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회가 끝난 후 고다정은 여진성을 따라 사무실에 돌아왔다.그녀는 안색이 안 좋은 여진성을 보고 잠시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몰랐다.방금 회의에서 하동훈은 여진성이 조사 권한을 내놓지 않고서는 못 배길 정도로 거세게 몰아붙였다. 내놓지 않으면 준재가 오랫동안 나타나지 않은 것을 문제 삼아 물고 늘어질 태세였다.이런 생각을 하며 고다정은 옆에 앉아 여진성이 기분을 진정시킨 후 무슨 지시를 내릴지 기다리고 있었다.다행히 여진성은 이내 분노를 가라앉히고 조용히 소파에 앉아있는 고다정을 보며 손을 저었다.“여기는 별일 없으니 가서 일 봐요.”“네.”고다정이 대답하고 일어나서 떠나려 할 때, 사무실 문이 밖에서부터 열리더니 여범준이 지팡이를 짚고 걸어 들어왔다.여진성과 고다정이 둘 다 놀랐다.“아버지, 무슨 일로 산에서 내려오셨어요?”“할아버지.”고다정도 걸음을 멈추고 예의 바르게 인사했다.여범준은 이 소리를 듣고 걸음을 멈추더니 옆을 바라보았다.“너도 있었구나. 마침 잘 됐다. 사람 보내서 부를 필요가 없게 됐어.”말을 마치고 그는 언짢은 기색이 역력한 표정으로 옆의 소파에 앉더니 여진성을 닦달했다.“이렇게 큰일이 생겼는데 내가 오지 않을 수 있겠니? 넌 대체 회사를 어떻게 관리한 거야? 어쩌다 핵심 기밀이 유출되는 일이 두 번이나 발생했어?”여진성은 잘못을 저지른 학생처럼 여범준 앞에 서 있었다.그 자리에 고다정도 있기에 체면이 말이 아니었지만, 그는 여전히 사실대로 말했다.“방금 이사회 토론을 거쳐 제 곁에 산업 스파이가 있는 것 같다는 결론이 났어요.”“곁에 산업 스파이가 있는데 왜 일찍 눈치채지 못했어?”여범준은 여진성의 말을 듣고 얼굴에 화난 기색이 역력했다. 여진성은 씁쓸해하며 설명할 수밖에 없었다.“범인이 너무 조심스럽게 움직여요. 지난번 유출됐을 때 사람을 시켜서 일일이 조사하고, 경찰에 신고까지 했지만 누가 유출했는지 찾지 못했어요. 이번에도 유출된 기밀 중 몇 가지 데이터가 저에게만 있는 거라서 제 주변 사람일 수
고다정은 무의식 간에 여진성을 쳐다보았다.여진성도 아버지의 말에 놀라더니 잠시 멍해 있다가 그 뜻을 깨닫고 안색이 어두워졌다.어쩐지 계속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그런 거였구나.“이 자식이 이렇게 큰일을 숨기다니. 우리가 걱정한다는 걸 모르나?”“아마 설명할 수 없는 상황일 거야. 그리고 이건 내 추측일 뿐이야.”여범준은 말하다가 뭔가 생각난 듯 고개를 돌려 똑같이 안색이 안 좋은 고다정을 보며 그녀가 오해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몇 마디 더 설명했다.“다정아, 너 잡생각 하지 말아라. 내가 방금 말했듯이 이 모든 건 내 추측일 뿐이야. 그리고 준재가 우리한테 숨긴 건 매우 위험한 일이라서 걱정시키고 싶지 않아 그랬을 거야.”고다정은 이 말을 듣고 무슨 뜻인지 알아들었지만, 여전히 심기가 불편했다.그녀는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여범준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알아요. 정말 할아버지가 말씀하신 그런 상황이라 할지라도 저는 준재 씨한테 이유를 정확히 물어보지 무턱대고 화내지 않을 거예요.”“그렇게 생각한다니 다행이다.”여범준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더니 가서 일 보라고 손짓했다.고다정도 빨리 가서 어르신의 말씀이 사실인지 확인하고 싶던 차라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는 나갔다.다만 프로젝트팀에 돌아온 후 구남준에게 전화해 캐물으려 할 때 부하 직원이 찾아오는 바람에 잠시 지체됐다.그렇게 일하다 보니 반나절이 지나가고 퇴근 시간이 다 됐다.고다정은 기지개를 켠 후 미처 하지 못한 일이 생각나서 급히 책상 위의 휴대전화를 집어 들고 구남준에게 전화했다.“작은 사모님, 이렇게 일찍 무슨 일로 전화하셨어요?”전화에서 들려오는 목소리가 똑똑하지 아니한 것을 보면 자고 있었던 게 분명하다.고다정도 그의 휴식을 방해했음을 의식했지만, 기왕 전화한 걸 낭비하고 싶지 않아 단도직입적으로 이유를 말했다.“남준 씨, 사실대로 말해줘요. 준재 씨가 어디 있는지 알고 있죠?”이 말을 뱉은 후 구남준의 호흡이 한순간 흐트러진 것을 발견한 고다정은 저도 모
그 후 이틀은 그런대로 조용히 지나갔다.YS그룹 기밀 유출에 관한 인터넷 여론도 잠잠해졌다.그러나 이 사건이 YS그룹 내부에서는 끝나지 않았다.하동훈은 기밀 유출에 관한 조사 권한을 가진 후 한시도 가만있지 않았다.회사 내부 CCTV는 물론 여진성 측근들도 전부 조사했다.심지어 고다정도 불려 가서 조사를 받았다.눈 깜짝할 사이에 또 이틀이 지나갔다.이날 고다정은 평소처럼 회사에 나왔는데, 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덩치 큰 경호원 두 명이 그녀를 찾아왔다.“고 팀장님, 저희랑 회의실에 가시죠.”“...네.”고다정은 어리둥절해하며 고개를 끄덕였다.한편으로는, 무슨 일이 생겼길래 경호원까지 보냈는지 의문이 들었다.그리고 그녀가 오해했을 수도 있는데, 두 경호원이 그녀를 바라보는 눈빛에 경멸이 섞여 있는 것 같았다.잡생각을 하는 사이에 회의실에 도착했다.“고 팀장님, 들어가세요.”경호원이 회의실 문을 열면서 말했다.고다정은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그녀가 회의실에 들어서자, 모든 사람이 각양각색의 표정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분노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미간을 찌푸리는 사람도 있고,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의문 가득한 얼굴도 있었다.이러한 시선에 마주한 고다정은 이상하다고 느끼며 무의식적으로 여진성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런데 여진성과 여범준도 복잡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이때 그녀의 뒤에서 문이 닫혔다.크지 않은 이 소리에 고다정은 얼이 빠진 상태에서 제정신으로 돌아왔다.그는 얼굴을 찡그리며 물었다.“죄송하지만, 왜 다들 그런 눈으로 저를 보시는지 물어도 될까요?”“왜냐고요? 설마 몰라서 물으십니까?”하동훈이 차갑게 코웃음치며 곱지 않은 시선으로 고다정을 주시했다.자세히 보면, 그의 눈에는 살짝 흥분한 기색도 있었다.오늘 일이 잘 마무리되면 앞으로 YS그룹은 하늘이 바뀔 것이다.아무것도 모르는 고다정은 하동훈의 질문에 어리둥절해져 의문스레 물었다.“제가 뭘 했는데요?”“고 팀장은 진짜 심리
고다정은 전화하면서도 두 사람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정말 아이러니하다. CCTV 데이터가 삭제됐다면 YS그룹 기술팀 사람들이 어떻게 발견하지 못할 수 있는가?어쩌면 이 영상은 하동훈이 사람을 찾아 합성한 것일 수 있다.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그녀는 며칠 전 여준재가 보낸 메시지 내용이 떠올라 눈빛이 냉혹해졌다.하동훈은 문제 있는 부류의 사람일 것이다.고다정은 내색하지 않고 전화를 끊은 후 자기를 쳐다보고 있는 사람들을 향해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저희 회사 엔지니어를 불렀습니다. 잠시 후 여러분께서 보시고 증인이 되어 주시길 바랍니다.”“당연히 그래야죠. 하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이 영상이 진짜라면 고 팀장은 어떻게 할 건가요?”하동훈이 고다정을 호되게 압박했다.그의 매서운 시선에 마주한 고다정은 갑자기 말문이 막혔다.그녀는 이 영상이 진짜라는 생각을 아예 하지 않았던 것이다.하지만 그녀는 하동훈이 이렇게 확신하는 모습을 보고, 원래 확고하던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이 남자가 영상이 진짜라고 확신하지 않는다면 절대 이렇게 나한테 따지고 들 배짱이 없을 것이다.’‘그렇다면 이 영상은 진짜인가?’이 생각이 뇌리를 스치는 순간 고다정은 바로 배제했다.그녀는 그런 일을 한 적이 없으므로 이 영상은 틀림없이 가짜이다.“그 문제는 영상 감정이 끝난 후 다시 얘기하도록 하죠.”“고 팀장은 아직 희망을 버리지 않았군요. 좋아요. 그럼, 영상 감정 결과를 기다리죠.”승리를 확신해서인지 하동훈은 큰 자비를 베풀었다.고다정은 그의 이런 모습에 불안감이 더 커졌다.그녀는 입술을 깨물고 여진성과 여범준 곁으로 다가갔다.그녀가 두 분에게 뭐라고 할지 몰라 머뭇거릴 때 여범준이 불쑥 입을 열었다.“다정아, 우리 둘은 네가 여씨 가문에 손해를 입히는 일은 하지 않을 거라고 믿어.”이 말을 들은 고다정은 무섭고 불안하던 마음이 다소 안정됐다.“그래요. 우리는 다정 씨를 믿고 다정 씨와 준재 사이의 감정도 믿어요.”여진성도 태도를 표명
하동훈의 말이 끝나자 그 자리에 있던 다른 이사들도 잇달아 반대해 나섰다.“회장님, 저희도 두 분이 고 팀장과 어떤 관계인지 알지만 지금 상황은 감정적으로 대응하시면 안 됩니다.”“이런 일이 생겼는데, 두 분이 이 여인을 감싸면 저희가 마음이 상할 거라는 생각은 안 하십니까?”“그러게요. 이 일은 쉽게 무마할 수 없습니다.”“저는 심지어 지난번 자료 유출도 고 팀장 짓이 아닌지 의심됩니다.”이러한 의심과 압박에 직면한 고다정은 변명하지 않고 하동훈을 빤히 쳐다보며 이 일을 어떻게 해결할지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이 일이 일단 그녀가 한 것으로 판정이 나면 여씨 가문이 매우 불리해진다.그런데 하필 조급할수록 방법이 생각나지 않아 그녀는 발을 동동 굴렀다.그녀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갈팡질팡할 때 귓가에 재차 여범준의 차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여러분, 먼저 조용히 하고 내 말 들어봐요.”“회장님, 하고 싶은 말이 뭡니까?”하동훈이 불만스러운 듯 입을 열었다.여범준은 차가운 눈빛으로 그를 흘겨본 후 신경 쓰지 않고 옆에 있는 엔지니어에게 말했다.“자네가 방금 영상 화면을 검사할 때 몇 가지 이상한 점을 발견한 것 같던데, 그 부분들을 확대해서 보여줄 수 있겠나?”엔지니어는 당연히 거절하지 않았다.그는 여범준의 요구에 따라 영상에서 몇 개 화면을 캡처한 후 확대했다.여진성과 고다정은 여범준의 동작을 보고 눈이 번쩍 뜨였다.어르신이 궁지에서 빠져나올 방법을 찾으신 건가?하동훈도 똑같은 생각을 하고 활짝 펴져 있던 미간이 저도 모르게 살짝 찌푸려졌다.그는 계획에 차질이 생길까 봐 걱정했다.이는 근래 하씨 가문이 처음으로 목표에 가까워진 기회란 걸 알아야 한다.다른 사람들도 의견이 분분했다.“회장님이 저 화면들을 확대해서 뭘 하려는 거지?”“모르지, 지켜보자.”“어쨌든 이 일이 정말 작은 사모님 짓이라면 나는 절대 여씨 가문에서 사건을 무마하게 내버려두지 않을 거야. 회사 이익과 관련된 일이니, 개인감정에 휩쓸리면 안 돼.”의
여범준은 고다정의 얼굴이 평온해지자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뒤이어 그는 위엄 있게 사람들을 훑어보며 그중 승복하지 않는 표정들도 놓치지 않았다.“모두 보셨다시피 우리 손자며느리는 누군가에게 조종당해 회사에 불리한 일을 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물론 우리 손자며느리의 책임을 회피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여러분이 이 두 번의 기밀 유출로 인해 입은 손실은 우리 여씨 가문에서 전부 책임지겠습니다. 하지만...”여기까지 말하고 나서 그의 말투가 날카로워졌다.“하지만 누군가가 배후에서 우리 손자며느리를 모함했다는 것이 밝혀지면 우리 여씨 가문에서는 그 사람을 절대 가만두지 않을 것입니다.”고다정은 자기편을 들어주는 여범준의 말을 듣고 마음이 따뜻해졌다.하지만 그녀는 자기가 어떻게 덫에 걸려 최면 당하고 이런 일을 저질렀는지가 더 걱정스럽고 불안했다.그리고 하동훈이 그녀가 한 일을 다 파악하고 있는 듯한데, 이 남자가 뭘 알고 있는 것은 아닐까?회의가 끝난 후, 고다정은 한가득 의혹을 안고 여범준과 여진성을 따라 나갔다.하동훈은 세 사람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침울한 표정을 지었다.오늘 이사회에서 그는 목적을 하나도 달성하지 못했다.그는 원래 가지고 있는 증거로 고다정을 처리한 후 다른 이사들을 선동해 여준재 대표이사 해임을 추진할 생각이었다. 아니 가능하다면 이사 자리까지 내놓게 하고 싶었다.그런데 여씨 가문의 그 늙다리가 모든 일을 떠안아서 더 이상 손을 쓸 수 없게 될 줄이야.하동훈의 분노에 대해 고다정은 전혀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사무실에 돌아온 후, 여범준은 옆에서 침묵하는 두 사람, 특히 기분이 극도로 가라앉은 고다정을 바라보며 속으로 얼마나 자책하고 있을지 알았다.“진성아, 다정이가 회사에 두 번 손실을 입혔지만 너도 다정이 상황을 봤잖아. 누군가에게 당한 거야. 너...”여범준은 고다정을 달래려 하지 않았다.그는 이런 상황에서 옆 사람의 태도가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잘 안다.여진성도 그의 뜻을 알고 말이 끝나기도 전에 먼저
약방에 들어선 후 여범준은 신수 노인이 묻기도 전에 찾아온 이유를 밝혔다.“선생님, 오늘은 다정이 검사를 부탁하려고 찾아왔어요. 다정이가 최면을 당한 것 같아요.”“최면을 당했다고요?”신수 노인이 깜짝 놀라며 고다정을 쳐다보자, 그녀는 어두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어르신, 검사를 부탁드릴게요.”이 말을 들은 신수 노인은 표정이 굳어졌다.“최면에 걸렸다는 걸 어떻게 알았어?”“제가 아니라 할아버지가 먼저 발견했어요.”이에 대해 여전히 의문인 고다정은 사실대로 대답했다.그녀도 자기가 언제 최면에 걸렸는지 모르겠다.신수 노인은 멍한 그녀의 얼굴을 보고 미간을 찌푸리며 재차 입을 열었다.“사건 경과를 처음부터 끝까지 말해줄 수 있어?”“그건...”고다정은 망설이며 옆에 있는 여범준을 쳐다보았다.“괜찮아, 말해.”여범준의 허락이 떨어지자 고다정은 염려를 내려놓고 사건 경과를 대충 얘기했다.신수 노인은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열심히 듣고 있었다.“그러니까 전화 한 통을 받은 후 의식을 잃은 거야?”“그렇게 말할 수 있죠. 하지만 그날 통화기록을 뒤져 보니 기록이 없더라고요. 물론 제가 삭제했을 가능성도 있죠. 그래서 최근 통화기록을 뽑아오라고 제 비서를 통신사에 보냈어요. 곧 가져올 거예요.”고다정이 후속 조치를 말하는 것을 듣고 여범준은 만족하는 기색을 보였다.그는 이런 상황에서 고다정이 제대로 대처하지 못할까 봐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냉정하게 조사하고 있었다.하지만 신수 노인은 고다정의 말을 듣고 표정이 굳어졌다.“그러면 나와 함께 치료실로 들어가 간단한 검사를 해보자꾸나.”“부탁드릴게요.”고다정이 신수 노인을 따라 사무실로 들어갔다.여범준은 두 사람이 치료실에 들어간 후, 표정이 온화함에서 차가움으로 바뀌었다.그는 수행 비서에게 분부했다.“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나는 차에 가서 전화하고 올 테니.”이 말을 남기고 그는 약방을 떠났다.치료실에서 고다정은 신수 노인의 지시에 따라 의자에 앉았다.“다정아, 나는
여씨 가문을 옹호하는 고다정의 모습과 한 가지 일에 대한 그녀의 침착과 여유로운 태도에 여범준은 흐뭇하기 그지 없었다.그리고 그제야 고다정을 인생 파트너로 확정 지은 여준재의 마음을 알게 되었다.“다정아, 우리 여씨 가문에는 그 돈 없어도 상관없단다. 그러니 그렇게 자책할 필요 없다.”여범준은 고다정을 타일러 주고 난 뒤, 신수 노인을 바라보며 물었다.“우리 손주며느리가 정신적 유도에 휘말린 건 이로써 확신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혹시 무슨 좋은 방법이라도 있으십니까?”“죄송하지만 심리학에 대해서 저도 깊이 연구한 적이 없어 모두가 알고 있는 정도만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방면에 있어서 훌륭한 전문의를 알고 있으니 괜찮다면 추천해 드릴 수는 있습니다.”신수 노인은 미안한 모습이 가득한 얼굴로 바라보며 답했다.돌아온 답이 겨우 이뿐임에도 불구하고 여범준과 고다정은 고마울 따름이었다.신수 노인이 직접 나서준 덕분에 고다정은 불과 30분 만에 심리학 전문의 진찰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전문의는 이미 신수 노인으로부터 고다정의 상황을 들은 바가 있어 그녀를 보자마자 각종 검사를 받으라며 일일이 안배해 주었다.전반 과정은 약 30분 정도 남짓했다. 검사를 모두 마치고 나서 두 사람은 선두로 치료실에서 걸어 나왔다.표정이 굳어진 전문의의 진지한 모습을 보게 되는 순간 여범준은 마음속으로 나쁜 예감이 떠올랐다.“선생님, 우리 손주며느리 괜찮습니까? 치료할 수 있겠습니까?”“어르신, 죄송합니다만 사모님 상황은 저로서도 힘들 것 같습니다.”전문의 또한 미안한 마음이 가득한 얼굴로 여범준을 바라보며 고대를 가로 저었다.이에 여범준은 안색이 어두워지면서 눈살을 찌푸렸다.“말도 안 됩니다. 신수 어르신께 이미 들은 바가 있습니다. 최면과 정신적 유도에 대해서 높은 견문을 지니고 계신다고 제가 분명히 들었습니다.”“그건 신수 어르신께서 저를 너무 과대평가한 것 같습니다. 모두 한낱 거품에 불과하지 않는 칭찬들뿐입니다. 저보다 훌륭한 전문의는 많고도