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튿날, 마부 사여묵은 눈밑이 까맸지만, 정신은 맑고 상쾌했다.송석석은 그가 대체 어떻게 이럴 수 있는지 궁금했다. 분명 잠을 잘 자지 못한 것 같지만, 이렇게 혈기 왕성하다니.눈 밑만 어두울 뿐 얼굴과 눈빛은 모두 환해 보였다.어젯밤 서우와 이야기를 나눈 후, 그는 사여묵을 그렇게 두려워하거나 경계하지 않았다. 가끔 가림막을 젖히고 그의 뒷모습을 몰래 보기도 했다.할아버지와 같은 사람이라면 그는 아주 대단한 사람일 것이다. 적만 때리고 백성을 때리지 않을 것이다.그러니 겁낼 필요가 없었다.서우는 줄곧 그렇게 자신에게 말했다. 길에서 내내 그렇게 생각하다 보니 점차 사여묵은 그에게 할아버지, 아버지와 같아 보였다. 게다가 사여묵은 그의 고모부이니, 가족이 될 사람이다.그래서 엽현에 도착했을 때 서우는 이미 주동적으로 사여묵에게 손짓을 했고, 사여묵의 손을 잡고 떡을 사러 가기도 했다.송석석은 그 모습을 보며 안도했다.게다가 그뿐만이 아니다. 서우는 그녀를 믿는 것처럼 사여묵을 믿는 것 같았다. 밥을 먹을 때 주동적으로 사여묵의 곁에 앉았고 음식을 집을 때 손에 힘이 부족해도 힘겹게 사여묵에게 음식을 집어 주었다.그날 저녁 그는 송석석에게 글을 적어주었다. 곧 고모부가 될 사람에게 잘해주어야 고모부도 고모에게 잘해줄 것이라 적혀있었다.그는 늘 따뜻하고 자상한 아이였다.그의 얼굴에도 웃음기가 생기기 시작했고 어두웠던 눈빛도 사라졌다. 하지만 길을 가는 도중 구걸을 하는 사람을 보면 여전히 동정 어린 눈빛으로 보고 있었다.그러나 그 구걸하는 사람들은 어린아이가 아니라 진정한 거지였다.그는 거지에게 먹을 것을 가져다주었다.송석석은 그를 따라 은냥을 주려 했지만, 그는 손을 흔들어 저지했다. 밥을 주면 배를 채울 수 있지만 은냥을 주면 배후의 사람들이 몰수할 것이다. 그리고 은냥을 받다가 앞으로 다시 받아오지 못하면 매를 맞아야 한다.이 거지는 그의 상황과 달랐지만 그래도 여전히 대입했다.송석석은 마음이 아팠지만 웃으며 그의 머리를 어루만
목 승상은 눈물을 닦았다."살아있으니 다행입니다. 살아있으면 된 것입니다."그는 일어서서 허리를 숙였다."신이 추태를 보였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짐도 하마터면 추태를 보일 뻔했으니 탓할 리 있겠나? 누가 이 소식을 듣고 기뻐하지 않겠나."황제는 활짝 웃다 무언가 생각난 듯 얼른 분부했다."오 대반, 직접 공가나 경조부에 가서 공대감을 찾아 이 일을 알려 기쁘게 해드리게."오 대반도 옆에서 눈물을 닦고 있다, 어명을 듣고 다급히 답했다."예. 바로 가겠습니다."오 대반은 기분 좋게 떠나갔다. 송가에 후손이 남았다니 오 대반은 진심으로 기뻐했다. 송 부인에게 은혜를 입은 적 있어 그는 누구보다 송가가 잘 지내길 바랐다.목 승상은 오 대반이 나가는 것을 보고 마음이 착잡했다. 비록 아직 처리해야 할 정무가 한 무더기 남았지만 이렇게 빨리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폐하, 성릉관 전역은 시종 우리 상국의 치욕입니다. 이 일을 비록 숨겼고 서경도 지금 폭로하려 하지 않지만, 서경 태자가 목숨을 잃은 것은 사실입니다. 서경에서 적통을 빼앗기 시작했고, 적통을 빼앗기 위해 온갖 수단을 쓸 것입니다. 서경 황자 중 이 일을 들추어 백성들의 지지를 얻으려 하는 자도 있을 텐데 먼저 대처할 방법을 생각해야지 않습니까?"황제는 잠시 멈칫하다 말했다."이 일은 우리 마음속의 짐과도 같네. 앞으로 어떻게 될지 확신이 어렵네. 대책이라 하면 이미 정해지지 않았는가? 이방을 처리하지 않고 목숨을 살려둔 후 조정에서 이 일을 모른다고 한 뒤 일단 폭로되면 이방을 서경에 보내 처리하게 내버려두는 것도 방법이네."그렇지 않으면 왜 이방의 목숨을 살려두었겠는가? 그는 진작부터 그녀를 갈기갈기 찢어 죽이려 했다.목 승상은 곰곰이 생각하다 다른 방법이 없어 답했다."아이고, 지금은 이렇게 할 수밖에 없습니다. 수란키도 직접 원수를 갚았습니다. 남강 전역에서 이방이 이끈 병사들, 성릉관에서 서경 태자를 학살한 사람들입니다. 살아서 돌아온 사람들은 그 구실을 못 하고,
목 승상은 부인을 대신하여 이런 일을 맡고 마음이 참 착잡했다.과거 전북망과 이방은 모두가 인정하는 잉꼬부부였고 조정에도 그들 두 사람에게 큰 기대를 걸었었다.백성들조차도 그들의 사랑을 찬양하고 이방을 연민하고 존경했다. 분명 큰 공을 세운 여장이지만 기꺼이 평처가 되었다니.전북망을 칭찬하는 사람도 있었다. 비록 이방 장군과 마음이 맞지만, 집안의 본처를 잊지 않고 이방을 위해 그저 평처의 자리를 쟁취했다.성릉관의 승리로 모든 사람은 기쁨에 취해 이성을 잃고 함께 즐거움을 누렸다.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기쁨이 가시자 그제야 아름다운 이야기 속에 이렇게 많은 더러운 점이 숨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결국 본처가 이방보다 더 뛰어나다는 것을 발견했고 그제야 다들 송가가 상국을 위해 이룬 공로가 떠올랐고 송가의 참혹한 결말을 떠올렸다.그러나 송가 아가씨는 줄곧 공평한 대우를 받지 못했다. 그녀의 곁에는 늘 시비가 따라다녔다.이전에 그녀를 불효라 말했을 때도 모두 그녀가 남강에서 세운 공로를 잊은 듯했고 줄곧 그녀를 따라다니며 비난해 감정이 직접 나서서 해명했다.이방은 군대에 남아있을 수 있었지만, 지금은 송가 아가씨가 현갑군 부지휘사의 허직을 맡고 있으며 당직도 필요 없었다. 황제는 분명 그녀에게 실직을 주려는 것이 아니다.목 승상은 마음속으로 황제가 얼마나 많은 걱정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다. 그러나 그 걱정 속에 송국공부에 대한 진심이 있다니 그것으로 충분하다.국공부에 그녀 혼자 남았는데 지금 둘째 소장군의 아들을 찾았으니, 국공의 자리도 물려받을 사람이 생겼다. 그러나 결국 후손이 적기에 황제는 더 이상 송가 사람을 위험에 처하게 하지 않을 것이다.그런 마음이 있으니 다른 건 모르는 일이고 없던 일로 생각하려 했다.오 대반은 공가로 향했다. 공양은 아직 댁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그래서 오 대반은 소식을 전하지 않고 먼저 공대감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겠다고 했다.그래서 공가 사람은 겁에 질렸다. 오 대인은 웃으며 말했다."걱정할 필요 없네,
공가 사람들은 듣자마자 의심스러웠다. 북명왕이 공가의 좋은 소식을 전하다니?많은 사람의 의심스러운 눈빛을 보고 오 대인은 계속 말을 이었다."북명왕은 엽현에서 송가 둘째 소장군과 닮은 어린 거지를 발견했네. 그래서 무심히 서우라고 불렀고 뜻밖에도 그 어린 거지가 반응을 했지..."공양은 다소 황당함을 느끼고 오 대반의 말을 끊었다."오 대반, 전하께서 서우를 닮은 아이를 만나 폐하에게 주본을 올린 이유가 무엇입니까? 서우를 닮았지만 서우가 아닌데, 어찌 폐하께 주본을 올릴 수 있습니까?"공양은 황당함과 동시에 약간의 분노도 느꼈다.문청과 서우는 공가 사람들 마음속의 큰 아픔이다. 특히 노부인은 이런 말을 듣지도 못하신다.서우와 비슷한 사람을 만났다고 기쁜 소식이라 전하다니? 이게 어떻게 경사란 말인가? 다들 급히 돌아왔는데 이렇게 황당한 소식을 들으니 공양은 저도 몰래 북명왕에게 화가 났다.오 대반은 손을 흔들었다."공대감 조급해 하지 말게. 만약 닮기만 했으면 엽현에서부터 영주까지 쫓아가지도 않았을 것이네. 송가 아가씨도 이미 수일 전에 영주로 갔고 지금 이미 그 어린 거지의 신분이 둘째 소장군의 아들 송서우라 확인했네. 아마 며칠이 지나면 진성에 도착할 것이네."이 말에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공양은 어두워진 눈빛으로 연신 부인했다."그럴 리 없습니다. 절대 불가능합니다. 서우는 이미 죽었습니다. 내가 그 아이를 안고... 시신을 확인했습니다. 오 대반, 더 이상 말하지 마십시오. 이 일을 저희는 믿을 수 없습니다. 송가 아가씨도 진짜인지 가짜인지 구별하지 않고 비슷한 아이를 만났다고 서우라고 하다니. 서우가 살아있거나 송가 사람이 살아 있다는 소식을 갈망하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래도 이 일은 불가능합니다."송가 노부인은 이미 울기 시작했다. 그녀의 딸과 외손자는 이미 죽었는데, 어떻게 2년이 지난 지금 또 이런 소란이 생긴단 말인가?송가 아가씨는 정말 미친 것인가?오 대반은 상황을 보고 말했다."폐하께서
하지만 어떻게 진짜일 리 있을까?실망할 운명이다.모두 마음이 괴로웠지만 또 송석석을 동정했다. 희망에 가득 찬 채 그곳에 갔다면 아마 실망했을 것이다.오 대반이 그들이 머지않아 진성에 도착할 것이라 했는데 정말 그 거지를 서우로 여기고 데리고 온 건가?대체 일을 어떻게 하는 것인가? 듬직하다고 생각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이렇게 경솔하다니.송석석은 추석에 진성을 떠났고 돌아올 때가 되니 이미 10월 초가 되었다.천고마비의 상쾌하고 좋은 날이다.진성을 지키는 장병들은 마차를 끄는 사람이 북명왕인 것을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전하가 마부 노릇을 하다니, 대체 마차 안의 사람은 누구인가?친왕의 마차가 성으로 들어오는 것은 검사가 필요 없이 바로 통과된다. 그래서 마차는 곧장 국공부로 향했다.국공부에 도착하자 사여묵은 송석석과 서우에게 말했다."난 들어가지 않을 테니 당분간은 서우와 잘 지내고 있소. 며칠 지나서 다시 올 테니."아마도 송석석과 서우는 내일 공가로 갈 테니 그는 내일 올 필요가 없었다.송석석이 감사의 말을 전하려다 지겹다는 그의 말이 떠올라 말을 고쳤다."고생하셨습니다. 어서 돌아가서 쉬십시오.""그럼 가겠소."사여묵은 서우를 보고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내일 사람을 보내 맛있는 것을 가져다주라 하마."서우는 비록 어색했지만 그래도 기뻐서 그를 향해 웃어 보였다.사여묵은 그의 미소를 보며 지금까지 정말 쉽지 않았다고 생각했다.그가 간 후, 송석석은 서우를 데리고 국공부의 대문으로 들어갔다.양 마마와 황 마마는 서우를 보자마자 눈물을 쏟았다. 진복도 눈물을 훔치고 달려와 울먹였다."작은 도련님. 돌아오셨습니까? 오셨으니 다행입니다, 정말 다행입니다."그는 서우를 보며 방금 눈물을 닦고도 또다시 울기 시작했다. 아이는 정말 불쌍할 정도로 말랐다. 대체 얼마나 고생을 한 걸까?그는 몸을 돌려 하인에게 부엌에 가서 음식과 차 그리고 뜨거운 물을 준비하라 분부했다.양 마마와 황 마마는 원래 국공부에서 모시다 송석석
진복은 그가 살던 원래 정원으로 안내하지 않았다. 비록 곳곳을 새로 손보았지만 괜히 슬픈 과거를 다시 불러일으키는 게 될까 걱정이 되어서였다.그래서 진복은 여인이 살고 있는 자목원으로 안내했다. 다행히 자목원은 꽤 넓어 두 사람이 살기에도 충분했다.그동안 고생을 많이 했으니 아가씨 곁에서 지켜줘야 한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기도 했다.게다가 서우는 아직 8살도 되지 않았으니 여인들과 함께 정원으로 지내도 이상할 게 없었다.‘나중에 아가씨가 출가하면 그때 다시 생각해 봐야지.’서우를 안정시킨 뒤 송석석은 모두를 별장으로 불렀다. 그리곤 진복에게 송태공과 공씨 가문 사람들에게도 사람을 보내라고 일렀다.“며칠 뒤에 감정적으로 좀 안정되면 찾아뵙겠다고 전하여라.”그리고 송석석은 말을 이어갔다.“참, 공씨 가문 사람들이 서우를 보고 싶어하면 모시고 와도 돼. 서우의 외조부모는 삼촌과 워낙 막역했으니 아마 쉽게 받아들일 거야. 태공님 쪽은 며칠 뒤에 알리는 걸로 하고.”하지만 상황은 송석석의 예상 밖으로 번졌다. 공씨 가문 쪽에선 애초에 이 사실 자체를 믿지 않고 있었다.그랬기에 진복이 직접 사람을 보냈음에도 오지 않은 건 물론 국공부에서 작위를 물려받기 위해 가짜 아들을 데려왔다고 비아냥대기까지 했다.다른 아들을 입양한다 해도 굳이 서우의 이름을 빌릴 필요가 있냐며 말이다.진복이 보낸 사람은 바로 보영이었다.보영은 다시 외원에서 일을 하게 되었는데 아직 경험이 부족한데다 서우의 얼굴을 본 적도 없었기에 공대인의 호통에 제대로 된 반박도 못하고 풀이 죽어 돌아오고 말았다.보영의 보고에 의외다 싶던 송석석도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다른 사람은 몰라도 공세형은 믿기 힘들겠지. 서우의 시체를 직접 처리한 게 공세형이었으니까. 이렇게 된 이상 단신의가 서우의 몸을 검사한 뒤 함께 공부(孔府)로 가는 게 좋겠어.’서우가 목욕을 마치고 옷을 갈아입자 마침 단신의가 도착했다.단신의는 송씨 가문의 어른부터 아이들까지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이 집안 사정
뼈가 부러졌을 때의 고통이 얼마나 엄청난 것인지 송석석 본인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진통 작용이 있는 탕약을 마시고 침을 맞았음에도 지금까지 잊혀지지 않을 정도로 강렬한 고통이었다.‘불쌍한 것.’송석석이 물었다.“전에 의존성이 생기는 약을 복용해 왔다고 들었습니다. 그건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까요?”이에 단신의가 대답했다.“새목단이라는 약이야. 복용하면 의존성이 생기는 약인데 지금 상태만 봤을 땐 중독이 심하진 않은 것 같아. 돌아온 뒤에 불편함을 호소한 적은 있었느냐?”송석석은 여기까지 오는 내내 발작을 일으킬 뻔했지만 번마다 참아내던 서우의 모습을 떠올렸다.‘그리고 저택에 돌아온 뒤엔 발작은 없었지.’“발작은 거의 없었습니다. 발작이 일어났을 때도 결국 참아냈고요. 참. 왕야님 말로는 영주에 있을 때는 발작이 심했다고 들었습니다. 벽에 머리를 부딪히고 자해도 서슴치 않았다고 들었는데 제가 갔을 때 그런 증상은 보이지 않았습니다.”이에 단신의가 한숨을 내쉬었다.“첫 발작이 가장 힘들지 참아만 낸다면 증상은 점차 약해지고 결국 완전히 끊을 수 있을 거야. 몸에 무리가 많이 가는 약이니 끊는 데 성공하면 보약도 지어야 할 것 같아. 키가 자라지 않은 것 역시 제대로 된 음식을 먹지 못한 것도 있지만 어린 나이에 중독성 있는 약을 먹어서일 수도 있어.”단신의의 눈동자에는 안쓰러움으로 가득했다.“보통 사람들은 새목단을 끊기 위해 침도 맞고 약도 먹어야 하는데 서우는 온전히 정신력만으로 이겨냈어. 그 의지가 아주 대단해. 병을 치료하고 몸조리만 제대로 하면 앞으로 큰 인재가 될 상이야.”단신의의 말에 송석석은 그녀가 영주로 가기 전 금단 얼마나 심했을까 싶어 마음이 욱신거렸다.그 무서운 북명왕의 안색이 초췌해졌을 정도니 본인은 몸 고생, 마음 고생이 오죽했을까 싶었다.서우는 지금도 많이 여윈 상태였지만 적어도 송석석이 처음 그를 만났을 때보다는 많이 나아진 상태였다.창백하던 안색에는 점차 혈색이 돌기 시작했고 얼굴에도 조금씩 살이 붙었
송석석이 단신의를 배웅하려 하던 그때, 단신의는 또 한숨을 내쉬었다.“인신매매단에 잡혀갔으니 그 고생이 얼마나 심했겠어. 뭐 목숨을 건진 것만 해도 불행 중 다행이지 뭐.”하지만 송석석의 생각은 달랐다.서우가 약과를 장군부로 배달했다면 그녀는 직접 서우를 집까지 데려다주었을 테고 어쩌면 그날 밤 저택에 하룻밤 묵었을지도 모른다.서경의 밀정들이 저택을 공격했을 때 그녀가 있었다면 모두를 지켜낼 수 있다 장담은 할 순 없어도 멸문지화는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그래서 송석석은 그들이 더욱 증오스러웠다.‘뿌리채 뽑아버려야 해.’단신의가 문을 나선 뒤 송석석은 바로 마차를 준비하라 명했다. 일단 서우를 데리고 황제와 태후를 알현한 뒤 공부로 갈 생각이었다.또한 송석석은 옷을 새로 지으라고 명했다.키가 얼마 자라지 않아 전에 입던 옷을 입을 순 있었지만 몇 벌 남지 않아서였다.장례를 치를 때 거의 다 태워버리고 가끔씩 그리울 때 꺼내보려고 남겨둔 옷가지 몇 벌뿐이었으니 말이다.살짝 짧긴 했지만 좋은 옷을 입으니 혈색이 더 좋아보였다.얼굴에 자잘한 상처는 이미 나은 뒤고 전에 있던 옷까지 입으니 마치 2년 동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하지만, 착각은 어디까지나 착각일 뿐이라는 걸 송석석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서우의 손을 잡은 채 송석석은 천천히 문을 나섰다.다리를 저는 터라 조금만 빨리 걸으면 넘어질까 송석석은 특별히 발걸음을 멈추었다.황제는 태후궁에서 두 사람을 맞이했다.눈물을 글썽이던 태후가 서우에게 손을 젓고 여기까지 오는 사이 다리병이 도진 서우는 고통을 참으며 한쪽 다리로 폴짝폴짝 뛰어갔다.참지 못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리고 태후는 서우를 부축해 자신의 곁에 앉히더니 아이의 얼굴을 쓰다듬었다.“어휴, 마른 것 좀 봐. 그동안 고생이 얼마나 많았느냐.”그런 태후를 보며 서우는 괜찮다는 듯 손을 젓고 고개를 돌렸다.그 모습에 황제 역시 연민이 일어 격려의 말과 함께 선물을 하사했다.황제는 흐
송석석은 곧바로 평서백부로 가서 최씨를 찾아 상황을 전달했다. 최씨는 단호히 한 마디만 했다."소 대장군과 관련된 일이니 지체할 수 없군요. 당장 나서겠습니다."전북망이 형부로 끌려간 이후 왕청여는 줄곧 불안에 떨었다. 친정에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돌아가 보기도 했지만 최씨는 그 부탁을 단칼에 거절했다."이건 두 나라의 중대한 문제입니다. 당신 같은 여자가 무엇을 할 수 있다고 나서는 겁니까?"그렇다고 최씨가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녀는 사람을 보내 전북망의 상황을 알아보게 했다. 전북망이 형부에 갇혀 있지만 특별 대우를 받고 있으며 고생하거나 고문당하지는 않고 있다는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최씨는 왕청여에게 그 소식을 전했고, 왕청여는 눈물을 머금으며 하소연했다."겨우 현철위 지휘사가 되었는데 이제 이방 일 때문에 다시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그때 목씨 부인이 이런 혼사를 추천하지 않았더라면 어머니께서도 허락하지 않으셨겠지요!”최씨는 그 말을 듣고 꾸짖었다."일이 생길 때마다 원망만 하지 말고 스스로 책임질 생각을 좀 하십시오!"형수의 꾸짖음에 왕청여는 더 이상 말하지 못하고 떠났다. 그녀는 결국 장군부로 돌아갔지만 안채의 일을 모두 시아버지 전기에게 맡기고 자신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 일로 장군부 안에서 왕청여에 대한 뒷말이 돌기도 했다.최씨는 장군부에 도착하자마자 왕청여에게 말했다."모든 하인들의 노비문서를 가져오게 하세요."왕청여가 이유를 묻자 최씨는 단호히 답했다."전북망을 구할 방법을 찾으려는 겁니다."왕청여는 자세히 물어보려 했지만 최씨가 초조한 기색으로 말을 잘랐다."그건 나중에 이야기하겠습니다. 우선 제가 시키는 대로 당장 실행하세요."결국 왕청여는 노비문서를 찾아와 그녀에게 건넨 후 다시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최씨는 노비문서를 확인한 뒤 집안 관리인을 불러 하인들의 신원을 물었다. 특히나 이방을 보좌했던 하인들을 주목했다.대략적인 정보를 얻은 후 최씨는 다시 문지기를 불러다 물었다.그
서경 사신들이 홍려사를 떠나 회동관으로 돌아간 뒤에도 상국 측 협상 담당자들은 홍려사에 남아 다음 협상에 대해 계속 논의했다.목 승상 역시 논의에 참여했다. "곡물을 배상해야 한다 해도 절대로 그렇게 많은 양은 안 됩니다. 그들은 지난해 흉작으로 군량이 부족한 상황인데 우리가 삼십만 석의 곡물을 배상한다는 건 그들의 군량을 채워주는 꼴입니다. 따라서 곡물 배상을 한사코 물고 늘어지다 하더라도 삼만 석을 넘겨서는 안됩니다."목 승상은 잠시 말을 멈춘 뒤 다시 덧붙였다."또한 황제께서는 국경선 문제에서도 절대 양보할 수 없다는 뜻을 내비치셨습니다."이 두 가지를 말한 후 그는 자리를 떴다. 북명왕의 협상 진행 방식에 대해 목 승상은 꽤 안심하는 듯했다.한편, 형부에서는 전북망이 이택을 만나겠다는 요청을 했다.어젯밤 이방과 대화를 나눈 뒤, 전북망은 이방이 서경이 소 대장군을 데려갈 방법이 있다고 말한 점이 몹시 불안했다. 하지만 돌아가서 아무리 고민해도 이방이 어떤 방법으로 서경 측이 소 대장군을 데려가게 할 수 있을지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결국엔 이택과의 면담을 요청한 것이다."그녀가 정말 그렇게 말했단 말입니까?"이택이 직접 전북망을 찾아와 서둘러 그에게 질문했다."그럼 어떤 방법을 사용할지도 말했습니까?"전북망이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말하지 않았습니다. 물어봐도 답하지 않더군요. 하지만 도망칠 경로를 계획해 둔 걸 보면 서경 사신들을 설득해 소 대장군을 데려갈 수 있다고 확신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이택은 아직 협상 결과를 알지 못했다. 하지만 소 대장군이 협상에서 주요 쟁점으로 논의될 것은 분명했다. 만약 상국 측이 협상 중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서경 측이 소 대장군을 데려가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그렇다면 협상이 끝난 뒤에는 과연 서경이 어떤 수단으로 상국의 손에서 소 대장군을 데려갈 수 있다는 것인가?그런데 이방은 어떻게 서경 사신들을 설득할 수 있다고 장담하는 걸까?"그건 가능성이 매우 희박합니다." 이
장공주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녀는 상국이 양국 간 체결된 민간인을 해치지 않고 포로를 죽이지 않는다는 협정을 먼저 위반했으며, 전쟁 중에 민간인을 학살하고 포로를 잔혹하게 살해한 것은 천인공노할 일이라고 주장했다. 그와 동시에 서경 첩자가 송씨 가문을 멸문한 일 역시 엄청난 죄악이라고 지적했다."우리가 평화 협상을 진행하려면 양측 모두 이러한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이러한 사실을 기반으로 해야만 양국 간의 평화로운 협상이 가능합니다."통역관이 이를 번역하자 사여묵과 상국 측 협상 담당 관원들도 이에 동의했다.그렇게 정식으로 협상이 시작되었다.서경 측은 다섯 가지 조건을 제시했다.‘첫째, 상국은 학살당한 서경의 민간인들에게 공식적으로 사과해야 한다.둘째, 황금 만 냥을 배상해야 한다.셋째, 서경으로 삼십만 석의 곡식을 배상하고 상국 측에서 운송해야 한다.넷째, 녹분성에서 체결된 협정을 무효화하며 국경선을 협정 이전의 기준으로 복구해야 한다.다섯째, 전북망, 이방, 소승을 서경으로 넘겨 처벌해야 한다.’상국 측도 어느 정도의 요구는 예상하고 있었으나 서경이 제시한 조건들은 모두 수용하기 어려운 수준이었다.사여묵이 먼저 입을 열었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조건은 수용 가능합니다. 하지만 삼십만 석의 곡식 배상과 국경선 변경은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우리가 먼저 잘못한 것은 인정합니다. 그러나 송씨 가문의 멸문 사건은 성릉관 사건과도 연관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양측 모두에게 잘못이 있습니다. 다섯 번째 조건과 관련하여 이방은 서경에 넘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소승은 당시 중상을 입었기 때문에 주된 책임이 없습니다. 단지 부하를 제대로 통제하지 못한 죄가 있을 뿐입니다. 따라서 그는 우리 상국에서 처벌하는 것이 마땅합니다."이에 서경의 대학사 고공이 말했다."송씨 가문의 멸문 사건은 애초에 상국이 협정을 위반하면서 발생한 재앙입니다. 서경에도 분명 잘못이 있지만 상국 역시 이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것입니다."그러자 이덕회가 나서서 반박
수란석은 속이 꽉 막힌 듯 답답하여 울화통이 터질 지경이었다. 오늘 협상에서 그는 원래 먼저 기선을 제압하고 죄를 물으며 압박을 가하고는, 상대방이 도저히 수용할 수 없는 조건을 내걸며 협상이 결렬되었다고 선언한 뒤 귀국해 전쟁을 선포하려 했다.하지만 이제는 그 계획이 무너졌을 뿐만 아니라 협상도 오히려 서경 측이 불리한 상황에 놓였다. 게다가 자신의 조카인 장공주에게조차 무시를 당해 더욱 분한 마음이 들었다.목 승상은 한쪽에 앉아 이런 상황을 보면서 마음을 놓았다.평화롭게 협상을 진행할 수 있다면 충분했다. 녹분성 사건은 상국의 잘못이기에 상국이 사죄하고 보상하려면 평화롭게 협상을 할 기회가 필요했기 때문이다.서경 측은 녹분성 학살 사건에 대한 기록 문서를 상국 측에 배포했다. 그 문서에는 당시 서경의 태자와 함께 포로로 끌려갔던 병사들의 구술 기록이 담겨 있었다. 그들은 간신히 목숨을 건져 돌아온 생존자들로, 당시의 참혹한 실상을 생생히 증언했다.학살 당시 마을 사람들이 전부 죽은 것은 아니었고 운 좋게 살아남은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살아남은 이들조차도 그 끔찍한 상황을 목격한 탓에 잔혹함에 벌벌 떨었다.문서에서는 우용이라 불리는 소장이 서경 선태자를 의미한다는 직접적인 언급은 없었지만, 사여묵과 이덕회는 우용이 선태자의 별칭이며, 그의 본명이 경역임을 알고 있었다.그 기록을 읽은 사여묵을 비롯한 상국 측 사람들의 마음도 몹시 무거워졌다.비록 이방과 이천명이 반복된 심문 끝에 몇 가지 세부 사항을 털어놓긴 했지만 그들은 여전히 많은 진실을 감추고 있었다. 어떻게 민간인을 인질로 잡아 가혹하게 학대하며 그 과정에서 우용을 끌어내려 했는지, 얼마나 잔혹한 수단을 사용했는지를 말이다.특히, 우용에게 어떤 방식으로 가혹한 행위를 했는지도 말이다. 장공은 목 승상을 알아보고 향병을 시켜 그에게 문서를 건네 주었고, 사여묵의 신호에 따라 홍려사 관원은 송씨 가문 멸문의 참혹한 사건 기록도 배포했다. 송씨 가문의 멸문 사건은 성릉관과 깊은 관련이
증언은 전부 상국 문자로 작성되어 있었기 때문에 서경 사신들은 내용을 모두 이해할 수 없어,두 명의 통역관이 서경어로 증언을 천천히 읽어주었다.정영수는 모든 죄를 자신에게 돌렸다. 그는 과거 송회안이 서경을 격퇴하며 수많은 서경 병사를 죽인 일과 송석석의 외조부인 소승이 성릉관을 지키며 크고 작은 전투를 수없이 치러온 일을 언급하며, 자신이 소 가문과 송석석을 증오하게 되었다고 했다. 이번에 진성에 오게 된 기회를 틈타 송석석을 죽여 그 원한을 풀고자 했다는 것이었다.증언을 모두 들은 후에도 서경 사신들의 표정은 전혀 밝아지지 않았다. 이 말인즉슨 정영수의 행위가 어쨌든 송석석을 해치려 했다는 점에서 성릉관과 연관되어 있다는 뜻이었다.서경 사신들은 북명왕이 이 문제를 담판 자리에서 꺼내지 않고 담판 전에 공정하게 따져 물었다는 점에서 그가 의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는 그들에게 더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 차라리 북명왕이 비열하게 이를 담판 자리에서 올렸다면 자신들도 체면을 차리지 않고 대응할 명분이 있었을 것이다.양안을 제외한 다른 사신들은 속으로 수란석을 온갖 욕설로 비난했다. 형인 수란키와 자신을 비교하려 들다니… 스스로를 돌아보지도 않고 마치 광대처럼 우스꽝스럽지 않은가!사여묵은 평온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담판은 결국 심리전이 가장 중요하다.원래 서경은 천리 길을 달려와 상국에 죄를 묻는 입장이었기에 정당한 이유를 가지고 요구를 제시할 수 있는 위치였다. 그들은 분노할 수도, 따져 물을 수도, 과감히 큰 요구를 할 수도 있었다.그러나 왕비를 암살하려는 일이 벌어진 이상 그들은 심리적으로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사실 그들이 실질적으로 잘못한 것은 송씨 가문과 관련된 부분 뿐이었지만, 암살 시도가 담판 하루 전날 밤에 발생했다는 사실이 그들의 심리에 큰 타격을 준 것이다.수란석은 손등으로 증언 문서를 눌러 가리키며 사여묵의 시선을 정면으로 마주하고는 큰 목소리로 말했다.“이 일은 이 일 뿐이고, 암살 사건이 사실인지 아닌지도
사여묵은 감히 그 말에 대꾸도 하지 못하고 서둘러 화제를 돌렸다. "사부님, 언제 도착하셨습니까? 어째서 저에게 미리 알려주지 않으셨습니까?""너희는 너희 일에나 집중하거라. 나는 여기서 지켜보며 상황을 살필 테니. 일은 어떻게 됐느냐? 사람은 잡았느냐?"무소위의 질문을 듣고 보니 그가 오늘 밤의 암살 사건에 대해 이미 알고 있다는 게 분명했다. 사여묵은 다소 자랑스러운 듯 말했다. "석석과 그들이 정영수를 붙잡아 대리사에 넘겼습니다. 정영수는 본인이 서경의 제일가는 고수라 자부했지만 석석을 만나 결국 크게 당하고 말았습니다.""그렇군." 무소위는 담담히 응답한 후 송석석을 한 번 쓱 바라보며 말했다. "저 아이는 다른 장점은 전혀 없고 그나마 무술만 조금 할 뿐이다. 게다가 정영수는 진짜 서경의 제일가는 고수도 아니지. 서경의 고수들은 대부분 조정에 나서지 않으니 말이다. 그러니 그를 이겼다고 자만하지 마라.""알겠습니다." 송석석은 얌전히 대답했다.송석석은 그동안 정말 많은 일을 겪었다. 주위 사람들의 시선도 완전히 달랐는데, 어떤 이는 그녀를 안쓰럽게 여겼고 어떤 이는 존경했으며, 또 어떤 이는 질투하기도 했다. 그러나 무소위만은 매산에서 지냈을 때와 똑같은 태도로 그녀를 대했다.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염선생은 이들이 궁중 연회 이후에 겪은 일들과 연황실과 회왕부의 움직임, 그리고 회동관에서 전해온 보고 내용을 대략 정리해 무소위에게 보고했다.보고가 끝나기도 전에 사여묵이 말을 꺼내려 했으나 무소위가 먼저 입을 열었다. "다른 일은 모두 중요하지 않다. 하지만 잠자는 것만큼은 절대 소홀히 해선 안 된다. 네가 이번 담판의 주관자이니 모든 것이 너에게 달려 있다. 어서 가서 쉬도록."사부의 명령에 사여묵은 거역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한 마디 물었다. "사백께서 마당을 폭파하셨다는 게 무슨 뜻입니까?"그러자 염선생은 깜짝 놀라며 얼른 눈짓으로 묻지 말라는 신호를 보냈지만 사여묵은 그를 전혀 보지 못했다."그저 화약을 가지고
염선생은 배를 문지르고 두 손으로 얼굴을 비비며 한숨을 내쉬었다. “회왕부에서 무슨 움직임이 있소?”“마차 세 대가 후문에 대기 중이며 그 안에 물건들을 싣고 있습니다. 멀리서 보니 금은과 귀중품으로 보였습니다.”“도망칠 준비를 하고 있군.”염선생이 말했다. “무사부님, 염선생님, 저희가 사람을 보내 도중에 그들을 막는건 어떠신지요?”염선생은 겸손하게 사숙의 의견을 물었다. “무사부님께선 어떻게 생각하시나요?”“그가 뭐 어디로 가겠나? 분명 연주로 갈 것이다. 사람을 붙여 중간에 그의 금은과 귀중품을 모두 빼앗아라. 빈손으로 연주에 가게 두고 연주에 도착한 이후에는……” 그는 평무종을 한 번 쓱 바라보며 말했다. “네 사람을 보내 그를 감시하게 하고, 그가 하는 모든 일을 기록해 보고하도록 해라.”평무종은 이를 악물고 답했다. “알겠습니다!”염선생은 무사부님이 감시를 붙일 건 알았지만 금은과 귀중품을 모두 훔쳐 오라는 지시를 내릴 줄은 생각도 못했다. 그런데 어쩐지 마음에 쏙 들었다.무소위는 두 사람을 한 번 힐끔 보더니 마침내 벌을 풀어주기로 했다. “물독을 밖으로 내가서 내려놓고 할 일을 하러 가거라.”두 사람은 대사면을 받은 듯이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물독을 이고 밖으로 나갔다. 물독이 워낙 커서 문을 겨우 빠져나갔다. 문이 조금이라도 작았다면 들어오지도, 나가지도 못했을 터였다.두 사람은 물독을 내려놓고 다시 들어와 짧은 훈계를 들었다. 그들은 벌받는 것에 익숙해서 모든 절차가 필수적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사숙님, 너그러이 용서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무소위는 차를 들어 한 모금 마신 후 천천히 입을 열었다. “사숙이 너희를 벌주는 것이 야박하다 생각하느냐? 원망할거면 너희들의 못난 사부를 탓해라. 너희 사부는 산에서 화약을 연구하다가 내 마당을 날려 버리고도 뻔뻔하게 내게 진성까지 와 자기 제자들을 도와 달라 청하는 양심 없는 인간이다. 너희가 벌을 조금도 받지 않고 넘어간다면 내 마음의 화가 도저히 풀리지
그녀는 결코 쉽게 자신의 목숨을 포기할 사람이 아니었다. 비록 비루하게 살아남더라도 죽는 것보다는 낫다고 여겼다. 그녀는 사람이 평생토록 불행하기만 한 것은 아니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살아 있는 한 다시 일어설 기회는 반드시 올 것이라 확신했다. 여장군이 될 수 없다면 다른 곳에서라도 다시 일어설 수 있지 않겠는가? 세상이 이토록 넓은데, 충분히 강인하게 버틴다면 한 자리라도 찾지 못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그래서 그녀는 죽을 수 없었다.하지만 전북망은 그저 그녀가 터무니없는 소리를 한다고 생각할 뿐이었다. “탈출 경로를 짜 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소? 이번에 서경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왔는지 아시오? 합치면 백여 명이고, 시위만 해도 최소 예순 명이오. 내가 구해낼 수 있을 리 없잖소.”“혼자 할 필요 없으십니다, 장군님. 북명왕부가 도와줄 겁니다.” 이방은 숨죽인 목소리로 말했다. 전북망도 겨우 들을 수 있을 만큼 낮은 소리였다. “제가 서경 사람들 손에 넘어가면 반드시 소승도 함께 데려가도록 할 수 있습니다. 북명왕부는 소승을 못 본체 하지 않을 겁니다. 장군님은 단지 그들이 소승을 구할 때 저를 구해내면 됩니다.”전북망은 그녀의 말을 듣고 온몸이 서늘해졌다. “뭐라고 하였소? 무슨 수로 서경 사람들이 소대장군을 데려가게 할 수 있다는 거요? 도대체 그들에게 무슨 말을 할 작정이오?”이방은 그를 흘겨보며 비웃었다. “알 필요 없습니다. 그저 이 일을 받아들이시기만 하면 됩니다. 저를 구해 주시면 장군님과 저 사이의 빚은 깔끔하게 청산되는 겁니다. 앞으로 제가 죽든 살든 장군님과는 아무 상관없게 될 것입니다.”“아니, 난 받아드릴 수 없소.” 전북망은 깊이 숨을 들이쉬며 말했다. “도와줄 수 없소.”“장군님, 장군님의 마음속엔 언제나 송석석이 남아 있겠지요. 장군님은 결국 저를 저버린 셈이 되는 겁니다.” 이방은 차가운 눈빛으로 그를 응시하며 말했다. “그런데도 저는 장군님을 위해 진술까지 바꿨습니다. 정말 조금의 정마저도 잊
담판을 앞둔 전달 밤, 너무나도 많은 일이 일어났다. 회동관은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고, 대리사 역시 밤새 재판을 진행했다. 형부에서는 이방이 자백한 이후로 줄곧 전북망을 한 번만 만나게 해달라고 간청하며 심지어 무릎을 꿇고 울며 애원하고 있었다.이방이 형부에 들어온 후 이렇게까지 약해진 모습을 보인 것은 처음이었다. 이택은 담판이 끝난 후 이방이 서경 사신에게 인계될 것이며 죽음도 쉽게 맞지 못할 잔인한 최후를 맞게 될 것이라 생각했다. 사형수도 죽기 전에는 가족을 한 번 만날 수 있기에, 그는 오늘 밤 둘의 만남을 허락했다. 물론, 그 또한 감옥에서만 허용되었다. 이택은 전북망을 감옥으로 데려오라 명령하였다. 아전들이 감옥 문을 열어주자 전북망이 안으로 들어갔고 이택은 밖에서 대기했다. 당연히 전북망은 들어가기 전에 몸수색을 받아 어떠한 날카로운 물건도 지니지 못하도록 하였다. 이방이 자결할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한 조치였다.이방은 현재 여성 수감자용 독방에 감금되어 있었는데, 그녀는 너무 중요한 인물이기에 작은 실수도 용납될 수 없었다. 이택은 엄중한 병력으로 그녀를 감시하게 했다.작은 등불이 두 사람의 초췌한 얼굴을 비추었다. 성릉관 전투에서 승리하고 돌아왔을 때의 그 당당함은 이제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았고, 오직 이루 말할 수 없는 피로와 초라함, 그리고 절망과 혼란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장군님을 위해 제 진술을 바꿨습니다.” 이방은 눈앞의 이 남자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의 의지가 꺾인 모습에 그녀는 희망이 보이지 않았고 다소 급박한 어조로 말했다. "제가 그들에게 성릉관 일은 장군님과 전혀 관련이 없다고 진술하였습니다. 그러니 장군님은 무사하실 것입니다.”전북망이 대답했다.“그건 사실이오. 난 정말 아무것도 몰랐소.” “하지만 장군님께서 개입하시기 전에는 소승이 모든 일의 주동자였습니다.”“그 말은 성립되지 않소. 황제와 형부는 믿지 않을 것이오.”이방의 얼굴이 더욱 추악하게 일그러졌다. “상관없습니다. 서경이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