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다정의 말을 들은 시리우스는 그 의미를 바로 알아차렸다.“아가씨 농담도 참. 아가씨께서 이 거대한 연구소의 경영을 맡겼으니 당연히 저는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죠. 게다가 전문가들도 귀한 인재들이니 아가씨를 위해서 이곳에 남겨두려면 더 잘 대해주는 게 당연한 거죠.”시리우스는 고개를 살짝 숙이며 정중한 자세로 그녀의 옆에 섰다.방금 전 그의 말은, 그가 하는 모든 일이 고다정을 위한 것임을 암시했다.고다정 역시 그 뜻을 알아듣고 입꼬리를 씩 올리며, 감정이 담겨있지 않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그렇다면 아저씨가 하던 일을 멈추게 한 건 제 잘못이네요.”“아가씨, 그런 말 하지 마세요. 저를 위해서 내린 결정이잖아요.”시리우스는 여전히 고다정과 기 싸움을 하고 있었다.하지만 고다정은 더 이상 그런 영양가 없는 대화를 나누고 싶지 않았기에,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채 선생님께서 깨어나면 아저씨에게 제대로 설명드릴 거예요. 그러고 보니 내일이면 채 선생님이 깨어나실 때가 됐네요. 내일이 3일째인데 어젯밤 병원에서 아무도 소식이 없는 걸 보니 위험한 상황은 넘긴 것 같아요.”그녀는 말하며 시리우스의 표정을 살폈다.하지만 실망스럽게도 시리우스는 위선에 익숙해진 것인지, 아니면 진짜로 아무것도 거리낄 게 없는지, 표정에서 어떤 의미심장한 변화도 찾아볼 수 없었다.역시 사부님의 곁에 오랫동안 머물렀던 명성에 걸맞게, 동요하지 않는 침착함이 극에 달했다.두 눈을 깜빡이던 시리우스는 속으로 무슨 계산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겉으로는 고다정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채 선생님은 정말 좋은 분이니까 아무 일 없을 겁니다. 그냥 때가 되면 채 선생님께서 저를 위해 해명해 주셨으면 좋겠네요. 아가씨도 제 휴가 없애지 말아 주세요. 간만에 쉬는데 이틀 푹 쉬고 싶네요.”“걱정 마세요. 때가 되어 내키지 않으면 시간 더 드릴게요. 그리고 아저씨도 제가 연구소를 너무 오래 방치했다는 걸 상기시켜 주셨잖아요. 게으름 부린 거니까, 사부님께서 꾸짖으시면 벌
고다정은 소민의 보고를 듣고 의자에 몸을 기대며 말했다. “소민 씨의 말을 듣고 보니 저 사람은 그저 길잡이인 것 같네요.” “길잡이라...” 소민은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더니 고다정의 뜻을 알 것만 같았다. “알겠습니다. 제가 계속 주시하도록 하겠습니다.” 고다정은 머리를 끄덕이고는 물었다. “은미는 어디 다친 데 없대요?” “은미 씨는 병원에 있는 것이 아무래도 위험할 것 같아 제가 집으로 돌려보냈습니다.” 소민은 자신이 한 일을 숨기지 않고 사실대로 말했다. 평소 같지 않은 소민의 행동에 고다정은 조금 의아했다. 궁금한 나머지, 고다정이 물으려던 찰나 또 한 통의 전화가 들어왔다. “병원 쪽은 계속 소민 씨가 수고해 줘요. 준재 씨의 전화가 걸려 와 먼저 끊을게요.” 말을 마친 고다정은 소민과의 통화를 마치고 여준재의 전화를 받았다. “마무리 작전이 끝날 때까지 전화하지 않는다고 했잖아요?” 고다정은 배시시 웃으며 말을 이었다. “혹시 마무리 작전이 끝났나요?” 여준재는 그녀의 들떠 있는 목소리에 웃으며 대답해 주었다. “마무리 작전은 끝났지만 아직 처리해야 할 일이 조금 남아서 당분간 여기에 조금 더 머물러 있어야 할 것 같아요.” “한동안 더 있어야 해요?” 실망감에 가득 찬 고다정의 목소리를 들은 여준재는 웃으며 물었다. “왜요? 혹시 제가 보고 싶나요?” “네, 엄청 보고 싶어요.” 지금의 고다정은 조신했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자신의 마음을 한껏 표현하기에 바빴다. 고다정의 고백에 여준재는 웃으며 말했다. “나도 당신이 보고 싶어요. 내가 갈 때까지 기다려요.” “그럼 빨리 와야돼요. 준이랑 윤이가 아빠의 얼굴을 까먹을 지경이에요.” 고다정의 농담에 여준재는 허허 웃었다. 한참 농담을 주고받다가 고다정은 마무리 작전의 결과와 여준재의 안부를 묻지 않은 것이 떠 올랐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고다정의 다정한 목소리에 여준재는 자기도 모르게 미소를 띠었다. “다친 곳은 없으니 걱정 말아요. 다정
”안돼요!” 여준재는 고민도 하지 않고 고다정의 제안을 거절했다. 왜냐하면 그곳은 너무 위험하기에 고다정이 다칠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다정은 여준재의 말을 무시한 채 엄숙한 표정을 짓고 말했다. “두 가지 제안을 할게요. 첫째, 내가 당신에게 가는 것. 둘째, 당신이 나에게 오는 것. 선택해요.” 고다정이 화가 난 것을 알았지만 여준재는 쉽게 결정하지 못했다. 비록 마무리 작전이 끝이 났지만 이곳은 아직도 여준재의 도움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아주 소부분의 사람들이 아직도 좋게 담판을 지으려 하지 않고 호시탐탐 습격을 할 기회만 엿보고 있기에 고다정이 여기로 오는 것을 반대했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여준재의 모습을 본 고다정도 그가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이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유라는 냉전 중인 두 사람의 모습을 보더니 무슨 수가 생각이 났는지 교활한 눈빛으로 변했다. “두 분, 저한테 좋은 방법이 있는데 들어볼래요?” 그녀의 말에 두 사람의 시선은 그녀를 향했고 유라는 금방 삶은 닭을 들고 여준재의 곁으로다가가 웃으며 말했다. “준재는 다정 씨가 여기로 오는 것에 반대하고 다정 씨는 준재가 아픈 몸으로 혼자 여기에 있는 것이 걱정되니 이렇게 하는 것은 어떨까요? 다정 씨가 저를 믿으신다면 제가 매일 준재의 옆에서 치료를 잘 받고 있는지 감시할께요. 만약 준재가 치료받지 않는다면 바로 다정 씨한테 보고할게요.” 화면 속에 가식적인 웃음을 지으며 수작부리는 유라의 모습에 고다정은 어이가 없었고 이런 유라의 모습은 고다빈과 똑같았다. 하지만 고다정이 허락도 하기 전에 여준재는 마음대로 동의했다. “다정 씨, 이 방법이 좋을 것 같네요. 유라가 저를 감시하도록 하고 만약 제가 치료에 협조하지 않는다면 제가 돌아가면 그때 혼내요. 여긴 너무 위험하기 때문에 저는 다정 씨가 오는 것은 원치 않아요.” 여준재가 자신을 걱정하는 것을 고다정은 알지만 그래도 그녀는 방금전 유라의 제안에 동의한 그가 얄미웠다. 이
또 자신의 전화를 끊은 고다정의 행동에 여준재는 아주 당황했다. 여준재는 고다정의 화가 아직도 풀리지 않았을까 봐 구남준더러 내일 빌라로 선물을 보내라고 지시했다. 이 일을 알 턱이 없었던 고다정은 전화를 끊고는 후회했다. “고다정 이 바보! 거기서 화를 내면 어떡해, 유라 그 여자가 고의로 준재 씨와 나 사이를 이간질하려는 걸 아는데 바보 같이...” 고다정은 혼잣말로 중얼거리다가 다시 여준재에게 전화를 하려고 했지만 이내 핸드폰을 내려놓고 남은 업무처리에 집중했다. 이 시각 시리우스의 아파트에서. 시리우스는 위성 전화를 받고 얼굴색이 변했다. “뭐? 여준재가 아무 일도 없다고?” “그뿐만 아니라 우리도 큰 손해를 입었어. 그놈이 글쎄 성씨 가문이랑 손잡고 우리 4가문을 골탕 먹였어. 그동안 당신이 열심히 한 것들이 있기에 알려주는 건데 당신의 위치가 노출됐을 거야, 그러니 멀리 도망쳐. 그러다 성시원이 돌아가면 넌 죽었어.” 수화기 너머의 그 사람은 자신이 할 말만 하고 전화를 끊었다. 통화를 마친 시리우스는 공포에 휩싸였다. “그놈의 계략이었다니, 제기랄. 이젠 모두 끝이야, 내가 힘들게 쌓아 올렸던 나의 명성은 이제 끝이야! 이대로는 안 돼, 성시원이 오기 전에 도망가야 해...” ... 이튿날, 고다정은 두 아이와 몇 명 어르신을 모시고 아침 식사를 마친 뒤 소민에게서 보고를 받았다. “사모님, 시리우스가 사라졌습니다.” “사라졌다고요?” 의외의 소식이었다. “이미 사람을 시켜 고속도로를 지키게 했습니다.” 소민의 보고를 들은 고다정이 말했다. “시리우스는 이미 도망쳤을 겁니다. 그러니 고속도로의 인원은 철수해요.” 고다정이 이렇게 말하는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어제저녁, 여준재가 마무리 작전을 끝마쳤다는 일이 생각났고 또 시리우스가 성시원의 옆에서 아무도 모르게 몇 년 동안 스파이로 있었던 것은 필시 그를 도와주는 막대한 세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소민은 처음으로 작전에 실패한 탓에 기분이 별로 좋
고다정은 화가 났지만 더 이상 여준재한테 뭐라 하지 않았다. 고다정은 자신과 여준재사이의 감정을 믿고 있었고 또 매번 트러블이 생길 때마다 항상 여준재가 먼저 고다정을 달랬다. 고다정도 생각해 보니 유라때문에 여준재와 불필요한 싸움을 하는 것은 둘 사이의 감정만 상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났고 그사이에 많은 일이 발생했다. 흔들렸던 YS그룹의 상황도 이젠 안정되었고 여범준도 이번 일로 다시 안락한 노후생활을 즐기고 있었다. 연구소 쪽의 일도 고다정의 노력으로 해결되는 중이었는데 채성휘는 아직도 깨어나지 못했다. 이날, 고다정은 연구소의 일을 마치고 병원 앞 꽃집에서 꽃다발을 사 들고 병실로 찾아가 보니 채성휘는 이미 일주일 전에 중환자실로부터 일반병실로 옮겨졌다. 병실 안에서 채성휘를 정성껏 돌보는 임은미의 모습에 고다정은 마음이 아팠다. 똑똑똑... “은미야, 나왔어. 오늘 성휘 씨의 상태는 좀 어때?” 고다정은 들고 왔던 꽃다발을 병상 머리맡에 놓인 꽃병에 꽂았다. 임은미는 고다정이 꽃병에 꽃을 담는 모습을 보고 수심 가득 찬 얼굴로 말했다. “전이랑 똑같아. 의사 말로는 이번 주에도 깨어나지 못한다면 영영 깨어나지 못하거나 식물인간 상태가 될 거래.” 임은미의 말에 고다정은 몹시 자책했지만 채성휘의 치료를 포기하려 하지 않았다. “내가 의사 선생님께 가서 물어볼게, 다른 치료 방법이 없는지.” “안 가도 돼. 소용없어. 내가 다 물어봤거든.” 임은미는 머리를 절레며 말하고는 병사에 누워있는 채성휘 쪽으로 다가가 이어 말했다. “다정아, 난 다른 사람처럼 평범하게 연애할 수가 없나 봐. 내가 여태까지 성휘 씨를 짝사랑한지 십몇 년이나 됐지만 옆에서 다른 여자랑 만나는 것만 봐왔어. 이제야 용기를 내서 나의 마음을 표현하려 했지만 성휘 씨를 영원히 잃을 수도 있다는 통보를 받았네?” 고다정은 임은미의 말에 그녀를 꼭 안아주며 말했다. “바보 같은 생각하지 마, 성휘 씨가 그동안 너무 피곤해서 조금 더
그 시각 진 씨 저택에서. 점점 안정을 찾아가는 YS그룹을 보며 진시목은 점점 불안했다. 이번 일로 YS그룹에 큰 영향을 줄 수 있을 거라 믿었는데 결과가 생각대로 되지 않으니 익명의 브로커에게 사실의 경과를 물어보고 싶었지만 연락이 되지 않자 고다빈도 불안했다. 이번 계획으로 고다빈은 고다정과 YS그룹에게 피해를 줄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유독 여준재가 돌아오지 않았다는 사실에 그녀는 기뻤다. 아직까지 여준재가 돌아오지 않으니 고다빈은 그가 살해당했을 거라고 굳게 믿고 있었고 여준재가 없으면 고다정이 어떻게 자신 앞에서 큰 소리를 칠수 있는지가 궁금했다. 하지만 고다빈이 고다정을 찾아가기도 전에 나쁜 소식이 들려왔다. 바로 진시목이 기다렸던익명의 브로커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익명의 브로커는 고다정과 YS그룹을 건들면 안된다고 며칠후면 여준재가 돌아올 것이라고고다빈에게 연락을 했다. “뭐? 당신들이 여준재를 처리한게 아니었어?” 고다빈은 이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누가 그러던? 여준재를 처리했다고?” 익명의 브로커가 한 말에 고다빈은 자신의 생각을 말하기가 창피했다. “하지만 내가 고다정을 건드리지 않아도 그들은 내가 당신의 계획대로 행동한 것을 이미 알고 있을 수도 있어.” “걱정 마, 그 일은 내가 알아서 할 수 있으니 너에게 찾아가지 않을 거야.” 익명의 브로커는 고다빈을 안심시키고는 경고했다. “하지만 당신이 나의 말을 듣지 않고 멋대로 행동 한다면 그 후과는 당신 스스로가 책임져.” 그 말에 고다빈은 당연히 멋대로 고다정을 찾아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 이때 익명의 브로커는 이어 말했다. “진시목에게 전해, YS그룹의 주식도 10%나 가졌으니 YS그룹의 주주총회에 참석할 생각이나 해.” “YS그룹에 가는 건 너무 위험하잖아.” 고다빈은 진시목이 YS그룹에 가는 것은 너무 위험한 일이었기에 반대했다. “내가 명령하는 일에 언제 너의 의견이 필요했어?” 말을 마친 익명의 브로커는 고다
유라가 운이 좋았던 것인지 아니면 일부러인지 매번 그녀가 여준재의 방에 들어갈때마다 그녀는 항상 여준재와 여진성이 영상 통화하는 것을 볼수 있었다. 그렇게 유라는 자연스럽게 여진성과 대화를 할 수 있었고 두 남자는 이상한 점을 발견하지 못했지만 중요한 것은 여진성과 여준재는 유라를 사업 파트너와 친구로만 생각할 뿐이였다. 한편 고다정은 성시원과 여준재가 오는 날만을 손 꼽아 기다리자 준이와 연이도 덩달아 아빠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여준재가 한 달만 늦었더라면 준이와 연이의 졸업식에도 참가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날도 고다정은 평소와 똑같게 연구소로 가는 길에 제일 상대하기 싫은 심여진에게서 전화가 왔다. 고다정은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녀의 전화를 거절하자 얼마 지나지 않아 또 심여진에게 전화가 왔다. 하지만 이번에도 역시 고다정은 그녀의 전화를 거절했다. 그러자 심여진은 그녀에게 짧은 메시지 하나를 보냈다. 고다정이 메시지를 확인하려고 할 때, 소담의 핸드폰이 울렸고 전화를 받은 그녀는 무슨 말을 들었는지 얼굴이 하얗게 질려있었다. 문자를 받은 고다정 역시 소담과 같은 반응이었다. “얼른 차 세워요!” 그녀는 소리를 질렀다. 알고보니 심여진은 고다정에게 강말숙이 자기 집에 있다고 메시지를 보냈던 것이다. 소담도 전화를 끊고 고다정에게 말했다. “사모님, 외할머님께서 위험한 것 같습니다.” “네, 알아요.” “바로 별장으로 가죠.” 고다정은 화를 억누르며 말했고 분위기가 안 좋다는것을 눈치챈 기사도 고씨 저택으로 그들을 모셨다. 고씨 저택에 도착한 고다정은 소담과 함께 문앞에서 초인종을 누르니 문이 열렸다. 고다정은 심각한 얼굴로 별장 안으로 들어가보니 거실에는 심여진과 고경영만 있을 뿐이었다. “할머니는요?” “걱정 마, 네 할머니는 안전해.” 고경영은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것 같았지만 그의 속은 말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눈앞에 서 있는 고다정이 마치 여준재와 비슷한 기를 내뿜고 있어 낯설고 두려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준
“여보, 다정이 아직 젊은데 과부로 사는 건 아깝지 않아요?”심여진의 갑작스러운 한마디가 거실의 정적을 깼다.고다정은 고개를 홱 돌려 날카로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방금 뭐라 하셨어요?”“왜? 내 말이 틀렸어? 여준재가 죽어서 이렇게 오랫동안 얼굴을 보이지 않는다는 걸 지금 모르는 사람이 있어? 남편이 없는 여자가 제일 불쌍해.”심여진은 입으로는 불쌍하다고 했지만 얼굴은 깨고소한 듯했다.고다정은 이 말을 듣고 갑자기 웃음이 터졌다.한동안 조용하던 고경영이 갑자기 튀어나와 말썽을 부린 것이 이런 오해 때문이었다는 것을 그제야 알았다.심여진은 그녀가 웃는 것을 보고 불쾌해하며 쏘아보았다.“왜 웃어?”“아니에요. 그래서요? 하고 싶은 말이 뭔데요?”고다정은 눈썹을 치켜올리며 웃을랑 말랑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그녀는 직감적으로 이 여자가 좋은 마음으로 자기를 불쌍해할 리 없음을 알았다.사실상 확실히 그렇다.아니나 다를까 심여진이 음흉한 속내를 드러냈다.“네가 여씨 가문을 위해 아이 둘을 낳았지만 어쨌든 여준재와 결혼하지 않았으니까 여씨 가문의 사람이라 할 수 없잖아. 그리고 여자는 옆에 남자가 없으면 물이 부족한 꽃처럼 천천히 시들고 떨어지게 돼. 그렇지 않아요? 여보.”그녀는 말하면서 옆에 있는 고경영을 향해 눈을 깜박거렸다.고경영은 어리둥절해하다가 이내 심여진의 뜻을 깨닫고 두 눈을 반짝였다.“네 여진 이모 말이 맞아. 여자는 남자가 없으면 사는 게 고달파. 어쨌든 너는 내 딸인데, 아버지가 돼서 네가 고생하는 꼴을 어떻게 보겠니? 네가 후반생도 걱정 없이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도록 좋은 배필을 찾아볼게.”이 말이 끝나자마자 노기를 띤 비웃음 소리가 입구에서 들려왔다.“당신들 고씨 가문은 진짜 주제 파악을 못 하는 군요. 언제부터 우리 여씨 가문의 일을 고씨 가문에서 결정했어요?”이 말과 함께 심해영이 화난 표정으로 거실 한복판에 나타났다.여진성이 따라 들어오며 위험한 눈빛으로 고씨 부부를 노려보았고 말투도 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