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쓰고 나니 그는 너무 힘들었다.송석석은 그를 쉬게 했다. 잠든 그의 모습을 보며 송석석은 떠나기 아쉬웠다.서우의 곁에서 반걸음만 떨어져도 지금의 모습이 꿈처럼 무너져 깨어보니 서우가 없을 것만 같았다.그녀는 아이가 얼마나 큰 고생을 했을지 생각하자 마음이 아팠다. 절뚝거리며 걷는 모습을 보니 마치 비수가 꽂히는 것 같았다.사여묵은 이미 돌아갈 준비를 시키고 있었다. 서우의 상황은 지체하지 않고 빨리 단신의를 찾아 치료해야 한다.일곱 살짜리 아이가 다섯 날 정도로 크다니, 떠난 지 2년 동안 키가 큰 적 없는 것 같았다. 또 무슨 독을 먹였는지 알 수 없으니, 똑똑히 병을 보지 않으면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사여묵은 영주지부로 하여금 그의 명의로 폐하에게 상소문을 전해 상황을 설명하게 했다.송씨 집안의 대가 남아 있다니 폐하와 조정 신하들도 아주 기뻐할 것이다.그리고 공가에게도 이 아이는 구원과 같을 것이다.송가의 멸문은 그냥 죽임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 처참하게 죽었다. 모든 사람의 몸에는 18개의 칼자국이 있었다.특히 그때 서우가 머리를 잘렸고 얼굴마저 칼자국이 낭자해 알아볼 수도 없어 생각만 해도 소름 끼치는 참혹한 모습이었다.공씨 집안 노부인은 소식을 듣고 그 자리에서 기절했다. 송씨 둘째 부인은 어려서부터 그녀의 곁에서 자라 다른 손녀들보다 더 친했다.공씨 어르신은 비통함을 참지 못해 머리가 어지러워 돌계단에서 떨어졌고 다음날 바로 돌아가셨다.그렇게 음울한 분위기에 공가는 2년 동안 거의 아무런 모임에도 가지 않았고 권세가들의 모든 초대에 응하지 않았다.이틀 후 그들은 마차를 타고 진성으로 돌아갔다.사여묵은 마부로 전락하였고 섬광은 수레를 끌었다. 송석석은 마차 안에서 서우를 데리고 있었다.양 마마가 만든 떡을 서우에게 먹이자 서우는 먹으면서 눈물을 흘렸고 손을 이리저리 휘둘렀다.그는 맛있다고 말하고 싶었다.송석석은 알아차린 뒤 코가 찡했다."앞으로 뭘 먹고 싶으면 부엌에 시켜서 다 해주마."서우는 눈을 반짝였지만 이
서우가 깊이 잠든 후 그녀는 사여묵을 찾아가 서우가 쓴 내용을 보여주었다.사여묵은 보고 난 뒤 마음이 아주 착잡했다. 그를 때린 놈들과 많이 닮았단 말인가?아마도 그럴 수 있다. 전쟁터에 오랫동안 습관 되어 그의 몸에는 포악한 기운이 심했다.그는 천천히 한숨을 쉬었다."천천히 해보겠소. 가능한 한 다정하게 많이 웃어볼 것이오."아이의 몸과 마음은 모두 치유가 필요했다."오는 길 내내 고생하셨습니다."사여묵에 대한 송석석의 고마움은 이미 한마디로 뭐라할 수 없었다.하지만 그녀는 그에게 분명히 말해야 할 것이 있었다.그녀는 비녀를 뽑아 심지를 돋우었고 불꽃이 튀었다. 방안은 조금 밝아졌고 그녀의 마른 볼과 창백한 입술을 비췄다.그녀는 천천히 말했다."서우의 상황을 보아 적어도 2, 3년은 나를 떠날 수 없을 것입니다. 만약 우리의 혼사가 정말 확정된 것이라면 아이를 데리고 왕부로 가야 합니다. 홀로 국공부에 남겨둘 순 없습니다."사여묵의 잘생긴 얼굴은 침착한 표정을 유지했고 칠흑 같은 눈동자에 불빛이 아른거렸다."우리의 혼사는 물론 확정되었소. 나도 서우를 홀로 국공부에 남겨둘 수 없다고 생각하오. 꼭 서우를 곁에 기르며 해독하고 다리를 치료해 나아지게 해야 하오. 계속 책을 읽거나 무예를 연마할 수 있진 않소? 공부나 무예가 싫다면 그냥 잘 자라게 해도 상관없소. 난 서우를 내 아이처럼 키울 것이오."그의 말에 송석석의 걱정은 완전히 가셨다. 그동안 있었던 일을 생각하니, 송석석은 사여묵이 그녀에게 성심성의껏 책임을 다했다는 것을 알았다. 앞으로 그에게 시집을 간 후 애정은 없어도 서로 잘 지낼듯했다.다만 서우가 그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방법을 생각해야 한다. 적어도 경계를 놓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같은 지붕 아래에서 지낼 수 있을까?북명왕은 친왕 귀족이다. 서우를 여러 번 참아 줄 순 있지만 오랫동안 적의를 가지고 있으면 마음이 식을 것이다. 특히 혜태비도 왕부에서 지낼 것이다.사실 이 상황에 혼례를 올리지 않는 것이
드디어 오늘, 객잔에 묵으려 사여묵이 손을 뻗어 송석석을 마차에서 내린 후 서우는 용기를 내어 마차에서 내려왔다. 그리고 온몸을 떨며 두 사람 사이에 가로질렀다. 그는 두 손을 펴 작은고모를 뒤에 감싸고 적의의 눈빛으로 사여묵을 노려보았다.그는 겁에 질렸고 다리는 계속 바들바들 떨려왔다. 입술도 바르르 떨며 ‘윽, 윽’하고 내쫓는 소리를 냈다.사여묵과 송석석은 충격에 휩싸여 시선을 마주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소용없는 것도 모자라 오히려 역효과라니."아!"송석석은 갑자기 이유가 생각났다. 서우는 그녀가 더이싱 전북망의 부인이 아니라는 것을 모르고 곧 사여묵에게 시집갈 것이라는 것은 더욱 모른다.그날 저녁, 고모와 조카는 늦은 시각까지 이야기를 나누었다.더 이상 서우를 어린아이로 대할 수 없었다. 2년 동안 구걸하며 떠돌아 그에게 얘기만 해준다면 알아들을 것이다.가문이 멸문된 일도 그는 백성들의 의논을 듣고 알았지 자세한 상황은 알 지 못한다.그도 이젠 일곱 살이니 알아야 할 일들은 알려주어야 한다."송씨 집안을 그렇게 만든 자는 서경에서 보낸 사람이다. 고모는 네가 집을 나간 줄 몰라 너도 그때 죽었다고 생각했다. 너는 우리 집안의 유일한 사내야. 너는 할아버지와 큰아버지, 그리고 아버지와 숙부의 모든 희망과 의지를 짊어지고 있다. 너도 그들처럼 당당하고 두려움 없는 사내가 되어야 한다.""그리고 고모는..."그녀는 서우의 어깨를 감싸고 끝없이 흐르는 그의 눈물을 보며 계속 낮은 소리로 말했다."고모는 이미 전북망과 화리했다. 우리는 더 이상 부부가 아니라 남이다."서우는 다급히 눈물을 닦고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그 이유는 나중에 천천히 말해주마. 그리고 하나 더 말하자면 전하는 나와 혼례를 올릴 사람이고 연말에 곧 혼례를 치를 것이야. 왜 그에게 시집을 가는지 묻고 싶은 것이냐? 남강의 전쟁부터 얘기를 해야 하는구나..."송석석은 말을 하며 숨김과 거짓을 조금 섞었다.멸문을 초래한 자가 서경에서 보낸 사람인 것은 진성
이튿날, 마부 사여묵은 눈밑이 까맸지만, 정신은 맑고 상쾌했다.송석석은 그가 대체 어떻게 이럴 수 있는지 궁금했다. 분명 잠을 잘 자지 못한 것 같지만, 이렇게 혈기 왕성하다니.눈 밑만 어두울 뿐 얼굴과 눈빛은 모두 환해 보였다.어젯밤 서우와 이야기를 나눈 후, 그는 사여묵을 그렇게 두려워하거나 경계하지 않았다. 가끔 가림막을 젖히고 그의 뒷모습을 몰래 보기도 했다.할아버지와 같은 사람이라면 그는 아주 대단한 사람일 것이다. 적만 때리고 백성을 때리지 않을 것이다.그러니 겁낼 필요가 없었다.서우는 줄곧 그렇게 자신에게 말했다. 길에서 내내 그렇게 생각하다 보니 점차 사여묵은 그에게 할아버지, 아버지와 같아 보였다. 게다가 사여묵은 그의 고모부이니, 가족이 될 사람이다.그래서 엽현에 도착했을 때 서우는 이미 주동적으로 사여묵에게 손짓을 했고, 사여묵의 손을 잡고 떡을 사러 가기도 했다.송석석은 그 모습을 보며 안도했다.게다가 그뿐만이 아니다. 서우는 그녀를 믿는 것처럼 사여묵을 믿는 것 같았다. 밥을 먹을 때 주동적으로 사여묵의 곁에 앉았고 음식을 집을 때 손에 힘이 부족해도 힘겹게 사여묵에게 음식을 집어 주었다.그날 저녁 그는 송석석에게 글을 적어주었다. 곧 고모부가 될 사람에게 잘해주어야 고모부도 고모에게 잘해줄 것이라 적혀있었다.그는 늘 따뜻하고 자상한 아이였다.그의 얼굴에도 웃음기가 생기기 시작했고 어두웠던 눈빛도 사라졌다. 하지만 길을 가는 도중 구걸을 하는 사람을 보면 여전히 동정 어린 눈빛으로 보고 있었다.그러나 그 구걸하는 사람들은 어린아이가 아니라 진정한 거지였다.그는 거지에게 먹을 것을 가져다주었다.송석석은 그를 따라 은냥을 주려 했지만, 그는 손을 흔들어 저지했다. 밥을 주면 배를 채울 수 있지만 은냥을 주면 배후의 사람들이 몰수할 것이다. 그리고 은냥을 받다가 앞으로 다시 받아오지 못하면 매를 맞아야 한다.이 거지는 그의 상황과 달랐지만 그래도 여전히 대입했다.송석석은 마음이 아팠지만 웃으며 그의 머리를 어루만
목 승상은 눈물을 닦았다."살아있으니 다행입니다. 살아있으면 된 것입니다."그는 일어서서 허리를 숙였다."신이 추태를 보였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짐도 하마터면 추태를 보일 뻔했으니 탓할 리 있겠나? 누가 이 소식을 듣고 기뻐하지 않겠나."황제는 활짝 웃다 무언가 생각난 듯 얼른 분부했다."오 대반, 직접 공가나 경조부에 가서 공대감을 찾아 이 일을 알려 기쁘게 해드리게."오 대반도 옆에서 눈물을 닦고 있다, 어명을 듣고 다급히 답했다."예. 바로 가겠습니다."오 대반은 기분 좋게 떠나갔다. 송가에 후손이 남았다니 오 대반은 진심으로 기뻐했다. 송 부인에게 은혜를 입은 적 있어 그는 누구보다 송가가 잘 지내길 바랐다.목 승상은 오 대반이 나가는 것을 보고 마음이 착잡했다. 비록 아직 처리해야 할 정무가 한 무더기 남았지만 이렇게 빨리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폐하, 성릉관 전역은 시종 우리 상국의 치욕입니다. 이 일을 비록 숨겼고 서경도 지금 폭로하려 하지 않지만, 서경 태자가 목숨을 잃은 것은 사실입니다. 서경에서 적통을 빼앗기 시작했고, 적통을 빼앗기 위해 온갖 수단을 쓸 것입니다. 서경 황자 중 이 일을 들추어 백성들의 지지를 얻으려 하는 자도 있을 텐데 먼저 대처할 방법을 생각해야지 않습니까?"황제는 잠시 멈칫하다 말했다."이 일은 우리 마음속의 짐과도 같네. 앞으로 어떻게 될지 확신이 어렵네. 대책이라 하면 이미 정해지지 않았는가? 이방을 처리하지 않고 목숨을 살려둔 후 조정에서 이 일을 모른다고 한 뒤 일단 폭로되면 이방을 서경에 보내 처리하게 내버려두는 것도 방법이네."그렇지 않으면 왜 이방의 목숨을 살려두었겠는가? 그는 진작부터 그녀를 갈기갈기 찢어 죽이려 했다.목 승상은 곰곰이 생각하다 다른 방법이 없어 답했다."아이고, 지금은 이렇게 할 수밖에 없습니다. 수란키도 직접 원수를 갚았습니다. 남강 전역에서 이방이 이끈 병사들, 성릉관에서 서경 태자를 학살한 사람들입니다. 살아서 돌아온 사람들은 그 구실을 못 하고,
목 승상은 부인을 대신하여 이런 일을 맡고 마음이 참 착잡했다.과거 전북망과 이방은 모두가 인정하는 잉꼬부부였고 조정에도 그들 두 사람에게 큰 기대를 걸었었다.백성들조차도 그들의 사랑을 찬양하고 이방을 연민하고 존경했다. 분명 큰 공을 세운 여장이지만 기꺼이 평처가 되었다니.전북망을 칭찬하는 사람도 있었다. 비록 이방 장군과 마음이 맞지만, 집안의 본처를 잊지 않고 이방을 위해 그저 평처의 자리를 쟁취했다.성릉관의 승리로 모든 사람은 기쁨에 취해 이성을 잃고 함께 즐거움을 누렸다.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기쁨이 가시자 그제야 아름다운 이야기 속에 이렇게 많은 더러운 점이 숨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결국 본처가 이방보다 더 뛰어나다는 것을 발견했고 그제야 다들 송가가 상국을 위해 이룬 공로가 떠올랐고 송가의 참혹한 결말을 떠올렸다.그러나 송가 아가씨는 줄곧 공평한 대우를 받지 못했다. 그녀의 곁에는 늘 시비가 따라다녔다.이전에 그녀를 불효라 말했을 때도 모두 그녀가 남강에서 세운 공로를 잊은 듯했고 줄곧 그녀를 따라다니며 비난해 감정이 직접 나서서 해명했다.이방은 군대에 남아있을 수 있었지만, 지금은 송가 아가씨가 현갑군 부지휘사의 허직을 맡고 있으며 당직도 필요 없었다. 황제는 분명 그녀에게 실직을 주려는 것이 아니다.목 승상은 마음속으로 황제가 얼마나 많은 걱정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다. 그러나 그 걱정 속에 송국공부에 대한 진심이 있다니 그것으로 충분하다.국공부에 그녀 혼자 남았는데 지금 둘째 소장군의 아들을 찾았으니, 국공의 자리도 물려받을 사람이 생겼다. 그러나 결국 후손이 적기에 황제는 더 이상 송가 사람을 위험에 처하게 하지 않을 것이다.그런 마음이 있으니 다른 건 모르는 일이고 없던 일로 생각하려 했다.오 대반은 공가로 향했다. 공양은 아직 댁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그래서 오 대반은 소식을 전하지 않고 먼저 공대감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겠다고 했다.그래서 공가 사람은 겁에 질렸다. 오 대인은 웃으며 말했다."걱정할 필요 없네,
공가 사람들은 듣자마자 의심스러웠다. 북명왕이 공가의 좋은 소식을 전하다니?많은 사람의 의심스러운 눈빛을 보고 오 대인은 계속 말을 이었다."북명왕은 엽현에서 송가 둘째 소장군과 닮은 어린 거지를 발견했네. 그래서 무심히 서우라고 불렀고 뜻밖에도 그 어린 거지가 반응을 했지..."공양은 다소 황당함을 느끼고 오 대반의 말을 끊었다."오 대반, 전하께서 서우를 닮은 아이를 만나 폐하에게 주본을 올린 이유가 무엇입니까? 서우를 닮았지만 서우가 아닌데, 어찌 폐하께 주본을 올릴 수 있습니까?"공양은 황당함과 동시에 약간의 분노도 느꼈다.문청과 서우는 공가 사람들 마음속의 큰 아픔이다. 특히 노부인은 이런 말을 듣지도 못하신다.서우와 비슷한 사람을 만났다고 기쁜 소식이라 전하다니? 이게 어떻게 경사란 말인가? 다들 급히 돌아왔는데 이렇게 황당한 소식을 들으니 공양은 저도 몰래 북명왕에게 화가 났다.오 대반은 손을 흔들었다."공대감 조급해 하지 말게. 만약 닮기만 했으면 엽현에서부터 영주까지 쫓아가지도 않았을 것이네. 송가 아가씨도 이미 수일 전에 영주로 갔고 지금 이미 그 어린 거지의 신분이 둘째 소장군의 아들 송서우라 확인했네. 아마 며칠이 지나면 진성에 도착할 것이네."이 말에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공양은 어두워진 눈빛으로 연신 부인했다."그럴 리 없습니다. 절대 불가능합니다. 서우는 이미 죽었습니다. 내가 그 아이를 안고... 시신을 확인했습니다. 오 대반, 더 이상 말하지 마십시오. 이 일을 저희는 믿을 수 없습니다. 송가 아가씨도 진짜인지 가짜인지 구별하지 않고 비슷한 아이를 만났다고 서우라고 하다니. 서우가 살아있거나 송가 사람이 살아 있다는 소식을 갈망하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래도 이 일은 불가능합니다."송가 노부인은 이미 울기 시작했다. 그녀의 딸과 외손자는 이미 죽었는데, 어떻게 2년이 지난 지금 또 이런 소란이 생긴단 말인가?송가 아가씨는 정말 미친 것인가?오 대반은 상황을 보고 말했다."폐하께서
하지만 어떻게 진짜일 리 있을까?실망할 운명이다.모두 마음이 괴로웠지만 또 송석석을 동정했다. 희망에 가득 찬 채 그곳에 갔다면 아마 실망했을 것이다.오 대반이 그들이 머지않아 진성에 도착할 것이라 했는데 정말 그 거지를 서우로 여기고 데리고 온 건가?대체 일을 어떻게 하는 것인가? 듬직하다고 생각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이렇게 경솔하다니.송석석은 추석에 진성을 떠났고 돌아올 때가 되니 이미 10월 초가 되었다.천고마비의 상쾌하고 좋은 날이다.진성을 지키는 장병들은 마차를 끄는 사람이 북명왕인 것을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전하가 마부 노릇을 하다니, 대체 마차 안의 사람은 누구인가?친왕의 마차가 성으로 들어오는 것은 검사가 필요 없이 바로 통과된다. 그래서 마차는 곧장 국공부로 향했다.국공부에 도착하자 사여묵은 송석석과 서우에게 말했다."난 들어가지 않을 테니 당분간은 서우와 잘 지내고 있소. 며칠 지나서 다시 올 테니."아마도 송석석과 서우는 내일 공가로 갈 테니 그는 내일 올 필요가 없었다.송석석이 감사의 말을 전하려다 지겹다는 그의 말이 떠올라 말을 고쳤다."고생하셨습니다. 어서 돌아가서 쉬십시오.""그럼 가겠소."사여묵은 서우를 보고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내일 사람을 보내 맛있는 것을 가져다주라 하마."서우는 비록 어색했지만 그래도 기뻐서 그를 향해 웃어 보였다.사여묵은 그의 미소를 보며 지금까지 정말 쉽지 않았다고 생각했다.그가 간 후, 송석석은 서우를 데리고 국공부의 대문으로 들어갔다.양 마마와 황 마마는 서우를 보자마자 눈물을 쏟았다. 진복도 눈물을 훔치고 달려와 울먹였다."작은 도련님. 돌아오셨습니까? 오셨으니 다행입니다, 정말 다행입니다."그는 서우를 보며 방금 눈물을 닦고도 또다시 울기 시작했다. 아이는 정말 불쌍할 정도로 말랐다. 대체 얼마나 고생을 한 걸까?그는 몸을 돌려 하인에게 부엌에 가서 음식과 차 그리고 뜨거운 물을 준비하라 분부했다.양 마마와 황 마마는 원래 국공부에서 모시다 송석석
이날 저녁, 송석석은 약왕당에서 받아온 약을 사여묵에게 건넸고 약의 위험성까지 자세하게 얘기했다.사여묵은 망설이는 듯한 송석석의 모습에 환하게 웃으며 위로했다.“이 정도 상해는 충분히 견딜 수 있소. 그리고 원기를 회복할 수 있는 약들도 이렇게 잔뜩 가지고 오지 않았소? 나중에 어의에게 진단만 받으면 바로 단설환을 먹을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마오. 남강으로 가는 길에도 단 신의의 당부를 잊지 않고 매일 약을 꼬박꼬박 챙겨 먹겠소.”“그래도 결국 독약 아닙니까? 그러지 말고 저희 다른 방법을 생각해보는 건 어떨까요?”송석석이 미간을 찌푸리며 묻자 사여묵이 담담하게 대답했다.“내가 보기엔 지금으로써 가장 좋은 방법인 것 같소. 단 신의가 말을 무섭게 해서 그렇지 그 정도로 심각한 상해를 입히지 못할 거요. 그렇게 위험한 약이었다면 애당초 꺼내지도 않았겠지.”“그럼 일단 염 선생과 상의라도 해보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그럴 필요 없소!”사여묵이 약을 내려놓은 뒤, 커다란 손으로 송석석의 허리를 감싸며 말을 이어갔다.“이 일은 아는 사람이 적을수록 유리하오. 나중에 내가 대리사에서 쓰러지면 진이가 내 옥패를 들고 어의를 찾아갈 것이고 황실로 달려온 어의가 우왕좌왕하는 염 선생을 보아야 의심을 하지 않을 것이오.”송석석은 사여묵의 가슴팍에 기대어 불안한 마음을 가까스로 억눌렀다. “전 장군님이 너무 걱정됩니다. 몸이 회복되기도 전에 남강으로 출발해야 하는데 가는 내내 제대로 쉴 수도 없지 않습니까? 그러다가 남강에 가서도 몸 상태가 회복되지 않으면 전장에 어떻게 나가시려고 그러십니까?”송석석의 걱정에 기분이 좋아진 사여묵이 다정하게 웃으며 그녀를 위로했다.“난 왕표를 무조건 대체하겠다는 게 아니오. 일단 제린을 찾아 병사들 속에 숨어 있다가 왕표가 제대로 군을 이끈다면 난 남강 구경이나 하다 올 것이오.”사여묵의 위로에도 송석석은 시름이 놓이지 않았다. 왕표가 군을 제대로 이끌지 못할 거라는 확신 때문에 두 사람이 지금 이런 모험을 하고 있는
화가 난 단 신의는 송석석의 말에 설득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버럭 언성을 높였다.“난 멍청한 사람을 돕지 않소. 당신들은 그런 천하의 멍청이가 따로 없소!”“세상에 이런 멍청이도 있어야 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이번 한번만 더 모험하고 다시는 이런 일 없을 겁니다. 약속할게요.”송석석이 환하게 웃으며 말하자 단 신의가 미간을 찌푸렸다.“모험을 하고 싶어도 이제 못할 수도 있소. 돌아오면 황제께서 그 죄를 어떻게 물으실 줄 알고 이러는 것이오. 그러다가 머리가 잘릴 수도 있소.”“정말 그런 상황이 벌어진다고 해도 저에게 방법이 있습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단 신의는 고집을 부리는 송석석을 보며 살짝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가 말한 것처럼 백성들에게는 두 사람과 같은 멍청이들이 필요하긴 했지만, 단 신의는 그 멍청이가 송석석과 사여묵은 아니길 바랐다.결국 단 신의는 먼지가 뽀얗게 쌓인 작은 상자를 꺼내 먼지를 툭툭 털어내곤 조심스럽게 열었다.상자 안에는 땅콩 만한 검은 알약 하나가 있었다.“똑똑히 기억하시게. 이건 독이오. 이 약을 먹고 나면 맥박이 이상해지고 갑작스러운 발작을 일으키네. 그리고 짧은 시간내에 심장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지. 이건 그저 보여지는 현상이 아니라 실제로 죽을 수도 있다는 뜻이네. 이 약을 먹고 3일 정도 버틸 수 있는데 3일 뒤에는 반드시 단설환을 복용해야 하오. 그러지 않으면 심장에 영구적인 손상을 입을 수도 있소.”단 신의의 말에 송석석이 흠칫 놀란 표정이었다.“정말로 위험한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뜻입니까?”“그럼 당연하지. 이건 독이오.”“그럼 단설환을 먹고 나면 바로 정상적인 몸 상태로 돌아올 수 있는 겁니까?”“그렇지 않소. 며칠 동안 안정을 취해야 하네. 눈속임을 하고 나서 바로 출발하면 절대 안 되오.”위험할 수도 있다는 단 신의의 말에 송석석은 단 신의가 건네는 약을 받지 않았다.“그럼 혹시 다른 약은 없는지요? 폐하를 속이고 나서 장군님은 바로 출발하려고 할 겁니다. 실제로 중독되
사여묵은 온몸에 힘이 쭉 빠진 채 침대에 앉아 등을 벽에 기대고 있었다.남강에서 돌아와 병권을 황제께 바친 뒤에도 황제는 여전히 사여묵을 의심하고 경계했지만 사여묵은 그리 신경 쓰지 않았다.황제가 의심과 경계를 조금은 풀 수 있도록 사여묵은 지금까지 최대한 언행에 조심했으며 서경과의 담판이 끝나고 나서도 황제 앞에서 일부러 약한 모습을 보였다.나중에 혹시라도 전쟁이 일어났을 때 더 이상 황제의 의심을 받지 않기 위해 조심하고 또 조심했는데 황제의 태도는 전혀 바뀌지 않았다.“사국이 이번에 다시 쳐들어온 건 사국과 손잡은 내국 역적이 남강에 이미 함정을 파 놓았다는 사실을 폐하께서도 알고 계신 것이오. 그래서 사국은 저렇게 겁도 없이 남강을 계속 공격하고 있는 것이지. 하지만 폐하는 내가 폐하께 대한 위협이 사국 병사들을 물리치는 것보다 더 중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소.”사여묵이 씁쓸하게 웃으며 마지막 남은 술을 벌컥벌컥 마시자, 송석석은 안타까운 표정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황제께서 이런 결정을 하신 게 처음은 아니잖아요.”사여묵은 송석석을 품에 꼭 끌어안은 채 그녀의 머리를 다정하게 쓰다듬었고 조금 전 혼자 술을 마시고 있을 때부터 계속 이렇게 숨막히는 인고를 견뎌야 하나 생각하고 있었다.“난 무조건 그런 비극이 다시 일어나게 하지 않을 것이오.”송석석을 놓아준 사여묵은 강경한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보며 말을 보탰다.“난 당신처럼 용감하게 변할 것이오.”예전에 송석석이 입궁하여 황제께 상황을 보고했을 때 황제는 그녀의 말을 믿어주지 않았다. 그때 당시 송석석은 마냥 기다리거나 손을 놓은 것이 아니라 홀로 남강까지 찾아갔다.송석석은 그때 자신의 생사를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한편, 사여묵의 말을 들은 송석석은 바로 뜻을 알아챘고 확신에 찬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전 장군님을 응원합니다. 아무 걱정도 하지 말고 다녀오세요. 폐하께서 아무것도 묻지 않으신다면 전 평소와 같이 진성을 지키고 있을 것이고 만약 폐하께서 죄를 물으신다면 전 북명
사여묵이 방시원을 잘 달래어 돌려보낸 뒤, 염구진이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다들 감정이 격해지는 것도 당연합니다. 남강 땅을 되찾기 위해 그들은 청춘을 다 바쳤는데 이제 또 전쟁이 난다고 하니 마음이 안 좋을 수밖에 없지요.”말을 하던 염구진은 고개를 돌려 사여묵을 힐끔 쳐다보았으며 방시원의 마음을 가장 잘 헤아릴 수 있는 사람은 사여묵일 것이라고 생각했다.한편, 한참동안 말이 없던 사여묵이 별다른 표정 변화 없이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잘 지켜보고 있다가 무슨 소식이 들리면 바로 나에게 보고하게.”“알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사여묵은 다시 연주에 관한 일에 대해 물었다.“연주에서 성문을 봉쇄했다고 들었는데 소식은 끊기지 않은 것이오? 혹시 그쪽에서 움직임이 보이지는 않나? 계획대로 행동하고 있는 건가?”“아직 확실한 소식은 접하지 못했지만 소인은 모성을 믿습니다. 계획한대로 잘 하고 있을 겁니다.”“그래. 나도 그자를 믿네.”염구진의 대답에 사여묵이 고개를 끄덕였다. 모성은 연주 좌부승이었고 연왕이 반역을 도모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사여묵은 바로 사람을 시켜 모성에게 접근했다.총명하고 무술 실력까지 겸비한 모성은 선황제 때부터 이름을 널리 알렸지만 성격이 너무 오만했기에 아직까지도 직급은 그저 부승이었다. 평소에 시를 즐겨 쓰는 모성은 시문의 대부분 내용이 세상을 향한 불만 표시였기에 연왕은 모성이 조정에 불만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여 그를 곁에 두기로 했다.그렇게 모성은 오랜 세월동안 외로운 싸움을 했다. 그 중 더 높은 관직으로 승진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지만 모성은 연왕의 반역죄 증좌를 수집하기 위해 모든 걸 포기하고 연주에 남았다.하지만 연왕은 섣불리 움직이지도 않고 핵심 병력의 상황도 모성에게 전혀 알려주지 않았으며 심지어 중요한 일을 논의할 때에는 모성에게 나가 있으라고 하기도 했다.때문에 모성은 하상지의 잡일을 처리해주면서 간간이 상황을 알아볼 수밖에 없었다.확실한 증좌가 없는 탓에 모성은 지금까지도 연왕
”소인도 오늘 폐하께 감히 많은 얘기를 드리지는 못했습니다. 혹시 폐하께서 오해하실까 봐 왕야를 찾아가지도 못했지요.”이덕회가 대답하자 목 승상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잘하셨습니다. 병부는 최대한 사적으로 북명왕을 접촉하지 않아야 합니다. 아니면 혹시 병사 감찰대로 폐하께 한 사람을 추천하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혹시 왕표 그자가 남강 전쟁 원수를 맡기엔 걱정된다면 방시원 장군을 황제께 추천해보십시오.”“하지만 방시원 장군님은 주군 총병이라 남강 전쟁에 보낼 수는 없지 않습니까? 방 장군을 보낼 바에는 차라리 방천허와 제린에게 전사를 맡기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내란이 터지고 있는 지금 진성 주군에 대장이 없어서는 안 되는 일이지요.”이덕회의 말에 목 승상이 의미심장한 말투로 대꾸했다.“도리는 그게 맞지요. 제 말은 폐하께 왕야 한 사람만 추천할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몇 명 더 추천하라는 뜻입니다.”이덕회가 고개를 푹 숙인 채 입술을 살짝 오므렸다.“소인이 솔직한 성격이라 말을 돌려서 할 줄 모르니 그냥 말하겠습니다. 소인이 보기엔 왕야가 가장 적합한 원수인데 어차피 역적은 아직 나라에 위협이 될만한 존재는 아니니까 나중에 목종욱한테 처리하라고 하면 되지요.”“그 어떤 반역자도 쉽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이 일은 그리 단순한 일이 아닙니다. 알다시피 반역자들은 사국 사람들과도 엮여 있습니다. 사국과 손을 잡았다는 건 그만큼 충분한 준비를 해왔다는 뜻이지요. 절대 쉬운 상대가 아닙니다.”목 상승이 손을 저으며 말하자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이덕회가 대답했다.“승상 말씀도 일리가 있는 것 같네요. 그럼 소인 북명왕과 함께 내일 다시 궁으로 가서 폐하를 만나 뵙고 내란에 대해서도 의논해보겠습니다.”“그렇게 합시다!”목 승상이 고개를 끄덕였다.한편, 사청엽은 여전히 옥에 갇혀 있었다. 황제가 아직 명령을 내리지는 않았지만 사청엽은 자신이 사형을 면치 못할 거라고 확신했다.이날 저녁, 혼인을 앞둔 방시원이 황실을 찾아왔다. 치석
한편, 목종욱은 최선을 다해 산적들을 잡아들이고 있었다. 싹을 다 자르진 못했지만 크게 겁을 먹은 산적들이 산 속에 꽁꽁 숨어서 다시는 문제를 일으키진 않을 것이다. 숙청제도 제린이 보낸 소식을 접했고, 사국 대군들이 변경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사실까지 알게 되었다.제린은 사국 대군이 25만 명 정도 된다고 보고를 했고 여전히 빅토르가 대군을 이끌고 있다고 했다.숙청제는 바로 병부 대신들을 불러 남강에서 사국의 25만 대군을 상대로 승산이 있는지 의견을 물었다.이덕회는 황제의 질문 자체가 잘못됐다고 생각했다. 이길 수 있는지 없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최대한 신속하게 전쟁을 이겨야 한다는 것이 관건이다.“폐하, 남강은 오랜 시간의 전사와 왜란으로 지칠 대로 지친 상태입니다. 남강 땅은 아직 전쟁에 버틸 수 있지만 백성들은 더 이상 전쟁을 견딜 힘이 없습니다. 만약 정말 전쟁이 난다면 확실한 한 방으로 빠르게 적을 물리쳐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은 메뚜기 떼처럼 매년 한 번씩 이렇게 날뛸 것입니다. 이는 저희 남강 지역의 치안에 치명적인 상해를 입힐 수밖에 없습니다.”“그럼 자네 생각엔 송씨 가문 병사들과 북명군이 적들을 신속하게 물리치지 못할 것 같은가?”숙청제의 물음에 이덕회가 바로 대답했다.“이제 송씨 가문 군대아 북명군을 나눌 것도 없습니다. 전부 다 남강 병사들입니다.”이덕회는 숙청제가 남강의 병사들을 모은 게 송씨 가문과 북명왕이라고 생각할까 봐 일부러 강조했지만 숙청제의 생각은 전혀 바뀌지 않았다.만약 남강 전쟁이 오래 전에 끝난 전쟁이고 사여묵이 병권을 상납한지 꽤 오래 됐다면 숙청제는 이런 걱정을 전혀 하지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왕표가 군심을 얻지 못하고 있는 지금, 남강에 있는 병사들이 송씨 가문 군대이든 북명군이든 결국 전부 사여묵의 명령에 따르고 있다.사여묵을 남강에 보낸다는 건 병권을 다시 사여묵에게 쥐여주어야 한다는 뜻이다.현재 연왕도 역모를 일으켰고 황제 자리를 대놓고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데 사
숙청제가 사여묵을 힐끗 쳐다보며 말했다.“그건 사국이 네 위엄에 겁을 먹은 것이야. 빅토르가 너를 많이 두려워하는 것 같아.”사여묵은 숙청제의 말이 진심이 아니라 살짝 비꼬고 있다는 것을 잘 알기에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황제께서 소인을 너무 높이 평가하고 계신 겁니다. 소인은 그렇게 대단한 능력도 없고 빅토르도 소인에게 겁을 먹어서 가만히 있는 게 아니라 전쟁 때문에 너무 많은 걸 잃었기 때문입니다.”“네 말대로 전쟁으로 많은 걸 잃었다면 짧은 시간 내에는 원기를 쉽게 회복할 수 없지 않느냐?”“소인이 감히 추측을 해보자면 사국은 원기를 회복하지 못한 상태에서도 절대 저희 남강이 순조롭게 발전하는 모습을 보고 있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가끔씩 비열한 수법으로 훼방을 놓아야 정상인데 지금까지 그런 적이 한 번도 없는 게 너무 수상합니다.”숙청제가 사여묵을 빤히 쳐다보다가 물었다.“그럼 네 말은 누군가가 사국과 손잡고 적절한 시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냐?”“그럴 가능성도 있지 않겠습니까?”사여묵은 전에도 숙청제와 이 문제를 분석하고 논의한 적이 있었으며 그때 당시 숙청제도 사여묵의 의심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지만 주관적으로 보았을 때 인정하고 싶지 않았을 뿐이었다.숙청제는 그저 고개만 끄덕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사여묵은 그런 황제를 힐끗 쳐다보고는 하고 싶었던 말이 있었지만 꾹 참았다.사실 숙청제도 왕표가 무능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며 사국을 상대하려면 사여묵을 다시 남강 전장으로 내보내는 게 가장 적합한 선택이라고 생각하고 있다.하지만 숙청제는 쉽게 결정을 내릴 수가 없었다.그때 당시 겨우 송석석을 이용하여 사여묵에게서 병권을 빼앗았는데 이렇게 쉽게 다시 내놓을 수가 없었으며 최후의 순간이 오지 않는 이상, 숙청제는 절대 사여묵을 전장에 내보낼 생각이 없었다.때문에 사여묵이 며칠동안 어서방에 남아 숙청제와 이런저런 상의를 해봤지만 숙청제는 전혀 받아들이지 않았다.그렇게 어서방은 쥐 죽은 듯이 조용했고 아무도 먼저
그날 밤, 연왕은 뜬 눈으로 밤을 지새게 되었다.솔직히 지금 상황은 연왕의 오랜 계획과 차질이 조금 있었다. 지방 지역에서 역모를 일으키고 심지어 진성에 준비된 게 아무것도 없이 무작정 진성까지 쳐들어간다는 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연왕과 무상의 계획은 따로 있었다.일단 병사들을 일정한 수량까지 늘이고 아무도 모르게 서서히 진성 일대로 전이하여 병사들을 안치한 뒤 적절한 시기를 기다릴 생각이었다.그땐 사온이 진성에서 계략을 짜고 있을 것이고 많은 세가들의 지지도 받게 될 것이다. 이를 위해 예전에 고부진의 딸들을 세가에 시집 보냈기에 세가들은 지지할 수밖에 없다.그리고 나서 적절한 시기만 잘 고르면 반드시 성공한다. 진성에 전란이 일어나고 산적과 유랑민들이 판을 칠 때 연왕은 병사들을 거느리고 성내로 쳐들어가 바로 궁 전체를 포위할 생각이었다.하지만 지금, 갑자기 대석촌에 일이 터져 버려 사청엽이 체포된 탓에 연왕은 급하게 병사들을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승산이 너무 낮았기에 연왕도 망설였던 것이며 지방 지역에서 반란이 일어난다고 해서 진성까지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물론 백성들은 반란이 일어났다는 것을 알고 한동안 수군거리겠지만 대부분 백성들은 갑작스럽게 일어난 반란과 격문을 그저 우습게 생각할 것이다.그뿐만 아니라 사국에서 남강을 공격한다고 해도 처음 있는 일이 아니고 사국에서 오래 전부터 호시탐탐 야망을 보였기에 황제가 나랏일에 관심이 없어서 일어난 일이라고 할 수도 없었다.그리고 아직 사국과의 전쟁이 일어나지도 않았고 전패했다는 소식도 없기에 상국 무장이 무능하다는 비판을 하기에도 애매했다.나라가 평안하고 백성들이 태평한 상황에서 연주도 꽤 부유한 땅이었기에 괜히 문제를 만들고 싶어도 아무도 믿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때문에 모두 그저 연왕이 언제 잡히는지, 언제 역모죄로 목이 잘릴지를 보고 싶어할 뿐이었다. 그리고 상국에는 사국 사람들을 물리친 북명왕이 있기에 다들 역적 따위는 전혀 걱정하지 않았으며 되레 연왕이 왜 역모를 일으키
무상이 아니라는 말에 연왕은 회왕에게로 고개를 돌렸고 화들짝 놀란 회왕이 변명하려던 그때, 연왕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회왕일 리는 없어.”회왕은 의심조차 하지 않는 연왕의 태도에 기분이 조금 묘했다.한편, 연왕은 당연히 회왕을 의심할 리가 없었다. 회왕은 무일푼으로 연주로 왔을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진성에서도 아무런 성과도 따내지 못했으며 사온의 비교 대상이 될 자격조차 없었다.회왕이 연주에 온 뒤로 연주 백성들은 회왕을 만나면 겉으로는 왕야라고 부르며 인사를 올리긴 하지만 뒤에서는 다들 그를 만만하게 여기고 아니꼽게 생각했다.때문에 회왕은 절대 마총우를 명령하지 못한다.조금씩 차분해진 연왕은 다시 자리에 앉더니 두 사람을 번갈아 쳐다보면서 말했다.“다들 이 일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마총우 그자가 귀순한 것인가 아니면 누군가가 나를 무너트리고 싶어서 일부러 꾸민 짓인가?”여전히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던 무상은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했다.“마총우가 귀순한 건 절대 아닐 것입니다. 왕야께서 격문을 보낸 지 며칠밖에 되지 않았고 더군다나 저희 병력은 대여섯 군데에 분산되어 있습니다. 전의하는 데만 6개월 넘게 걸렸는데 조정에서 절대 쉽게 조사해낼 수 없을 겁니다. 그런데 조정에서 마총우 그자를 찾아서 귀순 시킨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입니다.”“날 일부러 무너트리려고 하는 사람이 있다는 거네. 그럼 그자가 누구일 것 같은가?”연왕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연왕이 몇 년 동안 끌어 모은 사람들 중에 황제의 친인척과 세도가들도 있지만 친왕은 연왕과 회와 두 사람밖에 없었다.연왕은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는 상대가 없었다. 연왕의 부하들 중에서 황제의 친인척들이 제일 무능하고 멍청했으며 파장을 일으킬 만한 인물이 아니었다. 그리고 종합적으로 생각해보았을 때 가장 의심되는 상대는 여전히 무상이었다.하지만 역모의 마음을 품은 연왕이 무상을 끌어들이고 나서 지금까지 무상은 강한 충성심을 보였고 심지어 평소에 연왕에게 쓸만한 제안도 가장 많이 하고 계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