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달리고 달려 닷새가 되던 날 정오에 그녀는 영주에 도착했다.오면서 객잔에 들러 잠깐잠깐 쉬기는 했지만 입맛이 없어서 거의 굶다시피 한 송석석이었다.그러는 바람에 닷새만에 얼굴이 반쪽이 되었다.그녀는 장대성이 준 주소대로 물어불어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했다.용주지부가 사여묵을 위해 내어준 저택이었다. 장대성은 왕야가 아이를 데리고 이곳에 묵고 있다고 말했다.송석석은 가는내내 입이 바짝바짝 마르고 속이 타들어갔다.대문 앞에는 관아 소속으로 보이는 호위가 지키고 있었다. 그는 한 여자가 말에서 내려 머뭇거리는 것을 보자 조심스럽게 다가와서 물었다.“송 낭자 맞으신가요?”송석석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고개만 끄덕였다. 무언가가 목안을 막고 있는 듯, 갑갑했다.호위는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고 다가가서 문을 두드렸다.“왕야, 송 낭자께서 오셨습니다.”잠시 후, 문이 열리고 초췌한 얼굴의 사여묵이 모습을 드러냈다.그 역시도 많이 야위어 있었는데 눈 밑이 거뭇거뭇한 것으로 보아 잠을 설친 모양이었다.그는 송석석을 보자 인상을 확 찌푸리며 물었다.“어쩌다가 이리 야위었어?”송석석은 울음이 나오려는 것을 억지로 참으며 안쪽을 살폈다.사여묵이 호위에게 명했다.“말을 끌고 가서 먹이를 주거라.”“예!”호위가 다가와서 말을 끌고 가려 했지만 송석석은 너무 긴장한 탓에 고삐를 놓아주지 않았다.그 모습을 본 사여묵은 다가와서 차게 식은 그녀의 손을 잡아주며 말했다.“들어가자꾸나. 여기 계속 서 있을 수는 없지 않느냐. 그 아이가 맞든 아니든, 일단은 가서 확인해 보자.”송석석은 그제야 고삐를 놓고 보따리를 챙긴 뒤에 안에서 탄궁을 꺼내며 한숨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아이는 어디 있나요?”“방에 잠시 가두었다. 애가 참….”사여묵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고집스럽더구나. 힘도 세고.”송석석을 데리고 안으로 들어간 사여묵은 안으로 문부터 걸어잠갔다. 그 모습을 본 송석석이 놀라서 가만히 있자 그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도
그녀는 다가가서 사여묵을 밀치고 아이를 품에 안았다.아이는 바짝 야위어서 뼈밖에 남지 않은 상태였다.몸에서는 쉰내가 나고 머리카락도 엉겨붙고 간간이 피멍도 보였다.하지만 송석석은 마치 진귀한 보물을 안듯이 아이를 꽉 껴안고 눈물만 하염없이 흘렸다.아이는 더 이상 발광하지 않고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사여묵을 대하던 광기도 사라지고 아이는 마치 생기를 잃은 인형처럼 가만히 안겨서 눈물만 흘렸다.그 모습을 지켜보던 사여묵은 드디어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송씨의 대를 이을 아이가 살아 있었던 것이다.다만 이 아이가 어쩌다가 도망쳐서 납치범들의 소굴에 잡혀갔는지 알 길이 없었다.그동안 그는 아이의 옆에 머물며 단서를 조금이라도 찾아내려고 했지만 독에 당해 벙어리가 된데다 사람의 접근을 극도로 경계했기에 이렇다 할 수확이 없었다. 처음에는 서우라는 이름에 반응하나 싶었지만 나중에는 이름을 들어도 전혀 반응을 하지 않고 오히려 더 신경질적으로 굴었다.개방에서 조사를 해봤지만 아이가 어떤 경로로 그 집단에 잡혀갔는지에 대해서는 알아내지 못했다.한참이 지난 뒤에야 송석석은 아이를 놓아주었다. 서우는 그녀의 손목을 꽉 잡고 있었다. 아이의 긴 손톱이 그녀의 여린 피부에 생태기를 냈지만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아이는 송석석을 빤히 바라보다가 탄궁을 발견하고 입술을 파르르 떨었다. 뭔가 할 말이 있어 보이는데 나오는 소리는 꽉 막힌 신음소리밖에 없었다.송석석은 떨리는 손으로 아이의 얼굴에 난 상처를 어루만지며 사여묵에게 말했다.“왕야, 아이가 입을 옷과 신발을 준비해 주세요. 하인은 있나요? 물을 데워서 목욕부터 시켜야 할 것 같아요.”“옷은 이미 사왔는데 애가 너무 강하게 반발해서 갈아입히지 못 했어. 지금 당장 물을 끓이라고 명하지. 넌 아이랑 얘기 좀 더 하고 있어.”사여묵도 눈시울을 붉히며 밖으로 나갔다.서우는 줄곧 송석석의 손을 잡고 놓지 않았다. 송석석은 아이를 안아 의자에 앉힌 뒤, 손수건으로 아이의 얼굴을 닦아주며 부드럽게 타일렀다.“
서우는 한밤중이 되어서야 깨어났다. 자는 도중 몇 번 깨어났지만 모두 정신을 못 차렸고 작은고모가 있는 것을 본 뒤 다시 천천히 눈을 감았다.한밤중이지만 불은 환히 비추고 있다. 송석석은 그가 잠든 사이에 이미 따뜻한 물로 얼굴을 닦아주었다. 작은 얼굴은 확실히 둘째 오라버니와 닮았다. 하지만, 많이 말랐을 뿐이다.그는 깨어나자 또 울었다. 그러나 울면서도 작은고모를 향해 웃었고 야윈 탓인지 보조개가 더욱 깊었다.송석석은 그를 데리고 나가 목욕을 했다. 남자아이는 목욕통에 들어갔고 송석석은 머리를 감겨주었다. 그녀는 천천히 계수나무 기름으로 들러붙은 곳을 살살 풀고 난 뒤 다시 씻어주었다.목욕을 한 후 일곱 살 아이의 덩치에 따라 산 새 옷을 입혔다. 그래서 옷이 조금 커 보였다.그래도 드디어 깔끔한 아이가 되었다.부엌에서 음식을 내오자, 그는 눈을 반짝이며 무의식중에 손으로 고기 한 조각을 잡아 입에 쑤셔 넣었다. 쑤셔 넣은 뒤 그는 다급히 탁자 밑으로 숨었다.이것은 무의식적인 동작이다. 숨은 후 그는 잠깐 멈칫하다 천천히 의자에 기대어 일어났다. 그는 눈물을 글썽거리며 고모를 바라보았다.송석석은 고개를 돌려 흐르는 눈물을 닦은 뒤 다시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천천히 먹거라. 고모가 같이 먹으마."사여묵이 들어오려 하자 그는 경계하며 젓가락을 내려놓았고 눈빛에는 방어가 가득했다.사여묵은 그가 이렇게 남자를 두려워하는 것을 보고 어쩔 수 없이 뒤로 물러섰다."두 사람이 같이 먹소. 나는 밖에서 먹을 것이오.""감사하옵니다."송석석은 자리에서 일어나 사여묵 앞으로 걸어갔다. 그녀의 눈가에는 정중함과 경건함이 많아졌다."이 은혜, 정말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사여묵이 말했다."곧 혼사를 치를 사이인데 그렇게 예의를 차린 말을 해서 뭐 하오? 어서 서우 곁으로 가시오. 사람에게 문방사보를 준비하라 했소. 서우가 세 살 때 계몽했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 글을 알 것이오."송석석은 고개를 끄덕였다."예. 먼저 식사를 하고 난 뒤 다시
꼬불꼬불한 글자를 한참 동안 보고서야 똑똑히 알아볼 수 있었다.송석석은 눈시울을 붉히고 그를 바라보았다. 눈물이 다시 쏟아졌다. 이 몇 글자는 비수가 되어 그녀의 마음을 찔렀고 아픔으로 인해 그녀는 몸을 움찔했다.가문이 멸문되기 전 그녀는 친정에 돌아가 어머니와 성릉관 전쟁에 관해 토론한 적 있다.어머니는 외할아버지가 아버지와 오라버니처럼 될까 봐 걱정하였다. 그녀는 한참 위로한 후 떠나려 했고 외할아버지와 어머니가 걱정되어 우환이 가득한 표정으로 문을 나섰다.어머니 방 앞의 마당에서 그녀는 서우를 보았다. 서우는 작은 얼굴을 들어 작은고모의 기분이 나쁜지 물었고 그녀는 웃으며 그의 머리카락을 어루만졌다."지금은 기분이 안 좋지만, 곧 좋아질 것이니 걱정하지 말거라."그녀도 고민이 많아 얼버무리려 한마디 했다.아마 서우는 기분이 좋지 않은 그녀를 위해 약과를 사러 가 달래주려 했을지도 모른다.그녀가 매산에서 돌아와 시집가기 전 1년 동안, 줄곧 아이들을 데리고 놀고 달래주며 아버지를 잃은 두려움을 가시게 해주려 했다.그래서 조카와 조카딸은 그녀와 아주 친했다.서우는 다섯 살 때부터 철이 들었다. 할머니와 어머니가 종일 울고 있는 것을 보고 그는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것을 알았다. 똑똑하고 예민한 아이라 그녀는 서우에게 가장 많은 시간과 심혈을 기울였다. 서우도 그녀에게 많이 의지하고 친해졌다.서우는 계속 힘들게 써 내려갔다. 한참 쓰고 나니 손목에 힘이 없어 송석석은 그를 잠시 쉬게 했다. 그러나 그는 집요하게 주먹을 쥐었다가 다시 썼다.한 획 한 획 아주 느렸지만, 그가 도망친 진실은 드디어 종이에 나타났다.그날 그는 한낮에 몰래 빠져나갔다. 그는 살피러 오는 어머니에게 들킬까 봐 곁에 있는 시중 소춘에게 자기 옷을 입히고 방에 숨어있으라 했다. 그리고 그는 개구멍으로 기어나가 약과를 사러 갔다.소춘은 사 온 지 얼마 안 되는 시종이었다. 둘째 형수는 소춘을 서우의 서동으로 삼으려 했고 이 일을 송석석은 몰랐다.약과를 사서 장군부에
다 쓰고 나니 그는 너무 힘들었다.송석석은 그를 쉬게 했다. 잠든 그의 모습을 보며 송석석은 떠나기 아쉬웠다.서우의 곁에서 반걸음만 떨어져도 지금의 모습이 꿈처럼 무너져 깨어보니 서우가 없을 것만 같았다.그녀는 아이가 얼마나 큰 고생을 했을지 생각하자 마음이 아팠다. 절뚝거리며 걷는 모습을 보니 마치 비수가 꽂히는 것 같았다.사여묵은 이미 돌아갈 준비를 시키고 있었다. 서우의 상황은 지체하지 않고 빨리 단신의를 찾아 치료해야 한다.일곱 살짜리 아이가 다섯 날 정도로 크다니, 떠난 지 2년 동안 키가 큰 적 없는 것 같았다. 또 무슨 독을 먹였는지 알 수 없으니, 똑똑히 병을 보지 않으면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사여묵은 영주지부로 하여금 그의 명의로 폐하에게 상소문을 전해 상황을 설명하게 했다.송씨 집안의 대가 남아 있다니 폐하와 조정 신하들도 아주 기뻐할 것이다.그리고 공가에게도 이 아이는 구원과 같을 것이다.송가의 멸문은 그냥 죽임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 처참하게 죽었다. 모든 사람의 몸에는 18개의 칼자국이 있었다.특히 그때 서우가 머리를 잘렸고 얼굴마저 칼자국이 낭자해 알아볼 수도 없어 생각만 해도 소름 끼치는 참혹한 모습이었다.공씨 집안 노부인은 소식을 듣고 그 자리에서 기절했다. 송씨 둘째 부인은 어려서부터 그녀의 곁에서 자라 다른 손녀들보다 더 친했다.공씨 어르신은 비통함을 참지 못해 머리가 어지러워 돌계단에서 떨어졌고 다음날 바로 돌아가셨다.그렇게 음울한 분위기에 공가는 2년 동안 거의 아무런 모임에도 가지 않았고 권세가들의 모든 초대에 응하지 않았다.이틀 후 그들은 마차를 타고 진성으로 돌아갔다.사여묵은 마부로 전락하였고 섬광은 수레를 끌었다. 송석석은 마차 안에서 서우를 데리고 있었다.양 마마가 만든 떡을 서우에게 먹이자 서우는 먹으면서 눈물을 흘렸고 손을 이리저리 휘둘렀다.그는 맛있다고 말하고 싶었다.송석석은 알아차린 뒤 코가 찡했다."앞으로 뭘 먹고 싶으면 부엌에 시켜서 다 해주마."서우는 눈을 반짝였지만 이
서우가 깊이 잠든 후 그녀는 사여묵을 찾아가 서우가 쓴 내용을 보여주었다.사여묵은 보고 난 뒤 마음이 아주 착잡했다. 그를 때린 놈들과 많이 닮았단 말인가?아마도 그럴 수 있다. 전쟁터에 오랫동안 습관 되어 그의 몸에는 포악한 기운이 심했다.그는 천천히 한숨을 쉬었다."천천히 해보겠소. 가능한 한 다정하게 많이 웃어볼 것이오."아이의 몸과 마음은 모두 치유가 필요했다."오는 길 내내 고생하셨습니다."사여묵에 대한 송석석의 고마움은 이미 한마디로 뭐라할 수 없었다.하지만 그녀는 그에게 분명히 말해야 할 것이 있었다.그녀는 비녀를 뽑아 심지를 돋우었고 불꽃이 튀었다. 방안은 조금 밝아졌고 그녀의 마른 볼과 창백한 입술을 비췄다.그녀는 천천히 말했다."서우의 상황을 보아 적어도 2, 3년은 나를 떠날 수 없을 것입니다. 만약 우리의 혼사가 정말 확정된 것이라면 아이를 데리고 왕부로 가야 합니다. 홀로 국공부에 남겨둘 순 없습니다."사여묵의 잘생긴 얼굴은 침착한 표정을 유지했고 칠흑 같은 눈동자에 불빛이 아른거렸다."우리의 혼사는 물론 확정되었소. 나도 서우를 홀로 국공부에 남겨둘 수 없다고 생각하오. 꼭 서우를 곁에 기르며 해독하고 다리를 치료해 나아지게 해야 하오. 계속 책을 읽거나 무예를 연마할 수 있진 않소? 공부나 무예가 싫다면 그냥 잘 자라게 해도 상관없소. 난 서우를 내 아이처럼 키울 것이오."그의 말에 송석석의 걱정은 완전히 가셨다. 그동안 있었던 일을 생각하니, 송석석은 사여묵이 그녀에게 성심성의껏 책임을 다했다는 것을 알았다. 앞으로 그에게 시집을 간 후 애정은 없어도 서로 잘 지낼듯했다.다만 서우가 그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방법을 생각해야 한다. 적어도 경계를 놓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같은 지붕 아래에서 지낼 수 있을까?북명왕은 친왕 귀족이다. 서우를 여러 번 참아 줄 순 있지만 오랫동안 적의를 가지고 있으면 마음이 식을 것이다. 특히 혜태비도 왕부에서 지낼 것이다.사실 이 상황에 혼례를 올리지 않는 것이
드디어 오늘, 객잔에 묵으려 사여묵이 손을 뻗어 송석석을 마차에서 내린 후 서우는 용기를 내어 마차에서 내려왔다. 그리고 온몸을 떨며 두 사람 사이에 가로질렀다. 그는 두 손을 펴 작은고모를 뒤에 감싸고 적의의 눈빛으로 사여묵을 노려보았다.그는 겁에 질렸고 다리는 계속 바들바들 떨려왔다. 입술도 바르르 떨며 ‘윽, 윽’하고 내쫓는 소리를 냈다.사여묵과 송석석은 충격에 휩싸여 시선을 마주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소용없는 것도 모자라 오히려 역효과라니."아!"송석석은 갑자기 이유가 생각났다. 서우는 그녀가 더이싱 전북망의 부인이 아니라는 것을 모르고 곧 사여묵에게 시집갈 것이라는 것은 더욱 모른다.그날 저녁, 고모와 조카는 늦은 시각까지 이야기를 나누었다.더 이상 서우를 어린아이로 대할 수 없었다. 2년 동안 구걸하며 떠돌아 그에게 얘기만 해준다면 알아들을 것이다.가문이 멸문된 일도 그는 백성들의 의논을 듣고 알았지 자세한 상황은 알 지 못한다.그도 이젠 일곱 살이니 알아야 할 일들은 알려주어야 한다."송씨 집안을 그렇게 만든 자는 서경에서 보낸 사람이다. 고모는 네가 집을 나간 줄 몰라 너도 그때 죽었다고 생각했다. 너는 우리 집안의 유일한 사내야. 너는 할아버지와 큰아버지, 그리고 아버지와 숙부의 모든 희망과 의지를 짊어지고 있다. 너도 그들처럼 당당하고 두려움 없는 사내가 되어야 한다.""그리고 고모는..."그녀는 서우의 어깨를 감싸고 끝없이 흐르는 그의 눈물을 보며 계속 낮은 소리로 말했다."고모는 이미 전북망과 화리했다. 우리는 더 이상 부부가 아니라 남이다."서우는 다급히 눈물을 닦고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그 이유는 나중에 천천히 말해주마. 그리고 하나 더 말하자면 전하는 나와 혼례를 올릴 사람이고 연말에 곧 혼례를 치를 것이야. 왜 그에게 시집을 가는지 묻고 싶은 것이냐? 남강의 전쟁부터 얘기를 해야 하는구나..."송석석은 말을 하며 숨김과 거짓을 조금 섞었다.멸문을 초래한 자가 서경에서 보낸 사람인 것은 진성
이튿날, 마부 사여묵은 눈밑이 까맸지만, 정신은 맑고 상쾌했다.송석석은 그가 대체 어떻게 이럴 수 있는지 궁금했다. 분명 잠을 잘 자지 못한 것 같지만, 이렇게 혈기 왕성하다니.눈 밑만 어두울 뿐 얼굴과 눈빛은 모두 환해 보였다.어젯밤 서우와 이야기를 나눈 후, 그는 사여묵을 그렇게 두려워하거나 경계하지 않았다. 가끔 가림막을 젖히고 그의 뒷모습을 몰래 보기도 했다.할아버지와 같은 사람이라면 그는 아주 대단한 사람일 것이다. 적만 때리고 백성을 때리지 않을 것이다.그러니 겁낼 필요가 없었다.서우는 줄곧 그렇게 자신에게 말했다. 길에서 내내 그렇게 생각하다 보니 점차 사여묵은 그에게 할아버지, 아버지와 같아 보였다. 게다가 사여묵은 그의 고모부이니, 가족이 될 사람이다.그래서 엽현에 도착했을 때 서우는 이미 주동적으로 사여묵에게 손짓을 했고, 사여묵의 손을 잡고 떡을 사러 가기도 했다.송석석은 그 모습을 보며 안도했다.게다가 그뿐만이 아니다. 서우는 그녀를 믿는 것처럼 사여묵을 믿는 것 같았다. 밥을 먹을 때 주동적으로 사여묵의 곁에 앉았고 음식을 집을 때 손에 힘이 부족해도 힘겹게 사여묵에게 음식을 집어 주었다.그날 저녁 그는 송석석에게 글을 적어주었다. 곧 고모부가 될 사람에게 잘해주어야 고모부도 고모에게 잘해줄 것이라 적혀있었다.그는 늘 따뜻하고 자상한 아이였다.그의 얼굴에도 웃음기가 생기기 시작했고 어두웠던 눈빛도 사라졌다. 하지만 길을 가는 도중 구걸을 하는 사람을 보면 여전히 동정 어린 눈빛으로 보고 있었다.그러나 그 구걸하는 사람들은 어린아이가 아니라 진정한 거지였다.그는 거지에게 먹을 것을 가져다주었다.송석석은 그를 따라 은냥을 주려 했지만, 그는 손을 흔들어 저지했다. 밥을 주면 배를 채울 수 있지만 은냥을 주면 배후의 사람들이 몰수할 것이다. 그리고 은냥을 받다가 앞으로 다시 받아오지 못하면 매를 맞아야 한다.이 거지는 그의 상황과 달랐지만 그래도 여전히 대입했다.송석석은 마음이 아팠지만 웃으며 그의 머리를 어루만
그의 이름은 신이었는데 그를 아는 사람들은 모두 그에 대해서 말할 때, 경멸하는 기색을 띠었고,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 모르는 사람까지 모두 침을 뱉으며 뻔뻔하다고 할 정도였다. 알다시피 애인과 야반도주하는 것은 사람을 죽이고 불을 지르는 것보다 더 욕먹을 일이니 말이다. 많은 사람들은 그에게 후회하냐고 묻기도 했다. 그녀는 시집간 것을 후회하지 않지만 죄책감을 느끼긴 했다. 왜냐하면 그로 인해 시 씨 가문의 명성이 손상되어 형제자매들과 조카들이 혼사에 어려움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신이는 시 씨 가문의 아가씨로서, 태어날 때부터 온갖 보살핌을 받아왔다. 먹는 것은 물론 모두 산해진미이고, 입는 것도 모두 능라 비단이었다. 게다가 보모님과 오라버니의 총애까지 한 몸에 받았다. 하지만 그녀에겐 한 가지 결함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열네 살 때까지 월사가 오지 않은 것이었다. 많은 의사들을 불러 진찰을 받고 밤낮으로 약을 먹었지만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어머니는 그녀에게 몸이 차서 그러니 몸조리를 하면 나을 수 있다고 위로했다. 하지만 그녀는 이미 몰래 의사가 부모님께 하는 말을 들었다. 의사는 그가 몸이 차서 그런 병이 생긴 것이 아닌, 아이를 키우는 곳이 어린아이와도 같아서 평생 아이를 가질 수 없다고 했다. 그리고 그녀의 몸이 마치 작은 꽃병과 같아서 꽃을 꽂을 수는 있지만 나무를 심고 꽃을 피워 열매를 맺는 건 불가능하다고 비유했다. 그녀는 아이를 낳지 못한다는 건 여자에게 어떤 의미인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어머니는 그녀를 속일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나중에 좋은 사람에게 시집가서 부군에게 첩을 들인 후, 첩이 낳은 아이를 친자식처럼 키우라고 조언해주었다.시 씨 가문이라는 후원이 있으면 그녀가 아이를 낳을 수 없어도 아무도 그녀의 지위를 흔들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시 씨 가문의 재물은 그녀가 평생 부귀하게 살기에 충분했다. 신이의 조모도 그녀에게 아이를 낳을 수 없으니 자세를 낮춰야 한다고 했다. 시 씨 가문의 딸이라고
추운 겨울이 되자 눈이 내려 성릉관은 하얗게 뒤덮였다. 세상이 마치 깨끗해진 것처럼 보였다. 이황자는 몇 년 동안 너덜너덜한 승복을 입고 발우를 받쳐 들고는, 가는 길에 동냥을 하다가 절을 보면 이틀 묵으며 부처님께 참회하면서 살았다. 사실 그는 원래 있던 절에서 계속 지낼 수 있었다. 편안하진 않지만 풍찬노숙할 필요도 없고 굶주림과 추위에 시달리지 않아도 되었다. 하지만 그런 안일한 곳에서는 평생 죄를 씻을 수 없다고 생각했고, 계속 길을 걷고 계속 고생해야 마음이 조금이나마 편했다. 그가 성릉관에 도착했을 때 짚신은 이미 찢겨 있었고 발바닥에는 두꺼운 굳은살이 박여 있었다. 이제는 신발을 신지 않고도 자갈이 가득한 길을 걸을 수 있게 되었다. 이런 추운 날씨에는 모든 옷을 껴입어도 추위를 막을 수 없었지만 이미 익숙해진 뒤였다. 그는 눈보라를 맞으며 성릉관에 위치한 감은사로 향했는데, 몇 년 동안 발걸음을 멈춘 적이 없는 탓에 고단함이 뼛속까지 스며들었다. 심지어는 이틀 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아 그는 눈이 가득 쌓인 길에서 의식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깨어났을 때 그는 따뜻한 두꺼운 이불 속에 누워 있었다. 그가 있는 방에는 숯불이 피워져 있었고, 살짝 열린 창문으로 눈에 눌려 허리가 굽은 나뭇가지가 보였다. 그는 눈동자를 돌려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렇게 편안하고 따뜻한 느낌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그의 마음속에 순간 욕심이 생겨 조금만 더 누워있고 싶어졌다. 그런데 바로 그때, 문이 활짝 열렸다. 그가 벌떡 일어나 앉았는데, 갑자기 눈앞이 핑핑 돌더니 다시 힘없이 침대로 쓰러지고 말았다.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누워 있거라.” 이때 누군가가 부드러운 말투로 말하면서 약그릇을 그의 침대 옆에 놓았다. 그는 말하는 사람의 목소리가 익숙해, 어지러움을 가라앉히고 고개를 돌려보니, 그 사람은 얼굴에 미소를 띠고 있었다. “오랜만이야.” ‘서우 형?!’ 그는 자신이 잘못 보았을까 봐 다시 자세히 보려 했지만, 몸이 너무 어지러운
대황자는 봄 사냥 때 숙청제에게 꾸중을 듣고 돌아간 후 앓아누웠다. 당시 이황자와 서우가 모두가 걱정했는데 덕비는 오히려 기뻐했다. 그는 이번 일을 겪으면서 황제폐하께서는 분명히 대황자를 싫어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덕비는 이황자를 안고 반드시 부지런해야 하고, 태부와 황숙의 말을 잘 듣고 누구보다 잘 배워 황형을 제압해야 한다고 당부까지 했다. 그로 인해 이황자의 마음은 몹시 복잡했다. 덕비가 줄곧 그에게 태자와 황제가 되는 것이 얼마나 좋은 지 말해주었을 때 비록 그도 마음이 설렜지만 자신과 거리가 먼 얘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지금 그와 대황형, 서우 형, 그리고 셋째 동생이 사이가 좋아 도저히 대황형을 미워할 수가 없었다. 매일 모순적으로 지내다 보니 오히려 학업이 나빠졌고 승마 연습을 할 때도 여러 번 실수를 했다. 하지만 덕비는 이상하게 그를 탓하지 않았고 며칠 동안 계속 게으르게 하라고 했다. 그렇게 덕비는 이황자를 데리고 복마마를 자주 뵈러 갔고, 복마마 궁전에서 숙청제를 만날 수도 있었다. 덕비는 며칠 동안 그곳을 드나들더니 어느 날 굳은 표정으로 다시는 가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러고는 차가운 말투로 청이에게 자신의 보살핌이 없으면 아이가 태어날 수 있는지 보겠다고 했다. 황제폐하를 자주 뵈러 갈 수 없어 아쉬웠지만 이황자는 마음을 가다듬고 공부와 승마술에 전념했다. 이황자는 당시 앞날이 어떻게 될지도 몰랐고, 비록 매일 힘들긴했지만 한편으로는 즐거웠기에, 계속 이렇게 지내는 것도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숙청제의 천추세에 승마대회를 개최할 예정이니 세 황자와 서우도 가서 겨뤄 보기로 했다. 원래 그런 대회에서 황자들은 재미있게 참석만하면 되지만, 덕비는 그 경기를 몹시 중시했다. 덕비가 이황자에게 마름쇠를 건넬 때, 그는 하늘이 무너져내리는듯한 기분을 느꼈다. 이황자는 원하지 않았다. 그는 절대로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대황형의 목숨을 앗으려 하다니, 이황자는 처음으로 어마마마가 무서워졌다.하
이황자의 출가하기 전의 이름은 사범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이황자가 가장 많이 들었던 평가는 총명하고 지혜로우며 세 황자 중에서 가장 뛰어나다는 것이었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그는 진짜라고 믿으며, 자신이 자랑스럽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가 이런 말로 인해 자랑스러워할 때마다 덕비는 매번 그를 바닥으로 밀쳤다. 그녀는 늘 연민과 복잡한 감정이 가득한 눈빛으로 그를 보며 말했다. “내 뱃속에서 태어나 평생 그 바보에게 밀리게 생겼구나. 바보 주제에 운은 또 얼마나 좋은 지.” 그는 어릴 때부터 그런 말을 귀에 익힐 정도로 들었다. 하지만 덕비는 사람들 앞에서 말하지 않고 매번 사적으로만 그에게 말했다. 그는 어렸을 때 어마마마가 대황형을 가장 싫어하면서 왜 매번 자애롭고 온화한 눈빛으로 대황형을 보며, 분명 바보라고 해놓고 총명하다고 칭찬하는지 몰랐다. 이해가 안 돼서 몰래 청이에게 물어보았더니 청이는 한숨을 쉬며 그의 머리를 어루만지며 말했다. “이황자 님, 마마께서는 이황자 님을 위해서 계획을 세우고 계신 거예요.”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는 어머니가 자신을 위해 무엇을 계획하고 있는지 몰랐다. 하지만 그가 말을 들을 때마다 어머니는 기뻐하셨고 그에게 한숨을 쉬거나 애처로운 눈빛을 보이지 않았다. 숙청제가 그를 보러 올 때마다 덕비는 그가 책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려주었다. 그러자 숙청제는 그에게 어떤 책을 읽는지, 그리고 어떤 내용을 기억했는지도 물었다.그는 매번 대답을 아주 잘해서 숙청제를 흡족하게 했다. 답은 모두 미리 외운 것이기 때문에 어려울 건 없었다.가끔은 숙청제가 그에게 대황형이 괴롭히거나 장난감을 빼앗지는 않는지 물어보기도 했다.하지만 그런 질문에도 정답이 있었는데, 그는 매번 자기가 동생이니 황형에게 양보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했다. 이황자가 매번 그렇게 대답할 때마다 숙청제의 눈빛은 몹시 복잡했는데, 이황자는 그 눈빛을 이해할 수 없었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는 그저 숙청제가 잠시 침묵한 후에 그의 머리
어릴 때부터 친했던 두 친구는 각자의 분야에서 항상 최선을 다했다. 그렇게 수철이 약을 접하게 되면서 약과 의리는 그가 신약산장을 의지하는 모든 것이 되었다. 산에 내려가 의관을 차리고 사람들을 치료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매번 참기만 했는데 서우가 왔다 간 후 보내온 편지를 본 그는 산에서 내려갈 희망이 생겨 마음이 부풀어 잠이 오지 않았다. 그는 예전에 부상에 시달린 적이 있어서 열심히 통증과 부상을 치료하는 약을 연구했는데, 의술이 전면적인 나머지 뒤처지지도 않았다. 그의 마음속에는 지난 몇 년동안 한 번도 타오르지 않았던 한 줄기의 불이 타오르고 있었다. 신약산장에 도착한 순간부터 그는 자신이 설령 살아갈 수 있다 하더라도 이번 생은 그곳에서 지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채 살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신분과 얼굴을 바꾸고, 배운 것을 가지고 산에서 내려갈 수 있다면, 그는 유용한 사람이 될 수 있고 더 이상 숨지 않고 떳떳하게 살 수 있었다. 그 생각에 그는 며칠 동안 흥분한 상태로 제약 공장에서 먹고 마셨다. 사부님은 그런 그의 모습이 조금 두렵게 느껴져 사공에게 편지를 써 알리려고 했다. 그는 사부에게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환한 미소를 띠었다. 그 웃음에 놀란 사부님은 심지어 무당을 불러 귀신이 씐 건 아닌지 보려고까지 했다. 하지만 서우 형이 성공하지 못할 수도 있으니 그는 사부에게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다. 비록 그가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긴 하지만 나중에 너무 실망하지 않도록 마음의 준비를 항상 해야 했다. 날이 지나고 더위와 추위가 오가더니 벌써 2년이란 세월이 흘렀다.추분, 날씨가 상쾌한 어느 가을, 하늘의 밝은 태양은 사람을 뜨겁게 하지 않았고 하얀 구름들은 동쪽에서 서쪽으로 불어 들어오고 있었다. 서우는 다시 한번 신약산장에 발을 들였는데, 이번엔 그의 서동인 진소설을 데리고 왔다. 진소설은 몽동이를 따라 무술을 익혔다. 그런데 노력한 사람은 역시 보답을 받는다고, 비록
“사정언, 너 말 좀 그만해.” 송석석은 눈살을 찌푸리고 서우에게 매달려 쉴 새 없이 말하는 딸을 혼냈다. 새빨갛게 그을린 작은 얼굴에 닭장처럼 헝클어진 머리카락은 한 눈에 봐도 밖에서 뛰어놀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우가 돌아오자마자 그녀는 쉬지도 않고 사촌 오빠에게 길에서 본 재미있는 일들을 물었다. “어머니.” 사정언은 눈을 크게 떴다. 안 그래도 큰 눈을 더 크게 뜨니 왠지 억울해 보였다. 그녀의 외모는 부모님의 장점만 닮아 있었다. “제가 이렇게 오랫동안 사촌 오라버니를 만나지 못했으니, 당연히 할 말이 많지요. 하루만 못 봐도 3년 못 본 것처럼 길게 느껴진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게 무슨 말이야? 대체 누가 그런 말을 가르쳐줬어?” 송석석이 눈살을 더욱 찌푸렸다. “왕사백이요. 그가 며칠 전에 매산으로 갔었는데, 돌아오자마자 시 고모를 안고 그렇게 말했었습니다.” 그녀의 말에 시만자는 고개를 숙여 송석석의 눈빛을 피했다. 그녀는 그때 정언이 나무 위에 숨어 있을 줄은 몰랐다. 알았다면 아이 앞에서 껴안고 그런 오글거리는 말을 할 수 없었을 것이었다. 그녀는 이 아이가 말을 따라 하는 능력이 아주 뛰어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하지만 이 나이의 아이들이 왜 어른들의 말을 듣는 것을 좋아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녀는 이맘때쯤에 최대한 어른들과 멀리 떨어져 있었는데 말이다. 사정언은 대답한 후에도 계속 서우를 잡고 말했다. “오라버니, 혹시 상서에 갔어? 상서에서 시신 업는 것을 봤어? 정말 소국이 말한 것처럼 앞에서 종을 흔드는 도인이 있고, 뒤에 좀비들이 따라가는 거야? 그들은 걸어가 아님 뛰어가? 꼭 밤에만 볼 수 있는 거야? 낮에는 햇볕이 쨍쨍해서 볼 수 없는 거야? 그들은 말할 줄 알아? 뭘 먹어? 그리고 그곳엔 주술을 잘한다고 들었는데 혹시 미인을 본 적이 있어? 그런 미인은 오라버니가 마음에 드는지…….” “그만해!” 송석석도 이내 참지 못하고 호통을 쳤다. “보주, 서주, 어서
송석석은 이번에 외출할 때 황제에게 유람하러 간다고 했다.하지만 그녀는 신약산장에 오래 머물지 않고 7일 만에 떠나 만종문으로 향했다.그녀는 원래 진성으로 돌아가 홍현 고모를 찾고 싶었지만 평무종 고모를 직접 찾아가서 분장술을 가르쳐 달라고 부탁하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했다.분장술은 어렵지 않지만 능숙하게, 아무도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하려면 한두 달 만에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간단한 분장술은 기존의 얼굴에도 할 수 있었지만 비가 오기만 해도 쉽게 흔적이 드러날 수 있었다.그러니 간단한 분장술만 배워서는 안 되었다.그리고 또 다른 미용술은 가면을 만드는 것인데 일반적인 가면은 일정한 두께가 있어 답답하고 오랫동안 착용하면 얼굴에 상처가 날 수 있다.게다가 가면을 착용할 때는 특수 물약을 묻혀야 했기에, 뜯을 때도 얼굴에 상처가 입을 수 있었다.운익각 사람들은 가면을 착용할 때 오래 착용하지 않았다. 게다가 정탐꾼들은 무공도 괜찮고 경공도 높아 임무를 수행할 때만 가면을 착용해서 물약을 묻힐 필요가 없었다. 왜냐하면 벗겨져도 얼굴에 검은 천으로 복면을 쓰고 있어서 알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그리고 일반인들이 변장해서 탐문할 때 사용하는 것은 변장의 첫 번째 방법이었다.평무종은 서우의 요구를 듣고 말했다.“얼굴에 오래 쓰고 있을 수 있으면서도 원래 피부를 해치지 않고 잘 벗겨지지 않는 가면이라, 그럼 상어가죽으로 만드는 것은 어떠냐.”“상어가죽이 무엇입니까?”서우는 매미의 날개처럼 얇고 물에 젖어도 흔들리지 않는 상어비단은 들어본 적이 있었지만 그건 엄청 귀중한 비단이었다.그러자 평무종이 설명했다.“상어가죽은 분장술에서 쓰이는 가장 좋은 소재이다. 통풍이 잘 되고, 얼굴에 단단히 붙어 쉽게 떨어지지 않아 빗물을 걱정할 필요도 없었다. 심지어 눈으로 보나 만지나 모두 진짜 피부와 다르지 않다. 하지만 상어가죽으로 가면을 만들려면 상어 눈물을 사용해서 실을 짜내고 다시 밑감을 만들어야 해서 매우 번거롭다.”그러자 서우가 물었다.“
그렇게 두 사람은 촛불을 들고 한참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하지만 조정의 일은 일절 말해주지 않은 탓에, 수철은 지금 나라가 안정적이라는 사실만 알 수 있었다. 그는 이미 대황자가 아니다. 따라서 지금 그가 지켜야 할 것은 자신의 목숨뿐이고, 다른 것은 이미 그와 상관이 없어졌다. 그는 조정에 관한 화제를 꺼내면 모두가 예민해질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어릴 때 그는 왜 자신이 죽어야 하는지 몰랐지만, 나중에 단 사공이 와서 조금씩 분석해 주었고, 그의 사부님도 이해관계에 대해 이야기해준 적이 있었다. 그와 셋째 동생 사이에 가족의 정으로 목숨을 걸고 불안정한 여생을 걸어야 한다면 결코 모두에게 좋은 일은 아니었다. 그래서 그는 받아들기로 한 것이었다. 삶은 계속될 텐데, 매일을 의미 있게 잘 보내야 목숨을 건진 보람이 있기 때문이다. 서우가 그의 다리에 대해 물었다. “내가 오기 전에, 고모가 그러던데 넌 다리를 다쳐서 일어날 수 없다고 했는데 지금은 어떻게 걸을 수 있게 된 거야?” 그러자 수철이 말했다. “부황께서 승하하신 해에 산장에서 몇 사람이 와서 진찰해 보더니 정말 심하게 다쳤다며 이대로 두었다가는 계속 아플 테니 반드시 극단적인 방법으로 치료해야 한다고 하더군.” 그러자 서우는 호기심에 물었다. “어디서 온 신의야? 그럼 그때부터 치료한 거야?” 그 물음에 수철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북당에서 왔는데 그 사람은 그 말만 하고 날 치료해주지 않고 당일에 떠났어. 그러다가 지난달에 와서 약주를 줘서 그걸 마셨는데, 난 하루 종일 혼수상태에 빠졌어. 심지어 깨어나니 다리가 아파 죽을 것 같았지. 그런데 며칠이 지나자 점점 좋아지더니 누군가 부축하면 일어날 수 있게 되었어. 처음에는 잘 일어나지 못했는데 시간이 지나자 점점 똑바로 설 수 있게 되었지. 그리고 지금은 혼자 몇 걸음은 걸을 수 있게 됐어.” 그러자 서우가 놀란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북당신의? 그분께서 아직 살아 계셔?” “아니, 돌아가셨어. 내가 일어나
[번외편]신약산장의 진달래가 온 산천지에 피었다. 다채로운 경치는 사람들로 하여금 황홀하게 만들었다. 특히 신약산장에 가본 적이 없는 사람들마저 그곳에 살고 싶어 할 정도였다. 하지만 예외인 사람이 한 명 있었다. 그는 말을 타고 산 아래에 도착해 말을 잘 배치한 후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오직 눈앞의 길만 보았고 찬란한 꽃들은 그의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는 빠르게 걸으며, 가끔 경공을 사용하기도 했다. 신약산장이 비록 높지는 않았지만 은밀하게 숨겨져 있었고 많은 갈림길이 있었다. 하지만 그는 지도를 수도 없이 봐 온 덕분에 신약산장으로 향하는 길을 이미 마음속에 깊이 새기고 있었다. 약관 때 그가 작위를 계승했을 당시, 작은 고모가 많은 선물을 주었는데 그중 가장 큰 선물이 바로 지도였다. 그리고 그에게 온몸의 피가 끓게 하는 소식을 알려주었는데 바로 수철이 아직 살아있다는 사실이었다. 당시, 그는 한숨도 자지 못했고 옛날의 모든 일들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작위를 받은 후 입궁해서 사은하고 선조들에게 제사를 지낸 후 답방 인사를 드려야 했는데, 작은 고모의 말로는 인맥을 굳건히 하기 위함이라고 했다. 그래서 무려 보름이 지난 후에야 비로소 신약산장으로 출발했다. 산 아래에 도착하자 그는 날아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막상 산문을 본 순간, 강한 슬픔에 휩싸여 발걸음을 멈추고 그저 멍하니 서 있을 뿐이었다. 작은 고모는 그에게 수철이가 두 다리를 못 쓰게 되었고, 불행 중 다행히 치료 후에 목숨은 건졌지만 약 없이는 살 수 없게 되었다고 했다. 그것은 평생 약을 달고 의자에 앉아 있거나 침대에 누워서 지낼 수밖에 없다는 뜻이었다.그의 기억 속의 수철의 모습은 두 가지로 나뉘었는데, 하나는 제멋대로며 횡포한 모습이었고, 다른 하나는 성실하고 열심히 공부하며 태후마마와 황제폐하를 실망시킬까 봐 무술이든 공부든 최선을 다 했던 모습이었다. 특히 무술은 고모부가 재미있게 가르쳐 준 덕분에 그들은 항상 활기차게 뛰어다닐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