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다정의 말을 다 듣고 나서 전문의는 과연 생각했던 그대로라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제 생각이 맞는다면 아마 그때 최면에 걸리신 거 같습니다. 그리고 주입된 약물은 최면을 거는 데 보조적인 역할을 하는 정신에 관한 약물인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러니 알아내시지 못하는 겁니다.”“그럼, 그 뒤로 자꾸 졸리고 자는 건 어찌 된 일인가요?”고다정은 의문이 가득한 얼굴로 전문의를 바라보았는데, 여범준도 덩달아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모습으로 바라보았다.그는 외국에서 두 사람에게 이러한 일이 일어난 것을 모르고 있었다.고다정의 질문에 전문의는 잠시 사색하더니 되물었다.“요즘도 자주 졸리십니까?”“아니요.”고개를 저으며 고다정은 대답을 했으나 마음속으로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공해로 가서 여준재를 만난 후로부터 졸림에 빠져드는 상황이 없었으니 말이다.이에 전문의는 고개를 살짝 들고 말했다.“만약 요즘에 졸음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그전까지 정신적 보조 약물을 사모님도 모르는 사이에 복용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효능을 강화하는 약으로 배후자가 사모님에 대한 정신적 컨트롤을 더욱 강화했을 것으로 보입니다.”“효능 강화요?”고다정은 화들짝 놀란 얼굴로 되물으며 이윽고 안색도 한껏 복잡해졌다.전문의가 아니었다면 고다정은 줄곧 자기가 무슨 이상한 독에 중독되어 내내 졸음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착각했을 것이다.하지만 인제 와 보니 고다정의 생각이 그릇된 것이다.여기까지 생각하자 고다정은 무서움이 밀물처럼 미친 듯이 밀려왔다.이 정도로 강한 세력이 그들을 암살하려고 마음만 먹는다면 식은 죽 먹기 일 것이다. 그럼, 여준재 쪽도 자연스레 위험해진다.의사 사무실에서 나오는 고다정의 얼굴을 보고 여범준은 안색이 여러 번 변했지만,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다정아, 준재하고는 내가 연락했다. 준재 쪽은 네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다정이 너 스스로를 잘 지키는 것이다. 너만 괜찮고 남에게 조종당하지 않는다면 준재 쪽의
강말숙을 타일러 주면서 고다정은 주위의 하인들을 살펴보았다. 하지만 아무런 이상한 점도 발견하지 못했다.다행히도 고다정의 말을 들은 강말숙은 안색이 조금 좋아졌지만, 완전히 마음이 놓인 건 아니었다.“준재를 찾아내지 못했다면서 넌 왜 돌아온 것이냐?”“외국에서 도움이 일도 되지 못해서 회사나 대신 관리해 주려고 돌아온 것인데, 누군가가 제 몸에 손을 댈 줄을 몰랐어요.”뒷말이 나오자 고다정의 안색은 다소 일그러졌는데, 강말숙 또한 비슷했다.이윽고 강말숙은 갑자기 뭔가가 떠올랐는지, 갑자기 황당해하며 고다정의 손을 잡고 말했다.“혹시 너한테 손을 댄 것으로 목적에 달성하지 못했다면, 우리 준이, 윤이한테 손을 대는 건 아니겠지?”그 말에 고다정은 문득 깨어난 듯이 걱정한 기색이 얼굴에 고스란히 드러났다.다행히도 이때 소담이 뒤에서 걸어 나오면서 소리를 냈다.“그 부분에 대해서는 안심하셔도 됩니다. 지난번 사모님께 사고가 있고 나서 작은 도련님과 아가씨께 제 동생을 보냈습니다. 제 동생이 두 분을 잘 보호 할 것이고 학교 측에도 이미 사람을 보냈습니다. 절대 그 어떠한 기회도 상대에게 노출되지 않게끔 배치했습니다.”소담의 말을 듣고 나서 고다정은 그제야 한시름 놓게 되었다.이제 막 입을 열어 여준재에게 어떤 계획이 있지 묻고 싶었으나 소담이 먼저 입을 열었다.“사모님, 조금 전에 구남준 씨한테서 연락이 왔었습니다. 사모님께서 도와주실 수 있는지, 보고 드릴 게 있다고 했습니다.”‘보고 드릴 일이 있다고?’‘혹시 준재 씨에 관한 일인가?’고다정은 잠시 침묵한 채로 생각하더니 지시를 내렸다.“시간 된다고 전해주세요.”말을 마치고 강말숙을 보고 덧붙였다.“외할머니, 일이 좀 생겨서 그러는데, 일 다 보고 올게요.”“그래. 어서 가서 일 보거라. 참, 뉴스에 나온 보도를 준이하고 윤이에게 어떻게 설명할 것인지 잘 생각해 봐야 한다. 아직 어리지만, 일이 멀리 번진 만큼 저녁에 너하고 물을 것이다.”강말숙은 당부하며 말했다.이에 고다정
전에 여준재는 이미 고다정에게 메시지를 보내 둔세 가문을 대처할 준비를 하고 있다며 대략적인 계획을 말한 적이 있다.그러한 이유로 고다정은 자기에게 숨김이 있는 그에게 화를 내지 않은 것이다.왜냐하면 이 모든 것은 자기를 위한 여준재의 노력이기 때문이다.“이쪽의 배치는 어느 정도 끝을 달리고 있어요. 늦어서 일주일 뒤면 손을 쓸 것인데, 그때가 되면 전세계적으로 경제에 큰 파도가 일 거예요. 하지만 할아버지에게 준비해 놓으시라고 얘기는 했어요.”“참, 최면 당했다는 일은 할아버지한테서 들었어요. 아마 소리를 통해서 최면을 당한 것으로 보이는 데, 당분간 낯선 전화는 받지 않는 게 좋을 거예요. 그리고 앞으로 일주일 동안 연락할 수 없을 거예요. 자주 연락하면 그 사람들에게 신호가 잡힐까 봐 걱정돼서 그래요. 그러니 그동안 몸 잘 챙기고 어디로 가든 소담 씨 데리고 가요.”여준재는 고다정에게 거듭 신신당부하며 이를 듣고 있는 고다정은 걱정하는 마음에 안절부절못했다.그러나 결코 말릴 수 없다는 것을 똑똑히 알고 있다.이미 당긴 화살인 만큼 다시 도로 거둘 수 없다. 아니면 마지노선이 없는 그들에게 평생 잡혀 살지도 모르는 노릇이다.그 후로 두 사람은 서로 당부하고 나서 마지못해 아쉬워하며 전화를 끊었다.이와 동시에 외국의 한 건물에서 옷차림이 범상치 않은 3남 1녀가 거실에 앉아 YS 그룹의 일에 관해 상의를 나누고 있다.“YS 그룹 쪽은 이제 어느 정도 때가 온 것 같습니다. 슬슬 그물을 걷어도 좋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김창석 쪽도 마찬가지입니다.”중간 자리에 앉은 남자가 먼저 입을 열었는데, 그가 이 사람들의 두목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남자는 옛 시절의 염소수염을 하고 있다.다른 세 사람의 이 남자의 말을 듣고 무척이나 호탕한 웃음소리를 냈다.그들은 이날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렸고 드디어 YS 그룹과 성씨 가문을 손에 넣게 될 때가 왔다.… 그날 저녁 온라인에서 고다정에 관한 기사는 어느 정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모조리 삭제되
고다정의 변화에 대해서 모두가 잘 알고 있다.강말숙은 그녀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풀어주려고 몇 번이나 대화를 했으나, 그 효과는 그리 크지 않았다.강말숙에 대해 숨김이 있는 고다정이라 마음이 무척이나 무겁고 괴로울 따름이었다.하루가 멀다고 수척해지는 고다정의 모습에 두 아이도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그러나 아무리 그 중의 이유를 물어보아도 고다정은 두 아이에게 실토하지 않았다.그날 밤 도저히 마음이 놓이지 않은 고하준은 고하윤이 잠든 틈을 타서 작은 이불과 작은 베개를 안고 고다정의 방문 앞으로 다가와 문을 두드렸다.문을 열자마자 이러한 모습을 보게 된 고다정은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렸다.“준아, 지금 뭐 하는 거야?”“엄마, 저 오늘 엄마하고 같이 자고 싶어요. 같이 자면서 얘기도 나누고 싶고요.”고하준은 말을 마치고 나서 고다정이 허락하든 말든 아랑곳하지 않고 베개와 이불을 꼭 안고 문틈 사이로 비집고 들어가 방안으로 곧장 달려 들어갔다.넓은 침대로 바로 직행하여 재빠르게 자기가 잘 잠자리도 펼쳐 놓았다.작은 슬리퍼를 벗고 이불 속으로 쏙 들어가고 난 뒤, 고하준은 고다정이 아직 멍하니 문 앞에 서 있는 것을 보고 비어있는 옆자리를 두드리며 애교를 부렸다.“엄마, 얼른 이리로 와요.”이에 고다정은 어쩔 수 없다는 얼굴로 문을 닫고 곧장 침대로 다가갔는데, 침대에 오르자마자 고하준이 옆으로 바짝 다가왔다.“엄마, 저한테 솔직하게 말씀해 주세요. 아빠한테 뭔 일 생겼죠? 아니면 외국에서 지금 엄청나게 위험한 일을 하고 있는 거죠?”“왜 갑자기 그렇게 묻는 거야?”고다정은 그의 질문에 대답을 하지 않고 도려 물으며 고개를 숙였는데, 마침 고하준의 진진한 눈빛을 마주하게 되었다.그러자 고하준은 진지하게 분석하기 시작했다.“전에 엄마가 아빠한테 아무런 일도 없다며 외국에서 업무처리를 하고 계신다고 그랬잖아요. 하지만 여러 날이 지나도록 아빠와 엄마는 단 한 번도 통화를 하지 않았어요. 저도 몰래 아빠한테 연락한 적이 있는데, 연락
고다정의 말을 듣고 여진성은 몇 초 동안 침묵하고 나더니 그제야 뒤늦게 정신을 차린 듯했다.하지만 그는 가볍게 웃으며 고다정에게 위안을 해주었다.“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나도 우리 아버지도 이미 생각했던 부분이라 모든 준비를 마친 상태예요. 그러니 안심해도 좋아요.”“그럼, 마음 놓고 있어도 되겠어요.”고다정은 한시름이 놓인 듯이 숨을 길게 내쉬었다.이에 여진성은 웃으며 이윽고 관심을 보였다.“고 선생님은 요즘 좀 어때요? 낯선 전화를 받거나 낯선 사람을 마주친 적이 있어요?”그의 질문에 고다정은 사실대로 대답했다.“아니요. 그런 일은 없었어요.”“없다니 참으로 다행이에요. 그럼, 아직 봐야 할 업무들이 있어 그만 끊을게요. 집에서 아이들 잘 챙기고 있어요. 행여나 일이 있다면 언제든지 우리한테 연락하고요. 준재가 옆에 없으니 우린 자연히 챙겨줄 의무가 있는 거예요. 그러니 너무 사양하지 말고 언제든지 연락해 줘요.”여진성은 마음이 놓지 않고 여러 마디 당부하고 나서야 전화를 끊었다.그러나 고다정이 전화를 미처 놓기도 전에 벨소리는 다시 급하게 울리기 시작했는데, 김창석이었다.“아가씨, 큰일났습니다. 웬 괴한들이 별장으로 들이닥쳐 특효약에 관한 연구와 자료를 모조리 빼앗아 갔습니다. 그리고 채 원장님은 특효약을 도로 빼앗아 오려다가 총에 7발이나 맞았습니다.”“네?”고다정은 대경실색하며 휴대 전화를 들고 있는 손은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미친 듯이 밖으로 달려 나가면서 고다정은 재빠르게 명령을 내렸다.“지금 즉시 채 원장님을 병원으로 모시고 가세요. 저도 가능한 한 빨리 달려갈게요. 자세한 내용은 만나서 다시 나눠요.”말을 마치고 고다정은 즉시 전화를 끊었다. 그러고 나서 거실에 있는 이상철에게 소리쳤다.“당장 차 좀 준비해 주세요. 지금 나가야겠어요.”다급하기 그지없는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강말숙은 걱정한 기색이 역력했다.“다정아, 뭔 일 생긴 것이냐?”고다정은 자세한 내용을 말하기에 시간이 부족하여 휴대전화를 들고
간호사의 말을 듣고 고다정은 한 시도 지체할 수가 없어 재빠르게 사인을 하고 나서 건네주었다.“그럼, 제 친구 좀 잘 부탁드릴게요.”“최선을 다하겠습니다.”말을 마치고 간호사는 책임 면제 통지서를 들고 다시 응급실로 돌아갔다.다시 굳게 닫히는 문을 바라보며 고다정은 애간장이 타들어 갔다.뒤에서 사색이 된 그녀를 지켜보던 소담은 걱정되는 마음에 앞으로 다가가 타일렀다.“채 원장님께서 총알을 7발이나 맞으셨음에도 아직 숨이 붙어있는 걸 보면 오래 살 팔자일 것입니다.”“맞아요! 꼭 무사하실 거예요.”고다정은 힘껏 고개를 끄덕였으나 미친 듯이 떨리는 손은 불안하기 그지없는 그녀의 마음을 대변하고 있는 듯했다.그러한 모습을 보고 소담은 다른 일로 주의를 끌 수밖에 없었다.“사모님, 실험실 일을 스승님께 알리시는 건 어떻습니까? 그리고 임은미 씨에게도 알려야 하는 거 아닙니까? 두 분 사이에…”소담은 말을 채 하지 않았지만, 고다정은 그 뜻을 알고 있다.임은미와 채성휘 사이의 관계는 애매모호한 감정으로 뒤엉켰다. 이렇게 큰일이 났으니 임은미에게도 알리는 것이 맞을지도 모른다.“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고 있어요.”말하고 나서 고다정은 휴대전화를 들고 나가 임은미에게 전화를 걸었다.전화 연결이 되자 활기가 넘치는 임은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다정아, 웬일로 전화를 다 하고? 내가 뭐 좀 도와줘?”“은미야, 채 원장님께서 사고를 좀 당하셨어. 지금 병원에서 응급 치료 중인데, 조금 전에 위험하다고 내가 통지서에 사인까지 했어. 오지 않을래?”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고다정은 무엇인가 땅에 뚝 떨어지는 듯한 소리를 듣게 되었고 임은미는 내내 반응이 없었다.하여 걱정되는 마음에 고다정은 소리내어 그녀를 불렀다.“은미야! 은미야! 너 괜찮아?”임은미는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괜찮아. 너 지금 병원이야?”“그래. 나 지금 병원이야. 채 원장님께서는 아직도 치료 중이신데, 운산에 가족분들이 안계셔서 내가 지금 어딜 가지
고다정도 자연히 경찰 수사에 협조하며 경찰서로 따라갔다.그리고 채성휘는 임은미와 김창석에게 맡겼다.고다정이 경찰서에 들어가는 순간 그녀가 불법으로 인체실험을 했다는 기사가 온라인에 퍼지고 말았다.일시에 터진 기사에 다들 놀라움을 금치 못하며 네티즌들은 고다정을 두고 열띤 토론을 벌이기 시작했다.[대박! 불법 인체 실험? 영화에서나 나오는 장면인 줄 알았는데, 우리 신변에도 이런 일이 실제로 존재하는구나. 근데 너무 악독한 거 아님?][지금 가장 관건이 되는 내용은 경찰에서 고다정을 체포했어? 그리고 그 인체 실험인가 뭔가 하는 거 말이야, 우리한테까지 영향을 끼치는 거 아니야?][사안이 사안인 만큼 공개 수사를 부탁드립니다.]심지어 이 일로 YS 그룹까지 영향을 받아 주식이 바닥을 쳤다.하지만 이 또한 가장 엄중한 것이 아니다. 일부 네티즌들은 흥분한 나머지 판단력을 잃고 YS 그룹으로 찾아와 행패를 부리기도 했다.“YS 그룹 회장 또한 범인이나 다름없다! 운산에는 YS 그룹과 같은 쓰레기 기업이 필요 없다! 운산에서 꺼져라!”“YS 그룹 망해라!”“운산에서 꺼져라!”호호탕탕한 한 무리의 사람이 YS 그룹 건물 아래서 시위까지 하고 있다.여범준과 여진성은 사무실의 창문을 통해 이러한 광경을 보고 얼굴이 보기 흉할 정도로 일그러졌다.“다정이하고는 연락했어?”여범준은 시위하는 사람들로부터 시선을 거두고 여진성을 바라보며 물었다.그러자 여진성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네, 우리 보고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했어요. 온라인에서 떠돌고 있는 기사는 모두 모함이라고 덧붙였어요. 그리고 준재 말에 따르면, 그 배후에 있는 사람들의 작품으로 보인다며, 나중에 나서서 설명하겠다고 했어요.”“그래, 일단은 가만히 기다리자. 그리고 경호원들에게 문 잘 지키라고 지시 내려. 그 누구도 들어오지 못하게 회사 사람들도 나가지 못하게 해.”여범준은 진지한 모습으로 지시를 내렸다.하지만 때론 계획은 변화의 발걸음을 따라가지 못하는 법이다.여범준은 일
하동훈은 어르신의 말을 다 듣고 표정이 굳어버렸다.“우리 하씨 가문이 다른 사람과 손을 잡았다는 증거가 있습니까?”“증거, 당연히 있죠. 하지만 준재가 돌아오기를 기다려야 합니다.”여범준은 하동훈과 빙빙 돌려 말하지 않고 직설적으로 얘기했다.하동훈은 갑자기 웃었다.“어르신, 여준재가 이렇게 오랫동안 나타나지 않은 걸 보면 해외에서 무슨 일이 생긴 것 같은데, 여준재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라니요. 이건 시간을 끄는 게 아닙니까?”“내가 시간을 끌 필요가 있습니까? 준재가 가지고 있는 증거가 없다고 해도 당신은 내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잖아요.”여범준이 경멸의 시선으로 하동훈을 쳐다보다가 사무실 책상에서 서류 하나를 꺼내 하동훈의 발밑에 던지며 차갑게 얘기했다.“내 아버지와 약속했었습니다. 하씨 가문이 선을 넘지 않는다면 이 계약서는 공개하지 않기로. 여씨 가문이 건재한 이상 하씨 가문에도 콩고물이 떨어질 것이니. 하지만 하씨 가문은 이제 거기에 만족하지 못하는 모양이네요. 그러면 준재가 돌아오는 것을 기다릴 필요 없이 우리끼리 깨끗이 처리해 보죠.”그 말에 하동훈은 저도 모르게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그의 머릿속에는 아버지가 돌아가기 전에 했던 말이 떠올랐다.확실하지 않으면 절대로 여씨 가문을 건드리지 말라고 말이다. 그렇지 않으면 하씨 가문은 YS그룹 이사회에서 퇴출당할 것이라고 말이다.그 생각에 하동훈의 이마에는 식은땀이 송골송골 돋았다.그때 당시 하동훈은 이유를 캐물었지만 그의 아버지는 끝까지 알려주지 않았다. 그리고 그의 아버지가 돌아간 후, 하동훈은 점차 이 일을 잊어버리고 말았다.발밑의 서류를 보며 하동훈은 그 서류를 주울 용기가 나지 않았다.여범준도 그가 두려워한다는 것을 알았다. 하씨 가문의 그 늙은이들이 죽기 전에 하동훈한테 얘기를 잘해주지 않은 모양이었다.“왜요. 아까는 기세등등하더니, 지금은 왜 굳어있죠? 두려워요?”“누가 두려워한다고요!”하동훈은 도발에 넘어가 소리를 질렀다.하지만 그 말을 뱉자마자 바로 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