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부모님은 어릴 때부터 사람 됨됨이 대해 가르쳤어요.""세상사는 복잡하면서도 단순하다고 하셨죠.""사람마다 가장 기본적인 것만 갖추면 충분히 잘 살 수 있다고 했어요. 윤리 도덕과 같은 품행 말이에요."주혜민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주혜민은 실눈을 뜨고 차우미를 쳐다보았다.차우미는 지금 주혜민이 윤리 도덕 없는 무례한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차우미가 자기를 완전히 얕본다고 여겼다.차우미는 주혜민의 안색이 눈에 띄게 변한 것을 보고 계속해서 말했다. "우리 부모님은 결코 나한테 재력이나 지위, 명예 같은 게 중요하다고 가르치지 않았어요. 두 분은 그저 저한테 착실하게 살면 된다고, 그러면 가문에 먹칠하지 않는 거라고 하셨어요.""그래서 어릴 때부터 부모님의 가르침을 받들어, 날 지키고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헐뜯지 않기 위해 내 일에 최선을 다했고 부끄러움 없이 잘 살았어요.""그런데 혜민 씨가 오늘 저한테 거짓을 진실인양 날조해 모독하고 내 명예를 훼손하고 날 다치게 한 거예요. 그쪽 가정 교육이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난 우리 부모님 가르침대로, 나한테 피해를 주는 사람은 물러서지 않을 거에요.""난 불륜을 한 적도 없고 누군가의 감정에 끼어드는 짓도 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그쪽이 한 비난과 모욕을 참을 수 없어요. 그쪽 언행으로 난 다른 사람들한테 불륜녀라는 낙인이 찍혔고 보이지 않는 상처를 입었어요. 물론 날 가르친 부모님께까지 상처를 주는 행동이었고요.""혜민 씨가 모든 사람 앞에서 나한테 사과하세요."차우미는 어떤 감정의 미동 없이 차분하게 말을 마쳤다.그녀는 상처를 입은 사람보다 상처를 입은 사실을 진술하는 변호사 같기도 했다.순간, 주위가 삭막해졌다. 숨소리도 들을 수 있을 정도로 고요했다.구경꾼들은 차우미의 말에 살짝 동요했다.자기 할 말을 이렇게 똑 부러지게, 이성적으로 하는 여자를 불륜녀로 오해했다고 여겼다.온이샘은 조용히 주먹을 꽉 쥐었다.차우미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이 흔들렸다.차우미에게 명예 훼손을 저지
'감히 나한테 따지는 거야? 사과하라고? 자기가 뭔데?'주혜민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고 눈빛도 어두워졌다. 언제든지 무서운 짓을 할 수 있는 사람 같았다.그러나 차우미는 아무것도 겁나지 않았다. 주혜민이 어떤 반응을 보이든 차우미는 아무런 동요도 없었다.그녀는 오직 자기 자신만 믿을 뿐, 다른 사람은 신경 쓰지 않았다.주혜민은 평온하기 그지없는 차우미의 모습에 헛웃음이 터졌다.그녀는 진현과 온이샘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주위에서 질책하는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자 그녀의 웃음소리가 더욱 커졌다. "내가 만약 사과하지 않으면 어떻게 할 건데요?"주혜민은 아무런 가책도 느끼지 못한 것처럼 말했다.차우미의 눈썹이 살짝 찌푸려졌다. "신고할 거예요."주혜민이 눈을 가늘게 떴다."방금 당신이 한 말, 한 짓 때문에 난 실질적인 피해를 보았어요. 충분히 경찰에 신고할 수 있는 일이에요.""사과하지 않으면 경찰서에서 만나야겠죠."주혜민은 더는 웃지 않았다.그녀의 안색이 차가워졌다, 한겨울의 서리처럼 차가워졌다.차우미가 진심으로 한 말인지 아닌지를 파악하기 위해 주혜민은 차우미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얼마 뒤, 주혜민이 입을 열었다. "신고하세요.""지금 신고하면 돼요."말을 마친 주혜민은 차우미를 힐끗 쳐다보더니 돌아섰다.매우 건방지고 오만했다.차우미는 주혜민이 떠나는 것을 보고 휴대폰을 들고 112에 전화를 걸었다.곧 전화가 연결되었고 차우미가 말했다. "안녕하세요. 저 신고하려고요."앞으로 성큼성큼 걸어가던 주혜민은 차우미의 목소리에 발걸음을 멈췄다.그러나 바로 다시 걸음을 옮겼다.차우미는 멀어지는 주혜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아까 발생했던 상황을 낱낱이 설명했고 경찰관이 곧장 출발하겠다고 했다."네, 감사합니다."전화가 끊겼고 주혜민은 이미 떠났다.진현은 자리에 서서 주혜민의 그림자가 사라지는 것을 지켜보다가 다시 차우미에게 시선을 옮겼다. 차우미가 휴대폰을 넣으며 온이샘에게 말했다. "선배, 나 때문에 저녁 제대로
차에 탄 양훈은 경찰서에서 걸어나오는 두 사람을 발견하고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차우미가 오늘 왜 경찰서에 왔는지 조사해봐.""네."전화가 끊기자, 양훈은 멀어지는 택시를 바라보며 말했다. "돌아가자."...호텔로 돌아온 주혜민은 곧바로 경찰서로 와달라는 연락을 받았다.'진짜 신고했어?'전화를 끊은 주혜민은 분노를 참지 못하고 휴대폰을 가방과 함께 내동댕이쳤다.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분노다.3년 전, 나상준이 자기보다 못난 여자와 결혼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이미 차우미에 관해 조사한 적 있었다.주혜민은 차우미에 관한 모든 것을 샅샅이 조사했다. 차우미의 집안은 청렴했다, 조상들도 청렴결백한 사람들이었고 지저분한 것이 없었다.나상준의 할머니가 차우미를 신붓감으로 고른 이유 중 하나가 그녀의 가문 때문이라고 여겼다. 차우미 집안이 바로 청렴결백한 집안이기에.두 사람의 집안과 비교하면 차우미 집안도 뒤떨어지지 않았다.차우미의 관한 흠을 찾으려 했으나 결국 아무것도 찾지 못했고 결혼을 막기 위해 이것저것 알아보았으나 끝까지 알아내지 못했다.어쩌면 나상준의 할머니가 훨씬 전에 조사를 끝냈을 수도 있었다.결국 주혜민은 나상준의 결혼을 막을 방법이 없었다.게다가 나상준은 주혜민을 거절했다.그녀가 먼저 고백을 했고 나상준이 원하기만 하면 주혜민은 그와 결혼할 생각이었다.그러나 뜻밖에도 나상준이 주혜민을 거절했다. 자기 잘난 맛에 살던 주혜민은 처음 겪어본 거절에 제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이렇게 된 이상, 주혜민은 나상준이 결혼한 뒤에 후회하게 할 생각이었다. 틀림없이 후회할 거라고 굳게 믿었다.그러나 그가 정말로 차우미와 결혼했을 때 후회한 것은 주혜민이다.나상준을 다른 여자에게 보내지 말았어야 했다. 어떻게든 그 결혼을 막아야 했었다.그러나 후회를 해봤자 이미 늦은 뒤다. 그는 이미 다른 여자와 결혼했고 한방에서 살았으며 친밀한 일을 했다. 이런 생각을 할 때마다 주혜민은 질투에 휩싸였다.그래서 선택한 게, 출국이었
나상준뿐만 아니라 가온그룹의 아드님까지 그녀에게 매달리고 있는 꼴이었다. 주혜민은 아까 한식집에서 일어났던 일을 떠올렸다. 차우미를 보호하던 온이샘, 차우미의 편을 들던 진현, 두 사람은 그녀에게 적대적이었다.'허! 대단하다! 진짜 대단해!'기가 찬 주혜민은 실소하며 눈빛이 음침하게 변했다.'차우미, 네가 감히 자기 주제도 모르고 내 자리를 빼앗으려고 해?네가 이렇게 나오면, 나도 더는 호락호락하게 당하지 않아.'주혜민의 입꼬리가 비열하게 올라갔다. 그녀는 몸을 구부려 바닥에 있는 휴대폰을 집어들었다.방문과 닿은 곳에 내동댕이친 탓에 문 앞으로 가서 주워야 했다.그녀가 휴대폰을 집어 들고 일어서는 순간, 문밖으로 누군가의 그림자가 보였다.진현이다.언제부터 입구에 서 있었는지 알 수 없었다.주혜민의 눈빛이 순간 미세하게 흔들렸다. 그녀가 실눈을 뜨고 진현을 바라보았다. "왜 온 건데? 아까는 모른 척하더니?"주혜민의 눈빛이 차갑게 얼어붙었다.그들은 알고 지낸 지 몇 년이나 되었다, 그는 지금까지 줄곧 주혜민의 말을 들었다. 그녀에게 어떤 일이 생기든 진현은 줄곧 주혜민의 말에 따랐다.그러나 3년이 지난 지금, 진현이 변했다.그녀가 알던 순종적인 남자가 아니었다.진현은 미소를 지으며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평소와 같은 얼굴로 조용히 들어왔다. "가자, 경찰서 같이 가줄게."진현은 주혜민 앞에 서서 온화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주혜민이 손을 들었다. 짝!매우 우렁찬 소리와 함께 진현의 얼굴이 돌아갔다.진현의 얼굴이 서서히 굳었다.주혜민은 눈앞에 태연하게 서 있는 그를 바라보며 매서운 눈빛으로 쏘아붙였다. "경찰서를 가? 네가 뭔데? 네가 뭔데 나 대신 사과를 해? 제까짓 게 뭔데! 진현, 경고하는데, 난 널 사랑하지 않아! 결코, 널 좋아하는 일 없을 거니까 헛된 꿈 품지 마!"주혜민이 턱을 치켜들며 차갑게, 조롱하듯 아무렇지 않게 이런 말을 내뱉었다.그녀는 말을 마친 뒤 바닥에 있는 가방을 집어 들고 빠르
"안 바빠요."나상준의 희미한 목소리에 서혜지는 살짝 당황했다. 나상준은 처음부터 말수가 적었다. 그녀가 이 집안에 시집을 왔을 때부터 나상준은 쭉 이런 성격다. 다행히 가족들은 집안 큰 행사가 아니면 자주 만나지 않았고 그래서 나상준의 이런 모습이 낯설지 않았다.이미 적응했다.오늘 그녀는 나준우와 저녁에 외출했었다.집에 돌아온 뒤에야 딸이 넘어진 뒤에 자기 큰아빠와 큰엄마한테 연락한 것을 알게 되었다.예은이는 큰엄마가 자기 만나러 꼭 오겠다고 약속했다고 했다. 큰아빠도 같이.어린 애들은 자기 말에 따르는 척만 해줘도 순진하게 믿었다. 그래서 차우미의 대답이 놀랍지 않았다. 그러나 예은이에게 먼저 연락한 나상준은 급한 일이 있는 게 분명했다. 어린 아이를 좋아하지 않는 나상준은 평소에도 예은이와 거리를 뒀다. 가끔 본가로 가면 몇 번 놀아주기는 했지만, 결코 많지는 않았다.차가운 성격의 나상준을 예은이가 무섭다고 피하지 않은 것만으로 다행이라 여겼다.어린애에게 아무 관심도 없던 그가 갑자기 전화하자, 서혜지는 되려 불안했다.예은이가 큰엄마한테 연락해서 자기를 만나러 오라고 투정부린 사실을 그녀도 잘 알고 있다.어딘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나준우에게 당장 아주버님에게 연락해 목적을 알아보게 한 것이다.간단한 문제 같지 않았다.그러나 휴대폰 너머로 들리는 감정 기복 없는 목소리에 서혜지는 겁을 살짝 먹었다.짤막한 말이나 눈빛 하나로 상대를 압도하는 사람이 있다.나상준이 바로 이런 부류이다. 나상준은 카리스마가 강한 사람이다.서혜지가 마음속의 두려움을 억누르며 애써 미소 지었다. "아무 일도 없는 거면 다행이에요. 저랑 준우 씨가 아주버님 쉬는 거 방해한 건 아니죠?"나준우는 순식간에 나약해진 아내의 목소리를 듣고 어이가 없었다.자기한테 큰소리를 치던 아내가 꼬리를 내리는 꼴이 웃겼다.게다가 그의 등까지 찰싹 내리쳤다.나상준은 휴대폰을 한 손에 들고 다른 한 손으로 뜨거운 물 한 잔을 따르고 창밖의 야경을 바라
나상준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 "준우야." 전화를 끊으려는 순간 자기를 부르는 나상준 때문에 나준우가 살짝 당황했다. "응, 형.""너 제수씨랑 어떻게 사귄 거야?""뭐?"나준우는 예상치 못한 질문에 더욱 당황했다.나상준이 이런 문제로 연락했을 줄 몰랐다.나준우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 어버버거렸다.서혜지는 나상준이 한 얘기를 듣지 못했으나, 자기 남편의 반응 때문에 궁금증을 참을 수 없었다. 그래서 얼른 나준우의 팔을 붙잡고 나준우의 곁에 바짝 붙어 통화 내용을 들으려 했다.나준우는 아내가 엿듣는 모습에 정신을 차렸다. 그는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몸을 옆에 밀착한 서혜지 때문에 도저히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우리가... 말로 설명하긴 애매해."서혜지는 통화 내용을 엿듣기 위해 애썼지만 나준우의 목소리만 들렸다. 나준우는 그런 서혜지를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았다.결국 휴대폰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선 나준우가 위층으로 피신했다.서혜지는 소파에 멍하니 앉아 휴대폰을 들고 도망치는 나준우를 바라보았다.'나 몰래 할 얘기가 있다는 거야?'나준우는 휴대폰을 들고 서재로 가서 문을 살며시 닫았다. "형, 여자랑 잘 안돼?"나상준은 남에게 좀처럼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다. 다른 사람이 그에게 도움을 청하면 청했지, 그가 먼저 도움을 청할 리 없었다.지금까지 총 두 번 나준우에게 도움을 청했다.한 번은 차우미가 손을 다쳤을 때였고 다른 한 번은 지금이다.나상준은 창문 밖의 끝없는 등불을 바라보았다. 환하게 빛나는 도시의 밤은 눈부신 은하수같이 그의 눈에서 끊임없이 반짝였다.그는 담담하고 평온한 차우미의 얼굴을 떠올렸다. 깜짝 놀라서, 아연실색하던, 멍하게 넋이 나갔던 그녀의 모습이 생생하게 떠올랐다.심장 박동이 빨라졌다."음."그는 분명 문제가 생겼고 해결해야 했다.휴대폰 너머로 들려오는 나지막한 소리에 나준우는 그가 전과 확실히 달라진 것을 느낄 수 있었다.그냥 꺼낸 질문에 나상준이 대답할 줄 몰랐다. 게다가 그
"사귀는 데까지 얼마나 걸렸는데?"나준우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대학교 시절부터 알았으니까, 졸업 후 내가 취업한 뒤부터 만났으니까...""얼추 계산하면 2~3년 정도 걸린 것 같은데."'2년에서 3년이 걸렸다...'나상준의 눈빛이 살짝 어두워졌다.너무 길다.휴대폰이 다시 조용해졌다. 나준우는 나상준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궁금한 게 있음에도 묻지 못했다. 아무나 연애나 사랑을 잘하는 게 아니다. 나상준은 업무 능력이 뛰어났지만, 연애에 취약했다.그리고 그는 명백하게 나상준이 이 일에 대해 신경 쓰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어떻게든 형을 도와주고 싶었지만 쉽지 않았다.나준우도 아무 말을 하지 않았고 조용해졌다. 그는 나상준의 대답을 기다렸다.오랫동안 침묵이 유지되었고 나상준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네가 일이 바쁠 때, 제수씨가 자주 찾아오면 짜증 나지 않았어?""음..."나준우가 곰곰이 되새기더니 말했다. "그런 것도 있는 것 같은데, 그런데…"나상준은 물컵을 들고 창문 앞에 섰다. 그는 거리의 등불을 바라보며 물을 한 모금 마셨다. 그의 얼굴이 평온했다.다만 그의 눈빛이 깊게 변했다.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나준우가 말을 멈추자 나상준은 컵을 든 손가락을 살짝 움직이며 물었다. "왜?" 나준우가 얼굴을 찡그리더니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내가 정말 바빴던 날이 있었는데, 그날이 혜지가 찾아온 거야. 화가 났던 난 걔한테 듣기 싫은 말을 했고 혜지가... 그때 울더라고."나상준의 시선이 무거워졌다. "그리고?"나준우 지금까지 이런 말을 누군가에게 한 적이 없었다. 누군가에게 자기의 지나간 시절을 얘기하는 게 쑥스러웠던 나준우가 머리채를 움켜쥐고 말했다. "울면서 뛰쳐 갔어, 동료 눈에는 우리가 커플로 보였는지 전부 날 위로하면서 잡으라고 하더라고. 물론 나도 말실수를 한 것 같았고 그래서 혜지를 잡기 위해 따라나갔어.""그날 유독 큰비가 왔어. 내가 혜지를 찾았을 땐, 이미 비에 흠뻑
나준우는 말하고 싶지 않았지만 말할 수밖에 없었다."혜지를 끌어안자 내 품에 안겨 울더라. 날 때리면서 욕하더라. 양심 없다고... 나 그때 진짜 복잡했어.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혜지가 우니까 나도 괴로웠어, 그래서..."나준우가 마지막 말을 삼켰다.더는 말 할 수 없었다.나준우는 결국 서혜지에게 키스했다.아주 서투르게 첫 키스를 했다.나준우도 자기가 그렇게 행동할 줄 몰랐다.나상준도 그가 삼킨 말을 눈치챘다.물 한 모금을 마신 나상준이 천천히 말했다. "두 사람 지금 보기 좋아."나준우가 한숨을 돌렸다.그는 나상준이 계속해서 뒷이야기를 물을까 봐 걱정했다. 끝까지 물으면 나준우는 어쩔 수 없이 말해야 했다."그냥 서로 운명이었던 거지, 자연스럽게 만나는...""나도 일부러 뭘 하려고 애쓰지 않았거든. 어쩌다 보니 지금 이렇게 부부가 된 거야."나상준은 몸을 돌려 물잔을 돌려놓고 말했다. "제수씨가 고생이 많네.""아..."나준우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그는 일부러 무엇을 하려고 하지 않았지만, 서혜지는 그를 위해 많은 것을 해줬다. 사소하고 작은, 보잘것없지만 아주 중요한 것이다.서혜지는 확실히 나준우보다 많은 사랑을 줬다.나준우가 순간 물었다. "지혜가 고생이 많았지. 난... 아니지.""너도 좋은 사람이야. 이렇게 앞으로 쭉 행복하게 살아."나준우는 마음속에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나상준이 뭔지 모르게 자기를 부러워하는 기분이 들었다.부러워하는 건가?나준우는 놀랐다.나상준은 아주 대단한 사람이다, 못하는 게 없었고 어떤 일이든 잘해낸다.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나상준은 훌륭하게 해결한다.그런 사람이 자기를 부러워한다는 게 살짝 의아했다."그래, 무슨 일 있으면 연락해."나준우가 정신을 차렸다. "알겠어.""형도... 내가 도움될지 모르겠지만 내 도움이 필요하면 연락해.""응, 그럴게."'흠...'나준우는 살짝 난처했다.남녀 사이의 감정에 그가 할 수 있는 말은 별로 없었다.
차우미가 원하지 않는다는 건 나상준도 잘 알고 있었지만, 그냥 모르는 체하고 그녀와 함께하고 싶었다.차우미는 어찌 됐든 나상준과 이혼한 이후 서로의 생각이 다른 것뿐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부분은 그녀가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이다.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기 때문에 차우미가 뭐라고 할 수는 없다.나중에 다시 얘기하자고 했으니, 그때도 아마 바쁠 거라고 생각하면서 차우미는 편안하게 생각하기로 했다.차우미는 휴대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하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탑승 시간인 것을 보고 잠시 휴식하면서 업무에 대해 생각하기로 했다.휴식 구는 점차 조용해지더니 나중에는 적막이 퍼졌다.나상준은 휴대폰을 들고 창밖을 바라보는 차우미를 보았는데 무언가 진지하게 생각하는 눈빛이었다.‘무슨 생각하는 거지?’그런 그녀의 모습은 회성 회의실에서 일할 때와 같았다.나상준은 차우미를 바라보다고 다시 휴대폰으로 안평의 관광 명소들을 검색했다.그는 자기와 멀어지려고 하는 차우미의 소원을 들어주지 않을 것이다.시간은 어느덧 5시가 되어 나상준과 차우미는 비행기에 탑승했다.좌석에 앉아서 안전벨트를 하더니 차우미는 휴대폰을 꺼내 온이샘에게 탑승했다는 메시지를 보냈다.곧바로 온이샘이 답장을 보냈다.[알았어. 나도 지금 탑승하고 있어.]퍼스트 클래스는 이코노미석보다 조금 더 일찍 탑승한 것이다.차우미는 온이샘의 메시지를 확인하고 다시 시간을 보더니 이어서 시선을 돌려 창밖을 보았다.하늘은 이미 어두워졌는데 청주는 안평보다 더 일찍 어두워지는 것 같았다.이제야 차우미의 마음은 조금 편안해졌다.청주에 있는 며칠 동안은 몇 년인 것처럼 오래 느껴져서 빨리 돌아가고 싶었는데 이제 비행기에 탑승하고 나니 정말로 집으로 돌아가는 것 같았다.차우미는 고향에 돌아가서 다시는 여기로 오지 않고 평범한 생활을 하고 싶었다. 그녀는 몸의 긴장을 풀고 의자 등받이에 기대었고 얼굴에는 마음속에서부터 우러나오는 기쁨의 미소를 지었다.그런데 갑자기 무슨 물건이 그녀의 몸 위에 떨어져서 놀라며 내려다
“예은이가 안평에 가본 적이 없어서 여름 방학이 되면 안평으로 놀러 갈 생각이야. 그런데 안평은 나도 잘 몰라.”나상준이 나예은과 같이 놀자고 한 것은 두 사람 사이의 약속이고 자신과 상관이 없다는 생각에 차우미는 나예은의 말에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어찌 됐든 조금 전에 그녀는 약속하지 않았다.그런데 지금 나상준의 말에 차우미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 입을 벌렸다.나상준은 안평 사람이 아닌 청주 사람이고 또 일 때문에 여기저기 다니기에 안평을 잘 알지 못하는 것은 알고 있다. 그는 청주 이외의 다른 도시에서 오래 있어 본 적이 거의 없었다.나예은과 같이 놀려면 어느 도시든 모두 가능한데 왜 하필 안평으로 가려고 하고 또 차우미까지 함께 하자고 하는지 이해되지 않았다.사실 차우미는 그들과 놀지 않고 일을 하고 싶었다.그리고 제일 중요한 것은 차우미는 워낙 회성에서 일을 끝내고 또 나예은과의 약속을 이행한 다음에는 나상준과 더 이상 엮이는 일이 없을 줄 알았다.그런데 지금은 또 이렇게 같이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만나러 가고 있고 그것도 부족해서 나예은과 같이 놀자고 한다.차우미는 나상준과 왕래를 하지 않는 것이 언제면 가능할지 막막했다.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미간을 찡그렸다.나상준은 그녀의 표정 변화를 똑똑히 지켜보다가 말했다.“지금부터 서두를 거 없으니, 나중에 다시 얘기하자.”그가 억지로 밀어붙이지 않고 여유를 주자, 차우미의 표정이 약간 풀렸다.나상준은 말을 마치고 차우미를 보고 있던 시선도 거두고는 휴대폰으로 일을 하려는 것 같았다.차우미는 그의 행동을 바라보다가 말했다.“아직 예은이의 여름 방학까지 한 달 정도 남았다고는 하지만 나 이번에 회성에서의 일이 금방 끝났고 또 휴가까지 썼기에 앞으로는 매우 바쁠 거여서 그때는 시간이 안 돼. 정말로 예은이와 같이 안평으로 가게 되면 내가 전문 투어 가이드를 소개해 줄 거니까 예은이와 같이 놀러 다녀.”비록 나상준이 서두를 필요가 없다고 했지만, 차우미는 아예 지금 미
차우미는 라운지 안으로 들어가면서 다른 생각을 하지 않았다.그녀는 나상준이 통화하는 것을 보고 시선을 거두고 원래 앉았던 1인 소파에 앉았다.나상준은 시종일관 차분한 차우미의 표정을 보다가 별다른 생각없이 말했다.“그래, 큰아빠 시간이 될 때 전화할게.”“네, 알겠어요. 큰아빠 전화 기다릴게요.”나예은은 나상준과 차우미와 함께 놀 수만 있다면 충분히 기다릴 수 있었기에 나상준의 말을 듣고 엄청나게 기뻐했다.차우미는 나상준이 누구와 통화하는지 몰랐지만 업무상의 일이라고 생각할 뿐 나예은이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그러다가 나상준의 입에서 큰아빠라는 세 글자를 듣는 순간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들고 나상준을 바라봤다.나상준이 그녀를 보며 말했다.“큰엄마도 같이 있는데 얘기할래?”나예은은 커다란 두 눈을 깜빡이며 고개를 끄덕였다.“네? 큰엄마와 같이 계세요?”사실 예전에 나예은은 나상준이 아닌 차우미에게만 계속 전화했었다. 그런데 이틀 동안 같이 지낸 보람으로 처음 차우미가 아닌 나상준에게 전화한 것이다.때마침 나상준이 차우미와 함께 있다고 하니 나예은 순식간에 행복과 기쁨이 가득했다.서혜지가 나예은의 옆에 있다가 그 말을 듣고 예상치 못한 일에 눈썹을 치켜올렸다.‘두 사람이 같이 있다고?’나상준은 휴대폰에서 들려오는 격동의 앳된 목소리를 듣고 차우미의 의아한 눈빛을 보며 말했다.“응, 같이 있어. 전화 바꿔줄게.”“네.”나상준이 휴대폰을 차우미에게 건넸는데, 그녀가 아직 놀라 있을 때 휴대폰이 눈앞에 왔다.차우미는 잠깐 망설이다가 휴대폰을 받아서 귀에 가져다 댔다.휴대폰은 나상준의 체온이 담겨 있는 듯 따뜻했다.“예은아.”“큰엄마, 깜짝 놀랐죠. 예은이 이번에는 큰아빠에게 전화했어요. 하하하...”차우미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나예은은 어찌나 기뻤는지 호탕하게 웃었다.나예은의 목소리를 들으며 나예은도 같이 웃었다.“그래, 큰엄마도 깜짝 놀랐어.”나예은과의 약속한 일을 이미 완성했기 때문에 차우미는 더 이상 생각하지 않고 있었는
차우미는 잠깐 멈칫하더니 휴대폰을 꺼내서 확인했다.휴대폰 화면에 신규 메시지가 뜨자 차우미는 하선주인 줄 알았는데 발신자는 온이샘이었다.그녀는 메시지를 클릭했다.[우미야, 탑승하면 나에게 메시지 보내줄 수 있어?]차우미는 메시지를 확인하고 곧바로 답장을 보냈다.[응, 알았어.]그러자 온이샘으로부터 또 잽싸게 미소를 짓고 있는 이모티콘이 왔다.차우미는 이모티콘을 보는 순간 조금 전에 대기실에서 온이샘이 휴대폰으로 좌석 업그레이드를 할 때의 모습이 떠올랐다.그녀는 손가락을 움직여 달력을 한참 동안 확인하다가 휴대폰을 가방에 넣고 라운지 안으로 들어갔다.어떤 일은 애매모호하면 안 되고 정확해야 했기에 안평으로 돌아가면 반드시 시간을 내서 온이샘과 만나 확실하게 얘기할 생각이었다.라운지 휴식 구에서 나상준은 소파에 몸을 기대고 앉아서 줄곧 라운지 밖의 복도를 바라보며 손에는 휴대폰을 들고 통화를 했다.“아주버님, 지금 바빠요?”서혜지의 목소리는 예의를 갖추었지만 조금은 긴장하고 조심스러웠다.나상준이 말했다.“무슨 일이에요?”그는 바쁜가 하는 물음에는 답변하지 않고 무슨 일인지부터 물었다. 아마도 상황에 따라서 다를 모양이다.그러자 서혜지가 서둘러 말했다.“다른 건 아니고요. 지금 예은이를 픽업했는데 예은이가 아주버님과 할 얘기가 있대요. 혹시 바쁘신데 폐를 끼치는 거 아닐까 해서 문의드리는 거예요.”나상준이 말했다.“안 바빠요.”서혜지는 예상했던 대답인 듯 즉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알았어요. 그럼, 예은이 바꿀게요.”“그래요.”나예은은 아주 조용하게 베이비시트에 앉아 있었는데 커다란 두 눈을 굴리면서 서혜지를 바라보며 나상준과 통화시켜 주기를 기다렸다.나예은은 나상준과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서혜지를 만나자마자 자신의 요구를 말했다.서혜지가 자기를 바꿔주겠다는 말을 듣자마자 나예은은 기쁜 나머지 두 눈을 깜빡거리며 서혜지 쪽으로 자그마한 손을 내밀어 휴대폰을 받으려고 했다.서혜지는 조급해하는 나예은의 표정에 미소를 지
하선주는 이제 차우미 옆자리에는 온이샘이여야 한다고 생각했다.게다가 온이샘은 하선주에게 특히 좋은 인상을 남겨서 온이샘에 대해 매우 만족하고 좋아했다.차우미는 워낙 하선주에게 숨길 생각이 없었기에 하선주가 눈치채자, 그냥 자연스럽게 대답하려고 했다.그런데 하선주가 갑자기 온이샘을 얘기할 줄은 몰랐다.차우미가 웃으며 말했다.“선배가 아니라 상준 씨랑 같이 가.”“나상준?”하선주의 미간이 순식간에 찌푸려졌고 얼굴도 일그러졌다. 마치 눈 깜짝할 사이에 맑은 하늘에 먹장구름이 낀 것 같았다.“나상준은 왜 너와 같이 있어? 둘이 뭘 하는 거야? 그런데 왜 안평으로 오는 거야? 나씨 가문에 무슨 일 있어?”하선주의 불만이 섞인 말투와 함께 질문들이 쏟아졌다.나상준과 온이샘에 대한 하선주의 태도는 하늘과 땅이었다.이런 하선주의 반응을 차우미는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할아버지와 할머니 뵈러 오는 거야.”“...”표정이 굳어진 하선주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차우미의 말 한 마디에 무슨 일인지 알아챘다.분명 나씨 가문의 이혜정이 나상준에게 직접 가서 사과하라고 명령한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나씨 가문 이혜정의 일 처리는 오늘날 젊은이들은 비교할 수도 없다.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선주는 마음이 불쾌했다.차우미는 하선주가 비록 말하지 않지만 듣고 있다는 걸 알고 계속해서 말했다.“엄마, 나씨 가문과 차씨 가문의 관계 때문이라도 상준 씨가 할아버지, 할머니를 뵈러 오는 건 정상적인 일이야. 그러니 화내지 마.”“내가 왜 화를 내? 그리고 화를 낼 필요도 없어. 그냥 안 보면 되지.”하선주가 불쾌함을 직설적으로 얘기하는 걸 듣고 차우미는 웃었다.“엄마, 이제 다 지난 일이야. 우리 이혼한 지도 벌써 몇 달 지났잖아. 상준 씨도 나도 이제 모두 각자의 삶이 있으니 두 가문은 예전대로 서로 왕래하면서 지내면 돼.”차우미의 아무렇지 않아하는 말을 듣고 있던 하선주는 순간 바늘에 찔린 것처럼 가슴이 아팠다.어렸을 때부터 말도 잘
“짐은 저 주세요.”나상준의 아무런 감정도, 온도도 없는 목소리가 두 사람의 귓가에 들렸는데 봄날 같은 분위기가 순식간에 깨졌다.온이샘은 시선을 살짝 돌려 나상준을 보았는데 나상준도 아무런 흔들림 없는 깊은 눈동자 온이샘을 보고 있었다.나상준은 지금 아주 담담하게 온이샘이 반드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진실을 말하고 있었다.차우미의 캐리어는 이제 나상준에게 넘겨줘야 했기에 온이샘은 캐리어를 잡았던 손에 힘을 꽉 주었다가 바로 풀고 나상준에게 넘겼다.차우미가 말했다.“내가 하면 돼.”그녀가 말하면서 손을 내밀었지만 이미 늦었다.차우미가 손을 뻗었을 때 골격이 분명한 손이 이미 캐리어를 잡고 자기 앞으로 가져갔다.나상준이 차우미를 바라보며 말했다.“가자.”차우미는 허공에 있는 손을 거두며 캐리어를 잡은 나상준의 손을 보더니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온이샘을 향해 말했다.“선배, 우리 안평에서 봐.”온이샘도 부드러운 미소로 대답했다.“그래, 안평에서 보자.”그리고 차우미는 곧바로 자리를 떠났다.온이샘은 그 자리에 서서 가냘픈 몸매가 자신의 시야에서 멀어지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 옆에서 함께 걷고 있는 키 크고 분위기가 차가운 남자도 보이자, 무의식적으로 주먹을 불끈 쥐었다.차우미가 다른 남자와 함께 가는 모습을 보니 마치 다른 남자와 함께 그를 멀리 떠나는 것처럼 마음이 아팠다.온이샘은 주먹을 꽉 움켜쥐고 억지로 이성을 회복했다.그는 온평에 가서 차우미를 만나면 마음속의 말을 모두 할 건데 그녀만 좋다면 온이샘은 두려운 것이 없었다.차우미와 나상준은 대기실을 떠나 VIP 라운지로 갔는데 아직 이른 시간이어서 서둘러 비행기를 탈 필요가 없었다.때문에 두 사람은 라운지의 휴식 구에 가서 앉았다.그러자 직원이 차와 디저트를 가져왔고 차우미는 휴대폰을 꺼내서 시간을 확인하더니 소파에 앉아서 차를 마시고 있는 나상준을 보며 말했다.“나가서 전화하고 올게.”나상준은 여전히 간단하게 알았다고 했다.차우미는 자리에서 일어나 가방을 들
하얀 셔츠, 연한 캐주얼 바지, 뼛속에서부터 뿜어 나오는 좋은 가정 교양과 준수하고 우아한 얼굴은 대기실의 밝은 조명을 받아 더욱더 환하고 사람들의 주의를 끌었다.나상준은 눈동자를 살짝 움직이더니 서두르지 않고 평온한 속도로 걸어갔다.“다 됐어?”모두가 한곳에 모여 발걸음을 멈추자마자 온이샘이 먼저 말했다.차우미는 고개를 끄덕이고 부드럽게 웃으며 대답했다.“응. 선배 이제 캐리어는 나 줘.”온이샘이 뭔지 몰라 흠칫하더니 말했다.“괜찮아. 내가 들게.”“그게 아니라, 선배, 우리 탑승구가 달라.”온이샘 얼굴에 있던 부드러운 미소가 순식간에 사라졌다.‘탑승구가 다르다고?’그는 머릿속으로 차우미가 나타나던 방향을 생각하더니 그제야 자신이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문제를 깨달았다.사실 온이샘은 비행기 탈 때 보통 퍼스트 클래스가 아닌 이코노미석을 타고 다녔다.가끔 중요하거나 급한 일이 있을 때만 퍼스트 클래스를 선택할 뿐 대부분의 경우에는 이코노미석이 익숙했기에 오늘도 습관적으로 티켓팅을 할 때 이코노미석을 예약한 것이다.하지만 나상준은 달랐다. 그는 지위와 신분 때문에 매번 퍼스트 클래스를 타야 했는데 따라서 차우미도 그와 함께 다닐 때마다 자연스럽게 퍼스트 클래스를 탔다.그런데 온이샘은 오늘 티켓을 예매할 때 이 부분을 놓친 것이다.온이샘은 잠깐 생각하더니 곧바로 말했다.“잠깐만, 나도 좌석 업그레이드하면 돼.”말을 마치고 그는 곧바로 휴대폰을 꺼내서 좌석 업그레이드를 시도했다.온이샘은 차우미가 이코노미석인 줄 알고 있었는데 만약 차우미가 퍼스트 클래스인 줄 알았다면 진작에 퍼스트 클래스를 샀을 것이다.조금 전에 차우미는 온이샘의 표정을 보고 있다가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는데 그녀가 입을 열기도 전에 온이샘이 먼저 말을 하는 바람에 차우미는 하려던 말을 하지 못했다.지금 온이샘의 행동을 보며 차우미는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온이샘의 선택을 간섭할 권리가 없다는 생각에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나상준은 차우미 옆
여가현과 통화를 마친 온이샘의 눈에는 미소가 가득했고 거기에는 굳은 의지도 담겨 있었다.여가현의 말을 듣고 그는 마음이 많이 안정되었다. 원래 차우미가 자신을 선택하지 않을까 봐 두려웠었는데 지금은 두려울 것이 없었다.나상준이 차우미 옆에 있다고 해도 이제 더 이상 불안해하지 않을 것이다.그 순간 가슴속으로부터 무한한 힘이 솟구쳤는데 온이샘의 얼굴에는 환한 미소가 번졌다.차우미가 자신을 인정했다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했기 때문이다.같은 시각, 공항 로비에서 나상준은 곧장 VIP 게이트로 향했는데 차우미는 처음에 아무 생각 없이 따라 가다가 가는 방향이 VIP 게이트인 것을 보고 무언가 떠올렸다.온이샘이 구매한 항공권은 퍼스트 클래스가 아닌 이코노미석이어서 그녀에게 보낸 사진도 일반 대기실이지 VIP 라운지가 아니었다.차우미는 그 생각을 하며 발걸음을 멈추고 옆에 있는 나상준을 불렀다.“상준 씨.”나상준은 키가 크고 다리가 길어서 발 폭이 차우미보다 컸지만, 앞에서 걷지 않고 차우미의 속도를 맞춰서 나란히 걷고 있었다.차우미가 발걸음을 멈추는 것을 보고 그도 멈추고 대답했다.“응.”차우미가 말했다.“선배는 이코노미석이어서 일반 대기실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어. 조금 전에 보내온 사진에서 봤는데 일반 탑승구였어. 상준 씨는 먼저 VIP 라운지에 가 있어. 나는 선배한테 가서 캐리어를 가지고 갈게.”VIP 라운지와 일반 탑승구가 다르기에 나상준은 그녀와 같이 갈 필요가 없었다.“그럴 필요 없어.”“응?”“같이 가자.”말을 마치고 나상준은 먼저 출발했다.차우미는 깜짝 놀랐다가 서둘러 그를 쫓아가며 말했다.“같이 안 가도 돼. 먼저 라운지에 가서 휴식도 하고 일도 해. 나랑 다니며 시간 낭비하지 말고.”나상준이 갑자기 발걸음을 멈추었다.그러자 차우미도 따라서 발걸음을 멈추고 나상준을 바라봤다.나상준은 차우미를 바라보며 말했다.“나도 같이 가면 안 돼?”차우미는 당황하며 말했다.“아니, 그런 건 아닌데. 나는 그냥...”“
온이샘은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알았어.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서흔이에게 전화해.”“그래.”그들은 더 이상 말하지 않고 전화를 끊었다.여가현이 전화를 끊고 휴대폰을 강서흔에게 건네자, 강서흔이 곧바로 물었다.“어때? 잘 된 거야?”여가현은 강서흔의 금방이라도 신랑이 되고 싶어 하는 간절한 표정을 보고 물 한 컵을 가져다 마시며 말했다.“뭐가 돼?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강서흔의 흥분했던 얼굴이 순식간에 가라앉았다.“왜 아직이야? 너무 느린 거 아니야? 나였다면 진작에...”말이 끝나기 전에 강서흔은 즉시 멈추고 조심스럽게 여가현을 바라보았다.여가현은 물컵을 내려놓고 그를 바라보며 헛기침을 두 번 하고 물었다.“진작에 뭐?”여가현의 헛기침 소리에 강서흔은 순간 가슴이 섬뜩했는데 그녀의 웃는 듯 웃지 않는 듯한 표정은 너무 무서웠다.강서흔은 무의식적으로 장난이라는 듯 웃으며 주제를 바꾸려고 했지만 여가현이 꼼짝하지 않고 자기를 바라보는 눈빛에 즉시 생각을 접고 몸을 움츠리며 조심스럽게 그녀에게 속삭였다.“나였다면 진작에 덮쳤을 거라고. 나는 네가 동의를 하든 안 하든 무조건 너와 함께할 거야.”여가현은 웃었다.“우미가 나인 줄 알아? 미리 말하는데 우미는 절대 나처럼 양보하고 굽히지 않을 거야. 나상준 씨 어머니도 비록 좋은 사이는 아니었지만 우미를 괴롭히지는 못했어. 우미와 나상준의 이혼도 나상준 씨 어머니와는 아무 관련이 없이 오로지 우미의 뜻이었어. 우미가 한 번 결정하면 아무도 말릴 수 없는 거야. 마찬가지로 우미는 한 번 이혼한 사람을 절대 다시 돌아보지 않는다는 거야. 때문에 절대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자기에게 어울리는 사람을 선택할 거야.”강서흔의 얼굴이 순식간에 하얗게 질렸다.두 사람이 다시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여가현의 기분은 늘 변덕스러웠다.예를 들어 조금 전에 온이샘과 통화할 때는 태도가 좋더니 지금 강서흔을 대하는 태도는 확연히 달랐다.사실 여가현의 마음에 여전히 불만이 있었는데 수년간 쌓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