께 술을 마셨죠.""그렇군요." 송석석은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을 떠올렸다. 그 중 어떤 사람이 흑영위 선배인지는 모르겠지만, 만날 수 없다면 정말 아쉬운 일이었다.안풍친왕은 이내 그녀의 마음을 눈치 챘는지 웃으며 말했다.“우리 북당은 3년 혹은 5년 후에 상국을 방문할 예정입니다. 그때 흑영위를 소개해드리겠습니다."송석석이 막 감사의 말을 하려는데, 시만자가 말했다."왜 3년 혹은 5년 후인가요? 좀 더 일찍 갈 수 없나요? 왕야와 왕비께서 가시는 걸 기대하고 있습니다."안풍친왕은 미소를 지으며 깊은 뜻이 담긴 말을 했다."지금은 아직 그때가 아닙니다."그들이 말하지 않으니 더 이상 물어보는 건 예의가 아니었다.옆에서 조용히 앉아 있던 안풍왕비는 거의 말을 하지 않았으며, 그저 눈앞의 간식들을 맛있게 먹고 있었다. 아무것도 특별할 것 없는 설탕절임과 육포였지만, 그녀는 그것을 매우 맛있게 먹었다.송석석은 탁자 아래에서 그들이 손을 서로 맞잡고 있는 것을 보고, 그들의 사랑이 누구보다 깊다는 것을 느꼈다.두 나라 간의 교류에 대해 더 얘기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들은 잠시 가볍게 잡담만 나눈 뒤 그들을 보내주었다. 떠나기 전에 안풍친왕비가 먼저 입을 열었다.“송대감, 시 소저, 4년 후에 상국에서 뵙겠습니다."송석석은 급히 손을 모으며 말했다."네. 왕야와 왕비께서는 반드시 오셔야 합니다."그들이 떠난 후, 별관 문이 닫혔다.송석석과 시만자
이틀 동안 돌아본 후, 수란키가 송석석에게 말했다. "귀국에 단신의라는 신의가 계십니다. 그분이 만든 단설환의 한 가지 재료인 설연화가 귀국에서 생산량이 매우 적다고 알고있습니다. 남강에 있기는 하지만, 설산 정상에 자생하고 있어 채집하기 매우 어려우며, 또한 드뭅니다. 하지만 저희 쪽에서는 설연화가 그리 희귀한 것이 아닙니다. 고산지대 어디에서나 볼 수 있지요. 그가 사용하는 설연화는 모두 서경 약장수에게 몰래 사서 쓰는 것으로, 가격이 매우 비쌉니다. 그 가격으로 단설환을 팔면, 한 알을 팔아서 한 알을 잃는 셈입니다."송석석은 단설환이 부족한 이유가 일부 약재를 구할 수 없기 때문임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단 백부는 구체적으로 어떤 약재가 부족하다고는 말하지 않았다. 서경과 상국은 그동안 무역을 하지 않았고, 특히 약재는 더 조심스럽게 다뤄졌기 때문에 그가 서경 사람에게 약재를 산 것을 비밀로 한 이유가 이해가 됐다.수란키와 원신제는 한 마음으로 이렇게 세세하게 조사를 진행했으며, 두 나라 간에 상호 교역을 이루려는 계획이 이미 있었을 것이다. 안풍친왕을 불러들인 것도 이 일을 실현하기 위해서였다. 단설환은 생명 구제용 약이라, 만약 약재만 부족하지 않다면 평민들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어 실로 민생에 큰 이익이 된다. 송석석은 그들이 지나쳤던 약재 시장을 떠올리며 말했다. "그럼 왜 약재 시장에서는 설연화를 본 적이 없죠?" 수란키가 웃으며 답했다. "그건 당연합니다. 우리 서경에서 설연화가 많이 자생하기는 하지만, 여전히 희귀한 재료입니다.고산지대를 올라가야만 채집할 수 있기에 위험하기도 하지요. 게다가 약효가 뛰어나지 않습니까. 심장을 강하게 하고 통증을 멈추는 효과가 있어, 시장에서 거래되는 법이 없습니다. 송대감께서 믿지 못하신다면, 제가 지금 당장 사람을 보내서 설연화 한 바구니를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그것을 상국으로 가져가서 단신의께 검증받으시면 됩니다."그는 말을 마친 후 시 사람을 시켜 설연화 한 바구니를 가
그가 앉은 자리는 북당이 이번 협상에서 취한 입장을 대표했다.그는 중립의 위치에 있었다. 송석석은 다시 한 번 국가가 강성한 것이 정말 좋다며 감탄했다. 협상의 처음 부분은 조금 지루했다. 양쪽 모두 똑같은 말을 반복하며 강조하였고, 양쪽의 역관들이 그것을 전달하며, 모두 역사적 문제를 강조했다. 이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처음부터 양보를 한다면 계속해서 양보하게 될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따라서 첫 번째 협상에서는 아무런 합의도 이루어지지 않았고, 서로의 한계를 시험하는 데 그쳤다. 다음 날, 바로 두 번째 협상이 시작되었다. 역시 초반에는 전날처럼 양쪽에서 강조하는 말들이 오갔다.그러다가 잠시 후, 안풍친왕이 먼저 말을 꺼냈다. "이렇게 계속해서 시간을 낭비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두 나라의 국경 문제는 이미 수십 년간 지속되어 왔고, 이것은 하루아침에 해결될 문제가 아닙니다. 우선 국경 문제는 잠시 제쳐두고, 본왕은 두 나라가 서로 친선을 맺고, 서로 침범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확인하고 싶습니다." 그의 말에, 모두 두 나라가 더 이상 분쟁을 일으키지 않기를 바란다며 긍정적인 의사를 내비쳤다. 안풍친왕은 한 장의 목록을 꺼냈다. 그 목록에는 양국의 상품들이 나열되어 있었고, 그 중에는 곡물, 가축, 비단, 직물, 수공예품, 찻잎, 모피, 도자기, 종이, 벼루, 각자의 나라에서만 자생하는 약초, 향료, 청염, 철광, 옥석 광물 등이 있었다. 양쪽은 그것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처음의 긴장감이 서서히 풀리기 시작했다. 막대한 이익 앞에서, 어떤 일들은 협상이 가능했다. 협상이 되지 않으면 잠시 미룰 수도 있었다. 수년간의 전쟁은 두 국가의 국고를 이미 소진시켰기에 양쪽 모두 휴식을 취할 필요가 있었다. 북당의 발전 경험에 따르면, 농업을 중시하고 상업을 억제하는 것은 뒤처진 생각이며, 농업과 상업을 동시에 중시하는 것이 살길이었다. 상업세 또한 매우 높았다. 안풍친왕의 이 목록 덕분에 두 나라는 국경
하지만 송석석은 서경의 종친과 관리들이 북당이 협상에 개입할 것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것 같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들의 얼굴에는 놀람이 역력했다.놀란 마음이 지나고 나자, 그들은 기쁨과 자신감을 드러냈다. 그들은 북당이 협상에 참여하는 것이 서경을 위한 든든한 지원이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송석석은 이 장면을 보며 오히려 안심을 했다. 정말 그렇다면 원신제가 미리 그들에게 이를 알려줄 수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협상에 참여하는 관리들에게는 알렸어야 하는데, 그녀가 왜 말을 하지 않았는지이제야 확실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녀도 서로 양보하는 방향으로 가길 원했지만, 궁정의 문무 백관들 중 그녀를 지지하는 이들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신복하는 북당 안풍친왕을 초대한 것이었다.이렇게 보니, 어제 원신제가 그녀와 시만자를 궁으로 부른 이유도 이해가 되었다. 처음에 말했던 그런 것들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았다는 말이었다. 여성의 과거 시험을 예로 든 것은, 그녀의 많은 결정들이 추진하기 어려운 상황임을 말하고자 했기 때문이었다.여기까지 분석을 마친 송석석은 점점 더 낙관적이게 되었다.궁중 연회가 끝난 후, 북당 사람들은 대접을 받으며 떠났다. 그들은 그 한 끼를 제외하고는 의견을 거의 내비치지 않았으며, 단지 짧은 대화를 나누었을 뿐이었다.그들이 떠난 후, 상국의 사절단도 일어나 인사를 하며 물러났다. 모두가 돌아가서 협상 준비를 해야 했다. 수란키가 제공한 일정을 따르면, 이틀 후부터 협상이 시작될 예정이었다.황궁 별관에 돌아가자, 이덕회는 모두를 모아 앉히고 논의했다.사실상 또 다른 진부한 이야기였다. 이번에도 양보를 해야 한다면, 모두가 지도 위에서 함께 논의해야 할 상황이었다. 하지만 출발하기 전에 황제가 이미 양보의 한계를 설정해 두었기 때문에 더 이상 양보를 하게 되면 돌아가기도 어렵고, 역사적인 죄인이 될 수도 있었다.그래서 아무도 먼저 말을 꺼내지 않았으며, 그저 지도만 바라보며 각자 생각을 정리하고 있었다.
사실 이런 자리에서는 모두 입맛이 그다지 좋지 않기 마련인지라, 많은 음식들이 한 입 먹고 나면 다시 치워지곤 한다.하지만 북당의 사람들은 정말 음식을 존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어떤 요리가 나와도 모두 다 먹어버렸으며, 가득 채운 술잔도 순식간에 비웠다. 그들을 시중드는 궁인들도 꽤 힘들었을 것이었다.시만자는 그들이 춘만루에서 먹었던 그 한 끼를 떠올렸다. 그때도 남은 음식이 하나도 없이 모든 것이 비워졌었다.그녀는 송석석에게 무언가 말을 건네고 싶었다. 하지만 식사 소리 외에는 아무 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기에 말을 꺼내기 어려웠다.그러나 그들은 눈짓만으로도 서로가 하고자 하는 말의 의미를 알아차렸다.시만자는 북당 사람들이 이곳에 등장한 것이 협상과 관련이 있을 거라고 했고, 송석석도 그렇게 생각했다.하지만 그녀는 그들이 중재자로 온 것인지, 아니면 서경을 돕기 위해 온 것인지 확실하게 알 수 없었다. 만약 중재자라면 협상 또한 오래 걸리지 않고 조약을 체결할 수 있을 테니 더 좋을 것이었다.하지만 만약 서경을 돕기 위해 온 것이라면 협상은 공방전이 될 것이 분명했다. 북당이 그들의 방패가 된다면 상국이 협상에서 어려움을 겪을 것이 틀림 없으니 말이다.이덕회와 홍려사경 등 상국의 사절단들은 상황을 어느 정도 눈치챈 듯 했다. 그래서 그들은 처음의 그 기쁨을 잃은 대신 마음속으로 여러 가지를 고민하는 모습이었다. 눈앞의 음식도 별로 먹고 싶지 않은 듯했지만, 모두가 식사를 하고 있었기에 그들도 어쩔 수 없이 천천히 먹었다.이 궁중 연회는 그들이 참석했던 연회 중 가장 이상한 연회였을 것이다. 마치 폭풍이 다가오는 듯한 무서운 고요함이 느껴졌다.궁중에서 준비한 요리는 총 32가지였다. 그러나 각 요리의 양은 매우 적었으며, 궁인들은 음식을 하나씩 들고 들어와서는 다시 하나씩 치워갔다.누군가 술잔을 들고 싶어했지만, 역시 원신제와 마찬가지로 한 번 쓱 훑어본 후, 술잔을 비우고 다시 내려놓고는 식사를 계속했다.마침내 32가지 요리가 모두 올라갔
다음날, 궁중 연회는 신시에 시작되었고, 여전히 수란키가 직접 그들을 맞아 궁으로 안내해주었다.예상했던 대로 즉위식은 이미 끝난 상태였고, 이번 연회의 주요 목적은 국경선의 협상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궁에 들어간 후에도 다른 나라의 사절단을 보지 못했다.궁 안은 황실의 측근과 문무 백관들로 가득했다. 하지만 그들은 상국의 사절단에게 적대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았고, 친근한 분위기도 없었다.이런 자리에서는 역관의 도움이 필요했기에 대화의 주제가 그리 넓지 않아, 서로 간단한 인사 정도만 나눌 뿐이었다.다른 나라의 사절단이 없을 거라 생각했지만, 입석할 때 원신제가 상국의 사절단에게 말했다."오늘 북당에서 귀빈들이 오십니다. 곧 도착할 것인데, 여러분이 그들과 바로 친해질 것이라 믿습니다."이덕회는 즉시 흥분하며 말했다. "북당의 귀빈이라 하셨습니까? 어떤 분이 오시는지요?"그가 흥분하는 것은 당연했다. 왕이장이 가져온 임양운의 육안총과 포차는 모두 북당에서 개량된 것이었고, 임양운 선생이 북당에서 배운 적이 있었다고 들었기 때문이다.상국의 병부상서로서 그는 정말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싶었다.북당은 상국이 항상 배우고자 했던 본보기였다. 그들의 첨단 무기와 치국책은 상국보다 훨씬 진보적이었다.물론 국가의 상황이 다르기에 모든 것을 배울 수는 없을 테지만, 대화를 깊이 나누면 분명히 얻을 것이 있을 것이었다.원신제는 그들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 "도착하면 알게 될 것입니다."연회는 지루하고 피곤했지만, 북당의 귀빈이 온다면 그 이야기는 달라진다.모두가 기대하고 있을 때, 한 외침이 들렸다.“북당 안풍친왕과 왕비께서 도착하셨습니다!"이덕회는 놀라서 입을 막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의 눈에는 기쁨이 넘치고 있었다.송석석도 사부로부터 안풍친왕의 호를 들어본 적이 있었다. 사부는 그를 매우 존경한다고 했다. 생각치도 못하게 오늘 그를 만날 수 있으니 그녀도 말할 수 없이 기뻤다.반면, 만두와 몽동이 그들은 비교적 담담했
원신제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씁쓸한 게 한 가지 더 있네. 지금까지 짐은 장공주의 신분으로 여인에게도 과거 시험을 볼 자격이 있어야 한다고 높이 외쳤지. 하지만 황제가 된 지금, 어쩔 수 없이 각 세력들의 이익을 고려해줘야 하고 그자들이 짐에 대한 적대심과 경계를 약화시킬 수밖에 없다네. 짐은 이제 고려한 일이 더 많아졌어. 가끔은 속에 천불이 나서 반대파 세력들의 가슴에 칼을 꽂고 싶기도 하네.”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송석석이 대꾸했다.“사실 한 나라의 황제나 대신들은 남녀를 막론하고 결국 최종 목적은 같지 않겠습니까? 폐하께서도 그렇듯 다들 나라의 안정과 백성들의 평안을 바라고 있는 겁니다. 나라에 영원히 전란이 일어나지 않고 창성해야 폐하께서 원하시는 개혁을 진행하셨을 때 반대의 목소리가 잦아드는 것입니다. 그러니 폐하, 현재 가장 중요한 건 폐하의 자리부터 굳건히 지키시는 겁니다.”대놓고 얘기하지는 않았지만 원신제는 송석석의 말뜻을 확실하게 알아들었다. 현재까지 나라가 혼란에 빠져 있고 각 세력들의 제지도 심하기에 이 국면을 해결하는 것도 충분히 힘든 일이다.황제의 자리도 흔들리고 있는 지금, 원신제가 개혁까지 고집하려는 건 더욱 위험한 일이었기에, 미래가 불안정할 수밖에 없었다.시만자 또한 송석석의 말에 동의하는 바였다.“사실 한 가지 일을 처리하는 데에 방법이 한 가지밖에 없는 건 아닙니다. 강경하게 상대방과 맞서 싸우는 것도 방법이지만 이는 가장 현명하지 못한 하책입니다. 한 사람의 성격도 바꾸기 쉽지 않은데 천 년이나 넘게 지속된 규정을 바꾸는 건 더더욱 어려운 일입니다. 폐하께서 관념의 씨앗을 심으시면 언젠가 누군가가 폐하께서 남긴 발자국을 따라 한 걸음씩 나아갈 것입니다.”잠시 머뭇거리던 시만자는 이내 다시 조심스럽게 말을 이어갔다.“저와 석석도 매산에서 무술을 공부할 때 그랬습니다. 다들 저희를 비웃고 하찮게 여겼지만 저희는 결국 실력으로 그자들을 한 명씩 쓰러트렸습니다. 구호만 외친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닙니다. 실력이
서경의 황궁은 금빛으로 반짝였으며 기세가 어마어마했다. 어둠이 깃든 고요한 밤에는 기 장엄함이 더욱 돋보였다.첫 번째 궁문을 들어서고 나서도 마차는 궁 안을 자유롭게 누빌 수 있었다.궁 안 곳곳에는 커다란 나무들 위에는 등불이 잔뜩 걸려 있어 대낮처럼 밝았으며, 누군가가 몰래 나무 위에 숨어있는다고 해도 너무 밝아서 바로 들킬 정도였다.수란키는 앞장서서 걷다가 한 궁전 밖에 도착했는데, 궁녀 두 명이 다가와 수란키와 서경 언어로 몇 마디 나누다가 고개를 돌려 송석석과 시만자에게 환하게 웃으며 허리를 숙여 인사를 올렸다.수란키가 먼저 입을 열었다. “송 대감님, 만자 낭자, 폐하께서 두 분에게 궁전으로 모시라고 하셨습니다.”두 궁녀가 앞에서 길을 안내했고 송석석과 시만자는 이내 궁전 안으로 들어갔다.휘황찬란한 궁전 내부에는 커다란 조각 기둥이 양측에 세워져 있었으며 그 모습은 압박감이 넘쳤다.원신제는 용상에 앉아 환한 미소로 두 사람을 반겼지만 얼굴에는 피로함이 가득해 보였다.송석석과 시만자는 이내 인사를 올렸고 원신제는 그들에게 편하게 앉으라고 했다.그리고는 송석석을 쳐다보며 말을 걸었다.“짐은 송 대감이 사절단과 함께 이곳으로 온다고 하여 며칠 전부터 계속 기대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보니 너무 반갑네.”송석석은 웃으면서도 진지하게 대답했다.“폐하께서 황위에 오르셨다는 소식을 듣고 소인도 너무 기뻤습니다. 원하는 바를 이루신 걸 감축드립니다.”송석석은 원신제를 힐끔 쳐다보았다. 원신제에게서 냉옥 장공주의 모습이 보였고 예전과 크게 변한 건 없었으며 여전히 피로해 보이고 여전히 진중하고 엄숙했다.냉옥 장공주에게 있어서 황제의 역할이든 실권을 손에 쥔 장공주 역할이든 똑같이 신경 쓸 일이 많을 것이다.“원하는 바를 이루느라 많이 힘들었네. 하지만 다행히도 이제 일처리는 훨씬 쉬워졌네.”원신제가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조금 뒤, 궁녀들이 서경 특색이 돋보이는 다과들을 내왔다. 송석석과 시만자는 조금 전에 저녁 식사를 했기에 배가 고프지
서경 수도에 도착했을 땐 8월 13일이었기에, 송석석 일행이 떠난 지 한 달은 족히 넘은 상황이었다. 점심이 되자, 햇빛이 따스하게 비추어졌다.진왕은 마차 안에 몸을 웅크려 누운 채 입성에 진입했다. 하지만 마지막 자객들은 머릿수도 많고 기세도 등등해, 서경 지대에 들어서고 나서도 송석석 일행은 총 일곱 번이나 습격을 당했다. 현갑군은 대부분 부상을 당했고 시만자마저 어깨가 칼에 찔렸지만 다행히 신경까지 다치지는 않았다.진왕이 이렇게까지 크게 논란 건, 자객에게 습격을 당할 당시, 그는 변소 안에 있었다.일을 마치고 변소를 나선 순간, 갑자기 나타난 자객이 검으로 진왕의 가슴을 베었고 그 검을 진왕의 가슴에 꽂으려던 순간, 송석석이 제때에 나타나 손에 들고 있던 검을 한 발 빠르게 자객의 가슴에 꽂았다.하지만, 이내 자객의 머리채를 뒤로 확 잡아당긴 덕분에 진왕은 무사할 수 있었다.그는 가슴팍이 조금 베인 게 전부였지만 큰 중상을 입은 것 마냥 밤새 괴로운 신음소리를 내고 나서야 겨우 진정이 되었다. 수도에 도착하자 수란키가 관원들을 데리고 성문 앞에 서서 진왕을 반겼다. 수란키는 이제 서경의 승상이 되었다.한눈에 송석석을 알아본 수란키는 환하게 웃으며 인사를 했다.“송 장군님, 오랜만에 뵙겠습니다. 여전히 기품이 넘치시네요.”송석석은 말에서 내려 고개를 살짝 숙인 채 인사를 하며 상대방을 힐끗 살폈다. 솔직히 조금 전에 수란키를 알아보지 못했다.전보다 훨씬 늙어 보였고 백발인 데다가 수염도 허옇게 변해 버렸다. 하지만 눈빛은 여전히 카리스마가 넘쳤고 남강 전장에서 봤을 때보다 되레 활기가 넘쳐 보이기까지 했다.남강 전장에서 봤던 수란키는 온몸에서 분노가 들끓고 있었다. 위엄이 넘치고 엄숙한 그는 삶의 의지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으며 그저 복수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살아가는 그런 느낌이었다.“승상께서 이렇게 직접 마중까지 나오시고. 너무 민폐를 끼치는 게 아닌가 걱정이 되네요.”송석석이 웃으면서 말하자 수란키가 호탕하게 웃었다.“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