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튿날, 마부 사여묵은 눈밑이 까맸지만, 정신은 맑고 상쾌했다.송석석은 그가 대체 어떻게 이럴 수 있는지 궁금했다. 분명 잠을 잘 자지 못한 것 같지만, 이렇게 혈기 왕성하다니.눈 밑만 어두울 뿐 얼굴과 눈빛은 모두 환해 보였다.어젯밤 서우와 이야기를 나눈 후, 그는 사여묵을 그렇게 두려워하거나 경계하지 않았다. 가끔 가림막을 젖히고 그의 뒷모습을 몰래 보기도 했다.할아버지와 같은 사람이라면 그는 아주 대단한 사람일 것이다. 적만 때리고 백성을 때리지 않을 것이다.그러니 겁낼 필요가 없었다.서우는 줄곧 그렇게 자신에게 말했다. 길에서 내내 그렇게 생각하다 보니 점차 사여묵은 그에게 할아버지, 아버지와 같아 보였다. 게다가 사여묵은 그의 고모부이니, 가족이 될 사람이다.그래서 엽현에 도착했을 때 서우는 이미 주동적으로 사여묵에게 손짓을 했고, 사여묵의 손을 잡고 떡을 사러 가기도 했다.송석석은 그 모습을 보며 안도했다.게다가 그뿐만이 아니다. 서우는 그녀를 믿는 것처럼 사여묵을 믿는 것 같았다. 밥을 먹을 때 주동적으로 사여묵의 곁에 앉았고 음식을 집을 때 손에 힘이 부족해도 힘겹게 사여묵에게 음식을 집어 주었다.그날 저녁 그는 송석석에게 글을 적어주었다. 곧 고모부가 될 사람에게 잘해주어야 고모부도 고모에게 잘해줄 것이라 적혀있었다.그는 늘 따뜻하고 자상한 아이였다.그의 얼굴에도 웃음기가 생기기 시작했고 어두웠던 눈빛도 사라졌다. 하지만 길을 가는 도중 구걸을 하는 사람을 보면 여전히 동정 어린 눈빛으로 보고 있었다.그러나 그 구걸하는 사람들은 어린아이가 아니라 진정한 거지였다.그는 거지에게 먹을 것을 가져다주었다.송석석은 그를 따라 은냥을 주려 했지만, 그는 손을 흔들어 저지했다. 밥을 주면 배를 채울 수 있지만 은냥을 주면 배후의 사람들이 몰수할 것이다. 그리고 은냥을 받다가 앞으로 다시 받아오지 못하면 매를 맞아야 한다.이 거지는 그의 상황과 달랐지만 그래도 여전히 대입했다.송석석은 마음이 아팠지만 웃으며 그의 머리를 어루만
목 승상은 눈물을 닦았다."살아있으니 다행입니다. 살아있으면 된 것입니다."그는 일어서서 허리를 숙였다."신이 추태를 보였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짐도 하마터면 추태를 보일 뻔했으니 탓할 리 있겠나? 누가 이 소식을 듣고 기뻐하지 않겠나."황제는 활짝 웃다 무언가 생각난 듯 얼른 분부했다."오 대반, 직접 공가나 경조부에 가서 공대감을 찾아 이 일을 알려 기쁘게 해드리게."오 대반도 옆에서 눈물을 닦고 있다, 어명을 듣고 다급히 답했다."예. 바로 가겠습니다."오 대반은 기분 좋게 떠나갔다. 송가에 후손이 남았다니 오 대반은 진심으로 기뻐했다. 송 부인에게 은혜를 입은 적 있어 그는 누구보다 송가가 잘 지내길 바랐다.목 승상은 오 대반이 나가는 것을 보고 마음이 착잡했다. 비록 아직 처리해야 할 정무가 한 무더기 남았지만 이렇게 빨리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폐하, 성릉관 전역은 시종 우리 상국의 치욕입니다. 이 일을 비록 숨겼고 서경도 지금 폭로하려 하지 않지만, 서경 태자가 목숨을 잃은 것은 사실입니다. 서경에서 적통을 빼앗기 시작했고, 적통을 빼앗기 위해 온갖 수단을 쓸 것입니다. 서경 황자 중 이 일을 들추어 백성들의 지지를 얻으려 하는 자도 있을 텐데 먼저 대처할 방법을 생각해야지 않습니까?"황제는 잠시 멈칫하다 말했다."이 일은 우리 마음속의 짐과도 같네. 앞으로 어떻게 될지 확신이 어렵네. 대책이라 하면 이미 정해지지 않았는가? 이방을 처리하지 않고 목숨을 살려둔 후 조정에서 이 일을 모른다고 한 뒤 일단 폭로되면 이방을 서경에 보내 처리하게 내버려두는 것도 방법이네."그렇지 않으면 왜 이방의 목숨을 살려두었겠는가? 그는 진작부터 그녀를 갈기갈기 찢어 죽이려 했다.목 승상은 곰곰이 생각하다 다른 방법이 없어 답했다."아이고, 지금은 이렇게 할 수밖에 없습니다. 수란키도 직접 원수를 갚았습니다. 남강 전역에서 이방이 이끈 병사들, 성릉관에서 서경 태자를 학살한 사람들입니다. 살아서 돌아온 사람들은 그 구실을 못 하고,
목 승상은 부인을 대신하여 이런 일을 맡고 마음이 참 착잡했다.과거 전북망과 이방은 모두가 인정하는 잉꼬부부였고 조정에도 그들 두 사람에게 큰 기대를 걸었었다.백성들조차도 그들의 사랑을 찬양하고 이방을 연민하고 존경했다. 분명 큰 공을 세운 여장이지만 기꺼이 평처가 되었다니.전북망을 칭찬하는 사람도 있었다. 비록 이방 장군과 마음이 맞지만, 집안의 본처를 잊지 않고 이방을 위해 그저 평처의 자리를 쟁취했다.성릉관의 승리로 모든 사람은 기쁨에 취해 이성을 잃고 함께 즐거움을 누렸다.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기쁨이 가시자 그제야 아름다운 이야기 속에 이렇게 많은 더러운 점이 숨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결국 본처가 이방보다 더 뛰어나다는 것을 발견했고 그제야 다들 송가가 상국을 위해 이룬 공로가 떠올랐고 송가의 참혹한 결말을 떠올렸다.그러나 송가 아가씨는 줄곧 공평한 대우를 받지 못했다. 그녀의 곁에는 늘 시비가 따라다녔다.이전에 그녀를 불효라 말했을 때도 모두 그녀가 남강에서 세운 공로를 잊은 듯했고 줄곧 그녀를 따라다니며 비난해 감정이 직접 나서서 해명했다.이방은 군대에 남아있을 수 있었지만, 지금은 송가 아가씨가 현갑군 부지휘사의 허직을 맡고 있으며 당직도 필요 없었다. 황제는 분명 그녀에게 실직을 주려는 것이 아니다.목 승상은 마음속으로 황제가 얼마나 많은 걱정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다. 그러나 그 걱정 속에 송국공부에 대한 진심이 있다니 그것으로 충분하다.국공부에 그녀 혼자 남았는데 지금 둘째 소장군의 아들을 찾았으니, 국공의 자리도 물려받을 사람이 생겼다. 그러나 결국 후손이 적기에 황제는 더 이상 송가 사람을 위험에 처하게 하지 않을 것이다.그런 마음이 있으니 다른 건 모르는 일이고 없던 일로 생각하려 했다.오 대반은 공가로 향했다. 공양은 아직 댁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그래서 오 대반은 소식을 전하지 않고 먼저 공대감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겠다고 했다.그래서 공가 사람은 겁에 질렸다. 오 대인은 웃으며 말했다."걱정할 필요 없네,
공가 사람들은 듣자마자 의심스러웠다. 북명왕이 공가의 좋은 소식을 전하다니?많은 사람의 의심스러운 눈빛을 보고 오 대인은 계속 말을 이었다."북명왕은 엽현에서 송가 둘째 소장군과 닮은 어린 거지를 발견했네. 그래서 무심히 서우라고 불렀고 뜻밖에도 그 어린 거지가 반응을 했지..."공양은 다소 황당함을 느끼고 오 대반의 말을 끊었다."오 대반, 전하께서 서우를 닮은 아이를 만나 폐하에게 주본을 올린 이유가 무엇입니까? 서우를 닮았지만 서우가 아닌데, 어찌 폐하께 주본을 올릴 수 있습니까?"공양은 황당함과 동시에 약간의 분노도 느꼈다.문청과 서우는 공가 사람들 마음속의 큰 아픔이다. 특히 노부인은 이런 말을 듣지도 못하신다.서우와 비슷한 사람을 만났다고 기쁜 소식이라 전하다니? 이게 어떻게 경사란 말인가? 다들 급히 돌아왔는데 이렇게 황당한 소식을 들으니 공양은 저도 몰래 북명왕에게 화가 났다.오 대반은 손을 흔들었다."공대감 조급해 하지 말게. 만약 닮기만 했으면 엽현에서부터 영주까지 쫓아가지도 않았을 것이네. 송가 아가씨도 이미 수일 전에 영주로 갔고 지금 이미 그 어린 거지의 신분이 둘째 소장군의 아들 송서우라 확인했네. 아마 며칠이 지나면 진성에 도착할 것이네."이 말에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공양은 어두워진 눈빛으로 연신 부인했다."그럴 리 없습니다. 절대 불가능합니다. 서우는 이미 죽었습니다. 내가 그 아이를 안고... 시신을 확인했습니다. 오 대반, 더 이상 말하지 마십시오. 이 일을 저희는 믿을 수 없습니다. 송가 아가씨도 진짜인지 가짜인지 구별하지 않고 비슷한 아이를 만났다고 서우라고 하다니. 서우가 살아있거나 송가 사람이 살아 있다는 소식을 갈망하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래도 이 일은 불가능합니다."송가 노부인은 이미 울기 시작했다. 그녀의 딸과 외손자는 이미 죽었는데, 어떻게 2년이 지난 지금 또 이런 소란이 생긴단 말인가?송가 아가씨는 정말 미친 것인가?오 대반은 상황을 보고 말했다."폐하께서
하지만 어떻게 진짜일 리 있을까?실망할 운명이다.모두 마음이 괴로웠지만 또 송석석을 동정했다. 희망에 가득 찬 채 그곳에 갔다면 아마 실망했을 것이다.오 대반이 그들이 머지않아 진성에 도착할 것이라 했는데 정말 그 거지를 서우로 여기고 데리고 온 건가?대체 일을 어떻게 하는 것인가? 듬직하다고 생각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이렇게 경솔하다니.송석석은 추석에 진성을 떠났고 돌아올 때가 되니 이미 10월 초가 되었다.천고마비의 상쾌하고 좋은 날이다.진성을 지키는 장병들은 마차를 끄는 사람이 북명왕인 것을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전하가 마부 노릇을 하다니, 대체 마차 안의 사람은 누구인가?친왕의 마차가 성으로 들어오는 것은 검사가 필요 없이 바로 통과된다. 그래서 마차는 곧장 국공부로 향했다.국공부에 도착하자 사여묵은 송석석과 서우에게 말했다."난 들어가지 않을 테니 당분간은 서우와 잘 지내고 있소. 며칠 지나서 다시 올 테니."아마도 송석석과 서우는 내일 공가로 갈 테니 그는 내일 올 필요가 없었다.송석석이 감사의 말을 전하려다 지겹다는 그의 말이 떠올라 말을 고쳤다."고생하셨습니다. 어서 돌아가서 쉬십시오.""그럼 가겠소."사여묵은 서우를 보고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내일 사람을 보내 맛있는 것을 가져다주라 하마."서우는 비록 어색했지만 그래도 기뻐서 그를 향해 웃어 보였다.사여묵은 그의 미소를 보며 지금까지 정말 쉽지 않았다고 생각했다.그가 간 후, 송석석은 서우를 데리고 국공부의 대문으로 들어갔다.양 마마와 황 마마는 서우를 보자마자 눈물을 쏟았다. 진복도 눈물을 훔치고 달려와 울먹였다."작은 도련님. 돌아오셨습니까? 오셨으니 다행입니다, 정말 다행입니다."그는 서우를 보며 방금 눈물을 닦고도 또다시 울기 시작했다. 아이는 정말 불쌍할 정도로 말랐다. 대체 얼마나 고생을 한 걸까?그는 몸을 돌려 하인에게 부엌에 가서 음식과 차 그리고 뜨거운 물을 준비하라 분부했다.양 마마와 황 마마는 원래 국공부에서 모시다 송석석
진복은 그가 살던 원래 정원으로 안내하지 않았다. 비록 곳곳을 새로 손보았지만 괜히 슬픈 과거를 다시 불러일으키는 게 될까 걱정이 되어서였다.그래서 진복은 여인이 살고 있는 자목원으로 안내했다. 다행히 자목원은 꽤 넓어 두 사람이 살기에도 충분했다.그동안 고생을 많이 했으니 아가씨 곁에서 지켜줘야 한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기도 했다.게다가 서우는 아직 8살도 되지 않았으니 여인들과 함께 정원으로 지내도 이상할 게 없었다.‘나중에 아가씨가 출가하면 그때 다시 생각해 봐야지.’서우를 안정시킨 뒤 송석석은 모두를 별장으로 불렀다. 그리곤 진복에게 송태공과 공씨 가문 사람들에게도 사람을 보내라고 일렀다.“며칠 뒤에 감정적으로 좀 안정되면 찾아뵙겠다고 전하여라.”그리고 송석석은 말을 이어갔다.“참, 공씨 가문 사람들이 서우를 보고 싶어하면 모시고 와도 돼. 서우의 외조부모는 삼촌과 워낙 막역했으니 아마 쉽게 받아들일 거야. 태공님 쪽은 며칠 뒤에 알리는 걸로 하고.”하지만 상황은 송석석의 예상 밖으로 번졌다. 공씨 가문 쪽에선 애초에 이 사실 자체를 믿지 않고 있었다.그랬기에 진복이 직접 사람을 보냈음에도 오지 않은 건 물론 국공부에서 작위를 물려받기 위해 가짜 아들을 데려왔다고 비아냥대기까지 했다.다른 아들을 입양한다 해도 굳이 서우의 이름을 빌릴 필요가 있냐며 말이다.진복이 보낸 사람은 바로 보영이었다.보영은 다시 외원에서 일을 하게 되었는데 아직 경험이 부족한데다 서우의 얼굴을 본 적도 없었기에 공대인의 호통에 제대로 된 반박도 못하고 풀이 죽어 돌아오고 말았다.보영의 보고에 의외다 싶던 송석석도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다른 사람은 몰라도 공세형은 믿기 힘들겠지. 서우의 시체를 직접 처리한 게 공세형이었으니까. 이렇게 된 이상 단신의가 서우의 몸을 검사한 뒤 함께 공부(孔府)로 가는 게 좋겠어.’서우가 목욕을 마치고 옷을 갈아입자 마침 단신의가 도착했다.단신의는 송씨 가문의 어른부터 아이들까지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이 집안 사정
뼈가 부러졌을 때의 고통이 얼마나 엄청난 것인지 송석석 본인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진통 작용이 있는 탕약을 마시고 침을 맞았음에도 지금까지 잊혀지지 않을 정도로 강렬한 고통이었다.‘불쌍한 것.’송석석이 물었다.“전에 의존성이 생기는 약을 복용해 왔다고 들었습니다. 그건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까요?”이에 단신의가 대답했다.“새목단이라는 약이야. 복용하면 의존성이 생기는 약인데 지금 상태만 봤을 땐 중독이 심하진 않은 것 같아. 돌아온 뒤에 불편함을 호소한 적은 있었느냐?”송석석은 여기까지 오는 내내 발작을 일으킬 뻔했지만 번마다 참아내던 서우의 모습을 떠올렸다.‘그리고 저택에 돌아온 뒤엔 발작은 없었지.’“발작은 거의 없었습니다. 발작이 일어났을 때도 결국 참아냈고요. 참. 왕야님 말로는 영주에 있을 때는 발작이 심했다고 들었습니다. 벽에 머리를 부딪히고 자해도 서슴치 않았다고 들었는데 제가 갔을 때 그런 증상은 보이지 않았습니다.”이에 단신의가 한숨을 내쉬었다.“첫 발작이 가장 힘들지 참아만 낸다면 증상은 점차 약해지고 결국 완전히 끊을 수 있을 거야. 몸에 무리가 많이 가는 약이니 끊는 데 성공하면 보약도 지어야 할 것 같아. 키가 자라지 않은 것 역시 제대로 된 음식을 먹지 못한 것도 있지만 어린 나이에 중독성 있는 약을 먹어서일 수도 있어.”단신의의 눈동자에는 안쓰러움으로 가득했다.“보통 사람들은 새목단을 끊기 위해 침도 맞고 약도 먹어야 하는데 서우는 온전히 정신력만으로 이겨냈어. 그 의지가 아주 대단해. 병을 치료하고 몸조리만 제대로 하면 앞으로 큰 인재가 될 상이야.”단신의의 말에 송석석은 그녀가 영주로 가기 전 금단 얼마나 심했을까 싶어 마음이 욱신거렸다.그 무서운 북명왕의 안색이 초췌해졌을 정도니 본인은 몸 고생, 마음 고생이 오죽했을까 싶었다.서우는 지금도 많이 여윈 상태였지만 적어도 송석석이 처음 그를 만났을 때보다는 많이 나아진 상태였다.창백하던 안색에는 점차 혈색이 돌기 시작했고 얼굴에도 조금씩 살이 붙었
송석석이 단신의를 배웅하려 하던 그때, 단신의는 또 한숨을 내쉬었다.“인신매매단에 잡혀갔으니 그 고생이 얼마나 심했겠어. 뭐 목숨을 건진 것만 해도 불행 중 다행이지 뭐.”하지만 송석석의 생각은 달랐다.서우가 약과를 장군부로 배달했다면 그녀는 직접 서우를 집까지 데려다주었을 테고 어쩌면 그날 밤 저택에 하룻밤 묵었을지도 모른다.서경의 밀정들이 저택을 공격했을 때 그녀가 있었다면 모두를 지켜낼 수 있다 장담은 할 순 없어도 멸문지화는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그래서 송석석은 그들이 더욱 증오스러웠다.‘뿌리채 뽑아버려야 해.’단신의가 문을 나선 뒤 송석석은 바로 마차를 준비하라 명했다. 일단 서우를 데리고 황제와 태후를 알현한 뒤 공부로 갈 생각이었다.또한 송석석은 옷을 새로 지으라고 명했다.키가 얼마 자라지 않아 전에 입던 옷을 입을 순 있었지만 몇 벌 남지 않아서였다.장례를 치를 때 거의 다 태워버리고 가끔씩 그리울 때 꺼내보려고 남겨둔 옷가지 몇 벌뿐이었으니 말이다.살짝 짧긴 했지만 좋은 옷을 입으니 혈색이 더 좋아보였다.얼굴에 자잘한 상처는 이미 나은 뒤고 전에 있던 옷까지 입으니 마치 2년 동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하지만, 착각은 어디까지나 착각일 뿐이라는 걸 송석석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서우의 손을 잡은 채 송석석은 천천히 문을 나섰다.다리를 저는 터라 조금만 빨리 걸으면 넘어질까 송석석은 특별히 발걸음을 멈추었다.황제는 태후궁에서 두 사람을 맞이했다.눈물을 글썽이던 태후가 서우에게 손을 젓고 여기까지 오는 사이 다리병이 도진 서우는 고통을 참으며 한쪽 다리로 폴짝폴짝 뛰어갔다.참지 못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리고 태후는 서우를 부축해 자신의 곁에 앉히더니 아이의 얼굴을 쓰다듬었다.“어휴, 마른 것 좀 봐. 그동안 고생이 얼마나 많았느냐.”그런 태후를 보며 서우는 괜찮다는 듯 손을 젓고 고개를 돌렸다.그 모습에 황제 역시 연민이 일어 격려의 말과 함께 선물을 하사했다.황제는 흐
그의 이름은 신이었는데 그를 아는 사람들은 모두 그에 대해서 말할 때, 경멸하는 기색을 띠었고,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 모르는 사람까지 모두 침을 뱉으며 뻔뻔하다고 할 정도였다. 알다시피 애인과 야반도주하는 것은 사람을 죽이고 불을 지르는 것보다 더 욕먹을 일이니 말이다. 많은 사람들은 그에게 후회하냐고 묻기도 했다. 그녀는 시집간 것을 후회하지 않지만 죄책감을 느끼긴 했다. 왜냐하면 그로 인해 시 씨 가문의 명성이 손상되어 형제자매들과 조카들이 혼사에 어려움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신이는 시 씨 가문의 아가씨로서, 태어날 때부터 온갖 보살핌을 받아왔다. 먹는 것은 물론 모두 산해진미이고, 입는 것도 모두 능라 비단이었다. 게다가 보모님과 오라버니의 총애까지 한 몸에 받았다. 하지만 그녀에겐 한 가지 결함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열네 살 때까지 월사가 오지 않은 것이었다. 많은 의사들을 불러 진찰을 받고 밤낮으로 약을 먹었지만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어머니는 그녀에게 몸이 차서 그러니 몸조리를 하면 나을 수 있다고 위로했다. 하지만 그녀는 이미 몰래 의사가 부모님께 하는 말을 들었다. 의사는 그가 몸이 차서 그런 병이 생긴 것이 아닌, 아이를 키우는 곳이 어린아이와도 같아서 평생 아이를 가질 수 없다고 했다. 그리고 그녀의 몸이 마치 작은 꽃병과 같아서 꽃을 꽂을 수는 있지만 나무를 심고 꽃을 피워 열매를 맺는 건 불가능하다고 비유했다. 그녀는 아이를 낳지 못한다는 건 여자에게 어떤 의미인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어머니는 그녀를 속일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나중에 좋은 사람에게 시집가서 부군에게 첩을 들인 후, 첩이 낳은 아이를 친자식처럼 키우라고 조언해주었다.시 씨 가문이라는 후원이 있으면 그녀가 아이를 낳을 수 없어도 아무도 그녀의 지위를 흔들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시 씨 가문의 재물은 그녀가 평생 부귀하게 살기에 충분했다. 신이의 조모도 그녀에게 아이를 낳을 수 없으니 자세를 낮춰야 한다고 했다. 시 씨 가문의 딸이라고
추운 겨울이 되자 눈이 내려 성릉관은 하얗게 뒤덮였다. 세상이 마치 깨끗해진 것처럼 보였다. 이황자는 몇 년 동안 너덜너덜한 승복을 입고 발우를 받쳐 들고는, 가는 길에 동냥을 하다가 절을 보면 이틀 묵으며 부처님께 참회하면서 살았다. 사실 그는 원래 있던 절에서 계속 지낼 수 있었다. 편안하진 않지만 풍찬노숙할 필요도 없고 굶주림과 추위에 시달리지 않아도 되었다. 하지만 그런 안일한 곳에서는 평생 죄를 씻을 수 없다고 생각했고, 계속 길을 걷고 계속 고생해야 마음이 조금이나마 편했다. 그가 성릉관에 도착했을 때 짚신은 이미 찢겨 있었고 발바닥에는 두꺼운 굳은살이 박여 있었다. 이제는 신발을 신지 않고도 자갈이 가득한 길을 걸을 수 있게 되었다. 이런 추운 날씨에는 모든 옷을 껴입어도 추위를 막을 수 없었지만 이미 익숙해진 뒤였다. 그는 눈보라를 맞으며 성릉관에 위치한 감은사로 향했는데, 몇 년 동안 발걸음을 멈춘 적이 없는 탓에 고단함이 뼛속까지 스며들었다. 심지어는 이틀 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아 그는 눈이 가득 쌓인 길에서 의식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깨어났을 때 그는 따뜻한 두꺼운 이불 속에 누워 있었다. 그가 있는 방에는 숯불이 피워져 있었고, 살짝 열린 창문으로 눈에 눌려 허리가 굽은 나뭇가지가 보였다. 그는 눈동자를 돌려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렇게 편안하고 따뜻한 느낌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그의 마음속에 순간 욕심이 생겨 조금만 더 누워있고 싶어졌다. 그런데 바로 그때, 문이 활짝 열렸다. 그가 벌떡 일어나 앉았는데, 갑자기 눈앞이 핑핑 돌더니 다시 힘없이 침대로 쓰러지고 말았다.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누워 있거라.” 이때 누군가가 부드러운 말투로 말하면서 약그릇을 그의 침대 옆에 놓았다. 그는 말하는 사람의 목소리가 익숙해, 어지러움을 가라앉히고 고개를 돌려보니, 그 사람은 얼굴에 미소를 띠고 있었다. “오랜만이야.” ‘서우 형?!’ 그는 자신이 잘못 보았을까 봐 다시 자세히 보려 했지만, 몸이 너무 어지러운
대황자는 봄 사냥 때 숙청제에게 꾸중을 듣고 돌아간 후 앓아누웠다. 당시 이황자와 서우가 모두가 걱정했는데 덕비는 오히려 기뻐했다. 그는 이번 일을 겪으면서 황제폐하께서는 분명히 대황자를 싫어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덕비는 이황자를 안고 반드시 부지런해야 하고, 태부와 황숙의 말을 잘 듣고 누구보다 잘 배워 황형을 제압해야 한다고 당부까지 했다. 그로 인해 이황자의 마음은 몹시 복잡했다. 덕비가 줄곧 그에게 태자와 황제가 되는 것이 얼마나 좋은 지 말해주었을 때 비록 그도 마음이 설렜지만 자신과 거리가 먼 얘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지금 그와 대황형, 서우 형, 그리고 셋째 동생이 사이가 좋아 도저히 대황형을 미워할 수가 없었다. 매일 모순적으로 지내다 보니 오히려 학업이 나빠졌고 승마 연습을 할 때도 여러 번 실수를 했다. 하지만 덕비는 이상하게 그를 탓하지 않았고 며칠 동안 계속 게으르게 하라고 했다. 그렇게 덕비는 이황자를 데리고 복마마를 자주 뵈러 갔고, 복마마 궁전에서 숙청제를 만날 수도 있었다. 덕비는 며칠 동안 그곳을 드나들더니 어느 날 굳은 표정으로 다시는 가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러고는 차가운 말투로 청이에게 자신의 보살핌이 없으면 아이가 태어날 수 있는지 보겠다고 했다. 황제폐하를 자주 뵈러 갈 수 없어 아쉬웠지만 이황자는 마음을 가다듬고 공부와 승마술에 전념했다. 이황자는 당시 앞날이 어떻게 될지도 몰랐고, 비록 매일 힘들긴했지만 한편으로는 즐거웠기에, 계속 이렇게 지내는 것도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숙청제의 천추세에 승마대회를 개최할 예정이니 세 황자와 서우도 가서 겨뤄 보기로 했다. 원래 그런 대회에서 황자들은 재미있게 참석만하면 되지만, 덕비는 그 경기를 몹시 중시했다. 덕비가 이황자에게 마름쇠를 건넬 때, 그는 하늘이 무너져내리는듯한 기분을 느꼈다. 이황자는 원하지 않았다. 그는 절대로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대황형의 목숨을 앗으려 하다니, 이황자는 처음으로 어마마마가 무서워졌다.하
이황자의 출가하기 전의 이름은 사범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이황자가 가장 많이 들었던 평가는 총명하고 지혜로우며 세 황자 중에서 가장 뛰어나다는 것이었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그는 진짜라고 믿으며, 자신이 자랑스럽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가 이런 말로 인해 자랑스러워할 때마다 덕비는 매번 그를 바닥으로 밀쳤다. 그녀는 늘 연민과 복잡한 감정이 가득한 눈빛으로 그를 보며 말했다. “내 뱃속에서 태어나 평생 그 바보에게 밀리게 생겼구나. 바보 주제에 운은 또 얼마나 좋은 지.” 그는 어릴 때부터 그런 말을 귀에 익힐 정도로 들었다. 하지만 덕비는 사람들 앞에서 말하지 않고 매번 사적으로만 그에게 말했다. 그는 어렸을 때 어마마마가 대황형을 가장 싫어하면서 왜 매번 자애롭고 온화한 눈빛으로 대황형을 보며, 분명 바보라고 해놓고 총명하다고 칭찬하는지 몰랐다. 이해가 안 돼서 몰래 청이에게 물어보았더니 청이는 한숨을 쉬며 그의 머리를 어루만지며 말했다. “이황자 님, 마마께서는 이황자 님을 위해서 계획을 세우고 계신 거예요.”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는 어머니가 자신을 위해 무엇을 계획하고 있는지 몰랐다. 하지만 그가 말을 들을 때마다 어머니는 기뻐하셨고 그에게 한숨을 쉬거나 애처로운 눈빛을 보이지 않았다. 숙청제가 그를 보러 올 때마다 덕비는 그가 책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려주었다. 그러자 숙청제는 그에게 어떤 책을 읽는지, 그리고 어떤 내용을 기억했는지도 물었다.그는 매번 대답을 아주 잘해서 숙청제를 흡족하게 했다. 답은 모두 미리 외운 것이기 때문에 어려울 건 없었다.가끔은 숙청제가 그에게 대황형이 괴롭히거나 장난감을 빼앗지는 않는지 물어보기도 했다.하지만 그런 질문에도 정답이 있었는데, 그는 매번 자기가 동생이니 황형에게 양보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했다. 이황자가 매번 그렇게 대답할 때마다 숙청제의 눈빛은 몹시 복잡했는데, 이황자는 그 눈빛을 이해할 수 없었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는 그저 숙청제가 잠시 침묵한 후에 그의 머리
어릴 때부터 친했던 두 친구는 각자의 분야에서 항상 최선을 다했다. 그렇게 수철이 약을 접하게 되면서 약과 의리는 그가 신약산장을 의지하는 모든 것이 되었다. 산에 내려가 의관을 차리고 사람들을 치료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매번 참기만 했는데 서우가 왔다 간 후 보내온 편지를 본 그는 산에서 내려갈 희망이 생겨 마음이 부풀어 잠이 오지 않았다. 그는 예전에 부상에 시달린 적이 있어서 열심히 통증과 부상을 치료하는 약을 연구했는데, 의술이 전면적인 나머지 뒤처지지도 않았다. 그의 마음속에는 지난 몇 년동안 한 번도 타오르지 않았던 한 줄기의 불이 타오르고 있었다. 신약산장에 도착한 순간부터 그는 자신이 설령 살아갈 수 있다 하더라도 이번 생은 그곳에서 지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채 살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신분과 얼굴을 바꾸고, 배운 것을 가지고 산에서 내려갈 수 있다면, 그는 유용한 사람이 될 수 있고 더 이상 숨지 않고 떳떳하게 살 수 있었다. 그 생각에 그는 며칠 동안 흥분한 상태로 제약 공장에서 먹고 마셨다. 사부님은 그런 그의 모습이 조금 두렵게 느껴져 사공에게 편지를 써 알리려고 했다. 그는 사부에게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환한 미소를 띠었다. 그 웃음에 놀란 사부님은 심지어 무당을 불러 귀신이 씐 건 아닌지 보려고까지 했다. 하지만 서우 형이 성공하지 못할 수도 있으니 그는 사부에게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다. 비록 그가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긴 하지만 나중에 너무 실망하지 않도록 마음의 준비를 항상 해야 했다. 날이 지나고 더위와 추위가 오가더니 벌써 2년이란 세월이 흘렀다.추분, 날씨가 상쾌한 어느 가을, 하늘의 밝은 태양은 사람을 뜨겁게 하지 않았고 하얀 구름들은 동쪽에서 서쪽으로 불어 들어오고 있었다. 서우는 다시 한번 신약산장에 발을 들였는데, 이번엔 그의 서동인 진소설을 데리고 왔다. 진소설은 몽동이를 따라 무술을 익혔다. 그런데 노력한 사람은 역시 보답을 받는다고, 비록
“사정언, 너 말 좀 그만해.” 송석석은 눈살을 찌푸리고 서우에게 매달려 쉴 새 없이 말하는 딸을 혼냈다. 새빨갛게 그을린 작은 얼굴에 닭장처럼 헝클어진 머리카락은 한 눈에 봐도 밖에서 뛰어놀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우가 돌아오자마자 그녀는 쉬지도 않고 사촌 오빠에게 길에서 본 재미있는 일들을 물었다. “어머니.” 사정언은 눈을 크게 떴다. 안 그래도 큰 눈을 더 크게 뜨니 왠지 억울해 보였다. 그녀의 외모는 부모님의 장점만 닮아 있었다. “제가 이렇게 오랫동안 사촌 오라버니를 만나지 못했으니, 당연히 할 말이 많지요. 하루만 못 봐도 3년 못 본 것처럼 길게 느껴진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게 무슨 말이야? 대체 누가 그런 말을 가르쳐줬어?” 송석석이 눈살을 더욱 찌푸렸다. “왕사백이요. 그가 며칠 전에 매산으로 갔었는데, 돌아오자마자 시 고모를 안고 그렇게 말했었습니다.” 그녀의 말에 시만자는 고개를 숙여 송석석의 눈빛을 피했다. 그녀는 그때 정언이 나무 위에 숨어 있을 줄은 몰랐다. 알았다면 아이 앞에서 껴안고 그런 오글거리는 말을 할 수 없었을 것이었다. 그녀는 이 아이가 말을 따라 하는 능력이 아주 뛰어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하지만 이 나이의 아이들이 왜 어른들의 말을 듣는 것을 좋아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녀는 이맘때쯤에 최대한 어른들과 멀리 떨어져 있었는데 말이다. 사정언은 대답한 후에도 계속 서우를 잡고 말했다. “오라버니, 혹시 상서에 갔어? 상서에서 시신 업는 것을 봤어? 정말 소국이 말한 것처럼 앞에서 종을 흔드는 도인이 있고, 뒤에 좀비들이 따라가는 거야? 그들은 걸어가 아님 뛰어가? 꼭 밤에만 볼 수 있는 거야? 낮에는 햇볕이 쨍쨍해서 볼 수 없는 거야? 그들은 말할 줄 알아? 뭘 먹어? 그리고 그곳엔 주술을 잘한다고 들었는데 혹시 미인을 본 적이 있어? 그런 미인은 오라버니가 마음에 드는지…….” “그만해!” 송석석도 이내 참지 못하고 호통을 쳤다. “보주, 서주, 어서
송석석은 이번에 외출할 때 황제에게 유람하러 간다고 했다.하지만 그녀는 신약산장에 오래 머물지 않고 7일 만에 떠나 만종문으로 향했다.그녀는 원래 진성으로 돌아가 홍현 고모를 찾고 싶었지만 평무종 고모를 직접 찾아가서 분장술을 가르쳐 달라고 부탁하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했다.분장술은 어렵지 않지만 능숙하게, 아무도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하려면 한두 달 만에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간단한 분장술은 기존의 얼굴에도 할 수 있었지만 비가 오기만 해도 쉽게 흔적이 드러날 수 있었다.그러니 간단한 분장술만 배워서는 안 되었다.그리고 또 다른 미용술은 가면을 만드는 것인데 일반적인 가면은 일정한 두께가 있어 답답하고 오랫동안 착용하면 얼굴에 상처가 날 수 있다.게다가 가면을 착용할 때는 특수 물약을 묻혀야 했기에, 뜯을 때도 얼굴에 상처가 입을 수 있었다.운익각 사람들은 가면을 착용할 때 오래 착용하지 않았다. 게다가 정탐꾼들은 무공도 괜찮고 경공도 높아 임무를 수행할 때만 가면을 착용해서 물약을 묻힐 필요가 없었다. 왜냐하면 벗겨져도 얼굴에 검은 천으로 복면을 쓰고 있어서 알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그리고 일반인들이 변장해서 탐문할 때 사용하는 것은 변장의 첫 번째 방법이었다.평무종은 서우의 요구를 듣고 말했다.“얼굴에 오래 쓰고 있을 수 있으면서도 원래 피부를 해치지 않고 잘 벗겨지지 않는 가면이라, 그럼 상어가죽으로 만드는 것은 어떠냐.”“상어가죽이 무엇입니까?”서우는 매미의 날개처럼 얇고 물에 젖어도 흔들리지 않는 상어비단은 들어본 적이 있었지만 그건 엄청 귀중한 비단이었다.그러자 평무종이 설명했다.“상어가죽은 분장술에서 쓰이는 가장 좋은 소재이다. 통풍이 잘 되고, 얼굴에 단단히 붙어 쉽게 떨어지지 않아 빗물을 걱정할 필요도 없었다. 심지어 눈으로 보나 만지나 모두 진짜 피부와 다르지 않다. 하지만 상어가죽으로 가면을 만들려면 상어 눈물을 사용해서 실을 짜내고 다시 밑감을 만들어야 해서 매우 번거롭다.”그러자 서우가 물었다.“
그렇게 두 사람은 촛불을 들고 한참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하지만 조정의 일은 일절 말해주지 않은 탓에, 수철은 지금 나라가 안정적이라는 사실만 알 수 있었다. 그는 이미 대황자가 아니다. 따라서 지금 그가 지켜야 할 것은 자신의 목숨뿐이고, 다른 것은 이미 그와 상관이 없어졌다. 그는 조정에 관한 화제를 꺼내면 모두가 예민해질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어릴 때 그는 왜 자신이 죽어야 하는지 몰랐지만, 나중에 단 사공이 와서 조금씩 분석해 주었고, 그의 사부님도 이해관계에 대해 이야기해준 적이 있었다. 그와 셋째 동생 사이에 가족의 정으로 목숨을 걸고 불안정한 여생을 걸어야 한다면 결코 모두에게 좋은 일은 아니었다. 그래서 그는 받아들기로 한 것이었다. 삶은 계속될 텐데, 매일을 의미 있게 잘 보내야 목숨을 건진 보람이 있기 때문이다. 서우가 그의 다리에 대해 물었다. “내가 오기 전에, 고모가 그러던데 넌 다리를 다쳐서 일어날 수 없다고 했는데 지금은 어떻게 걸을 수 있게 된 거야?” 그러자 수철이 말했다. “부황께서 승하하신 해에 산장에서 몇 사람이 와서 진찰해 보더니 정말 심하게 다쳤다며 이대로 두었다가는 계속 아플 테니 반드시 극단적인 방법으로 치료해야 한다고 하더군.” 그러자 서우는 호기심에 물었다. “어디서 온 신의야? 그럼 그때부터 치료한 거야?” 그 물음에 수철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북당에서 왔는데 그 사람은 그 말만 하고 날 치료해주지 않고 당일에 떠났어. 그러다가 지난달에 와서 약주를 줘서 그걸 마셨는데, 난 하루 종일 혼수상태에 빠졌어. 심지어 깨어나니 다리가 아파 죽을 것 같았지. 그런데 며칠이 지나자 점점 좋아지더니 누군가 부축하면 일어날 수 있게 되었어. 처음에는 잘 일어나지 못했는데 시간이 지나자 점점 똑바로 설 수 있게 되었지. 그리고 지금은 혼자 몇 걸음은 걸을 수 있게 됐어.” 그러자 서우가 놀란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북당신의? 그분께서 아직 살아 계셔?” “아니, 돌아가셨어. 내가 일어나
[번외편]신약산장의 진달래가 온 산천지에 피었다. 다채로운 경치는 사람들로 하여금 황홀하게 만들었다. 특히 신약산장에 가본 적이 없는 사람들마저 그곳에 살고 싶어 할 정도였다. 하지만 예외인 사람이 한 명 있었다. 그는 말을 타고 산 아래에 도착해 말을 잘 배치한 후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오직 눈앞의 길만 보았고 찬란한 꽃들은 그의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는 빠르게 걸으며, 가끔 경공을 사용하기도 했다. 신약산장이 비록 높지는 않았지만 은밀하게 숨겨져 있었고 많은 갈림길이 있었다. 하지만 그는 지도를 수도 없이 봐 온 덕분에 신약산장으로 향하는 길을 이미 마음속에 깊이 새기고 있었다. 약관 때 그가 작위를 계승했을 당시, 작은 고모가 많은 선물을 주었는데 그중 가장 큰 선물이 바로 지도였다. 그리고 그에게 온몸의 피가 끓게 하는 소식을 알려주었는데 바로 수철이 아직 살아있다는 사실이었다. 당시, 그는 한숨도 자지 못했고 옛날의 모든 일들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작위를 받은 후 입궁해서 사은하고 선조들에게 제사를 지낸 후 답방 인사를 드려야 했는데, 작은 고모의 말로는 인맥을 굳건히 하기 위함이라고 했다. 그래서 무려 보름이 지난 후에야 비로소 신약산장으로 출발했다. 산 아래에 도착하자 그는 날아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막상 산문을 본 순간, 강한 슬픔에 휩싸여 발걸음을 멈추고 그저 멍하니 서 있을 뿐이었다. 작은 고모는 그에게 수철이가 두 다리를 못 쓰게 되었고, 불행 중 다행히 치료 후에 목숨은 건졌지만 약 없이는 살 수 없게 되었다고 했다. 그것은 평생 약을 달고 의자에 앉아 있거나 침대에 누워서 지낼 수밖에 없다는 뜻이었다.그의 기억 속의 수철의 모습은 두 가지로 나뉘었는데, 하나는 제멋대로며 횡포한 모습이었고, 다른 하나는 성실하고 열심히 공부하며 태후마마와 황제폐하를 실망시킬까 봐 무술이든 공부든 최선을 다 했던 모습이었다. 특히 무술은 고모부가 재미있게 가르쳐 준 덕분에 그들은 항상 활기차게 뛰어다닐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