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서 등이 꺼져 있었다. 창밖의 가로등 빛이 어렴풋이 들어와 방안의 어둠을 걷어냈다.선명하지는 않지만, 충분히 보였다.복도의 불빛이 방안에 비쳤고 동시에 센서 등이 켜졌다. 나상준은 책상에 엎드려 자는 차우미가 보였다.잠옷을 입은 그녀는 학생처럼 책상에 엎드려 자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이 나상준을 향해 있었다.깊은 잠이 든 차우미는 문이 열리는 소리에도 꿈쩍하지 않고 자고 있었다. 평온했다.그는 손가락을 살짝 움직이더니 조용히 방문을 닫았다.딸각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닫혔다.안으로 들어선 나상준은 조심스레 걸음을 옮겨 책상 앞에 놓인 의자를 들고 와 그녀의 옆에 앉았다.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댄 나상준은 다리를 꼬고 평온하게 차우미를 바라보았다.어떤 인기척도 내지 않고 눈꺼풀을 움직여 소리 없이 그녀를 바라볼 뿐이다. 소리 없이 부드럽게 움직였다. 봄날의 바람처럼, 호수의 물결처럼 잔잔하게 일렁거렸다.센서 등이 꺼졌고 침실 안에 정적만 가득했다. 어둠이 방 안에 깃들었다.그는 말없이, 꿈쩍도 하지 않고 평온하게 앉아 있었다.차우미를 바라보는 나상준은 편안해 보였다.차우미는 한 번 잠들면 이튿날까지 숙면한다.한밤중에 특별한 상황이 발생하지 않는 이상, 그녀는 깨어나지 않는다.차우미는 나상준 걱정에 좀처럼 편하게 잘 수 없었다.나상준의 술 냄새가 그녀의 코끝에 들어왔고 차우미가 잠에서 깼다.눈꺼풀을 살짝 움직여 천천히 눈을 떴다.그녀의 시야로 어둑어둑한 방 안이 들어왔다. 막 잠에서 깬 그녀는 나상준을 발견하지 못했다. 어쩌면 몽롱한 잠기운에 나상준을 인식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그래서 자기 앞에 앉아 있는 나상준을 발견하지 못했다.그러나 어둠에 점차 적응하면서 그녀의 시야로 나상준이 또렷하게 들어왔다.의자에 앉아 그녀를 바라보는 나상준의 어두운 눈빛이 느껴졌다.차우미는 멍한 얼굴로 몇 초간 굳어 있었다.몸을 일으킨 차우미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창문 밖의 가로등 빛이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나상준이 돌아온 것을 그제야
평소대로라면 그녀는 자리에 앉아 나상준을 기다렸을 것이다.나상준은 여전히 낮에 빗물에 젖은 셔츠를 입고 있었다. 그녀는 천천히 약을 옆에 올려두고 물을 컵에 따랐다.나상준이 문을 열어 배달원이 건넨 물건을 받고 문을 다시 닫았다.나상준은 얌전히 의자에 앉아 있지 않고 분주하게 움직이는 차우미를 바라보았다방안의 불빛이 그녀를 환하게 비추었다.긴 머리를 늘어뜨린 차우미는 이 세상의 아름다움을 집합한 것처럼 눈부셨다.나상준은 말없이 자리에서 서서 그녀를 눈 안에 담았다.그의 심장이 빠르게, 세차게 뛰었다.손가락을 오므리고 그녀를 향해 걸어갔다.차우미를 기다란 그림자가 덮었다."이것부터 마셔, 가루약이야."그녀가 약을 푼 컵을 나상준에게 건넸다.하지만 몸을 돌리고 나서야, 나상준과 발끝 정도 닿을 거리에 가까이 선 것을 알아차렸다.차우미는 멍하게 굳었다.나상준이 시선을 내리깔고 차우미를 바라보았다. 차우미의 놀란 기색이 그녀의 얼굴에 뚜렷하게 티 났다.나상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녀가 건넨 컵을 받아 컵 안에 든 약을 먹었다.차우미가 속눈썹을 내리깔고 의식적으로 뒷걸음질쳤다.너무 가까워 오히려 불편했다.그의 손에 들린 물건을 발견한 차우미가 말했다. "줘."그가 건네준 쇼핑백에서 체온계를 꺼냈다.설명서를 따로 보지 않아도 어떻게 사용하는지 알고 있다.그녀는 간단히 조작한 뒤 나상준을 쳐다보았다. "열 나는지, 안 나는지 몰라서 샀어. 체온부터 체크해.""음."나상준이 컵을 내려놓고 그녀를 바라보았다.그녀의 말에 순순히 따랐다.이마에 체온계를 대기 위해 발꿈치를 살짝 들었다. 나상준은 그녀보다 머리 하나가 더 컸다. 그래서 발꿈치를 들어야 했다.그러자, 나상준이 그녀를 향해 몸을 숙였다. 덕분에 수월하게 체온을 잴 수 있게 되었다.순간, 두 사람이 가까워졌다. 눈을 마주친 두 사람은 서로의 얼굴에 호흡이 맞닿을 정도로 가까이 있었다.그녀의 얼굴로 나상준의 술 냄새가 풍겨왔다.차우미는 살짝 당황했다. 몸이
차우미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자기를 낚아챈 나상준의 손을 발견한 차우미는 감전된 것처럼 몸을 움츠렸다. 하성우가 그녀의 손을 잡아 강제로 그의 이마에 댔을 때처럼 말이다.혼란스러웠다.그녀는 침착함을 잃고 발목이 삔 것을 잊은 채 황급히 뒷걸음질쳤다.마치 전장에 뛰어든 병사들처럼 비틀거리다가 곧 무게 중심을 잃고 뒤로 자빠지는 것 같았다.차우미의 입술이 살짝 벌어졌다. 그녀의 눈가로 공포가 드러났고 의식적으로 손을 뻗었다. 순간, 그녀의 팔을 낚아챈 나상준은 그녀의 허리를 안아 자기 쪽으로 당겼고, 순식간에 차우미는 나상준에 품에 안겼다.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난 일이다.차우미도 어찌할 새가 없이 일어난 일이다.차우미의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뒤로 자빠지는 줄 알았던 자기가 되려 나상준의 품에 안기게 되자 너무 놀라 어찌할 바를 몰랐다.어떤 반응도 할 수 없었다.유연한 그녀의 몸이 그의 가슴팍으로 안겼다. 두 사람은 밀접하게 닿아 있었다.그녀가 자기 품에 안기는 순간, 나상준의 눈빛이 변했다.잠잠했던 바다에 소용돌이가 일어나기라도 한 듯, 더는 평온하지 않았다.고요한 침실에는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센서 등이 밝아졌다가 꺼지기까지, 방 안의 모든 물건이 다시 잠들기까지 고요함만 감돌았다.차우미의 심장이 쿵쾅거리며 평소의 침착함을 잃고 뛰어댔다. 머리가 뒤죽박죽 뒤엉킨 차우미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난감했다.눈앞을 찾아온 어둠에 슬쩍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보며 정신을 차렸다."어... 미안."체온을 재려다가 되려 이상한 꼴이 되었다.그녀도 예상치 못한 결과다.그녀는 사과하며 애써 침착함을 되찾았다.차우미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고마워."말을 마친 차우미가 손으로 나상준을 가볍게 밀쳤다. 나상준이 그녀를 잡아주지 않았더라면 그녀는 더 크게 다쳤을 것이다.신중하게 행동하기로 한 차우미는 그를 세게 밀지 않았다. 가볍게 밀쳤다.계속 부상을 당한 채로 생활할 수 없었다. 일어날 수 있는 사고를 미리
나상준은 매우 세심했다, 차우미도 그에게 고마웠다.몸을 살짝 뒤로 움직인 차우미는 자리에 똑바로 서 있었다. 나상준의 팔은 여전히 그녀의 허리를 끌어안고 있었다.그녀는 나상준의 품에서 시종일관 벗어날 수 없었다. 그녀가 의식적으로 거리를 두자 나상준이 그녀의 손을 잡았다.차우미가 멍한 눈길로 나상준을 쳐다보았다. 나상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녀의 손을 붙잡아 부축하려 했다. "잡아."차우미는 그제야 뒤에 있는 테이블을 의식적으로 잡았다. 그제야 나상준이 팔을 거두었다. 차우미가 바닥에 안전히 서고 나서야 마음을 내려놓은 것이다.불은 여전히 켜지지 않았다. 나상준은 불을 켜기 위해 움직였다. 어두컴컴한 방이 밝아졌다.차우미가 의식적으로 눈을 감았다가 떴다. 그런데 나상준이 갑자기 그녀를 안아 침대에 눕혀버렸다. 차우미는 아무 반응도 할 수 없었다.그녀가 어떤 반응을 보이기도 전에 그는 두 손으로 그녀의 양 옆을 받치고 몸을 숙여 그녀에게 다가갔다. "체온."나상준의 야릇한 자세는 마치 당장에라도 그녀에게 뽀뽀라도 할 기세 같았다. 그러나 나상준의 입에서 나온 말은 예상 밖의 말이다. 차우미는 더는 예민하게 움츠러들지 않았다.자기가 다시 넘어질까 봐 걱정되어 나상준이 이런 행동을 하는 거라고 여겼다. 그래서 민폐가 되지 않기 위해 차우미는 정신을 가다듬었다.손에 꼭 쥐고 있던 체온계를 그의 이마에 대고 눌렀다.띡-기계음이 울렸고 체온계에 36.8이라는 수치가 명확하게 떴다."36.8도야, 열 안나." 차우미가 미소 지었다.다행이라 여기며 환하게 웃었다.나상준이 눈을 떴다. 그녀의 맑은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앞으로 불현듯 거실에서 그가 돌아오길 기다리던 그녀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그녀의 뒤로 춘란 한 그루가 있었다.차우미는 춘란 앞에 서서 그를 향해 미소 지었다.쿵, 쿵, 쿵...심장 박동 소리가 그의 명치를 때렸다. 세게 부딪치면서 그의 울대까지 진동이 느껴졌다."응."나상준은 후회되었다...
진현의 얼굴에 미소가 감돌았다. 온화한 그의 눈빛에는 그녀를 향한 애정으로 가득했다. "혜민아, 난 상준이가 아니야.""너도 알고 있잖아."순간, 주혜민이 억눌렀던 눈물을 쏟아냈다. "그래, 당신은 나상준이 아니야. 당신은..."그녀는 나상준이 진현처럼 그녀를 따듯하게 대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주혜민은 다시 술병을 들어 입에 술을 털어 넣었다. 그녀의 마음은 상처로 곪았다.진현은 눈물을 흘리는 주혜민을 바라보다가 휴지를 들어 그녀의 눈가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혜민아, 그만 내려놔."순간, 술을 마시던 주혜민의 행동이 멈추었다.고개를 돌려 실눈을 뜨고 진현을 쳐다보았다. 고통스러워하던 모습이 온대 간대 사라졌다. 차가운 모습만 남아 있었다. "내려 놓으라니? 진현, 무슨 뜻이야?"급격히 표정이 변한 주혜민 때문에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던 진현도 손을 거두고 그녀를 마주 보았다. "남자는 진심으로 좋아하는 여자랑 같이 있고 싶고, 키스하고 싶고, 잠자리 가지고 싶어해. 그 여자랑 결혼하고 싶고, 평생을 살고 싶어하지.""그런데 상준이는...""닥쳐!"주혜민은 진현의 말을 중도에 끊어버렸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선 주혜민이 문을 가리키며 분노했다. "꺼져."진현은 그녀의 이런 모습을 예상이라도 한 듯 놀라지 않았다.자리에서 일어난 그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일찍 쉬어."진현은 휴지를 쓰레기통에 버린 뒤 밖으로 나가 버렸다. 주혜민은 방문이 닫힐 때까지 주먹을 꽉 쥐었다. 그녀는 손에 든 병을 바닥에 힘껏 내리쳤고, 쾅하는 소리와 함께 술병이 산산이 조각났다.방문을 노려보는 주혜민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몸과 마음에 화가 차올라 당장에라도 그녀를 집어삼킬 것 같았다.'좋아하는 여자랑 함께 있고 싶고, 키스하고 싶고, 잠자리를 갖고 싶은 게 남자라고? 결혼하고 평생 함께하기를 바란다고? 허. 나상준이 그 여자랑 결혼한 이유가 그녀를 사랑해서라고? 그녀를 사랑하는데, 왜 3년간 둘 사이에 아이가 생기지 않은 거지?
사람들을 이끌고 회성의 곳곳을 돌아다니며 유머러스하게 해설하는 하성우 덕분에 웃음소리가 끊기지 않았다.눈 깜짝할 사이에 3일은 지날 것이다. 그러면 첫 번째 단계의 작업이 끝난다.하성우는 사람들에게 휴식할 시간도 줄 겸, 하루 동안 회성의 유명한 거리와 번화가를 돌아다니며 회성의 현대 문화를 느끼게 했다.차우미는 아침부터 분주하게 움직였다. 발목이 다 나아 혼자 걸을 수 있게 되었다. 며칠동안 나상준이 안아주고 돌봐준 덕분에 그녀의 발목이 아주 빠르게 회복되었다.하지만 병원에 가서 재검을 꼭 받아야 했다.그날이 바로 오늘이다.미리 진료 예약을 해뒀다.차우미가 나갈 준비를 하고 있을 때쯤, 아침 러닝을 끝내고 돌아온 나상준이다. 두 사람은 아침 식사를 한 뒤 함께 움직이기로 했다.두 사람은 아주 규칙적인 일상생활을 했고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었다.발목을 삔 자기 때문에 나상준은 아무것도 못하고 그녀만 케어했다고 여긴 차우미는 마음이 편치 못했다.그녀를 돌보기 위해 그녀의 모든 일정에 동행했다.그래서 그녀도 이렇게 빨리 회복할 수 있었다. 그래서 나상준을 도울 수 있는 한 뭐라도 하고 싶었다.예를 들면, 드라이클리닝을 한 그의 옷을 챙겨 파우더룸에 정리를 한다든가, 그가 달리기하고 돌아오기 전에 그녀는 그가 목욕 후 입을 옷을 파우더룸 상단에 정리해 놓는다든지... 이렇게 하면 그가 목욕 후 바로 입을 수 있어 시간을 절약할 수 있었다.마치 혼인 기간에 그녀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던 것처럼.차우미는 받은 것이 있으면 돌려줘야하는 것도 있어야 한다고 여겼다. 나상준이 그녀를 돌봐줬으니, 그녀도 나상준을 도와야 했다.나상준이 돌아왔을 땐, 차우미는 책상 앞에 앉아 일하고 있었다.그는 창문 앞에 앉아 일하는 사람을 바라보다가 욕실로 가서 목욕하고 곧바로 파우더룸으로 가 탁자 위에 가지런히 놓여 있던 옷을 가져다 입었다.차우미는 나상준이 파우더룸에 들어간 것을 보고, 자리에서 일어나 컵에 따듯한 물을 따라 탁자 위에 올려놓았
나상준은 방안에서 통화했다. 덕분에 차우미도 그의 목소리를 또렷하게 들었다. 한 공간에서 못 듣는 게 더 어려웠다.통화 소리에 차우미는 멈칫하더니, 다시 일에 집중했다.나상준도 이젠 자기 업무에 복귀할 때가 되었다.차우미도 정리를 한 뒤, 두 사람이 호텔로 나와 아침을 먹고 병원으로 향했다."회복이 잘 되었네요. 다시 삐끗하지 않는 이상, 별문제 없을 겁니다." 엑스레이 사진을 찍어 완쾌 정도를 살핀 뒤 나상준이 의사를 바라보며 말했다."따로 주의 해야 할 게 있나요?""네, 회복이 잘 되고 있지만, 장시간 보행은 아직 안 됩니다. 특히 고르지 못한 곳은 가지 않는 게 좋습니다. 다시 삐지 않게 주의하시고요.""알겠습니다."검사를 맞힌 두 사람은 L 거리로 향했다.차우미가 검진하는 동안, 다른 사람들은 미리 집합했다. 차에 오른 뒤, 나상준은 하성우에게 연락해 구체적인 위치를 알아냈다. "L 거리 동문으로 가.""네."운전기사가 나상준이 말한 곳으로 향했다.차우미는 나상준이 전화를 받고 바로 공항으로 갈 줄 알았다.그러나 나상준은 그녀와 동행했다.어쩌면 그녀를 하성우에게 데려다 준 뒤 공항으로 갈지 모른다고 여겼다.병원에서 L 거리까지 거리가 있었다. 아침 시간이라 차가 막혀 도착하는 데 30분이 걸렸다.나상준과 차우미가 차에서 내렸다. 광장에 모여 조각상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하성우는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차우미와 나상준이 도착한 것을 발견한 하성우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저기 두 분도 도착하셨네요."그의 말에 사람들도 시선을 돌렸고 두 사람을 발견했다.특히 진정국이 유난히 반가워했다.며칠 간, 그는 나상준를 주의 깊게 바라보고 있었다. 차우미가 발을 다치는 바람에 나상준이 곁에서 그녀를 보살폈다. 그녀의 발이 바닥에 닿지 않게 하려고 항상 안고 다녔고 귀찮거나, 힘든 티를 내지 않았다.아주 보기 드문 광경이다.나상준 같은 지위에 있으면 저런 일을 굳이 자기가 할 필요 없었다
두 사람을 매일 이렇게 보고 웃으면 수명이 늘어 몇 년은 더 살 수 있을 것 같았다.나상준은 하성우가 싱글벙글 웃는 것을 바라보았다. 하성우의 웃음 속에는 비웃음과 기대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언제 벌어질지 모르는 웃긴 상황을 기대하는 눈치다. 하지만 나상준은 무덤덤하게 대꾸했다."음."하성우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 "그간 여기서 시간을 많이 허비했으니 이젠 돌아가서 일 처리부터 해.""내가 형수 돌볼게."하성우가 생글생글 웃으면서 말했다.옆에서 듣고 있던 하 교수가 하성우를 흘겨보더니 엄숙하게 말했다. "어떻게 된 애가 나날이 가벼워 져!"하성우는 하 교수의 호통에 어색하게 웃으며 황급히 변명했다. "내 입이 말썽이네요. 신경 쓰지 마세요."하성우의 성격이 어떤지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며칠간 하성우와 지냈던 사람들은 그가 얼마나 쾌활하고 유쾌한 사람인지 알고 있다.하성우와 나상준이 절친한 사이라는 것도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친한 사이에 할 수 있는 농담이었기에 사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차우미가 천천히 조각상을 향해 걸어갔다.하 교수는 차우미를 자애로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그는 차우미가 좋은 사람인 것을 며칠간 지내면서 절실히 깨달았다.차우미는 성미가 급하지 않고, 일 처리가 꼼꼼하고 진지했다. 생각도 깨어있었고 사람됨이 매우 예의 바르며, 진퇴를 잘 알고 있어 결점을 찾을 수 없었다.하 교수가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자기 손자가 저렇게 좋은 아가씨를 만나길 바랐다.하 교수의 머릿속에 누군가 떠올랐다. 그가 웃음을 터트렸다.사람 보는 눈은 나상준의 할머니가 훌륭했다. 차우미는 나상준의 할머니가 손수 데리고 온 며느리다.나중에 기회가 되면 나상준의 할머니를 직접 찾아뵙고 자기의 천방지축 손자에게 어울리는 신붓감을 추천해달라고 할 생각이다.하성우는 나상준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았다. 혼자 흥에 겨워 떠든 것에 대해 속죄할 뿐이다.차우미는 조각상에 몰두했다. 하성우가 황급히 달려가 그녀에게 조각상을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