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여묵은 조심스러우면서도 빠른 사여묵의 행동을 빤히 바라보았다.고개를 숙여 보이는 건 속눈썹뿐이었지만 가끔씩 살짝 움직이는 속눈썹이 미풍에 흔들리는 꽃잎처럼 느껴졌다.송석석이 이토록 부드러운 모습은 흔히 볼 수 없는 터라 사여묵의 가슴이 살짝 설레어왔다.두 바퀴나 감은 붕대를 살펴보던 사여묵이 피식 웃었다.“상처에 비해 너무 과분한 처리 아닌가?”“과분하다뇨.”고개를 든 송석석이 눈이 동그래져선 말했다.“이런 상처야말로 덧나면 큰일납니다. 전에 다친 적 있었는데 고름도 나오고 난리도 아니었지요. 제 손등 좀 보십시오.”송석석이 손등을 보여주었다.손톱 정도 되는 작은 흉터가 눈에 들어왔다.“그때 심하게 덧났었는데 사부님의 약 덕분에 나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결국 흉터가 남고 말았죠. 이렇게 예쁜 왕야님 손에 흉터라도 남으면 곱지 않... 아니죠. 흉터가 있어도 고우십니다.”말하려다 방금 전 상처를 씻어낼 때 손에 크고 작은 흉터가 가득했던 걸 떠올린 송석석이 어색하게 말을 돌렸다.그 모습이 재밌어 사여묵은 그녀를 놀려대기 시작했다.“사내 손이 고운 게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곱지 않은 것보다야 낫지요.”송석석이 진지한 표정으로 대답했다.피식 웃던 사여묵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그럼 실망이 크겠구나. 내 몸엔 온통 크고 작은 상처뿐이라서 말이야.”“그건 승리의 상징이지요.”손을 씻은 송석석이 꽃처럼 환하게 웃었다.“저도 있습니다. 그런 상처.”“전에 다친 데는 다 괜찮은 것이지?”전장에서 부상을 입었던 걸 떠올린 사여묵이 물었다.“그럼요. 오히려 지금은 자연스럽습니다.”치료에 필요했던 물건을 치우라고 말하고 차를 준비하라 분부한 송석석이 말했다.“공양 오라버니도 차 마시러 오시라고 전해라.”“진백님께서 정청으로 모셨습니다. 곧 저택으로 돌아가신다 합니다. 도련님께서 한동안 주무실 거라 단신의님께서 말씀하셨거든요. 괜히 기다리지 말고 돌아가셨다 내일 다시 오시라 하셨습니다.”“그래.”고개를 끄덕인 송석석은
눈물이 잔뜩 묻은 얼굴로 고개를 든 송석석이 말했다.“어찌 되었든 이 은혜는 평생 명심하겠습니다. 앞으로 왕야님께서 제게 뭘 시키시든 양심에 위배되지만 않는 일이라면 뭐든 하겠습니다.”이에 사여묵이 정색하며 말했다.“네가 날 위해 뭔가 할 필요는 없다. 너한테 바라는 게 있다면 그건 그저 네가 행복하게 잘 사는 것, 그것뿐이야. 그래야 하늘에 있는 네 부모도 기뻐할 게 아니냐.”그의 말에 감동을 받은 송석석의 눈가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하지만 촉촉하게 젖은 눈동자에 곧 의아함이 담겼다.“그런데 왜 저한테 이렇게 잘해 주시는 겁니까?”하지만 사여묵은 이토록 연약한 송석석의 모습을 지켜보는 게 힘들었다.씩씩하게 전장을 누비던 모습을 떠올리다 지금 눈앞의 그녀를 바라보고 있자니 더 마음이 아파왔다.하지만 자신의 표정을 들키지 않기 위해 사여묵은 애써 고개를 돌렸다.“곧 혼인할 여인에게 잘해 주는 게 당연한 것 아니냐? 우린 앞으로 평생 함께 살아가야 할 사이이니 말이다.”그의 말에 분명 감동해야 하거늘, 이미 이런 말을 들은 적 있는 송석석에겐 그저 의미없는 약속처럼 느껴졌다.어쩐지 재수없는 그 모습이 다시 떠올라 송석석은 괜히 뾰로통한 말투로 말했다.“한때 똑같은 말을 들은 적이 있었는데 그 결과가 어땠는지는 다들 알고 있는 사실이죠.”굳이 이런 말을 해서 분위기를 깨지 않아도 되는데 왠지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전에는 이렇게 약한 사람이 아니었는데. 요즘따라 진짜 양반댁 규수들처럼 짜증도, 투정도 많아진 것이 정말 뭐에 씌였나 싶기도 했다.이에 사여묵은 깊은 눈동자로 그녀를 바라보았다.“그자와 날 비교하지 마라. 내 인생에 부인과의 이별은 사별뿐이야. 난 한 번 뱉은 말은 지키는 인간이니. 지금 못 믿는다 해도 상관없다. 내 남은 평생의 시간으로 너에게 증명할 테니.”“사별이요?”송석석의 눈이 더 휘둥그레졌다.그녀의 맑은 눈동자를 바라보며 사여묵이 대답했다.“내가 너 먼저 가는 것도 나쁘지 않겠구나. 네가 나이 먹은
그런 그가 남강 전장에서 송석석을 만났을 때 그 감정이란 복잡미묘 그 자체였다.넌지시 던진 전북망에 대한 질문을 애써 피하는 걸 보고 그와의 혼인이 행복하지 않음을 깨달았고 주먹에 저도 모르게 힘이 들어갔다.그리고 한참 뒤에야 사여묵은 송석석이 이혼을 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송석석을 아끼지 않은 전북망의 이름을 원수처럼 가슴에 새기고 또 새겼다.어찌 보면 송석석에게 치욕스러운 경험을 안겨준 것이나 마찬가지인 그자의 눈깔을 파내고 싶을 정도로 분노했다.하지만 분노가 가시니 곧 다른 감정이 깃들었다.어쩌면 그에게도 기회가 있는 건 아닐까라는 기대감에 몰래 기뻐하기 시작했다.그녀와 함께 싸우는 동안 애써 감정을 지우며 사여묵은 눈동자에 그 어떤 사적인 감정도 담으면 안 도니다 스스로의 마음을 다잡았다.3년간 남강 전장에서 사여묵은 그렇게 수많은 감정을 감내해야 했었다.진성으로 돌아온 뒤 황제의 견제가 느껴졌지만 상관없었다.그가 원하는 건 애초에 병권 따위가 아니라 송석석이었으니 말이다.황제의 견제가 섭섭하지도 않았다. 황가에서 태어난 형제들이란 무릇 그런 사이니 말이다. 그래도 황제와 적어도 겉으로는 화목한 모습을 연출할 수 있으니 그것만으로 충분했다.하지만 정말 견제와 의심이 더 심해진다 해도 상관없었다. 송석석과 서안과 함께 황제에게서 멀리 떨어진 조용한 땅에서 산다면 충분히 행복할 테니 말이다.이런 생각과 함께 고개를 든 사여묵이 마침 송석석과 시선을 마주치고 순간 심장이 콩닥대기 시작했다.한편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 송석석은 마음이 무거워졌다.‘내가 왕야님을 연모하게 된 건가. 하지만 저분은 이미 마음에 다른 여인을 품고 계시는데. 왜 이런 어긋난 감정이 생기는 거지? 분명 그저 좋은 반려로서 평생을 함께하기로 한 것뿐인데.’실패한 혼인을 끝낸 뒤 이렇게나 빨리 또 다른 남자에게 마음이 흔들릴 거라고 생각지 못한 송석석은 이 상황이 꽤 당황스러웠다.이때 보주가 잔뜩 빨개진 송석석의 얼굴을 살피며 의아한 듯 물었다.“아가씨,
다음 날, 눈을 뜬 서우는 처음보다는 많이 나아졌지만 여전히 느껴지는 고통에 살짝 얼굴을 찌푸리다 애써 웃으며 송석석과 공씨 가문 사람들을 위로했다.어린 아이가 강한 척을 하는 모습에 모두들 가슴이 찢어졌다.다리 치료를 마친 뒤에도 목 치료는 게속되어야 했다.홍작 말로는 어제 목침을 못 맞았으니 오늘 무조건 맞아야 한다는 의견이었다.게다가 어제 치료를 통해 비명을 지으며 본의 아니게 목청이 틔었으니 이 기세를 몰아 치료를 진행해야 한다는 것이 단신의의 생각이었다.독소 해독이 생각보다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는 징조이기도 했고 새목단 금단 현상도 다시 일어나지 않아 단신의도 꽤 놀라울 따름이었다.성인도 끊으려면 적어도 반년은 걸리는데 이제 7살된 아이의 의지가 이토록 단단하다니 놀라울만도 했다.“송씨 가문에는 정말 강한 사람들뿐이구나. 대단한 집안이야.”단신의가 홍작에게 말했다.홍작도 고개를 끄덕였다.그동안 서우를 보살피여 정을 쌓은 그는 어느새 서우를 아들이자, 조카로 보고 있었다.어린 나이에 고초를 겪은 서우가 안쓰러우면서도 하루라도 빨리 아이가 건강을 회복하길 진심으로 바라고 있었다.서우의 다리를 치료하는 동안 송석석은 단 한 번도 외출하지 않았다. 국공부를 찾는 손님은 꽤 많았지만 전부 진복에게 시켜 다음으로 미루라고 말한 송석석이 만난 사람이라곤 여동생 란이와 그의 부군 량소뿐이었다.잘생긴 얼굴의 량소는 어딘가 고고해 보이는 분위기였다. 그도 그럴 것이 성은백부의 세자이자 군주를 부인으로 맞이했으니 그 신분이 한층 더 상승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게다가 군주는 현명하고 착한 아내였으며 그를 오랫동안 흠모해 온 여인이었다. 23세의 나이에 량소는 누군가는 평생 이루지 못할 명예와 부귀를 누리게 된 것이었다.그래서일까. 량소는 송석석도 딱히 마음에 들지 않았다.물론 그녀 개인에 대한 평가는 나쁘지 않았다.집안 좋고 외모 좋고 무예 실력도 좋고 전공까지 세운 여인은 보기 드무니 말이다.하지만 명문가 여식 중에는 이혼을 하는 것도
송석석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물었다."세속적인 시선이 그를 깔보는 것은 그가 ‘인의예지신’의 어느 것을 범한 것입니까?""자네가 시집을 두 번 갔기에 그를 해쳤소.""내가 시집을 두 번 가는 것이 그와 무슨 상관입니까?"부끄러운 기색을 드러내게 하려는 량소의 생각과 달리 송석석의 목소리는 침착했다."다시 묻겠습니다. 화리 후 다시 시집을 가는 것을 율법이 허락하지 않는 것입니까, 아니면 풍속이 허락하지 않습니까? 민간에 두 번 시집가는 사람이 있습니까? 인의예지신에 여인이 두 번 시집갈 수 없다고 말을 했습니까? 또 묻겠습니다. 여인이 버림을 받으면 모든 것을 내려놓고 속세를 떠나 외로이 살아야 세속적인 시선을 견뎌낼 수 있는 것입니까?"량소는 코웃음을 쳤다."참, 말도 교묘하게 잘하오."송석석의 말을 반박할 수 없자 그는 가소롭게 대하기로 했다.송석석의 웃음기가 진해졌다."탐화랑께서는 덕을 닦지 않고 배운 것을 전하지도 않았습니다. 게다가 의리도 없고 잘못한 것을 고치지도 않으니, 정말 걱정입니다!"량소는 순간 화를 내며 말했다."자네... 난 본디 좋은 마음으로 한 말이었는데 성인의 말로 나를 모욕하다니. 이런 친척은 왕래하지 않아도 되오!"말을 마치고 그는 벌떡 일어나 소매를 휘날렸다."가시오!"란군주는 다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미안함이 담긴 눈빛으로 송석석을 바라보았다. 두 눈이 붉어진 그녀가 울먹이며 말했다."언니, 우리 먼저 돌아갈게. 며칠 후에 다시 보러 올게."송석석이 가벼운 탄식을 하고 답했다."그래, 먼저 돌아가거라."란군주는 예를 올리고 다급히 량소의 뒤를 따라 가며 소리쳤다."부군, 기다리시오."양 마마는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한숨을 쉬었다."군주께서는 앞으로 오지 않을 것입니다."송석석은 그렇다고 대답한 뒤 말을 이었다."하지만 젊은 나이에 그렇게 고지식할 줄은 몰랐네.""어떤 사람들은 책을 너무 읽어 생각까지 잘못된 것이니 너무 신경 쓰지 마십시오."송석석은 차를 마시며 눈살을 찌푸렸
왕씨 성을 가진 사람을 말하자니, 정말 왕가에서 혼인에 관한 얘기를 하러 왔었다는 것이 기억났다.평서백 왕표의 사촌 동생이었지만 어머니의 마음에 들지 않았다.이미 지난 일이니 더 언급할 필요 없었다. 그녀와 사여묵은 두 달 후면 곧 혼인을 올릴 것이다. 지난날의 일들은 떠나보내고 앞으로의 일들을 맞이해야 했다.과거와 작별하고 다시 태어난 것이다.날이 점점 추워지자, 마당의 매화가 봉오리를 맺어 며칠 지나면 곧 필 것 같았다.올해의 매화는 일찍 피었고, 진복은 이것을 길조라 말했다.서우도 바닥에 내려갈 수 있지만, 몇 걸음만 걷고 침대에 누워 쉬어야 했다.댁에서도 긴박하게 혼사를 준비하고 있다. 혼례복은 혼사가 정해진 날 봉연각에 바느질을 맡겼다. 성안의 권세가들이 혼사를 치를 때 대부분 봉연각을 찾는다. 첫째는 그들의 바느질이 좋고 빠르기 때문이고, 둘째는 봉연각에서 바느질하는 여인들의 실력이 좋아 명성이 자자하기 때문이었다. 많은 외지의 부유한 상인과 귀인들이 천금을 들여서라도 봉연각의 혼례복을 얻으려 했다.양 마마는 봉연각에 진도를 보러 갔다가 돌아온 후 안색이 이상했다. 할 말이 있는 것 같았지만 또 그 말을 하기에 재수가 없다고 생각하는 듯했다.송석석은 상황을 보고 물었다."혼수에 무슨 문제가 생긴 것인가?"송석석은 망토를 입고 서우를 부축하여 매화를 감상했다. 돌아오는 길에서는 서우를 업을 수밖에 없었다.비록 서우는 걷고 싶었지만, 송석석은 단신의의 분부에 따라 당분간 많이 걷게 하지 않았다. 하루에 그저 두세 번 걸어 다리의 기혈이 뭉치지 않도록 활동시킬 뿐이었다.양 마마는 서우가 약을 먹은 후 그릇을 치우고 말했다."아가씨, 별일은 아니옵니다. 그저 왕가네 사람을 만났습니다.""왕가?"송석석은 순간 양 마마가 전에 하려다 그만둔 말을 떠올리며 답했다."그래. 왕가에서 혼약을 얘기하러 왔다고 알고 있네. 그러나 이젠 그 일도 얘기할 필요가 없지."그녀는 서우를 눕히고 양 마마와 밖으로 나갔다.날이 어둡고 바람이 세게
그런데 이틀 만에 평서백부 노부인이 내일 셋째 아가씨를 데리고 찾아온다는 청을 올렸다.양 마마가 아뢰며 말했다."아니면 만나지 마십시오. 그들이 무슨 꿍꿍이로 오는지도 모르지 않습니까? 장군부의 상황을 알아보러 왔다면 진작 왔어야 했습니다. 혼사도 정해졌고 혼례복도 준비하고 있는데 이제야 찾아오다니요."송석석도 만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해 물었다."만나려 청한 글에는 뭐라 쓰여져 있느냐?"양 마마가 답했다."꼬마 도련님이 돌아온 것을 축하하려 온다고 합니다. 그러나 핑계일 뿐이지요. 도련님께서 돌아온 지 그렇게 오래되었는데 이제야 찾아오다니. 전에는 무엇을 했답니까?"송석석은 생각하다 답했다."가서 말을 전하 거라. 서우가 치료를 하고 있으니, 손님을 만나기에 적합하지 않다고. 부상이 나으면 내가 직접 데리고 찾아갈 것이라 전하거라."양 마마는 고개를 끄덕이고 몸을 돌려 나갔다.송석석은 그들 모녀를 만날 상황이 아니다. 그 모녀는 틀림없이 장군부의 일로 찾아왔을 텐데 장군부에 대해 어떠한 말을 해도 상황에 맞지 않으니 만나지 않는 것이 가장 적합했다.말을 전한 뒤 이틀이 지나고, 하늘에는 올겨울 첫눈이 내렸다.눈이 많이 내리지 않아 마당에 얇게 눈꽃을 피울 뿐이었다.송석석은 서우를 데리고 매화원으로 향했다. 매화는 갓 피어났고, 연홍색의 꽃잎에 서리가 내려져 한 폭의 그림 같았다.서우의 얼굴이 빨갛게 얼었지만 기분이 좋은지 그래도 환하게 웃고 있었다.그는 손을 목구멍에 얹고 송석석을 향해 힘겹게 말하려 했다. 여러 번 시도했지만 결국 소리를 내지 못해 작은 볼이 더욱 빨개졌다.송석석은 쪼그리고 앉아 부드럽게 말했다."괜찮다. 천천히 하거라, 급하지 않아."서우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눈빛에 실망이 담겨 있었다. 이전에 그는 ‘윽윽’ 거리는 소리라도 낼 수 있었지만 요 며칠 그 소리마저 내지 못하니 초조해 보였다.그러나 실망에 가득 찬 표정은 곧 미소로 바뀌었다. 서우는 차가운 작은 손으로 고모의 뺨을 어루만지며 힘껏 웃었고, 힘
사여묵도 저녁에 서우를 보러 왔다. 그의 위로는 홍작과 작은고모의 위로보다 더 유용했다.게다가 그의 위로는 짧디짧은 한마디뿐이었다."사나이는 참는 법을 알아야 한다."그의 말을 듣고 서우는 조금도 불안해하지 않았고 착실히 말을 들으며 치료를 받았다.사여묵은 그와 함께 반시진 동안 서예를 연습을 했다. 서우의 서예는 갈수록 좋아지고 있었고 손가락의 움직임도 예전보다 훨씬 좋아져 보는 사람들을 기쁘게 했다.서우는 아주 수다쟁이였다. 사여묵이 그의 곁에 있을 때, 그는 종이에 많은 질문을 하였다. 하지만 모두 중요하지 않은 말로 순 잡담이었다.그럼에도 사여묵은 인내심을 가지고 그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고 서우가 묻는 대로 대답했다.송석석은 그들과 잠시 같이 있다가 하인에게 저녁 식사를 준비하라고 했다. 오늘 저녁에는 사여묵더러 집에서 식사하도록 남으라 했다.사여묵은 가끔 국공부에서 식사를 하고있다. 양 마마는 이제 그의 음식 취향도 모두 꿰뚫고 있다. 단 것을 별로 좋아하진 않지만 먹을 수는 있고 매운 것을 잘 먹지 못하지만, 매번 완강하게 아가씨와 함께 매운 것을 먹었다.식성도 좋아서 한 끼에 여섯 그릇을 먹을 수 있고 무슨 요리든 꺼리지 않았다. 다시 말해 사여묵은 편식하지 않았다.그의 식사량이 많은 것을 처음에는 알지 못했다. 처음 국공부에서 식사할 때 밥 한 그릇을 드시라고 해도 사양한 그였다.두 번째로 남아 식사를 할때, 그는 반 그릇을 더 먹었다.세 번째에는 갈비찜의 양념이 맛있다며 세 그릇을 먹었다.그렇게 지금 밥 여섯 그릇을 먹을 정도가 되었는데, 국공부 전체가 추측이 난무하고 있다. 대체 밥 여섯 그릇이 그의 한계가 맞는지, 아니면 밥 여섯 그릇에 배가 겨우 반만 부른 것이 아닌지? 언제쯤 밥 일곱 그릇이나 여덟 그릇을 먹을 것인지 말이다.장대성이 그와 함께 왔을 때 사여묵이 매일 아침저녁으로 한 시진 동안 무예를 연마하고 게다가 낮에 공무를 돌보느라 바빠 한가할 새가 없다고 했다.모두 그제야 그의 식사량이 왜 이렇게 많은
이날 저녁, 송석석은 약왕당에서 받아온 약을 사여묵에게 건넸고 약의 위험성까지 자세하게 얘기했다.사여묵은 망설이는 듯한 송석석의 모습에 환하게 웃으며 위로했다.“이 정도 상해는 충분히 견딜 수 있소. 그리고 원기를 회복할 수 있는 약들도 이렇게 잔뜩 가지고 오지 않았소? 나중에 어의에게 진단만 받으면 바로 단설환을 먹을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마오. 남강으로 가는 길에도 단 신의의 당부를 잊지 않고 매일 약을 꼬박꼬박 챙겨 먹겠소.”“그래도 결국 독약 아닙니까? 그러지 말고 저희 다른 방법을 생각해보는 건 어떨까요?”송석석이 미간을 찌푸리며 묻자 사여묵이 담담하게 대답했다.“내가 보기엔 지금으로써 가장 좋은 방법인 것 같소. 단 신의가 말을 무섭게 해서 그렇지 그 정도로 심각한 상해를 입히지 못할 거요. 그렇게 위험한 약이었다면 애당초 꺼내지도 않았겠지.”“그럼 일단 염 선생과 상의라도 해보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그럴 필요 없소!”사여묵이 약을 내려놓은 뒤, 커다란 손으로 송석석의 허리를 감싸며 말을 이어갔다.“이 일은 아는 사람이 적을수록 유리하오. 나중에 내가 대리사에서 쓰러지면 진이가 내 옥패를 들고 어의를 찾아갈 것이고 황실로 달려온 어의가 우왕좌왕하는 염 선생을 보아야 의심을 하지 않을 것이오.”송석석은 사여묵의 가슴팍에 기대어 불안한 마음을 가까스로 억눌렀다. “전 장군님이 너무 걱정됩니다. 몸이 회복되기도 전에 남강으로 출발해야 하는데 가는 내내 제대로 쉴 수도 없지 않습니까? 그러다가 남강에 가서도 몸 상태가 회복되지 않으면 전장에 어떻게 나가시려고 그러십니까?”송석석의 걱정에 기분이 좋아진 사여묵이 다정하게 웃으며 그녀를 위로했다.“난 왕표를 무조건 대체하겠다는 게 아니오. 일단 제린을 찾아 병사들 속에 숨어 있다가 왕표가 제대로 군을 이끈다면 난 남강 구경이나 하다 올 것이오.”사여묵의 위로에도 송석석은 시름이 놓이지 않았다. 왕표가 군을 제대로 이끌지 못할 거라는 확신 때문에 두 사람이 지금 이런 모험을 하고 있는
화가 난 단 신의는 송석석의 말에 설득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버럭 언성을 높였다.“난 멍청한 사람을 돕지 않소. 당신들은 그런 천하의 멍청이가 따로 없소!”“세상에 이런 멍청이도 있어야 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이번 한번만 더 모험하고 다시는 이런 일 없을 겁니다. 약속할게요.”송석석이 환하게 웃으며 말하자 단 신의가 미간을 찌푸렸다.“모험을 하고 싶어도 이제 못할 수도 있소. 돌아오면 황제께서 그 죄를 어떻게 물으실 줄 알고 이러는 것이오. 그러다가 머리가 잘릴 수도 있소.”“정말 그런 상황이 벌어진다고 해도 저에게 방법이 있습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단 신의는 고집을 부리는 송석석을 보며 살짝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가 말한 것처럼 백성들에게는 두 사람과 같은 멍청이들이 필요하긴 했지만, 단 신의는 그 멍청이가 송석석과 사여묵은 아니길 바랐다.결국 단 신의는 먼지가 뽀얗게 쌓인 작은 상자를 꺼내 먼지를 툭툭 털어내곤 조심스럽게 열었다.상자 안에는 땅콩 만한 검은 알약 하나가 있었다.“똑똑히 기억하시게. 이건 독이오. 이 약을 먹고 나면 맥박이 이상해지고 갑작스러운 발작을 일으키네. 그리고 짧은 시간내에 심장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지. 이건 그저 보여지는 현상이 아니라 실제로 죽을 수도 있다는 뜻이네. 이 약을 먹고 3일 정도 버틸 수 있는데 3일 뒤에는 반드시 단설환을 복용해야 하오. 그러지 않으면 심장에 영구적인 손상을 입을 수도 있소.”단 신의의 말에 송석석이 흠칫 놀란 표정이었다.“정말로 위험한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뜻입니까?”“그럼 당연하지. 이건 독이오.”“그럼 단설환을 먹고 나면 바로 정상적인 몸 상태로 돌아올 수 있는 겁니까?”“그렇지 않소. 며칠 동안 안정을 취해야 하네. 눈속임을 하고 나서 바로 출발하면 절대 안 되오.”위험할 수도 있다는 단 신의의 말에 송석석은 단 신의가 건네는 약을 받지 않았다.“그럼 혹시 다른 약은 없는지요? 폐하를 속이고 나서 장군님은 바로 출발하려고 할 겁니다. 실제로 중독되
사여묵은 온몸에 힘이 쭉 빠진 채 침대에 앉아 등을 벽에 기대고 있었다.남강에서 돌아와 병권을 황제께 바친 뒤에도 황제는 여전히 사여묵을 의심하고 경계했지만 사여묵은 그리 신경 쓰지 않았다.황제가 의심과 경계를 조금은 풀 수 있도록 사여묵은 지금까지 최대한 언행에 조심했으며 서경과의 담판이 끝나고 나서도 황제 앞에서 일부러 약한 모습을 보였다.나중에 혹시라도 전쟁이 일어났을 때 더 이상 황제의 의심을 받지 않기 위해 조심하고 또 조심했는데 황제의 태도는 전혀 바뀌지 않았다.“사국이 이번에 다시 쳐들어온 건 사국과 손잡은 내국 역적이 남강에 이미 함정을 파 놓았다는 사실을 폐하께서도 알고 계신 것이오. 그래서 사국은 저렇게 겁도 없이 남강을 계속 공격하고 있는 것이지. 하지만 폐하는 내가 폐하께 대한 위협이 사국 병사들을 물리치는 것보다 더 중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소.”사여묵이 씁쓸하게 웃으며 마지막 남은 술을 벌컥벌컥 마시자, 송석석은 안타까운 표정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황제께서 이런 결정을 하신 게 처음은 아니잖아요.”사여묵은 송석석을 품에 꼭 끌어안은 채 그녀의 머리를 다정하게 쓰다듬었고 조금 전 혼자 술을 마시고 있을 때부터 계속 이렇게 숨막히는 인고를 견뎌야 하나 생각하고 있었다.“난 무조건 그런 비극이 다시 일어나게 하지 않을 것이오.”송석석을 놓아준 사여묵은 강경한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보며 말을 보탰다.“난 당신처럼 용감하게 변할 것이오.”예전에 송석석이 입궁하여 황제께 상황을 보고했을 때 황제는 그녀의 말을 믿어주지 않았다. 그때 당시 송석석은 마냥 기다리거나 손을 놓은 것이 아니라 홀로 남강까지 찾아갔다.송석석은 그때 자신의 생사를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한편, 사여묵의 말을 들은 송석석은 바로 뜻을 알아챘고 확신에 찬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전 장군님을 응원합니다. 아무 걱정도 하지 말고 다녀오세요. 폐하께서 아무것도 묻지 않으신다면 전 평소와 같이 진성을 지키고 있을 것이고 만약 폐하께서 죄를 물으신다면 전 북명
사여묵이 방시원을 잘 달래어 돌려보낸 뒤, 염구진이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다들 감정이 격해지는 것도 당연합니다. 남강 땅을 되찾기 위해 그들은 청춘을 다 바쳤는데 이제 또 전쟁이 난다고 하니 마음이 안 좋을 수밖에 없지요.”말을 하던 염구진은 고개를 돌려 사여묵을 힐끔 쳐다보았으며 방시원의 마음을 가장 잘 헤아릴 수 있는 사람은 사여묵일 것이라고 생각했다.한편, 한참동안 말이 없던 사여묵이 별다른 표정 변화 없이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잘 지켜보고 있다가 무슨 소식이 들리면 바로 나에게 보고하게.”“알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사여묵은 다시 연주에 관한 일에 대해 물었다.“연주에서 성문을 봉쇄했다고 들었는데 소식은 끊기지 않은 것이오? 혹시 그쪽에서 움직임이 보이지는 않나? 계획대로 행동하고 있는 건가?”“아직 확실한 소식은 접하지 못했지만 소인은 모성을 믿습니다. 계획한대로 잘 하고 있을 겁니다.”“그래. 나도 그자를 믿네.”염구진의 대답에 사여묵이 고개를 끄덕였다. 모성은 연주 좌부승이었고 연왕이 반역을 도모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사여묵은 바로 사람을 시켜 모성에게 접근했다.총명하고 무술 실력까지 겸비한 모성은 선황제 때부터 이름을 널리 알렸지만 성격이 너무 오만했기에 아직까지도 직급은 그저 부승이었다. 평소에 시를 즐겨 쓰는 모성은 시문의 대부분 내용이 세상을 향한 불만 표시였기에 연왕은 모성이 조정에 불만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여 그를 곁에 두기로 했다.그렇게 모성은 오랜 세월동안 외로운 싸움을 했다. 그 중 더 높은 관직으로 승진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지만 모성은 연왕의 반역죄 증좌를 수집하기 위해 모든 걸 포기하고 연주에 남았다.하지만 연왕은 섣불리 움직이지도 않고 핵심 병력의 상황도 모성에게 전혀 알려주지 않았으며 심지어 중요한 일을 논의할 때에는 모성에게 나가 있으라고 하기도 했다.때문에 모성은 하상지의 잡일을 처리해주면서 간간이 상황을 알아볼 수밖에 없었다.확실한 증좌가 없는 탓에 모성은 지금까지도 연왕
”소인도 오늘 폐하께 감히 많은 얘기를 드리지는 못했습니다. 혹시 폐하께서 오해하실까 봐 왕야를 찾아가지도 못했지요.”이덕회가 대답하자 목 승상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잘하셨습니다. 병부는 최대한 사적으로 북명왕을 접촉하지 않아야 합니다. 아니면 혹시 병사 감찰대로 폐하께 한 사람을 추천하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혹시 왕표 그자가 남강 전쟁 원수를 맡기엔 걱정된다면 방시원 장군을 황제께 추천해보십시오.”“하지만 방시원 장군님은 주군 총병이라 남강 전쟁에 보낼 수는 없지 않습니까? 방 장군을 보낼 바에는 차라리 방천허와 제린에게 전사를 맡기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내란이 터지고 있는 지금 진성 주군에 대장이 없어서는 안 되는 일이지요.”이덕회의 말에 목 승상이 의미심장한 말투로 대꾸했다.“도리는 그게 맞지요. 제 말은 폐하께 왕야 한 사람만 추천할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몇 명 더 추천하라는 뜻입니다.”이덕회가 고개를 푹 숙인 채 입술을 살짝 오므렸다.“소인이 솔직한 성격이라 말을 돌려서 할 줄 모르니 그냥 말하겠습니다. 소인이 보기엔 왕야가 가장 적합한 원수인데 어차피 역적은 아직 나라에 위협이 될만한 존재는 아니니까 나중에 목종욱한테 처리하라고 하면 되지요.”“그 어떤 반역자도 쉽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이 일은 그리 단순한 일이 아닙니다. 알다시피 반역자들은 사국 사람들과도 엮여 있습니다. 사국과 손을 잡았다는 건 그만큼 충분한 준비를 해왔다는 뜻이지요. 절대 쉬운 상대가 아닙니다.”목 상승이 손을 저으며 말하자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이덕회가 대답했다.“승상 말씀도 일리가 있는 것 같네요. 그럼 소인 북명왕과 함께 내일 다시 궁으로 가서 폐하를 만나 뵙고 내란에 대해서도 의논해보겠습니다.”“그렇게 합시다!”목 승상이 고개를 끄덕였다.한편, 사청엽은 여전히 옥에 갇혀 있었다. 황제가 아직 명령을 내리지는 않았지만 사청엽은 자신이 사형을 면치 못할 거라고 확신했다.이날 저녁, 혼인을 앞둔 방시원이 황실을 찾아왔다. 치석
한편, 목종욱은 최선을 다해 산적들을 잡아들이고 있었다. 싹을 다 자르진 못했지만 크게 겁을 먹은 산적들이 산 속에 꽁꽁 숨어서 다시는 문제를 일으키진 않을 것이다. 숙청제도 제린이 보낸 소식을 접했고, 사국 대군들이 변경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사실까지 알게 되었다.제린은 사국 대군이 25만 명 정도 된다고 보고를 했고 여전히 빅토르가 대군을 이끌고 있다고 했다.숙청제는 바로 병부 대신들을 불러 남강에서 사국의 25만 대군을 상대로 승산이 있는지 의견을 물었다.이덕회는 황제의 질문 자체가 잘못됐다고 생각했다. 이길 수 있는지 없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최대한 신속하게 전쟁을 이겨야 한다는 것이 관건이다.“폐하, 남강은 오랜 시간의 전사와 왜란으로 지칠 대로 지친 상태입니다. 남강 땅은 아직 전쟁에 버틸 수 있지만 백성들은 더 이상 전쟁을 견딜 힘이 없습니다. 만약 정말 전쟁이 난다면 확실한 한 방으로 빠르게 적을 물리쳐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은 메뚜기 떼처럼 매년 한 번씩 이렇게 날뛸 것입니다. 이는 저희 남강 지역의 치안에 치명적인 상해를 입힐 수밖에 없습니다.”“그럼 자네 생각엔 송씨 가문 병사들과 북명군이 적들을 신속하게 물리치지 못할 것 같은가?”숙청제의 물음에 이덕회가 바로 대답했다.“이제 송씨 가문 군대아 북명군을 나눌 것도 없습니다. 전부 다 남강 병사들입니다.”이덕회는 숙청제가 남강의 병사들을 모은 게 송씨 가문과 북명왕이라고 생각할까 봐 일부러 강조했지만 숙청제의 생각은 전혀 바뀌지 않았다.만약 남강 전쟁이 오래 전에 끝난 전쟁이고 사여묵이 병권을 상납한지 꽤 오래 됐다면 숙청제는 이런 걱정을 전혀 하지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왕표가 군심을 얻지 못하고 있는 지금, 남강에 있는 병사들이 송씨 가문 군대이든 북명군이든 결국 전부 사여묵의 명령에 따르고 있다.사여묵을 남강에 보낸다는 건 병권을 다시 사여묵에게 쥐여주어야 한다는 뜻이다.현재 연왕도 역모를 일으켰고 황제 자리를 대놓고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데 사
숙청제가 사여묵을 힐끗 쳐다보며 말했다.“그건 사국이 네 위엄에 겁을 먹은 것이야. 빅토르가 너를 많이 두려워하는 것 같아.”사여묵은 숙청제의 말이 진심이 아니라 살짝 비꼬고 있다는 것을 잘 알기에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황제께서 소인을 너무 높이 평가하고 계신 겁니다. 소인은 그렇게 대단한 능력도 없고 빅토르도 소인에게 겁을 먹어서 가만히 있는 게 아니라 전쟁 때문에 너무 많은 걸 잃었기 때문입니다.”“네 말대로 전쟁으로 많은 걸 잃었다면 짧은 시간 내에는 원기를 쉽게 회복할 수 없지 않느냐?”“소인이 감히 추측을 해보자면 사국은 원기를 회복하지 못한 상태에서도 절대 저희 남강이 순조롭게 발전하는 모습을 보고 있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가끔씩 비열한 수법으로 훼방을 놓아야 정상인데 지금까지 그런 적이 한 번도 없는 게 너무 수상합니다.”숙청제가 사여묵을 빤히 쳐다보다가 물었다.“그럼 네 말은 누군가가 사국과 손잡고 적절한 시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냐?”“그럴 가능성도 있지 않겠습니까?”사여묵은 전에도 숙청제와 이 문제를 분석하고 논의한 적이 있었으며 그때 당시 숙청제도 사여묵의 의심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지만 주관적으로 보았을 때 인정하고 싶지 않았을 뿐이었다.숙청제는 그저 고개만 끄덕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사여묵은 그런 황제를 힐끗 쳐다보고는 하고 싶었던 말이 있었지만 꾹 참았다.사실 숙청제도 왕표가 무능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며 사국을 상대하려면 사여묵을 다시 남강 전장으로 내보내는 게 가장 적합한 선택이라고 생각하고 있다.하지만 숙청제는 쉽게 결정을 내릴 수가 없었다.그때 당시 겨우 송석석을 이용하여 사여묵에게서 병권을 빼앗았는데 이렇게 쉽게 다시 내놓을 수가 없었으며 최후의 순간이 오지 않는 이상, 숙청제는 절대 사여묵을 전장에 내보낼 생각이 없었다.때문에 사여묵이 며칠동안 어서방에 남아 숙청제와 이런저런 상의를 해봤지만 숙청제는 전혀 받아들이지 않았다.그렇게 어서방은 쥐 죽은 듯이 조용했고 아무도 먼저
그날 밤, 연왕은 뜬 눈으로 밤을 지새게 되었다.솔직히 지금 상황은 연왕의 오랜 계획과 차질이 조금 있었다. 지방 지역에서 역모를 일으키고 심지어 진성에 준비된 게 아무것도 없이 무작정 진성까지 쳐들어간다는 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연왕과 무상의 계획은 따로 있었다.일단 병사들을 일정한 수량까지 늘이고 아무도 모르게 서서히 진성 일대로 전이하여 병사들을 안치한 뒤 적절한 시기를 기다릴 생각이었다.그땐 사온이 진성에서 계략을 짜고 있을 것이고 많은 세가들의 지지도 받게 될 것이다. 이를 위해 예전에 고부진의 딸들을 세가에 시집 보냈기에 세가들은 지지할 수밖에 없다.그리고 나서 적절한 시기만 잘 고르면 반드시 성공한다. 진성에 전란이 일어나고 산적과 유랑민들이 판을 칠 때 연왕은 병사들을 거느리고 성내로 쳐들어가 바로 궁 전체를 포위할 생각이었다.하지만 지금, 갑자기 대석촌에 일이 터져 버려 사청엽이 체포된 탓에 연왕은 급하게 병사들을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승산이 너무 낮았기에 연왕도 망설였던 것이며 지방 지역에서 반란이 일어난다고 해서 진성까지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물론 백성들은 반란이 일어났다는 것을 알고 한동안 수군거리겠지만 대부분 백성들은 갑작스럽게 일어난 반란과 격문을 그저 우습게 생각할 것이다.그뿐만 아니라 사국에서 남강을 공격한다고 해도 처음 있는 일이 아니고 사국에서 오래 전부터 호시탐탐 야망을 보였기에 황제가 나랏일에 관심이 없어서 일어난 일이라고 할 수도 없었다.그리고 아직 사국과의 전쟁이 일어나지도 않았고 전패했다는 소식도 없기에 상국 무장이 무능하다는 비판을 하기에도 애매했다.나라가 평안하고 백성들이 태평한 상황에서 연주도 꽤 부유한 땅이었기에 괜히 문제를 만들고 싶어도 아무도 믿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때문에 모두 그저 연왕이 언제 잡히는지, 언제 역모죄로 목이 잘릴지를 보고 싶어할 뿐이었다. 그리고 상국에는 사국 사람들을 물리친 북명왕이 있기에 다들 역적 따위는 전혀 걱정하지 않았으며 되레 연왕이 왜 역모를 일으키
무상이 아니라는 말에 연왕은 회왕에게로 고개를 돌렸고 화들짝 놀란 회왕이 변명하려던 그때, 연왕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회왕일 리는 없어.”회왕은 의심조차 하지 않는 연왕의 태도에 기분이 조금 묘했다.한편, 연왕은 당연히 회왕을 의심할 리가 없었다. 회왕은 무일푼으로 연주로 왔을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진성에서도 아무런 성과도 따내지 못했으며 사온의 비교 대상이 될 자격조차 없었다.회왕이 연주에 온 뒤로 연주 백성들은 회왕을 만나면 겉으로는 왕야라고 부르며 인사를 올리긴 하지만 뒤에서는 다들 그를 만만하게 여기고 아니꼽게 생각했다.때문에 회왕은 절대 마총우를 명령하지 못한다.조금씩 차분해진 연왕은 다시 자리에 앉더니 두 사람을 번갈아 쳐다보면서 말했다.“다들 이 일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마총우 그자가 귀순한 것인가 아니면 누군가가 나를 무너트리고 싶어서 일부러 꾸민 짓인가?”여전히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던 무상은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했다.“마총우가 귀순한 건 절대 아닐 것입니다. 왕야께서 격문을 보낸 지 며칠밖에 되지 않았고 더군다나 저희 병력은 대여섯 군데에 분산되어 있습니다. 전의하는 데만 6개월 넘게 걸렸는데 조정에서 절대 쉽게 조사해낼 수 없을 겁니다. 그런데 조정에서 마총우 그자를 찾아서 귀순 시킨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입니다.”“날 일부러 무너트리려고 하는 사람이 있다는 거네. 그럼 그자가 누구일 것 같은가?”연왕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연왕이 몇 년 동안 끌어 모은 사람들 중에 황제의 친인척과 세도가들도 있지만 친왕은 연왕과 회와 두 사람밖에 없었다.연왕은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는 상대가 없었다. 연왕의 부하들 중에서 황제의 친인척들이 제일 무능하고 멍청했으며 파장을 일으킬 만한 인물이 아니었다. 그리고 종합적으로 생각해보았을 때 가장 의심되는 상대는 여전히 무상이었다.하지만 역모의 마음을 품은 연왕이 무상을 끌어들이고 나서 지금까지 무상은 강한 충성심을 보였고 심지어 평소에 연왕에게 쓸만한 제안도 가장 많이 하고 계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