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차 안에서 사여묵은 송석석에게 사매의 말을 전했다.그러자 송석석은 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오랫동안 참아왔던 눈물을 쏟아냈다.사여묵은 그녀를 품에 안고 위로했다. “사매는 당신을 친동생으로 여기는 것 같소.”“제가 만종문에 갔을 때 사매가 저를 많이 챙겼지요. 저를 너무 소중하게 대해줬습니다.”어느 누가 그녀를 아끼지 않겠는가? 심지어 측실에서 그와 이야기를 나누던 사부님도 연신 당부했었다. 이 말괄량이 같은 송석석을 잘 돌봐주라고 말이다.사부님은 그녀의 가족에 대해 이야기할 때 안타까운 표정을 보였으며 눈가에는 슬픔과 후회로 가득했다.국공부 사내들이 국가를 위해 헌신하고 희생한 것에 감동하지 않은 이는 없었다.송석석이 눈물을 닦으며 물었다. “몽동이는 진성에 남기로 했습니다. 당신에게 계획이 있는지요? 그는 군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하였습니다.”“그건 간단하오. 친왕은 500명의 부병을 가질 수 있고 나는 아직 부병을 조직하지 않았으니, 그에게 대장을 맡기고 사람을 구하게 하면 어떻소?”이전에는 북명군을 이끌고 있었기에 집안에는 호위병들만 두고 부병은 두지 않았다.송석석이 진지하게 말했다. “좋습니다. 다른 건 몰라도 무공이 몹시 훌륭하며 사람을 이끄는 데에도 재능이 있습니다. 남강 전장에서 병사들을 이끌 때에도 용맹함을 보여주었지요.”그녀는 사여묵을 한 번 쳐다보더니 조용히 덧붙였다.“그럼, 어느 정도의 보수를 지급하는게 맞는 것 같습니까?”부병은 외원에 속하기에 그녀가 관리할 수는 없었고 월급은 더더욱 쉽게 결정할 수 없었다.“두둑하게 줄 생각이오. 몽동이도 고생이 많소. 혼자 나와서 돈을 벌어 문파 전체를 부양하고 있으니 말이오.” 사여묵은 망설임 없이 말했다.“네, 좋습니다!” 송석석도 몰래 보탤 셈이었다. 사실 만종문에 있을 때부터 고월파의 어려움을 어느정도 알고 있었지만, 그 당시에는 생활에 대해 모두 알지는 못했기에 이 정도로 힘들줄은 꿈에도 몰랐었다.“사부님이 돌아가신 후에 다시 오는 거요?”“그
송석석은 먼저 노 집사를 찾아 대략적인 상황과 금루 쪽의 동향을 알아보았다. 노 집사는 그녀에게 안심하라며, 조천민을 잡고 있고 금루에도 사람을 보내 감시하고 있으니 아무도 소식을 전하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그제서야 마음이 놓인 송석석은 편안하게 장방으로 향하였다.혜태비는 아직 장부를 다 살펴보지 못한 상태였는데 장방의 모든 이들이 무릎을 꿇고 불안에 떨고 있었다. 방 안은 난장판이었고, 장부 외에 던질 수 있는 물건들은 모두 던져졌으며 찻잔까지 깨져 있었다.혜태비의 머리카락은 흐트러졌고 얼굴은 검푸르게 변해 있었다. 돌아온 송석석을 보자 억울함과 수모감이 절정에 다했다.“이들이 나를 속였다!”송석석이 모두에게 말했다. “일단 일어나시지요. 장방을 제외하고 모두 물러가세요. 고모님도요.”왕부에는 여러 명의 장관과 총 장부관 한 명이 있었는데 누구라고 할 것 없이 모두 바닥에 엎드린 채 공포에 떨고 있었다. 그들은 이토록 분노하는 태비를 본 적이 없었기에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시중을 들러 들어왔던 하인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일어나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갔다.조천민도 무릎을 꿇고 있다가 곧이어 자리를 떠났다.송석석은 손수건을 꺼내 혜태비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장부는 다 보셨습니까?”“올해 장부는 아직 확인하지 못하였고 계산도 아직이다.”혜태비는 그녀의 손수건을 받아 눈물과 콧물을 닦았다. 송석석이 돌아오자, 마음은 한결 진정되었지만, 수모감은 여전했다. “올해 장부를 제외하고 금루에서 벌어들인 것이 13만 냥이라 하더라. 그런데 얼마 전 궁에 찾아와서는 돈을 달라며 늘 적자라고, 집세와 하인의 품삯을 지불해야 한다고 하더구나.”송석석은 그녀를 부축하며 말했다. “가서 차 한 잔 마시고, 음식도 좀 드세요. 남은 건 장부관들에게 계산하도록 하고 끝나면 저도 함께 확인하겠습니다. 어머니는 계약서를 준비해 주세요. 장공주부로 가서 가의 군주와 함께 대조해 보도록 합시다.”요근래 가의 군주는 공주부에 머물고 있었다. 어제 동주
송석석도 잠시 말을 아끼기로 했다. 그녀는 사람을 시켜 음식을 준비해 혜태비에게 식사를 대접하게 했다.혜태비가 식사를 마친 후, 송석석이 입을 열었다. “계약서를 저에게 보여주시지요. 혹시 모를 함정을 위해 미리 준비해야 합니다.”혜태비는 눈물로 가득한 눈동자를 깜박이며 말했다. “함정이 있다면서 대체 무슨 준비를 할 수 있단 말이냐?”“방법이 있습니다. 먼저 계약서를 주시지요.” 송석석은 혜태비의 눈물을 마주하지 않고 몸을 돌려 고씨 유모에게 계약서를 가져오라고 하였다.문서가 어디에 있는지 잘 알고 있었던 고씨 유모이기에 얼마 지나지 않아 계약서를 들고 나타났다.송석석은 계약서를 처음부터 끝까지 세 번이나 읽어보았으나 아무런 문제도 발견하지 못했다. 계약서는 매우 공평하고 정직하게 작성되어 있었다.실제 소유자란에 혜태비 쪽은 고씨 유모의 이름은 고계순이 사용했고, 가의 군주는 하인 조천민의 이름을 사용했다.이렇게 재벌 집 부인들이 외부에서 장사를 할 때는 자신의 이름으로 재산을 등록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본명을 사용하면 관청에서 많은 절차를 거쳐야 하고, 또한 여인이 얼굴을 드러내는 것들이 꺼렸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집안의 지아비나 아들의 이름으로 하거나, 신뢰할 수 있는 노비의 이름으로 등록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어차피 그들의 신분증을 쥐고 있기에 그들의 이름으로 재산을 등록하더라도 큰 문제가 없었다.혜태비와 가의 군주가 자신의 이름으로 장사를 할 리 없었다. 상업 계층에 대한 멸시가 심하여 상인의 신분이 천하다고 여겨졌던 탓이었다. 돈만 벌 수 있다면, 누구의 이름을 쓰든 상관없었다. 그들에게는 신체 각서가 있었기 때문이다.“어떠하냐? 문제가 있느냐?” 혜태비는 송석석이 세 번이나 반복해서 읽는 것을 보고 걱정스레 물었다.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보는 송석석의 눈빛은 의미심장했다.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그렇다면 좋은 일 아니냐? 그런데 어찌하여 그런 눈빛으로 나를 보는 것이냐?” 마치 자신을 바보 취급하는 것 같은 눈
잠시 생각하던 송석석은 조천민을 데려오게 해 심문하기 시작했다.편청에는 난로가 놓여 있었고, 그 난로 위에는 불에 달군 방망이가 놓여 있었다. 한참 달구어서 벌겋게 달아오른 상태였다.조천민은 그 광경에 하마터면 바지를 적실 뻔했다. 그는 두려워 황급히 무릎을 꿇었다.“목숨만은 살려주십시오, 제발 살려주십시오..!”자리에 앉은 송석석이 눈살을 찌푸렸다. “네 목숨으로 내가 무얼 하겠느냐? 몇 가지 물어볼 것이 있으니 사실대로 답하거라.”조천민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소인이 아는 바 모두 말씀드리겠사옵니다!”송석석은 손에 들고 있던 장부를 보여주며 물었다.“가의 군주께서도 이렇게 값싸고 조잡한 물건들을 들여온 것을 알고 있느냐?”“알고 계십니다. 가의 군주께서 직접 지시하신 일이옵니다.”“금은 재료가 순수하지 않으면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것도 일깨웠느냐?”눈을 굴리던 조천민이 대답했다.“소인도 진작에 말씀드렸습니다만, 군주께서는 상관없다고 하셨습니다. 몇 년 후 문제가 생기면, 그때 점포를 닫으면 그만이라고 하셨습니다.”그러자 송석석은 냉소를 지었다. “점포를 닫을 셈이었느냐? 아니면 모든 책임을 혜태비에게 떠넘기려고 했던 것이냐?”조천민은 그만 말문이 막혀 버렸다.“그... 그것은...”송석석은 더 이상 추궁하지 않았다.“몇 년 동안 장사를 하였다고 들었다. 요즘 금 장신구의 품질에 의문을 제기하는 손님들에게 어떻게 대처하였느냐?”옆에 있던 노 집사는 위협감을 주기 위해 몽둥이를 들고 흔들었다.겁에 질린 조천민은 입술을 파르르 떨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값싼 선물을 보내어 그들의 입을 막았습니다. 올해 장사가 잘되었고, 가의 군주께서는 내년 8월 혼인 성수기가 지나면 점포를 닫으라고 하셨습니다.”“그것뿐이냐?”송석석은 콧방귀를 꼈다.“나는 분명히 사실대로 말하라고 했다. 아직도 숨기고 있는 것 같구나. 정녕 방망이를 삼키고 싶은 것이냐?”방망이를 조천민의 눈앞에 가까이 가져다대자, 그는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그
회계사는 장부를 계산해서 송석석에게 넘겼다. 송석석은 장부를 받아 한 번 쓱 보더니 혜태비에게 건네며 말했다. “어머님, 액수가 맞는지 한 번 봐주십시오.” 혜태비는 각오를 하고 기세등등하게 장부를 받아 자세히 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장부를 본 혜태비는 그만 놀라서 물었다. “몇 년 동안 나에게서 나간 돈이 이렇게나 많단 말이냐?!” 투자금까지 포함해서 몇 년 동안 혜태비에게서 나간 돈만 해도 13만 6천 냥이 넘었다. 혜태비가 직접 자신에게서 나간 돈을 적어 두긴 했지만 적을 때는 얼마인지 몰랐는데 이렇게 많이 나갔을 줄은 몰랐다. 13만 6천 냥, 송석석이 그녀를 데리고 가서 직접 보고 사람을 데려와 심문하지 않았다면 그녀는 손해를 보고 있다 여기고 계속 덕 귀태비와 체면을 세우느라 정신이 없었을 것이다. 13만 6천 냥은 원금일 뿐이라 올해를 포함한 총 이윤은 18만 6530냥이었다. 그리고 혜태비의 점유율에 따르면 그 이윤에서 13만 571냥을 분배받을 수 있었다. 그러니까 이윤까지 포함한다면 그녀는 가의 군주에게서 26만 6571냥을 받아야 했다. 방금까지만 해도 기세등등한 모습을 보이던 혜태비가 이내 기가 꺾인 소리로 말했다. “이 많은 돈을 대체 어떻게 받는단 말인가? 되받지 못할 가능성이 높을 것 같군.” 그러자 송석석이 담담하게 말했다. “어머님, 어머님의 말씀은 자신의 담력을 깎아내리고 장공주의 경제능력을 얕잡아보는 것입니다.” 혜태비는 뭔가를 말하려다가 며느리의 싸늘한 눈빛을 보고 생각했다. ‘저번에 동주도 순조롭게 되찾아주었으니 낙담하지 않는 것이 좋겠군..’그러자 노 집사가 물었다. “태비마마, 왕비님, 제가 시위를 배치해서 두 분과 함께 가도록 준비해두겠습니다.” 그러자 혜태비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사람을 많이 데리고 가서 그들에게 겁을 주도록 하라.” “시위를 데리고 갈 필요 없습니다. 싸우러 가는 것도 아니고 계산하러 가는 것 아닙니까?” 송석석이 거절하였지만 혜태비는 그
장공주는 싫증이 나서 말했다. “먼저 들여보내고 별청에서 잠시 기다리도록 하거라. 내가 식사 후 만나러 갈 테니 정청에 모실 필요는 없다.” 장공주의 말을 들은 집사는 직접 나가서 인사를 했는데 그들이 뭔가를 들고 온 것을 보고 선물 같지는 않아서 물었다. “혹시 태비마마께서 가져온 건 무엇인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혜태비가 장부라고 말하려고 하자 바로 그때 송석석이 먼저 말했다. “오래된 원고를 가져왔으니 장공주께서 한 번 봐주셨으면 합니다.” 송석석의 말을 들은 집사의 눈에서 빛이 났다. ‘원고? 설마 심청화 선생의 원고 말인가?’ 집사는 즉시 좋은 차와 다과를 대접하고는 장공주와 가의 군주에게 보고하러 갔다. “원고? 심청화의 원고 말이냐?” 장공주가 느릿느릿 물었다. 그러자 집사가 허리를 굽히며 대답했다. “그건 잘 모르겠사옵니다. 태비께서 먼저 말씀하시지 않아 물어보지 못하였사옵니다.” 가의 군주는 나중에야 동주와 3천 냥에 대한 일을 알고 크게 노했었는데 오늘 송석석이 원고를 들고 방문한 것을 보자 그녀는 냉소하며 말했다. “혜태비가 동주를 되돌려 받아 어머니의 미움을 샀다는 걸 알고 송석석과 함께 원고를 들고 사죄하러 왔나 봅니다.” 장공주는 가의 군주를 흘겨보더니 말했다. “너 그 머리로는 3년도 지나지 않아 시댁에서 쫓겨날 것 같구나.” 갑작스러운 시어머니의 소리에 가의 군주는 안색이 변하며 차가운 말투로 말했다. “제가 언젠가는 그 노인네를 독살할 것입니다. 두고 보세요!” 그러자 장공주가 냉담하게 말했다. “그 입 다물거라. 네 시어머니가 만만한 상대 같으냐? 그런 말은 그녀에게 접근할 수 있을 때 다시 해. 일 벌여서 나보고 뒤치다꺼리하라고 하지 말고 잠자코 있거라.” 가의 군주는 답답해서 화를 냈다. “그 노인네 얘기를 꺼내서 뭐 합니까? 그나저나, 어머니께서는 혜태비와 송석석 그 천한 년이 왜 여기에 왔다고 생각하십니까?” 장공주는 젓가락을 내려놓고 시녀가 건넨 양칫물을 받아 양치를 한 후 손
장공주는 대답하고서는 계속 말을 이었다. “이제야 기억이 나는! 예전부터 장사가 좋지 않다고 했던 그 금루 말인 게냐?” 그러자 가의 군주는 하소연을 했다. “맞습니다. 개업을 한 지 몇 년이나 지났지만 이윤이 없을 뿐만 아니라 지속적으로 적자로 나오고 있습니다. 그나마 연말에 헐값에 내놓아 겨우 가게 임대료와 품삯을 지불했습니다. 저를 믿고 금루를 맡겨주셨는데 이윤을 드리기는커녕 계속 손해만 보고 있으니 혜태비에게는 미안할 따름이옵니다.” 그러자 송석석이 말했다. “요즘 각 업계에서 모두 장사가 잘 되지 않으니 언니도 미안해할 필요 없습니다. 어머님께서도 이해하실 거라고 믿습니다. 어머님, 어머님께서도 이해하시죠?” 송석석은 말을 마치고 고개를 돌려 혜태비를 바라보았는데, 혜태비는 송석석이 왜 자신을 보는지 알 수 없었다. ‘들어오기 전엔 함부로 말을 꺼내지 말라더니 왜 또 나한테 묻는 것이야?’ 하지만 송석석의 차가운 눈빛에 혜태비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 나도 이해는 한다.” 그러자 송석석이 계속 말했다. “그렇죠? 그러니 언니의 장사가 잘 안되는 건 당연한 겁니다.” 가의 군주는 고개를 연신 끄덕이며 말했다. “그러니까, 장사가 어디 쉬운 일이냐?” 이때 송석석이 계약서를 꺼내며 말했다. “제가 이 계약서를 봤는데 어머님께서 금루 70%나 차지하고 있으시더군요. 그리고 초기 자금 외에도 매년 금루에 적지 않은 은자를 투자한 기록도 남아있고요. 언니도 당연히 30%의 자금을 투자하셨겠죠?” 가의 군주는 송석석의 말이 이상하다고 느꼈지만 어디가 이상한지는 말 할 수 없어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그럼. 혜태비에게 투자금을 받을 때 나도 30% 투자했어.” “예. 어머님께서 70%의 비중을 차지하시니 70%의 자금을 지출하고, 언니는 30%의 비중을 차지하니 30%의 자금을 내는 건 지극히 정확하고 합리적인 계산인 것 같습니다.”가의 군주는 송석석을 노려보며 잠시 생각에 빠졌다. ‘송석석 저 년, 대체 무
송석석의 말에 장공주 모녀의 안색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그들은 현재의 대리사경이 사여묵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장공주는 잠시 몇 상자의 장부를 찾아보더니 입을 열었다. “조천민이 모든 사람을 속인 것이니 너만 장부를 확인할 것이 아니라 가의도 회계사를 찾아 장부를 꼼꼼히 살펴봐야 하지 않겠느냐? 그러니 장부를 여기에 두고 일단 돌아가거라. 우리가 확인해 보고 다시 북명왕부로 가서 대조하겠네. 만약 증거가 확실하다면 범인을 관청으로 보내서 조사를 하든, 어떻게 하든 다 그쪽에서 결정하게.” 그러자 송석석은 차를 한 모금 마신 후 웃으며 말했다. “고모님, 제가 워낙 성격이 급해서요. 장부가 여기에 있으니 당장 회계사를 여러 명 찾아 이 자리에서 확인해 보시죠. 사람이 부족하면 제가 평양후부로 사람을 보내 평양후부의 회계사도 모시고 와서 오늘밤 함께 조사를 하는 건 어떻습니까? 그렇게 하면 내일이면 결론이 날 것 같습니다만.” 그의 말을 들은 가의 군주는 벌떡 일어나 얼굴이 하얗게 질려 소리쳤다. “평양후부는 절대로 안 된다!” ‘안 그래도 시어머니와 부군이 날 못마땅해하는데 만약 그들이 이 일을 알게 된다면 날 정말 안 좋게 생각할지도 몰라...’ 가의 군주는 더 이상 시어머니의 눈치를 보기 싫었다. 장공주는 칼 같이 차가운 눈빛으로 물었다. “왜? 고모님이라 딱딱 부르면서 날 못 믿는 게냐?” 그러자 송석석이 웃으며 말했다. “그럴리가요? 고모님을 믿었기에 제가 직접 장부를 가져와서 함께 확인해 보자고 한 거 아니겠습니까? 고모님을 믿지 않았다면 이 장부와 조천민은 이미 관청으로 들어갔겠지요.” 장공주는 찻잔을 내려놓고 말했다. “몇 년간의 장부를 하루아침에 확인할 수는 없지 않느냐?” 그러자 송석석이 어이없다는 듯 가볍게 웃었다. “고모님의 가게도 적지 않으니 장공주부에 회계사가 한 명뿐일 리가 없지 않습니까? 점포의 회계사도 있고, 정 방법이 없다면 저희 국공부와 북명왕부의 회계사도 함께 데려오겠습니다.” “그러니까 결국
안풍친왕이 말했다."이번 여정은 서경과 상국을 위한 것이지만, 북당을 위한 것이기도 하니 감사할 필요는 없습니다. 국가 간의 교류는 언제나 이익을 우선으로 하니까요. 개인적인 인연이 있을 때 진심으로 대하는 것이죠."송석석은 깨달음을 얻은 동시에 궁금한 점이 있어 물었다."혹시 제 사부 임양운을 아십니까?"안풍친왕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알지요. 그는 북당에 와서 제 채성루에서 잠시 머문 적이 있습니다. 제 호위 지휘사인 흑영위가 당신의 사부와 매우 친한 사이입니다. 그들은 자주 함께 술을 마셨죠.""그렇군요." 송석석은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을 떠올렸다. 그 중 어떤 사람이 흑영위 선배인지는 모르겠지만, 만날 수 없다면 정말 아쉬운 일이었다.안풍친왕은 이내 그녀의 마음을 눈치 챘는지 웃으며 말했다.“우리 북당은 3년 혹은 5년 후에 상국을 방문할 예정입니다. 그때 흑영위를 소개해드리겠습니다."송석석이 막 감사의 말을 하려는데, 시만자가 말했다."왜 3년 혹은 5년 후인가요? 좀 더 일찍 갈 수 없나요? 왕야와 왕비께서 가시는 걸 기대하고 있습니다."안풍친왕은 미소를 지으며 깊은 뜻이 담긴 말을 했다."지금은 아직 그때가 아닙니다."그들이 말하지 않으니 더 이상 물어보는 건 예의가 아니었다.옆에서 조용히 앉아 있던 안풍왕비는 거의 말을 하지 않았으며, 그저 눈앞의 간식들을 맛있게 먹고 있었다. 아무것도 특별할 것 없는 설탕절임과 육포였지만, 그녀는 그것을 매우 맛있게 먹었다.송석석은 탁자 아래에서 그들이 손을 서로 맞잡고 있는 것을 보고, 그들의 사랑이 누구보다 깊다는 것을 느꼈다.두 나라 간의 교류에 대해 더 얘기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들은 잠시 가볍게 잡담만 나눈 뒤 그들을 보내주었다. 떠나기 전에 안풍친왕비가 먼저 입을 열었다.“송대감, 시 소저, 4년 후에 상국에서 뵙겠습니다."송석석은 급히 손을 모으며 말했다."네. 왕야와 왕비께서는 반드시 오셔야 합니다."그들이 떠난 후, 별관 문이 닫혔다.송석석과 시만자
이틀 동안 돌아본 후, 수란키가 송석석에게 말했다. "귀국에 단신의라는 신의가 계십니다. 그분이 만든 단설환의 한 가지 재료인 설연화가 귀국에서 생산량이 매우 적다고 알고있습니다. 남강에 있기는 하지만, 설산 정상에 자생하고 있어 채집하기 매우 어려우며, 또한 드뭅니다. 하지만 저희 쪽에서는 설연화가 그리 희귀한 것이 아닙니다. 고산지대 어디에서나 볼 수 있지요. 그가 사용하는 설연화는 모두 서경 약장수에게 몰래 사서 쓰는 것으로, 가격이 매우 비쌉니다. 그 가격으로 단설환을 팔면, 한 알을 팔아서 한 알을 잃는 셈입니다."송석석은 단설환이 부족한 이유가 일부 약재를 구할 수 없기 때문임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단 백부는 구체적으로 어떤 약재가 부족하다고는 말하지 않았다. 서경과 상국은 그동안 무역을 하지 않았고, 특히 약재는 더 조심스럽게 다뤄졌기 때문에 그가 서경 사람에게 약재를 산 것을 비밀로 한 이유가 이해가 됐다.수란키와 원신제는 한 마음으로 이렇게 세세하게 조사를 진행했으며, 두 나라 간에 상호 교역을 이루려는 계획이 이미 있었을 것이다. 안풍친왕을 불러들인 것도 이 일을 실현하기 위해서였다. 단설환은 생명 구제용 약이라, 만약 약재만 부족하지 않다면 평민들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어 실로 민생에 큰 이익이 된다. 송석석은 그들이 지나쳤던 약재 시장을 떠올리며 말했다. "그럼 왜 약재 시장에서는 설연화를 본 적이 없죠?" 수란키가 웃으며 답했다. "그건 당연합니다. 우리 서경에서 설연화가 많이 자생하기는 하지만, 여전히 희귀한 재료입니다.고산지대를 올라가야만 채집할 수 있기에 위험하기도 하지요. 게다가 약효가 뛰어나지 않습니까. 심장을 강하게 하고 통증을 멈추는 효과가 있어, 시장에서 거래되는 법이 없습니다. 송대감께서 믿지 못하신다면, 제가 지금 당장 사람을 보내서 설연화 한 바구니를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그것을 상국으로 가져가서 단신의께 검증받으시면 됩니다."그는 말을 마친 후 시 사람을 시켜 설연화 한 바구니를 가
그가 앉은 자리는 북당이 이번 협상에서 취한 입장을 대표했다.그는 중립의 위치에 있었다. 송석석은 다시 한 번 국가가 강성한 것이 정말 좋다며 감탄했다. 협상의 처음 부분은 조금 지루했다. 양쪽 모두 똑같은 말을 반복하며 강조하였고, 양쪽의 역관들이 그것을 전달하며, 모두 역사적 문제를 강조했다. 이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처음부터 양보를 한다면 계속해서 양보하게 될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따라서 첫 번째 협상에서는 아무런 합의도 이루어지지 않았고, 서로의 한계를 시험하는 데 그쳤다. 다음 날, 바로 두 번째 협상이 시작되었다. 역시 초반에는 전날처럼 양쪽에서 강조하는 말들이 오갔다.그러다가 잠시 후, 안풍친왕이 먼저 말을 꺼냈다. "이렇게 계속해서 시간을 낭비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두 나라의 국경 문제는 이미 수십 년간 지속되어 왔고, 이것은 하루아침에 해결될 문제가 아닙니다. 우선 국경 문제는 잠시 제쳐두고, 본왕은 두 나라가 서로 친선을 맺고, 서로 침범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확인하고 싶습니다." 그의 말에, 모두 두 나라가 더 이상 분쟁을 일으키지 않기를 바란다며 긍정적인 의사를 내비쳤다. 안풍친왕은 한 장의 목록을 꺼냈다. 그 목록에는 양국의 상품들이 나열되어 있었고, 그 중에는 곡물, 가축, 비단, 직물, 수공예품, 찻잎, 모피, 도자기, 종이, 벼루, 각자의 나라에서만 자생하는 약초, 향료, 청염, 철광, 옥석 광물 등이 있었다. 양쪽은 그것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처음의 긴장감이 서서히 풀리기 시작했다. 막대한 이익 앞에서, 어떤 일들은 협상이 가능했다. 협상이 되지 않으면 잠시 미룰 수도 있었다. 수년간의 전쟁은 두 국가의 국고를 이미 소진시켰기에 양쪽 모두 휴식을 취할 필요가 있었다. 북당의 발전 경험에 따르면, 농업을 중시하고 상업을 억제하는 것은 뒤처진 생각이며, 농업과 상업을 동시에 중시하는 것이 살길이었다. 상업세 또한 매우 높았다. 안풍친왕의 이 목록 덕분에 두 나라는 국경
하지만 송석석은 서경의 종친과 관리들이 북당이 협상에 개입할 것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것 같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들의 얼굴에는 놀람이 역력했다.놀란 마음이 지나고 나자, 그들은 기쁨과 자신감을 드러냈다. 그들은 북당이 협상에 참여하는 것이 서경을 위한 든든한 지원이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송석석은 이 장면을 보며 오히려 안심을 했다. 정말 그렇다면 원신제가 미리 그들에게 이를 알려줄 수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협상에 참여하는 관리들에게는 알렸어야 하는데, 그녀가 왜 말을 하지 않았는지이제야 확실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녀도 서로 양보하는 방향으로 가길 원했지만, 궁정의 문무 백관들 중 그녀를 지지하는 이들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신복하는 북당 안풍친왕을 초대한 것이었다.이렇게 보니, 어제 원신제가 그녀와 시만자를 궁으로 부른 이유도 이해가 되었다. 처음에 말했던 그런 것들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았다는 말이었다. 여성의 과거 시험을 예로 든 것은, 그녀의 많은 결정들이 추진하기 어려운 상황임을 말하고자 했기 때문이었다.여기까지 분석을 마친 송석석은 점점 더 낙관적이게 되었다.궁중 연회가 끝난 후, 북당 사람들은 대접을 받으며 떠났다. 그들은 그 한 끼를 제외하고는 의견을 거의 내비치지 않았으며, 단지 짧은 대화를 나누었을 뿐이었다.그들이 떠난 후, 상국의 사절단도 일어나 인사를 하며 물러났다. 모두가 돌아가서 협상 준비를 해야 했다. 수란키가 제공한 일정을 따르면, 이틀 후부터 협상이 시작될 예정이었다.황궁 별관에 돌아가자, 이덕회는 모두를 모아 앉히고 논의했다.사실상 또 다른 진부한 이야기였다. 이번에도 양보를 해야 한다면, 모두가 지도 위에서 함께 논의해야 할 상황이었다. 하지만 출발하기 전에 황제가 이미 양보의 한계를 설정해 두었기 때문에 더 이상 양보를 하게 되면 돌아가기도 어렵고, 역사적인 죄인이 될 수도 있었다.그래서 아무도 먼저 말을 꺼내지 않았으며, 그저 지도만 바라보며 각자 생각을 정리하고 있었다.
사실 이런 자리에서는 모두 입맛이 그다지 좋지 않기 마련인지라, 많은 음식들이 한 입 먹고 나면 다시 치워지곤 한다.하지만 북당의 사람들은 정말 음식을 존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어떤 요리가 나와도 모두 다 먹어버렸으며, 가득 채운 술잔도 순식간에 비웠다. 그들을 시중드는 궁인들도 꽤 힘들었을 것이었다.시만자는 그들이 춘만루에서 먹었던 그 한 끼를 떠올렸다. 그때도 남은 음식이 하나도 없이 모든 것이 비워졌었다.그녀는 송석석에게 무언가 말을 건네고 싶었다. 하지만 식사 소리 외에는 아무 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기에 말을 꺼내기 어려웠다.그러나 그들은 눈짓만으로도 서로가 하고자 하는 말의 의미를 알아차렸다.시만자는 북당 사람들이 이곳에 등장한 것이 협상과 관련이 있을 거라고 했고, 송석석도 그렇게 생각했다.하지만 그녀는 그들이 중재자로 온 것인지, 아니면 서경을 돕기 위해 온 것인지 확실하게 알 수 없었다. 만약 중재자라면 협상 또한 오래 걸리지 않고 조약을 체결할 수 있을 테니 더 좋을 것이었다.하지만 만약 서경을 돕기 위해 온 것이라면 협상은 공방전이 될 것이 분명했다. 북당이 그들의 방패가 된다면 상국이 협상에서 어려움을 겪을 것이 틀림 없으니 말이다.이덕회와 홍려사경 등 상국의 사절단들은 상황을 어느 정도 눈치챈 듯 했다. 그래서 그들은 처음의 그 기쁨을 잃은 대신 마음속으로 여러 가지를 고민하는 모습이었다. 눈앞의 음식도 별로 먹고 싶지 않은 듯했지만, 모두가 식사를 하고 있었기에 그들도 어쩔 수 없이 천천히 먹었다.이 궁중 연회는 그들이 참석했던 연회 중 가장 이상한 연회였을 것이다. 마치 폭풍이 다가오는 듯한 무서운 고요함이 느껴졌다.궁중에서 준비한 요리는 총 32가지였다. 그러나 각 요리의 양은 매우 적었으며, 궁인들은 음식을 하나씩 들고 들어와서는 다시 하나씩 치워갔다.누군가 술잔을 들고 싶어했지만, 역시 원신제와 마찬가지로 한 번 쓱 훑어본 후, 술잔을 비우고 다시 내려놓고는 식사를 계속했다.마침내 32가지 요리가 모두 올라갔
다음날, 궁중 연회는 신시에 시작되었고, 여전히 수란키가 직접 그들을 맞아 궁으로 안내해주었다.예상했던 대로 즉위식은 이미 끝난 상태였고, 이번 연회의 주요 목적은 국경선의 협상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궁에 들어간 후에도 다른 나라의 사절단을 보지 못했다.궁 안은 황실의 측근과 문무 백관들로 가득했다. 하지만 그들은 상국의 사절단에게 적대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았고, 친근한 분위기도 없었다.이런 자리에서는 역관의 도움이 필요했기에 대화의 주제가 그리 넓지 않아, 서로 간단한 인사 정도만 나눌 뿐이었다.다른 나라의 사절단이 없을 거라 생각했지만, 입석할 때 원신제가 상국의 사절단에게 말했다."오늘 북당에서 귀빈들이 오십니다. 곧 도착할 것인데, 여러분이 그들과 바로 친해질 것이라 믿습니다."이덕회는 즉시 흥분하며 말했다. "북당의 귀빈이라 하셨습니까? 어떤 분이 오시는지요?"그가 흥분하는 것은 당연했다. 왕이장이 가져온 임양운의 육안총과 포차는 모두 북당에서 개량된 것이었고, 임양운 선생이 북당에서 배운 적이 있었다고 들었기 때문이다.상국의 병부상서로서 그는 정말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싶었다.북당은 상국이 항상 배우고자 했던 본보기였다. 그들의 첨단 무기와 치국책은 상국보다 훨씬 진보적이었다.물론 국가의 상황이 다르기에 모든 것을 배울 수는 없을 테지만, 대화를 깊이 나누면 분명히 얻을 것이 있을 것이었다.원신제는 그들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 "도착하면 알게 될 것입니다."연회는 지루하고 피곤했지만, 북당의 귀빈이 온다면 그 이야기는 달라진다.모두가 기대하고 있을 때, 한 외침이 들렸다.“북당 안풍친왕과 왕비께서 도착하셨습니다!"이덕회는 놀라서 입을 막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의 눈에는 기쁨이 넘치고 있었다.송석석도 사부로부터 안풍친왕의 호를 들어본 적이 있었다. 사부는 그를 매우 존경한다고 했다. 생각치도 못하게 오늘 그를 만날 수 있으니 그녀도 말할 수 없이 기뻤다.반면, 만두와 몽동이 그들은 비교적 담담했
원신제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씁쓸한 게 한 가지 더 있네. 지금까지 짐은 장공주의 신분으로 여인에게도 과거 시험을 볼 자격이 있어야 한다고 높이 외쳤지. 하지만 황제가 된 지금, 어쩔 수 없이 각 세력들의 이익을 고려해줘야 하고 그자들이 짐에 대한 적대심과 경계를 약화시킬 수밖에 없다네. 짐은 이제 고려한 일이 더 많아졌어. 가끔은 속에 천불이 나서 반대파 세력들의 가슴에 칼을 꽂고 싶기도 하네.”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송석석이 대꾸했다.“사실 한 나라의 황제나 대신들은 남녀를 막론하고 결국 최종 목적은 같지 않겠습니까? 폐하께서도 그렇듯 다들 나라의 안정과 백성들의 평안을 바라고 있는 겁니다. 나라에 영원히 전란이 일어나지 않고 창성해야 폐하께서 원하시는 개혁을 진행하셨을 때 반대의 목소리가 잦아드는 것입니다. 그러니 폐하, 현재 가장 중요한 건 폐하의 자리부터 굳건히 지키시는 겁니다.”대놓고 얘기하지는 않았지만 원신제는 송석석의 말뜻을 확실하게 알아들었다. 현재까지 나라가 혼란에 빠져 있고 각 세력들의 제지도 심하기에 이 국면을 해결하는 것도 충분히 힘든 일이다.황제의 자리도 흔들리고 있는 지금, 원신제가 개혁까지 고집하려는 건 더욱 위험한 일이었기에, 미래가 불안정할 수밖에 없었다.시만자 또한 송석석의 말에 동의하는 바였다.“사실 한 가지 일을 처리하는 데에 방법이 한 가지밖에 없는 건 아닙니다. 강경하게 상대방과 맞서 싸우는 것도 방법이지만 이는 가장 현명하지 못한 하책입니다. 한 사람의 성격도 바꾸기 쉽지 않은데 천 년이나 넘게 지속된 규정을 바꾸는 건 더더욱 어려운 일입니다. 폐하께서 관념의 씨앗을 심으시면 언젠가 누군가가 폐하께서 남긴 발자국을 따라 한 걸음씩 나아갈 것입니다.”잠시 머뭇거리던 시만자는 이내 다시 조심스럽게 말을 이어갔다.“저와 석석도 매산에서 무술을 공부할 때 그랬습니다. 다들 저희를 비웃고 하찮게 여겼지만 저희는 결국 실력으로 그자들을 한 명씩 쓰러트렸습니다. 구호만 외친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닙니다. 실력이
서경의 황궁은 금빛으로 반짝였으며 기세가 어마어마했다. 어둠이 깃든 고요한 밤에는 기 장엄함이 더욱 돋보였다.첫 번째 궁문을 들어서고 나서도 마차는 궁 안을 자유롭게 누빌 수 있었다.궁 안 곳곳에는 커다란 나무들 위에는 등불이 잔뜩 걸려 있어 대낮처럼 밝았으며, 누군가가 몰래 나무 위에 숨어있는다고 해도 너무 밝아서 바로 들킬 정도였다.수란키는 앞장서서 걷다가 한 궁전 밖에 도착했는데, 궁녀 두 명이 다가와 수란키와 서경 언어로 몇 마디 나누다가 고개를 돌려 송석석과 시만자에게 환하게 웃으며 허리를 숙여 인사를 올렸다.수란키가 먼저 입을 열었다. “송 대감님, 만자 낭자, 폐하께서 두 분에게 궁전으로 모시라고 하셨습니다.”두 궁녀가 앞에서 길을 안내했고 송석석과 시만자는 이내 궁전 안으로 들어갔다.휘황찬란한 궁전 내부에는 커다란 조각 기둥이 양측에 세워져 있었으며 그 모습은 압박감이 넘쳤다.원신제는 용상에 앉아 환한 미소로 두 사람을 반겼지만 얼굴에는 피로함이 가득해 보였다.송석석과 시만자는 이내 인사를 올렸고 원신제는 그들에게 편하게 앉으라고 했다.그리고는 송석석을 쳐다보며 말을 걸었다.“짐은 송 대감이 사절단과 함께 이곳으로 온다고 하여 며칠 전부터 계속 기대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보니 너무 반갑네.”송석석은 웃으면서도 진지하게 대답했다.“폐하께서 황위에 오르셨다는 소식을 듣고 소인도 너무 기뻤습니다. 원하는 바를 이루신 걸 감축드립니다.”송석석은 원신제를 힐끔 쳐다보았다. 원신제에게서 냉옥 장공주의 모습이 보였고 예전과 크게 변한 건 없었으며 여전히 피로해 보이고 여전히 진중하고 엄숙했다.냉옥 장공주에게 있어서 황제의 역할이든 실권을 손에 쥔 장공주 역할이든 똑같이 신경 쓸 일이 많을 것이다.“원하는 바를 이루느라 많이 힘들었네. 하지만 다행히도 이제 일처리는 훨씬 쉬워졌네.”원신제가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조금 뒤, 궁녀들이 서경 특색이 돋보이는 다과들을 내왔다. 송석석과 시만자는 조금 전에 저녁 식사를 했기에 배가 고프지
서경 수도에 도착했을 땐 8월 13일이었기에, 송석석 일행이 떠난 지 한 달은 족히 넘은 상황이었다. 점심이 되자, 햇빛이 따스하게 비추어졌다.진왕은 마차 안에 몸을 웅크려 누운 채 입성에 진입했다. 하지만 마지막 자객들은 머릿수도 많고 기세도 등등해, 서경 지대에 들어서고 나서도 송석석 일행은 총 일곱 번이나 습격을 당했다. 현갑군은 대부분 부상을 당했고 시만자마저 어깨가 칼에 찔렸지만 다행히 신경까지 다치지는 않았다.진왕이 이렇게까지 크게 논란 건, 자객에게 습격을 당할 당시, 그는 변소 안에 있었다.일을 마치고 변소를 나선 순간, 갑자기 나타난 자객이 검으로 진왕의 가슴을 베었고 그 검을 진왕의 가슴에 꽂으려던 순간, 송석석이 제때에 나타나 손에 들고 있던 검을 한 발 빠르게 자객의 가슴에 꽂았다.하지만, 이내 자객의 머리채를 뒤로 확 잡아당긴 덕분에 진왕은 무사할 수 있었다.그는 가슴팍이 조금 베인 게 전부였지만 큰 중상을 입은 것 마냥 밤새 괴로운 신음소리를 내고 나서야 겨우 진정이 되었다. 수도에 도착하자 수란키가 관원들을 데리고 성문 앞에 서서 진왕을 반겼다. 수란키는 이제 서경의 승상이 되었다.한눈에 송석석을 알아본 수란키는 환하게 웃으며 인사를 했다.“송 장군님, 오랜만에 뵙겠습니다. 여전히 기품이 넘치시네요.”송석석은 말에서 내려 고개를 살짝 숙인 채 인사를 하며 상대방을 힐끗 살폈다. 솔직히 조금 전에 수란키를 알아보지 못했다.전보다 훨씬 늙어 보였고 백발인 데다가 수염도 허옇게 변해 버렸다. 하지만 눈빛은 여전히 카리스마가 넘쳤고 남강 전장에서 봤을 때보다 되레 활기가 넘쳐 보이기까지 했다.남강 전장에서 봤던 수란키는 온몸에서 분노가 들끓고 있었다. 위엄이 넘치고 엄숙한 그는 삶의 의지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으며 그저 복수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살아가는 그런 느낌이었다.“승상께서 이렇게 직접 마중까지 나오시고. 너무 민폐를 끼치는 게 아닌가 걱정이 되네요.”송석석이 웃으면서 말하자 수란키가 호탕하게 웃었다.“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