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 단신의는 방금 전 고통으로 인해 저도 모르게 소리를 냈던 서우의 모습을 떠올렸다.‘고통이 성대 회복에도 도움이 되나 보군... 좋은 현상이야.’접골은 홍작이 직접 해도 충분하나 서우는 보통 환자가 아니라 단신의가 직접 나섰다.접골은 그에게 숨 쉬는 것이나 마찬가지로 익숙한 일이었고 숙련된 손길로 조심스레 뼈를 맞춰가기 시작했다.고통으로 인한 식은땀으로 온몸이 흠뻑 젖은 서우는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사여묵의 팔목을 꽉 부여잡았다.손톱이 파고 들어가며 핏자국이 났지만 사여묵은 지금 가장 고통스러운 것이 서우임을 알기에 내색하지 않았다.진통 효능이 있는 탕약을 먹었음에도 효과는 미미했다.다친 것은 다리뿐이지만 몸 전체가 아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그렇게 영겁같던 치료가 끝나고 단신의는 두 나무판으로 다리를 고정했다. 뼈가 완전히 붙기 전까진 누워서 생활할 수밖에 없었다.하지만 단신의가 직접 만든 연고는 뼈가 다시 붙는데 도움을 주는 영험한 효능이 있었고 탕약까지 꾸준히 마셔주면 열흘 안에 다시 걸을 수 있게 될 것으로 보였다.다리를 묶은 뒤 단신의는 또 탕약 한 그릇을 건넸다. 수면 작용이 있는 약초가 든 약이라 먹으면 스르륵 잠이 드는 약이었다.‘한숨 자면 많이 좋아질 테지.’한편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이들은 서우의 처참한 비명에 가슴이 찢어지고 있었다.저 어린 아이가 저정도로 울부짖을 정도라면 얼마나 아플까 싶었다.송석석은 초조한 마음으로 마당을 서성대며 문이 열리기만을 기다렸고 공부인은 벌벌 떨며 부처님을 향해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얼마나 흘렀을까. 문이 열리고 사여묵이 먼저 방을 나섰다.다급하게 방으로 들어간 송석석은 홍작이 침대에 누운 서우에게 고통을 완화해 주는 침을 놔주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단신의가 그녀를 향해 조용히 하라는 듯 쉿하고 소리를 냈다.“나가거라. 한숨 푹 자게 내버려둬. 참 강한 아이로구나.”등 떠밀려 나간 송석석은 물론 다른 가족들도 서우를 만나는 것은 잠시 미루는 게 좋겠다는 통보를 받았다.
사여묵은 조심스러우면서도 빠른 사여묵의 행동을 빤히 바라보았다.고개를 숙여 보이는 건 속눈썹뿐이었지만 가끔씩 살짝 움직이는 속눈썹이 미풍에 흔들리는 꽃잎처럼 느껴졌다.송석석이 이토록 부드러운 모습은 흔히 볼 수 없는 터라 사여묵의 가슴이 살짝 설레어왔다.두 바퀴나 감은 붕대를 살펴보던 사여묵이 피식 웃었다.“상처에 비해 너무 과분한 처리 아닌가?”“과분하다뇨.”고개를 든 송석석이 눈이 동그래져선 말했다.“이런 상처야말로 덧나면 큰일납니다. 전에 다친 적 있었는데 고름도 나오고 난리도 아니었지요. 제 손등 좀 보십시오.”송석석이 손등을 보여주었다.손톱 정도 되는 작은 흉터가 눈에 들어왔다.“그때 심하게 덧났었는데 사부님의 약 덕분에 나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결국 흉터가 남고 말았죠. 이렇게 예쁜 왕야님 손에 흉터라도 남으면 곱지 않... 아니죠. 흉터가 있어도 고우십니다.”말하려다 방금 전 상처를 씻어낼 때 손에 크고 작은 흉터가 가득했던 걸 떠올린 송석석이 어색하게 말을 돌렸다.그 모습이 재밌어 사여묵은 그녀를 놀려대기 시작했다.“사내 손이 고운 게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곱지 않은 것보다야 낫지요.”송석석이 진지한 표정으로 대답했다.피식 웃던 사여묵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그럼 실망이 크겠구나. 내 몸엔 온통 크고 작은 상처뿐이라서 말이야.”“그건 승리의 상징이지요.”손을 씻은 송석석이 꽃처럼 환하게 웃었다.“저도 있습니다. 그런 상처.”“전에 다친 데는 다 괜찮은 것이지?”전장에서 부상을 입었던 걸 떠올린 사여묵이 물었다.“그럼요. 오히려 지금은 자연스럽습니다.”치료에 필요했던 물건을 치우라고 말하고 차를 준비하라 분부한 송석석이 말했다.“공양 오라버니도 차 마시러 오시라고 전해라.”“진백님께서 정청으로 모셨습니다. 곧 저택으로 돌아가신다 합니다. 도련님께서 한동안 주무실 거라 단신의님께서 말씀하셨거든요. 괜히 기다리지 말고 돌아가셨다 내일 다시 오시라 하셨습니다.”“그래.”고개를 끄덕인 송석석은
눈물이 잔뜩 묻은 얼굴로 고개를 든 송석석이 말했다.“어찌 되었든 이 은혜는 평생 명심하겠습니다. 앞으로 왕야님께서 제게 뭘 시키시든 양심에 위배되지만 않는 일이라면 뭐든 하겠습니다.”이에 사여묵이 정색하며 말했다.“네가 날 위해 뭔가 할 필요는 없다. 너한테 바라는 게 있다면 그건 그저 네가 행복하게 잘 사는 것, 그것뿐이야. 그래야 하늘에 있는 네 부모도 기뻐할 게 아니냐.”그의 말에 감동을 받은 송석석의 눈가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하지만 촉촉하게 젖은 눈동자에 곧 의아함이 담겼다.“그런데 왜 저한테 이렇게 잘해 주시는 겁니까?”하지만 사여묵은 이토록 연약한 송석석의 모습을 지켜보는 게 힘들었다.씩씩하게 전장을 누비던 모습을 떠올리다 지금 눈앞의 그녀를 바라보고 있자니 더 마음이 아파왔다.하지만 자신의 표정을 들키지 않기 위해 사여묵은 애써 고개를 돌렸다.“곧 혼인할 여인에게 잘해 주는 게 당연한 것 아니냐? 우린 앞으로 평생 함께 살아가야 할 사이이니 말이다.”그의 말에 분명 감동해야 하거늘, 이미 이런 말을 들은 적 있는 송석석에겐 그저 의미없는 약속처럼 느껴졌다.어쩐지 재수없는 그 모습이 다시 떠올라 송석석은 괜히 뾰로통한 말투로 말했다.“한때 똑같은 말을 들은 적이 있었는데 그 결과가 어땠는지는 다들 알고 있는 사실이죠.”굳이 이런 말을 해서 분위기를 깨지 않아도 되는데 왠지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전에는 이렇게 약한 사람이 아니었는데. 요즘따라 진짜 양반댁 규수들처럼 짜증도, 투정도 많아진 것이 정말 뭐에 씌였나 싶기도 했다.이에 사여묵은 깊은 눈동자로 그녀를 바라보았다.“그자와 날 비교하지 마라. 내 인생에 부인과의 이별은 사별뿐이야. 난 한 번 뱉은 말은 지키는 인간이니. 지금 못 믿는다 해도 상관없다. 내 남은 평생의 시간으로 너에게 증명할 테니.”“사별이요?”송석석의 눈이 더 휘둥그레졌다.그녀의 맑은 눈동자를 바라보며 사여묵이 대답했다.“내가 너 먼저 가는 것도 나쁘지 않겠구나. 네가 나이 먹은
그런 그가 남강 전장에서 송석석을 만났을 때 그 감정이란 복잡미묘 그 자체였다.넌지시 던진 전북망에 대한 질문을 애써 피하는 걸 보고 그와의 혼인이 행복하지 않음을 깨달았고 주먹에 저도 모르게 힘이 들어갔다.그리고 한참 뒤에야 사여묵은 송석석이 이혼을 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송석석을 아끼지 않은 전북망의 이름을 원수처럼 가슴에 새기고 또 새겼다.어찌 보면 송석석에게 치욕스러운 경험을 안겨준 것이나 마찬가지인 그자의 눈깔을 파내고 싶을 정도로 분노했다.하지만 분노가 가시니 곧 다른 감정이 깃들었다.어쩌면 그에게도 기회가 있는 건 아닐까라는 기대감에 몰래 기뻐하기 시작했다.그녀와 함께 싸우는 동안 애써 감정을 지우며 사여묵은 눈동자에 그 어떤 사적인 감정도 담으면 안 도니다 스스로의 마음을 다잡았다.3년간 남강 전장에서 사여묵은 그렇게 수많은 감정을 감내해야 했었다.진성으로 돌아온 뒤 황제의 견제가 느껴졌지만 상관없었다.그가 원하는 건 애초에 병권 따위가 아니라 송석석이었으니 말이다.황제의 견제가 섭섭하지도 않았다. 황가에서 태어난 형제들이란 무릇 그런 사이니 말이다. 그래도 황제와 적어도 겉으로는 화목한 모습을 연출할 수 있으니 그것만으로 충분했다.하지만 정말 견제와 의심이 더 심해진다 해도 상관없었다. 송석석과 서안과 함께 황제에게서 멀리 떨어진 조용한 땅에서 산다면 충분히 행복할 테니 말이다.이런 생각과 함께 고개를 든 사여묵이 마침 송석석과 시선을 마주치고 순간 심장이 콩닥대기 시작했다.한편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 송석석은 마음이 무거워졌다.‘내가 왕야님을 연모하게 된 건가. 하지만 저분은 이미 마음에 다른 여인을 품고 계시는데. 왜 이런 어긋난 감정이 생기는 거지? 분명 그저 좋은 반려로서 평생을 함께하기로 한 것뿐인데.’실패한 혼인을 끝낸 뒤 이렇게나 빨리 또 다른 남자에게 마음이 흔들릴 거라고 생각지 못한 송석석은 이 상황이 꽤 당황스러웠다.이때 보주가 잔뜩 빨개진 송석석의 얼굴을 살피며 의아한 듯 물었다.“아가씨,
다음 날, 눈을 뜬 서우는 처음보다는 많이 나아졌지만 여전히 느껴지는 고통에 살짝 얼굴을 찌푸리다 애써 웃으며 송석석과 공씨 가문 사람들을 위로했다.어린 아이가 강한 척을 하는 모습에 모두들 가슴이 찢어졌다.다리 치료를 마친 뒤에도 목 치료는 게속되어야 했다.홍작 말로는 어제 목침을 못 맞았으니 오늘 무조건 맞아야 한다는 의견이었다.게다가 어제 치료를 통해 비명을 지으며 본의 아니게 목청이 틔었으니 이 기세를 몰아 치료를 진행해야 한다는 것이 단신의의 생각이었다.독소 해독이 생각보다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는 징조이기도 했고 새목단 금단 현상도 다시 일어나지 않아 단신의도 꽤 놀라울 따름이었다.성인도 끊으려면 적어도 반년은 걸리는데 이제 7살된 아이의 의지가 이토록 단단하다니 놀라울만도 했다.“송씨 가문에는 정말 강한 사람들뿐이구나. 대단한 집안이야.”단신의가 홍작에게 말했다.홍작도 고개를 끄덕였다.그동안 서우를 보살피여 정을 쌓은 그는 어느새 서우를 아들이자, 조카로 보고 있었다.어린 나이에 고초를 겪은 서우가 안쓰러우면서도 하루라도 빨리 아이가 건강을 회복하길 진심으로 바라고 있었다.서우의 다리를 치료하는 동안 송석석은 단 한 번도 외출하지 않았다. 국공부를 찾는 손님은 꽤 많았지만 전부 진복에게 시켜 다음으로 미루라고 말한 송석석이 만난 사람이라곤 여동생 란이와 그의 부군 량소뿐이었다.잘생긴 얼굴의 량소는 어딘가 고고해 보이는 분위기였다. 그도 그럴 것이 성은백부의 세자이자 군주를 부인으로 맞이했으니 그 신분이 한층 더 상승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게다가 군주는 현명하고 착한 아내였으며 그를 오랫동안 흠모해 온 여인이었다. 23세의 나이에 량소는 누군가는 평생 이루지 못할 명예와 부귀를 누리게 된 것이었다.그래서일까. 량소는 송석석도 딱히 마음에 들지 않았다.물론 그녀 개인에 대한 평가는 나쁘지 않았다.집안 좋고 외모 좋고 무예 실력도 좋고 전공까지 세운 여인은 보기 드무니 말이다.하지만 명문가 여식 중에는 이혼을 하는 것도
송석석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물었다."세속적인 시선이 그를 깔보는 것은 그가 ‘인의예지신’의 어느 것을 범한 것입니까?""자네가 시집을 두 번 갔기에 그를 해쳤소.""내가 시집을 두 번 가는 것이 그와 무슨 상관입니까?"부끄러운 기색을 드러내게 하려는 량소의 생각과 달리 송석석의 목소리는 침착했다."다시 묻겠습니다. 화리 후 다시 시집을 가는 것을 율법이 허락하지 않는 것입니까, 아니면 풍속이 허락하지 않습니까? 민간에 두 번 시집가는 사람이 있습니까? 인의예지신에 여인이 두 번 시집갈 수 없다고 말을 했습니까? 또 묻겠습니다. 여인이 버림을 받으면 모든 것을 내려놓고 속세를 떠나 외로이 살아야 세속적인 시선을 견뎌낼 수 있는 것입니까?"량소는 코웃음을 쳤다."참, 말도 교묘하게 잘하오."송석석의 말을 반박할 수 없자 그는 가소롭게 대하기로 했다.송석석의 웃음기가 진해졌다."탐화랑께서는 덕을 닦지 않고 배운 것을 전하지도 않았습니다. 게다가 의리도 없고 잘못한 것을 고치지도 않으니, 정말 걱정입니다!"량소는 순간 화를 내며 말했다."자네... 난 본디 좋은 마음으로 한 말이었는데 성인의 말로 나를 모욕하다니. 이런 친척은 왕래하지 않아도 되오!"말을 마치고 그는 벌떡 일어나 소매를 휘날렸다."가시오!"란군주는 다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미안함이 담긴 눈빛으로 송석석을 바라보았다. 두 눈이 붉어진 그녀가 울먹이며 말했다."언니, 우리 먼저 돌아갈게. 며칠 후에 다시 보러 올게."송석석이 가벼운 탄식을 하고 답했다."그래, 먼저 돌아가거라."란군주는 예를 올리고 다급히 량소의 뒤를 따라 가며 소리쳤다."부군, 기다리시오."양 마마는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한숨을 쉬었다."군주께서는 앞으로 오지 않을 것입니다."송석석은 그렇다고 대답한 뒤 말을 이었다."하지만 젊은 나이에 그렇게 고지식할 줄은 몰랐네.""어떤 사람들은 책을 너무 읽어 생각까지 잘못된 것이니 너무 신경 쓰지 마십시오."송석석은 차를 마시며 눈살을 찌푸렸
왕씨 성을 가진 사람을 말하자니, 정말 왕가에서 혼인에 관한 얘기를 하러 왔었다는 것이 기억났다.평서백 왕표의 사촌 동생이었지만 어머니의 마음에 들지 않았다.이미 지난 일이니 더 언급할 필요 없었다. 그녀와 사여묵은 두 달 후면 곧 혼인을 올릴 것이다. 지난날의 일들은 떠나보내고 앞으로의 일들을 맞이해야 했다.과거와 작별하고 다시 태어난 것이다.날이 점점 추워지자, 마당의 매화가 봉오리를 맺어 며칠 지나면 곧 필 것 같았다.올해의 매화는 일찍 피었고, 진복은 이것을 길조라 말했다.서우도 바닥에 내려갈 수 있지만, 몇 걸음만 걷고 침대에 누워 쉬어야 했다.댁에서도 긴박하게 혼사를 준비하고 있다. 혼례복은 혼사가 정해진 날 봉연각에 바느질을 맡겼다. 성안의 권세가들이 혼사를 치를 때 대부분 봉연각을 찾는다. 첫째는 그들의 바느질이 좋고 빠르기 때문이고, 둘째는 봉연각에서 바느질하는 여인들의 실력이 좋아 명성이 자자하기 때문이었다. 많은 외지의 부유한 상인과 귀인들이 천금을 들여서라도 봉연각의 혼례복을 얻으려 했다.양 마마는 봉연각에 진도를 보러 갔다가 돌아온 후 안색이 이상했다. 할 말이 있는 것 같았지만 또 그 말을 하기에 재수가 없다고 생각하는 듯했다.송석석은 상황을 보고 물었다."혼수에 무슨 문제가 생긴 것인가?"송석석은 망토를 입고 서우를 부축하여 매화를 감상했다. 돌아오는 길에서는 서우를 업을 수밖에 없었다.비록 서우는 걷고 싶었지만, 송석석은 단신의의 분부에 따라 당분간 많이 걷게 하지 않았다. 하루에 그저 두세 번 걸어 다리의 기혈이 뭉치지 않도록 활동시킬 뿐이었다.양 마마는 서우가 약을 먹은 후 그릇을 치우고 말했다."아가씨, 별일은 아니옵니다. 그저 왕가네 사람을 만났습니다.""왕가?"송석석은 순간 양 마마가 전에 하려다 그만둔 말을 떠올리며 답했다."그래. 왕가에서 혼약을 얘기하러 왔다고 알고 있네. 그러나 이젠 그 일도 얘기할 필요가 없지."그녀는 서우를 눕히고 양 마마와 밖으로 나갔다.날이 어둡고 바람이 세게
그런데 이틀 만에 평서백부 노부인이 내일 셋째 아가씨를 데리고 찾아온다는 청을 올렸다.양 마마가 아뢰며 말했다."아니면 만나지 마십시오. 그들이 무슨 꿍꿍이로 오는지도 모르지 않습니까? 장군부의 상황을 알아보러 왔다면 진작 왔어야 했습니다. 혼사도 정해졌고 혼례복도 준비하고 있는데 이제야 찾아오다니요."송석석도 만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해 물었다."만나려 청한 글에는 뭐라 쓰여져 있느냐?"양 마마가 답했다."꼬마 도련님이 돌아온 것을 축하하려 온다고 합니다. 그러나 핑계일 뿐이지요. 도련님께서 돌아온 지 그렇게 오래되었는데 이제야 찾아오다니. 전에는 무엇을 했답니까?"송석석은 생각하다 답했다."가서 말을 전하 거라. 서우가 치료를 하고 있으니, 손님을 만나기에 적합하지 않다고. 부상이 나으면 내가 직접 데리고 찾아갈 것이라 전하거라."양 마마는 고개를 끄덕이고 몸을 돌려 나갔다.송석석은 그들 모녀를 만날 상황이 아니다. 그 모녀는 틀림없이 장군부의 일로 찾아왔을 텐데 장군부에 대해 어떠한 말을 해도 상황에 맞지 않으니 만나지 않는 것이 가장 적합했다.말을 전한 뒤 이틀이 지나고, 하늘에는 올겨울 첫눈이 내렸다.눈이 많이 내리지 않아 마당에 얇게 눈꽃을 피울 뿐이었다.송석석은 서우를 데리고 매화원으로 향했다. 매화는 갓 피어났고, 연홍색의 꽃잎에 서리가 내려져 한 폭의 그림 같았다.서우의 얼굴이 빨갛게 얼었지만 기분이 좋은지 그래도 환하게 웃고 있었다.그는 손을 목구멍에 얹고 송석석을 향해 힘겹게 말하려 했다. 여러 번 시도했지만 결국 소리를 내지 못해 작은 볼이 더욱 빨개졌다.송석석은 쪼그리고 앉아 부드럽게 말했다."괜찮다. 천천히 하거라, 급하지 않아."서우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눈빛에 실망이 담겨 있었다. 이전에 그는 ‘윽윽’ 거리는 소리라도 낼 수 있었지만 요 며칠 그 소리마저 내지 못하니 초조해 보였다.그러나 실망에 가득 찬 표정은 곧 미소로 바뀌었다. 서우는 차가운 작은 손으로 고모의 뺨을 어루만지며 힘껏 웃었고, 힘
이틀 동안 돌아본 후, 수란키가 송석석에게 말했다. "귀국에 단신의라는 신의가 계십니다. 그분이 만든 단설환의 한 가지 재료인 설연화가 귀국에서 생산량이 매우 적다고 알고있습니다. 남강에 있기는 하지만, 설산 정상에 자생하고 있어 채집하기 매우 어려우며, 또한 드뭅니다. 하지만 저희 쪽에서는 설연화가 그리 희귀한 것이 아닙니다. 고산지대 어디에서나 볼 수 있지요. 그가 사용하는 설연화는 모두 서경 약장수에게 몰래 사서 쓰는 것으로, 가격이 매우 비쌉니다. 그 가격으로 단설환을 팔면, 한 알을 팔아서 한 알을 잃는 셈입니다."송석석은 단설환이 부족한 이유가 일부 약재를 구할 수 없기 때문임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단 백부는 구체적으로 어떤 약재가 부족하다고는 말하지 않았다. 서경과 상국은 그동안 무역을 하지 않았고, 특히 약재는 더 조심스럽게 다뤄졌기 때문에 그가 서경 사람에게 약재를 산 것을 비밀로 한 이유가 이해가 됐다.수란키와 원신제는 한 마음으로 이렇게 세세하게 조사를 진행했으며, 두 나라 간에 상호 교역을 이루려는 계획이 이미 있었을 것이다. 안풍친왕을 불러들인 것도 이 일을 실현하기 위해서였다. 단설환은 생명 구제용 약이라, 만약 약재만 부족하지 않다면 평민들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어 실로 민생에 큰 이익이 된다. 송석석은 그들이 지나쳤던 약재 시장을 떠올리며 말했다. "그럼 왜 약재 시장에서는 설연화를 본 적이 없죠?" 수란키가 웃으며 답했다. "그건 당연합니다. 우리 서경에서 설연화가 많이 자생하기는 하지만, 여전히 희귀한 재료입니다.고산지대를 올라가야만 채집할 수 있기에 위험하기도 하지요. 게다가 약효가 뛰어나지 않습니까. 심장을 강하게 하고 통증을 멈추는 효과가 있어, 시장에서 거래되는 법이 없습니다. 송대감께서 믿지 못하신다면, 제가 지금 당장 사람을 보내서 설연화 한 바구니를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그것을 상국으로 가져가서 단신의께 검증받으시면 됩니다."그는 말을 마친 후 시 사람을 시켜 설연화 한 바구니를 가
그가 앉은 자리는 북당이 이번 협상에서 취한 입장을 대표했다.그는 중립의 위치에 있었다. 송석석은 다시 한 번 국가가 강성한 것이 정말 좋다며 감탄했다. 협상의 처음 부분은 조금 지루했다. 양쪽 모두 똑같은 말을 반복하며 강조하였고, 양쪽의 역관들이 그것을 전달하며, 모두 역사적 문제를 강조했다. 이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처음부터 양보를 한다면 계속해서 양보하게 될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따라서 첫 번째 협상에서는 아무런 합의도 이루어지지 않았고, 서로의 한계를 시험하는 데 그쳤다. 다음 날, 바로 두 번째 협상이 시작되었다. 역시 초반에는 전날처럼 양쪽에서 강조하는 말들이 오갔다.그러다가 잠시 후, 안풍친왕이 먼저 말을 꺼냈다. "이렇게 계속해서 시간을 낭비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두 나라의 국경 문제는 이미 수십 년간 지속되어 왔고, 이것은 하루아침에 해결될 문제가 아닙니다. 우선 국경 문제는 잠시 제쳐두고, 본왕은 두 나라가 서로 친선을 맺고, 서로 침범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확인하고 싶습니다." 그의 말에, 모두 두 나라가 더 이상 분쟁을 일으키지 않기를 바란다며 긍정적인 의사를 내비쳤다. 안풍친왕은 한 장의 목록을 꺼냈다. 그 목록에는 양국의 상품들이 나열되어 있었고, 그 중에는 곡물, 가축, 비단, 직물, 수공예품, 찻잎, 모피, 도자기, 종이, 벼루, 각자의 나라에서만 자생하는 약초, 향료, 청염, 철광, 옥석 광물 등이 있었다. 양쪽은 그것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처음의 긴장감이 서서히 풀리기 시작했다. 막대한 이익 앞에서, 어떤 일들은 협상이 가능했다. 협상이 되지 않으면 잠시 미룰 수도 있었다. 수년간의 전쟁은 두 국가의 국고를 이미 소진시켰기에 양쪽 모두 휴식을 취할 필요가 있었다. 북당의 발전 경험에 따르면, 농업을 중시하고 상업을 억제하는 것은 뒤처진 생각이며, 농업과 상업을 동시에 중시하는 것이 살길이었다. 상업세 또한 매우 높았다. 안풍친왕의 이 목록 덕분에 두 나라는 국경
하지만 송석석은 서경의 종친과 관리들이 북당이 협상에 개입할 것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것 같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들의 얼굴에는 놀람이 역력했다.놀란 마음이 지나고 나자, 그들은 기쁨과 자신감을 드러냈다. 그들은 북당이 협상에 참여하는 것이 서경을 위한 든든한 지원이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송석석은 이 장면을 보며 오히려 안심을 했다. 정말 그렇다면 원신제가 미리 그들에게 이를 알려줄 수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협상에 참여하는 관리들에게는 알렸어야 하는데, 그녀가 왜 말을 하지 않았는지이제야 확실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녀도 서로 양보하는 방향으로 가길 원했지만, 궁정의 문무 백관들 중 그녀를 지지하는 이들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신복하는 북당 안풍친왕을 초대한 것이었다.이렇게 보니, 어제 원신제가 그녀와 시만자를 궁으로 부른 이유도 이해가 되었다. 처음에 말했던 그런 것들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았다는 말이었다. 여성의 과거 시험을 예로 든 것은, 그녀의 많은 결정들이 추진하기 어려운 상황임을 말하고자 했기 때문이었다.여기까지 분석을 마친 송석석은 점점 더 낙관적이게 되었다.궁중 연회가 끝난 후, 북당 사람들은 대접을 받으며 떠났다. 그들은 그 한 끼를 제외하고는 의견을 거의 내비치지 않았으며, 단지 짧은 대화를 나누었을 뿐이었다.그들이 떠난 후, 상국의 사절단도 일어나 인사를 하며 물러났다. 모두가 돌아가서 협상 준비를 해야 했다. 수란키가 제공한 일정을 따르면, 이틀 후부터 협상이 시작될 예정이었다.황궁 별관에 돌아가자, 이덕회는 모두를 모아 앉히고 논의했다.사실상 또 다른 진부한 이야기였다. 이번에도 양보를 해야 한다면, 모두가 지도 위에서 함께 논의해야 할 상황이었다. 하지만 출발하기 전에 황제가 이미 양보의 한계를 설정해 두었기 때문에 더 이상 양보를 하게 되면 돌아가기도 어렵고, 역사적인 죄인이 될 수도 있었다.그래서 아무도 먼저 말을 꺼내지 않았으며, 그저 지도만 바라보며 각자 생각을 정리하고 있었다.
사실 이런 자리에서는 모두 입맛이 그다지 좋지 않기 마련인지라, 많은 음식들이 한 입 먹고 나면 다시 치워지곤 한다.하지만 북당의 사람들은 정말 음식을 존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어떤 요리가 나와도 모두 다 먹어버렸으며, 가득 채운 술잔도 순식간에 비웠다. 그들을 시중드는 궁인들도 꽤 힘들었을 것이었다.시만자는 그들이 춘만루에서 먹었던 그 한 끼를 떠올렸다. 그때도 남은 음식이 하나도 없이 모든 것이 비워졌었다.그녀는 송석석에게 무언가 말을 건네고 싶었다. 하지만 식사 소리 외에는 아무 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기에 말을 꺼내기 어려웠다.그러나 그들은 눈짓만으로도 서로가 하고자 하는 말의 의미를 알아차렸다.시만자는 북당 사람들이 이곳에 등장한 것이 협상과 관련이 있을 거라고 했고, 송석석도 그렇게 생각했다.하지만 그녀는 그들이 중재자로 온 것인지, 아니면 서경을 돕기 위해 온 것인지 확실하게 알 수 없었다. 만약 중재자라면 협상 또한 오래 걸리지 않고 조약을 체결할 수 있을 테니 더 좋을 것이었다.하지만 만약 서경을 돕기 위해 온 것이라면 협상은 공방전이 될 것이 분명했다. 북당이 그들의 방패가 된다면 상국이 협상에서 어려움을 겪을 것이 틀림 없으니 말이다.이덕회와 홍려사경 등 상국의 사절단들은 상황을 어느 정도 눈치챈 듯 했다. 그래서 그들은 처음의 그 기쁨을 잃은 대신 마음속으로 여러 가지를 고민하는 모습이었다. 눈앞의 음식도 별로 먹고 싶지 않은 듯했지만, 모두가 식사를 하고 있었기에 그들도 어쩔 수 없이 천천히 먹었다.이 궁중 연회는 그들이 참석했던 연회 중 가장 이상한 연회였을 것이다. 마치 폭풍이 다가오는 듯한 무서운 고요함이 느껴졌다.궁중에서 준비한 요리는 총 32가지였다. 그러나 각 요리의 양은 매우 적었으며, 궁인들은 음식을 하나씩 들고 들어와서는 다시 하나씩 치워갔다.누군가 술잔을 들고 싶어했지만, 역시 원신제와 마찬가지로 한 번 쓱 훑어본 후, 술잔을 비우고 다시 내려놓고는 식사를 계속했다.마침내 32가지 요리가 모두 올라갔
다음날, 궁중 연회는 신시에 시작되었고, 여전히 수란키가 직접 그들을 맞아 궁으로 안내해주었다.예상했던 대로 즉위식은 이미 끝난 상태였고, 이번 연회의 주요 목적은 국경선의 협상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궁에 들어간 후에도 다른 나라의 사절단을 보지 못했다.궁 안은 황실의 측근과 문무 백관들로 가득했다. 하지만 그들은 상국의 사절단에게 적대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았고, 친근한 분위기도 없었다.이런 자리에서는 역관의 도움이 필요했기에 대화의 주제가 그리 넓지 않아, 서로 간단한 인사 정도만 나눌 뿐이었다.다른 나라의 사절단이 없을 거라 생각했지만, 입석할 때 원신제가 상국의 사절단에게 말했다."오늘 북당에서 귀빈들이 오십니다. 곧 도착할 것인데, 여러분이 그들과 바로 친해질 것이라 믿습니다."이덕회는 즉시 흥분하며 말했다. "북당의 귀빈이라 하셨습니까? 어떤 분이 오시는지요?"그가 흥분하는 것은 당연했다. 왕이장이 가져온 임양운의 육안총과 포차는 모두 북당에서 개량된 것이었고, 임양운 선생이 북당에서 배운 적이 있었다고 들었기 때문이다.상국의 병부상서로서 그는 정말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싶었다.북당은 상국이 항상 배우고자 했던 본보기였다. 그들의 첨단 무기와 치국책은 상국보다 훨씬 진보적이었다.물론 국가의 상황이 다르기에 모든 것을 배울 수는 없을 테지만, 대화를 깊이 나누면 분명히 얻을 것이 있을 것이었다.원신제는 그들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 "도착하면 알게 될 것입니다."연회는 지루하고 피곤했지만, 북당의 귀빈이 온다면 그 이야기는 달라진다.모두가 기대하고 있을 때, 한 외침이 들렸다.“북당 안풍친왕과 왕비께서 도착하셨습니다!"이덕회는 놀라서 입을 막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의 눈에는 기쁨이 넘치고 있었다.송석석도 사부로부터 안풍친왕의 호를 들어본 적이 있었다. 사부는 그를 매우 존경한다고 했다. 생각치도 못하게 오늘 그를 만날 수 있으니 그녀도 말할 수 없이 기뻤다.반면, 만두와 몽동이 그들은 비교적 담담했
원신제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씁쓸한 게 한 가지 더 있네. 지금까지 짐은 장공주의 신분으로 여인에게도 과거 시험을 볼 자격이 있어야 한다고 높이 외쳤지. 하지만 황제가 된 지금, 어쩔 수 없이 각 세력들의 이익을 고려해줘야 하고 그자들이 짐에 대한 적대심과 경계를 약화시킬 수밖에 없다네. 짐은 이제 고려한 일이 더 많아졌어. 가끔은 속에 천불이 나서 반대파 세력들의 가슴에 칼을 꽂고 싶기도 하네.”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송석석이 대꾸했다.“사실 한 나라의 황제나 대신들은 남녀를 막론하고 결국 최종 목적은 같지 않겠습니까? 폐하께서도 그렇듯 다들 나라의 안정과 백성들의 평안을 바라고 있는 겁니다. 나라에 영원히 전란이 일어나지 않고 창성해야 폐하께서 원하시는 개혁을 진행하셨을 때 반대의 목소리가 잦아드는 것입니다. 그러니 폐하, 현재 가장 중요한 건 폐하의 자리부터 굳건히 지키시는 겁니다.”대놓고 얘기하지는 않았지만 원신제는 송석석의 말뜻을 확실하게 알아들었다. 현재까지 나라가 혼란에 빠져 있고 각 세력들의 제지도 심하기에 이 국면을 해결하는 것도 충분히 힘든 일이다.황제의 자리도 흔들리고 있는 지금, 원신제가 개혁까지 고집하려는 건 더욱 위험한 일이었기에, 미래가 불안정할 수밖에 없었다.시만자 또한 송석석의 말에 동의하는 바였다.“사실 한 가지 일을 처리하는 데에 방법이 한 가지밖에 없는 건 아닙니다. 강경하게 상대방과 맞서 싸우는 것도 방법이지만 이는 가장 현명하지 못한 하책입니다. 한 사람의 성격도 바꾸기 쉽지 않은데 천 년이나 넘게 지속된 규정을 바꾸는 건 더더욱 어려운 일입니다. 폐하께서 관념의 씨앗을 심으시면 언젠가 누군가가 폐하께서 남긴 발자국을 따라 한 걸음씩 나아갈 것입니다.”잠시 머뭇거리던 시만자는 이내 다시 조심스럽게 말을 이어갔다.“저와 석석도 매산에서 무술을 공부할 때 그랬습니다. 다들 저희를 비웃고 하찮게 여겼지만 저희는 결국 실력으로 그자들을 한 명씩 쓰러트렸습니다. 구호만 외친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닙니다. 실력이
서경의 황궁은 금빛으로 반짝였으며 기세가 어마어마했다. 어둠이 깃든 고요한 밤에는 기 장엄함이 더욱 돋보였다.첫 번째 궁문을 들어서고 나서도 마차는 궁 안을 자유롭게 누빌 수 있었다.궁 안 곳곳에는 커다란 나무들 위에는 등불이 잔뜩 걸려 있어 대낮처럼 밝았으며, 누군가가 몰래 나무 위에 숨어있는다고 해도 너무 밝아서 바로 들킬 정도였다.수란키는 앞장서서 걷다가 한 궁전 밖에 도착했는데, 궁녀 두 명이 다가와 수란키와 서경 언어로 몇 마디 나누다가 고개를 돌려 송석석과 시만자에게 환하게 웃으며 허리를 숙여 인사를 올렸다.수란키가 먼저 입을 열었다. “송 대감님, 만자 낭자, 폐하께서 두 분에게 궁전으로 모시라고 하셨습니다.”두 궁녀가 앞에서 길을 안내했고 송석석과 시만자는 이내 궁전 안으로 들어갔다.휘황찬란한 궁전 내부에는 커다란 조각 기둥이 양측에 세워져 있었으며 그 모습은 압박감이 넘쳤다.원신제는 용상에 앉아 환한 미소로 두 사람을 반겼지만 얼굴에는 피로함이 가득해 보였다.송석석과 시만자는 이내 인사를 올렸고 원신제는 그들에게 편하게 앉으라고 했다.그리고는 송석석을 쳐다보며 말을 걸었다.“짐은 송 대감이 사절단과 함께 이곳으로 온다고 하여 며칠 전부터 계속 기대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보니 너무 반갑네.”송석석은 웃으면서도 진지하게 대답했다.“폐하께서 황위에 오르셨다는 소식을 듣고 소인도 너무 기뻤습니다. 원하는 바를 이루신 걸 감축드립니다.”송석석은 원신제를 힐끔 쳐다보았다. 원신제에게서 냉옥 장공주의 모습이 보였고 예전과 크게 변한 건 없었으며 여전히 피로해 보이고 여전히 진중하고 엄숙했다.냉옥 장공주에게 있어서 황제의 역할이든 실권을 손에 쥔 장공주 역할이든 똑같이 신경 쓸 일이 많을 것이다.“원하는 바를 이루느라 많이 힘들었네. 하지만 다행히도 이제 일처리는 훨씬 쉬워졌네.”원신제가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조금 뒤, 궁녀들이 서경 특색이 돋보이는 다과들을 내왔다. 송석석과 시만자는 조금 전에 저녁 식사를 했기에 배가 고프지
서경 수도에 도착했을 땐 8월 13일이었기에, 송석석 일행이 떠난 지 한 달은 족히 넘은 상황이었다. 점심이 되자, 햇빛이 따스하게 비추어졌다.진왕은 마차 안에 몸을 웅크려 누운 채 입성에 진입했다. 하지만 마지막 자객들은 머릿수도 많고 기세도 등등해, 서경 지대에 들어서고 나서도 송석석 일행은 총 일곱 번이나 습격을 당했다. 현갑군은 대부분 부상을 당했고 시만자마저 어깨가 칼에 찔렸지만 다행히 신경까지 다치지는 않았다.진왕이 이렇게까지 크게 논란 건, 자객에게 습격을 당할 당시, 그는 변소 안에 있었다.일을 마치고 변소를 나선 순간, 갑자기 나타난 자객이 검으로 진왕의 가슴을 베었고 그 검을 진왕의 가슴에 꽂으려던 순간, 송석석이 제때에 나타나 손에 들고 있던 검을 한 발 빠르게 자객의 가슴에 꽂았다.하지만, 이내 자객의 머리채를 뒤로 확 잡아당긴 덕분에 진왕은 무사할 수 있었다.그는 가슴팍이 조금 베인 게 전부였지만 큰 중상을 입은 것 마냥 밤새 괴로운 신음소리를 내고 나서야 겨우 진정이 되었다. 수도에 도착하자 수란키가 관원들을 데리고 성문 앞에 서서 진왕을 반겼다. 수란키는 이제 서경의 승상이 되었다.한눈에 송석석을 알아본 수란키는 환하게 웃으며 인사를 했다.“송 장군님, 오랜만에 뵙겠습니다. 여전히 기품이 넘치시네요.”송석석은 말에서 내려 고개를 살짝 숙인 채 인사를 하며 상대방을 힐끗 살폈다. 솔직히 조금 전에 수란키를 알아보지 못했다.전보다 훨씬 늙어 보였고 백발인 데다가 수염도 허옇게 변해 버렸다. 하지만 눈빛은 여전히 카리스마가 넘쳤고 남강 전장에서 봤을 때보다 되레 활기가 넘쳐 보이기까지 했다.남강 전장에서 봤던 수란키는 온몸에서 분노가 들끓고 있었다. 위엄이 넘치고 엄숙한 그는 삶의 의지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으며 그저 복수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살아가는 그런 느낌이었다.“승상께서 이렇게 직접 마중까지 나오시고. 너무 민폐를 끼치는 게 아닌가 걱정이 되네요.”송석석이 웃으면서 말하자 수란키가 호탕하게 웃었다.“너
한편, 크게 놀란 진왕은 태의를 불러 심신을 안정할 수 있는 약을 처방받았다.송석석이 찾아갔을 때, 진왕의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창백한 얼굴에는 핏기가 전혀 보이지 않았으며 덜덜 떨리는 입술로 송석석에게 자객은 어떻게 됐냐고 물었다.송석석이 진왕에게 자객이 도망쳤다고 얘기하고 나서야 그는 조금 안정을 찾은 듯했다.사실 진왕을 보필하는 사람들이 자객이 도망쳤다고 진작 얘기했지만 진왕은 믿지 않았다. 이제 송석석에게서 듣고 나니 그제야 안심이 된 것이다.송석석은 진왕에게 몸조리 잘 하라고 당부한 뒤 방을 나섰다.이와 동시에, 이덕회는 나머지 사람들을 안심시키고 있었다. 병부 상서인 이덕회는 지금까지 산전 수전 공중전까지 전부 겪어 보기도 했고 또한 왕비와 현갑군을 믿었기에 전혀 겁을 먹지 않았다.한편, 매산 출신 몇 명은 한데 모여 전에 성릉관에서 만났던 검은 복장 차림의 무리들을 의심하고 있었다.어쩌면 그자들이 바로 자객일지도 모른다는 의심 말이다.이 의심을 가장 먼저 제기한 건 바로 시만자였다. 그는 그 무리들이 갑자기 사라진 게 너무 수상했고 비밀 경로를 통해 계획적으로 도망친 거라고 확신했다.더군다나 조금 전 자객들도 전부 검은색 옷차림이었기에, 비록 머릿수가 조금 차이 나긴 했지만 그리 이상하지도 않다. 일부 사람들은 숨어서 지켜보고 있었을 수도 있으니까.“성릉관에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출동했던 건 아마 우리한테 손을 쓰려고 그랬을 가능성이 커. 하지만 나중에 생각해보니까 성릉관에서 우리를 죽이면 쉽게 도망칠 수 없을 것 같아서 일단 포기한 거야.”시만자는 분석할수록 자신의 의심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해서 고개를 돌려 송석석에게 물었다.“내 말이 맞는 것 같지 않아?”송석석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그자들은 아니야. 정확히 얘기하자면 조금 전 자객들은 그자들보다 무술 실력이 확연히 떨어져. 그자들은 성릉관에서도 자유롭게 나타났다가 사라졌어. 그렇게 보면 네 의심이 성립되지 않다는 거지. 그자들은 성릉관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